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님을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 땡중으로 생각해요. 그런 사람을 홀려 규율을 어기게 만들어야 한다고요.”나는 서지예한테 예를 들었다.그러자 서지예는 바로 내 뜻을 이해했다.“아, 알았어요. 양동준은 보통 남자랑 달라서 꼬시려면 특별한 수단을 좀 써야 한다, 이 말이죠? 그런데 무슨 수단이요? 잘 모르겠는데.”‘어... 이걸 어쩐다?’‘여자가 어떻게 매력 발산해야 하는지 나도 모르는데.’“아니면 백연우 씨를 따라 배우는 건 어때요?”“미쳤어요? 어떻게 그런 시킬 수 있어요?”서지예는 나를 한바탕 호되게 꾸짖었다.백연우를 제외하고 형수가 떠올랐지만, 형수는 하산하기 전에 진동성이 뭐 하나 봐야겠다며 서둘러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그런데 그런 사람더러 가지 말고 도와달라고 할 수 없었다.머리를 쥐어 짜내며 적임자를 떠올렸지만 마땅한 사람이 떠오르지 않았다.그때 서지예가 말했다.“정 안 되면 그쪽이 가르쳐주던가요.”“내가 어떻게 알아요? 내가 여자도 아니고, 남자를 꼬셔 봤어야 알죠.”“아는 여자가 그렇게 많은데 보고 배웠을 거 아니에요? 됐어요, 수호 씨가 가르쳐 줘요. 내가 양동준을 자빠뜨리면 그쪽을 제자로 받으라고 설득해 줄게요. 약속할게요!”서지예는 아주 매력적인 조건을 제시했다. 게다가 양동준과 그런 사이이니, 서지예를 도우면 양동준의 제자가 될 확률이 매우 높았다.‘동준 형님을 스승으로 모실 수 있다면 못 할 것도 없지.’결국 나는 이를 악물고 고개를 끄덕였다.“좋아요. 해보죠.”“그럼 이제부터 말하는 대로 하면 돼요?”나는 나를 소여정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사람을 유혹하는 면에서 소여정을 따라올 자는 아무도 없었으니까.나는 서지예더러 양동준인 척하게 하고, 남자의 욕망을 어떻게 자극해야 할지 직접 시범을 보여주었다.“하하하... 하하하...”서지예는 아예 웃음을 터뜨렸다.‘사람 머쓱하게.’“뭘 웃어요?”서지예는 참지 못하고 말했다.“방금 그거 너무 웃겨서요. 됐어요, 안 웃을 테니 다시 한번 보여줘요.”
“그렇게 직접적으로요?”“네, 그래야 해요. 정식하고 올곧은 사람일수록 빙빙 에돌아 가면 작전 실패해요.”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서지예는 한참 생각하다가 미간을 좁혔다.“어떻게 갖다 대요? 안에 넣어요? 아니면 겉에 대요?”‘어...’“시범 보여줄래요?”‘어...’‘왜 이 여자가 나한테 흑심 있는 것 같지?’“아무것도 모른다는 말은 하지 마요.”나는 경계 가득한 눈으로 서지예를 보며 물었다.그러자 서지예가 잔뜩 화난 얼굴로 말했다.“나 아무것도 몰라요. 왜요? 내가 다 알면 가르쳐달라고 했겠어요?”“그런 사람이 내 바지를 벗기려 했어요? 난 또 아주 능수능란한 줄 알았죠.”나는 왠지 큰 손해를 본 기분이었다.서지예는 팔짱을 꼈다.“궁금해서 그런 거잖아요. 당신 그곳이 얼마나 대단하면 여자들이 주위에 끊이질 않나 해서요.”나는 어색하고 낯 간지러웠다.“그 얘기는 그만해요. 부끄럽잖아요. 나도 내 인생이 로또 맞은 기분이에요.”“쓸데없는 말은 그만하고 실용적인 거나 가르쳐 줘요.”서지예는 강경한 태도로 말했지만 얼굴은 살짝 발그스름했다.나는 서지예의 치맛자락을 바라보며 머쓱하게 말했다.“그러면... 그쪽한테 손해 아니에요? 조금 부끄러운데요?”“나도 괜찮은데, 그쪽이 안 괜찮을 거 뭐 있어요? 그만 우물거리고 얼른 손 이리 줘요.”“서지예는 말하면서 내 손을 자기 치마 밑으로 쑥 밀어 넣었다.그리고 다음 순간, 그녀의 예쁜 눈매가 찡그러졌다.서지예는 잘 숨겼지만 나는 바로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뜨뜻한 무언가가 울컥 흘러나왔다.그건 정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이렇게 민감하다고?’하지만 서지예는 여유 있는 모습인 척해서 뭐라 말할 수 없었다. 그저 협조하는 것뿐.“맞아요. 이렇게 하면 돼요. 보통 이 정도 하면 보통 남자들은 참지 못해요.”서지예의 얼굴은 점점 빨개졌고 목소리도 부끄러움이 담겨 있었다.“그럼 다음은... 바로 본론으로 가면 돼요?”“네, 자연스러운 거 아니에요?”나는 말하면서 얼른
“뭐가요?”“서 쌤이 시크하기로 유명하잖아요. 그런데 그런 여자를 상대로, 아주 대단해요.”나는 다급히 해명했다.“흑심 품고 뭘 해보려는 건 아니었어요. 정말이에요... 차나 몰 것이지 뭘 그렇게 상관해요?”문득 운전기사 주제에 뭔 말이 그렇게 많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말할수록 상대가 서지예한테 흑심 품고 눈요깃거리로 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기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담배를 태웠다.나는 차에서 서지예를 기다렸다.하지만 30분이 다 되어 가는데 서지예는 돌아오지 않았다. 약간 걱정이 된 나는 얼른 그녀에게 연락했다.[다 됐어요?]서지예는 빠르게 답장했다.[그렇게 가고 싶어요? 뭘 그리 재촉해요?”‘헐. 황폐한 산속에서 위험할까 봐 그러지. 걱정해 줘도 난리야.’‘됐어. 마음대로 하라지. 상관 안 해.’나는얼른 소설 사이트를 열었다.한참 뒤, 서지예는 겨우 돌아왔다.얼굴이 붉고 색스러운 게 딱 봐도 홍수가 터진 모양이었다.서지예는 자리에 돌아와 기사한테 말했다.“됐어요. 출발해요.”나는 핸드폰을 거두고 서지예를 바라봤다.“내 가르침 어땠어요?”“나쁘지 않네요.”“그럼 성공하면 스승님한테 꼭 나를 스승으로 받아주라고 설득해 줘요.”“네.”서지예의 대답은 뜨뜻미지근했다.상대가 나를 상대하기 싫어하는 것 같아 나도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형수와 애교 누나는 이미 각자 집으로 돌아갔고 백연우와 사모님도 갈 곳으로 갔다.서지예는 나에게 어디로 가면 되는지 물어봤다.나는 아직 팔에 깁스를 하고 있고, 갈비뼈가 채 아물지 않아, 사모님은 하산하기 전에 집에서 잘 휴식하라고 당부했다.하지만 지금 집에 가기 싫어 서지예한테 말했다.“할 일 없으면 얼른 계획을 실행에 옮겨요.”“지금요?”“네, 빨리 실행해야 스승님을 빨리 차지하죠. 나도 하루빨리 스승님 제자가 될 수 있고요.”다른 건 모르겠고, 내가 하루빨리 양동준 제자가 되고 싶은 마음이 가장 컸다.서지예는 얼굴이 붉게 물들더니 기사한테 말했다.“기사님, 부근에 있
“부끄러울 거 뭐 있어요? 본인 입으로 그랬잖아요. 성인이 이런 곳 오는 거 정상이라고.”서지예가 쑥스러워하는 걸 알았기에, 나는 그녀를 위로했다.사람은 누구나 풋풋한 시절로부터 점차 성숙해져 가는 거다. 나도 그렇게 겪어 왔고. 때문에 서지예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서지예는 마음을 다잡더니 말했다.“알았어요. 이제 전화하면 돼요?”“네. 합리적인 이유를 대서 먼저 여기로 불러내요. 하지만 여기가 어떤 곳인지 절대 말하지 마요.”“알았어요.”소지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나서 곧바로 양동준한테 전화 연결을 시도했다.전화는 빠르게 연결되었다.서지에는 쓸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양동준, 나랑 술 마셔줄 수 있어? 나 지금 기분이 안 좋아. 여기로 좀 와줘. 기다릴게. 안 오면 죽도록 마실 거야.”서지예는 상대가 대답할 기회도 주지 않고 바로 전화를 끊었다.이제 양동준이 오기를 기다리면 된다.나는 대충 할 일을 끝낸 것 같아 입을 열었다.“난 먼저 가볼게요.”“어디 가게요?”그 질문에 나는 울지도 웃지도 못했다.“당연히 떠나야죠. 이따가 두 사람이 꽁냥거리는데 내가 끼어 있겠어요?”서지예는 갑자기 벌떡 일어서더니 잔뜩 긴장하고 불안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나 너무 떨려요. 망치면 어떡하죠?”“헐, 나를 상대할 때는 이러지 않았잖아요.”“그거야 그쪽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니까요. 그쪽 앞에서는 부담이 없는 거죠. 하지만 양동준은 좋아한단 말이에요. 내 몸과 마음을 다 줄 걸 생각하니 설레고 불안해요. 거절당할까 봐 두렵기도 하고요. 그러다가 내가 또 욱해서 싸움 날까 봐 걱정이기도 하고.”사람은 좋아하는 상대 앞에서는 쩔쩔매게 돼 있다.예전에 애교 누나 앞에서 나도 이랬으니까.나는 서지예 앞에 다가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긴장할 거 없어요. 좋아하는 사람과 하는 건 기분 좋은 일이에요. 어떻게 몰입해서 서로에게 좋은 추억을 남길지만 생각해요.”“될까요? 아니면 가지 마요.”“그건 무리한 요구라는 생
윤 사모님은 우아하고 기품 있었다.특히 피부는 탱탱하고 새하얀 데다 살짝 은색을 띠고 있었다.이곳에서 윤 사모님을 만난 게 너무나도 의외였다.“윤 사모님, 여기서 다 만나네요.”“팔은 왜 그래요? 다쳤어요?”“네, 부러졌어요.”“어쩐지 요즘 가게에 안 나오더라니. 요즘 수호 씨가 안 나와서 얼마나 재미없었는지 알아요?”윤 사모님 말에 나는 약간 쑥스러웠다.“저를 너무 띄워주네요. 가게에 저도다 실력 좋은 선생님들 많은데요.”“그런데 다들 수호 씨만큼 젊지도, 잘생기지도 않았잖아요.”윤 사모님은 나를 희롱하면서 이상야릇한 눈빛으로 내를 훑었다. 내 착각인지 모르겠지만, 윤 사모님 눈에 여러 가지 감정이 섞여 있는 듯했다.“내 집이 바로 요 근처인데, 차라도 한잔하고 갈래요?”“네? 아니에요, 일이 있어서 그건 생략할게요.”무엇보다 내가 떠나면 서지예가 나를 찾지 못할까 봐 걱정됐다.하지만 윤 사모님이 갑자기 말했다.“아, 머리가 어지러워서 걷지 못하겠는데, 부축해 줄 수 있어요?”윤 사모님이 일부러 이런다는 걸 알았지만 거절할 수 없었다.상대가 큰 고개인데 어쩌겠나?“알았어요. 집까지 부축해 드릴게요.”‘나도 환자인데 내 부축을 받으려 하다니, 참 지독하기도 하지.’나는 윤 사모님을 부축한 채 그녀가 살고 있는 동네에 도착했다. 그곳은 고급 주택 단지라 얼굴 인식을 해야만 들어갈 수 있었다.하지만 윤 사모님이 있으니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단지는 매우 컸는데, 무려 건물만 100여 채나 됐다. 윤 사모님이 살고 있는 곳은 97동이었다.윤 사모님이 데려간 집은 매우 컸는데 입이 떡 벌어질 지경이었다.게다가 채광도 좋고 집에 있는 가전제품은 대부분 AI 기능이 있었다.나는 참지 못하고 한 바퀴 빙 둘러봤다.그러다가 뒤를 돌아본 순간, 윤 사모님이 갑자기 나를 덮치며 내 목을 끌어안았다.나는 멍해졌다.“윤 사모님, 왜 이러세요?”나는 다급히 윤 사모님을 밀어냈다.그랬더니 윤 사모님은 생긋 웃으며 나를 노골적으로 쳐
“어쨌든 안 돼요. 강요하지 마세요. 계속 강요하면 저도 가만있지 않을 거예요.”윤 사모님이 어떤 사람인지 알았기에 절대 건드리면 안 딘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그리고 나는 권력도 실력도 없는 사람이다. 임천호 한 명만 해도 골치 아파 죽겠는데, 윤 사모님과 얽히면 어떻게 주을지도 모른다.이번에 용천 호텔에 다녀와서 한 가지 알게 된 게 있다면, 바로 여자를 만나려면 자본이 있어야 한다는 거다.만약 내가 임천호 같은 사람이면 고민 없이 윤 사모님과 몸을 섞었을 거다.하지만 난 아니다. 때문에 이 흙탕물에 뛰어들면 안 된다.“수호 씨, 축하해요. 테스트는 통과했어요.”심각한 표정으로 윤 사모님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이렇게 말해버리니 나는 어리둥절했다.“네? 무슨 상황이에요?”윤 사모님은 내 몸 위에서 일어나더니 단정하게 옆에 앉았다.“이건 다 테스트한 거예요.”“문제는 저를 왜 테스트하는 거죠? 뭘 하려고요?”나는 어안이 벙벙했고 머리가 멍했다.윤 사모님은 생긋 웃더니 나를 바라봤다.“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죠?”나는 고개를 끄덕였다.사실 윤 사모님이 부잣집 사모님이라는 것 외에 아는 게 없다.윤 사모님은 가볍게 웃더니 말했다.“사실 나한테 다른 신분이 있어요. 내 남편도 몰라요.”‘뭐지?’‘뭐 스파이 놀이라도 하는 건가?’나는 궁금하고 이해가 되지 않아 윤 사모님을 빤히 바라봤다.“무슨 신분인데요?”“킬러예요. 구체적인 킬러.”윤 사모님은 어두운 표정으로 매섭게 말했다.나는 몇 초간 멍해 있다가 입을 열었다.“에이, 그럴 리가요. 킬러라니, 말도 안 돼요.”“왜 말이 안 돼요?”“살기가 느껴지지 않으니까요. 소설이나 드라마 같은 데서 보면 킬러는 기본적으로 살기가 있는데 윤 사모님은 없어요.”“하하하... 수호 씨 너무 재밌네요. 소설과 드라마를 믿어요? 하지만 제대로 맞췄어요. 나 사실 킬러 아니에요. 장난친 거예요?”“그럼 다른 신분이라는 게 있긴 한 거예요?”“있죠.”“뭔데요?”“맞춰 봐요.”
“하지만 나도 세계적인 명탐정이 되는 게 꿈이에요.”나는 너무 웃어 눈물이 찔끔 나왔다. 그러면서도 윤 사모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네, 꼭 성공할 거예요. 성공하길 바랄게요.”윤 사모님은 나를 꼬집었다.갑작스러운 고통에 나는 얼른 용서해 달라고 애원했다.그러자 윤 사모님이 다리를 꼰 채 얼굴이 어두워져서 말했다.“수호 씨랑 같이 일해보려고 했는데 그러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졌네요. 그만 가 봐요.”“네? 저랑 같이요? 왜요?”“잘생겼으니까요. 가끔 미색을 희생해서 목표에 접근해야 할 때가 있거든요.”“전에 마사지숍을 열겠다고 했잖아요? 왜 갑자기 탐정이 됐는데요?”“마사지숍은 뻥이죠. 이 업계에서 위장은 기본이라고요. 알겠어요?”윤 사모님은 여전히 화가 가시지 않았는지 말하는 태도가 거칠었다.방금 전 농담이 지나쳤다는 생각에 나는 얼른 사과했다.“미안해요, 아까는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에요. 정말이에요. 우선 진정해요.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해요.”“자세히 말해 봐요.”“부잣집 사모님이 호의호식하며 생활을 누릴 수도 있는데 사모님은 본인 사업이 있잖아요. 혼자 뭔가를 이루려는 생각도 있고, 그래서 대단한 것 같아요. 존경스러워요.”내 말이 꽤 효과 있는지 윤 사모님 얼굴에는 또다시 미소가 번졌다.“진작 그럴 것이지. 내 탐정 사무소 규모가 꽤 커요. 게다가 다 큰 건만 받아요. 일거리 하나당 보너스도 몇백만 원은 돼요”“잘만 하면 연말에 인센티브도 있고, 1년에 적어도 몇천만 원은 벌 수 있어요. 맹인 마사지숍에서 일하는 것보다는 훨씬 좋아요. 어때요? 생각해 볼래요?”“이거 완전 사촌 동생 직원 스카우트하려고 물밑 작업하는 거잖아요. 두 분이 알면 어떡하려고요?”윤 사모님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말했다.“상관없어요. 두려울 것 없어요. 내가 수호 씨를 오랫동안 지켜봤는데, 우리 사무소에 마침 수호 씨처럼 젊고 잘생긴 데다 유혹에 쉽게 넘어가지 않는 친구가 필요해요. 여러 번 테스트했는데 수호 씨 만한 사람 없어요.”그 말
“이래도 안 돼요? 잘생긴 수호 씨.”윤 사모님은 나에게 윙크를 보내며 현금다발을 들고 앞에서 흔들어댔다.나는 여자의 유혹은 참았지만, 돈 앞에서 끝내 무너졌다.그도 그럴 게, 윤 사모님이 손에는 정확히 현금다발이 들려 있었으니까.내가 매달 140에서 160만 원 정도 번다고 해도 대출과 집 살 돈을 적금 들고 나면 남는 돈이 없다.하지만 윤 사모님과 손잡으면 매달 돈 생겨날 구멍이 더 생기는 거다.그러니 참을 수가 있나?나는 망설임도 없이 통쾌하게 대답했다.“좋아요. 할게요.”윤 사모님은 곧바로 나에게 계약서를 내밀었다.“우선 사인해요. 그러면 보너스 줄게요.”‘이렇게 좋은 일이 있다고?’나는 역시나 또 망설임 없이 바로 사인했다.윤 사모님은 서둘러 계약서를 챙겼다. 다만 내 온 정신은 보너스에 있었다.윤 사모님은 통쾌하게 손에 든 돈을 나에게 건넸다.나는 흐뭇하게 웃으며 손에 든 돈을 세어봤다. 그때 윤 사모님이 갑자기 말했다.“하하, 수호 씨 완전 속았네요. 그 돈은 수호 씨 1년 치 연봉이에요.”나는 어벙한 표정으로 굳어버렸다. 순간 손에 돈다발을 들었는데도 기쁘지 않았다.“부잣집 사모님이라는 분이 어떻게 사람을 속일 수 있어요?”“흥, 고작 알바생인 주제에 우리랑 비슷하게 받겠다고요? 꿈도 야무지네요. 마사지숍 그만두고 여기 일에만 전념하면 또 몰라.”‘역시 다 나를 속이는 수단이었어!’‘내가 아직 너무 어려서 된통 속았네.’나는 화가 나서 손에 든 돈을 던져버리고 싶었다.윤 사모님은 그런 내 마음을 꿰뚫어 보기라도 한 듯 눈웃음을 쳤다.“화나요? 돈 갖기 싫으면 돌려줘요. 천만 원이라, 스파 몇 번 받을 수 있겠네.”나는 그 말에 서둘러 돈을 챙겼다.천만 원은 나한테 정말큰 돈이다. 윤 사모님이 스파로 모두 써버리면 마음 아플 거다.“이제 볼 일 없죠? 없으면 저는 이만 갈 게요.”“있어요.”윤 사모님이 째려보는 바람에 나는 마지못해 다시 자리에 앉았다.“무슨 일인데요? 말해요.”“우리 일 내
“엄마, 괜찮아요?”윤지은은 엄마의 이상한 모습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보통 엄마라면 자기 딸이 우수한 짝을 찾기를 원하지 않나? 왜 엄마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지?’‘게다가 딸이 아무것도 아닌 남자랑 잤다는데 왜 화를 내지 않지?’“괜찮지 그럼. 우리 윤씨 가문은 정략결혼으로 사업을 유지할 필요도 없고 돈 많은 사돈에게 빌붙을 필요도 없어. 난 전에 네 심리에 문제가 있는 줄 알고 걱정했는데 문제없다니 오히려 다행이지. 앞으로 외로우면 만나고 싶은 남자 마음대로 만나. 넌 윤씨 가문 딸이잖아. 뭐든 너 하고 싶은 대로 해.”윤지은의 얼굴은 또 빨갛게 달아올랐다.윤지은은 사실 욕구불만인 사람은 아니다. 다만 전에는 정말 힘든 데다 여준휘한테 복수하려는 마음에 아무나 만나 터무니없는 짓을 저지른 거였다.“필요 없어요. 요즘 병원 일이 바빠서 쓸데없는 생각할 시간 없어요.”“누굴 속여? 너희 병원 요즘 안 바쁘잖아. 나 고 교수한테 다 물어봤어. 네가 요즘 할 일이 없다면서 휴가 줄 생각도 하던데. 차라리 이참에 수호 씨랑 여행이나 다녀와.”윤지은은 꼬리 밟힌 고양이처럼 버럭 소리 질렀다.“싫어요. 가더라도 혼자 다녀올 거예요.”“혼자 가는 게 얼마나 위험해? 낯선 환경과 낯선 도시에 가면 외로울 때 누가 같이 있어 줘?”“엄마. 말끝마다 남자 얘기하지 마요. 전 독립적인 여성이에요. 남자가 없어도 잘 살 수 있다고요.”“우리 딸이 얼마나 독립적인지는 나도 잘 알지. 그럼 그냥 친구랑 같이 논다고 생각해. 두 사람이 가는 게 혼자보다는 낫잖아. 남자도 사실 애완동물처럼 곁에 두면 꽤 즐거워.”그 말에 나는 너무 충격을 받아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역시 부자들한테는 뭐든 애완동물로 보이는구나.’나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윤지은 씨, 윤 사모님, 이제 설명 끝났으니 전 이만 가볼게요.”나는 기분이 언짢아 일부러 호칭으로 두 사람과 거리를 두었다.그러자 이영미가 다급히 내 팔을 잡았다.“가긴 어딜 가?
그때, 슬리퍼 한쪽이 날아와 내 뒤통수를 가격했다. 그 힘이 어찌나 센지 나는 그대로 소파 위에 벌러덩 넘어지고 말았다.윤지은은 그 틈에 덮쳐와 가위로 내 옷을 마구 잘랐다. 그 모습에 나는 오금이 저려 났다.가위가 조금만 더 아래로 향하면 나는 정말 고자가 됐을지도 모른다.나는 다급히 윤지은의 손목을 움켜잡았다.“너무한 거 아니에요? 정말 저를 고자로 만들 작정이에요? 내 거로 얼마나 기분 좋았던지 잊었어요? 정말 잘라버리면 앞으로 누가 지은 씨 기분 좋게 해줘요?”윤지은은 차가운 눈초리로 나를 쏘아봤다.“그건 너 없이 나 혼자서도 해결해. 그런데 감히 우리 엄마를 노려? 그러면 죽어야지.”“전 지은 씨 어머님 노린 적 없어요. 정말 마사지해 드린 것뿐이에요.”“노린 적 없다고? 그런데 아까 더 세게 하라느니 거친 게 좋다느니 한 말은 뭔데?”“제가 너무 살살 누른다고 더 세게 누르라는 거였어요.”“헛소리하지 마. 누가 그 말을 믿을 줄 알고. 내가 들어왔을 때 네놈이 우리 엄마랑 같이 방에 들어가는 거 똑똑히 봤는데. 말해. 우리 엄마한테 나쁜 짓 하려고 했지?”“제가 여색을 밝히는 건 맞지만 짐승은 아니에요. 전에 지은 씨랑 그랬는데 어떻게 지은 씨 어머니를 노리겠어요? 내가 변태도 아니고.”윤지은이 뭐라 하기 전에 이영미가 초조한 모습으로 달려 나왔다.“지은아, 너희 둘... 정말 했어?”윤지은은 얼굴이 화끈 달아올라 목까지 빨개졌다.“엄마, 말 좀 예쁘게 하면 안 돼요?”이영미는 헤실 웃으며 말했다.“용천 호텔에서부터 두 사람 심상치 않다 생각했는데, 역시나 내 생각이 맞았어. 우리 예쁜 딸. 네가 남자랑 사랑도 나누어 봤다니 엄마는 너무 기뻐. 난 네가 불감증인 줄 알았잖아. 어때? 해보니까 기분 좋지? 한 번 하니 또 하고 싶고 계속하고 싶지?”윤지은의 얼굴은 점점 달아올라 빨갛게 익어 버렸다.“엄마. 좀 점잖게 행동해요.”“에이, 엄마도 다 겪었는데 뭘 그렇게 부끄러워해? 나랑 수호 씨 정말 아무것도 없었어.
“절대 못 그래요. 제가 그렇게 물으면 지은 씨는 분명 저를 잡아먹으려고 할 거예요.”나는 바로 거절했다.그러자 이영미는 한숨을 푹 쉬었다.“우리 딸이 정말 불감증은 아니겠지? 평생 결혼도 안 하고 남자도 안 만나려는 건가? 남자랑 한 번도 해보지 못한다는 건 너무 불쌍한데.”“크흠...”서슴없이 말하는 이영미의 모습에 나는 너무 놀라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수호 씨, 힘 좀 써봐. 아무 느낌도 안 나잖아.”“이 정도면 돼요?”“아니. 더 힘써 봐. 난 심플하고 거친 걸 좋아하거든.”“이렇게요?”“아, 좋아...”한편, 집 문 앞에 도착해 문을 열려던 윤지은은 안에서 어머니와 누군가의 이상한 대화가 들려 다급히 문에 귀를 바짝 댔다. 그리고 바로 우리의 대화를 들어 버렸다.그 순간 나와 제 어머니가 부적절한 관계를 맺는다고 착각한 윤지은은 얼굴이 잿빛이 되어 문을 확 열어젖히고 노기등등해서 들어왔다.“정수호, 이 개자식. 감히 우리 엄마를...”하지만 거실에는 아무도 없었다.참 공교롭게도 윤지은이 들어오기 바로 전 이영미는 소파가 불편하다며 침대에 누워 마사지를 받겠다고 했다.결국 나는 마지못해 이영미를 따라 방으로 들어갔다. 그 때문에 나와 이영미가 한 방에 같이 있는 장면을 윤지은에게 들키고 말았다.단단히 화가 난 윤지은은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손에 잡히는 대로 가위를 집어 들었다.“정수호, 이 개자식. 감히 우리 엄마를 넘봐? 내가 너 다시는 남자구실 못 하게 만들 거야.”나는 침실에 들어오기 전에 사실 도어락 소리를 듣고 뒤돌아보려고 했었다. 하지만 이영미가 얼른 마사지해달라고 재촉하는 바람에 바로 그걸 무시해 버렸다.고개를 돌렸을 때 이영미는 어느새 침대에 누워 있었다. 게다가 슬립이 너무 짧아 예쁜 다리가 훤히 드러났다. 이런 상태에서 마사지해 주는 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에 한참 동안 망설이고 있을 때, 이영미가 말했다.“안 될 거 뭐 있어? 집에 사람도 없는데. 무엇보다 당사자인 내가 괜찮다잖아. 얼른 눌
“이렇게요. 손가락을 구부리지 말고 쫙 펴야 해요.”나는 최선을 다해 시범을 보여주었다.그때 이영미가 갑자기 내 바지춤을 잡으며 말했다.“옷이 너무 커서 시선이 막히잖아. 옷 벗어 봐. 그래야 잘 보이지.”“어머님, 그건 안 돼요...”“그럼 옷을 들어 올리던가. 이렇게 하면 잘 안 보여.”나는 어쩔 수 없이 티셔츠 밑단을 위로 들고 다시 시범을 보여주었다.“보세요. 이렇게 손가락을 놓으면 검지와 중지 사이에 간격이 조금 생기는데 그 위치가 바로 우리가 찾으려는 혈자리예요.”“똑바로 앉아 봐. 잘 안 보여.”이영미는 또다시 나를 마구 잡아당겼다. 이러다가 바지가 벗겨질 것 같아 나는 다급히 일어나 벌렁거리는 심장을 다독이며 그녀와 거리를 유지했다. “어머님, 전 이미 충분히 보여줬으니 직접 찾아보세요.”“이렇게? 이것 봐, 내 손가락이 말을 안 듣는다니까.”이영미는 동안에 귀염 상이지만 손은 어찌나 둔한지 계속 틀렸다.결국 보다 못한 나는 직접 가르쳐주었다. 다만 자세만 잡아주고 혈자리를 찾는 건 역시나 이영미 스스로 찾게 했다.“혈자리를 찾았다면 가볍게 눌러 봐요. 시큰거리는지 확인해 봐요.”그 과정에 나는 이영미를 보지 않으려고 계속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있었다. 내 말에 이영미는 혈자리를 살짝 눌렀다.“아. 진짜 시큰거리는 것 같네. 앞으로 여기를 누르면 해소된다는 거지?”“네.”나는 그제야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자리로 돌아가 다시 이영미의 맥을 짚었다.이영미는 낮은 소리로 진작 물었던 걸 그랬다며 혼잣말했다. 이영미의 모습을 보니 연기 같지는 않았다. 아까 계속 내 바지를 내리려 해서 하마터면 이영미가 나한테 뭐라도 할 줄 알고 진땀을 뺐는데, 보아하니 내가 너무 예민했던 모양이었다.맥을 한참 짚어본 뒤 나는 상황을 말했다.“보아하니 편두통이 있으신 것 같아요. 손으로 마사지하면 두통이 사라질 거예요.”나는 이영미더러 소파에 기대앉게 하고 나는 소파 뒤에 선 채 머리를 마사지해 줬다.그때 이영미가 갑자
이영미는 개량한복 스타일의 슬립을 입고 있었는데, 고급스러운 연핑크색에 우아한 얼굴이 어우러져 섹시하면서도 단정한 분위기를 연출했다.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남자인 내가 이대로 들어가는 건 아무래도 격에 맞지 않는 것 같아, 나는 좋은 마음에 귀띔했다.“어머님, 외투라도 좀 걸치는 게 어때요?”“한여름에 외투는 무슨. 더워죽겠는데. 난 집에서 항상 이렇게 입어. 수호 씨도 익숙해지면 돼. 얼른 들어와.”이영미는 전혀 개의치 않는 듯 말했다. 상대도 괜찮다는데 내가 오히려 부끄러워하면 딴마음을 품고 있는 것처럼 보일 터라, 나는 결국 아무 말 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무의식적으로 주위를 훑었다.“혹시 혼자 계세요? 하정현 씨는요?”“내가 여기서 지내는 동안 정현이는 못 봤어. 지은이 말로는 B시에 가슴 보러 갔대.”집에 정말 이영미 혼자뿐이라는 걸 알게 된 나는 얼른 치료하고 빨리 떠날 생각뿐이었다. 시간을 끌다 윤지은이 갑자기 들이닥치면 나는 입이 열 개라도 설명할 수 없었을 테니까.“어머님, 혹시 어디가 불편하세요? 제가 봐 드릴게요.”나는 빨리 끝나려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그러자 이영미는 한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여기. 자꾸만 답답하고 피가 안 통하는 것 같아.”“우선 앉으세요. 제가 봐 드릴게요.”이영미는 순순히 소파에 앉았다.내가 맥을 짚는 사이 이영미는 커다란 눈을 깜빡이며 나를 바라봤다.“수호 씨는 내가 어떤 것 같아?”‘엥? 갑자기 왜 이런 걸 묻지?’“아름다우시죠. 관리도 잘하셨고.”나는 건성으로 대답했다. 그러자 이영미는 으쓱한 듯 제 얼굴을 쓰다듬었다.“당연하지. 나 이거 다 자연산이야. 화장도 안 했어.”“네.”“여자가 하고 싶을 때 어떤 방법으로 욕구를 억제해야 해?”갑자기 야릇해진 대화 주제에 나는 어색해서 코를 쓱 문질렀다.“따뜻한 물로 목욕하면 해소될 수 있어요.”“소용없던 걸? 내가 다 해봤어. 혹시 다른 방법은 없어? 예를 들면 혈자리를 마사지한다던가 혹은 침으로 자극한다던가.”
하지만 변석훈의 말은 역전하려는 내 꿈을 처참히 짓뭉개 버렸다.내가 풀이 죽어 있을 때 변석훈이 갑자기 또 입을 열었다.“비록 실력은 나처럼 될 수 없어도 기술을 많이 익히면 적어도 스스로 보호할 수는 있어.”‘말 좀 한꺼번에 하지. 희망 없는 줄 알고 놀랐네.’나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지만 감히 그걸 입 밖으로 내지는 못했다.“스승님께서 좀 가르쳐 주세요.”“여기 내 명함이야. 몸 다 회복하면 연락해.”나는 얼른 그 명함을 챙겼다.그 뒤로 변석훈은 나와 한참 동안 얘기하다가 윤해철을 찾아갔고, 윤해철도 운동이 거의 끝났는지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두 사람이 떠난 뒤 나는 이영미에게 바로 문자했다. 남편분 건강이 채 회복되지 않아 몸조리를 더 해야 한다고.문자를 받기 바쁘게 이영미는 곧장 나에게 전화했다.[대체 몸조리를 언제까지 해야 하는 거지? 벌써 보름 동안 몸조리했는데 아직도 안 나았다고?]“한약 치료는 원래 효과가 늦게 나타나요. 이건 급하면 안 돼요.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셔야 해요. 제가 윤 회장님 몸 다 치료해 드리면 회장님은 무조건 어머님을 모셔갈 거예요.”이영미는 짜증나는 듯 물었다.[그이가 나한테 전한 말은 없었어?]“무척 보고 싶다고 하셨어요. 하지만 아직은 어머님이 원하는 행복을 드릴 수 없어 모셔 와도 싸울 거라고 하셨고요. 그리고 젊을 때 절제를 몰랐다고 무척 후회하셨어요.”나는 이영미가 또 이상한 생각을 할까 봐 대충 그럴싸한 변명을 지어냈다.그 말을 들은 이영미는 살짝 놀란 듯 말했다.[그래도 양심은 있네. 그럼 시간 좀 더 준다고 전해줘. 그러니 수호 씨도 서둘러야 해. 되도록이면 우리 남편 몸 예전처럼 돌려 놔줘.]“그럼요. 그러니 어머님도 요즘 인내심 갖고 기다리세요. 지은 씨도 출근하랴 어머님 기분 맞춰드리랴 쉽지 않을 거예요.”[그걸 수호 씨가 어떻게 알아?]“당연히 지은 씨한테서 들였죠. 지은 씨가 저더러 어머님과 윤 회장님을 도와주라고 했거든요. 하지만 제가 방금 확인했는데 윤 회장님
“너무 긴장하지 마. 나도 수호 군이 나쁜 사람 아니라는 거 아니까. 그렇지 않으면 여기서 기다리지도 않았어.”윤해철의 말에 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럼 왜 기다리신 거예요?”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그러자 윤해철이 싱긋 웃으며 답했다.“저쪽 벤치에 앉아서 얘기하자고.”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윤해철과 함께 공원 벤치에 앉았다.“우리 집사람이 수호 군한테 뭘 시켰는지 나도 아네. 하지만 난 아직 집사람을 받아줄 수 없어. 몸 건강 때문이 아니라 회사 때문에. 우리 회사에 요즘 문제가 생겼는데 한동안은 그걸 처리해야 하거든. 그러니 우리 집사람 쪽은 수호 군이 시간 좀 끌어 줘.”윤해철이 상세한 사항은 설명하지 않았지만, 대충 무슨 뜻인지는 알 수 있었다.하지만 그 말을 듣고 나니 오히려 고민됐다.내가 이영미를 돕는 건, 이영미가 양동준을 설득해 나를 제자로 받게 해준다고 약속해서다. 하지만 윤해철을 돕는 건 나한테 아무런 이득이 없기에, 도와야 할지 무척 고민됐다.짝짝!내가 한창 고민하고 있을 때, 윤해철이 갑자기 손뼉을 쳤다. 그 순간 수풀 뒤에서 날카로운 눈매를 한 남자가 걸어 나와 윤해철에게 공손히 인사했다.“윤 회장님.”윤해철은 사람 좋은 미소를 하며 나를 바라봤다.“이 애는 내 개인 경호원 겸 기사인 변석훈이라고 하네. 이 애의 실력도 양동준 못지않아. 수호 군이 내 요구를 들어주면 석훈이더러 수호 군을 제자로 받아주라고 할게.”나는 도저히 내 귀를 믿을 수 없었다. 변석훈의 실력이라면 의심이 가지 않았다. 윤해철의 개인 경호를 맡을 정도라면 실력은 당연히 문제없을 거다. 하지만 일이 이렇게 발전할 거라고는 생각지 못해 한동안 아무런 반응도 할 수 없었다.“왜? 싫나?”윤해철은 여전히 웃는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좋아요. 너무 좋아요. 회장님 조건은 저한테 너무 이득이에요.”“하하. 별거 아니야. 말 한마디만 하면 되는 일이거든.”비록 그렇다지만 나는 너무 감격스러워,
“비꼬지 마세요. 저도 마음 같아서는 정태곤을 죽이고 싶어요. 그럴 능력이 안 돼서 비겁한 수단으로 상대한 거지.”“비겁하든 말든 뭔 상관이야. 목숨만 건지면 되지.”어제까지만 해도 나 역시 그렇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난 양동준만큼 강해지고 싶다. 아니, 심지어 양동준보다 더 강해지고 싶다. 그게 아니라면 임천호처럼 실력이 부족해도 권력이 있어 나를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는 부하를 거느리던가.그렇다면 결론은 하나다. 반드시 강해져야 한다.어젯밤은 운이 좋았던 거지만, 다음번에도 과연 그럴까?정태곤이 가더라도 또 강태곤이거나 서태곤이 오지 말라는 법은 없다.임천호의 부하가 얼마나 많은데. 수많은 사람이 임천호를 위해 목숨 바쳐 일한다. 때문에 나는 서둘러 강해져야 한다.내가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소여정이 갑자기 내 옆에 앉았다.“먹어. 왜 안 먹어?”나는 두 입에 제비집 한 그릇을 뚝딱 먹어 치웠다.“됐어요. 이제 배불러요. 다른 용건 있어요? 없으면 이만 가 줘요. 전 휴식할 테니까.”사실 나는 따로 할 일이 있다.내 말에 소여정이 씩씩거리며 나를 노려봤다.“그렇게 우리가 갔으면 좋겠어?”나는 차분히 해명했다.“저 정말 해야 할 일이 있어요.”“무슨 일인데? 그렇게 다쳤으면서 설마 여자 만나러 가려고?”“아니요. 중요한 일이에요!”나는 재차 강조했다.“그럼 같이 가.”“그럴 필요 없어요. 사적인 일이라 데리고 가기 불편해요. 저 정말 괜찮으니까 마음 놓고 가세요.”오랜 설득 끝에 나는 겨우 두 불청객을 집에서 내보냈다. 이윽고 외투를 걸치고 국민 공원으로 향했다. ‘오늘 윤 회장님 만날 수 있을까 모르겠네. 운에 맡겨야지.’만약 만나지 못한다면 다른 방법을 생각해 볼 수밖에 없다.하지만 뜻밖에도 내 운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윤 회장님. 이런 우연이. 또 만나네요.”윤해철이 오늘도 평행봉에서 운동하는 걸 본 나는 얼른 그에게 다가갔다.윤해철은 나를 흘긋 보더니 담담하게 말했다.
“정말 갔어요?”난 그 말이 믿기지 않았다. 정태곤은 절대 순순히 돌아갈 사람이 아니다.그때 소여정이 말했다.“갔어. 가는 거 내가 직접 봤어. 어젯밤 일은 정말 몰랐어. 만약 알았다면 분명 막았을 거야.”“소여정 씨 탓할 생각 없으니까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나는 진심으로 말했다.그러자 소여정이 의아한 듯 물었다.“정말 내 탓 안 해?”“소여정 씨가 정태곤더러 저를 죽이라고 시킨 것도 아니잖아요. 그런데 왜 소여정 씨를 탓해요?”“내가 수호 씨 찾아가서 정태곤이 살의를 느낀 거잖아.”소여정이 말했다.나는 그 말에 반박하지 않았다.“하긴. 그럼 다음부터 저 찾아오지 마세요.”“진심이야?”“농담이에요. 소여정 씨는 제 환자잖아요. 제가 제 환자를 치료하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오히려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더러운 거지.”문제에 직면했다고 자꾸 피하면 안 된다. 만약 내가 피하면 오히려 도둑이 제 발 저린 것처럼 보일 테니까.게다가 앞으로 따로 나가 사업하면 이런저런 문제에 직면할 텐데, 고작 이런 용기조차 없다면 사업도 하지 말아야 한다.내 말을 들은 소여정은 은근히 기뻐했다.“어디 있어? 내가 지금 갈게.”“오늘은 됐어요. 저 다쳐서 오늘 하루는 집에서 휴식하고 있거든요.”“치료하러 가는 거 아니야. 얼마나 다쳤나 보러 가는 거지. 수호 씨 입으로 내 의사라고 했잖아. 내 주치의가 나 때문에 다쳤는데 병문안 가는 건 당연한 거 아니야?”소여정의 말에 나는 반박할 수 없어 결국 주소를 알려주었다.하지만 놀랍게도 소여정은 혼자 온 게 아니라 백연우와 함께 왔다.“하. 나 오늘 바빠. 지은이 찾아가지 왜 나를 끌고 오는 거야?”“그걸 말이라고 해? 우리 성격이 안 맞는 거 알면서. 내가 부른다고 지은이가 따라오겠어?”두 사람은 중얼거리며 안으로 들어왔다. 심지어 소여정의 손에 보건 식품을 가득 들려 있었다.“그 정도 아니에요. 이거 다 찰과상이에요.”이 보건 식품은 모두 귀한 것들이라 분명 적지 않은 돈이 들었을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