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시율은 룸 앞에서 망설이고 있었다.그녀는 누군가가 자신들을 함정에 빠뜨렸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예전에 자신도 이 가게의 메뉴판을 본 적 있었다. 제일 비싼 와인이라고 해봤자 한 병에 4백만 원 정도였었는데 어떻게 갑자기 4천만 원이 될 수 있단 말인가?그리고 이 룸 안에 있는 사람이 자신도 아는 사람이라는 것이 더욱 의심스러웠다.아는 사람이었다면 왜 굳이 이런 짓을 벌이는 걸까?하지만 여기서 자신이 물러선다면 부모님들은 어쩌고 또 수아는 어쩐단 말인가?도범은 몇 년간 군인 생활을 했었고 뜨거운 열정도 지닌 남자였다. 또한 그는 싸움도 제법 하는 것 같았는데 두세 명 정도는 쉽게 눕힐 수 있어 보였다.하지만 상대가 너무 많았다. 스무 명 정도 되는 장정들이었고 한눈에 봐도 길거리의 양아치와는 차원이 달라 보였다. 도범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혼사서는 그 많은 사람들을 상대하기에는 무리였다.만약 도범의 성질에 정말 그들과 싸움이라도 붙게 되면 그땐 진짜 큰일이었다.최악의 상황까지 생각한 박시율은 속으로 엄청난 후회를 하고 있었다. 외식을 하는 게 아니었다. 아니면 이런 곳에 와서 밥을 먹지 말았어야 했다. 길가에 널린 아무 가정식 백반집에 가서 몇 만 원짜리 밥을 먹는 것이 훨씬 마음 편했을 것이다.이제 다른 선택권이 없다. 그녀는 깊은 한숨을 내쉬고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순간 안으로 들어선 그녀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룸 안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던 사람이 왕 씨 집안의 도련님, 왕호였다.“왕 씨 가문의 도련님이 이 레스토랑의 보스인 줄은 몰랐네!”박시율이 담담하게 웃으며 문을 닫았다.“도련님은 내가 아래층에서 밥을 먹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던 거네. 그래서 나를 만나기 위해 일부러 이런 장난을 친 거야? 난 이런 장난을 즐기지 않아!”“하하!”왕호가 웃으면서 몸을 일으키고 그녀에게 다가갔다.“시율이 너는 지금까지 줄곧 나를 본체만체했었지. 내가 이렇게 나오지 않았다면 네가 순순히 날 만나러 왔겠어?”왕호가 미소 지
이 자식이 단지 그녀의 얼굴 한번 보려고 이런 일까지 벌일 줄은 상상도 못했다.“내가 할 말은 여기까지, 부모님이 아직 밑에서 기다리고 있어서 이만 내려가 봐야 돼. 그 술은 원래 가격대로 한 병에 4백만 원씩 계산해 줘. 정확히 총 9600만이야. 남은 18병은 포장해 갈 테니까 그렇게 알아!”박시율은 말을 마치고 곧장 돌아서서 밖으로 나가려 했다.“잠깐!”그녀가 막 손잡이를 돌리려고 할 때 왕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박시율, 너 그 쓰레기 같은 데릴 사위 녀석이 진짜 9600만 원을 계산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난 그를 믿어. 그가 계산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할 수 있어. 그 사람은 비록 당신처럼 부유하지는 못해도 나를 속일 사람은 아니거든!”박시율이 싸늘하게 말했다.“하하 미안한데 박시율, 너 정말 내가 네 얼굴이나 한번 보려고 이런 짓을 벌인 것 같아?”왕호는 이미 약이 바싹 오른 상태였다. 그의 눈에서 광기가 일었다.“오늘 8억 1600만 정확하게 계산하지 않으면 여기서 못 나갈 줄 알아!”“너…”박시율은 연약한 줄로만 알았던 왕호가 이런 말까지 할 줄은 생각지 못했다.그녀가 머리를 돌려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그를 바라보았다.“박시율 난 이제 더 이상 얌전하게만 앉아서 널 기다릴 생각이 없어. 내가 널 좋아한 시간이 5년이야. 지난 5년간 넌 단 한 번도 나한테 기회를 주지 않았어! 오늘 밤 이 8억 1600만 원을 내놓지 않으면 네 남편은 여기서 죽는 거야. 아 그리고 네 부모와 딸도 밑에 있었지?”“박 씨 집안의 체면을 생각해서 죽이지는 못해도 손 좀 봐주는 건 괜찮잖아? 어차피 너희 박 씨 집안은 우리 왕 씨 집안을 해코지할 수도 없어. 그저 일개 삼류 가문일 뿐이잖아?”왕호가 싸늘하게 웃으며 박시율 앞으로 천천히 다가갔다.“박시율, 나도 어쩔 수가 없었어. 난 진심을 다해서 너에게 다가가려고 했었는데 네가 날 보는 척도 하지 않았잖아? 결국 너 때문에 내가 이런 방법까지 쓰게 된 거야!”“왕호 당신 정말 미쳤
박시율한테서 나는 향긋한 내음이 왕호의 마음을 거세게 흔들었다.박시율은 왕호한테서 나는 술 냄새에 속이 메슥거려 곧바로 있는 힘껏 그를 밀쳐버렸다.“당신 선 넘지 마!”왕호는 가만히 서서 그녀를 안았던 여운을 되새기고 있었다. 자그마치 5년이었다. 그는 그녀를 너무나 오랫동안 짝사랑하고 있었다.그 오랜 시간 동안 그는 그녀의 손도 한번 잡아 보지 못했다.불과 몇 초전, 그가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았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꿈이라면 깨고 싶지 않았다.“하하, 내가 선을 넘었다고?”왕호가 씩 웃더니 어깨를 으쓱거렸다.“알았어. 넌 내가 좋아하는 여자니까 나도 그만큼 널 존중해 주지. 그럼 이렇게 해. 네가 지금 8억 1600만 원을 내놓을 수 있으면 이대로 순순히 돌아가도 좋아. 그런데 네가 계산할 돈이 없다면 내가 선 넘는 걸 할 자격이 없어.”“난…”박시율의 얼굴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그녀가 무기력하게 답했다.“우리한테는 그만한 돈이 없어!”“돈이 없어?”왕호가 비열하게 웃었다.“돈이 없으면 네 남편의 목숨을 걸어서라도 갚아야지. 그러면 네 딸은 아빠를 잃을 거고, 네 부모 역시 멀쩡하게는 못 나가겠지. 아, 내 부하들이 좀 거칠어서 말이야!”박시율의 얼굴이 더욱 어두워지는 것을 본 왕호가 이어서 말했다.“시윤아, 난 정말 진심으로 너를 좋아해. 이러는 건 어때? 나도 너를 괴롭히고 싶지 않으니까, 오늘 밤 나랑 커피 마시러 나가서 얘기 좀 하고 영화까지 보면 이번 일은 없던 걸로 해줄게!”“그냥 커피 마시고 영화만 보면 된다고?”박시율은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눈썹을 찌푸렸다. 마음속에는 불안이 가시지 않았다. 비록 예전에 왕호가 그녀를 존중해 주긴 했었지만 오늘 일만 봐도 그가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하하, 네가 만약 다른 걸 하고 싶다면 그것도 가능하지!”왕호가 씩 웃으며 말했다.“사실 내가 원하는 건 그렇게 큰 게 아니야. 내가 널 오랜 시간 동안 쫓아다녔었는데 네가 한 번도 나랑 제대
도범은 몇 년간 군인 신분으로 전장을 돌아다녀서 그런지 성격이 너무 충동적으로 변한 것 같았다. 만약 이대로 싸움이라도 난다면 틀림없이 멀쩡하게 나갈 수 없을 것이다.“걱정하지 마. 내가 누구야, 나 왕 씨 집안 도련님이야. 그것도 집안에서 유일하게 상속권을 부여받은 도련님인데 허튼소리 하겠어?”왕호가 가슴을 탕탕 치며 자신 있게 말했다.박시율은 문을 열고 룸을 나섰다.왕호 또한 그녀의 뒤를 따라 나와 문 앞에 서있는 뚱보 매니저한테 지시를 내렸다.“시율 아가씨는 내 오랜 친구이니까 그 8억은 그냥 없던 일로 하고 넘어가. 친구의 얼굴을 봐서 오늘 이 저녁은 내가 산 걸로 해둬. 돈은 받지 마!”“그러면, 남은 와인 18 병은…”매니저가 잠시 고민하더니 그에게 일깨워줬다.“당연히 포장해 드려야지. 계산서에도 20병 가격대로 찍혀있잖아. 시켜서 남았는데 당연히 가져가게 해야지!”왕호가 씩 웃었다. 어차피 그 술의 성본을 따져보면 그저 몇 백만 원에 불과했다. 4천만 원에 한 병이라는 건 처음부터 박시율을 함정에 빠트릴 미끼였을 뿐이었다.“고마워.”박시율이 애써 미소 짓고 매니저와 함께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왜 아직도 안 오는 거야? 설마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 아니겠지?”아래층에서 기다리던 서정이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그럴 일 없을 거예요. 비록 우리가 쫓겨난 신세긴 하지만 우리 딸이 박 씨 가문 사람인 건 변치 않는걸요. 여기 보스라는 사람도 막 대할 수는 없을 거예요.”“아까 그 사람 말투로 보아 아는 사람 같아 보이던데.”나봉희가 미간을 찌푸리며 애써 위로했다.“오 분 됐어요. 제가 들어가서 확인해 볼게요!”시간을 확인하던 도범은 오 분이 지난 것을 확인하고 곧장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혹시 박시율한테 무슨 위험한 상황이 벌어질까 걱정되었다.“너 이자식, 우리 보스의 허락 없이는 위층으로 올라갈 수 없어…”장정들 중 한 사람이 앞으로 나서며 도범의 앞을 가로막았다.“퍽!”하지만 채 1초도 안 되어서 도범의 발차기에
나이가 제법 어려 보이는듯한 그녀는 섹시한 미니스커트 차림에 블레이즈를 넣은 검은색 머리를 길게 풀어헤치고 있었다. 입꼬리를 씩 올릴 때마다 보조개가 움푹 패어 들어가는 그녀는 트렌디한 분위기가 흘러넘쳤다.특히 아름답게 반짝이는 두 눈이 매력적이었다. 젊음의 에너지가 넘쳐흐르는 그녀는 보는 이들의 눈까지 즐겁게 해주고 있었다.“저 애가 바로 용 씨 가문의 둘째 아가씨라고? 진짜 예쁘게 생겼네. 나이도 어린데 벌써 미모가 저 정도면 2년 뒤쯤에는 얼굴로 이름 좀 날리겠는데?”한 남자가 그녀의 미모에 탄복하며 곁에 있던 다른 남자와 소곤거리며 말했다.“비켜!”도범은 용 씨 가문의 둘째 아가씨한테는 관심도 주지 않고 곧바로 앞을 가로막은 장정들을 향해 화를 내며 소리쳤다.“거기 잘생긴 오빠, 무슨 일 있어요?”용 씨 가문의 아가씨는 도범을 보고 잠깐 멈칫거렸다. 보아하니 저 사람이 바로 아버지가 말했던 도범이라는 자가 확실해 보였다.그녀는 도범을 빤히 바라보았다. 겉보기에는 별로 대단해 보이지도 않는데 왜 아버지는 자신과 오빠한테 어떻게든 저 사람과 가깝게 지내고 잘 보이기까지 하라고 했을까?의심스러웠지만 일단 아버지가 시킨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아버지가 심상치 않은 사람이라고 했으니 분명 저 사람한테 뭔가가 있을 것이다.“잠깐만요 아가씨, 당신이 바로 그 중주 최고의 갑부 용준혁의 따님 맞으신가요?”도범이 미처 답하기도 전에 나봉희가 눈앞에 소녀를 찬찬히 살펴보더니 놀라 물었다.어쩐지 귀한 분위기를 풍기는 것이 범상치 않다 했었다. 심지어 레스토랑에 있는 장정들마저 그 여자아이를 보고 당황해하며 꺼리는 기색이었다.상대방의 신분이 범상치 않는 것이 확실했다.“맞아요. 제 이름이 용신애예요!”용신애가 머리를 끄덕이고는 물었다.“지금 이게 다 무슨 상황이죠? 지나가다가 이 레스토랑의 장식과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서 밥이나 먹으려고 들어왔는데, 왜들 싸우고 계시나요?”“아이고, 아가씨 그게 말입니다. 저희가 밥을 먹으러 왔는데…”
용신애가 손짓을 하며 소리치자 경호원들이 의자를 들고 마구잡이로 내려치기 시작했다.“신애 아가씨, 그, 그만하세요. 이것들은 전부 저희 왕 씨 집안의 재산이니 저희 체면을 봐서라도 멈춰주세요!”이런 용 씨 집안사람들을 마주한 레스토랑의 매니저는 더 이상 기고만장하게 굴지 못하고 우는 얼굴로 용신애가 왕 씨 집안의 체면을 봐서라도 멈추기를 빌어야 했다.“왕 씨 집안사람? 무슨 집안 재산이든 나는 상관 안 해, 당신들의 행동이 내 기분을 잡쳤으니 여기 다 깨부실거야!”용신애가 팔짱을 끼고 오만하게 말했다. 그녀는 눈앞의 이들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레스토랑 안에는 왕 씨 집안의 경호원들도 꽤 많았지만 죄다 고개를 숙인 채 숨을 죽이고 있었다.그들은 용 씨 집안의 강대함을 알고 있었기에 감히 이들의 미움을 살 짓을 하지 못했다.하지만 용신애가 이렇게 쓸데없는 일에 끼어들기 좋아할 줄은 그들도 몰랐다. 분명 그녀와는 큰 상관도 없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신애 아가씨, 정말 감사합니다. 방금 저희는 계산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씀하신 거죠?”나봉희는 그 모습을 보곤 용신애에게 물었다. 그녀도 속이 시원해졌다.“당연하죠, 계산을 할 필요가 전혀 없어요. 이렇게 약한 사람들 괴롭히는 꼴을 제가 제일 못 참거든요.”용신애가 다시 매니저를 보며 말했다.“이봐, 이 사람들 계산할 필요 있어? 필요하다면 내가 여기 불 질러버릴 거야!”“계산할 필요 없어요, 필요 없습니다. 남은 18병의 술도 전부 포장해서 가져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밥값도 줄 필요 없습니다. 신애 아가씨께서 모르고 계셔서 그렇지 저희 사장님 시율 씨랑 아는 사이여서 농담을 한 겁니다, 사장님께서 밥값을 계산할 필요 없다고 이미 말씀하셨습니다.”매니저가 얼른 대답했다.그리곤 다시 덧붙였다.“모, 모두 오해일 뿐입니다.”하지만 이미 망가져버린 테이블과 진열대를 보니 가슴이 아팠다.“시율 씨? 박시율 씨 맞죠? 듣던 데로 미인이시네요, 얘기를 듣기는 했지만 실물은 처음이네요.”
“뭐야, 저 자식 지금 둘째 아가씨랑 손 잡으려고 하는 거야? 자기를 너무 과대평가하고 있는 거 아니야?”“그러니까, 둘째 아가씨가 무슨 신분인지 생각도 못 하는 건 가? 데릴사위 주제에, 자기 때문에 마누라 가족 전부가 박 씨 집안에서 쫓겨났는데 이런 사람이 무슨 자격으로 둘째 아가씨랑 악수를 하겠다는 거야?”레스토랑 안쪽에 있던 경호원들이 작은 목소리로 의론하기 시작했다.그들은 매우 작은 목소리로 얘기를 나누고 있었기에 일반적인 사람은 들을 수 없었다.하지만 그들의 목소리가 도범의 귓속에 똑똑히 들렸을 것이라고 그들은 생각지도 못했다.도범은 그들을 상대하고 싶지 않았기에 그저 웃으며 용신애를 바라봤다.“이럴 필요 없어요!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용신애라고 합니다! 그쪽 금방 제대했다고 했죠? 제가 당신 같은 사람들을 제일 존경하거든요, 국가를 위해 공헌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신들이 없었다면 우리 이번에 승리할 수 없었을 겁니다!”용신애가 사람들의 집중된 눈길 속에서 도범과 악수를 했다.그녀는 이성과 손을 잡아본 적이 많이 없었던 듯 약간 쑥스러운 표정을 지었다.“남자로서 가족과 나라를 지키는 거 당연한 일 아닌가요.”도범이 웃으며 다시 말을 이었다.“아가씨께서 이렇게 사람을 돕기 좋아하는 사람인 줄은 몰랐네요.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니 앞으로 제가 도와야 할 일이 있다면 언제든지 말씀하세요!”옆에 있던 박시율은 고민해 보더니 매니저 옆으로 가 말했다.“왕 도련님에게 전해주세요, 오늘 도련님이 저희한테 이 밥 한 끼를 사준 게 아니라 용 씨 집안 둘째 아가씨께서 당신들의 행동을 못 봐주겠어서 우리가 돈을 내지 않게 해준 거라고요.”매니저는 입가가 떨렸지만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당연하죠, 모두 다 용 씨 집안 둘째 아가씨 덕분입니다!”“알면 됐어요, 그러니까 저 도련님한테 빚진 거 없어요!”박시율이 차갑게 말하며 한시름 놓았다.방금 전, 왕호와 함께 커피를 마시겠다고 한 건 다른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었다.왕호를 만나러
“오늘 일은 그냥 이렇게 넘어가지만 이 일 때문에 저 사람들 찾아가서 행패 부리면 내가 어떻게든 너희들 찾아낼 거야. 너희들이 왕 씨 집안사람이든 말든 상관없어!”도범이 떠난 뒤, 용신애가 레스토랑에 있던 사람들을 보며 경고하더니 그곳을 떠났다.“저 용신애 사람 화나게 하는데 뭐 있네. 하필이면 이때 나타나서는. 몇 분이라도 늦게 왔으면 좋았을 텐데. 박시율이 간 다음에만 왔어도 이런 일이 일어나지는 않았을 거야!”난장판이 된 레스토랑을 보던 뚱보 매니저가 화가 나서 말했다.한편 룸에 있던 왕호는 행복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박 도련님 말대로 하니 정말 소용이 있긴 하네! 박시율 8억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안색이 새하얘지던데, 도범 그 자식이 어디 그런 돈이 있겠어. 8천만 원도 못 내놓을 녀석이야! 박시율은 자기 딸이랑 부모를 가지고 협박했더니 금방 허락하더라고, 이따 몰래 나와서 나랑 데이트하면서 커피 한잔하기로 했어!”왕호가 흥분한 목소리로 박이성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의 성공 일화를 늘어놨다.“왕 도련님, 축하드립니다!”휴대폰 반대편의 박이성이 입꼬리를 올려 차갑게 웃었다.“왕 도련님, 제가 말한 대로만 하세요. 박시율이 마실 커피에 약을 조금 타기만 한다면 왕 도련님 말을 기똥차게 잘 들을 겁니다, 자기가 더 주동적으로 나설지도 모르고요!”“그러니까, 박시율도 체면을 차리는 사람이니 어디 가서 말은 못 하겠지. 내가 그 성격 잘 알아, 그런 일을 떠벌렸다가는 자기 체면만 깎이는 게 아니라 부모님 체면에 박 씨 집안 체면까지 깎아먹는 꼴이지 않는가!”왕호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이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늘 자신에게 무심하던 도도한 여신을 그는 드디어 품에 안게 생겼다.박시율의 곱상한 얼굴과 거의 완벽에 가까운 몸매, 은은하게 풍기던 향기까지 생각하니 왕호는 쓰러질 것 같았다.하지만 기회가 이번 한 번밖에 없다고 생각한 왕호가 다시 어두워진 안색으로 말했다.“박 도련님, 이 방법도 좋긴 한데 앞으로 계속 박시율이랑 같이 하는 건
도범은 한숨을 내쉰 후 다시 입을 열었다.“네가 오양수와 대결할 때, 나는 곽치홍이 너희 두 사람의 싸움을 계속 지켜보는 것을 발견했어. 그래서 곽치홍을 주시하고 있었는데, 나중에 곽치홍도 내가 본인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지. 하지만 내가 너무 멀리 있어서 곽치홍의 표정을 자세히 볼 수 없었어. 그런데 곽치홍이 나를 쳐다볼 때, 마치 독사에게 주시당하는 느낌이 들었어. 네가 전에 말했던 게 맞아, 곽치홍은 분명 우리에게 적대감을 품고 있어.”도범은 고개를 끄덕였다. 곽치홍이 등장한 이후로, 온갖 의문들이 곽치홍의 마음속에 떠올랐다. 이전에 장로들이 했던 말은 전부 믿을 수 없었고, 이 안에 더 큰 비밀이 숨어 있을 게 틀림없었다.도범이 숨을 고르고 막 입을 열려던 순간, 오수경이 먼저 말했다.“네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아. 나를 위로하려고 하지 마, 이제 다 이해했어. 내가 전에 했던 충동적인 행동들이 너에게 폐를 끼쳤다는 걸 알아. 앞으로는 항상 이 점을 명심하고, 더 이상 너에게 폐를 끼치지 않을 거야.”오수경의 이 말을 듣고 나니 도범은 한결 마음이 놓였다. 오수경은 단순한 순진한 바보였고, 팔 다리는 튼튼하지만 머리는 물에 잠긴 것 같아 항상 충동에 휘둘렸다. 하지만 이번 일을 겪고 나서 오수경도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그렇게 말하고 나서 오수경은 마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 편안해졌다. 두 사람은 함께 4층으로 발을 내디뎠다.그곳은 희미한 빛으로 덮인 광활한 초원이었다. 초원 위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는데, 대부분은 풀밭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손에 든 수정구를 받쳐 들고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눈을 감고 명상하는 것처럼 보였고, 소수의 사람들은 낮은 목소리로 무엇인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분위기는 침묵과 압박감이 공존했다. 누군가가 이야기를 한다 해도 일부러 목소리를 낮췄다. 여기가 바로 천엽7현탑의 4층이었으며, 겉보기에는 환상 세계와도 같았다.오수경은 눈을 깜빡이며 도범의 손에 들린 보라색 수정구를 한 번
이 말을 들은 오수경은 고개를 저으며 완강히 거부했다.“나는 3층에 남고 싶지 않아. 도범 오빠가 4층을 돌파하면, 분명히 5층도 갈 거잖아. 천엽 7현대는 총 7층인데, 도범 오빠가 7층까지 돌파할 수도 있잖아? 그럼 도범 오빠는 다른 곳으로 바로 전송될지도 모르는데, 그러면 나 혼자 3층에 남게 되잖아. 그땐 난 어떻게 해야 하지?”도범은 오수경의 말을 듣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오수경의 걱정도 일리가 있었다. 만약 도범이 정말 7층까지 한 번에 돌파한다면, 천엽 7현대는 자신을 완벽한 도전자로 간주할 가능성이 높았고, 보상을 주고 다른 곳으로 전송할 수도 있었다.그렇게 되면 오수경을 홀로 남겨두게 되는데, 도범과 다시 만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여러 가지로 생각한 끝에, 도범은 여전히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한편, 오수경은 도범이 망설이는 모습을 보고 조급해졌다. 오수경은 도범의 팔을 잡으며 간절히 말했다.“난 도범 오빠의 인맥으로 천엽성에 들어온 거야. 인맥으로 들어온 만큼, 나는 어떠한 도전도 직면하지 않을 거고, 그저 도범 오빠만 따라가면 계속 위로 올라갈 수 있어. 어떤 위험이 닥치더라도, 나는 절대 혼자서 떠나지 않을 거야. 정말 운 나쁘게 여기서 죽더라도, 제가 감수해야 할 일이니까.”오수경의 이 말은 진심이었다. 도범을 처음 만난 이후, 오수경은 자신의 인생이 위험과 맞물려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건 자신이 바꿀 수 없는 일이었다.다른 것은 판단할 수 없었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도범은 매우 신뢰할 만한 사람이었고, 그 뒤를 따라가야만 생존의 가능성을 얻을 수 있었다. 오수경은 이곳에서의 2년을 버텨내어 바라문 세계를 떠나, 자금단방으로 돌아가 다시는 나오지 않기를 바랐다.도범은 오수경의 결심을 확인하자,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함께 걸음을 옮겨 4층의 입구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모두가 다소 망설이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미래의 운명을 예측할 수 없기에 그들
도범은 냉소를 띠며 말했다.“전 당신과 싸울 생각 없어요. 다만 한 가지 중요한 일을 잊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나게 해주러 왔을 뿐이죠.”도범의 말에 민경운은 순간 얼어붙었다. 민경운은 잠시 고민하며 무슨 의미인지 되새겼고, 이내 도범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깨달았다. 바로 얼마 전 자신과 도범 사이에 벌어진 내기 때문이었다.그 순간, 민경운의 가슴은 마치 여러 개의 큰 돌이 짓누르는 듯 답답해졌다. 그러나 민경운은 이를 갈며 분노를 삼켰다. 애초에 민경운은 도범이 절대로 이번 대결에서 이길 수 없을 것이라 확신하고 내기를 걸었던 것이다.민경운은 도범이 처참하게 패배할 것이라 생각했고, 자신의 손에 들어올 19만 영정을 기대했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하게 결과는 정반대였다. 도범이 승리한 것이다.이때, 도범은 손을 내밀며 말했다.“빨리 돈을 내세요. 저도 할 일이 있거든요. 그러니 제 시간 뺏지 마세요. 원래 9만 개의 영정으로 내기를 시작했는데, 본인이 10만 개를 더 얹어 19만 개의 영정으로 만든 거잖아요. 그러니 빨리 결제해요.”도범의 이 말에 민경운은 가슴이 터질 듯했다. 상황은 정말로 도범이 말한 대로였다. 도범은 9만 개의 영정으로 내기를 제안했고, 민경운은 도범이 분명히 패배할 것이라 생각하여 곧바로 10만 개를 더해 19만 개로 올렸다. 하지만 결국 자신의 발등을 찍고 말았다.지금 민경운은 자기 뺨을 세게 때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9만 개의 영정은 민경운에게 꽤나 큰 금액이지만, 19만 개의 영정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그러나 두 사람은 이미 계약을 체결했기 때문에 민경운이 이를 되돌릴 방법은 없었다. 만약 민경운이 결제하지 않으면 계약이 곧바로 발동하여, 결국에는 영혼의 역반작용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이후의 일은 의외로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오양수는 원건종의 제자들을 들것에 실어 나갔고, 도범은 마침내 세 번째 영패를 손에 넣었다. 이번 영패는 조금 특이하여 입탑 영패가 아닌 출성 영패로 바뀌어 있었다.이
관중석에는 각양각색의 무사들이 섞여 있었고, 불량배들도 많았다. 평소에 거리에서 욕을 퍼붓기 좋아하는 이들은 이제야 자신들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기회를 찾은 듯, 원건종의 제자들에게 온갖 욕설을 퍼부었다.일부 사람들은 진원을 목에 운용하여 의도적으로 목소리를 크게 했다. 다른 사람들이 듣지 못할까 봐 걱정이라도 되는 듯, 그들은 더욱 큰 소리로 온갖 더러운 말을 쏟아냈다. 이로 인해 도범의 귀는 무척이나 시끄러웠고, 고통스러울 정도였다.도범은 자신과 원건종의 제자들 사이에 오간 몇 마디 대화가 이렇게 사람들을 폭발시키게 될 줄은 몰랐다. 또한, 도범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쉬며 이런 싸움은 결국 아무런 결론도 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몸싸움을 할 수도 없고, 계속 말다툼만 이어질 뿐이었다.그래서 도범은 더 이상 들으려 하지 않고, 대련 무대의 한쪽 가장자리로 가서 조용히 서 있기로 했다. 도범은 아직 오양수를 죽일 생각이 없었다. 오양수가 자신에게 했던 그 약속, 즉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그대로 돌려주고 싶었기 때문이다.시간은 조금씩 흘러갔고, 싸움 소리는 계속해서 끊이지 않았다. 마침내 오양수의 몸부림이 점점 약해지고, 장벽이 완전히 해제되자 원건종의 제자들이 한꺼번에 몰려가서 오양수를 부축했다.한편, 진태산은 눈살을 찌푸린 채 오양수의 코에 손을 대 그의 호흡을 확인했다. 비록 오양수는 아직 숨을 쉬고 있었지만, 그 호흡은 매우 미약했다.민경운은 급하게 자신의 보관 반지에서 여러 개의 단약을 꺼내 오양수의 입에 넣었다. 그러나 이 단약들은 오양수의 현재 상태를 치료하기에는 전혀 효과가 없었다. 방금 도범이 사용한 참멸현공이 오양수의 영혼을 완전히 찢어놓았기 때문이다.영혼이 찢어진 상태에서 내상을 치료하는 단약이 효과가 있을 리 없었다. 따라서 민경운이 오양수에게 많은 단약을 먹였지만, 오양수의 상태는 전혀 나아지지 않은 것이다. 민경운은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만약 오양수가 정말로 이 사건으로 인해 죽는다면, 그들 모두 책임을
“맞아! 당장 우리 오양수 선배를 풀어줘! 양수 선배에게 무슨 일이 생기기라도 하면, 너는 천번 만번 죽임을 당할 거야! 오양수 선배는 도민수 선배가 아니야. 네가 도민수 선배를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갔을 때는 우리도 나서서 협상할 여지가 있었어.그러나 네가 오양수 선배를 진짜로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간다면, 염라대왕이라도 너를 보호할 수 없을 거야! 바라문 세계를 벗어나는 순간, 너는 원건종의 끝없는 추격을 받게 될 거야!”바깥에서 들려오는 원건종 제자들의 고함과 욕설은 도범의 귀에 전부 들렸다. 이는 이미 예상된 일이었기에 도범은 일말의 두려움도 느끼지 않았다.원건종은 일반적인 자유 무사들에게 충분한 위압감을 줄 수 있지만, 도범에게는 그렇게 중요한 상대가 아니었다. 원건종이 무엇이건, 자신의 힘이 충분히 강하다면 더 강력한 종문에 가담할 수 있을 테니, 원건종이 손해를 본다고 해도 도범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게다가 이번 일은 처음부터 끝까지 원건종이 문제를 일으킨 것이었다. 도범은 결코 선을 넘는 행동을 하지 않았고 원건종 쪽에서 여러 번 도발하지 않았다면, 도범 역시 이들과 싸울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잠시 후, 도범은 차가운 웃음을 지으며 원건종의 제자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일부러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원건종 제자들, 잘 들어! 8품 종문 출신이라는 이유로 제멋대로 행동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 처음부터 끝까지 문제를 일으킨 건 너희들이었잖아. 그런데 패배하고 나니 이제와서 나를 협박하는 거야?만약 너희들이 먼저 건드리지 않았다면, 나 역시 너희들과 엮일 생각이 전혀 없었을 거야. 즉, 너희들은 본인들의 강력한 종문을 배경을 믿고 제멋대로 행동해도 된다고 착각하는 거야. 하지만 나는 너희들의 그런 행태를 전혀 묵인할 생각 없어!”도범의 이 말은 관중석에서 큰 박수갈채를 일으켰다. 관중들은 도범이 그들 마음속에 담아둔 말을 대신 말해준 것 같아 고무되었다. 이들 고급 종문의 제자들은 항상 약한 무사들 앞에서만 무력을 과시하며, 이
“오양수는 원건종의 친전 제자 아닌가요?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약할 수 있죠?”“당신 바보 아니에요? 이건 오양수이 약한 게 아니라 도범이 너무 강한 거에요! 아까도 말했잖아요? 빙봉천리는 지급 상급 무기에요. 여기 있는 사람들 중에 몇이나 지급 상등 무기를 수련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도범이 빙봉천리를 부순다는 건, 도범의 무기가 오양수의 무기보다 강하다는 걸 의미해요!”“설마 도범이 천급 무기를 수련한 건가요?”이 말이 나오자마자, 주변의 거의 모든 이들이 단번에 부정했다.“미쳤어요? 무슨 말이든 막하네요. 천급 무기가 어떤 개념인지 알고나 하는 소리에요? 수련 경지가 고신경에 도달했거나, 혹은 특별한 재능을 지닌 영천 경지 후기에 이르러야만 천급 무기를 수련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기는 거에요.그리고 여기 있는 사람들은 모두 바라문 세계의 규칙을 지켜야만 이곳에 들어올 수 있고요. 나이도 60세를 넘지 않아야 하죠. 그렇다면 60세가 넘지 않은 사람이 천급 무기를 수련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그렇네요! 아마도 지급 상급 무기를 수련한 거겠죠. 도범이 오양수를 이길 수 있었던 이유는 도범이 지급 하급 무기를 대원만 단계까지 수련했기 때문일 거에요.”“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도범의 재능은 정말 두려운 수준이네요. 8품 종문의 친전 제자조차 도범의 상대가 될 수 없다는 거잖아요!”“이번에 바라문 세계에 온 보람은 있네요. 이렇게 많은 천재들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다니.”오양수와 관련 없는 관중들은 이런 논의를 흥미롭게 이어갔다. 이전에 도범을 비하하던 사람들도 이제는 도범을 칭찬하며, 도범을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천재라고 말하기 시작했다.8품 종문의 친전 제자들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원건종의 제자들은 차분할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관중석에서 편안하게 앉아있던 그들은, 도범이 빙봉천리를 단칼에 베어내는 모습을 보고는 그만 입을 다물고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지금 오양수가 이렇게 극심한 고통을 겪는 걸 보니, 분명 도범이
두 번째 방법은 고도의 신법을 필요로 하며, 일반적인 무사로서는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수준이다. 첫 번째 방법도 강력한 실력이 필요하기에, 주위 사람들이 도범을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 빙봉천리의 감금 아래에서 도범은 결코 빠져나갈 수 없을 것처럼 보였다.따라서 모두가 도범이 반드시 패배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도범의 경맥이 감금되면 오양수가 도범을 결코 쉽게 놓아주지 않을 것이라 여겼다.한편, 도범은 한 손에 장검을 쥐고, 다른 손으로는 연달아 법진을 만들어냈다. 이윽고 백 개의 영혼검이 하나로 융합되어, 거대한 영혼 검이 되어 회흑색 장검 속에 흡수되었다.도범이 전승 상태로 참멸현공을 펼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비록 빙봉천리가 지급 상급 무기일지라도, 도범의 눈에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도범은 현재 참멸현공을 대원만 단계까지 수련한 상태였고, 영혼검과의 융합으로 생성된 힘은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힘이다.도범은 분노에 차서 큰 소리로 포효하며 단칼에 검을 휘둘렀다. 이윽고 회흑색 장검에서 거대한 검기가 날아가면서 하늘을 뒤덮은 얼음망이 도범의 앞에 닥쳐왔다.모두는 쾅쾅하는 몇 번의 뚜렷한 소리를 들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단단해 보이던 빙봉천리가 도범의 한 줄기 검기에 의해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게다가 이 검기는 빙봉천리를 부순 뒤에도 힘이 전혀 소모되지 않은 채 여전히 앞으로 돌진했다. 이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고, 뒤따라오던 오양수조차 반응하지 못했다.현재 도범의 참멸현공은 대원만의 경지에 도달했다. 비록 빙봉천리가 지급 상급 무기라 할지라도, 참멸현공 앞에서는 종이장처럼 부서질 뿐이었다.모두가 도범이 빙봉천리에 온몸이 봉쇄되어, 도살당할 어린 양처럼 될 것을 기대했으나, 그들의 모든 환상은 산산이 부서졌다. 검날이 빙봉천리를 부순 후, 곧장 반응하지 못한 오양수를 향해 돌진했다. 검날이 오양수의 면전 3척 앞에 닿기 직전에야 오양수는 자신을 보호하려 했지만, 이미 너무 늦어버린 상황이었다. 평상시라면 오양수는 공격과 동시에
각양각색의 논조, 그리고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끝없는 토론. 그러나 도범은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상관하지 않았다. 도범은 그저 담담한 눈빛으로 오양수를 바라보았다.잠시 후, 오양수가 무기를 꺼내들자, 도범도 천천히 자신의 회흑색 장검을 꺼내 손에 쥐었다. 이 장검은 오랫동안 도범과 함께한 무기로, 한 번도 바뀐 적이 없었다.오양수는 청란골패를 가볍게 휘두르자, 뚜렷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와 동시에 한기가 청란골패에서 뿜어져 나오며 분위기를 한순간에 바꾸었다.현재 오양수의 머릿속에는 오직 한 가지 생각만이 존재했다. 그건 바로 도범을 쓰러뜨린 뒤, 잔인하게 고통을 주어 그 대가가 얼마나 혹독한지 알게 하는 것이었다.오양수는 크게 포효하며 두 손을 뒤집어 법진을 만들어냈다. 그러자 오양수의 손바닥에 육각형 모양의 얼음 화살이 생겨났고, 4초 후, 수백 개의 육각형 얼음 화살이 오양수의 앞을 가득 메웠다.오양수는 다시 한번 포효하며 앞을 향해 힘껏 밀어붙였다. 그러자 수백 개의 육각형 얼음 화살이 도범을 향해 맹렬히 돌진했고, 이 화살들과 함께 엄청난 한기가 도범을 덮쳤다.도범은 눈살을 찌푸린 채, 두 손으로 장검을 단단히 쥐고 한 발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는 조용히 검을 휘둘렀다. 이윽고 수많은 육각형 얼음 화살은 단숨에 두 조각으로 나뉘었다.그때, 관중석에서 다시 한번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도범 저 녀석, 실력이 정말 보통이 아니네요!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면, 오양수가 수련한 무기는 지급 상급 무기, 빙봉천리에요! 그런데 도범이 단칼에 빙봉천리를 가르다니, 실력이 꽤 강한데요!”그 사람이 말을 끝내자마자 주변에서는 곧바로 반박이 나왔다.“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게 무슨 말이에요? 빙봉천리는 지급 상급 무기에요. 바라문 세계를 둘러봐도, 지급 상급 무기를 수련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 것 같아요? 방금 전의 공격은 단지 약간의 힘만 사용한 거에요. 오양수가 진심으로 도범을 죽이려 했다면, 반항할 틈조차 없었을 거에요!”오양수가 쏘
검은 옷의 대장부는 눈살을 찌푸린 채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내가 무슨 말을 하든 네가 뭔 상관이야! 이 건방진 놈, 죽고 싶어! 마침 상대가 필요했는데, 너의 입탑영패를 가지고 와. 우리 한 판 붙자!”그러자 오수경은 콧방귀를 뀌며 태연하게 말했다.“내 앞에서 강자 흉내 내지 마. 내 가슴에 6품 연단사 휘장이 붙어 있는 걸 못 봤어? 그런데 네가 연단사인 나와 실력을 겨루겠다고? 차라리 연단술을 겨뤄보는 게 어때?”이 말에 검은 옷의 대장부는 말문이 막혀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규칙이 없었다면 그는 당장이라도 오수경의 목을 조를 기세였다.오수경은 검은 옷의 대장부가 더 이상 말하지 않자, 더욱 신나서 비아냥거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순간 도범이 손을 뻗어 그를 막았다.“너는 왜 이렇게 매사에 신중하지 못해? 지금부터 내 말을 잘 들어. 무슨 일이 있어도 입을 다물고 있어야 해. 알겠어?”도범의 꾸짖음에 오수경은 목을 움츠리며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전에 도범에게 문제를 일으킨 적이 있었기에, 이번에는 더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이때, 검은 옷의 대장부는 냉소를 머금은 채 다시 도범을 바라보았다. 방금 그들의 대화를 일부 들었기에 도범에 대한 호기심은 더욱 커진 상태였다.“네가 정말 8품 종문의 친전 제자보다 강하다고 생각해?”도범은 눈살을 찌푸린 채 검은 옷의 대장부를 상대할 가치가 없다고 여겼다. 그러나 검은 옷의 대장부는 도범이 대답하지 않아도 화내지 않았다.이렇게 시간은 점점 흘러갔고, 아마도 내기 때문이거나 도범의 냉담한 태도 때문인지 상황은 이상할 정도로 고요해졌다. 도발적인 말이 다시 들리지 않았다. 제73회 대결이 곧 시작되려 할 때, 도범은 더 이상 쓸데없는 소리를 듣지 않게 되었다.잠시 후, 도범은 자리에서 일어나 숨을 내쉬고는 오수경을 향해 눈짓을 보냈다. 그리고는 나지막이 말했다.“누구를 보든, 어떤 말을 듣든, 이 자리에서 떠나지 마.”그 말을 마치고 도범은 큰 걸음으로 대결 무대를 향해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