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몰래 밖에 나돌아 다니지 않았지? 딴 여자 만나지 않았지?”윤해펄은 다급히 맹세했다.“나 하늘에 대고 맹세해. 난 당신한테 미안한 일 한 적 없어. 이게 거짓이면 천벌 받아 죽을 거야!”이영미는 그래도 남편이 아까운지 얼른 그의 입을 막았다.“당신이 죽으면 나는 어떡하라고? 과부가 되라고?”이영미는 말하면서 남편의 품에 기댔다.두 사람은 벌써 스무 날도 넘게 보지 않아, 이영미는 남편이 무척 그리웠다. 그래서 참지 못하고 돌아온 거고.윤해철은 아내의 마음을 알 리 없었다. 다만 요즘 여자는 필요도 없고, 성욕도 없었다. 그저 이렇게 서예나 하는 게 성관계를 하는 것보다 더 재밌었다.때문에 윤해철은 얼른 이영미를 밀어냈다.“여보, 이제 막 돌아와서 피곤하지? 내가 어깨 주물러 줄게.”윤해철은 말하면서 아내를 끌어와 의자에 앉혔다.하지만 남편의 행동에 이영미는 화가 더 치밀었다. 그녀는 입을 삐죽 내밀며 속으로 중얼거렸다.‘내가 용기 내어 먼저 돌아와 이렇게까지 하는데, 손도 안 댄다고?’‘계속 냉전하자는 거야 뭐야?’“누가 당신 마사지나 받겠대? 당신 대체 무슨 뜻이야?”윤해철은 일부러 모르는 척 말을 흐렸다.“내가 무슨 뜻은, 당신 아껴주는 거잖아.”이영미는 씩씩거리며 말했다.“이게 아껴주는 거야? 일부러 나 밀어내는 거지. 지금 당신을 봐, 나를 다시 친정에 보내려고 용쓰는 거잖아.”“아니야!”‘설득력이 하나도 없잖아.’이영미는 화가 나서 벌떡 일어나 눈시울을 붉힌 채 말했다.“지은도 당신이 변했다던데, 역시 맞았네. 이대로 살 거면 이혼해.”말을 마친 이영미는 화를 내며 밖으로 뛰쳐나갔다.아내가 화를 내며 떠나자 윤해철은 얼른 쫓아갔다.“여보, 이제 막 돌아왔으면서 어디 가려고?”이영미는 걸음을 멈추지 않은 채 화를 내며 말했다.“지은이한테 갈 거야. 앞으로 우리 모녀가 같이 살 거니까, 당신은 혼자 살아.”“여보, 안돼. 돌아와...”윤해철은 입으로는 안 된다고 하면서 쫓아갈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그 시각, 나는 욕조에 누워 핸드폰으로 쇼츠를 보며 시간을 때우고 있었다.그때 갑자기 밖에서 다급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깜짝 놀란 나는 바로 경계하는 목소리로 물었다.“누구세요?”“나예요, 문 열어요!”윤지은의 목소리였다.나는 순간 마음이 찔려, 윤지은이 내 다른 신분을 눈치챈 건 아닌가 하는 걱정이 앞섰다.‘정말 따지러 왔으면 어떡하지?’그렇다면 절대 문 열어주면 안 된다.나는 욕조에서 나와 목욕 타월로 몸을 두르고 문 앞에 다가가 물었다.“내 방에는 왜 왔어요?”“할 얘기가 있으니까 문 열어요!”“할 말 있으면 밖에서 해요.”나는 문을 열 배짱도, 마음도 없었다.그러자 윤지은이 싸늘한 경고를 날렸다.“셋 셀 테니까 순순히 열어주는 게 좋을 거예요. 안 그러면 차버릴 태니까.”“미쳤어요? 갑자기 화내면서 찾아와 문 열라고 하는 게 어디 있어요? 그쪽이 나한테 뭐 할 줄 알고? 그리고 할 말 있으면 밖에서 말하라니까, 왜 자꾸 들어오겠다는 거예요? 목적이 뭐예요?”윤지은은 내 설명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고 카운터를 시작했다.“셋, 둘...”나는 이렇게 가다가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윤지은은 워낙에 막무가내기에 나는 얼른 침대 쪽으로 달려가 프런트에 전화했다.“여보세요? 여기 미친 여자가 자꾸만 내 방문을 차고 있어요. 얼른 와서 데려가요.”‘내가 쫓아내지 못한다고 호텔 직원도 쫓아내지 못하겠어?’나는 전화를 끊은 뒤 방에서 기다렸다.하지만 미친 듯이 쾅쾅거리며 문을 걷어차는 소리에 너무 섬뜩했다.다행히 호텔의 서비스가 좋아 3분도 안 돼서 직원이 도착했다.호텔 직원이 나서니 나는 그제야 안심됐다.‘이제는 함부로 하지 않겠지?’“아가씨, 왜 그러십니까?”“이 문 열어.”나는 문에 바싹 기대 밖의 대화를 들었다. 하지만 밖의 대화에 어리둥절했다.‘여긴 고객님이 아니라 아가씨라고 하나?’‘방금 그게 윤지은 목소리인가?’내가 멍해 있을 때, 삑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그러더니 윤지은이 싸늘
윤지은이 그저 평범한 의사인 줄 알았는데, 배경이 이렇게 빵빵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나는 한순간에 기가 죽어 윤지은을 보며 말까지 더듬었다.“대, 대체 뭐 하자는 거예요?”윤지은은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차갑게 물었다.“아까 백연우랑 잤지?”나는 윤지은이 왜 이런 질문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이 상황에 거짓을 말해야 할지 솔직하게 말해야 할지도 막막했다.머리가 너무 복잡해 언어 기능도 상실한 기분이었다.내가 계속 대답하지 않자 윤지은은 갑자기 목소리를 높였다.“묻잖아. 왜 멍때리고 있어?”나는 깜짝 놀라 심장이 튀어나올 지경이었다.결국 전전긍긍하며 말했다.“아니요. 계속 방에 있었어요.”나는 고민한 끝에 결국 거짓말을 선택했다.이 여자 목적이 뭔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친구와 잤다는 걸 안 될 것 같았다.사람은 무서운 소유욕을 갖고 있는 데다 쉽게 질투하는 동물이다.이미 본인과 잤는데, 친구와도 잤다는 걸 알면 윤지은은 본인이 백연우보다 못한가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때문에 그런 상황을 방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인정하지 않는 거다.윤지은은 믿기지 않는지 나를 뚫어져라 쳐다봤다.“정말? 한 시간 넘게 목욕하고 있었다고? 껍질 벗겨질까 걱정도 안 되나?”나는 뻔뻔하게 말했다.“이런 곳에 처음 왔으니 뭐든 잘 누려야 할 거 아니에요. 그래서 좀 오래 한 건데, 안 돼요?”윤지은은 내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는지 천천히 의심을 풀었다.하지만 거짓말을 하는 내내, 내 심장은 목구멍까지 튀어 올랐다.윤지은은 탐정처럼 내 방을 한 바퀴 빙 둘러봤다.난 윤지은이 여자 셜록홈즈라 불릴 정도로 관찰력이 뛰어난 걸 알고 있다.그래서 내가 썼던 종이를 방까지 가져오지 않은 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그러지 않으면 빼도 박도 못할 테니까.하지만 나는 여전히 여자의 치밀함과 논리적 사고 능력을 쉽게 봤다.유지은은 욕조 앞에 다가가 허리를 숙인 채 안을 쓱 만지더니 갑자기 얼굴이 어두워졌다.“거짓말하네.”나는 너무 당황해서
윤지은의 압박에 나는 심장 박동이 멈춘 것 같았다.특히 나를 꿰뚫어 볼 것 같은 두 눈을 보면 마치 내 모든 치부가 드러난 것처럼 불편해 눈을 똑바로 볼 수 없었다.나는 결국 고개를 돌렸다. 심지어 이마에서 식은땀까지 나기 시작했다.“그런 거 아니에요.”윤지은은 차가운 얼굴로 나한테 걸어왔다. 그녀는 남의 기분을 잘 엿보는 사람이었다. 때문에 내가 대답할 필요도 없이 답을 얻었다.그 시각 윤지은은 마음이 복잡했다.입으로는 나를 신경 쓰지 않는다고 자꾸만 부정했지만 내가 자기 친구 백연우랑 잤다는 추측이 들자 너무 괴로웠다. 마음이 복잡해 딱 어떤 기분이라고 정의 내리기도 힘들었다.그런 윤지은의 마음을 알 리 없는 나는 그저 윤지은에게 진실을 들키고 싶지 않다는 생각뿐이었다.그때 윤지은이 갑자기 차갑게 말했다.“고개 돌려서 나 봐.”명령 투인 말투와 부잣집 아가씨라는 신분은 나에게 압박으로 작용했다.솔직히 겁먹었다는 건 나도 인정한다.이 호텔 전체가 윤지은네 건데, 겁먹지 않을 수 있을까?나는 조심스럽게 윤지은을 바라봤다. 이 순간 내가 어떤 표정인지 볼 수 없었지만 아주 엉망이라는 건 확신할 수 있었다.나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대체 뭘 원해요? 내가 윤지은 씨한테 잘못한 것도 없잖아요.”“솔직히 말해. 내 친구 백연우랑 무슨 사이냐?”윤지은은 역시나 내가 솔직히 말하는 걸 듣고 싶어 했다.하지만 나는 너무 무서웠다. 윤지은이 나를 계속 몰아붙이는 게 뭐 하자는 건지 모르니까.결국 나는 끝까지 인정하지 않았다.“아무 사이도 아니에요. 안 지 얼마되지도 않았는데, 무슨 일이 벌어질 리가 없잖아요.”윤지은은 내가 끝까지 인정하지 않자 갑자기 내 손을 잡았다.그 순간 나는 심장이 목구멍까지 튀어 올랐다.‘이 여자가 대체 뭐 하자는 거지?’윤지은은 나를 보며 여전히 차가운 표정을 지었다.“좋아, 그럼 가서 백연우한테 말해. 백연우 같은 스타일 안 좋아한다고.”“미쳤어요? 뜬금없이 가서 그런 말을 왜 해요?”나는
“안 그러면 후회하게 해줄 테니까.”마지막 한 마디는 협박이 아닌 강조였다. 심지어 압박감이 장난이 아니었다.그 때문에 나는 백연우와 있었던 일을 더 말할 수 없었다.하지만 한편으로 억울하고 답답해 당장이라도 이 여자를 침대에 눕혀 혼내주고 싶었다.“그런데 이렇게 뜬금없이 가서 안 좋아한다고 말하는 거 너무하지 않아요?”나는 윤지은의 위세에 눌려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백연우를 찾아가 뜬금없이 그런 말을 하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했다.방금 전에 그런 짓을 했는데 이제 와서 안 좋아한다고 하는 건 매너가 아니니까.윤지은이 나한테 자꾸만 그렇게 하라고 강요하는 건 내가 정말 백연우한테 그런 말을 하길 바라 것보다 시험해 보자는 마음이 더 컸다.혹은 내 입으로 직접 솔직한 말을 듣고 싶거나.윤지은은 내가 끝까지 부정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하지만 오히려 이것도 괜찮다고 생각했다.내가 바로 인정하면 윤지은은 오히려 받아들일 수 없었을 테니까.윤지은은 결국 한 걸음 양보해서 말했다.“그래요, 뭐 이번에는 용서해 줄게요. 하지만 잘 들어요. 앞으로 내 친구 세 명 중 그 누구에게도 손대지 마요!”“만약 상대방이 나를 건드리면요?”나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그랬더니 윤지은이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걔네가 어딜 만지면 수호 씨 어딜 망가뜨릴 거예요.”‘헐.’‘카리스마 사장님에 관한 소설을 너무 많이 봤나?’‘어쩜 이리 막무가내지?’나는 바로 반박하고 싶었지만 상대의 신분이 신분이니만큼, 참을 수밖에 없었다.“그래요. 하라는 대로 할게요. 부잣집 아가씨의 명령이니까.”나는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그러자 윤지은이 나를 노려보더니 내 방에서 나가 808호실로 돌아갔다.엉망이 된 방 안을 보니 지은은 마음이 어수선해 바로 담당 부서에 전화했다.“808호실 모든 침구 세트 바꿔. 싹 다!”“네, 아가씨.”호텔 직원의 업무 처리 효율은 대단했다. 30분도 안 되는 사이에 방 안의 모든 것이 새것으로 바뀌었다.심지어
순간 웃음이 터졌다.‘뭐야? 내가 자기 없으면 못 사는 줄 아나? 어디서 아가씨 성질을 나한테 부려?’‘누가 신경이나 쓰는 줄 아나?’나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지만 겉으로 비위를 맞춰야 했다. 안 그러면 희롱하지 못하니까.결국 나는 윤지은에게 답장했다.[내가 설마 그쪽을 차단했겠어요? 전에는 실수로 연락처가 지워진 것뿐이에요.][내가 바보인 줄 아나!]나는 웃는 이모티콘을 쓰며 답장했다.[진짜예요. 그쪽처럼 예쁘고 몸매도 좋은 여자를 내가 왜 차단하겠어요?][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전에 한 말 생각해 봤어요?][생각해 봤는데, 사귀어도 될 것 같아요. 하지만 우선 만나지 않을 수 있어요?][만나 보지도 않고 어떻게 연애한다는 거예요?][안될 것도 없죠. 우선 연락하면서 서로 알아가면 되죠. 난 좀 늦게 끓는 성격이라 먼저 만나면 어색할 거예요.][그럼 됐어요. 다른 사람 찾지 뭐.]나는 사실 어장관리를 하려고 이렇게 말한 건데, 윤지은이 이렇게 대답할 줄은 몰랐다.의외의 대답에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고,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고민이었다.그 시각, 윤지은의 마음은 이미 다른 데로 가버렸다. 오히려 그녀야 말로 나와 사귈 생각이 사라져 나를 자기 어장에 들일 생각이었다.집사 아저씨가 신원 조사를 끝내면 나를 꼬셔내 얼굴을 직접 볼 계획이었으니까.그때, 윤지은의 핸드폰이 윙윙 진동했다.헤드폰을 들어 확인하니 다름 아닌 어머니한테서 걸려 온 전화였다.윤지은은 미간을 좁혔지만 결국 전화를 받았다. 다만 말투가 쌀쌀맞았다.“엄마, 지금 시간이 몇 시인데 전화해요?”이영미는 전화 건너편에서 씩씩거렸다.[나 네 아빠랑 못 살겠어. 이혼할 거야. 지은아, 너 지금 어디야? 엄마가 네 집으로 갈게, 앞으로 우리 모녀가 같이 살자.]윤지은 어머니의 말에 어리둥절했다.“무슨 상황이에요? 또 아빠랑 싸웠어요?”‘한 달 전에도 싸우고 친정에 가면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다 했으면서.’이영미는 더 이상 설명하고 싶지도 않아 계속 화만 냈다
애교 많은 여자는 운명도 좋다는데, 윤지은은 자기 어머니가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한다.아버지는 항상 어머니한테 고분고분하고 뭐든 들어주고 예뻐해 줬으니까.심지어 이영미가 윤지은을 낳을 때 너무 아파 둘째는 절대 안 낳는다고 쐐기를 박아 두는 바람에, 윤해철은 정말로 아내에게 둘째를 낳지 못하게 했다.부모님이 아무리 닦달을 해대도 윤해철은 계속 마누라 편만 들어 결국 윤씨 가문에 후손이라곤 윤지은 한 명뿐이다.때문에 윤해철은 어릴 때부터 딸을 미래에 자기 회사를 잇는 후계자로 정성껏 키웠다.하지만 윤지은은 재계에 전혀 관심이 없고 의학을 좋아했고, 어머니처럼 고집스럽기까지 해서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의대에 합격했다.그때로부터 두 부녀 사이에 모순이 생겼다.다만 윤지은은 그딴 건 상관하지 않고 제 마음 내키는 대로 뭐든 했기에 지금 두 부녀 사이가 매우 긴장하다20분도 채 안 되어 이영미가 용천 호텔에 나타났다.“사모님...”“쉿!”이영미는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를 취하며 호텔 지배인에게 말했다.“사모님이라고 부르지 말고 여기 고객과 똑같이 대해. 아가씨는 어디 있지? 방은 몇 호실이야?”이영미는 누가 제 신분을 알아챌까 봐 주위를 두리번거렸다.그 모습은 귀엽기도 하면서 조금 웃겼다.지배인이 다급히 말했다.“아가씨는 VIP 구역 808호실에 묵고 계십니다.”“그래, 알았어. 다들 일 봐. 별일 없으면 나 방해하지 말고.”이영미는 곧장 VIP 구역으로 향했다.그리고 얼마 뒤 808호실 앞에 도착했다.윤지은은 조심조심 행동하는 어머니를 보자 말문이 막혔다.“엄마, 뭐 해요?”“쉿, 아는 사람 만날까 봐 오는 내내 조심하면서 왔어. 얼른 들어가게 좀 비켜 봐. 아는 사람 만나기라도 하면 안 되잖아. 안 그러면 네 아빠... 아니, 그 남자가 내가 여기 있다는 걸 알 거 아니야.”이영미는 매번 화날 때마다 남편을 낯선 사람처럼 대하며, 윤해철을 그 남자라고 칭한다.그것에 이미 익숙해진 윤지은은 팔짱을 낀 채 ‘또 왜 이러지?’하
“지은아, 네 아빠 혹시 밖에 여자 있는 거 아니겠지?”오는 내내 이영미는 이 생각에 사로잡혀 가슴이 답답했다.그 말을 들은 윤지은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이 세상 남자가 모두 바람을 피워도 아빠는 절대 그럴 분 아니에요.”딸의 말에 이영미는 아주 만족했다. 그와 동시에 행복감이 밀려왔다.하지만 여전히 참지 못하고 미간을 좁혔다.“그럼 왜 나한테 이렇게 쌀쌀맞게 구는 건데? 스무날이나 전화도 안 하고, 내가 먼저 찾아갔는데 열정적으로 맞아주지도 않고. 남자들이 이러는 건 바람피우거나 바람피우기 직전이거나 둘 중 하나야. 지은아, 엄마가 불안해서 그러는데, 네가 네 아빠 좀 조사해 줄 수 없을까?”윤지은은 어머니한테 물 한 컵을 따라 주며 담담하게 말했다.“아까는 아빠랑 이혼한다면서요? 바로 이혼하면 될 건데 뭔 조사를 해요?”이영미는 순간 난감해졌다.그건 솔직히 그냥 해본 소리지, 절대 이혼할 마음이 없었다.“너도 참, 자식들은 부모 이혼을 뜯어말린다고 하던데, 넌 어쩜 아빠랑 엄마를 이혼하라고 부추기냐?”윤지은은 어머니 옆에 앉으며 솔직하게 말했다.“그건 엄마가 아빠랑 절대 이혼하지 않을 걸 아니까 그렇죠. 항상 이런 방식으로 애교 부려 아빠가 엄마를 찾아오게 하려는 거잖아요. 아빠 마음속에 여전히 엄마가 있고 엄마를 사랑한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 안 그래요?”이영미는 이내 씩 웃었다.“역시 우리 딸, 아주 엄마 마음을 꿰뚫어 보는구나. 그런데 네 아빠는 아니잖아. 네 아빠가 내 마음을 안다면 얼마나 좋을까?”윤지은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아빠가 정말 엄마를 모른다고 생각해요?”“무슨 뜻이야? 네 아빠가 내 마음을 알면서 일부러 찾으러 오지 않는다는 거야? 그러면 더 나쁜 거잖아. 흥! 내가 떠나지 않을 걸 알고 일부러 찾으러 오지 않았다니.”“엄마, 엄마는 본인이 너무 아빠한테 달라붙는다는 생각 안 해봤어요?”윤지은은 참지 못하고 독설을 퍼부었다.이영미는 그런 딸의 말을 반박했다.“내가 언제 달라붙었어?”윤지은
“보아하니 두 사람 모두 조금희 씨 몸에 종양이 퍼지고 있어 곧 죽는다는 걸 알고 있었네요.”“혹시 조금희 씨가 뒤에서 꼼수 부린 거 아닐까요?”나는 문득 뭔가 떠올라 의문점을 제기했다.현재 상황으로 분석해볼 때 조금희의 혐의가 가장 높았다.그때 윤지은이 말했다.“자세한 건 조사해 봐야 하지만 나도 조금희 씨가 이상한 것 같아.”사모님은 참지 못하고 눈시울을 붉혔다.“다음에 조사할 때 나도 끼워줘. 나도 같이 조사하고 싶어. 두 사람 말 맞아. 호섭 씨가 억울한 죽임을 당했는데, 나라도 진실을 밝혀 억울함을 풀어줘야 해. 이게 내가 살아갈 유일한 동력이야.”사모님은 말하면서 또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슬픔 속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나와 윤지은은 항상 사모님 곁을 지킬 거다.그날, 우리는 곧장 종양 전문 병원에 가 조금희의 병력을 조사했다.조금희 몸에서 종양이 발견된 건 1년 전인데, 처음에 양성이었다가 악성으로 번지기까지 적지 않은 돈을 들였던 거로 확인되었다.게다가 조금희는 불치병에 걸리기 전에 아내와 갈등을 겪었다.“자세한 건 저도 모르는데, 조금희 씨가 우리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젊은 여자가 항상 와서 돌봐줬어요. 그러다가 부인이 병원에 찾아와 그 아가씨를 때렸고요. 그 일은 병원 사람들 다 알아요.”‘그렇다는 건 조금희가 바람을 피웠다는 거네?’조금희가 이런 사람일 주은 생각지도 못했다.윤지은은 여간호사에게 돈다발을 건넸다. 그러자 간호사는 아주 기뻐하며 떠나갔다.조사를 마친 뒤 우리는 밖에서 식당을 찾았다.식당에 도착한 윤지은은 분석을 시작했다.“조금희 씨가 불치병에 걸렸고, 예전에 아내와 아들한테 잘못을 저질렀다면 혹시 자기가 얼마 못 살 걸 알고 호섭 씨를 배신해 돈을 챙겼던 건 아닐까?”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그럴 가능성이 커요. 만약 조금희 씨 계좌에 큰돈이 입금되었는지 확인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아쉽지만 이곳은 강북이 아닌 Y시다. 안 그랬다면 윤지은의 인맥
나는 기쁨을 주체할 수 없었다.배고픔을 느낀다는 건 좋은 일이다.윤지은이 아침을 사 오자 사모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음식을 먹었다.그걸 본 윤지은은 나를 향해 엄지를 추켜들었다. 그건 내 실력을 인정한다는 뜻이었다. 이번 치료 방법이 확실히 효과적이었으니까.나는 사모님을 한참 동안 관찰했다.비록 컨디션이 많이 안 좋은데도 사모님은 음식 드실 때 여전히 우아하고 단아했다. 살짝 슬픔을 띄고 있어 살짝 비극의 여주인공 같기도 했다.내가 한창 사모님을 바라보고 있을 때, 윤지은의 날카로운 눈빛이 갑자기 나를 쏘아봤다. “짐승!”윤지은은 욕지거리를 퍼부었다.그 욕에 나는 억울함을 호소했다.“제가 뭘 했다고 짐승이라는 거예요?”“아무튼 짐승 맞아. 이런 상황에서 훔쳐보기나 하고.”윤지은은 나를 째려봤다.난 그저 사모님을 몇 번 본 것뿐인데 나를 짐승 취급하다니, 너무 어이없었다.하지만 이러다 또 싸움 나겠다 싶어 나는 얼른 아침을 들고 다른 곳에 가서 배를 채웠다.식사를 마친 뒤 사모님은 자발적으로 나와 윤지은을 찾아왔다.“알고 있는 거 사실대로 다 알려줘요. 난 호섭 씨 사고에 대한 모든 사실이 알고 싶어요.”사모님은 너무 평온해 마치 다른 사람 같았다. 때문에 나는 사모님 상태가 여전히 걱정스러웠다.“사모님, 우선 맥 좀 짚어봐도 될까요?”“그럴 필요 없어요. 내가 뭘 해야 하는지 나도 알아야. 걱정할 거 없어요. 어젯밤 많이 생각해 봤고, 호섭 씨가 떠난 사실을 받아들였어요.”“내가 받아들일 수 없는 건 호섭 씨처럼 착한 사람이 남한테 죽임을 당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억울함을 풀어줄 거예요.”“난 강해져야 하고 호섭 씨처럼 용감해져야 해요. 그래야 호섭 씨가 마음 놓고 갈 수 있어요.”사모님은 애써 슬픔을 참으려 했지만 결국 참지 못하고 또 흐느꼈다.그 말을 들으니 나도 코끝이 시큰거리고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이제 우리에게는 같은 목표가 생겼다. 바로 진실을 밝히는 것.나는 얼른 마음의
나는 사모님 팔을 힘껏 잡으면서 사모님과 눈을 마주쳤다.“사모님! 현실을 받아들이세요. 더 이상 자신을 속이지 마세요. 사장님이 이런 사모님 보고 편히 가지 못하길 원하시는 건 아니잖아요.”내 말이 사모님의 마음에 큰 상처를 줬는지, 사모님은 순간 울음을 터뜨렸다.윤지은은 내가 강제로 사모님을 자극했다며 나를 탓했다.“유미 지금 안 그래도 나약한 상태인데, 왜 그런 말을 직접 해?”나는 너무 난감했다.“누구는 뭐 이러고 싶은 줄 알아요? 하지만 사모님이 계속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고 환상 속에 살고 있는데, 계속 이러면 상태가 점점 악화해요.”윤지은은 내 말에 일리가 있다고 인정했지만 그와 동시에 사모님이 또 상처받을까 봐 걱정했다.나도 사모님이 현실을 받아들이게 하려면 그 과정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알고 있다. 하지만 사모님을 절망 속에서 끄집어내려면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나는 윤지은에게 말했다.“정말 사모님을 돕고 싶다면 모질어야 해요. 이럴 때 마음 약해지면 오히려 해치는 거예요.”윤지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내 말에 동의하는지, 내가 치료할 수 있도록 묵묵히 자리를 비켜줬다. 나는 나른하게 힘이 쭉 빠진 사모님을 잡고 진지하게 말했다.“죽은 사람이 다시 돌아올 수 없어요. 사모님이 속사한 건 알겠어요 하지만 지금 속상해할 때가 아니에요. 우리 할 일이 있어요.”“사장님 사고 단순 사고가 아니에요. 누군가 인위적으로 사고 낸 거예요. 사모님, 정신 차리고 우리와 함께 진실을 조사해요.”사모님은 텅 빈 눈으로 나를 보며 중얼거렸다.“그게 무슨 말이에요?”사모님을 깊은 슬픔에서 꺼내는 건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무엇보다 중요한 건, 서두르지 않고 그녀가 진실을 받아들일 수 있게 천천히 다가가는 것이다.나는 말투를 부드럽게 하며 방금 한 말을 또다시 반복했다.“사장님 교통사고에 수상한 점이 발견됐어요. 사모님도 사장님이 억울하게 돌아가시는 거 원하지 않죠? 우리 함께 진실을 알아내 사장님이 억울하게 죽임당하
나는 그 말을 들은 순간 식은땀이 송골송골 솟아올랐다.사모님 상태는 살짝 이상해 보였다. 아마도 의식이 혼미해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모를지도 몰랐다.나는 사모님이 바보 같은 짓을 할까 봐 서둘러 사모님 팔을 꼭 잡았다. 그러면서 계속 따라오지 않으면 강제로라도 데려올 생각이었다.“수호 씨, 이거 놔요. 난 남아서 호섭 씨랑 같이 있을래요...”사모님은 마구 버둥대며 소리쳤다.이러다가 사고가 날 것 같아 나는 아예 사모님을 어깨에 두러 업었다. 그러자 사모님은 곧바로 버둥거리며 소리쳤다.벼랑 끝에 서 있는지라 조금만 실수하면 함께 아래로 떨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기에 나는 결국 사모님을 손날로 기절시켰다.내가 가드레일 안쪽으로 다시 넘어왔을 때 윤지은의 차가 마침 도착했다.“왜 그래?”윤지은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나는 사모님을 차에 앉히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사모님 지그 정신이 이상해서 현실과 환각을 구분하지 못해요. 방금 사장님이 춥다고 한다면서 옷 주러 내려가겠다고 했어요. 제가 제때 나타나지 않았으면 뛰어내렸을지도 몰라요.”윤지은은 내 말을 듣더니 미간을 찌푸렸다.“계속 이럴 순 없어. 우리가 잠깐은 지켜볼 수 있지만 평생 지켜볼 순 없잖아.”그때 내 머릿속에 문득 방법이 떠올랐다.“사모님께 사장님이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알려드리는 건 어때요?”“미쳤어? 이번 일로도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닐 텐데, 또 자극하자고?”윤지은은 내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이에 나는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제 할아버지가 남긴 의학 서적에 비슷한 사례가 있는데, 옛날에는 환자가 가족을 잃고 감정을 통제하지 못할 때 치료가 안 된다면 환자한테 희망을 줘야 한대요. 그 희망이 의학에서 말하는 기예요.”“그 기를 가진 환자가 음식 치료와 약물 치료를 함께 진행하면 서서히 회복할 수 있대요.”“사장님의 죽음에 수상한 점이 있잖아요. 그래서 사모님과 함께 그 사건을 수사하는 거예요. 아마 사모님도 사장님이 죽은 진실을 알고 싶을 거예요.”
장례식장 안을 모두 뒤져 봤지만 사모님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리 조급하지 않던 내 마음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불안해졌다.사모님은 현재 몸 상태도 안 좋고 정서도 매우 불안하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가족한테 어떻게 말해야 할지 걱정됐다.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내 마음은 점점 불안해졌다.그러다 결국 방법이 없어 나는 문득 사모님 번호를 떠올려 그쪽으로 전화를 걸었다.전화는 계속 긴 연결음만 들릴 뿐 아무도 받는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내가 포기하려고 할 때 연결음이 꺼졌다. 액정을 확인하니 전화가 연결되었다.“사모님?”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수호 씨, 나 괜찮으니까 좀 내버려둬요.]사모님 목소리는 매우 우울해 보였고 기운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나한테는 너무 듣기 좋았다. 나는 다급히 물었다.“사모님, 어디 있어요? 너무 걱정돼요.”[혼자 있고 싶어요.]“알아요, 아는데 어디 있는지만 알려줘요. 사모님이 안전하다는 거 확인해야 해요.”전화 건너편에서 한참 침묵이 흘렀다.그때 갑자기 차 경적음이 들려왔다.그렇다는 건 사모님이 장례식장에 있는 게 아니라는 뜻이었다.나는 문득 사모님이 있을 수 있는 곳이 떠올랐다. 하지만 조심스럽게 물었다.“사모님, 알려주시면 안 돼요?”사모님은 아예 전화를 끊어버렸다.하지만 이미 대충 답을 얻은 나는 장례식장을 뛰쳐나가 택시를 잡고 사장님이 사고를 당한 곳으로 향했다.가는 길에 사모님을 찾았냐는 윤지은의 전화를 받은 나는 내 추측을 말했다.“아니요. 사모님 아마도 사장님 사고 난 곳에 있는 것 같아요.”[거긴 왜?]윤지은은 이해가 되지 않아 무의식적으로 물었다.“사장님 죽음이 수상해 직접 조사하고 싶었을 수도 있고, 단순히 사장님이 그리웠을 수도 있고... 아무튼 저 지금 가는 중이에요.”[그럼 먼저 건너가. 나 이따 바로 갈게.]나는 윤지은과 상의한 뒤 먼저 사장님이 사고 난 곳으로 향했다.사고가 난 곳은 절벽인데, 사모님은 마침 절벽
사모님의 이런 모습을 보니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입을 꾹 다문 채로 옆을 지켜드렸다. 그러다 저도 모르게 졸음이 몰려왔다.최근 계속 이리저리 다니다 보니 그동안 제대로 휴식한 적 없어, 나는 너무 피곤한 나머지 잠시 눈을 붙이려고 했다.하지만 잠을 편히 잘 수 없었다. 꿈속에서 정 사장님은 계속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나도 사장님을 구하고 싶었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사장님과 닿을 수 없었다. 그러다 꿈의 마지막쯤 정 사장님은 가면을 쓴 사람에게 살해당했다.꿈에서 놀라 깬 나는 이미 온몸이 식은땀에 푹 젖어 있었다.비록 꿈이었지만 꿈에 나온 장면들이 너무 생동해서 직접 경험한 것 같았다.밖은 어느 때부터인지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했고, 유리창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최면 노래처럼 느껴졌다.피곤함에 눈을 비비다가 문득 사모님이 침대에서 사라졌다는 걸 발견한 나는 다급히 호텔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디에도 사모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나는 호텔 안을 마구 달리며 윤지은에게 전화했다.“혹시 유미 사모님 봤어요?”[나 계속 밖에 있어서 유미 본 적 없는데? 네가 유미 호텔에서 돌봐주던 거 아니었어? 그런데 어디 갔는지 모른다고?]윤지은이 반문했다. 이에 나는 얼른 설명했다.“제가 너무 피곤해서 잠깐 눈 붙였는데 깨어나니 사모님이 사라졌어요.”[넌 대체 뭘 할 수 있어? 사람 하나 돌보는 것도 못해?]윤지은은 나를 꾸짖기 시작했다.나는 얼른 전화를 끊고 이리저리 찾으며 물어봤지만 호텔 직원들도 모두 사모님을 본 적 없다고 했다.결국 나는 프런트에 달려가 물었지만 프런트 직원들도 못 보기는 마찬가지였다.“그럼 CCTV 한번 확인할 수 있을까요?”“안 됩니다. 호텔 규정상 CCTV는 함부로 보여드릴 수 없어요.”나는 다급히 말했다.“제 친구 남편이 이틀 천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 친구 정서가 엄청 불안해요. 반드시 빨리 찾아야 해요. 지금 우선 CCTV 확인해 줘요. 제가 당장 경찰에 신고할 테니까...”“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여자가 이렇게 빨리 남편 시신을 화장하려고 하는 이유가 없다.내가 분명 이번 교통사고가 단순한 사고가 아닐 거라고 말했는데 들을 생각도 하지 않다니.나는 슬쩍 찔러보려고 다시 물었다.“왜 그렇게 서둘러요? 혹시 뭐 알고 있는 거 아니에요?”여자는 내 말을 듣더니 얼굴색이 확 바뀌었다. 나는 뭔가 찔린 듯 불안해하는 여자의 행동을 눈에 담았다. 그러고는 갑자기 여자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뭔가 알고 있는 거죠? 알고 있는 거 다 얘기해요. 그게 이번 사고의 진실을 밝힐 수도 있어요...”“뭐 하는 거예요? 아파요.”여자는 내 손을 뿌리쳤다. 여자의 아들은 어머니가 괴롭힘당하는 걸 보자 바로 나를 막아섰다.지금 내 실력으로 두 사람을 상대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윤지은은 일을 크게 만들까 봐 내 팔을 쿡쿡 찔렀다.“됐어. 저 사람들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해.”나는 이대로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두 사람이 너무 수상해 반드시 기회를 잡아 두 사람의 입을 열어야 했다.하지만 점점 모여드는 구경꾼들 때문에 나는 결국 포기할 수박에 없었다. 만약 나 혼자였다면 내가 내키는 대로 소란을 피웠을 테지만, 정서가 불안정하기에 사모님한테 피해 가게 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이대로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나는 장례식장을 떠난 뒤 두 사람을 찾아 결판 낼 생각이었다.오늘 장례식장에 나타난 유가족은 또 있었다. 바로 운전한 오 기사님 가족이었다.오 기사님 가족은 얘기가 잘 통해 화장을 조금 미루기로 했다. 그들 역시 이번 교통사고가 수상쩍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오 기사님 아들은 심지어 확신했다.“제 아버지 운전 실력은 엄청 좋아요. 사고가 난 곳도 생전에 수백 번도 더 다녔던 곳이라 그 길을 잘 알고 있어요.”“아버지가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도 처음에 믿지 않았어요. 난 이번 일 제대로 조사해서 아버지 결백을 증명할 거예요.”겨우 생각이 같은 사람을 찾았다는 생각에 나는 너무 기뻤다. 결국 조금희의
“들여보내 줘요. 나 호섭 씨랑 같이 있을래요. 같이 있어 줘야 해요...”장례식장 입구에서 유미 사모님은 몇몇 직원들에게 가로막혀 애타게 울고 있었다.그 모습을 보자마자 나와 윤지은은 급히 달려갔다.“사모님, 여긴 왜 왔어요?”장례식장도 규칙이 있는데 가족 방문 횟수가 제한되어 있다. 우리가 나가기 전 분명 사모님더러 호텔에서 휴식하라고 했는데, 여기까지 올 줄은 몰랐다.한참 애를 먹던 두 직원이 얼른 말했다.“얼른 이분 좀 말려 봐요. 이곳 냉기를 보통 사람들은 견디기 힘들어하세요. 그런데 자꾸만 안에 들어가겠다고 하시는데, 절대 안 됩니다.”“그리고, 절차는 다 밟았나요? 다 밟았다면 얼른 화장할 수 있게 사인하세요. 시체 안에 계속 두고 있는 것도 좋은 선택은 아니에요...”나는 손을 저으며 두 직원의 말을 잘랐다.“네, 알겠어요. 먼저 가서 일들 보세요.”나와 윤지은은 유미 사모님을 조용한 곳으로 데려갔다. 사모님은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고 너무 지쳐 몸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그 모습을 보며 윤지은도 드물게 눈시울을 붉혔다.“유미야, 이러지 마...”윤지은은 흐느끼느라 말도 제대로 내뱉지 못했다.사모님 역시 슬피 울부짖었다.“왜? 좋은 사람은 복이 온다며? 그런데 왜...”“호섭 씨는 이 세상에서 가장 착한 사람인데. 호섭 씨가 가난한 사람을 위해 얼마나 많은 선행을 베풀었는데 왜 이렇게 된 거야? 왜...”처절한 외침에 듣는 나도 너무 괴롭고 삼장이 칼에 베이는 것처럼 아팠다.이 순간 어떤 위로의 말도 소용없다. 그 어떤 위로도 사모님의 비통한 심정을 달랠 순 없으니까.나는 그저 사모님이 진정할 수 있게 침을 놔줄 수밖에 없었다. 잠시 뒤 나는 조금 안정이 된 사모님을 안아 차에 앉혔다. 창백하고 초췌한 사모님의 얼굴을 보니 내 마음은 더욱 괴로웠다. 그때 윤지은이 이를 악물며 악에 받쳐 말했다.“이번 사건 우리가 꼭 밝혀낼게.”그 순간 나도 윤지은과 같은 마음이었다. 나는 속이 부글부글 끓었고 그걸 당장 토
나는 윤지은이 갑자기 이렇게 말할 거라고 생각지도 못해 무척 감격스러웠다.나 혼자 다른 도시에서 도움 없이 이 사건을 조사하는 건 확실히 힘들다. 하지만 윤지은이 같이 조사하겠다고 하니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다.나는 느릿한 말투로 진지하게 말했다.“이번에 우리 같이 손을 잡고 정 사장님을 위해 진실을 밝혀요.”그동안 나와 윤지은은 서로 고양이와 개처럼 항상 만나기만 하면 싸웠는데, 이번만큼은 힘을 합쳐 함께 정 사장님 사건을 조사하기로 했다.우리는 해야 할 일을 확인한 뒤, 강한나를 만나러 갔다. 강한나라면 전문가의 관점에서 우리를 도와 증거를 수집할 수 있을 테니까.“최선을 다해 볼게. 하지만 너무 큰 기대는 하지 마. 내가 방금 사건 기록을 봤는데 현장 사진과 다양한 증거들을 취합해 보면 단순 사고사일 수 있어.”“내가 의심했던 브레이크 흔적 거리인데, 이것도 어찌 보면 사고사일 수도 있고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어. 결론적으로 조사하기 매우 어려워.”한참 듣고 있던 윤지은이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현장 증거로 조사할 수 없으면 다른 쪽으로 출발해야겠네.”한창 낙담하고 있던 나는 윤지은의 말에 다급히 물었다.“혹시 방법이 있는 거예요?”윤지은은 팔짱을 끼면서 냉정하게 분석했다.“내가 알기로 운전한 기사는 호섭 씨랑 오랜 친구였고 운전 실력도 엄청 뛰어나. 이 점에서 출발하면 될 것 같아. 그리고 함께 차에 탔던 피해자 가족들도 조사해 볼 수 있어.”나는 맞장구치며 고개를 끄덕였다.“음, 좋은 방법인 것 같아요. 그럼 사고 유가족들부터 조사해 봐요.”강한나는 우리를 보며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정말 그렇게 할 거야? 이 사건이 만약 인위적인 거면 두 사람도 위험해. Y시는 국내 다른 도시들과 달라. 여긴 무법지대인 D국과 엄청 가까워.”윤지은이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그게 뭐? 의심 가는 구석이 있는데 그냥 덮자고? 그러고도 내가 무슨 친구야? 유미 지금 충격이 너무 커. 호섭 씨는 유미한테 가장 중요한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