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혼자 있기 싫어 뻔뻔하게 말했다.“저도 갈레요. 형수, 저도 같이 가도 되죠?”형수는 이상한 눈초리로 나를 보더니 말했다.“따라오고 싶으면 따라와요. 그건 수호 씨 자유니까 나한테 말할 필요 없어요.”그 말에 나는 얼른 따라나섰다.나는 이번에도 아까처럼 한 손으로 형수의 팔짱을 끼고 다른 한 손으로 애교 누나의 팔짱을 꼈다.물론 지금 뭘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두 사람 사이에서 걸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특히 형수와 이렇게 팔짱을 끼고 걸을 수 있는 시간이 너무 소중했다.나는 여전히 두 사람을 가이드 해주며 여기저기 소개해 줬다.그렇게 한참 걸었더니 형수가 살짝 지쳐 했고, 우리는 결국 길가에 있는 벤치에 앉아 잠시 휴식을 취했다.형수는 오랫동안 걸어 다리가 불편했는지 주먹으로 가볍게 다리를 두드렸다.그걸 본 나는 얼른 제안했다.“형수, 제가 주물러줄까요?”“아니에요, 혼자 할 수 있어요.”형수는 단칼에 거절했다.왠지 형수가 일부러 나와 거리를 둔다는 느낌에 나는 너무 서운했다.“수호 씨, 우리 아이스크림 사러 갈까요?”그때 애교 누나가 말했다.나는 얼른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좋아요.”바로 앞에 음료수 매장이 있어 나는 혼자 다녀오려고 했으나 애교 누나는 산책하고 싶다며 기어코 따라나섰다.이에 나는 별생각 없이 동의했다.그런데 음료수 가게로 향하는 길에 애교 누나가 갑자기 물었다.“수호 씨, 형수한테 마음 있죠?”나는 이제야 애교 누나가 나를 따로 불러낸 의도를 알아챘다.나는 양심이 찔렸지만 솔직히 말할 수 없어 결국 거짓말했다.“아니에요, 형수한테는 다른 마음 품지 않는다고 했잖아요.”그때 애교 누나가 한쪽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인정 안 해도 돼요. 하지만 수호 씨 행동과 눈빛은 이미 수호 씨를 배신했어요.”“네? 그렇게 티 나요?”‘난 왜 몰랐지?’그때 애교 누나가 말을 이었다.“내가 진작 말했죠. 차라리 태연과 잠자리를 가지라고. 기어코 싫다고 거절하더니, 계속 속으로 생각하
“왕정민한테 심하게 데이고 나니 알겠더라고요. 사람은 언제나 자기를 먼저 생각해야 해요, 그래야 남을 생각해줄 여유도 생겨요. 왕정민이 나를 함정으로 밀 때 수호 씨랑 태연은 계속 내 편에서 생각해 줬잖아요. 그래서 나도 두 사람한테 잘해주고 싶어요.”“왕정민이 왕정민인 것처럼 진동성도 사실 좋은 사람 아니에요. 태연이 그런 사람과 지내면 어떤 결과를 맞이하겠어요? 난 수호 씨한테 잘해주고 싶은 동시에 태연한테도 잘해주고 싶어요. 더 이상 그런 쓰레기 같은 남자들 생각하지 않고 모두 행복하게 사는 게 얼마나 좋아요.”애교 누나는 정말로 예전과 완전히 달라졌다.예전에는 아주 보수적이고 내성적인 데다 낯선 남자와 스킨십 하는 것도 불편해했는데, 지금은 마치 마음속에 잠자고 있던 자아를 끄집어낸 느낌이었다.애교 누나가 이런 말까지 한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솔직히 나도 누나가 말한 생활을 갈망한다.왕정민도 진동성도 없이 나랑 애교 누나, 형수 셋이 함께 생활한다면 얼마나 행복할까?나는 애교 누나를 와락 끌어안으며 감정이 북받쳐 말했다.“누나, 저와 형수를 생각해줘서 고마워요. 누나 제의 진지하게 고민해 볼게요.”애교 누나는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그럼 서둘러요. 돌아가기 전에 태연을 수호 씨 여자로 만들어요.”“그렇게 급해요?”“당연하죠. 돌아가면 진동성이 눈 시퍼렇게 뜨고 지킬 거잖아요.”사실 애교 누나 말도 일리가 있었다.하지만 나는 또 의문이 들었다.“동성 형은 요즘 어때요? 형수랑 또 싸웠어요?”애교 누나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그건 나도 몰라요. 두 부부 일이기도 하고, 태연이 그런 말 하지 않아서 나도 알 방법이 없어요. 하지만 기분이 안 좋아 보여서 같이 나오자고 한 거예요.”형수가 전혀 즐겁지 않게 보내고 있다는 말에 나는 너무 괴로웠다.형수의 행복과 직결된 문제라면 형수더러 형과 이혼하게 설득하는 걸 제대로 생각해볼 필요가 있었다.음료를 산 뒤 나는 애교 누나와 다시 벤치로 돌아갔다.그때 형수의 발목이 살짝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형수를 업고 떠났다.하지만 절반쯤 걸었을 때, 형수가 갑자기 말했다.“수호 씨, 나 돌아가기 싫어요.”“그런데 발이 이렇게 돼서 얼른 돌아가 처리하지 않으면 안 돼요.”형수가 자기 상처를 신경 쓰지 않는다는 생가에 나는 얼른 인내심 있게 설명했다.형수가 등에 업혀 있어 나는 그녀의 표정을 볼 수 없었다.하지만 사실 형수의 얼굴은 이미 발갛게 달아올랐고 심장은 콩닥콩닥 뛰고 있었다.이런 스킨십은 나뿐만 아니라 형수에도 무척 그리웠다.형수는 가슴이 두근거리다 못해 금세라도 터질까 봐 억누르고 있었다.그러다가 결국 작은 목소리고 내 귓가에 속삭였다.“내 말은 그러니까, 방에 돌아가기 싫다고요. 우리 사람 없는 곳으로 가요.”“네?”나는 형수가 대체 무슨 생각인지 몰라 어안이 벙벙했다.하지만 그와 동시에 형수가 내 등 뒤에서 자꾸만 귓가에 입김을 불어대는 바람에 가슴이 두근댔다.나는 저도 모르게 형수의 뜻을 내 마음대로 해석했다. 설마 나랑 그런 짓을 하려는 건 아닌가 하고.하지만 마음대로 결론을 내릴 수 없어 조심스럽게 물어봤다.“형수, 혹시 무슨 뜻이에요? 잘 이해하지 못했어요.”형수는 두 손으로 내 목을 꼭 끌어안으며 결심이라도 내린 듯 말했다.“수호 씨랑 하고 싶다고요.”형수의 직설적인 말에 나는 그 자리에 완전히 굳어버렸다.형수의 말이 나에게 주는 충격이 그만큼 컸으니까.나는 얼른 형수를 벤치에 내려놓고 진지한 눈빛으로 바라봤다.“형수, 왜 갑자기 마음 바뀐 거예요? 전에는 분명 앞으로 다시는 얽히지 말자고 했잖아요?”“진동성 그 개 같은 인간 때문이죠.”형수는 형을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화가 났는지 누에서 불을 내뿜었다.“형이 왜요? 또 형수를 괴롭혔어요?”형수는 점점 눈시울을 붉히며 흐느끼기 시작했다.“난 그 인간이 정말 고쳤다고 생각했어요. 이제 정말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수호 씨도 그 인간이 여분 핸드폰을 소지하고 있다는 거 발견했잖아요. 알고 보니 진소연이라는 여자
“내가 그렇게 아이를 갖고 싶어 했는데. 내가 원한 건 행복한 가정이지 나를 묶어 둘 도구가 아니었어요. 더 화가 나는 건, 그 인간이 나랑 할 때마다 약물의 도움을 받는다는 거예요.”“그렇게 태어난 아이가 건강하겠어요? 그 인간은 그런 건 상관없나 봐요. 나중에 건장하지 않은 아이가 태어나면 아마 상관도 하지 않겠죠. 그럼 그 아이는 내 짐이 되는 거잖아요.”형수는 말하면서 점점 화내고 슬퍼했다.이런 말을 형수는 누구한테도 해본 적 없이 혼자 속으로만 눌러 왔었다.하지만 지금, 따뜻한 내 등에 기대니 갑자기 서러움이 폭발해 버려 모든 걸 털어 놓았다.나는 그런 형수가 너무 안쓰러워 꼭 끌어안고 진지하게 말했다.“이혼해요, 형수. 진동성과 이혼해요. 이제 완전히 확신했어요. 그 인간 형수 안 사랑해요. 형수가 경제권을 쥐고 있으니 쪽팔리기 싫어서 형수를 붙잡고 있는 거예요.”“이혼 안 할 거예요. 그 여자가 지쳐 죽게 괴롭힐 거예요.”형수는 이를 갈며 말했다.진소민이 형의 아내 자리를 노린다는 걸 형수는 진작 알고 있었다.이런 상황에서 이혼하면 그 여자만 좋은 노릇 아닌가?형수는 절대 그 여자의 바람대로 되게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형도 마찬가지고. 이혼하는 건 그에게 해방이나 다름없으니까. 왜 그런 사람을 해방하게 해주겠나?형수는 형이 애가 타다 못해 불안해하도록 괴롭히고 싶었다.나는 사실 형수의 이런 모습을 원하지 않는다. 이건 상대를 괴롭히는 동시에 본인도 괴롭히니까.하지만 형수는 자기 주견이 매우 또렷한 사람이라 한번 결정한 일은 쉽게 마음을 바꾸지 않는다.때문에 나는 형수를 안쓰러워하며 꼭 끌어안았다.“하지만 사실을 알고 함께 생활하는 거, 괴롭지 않겠어요?”“괜찮아요, 내가 왜 괴로워야 해요. 그 인간 경제권이 내 손에 있는데, 그 사람은 그저 도구로 생각하면 되죠.”나는 그 말에 풋 웃음을 터뜨리고는 형수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형수가 이렇게 뒤끝 있는 사람인 줄은 몰랐네요.”형수는 내 허리를 와락 끌어안
형수는 여전히 내 품에 기대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예전에 수호 씨랑 거리를 둔 건, 진동성이 우리 사이의 일을 알고 수호 씨를 괴롭힐까 봐 그랬던 거예요. 그런데 우리 일을 모른다 해도 그 인간은 더 이상 예전의 그가 아니에요. 그렇다면 우리도 더 이상 숨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형수는 말을 마치자마자 내 입술에 뽀뽀했다.“수호 씨, 요즘 정말 보고 싶었어요. 진심이에요.”“형수 저도 보고 싶었어요.”나는 형수의 허리를 끌어안은 채 절절하게 말했다.이윽고 우리는 깊은 키스를 나누었다.“수호 씨, 나 하고 싶어요...”형수는 더 이상 거리낄 게 없어서 그런지 자기 속마음을 과감하게 드러냈다.그 말에 나는 바로 흥분했지만, 형수의 발목 부상 때문에 한편으로 걱정되었다.“형수, 마음은 알겠어요. 하지만 발목 다쳤는데, 제가 실수로 아프게 할까 봐 걱정돼요. 아니면 부상 다 낫고 해요.”형수는 멍하니 나를 바라보더니 또다시 눈시울을 붉혔다.“역시 나 생각해 주는 사람은 수호 씨밖에 없네요.”“그건 아니에요. 애교 누나도 있잖아요. 애교 누나도 형수 엄청 걱정했어요. 누나가 아까도 저더러 형수 좀 도와주라고 했거든요.”형수는 궁금한 듯 눈을 둥그렇게 떴다.“그래요? 뭐라고 하던가요?”“요즘 형수 기분이 안 좋은 게 느껴진대요. 진동성도 왕정민처럼 좋은 사람이 아니라, 형수가 그 인간과 계속 살면 행복하지 못할 거래요. 그래서 저더러 형수를 도와주라고 했어요. 우리 셋이 함께 생활하면 분명 즐겁고 행복할 수 있다면서.”형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애교가 나를 그렇게 생각해 줄 줄은 몰랐네요. 사실 나도 그런 생활이 기대돼요.”“기대할 필요 없어요. 형수와 누나만 원한다면, 현실로 될 수 있어요.”나는 형수의 허리를 안은 채 헤실거리며 말했다.지금도 이곳 용천 호텔에서 우리 셋이 같이 있는 거 아닌가? 왕정민도 없고, 진동성도 없어서 우리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고.애교 누나와 형수가 말하는 셋이 함께하는 생활이란 바로 이런
내가 애인 다루듯 형수를 안아 들어온 걸 본 애교 누나 얼굴에는 웃음꽃이 활짝 폈다.“이렇게 빨리 태연이 마음도 얻은 거예요?”나는 부끄러워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애교 누나, 많이 기다렸죠?”애교 누나는 아무렇지 않은 듯 어깨를 으쓱했다.“난 괜찮아요. 내가 다친 것도 아니잖아요. 오히려 두 사람, 태연이 그 상태인데도 한 거예요?”나는 내 품에 안겨 있는 형수를 흘끗 내려다봤다.그러고는 여전히 잠들어 있는 형수를 침대에 눕히고 이불을 덮어주고는 애교 누나한테 말했다.“누나도 제가 형수를 빨리 차지하기를 원한 거 아니었어요? 누나 말대로 했으니까 이제 시름 놔요.”애교 누나는 침대에 앉더니 손가락을 까닥거리며 오라는 신호를 보냈다.나는 고분고분 애교 누나 쪽으로 걸어갔다.그러자 누나는 두 팔을 뻗어 내 목을 끌어안더니 나를 향해 싱긋 미소 지었다.“형수를 만족시켰으니 이제 내 차례네요?”“네?”‘방금 하고 와서 아직 정신도 못 차리겠는데.’‘하지만 내가 형수를 만족시켜 주고 애교 누나를 내버려둔다면, 누나는 아마 슬퍼하겠지?’결국 나는 진지하게 말했다.“그래요. 하지만 누나가 저 좀 도와줘야겠어요.”애교 누나는 웃으며 내 가슴을 쳤다.“농담한 거예요. 그걸 어떻게 진담으로 받아 들여요? 태연이 옆에서 자고 있어요. 나 친구 앞에서 할 정도로 밝히는 사람 아니에요.”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방금 에너지 소비를 많이 해서 지금 또 하면 정말 버티지 못할지도 모른다.하지만 애교 누나가 농담이라고 하니 내 입장에서는 다행이었다.‘역시 나를 아껴주는 사람은 애교 누나뿐이라니까.’나는 애교 누나의 침대에 올라가 이불 속으로 파고들어 누나의 허리를 끌어안았다.“누나, 왕정민과 이혼한 사실은 언제 가족에게 말할 생각이에요?”“아직 생각 못 했어요.”“그럼 얼른 생각해요. 고민 끝나면 말해줘요. 누나 집에 갈 때 같이 가요.”이 말을 할 때의 나는 매우 진지했지만 애교 누나는 왠지 난감한 표정이었다.“수호 씨,
나는 갑자기 겁을 먹었다.그러자 애교 누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왜요? 무서워요?”“아니, 그런 건 아니에요.”지금 내 기분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약간 겁을 먹은 것도 있고 불안한 것도 있다. 하지만 이대로 인정하기에는 너무 겁쟁이 같았다.“수호 씨, 무서운 것도 정상이에요. 왕정민처럼 계산적인 사람도 처음 우리 집에 가서 아버지를 만났을 때 무서워서 숨도 못 쉬었거든요.”애교 누나는 나를 위로했다.이제서야 애교 누나의 집에서 왜 누나와 왕정민을 반대했는지, 왜 왕정민 정도로도 성에 차지 않았는지 이해가 갔다.강북시 부시장인데, 별 볼 일 없는 장사꾼을 만족할 리가 있나?하지만 나는 별 볼 일 없는 장사꾼도 아닌, 직원이다.그걸 인지한 순간, 자신감이 사라졌다.“애교 누나, 누나도 제가 안 될 것 같아요? 그래서 집에 계속 말하지 않았어요?”이 질문이 마음 아프기는 하지만 제대로 물어봐야 했다.애교 누나는 안쓰러운 듯 내 팔을 끌어 안았다.“아니에요, 한번도 수호 씨가 부족하다고 생각한 적 없어요. 수호 씨, 난 엄청난 부귀영화를 원하는 게 아니에요. 그저 나를 진심으로 대해주는 사람이 필요해요. 수호 씨가 나한테 진심인 거 알아요, 그래서 수호 씨랑 함께하고 싶어요.”누나의 말에 나는 어느 정도 마음이 놓였다.물론 누나 아버지의 요구를 충족하는 게 무척 어렵다는 걸 알지만 누나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노력할 생각이다.나는 누나에게 진지하게 말했다.“누나, 앞으로 어떤 결과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노력해 볼게요.”“알아요. 그래도 우리 집에 가고 싶어요?”애교 누나의 질문에 나는 진지하게 생각했다.“그래도 가고 싶어요. 우선 누나와 왕정민이 이혼한 사실은 언젠가 집에 말해야 하잖아요. 그리고 어머님 아버님께 제가 진지하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요.”“지금은 저를 인정하지 못해도 괜찮아요. 전 아직 젊으니까 기회는 많잖아요. 두 분께 제가 누나를 위해 열심히 해보겠다는 거 보여드릴 거예요.”나는 이런 방식으로
형수도 우리가 뭘 하고 있는지 알았을 거다.다만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이불을 끌어당겨 머리 위까지 덮고 자는 척 연기했다.모든 게 끝난 뒤, 나는 애교 누나 귓가에 대고 소곤거렸다.“애교 누나, 정말 나빴어요. 형수가 중간에 깨었다면 우리 정말 큰 망신을 했을 거예요.”애교 누나는 볼이 발그레하게 상기되어 있었고, 머리가 헝클어진 채 몽롱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러다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나에게 키스했다.“방금 참을 수 없어서 그것까지는 생각 못 했어요. 진정하고 나니 등골이 오싹하네요.”우리는 무의식적으로 형수를 바라봤다.하지만 언제 그랬는지 형수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있었다.그 순간 우리는 동시에 멍해졌다. 이건 형수가 깨었다가 소리가 듣기 싫어 이불을 뒤집어썼다는 뜻이니까.애교 누나의 얼굴은 마치 잘 익은 사과 같았다.“아, 쪽팔려.”그제야 뭔가를 인식했는지 애교 누나는 쪽팔린 듯 얼굴을 이불 속에 파묻었다.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이미 벌어진 일을 쪽팔려 해봤자 뭔 소용이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이럴 때일수록 태연하게 임해야 한다.형수와 누나가 모두 세 사람이 함께하는 걸 원하지 않았던가?그리고 지금, 바로 그토록 원하던 상황이고.나는 애교 누나에게 조심히 말을 꺼냈다.“누나, 괜찮아요. 형수도 이미 경험할 대로 다 경험한 사람이니까 신경 쓰지 않을 거예요. 만약 신경 쓰였다면 이미 떠났겠죠.”애교 누나는 여전히 이불 속에 머리를 파묻은 채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그만큼 쪽팔렸으니까.결국 나는 어쩔 수 없이 먼저 옷을 입었다. 그러고는 대담하게 형수 앞에 다가가 형수의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형수, 깼어요?”형수는 이불 속에서 나와 자리에 앉더니 당당하게 인정했다.“진작 깼어요.”말을 마친 뒤 형수는 이상한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봤다.내가 아무리 뻔뻔하게 행동했어도 사실은 매우 어색했다.“형수, 저 먼저 의무실에 가서 약 가져올게요. 이따 약 발라줄게요.”나는 어색함을 풀려고 화제를
나는 미간을 찌푸린 채 주해진을 바라봤다.“왜 이렇게 쉽게 돈을 주는 거지?”주해진이 오늘 이 사달을 벌이느라 분명 적지 않은 돈을 썼을 텐데, 나한테 2천만 원 가까이 되는 돈까지 배상하니 또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건 아닌지 심히 의심됐다.“이 전에는 이대로 넘어가는 게 도저히 용납이 안 댔는데, 두 사람 실력을 보니 승복했거든. 두 사람 말대로 나도 젊을 때는 이 바닥에서 몇 년을 굴렀는데, 한 번도 두 사람처럼 죽기 살기로 싸우는 사람을 못 봤거든.”사실 주해진은 말을 아꼈다. 그가 가장 두려운 건 우리의 믿기지 않는 전투력이 아니라 궁지에 몰렸으면서 상황을 역전한 거였다. 그거야말로 가장 두려운 거였으니까.주해진은 우리를 맹수라고 느꼈다. 그것도 싸울수록 더 미쳐 날뛰는 맹수. 심지어 궁지로 몰아넣으면 넣을수록 우리는 오히려 피에 굶주린 모습을 드러냈다.주해진은 제 체면을 회복하고 싶어 그동안 승복하지 않은 거였는데, 우리가 절대 건드리면 안 되는 존재라는 걸 알았으니 더 이상 저항할 필요가 없었다. 어쨌든 그는 이미 손을 씻었고, 이제는 그저 장사를 하며 지내기에 어렵게 얻은 걸 망치고 싶지 않았다.나는 여전히 반신반의했지만 민우는 나더러 먼저 돈을 받으라고 계속 눈을 깜박거렸다.나도 민우의 뜻을 알고 있었다. 이걸 나중에 우리의 사업 자금에 보태자는 뜻이었다. 1800만 원이나 되는 돈을 보니 나도 확실히 마음이 동해 결국은 말없이 받았다. 주해진은 김진호와 안명훈더러 우리에게 사과하게 했고, 두 사람은 찍소리 못하고 순순히 사과했다.떠나갈 때 주해진은 제 차를 나에게 주면서 몰고 가라고 했다.그 순간 나는 오히려 경계심이 곤두섰다.“돈도 배상했으면서 차는 왜 주는 거야? 설마 또 해코지하려고?”주해진은 호탕하게 웃었다.“경계심 너무 많은 거 아니야? 그냥 친구 삼고 싶어서 주는 거야.”“그런데 난 그쪽이랑 친구하기 싫은데.”나는 고민도 없이 거절했다.주해진은 여전히 너털웃음을 터뜨렸다.“너무 빡빡하게 굴지 말고. 친
김진호는 속이 좁고 질투심이 강하지만 실력은 별로 없다. 특히 일이 터지면 항상 겁을 먹고 뒤로 물러난다.그런데 주해진이 자기를 내밀자 안명훈보다 더 겁을 먹었다.“싫어요... 안 돼요... 해진 형, 저 자식 차를 망가뜨리라고 한 건 형이잖아요. 저더러 형 대신 뒤집어쓰게 하면 안 되죠.”이 지경이 되었는데도 김진호는 제가 한 짓에 책임지지 못하고 주해진의 체면을 바닥에 짓밟았다.주해진은 너무 쪽팔려서 김진호의 뺨을 내리치면서 버럭 소리쳤다.“사과하라면 해. 어디서 말이 그렇게 많아? 젠장. 내가 널 돕지 않았다면 수호 동생한테 미움 살 일이 있었겠어?”한창 화를 내고 있던 나는 그 말에 순간 멍해졌다.‘수호 동생? 지금 나를 말하나?’‘젠장, 내가 언제 제 동생이 됐다는 거야?’“어디서 친한 척이야? 너희 셋 다 내려와.”나는 차를 또다시 쾅쾅 내리쳤다.민우 역시 차 위에서 나를 협조해 주었다.승합차가 우리 때문에 완전히 뒤집힐 지경이 되자 주해진은 우리와 연맹을 맺으려는 듯 은근슬쩍 나를 회유했다.“수호 동생, 그만해. 내려갈게. 우리 사이에는 원한이 없잖아. 수호 동생이랑 원한 있는 건 김진호잖아. 그리고 안명훈 저 자식도 자기 여자 친구더러 동생 친구 꼬시라고 했어. 저 둘 중에 좋은 놈 하나 없어. 내가 지금 바로 이 두 놈 내려 보내겠으니까 마음대로 처리해.”주해진은 말을 마치자마자 정말로 김진호와 안명훈을 끌어내 앞에 내팽개쳤다.내 분노는 사실 김진호와 안명훈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다. 가장 큰 원인은 내 차가 박살 난 것 때문이다. 그리고 주범은 바로 주해진이다.때문에 나는 화가 잔뜩 나서 주해진을 향해 파이프를 휘둘렀다.“이 자식들 빚은 내가 천천히 받을 거야. 하지만 내 차를 망가뜨린 건 어쩔 건데?”주해진은 고개를 돌려 내 차를 흘긋 보더니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아마도 배상할 수 있는 저렴한 차라 안도한 듯했다.“수호 동생, 저 차는 1600만 정도 하지? 내가 나중에 새 차 하나 뽑아줄게.”주해진이
사실 오늘 안명훈은 이곳에 오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주해진이 기어코 자기 위엄을 보여주겠다고 불러냈다.그런데 주해진의 위엄은 못 보고 오히려 나와 민우의 미친 모습만 보게 된 거다. 그러니 혼비백산이 되지 않을 리가 있나?안명훈은 필사적으로 차 문을 흔들었다.“나 내릴래. 내려줘...”주해진은 안명훈의 뺨을 후려갈기더니 씩씩거리며 욕설을 퍼부었다.“사내자식이 내리긴 어딜 내려? 네가 문을 내리면 저놈들이 올라올 거잖아. 문 열면 안 돼. 얌전히 앉아 있어. 설마 저 자식이 문을 부수겠어?”펑!나는 승합차를 향해 쇠 파이프를 세게 휘둘렀다.그러면서 속으로는 방금 전의 울분을 토해냈다.‘내 자식 같은 새 차, 아직 할부도 안 끝나 얼마나 애지중지했는데. 네놈들 때문에 고물이 됐잖아.’나는 승합차를 내리치면서 욕설을 퍼부었다.“나와. 차 안에 숨어 있는 게 겁쟁이랑 뭐가 달라?”차 안 세 사람 눈에 나는 충혈되어 시뻘게진 눈을 가진 분노한 맹수나 다름없었을 거다.안명훈은 완전히 겁을 먹어 나한테 끊임없이 간청했다.“오늘 밤 일은 나랑 상관없어... 제발 살려줘. 제발...”주해진도 솔직히 속으로는 무서웠지만 안명훈이 저 하나 살려고 자신을 배신한 걸 보자 화가 나서 그를 발로 차버렸다.안명훈은 그 힘에 못 이겨 옆으로 벌러덩 굴러 넘어졌다.그때, 마침 유리창을 깨뜨린 나는 쇠 파이프로 주해진을 가리키며 소리쳤다.“셋 셀게, 당장 내려. 안 그러면 죽이는 수가 있어.”주해진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였다.“그럴 필요까지 있어? 내가 사람을 불러 모으긴 했지만 무기는 안 들었잖아. 게다가 저놈들은 겁을 먹고 이미 도망쳤어. 너희 둘도 크게 다치지 않았으먼서 꼭 미친 짐승처럼 나를 그렇게 끝까지 물고 늘어져야겠어?”나는 이를 악물었다.“난 짐승처럼 네 놈을 물고 늘어지는 거로 안 끝나. 아주 뼈도 안 남기고 씹어 먹을 거야. 내가 얼마나 어렵게 산 차인데, 평소 아까워서 조심조심 다뤘는데, 네 놈 때문에 폐차하게 생겼잖아. 내 차 물어
나는 여전히 손에 든 쇠 파이프를 필사적으로 휘둘렀다. 분명 이길 수 없다는 걸 알았지만 그렇다고 기죽을 수도 없었다.민우가 말한 적이 있는데, 싸울 때 가장 무서운 건 싸우기 전부터 겁을 먹는 것이라고 했다.하지만 한참 싸우다 보니 나는 점점 힘에 부쳤다. 놈들 인원수가 너무 많아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았다.그렇다고 이대로 쓰러질 수는 없었다.인체에는 자극을 받으면 잠재력을 자극하는 혈 자리가 있는데, 그 혈 자리가 자극을 받으면 잠재력이 폭발했다가 나중에 한동안은 몸이 나른해진다.하지만 이 상화에서 다른 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기에 나는 고민 없이 혈 자리를 눌렀다. 그 순간 온몸에 힘이 솟아나면서 내가 마치 거인이 된 느낌이었다.“야! 다 죽었어!”나는 고함을 지르는 동시에 쇠 파이프를 휘두르면서 달려갔다.나를 에워싸고 있던 놈들은 내가 더 이상 전투력이 없다는 걸 보고 모두 긴장을 푼 상태였다. 하지만 나는 갑자기 미친 것처럼 놈들의 코뼈를 하나씩 부러뜨렸다. 심지어 손이 무척 매웠다.나는 피가 들끓어 끊임없는 힘이 솟구치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매번 파이프를 휘두를 때마다 젖 먹던 힘까지 짜냈다.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는데도 무섭지 않았다. 오히려 나도 한방에 놈들 뼈를 부러뜨릴 수 있다는 것에 흥분됐다.‘만약 동준 형님이 이 모습을 본다면 나에게 재능이 있다고 여기지 않을까?’싸울수록 피가 끓고 힘이 솟아났다. 놈들은 심지어 나를 보자 연신 뒷걸음쳤다.옆에 있던 민우마저 나를 보면서 가쁜 숨을 몰아 쉬며 물었다.“수호야, 너 대체 어떻게 한 거야? 난 지금 힘들어 죽겠는데...”나는 혈 자리를 가리켰다.그러자 민우는 바로 눈치챘다.민우 역시 의학을 전공한 지라 말하지 않아도 바로 알 수 있었다. 곧이어 민우 역시 스스로 한 대 치더니 갑자기 피가 솟구치는 것처럼 흥분했다.“하하하, 나도 다시 회복했어. 너희들 죽었어.”우리는 서로 협조하면서 놈들한테 달려가 퍽퍽, 주먹을 날렸다.우리를 끝장내버리겠다고 큰소리치던 놈
전에는 누가 와서 소란을 피울까 봐 민우더러 나와 함께 가게에서 지내자고 했지만, 지금 사장님 댁에 머물고 있는데 민우까지 데려올 수는 없었다. 때문에 뭐든 나 혼자 해결해야 했다.민우를 집에 데려다 두는 길에 그는 나에게 함께 사장님 댁에 있어 달라냐며 물었다. 그러면 서로 보살필 사람이 있다면서.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나도 그걸 생각해 보지 않은 적 없어. 하지만 사장님을 돌보려고 그 집에서 지내고 있는데 너까지 데려가면 이상하잖아.”“난 그 개자식들이 또 너한테 무슨 짓 할까 봐 그러지.”“나도 무서워. 하지만 이미 준비해 뒀어.”나는 의자 밑에서 도구 몇 개를 꺼냈다.민우는 그 도구들을 손에 들고 무게를 가늠해 보더니 말했다.“이 도구들은 조금 도움이 될 뿐이야. 그래도 내가 너한테 가르쳐준 방법을 사용해.”민우는 말하면서 손을 움켜쥐는 동작을 했다.그 동작에 나는 풉, 하고 웃음이 터져 버렸다.“그 방법 확실히 좋더라...”우리가 한창 얘기하고 있을 때 백미러에 언뜻거리는 차 한 대가 비쳤다.무의식적으로 뒤에 따라붙은 사람이 운전할 줄 모른다며 투덜거리던 나는 갑자기 이상한 낌새를 챘다. 그도 그럴 게, 뒤에서 달려오는 차는 속도가 아주 빨랐는데 마치 나를 강제로 세울 것처럼 굴었으니까.“잘 앉아.”나는 불안한 예감에 다급히 액셀을 밟아 속도를 냈다.다만 내 차의 유일한 단점은 속도를 너무 빨리 낼 수 없다는 거다.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뒤 차에 따라잡혔다.놈들은 내 차를 강제로 멈추게 할 작정인 듯했다. 하지만 나는 멈추고 싶지 않았다. 상대방 차량은 승합차였는데, 그런 승합차는 용량이 커 적어도 열댓 명을 태울 수 있었다.만약 차에서 열 몇 명이 우르르 내리면 나와 민우 둘이 대처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때문에 나는 액셀을 밟았다. 하지만 승합차 두 대는 좌우에서 협공하며 내 차를 가운데 몰아 끼긱끼긱, 하며 긁히는 소리가 났다. 분명 차가 내는 소리였지만 내 살점이 뜯겨나가는 기분이었다.아직 차 할
내가 한창 망설이고 있을 때 사장님도 말을 보탰다.“수호 씨, 남아서 좀 도와줘. 우리 마누라가 요즘 너무 힘들어서 그래. 어릴 때부터 금지옥엽으로 자라나 이런 고생 언제 해 봤겠어? 이것 봐, 피곤해하는 거 보이지? 나도 솔직히 마음 아파.”사장님과 사모님이 모두 나를 남으라고 설득하는 상황이라 나도 더 이상 거절하기 곤란했다.“그래요. 제가 남아서 도와드릴게요.”사장님이 드시고 사용해야 하는 약이 너무 많아 확실히 번거롭긴 하다. 때문에 나도 사모님 혼자 사장님을 케어하지 못할까 봐 걱정이 됐다.사모님은 내 말에 이내 환한 표정을 지었다.“수호 씨는 아무것도 가져올 필요 없어요. 여기 모두 있으니까. 전처럼 계속 객실에서 자면 돼요. 그곳 채광이 좋고 공기도 좋아요...”사모님은 내가 이곳에서 지내는 데 불편해할까 봐 끊임없이 말을 늘어놓았다.사장님 내외가 사는 집은 모두 고급 가구를 사용했는데, 내가 이곳에 남아 도와주지 않는다면 이런 걸 누려볼 기회가 어디 있을까?사장님 내외는 나한테 너무 잘해줘서 내가 다 미안할 따름이었다.사장님 몸은 우선 한약으로 며칠간 보양해야 하지만 약을 다 먹으면 사실 힐 것도 없어 나는 가게 일을 돌볼 수 있었다.요 며칠간 주해진은 소란 피우러 찾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이대로 포기했다는 건 아니었다. 때문에 나는 동료들한테 주의할 것을 당부했다.한편 주해진은 그날 도망치듯 가게를 떠난 뒤 마음이 계속 안 좋았다.하지만 최근 일손을 구해봤지만 누구도 도와주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그 첫째 이유는 주해진이 깡패라 정계와 연이 닿는 지인이 적었고, 두 번째 이유는 사촌 형이 다시는 화인당을 다시는 건드리지 말라고 했기 때문이었다.주해진은 입으로는 싫다고 했지만 요 며칠간 그래도 제 분수를 지켰다. 다만 김진호 병문안을 간 뒤, 마음이 또 바뀌었다.김진호는 나를 여자 등에 빨대 꽂고 출세한 놈으로 말하면서, 깡패인 주해진이 나 같은 등신 하나 해결하지 못한 게 알려지기라도 하면 얼마나 웃음거리
어르신도 허허 너털웃음을 지었다.“너도 잘했어. 처방한 게 거의 다 맞췄으니까. 새내기 같지가 않아. 네 할아버지한테서 많이 배웠나 보네?”나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그럭저럭요. 그런데 그때는 너무 어려 할아버지의 모든 재능을 배우지 못한 게 아쉬울 따름이에요.”“괜찮아. 앞으로 내가 네 할아버지니까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언제든 나한테 물어봐.”나는 얼른 감사를 표했다.어르신과 약처방을 확인한 뒤, 나는 화인당에 가 이틀 치 약을 짓고 동료들에게 사장님이 퇴원했다는 사실을 말했다.다들 사장님이 다 나은 줄 알고 기뻐하는 눈치였다. 특히 민우는 슬그머니 내 팔을 잡으며 말했다.“사장님이 돌아오면 우리 따로 나가는 거지?”나는 얼른 민우의 말을 잘랐다.“사장님이 돌아와도 이런 말은 급하게 하면 안 돼. 화인당이 안정되고 가게에 일손이 부족하지 않을 때 떠날 수 있어. 우리가 다른 길을 찾아 나서는 건 자신을 더 발전시키기 위해서지만, 화인당에 누를 끼쳐서는 안 되지. 사장님이 우리 둘한테 얼마나 큰 은혜를 베풀었는지는 내가 말 안 해도 알잖아.”민우는 다급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내가 생각이 짧았네. 앞으로 절대 함부로 말 안 할게.”“참, 요즘 태진 선배는 어때? 가게에서 본 적 있어?”나는 가게에 들어오자마자 모태진이 오늘 없다는 걸 발견했다.내 말에 민우가 대답했다.“누가 알겠어? 또 그깟 일 때문에 가게에 피해 갈까 봐 안 나왔겠지. 상관하지 마. 다 큰 어른이 본인 몸 하나 건사 못 하겠어? 수호야, 아직은 따로 나가는 말은 안 할게. 하지만 천수당을 관찰하는 건 괜찮지?”“관찰하는 건 괜찮아. 하지만 함부로 하지 마.”나는 신신당부했다.그러자 민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다는 뜻을 내비쳤다.나는 약을 가진 후 다시 사모님 댁으로 돌아갔다.이 약 일부는 목욕용이고 일부는 마시는 약이라 나는 위애 상세하게 적어 따로 분리했다. 그리고 먹는 약은 모두 달여 진공 포장한 뒤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이렇게 하면 마실 때 데
윤지은은 보기 드물게 이번만큼은 내 편에 섰다.“동의하기 싫어도 동의해야지. 내가 진작 서약이 부작용이 있고 중독성이 커서, 장기적으로 이렇게 치료하면 환자가 오히려 탈탈 털릴 거라고 말했는데. 유미한테는 내가 말할게. 걔네 부모님은 아무튼 B시에 계시잖아? 한동안 돌아올 수 없으니까 당분간 비밀로 하지 뭐.”윤지은이 전에 그렇게 말하지 않았던 건 이 병원에서 근무하는 의사이기 때문이다. 서의학 의사면서 서의학이 안 좋다고 하면 분명 안 좋은 영향이 있을 거다.하지만 친구 남편인 정호섭의 생명이 달린 일이니 더 이상 거리낄 것도 없었다. 무엇보다 친구 임유미가 가장 마음에 걸렸다.만약 정호섭한테 무슨 일이 있으면 임유미는 어떡하라고?나는 사장님을 바라봤다.“그래도 되겠어요?”사장님은 효심이 강한 분이라 장인 장모를 속이는 게 안 좋다고 여겼다. 게다가 두 분이 지금껏 사장님을 길러왔으니.하지만 사장님이 고민하는 동안 윤지은은 이미 사장님 대신 결론을 내렸다.“뭐 그렇게 생각할 게 많아요? 두 분한테 말하면 절대 동의 안 할 거예요. 이 일은 내가 말한 대로 해요. 나도 한의학을 전공했던 사람이라 파악이 없으면 이런 말 안 해요.”나와 사장님 모두 머뭇거렸는데, 윤지은이 이런 태도로 나오니 오히려 감화되었다.나는 윤지은이 진심으로 존경스러웠다. 뭐든 엄격하고 신속하게 하는 모습은 내가 따라 배울 점이었다.윤지은은 나더러 병원에 남아 사장님을 돌보게 하고 본인은 유미 사모님을 모셔 오면서 한의 치료 방법에 대해 말해주겠다고 했다.그사이 나는 사장님이 아침 식사를 드시는 걸 도와드렸지만, 사장님은 입맛이 없다면서 조금밖에 드시지 않았다.요즘 매일 많은 양의 약을 먹어 위장이 망가져 음식을 먹는 것조차 무리였다.이렇게 부작용이 큰 게 바로 서양의학의 가장 큰 단점이다.나도 사장님을 강요하지 않았다.환자가 입맛이 없다는데 억지로 먹게 하면 오히려 위장의 부담을 더해주기 때문이다.나는 따뜻한 물을 받아와 사장님의 얼굴과 몸을 닦아주었다.
어르신은 내가 보인 자신감에 매우 만족해했다. 하지만 주의할 점을 귀띔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침술 하기 전에 모든 서약을 끊고 한동안 몸보신해야 해. 지금 너의 사장님 몸은 너무 나약해서 기혈이 거의 다 사라진 거나 다름없어. 이 상태로 침술 할 수 없어. 이 일은 먼저 환자 가족들과 상의하고 동의를 구한 뒤 진행해.”나는 고개를 끄덕였다.때마침 윤지은이 회진하러 와서 나는 그녀더러 사장님을 잠시 봐달라고 하고는 어르신을 모시고 밖으로 나갔다.“됐어. 데려다 줄 필요 없어. 이 부근에 마친 공원이 있으니 나도 좀 산책하다가 택시 타고 가면 돼. 네 사장님 상황은 서둘러서 가족과 상의해. 더 지체되면 천지신명이 와도 어쩔 수 없어.”어르신의 긴박한 말투에 나는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고마워요, 할아버지.”나는 진심으로 어르신께 감사했다. 90세가 넘는 분이 내 전화 한 통에 아무 이유 없이 도와준 거니까.이 은혜는 꼭 마음에 새길 거다.어르신은 허허 너털웃음을 지었다.“사람을 구하는 게 무엇보다도 중요하지. 이건 나를 위해 덕을 쌓는 거야. 너도 얼른 가 봐. 이 일은 지체하면 안 된다는 거 잊지 말고.”나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어르신이 뒤돌아 떠난 뒤에야 나는 병실로 돌아갔다.다른 사람은 이미 떠나고 윤지은만 병실에 남아 있었다.나는 얼른 윤지은과 사장님께 방금 전 상황을 말씀드렸다.“수호 씨, 한의학 치료법으로 정말 내 병을 완화할 수 있어?”사장님은 나를 조금 믿는 눈치였지만 그래도 한번 확인했다.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진지하게 설명했다.“아까 보신 분이 우리 마을에서 엄청 유명한 명의세요. 젊을 때 저희 할아버지랑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사람들 병을 치료해주셔서 엄청 유명해요. 저도 그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어본 건데 정말 방법이 있다더라고요.”“사장님이 입원한 뒤 몸 상태가 확실히 점점 나빠지셨잖아요. 이 부분은 제가 말하지 않아도 사장님도 느끼셨을 거예요. 서약은 비록 효과는 빠르지만 부작용도 커요. 사장님 몸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