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애교 누나에 대한 생각을 오래 하지 않았다. 지금은 신경 써야 할 일이 너무 많았으니까.양동준은 나에게 열흘이라는 기한을 줬고, 민우와 함께 따로 나가서 사업해 보려던 계획도 계속 진행해야 하고, 또 사장님 치료도 신경 써야 했다이 중에 중요하지 않은 일은 없었다.특히 열흘 기한 중에 벌써 이틀이나 지났는데 나는 아무것도 한 게 없다. 하지만 이번 기회를 놓치면 나한테 영영 기회가 오지 않을 수 있었다.내가 한창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욕실 쪽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유미야, 이러지 마. 수호 씨 아직 집에 있어...”그건 분명 사장님 목소리였다. 사장님은 내가 듣지 못하게 하려고 일부러 목소리를 내리 깔았다.곧이어 사모님 목소리도 들렸다.“수호 씨는 지금 방에 있어 못 들을 거야. 호섭 씨, 우리 한동안 안 했었잖아. 내가 뭐 다른 거 하자는 게 아니잖아. 그냥 같이 목욕하자.”사모님 목소리는 약간 안달 나 있었다.순간 내 머릿속에 욕실 속 장면이 그려졌다.풍만한 몸매가 얇은 천에 가려졌지만 사모님의 고혹적인 느낌은 가리지 못했다.그 모습을 상상하니 아랫배가 갑자기 뜨거워졌다.그때 사장님은 여전히 거절했다.“안돼. 수호 씨가 들어오면 얼마나 어색해.”“문 잠그면 되지. 호섭 씨, 나 거절하지 마. 나도 정상적인 여자야. 나도 욕구가 있다고. 내가 다른 거 바라는 거 아니잖아. 그냥 나 좀 만져주고 안아주고 키스해 주면 돼.”사모님의 말에 나는 피가 들끓었다.마음 같아서는 내가 나서서 사모님의 욕구를 채워주고 싶었다. 하지만 사장님은 여전히 거절했다.“유미야, 그만 벗어. 계속 이러면 나도 못 참아...”사모님은 약간 넋이 나간 듯 말했다.“못 참겠으면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되잖아... 호섭 씨, 나 하고 싶어...”나는 사모님이 이렇게 적나라한 말을 할 거라고 생각지도 못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아래는 이미 부풀어 올랐다.욕실 안에서는 어느새 말소리가 끊기더니 희미하게 가쁜 숨소리가 들리는 듯했
나는 영상 하나를 찾아 빨리 내 안의 욕구를 풀 생각이었다.하지만 내가 한창 욕구 해소에 정신이 팔렸을 때, 갑자기 밖에서 들리는 노크 소리에 하마터면 간 떨어질 뻔했다.나는 얼른 영상을 끄고 바지를 올리고는 전전긍긍하며 물었다.“누구세요?”“수호 씨, 나예요.”사모님이었다.‘사장님이랑 끝났나?’나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서 문을 열었다.하지만 사모님은 약간 넋이 나간 모습인 데다 기분이 가라앉은 듯했다.“왜 그러세요?”나는 걱정스러워 물었다.‘사모님이 왜 갑자기 기분이 안 좋아지셨지? 표정은 왜 이렇고?’“약욕 시간 다 됐어요. 나랑 같이 호섭 씨 침대에 좀 옮겨요.”사모님은 말을 마치자마자 뒤돌아섰다.사모님은 아무리 봐도 무슨 일이 있는 듯했는데, 먼저 말하지 않으니 나도 물어볼 수 없었다.나는 헐렁한 외투를 걸치고 밖으로 나갔다. 그렇게 하면 부풀어 올라 민망한 내 그곳을 가릴 수 있었으니까.나와 사모님이 욕실로 들어가자 사장님은 난감한 표정으로 사모님을 바라봤다.“유미야, 나...”사장님은 뭔가 말하고 싶은 듯했으나 사모님이 말을 잘랐다.“다 알아. 그러니까 말하지 마. 우선 몸조리부터 잘해.”사장님은 깊은 한숨을 쉬었다.‘두 분 왜 이러지? 설마 사장님이 아까 실패해서 미안해하는 건가?’가끔 어떤 일은 사실을 간파하고 있어도 말하지 않는 게 서로에게 좋다.나는 사모님을 도와 사장님을 방에 옮겼다. 사장님은 침대에 누운 채 시선을 사모님한테서 떼지 못했다.“수호 씨, 오늘 고마웠어. 오늘 더 이상 아무 일 없으니까 가서 쉬어.”“네.”나는 짤막하게 대답하고 객실로 돌아갔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방금 전 일을 생각했다.사모님은 만족하지 못한 게 틀림없다. 그렇지 않으면 그렇게 실망한 표정을 할 리 없다. 사장님은 지금 몸 건강이 안 좋아 사모님을 만족하게 하는 게 어려울 거다.‘하, 사장님이 얼른 나아서 두 분 백년해로해야 할 텐데.’사모님이 예쁘고 몸매도 좋은 데다 농염하고 관능적이기까지 하다.
윤미화가 소리 지르려 할 때 나는 재빠르게 그녀의 입을 막았다.“윤 사장님이 제 방에 들어온 거예요. 게다가 분명 먼저 저를 키스했잖아요. 전 꿈이라고 착각했어요. 이건 제 탓 아니라고요. 소리도 치지 마요. 한밤중에 소리 지르면 사모님이 올 텐데, 이 상황 어떻게 설명할 거예요?”나는 한꺼번에 말을 내뱉었다.‘젠장, 누가 잘 자고 있는데 이 여자가 갑자기 내 이불 속으로 들어올 줄 알았겠냐고?’게다가 나는 진짜 꿈에서 애교 누나를 만난 줄 알았다. 사귀는 사이에 이런 짓을 하는 건 정상 아닌가? 그런데 상대가 윤미화일 줄이야. 진짜 귀신 곡할 노릇이다.윤미화는 얼른 옷을 정리하고는 씩씩거리며 내 등을 찰싹찰싹 때렸다.나는 상대가 더 이상 소리 지르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서고 나서야 손을 풀었다.그랬더니 윤미화가 나를 째려봤다.“아주 땡잡았겠네? 오늘 일 절대 입 밖에 내지 마.”“내가 미치지 않고서야 이걸 왜 말하겠어요? 그리고 왜 갑자기 제 방에 들어와서 이불 속으로 팍 들었는데요? 그것도 모자라 키스까지. 혹시 예전부터 저랑 자고 싶었던 거 아니에요?”윤미화는 어이없다는 듯 콧방귀를 뀌었다.“내 남편이 수호 씨보다 훨씬 잘생기고 돈도 많은데, 내가 왜 수호 씨를 좋아하겠어? 잠결에 내 집인 줄 알아서 그랬지. 게다가 수호 씨가 내 남편인 줄 알기도 했고...”그렇다면 참 난감해진다나는 상대가 애교 누나인 줄 알고, 상대는 내가 제 남편인 줄 알았다니.그래도 끝까지 가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하지만 왠지 모르게 내 머릿속에는 불을 켰을 때 봤던 윤미화의 나른하고 매혹적인 모습이 자꾸만 떠올랐다.특히 밖에 훤히 드러난 가슴이 유독 매력적이었다.아마도 내가 자기 전에 너무 참아서 그런지 이 순간 윤미화의 이런 모습을 보니 너무 매력적으로 느껴졌다.심지어 아무 생각도 없이 이대로 윤미화를 덮쳐 그녀의 아름다운 몸매를 제대로 감상하고 싶었다.윤미화는 저를 빤히 쳐다보는 내 눈빛에 너무 당황해했다. 그동안 남편 외의 다른 이성과 이런
너무 평화로운 결혼 생활은 잔잔한 물결처럼 기복도 격정도 없다. 윤미화의 결혼 생활이 지금 그러하다.이젠 중년에 접어든 터라 한 달에 한 번 부부 관계를 맺는 것만 해도 괜찮은 축에 속한다.하지만 윤미화의 남편은 매번 할 때마다 숙제를 완성하기라도 하는 듯 기계처럼 임무를 수행하느라, 애무도 하지 않고 그녀를 기쁘게 하지도 않으며 심지어 만족스러운지 물어보지도 않는다.윤미화는 솔직히 그동안 마음이 허전했다. 때문에 마사지 받으러 와서 자꾸만 나를 희롱했던 거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남편을 배신하는 일을 저지를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하지만 방금 나와 뒹군 그 짧은 시간 동안, 윤미화는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뜬 것처럼 자꾸만 정신이 멍하고 어쩔 줄 몰랐다. 게다가 그녀의 몸은 마치 열쇠라도 열린 듯 민감해지고 통제 불능이 되었다.결국 윤미화는 참지 못하고 제 옷 속으로 손을 넣더니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다. 곧이어 그녀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하지만 나는 당연히 그 일을 알 리 없었다.방금 겪은 일에 나는 자극을 받지도 흥분하지도 않고 오히려 불안하고 조마조마했다.윤미화는 내 사장님인데, 내가 사장님을 그랬다니...나는 내 머리를 세게 쥐어박았다.“앞으로 욕구가 생기면 제때제때 풀어야겠어. 절대 이런 망나니 같은 짓을 하면 안 돼.”다행히 중요한 순간에 고삐를 쥐어 잡았으니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진짜 난처해 죽었을 거다.나는 일부러 문에 바싹 기대 밖을 훔쳐봤다. 그러고는 안방 쪽 문이 굳게 잠겨 있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다행히 사장님과 사모님이 엿듣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러지 않으면 진짜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나는 화장실에서 찬물 샤워를 해 강제로 몸을 식힌 뒤 방으로 돌아가 잠을 청했다.다음 날 아침.윤미화는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먼저 나한테 인사했다.“수호 씨, 좋은 아침.”나는 속으로 태연하게 행동하는 윤미화를 존경스러워하며 맞장구쳤다.“좋은 아침이에요. 언제 왔어요?”윤미화는 예쁜 미소를
윤미화는 예리하게 이상함을 알아차렸다.“난 그냥 농담한 건데, 얼굴은 왜 그렇게 빨개져? 설마 내 말이 맞아? 설마 정말 둘이 그랬어?”윤미화는 솔직히 너무 부러웠다. 그녀의 제부는 유려하고 우아하지만, 전혀 무뚝뚝하지 않다. 이건 동생 얼굴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여자는 정신과 마음이 모두 사랑을 받을 때만 얼굴에 붉은빛이 감돈다. 때문에 윤미화는 자기 동생 역시 그렇다는 확신이 들었다.그에 반해 윤미화는 너무 슬펐다. 똑같이 유려하고 우아한 남편을 뒀으나, 윤미화의 남편은 무뚝뚝하고 재미없는 데다, 매번 정사를 치를 때마다 아무 느낌도 없다.윤미화는 예쁜 데다 몸매도 좋고, 꽃에 비유하자면 활짝 핀 장미 같은 분위기를 띠었다. 그런데 아무리 예쁜 장미꽃이라도 충분한 보살핌을 받지 못하면 시들어 죽기 마련이다. 윤미화는 본이니 지금 겉으로는 괜찮아 보이나 속은 텅 비었다는 생각이 들었다.“됐어. 그런 얘기는 그만해. 집에 우리만 있는 거 아니잖아.”사모님은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 나를 자꾸만 흘깃거렸다. 그러다가 나와 눈이 마주친 순간 저들의 대화를 내가 들었다는 걸 알아차리고 더 부끄러워했다.나는 너무 어색해 머리를 긁적이며 얼른 뒤돌아섰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서로 너무 어색할 테니까.하지만 호기심이 발동한 윤미화는 제 동생의 팔짱을 끼고 계속 물었다.“대체 한 거야 안 한 거야? 말해 봐.”“안 했어. 저 사람 몸이 저런데 어떻게 해? 머리로 생각 좀 해 봐.”“안 했는데 얼굴은 왜 붉혀? 혹시 부끄러워 말 못 하는 거 아니야? 아니면 네가 먼저 하자고 해서 내가 알기를 원하지 않는 거야?”그 순간 임유미는 쥐구멍이라도 찾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녀는 자기 언니가 이런 것마저 눈치챌 정도로 똑똑할 줄은 몰랐다.“아니야. 헛소리하지 말고 얼른 아침이나 사와.”“오호. 유미, 네가 이런 사람인 줄은 몰랐는데.”윤미화는 더 이상 묻지 않아도 이미 동생의 반응에서 답을 얻었다. 이윽고 신이 나서 집을 나섰다. 그러면서 속으
“아니에요.”하늘에 맹세코 나는 절대 사모님을 노린 게 아니다. 그저 대략적인 사이즈를 가늠하려는 거였다.하지만 사내인 내가 사모님 몸을 훑는 게 확실히 부적절하다는 걸 알았기에, 나는 얼른 시선을 돌렸다.“죄송해요.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에요. 오늘 사장님이 드실 약은 냉장고에 넣어 뒀어요. 그럼 일 보세요, 전 이만 가볼게요.”나는 말을 마치자마자 도망치듯 집을 나갔다.사모님이 부끄러워하는 모습에 나도 따라서 쑥스러워졌으니.나는 곧장 화인당으로 가는 대신 우선 자동차 판매점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 내 차를 수리 맡긴 뒤에야 택시를 타 화인당으로 향했다.내가 가게에 도착했을 때 이미 10시가 넘었다. 나는 더 이상 마사지할 필요가 없기에 일찍 오든 늦게 오든 별로 상관은 없었다.오늘은 모태진도 왔다. 다만 얼굴에는 여자의 손톱자국을 달고서.‘아내한테 할퀴었나?’보아하니 한은솔과의 일을 아내한테 솔직히 털어놓은 게 틀림없었다.어떤 여자도 자기 남편이 다른 여자와 그런 짓을 한 걸 용납할 수는 없다. 비록 그게 강제로 한 것일지라도.그동안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모태진 눈 밑에 진한 다크서클이 생겼다.“수호 씨, 민우 씨한테서 들었는데 김진호 일당이 어제 또 시비 걸어왔다면서요?”어제 싸워서 이긴 것 때문에 어깨뽕이 올라간 민우는 오늘 출근하자마자 동료들한테 허풍을 떨어댔다. 우리 둘이 4, 50 명을 이겼다고. 그 말에 동료들은 모두 어안이 벙벙해했다.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모태진은 이내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이번 일은 내 책임이 커요.”나는 얼른 모태진을 째려봤다.“이게 왜 선배 책임이에요?”“내가 한은솔과 엮이지 않았다면 안명훈도 우리를 찾아오지 않았을 거고 나중의 일이 없었을 거잖아요.”“누구 좋으라고 책임을 혼자 떠안아요? 선배가 한은솔과 그런 일이 없었어도 김진호는 우리를 찾아와 시비를 걸 거예요.”나는 모태진을 질책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의 부담을 덜어주고 싶었다.그때 모태진이 칼을 들고 안명훈한테 달려들던 모습
“잘 생각해 봐요.”나는 더 이상 말을 아꼈다. 여기서 더 말하면 진짜 쓸데없는 참견하는 거니까.모태진도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수호 씨 말은 잘 생각해 볼게요.”나는 모태진의 어깨를 툭툭 치고 일 보러 갔다.얼마 뒤, 화인당 매니저 오교준이 나를 찾아왔다.“수호 씨, 우리 가게 약재가 모자라서 얼른 재고 보충해야 해요.”이 일은 사장님이 진작 나한테 일러둔 적이 있다. 그러면서 나에게 상세한 과정과 공급업체 연락처를 주었다.그런 걸 보면 사장님은 정말 가게 전체를 나한테 맡긴 셈이다.한의관 잘 돌아가는지는 물론 운영을 잘하는 것과 상관있지만 그보다도 한약재의 품질이 더 중요하다.화인당은 줄곧 자신만의 루트가 따로 있는데, 화인당에 약재를 공급하는 건 G시에 있는 한 약재상이다.그 사장님 이름은 서윤기인데 정 사장님과 10년 넘게 거래해 왔다.정 사장님은 서윤기 사장의 연락처를 나한테 주며 나더러 직접 연락해 보라고 했다. 나는 얼른 고개를 끄덕이고는 사장님 사무실에 가 서윤기한테 전화했다.화인당 직원들이 모두 한마음 한뜻이라지만 그래도 사람은 늘 경계해야 한다. 얼마 뒤, 서윤기가 전화를 받았다.“정 사장한테서 들었어요. 늘 만나던 곳에서 만나서 얘기하죠.”“만나던 곳이 어디죠? 그건 사장님이 말씀 안 해 주셨거든요.”사장님이 나한테 말해주지 않는 게 아니라, 사실은 서윤기가 매번 약속 장소를 다른 곳으로 잡았다. 게다가 항상 두 사람이 직접 연락했었고.서윤기는 너털웃음을 터뜨렸다.“순덕 찻집이라고 알아요?”“네.”“오후 두 시. 순덕 찻집에서 만나요.”서윤기는 말이 많지 않았다. 그저 약속 장소를 정하고 전화를 끊었다.하지만 나는 그냥 약재 공급업체일 뿐인데 비밀스럽게 구는 상대가 의아했다.강북에 한약당이 그렇게나 많은데, 대부분은 공급업체에서 물건을 직접 배달하곤 한다.하지만 나는 정 사장님이 매번 이렇게 거래하는 게 그분만의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점심 식사를 마친 뒤, 나는 가게 일을 배정하고 혼자 약속
그 말에 나는 더 멍해졌다.나는 정 대표님을 대신해 G시 약재상을 만나러 온 거다. 게다가 서윤기 말로는 이곳에 올 사람은 우리 둘뿐이라고 했다.서윤기는 G시 약재상이 맞고, 나도 정 대표님을 대신해 나온 게 맞는데 왜 상대가 나를 대단한 사람으로 착각하고 있는지 의문이었다. ‘아니면 이 속에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나?’순간 일이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복잡해진 느낌이었다.내가 한창 고민하고 있을 때 진용진이 또 입을 열었다.“당신이 그 대표 맞지? 그쪽일 줄 몰랐네. 오늘 우리가 여기 온 목적이 모두 돈 벌기 위해서니 예전 일은 없던 셈 치고 나랑 협업하는 거 어때?”“어떻게 협업할 건데?”“간단해. 강북 약재 시장을 나한테 조금 넘겨줘. 내가 더 싼 약재를 공급할 게. 그러면 그 마진이 남을 거 아니야.”진용진은 자기 목적을 말했다.그걸 듣자마자 나는 눈이 휘둥그레졌다.그러니까 진용진은 나더러 품질이 떨어지는 약재로 대충 수량만 채우라는 뜻이었다.나는 깊은숨을 들이쉬고 감정을 추슬렀다. 물론 이 일이 어떻게 된 건지는 알 수 없었으나, 누군가 약재 시장을 노려 검은 돈을 벌려 한다는 건 알 수 있었다.나는 싸늘한 표정으로 진용진을 바라봤다.“꿈 깨. 난 당신과 손 안 잡아.”진용진은 조급해하지도 않고 여전히 웃는 얼굴로 말했다.“그렇게 쉽게 거절하지 말고. 내가 계산해줄 테니 잘 들어 봐.”진용진은 말하면서 펜과 공책을 꺼냈지만 나한테 제지당했다.“내가 말했지. 당신과 협업할 일은 없으니까 꺼지라고!”내가 싸늘한 태도로 거절하자 진용진도 이내 표정이 싹 바뀌었다.“돈 거저 준다는데 어디서 호의를 무시해?”“이거 불법이야. 한마디만 더 하면 경찰에 신고할 거야.”나는 상대의 협박에 넘어가지 않고 여전히 쌀쌀맞게 말했다.진용진은 그런 나를 한참 노려보다가 결국 헛웃음을 치더니 바닥에 떨어진 물건을 주워 떠나갔다.하지만 내 마음은 여전히 복잡하기만 했다.여기 오기 전에 사장님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없었다. 이게 나에
하지만 형수는 너무 오랫동안 침대에만 누워 있어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에 반해 양춘옥은 힘이 넘쳐나 손쉽게 형수를 제압했다.형수는 순간 폭발해 버렸다.“당, 당신 뭐 하는 거야?”양춘옥은 얼른 아들에게 말했다.“아들, 뭐 해? 얼른 밧줄을 찾아오지 않고. 이 여자 윗몸만 움직일 수 있고 아래는 못 움직여. 너한테 마침 좋은 기회잖아.”양춘옥의 아들은 얼른 벨트를 풀더니 형수의 손을 묶으려고 다가갔다.그 순간 나는 방으로 쳐들어가 그 남자를 발로 걷어찼다.양춘옥은 그 순간까지 현실을 파악하지 못했다. 그때 나는 양춘옥의 머리채를 잡고 그녀의 뺨을 내리쳤다.나는 양춤옥이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 뺨을 후려갈겼다.형수는 위험한 순간에 나타난 나를 보자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나 역시 형수가 깨어난 걸 보니 흥분을 주체할 수 없었다.“형수!”“수호 씨, 타이밍 너무 좋았어요. 이 둘은 인간도 아니에요! 감히...”형수는 흐느끼며 말을 잇지 못했다.나는 얼른 형수의 두 손을 꼭 잡았다.“알아요. 다 알아요. 형수, 걱정하지 마요. 이 사람들이 한 짓 내가 모두 찍었어요. 지금 경찰에 신고할게요.”양춘옥은 경찰에 신고한다는 내 말에 얼굴이 창백해지더니 마구 달려들어 내 손에 있는 핸드폰을 빼앗으려고 했다.나는 또다시 양춘옥의 뺨을 내리쳤다.그러자 이번에는 양춘옥의 아들이 나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모자 둘이 달려들어도 내 상대는 아니었다.양춘옥은 더 이상 방법이 없자 그제야 무릎 꿇고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다.“정 사장님, 제발 신고하지 말아 주세요. 제 아들이 이제 막 출소했는데 또 잡히면 이번에는 끝장이에요.”나는 이를 악물며 양춘옥을 바라봤다.“당신 아들 생각하기 전에 우리 형수는 생각했어? 내가 마침 집에 오지 않았다면 당신과 당신 아들이 형수한테 끔찍한 짓을 저질렀을 거잖아.”“내가 아줌마를 얼마나 믿었는데, 이렇게 보답하는 거야? 정말 악독하기도 하지. 오늘 당신도 법의 처벌을 받게 될 거야.”“안 돼요. 정 사장
“뭐요? 너무 까다로운 거 아니에요?”“까다로운 게 아니라 원래부터 얌전하지 않은 여자인 것 같아. 남편과 잘 지내지 않고 별 같잖은 남자랑 바람이 났어. 정수호라는 사람인데, 매일 이 여자 몸을 닦아주러 와서 이 여자를 형수라고 불러...”“너무 막 나가는 거 아니에요? 이런 일이 다 있다니. 이 여자도 참 뻔뻔하네요.”아들의 말에 양춘옥이 말했다.“그러니까 내가 널 불러온 거잖아. 이 여자도 워낙 얌전하지 않은 여자니까 너도 욕구나 풀어보라고. 아들, 너 이제 막 감방에서 나와 많이 쌓였을 거 아니야?”“밖에서 아가씨 찾기보다 이 여자한테 욕구를 푸는 게 더 나아. 적어도 이 여자는 깨끗하잖아.”고태연은 두 모자의 대화를 들으면 들을수록 화가 치밀어 당장이라도 일어나 양춘옥의 뺨을 후려갈기고 싶었다.하지만 결국 그녀가 가장 걱정하던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그것도 그녀가 혼자 집에 있을 때 말이다.이런 상황에서 당하면 다른 사람은 아무도 모를 거다.고태연은 너무 무섭고 두려웠다. 심지어 이 두 모자에게 이토록 모욕당할 바에는 죽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리고 그 시각 양춘옥과 아들의 대화를 들은 나도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하지만 나는 서둘러 안으로 쳐들어가지 않았다.나는 우선 거실에 설치했던 감시 카메라를 찾았다. 그랬더니 카메라는 어느새 구석으로 옮겨졌다.‘이 아줌마가! 나는 그래도 믿고 매일 카메라를 돌려보지 않았는데, 이런 짓을 하다니.’나는 핸드폰 녹화 기능을 켜고 방 안을 몰래 촬영했다.탐정 사무소에서 일을 하게 된 이후로 나는 뭐든 증거싸움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때 남자가 형수 몸에 바짝 붙어 다리에 코를 가져다 대며 냄새를 맡았다.“냄새 좋다. 식물인간한테서 이렇게 좋은 냄새가 나다니. 피부도 이렇게 좋고. 대박, 몸매도 완전 끝내주잖아.”양춘옥은 옆에서 키득거렸다.“당연하지. 그리고 무엇보다 이 여자는 깨끗해. 아들, 얼른 하지 않고 뭐 해?”“헤헤. 그럼 엄마는 밖에서 망 좀 봐...”양춘옥은
“나 그만 놀려요. 내가 보고 싶은데 왜 애교 누나 집에 와서 혼자 술을 마셔요?”나는 아직 어려 정치계 판을 잘 모른다지만 그렇다고 바보는 아니다.남주 누나는 내 말에 피식 웃었다.“우리 푸들 많이 똑똑해졌네? 예전처럼 타격감이 좋지 않아. 하지만 점점 더 귀여워.”나는 자꾸만 내 몸을 타고 올라오는 남주 누나의 손을 덥석 잡았다.“말해요. 대체 무슨 일이에요? 일에 무슨 문제 생겼어요?”“응. 이 세상에서 날 괴롭힐 수 있는 건 일밖에 없어.”“왜죠? 왜 혼인이나 가정 문제는 될 수 없어요?”“헛소리 아니야? 혼인과 가정이 나보다 중요할 리 없잖아.”‘맞다. 누나도 가정보다 자기 지위가 우선인 여자였지. 백연우처럼.’“그래서 일은 해결됐어요?”나는 그 말을 내뱉은 순간 후회했다. 해결되었으면 술로 기분을 달랠 리 없을 테니까.하지만 남주 누나는 의외의 답을 내놓았다.“해결된 셈이지. 하지만 강등됐어.”“얼마나요?”“아무 실권도 없는 말단직으로. 그래도 괜찮아. 이제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내 약점을 잡고 나 협박하는 사람 없을 테니까.”남주 누나는 강등된 건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말했다. 그건 아마도 자기 위로일 수 있었다.“이 얘기는 여기까지 하고 시간도 아까운데 계속 즐겨볼까?”남주 누나는 또다시 나에게 다가왔다. 심지어 리듬 있는 음악을 틀어 놓아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며 나에게 또 충격을 안겨주었다.나와 남주 누나는 그사이 애교 누나가 집에 다녀갔다는 사실을 몰랐다.애교 누나는 내가 걱정되어 직접 와 봤다. 하지만 방에서 들리는 나와 남주 누나의 소리에 얼굴을 붉히며 물러났다.“남주였네. 다른데 좀 가지. 왜 우리 집에서 수호 씨를 꼬시는 거야?”애교 누나는 입을 삐죽거렸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뒤돌아섰다.나와 남주 누나는 한밤중까지 몸을 섞고 피곤한 몸을 한 채 잠이 들었다.오랜만에 푸는 욕구에 우리 둘 다 너무 흥분해 버린 탓이었다.심지어 남주 누나는 열정적이다 못해 심지어 내가 지금 동영상 촬영 현
남주 누나는 헤실 웃으며 말했다.“정수호네. 이리 와, 와서 한잔해.”나는 남주 주나 쪽으로 걸어갔다. 가까이 가봤더니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와인 두 병 중 한 병은 이미 텅 비어 있었고, 남주 누나도 이미 술에 취했는지 얼굴이 발그스름했다.“누나, 혼자 이렇게 마신 거예요?”남주 누나는 똑바로 앉아 내 팔을 감싸안았다.“너 아니면 애교를 불러 곁에 있어 달라고 부탁하려고 했는데 요즘 바쁘다고 해서 안 불렀어. 그런데 마침 이렇게 와 버렸네? 나랑 한잔해.”나는 지난번 남주 누나를 봤던 때를 떠올렸다. 그때 누나도 기분이 안 좋아 보였는데 아마도 일 때문인 것 같았다.그런데 이번에 이토록 취해 있는 걸 보니 일이 잘 안 풀리는 모양이었다.나는 남주 누나 손에 있는 와인을 빼앗았다.“그만 마셔요. 취했어요. 부축해 줄 테니 방에서 휴식해요.”“정수호, 예전에 너한테 장난치던 때가 그리워. 도 장난칠 테니까 내 장난 받아줘. 응? 나도 기분 좀 좋아지게.”남주 누나는 몽롱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그게 대체 뭐가 그립다는 건지.’나는 그때 너무 단순해 항상 남주 누나한테 농락당했다. 심지어 몇 번이나 나를 유혹하는 남주 누나를 눈앞에 두고 입맛만 다시며 마음을 졸였었다. 하지만 나는 그때가 조금도 그립지 않았다. 나는 하고 싶을 때면 마음대로 하는 지금이 더 좋다.“내가 네 소원 들어줄게.”남주 누나는 내 목을 끌어안고 취한 말투로 말했다.누나의 완벽한 몸매를 보니 나도 솔직히 몸이 달아올랐다. 하지만 남주 누나는 지금 많이 취한 상태고, 기분도 안 좋아 보이니 몸을 섞는다고 즐겁지는 않을 거다.“됐어요. 누나 지금 취했어요. 부축해 줄 테니 방에서 자요.”“나 많이 안 마셨어. 그냥 조금 알딸딸한 정도야. 나도 내가 무슨 짓을 하는지 알아.”“있잖아. 나 요즘 너무 바빠서 남자 만날 시간도 없었어. 그러니 오늘 너 땡잡은 거야.”남주 누나는 말하면서 나를 자기 쪽으로 잡아당겼다.나는 술에 취한
“정 사장님, 물 바꿔드릴까요?”내가 형수의 팔을 닦아주는 동안 양춘옥이 방에 들어와 열정적으로 물었다.그 모습에 나는 간단히 말했다.“아니에요. 거의 다 닦아요.”나는 형수가 뭘 걱정하는지 몰랐다. 무엇보다 양춘옥이 문제 있다는 걸 알지 못했다.그때 양춘옥이 목적성이 다분한 질문을 했다.“정 사장님, 요즘 안 보이시던데 바쁘셨나요?”“네. 요즘 일이 바빠서 매일 오지 못해요. 그러니 이모님이 우리 형수님 잘 돌봐주세요. 참, 요즘도 제가 바쁘니 부탁드릴게요.”양춘옥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며 싱긋 웃었다.“정 사장님은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무조건 잘 돌봐드릴게요.”“형수, 다 닦았어요. 형수가 깨끗한 걸 좋아하는 거 알고 특별히 피부 관리하는 스킨로션도 발라줬어요.”나는 형수를 돌본 뒤 옆에서 대화를 나누다가 고아연이 돌아온 뒤에야 떠났다.고아연은 나를 집 앞까지 마중하며 물었다.“요즘 바빠?”“네, 왜 그래요?”“아니, 별 건 아니고. 지난번에 찍는다던 영상을 안 찍었길래 바쁜가 해서.”“요즘 너무 바빠서 정신이 없었어요.”이건 단순한 오락이라 돈을 버는 것에 비하면 당연히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다.“그래. 그럼 앞으로 안 찾을게. 내 연락처 삭제해.”고아연은 갑자기 말투가 날카로워졌다.그 말에 나는 순간 멍해졌다.“여자들은 다 이래요? 심심하면 연락처 삭제하고? 이런 거 엄청 예의 없는 거 알아요?”고아연은 팔짱을 낀 채 웃었다.“우리는 원래부터 아는 사이도 아니었어. 그런데 지금 바빠서 영상 찍을 시간도 없다는데 내가 네 연락처를 왜 남겨? 난 원래 이래. 연락 자주 하지 않는 사람은 삭제해. 수호 씨도 마찬가지야.”나는 일부러 고아연에게 맞섰다.“그럼 형수가 지금 이러니까 형수도 삭제했겠네요?”“그래.”“흥. 누가 믿을 줄 알고.”“믿든 말든.”고아연의 모습은 거짓 같지 않았다.나는 이 순간 고아연을 또다시 봤다.“바쁜 일 다 처리하면 도와줄게요. 연락처 삭제하지 마요. 앞으로 또다시 추가하
애교 누나 얘기를 언급하니 내 기분은 저절로 다운되었다.“난 누구랑 결혼할지도 모르겠어.”“왜? 애교 누나랑 사이가 틀어졌어?”민우가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그런 건 아니야. 그냥 애교 누나랑 나는 결혼할 사이가 같지 않아. 애교 누나가 나한테 너무 관대하고 너무 풀어줘. 그래서 너무 진실감이 없어.”“헐. 여자 친구가 풀어주는 게 얼마나 좋은데? 네가 밖에서 다른 여자 만나도 뭐라 안 하고 오히려 응원해 준다며? 그렇게 좋은 여자 손전등 켜고 찾아도 없어.”현성과 민우는 나를 부러워했다.사실 나도 예전에는 똑같은 마음이었지만 지금은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다.애교 누나는 너무 좋고 너무 관대하여 질투도 하지 않아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심지어 가끔 이 모든 게 허상이라는 생각도 들곤 한다.그에 반해 윤지은은 또 나에게 너무 현실을 체감하게 해준다. 좋아할 때도 질투할 때도 있어 오히려 더 커플 같은 느낌이 들곤 한다.“정수호, 너 진짜 쓰레기네. 너 설마 애교 누나 버리려고 그래?”현성이 갑자기 물었다.“헛소리. 내가 언제 버린다고 했어?”“그럼 아까 발언 무슨 뜻인데?”“난 그냥 애교 누나가 너무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뜻이지 버리겠다는 뜻 아니야. 함부로 누명 씌우지 마.”나는 바로 현성을 반박했다.하지만 그때 민우가 바로 끼어들었다.“사실 나도 네가 좀 쓰레기 같아. 아마 네가 만난 누나들이 다 너 같은 나쁜 남자를 좋아하나 보다.”“젠장. 내가 너희들한테서 무슨 좋은 말을 듣겠냐?”그날 저녁 퇴근 후 나는 형수네 집에 들렀다.그동안 너무 바빠 형수를 보러 오지도 못하고 몸을 닦아주지도 못했기에, 나는 얼른 따뜻한 물을 담아 형수 몸 곳곳을 닦아주었다.형수는 이렇게 오랫동안 누워만 있었지만 뺌은 여전히 발그스름하고 피부도 백옥 같은 피부에 핑크빛이 감돌았다.아마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그저 잠자고 있다고 생각할 거다.내가 형수의 몸을 닦아주는 동안 형수의 가슴은 사실 콩닥콩닥 북을 쳤다.‘수호 씨가 이제야 날
“이 얘기는 이쯤에서 하고. 말해요, 서나연 씨 일 외에 다른 볼 용건 있어요?”나는 화제를 다시 끌어왔다.그러자 소여정은 내 턱을 잡으며 생글생글 웃었다.“있지 그럼. 너 놀리러 왔어. 내가 너 놀리는 거 오랜만이잖아.”“미쳤어요?”나는 다급히 소여정의 손을 쳐냈다.“날 미친X 취급해? 내가 진짜 너 가만 안 둔다?”“못 믿겠어요. 나 이제 임천호도 안 두려운데 소여정 씨를 두려워하겠어요?”나는 소여정에게 계속 휘둘리고 싶지 않았다.소여정은 대단하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오호라. 며칠 새에 많이 컸네? 그런데 그런 모습 점점 더 좋아지는데?”소여정은 정말 역신이라도 되는 것처럼 매번 나타났다 하면 나에게 귀찮은 일을 던져주곤 한다.물론 내가 이제 임천호를 두려워하지 않는다지만 그렇다고 귀찮은 일에 휘말리고 싶지는 않았다.나는 그저 장사를 잘해서 돈을 많이 벌고 싶다.내가 소여정을 무시하자 소여정도 나를 보는 체도 하지 않고 스스로 가게 안을 둘러봤다. 그러다가 결국 몇 가지 선물 세트를 골랐다.소여정이 계산하려고 할 때 나는 다시 그녀에게 다가갔다.“선물 세트 사서 누구한테 주려고요?”“이젠 임천호 안 두렵다며? 내가 누구한테 주든 무슨 상관이야? 아니면 내가 이 선물을 가져갔다가 이 가게에서 샀다는 걸 들킬까 봐 그러는 거야?”소여정은 마치 내 배에서 나오기라도 한 것처럼 나를 빠삭하게 알았다.“찾아오겠으면 찾아오라고 해요. 소여정 씨는 정상적인 소비예요.”나는 말발로 소여정을 이길 수 없다는 생각에 바로 뒤돌아 떠나갔다. 하지만 마음은 여전히 후들거렸다.소여정은 물건을 구매한 뒤 가게에서 택배로 보낼 수 있는지 물었다. 그 질문에 점원 한 명이 가능하다고 대답했다.소여정은 주소 하나를 남기고 직원더러 선물 세트를 주소에 적인대로 보내달라고 당부했다.소여정이 떠난 뒤 나는 그 위에 적힌 주소를 확인했다. 주소는 H시로 되어 있고, 받는 이는 ‘소원규’로 되어 있었다.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 이름에 한참을 떠
“누구한테 들었어?”“그건 상관하지 마요. 맞는지 아닌지만 대답해요.”나는 얼렁뚱땅 넘기려고 했다.다행히 소여정은 내 질문을 회피하지 않고 바로 인정했다.“맞아. 나도 예전에 윤지은과 임유미처럼 잘 사는 집 딸이었어. 안 그러면 우리 넷이 왜 친구가 됐겠어?”하긴. 소여정은 나를 바라보더니 갑자기 물었다.“뭐 하나만 물을게. 소씨 가문 사람들이 강북에 있지?”“그걸 어떻게 알아요?”나는 흠칫 놀랐다.그 말에 소여정이 대답했다.“어떻게 알았는지는 알려고 하지 마. 맞는지 아닌지만 말해.”소여정이 이렇게 묻는다는 건 이미 단서를 찾았다는 뜻이기에 나는 사실대로 대답했다.“맞아요. 임천호 아내가 강북에 와서 요즘 유미 사모님과 같은 동네인 백조의 호수에 살아요.”“백조의 호스? 보아하니 나도 그곳에 집을 마련해야겠네.”소여정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그 말에 내 눈은 휘둥그레졌다.“지금 제정신이에요? 소씨 가문 사람들이 그곳에 있는데 멀리 숨지는 못할망정, 같은 동네에 살겠다고요? 대체 무슨 생각인 거예요? 설마 서나연 씨를 쫓아내고 본인이 임천호 아내가 되려고 그래요?”소여정은 생글생글 웃으며 물었다.“안돼? 임천호가 얼마나 대단해. 나한테도 잘해주고.”“대단하긴 무슨. 부시장님과 윤 회장님 앞에서 아무것도 아니더만.”나는 내가 임천호 뒷담화를 하는 날이 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소여정은 나를 다시 봤다는 눈빛으로 바라봤다.“정수호, 대단하네. 임천호를 그렇게 말하고. 임천호가 안 뒤 죽이려고 할까 봐 두렵지 않아?”“내가 임천호 산하의 대출 회사도 무너뜨렸는데, 임천호를 무서워하는 거로 보여요?”나도 비록 내가 너무 잘난체 한다는 걸 알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정말 참을 수가 없다.이 세상에 허영심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게다가 이건 내가 평생 자랑스럽게 말하고 다닐 일이기도 하다.소여정은 입을 가리며 웃었다.“아주 어깨뽕이 하늘로 치솟는구먼? 그 대출 회사 임천호한테 엄청 중요한 회사인 건
“오, 오빠가 뭘 하려는지 알아요. 만약 하고 싶으면 날 오빠한테 줄 수 있어요.”주선영은 입술을 살짝 깨물며 옷자락을 잡고 긴장한 표정으로 고백했다.이건 현성에 대한 인정이었다. 현성은 너무 설레어 심장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그는 두말없이 주현영을 와락 끌어안았다.그러자 주현영이 이내 긴장한 목소리로 말했다.“여, 여기서는 안 돼요. 우리... 호텔 가요.”“그래, 바로 가자.”나는 현성과 주현영이 손잡고 뛰쳐나오는 걸 본 순간, 현성이 오늘 소원을 이룰 거라는 걸 알았다.나는 싱긋 웃으며 현성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파이팅.”“당연하지.”현성은 헤헤 웃으며 말했다.이윽고 두 사람은 손을 잡고 기쁜 얼굴로 떠나갔다.나는 얼른 이 기쁜 소식을 민우에게 알려주려고 전화했다.[수호야. 왜 그래? 나 지금 바빠.]민우는 목소리를 한껏 낮추고 말했다.그 목소리에 나는 의아했다.“너 지금 뭐 해? 가게 보는 거 아니었어?”[설아가 점심에 나 찾아와서 지금 설아랑 호텔에 있어.]“헐, 너 뭐야? 임설아랑 결실을 보는 거야?”‘왜 친구들한테 버림당해 혼자가 되었다는 느낌이 들지?’민우는 헤실 웃었다.[이만 끊어. 설아가 샤워하러 갔다가 지금 나와. 우리 오늘 마지막까지 갈 거거든.]민우는 말을 마치자마자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이 상황에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대충 음식을 먹고 가게로 돌아가는 것뿐이었다.하지만 혼자 사무실에 앉아 있을수록 기분이 안 좋았다.예전에는 내가 민우와 현성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었는데, 현재는 내가 두 사람을 부러워하는 꼴이 되었으니.하지만 윤지은과 애교 누나한테는 연락할 엄두도 나지 않고 형수는 아직 혼미해 있으니 누구를 찾아야 할지 고민이었다.나는 주위에 여자가 끊이지 않다고 이렇게 외로이 혼자 남는 날이 오게 될 줄은 몰랐다.‘정수호 몰락했네. 몰락했어!’내가 속으로 감개무량해하고 있을 때 아래층에서 직원 한 명이 나를 불렀다.“정 사장님, 누가 찾아왔어요.”“알았어요. 내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