“맞아요, 시율이 어쨌든 우리 박 씨 집안사람이니 이렇게 큰 프로젝트의 책임자로서 당연히 우리를 생각해 줘야죠.”박시연이 웃으며 말했다. 박 씨 집안이 이류 가문이 된다면 어디를 가도 당당해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그렇게 되면 박시연과 함께 놀던 삼류 가문의 사람들은 박시연을 부러워하고 잘 보이려고 아부를 떨 게 분명했다.“그러니까요, 시율이 우리 집안사람이니 당연히 우리를 생각해 줘야죠!”박준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가 박이성을 보며 말했다.“그런데 이성아, 시율이한테 사과할 거면 무조건 성실한 태도로 해야 돼, 알겠지?”“걱정 마세요, 시율이가 저희 집안을 돌봐줘서 돈을 벌게 한다면 시율이한테도 돈을 좀 쥐여줄 생각이에요.”“그런 일은 조심하는 게 좋아, 다른 사람이 알게 해서는 안 돼, 다른 사람이 알고 제보라도 한다면 좋지 않으니까, 시율이도 금방 가서 용 씨 집안사람들의 믿음을 완전히 얻진 못했을 거다.” 박 씨 어르신은 이 관계를 이용해서 프로젝트를 따내고 싶지 않았지만 박 씨 집안을 이류 가문으로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며 결국 타협했다. 그리고 박 씨 집안의 재료는 질량이 좋았기에 용 씨 집안에서도 뭐라고 말을 못 할 것이다.박 씨 집안에게 있어서 이는 좋은 기회가 분명했다. 적어도 이삼 년은 지속되어야 할 프로젝트였기에 일단 이 프로젝트를 따낼 수 있다면 적어도 이삼 년은 아무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박시율의 사무실에서 나온 최소희는 구매팀의 직원들을 보며 말했다.“자, 좋은 소식 하나 알려드릴게요, 오늘 저녁에는 야근하지 말고 칼퇴 합시다.”그녀의 말을 들은 직원들의 얼굴에 웃음이 걸렸다, 심지어 어떤 이는 흥분해서 소리를 질렀다.“잠깐만, 잠깐만요, 제 말 아직 안 끝났어요.”최소희가 직원들을 진정시키며 다시 말을 이었다.“새로 오신 부장님께서 오늘 저녁을 사주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노래방도 쏘시겠다고 합니다. 최고로 좋은 호텔이랑 노래방에 갈 예정인데 다들 어떠세요?”“너무 좋아요!”“
최소희는 말을 마치자마자 복도로 나가 전화를 걸었다.통화를 마친 그녀가 다시 사무실로 돌아가려던 그때, 최소희와 사이가 꽤 좋던 여직원 하나가 다가와 말했다.“최 주임님, 주임님께서 여기에서 일을 한 세월이 얼마인데 공로는 없어도 고생은 했잖아요, 이번에 주임님께서 부장님으로 승진을 해야죠. 아무리 사람이 없다고 해도 박시율이 오자마자 부장 자리를 꿰차는 건 너무 하지 않아요?”여직원이 최소희를 대신해 불만을 토로했다.그 말을 들으니 최소희는 다시 화가 났지만 여전히 웃는 얼굴로 말했다.“어쩌겠어요, 박시율 씨 능력 있는 분이잖아요, 그리고 신애 아가씨께서 직접 모셔온 분이니 저희 대표님 말을 들어야죠. 박시율 씨 박 씨 집안사람 중에서도 여장부에 속하잖아요.”“무슨, 박 씨 집안에서 쫓겨난 지 5년이나 되었다고 들었어요, 예전에 쓰레기를 줍는 걸 본 사람도 있어요, 그런데 신애 아가씨께서 왜 저런 사람을 마음에 들어 했는지 모르겠어요.”여직원이 씩씩거리며 말을 이었다.“주임님 모든 청춘을 회사에 바쳤는데 이번에 저 여자가 오지 않았다면 부장 자리는 무조건 주임님의 것이 됐을 거예요, 그리고 정말 박시율이 이 회사에 들어온다고 해도 최 주임님께서 부장으로 승진을 하고 박시율은 주임 자리부터 시작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그 말을 들은 최소희도 이를 악물더니 냉랭하게 웃었다.“부장 자리도 그렇게 쉬운 자리는 아닙니다, 박시율도 잘 하지 못한다면 그 자리에서 쫓겨날 수밖에 없는 거죠.”말을 마친 최소희가 주위를 둘러보더니 작은 목소리로 다시 말했다.“루비 씨, 이번에 부장님이 회식자리를 마련하라고 한 건 그저 다 같이 밥이나 먹자는 소리였거든.”그 말을 들은 루비도 얼른 최소희의 말속에 담긴 뜻을 알아차렸다.“그러니까 그 호텔로 갈 생각은 없었다는 거예요?”“네, 그리고 노래방 소리는 꺼내지도 않았어요, 하지만 부장님께서 똑바로 말을 하지 않았으니 제가 모르는 척하고 호텔을 잡은 거예요.”최소희가 어깨를 으쓱하더니 웃었다.“루비 씨도
“높다고요? 전에 부장처럼 2000만 원 월급에 각종 수당까지 합쳐서 3000만 원쯤 하는 거 아니었어요?”최소희가 미간을 찌푸린 채 물었다.“아니요, 제가 듣기로는 2억 월급에 보너스까지 있다고 했어요. 저도 월급이 왜 그렇게 높은지는 알 수 없지만 너무한 거 아니에요? 박시율이 용 씨 집안의 친척이라고 하면 몰라, 그런 것도 아닌데 부장 자리에 앉혀주고 월급까지 그렇게 많이 주다니요!”루비의 말을 들은 최소희는 생각할수록 화가 났다. 자신이 부장 자리에 앉으면 역시나 그렇게 많은 월급이 주어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더욱 아쉬웠다, 그녀는 그래도 용 씨 집안의 먼 친척에 속했기 때문이었다.박시율이 없었다면 부장 자리는 무조건 자신의 될 것이 분명했기에 그녀는 오후 내내 우울했다.“여러분, 오늘 제가 첫 출근을 해서 여러분들과 얼굴도 익힐 겸 밥을 살 생각인데 다들 최 주임님께 얘기 들으셨죠?”퇴근시간이 되어 사무실 밖으로 나온 박시율이 웃으며 물었다.스무 명이 넘는 직원들에게 밥을 사주려면 적어도 몇 십만 원은 써야 했다.5년 동안 힘들게 살아온 박시율에게 있어서 몇 십만 원을 쓰는 것도 가슴이 아팠지만 자신이 2억의 월급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하니 이것도 큰돈은 아니라고 생각했다.“박 부장님, 감사합니다, 정말 너무 통 크세요, 저 6성급 호텔은 처음 가봐요.”그때, 여직원 하나가 흥분한 얼굴로 말했다.“제 처음을 박 부장님이랑 함께 할 줄은 몰랐어요.”“애 나이가 몇인데 무슨 소리 하는 거야!”옆에 있던 남자 직원이 농담을 했다.“6성급 호텔 처음 간다고 말하고 있는 거잖아요, 무슨 생각 하는 거예요? 그리고 부장님은 남자도 아니잖아요. 밥 먹고 노래방도 갈 수 있다고 생각하니 너무 신나요!”“6성급 호텔? 최고급 노래방?”박시율은 그 말을 듣자마자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는 그저 최소희에게 야근을 하지 말고 밥이나 한 끼 먹자는 말을 전해달라고 했을 뿐인데 최소희가 제멋대로 직원들에게 말을 한 것이 분명해 보였다.“네, 부장님
“네, 부장님께서 부탁하신 거잖아요, 그래서 큰 룸으로 예약했어요, 최저 소비 금액이 3500만 원입니다. 부장님 한 달에 2억씩 받는다면서요, 이 정도는 괜찮겠죠?”최소희가 웃으며 물었다.“세상에, 룸을 예약해 주셨다고요? 부장님, 저희한테 너무 잘해주는 거 아니에요? 최저 소비 금액이 3500만 원인 곳이라니!”최소희의 말을 들은 직원들이 들떠서 말했다.그 모습을 본 박시율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최저 소비 금액이 3500만 원이라니, 게다가 노래방까지 간다면 얼마나 많은 돈을 써야 할지도 몰랐다.박시율은 최소희를 욕하고 싶었다, 왜 자신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제멋대로 호텔을 예약한 건지, 너무나도 괘씸했다.하지만 박시율은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이 최소희를 욕한다면 자신에게 좋을 게 하나도 없다는 것을 말이다. 최소희는 이곳에서 오래 일한 주임님이었기에 그녀를 따르는 사람도 꽤 많을 것이 분명했다.만약 평범한 식당을 간다면 기대를 했던 직원들은 실망할 게 뻔했다, 그리고 뒤에서 박시율을 쪼잔하다고 욕할 것이다. 그랬기에 이곳에서 최소희를 욕하는 것은 박시율에게 그 어떤 유리한 점도 없었다.“왜요? 박 부장님, 부장님께서 저한테 안배하라고 한 거잖아요, 뭐 잘못된 것이라도 있는 거예요?”한참을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박시율을 보며 최소희가 속으로 웃었다.박시율은 얼른 자신의 감정을 추스르고 웃으며 말했다.“로얄 호텔 말하는 거죠? 갑시다, 아직 시간이 이르니 두 시간 드릴게요, 집에 가서 옷 바꿔 입고 준비하고 오세요.”“네, 알겠습니다. 부장님!”제일 흥분했던 여직원이 신이 나서 말했다.“부장님 정말 짱이에요, 6성급 호텔에서 밥을 사주시다니, 이런 상사는 저도 처음 봅니다.”“그러니까요,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있네요.”직원들이 흥분해서 각자 한마디씩 했다.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최소희는 멍청해졌다, 박시율이 정말 허락할 줄 몰랐기 때문이었다. 5년 동안 일도 하지 않고 쓰레기를 줍는 걸 목격한 사람도 있었는데 적어도 5, 6천
모든 이들이 떠나고 나서야 박시율이 우울한 얼굴로 회사를 나섰다.그녀에게는 2000만 원밖에 없었는데 팀원들에게 밥을 사려면 6, 8천만 원이 있어야 했다.하지만 박시율에게는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박소희의 뜻대로 된다면 그녀는 앞으로 회사에서 버텨내기가 힘들어질 것이 분명했다.그리고 돈이 많이 든다고는 하지만 자신의 월급도 낮지 않았기에 첫 월급만 받게 된다면 많이 여유로워질 수 있었다.결국 그녀는 나봉희에게 전화를 걸 수밖에 없었다.전에 도범이 내놓은 2억중 1억 8천만 원은 나봉희의 손에 있었기에 지금 그녀에게 돈을 내놓게 해 급한 불을 꺼야 했다.“어머니…”“시율아, 회사는 어때?”하지만 박시율이 대답을 하기도 전에 나봉희가 다시 말했다.“시율아, 너 얼른 도범이랑 이혼하는 게 좋을 거야, 빠를수록 좋아, 내일이나 모래 시간을 내서 얼른 가서 이혼해. 아니면 그놈이 언젠가는 우리를 다시 구렁텅이로 밀어 넣을 거야.”박시율은 그 말을 들으니 어이가 없어졌다.“어머니, 저한테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 저 도범이랑 이혼 안 해요, 할아버지 칠순잔치 때 도범이 60억을 못 내놓는다고 해도 이혼 안 할 거예요!”“너 왜 그렇게 말을 안 듣니, 그때 너희 할아버지랑 우리 말을 듣지 않고 아이를 남겨둬서 우리 집이 이렇게 된 거야. 내가 어쩌다가 이런 불효한 자식을 낳아서는, 자기 부모를 잡아먹으려고 하네.”나봉희가 갑자기 박시율을 원망하기 시작했다. ......말문이 막힌 박시율은 더 이상 이 일을 두고 얘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어머니, 저 급한 일이 있어서 전화한 거예요, 돈이 모자라서 그러는데 6000만 원 좀 보내주세요.”“6000만 원?”돈 얘기가 나오자 나봉희가 목소리를 높였다.“그렇게 많은 돈을 어디에 쓰려고? 돈 벌려고 출근한 거 아니었어? 왜 이렇게 많은 돈이 필요한 건데? 설마 도범 그 쓰레기 같은 게 전기스쿠터를 타다가 명품 자동차를 긁은 건 아니지?”나봉희의 말을 들은 박시율은 자신의 어머니의 상상력에
나봉희는 여전히 집요했다.결국 박시율은 실망스럽게 전화를 끊었다.“여보, 왜 그래? 첫 출근인데 벌써 기분 나빠?”그때, 도범이 전기스쿠터를 타고 박시율 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아이스크림 하나를 그녀에게 건네줬다.“날도 더운데 시간이 좀 남길래 아이스크림 사 왔어!”“여보, 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회사에 오자마자 다른 사람 수작질에 걸려들었어. 더 실망스러운 건 어머니한테 6000만 원을 빌려달라고 했는데 어머니께서 빌려주지 않았어, 내가 월급 받으면 다시 돌려주겠다고 했는데, 계속 여보가 사고를 쳐서 배상해야 하는 거 아닌 거냐고 의심만 하고.”박시율이 웃으며 자신에게 아이스크림을 건네는 도범을 보며 말했다.울먹이며 말을 하는 박시율을 보니 도범은 마음이 아팠다.“여보, 괜찮아, 돈 필요하면 나한테 말해, 6000만 원일 뿐이잖아, 내가 지금 2억 꺼내 줄게, 그래야 자기가 편하게 돈 쓰지.”말을 하던 도범이 갑자기 냉랭한 얼굴로 주먹을 꽉 쥐었다.“그런데 누가 우리 여보가 첫 출근하는 날에 수작질을 부린 거야, 말해, 내가 당장 목을 따줄 테니까. 나 도범의 여자를 건드리다니, 죽고 싶은 건가.”“그러지 마, 뭐든 주먹으로 해결하려고 하지 말라고. 사실 큰일도 아니야, 회사에서 오랫동안 주임으로 일한 사람이 이제 곧 부장으로 승진할 날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내가 나타나서 그 부장 자리를 꿰찬 거니까.”박시율은 도범이 무엇이든 주먹으로 해결하려는 모습을 보면 화가 났다, 심지어 목을 따겠다는 말까지 서슴지 않는 모습은 싫었지만 자신을 향한 관심과 진심이 느껴져 기분이 좋아졌다.“그래, 그럼 주먹으로 해결하지 않을 게. 6000만 원이 필요하다는 건 무슨 뜻이야?”도범이 물었다.“내가 너무 방심했어, 우리 회사에 최소희라는 주임이 있는데 여기에서 꽤 오랫동안 일을 했거든… 그런데 최 주임이 글쎄 6성급 호텔을 예약한 거야, 그리고 노래방도 가야 해서 내가 대충 계산해 보니까 8000만 원은 있어야 할 것 같더라고. 그런
도범이 몰고 온 스쿠터 뒷자리에 올라탄 박시율의 입가에 행복한 미소가 걸렸다.5년을 기다렸다. 그리고 드디어 그가 그녀의 곁으로 돌아왔다. 그녀가 가장 막막하고 괴로웠던 시기에 제일 처음 그녀의 앞에 나타나준 것도 그였다.이런저런 생각에 잠겨있던 그녀는 한 손으로 아이스크림을 쥐고 다른 한 손으로 자신도 모르게 도범의 허리를 꼭 끌어안았다.그녀의 얼굴이 빨갛게 무르익었다. 그녀는 자신의 마음을 감추기 위해 볼멘소리로 말했다.“천천히 좀 몰아. 놀랐잖아.”도범이 고개를 숙이고 박시율의 백옥같이 흰 손을 바라보았다. 그는 마음속으로 기쁨의 미소를 지었다. 이미 충분히 늦은 속도로 달리고 있는 중이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은 은행에 도착했다. 도범이 스쿠터를 길가에 세웠다.“여보, 우리 저기서 큼직한 여행 가방이라도 사야 하지 않아? 현금 4억이면 부피가 꽤 클 텐데 작은 가방으로는 어림도 없을걸.”도범이 씩 웃으며 박시율을 데리고 그가 가리킨 방향으로 향했다.“당, 당신 정말 그 돈을 꺼낼 수 있어? 무려 4억을?”박시율이 미간을 찌푸리고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그를 바라보았다. 이렇게 자신만만한 모습을 보니 도범이 부대에서 공을 한 번만 세운 것이 아닌 것 같았다. 그게 아니었다면 그에게 상금으로 5,6억씩 줬을 리가 없었다.“무거워서 한 번에 다 들고 가지 못하는 게 걱정되어서 그렇지, 그것만 아니었다면 여기서 200억이라도 꺼내 보여 줄 수 있어!”도범이 입꼬리를 씩 올리며 박시율에게 말했다.“200억이라니! 당신 참 농담이 심해!”박시율이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도범이 갈수록 허풍만 늘어가는 것 같았다. “사장님, 여기 가방 좀 삽시다!”은행 옆에 있는 작은 잡화점에 들어선 도범이 곧바로 주인을 불렀다.“네. 얼마나 큰 걸로 사시려고요?”잡화점의 사장은 한 중년 여자였는데 도범과 박시율을 힐끗 보더니 말했다.“옷가지를 담으려고 그러죠? 일 나갈 준비하시나 봐요? 옷이 많지 않으면 이만한 크기면 충분할 거예
그녀의 말에 도범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그는 은행 문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손을 뻗어 박시율의 아름다운 얼굴을 쓰다듬었다.“걱정하지 마. 이제 내가 돌아왔으니까 더 이상 그런 고생을 할 필요 없어. 당신 남편 지금은 신분도 있고 지위도 있어. 그리고 이제는 월급도 한 달에 40억씩이나 받는걸. 안 그래?”박시율은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녀가 잔잔하게 웃었다.“용신애 씨가 당신을 속인 게 아닌가 보네. 진짜 출근하기로 한 거야?“그래. 나한테 따로 빌라도 한 채 마련해 줬는걸. 거기서 살아도 된다고 했는데 역시 난 우리 여보와 한 방에서 자야 마음 편이 잘 수 있어서 말이야!”도범이 씩 웃었다. 그는 눈앞의 여자를 바라보며 그제야 세상이 아름답다고 느껴졌다.그는 이제부터 평생 그녀의 여생을 지켜줄 것이라고 다짐했다.“뭐 하고 있어? 그렇게 커다란 비닐 가방을 들고 페트병 주우러 갈 준비라도 하나 보지? 저리 비켜.”그때 순금 목걸이를 목에 두른 남자가 다가왔다.말을 마친 그가 정장 치마를 입은 박시율의 매끈한 다리를 쓱 훑어보더니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쯧쯧 이 여자 좀 반반하게 생겼네. 언제부터 폐지나 주우러 다니는 사람이 이렇게 예쁘장하게 생긴 마누라를 찾을 수 있게 된 거야?”도범이 싸늘한 표정으로 그를 힐끗 보더니 박시율의 손을 잡고 은행 안으로 들어갔다.“쳇!”남자도 픽 냉소를 짓더니 뒤따라 안으로 들어갔다.은행 안에는 한눈에 보아도 많은 사람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의자에 앉아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사람이 너무 많은데? 우리 차례가 오려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할지 모르겠어!”박시율이 은행 내부를 확인하고 쓴웃음을 지었다.“괜찮아, 빨리할 수 있어!”도범이 자신 있게 답했다.카운터에 있던 한 여직원이 도범을 보고 반가운 표정을 짓더니 활짝 웃으며 달려 나와 열정적으로 말했다.“어머 사장님 또 오셨네요! 어서 오세요. VIP 룸으로 모실게요. 사장님과 여기 여자친구분
이 말을 들은 오수경은 고개를 저으며 완강히 거부했다.“나는 3층에 남고 싶지 않아. 도범 오빠가 4층을 돌파하면, 분명히 5층도 갈 거잖아. 천엽 7현대는 총 7층인데, 도범 오빠가 7층까지 돌파할 수도 있잖아? 그럼 도범 오빠는 다른 곳으로 바로 전송될지도 모르는데, 그러면 나 혼자 3층에 남게 되잖아. 그땐 난 어떻게 해야 하지?”도범은 오수경의 말을 듣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오수경의 걱정도 일리가 있었다. 만약 도범이 정말 7층까지 한 번에 돌파한다면, 천엽 7현대는 자신을 완벽한 도전자로 간주할 가능성이 높았고, 보상을 주고 다른 곳으로 전송할 수도 있었다.그렇게 되면 오수경을 홀로 남겨두게 되는데, 도범과 다시 만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여러 가지로 생각한 끝에, 도범은 여전히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한편, 오수경은 도범이 망설이는 모습을 보고 조급해졌다. 오수경은 도범의 팔을 잡으며 간절히 말했다.“난 도범 오빠의 인맥으로 천엽성에 들어온 거야. 인맥으로 들어온 만큼, 나는 어떠한 도전도 직면하지 않을 거고, 그저 도범 오빠만 따라가면 계속 위로 올라갈 수 있어. 어떤 위험이 닥치더라도, 나는 절대 혼자서 떠나지 않을 거야. 정말 운 나쁘게 여기서 죽더라도, 제가 감수해야 할 일이니까.”오수경의 이 말은 진심이었다. 도범을 처음 만난 이후, 오수경은 자신의 인생이 위험과 맞물려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건 자신이 바꿀 수 없는 일이었다.다른 것은 판단할 수 없었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도범은 매우 신뢰할 만한 사람이었고, 그 뒤를 따라가야만 생존의 가능성을 얻을 수 있었다. 오수경은 이곳에서의 2년을 버텨내어 바라문 세계를 떠나, 자금단방으로 돌아가 다시는 나오지 않기를 바랐다.도범은 오수경의 결심을 확인하자,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함께 걸음을 옮겨 4층의 입구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모두가 다소 망설이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미래의 운명을 예측할 수 없기에 그들
도범은 냉소를 띠며 말했다.“전 당신과 싸울 생각 없어요. 다만 한 가지 중요한 일을 잊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나게 해주러 왔을 뿐이죠.”도범의 말에 민경운은 순간 얼어붙었다. 민경운은 잠시 고민하며 무슨 의미인지 되새겼고, 이내 도범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깨달았다. 바로 얼마 전 자신과 도범 사이에 벌어진 내기 때문이었다.그 순간, 민경운의 가슴은 마치 여러 개의 큰 돌이 짓누르는 듯 답답해졌다. 그러나 민경운은 이를 갈며 분노를 삼켰다. 애초에 민경운은 도범이 절대로 이번 대결에서 이길 수 없을 것이라 확신하고 내기를 걸었던 것이다.민경운은 도범이 처참하게 패배할 것이라 생각했고, 자신의 손에 들어올 19만 영정을 기대했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하게 결과는 정반대였다. 도범이 승리한 것이다.이때, 도범은 손을 내밀며 말했다.“빨리 돈을 내세요. 저도 할 일이 있거든요. 그러니 제 시간 뺏지 마세요. 원래 9만 개의 영정으로 내기를 시작했는데, 본인이 10만 개를 더 얹어 19만 개의 영정으로 만든 거잖아요. 그러니 빨리 결제해요.”도범의 이 말에 민경운은 가슴이 터질 듯했다. 상황은 정말로 도범이 말한 대로였다. 도범은 9만 개의 영정으로 내기를 제안했고, 민경운은 도범이 분명히 패배할 것이라 생각하여 곧바로 10만 개를 더해 19만 개로 올렸다. 하지만 결국 자신의 발등을 찍고 말았다.지금 민경운은 자기 뺨을 세게 때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9만 개의 영정은 민경운에게 꽤나 큰 금액이지만, 19만 개의 영정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그러나 두 사람은 이미 계약을 체결했기 때문에 민경운이 이를 되돌릴 방법은 없었다. 만약 민경운이 결제하지 않으면 계약이 곧바로 발동하여, 결국에는 영혼의 역반작용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이후의 일은 의외로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오양수는 원건종의 제자들을 들것에 실어 나갔고, 도범은 마침내 세 번째 영패를 손에 넣었다. 이번 영패는 조금 특이하여 입탑 영패가 아닌 출성 영패로 바뀌어 있었다.이
관중석에는 각양각색의 무사들이 섞여 있었고, 불량배들도 많았다. 평소에 거리에서 욕을 퍼붓기 좋아하는 이들은 이제야 자신들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기회를 찾은 듯, 원건종의 제자들에게 온갖 욕설을 퍼부었다.일부 사람들은 진원을 목에 운용하여 의도적으로 목소리를 크게 했다. 다른 사람들이 듣지 못할까 봐 걱정이라도 되는 듯, 그들은 더욱 큰 소리로 온갖 더러운 말을 쏟아냈다. 이로 인해 도범의 귀는 무척이나 시끄러웠고, 고통스러울 정도였다.도범은 자신과 원건종의 제자들 사이에 오간 몇 마디 대화가 이렇게 사람들을 폭발시키게 될 줄은 몰랐다. 또한, 도범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쉬며 이런 싸움은 결국 아무런 결론도 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몸싸움을 할 수도 없고, 계속 말다툼만 이어질 뿐이었다.그래서 도범은 더 이상 들으려 하지 않고, 대련 무대의 한쪽 가장자리로 가서 조용히 서 있기로 했다. 도범은 아직 오양수를 죽일 생각이 없었다. 오양수가 자신에게 했던 그 약속, 즉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그대로 돌려주고 싶었기 때문이다.시간은 조금씩 흘러갔고, 싸움 소리는 계속해서 끊이지 않았다. 마침내 오양수의 몸부림이 점점 약해지고, 장벽이 완전히 해제되자 원건종의 제자들이 한꺼번에 몰려가서 오양수를 부축했다.한편, 진태산은 눈살을 찌푸린 채 오양수의 코에 손을 대 그의 호흡을 확인했다. 비록 오양수는 아직 숨을 쉬고 있었지만, 그 호흡은 매우 미약했다.민경운은 급하게 자신의 보관 반지에서 여러 개의 단약을 꺼내 오양수의 입에 넣었다. 그러나 이 단약들은 오양수의 현재 상태를 치료하기에는 전혀 효과가 없었다. 방금 도범이 사용한 참멸현공이 오양수의 영혼을 완전히 찢어놓았기 때문이다.영혼이 찢어진 상태에서 내상을 치료하는 단약이 효과가 있을 리 없었다. 따라서 민경운이 오양수에게 많은 단약을 먹였지만, 오양수의 상태는 전혀 나아지지 않은 것이다. 민경운은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만약 오양수가 정말로 이 사건으로 인해 죽는다면, 그들 모두 책임을
“맞아! 당장 우리 오양수 선배를 풀어줘! 양수 선배에게 무슨 일이 생기기라도 하면, 너는 천번 만번 죽임을 당할 거야! 오양수 선배는 도민수 선배가 아니야. 네가 도민수 선배를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갔을 때는 우리도 나서서 협상할 여지가 있었어.그러나 네가 오양수 선배를 진짜로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간다면, 염라대왕이라도 너를 보호할 수 없을 거야! 바라문 세계를 벗어나는 순간, 너는 원건종의 끝없는 추격을 받게 될 거야!”바깥에서 들려오는 원건종 제자들의 고함과 욕설은 도범의 귀에 전부 들렸다. 이는 이미 예상된 일이었기에 도범은 일말의 두려움도 느끼지 않았다.원건종은 일반적인 자유 무사들에게 충분한 위압감을 줄 수 있지만, 도범에게는 그렇게 중요한 상대가 아니었다. 원건종이 무엇이건, 자신의 힘이 충분히 강하다면 더 강력한 종문에 가담할 수 있을 테니, 원건종이 손해를 본다고 해도 도범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게다가 이번 일은 처음부터 끝까지 원건종이 문제를 일으킨 것이었다. 도범은 결코 선을 넘는 행동을 하지 않았고 원건종 쪽에서 여러 번 도발하지 않았다면, 도범 역시 이들과 싸울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잠시 후, 도범은 차가운 웃음을 지으며 원건종의 제자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일부러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원건종 제자들, 잘 들어! 8품 종문 출신이라는 이유로 제멋대로 행동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 처음부터 끝까지 문제를 일으킨 건 너희들이었잖아. 그런데 패배하고 나니 이제와서 나를 협박하는 거야?만약 너희들이 먼저 건드리지 않았다면, 나 역시 너희들과 엮일 생각이 전혀 없었을 거야. 즉, 너희들은 본인들의 강력한 종문을 배경을 믿고 제멋대로 행동해도 된다고 착각하는 거야. 하지만 나는 너희들의 그런 행태를 전혀 묵인할 생각 없어!”도범의 이 말은 관중석에서 큰 박수갈채를 일으켰다. 관중들은 도범이 그들 마음속에 담아둔 말을 대신 말해준 것 같아 고무되었다. 이들 고급 종문의 제자들은 항상 약한 무사들 앞에서만 무력을 과시하며, 이
“오양수는 원건종의 친전 제자 아닌가요?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약할 수 있죠?”“당신 바보 아니에요? 이건 오양수이 약한 게 아니라 도범이 너무 강한 거에요! 아까도 말했잖아요? 빙봉천리는 지급 상급 무기에요. 여기 있는 사람들 중에 몇이나 지급 상등 무기를 수련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도범이 빙봉천리를 부순다는 건, 도범의 무기가 오양수의 무기보다 강하다는 걸 의미해요!”“설마 도범이 천급 무기를 수련한 건가요?”이 말이 나오자마자, 주변의 거의 모든 이들이 단번에 부정했다.“미쳤어요? 무슨 말이든 막하네요. 천급 무기가 어떤 개념인지 알고나 하는 소리에요? 수련 경지가 고신경에 도달했거나, 혹은 특별한 재능을 지닌 영천 경지 후기에 이르러야만 천급 무기를 수련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기는 거에요.그리고 여기 있는 사람들은 모두 바라문 세계의 규칙을 지켜야만 이곳에 들어올 수 있고요. 나이도 60세를 넘지 않아야 하죠. 그렇다면 60세가 넘지 않은 사람이 천급 무기를 수련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그렇네요! 아마도 지급 상급 무기를 수련한 거겠죠. 도범이 오양수를 이길 수 있었던 이유는 도범이 지급 하급 무기를 대원만 단계까지 수련했기 때문일 거에요.”“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도범의 재능은 정말 두려운 수준이네요. 8품 종문의 친전 제자조차 도범의 상대가 될 수 없다는 거잖아요!”“이번에 바라문 세계에 온 보람은 있네요. 이렇게 많은 천재들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다니.”오양수와 관련 없는 관중들은 이런 논의를 흥미롭게 이어갔다. 이전에 도범을 비하하던 사람들도 이제는 도범을 칭찬하며, 도범을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천재라고 말하기 시작했다.8품 종문의 친전 제자들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원건종의 제자들은 차분할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관중석에서 편안하게 앉아있던 그들은, 도범이 빙봉천리를 단칼에 베어내는 모습을 보고는 그만 입을 다물고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지금 오양수가 이렇게 극심한 고통을 겪는 걸 보니, 분명 도범이
두 번째 방법은 고도의 신법을 필요로 하며, 일반적인 무사로서는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수준이다. 첫 번째 방법도 강력한 실력이 필요하기에, 주위 사람들이 도범을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 빙봉천리의 감금 아래에서 도범은 결코 빠져나갈 수 없을 것처럼 보였다.따라서 모두가 도범이 반드시 패배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도범의 경맥이 감금되면 오양수가 도범을 결코 쉽게 놓아주지 않을 것이라 여겼다.한편, 도범은 한 손에 장검을 쥐고, 다른 손으로는 연달아 법진을 만들어냈다. 이윽고 백 개의 영혼검이 하나로 융합되어, 거대한 영혼 검이 되어 회흑색 장검 속에 흡수되었다.도범이 전승 상태로 참멸현공을 펼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비록 빙봉천리가 지급 상급 무기일지라도, 도범의 눈에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도범은 현재 참멸현공을 대원만 단계까지 수련한 상태였고, 영혼검과의 융합으로 생성된 힘은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힘이다.도범은 분노에 차서 큰 소리로 포효하며 단칼에 검을 휘둘렀다. 이윽고 회흑색 장검에서 거대한 검기가 날아가면서 하늘을 뒤덮은 얼음망이 도범의 앞에 닥쳐왔다.모두는 쾅쾅하는 몇 번의 뚜렷한 소리를 들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단단해 보이던 빙봉천리가 도범의 한 줄기 검기에 의해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게다가 이 검기는 빙봉천리를 부순 뒤에도 힘이 전혀 소모되지 않은 채 여전히 앞으로 돌진했다. 이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고, 뒤따라오던 오양수조차 반응하지 못했다.현재 도범의 참멸현공은 대원만의 경지에 도달했다. 비록 빙봉천리가 지급 상급 무기라 할지라도, 참멸현공 앞에서는 종이장처럼 부서질 뿐이었다.모두가 도범이 빙봉천리에 온몸이 봉쇄되어, 도살당할 어린 양처럼 될 것을 기대했으나, 그들의 모든 환상은 산산이 부서졌다. 검날이 빙봉천리를 부순 후, 곧장 반응하지 못한 오양수를 향해 돌진했다. 검날이 오양수의 면전 3척 앞에 닿기 직전에야 오양수는 자신을 보호하려 했지만, 이미 너무 늦어버린 상황이었다. 평상시라면 오양수는 공격과 동시에
각양각색의 논조, 그리고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끝없는 토론. 그러나 도범은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상관하지 않았다. 도범은 그저 담담한 눈빛으로 오양수를 바라보았다.잠시 후, 오양수가 무기를 꺼내들자, 도범도 천천히 자신의 회흑색 장검을 꺼내 손에 쥐었다. 이 장검은 오랫동안 도범과 함께한 무기로, 한 번도 바뀐 적이 없었다.오양수는 청란골패를 가볍게 휘두르자, 뚜렷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와 동시에 한기가 청란골패에서 뿜어져 나오며 분위기를 한순간에 바꾸었다.현재 오양수의 머릿속에는 오직 한 가지 생각만이 존재했다. 그건 바로 도범을 쓰러뜨린 뒤, 잔인하게 고통을 주어 그 대가가 얼마나 혹독한지 알게 하는 것이었다.오양수는 크게 포효하며 두 손을 뒤집어 법진을 만들어냈다. 그러자 오양수의 손바닥에 육각형 모양의 얼음 화살이 생겨났고, 4초 후, 수백 개의 육각형 얼음 화살이 오양수의 앞을 가득 메웠다.오양수는 다시 한번 포효하며 앞을 향해 힘껏 밀어붙였다. 그러자 수백 개의 육각형 얼음 화살이 도범을 향해 맹렬히 돌진했고, 이 화살들과 함께 엄청난 한기가 도범을 덮쳤다.도범은 눈살을 찌푸린 채, 두 손으로 장검을 단단히 쥐고 한 발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는 조용히 검을 휘둘렀다. 이윽고 수많은 육각형 얼음 화살은 단숨에 두 조각으로 나뉘었다.그때, 관중석에서 다시 한번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도범 저 녀석, 실력이 정말 보통이 아니네요!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면, 오양수가 수련한 무기는 지급 상급 무기, 빙봉천리에요! 그런데 도범이 단칼에 빙봉천리를 가르다니, 실력이 꽤 강한데요!”그 사람이 말을 끝내자마자 주변에서는 곧바로 반박이 나왔다.“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게 무슨 말이에요? 빙봉천리는 지급 상급 무기에요. 바라문 세계를 둘러봐도, 지급 상급 무기를 수련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 것 같아요? 방금 전의 공격은 단지 약간의 힘만 사용한 거에요. 오양수가 진심으로 도범을 죽이려 했다면, 반항할 틈조차 없었을 거에요!”오양수가 쏘
검은 옷의 대장부는 눈살을 찌푸린 채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내가 무슨 말을 하든 네가 뭔 상관이야! 이 건방진 놈, 죽고 싶어! 마침 상대가 필요했는데, 너의 입탑영패를 가지고 와. 우리 한 판 붙자!”그러자 오수경은 콧방귀를 뀌며 태연하게 말했다.“내 앞에서 강자 흉내 내지 마. 내 가슴에 6품 연단사 휘장이 붙어 있는 걸 못 봤어? 그런데 네가 연단사인 나와 실력을 겨루겠다고? 차라리 연단술을 겨뤄보는 게 어때?”이 말에 검은 옷의 대장부는 말문이 막혀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규칙이 없었다면 그는 당장이라도 오수경의 목을 조를 기세였다.오수경은 검은 옷의 대장부가 더 이상 말하지 않자, 더욱 신나서 비아냥거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순간 도범이 손을 뻗어 그를 막았다.“너는 왜 이렇게 매사에 신중하지 못해? 지금부터 내 말을 잘 들어. 무슨 일이 있어도 입을 다물고 있어야 해. 알겠어?”도범의 꾸짖음에 오수경은 목을 움츠리며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전에 도범에게 문제를 일으킨 적이 있었기에, 이번에는 더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이때, 검은 옷의 대장부는 냉소를 머금은 채 다시 도범을 바라보았다. 방금 그들의 대화를 일부 들었기에 도범에 대한 호기심은 더욱 커진 상태였다.“네가 정말 8품 종문의 친전 제자보다 강하다고 생각해?”도범은 눈살을 찌푸린 채 검은 옷의 대장부를 상대할 가치가 없다고 여겼다. 그러나 검은 옷의 대장부는 도범이 대답하지 않아도 화내지 않았다.이렇게 시간은 점점 흘러갔고, 아마도 내기 때문이거나 도범의 냉담한 태도 때문인지 상황은 이상할 정도로 고요해졌다. 도발적인 말이 다시 들리지 않았다. 제73회 대결이 곧 시작되려 할 때, 도범은 더 이상 쓸데없는 소리를 듣지 않게 되었다.잠시 후, 도범은 자리에서 일어나 숨을 내쉬고는 오수경을 향해 눈짓을 보냈다. 그리고는 나지막이 말했다.“누구를 보든, 어떤 말을 듣든, 이 자리에서 떠나지 마.”그 말을 마치고 도범은 큰 걸음으로 대결 무대를 향해 걸어갔다
“내기를 하려면 정식으로 해야 하지 않겠어? 누구도 뒤집을 수 없도록, 우리 계약 하나 체결하자. 네가 이기면 내가 19만 개의 영정을 주고, 내가 이기면 너는 같은 수량의 영정을 줘야 해.”그러자 민경운이 눈살을 찌푸린채 말했다.“너는 사람들과 계약을 맺는 걸 참 좋아하네.”칠현대에서 민경운은 도범이 검은 옷의 대장부와 계약을 체결하기 전에 도범의 거래를 방해했었다. 그런데 도범과 내기를 할 때도 계약을 체결해야 한다고 하니 어이없을 따름이었다. 도범은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들고 진지한 표정으로 민경운을 바라보며 말했다.“계약을 맺고 싶지 않다면 솔직히 말해. 다른 핑계를 대지 말고, 계약을 맺는 것이 내기에서 가장 확실한 보증이라고 생각할 뿐이야.”이 말을 듣고 나서 민경운은 더 이상 도범과 쓸데없는 말을 나누고 싶지 않았다. 사실 계약을 체결하는 것이 민경운에게는 유리한 일이다.도범은 자신의 실력만 믿고 8품 종문의 친전 제자에게 도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도범이 이렇게 자발적으로 19만 개의 영정을 내놓으려 한다면, 민경운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야말로 어리석은 짓일 것이다. 그래서 민경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렇다면 어서 계약을 체결하자.”도범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평생 가장 빠른 속도로 계약 내용을 작성하고 자신의 정혈을 떨어뜨렸다. 그리고는 계약서 두루마리를 민경운에게 건네주었고, 민경운은 두말할 것도 없이 자신의 손가락을 그어 피를 떨어뜨렸다.계약서에 적힌 모든 문자가 즉시 뒤틀리며 두루마리의 속박을 벗어나 공중에 떠올랐다. 천지의 기운이 쏟아져 내려와 이 문자들과 얽히기 시작했고, 세 번의 호흡 후에 문자는 다시 두루마리에 합쳐졌다. 이것은 계약이 체결되었음을 의미했다.모든 절차가 끝난 후, 도범은 미소를 머금은 채 계약 두루마리를 회수했다. 계약이 체결되면 변경할 수 없고, 거짓말할 수도 없다.한편, 민경운은 도범의 흥미진진한 모습을 보고 얼굴이 점점 더 어두워졌다. 민경운은 콧방귀를 뀌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