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들, 너 나랑 다시는 안 한다며?”일을 마치고 남주 누나는 배시시 웃으면서 나를 쳐다보았다.난 너무 부끄러웠다. 난 분명 그런 말을 하기도 했고 속으로 맹세까지 했었다.하지만 결국 나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엄청 후회됐다.나의 뺨을 후려치고 싶은 심정이었다.‘왜 또 남주 누나랑 얽힌 걸까?’남주 누나는 옷을 정리하고 나의 곁으로 오더니 웃으면서 나의 볼을 꼬집었다.“알겠어. 그만 화 풀어. 아까는 농담한 거야.”“난 너 엄청 좋아해. 다시는 나랑 안 한다는 말 하지 마.”그 말인즉 앞으로도 나를 괴롭힐 거란 뜻이었다.순간 머리가 아팠다.난 후회에 가득 차 머리를 쥐어뜯었다. 그러고는 누나한테 말했다.“전부 제 잘못이에요. 제가 누나를 건드리지 말아야 했는데. 이번이 마지막이었으면 좋겠어요. 우리 앞으로는 연락하지 마요.”남주 누나는 전혀 타격이 없는 듯 되레 웃으면서 말했다.“그래. 네가 연락 안 하는 건 네 자유지만 내가 너한테 연락하는 건 막지 못할걸.”난 속으로 끝났다고 생각했다.평생 남주 누나한테서 벗어나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남주 누나가 떠나가는 뒷모습을 보다 보니 머리가 지끈지끈 아팠다.밖에 나온 시간도 꽤 지났으니 난 일단 먼저 가게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소여정이랑 사모님 모두 아직 가게에 있었다.소여정은 마치 심사하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물었다.“그 여자랑 같이 나가서 왜 이렇게 오래 있었어? 나가서 뭐 했어?”난 소여정이 경험이 풍부한 여자라는 걸 알고 있었다.소여정은 분명 나랑 남주 누나가 뭘 하고 왔는지 알고 있을 것이다.하지만 난 인정할 수 없어 핑계를 댔다.“아무것도 안 했어요. 그저 혼 좀 내줬어요.”“혼을 내줘? 어떻게 혼냈는데? 몽둥이로?”소여정의 말속에는 다른 의미가 숨어 있었다.난 순간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왠지 모르게 자꾸 힐끔힐끔 사모님을 보게 되었다.사모님이 나를 안 좋은 사람이라고 오해할까 봐 걱정되었다.왠지 모르게 사모님
사모님이 떠나는 걸 보니 왠지 아쉬웠다.사모님처럼 우아한 사람과 지내면 뭔가 조화롭고 편안한 기분이 든다.게다가 항상 양반댁 규수 같은 지적인 이미지를 풍기고 있어 진정한 명문가 자제라는 느낌이 들곤 한다.하지만 그렇다고 떠나겠다는 사모님을 붙잡을 이유도 없었다.나는 아쉬워하며 소여정을 바라봤다.그랬더니 소여정이 갑자기 나에게로 걸어오는 게 아니겠는가? 심지어 그 눈빛은 뭔가 조금 이상했다.나는 무의식적으로 두 걸음 후퇴했다.“왜 그래요? 왜 그렇게 이상한 눈으로 보는 거예요?”소여정은 야릇하게 웃으며 내 그곳을 바라봤다.“아까는 친구가 있어서 몸 좀 사렸는데, 이제 갔으니 하고 싶은 대로 할게.”“하고 싶은 대로 하겠다니요? 뭘 어쩌겠다는 뜻이에요?”나는 점점 경계했다. 소여정은 나를 기습하려는 것 같았다.아니나 다를까 내 추측이 맞았다. 소여정이 나에게 다가오더니 갑자기 나를 잡았다.다행히 영민한 나는 신속히 옆으로 숨어버렸다.하지만 속으로는 이 여자가 미쳤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미쳤어요?”나는 너무 화가 나, 소여정의 신분도 망각한 채 버럭 소리쳤다.‘고급 정부면서 나에게 손을 대다니, 나를 죽일 작정인가?’처음에 나를 놓친 소여정은 포기하지 않고 두 번째 공격을 가했다.소여정은 의외로 꽤 영민했다.그녀는 나를 잡지 못했지만 내 옷자락을 잡았다.그렇게 옷을 꽉 잡은 채로 한사코 잡아당겼다.“뒤돌아서 얼굴 보여줘.”“미쳤어요? 대체 뭐 하자는 거예요?”“볼 거야. 아까 그 여자랑 했는지 안 했는지.”소여정은 그제야 자기 목적을 말했다.나는 미칠 것만 같았다.“이봐요, 소여정 씨는 임천호의 여자잖아요. 난 소여정 씨한테 내 몸 보여줄 배짱 없거든요. 그랬다간 언젠가 그 사람한테 죽을지도 모른다고요.”“겁쟁이. 내가 말했잖아. 임천호는 다른 도시에 있다고. 수호 씨랑 내가 말하지 않으면 그 사람이 알 리 없잖아.”“그래도 안 돼요. 조심해서 나쁠 건 없잖아요. 그쪽한테 꼬투리 집히지 않으려면.”소여정은 끝
‘그거라면 쉽지 않나?’‘남주 누나랑 아무 짓도 안 하고 얘기만 나눈 척하면 되잖아?’하지만 소여정은 내 생각을 사전에 차단했다.“전제는 거짓말하지 않는다는 거야. 내가 그 여자한테 가서 사실 확인했을 때 거짓말인 게 밝혀지면 죽을 줄 알아.”그 말을 들은 순간 이 여자가 마녀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남주 누나를 찾아가 사실 확인까지 하겠다니.‘고작 이런 일로 그럴 필요가 있나?’소여정은 왠지 나를 못살게 구는 것 같았다.그 사실에 나는 정말 미칠 것만 같았다.“소여정 씨, 이게 재밌어요? 나 정말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에요. 왜 나를 못 잡아서 안달이에요?”소여정이 되물었다.“내가 언제 또 그랬다고 그래? 내가 여기서 소비하면서 준 팁이 적었어?”“아니요.”“그럼 수호 씨 마사지 실력에 컴플레인 건 적 있어?”“없어요.”“그런데 내가 못 잡아서 안달이라니?”“계속 사적인 일을 꼬치꼬치 캐묻고, 쉴 새 없이 괴롭히잖아요.”나는 억울한 점을 솔직히 얘기했다.그랬더니 소여정이 피식 웃었다.“이봐, 나 임천호 여자야. 내가 여기 와서 소비하기 전에, 수호 씨 인성 알아보는 게 뭐가 잘못됐어?”‘정말 그럴 목적이라고?’‘내가 괜한 걱정을 한 건가?’나는 살짝 찔렸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확신이 서지는 않았다.소여정은 눈을 가늘게 접으며 나를 바라봤다.“설마 내가 수호 씨 마음에 들어서 스폰하려 한다고 생각하는 거야?”나는 할 말이 없어졌다.소여정은 이내 콧방귀를 뀌었다.“내가 노는 걸 좋아하는 건 맞지만, 목숨 갖고 장난치는 사람은 아니야. 아무거나 막 주워 먹는 사람은 더더욱 아니고. 수호 씨 내 스타일 아니야.”정말 소여정의 말대로라면 기뻐해야 하는 게 맞는데, 나는 왠지 기뻐할 수 없었다.사람의 감정은 때때로 참 신기하다. 남이 귀찮게 굴 때는 싫다가 신경 쓰지 않으면 또 실망한다.‘내가 정말 누구를 좋아하면 자존심도 버리는 스타일인가?’‘그러지 않으면 막 마음이 안정되지 않나?’‘안돼. 그럴 순 없어. 그건
속내를 들킬뻔한 위기 상황이라 나는 황급히 인상을 썼다.“헛소리 좀 그만하면 안 돼요? 형수를 상대로 어떻게 그런 상상을 해요?”“흥, 누가 알아? 원래 그런 금단의 관계가 더 스릴 넘치는 거 아니겠어? 남자들은 원래 그렇잖아.”“그렇게 생각한다면 나도 방법이 없네요.”나는 배 째라는 듯 대답했다. 더 이상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으니까.그랬더니 소여정이 발로 나를 살살 찼다.“멍하니 서서 뭐 해? 얼른 마사지해야지.”나는 한숨을 쉬며 소여정의 앞으로 다가왔다.소여정은 다시 침대에 엎드렸고, 나는 손에 오일을 발라 그녀의 등에 펴 발랐다.이건 솔직히 즐기지 않을 수 없었다.이렇게 아름다운 등은 쉽게 볼 수 있는 게 아니니까.하지만 나는 소여정이 조용히 입 다물기만을 바랐다. 질문을 너무 받아 귀찮을 지경이라 이제는 더 이상 대답하기 싫어졌다.하지만 소여정은 말하지 않으면 몸이 근질거리는지 또 질문했다.“대체 여친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솔직히 말해. 진실을 듣고 싶어.”‘너를 믿으면 내가 바보다.’‘솔직히 대답하면 또 끝도 없이 물어볼 거면서.’나는 이를 악문 채 대답했다.“그건 왜 묻는데요? 사생활이라 대답하기 싫은데요.”“뭘 하자는 게 아니야. 그냥 궁금해서 그래. 대답 좀 해 봐. 심심하잖아.”나는 여전히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그때 소여정이 갑자기 내 허벅지를 꼬집었다.“말 안 할 거야? 안 하면 앞으로 자식도 못 볼 줄 알아.”나는 버럭 소리 질렀다.“솔직히 말할 수는 있어요. 하지만 이 질문이 마지막이라고 약속해요.”“그래, 약속할게.”소여정은 시원시원하게 대답했다.결국 나는 솔직히 대답했다.“사실 여자 친구는 있어요. 이애교라고, 우리 사이 엄청 좋아요.”“몇 살이야? 예뻐? 사진 있으면 한 번 보여줘 봐.”나는 기분이 확 나빠졌다.“마지막 질문이라고 약속했잖아요.”“여자 말은 믿는 게 아니라는 말 못 들어봤어?”소여정은 내 말에 반박했다.이 상황에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남자의
‘젠장, 이런 말을 하면 안 되는데. 이젠 수습할 방법도 없네.’나는 입을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랬더니 소여정이 내 허벅지를 꼬집었다.“사진 보여달라니까!”“안 돼요. 보여주기 싫어요.”나는 단번에 거절했다.소여정은 더 세게 꼬집었다. 그게 너무 아파, 나는 숨을 들이켰다.“아! 아프잖아요! 좀 살살하면 안 돼요?”너무 아파 울고 싶었지만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그때 소여정이 나를 사납게 째려봤다.“그러니까 누가 약 올리래? 순순히 사진 보여주면 됐잖아.”“그건 내 프라이버시잖아요. 강요하면 안 되죠.”“내가 언제 강요했어? 궁금해서 그러는 거잖아. 안 보여줘도 돼, 그럼 내가 계속 꼬집을게.”소여정은 나를 죽이려고 작정한 듯했다.심지어 말하면서 한편으로 내 다리를 간지럽혔다.차라리 꼬집기나 할 것이지. 간지럽히니 온몸이 불편했다.심지어 마음마저 간질거려 나는 결국 애원했다.“그만해요. 못 참겠어요.”“그게 나랑 뭔 상관이지? 난 계속 간지럽힐 건데.”소여정은 손톱이 매우 길었지만 힘을 빼고 살살 간지럽혀 마치 새끼 고양이가 긁는 기분이었다.너무 간지러운 나머지 나는 무의식적으로 소여정의 손을 마구 쳐냈다.그 모습은 마치 커플끼리 투덕거리는 것으로 보였다.그러던 그때, 나는 발이 미끄러워 소여정 쪽으로 넘어지면서 그녀를 덮쳤다.갑작스러운 상황에, 소여정의 입에서 낮은 신음이 튀어나왔다.일순, 공기에 정적이 흘렀다.우리는 서로를 바라봤다. 이 순간 서로의 심장 박동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고, 서로의 숨결이 몸에 닿고, 심지어는 피붓결까지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가까이에서 본 소여정의 피부는 너무 좋았다. 분칠하지 않는 얼굴은 옥처럼 맑으면서도 그 속에 약간 붉은 기를 띠고 있었다.솔직히 말해서 이토록 좋은 피부는 태어나서 본 적이 없다.게다가 까맣고 커다란 두 눈은 초롱초롱했고, 입술은 빨갛고 윤이 났다. 도톰한 입술을 보고 있다 보니 저도 모르게 깨물고 싶어졌다.심장이 콩닥거려 멍해 있을 때, 소여정
그 첫 번째 이유는 죽기 싫어서.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내가 너무 괴로워서다.아래에 절세 미녀가 있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건 죽는 것보다 더한 고통이다.하지만 소여정은 내 허리를 꼭 끌어안은 채 한사코 놓아주지 않았다.“어제는 나를 품에 안고 재워줬으면서? 어제는 왜 싫다고 하지 않았어?”“그건 엄연히 다르죠.”“뭐가 다른데? 품에 안겨 자는 건 스킨십 아닌가?”나한테 이 둘은 완전히 달랐지만 소여정을 설득할 방법이 없어, 나는 결국 타협했다.“그래요. 하라는 대로 할게요. 하지만 무리한 요구는 하지 마요. 이번에는 약속 꼭 지켜요. 안 그러면 앞으로 고객으로도 받지 않을 거예요.”당했던 경험이 있기에 나는 소여정이 또 약속을 어길까 봐 특별히 강조했다.내 말에 소여정은 마침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좋아, 약속할게. 이번에는 꼭 약속 지킬게.”소여정의 약속에 나는 천천히 그녀 곁으로 다가갔다.두 눈을 초롱초롱하게 뜬 채 나를 바라보는 소여정을 보니 왠지 부끄러웠다.게다가 거리가 너무 가까워 참지 못할까 봐 소여정의 눈을 볼 수 없었다.나는 결국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그러자 소여정이 생글생글 웃으며 물었다.“날 못 보겠어?”“알면서 왜 물어요?”나는 원망스러운 말투로 투덜거렸다.소여정이 그 말에 나를 더 꽉 끌어안았다.내 몸은 이미 반응했다. 하지만 소여정한테 들킬까 봐 일부러 허리를 구부정하게 수그렸다.하지만 내 수고가 무색하게도 소여정이 나를 더 꽉 끌어안는 바람에 하체가 그녀에게 닿았다.소여정이 내 상태를 눈치챘을 거라는 생각에 나는 얼굴이 달아올랐다.소여정도 마찬가지였다. 얼굴이 발그스름한 게 부끄러워하는 것 같았다.“힘들지?”그때 소여정이 갑자기 내 귓가에 바람을 불어넣었다.순간 마음이 간질거리며 아래가 불편해, 나는 재촉했다.“안 끝났어요? 언제까지 안고 있을 작정이에요?”“멀었어. 퇴근할 때까지 안고 있을 거야.”나는 얼른 도리질했다.“안 돼요. 고객이 소여정 씨만 있는 것도 아니거든요.
“말해 봐. 얼른 대답해.”소여정은 기어코 대답을 들으려고 했다.하지만 내 마음은 솔직히 형수한테 더 많이 쏠려 있다.애교 누나는 나에게 여신 같은 존재다. 예전에 애교 누나로 수많은 상상을 하기도 했고, 내가 의식을 잃었을 때 나에게 가장 많은 위로와 위안을 줬던 존재다.애교 누나는 인생의 동반자 같은 느낌이라 나는 누나를 위해 분투하고, 누나와 결혼해서 아이도 낳고 함께 평생 살아가고 싶다.하지만 형수는 동성 형이 나를 시골에서 데리고 왔을 때부터 봤던 사람이다. 그때 처음 봤던 육덕진 몸매는 내 기억 속에 아직도 콕 박혀 있다.그동안 꿈에서 형수를 수도 없이 만났다. 형수는 나를 소년에서 남자로 변하게 한 사람이기도 하다.형수는 내 성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형수가 형의 아내만 아니면 내가 아마 미친 듯이 쫓아다녔을지도 모른다.때문에 그렇게 비교해 보면, 형수가 애교 누나보다 더 중요하다.하지만 그렇게 말할 수도 그렇게 행동할 수도 없다.우리는 모두 현실에 굴복해야 하니까.결국 나는 거짓말했다.“당연히 애교 누나가 더 중요하죠. 애교 누나는 내가 나중에 결혼할 여자거든요.”“난 오히려 형수가 더 매력적이고 우아한 것 같은데.”소여정은 본인의 생각을 말했다.그 말을 들으니 소여정이 왜 그런 생각을 하는지 궁금해졌다.‘애교 누나가 더 다정하고 예쁘지 않나?’소여정이 잠깐 생각하다가 말했다.“뭐 남자와 여자가 사람 보는 게 다른가 보지. 특히 결혼을 목표로 하는 남자는 짝을 고를 때 다정하고 어질고 몸매 좋은 여자를 선택하잖아. 조강지처를 아내로 맞이하는 게 목적이니까.”“하지만 여자의 관점에서 봤을 때, 난 형수 성격이 더 털털하고 몸매도 더 풍만해 보여. 정사에서도 더 적극적일 것 같고.”나는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소여정의 분석은 너무 정확했다.형수와 애교 누나는 확실히 완전히 다른 두 유형이다.한 명은 다정하고 어질어 결혼하기 적합하고, 한 명은 화끈하고 털털해 즐기기 딱이었다.하지만 이걸 소여정 앞
나는 당황스럽고 불안하면서 한편으로 윤지은이 오해할까 봐 두려웠다.윤지은의 눈에는 경악이 담겨 있다가 점차 분노로 변했다.하지만 놀라운 건 나를 향해 화내는 게 아니라 차가운 얼굴로 소여정을 바라본다는 거였다.“소여정! 너 대체 뭐 하는 거야?”윤지은의 소리는 매우 높았다. 마치 폐가 폭발하듯 소여정을 향해 버럭 소리 질렀다.하지만 소여정은 여전히 나른한 모습이었다.“내가 뭐? 다 봤잖아.”“너 죽고 싶어? 죽고 싶으면 멀리 가서 죽어. 내 앞에서 쪽팔리게 굴지 말고.”‘헐, 이 말은 좀 심하지 않나?’‘두 사람 친구 아니었나? 그런데 왜 쪽팔리다는 말까지 하는 거지?’게다가 지금 윤지은의 모습은 당장이라도 소여정을 집어삼킬 것만 같았다.“나 오늘 기분 좋아서 이대로 넘어갈게.”소여정은 아주 털털하게 조금도 화내지 않았다.오히려 느긋하게 옷을 입었다.나는 이 여자가 참 존경스러웠다.친구한테 삿대질 당하며 욕먹었으면서 침착함을 유지할 수 있다니.그에 반해 윤지은은 평소 무뚝뚝하고 줏대 있는 모습이더니, 현재는 잔뜩 화내고 있다는 게 놀라울 지경이었다.“당장 강북을 떠나서 네가 살던 곳으로 돌아가.”윤지은은 조금도 수그러들지 않고 욕설을 퍼부었다.심지어 강도가 점점 더 심해져 옆에서 듣고 있던 나조차 들어줄 수 없었다.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끼어들었다.“말 다 했어요? 여긴 내가 일하는 곳이거든요. 여기서 소란 피우지 마요. 안 그러면 경비 불러 모셔갈 테니까.”윤지은은 커다란 눈을 둥그렇게 뜨고 믿기지 않는 듯 나를 바라봤다.심지어 가슴이 더 심하게 요동쳤다.그러다가 단추가 터질까 봐 조마조마할 지경이었다.“소여정 씨, 이 미친 여자 무시해요. 원래 이런 사람이니까.”나는 이 순간만큼은 소여정 편이었다.그러자 소여정이 싱긋 웃으며 나를 바라봤다.“오호? 보아하니 내 친구랑 아는 사이인 것 같네?”나는 그제야 내가 실언했다는 걸 깨닫고는 다급히 해명했다.“저 여자도 내 고객이었는데, 성격이 좀 지랄맞아요.”“
나는 미간을 찌푸린 채 주해진을 바라봤다.“왜 이렇게 쉽게 돈을 주는 거지?”주해진이 오늘 이 사달을 벌이느라 분명 적지 않은 돈을 썼을 텐데, 나한테 2천만 원 가까이 되는 돈까지 배상하니 또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건 아닌지 심히 의심됐다.“이 전에는 이대로 넘어가는 게 도저히 용납이 안 댔는데, 두 사람 실력을 보니 승복했거든. 두 사람 말대로 나도 젊을 때는 이 바닥에서 몇 년을 굴렀는데, 한 번도 두 사람처럼 죽기 살기로 싸우는 사람을 못 봤거든.”사실 주해진은 말을 아꼈다. 그가 가장 두려운 건 우리의 믿기지 않는 전투력이 아니라 궁지에 몰렸으면서 상황을 역전한 거였다. 그거야말로 가장 두려운 거였으니까.주해진은 우리를 맹수라고 느꼈다. 그것도 싸울수록 더 미쳐 날뛰는 맹수. 심지어 궁지로 몰아넣으면 넣을수록 우리는 오히려 피에 굶주린 모습을 드러냈다.주해진은 제 체면을 회복하고 싶어 그동안 승복하지 않은 거였는데, 우리가 절대 건드리면 안 되는 존재라는 걸 알았으니 더 이상 저항할 필요가 없었다. 어쨌든 그는 이미 손을 씻었고, 이제는 그저 장사를 하며 지내기에 어렵게 얻은 걸 망치고 싶지 않았다.나는 여전히 반신반의했지만 민우는 나더러 먼저 돈을 받으라고 계속 눈을 깜박거렸다.나도 민우의 뜻을 알고 있었다. 이걸 나중에 우리의 사업 자금에 보태자는 뜻이었다. 1800만 원이나 되는 돈을 보니 나도 확실히 마음이 동해 결국은 말없이 받았다. 주해진은 김진호와 안명훈더러 우리에게 사과하게 했고, 두 사람은 찍소리 못하고 순순히 사과했다.떠나갈 때 주해진은 제 차를 나에게 주면서 몰고 가라고 했다.그 순간 나는 오히려 경계심이 곤두섰다.“돈도 배상했으면서 차는 왜 주는 거야? 설마 또 해코지하려고?”주해진은 호탕하게 웃었다.“경계심 너무 많은 거 아니야? 그냥 친구 삼고 싶어서 주는 거야.”“그런데 난 그쪽이랑 친구하기 싫은데.”나는 고민도 없이 거절했다.주해진은 여전히 너털웃음을 터뜨렸다.“너무 빡빡하게 굴지 말고. 친
김진호는 속이 좁고 질투심이 강하지만 실력은 별로 없다. 특히 일이 터지면 항상 겁을 먹고 뒤로 물러난다.그런데 주해진이 자기를 내밀자 안명훈보다 더 겁을 먹었다.“싫어요... 안 돼요... 해진 형, 저 자식 차를 망가뜨리라고 한 건 형이잖아요. 저더러 형 대신 뒤집어쓰게 하면 안 되죠.”이 지경이 되었는데도 김진호는 제가 한 짓에 책임지지 못하고 주해진의 체면을 바닥에 짓밟았다.주해진은 너무 쪽팔려서 김진호의 뺨을 내리치면서 버럭 소리쳤다.“사과하라면 해. 어디서 말이 그렇게 많아? 젠장. 내가 널 돕지 않았다면 수호 동생한테 미움 살 일이 있었겠어?”한창 화를 내고 있던 나는 그 말에 순간 멍해졌다.‘수호 동생? 지금 나를 말하나?’‘젠장, 내가 언제 제 동생이 됐다는 거야?’“어디서 친한 척이야? 너희 셋 다 내려와.”나는 차를 또다시 쾅쾅 내리쳤다.민우 역시 차 위에서 나를 협조해 주었다.승합차가 우리 때문에 완전히 뒤집힐 지경이 되자 주해진은 우리와 연맹을 맺으려는 듯 은근슬쩍 나를 회유했다.“수호 동생, 그만해. 내려갈게. 우리 사이에는 원한이 없잖아. 수호 동생이랑 원한 있는 건 김진호잖아. 그리고 안명훈 저 자식도 자기 여자 친구더러 동생 친구 꼬시라고 했어. 저 둘 중에 좋은 놈 하나 없어. 내가 지금 바로 이 두 놈 내려 보내겠으니까 마음대로 처리해.”주해진은 말을 마치자마자 정말로 김진호와 안명훈을 끌어내 앞에 내팽개쳤다.내 분노는 사실 김진호와 안명훈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다. 가장 큰 원인은 내 차가 박살 난 것 때문이다. 그리고 주범은 바로 주해진이다.때문에 나는 화가 잔뜩 나서 주해진을 향해 파이프를 휘둘렀다.“이 자식들 빚은 내가 천천히 받을 거야. 하지만 내 차를 망가뜨린 건 어쩔 건데?”주해진은 고개를 돌려 내 차를 흘긋 보더니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아마도 배상할 수 있는 저렴한 차라 안도한 듯했다.“수호 동생, 저 차는 1600만 정도 하지? 내가 나중에 새 차 하나 뽑아줄게.”주해진이
사실 오늘 안명훈은 이곳에 오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주해진이 기어코 자기 위엄을 보여주겠다고 불러냈다.그런데 주해진의 위엄은 못 보고 오히려 나와 민우의 미친 모습만 보게 된 거다. 그러니 혼비백산이 되지 않을 리가 있나?안명훈은 필사적으로 차 문을 흔들었다.“나 내릴래. 내려줘...”주해진은 안명훈의 뺨을 후려갈기더니 씩씩거리며 욕설을 퍼부었다.“사내자식이 내리긴 어딜 내려? 네가 문을 내리면 저놈들이 올라올 거잖아. 문 열면 안 돼. 얌전히 앉아 있어. 설마 저 자식이 문을 부수겠어?”펑!나는 승합차를 향해 쇠 파이프를 세게 휘둘렀다.그러면서 속으로는 방금 전의 울분을 토해냈다.‘내 자식 같은 새 차, 아직 할부도 안 끝나 얼마나 애지중지했는데. 네놈들 때문에 고물이 됐잖아.’나는 승합차를 내리치면서 욕설을 퍼부었다.“나와. 차 안에 숨어 있는 게 겁쟁이랑 뭐가 달라?”차 안 세 사람 눈에 나는 충혈되어 시뻘게진 눈을 가진 분노한 맹수나 다름없었을 거다.안명훈은 완전히 겁을 먹어 나한테 끊임없이 간청했다.“오늘 밤 일은 나랑 상관없어... 제발 살려줘. 제발...”주해진도 솔직히 속으로는 무서웠지만 안명훈이 저 하나 살려고 자신을 배신한 걸 보자 화가 나서 그를 발로 차버렸다.안명훈은 그 힘에 못 이겨 옆으로 벌러덩 굴러 넘어졌다.그때, 마침 유리창을 깨뜨린 나는 쇠 파이프로 주해진을 가리키며 소리쳤다.“셋 셀게, 당장 내려. 안 그러면 죽이는 수가 있어.”주해진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였다.“그럴 필요까지 있어? 내가 사람을 불러 모으긴 했지만 무기는 안 들었잖아. 게다가 저놈들은 겁을 먹고 이미 도망쳤어. 너희 둘도 크게 다치지 않았으먼서 꼭 미친 짐승처럼 나를 그렇게 끝까지 물고 늘어져야겠어?”나는 이를 악물었다.“난 짐승처럼 네 놈을 물고 늘어지는 거로 안 끝나. 아주 뼈도 안 남기고 씹어 먹을 거야. 내가 얼마나 어렵게 산 차인데, 평소 아까워서 조심조심 다뤘는데, 네 놈 때문에 폐차하게 생겼잖아. 내 차 물어
나는 여전히 손에 든 쇠 파이프를 필사적으로 휘둘렀다. 분명 이길 수 없다는 걸 알았지만 그렇다고 기죽을 수도 없었다.민우가 말한 적이 있는데, 싸울 때 가장 무서운 건 싸우기 전부터 겁을 먹는 것이라고 했다.하지만 한참 싸우다 보니 나는 점점 힘에 부쳤다. 놈들 인원수가 너무 많아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았다.그렇다고 이대로 쓰러질 수는 없었다.인체에는 자극을 받으면 잠재력을 자극하는 혈 자리가 있는데, 그 혈 자리가 자극을 받으면 잠재력이 폭발했다가 나중에 한동안은 몸이 나른해진다.하지만 이 상화에서 다른 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기에 나는 고민 없이 혈 자리를 눌렀다. 그 순간 온몸에 힘이 솟아나면서 내가 마치 거인이 된 느낌이었다.“야! 다 죽었어!”나는 고함을 지르는 동시에 쇠 파이프를 휘두르면서 달려갔다.나를 에워싸고 있던 놈들은 내가 더 이상 전투력이 없다는 걸 보고 모두 긴장을 푼 상태였다. 하지만 나는 갑자기 미친 것처럼 놈들의 코뼈를 하나씩 부러뜨렸다. 심지어 손이 무척 매웠다.나는 피가 들끓어 끊임없는 힘이 솟구치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매번 파이프를 휘두를 때마다 젖 먹던 힘까지 짜냈다.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는데도 무섭지 않았다. 오히려 나도 한방에 놈들 뼈를 부러뜨릴 수 있다는 것에 흥분됐다.‘만약 동준 형님이 이 모습을 본다면 나에게 재능이 있다고 여기지 않을까?’싸울수록 피가 끓고 힘이 솟아났다. 놈들은 심지어 나를 보자 연신 뒷걸음쳤다.옆에 있던 민우마저 나를 보면서 가쁜 숨을 몰아 쉬며 물었다.“수호야, 너 대체 어떻게 한 거야? 난 지금 힘들어 죽겠는데...”나는 혈 자리를 가리켰다.그러자 민우는 바로 눈치챘다.민우 역시 의학을 전공한 지라 말하지 않아도 바로 알 수 있었다. 곧이어 민우 역시 스스로 한 대 치더니 갑자기 피가 솟구치는 것처럼 흥분했다.“하하하, 나도 다시 회복했어. 너희들 죽었어.”우리는 서로 협조하면서 놈들한테 달려가 퍽퍽, 주먹을 날렸다.우리를 끝장내버리겠다고 큰소리치던 놈
전에는 누가 와서 소란을 피울까 봐 민우더러 나와 함께 가게에서 지내자고 했지만, 지금 사장님 댁에 머물고 있는데 민우까지 데려올 수는 없었다. 때문에 뭐든 나 혼자 해결해야 했다.민우를 집에 데려다 두는 길에 그는 나에게 함께 사장님 댁에 있어 달라냐며 물었다. 그러면 서로 보살필 사람이 있다면서.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나도 그걸 생각해 보지 않은 적 없어. 하지만 사장님을 돌보려고 그 집에서 지내고 있는데 너까지 데려가면 이상하잖아.”“난 그 개자식들이 또 너한테 무슨 짓 할까 봐 그러지.”“나도 무서워. 하지만 이미 준비해 뒀어.”나는 의자 밑에서 도구 몇 개를 꺼냈다.민우는 그 도구들을 손에 들고 무게를 가늠해 보더니 말했다.“이 도구들은 조금 도움이 될 뿐이야. 그래도 내가 너한테 가르쳐준 방법을 사용해.”민우는 말하면서 손을 움켜쥐는 동작을 했다.그 동작에 나는 풉, 하고 웃음이 터져 버렸다.“그 방법 확실히 좋더라...”우리가 한창 얘기하고 있을 때 백미러에 언뜻거리는 차 한 대가 비쳤다.무의식적으로 뒤에 따라붙은 사람이 운전할 줄 모른다며 투덜거리던 나는 갑자기 이상한 낌새를 챘다. 그도 그럴 게, 뒤에서 달려오는 차는 속도가 아주 빨랐는데 마치 나를 강제로 세울 것처럼 굴었으니까.“잘 앉아.”나는 불안한 예감에 다급히 액셀을 밟아 속도를 냈다.다만 내 차의 유일한 단점은 속도를 너무 빨리 낼 수 없다는 거다.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뒤 차에 따라잡혔다.놈들은 내 차를 강제로 멈추게 할 작정인 듯했다. 하지만 나는 멈추고 싶지 않았다. 상대방 차량은 승합차였는데, 그런 승합차는 용량이 커 적어도 열댓 명을 태울 수 있었다.만약 차에서 열 몇 명이 우르르 내리면 나와 민우 둘이 대처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때문에 나는 액셀을 밟았다. 하지만 승합차 두 대는 좌우에서 협공하며 내 차를 가운데 몰아 끼긱끼긱, 하며 긁히는 소리가 났다. 분명 차가 내는 소리였지만 내 살점이 뜯겨나가는 기분이었다.아직 차 할
내가 한창 망설이고 있을 때 사장님도 말을 보탰다.“수호 씨, 남아서 좀 도와줘. 우리 마누라가 요즘 너무 힘들어서 그래. 어릴 때부터 금지옥엽으로 자라나 이런 고생 언제 해 봤겠어? 이것 봐, 피곤해하는 거 보이지? 나도 솔직히 마음 아파.”사장님과 사모님이 모두 나를 남으라고 설득하는 상황이라 나도 더 이상 거절하기 곤란했다.“그래요. 제가 남아서 도와드릴게요.”사장님이 드시고 사용해야 하는 약이 너무 많아 확실히 번거롭긴 하다. 때문에 나도 사모님 혼자 사장님을 케어하지 못할까 봐 걱정이 됐다.사모님은 내 말에 이내 환한 표정을 지었다.“수호 씨는 아무것도 가져올 필요 없어요. 여기 모두 있으니까. 전처럼 계속 객실에서 자면 돼요. 그곳 채광이 좋고 공기도 좋아요...”사모님은 내가 이곳에서 지내는 데 불편해할까 봐 끊임없이 말을 늘어놓았다.사장님 내외가 사는 집은 모두 고급 가구를 사용했는데, 내가 이곳에 남아 도와주지 않는다면 이런 걸 누려볼 기회가 어디 있을까?사장님 내외는 나한테 너무 잘해줘서 내가 다 미안할 따름이었다.사장님 몸은 우선 한약으로 며칠간 보양해야 하지만 약을 다 먹으면 사실 힐 것도 없어 나는 가게 일을 돌볼 수 있었다.요 며칠간 주해진은 소란 피우러 찾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이대로 포기했다는 건 아니었다. 때문에 나는 동료들한테 주의할 것을 당부했다.한편 주해진은 그날 도망치듯 가게를 떠난 뒤 마음이 계속 안 좋았다.하지만 최근 일손을 구해봤지만 누구도 도와주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그 첫째 이유는 주해진이 깡패라 정계와 연이 닿는 지인이 적었고, 두 번째 이유는 사촌 형이 다시는 화인당을 다시는 건드리지 말라고 했기 때문이었다.주해진은 입으로는 싫다고 했지만 요 며칠간 그래도 제 분수를 지켰다. 다만 김진호 병문안을 간 뒤, 마음이 또 바뀌었다.김진호는 나를 여자 등에 빨대 꽂고 출세한 놈으로 말하면서, 깡패인 주해진이 나 같은 등신 하나 해결하지 못한 게 알려지기라도 하면 얼마나 웃음거리
어르신도 허허 너털웃음을 지었다.“너도 잘했어. 처방한 게 거의 다 맞췄으니까. 새내기 같지가 않아. 네 할아버지한테서 많이 배웠나 보네?”나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그럭저럭요. 그런데 그때는 너무 어려 할아버지의 모든 재능을 배우지 못한 게 아쉬울 따름이에요.”“괜찮아. 앞으로 내가 네 할아버지니까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언제든 나한테 물어봐.”나는 얼른 감사를 표했다.어르신과 약처방을 확인한 뒤, 나는 화인당에 가 이틀 치 약을 짓고 동료들에게 사장님이 퇴원했다는 사실을 말했다.다들 사장님이 다 나은 줄 알고 기뻐하는 눈치였다. 특히 민우는 슬그머니 내 팔을 잡으며 말했다.“사장님이 돌아오면 우리 따로 나가는 거지?”나는 얼른 민우의 말을 잘랐다.“사장님이 돌아와도 이런 말은 급하게 하면 안 돼. 화인당이 안정되고 가게에 일손이 부족하지 않을 때 떠날 수 있어. 우리가 다른 길을 찾아 나서는 건 자신을 더 발전시키기 위해서지만, 화인당에 누를 끼쳐서는 안 되지. 사장님이 우리 둘한테 얼마나 큰 은혜를 베풀었는지는 내가 말 안 해도 알잖아.”민우는 다급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내가 생각이 짧았네. 앞으로 절대 함부로 말 안 할게.”“참, 요즘 태진 선배는 어때? 가게에서 본 적 있어?”나는 가게에 들어오자마자 모태진이 오늘 없다는 걸 발견했다.내 말에 민우가 대답했다.“누가 알겠어? 또 그깟 일 때문에 가게에 피해 갈까 봐 안 나왔겠지. 상관하지 마. 다 큰 어른이 본인 몸 하나 건사 못 하겠어? 수호야, 아직은 따로 나가는 말은 안 할게. 하지만 천수당을 관찰하는 건 괜찮지?”“관찰하는 건 괜찮아. 하지만 함부로 하지 마.”나는 신신당부했다.그러자 민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다는 뜻을 내비쳤다.나는 약을 가진 후 다시 사모님 댁으로 돌아갔다.이 약 일부는 목욕용이고 일부는 마시는 약이라 나는 위애 상세하게 적어 따로 분리했다. 그리고 먹는 약은 모두 달여 진공 포장한 뒤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이렇게 하면 마실 때 데
윤지은은 보기 드물게 이번만큼은 내 편에 섰다.“동의하기 싫어도 동의해야지. 내가 진작 서약이 부작용이 있고 중독성이 커서, 장기적으로 이렇게 치료하면 환자가 오히려 탈탈 털릴 거라고 말했는데. 유미한테는 내가 말할게. 걔네 부모님은 아무튼 B시에 계시잖아? 한동안 돌아올 수 없으니까 당분간 비밀로 하지 뭐.”윤지은이 전에 그렇게 말하지 않았던 건 이 병원에서 근무하는 의사이기 때문이다. 서의학 의사면서 서의학이 안 좋다고 하면 분명 안 좋은 영향이 있을 거다.하지만 친구 남편인 정호섭의 생명이 달린 일이니 더 이상 거리낄 것도 없었다. 무엇보다 친구 임유미가 가장 마음에 걸렸다.만약 정호섭한테 무슨 일이 있으면 임유미는 어떡하라고?나는 사장님을 바라봤다.“그래도 되겠어요?”사장님은 효심이 강한 분이라 장인 장모를 속이는 게 안 좋다고 여겼다. 게다가 두 분이 지금껏 사장님을 길러왔으니.하지만 사장님이 고민하는 동안 윤지은은 이미 사장님 대신 결론을 내렸다.“뭐 그렇게 생각할 게 많아요? 두 분한테 말하면 절대 동의 안 할 거예요. 이 일은 내가 말한 대로 해요. 나도 한의학을 전공했던 사람이라 파악이 없으면 이런 말 안 해요.”나와 사장님 모두 머뭇거렸는데, 윤지은이 이런 태도로 나오니 오히려 감화되었다.나는 윤지은이 진심으로 존경스러웠다. 뭐든 엄격하고 신속하게 하는 모습은 내가 따라 배울 점이었다.윤지은은 나더러 병원에 남아 사장님을 돌보게 하고 본인은 유미 사모님을 모셔 오면서 한의 치료 방법에 대해 말해주겠다고 했다.그사이 나는 사장님이 아침 식사를 드시는 걸 도와드렸지만, 사장님은 입맛이 없다면서 조금밖에 드시지 않았다.요즘 매일 많은 양의 약을 먹어 위장이 망가져 음식을 먹는 것조차 무리였다.이렇게 부작용이 큰 게 바로 서양의학의 가장 큰 단점이다.나도 사장님을 강요하지 않았다.환자가 입맛이 없다는데 억지로 먹게 하면 오히려 위장의 부담을 더해주기 때문이다.나는 따뜻한 물을 받아와 사장님의 얼굴과 몸을 닦아주었다.
어르신은 내가 보인 자신감에 매우 만족해했다. 하지만 주의할 점을 귀띔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침술 하기 전에 모든 서약을 끊고 한동안 몸보신해야 해. 지금 너의 사장님 몸은 너무 나약해서 기혈이 거의 다 사라진 거나 다름없어. 이 상태로 침술 할 수 없어. 이 일은 먼저 환자 가족들과 상의하고 동의를 구한 뒤 진행해.”나는 고개를 끄덕였다.때마침 윤지은이 회진하러 와서 나는 그녀더러 사장님을 잠시 봐달라고 하고는 어르신을 모시고 밖으로 나갔다.“됐어. 데려다 줄 필요 없어. 이 부근에 마친 공원이 있으니 나도 좀 산책하다가 택시 타고 가면 돼. 네 사장님 상황은 서둘러서 가족과 상의해. 더 지체되면 천지신명이 와도 어쩔 수 없어.”어르신의 긴박한 말투에 나는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고마워요, 할아버지.”나는 진심으로 어르신께 감사했다. 90세가 넘는 분이 내 전화 한 통에 아무 이유 없이 도와준 거니까.이 은혜는 꼭 마음에 새길 거다.어르신은 허허 너털웃음을 지었다.“사람을 구하는 게 무엇보다도 중요하지. 이건 나를 위해 덕을 쌓는 거야. 너도 얼른 가 봐. 이 일은 지체하면 안 된다는 거 잊지 말고.”나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어르신이 뒤돌아 떠난 뒤에야 나는 병실로 돌아갔다.다른 사람은 이미 떠나고 윤지은만 병실에 남아 있었다.나는 얼른 윤지은과 사장님께 방금 전 상황을 말씀드렸다.“수호 씨, 한의학 치료법으로 정말 내 병을 완화할 수 있어?”사장님은 나를 조금 믿는 눈치였지만 그래도 한번 확인했다.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진지하게 설명했다.“아까 보신 분이 우리 마을에서 엄청 유명한 명의세요. 젊을 때 저희 할아버지랑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사람들 병을 치료해주셔서 엄청 유명해요. 저도 그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어본 건데 정말 방법이 있다더라고요.”“사장님이 입원한 뒤 몸 상태가 확실히 점점 나빠지셨잖아요. 이 부분은 제가 말하지 않아도 사장님도 느끼셨을 거예요. 서약은 비록 효과는 빠르지만 부작용도 커요. 사장님 몸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