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가요?”“서 쌤이 시크하기로 유명하잖아요. 그런데 그런 여자를 상대로, 아주 대단해요.”나는 다급히 해명했다.“흑심 품고 뭘 해보려는 건 아니었어요. 정말이에요... 차나 몰 것이지 뭘 그렇게 상관해요?”문득 운전기사 주제에 뭔 말이 그렇게 많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말할수록 상대가 서지예한테 흑심 품고 눈요깃거리로 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기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담배를 태웠다.나는 차에서 서지예를 기다렸다.하지만 30분이 다 되어 가는데 서지예는 돌아오지 않았다. 약간 걱정이 된 나는 얼른 그녀에게 연락했다.[다 됐어요?]서지예는 빠르게 답장했다.[그렇게 가고 싶어요? 뭘 그리 재촉해요?”‘헐. 황폐한 산속에서 위험할까 봐 그러지. 걱정해 줘도 난리야.’‘됐어. 마음대로 하라지. 상관 안 해.’나는얼른 소설 사이트를 열었다.한참 뒤, 서지예는 겨우 돌아왔다.얼굴이 붉고 색스러운 게 딱 봐도 홍수가 터진 모양이었다.서지예는 자리에 돌아와 기사한테 말했다.“됐어요. 출발해요.”나는 핸드폰을 거두고 서지예를 바라봤다.“내 가르침 어땠어요?”“나쁘지 않네요.”“그럼 성공하면 스승님한테 꼭 나를 스승으로 받아주라고 설득해 줘요.”“네.”서지예의 대답은 뜨뜻미지근했다.상대가 나를 상대하기 싫어하는 것 같아 나도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형수와 애교 누나는 이미 각자 집으로 돌아갔고 백연우와 사모님도 갈 곳으로 갔다.서지예는 나에게 어디로 가면 되는지 물어봤다.나는 아직 팔에 깁스를 하고 있고, 갈비뼈가 채 아물지 않아, 사모님은 하산하기 전에 집에서 잘 휴식하라고 당부했다.하지만 지금 집에 가기 싫어 서지예한테 말했다.“할 일 없으면 얼른 계획을 실행에 옮겨요.”“지금요?”“네, 빨리 실행해야 스승님을 빨리 차지하죠. 나도 하루빨리 스승님 제자가 될 수 있고요.”다른 건 모르겠고, 내가 하루빨리 양동준 제자가 되고 싶은 마음이 가장 컸다.서지예는 얼굴이 붉게 물들더니 기사한테 말했다.“기사님, 부근에 있
“부끄러울 거 뭐 있어요? 본인 입으로 그랬잖아요. 성인이 이런 곳 오는 거 정상이라고.”서지예가 쑥스러워하는 걸 알았기에, 나는 그녀를 위로했다.사람은 누구나 풋풋한 시절로부터 점차 성숙해져 가는 거다. 나도 그렇게 겪어 왔고. 때문에 서지예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서지예는 마음을 다잡더니 말했다.“알았어요. 이제 전화하면 돼요?”“네. 합리적인 이유를 대서 먼저 여기로 불러내요. 하지만 여기가 어떤 곳인지 절대 말하지 마요.”“알았어요.”소지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나서 곧바로 양동준한테 전화 연결을 시도했다.전화는 빠르게 연결되었다.서지에는 쓸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양동준, 나랑 술 마셔줄 수 있어? 나 지금 기분이 안 좋아. 여기로 좀 와줘. 기다릴게. 안 오면 죽도록 마실 거야.”서지예는 상대가 대답할 기회도 주지 않고 바로 전화를 끊었다.이제 양동준이 오기를 기다리면 된다.나는 대충 할 일을 끝낸 것 같아 입을 열었다.“난 먼저 가볼게요.”“어디 가게요?”그 질문에 나는 울지도 웃지도 못했다.“당연히 떠나야죠. 이따가 두 사람이 꽁냥거리는데 내가 끼어 있겠어요?”서지예는 갑자기 벌떡 일어서더니 잔뜩 긴장하고 불안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나 너무 떨려요. 망치면 어떡하죠?”“헐, 나를 상대할 때는 이러지 않았잖아요.”“그거야 그쪽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니까요. 그쪽 앞에서는 부담이 없는 거죠. 하지만 양동준은 좋아한단 말이에요. 내 몸과 마음을 다 줄 걸 생각하니 설레고 불안해요. 거절당할까 봐 두렵기도 하고요. 그러다가 내가 또 욱해서 싸움 날까 봐 걱정이기도 하고.”사람은 좋아하는 상대 앞에서는 쩔쩔매게 돼 있다.예전에 애교 누나 앞에서 나도 이랬으니까.나는 서지예 앞에 다가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긴장할 거 없어요. 좋아하는 사람과 하는 건 기분 좋은 일이에요. 어떻게 몰입해서 서로에게 좋은 추억을 남길지만 생각해요.”“될까요? 아니면 가지 마요.”“그건 무리한 요구라는 생
윤 사모님은 우아하고 기품 있었다.특히 피부는 탱탱하고 새하얀 데다 살짝 은색을 띠고 있었다.이곳에서 윤 사모님을 만난 게 너무나도 의외였다.“윤 사모님, 여기서 다 만나네요.”“팔은 왜 그래요? 다쳤어요?”“네, 부러졌어요.”“어쩐지 요즘 가게에 안 나오더라니. 요즘 수호 씨가 안 나와서 얼마나 재미없었는지 알아요?”윤 사모님 말에 나는 약간 쑥스러웠다.“저를 너무 띄워주네요. 가게에 저도다 실력 좋은 선생님들 많은데요.”“그런데 다들 수호 씨만큼 젊지도, 잘생기지도 않았잖아요.”윤 사모님은 나를 희롱하면서 이상야릇한 눈빛으로 내를 훑었다. 내 착각인지 모르겠지만, 윤 사모님 눈에 여러 가지 감정이 섞여 있는 듯했다.“내 집이 바로 요 근처인데, 차라도 한잔하고 갈래요?”“네? 아니에요, 일이 있어서 그건 생략할게요.”무엇보다 내가 떠나면 서지예가 나를 찾지 못할까 봐 걱정됐다.하지만 윤 사모님이 갑자기 말했다.“아, 머리가 어지러워서 걷지 못하겠는데, 부축해 줄 수 있어요?”윤 사모님이 일부러 이런다는 걸 알았지만 거절할 수 없었다.상대가 큰 고개인데 어쩌겠나?“알았어요. 집까지 부축해 드릴게요.”‘나도 환자인데 내 부축을 받으려 하다니, 참 지독하기도 하지.’나는 윤 사모님을 부축한 채 그녀가 살고 있는 동네에 도착했다. 그곳은 고급 주택 단지라 얼굴 인식을 해야만 들어갈 수 있었다.하지만 윤 사모님이 있으니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단지는 매우 컸는데, 무려 건물만 100여 채나 됐다. 윤 사모님이 살고 있는 곳은 97동이었다.윤 사모님이 데려간 집은 매우 컸는데 입이 떡 벌어질 지경이었다.게다가 채광도 좋고 집에 있는 가전제품은 대부분 AI 기능이 있었다.나는 참지 못하고 한 바퀴 빙 둘러봤다.그러다가 뒤를 돌아본 순간, 윤 사모님이 갑자기 나를 덮치며 내 목을 끌어안았다.나는 멍해졌다.“윤 사모님, 왜 이러세요?”나는 다급히 윤 사모님을 밀어냈다.그랬더니 윤 사모님은 생긋 웃으며 나를 노골적으로 쳐
“어쨌든 안 돼요. 강요하지 마세요. 계속 강요하면 저도 가만있지 않을 거예요.”윤 사모님이 어떤 사람인지 알았기에 절대 건드리면 안 딘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그리고 나는 권력도 실력도 없는 사람이다. 임천호 한 명만 해도 골치 아파 죽겠는데, 윤 사모님과 얽히면 어떻게 주을지도 모른다.이번에 용천 호텔에 다녀와서 한 가지 알게 된 게 있다면, 바로 여자를 만나려면 자본이 있어야 한다는 거다.만약 내가 임천호 같은 사람이면 고민 없이 윤 사모님과 몸을 섞었을 거다.하지만 난 아니다. 때문에 이 흙탕물에 뛰어들면 안 된다.“수호 씨, 축하해요. 테스트는 통과했어요.”심각한 표정으로 윤 사모님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이렇게 말해버리니 나는 어리둥절했다.“네? 무슨 상황이에요?”윤 사모님은 내 몸 위에서 일어나더니 단정하게 옆에 앉았다.“이건 다 테스트한 거예요.”“문제는 저를 왜 테스트하는 거죠? 뭘 하려고요?”나는 어안이 벙벙했고 머리가 멍했다.윤 사모님은 생긋 웃더니 나를 바라봤다.“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죠?”나는 고개를 끄덕였다.사실 윤 사모님이 부잣집 사모님이라는 것 외에 아는 게 없다.윤 사모님은 가볍게 웃더니 말했다.“사실 나한테 다른 신분이 있어요. 내 남편도 몰라요.”‘뭐지?’‘뭐 스파이 놀이라도 하는 건가?’나는 궁금하고 이해가 되지 않아 윤 사모님을 빤히 바라봤다.“무슨 신분인데요?”“킬러예요. 구체적인 킬러.”윤 사모님은 어두운 표정으로 매섭게 말했다.나는 몇 초간 멍해 있다가 입을 열었다.“에이, 그럴 리가요. 킬러라니, 말도 안 돼요.”“왜 말이 안 돼요?”“살기가 느껴지지 않으니까요. 소설이나 드라마 같은 데서 보면 킬러는 기본적으로 살기가 있는데 윤 사모님은 없어요.”“하하하... 수호 씨 너무 재밌네요. 소설과 드라마를 믿어요? 하지만 제대로 맞췄어요. 나 사실 킬러 아니에요. 장난친 거예요?”“그럼 다른 신분이라는 게 있긴 한 거예요?”“있죠.”“뭔데요?”“맞춰 봐요.”
“하지만 나도 세계적인 명탐정이 되는 게 꿈이에요.”나는 너무 웃어 눈물이 찔끔 나왔다. 그러면서도 윤 사모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네, 꼭 성공할 거예요. 성공하길 바랄게요.”윤 사모님은 나를 꼬집었다.갑작스러운 고통에 나는 얼른 용서해 달라고 애원했다.그러자 윤 사모님이 다리를 꼰 채 얼굴이 어두워져서 말했다.“수호 씨랑 같이 일해보려고 했는데 그러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졌네요. 그만 가 봐요.”“네? 저랑 같이요? 왜요?”“잘생겼으니까요. 가끔 미색을 희생해서 목표에 접근해야 할 때가 있거든요.”“전에 마사지숍을 열겠다고 했잖아요? 왜 갑자기 탐정이 됐는데요?”“마사지숍은 뻥이죠. 이 업계에서 위장은 기본이라고요. 알겠어요?”윤 사모님은 여전히 화가 가시지 않았는지 말하는 태도가 거칠었다.방금 전 농담이 지나쳤다는 생각에 나는 얼른 사과했다.“미안해요, 아까는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에요. 정말이에요. 우선 진정해요.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해요.”“자세히 말해 봐요.”“부잣집 사모님이 호의호식하며 생활을 누릴 수도 있는데 사모님은 본인 사업이 있잖아요. 혼자 뭔가를 이루려는 생각도 있고, 그래서 대단한 것 같아요. 존경스러워요.”내 말이 꽤 효과 있는지 윤 사모님 얼굴에는 또다시 미소가 번졌다.“진작 그럴 것이지. 내 탐정 사무소 규모가 꽤 커요. 게다가 다 큰 건만 받아요. 일거리 하나당 보너스도 몇백만 원은 돼요”“잘만 하면 연말에 인센티브도 있고, 1년에 적어도 몇천만 원은 벌 수 있어요. 맹인 마사지숍에서 일하는 것보다는 훨씬 좋아요. 어때요? 생각해 볼래요?”“이거 완전 사촌 동생 직원 스카우트하려고 물밑 작업하는 거잖아요. 두 분이 알면 어떡하려고요?”윤 사모님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말했다.“상관없어요. 두려울 것 없어요. 내가 수호 씨를 오랫동안 지켜봤는데, 우리 사무소에 마침 수호 씨처럼 젊고 잘생긴 데다 유혹에 쉽게 넘어가지 않는 친구가 필요해요. 여러 번 테스트했는데 수호 씨 만한 사람 없어요.”그 말
“이래도 안 돼요? 잘생긴 수호 씨.”윤 사모님은 나에게 윙크를 보내며 현금다발을 들고 앞에서 흔들어댔다.나는 여자의 유혹은 참았지만, 돈 앞에서 끝내 무너졌다.그도 그럴 게, 윤 사모님이 손에는 정확히 현금다발이 들려 있었으니까.내가 매달 140에서 160만 원 정도 번다고 해도 대출과 집 살 돈을 적금 들고 나면 남는 돈이 없다.하지만 윤 사모님과 손잡으면 매달 돈 생겨날 구멍이 더 생기는 거다.그러니 참을 수가 있나?나는 망설임도 없이 통쾌하게 대답했다.“좋아요. 할게요.”윤 사모님은 곧바로 나에게 계약서를 내밀었다.“우선 사인해요. 그러면 보너스 줄게요.”‘이렇게 좋은 일이 있다고?’나는 역시나 또 망설임 없이 바로 사인했다.윤 사모님은 서둘러 계약서를 챙겼다. 다만 내 온 정신은 보너스에 있었다.윤 사모님은 통쾌하게 손에 든 돈을 나에게 건넸다.나는 흐뭇하게 웃으며 손에 든 돈을 세어봤다. 그때 윤 사모님이 갑자기 말했다.“하하, 수호 씨 완전 속았네요. 그 돈은 수호 씨 1년 치 연봉이에요.”나는 어벙한 표정으로 굳어버렸다. 순간 손에 돈다발을 들었는데도 기쁘지 않았다.“부잣집 사모님이라는 분이 어떻게 사람을 속일 수 있어요?”“흥, 고작 알바생인 주제에 우리랑 비슷하게 받겠다고요? 꿈도 야무지네요. 마사지숍 그만두고 여기 일에만 전념하면 또 몰라.”‘역시 다 나를 속이는 수단이었어!’‘내가 아직 너무 어려서 된통 속았네.’나는 화가 나서 손에 든 돈을 던져버리고 싶었다.윤 사모님은 그런 내 마음을 꿰뚫어 보기라도 한 듯 눈웃음을 쳤다.“화나요? 돈 갖기 싫으면 돌려줘요. 천만 원이라, 스파 몇 번 받을 수 있겠네.”나는 그 말에 서둘러 돈을 챙겼다.천만 원은 나한테 정말큰 돈이다. 윤 사모님이 스파로 모두 써버리면 마음 아플 거다.“이제 볼 일 없죠? 없으면 저는 이만 갈 게요.”“있어요.”윤 사모님이 째려보는 바람에 나는 마지못해 다시 자리에 앉았다.“무슨 일인데요? 말해요.”“우리 일 내
나는 단번에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채 아무 말 없이 묵묵히 차에 올랐다.그렇게 한참 동안 기다려도 서지예와 양동준은 나오지 않았다.참지 못한 나는 결국 서지예한테 문자했다.[어떻게 됐어요? 성공했어요?]서지예는 계속 답장이 없었다.그렇다고 재촉할 수도 없고, 그저 묵묵히 기다리기만 했다.그 뒤로 한참이 지나자 양동준의 모습이 보였다.나는 감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상대가 내 우상이니까.하지만 서지예와 함께 나오지 않은 걸 보니 왠지 불안한 예감이 들었다.나는 문을 열고 차에서 내려 양동준한테 달려갔다. 나는 흥분된 마음을 도저히 숨기지 못했다.“스, 스승님.”양동준은 미간을 찡그린 채 나를 바라봤다.“누구더러 스승님이라는 거예요?”“양동준 씨요. 엄청 강하던데, 스승님으로 모시고 싶어요.”“난 제자 받는 거 안 좋아해요.”양동준의 싸늘한 거절에 나는 다급히 말했다.“서지예 씨한테서 못 들었어요?”“못 들었어요.”‘이 여자가! 뭐 하자는 거지? 내가 그렇게 도와줬는데, 나는 도와주지도 않는다고?”너무 실망이었다.그때 양동준이 떠나려고 했다.나는 어렵게 얻은 기회를 놓칠까 봐 얼른 뒤따랐다.“스승님, 어디 가시게요?”“스승님이라고 부르지 마요. 그리고 그 같잖은 아이디어 내준 게 정수호 씨죠?”분위기를 보니 이대로 순순히 인정할 수 없어 나는 거짓말했다.“서지예 씨가 동준 형님을 너무 좋아하는 것 같아서요. 아주 보고 싶어 죽겠다고 해서 아이디어 살짝 낸 것뿐이에요. 하지만 이런 곳에 온 건 제 아이디어가 아니라 서지예 씨 본인 아이디어예요.”“앞으로 그러지 마요.”양동준은 차갑게 대꾸했다. 그가 또 떠나려고 하자 나는 또 그 뒤를 졸졸 따라붙었다.양동준이 뒤돌아 나를 바라봤다.“왜 따라와요?”“동준 형님, 저 정말 동준 형님을 스승님으로 모시고 싶어요. 제자로 받아줘요.”양동준은 나를 위아래로 훑어 한번 쓱 훑었다.“난 그쪽 가르쳐주지 않을 거예요. 그러니까 가요.”“싫어요. 저 마음속으로 이미 동
“수호 씨, 왜 이제야 왔어요?”내가 도착하자마자 애교 누나가 걱정스레 물었다.나는 기운 없이 대답했다.“말도 마요. 서 쌤 도와주느라 지체됐어요. 누나, 저 너무 피곤해서 쉬고 싶어요.”말을 마친 나는 곧장 방으로 걸어갔다.“어, 잠깐만요.”“왜요?”내 어리둥절한 표정에 애교 누나가 말했다.“우선 자지 마요. 나랑 같이 남주 보러 가요.”“남주 누나는 왜요?”“가면서 말해줄게요.”애교 누나가 한숨을 푹 쉬는 바람에 왠지 불길한 기운이 들었다.그 순간 졸음도 싹 가셔 얼른 누나를 따라나섰다.애교 누나가 운전대를 잡았고, 나는 조수석에 앉았다.그러면서 가는 길에 누나는 남주 누나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알고 보니 남주 누나가 신고 당해 정직당하고 조사받는 중이었다.“남주 누나 남편은 알아요?”나는 걱정스레 물었다.그러자 애교 누나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정훈 씨는 아직 몰라요. 하지만 둘 다 공무원이라 조만간 알게 될 거예요.”그렇다면 상황은 최악이다.남편이 만약 그 사실을 알면 분명 이혼하려 들 테니까.남주 누나는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 그런데 만약 이런 일로 남편과 이혼하게 되면 어쩌지?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지만 마음은 무거웠다.약 30분 정도 지나자 남주 누나가 사는 동네에 도착했다.남주 누나 집에 도착해 보니 누나 외에 또 다른 여자가 있었다.애교 누나 말을 들어보니 감사원 쪽 사람이 남주 누나를 감독하러 온 것일 수 있다고 했다.상대의 신분을 들으니 온몸이 뻣뻣하게 굳었다.하지만 남주 누나는 옆에 사람이 있건 말건 아무 일 없는 사람처럼 먹고 마시며 즐기고 있었다.나와 애교 누나는 남주 누나 맞은편에 앉았다.“남주 누나, 지금 어때요?”남주 누나는 먹으면서 대답했다.“어떻긴. 정직당했지. 감시자를 붙인 거 안 보여?”“그럼 뭐라도 알아냈대요?”“내가 뭐 횡령한 것도 아니고, 부패를 저지른 것도 아닌데, 뭘 알아내겠어?”남주 누나는 일부러 상대가 듣도록 말한 거였다.“그럼...”
전에는 누가 와서 소란을 피울까 봐 민우더러 나와 함께 가게에서 지내자고 했지만, 지금 사장님 댁에 머물고 있는데 민우까지 데려올 수는 없었다. 때문에 뭐든 나 혼자 해결해야 했다.민우를 집에 데려다 두는 길에 그는 나에게 함께 사장님 댁에 있어 달라냐며 물었다. 그러면 서로 보살필 사람이 있다면서.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나도 그걸 생각해 보지 않은 적 없어. 하지만 사장님을 돌보려고 그 집에서 지내고 있는데 너까지 데려가면 이상하잖아.”“난 그 개자식들이 또 너한테 무슨 짓 할까 봐 그러지.”“나도 무서워. 하지만 이미 준비해 뒀어.”나는 의자 밑에서 도구 몇 개를 꺼냈다.민우는 그 도구들을 손에 들고 무게를 가늠해 보더니 말했다.“이 도구들은 조금 도움이 될 뿐이야. 그래도 내가 너한테 가르쳐준 방법을 사용해.”민우는 말하면서 손을 움켜쥐는 동작을 했다.그 동작에 나는 풉, 하고 웃음이 터져 버렸다.“그 방법 확실히 좋더라...”우리가 한창 얘기하고 있을 때 백미러에 언뜻거리는 차 한 대가 비쳤다.무의식적으로 뒤에 따라붙은 사람이 운전할 줄 모른다며 투덜거리던 나는 갑자기 이상한 낌새를 챘다. 그도 그럴 게, 뒤에서 달려오는 차는 속도가 아주 빨랐는데 마치 나를 강제로 세울 것처럼 굴었으니까.“잘 앉아.”나는 불안한 예감에 다급히 액셀을 밟아 속도를 냈다.다만 내 차의 유일한 단점은 속도를 너무 빨리 낼 수 없다는 거다.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뒤 차에 따라잡혔다.놈들은 내 차를 강제로 멈추게 할 작정인 듯했다. 하지만 나는 멈추고 싶지 않았다. 상대방 차량은 승합차였는데, 그런 승합차는 용량이 커 적어도 열댓 명을 태울 수 있었다.만약 차에서 열 몇 명이 우르르 내리면 나와 민우 둘이 대처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때문에 나는 액셀을 밟았다. 하지만 승합차 두 대는 좌우에서 협공하며 내 차를 가운데 몰아 끼긱끼긱, 하며 긁히는 소리가 났다. 분명 차가 내는 소리였지만 내 살점이 뜯겨나가는 기분이었다.아직 차 할
내가 한창 망설이고 있을 때 사장님도 말을 보탰다.“수호 씨, 남아서 좀 도와줘. 우리 마누라가 요즘 너무 힘들어서 그래. 어릴 때부터 금지옥엽으로 자라나 이런 고생 언제 해 봤겠어? 이것 봐, 피곤해하는 거 보이지? 나도 솔직히 마음 아파.”사장님과 사모님이 모두 나를 남으라고 설득하는 상황이라 나도 더 이상 거절하기 곤란했다.“그래요. 제가 남아서 도와드릴게요.”사장님이 드시고 사용해야 하는 약이 너무 많아 확실히 번거롭긴 하다. 때문에 나도 사모님 혼자 사장님을 케어하지 못할까 봐 걱정이 됐다.사모님은 내 말에 이내 환한 표정을 지었다.“수호 씨는 아무것도 가져올 필요 없어요. 여기 모두 있으니까. 전처럼 계속 객실에서 자면 돼요. 그곳 채광이 좋고 공기도 좋아요...”사모님은 내가 이곳에서 지내는 데 불편해할까 봐 끊임없이 말을 늘어놓았다.사장님 내외가 사는 집은 모두 고급 가구를 사용했는데, 내가 이곳에 남아 도와주지 않는다면 이런 걸 누려볼 기회가 어디 있을까?사장님 내외는 나한테 너무 잘해줘서 내가 다 미안할 따름이었다.사장님 몸은 우선 한약으로 며칠간 보양해야 하지만 약을 다 먹으면 사실 힐 것도 없어 나는 가게 일을 돌볼 수 있었다.요 며칠간 주해진은 소란 피우러 찾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이대로 포기했다는 건 아니었다. 때문에 나는 동료들한테 주의할 것을 당부했다.한편 주해진은 그날 도망치듯 가게를 떠난 뒤 마음이 계속 안 좋았다.하지만 최근 일손을 구해봤지만 누구도 도와주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그 첫째 이유는 주해진이 깡패라 정계와 연이 닿는 지인이 적었고, 두 번째 이유는 사촌 형이 다시는 화인당을 다시는 건드리지 말라고 했기 때문이었다.주해진은 입으로는 싫다고 했지만 요 며칠간 그래도 제 분수를 지켰다. 다만 김진호 병문안을 간 뒤, 마음이 또 바뀌었다.김진호는 나를 여자 등에 빨대 꽂고 출세한 놈으로 말하면서, 깡패인 주해진이 나 같은 등신 하나 해결하지 못한 게 알려지기라도 하면 얼마나 웃음거리
어르신도 허허 너털웃음을 지었다.“너도 잘했어. 처방한 게 거의 다 맞췄으니까. 새내기 같지가 않아. 네 할아버지한테서 많이 배웠나 보네?”나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그럭저럭요. 그런데 그때는 너무 어려 할아버지의 모든 재능을 배우지 못한 게 아쉬울 따름이에요.”“괜찮아. 앞으로 내가 네 할아버지니까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언제든 나한테 물어봐.”나는 얼른 감사를 표했다.어르신과 약처방을 확인한 뒤, 나는 화인당에 가 이틀 치 약을 짓고 동료들에게 사장님이 퇴원했다는 사실을 말했다.다들 사장님이 다 나은 줄 알고 기뻐하는 눈치였다. 특히 민우는 슬그머니 내 팔을 잡으며 말했다.“사장님이 돌아오면 우리 따로 나가는 거지?”나는 얼른 민우의 말을 잘랐다.“사장님이 돌아와도 이런 말은 급하게 하면 안 돼. 화인당이 안정되고 가게에 일손이 부족하지 않을 때 떠날 수 있어. 우리가 다른 길을 찾아 나서는 건 자신을 더 발전시키기 위해서지만, 화인당에 누를 끼쳐서는 안 되지. 사장님이 우리 둘한테 얼마나 큰 은혜를 베풀었는지는 내가 말 안 해도 알잖아.”민우는 다급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내가 생각이 짧았네. 앞으로 절대 함부로 말 안 할게.”“참, 요즘 태진 선배는 어때? 가게에서 본 적 있어?”나는 가게에 들어오자마자 모태진이 오늘 없다는 걸 발견했다.내 말에 민우가 대답했다.“누가 알겠어? 또 그깟 일 때문에 가게에 피해 갈까 봐 안 나왔겠지. 상관하지 마. 다 큰 어른이 본인 몸 하나 건사 못 하겠어? 수호야, 아직은 따로 나가는 말은 안 할게. 하지만 천수당을 관찰하는 건 괜찮지?”“관찰하는 건 괜찮아. 하지만 함부로 하지 마.”나는 신신당부했다.그러자 민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다는 뜻을 내비쳤다.나는 약을 가진 후 다시 사모님 댁으로 돌아갔다.이 약 일부는 목욕용이고 일부는 마시는 약이라 나는 위애 상세하게 적어 따로 분리했다. 그리고 먹는 약은 모두 달여 진공 포장한 뒤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이렇게 하면 마실 때 데
윤지은은 보기 드물게 이번만큼은 내 편에 섰다.“동의하기 싫어도 동의해야지. 내가 진작 서약이 부작용이 있고 중독성이 커서, 장기적으로 이렇게 치료하면 환자가 오히려 탈탈 털릴 거라고 말했는데. 유미한테는 내가 말할게. 걔네 부모님은 아무튼 B시에 계시잖아? 한동안 돌아올 수 없으니까 당분간 비밀로 하지 뭐.”윤지은이 전에 그렇게 말하지 않았던 건 이 병원에서 근무하는 의사이기 때문이다. 서의학 의사면서 서의학이 안 좋다고 하면 분명 안 좋은 영향이 있을 거다.하지만 친구 남편인 정호섭의 생명이 달린 일이니 더 이상 거리낄 것도 없었다. 무엇보다 친구 임유미가 가장 마음에 걸렸다.만약 정호섭한테 무슨 일이 있으면 임유미는 어떡하라고?나는 사장님을 바라봤다.“그래도 되겠어요?”사장님은 효심이 강한 분이라 장인 장모를 속이는 게 안 좋다고 여겼다. 게다가 두 분이 지금껏 사장님을 길러왔으니.하지만 사장님이 고민하는 동안 윤지은은 이미 사장님 대신 결론을 내렸다.“뭐 그렇게 생각할 게 많아요? 두 분한테 말하면 절대 동의 안 할 거예요. 이 일은 내가 말한 대로 해요. 나도 한의학을 전공했던 사람이라 파악이 없으면 이런 말 안 해요.”나와 사장님 모두 머뭇거렸는데, 윤지은이 이런 태도로 나오니 오히려 감화되었다.나는 윤지은이 진심으로 존경스러웠다. 뭐든 엄격하고 신속하게 하는 모습은 내가 따라 배울 점이었다.윤지은은 나더러 병원에 남아 사장님을 돌보게 하고 본인은 유미 사모님을 모셔 오면서 한의 치료 방법에 대해 말해주겠다고 했다.그사이 나는 사장님이 아침 식사를 드시는 걸 도와드렸지만, 사장님은 입맛이 없다면서 조금밖에 드시지 않았다.요즘 매일 많은 양의 약을 먹어 위장이 망가져 음식을 먹는 것조차 무리였다.이렇게 부작용이 큰 게 바로 서양의학의 가장 큰 단점이다.나도 사장님을 강요하지 않았다.환자가 입맛이 없다는데 억지로 먹게 하면 오히려 위장의 부담을 더해주기 때문이다.나는 따뜻한 물을 받아와 사장님의 얼굴과 몸을 닦아주었다.
어르신은 내가 보인 자신감에 매우 만족해했다. 하지만 주의할 점을 귀띔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침술 하기 전에 모든 서약을 끊고 한동안 몸보신해야 해. 지금 너의 사장님 몸은 너무 나약해서 기혈이 거의 다 사라진 거나 다름없어. 이 상태로 침술 할 수 없어. 이 일은 먼저 환자 가족들과 상의하고 동의를 구한 뒤 진행해.”나는 고개를 끄덕였다.때마침 윤지은이 회진하러 와서 나는 그녀더러 사장님을 잠시 봐달라고 하고는 어르신을 모시고 밖으로 나갔다.“됐어. 데려다 줄 필요 없어. 이 부근에 마친 공원이 있으니 나도 좀 산책하다가 택시 타고 가면 돼. 네 사장님 상황은 서둘러서 가족과 상의해. 더 지체되면 천지신명이 와도 어쩔 수 없어.”어르신의 긴박한 말투에 나는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고마워요, 할아버지.”나는 진심으로 어르신께 감사했다. 90세가 넘는 분이 내 전화 한 통에 아무 이유 없이 도와준 거니까.이 은혜는 꼭 마음에 새길 거다.어르신은 허허 너털웃음을 지었다.“사람을 구하는 게 무엇보다도 중요하지. 이건 나를 위해 덕을 쌓는 거야. 너도 얼른 가 봐. 이 일은 지체하면 안 된다는 거 잊지 말고.”나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어르신이 뒤돌아 떠난 뒤에야 나는 병실로 돌아갔다.다른 사람은 이미 떠나고 윤지은만 병실에 남아 있었다.나는 얼른 윤지은과 사장님께 방금 전 상황을 말씀드렸다.“수호 씨, 한의학 치료법으로 정말 내 병을 완화할 수 있어?”사장님은 나를 조금 믿는 눈치였지만 그래도 한번 확인했다.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진지하게 설명했다.“아까 보신 분이 우리 마을에서 엄청 유명한 명의세요. 젊을 때 저희 할아버지랑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사람들 병을 치료해주셔서 엄청 유명해요. 저도 그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어본 건데 정말 방법이 있다더라고요.”“사장님이 입원한 뒤 몸 상태가 확실히 점점 나빠지셨잖아요. 이 부분은 제가 말하지 않아도 사장님도 느끼셨을 거예요. 서약은 비록 효과는 빠르지만 부작용도 커요. 사장님 몸은
“그럼 왜 진작 데려오지 않았어?”소여정은 나를 나무라는 듯 노려봤다.“저도 어제저녁에 갑자기 생각난 거예요. 외지에서 학교 다니다 보면 고향에 내려갈 일이 적잖아요.”나는 얼른 설명했다.그때 소여정이 크게 하품했다.“하, 피곤해. 난 먼저 휴식하러 테니 여기 지키고 있어.”“네, 먼저 들어가 쉬세요.”소여정은 정말 피곤했는지 얼굴에 피곤함이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사실 소여정도 따지고 보면 참 좋은 사람이다. 친구 남편이 아프다고 이렇게 고생도 마다하고 밤새도록 환자 곁을 지켜줬으니 말이다. 그것도 임천호한테 그렇게나 예쁨 받는 사람이.이렇게 의리 있는 친구를 좋아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을까?소여정이 가니 정태곤도 따라 나갔다.정태곤은 하루 종일 아무 말도 없이 수문장처럼 꿋꿋이 소여정을 지키기만 한다.다행히 요즘 두 번이나 만났는데 정태곤은 나에게 싸움을 걸어오지 않아, 나도 정태곤을 없는 사람 취급하고 있다.나는 얼른 병상 앞에 와서 진료 과정을 묵묵히 관찰했다.어르신이 진료할 때 우리 할아버지와 매우 닮았다. 모두 진지하고 엄격해 나는 감히 뭘 물어보지도, 방해하지도 못했다.나도 한의학을 전공한 사람이기에 한의사가 환자의 맥을 짚어보는 과정에 누군가 물어보면 짜증 난다는 걸 잘 안다.얼마 뒤 어르신이 맥을 짚던 손을 내리자 나는 얼른 물었다.“할아버지, 어때요?”어르신은 제 수염을 한번 쓸며 말했다.“상황이 좋지 않아. 만약 계속 서의학 방법으로 치료하면 상태가 더 나빠질 거야.”나도 사실 처음에 똑같은 의견이었다. 다만 이제 갓 졸업한 사회 초년생이 한 말에 얼마나 힘이 있을까? 아마 말해도 믿는 사람이 없을 거다.그런데 어르신의 말이 내 추측을 증명한 셈이다.“침술과 한약 치료를 병행하는 게 더 좋은 거죠? 그래야 근본을 다지고 원기를 북돋울 수 있어 간의 손상을 줄일 수 있는 거죠?”나는 내 견해를 말했다. 무엇보다 어르신처럼 의술이 대단한 분이 앞에 계시는데, 이 기회에 잘 배워둘 작정이었다.그때 어르
어르신은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네 할아버지가 살아 있을 때 너에 대한 얘기를 한 적이 있다. 너도 한의학을 배울 좋을 인재라고 하면서 나더러 나중에 많이 도와주라고 한 적도 있어.][요즘 젊은 사람들은 우리 같이 이리저리 떠돌며 의학을 배운 사람을 믿지 못하잖니. 대부분 학교에서 정식적인 교육을 받아서. 하지만 나한테 있는 방법이 민간요법이고 이상한데 받아들일 수 있겠어?]“우리 사장님 병만 고칠 수 있다면...”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어르신이 끼어들었다.[고칠 수는 없어. 간병은 억제할 수 있을 뿐이지 완치는 어려워.]내가 말실수했다는 걸 깨달은 나는 얼른 말을 바꾸었다.“억제해도 괜찮아요. 적어도 고통을 줄여 주시면 돼요.”[그래. 날 믿으면 됐어.]나는 순간 너무 감격스러워 다급히 말했다.“그럼 지금 어디 계세요? 제가 모시러 갈게요.”어르신은 주소를 알려주었다. 그 주소는 유미 사모님 집과 그리 멀지 않았다.나는 이 소식을 서둘러 사모님께 알리지 않았다. 어르신이 정말 사장님의 고통을 줄여줄 수 있을지 아직은 몰랐으니까. 만약 그러지 못한다면 지금 말해봤자 오히려 실망만 할 거다. 게다가 사모님께 서프라이즈도 해주고 싶었다.때문에 나는 아침을 사러 가는 척 말하고 차를 몰고 어르신을 모시러 갔다.20분 뒤, 나는 어르신을 만났다.하지만 어르신을 보는 순간 나는 내 눈을 믿을 수 없었다. 분명 90이 넘는 노인이었는데 놀랍도록 정정했다. 이러니까 이 어르신이 선단을 드셨다며 마을 사람들이 그렇게 떠들어 댄 거였다.물론, 나는 사람을 장생불로 하는 선단 같은 게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어르신은 그저 보양할 줄 아는 거다. 게다가 자식들이 모두 효도하니 뭘 해도 기분이 좋을 거고, 그러니 자연스레 고민 없이 사는 거다.“봉섭 할아버지, 저 정수호예요.”나는 먼저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어르신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위라래로 살펴봤다.“네가 어릴 적에 네 할아버지가 너를 우리 집에 자주 데려왔었는데, 눈 깜짝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요. 고용주가 까라면 까야지.”윤미화는 옷을 갈아입고 서둘러 문을 나섰다.한순간 집에는 나와 사모님 둘만 남게 되었다.나는 사모님 방 쪽을 한번 확인했다. 문이 꼭 닫혀 있는 데다 아무 인기척도 안 들리는 걸 봐서는 이미 자는 모양이었다.나는 다시 객실로 가지 않고 아예 거실에 자리를 잡았다. 그러면 사모님 방에서 인기척이 들리면 바로 알 수 있으니까.소파에 누운 지 얼마되지 않아 사모님 방 쪽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얼른 사모님을 위로해주고 싶었지만 야심한 밤에 여자 방을 들락거리는 건 좀 아닌 듯했다.하지만 아무것도 못들은 척하자니 또 소리가 너무 또렷하게 들려 순간 모순이 됐다.결국 나는 결심을 내리고 노크했다.“사모님, 괜찮아요?”“괜, 괜찮아요. 상환 말고 얼른 자요.”사모님은 흐느끼는 목소리로 말했다.“더 이상 울지 마요. 더 울면 몸 상해요. 그러면 사장님은 어떡해요?”내 말에 큰 힘이 없다는 걸 알았지만 그래도 나는 사모님을 위로하고 싶었다.그때 안에서 ‘네’라는 나지막한 소리가 들리더니 더 이상 말소리가 들리지 않았다.내 위로가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걸 알고 있다. 때문에 나는 무거운 마음으로 다시 소파 쪽으로 돌아갔다.이 상황에서 아무리 위로해 봤자 소용이 없다.하지만 그 순간 문득 한 사람이 떠올랐다.그분은 나와 한 동네에 살았던 어르신인데, 젊을 적에 내 할아버지와 어울려 지내며 의술을 익혔다.올해로 90살쯤 됐는데 이상하게 그분은 한 번도 앓은 적이 없다. 마을 사람들 말로는 그 어르신이 스스로 몸조리해서 건강한 몸을 유지했다고 한다.그 어르신한테 사장님을 고칠 방법이 있는지는 모르나 나는 한번 시도해 보고 싶었다. 그래도 시도해 보는 게 손 놓고 있는 것보다 나을 테니까.다음 날 아침, 나는 어머니한테 전화해 사장님 상황을 대충 말씀드리고 어머니더러 그 어르신한테 슬쩍 물어보라고 부탁했다.어머니도 우리 사장님이 좋은 분이라는 걸 알았기에 아침 일찍 식사도 하지 않고 어르신
‘장난하나? 주머니에 들어간 돈을 다시 토해내라니. 절대 안 돼.’나는 돈도 없는 주머니를 무의식적으로 꽉 쥐었다.“그건 안 돼요.”“그럼 얌전히 여기 있다가 내가 없을 때 유미 대신 좀 돌봐 줘.”난 여전히 살짝 거부감이 들었다.“윤 사장님, 제가 싫은 게 아니라, 유미 사모님 평판이 나빠질 거예요.”“수호 씨가 유미를 노리지 않는 이상 평판이 나빠질 일은 없잖아. 오래전부터 유미를 노리고 있다면 말이 달라지겠지만...”나는 얼른 도리질했다.“그런 적 없어요. 전 사모님을 항상 존경해 왔어요.”“그럼 쓸데없는 걱정하지 말고 남아.”윤미화의 태도가 너무 강경한 바람에 나는 마지못해 동의했다.두 사람은 나에게 객실을 내주었다.유미 사모님의 집은 윤미화 집 못지않게 널찍하고 사치스러웠다. 방 4개에 거실 2개인 데다 인테리어가 화려했다.객실 침대에 누워 보니 평범한 침대와는 차원이 달랐다. 보아하니 가격이 만만치 않은 모양이었다.하지만 나는 이런저런 생각에 사로잡혀 잠이 오지 않았다.천수당, 이태웅, 왕정민이 하나하나 내 뇌리를 스치다가 결국에는 동성 형까지 떠올랐다.동성 형을 떠올리니 내 마음은 더 복잡해졌다.용천 호텔에서 돌아온 뒤로 동성 형과는 한 번도 연락한 적이 없다.형수는 동성 형이 이제는 대놓고 밖으로 나돌고 있다고 했었다.형수도 지금 여러 가지 일 때문에 머리가 복잡할 거다.나는 얼른 문자로 형수 동생은 어떻게 됐는지 물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형수한테서 답장이 왔다.[아직도 싸우고 있어요. 이제는 아예 각자 변호사를 고용해서 소송을 진행 중이에요. 결과가 빨리 나오지 않을 것 같아서 난 집에 돌아왔고요.][그럼 형은요? 형은 요즘도 집에 안 들어와요?][들어왔어요. 하지만 계속 각방 써요.]그 말에 나는 너무 놀라 되물었다.[왜요?][왜긴요, 요즘 일이 바쁘다면서 밤 늦게 들어오는데, 나를 방해하기 싫다면서 따로 자요.]그건 다 핑계일뿐이다. 사실 형수는 누구 보다도 그걸 잘 알고 있지만 티를 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