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지은이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 게다가 지금 이랬다가 다음 순간 바로 돌변해서 나를 죽이겠다고 달려들거나 쌀쌀맞게 굴지도 몰랐으니까.윤지은은 조용할 때는 분명 아름다운 요정 같은데, 미치면 정신병자나 다름없다.그런 미친 텐션을 나는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윤지은은 나를 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그 순간 내 머릿속에는 ‘팜므파탈’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이 단어로 윤지은을 형용하기에는 다소 합당하지 않았지만, 이 순간 내가 본 윤지은은 팜므파탈 그 자체였다.미소가 무서울 정도로 섬뜩했으니까.“대, 대체 뭘 하려는 거예요?”나는 너무 긴장해서 말까지 더듬었다.물론 얼마 전에 윤지은과 잤지만, 또 그게 후회돼서 내 거시기를 잘라버리겠다고, 혹은 내 껍질을 벗겨버리겠다고 달려온 것일까 봐 무서웠다.그런데 그때 윤지은이 나에게 핸드폰을 건넸다. 그 핸드폰은 다름 아닌 내 것이었다.갑자기 핸드폰을 돌려주는 윤지은의 뜬금없는 행동에 나는 어안이벙벙했다.‘이 여자가 이렇게 착하다고? 분명 목적이 있을 거야. 절대 착한 마음으로 나한테 잘해줄 사람이 아니야.’때문에 나는 핸드폰을 받지 않고 조심스럽게 물었다.“무슨 뜻이에요? 이제 나 풀어주는 거예요?”나는 윤지은의 생각을 한번 확인하고 싶었다.그러자 윤지은이 씩 웃으며 말했다.“폰은 돌려줄게. 받아. 싫다면 내가 이 자리에서 망가뜨려 줄 수도 있고.”나는 얼른 핸드폰을 받아 들었다.내 핸드폰인데, 당연히 가져야지.나는 핸드폰을 받은 순간 통화 내역부터 확인했다. 그리고 애교 누나가 나한테 전화를 십몇 통 걸고, 문자도 수두룩하게 보냈다는 걸 발견했다.애교 누나는 분명 나를 걱정했을 거다. 때문에 나는 얼른 누나한테 전화했다.연결음이 몇 번 울리지도 않고 연결이 됐다.“여보세요? 애교 누나, 저 괜찮아요. 걱정할 필요 없어요. 실수로 핸드폰을 잃어버려서 방금 찾았어요.”나는 애교 누나한테 거짓말했다. 애교 누나가 나를 걱정하는 게 싫었으니까.
[왜 그래요? 왜 울어요?]애교 누나는 나를 걱정했다.나는 여전히 흐느끼며 말했다.“너무 기뻐서 그래요. 정말 너무 보고 싶어요.”이 말은 내 진심에서 우러나온 거다. 나는 정말로 애교 누나와 형수가 보고 싶었다.두 사람이 오면 윤지은이 더 이상 어떻게 날 괴롭힐지 두고 보자는 오기도 동반됐다.이 나쁜 여자는 항상 나를 괴롭히지 못해 안달이지만, 애교 누나와 형수는 다르다.두 사람은 나를 항상 예뻐한다. 때문에 애교 누나와 형수가 빨리 오기를 바랐다. 그러면 두 사람이 내 편을 들어줄 테니까.애교 누나와 한창 통화하니 핸드폰 배터리가 나가버렸다.하지만 내 기분은 많이 좋아졌다.나는 웃으며 윤지은을 바라봤다.“내 형수랑 여자 친구가 좀 있으면 도착한다는데, 아직도 안 풀어줄 거예요?”“애교 누나라는 여자가 여자 친구야?”윤지은은 팔짱을 낀 채 나를 차갑게 바라봤다.나는 부인하지도 대답을 피하지도 않고 바로 인정했다.“그래요, 왜요?”“아무것도 아니야. 이제 가 봐.”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뭐라고요?”“가 보라고.”이렇게 오랫동안 갇혀 있었는데, 이제야 겨우 풀려나는 건가?나는 한시도 망설이지 않고 곧장 이곳을 떠나고 싶었지만 윤지은이 대체 무슨 꿍꿍이인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때문에 한창 망설이다가 결국 물었다.“또 무슨 꿍꿍이에요? 정말 이대로 놓아주는 거예요?”윤지은은 귀찮은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대체 갈 거야 말 거야? 안 갈 거면 영원히 여기 있던가.”“가요, 당연히 가야죠.”나는 황급히 도망쳐 단숨에 내 방으로 돌아갔다.커다란 침대에 누우니 그제야 살 것 같았다.지금껏 침대에 누워 있는 게 이렇게 편한 건 줄 몰랐는데, 이 순간 침대와 사랑에 빠질 것만 같았다.“이제야 돌아왔네? 대체 어디 갔던 거야?”내가 방에 도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백연우와 사모님이 따라 들어왔다.두 사람은 나를 보고 따라온 거였다.하지만 이 순간, 나는 침대에서 꿈쩍도 하기 싫었다.그동안 너무 피곤했으니까.꼬박
백연우의 행동에 나는 어안이벙벙해 이 여자가 대체 왜 이러나 싶었다.“뭐 하는 거예요?”나는 무의식적으로 물었다.백연우는 허리를 살살 흔들며 내 쪽으로 걸어오더니 내 옆에 앉았다.심지어 풍만한 엉덩이가 아예 내 몸에 닿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 앉아 향긋한 냄새를 풍기며 말했다.“솔직히 말해. 요즘 대체 어디 갔어?”“친구분한테 물어봐요.”나는 더 이상 얘기하고 싶지 않아 책임을 윤지은에게 전가했다.그러자 백연우가 또 물었다.“윤지은이랑 뭐 있었지? 역시 두 사람 사이에 묘한 기류가 흐르더라니. 솔직하게 말해. 대체 무슨 짓을 당했는데?”나는 너무 피곤해 말하고 싶지 않았다.나른하게 누워 있는 내 모습에 백연우는 결국 폭발했다. 그녀가 내 가슴을 세게 꼬집는 바람에 나는 고통을 참지 못하고 악 소리 냈다.그러고는 가슴을 부여잡고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뭐 하자는 거예요?”“어린 게 어디서. 내 말 못 들었어? 감히 날 무시해?”백연우는 학과장 선생님의 카리스마를 내뿜으며 말했다.그 모습을 본 나는 순간 겁이 나 고분고분해졌다.“저 진짜 무시한 게 아니라 너무 피곤해서 그래요. 백 쌤 친구가 나 일박이일 동안 가두는 바람에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해 지금 신경이 곤두서서 미칠 것 같거든요. 이제 겨우 풀려나 제대로 잠 좀 자고 싶어요.”나는 할 수 없이 사실대로 말했다.다만 내 말이 백연우의 호기심을 자극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녀는 아예 내 위에 엎드린 채 물었다.“윤지은이 왜 그렇게 화났는데? 대체 뭘 했길래?”“그건 말할 수 없어요. 그걸 말하면 정말 죽이려 들지도 몰라요.”“솔직히 말하지 않으면 지금 내 손에 죽을 수 있어.”백연우는 내 귀를 깨물더니 눈웃음을 쳤다. 그러고는 손을 내 바지 안으로 쑥 넣었다.‘이건 아예 날 죽이려는 건가?’나는 다급히 백연우의 손을 잡았다.“제발 좀 봐줘요. 저 정말 힘들어요.”“그럴 테니 솔직히 말해. 윤지은이 왜 널 가뒀는지.”“정말 말할 수 없어요...”백연우는
백연우는 너무 놀라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뭐? 그러니까 윤지은이 모르는 상황에서 잤다고?”한껏 높아진 백연우의 목소리에 나는 깜짝 놀라 그녀의 입을 막았다.그러고는 다급히 설명했다.“아무튼 대충 이런 상황이에요. 이제 다 말했으니까 휴식해도 되죠?”하지만 백연우가 어디 이대로 갈 위인인가?친구의 가십을 알고 싶다는 의욕이 활활 타오른 백연우는 떠나기는커녕 아예 문어처럼 나한테 찰싹 달라붙었다.“얼른 말해 봐. 두 사람 어쩌다가 하게 된 거야? 그리고, 윤지은이랑 잘 때 기분 어땠어?”백연우가 아는 윤지은은 남자를 무척 싫어하는 친구다.때문에 윤지은이 나와 몸을 섞었다는 말을 듣자 마치 신대륙을 발견한 것처럼 신기해하며 디테일을 알려고 했다.하지만 나는 당연히 그걸 너무 자세히 말할 수 없었다. 윤지은이 만약 이걸 알면 그때는 정말 뼈도 못 추릴 거니까.나는 백연우를 보며 말했다.“아까 말해주면 떠나겠다고 했잖아요. 대학교 학과장씩이나 되는 사람이 어떻게 약속도 안 지켜요?”“어쭈? 내 약점을 잡고 있다 이거야?”백연우는 내 옆에 아예 누워버렸다. 나올 데 나오고 들어갈 데 들어간 그녀의 몸매는 어떤 자세로 있든 완벽했다.백연우는 웃으며 내 코를 내리 쓸었다.“그럼 휴식 잘해. 이따가 휴식 끝나면 나 부르는 거 잊지 말고.”‘뭐야? 내 휴식이 끝나면 또 나랑...’“안 돼요. 이제 더 이상 엮이는 일 없을 거예요.”나는 다급히 말했다.“왜?”“형수랑 여자 친구가 곧 여기 온댔어요. 우리 사이 들키면 안 돼요.”“하, 아쉽네.”백연우는 아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어떡하지? 너랑 하지 못하면 누나 오늘 잠 못 잘 것 같은데?”하지만 이 순간 나는 백연우의 유혹에 흥분을 느끼는 게 아니라 공포를 느꼈다.“백 쌤, 제발 얼른 가주세요. 형수랑 여자 친구가 곧 도착해요.”“양심 없는 것. 난 계속 네 생각 했는데, 넌 나 말고 다른 여자 생각하고 있었어?”백연우는 나를 째려보더니 허리를 살살 흔들며 떠나갔다.그제
나는 애교 누나도, 형수도 무척 보고 싶었다.특히 형수가 지금 형과 어떤 상황인지 궁금했다.[그래요, 그러면 수호 씨가 대신 잡아 줘요.]애교 누나는 내 요구를 들어주었다.나는 얼른 침대에서 내려왔다.조금 휴식한 덕분인지, 아니면 형수와 애교 누나가 온 덕분인지 그새 몸에 힘이 차올랐다. 마치 투지가 넘쳐나는 것처럼.나는 얼른 프런트에 가서 내 옆방인 817호실을 잡았다.두 방은 마침 붙어있기에 언제든 왔다 갔다 할 수 있었다.마침 예약을 마치자 애교 누나와 형수가 팔짱을 낀 채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고작 이틀 못 본 것뿐인데 벌써 오랫동안 떨어져 있은 기분이 들었다.형수는 여전히 매력적이고 열정적인 데다 몸매까지 화끈해 정복욕을 자극했고, 애교 누나는 여전히 아담하고 온화해 아름다운 요정 같았다.게다가 두 사람을 보니 가족을 본 것처럼 반가웠다.“애교 누나, 형수.”나는 기쁜 마음으로 달려가 두 사람을 한꺼번에 끌어안았다.애교 누나는 싱긋 미소 지었다.그리고 형수는 애교 누나가 나를 안을 수 있게 손을 풀어주었다.애교 누나를 품에 안으니 마음이 차분해지는 느낌이었다. 애교 누나가 내 미래 여친, 심지어는 내 미래 아내일 수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자기 아내를 안으니 당연히 마음이 놓이는 것 같다. 윤지은과 백연우를 안을 때는 조금의 안전감도 없었는데 말이다.하지만 애교 누나를 안으면서 나는 저도 모르게 형수를 바라봤다.형수도 미소 짓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다만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형수는 오늘 타이트한 빨간색 원피스를 입었는데, 아주 섹시하고 아름다웠으며 완벽한 몸매가 그대로 드러났다.물론 형수와도 몸을 섞은 적이 있지만, 내가 성적으로 가장 큰 매력을 느끼는 사람은 여전히 형수였다.형수는 내 마음속에 영원히 얻을 수 없는 슈퍼카 같은 존재다.승차감이 분명 편할 테지만 너무 비싸서 살 수 없기에 더 갈망하는 존재.애교 누나를 풀어준 뒤 나는 형수를 향해 애교 부렸다.“형수, 저 형수도 보
때문에 밖에 나오면 서로 대화할 수 있었다.심지어 베란다를 넘는 것도 문제없었다.나는 저녁에 베란다를 몰래 넘어 옆방으로 가는 게 몹시 기대됐다.“수호 씨, 혹시 사장 사모님은 언제 돌아갈 계획이래요?”베란다에서 한창 서 있을 때 애교 누나가 갑자기 물었다.나는 얼른 고개를 저었다.“모르겠어요. 어떻게 결정하는지 두고 봐야죠. 전 사모님이 하자는 대로 따라야 해요.”대답을 한 뒤 나는 애교 누나가 왜 이런 질문을 했는지 의도를 파악했다.나와 사모님은 이곳에 벌써 이틀 동안 묵었지만 애교 누나와 형수는 오늘 막 도착했으니 당연히 며칠 더 묵을 거다. 그런데 사모님이 내일 떠나겠다고 하면 애교 누나와 형수와 더 있을 수 없지 않은가?“누나랑 형수는 먼저 휴식하고 있어요. 저 잠깐 가서 여쭈어 보고 올게요.”나는 얼른 808호실로 달려가 문을 두드렸다.얼마 지나지 않아 누군가 문을 열었다. 문을 연 사람은 다름 아닌 유미 사모님이었다.백연우는 핸드폰 게임을 하느라 나를 보는 체도 하지 않았지만 나도 별 신경 쓰이지 않았다.나는 얼른 사모님께 물었다.“사모님, 혹시 우리 언제 돌아가요?”“모르겠어요. 우선 아무 생각 말고 즐겨요, 갈 때 되면 말할게요. 그리고 실종된 이틀 동안 정말 아무 일 없었던 거죠?”유미 사모님은 걱정되는 눈빛으로 나를 보며 말했다.사모님의 눈빛에서 나를 정말 걱정해 준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게다가 그 걱정은 사장이 부하 직원에 대한 걱정이었다.그것만 봐도 유미 사모님은 참 좋은 상사다.나는 얼른 웃으며 말했다.“정말 아무 일 없었어요. 이 봐요, 멀쩡하잖아요. 참, 그리고 사모님, 제 형수와 여자 친구가 여기 왔는데, 요즘 두 사람과 같이 있어도 될까요?”유미 사모님은 무척 시원시원하게 동의했다.“당연하죠. 가고 싶은 곳 마음껏 가요. 무슨 일 있으면 따로 통지할게요.”“감사합니다. 사모님은 정말 좋은 분이세요.”유미 사모님의 동의를 구한 나는 신이 나서 817호실로 달려가 이 좋은 소식을 두 사람
나는 혼자 있기 싫어 뻔뻔하게 말했다.“저도 갈레요. 형수, 저도 같이 가도 되죠?”형수는 이상한 눈초리로 나를 보더니 말했다.“따라오고 싶으면 따라와요. 그건 수호 씨 자유니까 나한테 말할 필요 없어요.”그 말에 나는 얼른 따라나섰다.나는 이번에도 아까처럼 한 손으로 형수의 팔짱을 끼고 다른 한 손으로 애교 누나의 팔짱을 꼈다.물론 지금 뭘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두 사람 사이에서 걸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특히 형수와 이렇게 팔짱을 끼고 걸을 수 있는 시간이 너무 소중했다.나는 여전히 두 사람을 가이드 해주며 여기저기 소개해 줬다.그렇게 한참 걸었더니 형수가 살짝 지쳐 했고, 우리는 결국 길가에 있는 벤치에 앉아 잠시 휴식을 취했다.형수는 오랫동안 걸어 다리가 불편했는지 주먹으로 가볍게 다리를 두드렸다.그걸 본 나는 얼른 제안했다.“형수, 제가 주물러줄까요?”“아니에요, 혼자 할 수 있어요.”형수는 단칼에 거절했다.왠지 형수가 일부러 나와 거리를 둔다는 느낌에 나는 너무 서운했다.“수호 씨, 우리 아이스크림 사러 갈까요?”그때 애교 누나가 말했다.나는 얼른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좋아요.”바로 앞에 음료수 매장이 있어 나는 혼자 다녀오려고 했으나 애교 누나는 산책하고 싶다며 기어코 따라나섰다.이에 나는 별생각 없이 동의했다.그런데 음료수 가게로 향하는 길에 애교 누나가 갑자기 물었다.“수호 씨, 형수한테 마음 있죠?”나는 이제야 애교 누나가 나를 따로 불러낸 의도를 알아챘다.나는 양심이 찔렸지만 솔직히 말할 수 없어 결국 거짓말했다.“아니에요, 형수한테는 다른 마음 품지 않는다고 했잖아요.”그때 애교 누나가 한쪽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인정 안 해도 돼요. 하지만 수호 씨 행동과 눈빛은 이미 수호 씨를 배신했어요.”“네? 그렇게 티 나요?”‘난 왜 몰랐지?’그때 애교 누나가 말을 이었다.“내가 진작 말했죠. 차라리 태연과 잠자리를 가지라고. 기어코 싫다고 거절하더니, 계속 속으로 생각하
“왕정민한테 심하게 데이고 나니 알겠더라고요. 사람은 언제나 자기를 먼저 생각해야 해요, 그래야 남을 생각해줄 여유도 생겨요. 왕정민이 나를 함정으로 밀 때 수호 씨랑 태연은 계속 내 편에서 생각해 줬잖아요. 그래서 나도 두 사람한테 잘해주고 싶어요.”“왕정민이 왕정민인 것처럼 진동성도 사실 좋은 사람 아니에요. 태연이 그런 사람과 지내면 어떤 결과를 맞이하겠어요? 난 수호 씨한테 잘해주고 싶은 동시에 태연한테도 잘해주고 싶어요. 더 이상 그런 쓰레기 같은 남자들 생각하지 않고 모두 행복하게 사는 게 얼마나 좋아요.”애교 누나는 정말로 예전과 완전히 달라졌다.예전에는 아주 보수적이고 내성적인 데다 낯선 남자와 스킨십 하는 것도 불편해했는데, 지금은 마치 마음속에 잠자고 있던 자아를 끄집어낸 느낌이었다.애교 누나가 이런 말까지 한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솔직히 나도 누나가 말한 생활을 갈망한다.왕정민도 진동성도 없이 나랑 애교 누나, 형수 셋이 함께 생활한다면 얼마나 행복할까?나는 애교 누나를 와락 끌어안으며 감정이 북받쳐 말했다.“누나, 저와 형수를 생각해줘서 고마워요. 누나 제의 진지하게 고민해 볼게요.”애교 누나는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그럼 서둘러요. 돌아가기 전에 태연을 수호 씨 여자로 만들어요.”“그렇게 급해요?”“당연하죠. 돌아가면 진동성이 눈 시퍼렇게 뜨고 지킬 거잖아요.”사실 애교 누나 말도 일리가 있었다.하지만 나는 또 의문이 들었다.“동성 형은 요즘 어때요? 형수랑 또 싸웠어요?”애교 누나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그건 나도 몰라요. 두 부부 일이기도 하고, 태연이 그런 말 하지 않아서 나도 알 방법이 없어요. 하지만 기분이 안 좋아 보여서 같이 나오자고 한 거예요.”형수가 전혀 즐겁지 않게 보내고 있다는 말에 나는 너무 괴로웠다.형수의 행복과 직결된 문제라면 형수더러 형과 이혼하게 설득하는 걸 제대로 생각해볼 필요가 있었다.음료를 산 뒤 나는 애교 누나와 다시 벤치로 돌아갔다.그때 형수의 발목이 살짝
내가 노랑머리한테 준 것도 적은 돈이 아니었다. 족히 10만 원 가까이는 됐으니까. 백수들한테는 이것도 큰돈이나 다름없다.노랑머리 역시 같은 생각이었는지 결국 입을 다물었다.아직 대답을 못한 사람들은 얼른 다른 질문을 하라고 나를 재촉했다.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두 번째 질문을 했다.“그럼 혹시 이연화 혹은 조금희가 요즘 낯선 사람과 만난 걸 본 사람이 있어요?”그 물음에 모든 사람은 고개를 저었다. 그 순간 나는 실망했다.“세 번째 질문, 혹시 누가 나 대신 이연화를 감시할래요?”모든 사람이 동시에 손을 들었다.나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좋아요. 그럼 다 같이 해요.”“그럼 돈은 어떻게 계산하는 거예요?”노랑머리가 물었다.나는 가방에서 또 돈 두 뭉치를 꺼냈다.“세 명이 감시해요. 한 사람당 200씩 줄게요.”세 사람의 눈은 커다래지더니 급기야 반짝반짝 빛이 났다.나는 세 사람에게 귀띔했다.“이 돈은 수고비예요. 누가 만약 유용한 단서를 제공하면 이 외에도 큰 보상을 받게 될 거예요.”‘역시 돈이 있으니 뭐든 쉽게 되네.’이 사람들이 나를 위해 성실하게 일하게 하려면 이 사람들 마음을 매수하는 게 우선이다.몇백만 원은 지금의 나한테 큰돈이 아니다. 무엇보다 사장님과 사모님을 도울 수 있다면 나는 뭐든 할 수 있다.모든 일을 마친 뒤 나는 다시 호텔로 돌아갔다.윤지은의 말을 들어보니 사모님은 이미 잠든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는 사모님 정서가 여전히 불안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기분이 다운된 사람은 쉽게 졸리고 무기력해지고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나는 방금 전 일을 윤지은에게 말했다.“이번 일 조사하기 엄청 어려울 거예요. 언제 진실이 밝혀질지도 모르겠고. 장기전을 할 준비는 됐어요?나는 윤지은을 보며 말했다.그러자 윤지은이 나를 째려봤다.“그걸 말이라고 해? 유미는 내 베스트 프렌드야. 유미한테 이런 일이 생겼는데 내가 같이 있어 주지 않으면 누가 같이 있어 줘? 그러는 너야말로, 갑자기 왜 그런 말을 하는데? 설마
나와 윤지은은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우리는 사모님 마음이 편치 않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몰랐다.“사모님, 비록 어렵지만 아무 희망도 없는 건 아니에요. 우리가 끝까지 견지하면 분명 수확이 있을 거예요. 게다가 사장님이 하늘에서 우리를 지켜줄 거예요.”사장님을 언급하자 사모님의 정서는 드디어 조금 안정되었다. 사모님은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눈으로 하늘을 바라보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호섭 씨, 정말 우리를 지켜줄 거야?”“당연하지.”윤지은도 사모님을 위로했다.그때 내가 분석했다.“제가 볼 때 이연화가 거짓말하는 것 같아요. 그 여자가 한 말 진짜 아니에요.”“너도 그래?”보아하니 윤지은도 똑같은 느낌을 받은 모양이었다.“넌 어떻게 보아냈는데?”“느낌이 그래요. 이연화가 그렇게 드센데 남편 일을 물어보지 않았다는 게 말이 안 돼요. 게다가 조금희 카드에 입금된 2억이 이연화랑도 연관된 것 같아요.”이건 내 직감이다.나는 왠지 이연화 같은 신분과 배경에 성깔 있는 여자라면 통제욕이 엄청날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여자가 자신을 배신했던 남자를 나 몰라라 방치할 수 있을 리가 있을까?그건 그 여자 성격에 부합되지 않는다. 윤지은의 관점 역시 나와 어느 정도 비슷했다. 윤지은은 내 말에 일리가 있다며 맞장구치면서 보충했다.“그리고 또 이연화가 2억을 얘기할 때 자꾸 눈빛을 피했어. 그건 거짓말한다는 표현이야.”“문제는 그 여자가 진실을 말하지 않으려 한다는 거예요.”이건 가장 골치 아픈 부분이다.그때 윤지은이 말했다.“그건 간단해. 내가 사람을 시켜 그 여자를 감시하라고 할 거야. 그러면 분명 허점을 보일 거야.”이런 건 역시 돈이 많아야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이다.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진짜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 있다.나는 얼른 맞장구쳤다.“만약 그곳 주민을 감시자로 붙여두면 더 좋을 거예요. 그 사람들이 이연화 행적을 더 잘 알고 있을 테니까요.”윤지은은 팔짱을 끼고 나를 바라봤다.“그건
사모님의 기세에 눌린 이연화는 오만하고 안하무인이던 태도가 싹 사라지고 다급히 대답했다.“말할게, 말한다고. 이거 먼저 놔.”사모님은 그제야 이연화 머리채를 놔주었다.이연화는 머리를 마구 문질러댔다. 심지어 얼굴까지 시뻘게진 걸 봐서는 사모님의 공격에 적지 않게 다쳤음을 알 수 있었다.이연화는 한참 동안 머리를 쓰다듬은 뒤 그제야 입을 열었다.“그 2억은 나도 어떻게 된 건지 몰라요. 그 인간이 우리 모자한테 주는 보상이라면서 줬어요.”“당신은 그 사람 아내인데 모른다는 게 말이 돼?”우리는 여자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러자 이연화가 조급히 말했다.“내 말 다 사실이에요. 난 정말 어떻게 된 건지 몰라요. 우리가 부부인 건 맞지만 명의상 부부나 다름없었어요. 그 인간이 나 몰래 불여우를 만나다가 잡힌 적도 있어요.”“그때 그 인간이 이혼만 하지 말자고 싹싹 빌지 않았으면 진작 헤어졌을 거예요.”여자의 말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확인할 방법이 없어 나는 차가운 표정으로 물었다.“그 2억이 어디서 났는지 몰랐다면, 조금희 씨가 불치병이라는 건 알았겠죠?”이연화는 고개를 끄덕였다.“그건 알아요. 그 인간이 오래전에 내 앞으로 보험을 들어 놓을 걸 줬었거든요. 자기가 가면 보험사에서 돈이 나올 거라면서.”이건 모두 일가 조사했던 내용이었다. 다만 이연화가 말한 사실이 모두 진짜인가 하는 게 문제였다.나는 이연화를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봤다.“그날 장례식장에서 화장을 미뤄달라고 했는데 왜 안 들었어요?”“나 할 일 많아요. 당신들과 시간 낭비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 인간이 당한 사고가 단순 사고든 인위적인 사고든 난 관심 없어요. 그 인간이 내 앞으로 돈을 남겼으니 난 그 돈을 얼른 받아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싶었어요.”이연화는 조금희와 더 이상 감정이 남아 있지 않아 조금희 일에 일말의 관심조차 없어 보였다.하지만 2억의 존재를 모른다는 게 진짜일지 의문이었다.만약 진짜라면 사건의 실마리는 또 끊기게 된다.나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질
그렇다면 우리의 추측이 거의 맞는 거로 증명이 된 셈이다. 게다가 이연화는 분명 뭔가를 알고 있을 거다.“이러면 이연화 모자만 찾으면 사건의 진실을 파헤칠 수 있겠네요.”우리는 일이 이렇게 순조로울 줄 몰랐다.심지어 사모님은 마음이 급해 벌떡 일어섰다.“더는 못 기다리겠어. 나 지금 당장 이연화 만나러 갈래.”“유미야. 아직 조급해하지 마. 지금 이연화 모자가 어디 있는지 모르잖아. 이렇게 해, 내가 한나한테 조사해 보라고 할게.”윤지은은 강한나에게 전화해 이연화 모자가 사는 곳을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다.직무상 편의를 이용해 강한나는 곧바로 이연화 모자의 거주지를 찾아냈다.[미리 말하는데, 이연화 모자 좋은 사람 아니야. 이연화 아버지는 판자촌 터줏대감이라 되도록 갈등을 만들지 마.]“알았어.”이연화가 만만치 않다는 걸 알지만 우리는 무조건 가봐야 했다. 그건 사모님한테는 더더욱 간절했다.아무리 그곳에 불바다라도 사모님은 눈살을 찌푸리지 않을 것만 같았다.이연화 집 주소를 알아낸 우리는 곧장 그곳으로 향했다.판자촌은 낡은 건물 지역이라 외지고 낡은 곳에 있는 데다 교통도 불편했다. 다만 이연화의 집은 그 판자촌에서 가장 큰 집이었다.우리가 이연화의 집을 찾았을 때 이연화는 집에서 화투를 치고 있었다.남편이 죽은지 얼마 되지 않는 여자가 이곳에서 한가하게 화투나 치고 있다니 침 한심했다.“이연화 씨, 할 얘기가 있어서 찾아왔어요.”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그러자 이연화는 나를 흘긋 보더니 말했다.“나 지급 바빠서 시간 없어요.”“이건 당신 남편 조금희 씨와 관련된 일이라 이연희 씨가 저희랑 반드시 가주셔야 해요.”기분이 살짝 언짢아진 나는 당연히 다정한 목소리가 나가지 않았다.하지만 이연화는 자기 구역에 있어 무서울 게 없어 심지어는 나에게 소리까지 질렀다.“반드시? 내가 왜? 당신들이 누군데? 경찰이야? 내가 왜 당신들 말을 들어야 해? 당장 꺼져. 화투 치는 거 방해하지 말고.”여자는 말하면서 다시 화투 치는 데
“보아하니 두 사람 모두 조금희 씨 몸에 종양이 퍼지고 있어 곧 죽는다는 걸 알고 있었네요.”“혹시 조금희 씨가 뒤에서 꼼수 부린 거 아닐까요?”나는 문득 뭔가 떠올라 의문점을 제기했다.현재 상황으로 분석해볼 때 조금희의 혐의가 가장 높았다.그때 윤지은이 말했다.“자세한 건 조사해 봐야 하지만 나도 조금희 씨가 이상한 것 같아.”사모님은 참지 못하고 눈시울을 붉혔다.“다음에 조사할 때 나도 끼워줘. 나도 같이 조사하고 싶어. 두 사람 말 맞아. 호섭 씨가 억울한 죽임을 당했는데, 나라도 진실을 밝혀 억울함을 풀어줘야 해. 이게 내가 살아갈 유일한 동력이야.”사모님은 말하면서 또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슬픔 속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나와 윤지은은 항상 사모님 곁을 지킬 거다.그날, 우리는 곧장 종양 전문 병원에 가 조금희의 병력을 조사했다.조금희 몸에서 종양이 발견된 건 1년 전인데, 처음에 양성이었다가 악성으로 번지기까지 적지 않은 돈을 들였던 거로 확인되었다.게다가 조금희는 불치병에 걸리기 전에 아내와 갈등을 겪었다.“자세한 건 저도 모르는데, 조금희 씨가 우리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젊은 여자가 항상 와서 돌봐줬어요. 그러다가 부인이 병원에 찾아와 그 아가씨를 때렸고요. 그 일은 병원 사람들 다 알아요.”‘그렇다는 건 조금희가 바람을 피웠다는 거네?’조금희가 이런 사람일 주은 생각지도 못했다.윤지은은 여간호사에게 돈다발을 건넸다. 그러자 간호사는 아주 기뻐하며 떠나갔다.조사를 마친 뒤 우리는 밖에서 식당을 찾았다.식당에 도착한 윤지은은 분석을 시작했다.“조금희 씨가 불치병에 걸렸고, 예전에 아내와 아들한테 잘못을 저질렀다면 혹시 자기가 얼마 못 살 걸 알고 호섭 씨를 배신해 돈을 챙겼던 건 아닐까?”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그럴 가능성이 커요. 만약 조금희 씨 계좌에 큰돈이 입금되었는지 확인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아쉽지만 이곳은 강북이 아닌 Y시다. 안 그랬다면 윤지은의 인맥
나는 기쁨을 주체할 수 없었다.배고픔을 느낀다는 건 좋은 일이다.윤지은이 아침을 사 오자 사모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음식을 먹었다.그걸 본 윤지은은 나를 향해 엄지를 추켜들었다. 그건 내 실력을 인정한다는 뜻이었다. 이번 치료 방법이 확실히 효과적이었으니까.나는 사모님을 한참 동안 관찰했다.비록 컨디션이 많이 안 좋은데도 사모님은 음식 드실 때 여전히 우아하고 단아했다. 살짝 슬픔을 띄고 있어 살짝 비극의 여주인공 같기도 했다.내가 한창 사모님을 바라보고 있을 때, 윤지은의 날카로운 눈빛이 갑자기 나를 쏘아봤다. “짐승!”윤지은은 욕지거리를 퍼부었다.그 욕에 나는 억울함을 호소했다.“제가 뭘 했다고 짐승이라는 거예요?”“아무튼 짐승 맞아. 이런 상황에서 훔쳐보기나 하고.”윤지은은 나를 째려봤다.난 그저 사모님을 몇 번 본 것뿐인데 나를 짐승 취급하다니, 너무 어이없었다.하지만 이러다 또 싸움 나겠다 싶어 나는 얼른 아침을 들고 다른 곳에 가서 배를 채웠다.식사를 마친 뒤 사모님은 자발적으로 나와 윤지은을 찾아왔다.“알고 있는 거 사실대로 다 알려줘요. 난 호섭 씨 사고에 대한 모든 사실이 알고 싶어요.”사모님은 너무 평온해 마치 다른 사람 같았다. 때문에 나는 사모님 상태가 여전히 걱정스러웠다.“사모님, 우선 맥 좀 짚어봐도 될까요?”“그럴 필요 없어요. 내가 뭘 해야 하는지 나도 알아야. 걱정할 거 없어요. 어젯밤 많이 생각해 봤고, 호섭 씨가 떠난 사실을 받아들였어요.”“내가 받아들일 수 없는 건 호섭 씨처럼 착한 사람이 남한테 죽임을 당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억울함을 풀어줄 거예요.”“난 강해져야 하고 호섭 씨처럼 용감해져야 해요. 그래야 호섭 씨가 마음 놓고 갈 수 있어요.”사모님은 애써 슬픔을 참으려 했지만 결국 참지 못하고 또 흐느꼈다.그 말을 들으니 나도 코끝이 시큰거리고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이제 우리에게는 같은 목표가 생겼다. 바로 진실을 밝히는 것.나는 얼른 마음의
나는 사모님 팔을 힘껏 잡으면서 사모님과 눈을 마주쳤다.“사모님! 현실을 받아들이세요. 더 이상 자신을 속이지 마세요. 사장님이 이런 사모님 보고 편히 가지 못하길 원하시는 건 아니잖아요.”내 말이 사모님의 마음에 큰 상처를 줬는지, 사모님은 순간 울음을 터뜨렸다.윤지은은 내가 강제로 사모님을 자극했다며 나를 탓했다.“유미 지금 안 그래도 나약한 상태인데, 왜 그런 말을 직접 해?”나는 너무 난감했다.“누구는 뭐 이러고 싶은 줄 알아요? 하지만 사모님이 계속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고 환상 속에 살고 있는데, 계속 이러면 상태가 점점 악화해요.”윤지은은 내 말에 일리가 있다고 인정했지만 그와 동시에 사모님이 또 상처받을까 봐 걱정했다.나도 사모님이 현실을 받아들이게 하려면 그 과정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알고 있다. 하지만 사모님을 절망 속에서 끄집어내려면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나는 윤지은에게 말했다.“정말 사모님을 돕고 싶다면 모질어야 해요. 이럴 때 마음 약해지면 오히려 해치는 거예요.”윤지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내 말에 동의하는지, 내가 치료할 수 있도록 묵묵히 자리를 비켜줬다. 나는 나른하게 힘이 쭉 빠진 사모님을 잡고 진지하게 말했다.“죽은 사람이 다시 돌아올 수 없어요. 사모님이 속사한 건 알겠어요 하지만 지금 속상해할 때가 아니에요. 우리 할 일이 있어요.”“사장님 사고 단순 사고가 아니에요. 누군가 인위적으로 사고 낸 거예요. 사모님, 정신 차리고 우리와 함께 진실을 조사해요.”사모님은 텅 빈 눈으로 나를 보며 중얼거렸다.“그게 무슨 말이에요?”사모님을 깊은 슬픔에서 꺼내는 건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무엇보다 중요한 건, 서두르지 않고 그녀가 진실을 받아들일 수 있게 천천히 다가가는 것이다.나는 말투를 부드럽게 하며 방금 한 말을 또다시 반복했다.“사장님 교통사고에 수상한 점이 발견됐어요. 사모님도 사장님이 억울하게 돌아가시는 거 원하지 않죠? 우리 함께 진실을 알아내 사장님이 억울하게 죽임당하
나는 그 말을 들은 순간 식은땀이 송골송골 솟아올랐다.사모님 상태는 살짝 이상해 보였다. 아마도 의식이 혼미해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모를지도 몰랐다.나는 사모님이 바보 같은 짓을 할까 봐 서둘러 사모님 팔을 꼭 잡았다. 그러면서 계속 따라오지 않으면 강제로라도 데려올 생각이었다.“수호 씨, 이거 놔요. 난 남아서 호섭 씨랑 같이 있을래요...”사모님은 마구 버둥대며 소리쳤다.이러다가 사고가 날 것 같아 나는 아예 사모님을 어깨에 두러 업었다. 그러자 사모님은 곧바로 버둥거리며 소리쳤다.벼랑 끝에 서 있는지라 조금만 실수하면 함께 아래로 떨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기에 나는 결국 사모님을 손날로 기절시켰다.내가 가드레일 안쪽으로 다시 넘어왔을 때 윤지은의 차가 마침 도착했다.“왜 그래?”윤지은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나는 사모님을 차에 앉히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사모님 지그 정신이 이상해서 현실과 환각을 구분하지 못해요. 방금 사장님이 춥다고 한다면서 옷 주러 내려가겠다고 했어요. 제가 제때 나타나지 않았으면 뛰어내렸을지도 몰라요.”윤지은은 내 말을 듣더니 미간을 찌푸렸다.“계속 이럴 순 없어. 우리가 잠깐은 지켜볼 수 있지만 평생 지켜볼 순 없잖아.”그때 내 머릿속에 문득 방법이 떠올랐다.“사모님께 사장님이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알려드리는 건 어때요?”“미쳤어? 이번 일로도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닐 텐데, 또 자극하자고?”윤지은은 내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이에 나는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제 할아버지가 남긴 의학 서적에 비슷한 사례가 있는데, 옛날에는 환자가 가족을 잃고 감정을 통제하지 못할 때 치료가 안 된다면 환자한테 희망을 줘야 한대요. 그 희망이 의학에서 말하는 기예요.”“그 기를 가진 환자가 음식 치료와 약물 치료를 함께 진행하면 서서히 회복할 수 있대요.”“사장님의 죽음에 수상한 점이 있잖아요. 그래서 사모님과 함께 그 사건을 수사하는 거예요. 아마 사모님도 사장님이 죽은 진실을 알고 싶을 거예요.”
장례식장 안을 모두 뒤져 봤지만 사모님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리 조급하지 않던 내 마음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불안해졌다.사모님은 현재 몸 상태도 안 좋고 정서도 매우 불안하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가족한테 어떻게 말해야 할지 걱정됐다.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내 마음은 점점 불안해졌다.그러다 결국 방법이 없어 나는 문득 사모님 번호를 떠올려 그쪽으로 전화를 걸었다.전화는 계속 긴 연결음만 들릴 뿐 아무도 받는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내가 포기하려고 할 때 연결음이 꺼졌다. 액정을 확인하니 전화가 연결되었다.“사모님?”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수호 씨, 나 괜찮으니까 좀 내버려둬요.]사모님 목소리는 매우 우울해 보였고 기운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나한테는 너무 듣기 좋았다. 나는 다급히 물었다.“사모님, 어디 있어요? 너무 걱정돼요.”[혼자 있고 싶어요.]“알아요, 아는데 어디 있는지만 알려줘요. 사모님이 안전하다는 거 확인해야 해요.”전화 건너편에서 한참 침묵이 흘렀다.그때 갑자기 차 경적음이 들려왔다.그렇다는 건 사모님이 장례식장에 있는 게 아니라는 뜻이었다.나는 문득 사모님이 있을 수 있는 곳이 떠올랐다. 하지만 조심스럽게 물었다.“사모님, 알려주시면 안 돼요?”사모님은 아예 전화를 끊어버렸다.하지만 이미 대충 답을 얻은 나는 장례식장을 뛰쳐나가 택시를 잡고 사장님이 사고를 당한 곳으로 향했다.가는 길에 사모님을 찾았냐는 윤지은의 전화를 받은 나는 내 추측을 말했다.“아니요. 사모님 아마도 사장님 사고 난 곳에 있는 것 같아요.”[거긴 왜?]윤지은은 이해가 되지 않아 무의식적으로 물었다.“사장님 죽음이 수상해 직접 조사하고 싶었을 수도 있고, 단순히 사장님이 그리웠을 수도 있고... 아무튼 저 지금 가는 중이에요.”[그럼 먼저 건너가. 나 이따 바로 갈게.]나는 윤지은과 상의한 뒤 먼저 사장님이 사고 난 곳으로 향했다.사고가 난 곳은 절벽인데, 사모님은 마침 절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