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현걸과 유천봉은 오랫동안 서로 주고받으며 이야기를 나눴지만, 그 말들이 도범에게 어떻게 들릴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어차피 그들의 눈에 도범은 곧 시체가 될 운명이었고, 죽은 자는 비밀을 외부에 누설하지 않는 법이었다. 방현걸이 도범을 바라보며 고개를 돌렸다. “넌 왜 이렇게 하나도 두려워하지 않지? 혹시 내 선배가 네가 여기 들어오기 전에 모든 걸 다 알려줬나?” 도범의 차분함은 방현걸을 몹시 궁금하게 만들었다. 필경 방현걸과 유천봉이 거리낌 없이 대화를 나눴기에, 상식적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들은 사람이라면 눈치챘을 것이다.게다가 자혼비는 그들 바로 뒤에 세워져 있었고, 규칙 역시 명확하게 적혀 있었다. 문자를 읽을 수만 있다면 규칙을 이해할 수 있고, 그것만으로도 자신이 앞으로 어떤 상황에 놓일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런데 분명히 보고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도범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마치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서 있었다. 이런 도범의 모습에 방현걸은 궁금함과 함께 의아함을 느꼈다. 이때, 도범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고 말했다. “내가 왜 두려워해야 하죠?” 이 한마디에 방현걸과 유천봉은 당황했다. 도범이 이렇게 당당한 어조로 이 말을 하다니, 마치 유천봉과 방현걸이 8품 종문의 무간종 제자가 아닌, 그저 보잘것없는 작은 종문 출신의 서무 제자처럼 여기는 듯했다. 도범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대했다. 이러한 도범의 태도에 방현걸과 유천봉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고, 도범이 미쳤나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이윽고 유천봉은 화가 나서 실소를 터뜨리며 말했다.“내가 보기에 네 머리에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 우리가 어느 종문 출신인지 모르는 건가? 감히 왜 두려워해야 하냐고 말하다니? 선배와 생사를 걸고 대결하게 될 텐데, 본인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러자 도범은 가볍게 코웃음을 치며 유천봉의 말을 무시했다. 도범은 두 사람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비록 그들이 8품 종문 출신이지만, 그들 둘은
사실 바라문 세계는 그리 오래 열리지 않았고, 그 넓이를 생각하면 누군가가 이 세상을 전부 탐험했을 가능성은 없었다. 아직 많은 상황이 초기 단계에 불과했다. 하지만 유천봉과 방현걸의 대화에서 두 사람은 마치 바라문 세계 전체를 이미 다 파악한 것처럼 들렸다. 이 점이 도범을 몹시 의아하게 만들었고, 마음속으로 여러 가지 추측을 하게 했다. 한편, 유천봉은 도범의 질문에 또다시 멍해졌다. 도범의 생각은 정말 종잡을 수 없는 것 같았다. 뭔가 머리에 문제가 있는 게 틀림없었다. 이때, 계속 뒤에서 구경만 하고 있던 방현걸도 눈썹을 치켜올리며 살짝 입꼬리를 씰룩이며 물었다. “왜 그런 걸 묻는 거지?” 도범은 모든 감정을 숨기고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말했다. “그냥 궁금해서요. 어차피 이건 생사를 건 대결이니까, 끝나면 한 명은 죽을 텐데, 비밀은 죽은 자의 입에서만 머물 거잖아요? 그렇다면 뭘 숨기겠어요?” 도범은 여전히 바람처럼 가볍게 말했다. 마치 곧 죽게 될 사람은 자신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이러한 도범의 말에 방현걸과 유천봉은 서로를 바라보며 눈빛으로 공감을 나눴다. 도범은 정말 이상하다. 말하는 방식도 그렇고, 표정도 그렇고, 모두 평범한 사람과는 크게 달랐다. 마치 본인이 하는 모든 일에 자신감이 넘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그 자신감의 근원은 무엇일까? 그저 연단사에 불과한 이 녀석이 정말로 자신이 영천 경지의 고수를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방현걸과 유천봉은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생각을 굴렸지만, 도범의 다음 말은 그들에게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다. 도범의 말이 맞았다. 어차피 도범은 결국 죽을 운명이라, 죽은 자는 비밀을 발설하지 않는다. 그러니 몇 가지 정보를 도범에게 알려준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었다. 어차피 죽을 텐데, 차라리 너그럽게 대하는 게 나을 수도 있었다. 그래서 방현걸은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도범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우리가 바라문 세계의 지도를 가지고 있는 것은 맞다. 하
이렇게 하는 목적은 다른 세력이 진실을 알게 되어 혼란을 일으키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 도범은 생각할수록 웃음이 나왔다. 이 무리들이 정말 지독하다는 생각에 미칠 정도였다. 이윽고 도범은 깊은 숨을 내쉬며 다시 고개를 들고 물었다. “그러니까 무간종과 봉원곡 사이의 원한은 그저 겉모습일 뿐이고, 제자들은 모두 알고 있었던 건가요?” 방현걸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 도범의 질문에 방현걸은 경각심이 들었다. 보통의 자유 무사는 이런 질문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범이 아무리 특별한 신분을 가졌더라도 결국 죽을 운명이라는 생각에, 방현걸은 더 이상 이 문제로 고민하지 않기로 했다. 방현걸은 거리낌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무간종의 제자들이 모두 아는 것은 아니고, 이런 일을 아는 사람은 소수야. 몇몇 친전 제자와 몇 명의 존귀한 내문 제자들만 알지.” 방현걸은 자랑스러운 듯 턱을 살짝 들었다. 분명 그들과 유천봉이 바로 그 소수의 존귀한 내문 제자들이라는 뜻이다. 한편, 이 말을 들은 도범은 답을 얻은 기쁨이 아니라, 마치 누군가에게 놀림당한 듯한 분노를 느꼈다. 이 진실을 장로들은 분명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도범에게 지도의 일부분조차도 보여주지 않았다. 모든 지도를 줄 필요는 없지만, 부분 지도라도 줄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그렇게 도범은 아무것도 모른 채 바라문 세계에 들어왔다. 비록 도범은 두려움은 없었지만, 걱정이 없진 않았다. 봉원곡의 장로들은 이런 사실을 다 알고 있었음에도, 도범에게는 아무런 진실도 말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도범은 완전히 속은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도범은 봉원곡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그들이 진실을 모두 말해주지 않을 거라는 점은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도범에게 최소한의 편의조차 제공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너무나도 실망스러웠다. 사실 도범은 봉원곡에서 좋은 자원을 거의 받지 못했다. 물론 스스로의 노력으로 영정을 많이 벌
“손을 쓰기 전에 규칙부터 보세요. 이 대전 안에서 함부로 손을 쓰면 자혼전의 신위를 무시하는 것으로 간주되어, 바로 자혼뢰에 맞아 죽게 될 거예요!” 도범의 이 말은 마치 차가운 물 한 바가지를 방현걸의 머리 위에 끼얹는 듯한 효과를 냈고, 방현걸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이때, 방현걸 뒤에 있던 유천봉도 서둘러 방현걸의 팔을 잡으며 말했다. “현걸, 진정 좀 해. 현양성은 고대 대가가 남긴 보물이야. 우리는 아직 수련 경지가 약하니 자혼전의 규칙에 맞서 싸울 수 없어.” 그러자 방현걸은 입을 꾹 다물며 억지로 화를 참았다. 그리고는 도범을 차갑게 노려보며 이를 빠득빠득 갈며 말했다. “곧 죽을 놈이랑 더 이상 시비 걸지 않겠다.” 도범은 가볍게 웃으며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때, 유천봉이 미간을 찌푸린 채 말했다. “너 이 자식, 네가 이렇게 대수롭지 않게 굴고 있는 건 자혼비에 손을 대지 않으면 생사 대결을 피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지?”그 말을 들은 방현걸도 눈을 크게 뜨며, 도범이 정말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깨달았다. 방현걸은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이윽고 방현걸이 큰 소리로 외쳤다. “꿈 깨! 비록 우리가 진짜 손을 쓸 수는 없지만, 무기를 사용하지 않아도 너를 자혼비에 밀어 넣을 수는 있다. 네가 무슨 수를 쓰든 헛된 계산이 될 거야!” 유천봉도 고개를 격하게 끄덕이며 동의했다. 그리고는 갑자기 무언가 생각 났는지, 자신의 저장 반지에서 약 한 알을 꺼내고는 도범을 향해 비웃으며 말했다.“이 약은 연혼단이라고 불리는데, 이 약을 복용한 후 30분 안에 해독제를 먹지 않으면, 지옥불에 영혼이 타는 고통을 겪게 될 거야. 그 고통은 육체적인 고통과는 비교도 할 수 없지. 아무리 강인한 사람도 이 약을 먹으면 살기보다 죽기를 원하게 될 것이고, 결국 우리가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을 거야. 너도 예외는 아니야!” 그러나 도범은 그들의 위협에 코웃음을 쳤다. 도범은
방현걸은 고개를 돌려 유천봉을 향해 고개를 끄덕인 후, 성큼성큼 걸음을 옮겨 자혼비의 반대편으로 다가가 손을 자혼비 위에 얹었다. 아까와 똑같이, 방현걸의 손이 자혼비에 닿자마자 보라색 금빛 실들이 그의 손을 단단히 감쌌다. 콰쾅- 번개가 천둥처럼 울리며, 세 사람 모두 멍해졌다. 방현걸, 유천봉, 도범이 아직 반응하기도 전에 두 줄기 보라색 검은빛이 방현걸과 도범을 감쌌고, 이윽고 그들은 대전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곳은 황폐함의 극치에 달한 세상이었다. 사방에 펼쳐진 황토 외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고, 고개를 들어 올려다본 보라색 하늘 외에는 특별할 것이 없었다. 자혼비에 적힌 규칙을 본 순간, 도범은 그들이 다른 장소로 전송되어 생사 대결을 할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도범이 예상치 못한 것은 경기가 각자 따로 진행된다는 점이었다. 바로 그때, 하늘에서 갑작스럽게 무거운 소리가 들려왔다. [경기 시간은 향 하나가 다 타는 시간이다. 그 시간 내에 누가 더 많은 자혼수를 죽이는가에 따라 이번 경기의 승자가 결정된다.]도범은 깊은 숨을 내쉬었다. 이 순간 도범은 미묘한 압박감을 느꼈다. 이전의 대결들에서도 긴장감은 있었지만, 이번처럼 압박을 느낀 적은 없었다. 아마도 시간이 제한되어 있고 방현걸의 성과를 알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사방에서 언제 나타났는지도 모르게 짙은 보랏빛 연기가 피어올랐고, 연기는 순식간에 사방을 뒤덮었다. 도범은 눈살을 찌푸린 채, 이슬 영함에서 회색 검은빛의 장검을 꺼내 손에 쥐고 전력을 다해 경계했다. 쨍그랑, 쨍그랑-마치 수정이 부서지는 소리처럼 들렸다. 보랏빛 연기가 점점 짙어짐과 동시에 도범의 미간도 점점 더 깊게 찌푸려졌다. 세 번 숨을 들이쉰 후, 연기는 갑자기 사라졌고, 도범은 주변을 분명히 볼 수 있었다. 그 주위는 이미 기괴한 모습을 한 요수들로 가득 차 있었다. 요수들의 몸은 보라색 수정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이 보라색 수정들은 투명한 모습을 띄고 있었다. 또한, 요수
열 마리 자혼수 중 아홉 마리는 선천 중기였고, 한 마리는 선천 후기였다. 그들은 길게 드러난 송곳니를 드러내고, 잔인한 짐승의 눈빛으로 도범의 목을 노리고 있었다. 도범은 이 광경을 보고 오히려 안도했다. 모든 자혼수들이 한꺼번에 몰려올 줄 알았는데, 무리를 나누어 공격해온다는 사실이 도범에게는 훨씬 더 쉽게 다가왔다. 도범은 한 걸음 앞으로 내디디고는, 두 손으로 검 자루를 움켜잡고 크게 외치며 그 열 마리 자혼수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참멸현공이 검기 하나로 변해 육안으로 보일 정도의 속도로 열 마리 자혼수를 향해 날아갔다. 또한, 검기의 검날은 허공에서 15m 폭의 크기로 확장되었고, 강력한 에너지 파동은 없었지만, 전진을 멈추지 않는 위엄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열 마리 자혼수는 생사를 두려워하지 않고 오직 도범만을 목표로 삼았다. 쨍그랑, 쨍그랑-검기가 열 마리 자혼수들과 충돌했고, 날카로운 검기는 순식간에 자혼수들의 방어를 뚫어버렸다. 도범이 놀란 것은 자혼수들의 몸이 단단해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참멸현공 앞에서는 종이장처럼 쉽게 부서졌다는 점이었다. 참멸현공은 영혼 속성의 공격으로, 상대의 육체를 뚫고 영혼에 직접 타격을 주는 기술이었다. 일반적으로 참멸현공이 자혼수의 몸을 통과하면, 영혼을 멸할 수 있다고 예상했지만, 실제 상황은 도범의 예상과 달랐다. 참멸현공의 힘은 자혼수의 몸에 닿는 순간 강력한 파괴력을 발휘했고, 자혼수의 몸은 한 번의 숨조차 견디지 못한 채, 순식간에 참멸현공의 힘에 의해 산산조각이 났다. 열 마리 자혼수는 찰나의 순간에 공중에서 완전히 소멸되었고, 그 속도는 도범조차도 약간 놀라게 할 만큼 빨랐다. “혹시 자혼수의 신체 구조가 내가 생각한 것과 다른 건가?” 도범은 미간을 찌푸린 채 말했다. 같은 시간, 다른 독립된 공간에서도 열 마리 자혼수가 방현걸을 향해 달려들었다. 방현걸은 굳은 얼굴로 이 자혼수들과 맞붙어 싸우고 있었다. 방현걸은 이현무와 매우 친밀한 사이였고, 그들이 선
바라문 세계의 규칙 덕분에 강제로 실력을 갈고닦지 않았다면, 방현걸은 자혼수 열 마리를 상대할 수 없었을 것이다. 자혼수의 힘이 너무 강해서 부상을 당하거나 심지어 죽었을 수도 있었다.방현걸은 가볍게 코웃음을 치며 경멸이 가득 찬 눈빛으로 널브러진 자혼수의 시체를 바라보았다. 이렇듯 방현걸이 스스로 자부심에 차 있을 때, 바깥에 있던 유천봉은 온몸이 굳어버렸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유천봉 앞에 있는 자혼비가 완전히 변해버렸기 때문이었다. 결과는 명백했다.자혼비에 적힌 글자는 모두 사라지고, 두 개의 숫자로 바뀌어 있었다. 왼쪽에는 10, 오른쪽에는 20이 적혀 있었다. 유천봉은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방현걸은 자혼비의 왼쪽에 손을 올렸고, 도범은 오른쪽에 손을 올렸다.즉, 왼쪽은 방현걸의 성과이고, 오른쪽은 도범의 성과였다. 두 사람의 성과 차이는 두 배가 났고, 그 숫자는 유천봉의 눈앞에 너무나도 분명하게 드러나 있었다. 또한, 유천봉은 두 사람이 들어갔을 때 했던 생각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그때 유천봉은 도범이 반드시 패배할 것이고, 대전에서 나오면 자혼뢰에 맞아 영혼이 날아가버릴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지금 유천봉은 온몸이 굳어버려,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사실인지 믿을 수 없었다.심지어 유천봉은 자신이 잘못 기억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의심하기 시작했다. ‘도범이 왼쪽이고, 방현걸이 오른쪽이었던 것은 아닌가.’유천봉은 입술을 바르르 떨며 중얼거렸다.“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진 거지? 자혼비가 잘못된 게 분명해!”유천봉은 이런 방식으로 스스로를 위로할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자혼비 위의 숫자는 계속해서 변화하고 있었고, 독립된 공간에 있는 방현걸과 도범은 전력을 다해 자혼수를 죽이고 있었다.방현걸과 도범은 모두 자신만만했다. 비록 서로의 성과를 볼 수는 없었지만, 상대가 자신보다 나을 리 없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특히 방현걸은 여유롭게 자혼수를 베어내며, 도범이 이미 중상을 입고 쓰러졌을 것이라고 상상하고 있었다.도범
도범의 공격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지고 있었다. 영천 경지의 자혼수를 상대하더라도 전혀 두려움이 없었다. 어차피 도범은 선천 후기 시절부터 이미 영천 경지 초기의 무사나 요수를 베어낸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도범의 수련 경지가 억제되고 있었지만, 이전보다 훨씬 강해졌다. 한편, 자혼전 안에서 유천봉은 입을 틀어막고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순간 도범과 방현걸의 성과는 점점 더 큰 차이를 벌리고 있었다. 향 하나가 다 탈 때쯤, 왼쪽의 성과는 71이었고, 오른쪽의 성과는 이미 200을 넘어 있었다. 방현걸과 도범의 차이는 점점 더 벌어지고 있었으며, 오른쪽의 성과는 왼쪽을 두 배 이상 초과한 상황이었다. 유천봉은 계속해서 스스로를 위로했다. “분명 자혼비가 잘못된 거야. 도범과 방현걸의 위치가 바뀌었기 때문에 이런 성과가 나온 거겠지.” 그러나 유천봉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불안이 가득했다. 만약 자혼비가 잘못되지 않았다면, 왼쪽이 방현걸을, 오른쪽이 도범을 가리키는 것이니, 모든 것이 끝장날 터였다. 이번 대결에서 패자는 죽을 운명이기 때문이다. 유천봉이 중얼거리며 말했다. “틀림없이 자혼비가 문제야! 도범과 방현걸의 위치가 분명히 바뀐 거야. 그렇지 않다면 도범이 어떻게 현걸 형님보다 두 배나 높은 성과를 낼 수 있겠어? 이건 말도 안 돼! 도범은 그저 연단사일 뿐이잖아. 현걸 형님은 무간종의 내문 제자고, 내문 제자들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자야. 따라서 도범이 우리 현걸 형님을 이길 리가 없어!” 유천봉은 스스로를 다독이며, 속으로 방현걸을 응원했다. 시간이 금방 흘러, 향 하나가 다 탈 때쯤, 왼쪽과 오른쪽의 성과가 확정되었다. 왼쪽은 80에 머물렀고, 오른쪽은 240으로 상승했다. 방현걸과 도범의 차이는 또다시 열몇 마리 차이가 벌어졌다. 유천봉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유천봉은 속으로 계속 기도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 자혼비에서 다시 한번 보랏빛 광채가 터져 나왔다. 방현걸이 사라졌던 자리에서 갑자
“풍린수의 가장 큰 약점은 지능이 낮다는 거야. 이들은 그렇게 많은 꾀를 부리지 않기 때문에 무사들이 조금만 머리를 쓰면, 버티기만 해도 풍린수를 처치할 수 있지.”삼각눈의 남자는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혹시 구록종이 무슨 종문인지조차 모르는 건 아니겠지? 방금 구록종을 언급했을 때, 네 표정이 어찌나 비웃음이 깃든지 말이야. 중주에 어떤 강력한 종문들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거 아니야? 넌 정말 중주 출신이 맞긴 한 거냐?”이 일련의 의심에 삼각눈을 가진 남자는 점점 오수경을 변두리에서 나온 우물 안 개구리라 여겼다. 그렇지 않다면 그런 말을 할 리 없었다. 오수경은 무심코 입꼬리가 바들바들 떨렸다. 이제야 도범이 왜 침묵을 즐기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이들과 다투는 것은 시간 낭비일 뿐이었다. 애초에 오수경은 이들과 말다툼을 할 생각조차 없었지만, 이제는 이들이 오수경을 끝없이 몰아붙이고 있었다.오수경은 인상을 찌푸린채 말했다.“물론 구록종은 중주 7품 종문 중 하나로, 그중에서도 손꼽히는 강자라는 것을 잘 알고 있지.”그러자 삼각눈을 가진 남자는 오수경의 말을 듣고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그런데 왜 내가 구록종을 언급했을 때, 네 얼굴에는 비웃음이 서린 거냐?”오수경은 미간을 찌푸린채 되묻고 싶었다.‘네가 어떻게 내 얼굴 표정을 그렇게 자세히 본 거야? 난 내 얼굴에 어떤 표정이 있는지도 몰라.’이 삼각눈을 가진 남자는 모든 걸 알고 있는 듯했다.오수경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목소리를 높여 이들과 싸우려는 순간, 도범이 오수경을 막았다. 그러자 도범이 일부러 목소리를 낮추지 않고 말했다.“이 사람들과 싸워서 뭐하겠어? 저들과 싸우는 건 네 시간만 낭비하는 거야. 이들은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야.”이 말에 주위는 순간 조용해졌다. 도범은 지금까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아 사람들이 도범을 허세 부리지 않는 사람으로 생각했으나, 도범의 말은 그들의 예상과는 완전히 달랐다.오수경도 이미 충분히 오만했지만
“역시 숲이 크면 별의별 새가 다 있는 법이지. 거울이라도 보고,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알아봐야 할 텐데, 감히 그런 말을 하다니.”그 중 한 명이 손가락으로 앞쪽에 서 있는 흰 옷을 입은 사람을 가리키며 말했다.“저기 흰옷 입은 사람 보이지? 저 사람은 구록종 출신으로 친전 제자야. 그런데도 30분이 되서야 겨우 수정구를 파란색으로 바꿨다구! 방금 그렇게 큰소리쳤으니, 네 옆에 있는 이 친구가 첫 번째 관문을 통과해서 보라색 수정구를 파란색으로 바꾸는 데 얼마나 걸리는지 한 번 볼까?”다른 사람도 거들며 말했다.“그래, 말 좀해봐. 네가 그렇게 치켜세운 저 친구가 보라색에서 파란색으로 바꾸는 데 얼마나 걸릴 것 같아?”주변 사람들은 이 상황을 재미있어하며 오수경을 계속 몰아세웠다. 그들은 오수경에게 도범이 첫 번째 관문을 통과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말하라고 강요하며, 주변 사람들이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까지 구체적으로 언급했다.이들 대부분은 6품 종문이나 자유 무사 출신으로, 첫 번째 관문을 통과하는 데 최소 4시간이 걸렸다. 출신이 뛰어난 천재들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았다.처음에는 오수경이 이들과 대화할 생각이 전혀 없어서 입을 꾹 다물고 인상을 쓰며 침묵을 지켰다. 그러나 이들은 끈질기게 질문을 던지며 진실을 밝히지 않으면 물러서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오수경은 도범에게 도움을 구하는 눈빛을 보냈지만, 도범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네가 만든 일이니 네가 해결해.”도범은 오수경이 이미 여러 번 경솔하게 발언해 문제를 일으킨 적이 있기 때문에, 매번 오수경의 뒤처리를 해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오수경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쉬고, 계속되는 질문에 결국 고개를 들어 크게 말했다.“저 사람들이 30분이 걸린다면, 도범 오빠는 15분이면 충분해!”오수경은 어차피 모든 것을 걸고 말하기로 했다. 이 사람들은 정말 짜증나는 존재들이었기 때문이다. 오수경의 말이 끝나자마자, 주위 사람들은 오수경의 말에 반
두 마리의 풍린수를 처치하면 수정구는 파란색에서 청색으로 변하게 된다. 그때 무사는 몇 배나 강력해진 풍린수와 마주하게 되며, 이 마지막 풍린수를 처치해야만 4층을 통과하여 5층에 진입할 자격을 얻게 된다.도범의 설명을 들은 오수경은 미간을 찌푸린채 되물었다.“그러니까 4층은 사실 세 단계로 나뉜다는 말이지? 수정구의 색이 변할 때마다 단계를 하나씩 통과하는 거야. 총 세 가지 색이 있는 셈이니까, 5층으로 가려면 세 번을 모두 통과해야 하네.”도범은 고개를 끄덕였고, 오수경은 손가락을 꼽아가며 말했다.“즉, 네 마리의 풍린수를 상대해야 한다는 거지. 첫 번째 풍린수는 상대적으로 약하고, 두 번째와 세 번째 풍린수는 좀 더 강해지지만, 가장 강력한 풍린수는 마지막 한 마리라는 거군. 이 마지막 풍린수를 처치해야 비로소 통과가 완료되는 거네.”도범은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였다. 오수경의 정리가 꽤나 명확했다. 오수경은 5층으로 순조롭게 진입하려면 이 절차를 그대로 따라야 한다. 네 마리의 풍린수를 모두 처치해야만 5층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오수경은 웃으며 말했다.“4층은 도범 오빠에게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겠네. 그 무슨 풍린수라는 것도 결국 선천 후기에 불과하니까 말이야.”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도범이 답하기도 전에 주위의 사람들이 참지 못하고 들고 일어섰다. 그들이 일부러 사람이 적은 곳을 선택하긴 했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오수경의 말이 크게 들리자 주변 사람들이 주의를 기울이게 된 것이다.이때, 눈이 삼각형 모양인 한 사내가 오수경의 말을 듣고 냉소를 터뜨렸다.“너는 저 녀석의 부속인이겠지? 어디서 그런 배짱을 얻었길래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거냐? 마치 4층이 이 어린 녀석에게는 쉬운 일인 것처럼.”그러자 삼각눈 사내 옆에 서 있던 백색 옷을 입은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저 사람은 말이 너무 과장된 것 같아. 풍린수가 얼마나 상대하기 어려운 상대인지 전혀 모르는 것 같은데, 그냥 입만 뻐끔했
도범은 한숨을 내쉰 후 다시 입을 열었다.“네가 오양수와 대결할 때, 나는 곽치홍이 너희 두 사람의 싸움을 계속 지켜보는 것을 발견했어. 그래서 곽치홍을 주시하고 있었는데, 나중에 곽치홍도 내가 본인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지. 하지만 내가 너무 멀리 있어서 곽치홍의 표정을 자세히 볼 수 없었어. 그런데 곽치홍이 나를 쳐다볼 때, 마치 독사에게 주시당하는 느낌이 들었어. 네가 전에 말했던 게 맞아, 곽치홍은 분명 우리에게 적대감을 품고 있어.”도범은 고개를 끄덕였다. 곽치홍이 등장한 이후로, 온갖 의문들이 곽치홍의 마음속에 떠올랐다. 이전에 장로들이 했던 말은 전부 믿을 수 없었고, 이 안에 더 큰 비밀이 숨어 있을 게 틀림없었다.도범이 숨을 고르고 막 입을 열려던 순간, 오수경이 먼저 말했다.“네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아. 나를 위로하려고 하지 마, 이제 다 이해했어. 내가 전에 했던 충동적인 행동들이 너에게 폐를 끼쳤다는 걸 알아. 앞으로는 항상 이 점을 명심하고, 더 이상 너에게 폐를 끼치지 않을 거야.”오수경의 이 말을 듣고 나니 도범은 한결 마음이 놓였다. 오수경은 단순한 순진한 바보였고, 팔 다리는 튼튼하지만 머리는 물에 잠긴 것 같아 항상 충동에 휘둘렸다. 하지만 이번 일을 겪고 나서 오수경도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그렇게 말하고 나서 오수경은 마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 편안해졌다. 두 사람은 함께 4층으로 발을 내디뎠다.그곳은 희미한 빛으로 덮인 광활한 초원이었다. 초원 위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는데, 대부분은 풀밭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손에 든 수정구를 받쳐 들고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눈을 감고 명상하는 것처럼 보였고, 소수의 사람들은 낮은 목소리로 무엇인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분위기는 침묵과 압박감이 공존했다. 누군가가 이야기를 한다 해도 일부러 목소리를 낮췄다. 여기가 바로 천엽7현탑의 4층이었으며, 겉보기에는 환상 세계와도 같았다.오수경은 눈을 깜빡이며 도범의 손에 들린 보라색 수정구를 한 번
이 말을 들은 오수경은 고개를 저으며 완강히 거부했다.“나는 3층에 남고 싶지 않아. 도범 오빠가 4층을 돌파하면, 분명히 5층도 갈 거잖아. 천엽 7현대는 총 7층인데, 도범 오빠가 7층까지 돌파할 수도 있잖아? 그럼 도범 오빠는 다른 곳으로 바로 전송될지도 모르는데, 그러면 나 혼자 3층에 남게 되잖아. 그땐 난 어떻게 해야 하지?”도범은 오수경의 말을 듣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오수경의 걱정도 일리가 있었다. 만약 도범이 정말 7층까지 한 번에 돌파한다면, 천엽 7현대는 자신을 완벽한 도전자로 간주할 가능성이 높았고, 보상을 주고 다른 곳으로 전송할 수도 있었다.그렇게 되면 오수경을 홀로 남겨두게 되는데, 도범과 다시 만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여러 가지로 생각한 끝에, 도범은 여전히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한편, 오수경은 도범이 망설이는 모습을 보고 조급해졌다. 오수경은 도범의 팔을 잡으며 간절히 말했다.“난 도범 오빠의 인맥으로 천엽성에 들어온 거야. 인맥으로 들어온 만큼, 나는 어떠한 도전도 직면하지 않을 거고, 그저 도범 오빠만 따라가면 계속 위로 올라갈 수 있어. 어떤 위험이 닥치더라도, 나는 절대 혼자서 떠나지 않을 거야. 정말 운 나쁘게 여기서 죽더라도, 제가 감수해야 할 일이니까.”오수경의 이 말은 진심이었다. 도범을 처음 만난 이후, 오수경은 자신의 인생이 위험과 맞물려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건 자신이 바꿀 수 없는 일이었다.다른 것은 판단할 수 없었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도범은 매우 신뢰할 만한 사람이었고, 그 뒤를 따라가야만 생존의 가능성을 얻을 수 있었다. 오수경은 이곳에서의 2년을 버텨내어 바라문 세계를 떠나, 자금단방으로 돌아가 다시는 나오지 않기를 바랐다.도범은 오수경의 결심을 확인하자,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함께 걸음을 옮겨 4층의 입구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모두가 다소 망설이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미래의 운명을 예측할 수 없기에 그들
도범은 냉소를 띠며 말했다.“전 당신과 싸울 생각 없어요. 다만 한 가지 중요한 일을 잊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나게 해주러 왔을 뿐이죠.”도범의 말에 민경운은 순간 얼어붙었다. 민경운은 잠시 고민하며 무슨 의미인지 되새겼고, 이내 도범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깨달았다. 바로 얼마 전 자신과 도범 사이에 벌어진 내기 때문이었다.그 순간, 민경운의 가슴은 마치 여러 개의 큰 돌이 짓누르는 듯 답답해졌다. 그러나 민경운은 이를 갈며 분노를 삼켰다. 애초에 민경운은 도범이 절대로 이번 대결에서 이길 수 없을 것이라 확신하고 내기를 걸었던 것이다.민경운은 도범이 처참하게 패배할 것이라 생각했고, 자신의 손에 들어올 19만 영정을 기대했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하게 결과는 정반대였다. 도범이 승리한 것이다.이때, 도범은 손을 내밀며 말했다.“빨리 돈을 내세요. 저도 할 일이 있거든요. 그러니 제 시간 뺏지 마세요. 원래 9만 개의 영정으로 내기를 시작했는데, 본인이 10만 개를 더 얹어 19만 개의 영정으로 만든 거잖아요. 그러니 빨리 결제해요.”도범의 이 말에 민경운은 가슴이 터질 듯했다. 상황은 정말로 도범이 말한 대로였다. 도범은 9만 개의 영정으로 내기를 제안했고, 민경운은 도범이 분명히 패배할 것이라 생각하여 곧바로 10만 개를 더해 19만 개로 올렸다. 하지만 결국 자신의 발등을 찍고 말았다.지금 민경운은 자기 뺨을 세게 때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9만 개의 영정은 민경운에게 꽤나 큰 금액이지만, 19만 개의 영정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그러나 두 사람은 이미 계약을 체결했기 때문에 민경운이 이를 되돌릴 방법은 없었다. 만약 민경운이 결제하지 않으면 계약이 곧바로 발동하여, 결국에는 영혼의 역반작용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이후의 일은 의외로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오양수는 원건종의 제자들을 들것에 실어 나갔고, 도범은 마침내 세 번째 영패를 손에 넣었다. 이번 영패는 조금 특이하여 입탑 영패가 아닌 출성 영패로 바뀌어 있었다.이
관중석에는 각양각색의 무사들이 섞여 있었고, 불량배들도 많았다. 평소에 거리에서 욕을 퍼붓기 좋아하는 이들은 이제야 자신들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기회를 찾은 듯, 원건종의 제자들에게 온갖 욕설을 퍼부었다.일부 사람들은 진원을 목에 운용하여 의도적으로 목소리를 크게 했다. 다른 사람들이 듣지 못할까 봐 걱정이라도 되는 듯, 그들은 더욱 큰 소리로 온갖 더러운 말을 쏟아냈다. 이로 인해 도범의 귀는 무척이나 시끄러웠고, 고통스러울 정도였다.도범은 자신과 원건종의 제자들 사이에 오간 몇 마디 대화가 이렇게 사람들을 폭발시키게 될 줄은 몰랐다. 또한, 도범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쉬며 이런 싸움은 결국 아무런 결론도 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몸싸움을 할 수도 없고, 계속 말다툼만 이어질 뿐이었다.그래서 도범은 더 이상 들으려 하지 않고, 대련 무대의 한쪽 가장자리로 가서 조용히 서 있기로 했다. 도범은 아직 오양수를 죽일 생각이 없었다. 오양수가 자신에게 했던 그 약속, 즉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그대로 돌려주고 싶었기 때문이다.시간은 조금씩 흘러갔고, 싸움 소리는 계속해서 끊이지 않았다. 마침내 오양수의 몸부림이 점점 약해지고, 장벽이 완전히 해제되자 원건종의 제자들이 한꺼번에 몰려가서 오양수를 부축했다.한편, 진태산은 눈살을 찌푸린 채 오양수의 코에 손을 대 그의 호흡을 확인했다. 비록 오양수는 아직 숨을 쉬고 있었지만, 그 호흡은 매우 미약했다.민경운은 급하게 자신의 보관 반지에서 여러 개의 단약을 꺼내 오양수의 입에 넣었다. 그러나 이 단약들은 오양수의 현재 상태를 치료하기에는 전혀 효과가 없었다. 방금 도범이 사용한 참멸현공이 오양수의 영혼을 완전히 찢어놓았기 때문이다.영혼이 찢어진 상태에서 내상을 치료하는 단약이 효과가 있을 리 없었다. 따라서 민경운이 오양수에게 많은 단약을 먹였지만, 오양수의 상태는 전혀 나아지지 않은 것이다. 민경운은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만약 오양수가 정말로 이 사건으로 인해 죽는다면, 그들 모두 책임을
“맞아! 당장 우리 오양수 선배를 풀어줘! 양수 선배에게 무슨 일이 생기기라도 하면, 너는 천번 만번 죽임을 당할 거야! 오양수 선배는 도민수 선배가 아니야. 네가 도민수 선배를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갔을 때는 우리도 나서서 협상할 여지가 있었어.그러나 네가 오양수 선배를 진짜로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간다면, 염라대왕이라도 너를 보호할 수 없을 거야! 바라문 세계를 벗어나는 순간, 너는 원건종의 끝없는 추격을 받게 될 거야!”바깥에서 들려오는 원건종 제자들의 고함과 욕설은 도범의 귀에 전부 들렸다. 이는 이미 예상된 일이었기에 도범은 일말의 두려움도 느끼지 않았다.원건종은 일반적인 자유 무사들에게 충분한 위압감을 줄 수 있지만, 도범에게는 그렇게 중요한 상대가 아니었다. 원건종이 무엇이건, 자신의 힘이 충분히 강하다면 더 강력한 종문에 가담할 수 있을 테니, 원건종이 손해를 본다고 해도 도범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게다가 이번 일은 처음부터 끝까지 원건종이 문제를 일으킨 것이었다. 도범은 결코 선을 넘는 행동을 하지 않았고 원건종 쪽에서 여러 번 도발하지 않았다면, 도범 역시 이들과 싸울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잠시 후, 도범은 차가운 웃음을 지으며 원건종의 제자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일부러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원건종 제자들, 잘 들어! 8품 종문 출신이라는 이유로 제멋대로 행동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 처음부터 끝까지 문제를 일으킨 건 너희들이었잖아. 그런데 패배하고 나니 이제와서 나를 협박하는 거야?만약 너희들이 먼저 건드리지 않았다면, 나 역시 너희들과 엮일 생각이 전혀 없었을 거야. 즉, 너희들은 본인들의 강력한 종문을 배경을 믿고 제멋대로 행동해도 된다고 착각하는 거야. 하지만 나는 너희들의 그런 행태를 전혀 묵인할 생각 없어!”도범의 이 말은 관중석에서 큰 박수갈채를 일으켰다. 관중들은 도범이 그들 마음속에 담아둔 말을 대신 말해준 것 같아 고무되었다. 이들 고급 종문의 제자들은 항상 약한 무사들 앞에서만 무력을 과시하며, 이
“오양수는 원건종의 친전 제자 아닌가요?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약할 수 있죠?”“당신 바보 아니에요? 이건 오양수이 약한 게 아니라 도범이 너무 강한 거에요! 아까도 말했잖아요? 빙봉천리는 지급 상급 무기에요. 여기 있는 사람들 중에 몇이나 지급 상등 무기를 수련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도범이 빙봉천리를 부순다는 건, 도범의 무기가 오양수의 무기보다 강하다는 걸 의미해요!”“설마 도범이 천급 무기를 수련한 건가요?”이 말이 나오자마자, 주변의 거의 모든 이들이 단번에 부정했다.“미쳤어요? 무슨 말이든 막하네요. 천급 무기가 어떤 개념인지 알고나 하는 소리에요? 수련 경지가 고신경에 도달했거나, 혹은 특별한 재능을 지닌 영천 경지 후기에 이르러야만 천급 무기를 수련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기는 거에요.그리고 여기 있는 사람들은 모두 바라문 세계의 규칙을 지켜야만 이곳에 들어올 수 있고요. 나이도 60세를 넘지 않아야 하죠. 그렇다면 60세가 넘지 않은 사람이 천급 무기를 수련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그렇네요! 아마도 지급 상급 무기를 수련한 거겠죠. 도범이 오양수를 이길 수 있었던 이유는 도범이 지급 하급 무기를 대원만 단계까지 수련했기 때문일 거에요.”“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도범의 재능은 정말 두려운 수준이네요. 8품 종문의 친전 제자조차 도범의 상대가 될 수 없다는 거잖아요!”“이번에 바라문 세계에 온 보람은 있네요. 이렇게 많은 천재들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다니.”오양수와 관련 없는 관중들은 이런 논의를 흥미롭게 이어갔다. 이전에 도범을 비하하던 사람들도 이제는 도범을 칭찬하며, 도범을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천재라고 말하기 시작했다.8품 종문의 친전 제자들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원건종의 제자들은 차분할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관중석에서 편안하게 앉아있던 그들은, 도범이 빙봉천리를 단칼에 베어내는 모습을 보고는 그만 입을 다물고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지금 오양수가 이렇게 극심한 고통을 겪는 걸 보니, 분명 도범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