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그 자식이네. 기다리라고 해. 바로 갈 테니까.]“네.”통화가 끝난 뒤 놈은 나에게 달려와 말했다.“황 사장님 금방 온다니까 조금만 기다려.”“네.”놈은 나에게 물도 따라주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아무렇지 않은 듯 옆에 있는 매점에 가 생수 한 병을 구매했다.그렇게 약 10여분 정도 기다리니 갈색 양복을 입은 중년 남자가 걸어왔다.사무실을 지키고 있던 녀석은 상대를 보더니 벌떡 일어섰다.“황 사장님, 오셨습니까?”나는 생수를 내려놓고 황용길을 바라봤다.“그쪽이 황 사장님인가요? 안녕하세요. 여기 수표 한 장이 있는데 현금화해 줘요.”황용길은 내 말에 수표를 흘긋거렸다.그동안에도 나는 상대가 속임수를 쓸까 봐 수시로 대비하고 있었다.하지만 의외로 황용길은 수표를 확인하기만 하고 나를 일부러 괴롭히지는 않았다.“나 지금 수중에 4억이나 되는 현금은 없어서 자금 유통이 필요하니까 내일 다시 와.”“내일 언제요?”“오후 2시쯤.”나는 수표를 받아 들고 눈앞의 남자를 뚫어지게 훑었다.‘이렇게 대화가 잘 통한다고? 나를 곤란하게 하지도 않고?’일이 너무 쉽게 풀려 나는 오히려 이 상황이 너무 이상했다. 하지만 상대가 아직 꼬리를 드러내지 않은 터라 나도 뭐라고 할 수는 없어 수표를 챙겨 그곳을 떠났다.내가 떠난 뒤 사무실을 지키고 있던 놈이 황용길에게 물었다.“사장님, 저 돈 자그마치 4억이에요. 우리 회사에 저렇게 많은 돈은 없어요.”황용길은 담배에 불을 붙여 한 모금 들이켜더니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저거 공수표야. 그런데 대놓고 그렇게 말할 수는 없잖아. 안 그러면 저 자식은 자기가 임 회장님한테 당한 걸 알아채.”“그런데 방금 내일 4억을 주겠다고 하셨잖아요. 혹시 거짓말한 거예요?”“거짓말 아니야. 임 회장님 마침 나더러 4억 정도 자금세탁 해달라고 했거든. 그래서 그 돈을 저 자식한테 주래.”“임 회장님 이거 저 자식 아예 묻어버릴 셈이네요!”“하하. 임 회장님을 건드리고 돈까지 받아 가려고 했으니 그럴
때문에 여자가 풍기는 분위기는 때론 외모나 몸매보다 더 중요하다.소여정이 왜 임천호의 예쁨을 그렇게 받을 수 있을까? 그 이유는 바로 소여정은 아주 매력적이고 남자의 정복 욕구를 자극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소여정은 수완이 있고 총명해서 임천호도 꼼짝 못 하게 한다. 그래서 임천호가 소여정을 떠나지 못하는 것이기도 하다.나는 조용히 커피 한 잔을 주문했다. 그러고 한 모금 마시려고 할 때 윤미화가 갑자기 물었다.“가서 서나연 한번 만나볼래?”“소여정 씨가 따로 요구한 것도 없잖아. 그러니 우리끼리 일거리 좀 만들어 보는 건 어때?”‘싫은데요.’‘조용히 앉아서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는 게 안 좋나?’내가 속을 중얼거릴 때 윤미화가 내 팔을 잡으며 말했다.“수호 씨는 무조건 가야 해. 고용주가 특별히 요구하지 않았지만 대충 해서는 안 되잖아. 소여정 씨가 서나연 대신 임천호 아내 자리를 꿰차려고 할 수도 있잖아.”커피를 마시던 나는 그 말에 사레가 들리고 말았다.“왜 그래? 나한테 튈 뻔했잖아.”윤미화가 제때 피한 덕에 커피가 그녀 옷에 튀지 않았다.나는 너무 불안해서 고개를 저었다.“아니에요. 사레가 들었어요.”솔직히 나는 소여정이 임천호 아내 자리를 꿰차려 한다는 말에 마음이 찌릿했다.임천호는 좋은 사람이 아니다. 소여정이 임천호 곁에 남는다면 분명 좋은 꼴을 보지 못할 거다.소여정처럼 좋은 여자가 임천호 손에 망가지는 건 너무 안타깝다.나는 무의식적으로 서나연을 바라봤다. ‘만약 저 여자가 임천호를 휘어잡을 수 있다면 임천호가 밖에서 마음대로 하고 다니지 못했을 거고, 소여정도 자유로웠을 텐데.’‘내가 지금 무슨 생각하는 거야?’서나연이 임천호를 휘어잡을 수 있었다면 저렇게 우울해할 리도 없었을 거다.그때 윤미화가 또 나를 다그쳤다.“가서 저 여자 한번 만나봐. 서나연 성격을 알아야 하니까.”“알았어요. 갈게요.”나는 커피를 원샷하고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왠지 모르게 나는 임천호의 아내가 대체 어떤 사람인지 확인해
서나연은 그제야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봤다.“나 어때요? 예뻐요?”“예뻐요. 그런데 혈색이 좀 안 좋고 눈빛에 광채가 없어요. 무슨 안 좋은 일이 있는 거죠? 여자는 혈색이 아주 중요하거든요. 혈색이 없으면 생기가 없어 보여요.”서나연은 눈을 내리깔며 기운 빠진 풍선처럼 말했다.“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데 기분 좋을 리가 있겠어요?”“그러면 새 사람 찾으면 되지 뭐 하러 한 사람한테만 목을 매요? 옷차림을 보니 있는 집 자제분인 것 같은데 그쪽 좋다는 사람 분명 많을 거예요.”“그런데 나한테는 그 사람뿐인 걸 어떡해요?”서나연은 당장이라도 울것처럼 흐느꼈다.나는 얼른 휴지를 뽑아 서나연에게 건넸다.“그럼 상대한테 사랑을 표현한 적 있어요?”서나연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그 사람은 나한테 그럴 기회조차 주지 않아요.”“하. 그럼 상대가 그쪽 사랑하지 않는 거니까 시간 낭비하지 마요.”서나연은 갑자기 나를 바라봤다.“나한테 왜 그런 말을 해요? 혹시 그 사람이 보냈어요?”“아니요. 전 그 사람이 누구인지도 몰라요. 그냥 우울하게 앉아 있길래 안 좋은 일이 있는 것 같아서 말 건 거예요. 솔직히 저 작가거든요. 그래서 소재 좀 얻으려고 말 건 거예요.”서나연의 눈은 이내 어두워졌다.“그 사람이 보낸 사람이 아니었군요. 이젠 나를 상대하기도 귀찮나 봐요. 그 사람 눈에 난 공기나 다름없어요.”“예전에는 나한테서 벗어나려고 여러 남자를 보내 나를 꼬시게 했는데 내가 모두 거절했거든요. 난 그렇게 하면 그 사람이 마음 돌릴 수 있고 그 사람도 내가 자기를 사랑하는 걸 알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 사람은 내가 사랑을 아무것도 아닌 거로 여긴대요.”서나연은 말하다가 끝내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한 사람을 사랑하는 게 그렇게 어려워요? 그 여자는 분명 그 사람을 사랑하지 않아요. 그 사람 돈만 노리는 건데, 그 사람은 그 여자를 보물처럼 여겨요. 그런데 나는 진심을 모두 줬는데 짐짝 취급을 받고 있고요.”서나연
“갑자기 죽고 싶어요. 사람이 죽으면 고통도 사라지고 아무 생각도 안 들 거잖아요. 그럼 차라리 죽는 게 나아요. 나 이렇게 사는 거 너무 고통스러워요. 그 사람 없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어요.”나는 다급히 서나연의 팔을 잡고 찻집에 있는 다른 손님들을 향해 소리쳤다.“다들 뭐 하고 있어요? 와서 좀 도와줘요.”하지만 손님들은 오히려 뒤로 물러서며 아무도 도와주려 하지 않았다.손님들의 태도에 나는 순간 화가 치밀었다.사람 목숨이 달린 중요한 상황에 어쩜 이럴 수 있는지.서나연이 다른 한쪽 다리까지 밖으로 내밀려 하자 나는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할 수 없어 얼른 그녀의 허리를 껴안고 잡아당겼다.“바보 같은 짓 하지 마요. 그쪽을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 때문에 이럴 가치가 있어요? 그쪽이 죽어도 그 사람은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을 거예요. 오히려 그쪽 부모님만 딸 죽음에 속상해할 거라고요.”서나연은 순간 온 힘이 빠져나간 듯 바닥에 주저앉았다.“그런데 나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너무 괴로워요...”그때 몇몇 사람이 우리 쪽으로 달려왔다.“아가씨, 괜찮으세요?”“아가씨, 집으로 모시겠습니다.”그 사람들은 보아하니 서씨 가문 사람들인 듯했다.서씨 가문 사람들도 서나연의 상황이 이상하다는 낌새를 차리고 몰래 서나연을 보호하고 있었던 모양이다.나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쉬며 다급히 현장을 떠났다.나는 서씨 가문 사람과 엮이고 싶지 않았다. 때문에 서씨 가문 사람들도 나에게 들러붙지 않기를 간곡히 바랄 뿐이었다.나는 단숨에 커피숍으로 달려갔다.내가 도착하자 윤미화는 바로 궁금한 듯 물었다.“어때? 그 여자 방금 뛰어내리려 하는 것 같던데.”나는 목이 말라 다른 생각할 겨를도 없이 윤미화의 앞에 놓인 커피를 들어 원샷했다.그러고는 두근대는 심장을 달래며 말했다.“말도 마요. 제가 방금 반응이 빨랐으니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정말 뛰어내렸을지도 몰라요.”“그 여자 임천호를 진심으로 사랑하나 봐요. 임천호 때문에 밥도 못
“대체 어쩌려고 자꾸만 저렇게 죽으려고 하는 건지.”보아하니 서나연이 죽으려 한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닌 모양이다. 이러다간 정말 무슨 일이 사고라도 생길 수 있다.그때 BMW 차 한 대가 찻집 문 앞에 멈춰서더니 안에서 정장 차림의 중년 남자가 내렸다.서씨 가문 사람들은 중년 남자를 보자 모두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그 중년 남자는 다름 아닌 서나연의 아버지 서광진이었다.서광진이 나타나자 서나연은 곧바로 진정했다.하지만 얼마 뒤, 서광진이 커피숍 쪽을 바라봤고, 서씨 가문 사람이 나를 가리켰다.그 순간 나는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뭐지? 왜 갑자기 나를 가리키지?’내가 어리둥절해 있을 때 서광진이 커피숍으로 걸어왔다.“젠장. 설마 나를 찾아온 건 아니겠죠?”나는 불안에 떨며 윤미화에게 물었다.그러자 윤미화는 내 팔을 잡으며 말했다.“두려워할 거 뭐 있어? 나쁜 일 한 것도 아닌데. 가만히 앉아 있어. 준원아, 얼른 카메라 치워. 발각되면 안 되니까.”우리는 서둘러 짐을 정리하고 반듯하게 앉아 커피를 마시는 모습을 연출했다.그러자 얼마 뒤, 서광진이 들어와 내 쪽으로 걸어왔다. 그 순간 나는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올 뻔했다. 내가 이번에 S시에 온 목적은 수표를 현금화하기 위해서지 귀찮은 일을 만들기 위함이 아니다.“반갑네. 혹시 그쪽이 방금 내 딸을 구했나?”“네. 맞아요.”“우리 딸을 구해줘서 고맙네. 혹시 성함이 어떻게 되나?”서광진이 시비를 걸러 온 게 아니라는 걸 확인하자 나는 겨우 긴장을 풀었다.“정수호라고 합니다.”“정수호 군, 이 카드에 1억이 있으니 받게.”나는 순간 어리둥절했다. 그러다가 서광진이 딸을 구해준 은혜를 보답하려 한다는 걸 바로 깨달았다.나는 서둘러 카드를 밀어냈다.“아닙니다. 다른 사람이 봤어도 그렇게 했을 겁니다. 제가 이 돈을 받으면 의미는 변합니다.”“나 서광진은 남한테 빚지는 걸 싫어하네. 이 돈은 받게.”그 순간 나는 수표를 현금으로 교환해야 하는 일이 문득 떠올랐다.“
“서은성이 내일 저랑 같이 Y 머니 캐피탈에 가면 저랑 임천호 관계를 알 거 아니에요. 그러다가 제가 일부러 서나연 씨한테 접근했다고 생각하면 어떡해요.”내가 걱정되는 점은 이 부분이었다.그런데 서광진이 정말 나한테 이토록 대단한 사람을 붙여줄 줄이야.그때 윤미화가 입을 열었다.“그걸 왜 신경 써? 우선 돈부터 받아내고 봐야지. 나 이미 사진 꽤 많이 찍어서 고용주한테 보여줄 거 충분해. 수호 씨만 임무 완성하면 바로 강북으로 돌아가면 돼.”“서광진이 수호 씨와 임천호 관계를 알아내면 뭐 어때? 그때면 수호 씨가 이미 여기 없는데. 설마 서광진이 강북까지 쫓아오겠어?”윤미화의 분석이 일리가 있어 내 마음도 한결 가벼워졌다.“됐어. 호텔이나 알아보자고. 오늘 저녁 수호 씨가 밥 사야 해.”일은 그나마 순조롭게 풀렸다. 하루 종일 바삐 돌아친 터라 우리도 이제는 휴식할 때가 되었다.우리는 근처에서 호텔을 잡았다. 윤미화는 통쾌하게 하 사람당 방 하나씩 총 5개 방을 잡았다.나는 샤워를 마치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은 뒤 저녁에 뭘 먹고 싶은지 단톡방에 물었다.샤브샤브를 먹자는 사람도 있었고 꼬치를 먹자는 사람도 있었고 고기를 먹자는 사람도 있었지만, 결국 다수결로 고기를 먹기로 결정했다.마침 호텔 근처에 유명한 고깃집이 있었는데 우리가 도착했을 때 손님이 바글바글했다.그나마 다행인 건 우리가 운이 좋아 구석 자리 하나가 남아 있었다.우리는 함께 고기를 구워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그러던 중 윤미화는 우리에게 S시가 처음인지 물었다. 알고 보니 나와 류준원은 모두 처음이었고 나머지 두 명은 탐정 사무소에서 일하기 전에 S시에서 일한 경험이 있었다.“그럼 S시온 김에 제대로 둘러봐. 이따 밥 먹고 돌아다니자. 모든 비용은 내가 낼게. 놀고 싶은 거 마음껏 놀아.”그 말에 나머지 세 명은 바로 맞장구쳤다.“사장님, 만세!”“사장님, 한 잔 올릴게요.”“저도 한 잔 올릴게요.”처음에는 별로 신경 쓰이지 않았지만 남자 셋이 번갈아
“윤 사장님도 우리랑 다니는 거 은근히 좋아하지 않아? 내가 볼 때 우리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아.”“내가 어디서 들었는데 사장님이 정수호를 자주 찾으러 간대. 딱 봐도 정수호한테 관심 있는 거 같아.”“원래 욕구불만인 젊은 사모님들은 우리처럼 젊고 잘생긴 남자 좋아해. 우리가 사장님 눈에 들면 남은 인생 고생할 필요 없어.”“그 정수호 때문에 우리는 기회가 없을 것 같은데. 사장님이 정수호랑 맨날 시시덕거리잖아. 대체 정수호가 뭐가 좋다고.”“아니면 오늘 밤 사장님 자빠뜨려보는 건 어때? 딱 봐도 취했던데 우리 같이 사장님 방으로 데려다주는 척하면서...”여기까지 들은 나는 너무 화가 나서 이가 갈렸다. 그러다가 결국은 참지 못하고 차가운 얼굴로 나갔다.“말 다 했어?”두 사람은 내 목소리에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흠칫 놀랐다.나는 너무 화가 나서 대뜸 물었다.“윤 사장님이 평소 너희한테 어떻게 했는데 뒤에서 이런 말을 해? 일하기 싫으면 나가.”마교준은 내 말에 바로 반박했다.“나가든 말든 사장님이 결정할 일이지. 네가 뭔데 나서?”진이준도 얼른 맞장구쳤다.“맞아. 우리는 윤 사장님이 모집한 직원이야. 윤 사장님이 우리 사장님이야. 네가 뭔데 이래라저래라 하는데?”나는 두말없이 다가가 진이준의 손목을 밖으로 세게 비틀었다. 그 순간 진이준의 입에서 돼지 멱따는 소리가 흘러나왔다.그때 옆에 있던 마교준이 나를 마구 삿대질해 댔다. 하지만 그가 화내기 전에 나는 마교준의 손을 잡아 밖으로 비틀었다.그러자 두 사람은 동시에 비명을 질렀다.“이거 놔. 정수호. 네가 뭔데 우리한테 이러는 거야?”“너도 우리처럼 윤 사장님 밑에서 일하는 직원이잖아. 너 우리한테 이럴 자격 없어.”나는 손을 놓아주지 않고 싸늘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바라봤다.“자격이 있는지 없는지는 너희가 판단할 게 아니야. 지금은 내가 판단해. 오늘 너희는 호텔에 가지 말고 다른 곳 알아봐.”“우리가 왜 그래야 하는데? 정수호, 네가 뭔데 이래?”마교준은
우리는 곧바로 호텔로 돌아갔다.그런데 류준원은 여전히 마교준과 진이준을 걱정했다.이에 나는 방금 화장실에서 우연히 두 사람의 대화를 들었던 일을 솔직히 털어놨다.“내 기억이 맞다면 너도 두 사람과 같이 입사한 거 아니야? 평소 셋이 친해 보이던데, 셋이 같은 학교 동기지?”류준원은 얼른 해명했다.“우리가 같은 학교 동기인 건 맞지만 전 두 사람이랑 친하지 않아요. 두 사람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도 몰랐고요.”“난 너 믿어. 그러니까 나 실망하게 하지 마.”나는 손을 뻗어 류준원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류준원은 그나마 얌전하고 성실해 보여 나는 좀 더 관찰할 생각이었다.윤미화를 방에 눕힌 뒤 우리는 방을 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그때 윤미화가 갑자기 내 옷소매를 잡아당기는 게 느껴졌다.나는 그제야 윤미화가 진짜 취한 게 아니라 취한 척한 거라는 걸 알아챘다.나는 류준원을 먼저 보내고 핑계를 대서 윤미화 방에 남았다.류준원이 떠난 뒤 나는 침대에 앉아 윤미화에게 말을 걸었다.“취한 거 아니었어요?”“취했어. 속이 안 좋고 메스꺼워.”윤미화는 발음이 명확하고 논리가 민첩한 게 아무리 봐도 취한 것 같지 않았다.“취한 게 아니면서 마교준과 진이준이 윤 사장님 돈을 그렇게 펑펑 쓰는데 왜 당하고만 있었어요?”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그제야 윤미화는 또렷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사기? 내가 말했잖아. 오늘 소비는 모두 내가 계산할 거라고.”“그럼 지금 내가 쓸데없는 참견을 했다고 탓하는 거예요?”윤미화는 한 손으로 이마를 짚더니 싱긋 웃으며 나를 봤다.“너도 못 만지게 하면서 젊고 잘생긴 총각들도 못 만지게 했으니 네 탓 맞잖아.”“대체 다들 왜 이러는 거예요? 이미 결혼했으면서 좀 얌전하게 살면 안 돼요?”“내가 언제 얌전하게 지내지 않았는데? 젊은 애들과 즐겁게 노는 것뿐인데. 내가 그 애들과 선 넘는 짓을 한 것도 아니잖아.”윤미화는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그래요. 사장님도 생각이 있을 테니 다시는 뭐라 하
장례식장 안을 모두 뒤져 봤지만 사모님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리 조급하지 않던 내 마음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불안해졌다.사모님은 현재 몸 상태도 안 좋고 정서도 매우 불안하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가족한테 어떻게 말해야 할지 걱정됐다.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내 마음은 점점 불안해졌다.그러다 결국 방법이 없어 나는 문득 사모님 번호를 떠올려 그쪽으로 전화를 걸었다.전화는 계속 긴 연결음만 들릴 뿐 아무도 받는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내가 포기하려고 할 때 연결음이 꺼졌다. 액정을 확인하니 전화가 연결되었다.“사모님?”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수호 씨, 나 괜찮으니까 좀 내버려둬요.]사모님 목소리는 매우 우울해 보였고 기운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나한테는 너무 듣기 좋았다. 나는 다급히 물었다.“사모님, 어디 있어요? 너무 걱정돼요.”[혼자 있고 싶어요.]“알아요, 아는데 어디 있는지만 알려줘요. 사모님이 안전하다는 거 확인해야 해요.”전화 건너편에서 한참 침묵이 흘렀다.그때 갑자기 차 경적음이 들려왔다.그렇다는 건 사모님이 장례식장에 있는 게 아니라는 뜻이었다.나는 문득 사모님이 있을 수 있는 곳이 떠올랐다. 하지만 조심스럽게 물었다.“사모님, 알려주시면 안 돼요?”사모님은 아예 전화를 끊어버렸다.하지만 이미 대충 답을 얻은 나는 장례식장을 뛰쳐나가 택시를 잡고 사장님이 사고를 당한 곳으로 향했다.가는 길에 사모님을 찾았냐는 윤지은의 전화를 받은 나는 내 추측을 말했다.“아니요. 사모님 아마도 사장님 사고 난 곳에 있는 것 같아요.”[거긴 왜?]윤지은은 이해가 되지 않아 무의식적으로 물었다.“사장님 죽음이 수상해 직접 조사하고 싶었을 수도 있고, 단순히 사장님이 그리웠을 수도 있고... 아무튼 저 지금 가는 중이에요.”[그럼 먼저 건너가. 나 이따 바로 갈게.]나는 윤지은과 상의한 뒤 먼저 사장님이 사고 난 곳으로 향했다.사고가 난 곳은 절벽인데, 사모님은 마침 절벽
사모님의 이런 모습을 보니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입을 꾹 다문 채로 옆을 지켜드렸다. 그러다 저도 모르게 졸음이 몰려왔다.최근 계속 이리저리 다니다 보니 그동안 제대로 휴식한 적 없어, 나는 너무 피곤한 나머지 잠시 눈을 붙이려고 했다.하지만 잠을 편히 잘 수 없었다. 꿈속에서 정 사장님은 계속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나도 사장님을 구하고 싶었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사장님과 닿을 수 없었다. 그러다 꿈의 마지막쯤 정 사장님은 가면을 쓴 사람에게 살해당했다.꿈에서 놀라 깬 나는 이미 온몸이 식은땀에 푹 젖어 있었다.비록 꿈이었지만 꿈에 나온 장면들이 너무 생동해서 직접 경험한 것 같았다.밖은 어느 때부터인지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했고, 유리창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최면 노래처럼 느껴졌다.피곤함에 눈을 비비다가 문득 사모님이 침대에서 사라졌다는 걸 발견한 나는 다급히 호텔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디에도 사모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나는 호텔 안을 마구 달리며 윤지은에게 전화했다.“혹시 유미 사모님 봤어요?”[나 계속 밖에 있어서 유미 본 적 없는데? 네가 유미 호텔에서 돌봐주던 거 아니었어? 그런데 어디 갔는지 모른다고?]윤지은이 반문했다. 이에 나는 얼른 설명했다.“제가 너무 피곤해서 잠깐 눈 붙였는데 깨어나니 사모님이 사라졌어요.”[넌 대체 뭘 할 수 있어? 사람 하나 돌보는 것도 못해?]윤지은은 나를 꾸짖기 시작했다.나는 얼른 전화를 끊고 이리저리 찾으며 물어봤지만 호텔 직원들도 모두 사모님을 본 적 없다고 했다.결국 나는 프런트에 달려가 물었지만 프런트 직원들도 못 보기는 마찬가지였다.“그럼 CCTV 한번 확인할 수 있을까요?”“안 됩니다. 호텔 규정상 CCTV는 함부로 보여드릴 수 없어요.”나는 다급히 말했다.“제 친구 남편이 이틀 천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 친구 정서가 엄청 불안해요. 반드시 빨리 찾아야 해요. 지금 우선 CCTV 확인해 줘요. 제가 당장 경찰에 신고할 테니까...”“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여자가 이렇게 빨리 남편 시신을 화장하려고 하는 이유가 없다.내가 분명 이번 교통사고가 단순한 사고가 아닐 거라고 말했는데 들을 생각도 하지 않다니.나는 슬쩍 찔러보려고 다시 물었다.“왜 그렇게 서둘러요? 혹시 뭐 알고 있는 거 아니에요?”여자는 내 말을 듣더니 얼굴색이 확 바뀌었다. 나는 뭔가 찔린 듯 불안해하는 여자의 행동을 눈에 담았다. 그러고는 갑자기 여자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뭔가 알고 있는 거죠? 알고 있는 거 다 얘기해요. 그게 이번 사고의 진실을 밝힐 수도 있어요...”“뭐 하는 거예요? 아파요.”여자는 내 손을 뿌리쳤다. 여자의 아들은 어머니가 괴롭힘당하는 걸 보자 바로 나를 막아섰다.지금 내 실력으로 두 사람을 상대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윤지은은 일을 크게 만들까 봐 내 팔을 쿡쿡 찔렀다.“됐어. 저 사람들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해.”나는 이대로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두 사람이 너무 수상해 반드시 기회를 잡아 두 사람의 입을 열어야 했다.하지만 점점 모여드는 구경꾼들 때문에 나는 결국 포기할 수박에 없었다. 만약 나 혼자였다면 내가 내키는 대로 소란을 피웠을 테지만, 정서가 불안정하기에 사모님한테 피해 가게 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이대로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나는 장례식장을 떠난 뒤 두 사람을 찾아 결판 낼 생각이었다.오늘 장례식장에 나타난 유가족은 또 있었다. 바로 운전한 오 기사님 가족이었다.오 기사님 가족은 얘기가 잘 통해 화장을 조금 미루기로 했다. 그들 역시 이번 교통사고가 수상쩍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오 기사님 아들은 심지어 확신했다.“제 아버지 운전 실력은 엄청 좋아요. 사고가 난 곳도 생전에 수백 번도 더 다녔던 곳이라 그 길을 잘 알고 있어요.”“아버지가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도 처음에 믿지 않았어요. 난 이번 일 제대로 조사해서 아버지 결백을 증명할 거예요.”겨우 생각이 같은 사람을 찾았다는 생각에 나는 너무 기뻤다. 결국 조금희의
“들여보내 줘요. 나 호섭 씨랑 같이 있을래요. 같이 있어 줘야 해요...”장례식장 입구에서 유미 사모님은 몇몇 직원들에게 가로막혀 애타게 울고 있었다.그 모습을 보자마자 나와 윤지은은 급히 달려갔다.“사모님, 여긴 왜 왔어요?”장례식장도 규칙이 있는데 가족 방문 횟수가 제한되어 있다. 우리가 나가기 전 분명 사모님더러 호텔에서 휴식하라고 했는데, 여기까지 올 줄은 몰랐다.한참 애를 먹던 두 직원이 얼른 말했다.“얼른 이분 좀 말려 봐요. 이곳 냉기를 보통 사람들은 견디기 힘들어하세요. 그런데 자꾸만 안에 들어가겠다고 하시는데, 절대 안 됩니다.”“그리고, 절차는 다 밟았나요? 다 밟았다면 얼른 화장할 수 있게 사인하세요. 시체 안에 계속 두고 있는 것도 좋은 선택은 아니에요...”나는 손을 저으며 두 직원의 말을 잘랐다.“네, 알겠어요. 먼저 가서 일들 보세요.”나와 윤지은은 유미 사모님을 조용한 곳으로 데려갔다. 사모님은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고 너무 지쳐 몸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그 모습을 보며 윤지은도 드물게 눈시울을 붉혔다.“유미야, 이러지 마...”윤지은은 흐느끼느라 말도 제대로 내뱉지 못했다.사모님 역시 슬피 울부짖었다.“왜? 좋은 사람은 복이 온다며? 그런데 왜...”“호섭 씨는 이 세상에서 가장 착한 사람인데. 호섭 씨가 가난한 사람을 위해 얼마나 많은 선행을 베풀었는데 왜 이렇게 된 거야? 왜...”처절한 외침에 듣는 나도 너무 괴롭고 삼장이 칼에 베이는 것처럼 아팠다.이 순간 어떤 위로의 말도 소용없다. 그 어떤 위로도 사모님의 비통한 심정을 달랠 순 없으니까.나는 그저 사모님이 진정할 수 있게 침을 놔줄 수밖에 없었다. 잠시 뒤 나는 조금 안정이 된 사모님을 안아 차에 앉혔다. 창백하고 초췌한 사모님의 얼굴을 보니 내 마음은 더욱 괴로웠다. 그때 윤지은이 이를 악물며 악에 받쳐 말했다.“이번 사건 우리가 꼭 밝혀낼게.”그 순간 나도 윤지은과 같은 마음이었다. 나는 속이 부글부글 끓었고 그걸 당장 토
나는 윤지은이 갑자기 이렇게 말할 거라고 생각지도 못해 무척 감격스러웠다.나 혼자 다른 도시에서 도움 없이 이 사건을 조사하는 건 확실히 힘들다. 하지만 윤지은이 같이 조사하겠다고 하니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다.나는 느릿한 말투로 진지하게 말했다.“이번에 우리 같이 손을 잡고 정 사장님을 위해 진실을 밝혀요.”그동안 나와 윤지은은 서로 고양이와 개처럼 항상 만나기만 하면 싸웠는데, 이번만큼은 힘을 합쳐 함께 정 사장님 사건을 조사하기로 했다.우리는 해야 할 일을 확인한 뒤, 강한나를 만나러 갔다. 강한나라면 전문가의 관점에서 우리를 도와 증거를 수집할 수 있을 테니까.“최선을 다해 볼게. 하지만 너무 큰 기대는 하지 마. 내가 방금 사건 기록을 봤는데 현장 사진과 다양한 증거들을 취합해 보면 단순 사고사일 수 있어.”“내가 의심했던 브레이크 흔적 거리인데, 이것도 어찌 보면 사고사일 수도 있고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어. 결론적으로 조사하기 매우 어려워.”한참 듣고 있던 윤지은이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현장 증거로 조사할 수 없으면 다른 쪽으로 출발해야겠네.”한창 낙담하고 있던 나는 윤지은의 말에 다급히 물었다.“혹시 방법이 있는 거예요?”윤지은은 팔짱을 끼면서 냉정하게 분석했다.“내가 알기로 운전한 기사는 호섭 씨랑 오랜 친구였고 운전 실력도 엄청 뛰어나. 이 점에서 출발하면 될 것 같아. 그리고 함께 차에 탔던 피해자 가족들도 조사해 볼 수 있어.”나는 맞장구치며 고개를 끄덕였다.“음, 좋은 방법인 것 같아요. 그럼 사고 유가족들부터 조사해 봐요.”강한나는 우리를 보며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정말 그렇게 할 거야? 이 사건이 만약 인위적인 거면 두 사람도 위험해. Y시는 국내 다른 도시들과 달라. 여긴 무법지대인 D국과 엄청 가까워.”윤지은이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그게 뭐? 의심 가는 구석이 있는데 그냥 덮자고? 그러고도 내가 무슨 친구야? 유미 지금 충격이 너무 커. 호섭 씨는 유미한테 가장 중요한 사
“너무 큰 기대는 하지 마요. 조사하기 어려워서 아마 단순 사고사로 결론 날 것 같아요.”나는 머리가 너무 복잡해 강한나가 그 뒤로 무슨 말을 했는지 귀로 들어오지 않았다.‘정 사장님이 이번에 Y시로 갔던 게 누군가의 이익을 건드린 걸까? 그래서 그 사람들이 사장님을 해친 걸까?’누군가의 이익을 건드린 거라면 첫 번째로 떠오르는 사람이 바로 서윤기다.나는 곧장 안대성에게 전화해 최근 서윤기의 행적을 물었다.그러자 안대성이 대답했다.“형님, G시 약재상은 요즘 계속 호텔에만 있고 밖에 별로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냥 잠시 돌아다니는 것 외에 이상한 점은 없었습니다.”‘내가 설마 잘못 짚었나? 서윤기가 아닌가?’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 찜찜했다.나는 형사가 아닌지라 뭐가 문제인지 알 수 없다. 다만 탐정 사무소에서 오랫동안 일해 왔기에 형사 수사 능력은 조금 탑재했다.내 육감이 말해주건대, 정 사장님의 사고는 서윤기와 떼어놓을 수 없다.하지만 나는 이 사실을 사모님께 얘기하지 않았다.사모님은 영안실에서 나오자마자 또 쓰러졌다.이번 상황은 전보다 많이 심각했고 심박수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위험한 상황이었다.좀처럼 의식이 돌아오지 않는 사람을 보며 나와 윤지은은 걱정이 앞섰다.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었던 건, 침을 놓아 사모님 상태를 완화해 주는 것뿐이었다. 잠시 뒤, 사모님은 스르르 눈을 뜨더니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방금 호섭 씨를 만났는데 이번 일 단순 사고가 아니래. 누군가 차에 손을 댔대. 호섭 씨는 사고를 당한 게 아니라 살해당한 거야.”그 말을 들은 순간 나는 식은땀이 났다. ‘설마 진짜인가? 사모님이 정말 사장님 말을 들은 걸까?’무엇보다 이건 내가 전에 생각했던 거랑 너무 일치했다.“유미야, 그러지 마...”윤지은은 유미 사모님을 달래려 했지만, 유미 사모님은 벌떡 일어나 앉으며 윤지은 손을 꼭 잡았다.“진짜야. 호섭 씨가 나한테 그랬어. 지은아, 날 믿어줘...”사모님은 많이 격앙되어
Y시 경찰 말로는 사장님이 탄 차가 통제를 잃고 협곡으로 돌진하여 완전히 파손되었다고 했다. 그 일로 차에 타고 있던 사람 모두 사망했다.그 소식을 들은 순간 나는 내 귀를 믿을 수 없었고, 사모님은 아예 눈앞이 깜깜해 까무러치기까지 했다.나는 사모님을 데리고 곧장 병원으로 향했다.잠시 뒤 사모님 상태를 검사한 윤지은이 말했다.“별일 없어. 극심한 충격으로 쓰러진 거야. 호섭 씨가 사고를 당했다는 거 진짜야?”“내가 그런 일로 농담하겠어요? Y시경찰서에서 연락을 받았어요. 그때 제가 마침 사모님 옆에 있어 똑똑히 들었어요. 시체가 이미 영안실에 누워있다고 했어요.”나는 정 사장님이 떠난 뒤 이런 일이 벌어질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그렇게 까다로운 간암도 치료했는데, 어떻게...‘하!’나는 사모님이 깨어난 뒤 이 모든 걸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윤지은 역시 친구가 겪을 슬픔을 알기에 무척 걱정했다.30분 뒤, 사모님은 깨어났다.“나. 나 Y시에 갈래. 나 호섭 씨 찾으러 갈래.”사모님은 얼굴은 온통 눈물법벅이 되었다.그 모습을 보는 나와 윤지은은 마음이 너무 아팠다.“사모님 지금 이런 상태인데 어떻게 가요?”윤지은도 딱 잘라 말했다.“갈 수 있어. 하지만 지금 상태로는 안 돼. 너 아직 많이 불안한 상태라 가면 충격만 받아.”“호섭 씨 내 남편이야. 남편이 사고를 당했는데 가보는 것도 안 돼?”목청 찢어져라 우는 사모님을 보는 내 마음은 괴롭기만 했다.그때 윤지은이 말했다.“가야지. 당연히 가야 하는데 지금 상태로는 안 된다는 거야. 우선 네 컨디션부터 조절해.”“어떻게 조절해? 난 너처럼 멘탈이 그렇게 강하지 않아. 이런 일 당하고도 냉정하게 처리하지 못해. 난 못한다고! 호섭 씨는 내 남편이야. 간암을 겨우 이겨냈는데, 교통사고라니?”“그렇게 착한 사람인데, 뭐든 남을 위해 생각하는 사람인데, 애 이렇게 많은 시련을 겪어야 해? 착한 사람은 복 받는다며? 호섭 씨 복은 어디 있는데? 어? 아!”
“매일 감시할 필요는 없어. 하지만 주해진과 김진호가 뭔가를 꾸미면 나한테 얘기해. 그리고 별일 없으면 이 한의관에서 어슬렁거리지 마. 장사하는 데 방해되니까.”“이 두 가지 요구가 다야? 간단한데?”“내가 말한 대로 하면 주해진한테서든 나한테서든 돈을 얻을 수 있고 남편과의 결혼 생활도 유지할 수 있어.”“하지만 거절하면 결혼 생활은 완전히 무너질 거고, 주해진은 결국 당신을 떠날 거야. 그때 손해 보는 쪽은 당신이라는 거, 잘 알지?”임화영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안대성이 입을 열었다.“뭘 고민해? 이렇게 좋은 일이 어디 있다고. 얼른 형님한테 고맙다고 하지 않고 뭐 해?”“급할 거 뭐 있어? 잠깐 고민 좀 하고...”“고민은 무슨! 우리 형님이 널 얼마나 봐줬는데...”임화영은 잠시 고민하더니 결국 내 요구에 동의했다.“그리고 너희들은 한 가지 임무를 줄게. G시에서 온 약재상이 있는데 그 사람이 요즘 어떤 사람과 연락하는지 잘 감시해.”안대성은 그 말에 헤실 웃으며 대답했다.“형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반드시 해내겠습니다.”나와 연락처를 주고받은 안대성은 직접 운전해 나를 바래다주었다. 심지어 한의관 문 앞에 도착한 뒤에도 형님, 형님 하면서 공손하게 굴었다.그걸 본 민우는 의아해했다.“이 사람들은 누구야? 왜 너를 형님이라고 하는데?”나는 으쓱해서 말했다.“방금 내 동생들로 받아줬어. 앞으로 우리가 직접 하기 어려운 일들은 이 애들 시키면 돼.”“맞아. 진작 이럴 사람 찾아야 했어. 아니면 뭐든 우리가 직접 하면 너무 힘들고 번거로워. 심지어 남한테 약점 잡힐 수도 있고.”현성도 매우 공감했다.그때 문득 정 사장님 일이 떠올라 내 마음은 불안하기만 했다. 하지만 내가 괜한 걱정이기를 바라며 스스로 위로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법치 사회인데, 설마 누군가 불법적인 일을 마음대로 저지르겠냐는 생각을 하면서.그날 오후 퇴근 후, 윤지은을 보러 병원에 간 나는 그제야 윤지은이 퇴원했다는 걸 알았다.‘이 여자가,
“호미 오빠. 어떻게 이럴 수 있어?”호미는 임화영의 뺨을 힘껏 후려갈겨, 그녀를 바닥에 쓰러뜨렸다.“닥쳐. 네가 아니었으면 내가 수호 형님 미움을 살 리 없었잖아!”‘수호 형님?’누군가 나를 이렇게 불러본 건 처음이었다.그 순간 나는 문득 호미처럼 똘마니들을 받아 나 대신 일하게 하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너, 이리 와 봐.”나는 호미를 향해 손가락을 까닥였다. 그러자 호미는 바로 쪼르르 달려왔다.“쪼그려 앉아.”내 말에 호미는 순순히 쪼그려 앉았다. “네 본명은 뭐야?”“안대성입니다.”“이름 소박하고 좋네. 호미보다 훨씬 듣기 좋아. 보아하니 건달 일 오래 한 것 같지도 않은데 예전에 뭐 했어?”안대성은 사실 예전에 큰형님을 따라다녔었는데, 큰 형님이 감방에 들어간 뒤로 자꾸만 다른 무리에게 배척당해 결국 분을 이기지 못하고 혼자 따로 단체를 설립했다고 했다.게다가 본인도 망치, 호미 같은 이름을 쓰고 싶었지만 그런 이름은 서열이 높은 형님들이 다 쓰고 있어 비슷하게 호미를 선택했다고 했다. “그럼 저 여자랑 무슨 사이인데?”“특별한 사이는 아니고, 예전에 잠깐 사귀었는데 제가 가난하다고 버리고 다른 사람과 결혼했어요. 나중에 제가 이 바닥에 있다는 걸 알고 내 양동생이 되었어요.”‘젠장, 이건 뭐 할리우드도 아니고 복잡하네.’나는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아 안대성을 바라보며 물었다.“나 따라다닐래?”“네. 당연히 좋죠.”안대성은 무척 흥분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나는 바로 안대성의 머리를 때렸다.“참 쉽게 말하네? 진심 아니지?”“진심이에요. 정말 진심이에요. 형님, 주먹도 센 것 같은데 제 형님 할 자격 충분해요. 그리고 우리 애들이 힘이 없어요. 하지만 형님이 있다면 목표도 생기니 우리한테는 좋은 일이죠.”나는 안대성을 반신반의했다.하지만 현재로서 안대성과 그의 똘마니를 내 부하로 받아주는 건 나한테 이득밖에 없다.“네 사람 다 소집해. 앞으로 다 나를 형님이라고 불러!”안대성은 신속히 자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