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피부에 검은색 실크 원피스를 걸친 여자는 한눈에 보아도 아름답고 매혹적이었다. 머리에는 굵은 웨이브를 넣어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청량감을 느끼게 했다.물론 몸매 또한 뛰어났다. 박시율보다 기질이 좀 차가운 것 외에는 나무랄 데가 없는 모습이었다.“하하 아가씨가 너무 겸손하네요. 당신도 엄청난 미녀인걸요!”박시율이 미소 지으며 어쩔 수 없이 형식적인 칭찬을 건넸다.“여기서 택시를 잡고 집에 돌아가는 거예요? 이 시간에는 택시 잡기 힘들 텐데. 마침 출퇴근 시간이라서 택시 잡는 사람이 한창 많을 때거든요!”여자가 도범과 시율을 번갈아 보더니 이어서 말했다.“아이참, 차가 없는 것도 참 불편하겠네요. 당신이 고른 남편이 능력이 좀 별로인가 봐요!”나호영이 그녀의 말에 난처한 웃음을 지었다.“참 시율아, 마침 오늘 밤 동창회가 있어. 꽤 많은 동창들이 모이기로 했으니까 너도 참석하는 게 어때? 가족도 함께 와도 괜찮아!”“그래 맞아요 맞아요. 함께 와서 놀아요. 당신들 엄청 오랜만에 모이는 거잖아요!”여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우리 호영 씨 난처하게 하지 마시고요.”“이건…”박시율이 미간을 찌푸리며 망설이고 있었다. 그녀와 나호영은 예전에 꽤 친한 사이였다. 하지만 동창들을 못 본 지 몇 년은 지났으니 혹시 그때 가서 옛 동창들이 임여을처럼 권력의 잣대로 자신을 판단할까 두려웠다.“참 뭘 고민하고 있어? 전동재도 해외에 있다가 이번에 들어왔어. 말로는 내일 어느 큰 회사의 면접을 보러 간다고 하던데. 그 회사 주임과 잘 아는 사이라서 내일 면접은 일단 절반은 성공했다고 보면 된대!”“그리고 다들 몇 년 만에 모이는 건데 반에서 가장 예쁘기로 이름난 네가 빠져서야 되겠어?”나호영이 그녀를 설득했다.“만약 이래도 안 오면 네가 날 친구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거야!”“알았어 알아어 갈게. 어디서 하는데? 이따가 수아를 집에 데려다주고 밤에 남편과 함께 갈게!”박시율이 쓴웃음을 지었다. 상대방의 끈질긴 요청에 그녀는 울며 겨
도범과 박시율은 수아를 데리고 곧바로 택시를 잡고 동물원을 벗어났다.택시가 한창 자동차 대리점이 수두룩하게 줄 선 거리를 지나고 있을 때 도범이 문뜩 뭔가 떠올랐다는 듯이 택시 기사에게 말했다.“기사님, 여기서 세워주시죠!”“왜 여기서 내려?”박시율이 깜짝 놀라며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여보 내가 생각해 봤는데 우리 역시 차 한 대 사는 게 좋을 것 같아. 당신 동창회잖아. 아까 보니까 다들 제법 잘 사는 것 같던데. 아까 그 여자도 온통 자기 자랑만 늘어놓고 갔잖아. 만약 차를 몰고 가지 않으면 아마 그쪽에서 또 뭐라고 수군댈 거야!”“나는 괜찮지만 절대 당신이 그런 꼴을 겪게 할 수는 없어!”도범이 차에서 내린 후 그녀에게 설명했다.“하지만 당신 돈 있어? 아니면 조금만 나중에 살까? 나중에 내가 월급을 받고 나서 사도 되잖아!”박시율이 미간을 찌푸렸다.“난 그런 시선 따위는 두렵지 않아. 남들이 깔보고 싶으면 깔보라지 뭐. 난 그냥 내가 즐겁게 살 수 있으면 돼. 내 삶은 내가 사는 거지 그들 눈치를 볼 필요가 뭐 있어?”“돈이라면 얼마든지 있어! 5년간 군인 생활을 하면서 부대에서 준 상여금도 채 쓰지 못했는걸.”도범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하다가 수아를 한 번 보더니 다시 박시율에게 말했다.“그리고 차를 사지 않으면 비 오는 날에 수아를 유치원에 데려다주는 것도 불편하잖아. 아니다, 차 한 대로는 모자라겠어. 우리 두 사람한테 적어도 한 대는 있어야 하고 수아를 학교에 보내고 데려올 때도 한 대 더 필요하잖아!”“더 있다고? 지난번에 이미 6억 4천만 원을 꺼냈잖아? 그렇게 많이 쓰고도 아직 남아있다고?”박시율이 놀라 물었다.“설마 당신 10억, 아니 100억 정도 가진 거야? 만약 100억이라면 당신 부대에서 평범한 군인은 아니란 말이잖아? 적어도 소령급은 된 거 아니야?”도범이 그녀의 말에 울지도 웃지도 못하고 마지못해 답했다.“비슷해. 당신 남편 우습게 보지 마. 가자, 차 정도는 얼마든지 살 수 있으니까!”“
“그래도 되지. 그럼 우리 저 맞은 켠에 있는 포르쉐 매장으로 가 볼까?”도범이 고개를 끄덕이고 박시율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포르쉐?”세 사람이 문을 나선 후 두 판매원이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눈이 휘둥그레져서 자신들의 귀를 의심했다.그녀들은 원래 도범 일행이 가격을 듣고 옆집에서 파는 더 싼 가격의 차를 보러 갈 줄 알았었다. 그런데 그들이 맞은 켠의 포르쉐 매장으로 간다는 것이다.“하늘아, 우리 혹시 엄청난 고객을 놓진 건 아니겠지? 만약 저 사람들이 정말로 돈이 있는 거라면 어쩌지?”바닥을 닦던 여자가 눈썹을 찡그리며 후회하고 있었다.“그럴 리 없어!”하늘이 곧바로 답했다.“저기 여자가 입은 옷은 그나마 괜찮았는데 남자가 입은 건 분명 싸구려였다고. 너는 그런 옷을 입은 남자가 돈이 많을 리 있다고 생각해? 아마 체면 때문에 우리를 화나게 하려고 일부러 그렇게 말한 걸 거야!”말을 마친 그녀가 곧바로 입구로 달려갔다.“아니면 우리 여기서 확인해 보자. 저 사람들 절대 저 안으로 들어가지 않을 거야!”바닥을 닦던 여자도 입구 쪽으로 다가와 보더니 곧바로 미간을 찌푸렸다.“이럴 수가 하늘아, 저 사람들 저기로 들어갔는데? 설마 정말로 포르쉐를 사는 거 아니겠지?”“그럴 리 없어. 분명 연기하는 걸 거야. 우리가 볼까 봐 들어가는 척만 하는 거야. 이제 곧바로 나와. 내가 저런 사람들을 한두 번 본 것 같아?”하늘이 바로 답했다.……“우리 정말 여기 들어가?”포르쉐 매장 입구에 도착하자 박시율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당신 차에 대해서 잘 알아? 포르쉐는 비싼 차야. 당신 두 대나 살 거라고 했는데 우리 한 대도 사지 못할 수도 있어. 당신 지금 얼마 남았어?”도범이 박시율의 질문에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답했다.“걱정하지 마 여보, 포르쉐 두 대가 다 뭐야. 이 포르쉐 매장을 전부 사는 것도 문제없는걸!”박시율이 속으로 식은땀을 흘렸다. 이 자식은 이 시점에서까지 농담할 마음이 생기는 걸까?‘혹시 도범 저 자식이
안으로 들어서니 여자 판매원이 열심히 바닥을 닦고 있었다. 날씨가 너무 더웠던지 땀이 그녀의 볼 위로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그녀는 고개를 들고 문 앞에 서있는 부부를 바라보았다. 남자의 품에는 귀여운 꼬마 여자아이가 안겨있었다. 순간 그녀가 곧바로 대걸레를 한쪽 편에 세워두고 미소 띤 얼굴로 다가왔다.“두 분 차 보러 오셨어요? 안으로 들어오세요. 이쪽으로요. 마실 거라도 드릴까요? 우리 여기에는 레모네이드와 커피 그리고 물도 있어요…”여자 판매원이 배시시 웃으며 물었다.박시율이 놀란 표정으로 깨끗하게 닦인 바닥을 바라보았다.“바닥을 이렇게 깨끗하게 닦아 놓았는데 우리가 더럽히는 게 걱정되지 않아요?”“참 그게 뭐 대수라고요. 당신들은 고객이잖아요. 고객은 하늘이니까 마음대로 밟으세요. 괜찮아요!”여자 판매원이 말을 마치고 수아를 보더니 미소 띤 얼굴로 말했다.“꼬마 아가씨가 너무 귀엽고 사랑스럽네요. 저한테도 나중에 이렇게 예쁜 딸이 생겼으면 좋겠어요!”“이지혜 쟤도 참 그래. 아무한테나 저렇게 친절하게 대해서 무슨 쓸모가 있겠어!”“그러게 말이야. 여긴 포르쉐 매장이라고. 저 부부가 살 수 있을 것 같아? 이제 곧 퇴근인데 시간만 낭비하고 말이야. 다들 열심히 바닥을 닦아놓았더니 저 사람들 때문에 다 더럽혀졌잖아. 이럼 이따가 또 밀어야 하는데!”“난 몰라. 어차피 이따가도 쟤가 밀 거잖아. 몰라 난. 퇴근 시간이 되면 당장 퇴근해 버릴 거니까!”이지혜를 지켜보던 몇몇 판매원들이 몰래 수군대기 시작했다. 그들은 한눈에 보아도 불만이 가득해 보였다.다른 한 사람은 심지어 비웃으며 말했다.“저 이지혜 말이야, 이번 달 실적 완전히 바닥일 거야. 하하, 더 팔지 못하면 아마 또 매니저님한테 혼날 게 뻔한데 적극적으로 하지 않고 되겠어? 하지만 쟤도 참 멍청해. 저렇게 고객 보는 눈이 없어서야. 또 허탕치게 생겼네!”“여보 봐 봐. 마음껏 골라. 마음에 드는 게 있으면 그걸로 사자!”도범이 씩 웃으며 박시율에게 말했다.박시율이 미간을
“있어요, 있습니다!”이지혜가 기뻐하며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런 차는 너무 비싸 한 달에 한 대를 팔아도 괜찮은 축에 속했다.포르쉐를 사는 사람이 적지는 않았지만 5억이 넘는 차를 팔기는 쉽지 않았다.더욱이 도범은 두 대나 사겠다고 했다.“제, 제가 잘못 들은 거 아니죠?” 옆에 있던 여직원이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리고 은행 카드를 보며 말했다.“그런데 이건 무슨 카드예요? 저는 처음 보는데.”“제가 별도로 주문 제작한 카드입니다, 아마 전 세계에서도 5장도 안 되니 못 본 게 당연합니다. 화하에서는 저만이 가지고 있으니까요.”도범이 웃으며 대답했다.하지만 여직원은 콧방귀를 뀌었다.“세계를 통 들어서 5장도 안 된다고요, 거짓말 아니에요? 그렇게 많은 돈을 긁을 수 있을 지도 모르는데. 화하에서 당신만이 이 카드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도 증명해 줄 사람이 없는 거 아니에요? 거짓말도 참 성의 있게 하시네요.”여직원의 말을 들은 박시율도 몰래 웃었다, 그녀도 도범이 헛소리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전 세계에서 5장도 없고 화하에서는 도범만이 가지고 있는 카드라니.“우와, 아빠 정말 대단해요!”하지만 수아는 도범을 우러러보며 눈을 반짝였다.“얼른 가서 계산이나 해, 두 대면 10억 8천만이야.”박시율이 도범에게 말했다.“고객님, 제가 혜택 방안을 추천해 드릴까요?”여직원이 도범에게 물었다. 그녀는 한 번에 10억이 넘는 돈을 쓰면서 흥정도 하지 않는 사람을 처음 봤다.“괜찮습니다, 시간도 늦었고 할 일도 있어서 그러니 주유 카드나 하나 주세요.”도범이 생각해 보더니 말했다.“네, 알겠습니다. 그럼 400만 원어치의 주유 카드를 드리겠습니다.” 이지혜가 신이 나서 수속을 마치곤 도범을 데리고 가 카드를 긁고 돈을 냈다.도범을 얕잡아보던 여직원은 무척이나 언짢았다, 10억이 넘는 돈을 낼 수 있는 큰손 고객님을 이렇게 이지혜에게 뺏겼기 때문이었다.“보험은 즉시 효력이 발생될 수 있으니 지금 바로 운전해서 돌아가시면 됩니
5년 동안 박시율 일가는 고생만 하면서 살아왔다, 박시율도 당연히 편안한 생활을 누리고 싶었고 좋은 차를 가지고 싶었다.하지만 방법이 없어 그녀는 이를 악물고 견딜 수밖에 없었다.지금 5억이 넘는 차를 사게 되어 그녀는 무척이나 행복했다.“어머, 시율아!”방에서 나온 나봉희는 포르쉐에서 내리는 박시율과 도범을 보곤 흥분해서 말했다.“자기야, 얼른 나와봐, 우리 딸이 세상에, 이 차 너무 멋있다.”“누나, 이게 어떻게 된 거야?”박해일이 박시율에게 다가가 물었다.“이 차 엄청 비싸지 않아? 새 차 같은데, 설마 누나 거야?”“이거…”박시율은 도범을 한 눈 바라봤다, 그녀는 뭐라고 설명을 해야 할지 몰랐다.도범이 이렇게 비싼 차를 살 돈을 가지고 있다는 걸 나봉희가 알게 된다면 도범이 일부러 돈을 내놓지 않았다고 생각해 화를 낼 게 뻔했다. 도범도 문득 박시율과 같은 생각을 했다.박시율이 우물쭈물하자 나봉희가 그녀에게 다가와 화를 냈다.“도범, 너 이 자식, 내 돈 7억 6천만 원 돌려받은 거지? 그러고 이 차 두 대를 산 거지? 너 너무한 거 아니야? 그거 내 돈이야, 어떻게 내 허락도 없이 차를 살 수 있어? 이렇게 비싼 차를 사서 뭐해? 차는 돈을 들여서 키워야 하는 거야, 집에 돈이 있어야 차를 살 자격이 있는 거라고!“그래도 시율이랑 도범은 월급을 많이 받잖아, 그러니 상관없어.”박영호가 옆에서 말을 하며 반짝이는 새 차를 보더니 속으로 감탄했다.“도대체 어디서 돈이 난 거야? 도범, 말해 봐, 내 돈 7억 6천만 원을 찾은 거지? 찾아달라고 했지, 그 돈으로 차를 사라고 한 적은 없는 것 같은데.”하지만 나봉희는 여전히 도범을 물고 늘어졌다, 그 돈은 그녀의 목숨과도 같았다.“어머님,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이 차 어머님 돈으로 산 거 아닙니다.”“그럼 네 돈으로 샀다는 거야? 너한테 아직 돈이 그렇게나 많다고? 아직 얼마나 있는 거야? 내놔 봐, 내 돈 7억 6천만 원부터 내놔…”나봉희가 도범 앞에 손을 척 내밀더
“네, 맞아요!”박시율이 어색하게 웃으며 도범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도범이 10억이 넘는 돈을 썼다는 걸 나봉희가 알게 된다면 그녀는 도범의 지갑을 뒤져 보려고 할지도 몰랐다.다행히 도범은 기지 있게 용신애를 들먹였다.“용 씨 집안 돈이 정말 많긴 한가 보네요, 두 사람한테 차까지 붙여주고, 그것도 이렇게 비싼 차를 붙여주다니.”박해일이 흥분한 얼굴로 도범을 바라봤다.“이 차 도대체 얼마예요?”“별로 비싸지 않아, 한 대에 5억 4천만 원이야.”“5억 4천만 원? 어쩐지, 딱 보기에도 비싼 차 같았어요, 남자라면 이런 차를 타고 다녀야죠.”박해일이 흥분한 얼굴로 말했다.“그럼 차 두 대를 합치면 10억이 넘는 거네, 세상에, 돈 있는 집의 세계는 정말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는 거구나.”장소연이 감탄하며 침을 꿀꺽 삼켰다.장소연은 바로 박해일을 통해 상류 인사들을 만나보려고 생각했었다, 어쨌든 그는 삼류 가문의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비록 지금은 쫓겨났지만 어느 날 갑자기, 그의 할아버지께서 마음을 바꿀 수 있을 수도 있었다.그런데 정말 돈이 많은 사람들이 10억은 전혀 개의치 않아 할 줄은 몰랐다.“이 차 이제 우리 거야, 앞으로 우리 거야!”나봉희가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도범, 시율아, 용신애 용준혁 딸이야, 중주 재벌의 딸이라고. 용 씨 집안 4대 가문보다도 대단한 집안이라는 거 너희들도 알지? 그 아가씨가 너희들을 마음에 들어 하고 있는 것 같으니까 두 사람 멍청한 짓 하지 말고 거기에서 열심히 일해야 해, 알겠지?”“네, 어머니, 신애 아가씨 저희한테 엄청 잘 해줘요, 저희도 열심히 일할 거예요.”박시율이 웃으며 말했다.“그러니까 너희 두 사람이 일을 그만두지 않으면 이 차는 우리의 것이 되는 거잖아. 앞으로 누가 이 차 누구 거냐고 물어보면 너희 거라고 해, 알았지? 너희가 샀다고 하라고, 다른 사람들은 잘 모르니까 분명 믿을 거야, 그래야 체면이 서지.”나봉희의 허영심이 순식간에 불타올랐다.“다음에 나도 이
“어머니, 걱정하지 마세요, 그 돈 도범이 무조건 찾아 줄 거예요.”박시율이 웃으며 덧붙였다.“저랑 도범 이따 동창회에 가봐야 해요, 친구들끼리 오랜만에 만나서 밥도 먹고 놀기로 했어요.”잠시 뒤, 도범과 박시율은 차를 끌고 동창회에 갈 준비를 했다.“어머니, 제 차는요?”하지만 밖으로 나와 보니 차가 사라지고 없었다, 방금 전 방에서 차 소리를 들었을 때에도 그저 지나가던 차 소리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누군가가 차를 끌고 나간 것이었다.“네 동생이랑 소연이가 끌고 나갔어.”나봉희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하지만 박시율의 표정은 언짢아졌다.“어머니, 둘이서 하나만 끌고 나갔어도 됐잖아요, 그런데 왜 두 대나 가지고 나간 거예요? 제가 방금 전 동창회에 가야 한다고 분명히 말했는데 한 대도 안 남겨주면 저랑 도범은 어떻게 하라는 거예요?”“해일이도 자기 친구들한테 자랑하고 싶어서 그런 거지. 너희는 택시 타고 가라고 했어, 동창회 끝나면 해일이한테 연락해, 둘이 너희들을 데리러 간다고 했으니까.”“……”박시율은 어이가 없어졌다, 도범이 목숨 걸고 벌어온 돈으로 자신에게 차를 사준 이유는 바로 그녀의 친구들 앞에서 체면을 세워주기 위한 것이었다.그런데 자신의 동생과 장소연은 그 잠깐 사이, 차를 끌고 나갔다.결국 박시율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으며 도범에게 말했다.“그냥 택시 타고 가야 할 것 같은데.”“어쩔 수 없지, 당신 걱정은 전혀 안 하는 동생을 둔 덕분이라고 봐야지. 자기 대학 친구들 교양 있는 사람들이니 임여을처럼 굴지 않겠지? 아니다, 그 임여을이라는 사람, 대학 때부터 당신이랑 원수 사이였던 거야? 그래서 그날 당신을 그렇게 무시했던 거야? 적어도 사람을 면전에 두고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박시율도 도범의 말을 들으니 억울해졌다.“임여을 대학 때부터 자기가 나보다 예쁘다고 생각하고 퀸카가 될 줄 알았는데...”“아, 당신보다 예쁘지 않은데 당신보다 예쁘다고 생각하고 질투를 한 거구나, 그래서 지금 돈 많은 사람
도범은 한숨을 내쉰 후 다시 입을 열었다.“네가 오양수와 대결할 때, 나는 곽치홍이 너희 두 사람의 싸움을 계속 지켜보는 것을 발견했어. 그래서 곽치홍을 주시하고 있었는데, 나중에 곽치홍도 내가 본인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지. 하지만 내가 너무 멀리 있어서 곽치홍의 표정을 자세히 볼 수 없었어. 그런데 곽치홍이 나를 쳐다볼 때, 마치 독사에게 주시당하는 느낌이 들었어. 네가 전에 말했던 게 맞아, 곽치홍은 분명 우리에게 적대감을 품고 있어.”도범은 고개를 끄덕였다. 곽치홍이 등장한 이후로, 온갖 의문들이 곽치홍의 마음속에 떠올랐다. 이전에 장로들이 했던 말은 전부 믿을 수 없었고, 이 안에 더 큰 비밀이 숨어 있을 게 틀림없었다.도범이 숨을 고르고 막 입을 열려던 순간, 오수경이 먼저 말했다.“네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아. 나를 위로하려고 하지 마, 이제 다 이해했어. 내가 전에 했던 충동적인 행동들이 너에게 폐를 끼쳤다는 걸 알아. 앞으로는 항상 이 점을 명심하고, 더 이상 너에게 폐를 끼치지 않을 거야.”오수경의 이 말을 듣고 나니 도범은 한결 마음이 놓였다. 오수경은 단순한 순진한 바보였고, 팔 다리는 튼튼하지만 머리는 물에 잠긴 것 같아 항상 충동에 휘둘렸다. 하지만 이번 일을 겪고 나서 오수경도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그렇게 말하고 나서 오수경은 마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 편안해졌다. 두 사람은 함께 4층으로 발을 내디뎠다.그곳은 희미한 빛으로 덮인 광활한 초원이었다. 초원 위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는데, 대부분은 풀밭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손에 든 수정구를 받쳐 들고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눈을 감고 명상하는 것처럼 보였고, 소수의 사람들은 낮은 목소리로 무엇인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분위기는 침묵과 압박감이 공존했다. 누군가가 이야기를 한다 해도 일부러 목소리를 낮췄다. 여기가 바로 천엽7현탑의 4층이었으며, 겉보기에는 환상 세계와도 같았다.오수경은 눈을 깜빡이며 도범의 손에 들린 보라색 수정구를 한 번
이 말을 들은 오수경은 고개를 저으며 완강히 거부했다.“나는 3층에 남고 싶지 않아. 도범 오빠가 4층을 돌파하면, 분명히 5층도 갈 거잖아. 천엽 7현대는 총 7층인데, 도범 오빠가 7층까지 돌파할 수도 있잖아? 그럼 도범 오빠는 다른 곳으로 바로 전송될지도 모르는데, 그러면 나 혼자 3층에 남게 되잖아. 그땐 난 어떻게 해야 하지?”도범은 오수경의 말을 듣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오수경의 걱정도 일리가 있었다. 만약 도범이 정말 7층까지 한 번에 돌파한다면, 천엽 7현대는 자신을 완벽한 도전자로 간주할 가능성이 높았고, 보상을 주고 다른 곳으로 전송할 수도 있었다.그렇게 되면 오수경을 홀로 남겨두게 되는데, 도범과 다시 만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여러 가지로 생각한 끝에, 도범은 여전히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한편, 오수경은 도범이 망설이는 모습을 보고 조급해졌다. 오수경은 도범의 팔을 잡으며 간절히 말했다.“난 도범 오빠의 인맥으로 천엽성에 들어온 거야. 인맥으로 들어온 만큼, 나는 어떠한 도전도 직면하지 않을 거고, 그저 도범 오빠만 따라가면 계속 위로 올라갈 수 있어. 어떤 위험이 닥치더라도, 나는 절대 혼자서 떠나지 않을 거야. 정말 운 나쁘게 여기서 죽더라도, 제가 감수해야 할 일이니까.”오수경의 이 말은 진심이었다. 도범을 처음 만난 이후, 오수경은 자신의 인생이 위험과 맞물려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건 자신이 바꿀 수 없는 일이었다.다른 것은 판단할 수 없었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도범은 매우 신뢰할 만한 사람이었고, 그 뒤를 따라가야만 생존의 가능성을 얻을 수 있었다. 오수경은 이곳에서의 2년을 버텨내어 바라문 세계를 떠나, 자금단방으로 돌아가 다시는 나오지 않기를 바랐다.도범은 오수경의 결심을 확인하자,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함께 걸음을 옮겨 4층의 입구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모두가 다소 망설이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미래의 운명을 예측할 수 없기에 그들
도범은 냉소를 띠며 말했다.“전 당신과 싸울 생각 없어요. 다만 한 가지 중요한 일을 잊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나게 해주러 왔을 뿐이죠.”도범의 말에 민경운은 순간 얼어붙었다. 민경운은 잠시 고민하며 무슨 의미인지 되새겼고, 이내 도범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깨달았다. 바로 얼마 전 자신과 도범 사이에 벌어진 내기 때문이었다.그 순간, 민경운의 가슴은 마치 여러 개의 큰 돌이 짓누르는 듯 답답해졌다. 그러나 민경운은 이를 갈며 분노를 삼켰다. 애초에 민경운은 도범이 절대로 이번 대결에서 이길 수 없을 것이라 확신하고 내기를 걸었던 것이다.민경운은 도범이 처참하게 패배할 것이라 생각했고, 자신의 손에 들어올 19만 영정을 기대했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하게 결과는 정반대였다. 도범이 승리한 것이다.이때, 도범은 손을 내밀며 말했다.“빨리 돈을 내세요. 저도 할 일이 있거든요. 그러니 제 시간 뺏지 마세요. 원래 9만 개의 영정으로 내기를 시작했는데, 본인이 10만 개를 더 얹어 19만 개의 영정으로 만든 거잖아요. 그러니 빨리 결제해요.”도범의 이 말에 민경운은 가슴이 터질 듯했다. 상황은 정말로 도범이 말한 대로였다. 도범은 9만 개의 영정으로 내기를 제안했고, 민경운은 도범이 분명히 패배할 것이라 생각하여 곧바로 10만 개를 더해 19만 개로 올렸다. 하지만 결국 자신의 발등을 찍고 말았다.지금 민경운은 자기 뺨을 세게 때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9만 개의 영정은 민경운에게 꽤나 큰 금액이지만, 19만 개의 영정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그러나 두 사람은 이미 계약을 체결했기 때문에 민경운이 이를 되돌릴 방법은 없었다. 만약 민경운이 결제하지 않으면 계약이 곧바로 발동하여, 결국에는 영혼의 역반작용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이후의 일은 의외로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오양수는 원건종의 제자들을 들것에 실어 나갔고, 도범은 마침내 세 번째 영패를 손에 넣었다. 이번 영패는 조금 특이하여 입탑 영패가 아닌 출성 영패로 바뀌어 있었다.이
관중석에는 각양각색의 무사들이 섞여 있었고, 불량배들도 많았다. 평소에 거리에서 욕을 퍼붓기 좋아하는 이들은 이제야 자신들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기회를 찾은 듯, 원건종의 제자들에게 온갖 욕설을 퍼부었다.일부 사람들은 진원을 목에 운용하여 의도적으로 목소리를 크게 했다. 다른 사람들이 듣지 못할까 봐 걱정이라도 되는 듯, 그들은 더욱 큰 소리로 온갖 더러운 말을 쏟아냈다. 이로 인해 도범의 귀는 무척이나 시끄러웠고, 고통스러울 정도였다.도범은 자신과 원건종의 제자들 사이에 오간 몇 마디 대화가 이렇게 사람들을 폭발시키게 될 줄은 몰랐다. 또한, 도범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쉬며 이런 싸움은 결국 아무런 결론도 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몸싸움을 할 수도 없고, 계속 말다툼만 이어질 뿐이었다.그래서 도범은 더 이상 들으려 하지 않고, 대련 무대의 한쪽 가장자리로 가서 조용히 서 있기로 했다. 도범은 아직 오양수를 죽일 생각이 없었다. 오양수가 자신에게 했던 그 약속, 즉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그대로 돌려주고 싶었기 때문이다.시간은 조금씩 흘러갔고, 싸움 소리는 계속해서 끊이지 않았다. 마침내 오양수의 몸부림이 점점 약해지고, 장벽이 완전히 해제되자 원건종의 제자들이 한꺼번에 몰려가서 오양수를 부축했다.한편, 진태산은 눈살을 찌푸린 채 오양수의 코에 손을 대 그의 호흡을 확인했다. 비록 오양수는 아직 숨을 쉬고 있었지만, 그 호흡은 매우 미약했다.민경운은 급하게 자신의 보관 반지에서 여러 개의 단약을 꺼내 오양수의 입에 넣었다. 그러나 이 단약들은 오양수의 현재 상태를 치료하기에는 전혀 효과가 없었다. 방금 도범이 사용한 참멸현공이 오양수의 영혼을 완전히 찢어놓았기 때문이다.영혼이 찢어진 상태에서 내상을 치료하는 단약이 효과가 있을 리 없었다. 따라서 민경운이 오양수에게 많은 단약을 먹였지만, 오양수의 상태는 전혀 나아지지 않은 것이다. 민경운은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만약 오양수가 정말로 이 사건으로 인해 죽는다면, 그들 모두 책임을
“맞아! 당장 우리 오양수 선배를 풀어줘! 양수 선배에게 무슨 일이 생기기라도 하면, 너는 천번 만번 죽임을 당할 거야! 오양수 선배는 도민수 선배가 아니야. 네가 도민수 선배를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갔을 때는 우리도 나서서 협상할 여지가 있었어.그러나 네가 오양수 선배를 진짜로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간다면, 염라대왕이라도 너를 보호할 수 없을 거야! 바라문 세계를 벗어나는 순간, 너는 원건종의 끝없는 추격을 받게 될 거야!”바깥에서 들려오는 원건종 제자들의 고함과 욕설은 도범의 귀에 전부 들렸다. 이는 이미 예상된 일이었기에 도범은 일말의 두려움도 느끼지 않았다.원건종은 일반적인 자유 무사들에게 충분한 위압감을 줄 수 있지만, 도범에게는 그렇게 중요한 상대가 아니었다. 원건종이 무엇이건, 자신의 힘이 충분히 강하다면 더 강력한 종문에 가담할 수 있을 테니, 원건종이 손해를 본다고 해도 도범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게다가 이번 일은 처음부터 끝까지 원건종이 문제를 일으킨 것이었다. 도범은 결코 선을 넘는 행동을 하지 않았고 원건종 쪽에서 여러 번 도발하지 않았다면, 도범 역시 이들과 싸울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잠시 후, 도범은 차가운 웃음을 지으며 원건종의 제자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일부러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원건종 제자들, 잘 들어! 8품 종문 출신이라는 이유로 제멋대로 행동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 처음부터 끝까지 문제를 일으킨 건 너희들이었잖아. 그런데 패배하고 나니 이제와서 나를 협박하는 거야?만약 너희들이 먼저 건드리지 않았다면, 나 역시 너희들과 엮일 생각이 전혀 없었을 거야. 즉, 너희들은 본인들의 강력한 종문을 배경을 믿고 제멋대로 행동해도 된다고 착각하는 거야. 하지만 나는 너희들의 그런 행태를 전혀 묵인할 생각 없어!”도범의 이 말은 관중석에서 큰 박수갈채를 일으켰다. 관중들은 도범이 그들 마음속에 담아둔 말을 대신 말해준 것 같아 고무되었다. 이들 고급 종문의 제자들은 항상 약한 무사들 앞에서만 무력을 과시하며, 이
“오양수는 원건종의 친전 제자 아닌가요?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약할 수 있죠?”“당신 바보 아니에요? 이건 오양수이 약한 게 아니라 도범이 너무 강한 거에요! 아까도 말했잖아요? 빙봉천리는 지급 상급 무기에요. 여기 있는 사람들 중에 몇이나 지급 상등 무기를 수련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도범이 빙봉천리를 부순다는 건, 도범의 무기가 오양수의 무기보다 강하다는 걸 의미해요!”“설마 도범이 천급 무기를 수련한 건가요?”이 말이 나오자마자, 주변의 거의 모든 이들이 단번에 부정했다.“미쳤어요? 무슨 말이든 막하네요. 천급 무기가 어떤 개념인지 알고나 하는 소리에요? 수련 경지가 고신경에 도달했거나, 혹은 특별한 재능을 지닌 영천 경지 후기에 이르러야만 천급 무기를 수련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기는 거에요.그리고 여기 있는 사람들은 모두 바라문 세계의 규칙을 지켜야만 이곳에 들어올 수 있고요. 나이도 60세를 넘지 않아야 하죠. 그렇다면 60세가 넘지 않은 사람이 천급 무기를 수련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그렇네요! 아마도 지급 상급 무기를 수련한 거겠죠. 도범이 오양수를 이길 수 있었던 이유는 도범이 지급 하급 무기를 대원만 단계까지 수련했기 때문일 거에요.”“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도범의 재능은 정말 두려운 수준이네요. 8품 종문의 친전 제자조차 도범의 상대가 될 수 없다는 거잖아요!”“이번에 바라문 세계에 온 보람은 있네요. 이렇게 많은 천재들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다니.”오양수와 관련 없는 관중들은 이런 논의를 흥미롭게 이어갔다. 이전에 도범을 비하하던 사람들도 이제는 도범을 칭찬하며, 도범을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천재라고 말하기 시작했다.8품 종문의 친전 제자들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원건종의 제자들은 차분할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관중석에서 편안하게 앉아있던 그들은, 도범이 빙봉천리를 단칼에 베어내는 모습을 보고는 그만 입을 다물고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지금 오양수가 이렇게 극심한 고통을 겪는 걸 보니, 분명 도범이
두 번째 방법은 고도의 신법을 필요로 하며, 일반적인 무사로서는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수준이다. 첫 번째 방법도 강력한 실력이 필요하기에, 주위 사람들이 도범을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 빙봉천리의 감금 아래에서 도범은 결코 빠져나갈 수 없을 것처럼 보였다.따라서 모두가 도범이 반드시 패배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도범의 경맥이 감금되면 오양수가 도범을 결코 쉽게 놓아주지 않을 것이라 여겼다.한편, 도범은 한 손에 장검을 쥐고, 다른 손으로는 연달아 법진을 만들어냈다. 이윽고 백 개의 영혼검이 하나로 융합되어, 거대한 영혼 검이 되어 회흑색 장검 속에 흡수되었다.도범이 전승 상태로 참멸현공을 펼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비록 빙봉천리가 지급 상급 무기일지라도, 도범의 눈에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도범은 현재 참멸현공을 대원만 단계까지 수련한 상태였고, 영혼검과의 융합으로 생성된 힘은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힘이다.도범은 분노에 차서 큰 소리로 포효하며 단칼에 검을 휘둘렀다. 이윽고 회흑색 장검에서 거대한 검기가 날아가면서 하늘을 뒤덮은 얼음망이 도범의 앞에 닥쳐왔다.모두는 쾅쾅하는 몇 번의 뚜렷한 소리를 들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단단해 보이던 빙봉천리가 도범의 한 줄기 검기에 의해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게다가 이 검기는 빙봉천리를 부순 뒤에도 힘이 전혀 소모되지 않은 채 여전히 앞으로 돌진했다. 이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고, 뒤따라오던 오양수조차 반응하지 못했다.현재 도범의 참멸현공은 대원만의 경지에 도달했다. 비록 빙봉천리가 지급 상급 무기라 할지라도, 참멸현공 앞에서는 종이장처럼 부서질 뿐이었다.모두가 도범이 빙봉천리에 온몸이 봉쇄되어, 도살당할 어린 양처럼 될 것을 기대했으나, 그들의 모든 환상은 산산이 부서졌다. 검날이 빙봉천리를 부순 후, 곧장 반응하지 못한 오양수를 향해 돌진했다. 검날이 오양수의 면전 3척 앞에 닿기 직전에야 오양수는 자신을 보호하려 했지만, 이미 너무 늦어버린 상황이었다. 평상시라면 오양수는 공격과 동시에
각양각색의 논조, 그리고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끝없는 토론. 그러나 도범은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상관하지 않았다. 도범은 그저 담담한 눈빛으로 오양수를 바라보았다.잠시 후, 오양수가 무기를 꺼내들자, 도범도 천천히 자신의 회흑색 장검을 꺼내 손에 쥐었다. 이 장검은 오랫동안 도범과 함께한 무기로, 한 번도 바뀐 적이 없었다.오양수는 청란골패를 가볍게 휘두르자, 뚜렷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와 동시에 한기가 청란골패에서 뿜어져 나오며 분위기를 한순간에 바꾸었다.현재 오양수의 머릿속에는 오직 한 가지 생각만이 존재했다. 그건 바로 도범을 쓰러뜨린 뒤, 잔인하게 고통을 주어 그 대가가 얼마나 혹독한지 알게 하는 것이었다.오양수는 크게 포효하며 두 손을 뒤집어 법진을 만들어냈다. 그러자 오양수의 손바닥에 육각형 모양의 얼음 화살이 생겨났고, 4초 후, 수백 개의 육각형 얼음 화살이 오양수의 앞을 가득 메웠다.오양수는 다시 한번 포효하며 앞을 향해 힘껏 밀어붙였다. 그러자 수백 개의 육각형 얼음 화살이 도범을 향해 맹렬히 돌진했고, 이 화살들과 함께 엄청난 한기가 도범을 덮쳤다.도범은 눈살을 찌푸린 채, 두 손으로 장검을 단단히 쥐고 한 발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는 조용히 검을 휘둘렀다. 이윽고 수많은 육각형 얼음 화살은 단숨에 두 조각으로 나뉘었다.그때, 관중석에서 다시 한번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도범 저 녀석, 실력이 정말 보통이 아니네요!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면, 오양수가 수련한 무기는 지급 상급 무기, 빙봉천리에요! 그런데 도범이 단칼에 빙봉천리를 가르다니, 실력이 꽤 강한데요!”그 사람이 말을 끝내자마자 주변에서는 곧바로 반박이 나왔다.“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게 무슨 말이에요? 빙봉천리는 지급 상급 무기에요. 바라문 세계를 둘러봐도, 지급 상급 무기를 수련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 것 같아요? 방금 전의 공격은 단지 약간의 힘만 사용한 거에요. 오양수가 진심으로 도범을 죽이려 했다면, 반항할 틈조차 없었을 거에요!”오양수가 쏘
검은 옷의 대장부는 눈살을 찌푸린 채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내가 무슨 말을 하든 네가 뭔 상관이야! 이 건방진 놈, 죽고 싶어! 마침 상대가 필요했는데, 너의 입탑영패를 가지고 와. 우리 한 판 붙자!”그러자 오수경은 콧방귀를 뀌며 태연하게 말했다.“내 앞에서 강자 흉내 내지 마. 내 가슴에 6품 연단사 휘장이 붙어 있는 걸 못 봤어? 그런데 네가 연단사인 나와 실력을 겨루겠다고? 차라리 연단술을 겨뤄보는 게 어때?”이 말에 검은 옷의 대장부는 말문이 막혀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규칙이 없었다면 그는 당장이라도 오수경의 목을 조를 기세였다.오수경은 검은 옷의 대장부가 더 이상 말하지 않자, 더욱 신나서 비아냥거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순간 도범이 손을 뻗어 그를 막았다.“너는 왜 이렇게 매사에 신중하지 못해? 지금부터 내 말을 잘 들어. 무슨 일이 있어도 입을 다물고 있어야 해. 알겠어?”도범의 꾸짖음에 오수경은 목을 움츠리며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전에 도범에게 문제를 일으킨 적이 있었기에, 이번에는 더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이때, 검은 옷의 대장부는 냉소를 머금은 채 다시 도범을 바라보았다. 방금 그들의 대화를 일부 들었기에 도범에 대한 호기심은 더욱 커진 상태였다.“네가 정말 8품 종문의 친전 제자보다 강하다고 생각해?”도범은 눈살을 찌푸린 채 검은 옷의 대장부를 상대할 가치가 없다고 여겼다. 그러나 검은 옷의 대장부는 도범이 대답하지 않아도 화내지 않았다.이렇게 시간은 점점 흘러갔고, 아마도 내기 때문이거나 도범의 냉담한 태도 때문인지 상황은 이상할 정도로 고요해졌다. 도발적인 말이 다시 들리지 않았다. 제73회 대결이 곧 시작되려 할 때, 도범은 더 이상 쓸데없는 소리를 듣지 않게 되었다.잠시 후, 도범은 자리에서 일어나 숨을 내쉬고는 오수경을 향해 눈짓을 보냈다. 그리고는 나지막이 말했다.“누구를 보든, 어떤 말을 듣든, 이 자리에서 떠나지 마.”그 말을 마치고 도범은 큰 걸음으로 대결 무대를 향해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