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우는 모태진을 데리고 가게로 돌아가려 했지만, 모태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민우를 밀쳐내고는 도망쳤다.민우는 모태진을 쫓아가려 했으나 결국 따라잡지 못해 다시 터덜터덜 가게로 돌아왔다. 그러고는 나를 잡아끌더니 모태진이 겪은 일을 설명해 줬다.그걸 듣는 내내 나는 마음이 무겁고 화가 치밀었다.평소 그렇게 성실하던 사람인데, 그런 모욕을 당하고 자존심이 짓밟혔으니 분명 괴로울 거다.나는 얼른 모태진에게 전화했다. 하지만 상대는 계속 전화를 받지 않았다.그 순간 모태진한테 무슨 일이라도 났을 거라는 불안한 예감에 나는 마음이 더 착잡했다.“젠장.”나는 저도 모르게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무엇보다 머리가 너무 복잡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내가 흔들려서는 안 된다. 사장님이 나한테 화인당을 맡겼는데, 나는 반드시 정신을 곤두세우고 안민혁과 주해진이 또 소란 피우는 걸 막아야 했다.“지금부터 우리 둘이 가게를 계속 지키자. 만약 놈들이 또 와서 소란 피우면 그땐 나도 목숨 걸고 싸울 거야!”나는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나는 워낙 겁이 많은 사람이라, 무슨 일이 있으면 절대 일을 크게 만들려 하지 않는다.하지만 이번에 놈들이 모태진을 그렇게 모욕한 건 정 사장님을 모욕하고, 화인당을 모욕한 거나 다름없다.때문에 목숨을 걸고서라도 필사적으로 싸울 거다.그때 민우가 귀띔해 줬다.“아니면 먼저 소여정 씨한테 전화하는 건 어때? 소여정 씨가 나서 주면 더 가망 있잖아.사실 나도 그럴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소여정에게 직접적으로 연락하지 않았다. 만약 내가 무슨 일이든 소여정한테 부탁하면 정태곤이 나를 의심할 거다. 게다가 계속 남한테 의지하면 영원히 성장할 수 없다.때문에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아직은 아니야. 정말 어쩔 수 없는 상황이면 그때 얘기하자.”민우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그럼 나도 너랑 같이 지키고 있을게. 누가 또 소란 피우러 찾아오면 그땐 얼굴을 박살 낼 거야.”우리는 오후 내내 가게에서 지키
사실 처음에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다. 심지어 한은솔이 나이 든 오연화보다 낫다고 여겼다.하지만 많은 일을 겪고 난 뒤에야 사람은 겉모습만 보면 안 된다는 걸 알았다.한은솔은 젊고 예쁘지만 목적이 너무 분명하고, 일이 터지면 자기밖에 모른다.그에 반해 모태진과 함께 고난을 겪은 조강지처는 바로 눈앞의 오연화다.게다가 모태진이 왜 한은솔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끝끝내 아내를 배신하는 일을 하지 않았는지 알 것 같았다.그러다 시간이 흘러 어느덧 문 닫을 시간이 되었지만 모태진은 여전히 아무 소식이 없었다.“형수님, 우선 돌아가세요. 집에 아이도 있잖아요. 태진 선배한테서 연락이 오면 바로 연락드릴게요.”오연화는 끝까지 돌아가지 않으려 했지만, 결국 방법이 없어 모태진의 연락을 받으면 꼭 연락 달라고 신신당부하고 떠나갔다.가게 직원들도 하나둘 떠나갔지만 나와 민우만은 가게에 남아 있었다.그때 민우가 물었다.“오늘 밤 안 돌아갈 생가이야?”“모르겠어. 우리가 떠난 뒤 그 자식들이 와서 소란 피울까 봐 걱정돼.”평소 담배를 별로 입에 대지 않던 나는 결국 스트레스를 참지 못하고 민우에게 담배 한 대를 요구했다.그러자 민우가 내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너무 스트레스받지 마. 요즘이 어떤 시대인데, 길목마다 CCTV가 있는데, 그 자식들이 설마 함부로 하겠어? 얼른 돌아가 휴식해. 그 자식들이 할 짓이라고는 기껏해야 가게 이름에 먹칠하는 것뿐일 텐데, 뒤에서 허튼 짓 하지 못할 거야.”나는 서둘러 대답하지 않고 묵묵히 담배를 태웠다.그러다 담배 한 대를 거의 대 피웠을 때 천천히 입을 열었다.“됐어. 너 먼저 돌아가. 난 여기서 지키고 있을게.”물론 놈들이 지금 와서 소란 피울 가능성은 작았지만, 그래도 조심해서 나쁠 건 없었다.무엇보다 사장님 내외가 화인당을 나한테 부탁했는데, 무조건 잘 관리해야 한다.그때 민우가 말했다.“내가 돌아가긴 어딜 돌아가? 너도 안 돌아가는데, 내가 가서 뭐 해? 나도 같이 남을게. 위층에서 이부자리 가
[열나기 시작하더니 계속 고열이 내리지 않고 있어요. 의사 선생님 말로는 감염이래요. 상황이 꽤 심각해요. 그래서 B시 병원으로 옮기려고요.]나는 문자를 받자마자 벌떡 일어나 앉았다.‘그 정도로 심각하다고?’‘그날 병원에 다녀갔을 때 안색이 많이 좋아져서 괜찮은 줄 알았는데.’나는 마음이 너무 무거웠다. 갑자기 커다란 돌멩이가 내 가슴께를 내리누르는 것 같았다.이 상황에 뭐라 말해야 할지 몰라, 나는 결국 위로의 말을 남겼다.[사장님은 좋은 분이니 분명 별일 없을 거예요. 제가 대신 기도할게요.][고마워요.]우리는 더 이상 문자를 주고받지 않았다. 하지만 사모님한테서 받은 문자를 보면 볼수록 마음이 점점 무거웠다.정 사장님처럼 좋은 분이 간암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게다가 상황이 점점 악화하고 있다니?간암 말기가 되면 환자는 극심한 고통을 겪는다.예전에 시골에 있을 때, 마을 어르신 중에 간암을 앓고 있는 분이 계셨는데, 말기가 되니 매일 아파서 소리 질렀던 기억이 난다. 분명 우리 두 집 사이에 몇 집이 더 있었는데, 그 멀리에서도 소리가 들릴 지경이었다.난 사장님도 그런 고통을 겪는 게 싫었다.나는 얼른 위층으로 올라가 의서를 뒤졌다. 간암이 퍼지는 속도를 늦추거나 고통을 줄이는 방법이 적힌 고적이라도 있나 하고.그러다 저도 모르게 눈시울이 젖어 들었다.나는 사장님한테 무슨 일이 생기는 걸 원하지 않는다. 나는 자는 것도 잊고 의서를 계속 뒤적였다. 그러다 몇 시간이 흘렀을까? 끝내 피곤을 참지 못하고 책상 위에 엎드린 채 잠이 들어버렸다.다음 날 아침, 나는 민우의 소리에 깨어났다.민우는 나를 깨우더니 왜 위층에 왔냐고 물었다.“어제 사모님한테서 들었는데 사장님 상태가 악화되어 B시 병원으로 옮긴대. 의서에 무슨 방법이라도 적혀 있나 해서 도움이라도 되려고 찾았어.”민우는 나를 이해한다는 듯 한숨을 푹 쉬었다.“이건 다 사장님이 모아둔 책들인데, 무슨 방법이라도 있으면 사장님이 진작 발견하
[하하, 그래서 수호 씨한테 부탁한 거잖아요. 설마 거절할 건 아니죠?]“누가 대신 돌봐준대요? 난 아직 결혼도 안 했는데, 이렇게 자기 가족 떠넘기면 나더러 앞으로 어떻게 결혼하라고요?”나는 감정이 북받쳐 전화에 대고 미친 듯이 소리쳤다.대화를 하다 보니 모태진이 대충 뭘 할지 짐작이 갔기에, 나는 절대 그가 무모한 짓을 하게 놔둘 수 없었다. 만약 이걸 막지 못하면 정말 모든 게 끝나니까.[하, 내가 지은 죗값은 내가 치러야죠. 나 때문에 화인당까지 안 좋은 일에 엮이면 난 진짜 죄인이 돼요. 됐어요. 이만 끊을게요. 나 이제 볼일 보러 가야해요.]“전화 끊지 마요. 끊지 마요...”전화 건너편에서 긴 침묵이 흐르더니 끝내 전화가 끊어졌다.나는 속이 타들어 가 다급히 전화를 해보았지만, 모태진은 어느새 핸드폰을 꺼두었다.‘어디 가서 찾지?’한참 고민하던 내 머릿속에 문득 한 사람이 떠올랐다.나는 얼른 주선영에게 전화해 한은솔 번호를 물어 그녀에게 전화했다.“한은솔, 안명훈 지금 어디 있어?”한은솔은 내 목소리를 듣자마자 전화를 끊어버렸다. 심지어 내가 다시 여러 번 걸어도 끝까지 받지 않았다.결국 나는 화가 나서 문자를 보냈다.[태진 선배가 안명훈 찾아가서 복수할지도 몰라. 만약 태진 선배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넌 가해자가 되는 거야. 선배 아내분한테 문자 보낸 거 너지? 그렇다는 건 적어도 양심은 있다는 뜻이잖아? 너도 태진 선배한테 무슨 일 있길 바라는 건 아니지?]그 시각, 한 술집 안 구석에 앉아 있던 한은솔은 내 문자를 받자마자 눈시울이 촉촉이 젖어 들었다.오연화에게 문자를 보낸 사람은 한은솔이 맞다. 그녀는 모태진을 구하지는 못해도 그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걸 원하지는 않는다.사실 한은솔도 안명훈을 죽도록 미워하고 있다. 그리고 그만큼 무서워하기도 한다.안명훈한테 한은솔은 그저 마음껏 다룰 수 있는 노리개나 다름없다. 지금도 안명훈은 양옆에 아가씨를 끼고 앉아 시시덕거리며 즐기고 있는데, 한은솔은 그의 뒤치다꺼
안명훈은 가까스로 칼을 피했지만, 피하는 도중에 칼날이 그의 어깨를 베었다.순간 안명훈의 입에서 비명이 흘러나오더니 현장은 아수라장이 되었다.안명훈은 제 상처를 부여잡고 버럭 소리쳤다.“예들아. 당장 와서 저 자식 족쳐!”모태진은 단칼에 안명훈을 해결하려 했지만, 그가 피해버리자 순간 당황했다. 심지어 전투 경험도 없는지라 손에 들고 있던 칼도 어디 갔는지 없어졌다.그러다가 술집 안 사람들이 저를 향해 달려오자 그대로 도망쳤다.그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한은솔은 마음이 타들어 갈 것 같아 얼른 울면서 나한테 전화했다.“모 선생님 지금 레드 오션에 있어. 방금 안명훈을 칼로 찌르려 하다가 실패해서 지금 도망 중이야. 안명훈이 모 선생님을 죽이려 하고 있어.”모태진의 위치를 들은 나는 곧장 한의관에서 뛰쳐나왔다.그때 마침 민우가 아침을 사 들고 돌아오는 게 눈에 띄어, 나는 얼른 그를 끌고 차로 올라탔다.“태진 선배가 레드 오션에서 그 자식을 찌르려 했대. 우리가 가서 도아야 해.”“헐. 이게 무슨 상황이래?”민우는 어리둥절해 벙찐 얼굴을 하고 있었다.내가 가면서 대충 상황을 설명해 주자, 민우는 그제야 놀란 듯 입을 쩍 벌렸다.“평소에 그렇게 점잖던 사람이 그런 일을 저지르다니, 놀랍네. 이따가 싸우려면 얼른 배불리 먹어야겠어.”민우는 말하면서 찐빵 하나를 입에 베어 물었다.그러더니 눈 깜짝할 새로 3개를 먹어 치웠다.한편 나는 모태진이 위험할까 봐 차 속을 높였다.다행히 화인당이 레드 오션과 그리 멀지 않아, 우리는 10몇 분 내로 도착할 수 있었다.그 시각 술집 안에 있던 사람들은 끊임없이 밖으로 빠져나오고 있었다. 그걸 봐서는 상황이 아직 종료되지 않은 모양이었다.민우는 밖에서 벽돌과 몽둥이를 찾아 쥐더니 나에게 몽둥이를 건넸다.“넌 경험이 부족하니까 이따 내 뒤에 붙어 있어. 누가 달려오면 그 몽둥이로 때려.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우선 때리고 봐.”민우는 싸움에 경험이 많다. 특히 이렇게 상대가 수적으로 많
그때 민우가 불쑥 물었다.“어떡해? 가서 말릴까?”나는 이를 악물었다.“아니! 저 개자식이 태진 씨한테 한 짓을 생각하면, 나라도 저놈 거시기 잘라버렸을 거야.”우리가 대화하는 사이, 시커먼 그림자들이 안으로 우르르 몰려들었다.그 모리는 다름 아닌 주해진 패거리였다.주해진은 모태진을 보더니 표정을 일그러뜨렸다.“감히 내 구역에서 소란을 피워? 죽고 싶어 환장했나?”“가자!”나는 때를 봐서 얼른 미우와 함께 앞으로 돌진해 모태진 앞에 막아섰다.“해진 형님, 살려줘요...”안면훈은 주해진을 보자마자 큰 소리로 구원 요청을 해댔다.나는 두말없이 그 자식을 퍽, 걷어찼다.“닥쳐. 오늘 천지신명이 와도 널 구하지 못할 거야.”“지금 뭘 하려는지 알아요. 하고 싶은 대로 해요.”“수호야, 너 미쳤어? 이거 불법이야.”민우는 나를 보며 놀란 눈으로 말했다.이에 나는 이를 악물었다.“민우야, 입장 바꿔서 그런 일을 당한 게 너였다면, 나더러 그냥 참으라고 할 수 있어?”민우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나는 모태진을 흘긋거리며 말했다.“태진 선배는 우리 화인당 식구야. 우리 식구를 괴롭히는 건 우리 화인당을 괴롭히는 거나 다름없어. 당하고 온 게 태진 선배든, 너든, 아니면 다른 사람이든, 난 똑같이 할 거야.”민우는 결국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그래. 나도 같이해. 무슨 일 생기면 나도 같이 책임질게.”모태진은 이미 안명훈의 바지를 벗겨 그놈 거시기를 꽉 잡고 있었다.안명훈은 너무 놀라 벌벌 떨었고, 주해진은 그 장면에 눈살을 찌푸렸다.“젠장. 감히 나를 무시해? 저 자식 족쳐!”주해진의 명령이 떨어지기 바쁘게 똘마니들이 한꺼번에 달려들었다. 나와 민우는 온 힘을 다해 그들을 막았다. 나는 심지어 거추장스러울까 봐 팔에 감고 있던 깁스까지 벗어던졌다.그러고는 민우가 하던 대로 요리조리 피하며 피하지 못할 것 같을 때는 상대를 습격했다.물론 몇 군데 맞았지만, 나도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내가 휘두른 방망이는 한 번도 비껴
나는 손을 떼지 않았다. 내가 손을 놓는 순간 주해진이 번복할지도 모르니까.나는 사람들이 몰린 쪽을 쓱 훑다가 마침내 모태진을 찾았다.“태진 선배, 어때요? 복수했어요?”모태진은 몇 번 두들겨 맞아 고통을 참느라고 이를 악물었다.“거의 성공하 뻔했는데 상대가 도망쳤어요.”“젠장. 그럼 우리도 이만 돌아가고 복수는 나중에 하는 게 어때요?”내가 제안했다.모태진은 여전히 분노가 사그라들지 않는 모습이었지만 나와 민우를 생각해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모태진은 원래 안명훈을 거세해 버리고 자수하려고 했는데, 나와 민우까지 연루되자 결국은 우리를 먼저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나는 모태진을 불러와 칼을 주해진의 목에 겨누게 했다.“당신 부하들은 여기 남아 있으라고 해. 당신은 우리랑 같이 나가고.”나는 주해진을 인질로 삼아 이곳을 빠져나갈 생각이었다.주해진은 내가 제 거시기를 놓아주자 그제야 편한 표정을 지었다.“그래. 네 말대로 할게. 너희들은 여기 꼼짝 말고 있어. 한 놈도 따라 나오지 마.”“내가 같이 나가면 여기서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을 거야. 내가 장담하지.”주해진은 이상하리만치 우리에게 협조했다. 하지만 상황이 급박해, 나는 더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우리가 주해진을 인질로 삼아 술집을 나가려고 할 때, 한은솔이 달려왔다.“모 선생님, 저 좀 데리고 나가 주세요.”모태진은 싸늘한 표정으로 상대를 쏘아봤다.“저리 비켜!”그 순간 한은솔은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모 선생님, 저도 협박받아 어쩔 수 없었어요. 그때 제가 그러지 않았으면 안명훈이 저를 가만두지 않았을 거예요.”모태진의 눈빛은 점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꺼지라고 했을 텐데. 손쓰게 하지 마.”“차라리 절 때려요. 때려서 화가 풀린다면 얼마든지 맞을게요.”모태진은 으드득 소리가 날 정도로 주먹을 그러쥐었지만 결국은 끝내 손을 대지 못했다.그 대신 내가 다가가 짝, 하고 한은솔의 뺨을 후려갈기며 싸늘히 충고했다.“이건 태진 선배 대신 때리는 거야. 다
“하도 우리가 제때 왔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다면 오늘 여기서 죽어도 아무도 몰라요.”나를 보는 모태진의 표정은 굳센 의지를 담고 있는 듯했다.“그래도 후회는 안 돼요. 그냥 안명훈 거시기를 자르지 못한 게 한이 될 따름이에요.”나는 손을 뻗어 모태진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복수는 급하게 할 필요 없어요. 때를 기다려야 해요. 우리한테 기회는 많아요. 어제 형수님이 가게에 찾아왔는데 엄청 걱정하는 눈치였어요. 이따 집에 바래다줄게요.”모태진은 마구 도리질했다.“안 갈래요. 난 집에 갈 수 없어요.”“왜요? 집에 안 가고 또 그 여자 귀찮게 하려고요?”민우가 퉁명스럽게 말했다.그러자 모태진이 이내 대답했다.“나 앞으로 한은솔과 다시는 엮이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집에 가기도 싫어요.”“왜죠? 이해가 안 되네요.”민우는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가벼운 말투로 말했다. 하지만 나는 그 이유를 대충 알 것만 같았다. 안명훈이 모태진을 협박해 한은솔과 그런 짓을 하게 했으니 아내한테 미안해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는 걸 거다.이 상황에 나도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막막했다.“그럼 우선 화인당에 가서 몸에 난 상처부터 치료해요. 형수가 오늘도 아마 가게에 올 것 같아요. 그러니까 시간 날 때 형수를 어떻게 마주할지 고민해 봐요.”모태진은 마음이 어수선한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 사이, 나는 차 시동을 걸고 출발했다.20분 뒤 차는 천천히 화인당 문 앞에 섰다.화인당 직원들은 이미 제 일자리를 찾아 오픈 준비를 시작했다. 그러다가 우리가 상처투성이가 된 채 들어오자 걱정하는 듯 빙 둘러싸더니 무슨 일인지 물어댔다.특히 오민혁은 아예 내 팔짱을 끼고 물었다.“수호 형, 왜 이래요? 괜찮아요? 절대 죽지 마요. 형이 저한테 여대생 소개해주길 고대 기다리고 있단 말이에요.”나는 화가 나서 오민혁의 엉덩이를 발로 뻥 차버렸다.“소개는 무슨. 민혁 씨는 평생 희망 없어요. 저쪽으로 좀 비켜요.”“싫어요. 세 사람 시중도 들어야 하거
윤지은은 픽 웃음을 터뜨렸다.“그 말은 설마 너랑 잔 여자들이 모두 너한테 먼저 들러붙었다는 거야?”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사실 아닌가?애교 누나 외에 내가 먼저 꼬신 사람은 아무도 없다.물론 내가 이렇게 말하면 자기애가 넘치는 사람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내가 신들마저 공분하게 할 미모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기에 이런 말 할 자격은 없다.그때 윤지은이 갑자기 흥미롭다는 눈빛으로 나를 봤다.“왜? 내 말에 자신감을 잃었어? 솔직히 말하면 너 확실히 잘생겼어. 게다가 선천적으로 사람을 끌어당기는 뭔가를 지니고 있어.”“그건 돈 주고 산 남자들한테서 찾을 수 없는 거야. 돈 주고 산 건 재미가 없어. 오히려 너처럼 약간 멍청한 게 사람을 더 끌리게 하지.”나는 윤지은이 오늘 밤 좀 달라 보였다. 왠지 자꾸만 나를 꼬시는 것 같았다. 물론 불장난에 휘말릴까 봐 윤지은의 뜻을 마음대로 추측할 수는 없었다.“뜬금없이 웬 칭찬이에요? 쑥스럽게.”나는 이 기회에 화제를 돌리려고 했다.그때 윤지은이 내 어깨를 살짝 꼬집었다.“그러니까 잘생긴 게 다는 아니라고. 그냥 하느님이 너한테 운을 몰아준 거야. 그러니까 나중에 후회할 짓 하지 마.”윤지은은 마지막 한마디를 하는 순간 살기를 내뿜었다. 그 눈빛과 마주친 순간 내 가슴은 철렁 내려앉았다.그 순간 나는 윤지은이 전에 했던 경고가 떠올랐다. 윤지은은 나더러 자기 친구들을 눈독 들이지 말라고 했다. 가까운 접촉은 더더욱 하지 말고.그렇다면 나와 백연우의 일은 윤지은이 절데 알게 해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윤지은이 내 가죽을 벗길지도 모르니까.나는 너무 놀라 한마디도 하지 못한 채 묵묵히 운전했다.윤지은을 집에 데려다준 뒤 나는 다시 사모님 댁으로 향했다.방금 친구 세 명이 모여 대화를 하는 바람에 나는 옆에서 듣기만 하느라 사장님께 한약관 얘기를 하는 걸 깜빡했다.천수당은 모레면 개업식이라 나는 하루빨리 화인당 일을 사장님께 다시 인수해야 했다.그동안 휠체어만 타고 다녀
백연우는 말하면서 내 엉덩이를 힘껏 주물렀다.이런 여자가 요물이 아니라는 게 말이 안 됐다. 사람을 어떻게 이렇게 잘 홀리는지.나는 아무것도 상관하지 않고 이대로 백연우를 안고 싶었다.“그럼 이따 학교 갈 때 배웅해 줄게요.”백연우는 내 턱에 가볍게 입 맞췄다.“이따 봐.”나는 백연우를 놔주고 화장실에서 나왔다. 하지만 하필이면 윤지은과 마주쳤다.나는 순간 도둑이 제 발 저린 듯 어찌할 바를 몰랐다.원래는 다정하던 윤지은의 눈빛은 내가 화장실에서 나오는 순간 살기를 띠었다.“이젠 내 눈앞에서 이러시겠다? 너 아주 발정 났구나?”“오해예요. 난 그저 잘 생각해 보라고 설득하려고 온 것뿐이에요. 다른 뜻은 없어요.”나는 다급히 해명했다.그러자 윤지은이 냉소를 흘렸다.“그래? 그럼 이따 나 집까지 바래다줘.”그건...“왜? 싫어? 백연우를 데려다주고 싶어?”윤지은은 우리의 대화를 들은 것 같았다. 현재로서 윤지은이 나와 백연우 사이를 아는지 확신이 서지 않았지만, 나는 더 이상 윤지은과 관계가 악화하기를 원하지 않았다. 때문에 흔쾌히 동의했다.“그래요. 이따 바래다줄게요.”윤지은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의미심장하게 웃더니 뒤돌아섰다.윤지은이 떠난 뒤 나는 다시 화장실로 들어갔다.“이따 윤지은 씨를 데려다줘야 해서 백 쌤은 데려다주지 못할 것 같아요.”“마음대로 하던가. 난 상관없어.”다행히 백연우와는 대화가 잘 통했다.나는 신속히 화장실에서 나왔다.윤지은과 백연우는 잠시 앉아 있다가 일어섰다. 백연우는 직접 운전해서 떠났고 나는 윤지은을 데려다주기로 했다.윤지은이 조수석에 앉은 순간 늘씬한 다리가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팔짱을 끼고 뜬금없이 물어왔다.“백연우랑 잔 적 있어?”나는 윤지은이 왜 갑자기 이런 질문을 하는지 알 수 없었고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도 막막했다.“대체 뭘 묻고 싶은 거예요?”나는 양심이 찔려 대뜸 물었다.그러자 윤지은이 나를 차갑게 노려봤다.“내 질문에 대답해. 다른 쓸데없는 질문하지 말고
유미 사모님과 윤지은은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놀라움을 표했다.백연우는 네 명 중에서 자유를 가장 좋아하고 구속받는 걸 가장 싫어하는 사람인데, 갑자기 약혼하고 결혼까지 하겠다고 하니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윤지은은 잠깐 침묵하다가 또다시 설득했다.“나는 네가 더 생각해 봤으면 좋겠어. 너 정말 자유를 완전히 포기할 수 있어?”“내가 언제 자유를 완전히 포기하겠다고 했어? 우리 이미 합의했어. 결혼하면 각자 놀고 싶은 대로 놀기로. 승진도 하고 내가 얻고 싶은 것도 얻고, 이거야말로 일거양득 아니야?”그 말에 유미 사모님이 미간을 찌푸리며 끼어들었다.“난 영 미덥지 못한 것 같은데? 설마 너한테 사기 치는 거 아니야? 연우야, 잘 생각해 봐.”백연우는 다리를 꼰 채 소파에 등을 기댔다.“생각할 것도 없어. 내가 평생 바라는 게 딱 두 가지야. 바로 사업과 남자. 총장 아들 잘생겼어. 피부도 하얗고 점잖은 게 딱 내 스타일이야. 게다가 그런 남자가 내 승진을 도와줄 수 있다는 데 내가 땡잡은 거지.”윤지은은 아주 냉정하게 분석했다.“너도 방금 말했잖아. 한 가지를 얻으면 한 가지를 포기해야 한다고. 세상에 그렇게 좋은 일이 어디 있어? 너 그 사람 제대로 알아봐. 두 사람 결혼하면 빠져나오기 힘들어.”“나도 알아. 내 얘기는 이제 그만하자. 우리 함께 모인 것도 오랜만인데 같이 한잔해.”백연우는 바로 화제를 돌렸다.유미 사모님과 윤지은은 더 설득하려는 모습이었지만 백연우는 두 사람에게 그럴 기회를 주지 않았다.그러다가 백연우가 화장실을 갈 때 나도 조용히 뒤따랐다.“정말 결혼해요?”“응.”백연우는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이에 나는 바로 경고했다.“나도 백 쌤 말리려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지은 씨와 사모님 말도 맞잖아요. 결혼은 작은 일이 아니에요. 신중하게 고려하세요.”백연우는 립스틱을 덧바르면서 아를 향해 눈웃음을 날렸다.“내가 결혼한다니까 아쉬워? 결혼하면 너랑 안 놀아줄까 봐?”“솔직히 아쉬운 것도 맞아요. 하지만 백
“두 분 모두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한번 시도해 볼게요.”“그럼 부탁드릴게요.”“우선 집에 바래다 드릴게요.”나는 대리를 불러 두 분을 집까지 모셔다드렸다.이다연은 어느새 집에 돌아왔는지 우리가 도착했을 때 거실 소파에서 게임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들어오는 걸 보더니 고개를 홱 돌려 제 방으로 들어가 쾅, 하고 방문을 닫아버렸다.이 선생님은 그 순간 욱해서 욕지거리를 퍼부으려고 했지만 이 사모님이 제때 말렸다.이 사모님은 이다예의 연락처를 나한테 몰래 건네주면서 할 수 있는 데까지만 해달라고 부탁했다.나는 그 연락처를 저장한 뒤 이 선생님을 위로하다가 이내 집을 나섰다.나는 사모님 댁에 들러 사잔님과 화인당 및 천수당에 관한 일을 얘기해 볼 생각이었다. 이다연에 관한 일은 나중에 시간 날 때 제대로 대화해 보면 되니까.내가 사모님 댁에 도착했을 때 집에 윤지은과 백연우도 와 있었다.두 사람은 일 때문에 식사 자리에 참석하지 못했다가 일이 끝난 뒤 바로 달려온 모양이었다.두 사람 모두 유미 사모님과 친한 사이라 고가의 선물을 바리바리 싸 들고 왔다.“여정이 자리에 없는 게 아쉽네. 안 그러면 우리 넷이 또 모일 수 있을 텐데.”백연우는 소여정을 언급하며 아쉬워했다.임천호가 강북에 온 뒤로 소여정은 친구들과 완전히 연락이 끊겼다. 때문에 그녀가 지금 어디서 어떻게 지내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그때 윤지은은 여전히 생각을 읽을 수 없는 무뚝뚝한 표정으로 말했다.“잘 지내고 있을 거야. 임천호가 걔를 얼마나 이뻐하는데. 이제는 임천호 아이까지 낳겠다고 나섰으니 임천호가 푸대접하지 않을 건 아니야.”그 말에 백연우가 혀를 끌끌 찼다.“이것 봐. 여정이 곁에 있을 때는 그렇게 투덕대더니, 없으니까 또 걱정하네.”“누가 걱정했다고 그래? 나는 단지 사실을 말한 것뿐이야.”윤지은은 여전히 고집스럽게 인정하지 않았다.그때 백연우가 싱긋 웃으며 윤지은의 팔짱을 꼈다.“이제는 그만 인정해. 우리가 안 지 몇 년인데 누가 어
그날 임민수 내외는 모든 사람을 불러 식사를 대접했다. 그리고 식사 자리에서 나에게 술까지 권했다. 그 모습은 살짝 의외였다.“수호 군, 우리 호섭이가 이렇게 빨리 회복할 수 있었던 건 자네 공이 커. 자, 내가 한 잔 권하지.”임민수의 말에 나는 얼른 뚝딱거리며 술잔을 들어 올렸다.“어르신, 별말씀을요.”나는 솔직히 임민수가 나에게 술을 권할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그때 한영심도 잇따라 일어났다.“정 선생, 나도 한 잔 권하네.”“아닙니다, 어르신.”임민수 내외의 존경을 받게 되어 나는 정말 감개무량했다.심지어 유미 사모님마저 직접 나에게 술을 권했다.“수호 씨, 나도 한 잔 올려요.”“사모님, 저만 마실 테니 사모님은 마시지 마세요.”사모님은 아직 사장님을 돌봐야 하기 때문에 나는 살짝 걱정되었다.그런데 사모님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나도 딱 한 잔만 마실 거예요. 우리 호섭 씨가 이렇게 회복할 수 있었던 건 모두 수호 씨 덕분이에요. 호섭 씨는 아직 술을 마실 수 없으니까 내가 대신 마실게요. 그러니 절대 사양하지 마요.”사모님이 이렇게까지 말하니 나는 더 이상 거절할 수 없었다. 결국 술잔을 들어 올려 사모님의 잔과 부딪혔다.식사 분위기는 매우 화목하고 화기애애했으며 전에 있던 안 좋은 일은 모두 털어버렸다.임민수는 어찌나 기뻤는지 취할 때까지 술잔을 놓지 않았다. 심지어 내가 두 어르신을 집으로 모셔 드리겠다고 하니 기어코 필요 없다며 대리까지 불렀다.술을 마시지 않은 한지영은 봉섭 할아버지와 함께 떠났고, 이 선생님은 기분이 안 좋아 살짝 술을 들이켜더니 또 이다연을 꾸짖었다. 결국 이다연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떠나버렸고, 그 때문에 이 선생님은 또 한바탕 화를 냈다.사장님은 나더러 저와 사모님을 상관하지 말라며 대리를 부르고는, 나더러 이 선생님 가족을 데려다주라고 부탁했다.차에 올라탄 순간, 이 선생님은 결국 슬픔을 참지 못하고 눈물을 보이셨다.나이도 드신 분이 서럽게 펑펑 우는 모습을 보니 나도 마
그러자 이 사모님이 옆에서 조용히 말했다.“왜 또 그래요? 오늘은 욕하지 않기로 했잖아요.”“하는 짓을 봐. 다른 사람들이 보면 우리가 가정교육 잘못시킨 줄 알 거 아니야. 이럴 줄 알았으면 데려오지 말 걸 그랬어. 당신도 참, 애가 저렇게까지 하는데 왜 계속 애 편을 들어?”이 선생님은 어찌나 화가 났는지 눈까지 부릅뜨며 핏대를 세웠다.그 모습에 이 사모님분은 한숨을 푹 쉬면서 아무 말도 하지 못 했다.나도 솔직히 이다연에 대한 인상이 좋지 않았기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다연 외에 한지영도 자리했다. 물론 봉섭 할아버지와 함께.가족 중에 나와 한지영만 젊은 축에 속했다.한지영은 다른 사람과 할 얘기가 없으니 자꾸만 나를 따라다녔다.“또 만났네요? 요즘 뭐 해요?”내가 한지영에 대한 첫인상은 더욱 꽝이었다. 한지영은 큰소리만 치고 과시하기를 좋아하며 곧 죽어도 체면이 제일 중요한 부류였다.때문에 나는 대충 얼버무렸다.“한의관 일 때문에 바빠요.”“한의관은 돈 많이 벌어요? 많이 벌지 못하면 나랑 같이 영화 찍어요.”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한지영을 째려봤다. ‘본인은 행인 1도 못하면서 무슨 수로 나랑 같이 찍자는 거지?’나는 더 이상 한지영과 말을 섞고 싶지 않아 조용히 자리를 떠났다.“할아버지, 제가 도와드릴게요.”나는 일부러 일을 찾아 했다.봉섭 할아버지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그 옆에서 할아버지께 침을 건네는가 하면 소독을 도와드렸다.사장님은 조용히 앉아 있었는데, 몇 차례의 치료를 받고 나니 혈색이 많이 좋아졌다.치료 과정은 매우 순탄했다. 이건 모두 봉섭 할아버지의 뛰어난 의술 덕분이었다.그 덕에 나도 옆에서 많은 걸 배울 수 있었다.치료가 끝난 뒤 봉섭할아버지는 사장님 가족들에게 말했다.“이제 치료는 다 끝났으니 병세도 어느 정도 안정되었습니다. 이변이 없는 한 앞으로 5년 정도는 재발하지 않을 겁니다.”그 말에 두 어르신은 감격에 겨워 봉섭 할아버지의 손을 덥석 잡았다.“선생님, 우리 사위
그건 어쩔 수 없었다. 고아연이 찍은 영상은 확실히 재밌었으니까. 팬이 이렇게 많은 것도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었다.다만 댓글은 죄다 침을 흘리는 이모티콘이거나 내 친구가 이 영상을 보고 정신이 이상해졌다는 유형의 댓글이었다.고아연은 남자만 찍는 게 아니라 여자가 나오는 여상도 아름답고 우아하면서 매력이 넘치게 잘 찍었다.전에는 고아연한테 이런 재능이 있었는지 몰랐는데 말이다.내가 한창 영상을 보고 있을 때 고아연이 갑자기 문을 열고 내 방에 들어왔다.나는 깜짝 놀라 얼른 핸드폰을 숨겼다.“왜 왔어요? 노크는 왜 안 하는데요?”“지금 나를 탓하는 거야?”고아연은 오히려 삐진 듯 되물었다.이에 나는 얼른 화제를 바꾸었다.“무슨 일인데요?”고아연은 나한테로 걸어오더니 침대에 털썩 주저앉았다.“혹시 잘생긴 남자 아는 사람 있어? 있으면 나 좀 소개해 줘.”“왜요?”“왜긴? 당연히 영상 찍으려고 그러지. 내가 설마 그 남자들을 잡아먹기라도 할까 봐?”고아연은 화가 난 듯 나를 째려봤다.나는 나 하나로도 모자라 또 더 찾아달라는 건가 싶어 순간 화가 나서 말했다.“없어요.”“정말 없어? 아니면 소개해 주기 싫어서 그러는 거야?”“정말 없어요?”“누굴 속이려 들어? 너의 가게에 잘생긴 사람들이 많다던데. 소개해 주기 싫으면 내가 나중에 직접 찾아가면 그만이지.”“마음대로 해요.”나는 저도 모르게 가슴이 쓰라렸다.“그래. 그럼 내일 찾아갈게.”고아연은 말을 마친 뒤 이내 방을 나갔다.나는 처음에 고아연이 밀당하는 건가 싶었는데 내 생각이 완전히 빗나갔다. 고아연은 정말 나한테 잘생긴 남자를 소개해달라고 내 방까지 쳐들어온 거였다.나도 여자들한테 인기 꽤 많은 남자인데 고아연처럼 나를 꼬시지도 않고 아예 무시하는 여자는 처음이었다.사람은 참 이상한 게, 분명 상대와 발전하고 싶은 마음이 없으면서 상대가 무시하면 오히려 괴로워지고 자존심이 허락되지 않는다.내가 지금 그랬다. 때문에 나는 마음을 가다듬은 뒤 이불을 뒤집어쓰고
“두 사람은 거기서 씰룩거리고 나는 혼자 카메라나 들고 있으라고? 미친 거 아니야?”“그렇게 싫으면 언니도 끼던가.”고아연은 고수연까지 초대했다.그 순간 고수연은 얼굴이 확 달아올랐지만 속으로는 은근히 기대했다.“셋이 같이 찍어도 돼? 이상하지 않을까?”“이상할 거 뭐 있어? 청순하고, 섹시하고, 야성미 넘치고. 이거야말로 관중들이 원하는 거 아니겠어? 할래?”“그럼 카메라는 어쩌고?”고아연은 두말없이 핸드폰을 들어 거치대 위에 고정했다.“언니, 그런 옷은 안 돼. 좀 노출이 있는 옷을 입어.”고수연은 가정주부라 평소에 치장도 하지 않고 보수적이었다.결국 고아연이 나서서 형수의 옷 한 벌을 골라주었다.그 옷으로 갈아입고 나온 고수연은 확실히 색다른 분위기를 풍겼다.모든 준비가 끝난 뒤 고아연은 우리에게 춤 한 구간을 알려주었고 그걸 함께 연습한 뒤 정식 촬영을 시작했다.음악이 울리자 나는 고씨 자매와 함께 춤을 추며 걸어 나왔고, ‘풀어’라는 단어가 들릴 때 두 자매가 양옆에서 내 옷을 벗기며 탄탄한 복근을 공개했다.촬영이 끝난 뒤 고아연은 바로 편집했다.나도 최종 영상이 궁금해 서둘러 자리를 뜨지 않았다.한참 뒤 고아연은 우리에게 편집한 영상을 보여주었다.그런데 남자인 내가 봐도 영상이 꽤 멋있었다.고수연은 나보다도 눈을 더 크게 뜨고 입꼬리를 씰룩씰룩 끌어 올렸다.“아연아, 너 평소 이런 영상만 촬영해?”나는 그제야 고아연이 SNS 스타라 평소 자기가 촬영한 영상이나 사진을 여러 플랫폼에 올린다는 걸 알았다.나는 몰래 고아연의 계정을 기억해 뒀다가 나중에 몰래 구독했다.고아연의 계정은 팔로워 수가 엄청났고 영상 하나당 좋아요가 만 개가 넘었으며 댓글도 수천 개가 달렸다.그리고 한 가지 예외 없었던 건, 고아연이 올린 영상은 모두 여러 가지 젊고 잘생긴 미남들이라는 거였다.게다가 모두 상반신을 노출한 모습이었고 한 번도 중복된 적이 없었다.그걸 보다 보니 나는 문득 고아연이 부러웠고 이 많은 남자들이 어떻게 고아연
내가 옷을 들고 방으로 들어가 갈아입으려고 할 때 고아연이 갑자기 내 앞을 막아섰다.“거실에서 갈아입어.”“뭔가 음모가 있죠?”고아연은 싱긋 웃으며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이렇게 잘생긴 얼굴에 몸매 좋은 남자를 보기 싫어하는 여자가 어디 있겠어? 솔직히 말할게. 내가 좀 남색을 많이 밝혀.”나는 색을 밝힌다는 걸 이렇게 대놓고 인정하는 여자는 처음 봤다.“그래도 안 돼요. 난 형수 거예요.”나는 농담조로 말하고는 얼른 방에 들어가 옷을 갈아입었다.몸에 걸친 섹시하고도 색기 넘치는 옷을 보니 나는 저도 모르게 소여정이 나더러 비슷한 옷을 입으라고 했던 때가 떠올랐다.보아하니 여자도 색을 밝히는 모양이다. 그것도 남자 못지않게.내가 문을 열고 방을 나선 순간 고아연은 노골적인 눈빛을 숨길 생각도 없는지 나를 진득하게 바라봤다.“쯧쯧. 역시 젊고 잘생긴 데다 소년미까지 넘치네. 이래서 언니가 그렇게 좋아하던 거였구나. 저녁에 이런 남자를 안고 잠들면 자다가도 웃으면서 일어나겠네. 자, 누나도 한번 안아보자.”고아연은 노골적으로 나를 더듬거렸다.나는 너무 놀라 다급히 고아연을 막았다.“옷만 입어보면 된다면서요? 다른 짓 하지 마요.”고수연도 옆에서 질투하는 듯 말했다.“아연아, 큰 언니 아직 혼수상태인데 네가 이렇게 언니 남자를 만져 대면 나중에 언니 얼굴 어떻게 보려고 그래?”“어쩔 수 없지. 미색이 유혹하면 난 남편도 배신할 사람인데 도덕을 어기는 게 뭔 대수야?”문제는 이 말이 고아연 입에서 나오니 조금도 이상하지 않았다. 오히려 무척 어울렸다.고아연은 워낙 색을 밝히는 체질이라 그런지 아무리 이런 말을 해도 충격적이지 않았다.나는 두 사람이 나를 놀리는 거라고 생각했기에 그 말을 마음에 두지 않았다.“옷은 문제없어요. 저는 이만 갈아입고 나올게요.”말을 마친 뒤 나는 곧장 내 방으로 향했다.그때 고아연이 다급히 나를 잡아끌었다.“잠깐만. 영상 좀 찍을게.”“무슨 영상이요?”“내가 보여줄게.”고아연은 내 옆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