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정민한테 심하게 데이고 나니 알겠더라고요. 사람은 언제나 자기를 먼저 생각해야 해요, 그래야 남을 생각해줄 여유도 생겨요. 왕정민이 나를 함정으로 밀 때 수호 씨랑 태연은 계속 내 편에서 생각해 줬잖아요. 그래서 나도 두 사람한테 잘해주고 싶어요.”“왕정민이 왕정민인 것처럼 진동성도 사실 좋은 사람 아니에요. 태연이 그런 사람과 지내면 어떤 결과를 맞이하겠어요? 난 수호 씨한테 잘해주고 싶은 동시에 태연한테도 잘해주고 싶어요. 더 이상 그런 쓰레기 같은 남자들 생각하지 않고 모두 행복하게 사는 게 얼마나 좋아요.”애교 누나는 정말로 예전과 완전히 달라졌다.예전에는 아주 보수적이고 내성적인 데다 낯선 남자와 스킨십 하는 것도 불편해했는데, 지금은 마치 마음속에 잠자고 있던 자아를 끄집어낸 느낌이었다.애교 누나가 이런 말까지 한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솔직히 나도 누나가 말한 생활을 갈망한다.왕정민도 진동성도 없이 나랑 애교 누나, 형수 셋이 함께 생활한다면 얼마나 행복할까?나는 애교 누나를 와락 끌어안으며 감정이 북받쳐 말했다.“누나, 저와 형수를 생각해줘서 고마워요. 누나 제의 진지하게 고민해 볼게요.”애교 누나는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그럼 서둘러요. 돌아가기 전에 태연을 수호 씨 여자로 만들어요.”“그렇게 급해요?”“당연하죠. 돌아가면 진동성이 눈 시퍼렇게 뜨고 지킬 거잖아요.”사실 애교 누나 말도 일리가 있었다.하지만 나는 또 의문이 들었다.“동성 형은 요즘 어때요? 형수랑 또 싸웠어요?”애교 누나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그건 나도 몰라요. 두 부부 일이기도 하고, 태연이 그런 말 하지 않아서 나도 알 방법이 없어요. 하지만 기분이 안 좋아 보여서 같이 나오자고 한 거예요.”형수가 전혀 즐겁지 않게 보내고 있다는 말에 나는 너무 괴로웠다.형수의 행복과 직결된 문제라면 형수더러 형과 이혼하게 설득하는 걸 제대로 생각해볼 필요가 있었다.음료를 산 뒤 나는 애교 누나와 다시 벤치로 돌아갔다.그때 형수의 발목이 살짝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형수를 업고 떠났다.하지만 절반쯤 걸었을 때, 형수가 갑자기 말했다.“수호 씨, 나 돌아가기 싫어요.”“그런데 발이 이렇게 돼서 얼른 돌아가 처리하지 않으면 안 돼요.”형수가 자기 상처를 신경 쓰지 않는다는 생가에 나는 얼른 인내심 있게 설명했다.형수가 등에 업혀 있어 나는 그녀의 표정을 볼 수 없었다.하지만 사실 형수의 얼굴은 이미 발갛게 달아올랐고 심장은 콩닥콩닥 뛰고 있었다.이런 스킨십은 나뿐만 아니라 형수에도 무척 그리웠다.형수는 가슴이 두근거리다 못해 금세라도 터질까 봐 억누르고 있었다.그러다가 결국 작은 목소리고 내 귓가에 속삭였다.“내 말은 그러니까, 방에 돌아가기 싫다고요. 우리 사람 없는 곳으로 가요.”“네?”나는 형수가 대체 무슨 생각인지 몰라 어안이 벙벙했다.하지만 그와 동시에 형수가 내 등 뒤에서 자꾸만 귓가에 입김을 불어대는 바람에 가슴이 두근댔다.나는 저도 모르게 형수의 뜻을 내 마음대로 해석했다. 설마 나랑 그런 짓을 하려는 건 아닌가 하고.하지만 마음대로 결론을 내릴 수 없어 조심스럽게 물어봤다.“형수, 혹시 무슨 뜻이에요? 잘 이해하지 못했어요.”형수는 두 손으로 내 목을 꼭 끌어안으며 결심이라도 내린 듯 말했다.“수호 씨랑 하고 싶다고요.”형수의 직설적인 말에 나는 그 자리에 완전히 굳어버렸다.형수의 말이 나에게 주는 충격이 그만큼 컸으니까.나는 얼른 형수를 벤치에 내려놓고 진지한 눈빛으로 바라봤다.“형수, 왜 갑자기 마음 바뀐 거예요? 전에는 분명 앞으로 다시는 얽히지 말자고 했잖아요?”“진동성 그 개 같은 인간 때문이죠.”형수는 형을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화가 났는지 누에서 불을 내뿜었다.“형이 왜요? 또 형수를 괴롭혔어요?”형수는 점점 눈시울을 붉히며 흐느끼기 시작했다.“난 그 인간이 정말 고쳤다고 생각했어요. 이제 정말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수호 씨도 그 인간이 여분 핸드폰을 소지하고 있다는 거 발견했잖아요. 알고 보니 진소연이라는 여자
“내가 그렇게 아이를 갖고 싶어 했는데. 내가 원한 건 행복한 가정이지 나를 묶어 둘 도구가 아니었어요. 더 화가 나는 건, 그 인간이 나랑 할 때마다 약물의 도움을 받는다는 거예요.”“그렇게 태어난 아이가 건강하겠어요? 그 인간은 그런 건 상관없나 봐요. 나중에 건장하지 않은 아이가 태어나면 아마 상관도 하지 않겠죠. 그럼 그 아이는 내 짐이 되는 거잖아요.”형수는 말하면서 점점 화내고 슬퍼했다.이런 말을 형수는 누구한테도 해본 적 없이 혼자 속으로만 눌러 왔었다.하지만 지금, 따뜻한 내 등에 기대니 갑자기 서러움이 폭발해 버려 모든 걸 털어 놓았다.나는 그런 형수가 너무 안쓰러워 꼭 끌어안고 진지하게 말했다.“이혼해요, 형수. 진동성과 이혼해요. 이제 완전히 확신했어요. 그 인간 형수 안 사랑해요. 형수가 경제권을 쥐고 있으니 쪽팔리기 싫어서 형수를 붙잡고 있는 거예요.”“이혼 안 할 거예요. 그 여자가 지쳐 죽게 괴롭힐 거예요.”형수는 이를 갈며 말했다.진소민이 형의 아내 자리를 노린다는 걸 형수는 진작 알고 있었다.이런 상황에서 이혼하면 그 여자만 좋은 노릇 아닌가?형수는 절대 그 여자의 바람대로 되게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형도 마찬가지고. 이혼하는 건 그에게 해방이나 다름없으니까. 왜 그런 사람을 해방하게 해주겠나?형수는 형이 애가 타다 못해 불안해하도록 괴롭히고 싶었다.나는 사실 형수의 이런 모습을 원하지 않는다. 이건 상대를 괴롭히는 동시에 본인도 괴롭히니까.하지만 형수는 자기 주견이 매우 또렷한 사람이라 한번 결정한 일은 쉽게 마음을 바꾸지 않는다.때문에 나는 형수를 안쓰러워하며 꼭 끌어안았다.“하지만 사실을 알고 함께 생활하는 거, 괴롭지 않겠어요?”“괜찮아요, 내가 왜 괴로워야 해요. 그 인간 경제권이 내 손에 있는데, 그 사람은 그저 도구로 생각하면 되죠.”나는 그 말에 풋 웃음을 터뜨리고는 형수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형수가 이렇게 뒤끝 있는 사람인 줄은 몰랐네요.”형수는 내 허리를 와락 끌어안
형수는 여전히 내 품에 기대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예전에 수호 씨랑 거리를 둔 건, 진동성이 우리 사이의 일을 알고 수호 씨를 괴롭힐까 봐 그랬던 거예요. 그런데 우리 일을 모른다 해도 그 인간은 더 이상 예전의 그가 아니에요. 그렇다면 우리도 더 이상 숨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형수는 말을 마치자마자 내 입술에 뽀뽀했다.“수호 씨, 요즘 정말 보고 싶었어요. 진심이에요.”“형수 저도 보고 싶었어요.”나는 형수의 허리를 끌어안은 채 절절하게 말했다.이윽고 우리는 깊은 키스를 나누었다.“수호 씨, 나 하고 싶어요...”형수는 더 이상 거리낄 게 없어서 그런지 자기 속마음을 과감하게 드러냈다.그 말에 나는 바로 흥분했지만, 형수의 발목 부상 때문에 한편으로 걱정되었다.“형수, 마음은 알겠어요. 하지만 발목 다쳤는데, 제가 실수로 아프게 할까 봐 걱정돼요. 아니면 부상 다 낫고 해요.”형수는 멍하니 나를 바라보더니 또다시 눈시울을 붉혔다.“역시 나 생각해 주는 사람은 수호 씨밖에 없네요.”“그건 아니에요. 애교 누나도 있잖아요. 애교 누나도 형수 엄청 걱정했어요. 누나가 아까도 저더러 형수 좀 도와주라고 했거든요.”형수는 궁금한 듯 눈을 둥그렇게 떴다.“그래요? 뭐라고 하던가요?”“요즘 형수 기분이 안 좋은 게 느껴진대요. 진동성도 왕정민처럼 좋은 사람이 아니라, 형수가 그 인간과 계속 살면 행복하지 못할 거래요. 그래서 저더러 형수를 도와주라고 했어요. 우리 셋이 함께 생활하면 분명 즐겁고 행복할 수 있다면서.”형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애교가 나를 그렇게 생각해 줄 줄은 몰랐네요. 사실 나도 그런 생활이 기대돼요.”“기대할 필요 없어요. 형수와 누나만 원한다면, 현실로 될 수 있어요.”나는 형수의 허리를 안은 채 헤실거리며 말했다.지금도 이곳 용천 호텔에서 우리 셋이 같이 있는 거 아닌가? 왕정민도 없고, 진동성도 없어서 우리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고.애교 누나와 형수가 말하는 셋이 함께하는 생활이란 바로 이런
내가 애인 다루듯 형수를 안아 들어온 걸 본 애교 누나 얼굴에는 웃음꽃이 활짝 폈다.“이렇게 빨리 태연이 마음도 얻은 거예요?”나는 부끄러워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애교 누나, 많이 기다렸죠?”애교 누나는 아무렇지 않은 듯 어깨를 으쓱했다.“난 괜찮아요. 내가 다친 것도 아니잖아요. 오히려 두 사람, 태연이 그 상태인데도 한 거예요?”나는 내 품에 안겨 있는 형수를 흘끗 내려다봤다.그러고는 여전히 잠들어 있는 형수를 침대에 눕히고 이불을 덮어주고는 애교 누나한테 말했다.“누나도 제가 형수를 빨리 차지하기를 원한 거 아니었어요? 누나 말대로 했으니까 이제 시름 놔요.”애교 누나는 침대에 앉더니 손가락을 까닥거리며 오라는 신호를 보냈다.나는 고분고분 애교 누나 쪽으로 걸어갔다.그러자 누나는 두 팔을 뻗어 내 목을 끌어안더니 나를 향해 싱긋 미소 지었다.“형수를 만족시켰으니 이제 내 차례네요?”“네?”‘방금 하고 와서 아직 정신도 못 차리겠는데.’‘하지만 내가 형수를 만족시켜 주고 애교 누나를 내버려둔다면, 누나는 아마 슬퍼하겠지?’결국 나는 진지하게 말했다.“그래요. 하지만 누나가 저 좀 도와줘야겠어요.”애교 누나는 웃으며 내 가슴을 쳤다.“농담한 거예요. 그걸 어떻게 진담으로 받아 들여요? 태연이 옆에서 자고 있어요. 나 친구 앞에서 할 정도로 밝히는 사람 아니에요.”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방금 에너지 소비를 많이 해서 지금 또 하면 정말 버티지 못할지도 모른다.하지만 애교 누나가 농담이라고 하니 내 입장에서는 다행이었다.‘역시 나를 아껴주는 사람은 애교 누나뿐이라니까.’나는 애교 누나의 침대에 올라가 이불 속으로 파고들어 누나의 허리를 끌어안았다.“누나, 왕정민과 이혼한 사실은 언제 가족에게 말할 생각이에요?”“아직 생각 못 했어요.”“그럼 얼른 생각해요. 고민 끝나면 말해줘요. 누나 집에 갈 때 같이 가요.”이 말을 할 때의 나는 매우 진지했지만 애교 누나는 왠지 난감한 표정이었다.“수호 씨,
나는 갑자기 겁을 먹었다.그러자 애교 누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왜요? 무서워요?”“아니, 그런 건 아니에요.”지금 내 기분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약간 겁을 먹은 것도 있고 불안한 것도 있다. 하지만 이대로 인정하기에는 너무 겁쟁이 같았다.“수호 씨, 무서운 것도 정상이에요. 왕정민처럼 계산적인 사람도 처음 우리 집에 가서 아버지를 만났을 때 무서워서 숨도 못 쉬었거든요.”애교 누나는 나를 위로했다.이제서야 애교 누나의 집에서 왜 누나와 왕정민을 반대했는지, 왜 왕정민 정도로도 성에 차지 않았는지 이해가 갔다.강북시 부시장인데, 별 볼 일 없는 장사꾼을 만족할 리가 있나?하지만 나는 별 볼 일 없는 장사꾼도 아닌, 직원이다.그걸 인지한 순간, 자신감이 사라졌다.“애교 누나, 누나도 제가 안 될 것 같아요? 그래서 집에 계속 말하지 않았어요?”이 질문이 마음 아프기는 하지만 제대로 물어봐야 했다.애교 누나는 안쓰러운 듯 내 팔을 끌어 안았다.“아니에요, 한번도 수호 씨가 부족하다고 생각한 적 없어요. 수호 씨, 난 엄청난 부귀영화를 원하는 게 아니에요. 그저 나를 진심으로 대해주는 사람이 필요해요. 수호 씨가 나한테 진심인 거 알아요, 그래서 수호 씨랑 함께하고 싶어요.”누나의 말에 나는 어느 정도 마음이 놓였다.물론 누나 아버지의 요구를 충족하는 게 무척 어렵다는 걸 알지만 누나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노력할 생각이다.나는 누나에게 진지하게 말했다.“누나, 앞으로 어떤 결과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노력해 볼게요.”“알아요. 그래도 우리 집에 가고 싶어요?”애교 누나의 질문에 나는 진지하게 생각했다.“그래도 가고 싶어요. 우선 누나와 왕정민이 이혼한 사실은 언젠가 집에 말해야 하잖아요. 그리고 어머님 아버님께 제가 진지하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요.”“지금은 저를 인정하지 못해도 괜찮아요. 전 아직 젊으니까 기회는 많잖아요. 두 분께 제가 누나를 위해 열심히 해보겠다는 거 보여드릴 거예요.”나는 이런 방식으로
형수도 우리가 뭘 하고 있는지 알았을 거다.다만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이불을 끌어당겨 머리 위까지 덮고 자는 척 연기했다.모든 게 끝난 뒤, 나는 애교 누나 귓가에 대고 소곤거렸다.“애교 누나, 정말 나빴어요. 형수가 중간에 깨었다면 우리 정말 큰 망신을 했을 거예요.”애교 누나는 볼이 발그레하게 상기되어 있었고, 머리가 헝클어진 채 몽롱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러다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나에게 키스했다.“방금 참을 수 없어서 그것까지는 생각 못 했어요. 진정하고 나니 등골이 오싹하네요.”우리는 무의식적으로 형수를 바라봤다.하지만 언제 그랬는지 형수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있었다.그 순간 우리는 동시에 멍해졌다. 이건 형수가 깨었다가 소리가 듣기 싫어 이불을 뒤집어썼다는 뜻이니까.애교 누나의 얼굴은 마치 잘 익은 사과 같았다.“아, 쪽팔려.”그제야 뭔가를 인식했는지 애교 누나는 쪽팔린 듯 얼굴을 이불 속에 파묻었다.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이미 벌어진 일을 쪽팔려 해봤자 뭔 소용이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이럴 때일수록 태연하게 임해야 한다.형수와 누나가 모두 세 사람이 함께하는 걸 원하지 않았던가?그리고 지금, 바로 그토록 원하던 상황이고.나는 애교 누나에게 조심히 말을 꺼냈다.“누나, 괜찮아요. 형수도 이미 경험할 대로 다 경험한 사람이니까 신경 쓰지 않을 거예요. 만약 신경 쓰였다면 이미 떠났겠죠.”애교 누나는 여전히 이불 속에 머리를 파묻은 채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그만큼 쪽팔렸으니까.결국 나는 어쩔 수 없이 먼저 옷을 입었다. 그러고는 대담하게 형수 앞에 다가가 형수의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형수, 깼어요?”형수는 이불 속에서 나와 자리에 앉더니 당당하게 인정했다.“진작 깼어요.”말을 마친 뒤 형수는 이상한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봤다.내가 아무리 뻔뻔하게 행동했어도 사실은 매우 어색했다.“형수, 저 먼저 의무실에 가서 약 가져올게요. 이따 약 발라줄게요.”나는 어색함을 풀려고 화제를
“뭐가 후회돼? 수호 씨가 만족시켜 주지 못했어?”형수는 여전히 말에 거침이 없었다.그 때문에 애교 누나는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어 했다.“태연아, 그만해. 제발 부탁이야.”애교 누나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지도 웃지도 못했다.그때 형수가 손을 이불 속으로 쑥 들이밀더니 봉긋하게 솟은... 엉덩이를 만졌다.미처 옷을 입지 못한 애교 누나는 형수한테 그대로 들키고 말았다.보드라운 손을 느낀 애교 누나는 더욱 부끄러워했다.그에 반해 형수는 눈웃음을 치며 말했다.“네가 수호 씨한테 그랬다면서? 셋이 같이 여유롭게 살고 싶다고? 나 이미 마음의 준비했어. 그런데 넌 아닌가 봐?”애교 누나는 그제야 이불 속에서 얼굴을 쏙 내밀었다. 하지만 얼굴은 여전히 발그레했다.“아니야, 그냥 갑자기 들킨 게 쪽팔려서 그래.”“우리 나이에 바라는 게 뭐 더 있어? 그냥 행복한 게 좋은 거 아니야? 수호 씨 젊고 힘도 엄치고 잘생겼잖아.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가 모두 수호 씨 좋아하는데 안 될 게 뭐 있어? 젊고 잘생긴 사람 찾는 게, 늙고 못생긴 사람 찾는 것보다 나은 거 아니야?”형수는 말하면서 아예 이불 속에 들어가 누웠다.그 틈에 애교 누나는 얼른 바지를 입었다. 그러면서도 형수의 말에는 격하게 동의했다.여자는 나이가 들면 현실적인 걸 많이 알게 되고, 사랑에도 유통기한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아무리 달콤한 사랑과 행복한 결혼 생활일지라도 현실에 굴복하게 될 때가 온다.형수의 말은 많은 걸 따지지 말고 하루하루를 잘살자는 뜻이었다. 마음대로 놀고먹고 마시고, 하고 싶으면 젊고 잘생긴 사람을 찾으면서 말이다.인생은 짧은데 많이 따지는 건 그저 자기 번뇌만 더하는 셈이다.“태연아, 너 정말 진동성과 이혼 안 할 거야?”애교 누나는 걱정되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해서 물었다.그러자 형수가 침대에 기대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수호 씨가 너랑 만나지 않았다면 아마 난 수호 씨를 위해서 이혼했을 거야. 하지만 지금은 너랑 수호 씨가 한 쌍이잖아. 내가 진
내가 노랑머리한테 준 것도 적은 돈이 아니었다. 족히 10만 원 가까이는 됐으니까. 백수들한테는 이것도 큰돈이나 다름없다.노랑머리 역시 같은 생각이었는지 결국 입을 다물었다.아직 대답을 못한 사람들은 얼른 다른 질문을 하라고 나를 재촉했다.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두 번째 질문을 했다.“그럼 혹시 이연화 혹은 조금희가 요즘 낯선 사람과 만난 걸 본 사람이 있어요?”그 물음에 모든 사람은 고개를 저었다. 그 순간 나는 실망했다.“세 번째 질문, 혹시 누가 나 대신 이연화를 감시할래요?”모든 사람이 동시에 손을 들었다.나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좋아요. 그럼 다 같이 해요.”“그럼 돈은 어떻게 계산하는 거예요?”노랑머리가 물었다.나는 가방에서 또 돈 두 뭉치를 꺼냈다.“세 명이 감시해요. 한 사람당 200씩 줄게요.”세 사람의 눈은 커다래지더니 급기야 반짝반짝 빛이 났다.나는 세 사람에게 귀띔했다.“이 돈은 수고비예요. 누가 만약 유용한 단서를 제공하면 이 외에도 큰 보상을 받게 될 거예요.”‘역시 돈이 있으니 뭐든 쉽게 되네.’이 사람들이 나를 위해 성실하게 일하게 하려면 이 사람들 마음을 매수하는 게 우선이다.몇백만 원은 지금의 나한테 큰돈이 아니다. 무엇보다 사장님과 사모님을 도울 수 있다면 나는 뭐든 할 수 있다.모든 일을 마친 뒤 나는 다시 호텔로 돌아갔다.윤지은의 말을 들어보니 사모님은 이미 잠든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는 사모님 정서가 여전히 불안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기분이 다운된 사람은 쉽게 졸리고 무기력해지고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나는 방금 전 일을 윤지은에게 말했다.“이번 일 조사하기 엄청 어려울 거예요. 언제 진실이 밝혀질지도 모르겠고. 장기전을 할 준비는 됐어요?나는 윤지은을 보며 말했다.그러자 윤지은이 나를 째려봤다.“그걸 말이라고 해? 유미는 내 베스트 프렌드야. 유미한테 이런 일이 생겼는데 내가 같이 있어 주지 않으면 누가 같이 있어 줘? 그러는 너야말로, 갑자기 왜 그런 말을 하는데? 설마
나와 윤지은은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우리는 사모님 마음이 편치 않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몰랐다.“사모님, 비록 어렵지만 아무 희망도 없는 건 아니에요. 우리가 끝까지 견지하면 분명 수확이 있을 거예요. 게다가 사장님이 하늘에서 우리를 지켜줄 거예요.”사장님을 언급하자 사모님의 정서는 드디어 조금 안정되었다. 사모님은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눈으로 하늘을 바라보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호섭 씨, 정말 우리를 지켜줄 거야?”“당연하지.”윤지은도 사모님을 위로했다.그때 내가 분석했다.“제가 볼 때 이연화가 거짓말하는 것 같아요. 그 여자가 한 말 진짜 아니에요.”“너도 그래?”보아하니 윤지은도 똑같은 느낌을 받은 모양이었다.“넌 어떻게 보아냈는데?”“느낌이 그래요. 이연화가 그렇게 드센데 남편 일을 물어보지 않았다는 게 말이 안 돼요. 게다가 조금희 카드에 입금된 2억이 이연화랑도 연관된 것 같아요.”이건 내 직감이다.나는 왠지 이연화 같은 신분과 배경에 성깔 있는 여자라면 통제욕이 엄청날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여자가 자신을 배신했던 남자를 나 몰라라 방치할 수 있을 리가 있을까?그건 그 여자 성격에 부합되지 않는다. 윤지은의 관점 역시 나와 어느 정도 비슷했다. 윤지은은 내 말에 일리가 있다며 맞장구치면서 보충했다.“그리고 또 이연화가 2억을 얘기할 때 자꾸 눈빛을 피했어. 그건 거짓말한다는 표현이야.”“문제는 그 여자가 진실을 말하지 않으려 한다는 거예요.”이건 가장 골치 아픈 부분이다.그때 윤지은이 말했다.“그건 간단해. 내가 사람을 시켜 그 여자를 감시하라고 할 거야. 그러면 분명 허점을 보일 거야.”이런 건 역시 돈이 많아야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이다.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진짜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 있다.나는 얼른 맞장구쳤다.“만약 그곳 주민을 감시자로 붙여두면 더 좋을 거예요. 그 사람들이 이연화 행적을 더 잘 알고 있을 테니까요.”윤지은은 팔짱을 끼고 나를 바라봤다.“그건
사모님의 기세에 눌린 이연화는 오만하고 안하무인이던 태도가 싹 사라지고 다급히 대답했다.“말할게, 말한다고. 이거 먼저 놔.”사모님은 그제야 이연화 머리채를 놔주었다.이연화는 머리를 마구 문질러댔다. 심지어 얼굴까지 시뻘게진 걸 봐서는 사모님의 공격에 적지 않게 다쳤음을 알 수 있었다.이연화는 한참 동안 머리를 쓰다듬은 뒤 그제야 입을 열었다.“그 2억은 나도 어떻게 된 건지 몰라요. 그 인간이 우리 모자한테 주는 보상이라면서 줬어요.”“당신은 그 사람 아내인데 모른다는 게 말이 돼?”우리는 여자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러자 이연화가 조급히 말했다.“내 말 다 사실이에요. 난 정말 어떻게 된 건지 몰라요. 우리가 부부인 건 맞지만 명의상 부부나 다름없었어요. 그 인간이 나 몰래 불여우를 만나다가 잡힌 적도 있어요.”“그때 그 인간이 이혼만 하지 말자고 싹싹 빌지 않았으면 진작 헤어졌을 거예요.”여자의 말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확인할 방법이 없어 나는 차가운 표정으로 물었다.“그 2억이 어디서 났는지 몰랐다면, 조금희 씨가 불치병이라는 건 알았겠죠?”이연화는 고개를 끄덕였다.“그건 알아요. 그 인간이 오래전에 내 앞으로 보험을 들어 놓을 걸 줬었거든요. 자기가 가면 보험사에서 돈이 나올 거라면서.”이건 모두 일가 조사했던 내용이었다. 다만 이연화가 말한 사실이 모두 진짜인가 하는 게 문제였다.나는 이연화를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봤다.“그날 장례식장에서 화장을 미뤄달라고 했는데 왜 안 들었어요?”“나 할 일 많아요. 당신들과 시간 낭비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 인간이 당한 사고가 단순 사고든 인위적인 사고든 난 관심 없어요. 그 인간이 내 앞으로 돈을 남겼으니 난 그 돈을 얼른 받아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싶었어요.”이연화는 조금희와 더 이상 감정이 남아 있지 않아 조금희 일에 일말의 관심조차 없어 보였다.하지만 2억의 존재를 모른다는 게 진짜일지 의문이었다.만약 진짜라면 사건의 실마리는 또 끊기게 된다.나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질
그렇다면 우리의 추측이 거의 맞는 거로 증명이 된 셈이다. 게다가 이연화는 분명 뭔가를 알고 있을 거다.“이러면 이연화 모자만 찾으면 사건의 진실을 파헤칠 수 있겠네요.”우리는 일이 이렇게 순조로울 줄 몰랐다.심지어 사모님은 마음이 급해 벌떡 일어섰다.“더는 못 기다리겠어. 나 지금 당장 이연화 만나러 갈래.”“유미야. 아직 조급해하지 마. 지금 이연화 모자가 어디 있는지 모르잖아. 이렇게 해, 내가 한나한테 조사해 보라고 할게.”윤지은은 강한나에게 전화해 이연화 모자가 사는 곳을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다.직무상 편의를 이용해 강한나는 곧바로 이연화 모자의 거주지를 찾아냈다.[미리 말하는데, 이연화 모자 좋은 사람 아니야. 이연화 아버지는 판자촌 터줏대감이라 되도록 갈등을 만들지 마.]“알았어.”이연화가 만만치 않다는 걸 알지만 우리는 무조건 가봐야 했다. 그건 사모님한테는 더더욱 간절했다.아무리 그곳에 불바다라도 사모님은 눈살을 찌푸리지 않을 것만 같았다.이연화 집 주소를 알아낸 우리는 곧장 그곳으로 향했다.판자촌은 낡은 건물 지역이라 외지고 낡은 곳에 있는 데다 교통도 불편했다. 다만 이연화의 집은 그 판자촌에서 가장 큰 집이었다.우리가 이연화의 집을 찾았을 때 이연화는 집에서 화투를 치고 있었다.남편이 죽은지 얼마 되지 않는 여자가 이곳에서 한가하게 화투나 치고 있다니 침 한심했다.“이연화 씨, 할 얘기가 있어서 찾아왔어요.”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그러자 이연화는 나를 흘긋 보더니 말했다.“나 지급 바빠서 시간 없어요.”“이건 당신 남편 조금희 씨와 관련된 일이라 이연희 씨가 저희랑 반드시 가주셔야 해요.”기분이 살짝 언짢아진 나는 당연히 다정한 목소리가 나가지 않았다.하지만 이연화는 자기 구역에 있어 무서울 게 없어 심지어는 나에게 소리까지 질렀다.“반드시? 내가 왜? 당신들이 누군데? 경찰이야? 내가 왜 당신들 말을 들어야 해? 당장 꺼져. 화투 치는 거 방해하지 말고.”여자는 말하면서 다시 화투 치는 데
“보아하니 두 사람 모두 조금희 씨 몸에 종양이 퍼지고 있어 곧 죽는다는 걸 알고 있었네요.”“혹시 조금희 씨가 뒤에서 꼼수 부린 거 아닐까요?”나는 문득 뭔가 떠올라 의문점을 제기했다.현재 상황으로 분석해볼 때 조금희의 혐의가 가장 높았다.그때 윤지은이 말했다.“자세한 건 조사해 봐야 하지만 나도 조금희 씨가 이상한 것 같아.”사모님은 참지 못하고 눈시울을 붉혔다.“다음에 조사할 때 나도 끼워줘. 나도 같이 조사하고 싶어. 두 사람 말 맞아. 호섭 씨가 억울한 죽임을 당했는데, 나라도 진실을 밝혀 억울함을 풀어줘야 해. 이게 내가 살아갈 유일한 동력이야.”사모님은 말하면서 또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슬픔 속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나와 윤지은은 항상 사모님 곁을 지킬 거다.그날, 우리는 곧장 종양 전문 병원에 가 조금희의 병력을 조사했다.조금희 몸에서 종양이 발견된 건 1년 전인데, 처음에 양성이었다가 악성으로 번지기까지 적지 않은 돈을 들였던 거로 확인되었다.게다가 조금희는 불치병에 걸리기 전에 아내와 갈등을 겪었다.“자세한 건 저도 모르는데, 조금희 씨가 우리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젊은 여자가 항상 와서 돌봐줬어요. 그러다가 부인이 병원에 찾아와 그 아가씨를 때렸고요. 그 일은 병원 사람들 다 알아요.”‘그렇다는 건 조금희가 바람을 피웠다는 거네?’조금희가 이런 사람일 주은 생각지도 못했다.윤지은은 여간호사에게 돈다발을 건넸다. 그러자 간호사는 아주 기뻐하며 떠나갔다.조사를 마친 뒤 우리는 밖에서 식당을 찾았다.식당에 도착한 윤지은은 분석을 시작했다.“조금희 씨가 불치병에 걸렸고, 예전에 아내와 아들한테 잘못을 저질렀다면 혹시 자기가 얼마 못 살 걸 알고 호섭 씨를 배신해 돈을 챙겼던 건 아닐까?”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그럴 가능성이 커요. 만약 조금희 씨 계좌에 큰돈이 입금되었는지 확인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아쉽지만 이곳은 강북이 아닌 Y시다. 안 그랬다면 윤지은의 인맥
나는 기쁨을 주체할 수 없었다.배고픔을 느낀다는 건 좋은 일이다.윤지은이 아침을 사 오자 사모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음식을 먹었다.그걸 본 윤지은은 나를 향해 엄지를 추켜들었다. 그건 내 실력을 인정한다는 뜻이었다. 이번 치료 방법이 확실히 효과적이었으니까.나는 사모님을 한참 동안 관찰했다.비록 컨디션이 많이 안 좋은데도 사모님은 음식 드실 때 여전히 우아하고 단아했다. 살짝 슬픔을 띄고 있어 살짝 비극의 여주인공 같기도 했다.내가 한창 사모님을 바라보고 있을 때, 윤지은의 날카로운 눈빛이 갑자기 나를 쏘아봤다. “짐승!”윤지은은 욕지거리를 퍼부었다.그 욕에 나는 억울함을 호소했다.“제가 뭘 했다고 짐승이라는 거예요?”“아무튼 짐승 맞아. 이런 상황에서 훔쳐보기나 하고.”윤지은은 나를 째려봤다.난 그저 사모님을 몇 번 본 것뿐인데 나를 짐승 취급하다니, 너무 어이없었다.하지만 이러다 또 싸움 나겠다 싶어 나는 얼른 아침을 들고 다른 곳에 가서 배를 채웠다.식사를 마친 뒤 사모님은 자발적으로 나와 윤지은을 찾아왔다.“알고 있는 거 사실대로 다 알려줘요. 난 호섭 씨 사고에 대한 모든 사실이 알고 싶어요.”사모님은 너무 평온해 마치 다른 사람 같았다. 때문에 나는 사모님 상태가 여전히 걱정스러웠다.“사모님, 우선 맥 좀 짚어봐도 될까요?”“그럴 필요 없어요. 내가 뭘 해야 하는지 나도 알아야. 걱정할 거 없어요. 어젯밤 많이 생각해 봤고, 호섭 씨가 떠난 사실을 받아들였어요.”“내가 받아들일 수 없는 건 호섭 씨처럼 착한 사람이 남한테 죽임을 당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억울함을 풀어줄 거예요.”“난 강해져야 하고 호섭 씨처럼 용감해져야 해요. 그래야 호섭 씨가 마음 놓고 갈 수 있어요.”사모님은 애써 슬픔을 참으려 했지만 결국 참지 못하고 또 흐느꼈다.그 말을 들으니 나도 코끝이 시큰거리고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이제 우리에게는 같은 목표가 생겼다. 바로 진실을 밝히는 것.나는 얼른 마음의
나는 사모님 팔을 힘껏 잡으면서 사모님과 눈을 마주쳤다.“사모님! 현실을 받아들이세요. 더 이상 자신을 속이지 마세요. 사장님이 이런 사모님 보고 편히 가지 못하길 원하시는 건 아니잖아요.”내 말이 사모님의 마음에 큰 상처를 줬는지, 사모님은 순간 울음을 터뜨렸다.윤지은은 내가 강제로 사모님을 자극했다며 나를 탓했다.“유미 지금 안 그래도 나약한 상태인데, 왜 그런 말을 직접 해?”나는 너무 난감했다.“누구는 뭐 이러고 싶은 줄 알아요? 하지만 사모님이 계속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고 환상 속에 살고 있는데, 계속 이러면 상태가 점점 악화해요.”윤지은은 내 말에 일리가 있다고 인정했지만 그와 동시에 사모님이 또 상처받을까 봐 걱정했다.나도 사모님이 현실을 받아들이게 하려면 그 과정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알고 있다. 하지만 사모님을 절망 속에서 끄집어내려면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나는 윤지은에게 말했다.“정말 사모님을 돕고 싶다면 모질어야 해요. 이럴 때 마음 약해지면 오히려 해치는 거예요.”윤지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내 말에 동의하는지, 내가 치료할 수 있도록 묵묵히 자리를 비켜줬다. 나는 나른하게 힘이 쭉 빠진 사모님을 잡고 진지하게 말했다.“죽은 사람이 다시 돌아올 수 없어요. 사모님이 속사한 건 알겠어요 하지만 지금 속상해할 때가 아니에요. 우리 할 일이 있어요.”“사장님 사고 단순 사고가 아니에요. 누군가 인위적으로 사고 낸 거예요. 사모님, 정신 차리고 우리와 함께 진실을 조사해요.”사모님은 텅 빈 눈으로 나를 보며 중얼거렸다.“그게 무슨 말이에요?”사모님을 깊은 슬픔에서 꺼내는 건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무엇보다 중요한 건, 서두르지 않고 그녀가 진실을 받아들일 수 있게 천천히 다가가는 것이다.나는 말투를 부드럽게 하며 방금 한 말을 또다시 반복했다.“사장님 교통사고에 수상한 점이 발견됐어요. 사모님도 사장님이 억울하게 돌아가시는 거 원하지 않죠? 우리 함께 진실을 알아내 사장님이 억울하게 죽임당하
나는 그 말을 들은 순간 식은땀이 송골송골 솟아올랐다.사모님 상태는 살짝 이상해 보였다. 아마도 의식이 혼미해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모를지도 몰랐다.나는 사모님이 바보 같은 짓을 할까 봐 서둘러 사모님 팔을 꼭 잡았다. 그러면서 계속 따라오지 않으면 강제로라도 데려올 생각이었다.“수호 씨, 이거 놔요. 난 남아서 호섭 씨랑 같이 있을래요...”사모님은 마구 버둥대며 소리쳤다.이러다가 사고가 날 것 같아 나는 아예 사모님을 어깨에 두러 업었다. 그러자 사모님은 곧바로 버둥거리며 소리쳤다.벼랑 끝에 서 있는지라 조금만 실수하면 함께 아래로 떨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기에 나는 결국 사모님을 손날로 기절시켰다.내가 가드레일 안쪽으로 다시 넘어왔을 때 윤지은의 차가 마침 도착했다.“왜 그래?”윤지은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나는 사모님을 차에 앉히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사모님 지그 정신이 이상해서 현실과 환각을 구분하지 못해요. 방금 사장님이 춥다고 한다면서 옷 주러 내려가겠다고 했어요. 제가 제때 나타나지 않았으면 뛰어내렸을지도 몰라요.”윤지은은 내 말을 듣더니 미간을 찌푸렸다.“계속 이럴 순 없어. 우리가 잠깐은 지켜볼 수 있지만 평생 지켜볼 순 없잖아.”그때 내 머릿속에 문득 방법이 떠올랐다.“사모님께 사장님이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알려드리는 건 어때요?”“미쳤어? 이번 일로도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닐 텐데, 또 자극하자고?”윤지은은 내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이에 나는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제 할아버지가 남긴 의학 서적에 비슷한 사례가 있는데, 옛날에는 환자가 가족을 잃고 감정을 통제하지 못할 때 치료가 안 된다면 환자한테 희망을 줘야 한대요. 그 희망이 의학에서 말하는 기예요.”“그 기를 가진 환자가 음식 치료와 약물 치료를 함께 진행하면 서서히 회복할 수 있대요.”“사장님의 죽음에 수상한 점이 있잖아요. 그래서 사모님과 함께 그 사건을 수사하는 거예요. 아마 사모님도 사장님이 죽은 진실을 알고 싶을 거예요.”
장례식장 안을 모두 뒤져 봤지만 사모님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리 조급하지 않던 내 마음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불안해졌다.사모님은 현재 몸 상태도 안 좋고 정서도 매우 불안하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가족한테 어떻게 말해야 할지 걱정됐다.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내 마음은 점점 불안해졌다.그러다 결국 방법이 없어 나는 문득 사모님 번호를 떠올려 그쪽으로 전화를 걸었다.전화는 계속 긴 연결음만 들릴 뿐 아무도 받는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내가 포기하려고 할 때 연결음이 꺼졌다. 액정을 확인하니 전화가 연결되었다.“사모님?”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수호 씨, 나 괜찮으니까 좀 내버려둬요.]사모님 목소리는 매우 우울해 보였고 기운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나한테는 너무 듣기 좋았다. 나는 다급히 물었다.“사모님, 어디 있어요? 너무 걱정돼요.”[혼자 있고 싶어요.]“알아요, 아는데 어디 있는지만 알려줘요. 사모님이 안전하다는 거 확인해야 해요.”전화 건너편에서 한참 침묵이 흘렀다.그때 갑자기 차 경적음이 들려왔다.그렇다는 건 사모님이 장례식장에 있는 게 아니라는 뜻이었다.나는 문득 사모님이 있을 수 있는 곳이 떠올랐다. 하지만 조심스럽게 물었다.“사모님, 알려주시면 안 돼요?”사모님은 아예 전화를 끊어버렸다.하지만 이미 대충 답을 얻은 나는 장례식장을 뛰쳐나가 택시를 잡고 사장님이 사고를 당한 곳으로 향했다.가는 길에 사모님을 찾았냐는 윤지은의 전화를 받은 나는 내 추측을 말했다.“아니요. 사모님 아마도 사장님 사고 난 곳에 있는 것 같아요.”[거긴 왜?]윤지은은 이해가 되지 않아 무의식적으로 물었다.“사장님 죽음이 수상해 직접 조사하고 싶었을 수도 있고, 단순히 사장님이 그리웠을 수도 있고... 아무튼 저 지금 가는 중이에요.”[그럼 먼저 건너가. 나 이따 바로 갈게.]나는 윤지은과 상의한 뒤 먼저 사장님이 사고 난 곳으로 향했다.사고가 난 곳은 절벽인데, 사모님은 마침 절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