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하, 자신만만한 말투네. 그런데 그렇게는 안 될걸!”보디가드 하나가 싸늘하게 웃더니 자기쪽으로 달려오는 도범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퍽!”두 사람의 주먹이 부딪히는 순간 거대한 힘이 전해져 오면서 남자는 순간 붕 떠서 내동댕이 쳐졌다.“풉!”뜨거운 피를 뿜어내는 순간 그는 믿기지 않는 듯한 표정으로 도범을 바라봤다. 이렇게 작은 체구에서 이렇게 폭발적이고 공포스러운 힘이 뿜어 나올 줄이야? 공격하는 순간 앞에 커다란 산 하나가 막혀 있는 기분이었다.“퍽!”그 순간, 도범에게 덤벼들었던 또 한 명의 남자가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그의 옆으로 떨어지더니 피를 토해냈다.“퍽!”도범의 주먹이 이번에는 다른 놈의 목을 사정 없이 가격했다. 곧이어 우드득하는 소리와 함께 남자는 바닥에 쓰러진 채 움직이지 않았다.“퍽퍽퍽!”사정없는 공격이 이어졌고 실력 좋기로 유명한 백 씨 가문 보디가드들은 하나 둘 쓰러졌다.“말, 말도 안 돼!”맨 처음 바닥에 쓰러졌던 남자는 눈앞에 벌어지는 광경에 놀라 얼굴이 창백해졌다. 실력 좋은 동료들이 하나둘씩 목숨을 잃자 순간 극도의 공포 그를 덮쳤다.“아!”짤막한 신음과 함께 소장 급 실력을 갖고 있던 또 한 놈이 또 몇 초도 안 되는 사이에 도범의 손에 무참히 살해됐다.“네가 마지막이네. 이제 내 말 믿겠어?”도범은 바닥에 엎드려 있는 마지막 한 놈을 보며 싸늘하게 미소 짓고는 천천히 접근했다.그리고 그의 앞에 다다랐을 때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불을 붙이더니 깊게 한 모금 들이켰다.“말해 봐. 누가 보냈어?”“몰, 몰라!”남자는 이를 악물며 부정했지만 눈은 저도 모르게 멀리에 정차되어 있는 벤츠 한태를 흘깃 스쳤다.하지만 그 작은 동작을 놓칠 도범이 아니었다. 그는 입꼬리를 씩 올리며 남자의 눈길이 향한 쪽을 바라봤다.“씨발. 저 멍청한 자식 왜 이쪽은 보고 난리야!”그 시각, 차 안에서 모든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성경일은 겁먹은 채 이내 시동을 걸었다.그와 백준은 순간 생각 회로가 멈췄다.
도범이 손에 힘을 푸는 순간 남자는 눈을 뜬 채로 바닥에 털썩 쓰러졌다. 마지막 순간 그의 눈에는 공포가 가득했다.“죽을라고 환장했네.”도범은 입가에 싸늘한 미소를 띤 채로 차에 올라탔다.그는 이번만큼은 저들을 쉽게 살려두지 않을 작정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저들이 계속 그의 생활을 방해할 테고, 앞으로 편안하게 살기도 어려울 테니까.그 시각 한참을 도망친 성경일은 도범이 계속 쫓아오지 않는다는 걸 발견했음에도 안심하지 못했다. 한참 뒤 집에 도착하고 나서야 그는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백준에게 말했다.“우리 지금 뭘 본 거지? 네가 이번에 부른 사람들 중에 소장 급도 있지 않아? 그런데,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쉽게 다 그 자식 손에 죽어버리는데!”방금 전 일만 회상하면 그는 저도 모르게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잔뜩 긴장한 듯 침을 꼴깍 삼키며 식은땀을 닦아냈다.“대체 무슨 일이지? 왜 그 자식 중독되지 않은 것 같지? 우리 설마 박이성과 장소연에게 놀아난 거 아니야?”백준은 눈살을 찌푸리고 한참을 생각하더니 성경일을 바라봤다. 그런 그의 말에 성경일도 주먹을 꽉 쥐었다.“씨발. 그러고 보니 진짜 장소연 그년한테 속은 것 같은데. 만약 도범 그 자식이 중독됐다면 그렇게 날아다닐 리 없어. 게다가 소장 급 사람을 그렇게 쉽게 죽이다니! 그 자식 대대장 급 아니었어? 오늘 평소 실력보다 잘 싸우기라도 한 건가? 아닐 텐데!”“실력을 보니 그 자식이 소장 급이 아니야. 내가 볼 때 중장 급인데 실력을 숨겼던 거야!”백준은 한참을 생각하더니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그렇다고 대장 급일리는 없어. 대장은 개나 소나 다 되는 건 아니니까. 게다가 대장이라면 벌써 유명해지고도 남았어. 그 자식 실력으로 볼 때 무조건 중장 급이야. 중장은 수도 많은 데다가 유명하지 않잖아.”하지만 성경일은 오히려 의아했다.“만약 그 자식이 중장이라면 왜 실력을 숨겼는데?”“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백준도 의문이었다. 도범은 대체 왜 실력과 신분을 숨겼는지.
성경일은 일행을 데리고 호텔 레스토랑의 룸으로 들어가 요리 몇 가지를 주문했다.그리고 요리가 다 나오고 나서야 진지한 표정으로 장소연에게 물었다.“소연 씨, 도범 그 자식 우리가 준 독 먹은 거 확실해요?”장소연은 멈칫하더니 의아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확실해요. 제가 직접 봤어요. 그리고 그 물도 제가 직접 건네준 거고요. 절반 정도 먹고 쓰레기 통에 버리는 거 제 눈으로 똑똑히 봤어요.”“혹시 잘못 기억한 거 아니에요?”장소연의 확실한 대답에도 성경일은 의심을 떨쳐내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아까의 장면을 보면 도범이 독을 먹었다는 게 말이 되지 않았다.“그럴 리 없어요. 저 똑똑히 기억해요! 분명 마셨다고요. 그런데 이거 무슨 뜻이에요? 지금 저 의심하는 거예요?”순간 뭔가 생각난 듯 장소연의 표정은 싸늘해졌다.“제가 목숨 내걸고 스파이 짓까지 했는데 뭐요? 제가 그때 얼마나 긴장했는지 알아요? 들킬까 봐 조마조마하면서도 먹는 걸 끝까지 지켜봤는데 이제 와서 저를 의심해요?”상황이 점점 심각해지자 박이성은 이내 끼어들었다.“왜 그래? 무슨 일인데? 소연 씨한테는 뭐 하러 그런 걸 물어봐? 나 소연 씨 믿어. 실패했다면 소연 씨도 우리한테 거짓말할 이유가 없잖아!”“도범 그 자식 벌써 약 복용한지 열흘이 지났잖아. 원래같으면 약효가 이미 돌았을 거란 말이지. 그러면 우리는 그 자식이 박시율 씨 생일 파티에서 죽어가는 걸 지켜보기만 하면 되니까 내가 상태 체크 해보려고 사람들 좀 보냈거든.”한지훈은 흥미진진한 듯 성경일의 말을 경청했다.“그래서? 어떻게 됐는데요? 설마 아무런 반응도 없는 건 아니겠죠?”장소연이 눈살을 찌푸리며 끼어들었다. 하지만 성경일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내가 볼 때 중독되지 않았어. 내가 처음 사람 보냈을 때에는 주위에 그 자식 보디가드가 있어 실패했었거든. 그래서 이번에 백준 가문에서 가장 실력 좋은 놈들로 보냈는데…….”“보냈는데……?”“전멸이야.”성경일은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는 말을 이어갔다.
장소연은 눈살을 찌푸린 채 한참을 고민하더니 뭔가 생각난 듯 입을 열었다.“아, 혹시 처가댁에서 자기 돈이라도 쓸 가봐 숨긴 거 아닐까요? 그렇겠네. 듣기로 소장이 전역하면 정부에서 돈 엄청 많이 내려온다고 했던 것 같아요. 한 200억인가? 그 자식이 중장이라면 200억은 훨씬 넘을 거 아니에요!”“맞네. 그 자식 돈 많은 거 숨기려던 거였네.”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쳐대는 박이성을 보더니 성경일은 씩 입꼬리를 올렸다.“다들 억측이 너무 심한 거 아니야? 그 자식한테 몇백억 있으면 내가 손에 장을 지진다.”“이게 아니면 뭔데요? 저는 이 이유밖에 생각나지 않는데요!”장소연은 두 손을 모은 채 가슴 앞에 꼭 쥐고 있었다. 아마 자기 생각이 맞다고 확신하는 것 같았다.그 모습에 성경일은 미소를 띠며 입을 열었다.“내가 동생하고 분석해 봤거든. 그런데 도범 그 자식이 예전에 자기가 대장이라고 했었잖아 그런데 명패도 내놓지 못했었고. 그러니까 우리 생각에 그 놈 절대 대장이 아니야 그리고 아무 계급도 없는 졸병이야!”“그럴리가요! 아까 그 사람 실력이 중장 급이라면서요? 그런데 졸병이라니? 앞뒤가 너무 모순되는 거 아니예요? 오히려 그게 더 억측인거 같은데요!”장소연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그래. 실력이 중장 급이면 중장이 아니더라도 소장 정도는 돼야하는 거 아니야? 그래도 소장 중에는 실력 가장 좋은 축이고!”사람들의 반박에 성경일은 담담하게 웃으며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실력이 있는데 졸병이란 건 뭐겠어? 무조건 뭔가 치명적인 실수를 해서 강등됐다는 거지!”박이성은 뭔가 알아차린 듯 크게 웃었다.“알겠다. 대장이든 중장이든 아니면 소장이든 간에 실수로 강등됐다는 걸 처가댁에서 알면 뭔 말을 들을까 봐 쪽팔려서 비밀로 했던 거였네. 맞지?”장소연과 한지훈도 뭔가 알아차린 듯 씩 웃었다. ‘보아하니 이 사실이 새어나가면 쪽팔릴까 봐 신분과 실력을 숨긴 거였네.’“그런데 도범이 예전에 대장이건 아니면 뭐건 간부를 했었다면 전역
“맞네. 그 자식이 그런 말을 했다는 건 수중에 돈이 있다는 얘기였어!”백이성은 그제야 모든 퍼즐이 맞아떨어지는 것 같았다.“씨발. 그 자식 전에 너무 몸을 사리니까 나는 기껏해야 몇십억 전도 있는 줄 알았는데 1000억이나 갖고 있었다니. 그 자식한테 정말 그렇게 많은 돈이 있다면 20억 정도 쓰는 건 껌도 아니잖아!”“열받네. 그 자식 망신 당하는 거 보려고 했는데 이렇면 정말로 그럴듯한 파티 준비하게 생겼잖아!”한지훈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와인을 한 잔 따라 마셨다.“자! 음식도 다 나왔는데 다들 먹으면서 얘기하자고!”박이성도 순간 기분이 잡쳤다.“웃긴 게 뭔 줄 알아? 우리가 그 자식 망신당하는 꼴 보려고 돈을 써가면서 홍보해 줬다는 거잖아. 도시 사람들 모두가 알라고!”성경일은 자기 잔에 와인을 채워 한꺼번에 마셔버렸다.“이제 어떡해. 돈만 팔았잖아. 그렇게 많이 썼는데 결과는? 그 자식 홍보만 해주고 몇 조 아껴준 거잖아. 완전 호구 잡혔네!”“젠장, 나는 어떻겠냐? 이 일 때문에 친구한테 돈도 빌렸어. 다음 달에 갚겠다고 했는데 결국은 그 자식을 도와 홍보만 해준 꼴이라니!”지난 일을 생각하니 한지운은 한숨이 저절로 났다. 게다가 요즘 아버지도 엄격해져서 매달 용돈이 전보다 훨씬 줄었으니 캄캄하기만 했다.“그 자식이 우리한테 한방 먹였다고 한들 그게 다 무슨 소용이야?”하지만 박이성은 오히려 천천히 와인을 음미하며 씩 웃었다.“그 자식 보아하니 아직 자기가 중독된 것도 모르는 눈치던데 아무리 으리으리한 생일파티를 준비한다고 한들 사람들에게 자기 장례식을 보여주는 꼴밖에 더 돼?”“맞는 말이긴 한데. 돈 들여 그 자식을 도와 홍보해 준 것보다 더 걱정되는 건 그 자식이 중독된 게 아니라는 거야. 만약 그렇다면 진짜 골치 아파져!”성경일은 이 사실이 가장 걱정됐다. 그는 옆에 있던 장소연을 힐끗 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그래서 소연 씨한테 확인하려고 이렇게 달려온 거잖아. 도범 그 자식이 정말로 독을 삼켰는지!”그 말
“그래, 네가 쓸데없는 생각했네.”성경일의 말이 언짢은 듯 박이성의 표정은 순간 어두워졌다.“나도 다 걱정돼서 그런 거잖아. 도범 그 자식이 상대하기 좀 쉬워야 말이지. 예전에는 잘 싸우는 게 다 부대에서 5년 동안 있어 그런 줄 알았는데. 중장 급 실력을 숨기고 있었다니 걱정돼서.”성경일은 씁쓸한 듯 웃으며 설명했다.그러던 그때 장소연이 뭔가 생각난 듯 입을 열었다.“아, 그러고 보니 예전에 하재열이 초청했던 중장도 도번한테 죽었어요. 듣기로는 그 사람이 소명용의 제자라던데 뒷배를 써서 중장 계급을 따낸 거랬어요. 그러니 실력이 중장에 못 미쳐서 도범이 그 사람을 운 좋게 죽일 수 있다고 했어요.”장소연은 뭔가 생각하더니 다시 말을 이어갔다.“그런데 지금 보니 그런 것 같지는 않아요. 그 사람이 아무리 실력이 없다고 해도 중장 급 언저리 정도는 갔을 텐데 도범이 그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건 적어도 중장 급이란 얘기죠. 하, 내가 도범 그놈의 말에 깜빡 속아넘어갔다니!”“그 자식 숨기는 게 확실히 많아!”한지운이 한 마디 거들었다.“지금으로써 알 수 있는 건 첫째, 도범 그 자식 수중에 1000억 정도 되는 돈이 있고 대규모 생일 파티를 기획할 능력이 있는데 우리가 바보처럼 그 자식 마누라 생일파티 홍보를 해줬다는 거. 둘째, 그 자식의 실력이 중장 급인데 뭔지 모를 이유 때문에 강등되어 실력을 숨겼다는 거. 그리고 셋째, 그 자식이 무조건 독약을 먹었다는 거. 하지만 증상이 선명하지 않고 실력이 여전히 대단하다는 거. 이 세 가지야.”성경일은 지금까지 알아낸 상황을 모두 읊더니 나머지 사람들을 둘러봤다.“그럼 우리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지?”“예전에 이 약 효과가 느리다고 했었잖아. 그러니까 열흘이 지나도 약효가 나타나지 않는 게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 않나?”성경일의 말을 듣고 한참을 생각하던 박이성이 입을 열었다.“앞으로가 관건이야. 며칠만 지나면 그 자식은 아마 엄청난 고통에 시달릴 거야. 그러다가 끝내 몸이 썩으면서 고통 속
“우스워지다니? 돈도 있겠다 호화로운 파티를 준비할 거잖아. 그런데 우스워질 리 있어?”성경일과 한지훈은 모두 어안이 벙벙했다.“하하, 사실 내 사촌동생이 결혼하거든, 김 씨 가문 도련님과. 박시연이라고 너희도 알지? 중요한 게 뭔 줄 알아? 박시연의 결혼식과 박시율의 생일파티가 같은 날이란 거지. 하나는 일생일대 가장 중요한 혼인이고 하나는 그저 생일파티인데 우리 박 씨 가문 어르신들이 어디에 참석하겠어?”박이성은 자신감에 찬 듯 웃어 보였다.“박시연 정말 마음에 든다니까. 이거 딱 보면 박시율과 척지겠다는 거잖아!”“진짜 대박이네!”성경일도 썩 마음에 드는 듯 손뼉을 쳤다.“하하, 어찌 됐건 우리가 도범 그 자식을 도와준 꼴이 돼서 도시 전체에서 박시율 생일파티에 대해 다 알게 됐잖아. 그런데 만약 그 자식이 돈 엄청 많이 들여 생일파티를 차렸는데 결국 아무도 참석하지 않으면 얼마나 쪽팔리겠어?”“그러니까 말이야. 너의 그 사촌 여동생 정말 대박인데. 하필이면 박시율 생일과 날짜를 겹쳐 잡다니!”한지운도 아까의 불안이 모두 씻겨나간 듯 편안한 웃음을 지었다.“지금 그 자식이 파티 날짜를 바꾼다 해도 우스워지잖아. 게다가 생일인데 날짜를 어떻게 바꿔. 홍보도 다 한 마당에.”그때 박이성이 웃으며 한 마디 거들었다.“내가 이 소식을 듣고 박시연한테 전화로 물어봤거든. 그런데 걔가 뭐라는 줄 알아? 도범 그 자식이 엄청 고집을 부렸다는 거야. 파티 날짜를 안 바꾸겠다고. 박시연 결혼식과 같은 날짜에 하겠다고. 자기 무덤을 자기가 파는 거지.”“곧 죽어도 체면이 구겨지는 건 원하지 않는다는 거겠지. 만약 시간을 바꿔 이틀 전에 한다면 박 씨 가문 사람들 모두가 참석할 수 있을 텐데. 그러면 쪽팔릴 일도 없고. 그런데 날짜가 겹쳤으니 박 씨 가문에서는 무조건 생일파티보다는 결혼식에 참석할 거고 그 자식은 자연스레 창피 당할 거고!”그 말을 듣고 있던 장소연은 입꼬리를 씩 올렸다.“날짜 앞당기지 않는 게 우리한테는 오히려 땡큐지. 그 자식이
“한 번도 해본 적 없어요. 그런데 신애 씨가 가고 싶다면 기꺼이 가드리겠습니다. 보디가드로써 아가씨의 말을 거역할 순 없죠!”도범은 싱긋 웃었다. 오후 2시가 되었는데도 제갈소진이 나타나지 않는 것을 보자 한편으로 안도했다.보아하니 제갈소진도 생각을 정리한 모양이었다. 지난번 식사 자리에서 그가 조금 심하게 말하긴 했지만 효과는 좋았다. 적어도 그 뒤로 제갈소진이 다시는 그를 귀찮게 하지 않았으니까.하지만 그와 용신애, 용일비 세 사람이 떠나려고 하던 그때, 아우디 차 한 대를 시작으로 몇 대의 차가 마당에 들어서더니 그들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멈춰 섰다.“신애야 어디 가려고? 내가 시간 딱 맞춰서 왔나 보네. 늦게 왔으면 서로 엇갈렸을 텐데.”차에서 내린 사람은 다름 아닌 제갈소진이었다.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띠며 선글라스를 벗는 그녀의 모습은 평소보다도 더 세련돼 보였다. 새로 한 검은 웨이브 머리도 아주 어울렸다.하지만 기분이 좋아 보이는 제갈소진과 달리 도범의 얼굴은 순간 어두워졌다. 지난 번 식사 자리에서의 거절도 그녀 앞에서 대놓고 박시율과 벌인 애정 행각도 효과를 발휘하지 않은 모양새였다.제갈소진이 전에는 용신애와 용일비와 별로 친하지도 않고 서로 왕래도 없었는데 요즘 매일같이 여기로 출근도장을 찍는 이유는 보다 마나 도범이었다.심지어 용 씨 가문의 보디가드들도 뒤에서 그의 얘기를 하며 부러운 기색을 보내고 동시에 그런 미녀를 거절한 도범을 바보라고 수군대는 통에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그러게. 정말 시간 딱 맞춰서 왔네. 오전에 머리하러 갔다 왔나 봐? 스타일 괜찮네!”용신애는 웃으며 제갈소진의 말을 받아쳤다.“우리 당구 치러 갈 건데. 어때? 너도 콜?”“아, 당구 치러 가는 거구나. 그래. 실력은 별로지만 나도 자주 치러 다니긴 하지. 가자!”제갈소진은 아예 차에서 내리지도 않은 채로 동의했다.“앞장서, 뒤따를게.”그러고는 도범과 조수석을 번갈아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도범 씨는 따로 운전하지 말고 제 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