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 무슨 일인데 이렇게 시끄러워?”우리가 한창 대책 회의를 하고 있을 때 익숙한 실루엣이 문밖에서 걸어 들어왔다.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렸더니 윤미화가 눈웃음을 치며 들어오고 있었다.“윤 사장님, 여긴 어쩐 일이에요?”“수호 씨 찾으러 왔지. 새로운 임무가 생겼거든. 조사 대상이 S시에 있어서 나랑 같이 갈 거야.”나는 그 순간 눈을 커다랗게 떴다.“S시요? 윤 사장님도 S시로 가려고요?”“응. 왜? 수호 씨도 가려고 했어?”“네. S시에 Y 머니 캐피탈이 있는데 이 지표를 그곳에서 현금화해야 하거든요.”“어머, 이런 우연이 다 있네. 마침 잘됐네. 같이 가.”윤미화가 같이 간다고 하니 너무 잘된 일이었다.윤미화는 비록 여자지만 보통 여자가 아니다.그도 그럴 게, 혼자 탐정 사무소를 꾸린 것도 모자라, 상대가 아무리 큰 인물이라도 모두 조사하니 그것만 봐도 보통 여자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게다가 수많은 직원을 거느리고 있어 윤미화와 함께라면 나는 안심할 수 있었다.상의 끝에 우리는 내일 출발하기로 결정했다.만약 4억을 현금화해 올 수 있다면 우리 가게는 대박 나는 셈이다. 이 돈이라면 옆 가게가 아무리 우리 고객을 빼앗아도 우리에겐 큰 지장이 없다.그날 오후 나는 월세방으로 돌아가 짐을 챙겼다.다만 남자라 챙길 게 별로 없었다. 나는 고작 갈아입을 옷 몇 벌과 운동할 때 필요한 아령을 챙겼다.비록 더 이상 변석훈의 가르침을 받지 않지만 나는 단련을 멈추지 않았다.목적에 달성하는 건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다. 반드시 매일 견지해야 한다.그날 저녁, 나와 윤미화는 함께 식사했다. 그 첫 번째 이유는 윤미화가 사람을 몇 명이나 더 데려갈지 묻기 위함이었고, 두 번째 이유는 이번에 조사할 사람이 누구인지 묻기 위함이었다.“서나연.”“서나연? 어쩐지 좀 익숙하네요?”나는 갑자기 눈이 커다래졌다.“임천호의 아내? 서지예의 친언니요? 누가 서나연을 조사하라고 했는데요?”나는 순간 그 사람이 임천호일 가능성이 높다는 생
나는 그럴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다.소여정은 임천호에게 나를 지켜주려 한다는 걸 들키기 싫어 이런 우회적인 방법을 생각해 냈을 거다.만약 소여정이 정말 서나연을 조사하고 싶었다면 마음대로 하라고 하지 않았을 거다.게다가 서나연은 소여정의 지위를 전혀 위협하지 못하고 있기에 몰래 서나연을 조사하라고 할 이유가 없다.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생각한 가능성에 힘만 실렸다.식사를 마친 뒤 나는 소여정에게 전화해 묻고 싶었지만 임천호의 의심을 살까 봐 결국 아무 문자도 보내지 못했다.그날 저녁, 주선영은 학교에서 돌아왔다. 나는 문득 현성이 낮에 했던 말이 떠올라 주선영에게 현성에 대한 일을 물었다.“선영아, 너 현성을 어떻게 생각해?”나는 직접적으로 물었다. 그러자 주선영의 얼굴은 갑자기 발그스름해지더니 부끄러워했다.“선배, 갑자기 그건 왜 물어요?”“현성이 부탁했어. 몇 번이나 고백했는데 계속 거절해서 불안했나 봐.”나는 숨기지 않고 모두 진실대로 토로했다.“너 현성이가 마음에 안 들어?”나는 다른 방식으로 물었다.그러자 주선영은 다급히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현성 선배 무척 다정하고 착해요. 저한테도 잘해주고요.”“그럼 왜 사귀기 싫은 건데?”나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내 질문에 주선영의 얼굴은 더욱 빨개졌다. 심지어 귀뿌리까지 후끈 달아올랐다.“저, 저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됐어요. 현성 선배 여자 친구가 되면 그걸 해야 하잖아요. 저, 전 그게 무서워요...”나는 그 이유에 웃을 수도 울 수도 없었다.“그 이유 때문이었어? 하하하.”주선영은 당장이라도 울 것처럼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선배, 왜 웃어요? 제가 우스워요?”“아니. 그 반대야. 너무 귀여워서 그래. 그럼 하나만 물을게. 너 왜 현성이랑 사귀고 싶어? 달콤한 연해가 해보고 싶어?”이번에 주선영은 숨기지 않고 얌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이에 내가 말했다.“그럼 된 거 아니야. 달콤한 연애가 하고 싶으면서 또 무섭다고 하는 건 모순되잖아.”“그런데 그걸 안
“그, 그러면 고민 좀 해볼게요. 현성 선배한테 너무 조급해 말라고 전해줘요.”주선영은 말하는 내내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 있었다.역시 연애를 못 해본 여자애는 단순한가 보다.우리는 한참 대화를 나누다가 주선영이 먼저 방으로 가 휴식을 취했고 나는 거실 소파에 누웠다.그로부터 얼마 뒤, 핸드폰이 징징 울리더니 현성이 어떻게 됐냐고 묻는 문자가 도착했다.나는 주선영이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모두 솔직히 말했다.[주선영도 너 좋아하는 거 같아. 그러니까 인내심 가지고 기다려. 시간을 좀 줘. 상대는 연애가 처음이고 경험이 없어 무서워하는 것도 정상이야.]내 대답에 현성은 무척 기뻐했다.[안 서두를게. 선영이 마음만 알면 돼. 나 참을 수 있어. 수호야, 너 진짜 엄청 도움 됐어. 나중에 내가 선영이랑 결혼하면 너한테 감사비 두둑하게 챙겨줄게.]우리는 한참 얘기하다가 대화를 끊었다. 이윽고 나는 소파에 누워 낮에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나는 임천호와 그렇게 얼굴을 맞대고 대화할 날이 오게 될 거라고 생각지도 못했다. 심지어 예전처럼 임천호가 두렵지도 않았다.사람은 많은 일을 겪어야 성장한다는 게 맞는 말인 듯싶다.나는 소여정을 떠올렸다가 윤지은을 떠올렸다, 한참 뒤에는 형수를 떠올렸다가 또 애교 누나를 떠올렸다.그렇게 이 사람 저 사람 떠올리다 보니 결국 저도 모르게 잠이 들고 말았다.다음 날, 곧바로 윤미화와 S시로 가기로 한 날이 다가왔다.우리는 고속버스 터미널 앞에 있는 주차장에서 만나기로 했다.내가 먼저 도착해서 약 20분 정도 기다렸더니 윤미화의 차가 나타났다.“차는 한 대로 움직이자고. 그래야 갈 때 심심하지 않고 기름값도 아낄 수 있잖아.”마침 나도 같은 생각이었다.나는 우선 차를 주차한 뒤 윤미화의 차에 올랐다.윤미화는 탐정 사무소의 남직원도 데려왔다. 나까지 합치면 남자는 도합 4명이었다.가는 동안 우리 남자 넷은 서로 번갈아 가며 운전하기로 했다. 처음에는 내가 운전하고 윤미화가 조수석에 앉았다.윤미화는 오늘 운동
“여자를 엎어치기 한 거 아니에요?”“그건 너무 매너 없네.”직원들은 반전의 결말을 떠올리려고 토론하기 시작했다.그때 윤미화가 피식 웃으며 나를 봤다.“수호 씨는 어떨 것 같아?”“죄송하지만 이거 인터넷에서 봤어요. 결말은 남자가 여자를 둘러메고 경찰서로 갔어요. 여자애가 미성년자라고요.”“이것도 어려워하지 않다니. 좋아. 하나 더. 어느 날 혜성이라는 남자가 병원에 병 보러 갔는데 접수할 때 어떤 과로 접수해야 할지 몰라 간호사한테 도와달라고 했어.”“그러자 간호사가 어디가 아프냐고 물었고, 혜성은 발끝 거기요라고 했어. 그 결과 어떻게 됐을까?”윤미화의 질문이 떨어지기 바쁘게 직원들은 머리를 쥐어 짜내기 시작했다.“발끝이면 정형외과지.”“그렇게 간단하면 문제로 안 냈겠지.”“분명 반전이 있을 거야. 생각해야 해.”윤미화는 나머지 세 명이 답을 알아 맞추지 못하자 또 나를 봤다.“수호 씨 대답은? 이번에도 답을 알아?”“미안하지만 이것도 인터넷에서 봤어요. 안 봤어도 답이 뭔지 알겠지만.”“재미없어. 왜 다 알아?”윤미화는 화가 난 듯 나를 째려봤다.‘내가 박학다식한 게 내 탓인가?’“수호 씨, 답이 뭔데?’그때 반나절이나 상의해도 답을 얻지 못한 나머지 세 명이 나에게 물었다.나는 웃으며 말했다.“정혀외과와 비뇨기과요.”“왜 비뇨기과인데?”“발끝... 거기. 발끝과 거기. 잘 생각해 봐요.”내 말을 듣고 잠시 되짚던 셋은 바로 깔깔 웃어댔다.나는 그런 셋이 너무 부러웠다. 나는 이제 이런 걸 봐도 웃기지 않은데 말이다.처음에 이걸 인터넷에서 봤을 때 나는 무척 부끄러워했고 반응이 이 세 명과 비슷했다.나는 문득 내가 이젠 늙어 가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하. 경험이 많은 것도 좋은 일은 아니네.’윤미화는 오기라도 생겼는지 꼭 내가 모르는 걸 내겠다며 기를 썼지만, 윤미화가 몇 개를 내든 나는 모두 답을 알고 있어 재미가 없었다.“윤 사장님.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내요. 이번에는 정말 모를 수 있잖아요.”
나뿐만 아니라 뒷좌석에 앉은 세 명도 똑같았다.결국 우리는 생각을 포기하고 윤미화를 바라봤다.그러자 윤미화가 득의양양해서 말했다.“‘여러 번 전화 드렸는데 안 받아서 오늘이 사흘째예요.’하는 거야.”그 말에 우리는 모두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휴게소에 도착한 우리는 자리를 바꾸었다.어젯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터라 피곤했던 나는 뒷좌석에 앉아 눈을 감고 휴식을 취했다.그에 반해 윤미화는 정신이 또렷해서 운전석에 앉은 사람과 계속해서 이야기를 나눴다.가는 내내 깊은 잠에 빠지지 못한 나는 도중에 정신을 차렸다.하지만 잠깐 눈을 붙였더니 정신은 한결 좋아졌다.윤미화는 아직도 흥이 깨지지 않았는지 계속해서 이야기를 해댔고 어린 남자애 셋은 그게 재밌는 듯 귀를 쫑긋 세우고 들었다.다만 이야기를 하다보니 점점 수위가 높아져 야릇한 농담까지 주고받았다.이쑤시개, 팽이버섯, 막대기 등 이상한 단어도 마구 난무했다.다만 어린 직원 셋은 알아듣지 못해 어리둥절했고 윤미화만 어린 동생 넷한테 장난치는 게 재밌는지 깔깔 웃어댔다. 물론 나머지 세 명도 모두 즐거워했다.나는 문득 윤미화가 남자를 너무 쉽게 여긴다는 생각이 들었다.아무리 어린 애들이라지만 야릇한 농담을 못 알아들을 나이는 아닌데 말이다.세상에 주선영 같은 애들은 극히 드물다. 우리를 따라온 직원 세 명은 그저 윤미화가 저들을 놀리는 걸 즐기고 있는 것뿐이었다.여자의 사고는 남자와 다르다. 남자는 강함을 숨기고 바보인 척한다면, 여자는 오히려 남이 추켜세우는 걸 즐긴다.그렇기에 둘이 만나면 사고가 발생하기 쉽다.아마 이 세 명 중 누군가는 사장님이 개방적인 사람이니 기회를 봐서 한번 어떻게 해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크흠...”나는 일부러 소리를 내며 윤미화한테 눈치를 줬다. 무엇보다 나머지 세 명 중에 정말 이상한 생각을 하는 애가 있을까 봐 걱정됐다.“수호 씨, 깨어났어? 나 방금 또 퀴즈 냈는데 아무도 못 맞추더라고. 얘네는 수호 씨
“네, 알았어요.”30분이라는 시간은 빠르게 흘렀고, 우리는 어느새 S시에 도착했다.곧이어 나는 내비게이션에 Y 머니 캐피탈 주소를 입력하고 류준원더러 먼저 그곳에 가달라고 부탁했다. 그 뒤 나머지 사람들은 서나연을 조사하러 출발했다.고개를 들어 광고판을 확인해 보니 Y 머니 캐피탈은 그리 크지 않았다. 보아하니 기껏해야 10평 조금 넘는 수준이었다.사무실 안에는 고작 책임자 한 명뿐이었는데, 한창 게임을 하고 있었다.“안녕하세요? 혹시 여기 책임자세요?”나는 그 사람 앞으로 다가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그 사람은 고개를 들어 나를 흘긋거렸다.“황 사장님 찾는 건가?”“그게 사실은 이 수표를 현금화하려면 여기를 찾아와야 한다고 해서요.”나는 수표를 상대에게 보여주었다. 그러다가 상대가 손을 뻗어 수표를 가져가려고 하자 이내 피해버렸다. “손에 기름투성이라 더러워져요. 황 사장 불러주세요.”나는 경각심을 늦추지 않았다.임천호가 수표를 끊어준 건 일부러 나를 곤란하게 하기 위해서다. 게다가 내 손에 달랑 이 수표 한 장뿐이라 잃어버리거나 훼손되면 현금화할 수 없어진다. 임천호를 찾아가 한 장 더 달라고 하는 건 더더욱 불가능할 테고. 때문에 나는 이곳 사람들이 수를 쓰지 못하게 경계를 늦춰서는 안 된다. 상대는 내가 경계하자 안 좋은 태도로 말했다.“기다려 봐. 황 사장님 지금 바빠.”이 사람은 날 난처하게 하려고 일부러 변명거리를 찾는 게 분명했다.이에 나는 곧바로 임천호 이름을 들먹였다.“이 수표는 여기 S시의 임천호, 임 회장님이 준 거예요. 오늘 바로 현금화할 거니까 얼른 그 황 사장한테 연락해요.”“젠장. 황 사장님 지금 바쁘다니까. 귀먹었어? 아니면 눈이 멀었나?”상대는 바로 열폭하며 핸드폰을 내팽개쳤다.그 행동에 나는 순간 어리둥절해졌다.‘뭔 사람이 이렇게 화가 많아?’나는 바닥에 내팽개쳐진 핸드폰을 흘긋 보고 웃으며 말했다.“나한테 화내는 거 임 회장님께 화내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Y 머니 캐피탈에서 설마
[역시 그 자식이네. 기다리라고 해. 바로 갈 테니까.]“네.”통화가 끝난 뒤 놈은 나에게 달려와 말했다.“황 사장님 금방 온다니까 조금만 기다려.”“네.”놈은 나에게 물도 따라주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아무렇지 않은 듯 옆에 있는 매점에 가 생수 한 병을 구매했다.그렇게 약 10여분 정도 기다리니 갈색 양복을 입은 중년 남자가 걸어왔다.사무실을 지키고 있던 녀석은 상대를 보더니 벌떡 일어섰다.“황 사장님, 오셨습니까?”나는 생수를 내려놓고 황용길을 바라봤다.“그쪽이 황 사장님인가요? 안녕하세요. 여기 수표 한 장이 있는데 현금화해 줘요.”황용길은 내 말에 수표를 흘긋거렸다.그동안에도 나는 상대가 속임수를 쓸까 봐 수시로 대비하고 있었다.하지만 의외로 황용길은 수표를 확인하기만 하고 나를 일부러 괴롭히지는 않았다.“나 지금 수중에 4억이나 되는 현금은 없어서 자금 유통이 필요하니까 내일 다시 와.”“내일 언제요?”“오후 2시쯤.”나는 수표를 받아 들고 눈앞의 남자를 뚫어지게 훑었다.‘이렇게 대화가 잘 통한다고? 나를 곤란하게 하지도 않고?’일이 너무 쉽게 풀려 나는 오히려 이 상황이 너무 이상했다. 하지만 상대가 아직 꼬리를 드러내지 않은 터라 나도 뭐라고 할 수는 없어 수표를 챙겨 그곳을 떠났다.내가 떠난 뒤 사무실을 지키고 있던 놈이 황용길에게 물었다.“사장님, 저 돈 자그마치 4억이에요. 우리 회사에 저렇게 많은 돈은 없어요.”황용길은 담배에 불을 붙여 한 모금 들이켜더니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저거 공수표야. 그런데 대놓고 그렇게 말할 수는 없잖아. 안 그러면 저 자식은 자기가 임 회장님한테 당한 걸 알아채.”“그런데 방금 내일 4억을 주겠다고 하셨잖아요. 혹시 거짓말한 거예요?”“거짓말 아니야. 임 회장님 마침 나더러 4억 정도 자금세탁 해달라고 했거든. 그래서 그 돈을 저 자식한테 주래.”“임 회장님 이거 저 자식 아예 묻어버릴 셈이네요!”“하하. 임 회장님을 건드리고 돈까지 받아 가려고 했으니 그럴
때문에 여자가 풍기는 분위기는 때론 외모나 몸매보다 더 중요하다.소여정이 왜 임천호의 예쁨을 그렇게 받을 수 있을까? 그 이유는 바로 소여정은 아주 매력적이고 남자의 정복 욕구를 자극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소여정은 수완이 있고 총명해서 임천호도 꼼짝 못 하게 한다. 그래서 임천호가 소여정을 떠나지 못하는 것이기도 하다.나는 조용히 커피 한 잔을 주문했다. 그러고 한 모금 마시려고 할 때 윤미화가 갑자기 물었다.“가서 서나연 한번 만나볼래?”“소여정 씨가 따로 요구한 것도 없잖아. 그러니 우리끼리 일거리 좀 만들어 보는 건 어때?”‘싫은데요.’‘조용히 앉아서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는 게 안 좋나?’내가 속을 중얼거릴 때 윤미화가 내 팔을 잡으며 말했다.“수호 씨는 무조건 가야 해. 고용주가 특별히 요구하지 않았지만 대충 해서는 안 되잖아. 소여정 씨가 서나연 대신 임천호 아내 자리를 꿰차려고 할 수도 있잖아.”커피를 마시던 나는 그 말에 사레가 들리고 말았다.“왜 그래? 나한테 튈 뻔했잖아.”윤미화가 제때 피한 덕에 커피가 그녀 옷에 튀지 않았다.나는 너무 불안해서 고개를 저었다.“아니에요. 사레가 들었어요.”솔직히 나는 소여정이 임천호 아내 자리를 꿰차려 한다는 말에 마음이 찌릿했다.임천호는 좋은 사람이 아니다. 소여정이 임천호 곁에 남는다면 분명 좋은 꼴을 보지 못할 거다.소여정처럼 좋은 여자가 임천호 손에 망가지는 건 너무 안타깝다.나는 무의식적으로 서나연을 바라봤다. ‘만약 저 여자가 임천호를 휘어잡을 수 있다면 임천호가 밖에서 마음대로 하고 다니지 못했을 거고, 소여정도 자유로웠을 텐데.’‘내가 지금 무슨 생각하는 거야?’서나연이 임천호를 휘어잡을 수 있었다면 저렇게 우울해할 리도 없었을 거다.그때 윤미화가 또 나를 다그쳤다.“가서 저 여자 한번 만나봐. 서나연 성격을 알아야 하니까.”“알았어요. 갈게요.”나는 커피를 원샷하고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왠지 모르게 나는 임천호의 아내가 대체 어떤 사람인지 확인해
우리가 한창 얘기하고 있을 때 직원이 갑자기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정 사장님, 주 사장님이 볼일 있다면서 찾아오셨어요.”“그래요. 알았어요.”우리는 곧장 사무실을 나섰다. 그렇게 중앙홀에 도착했더니 주해진이 허허 웃으며 사람들에게 뭔가를 소개하고 있었다.“사자님들, 우리 가게 약재는 모두 최상품입니다. 특히 야생 산삼과 영지는 최상급 중의 최상급이죠. 다들 제 체면을 봐서 구매해 준다면 가격은 제가 싸게 해드릴게요.”주해진은 혼자 온 게 아니라 사람을 몇 명 데리고 왔다. 보아하니 주해진과 함께 온 사장들은 야생 산삼과 영지와 같은 약재를 원하는 것 같았다.하지만 우리 가게에 있는 최상급 야생 인삼과 영지는 모두 임천호에게 팔아버렸다. 게다가 아직 재고 보충을 하지 않은 상태다.나는 얼른 민우와 현성이를 불러내 사장님들을 응대하게 하고 주해진을 옆으로 불러냈다.“우리 가게에 산삼과 영지가 없어.”“왜?”“이틀 전에 다 팔았어.”“헐. 정말이야? 얼마나 벌었는데?”그걸 다 팔면 어마어마한 가격이기에 주해진은 단번에 흥분했다. 누구에게 팔든 그로서는 돈만 벌 수 있으면 그만이었으니까.하지만 이번 사태는 조금 복잡해 나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잠깐 고민했다.“사실...”나는 결국 그동안 있었던 일을 간단하게 설명했다.그걸 들은 주해진의 안색은 어둡다 못해 흉측하기까지 했다.“지금 그러니까 사기당했다는 거야? 그걸 다 가져갔는데 일전한 푼도 못 받아내고 오히려 몇천만 원이나 꼬라박았다고?”주해진의 언성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바람에 가게에 있던 다른 사람들은 모두 우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이에 나는 다급히 낮은 소리로 귀띔했다.“그 돈은 다 내가 책임지고 메꿀게.”“정수호. 이렇게 큰일이 있었는데 왜 아무 말도 안 했어?”“나 어제 한밤중에 도착했어. 오늘 아침 가게에 도착하자마자 주 사장이 들이닥친 거고.”“지금 내 탓이라는 거야?”“그런 뜻 아니야. 누가 사기당할 거라고 생각했겠어? 이미 벌어진 일인데 이제 와서 나
“네!”강용재는 곧바로 뒤돌아섰다.조용히 시가에 불을 붙인 임천호의 표정은 어둡기 그지없었다.원래는 나를 끌어들여 감옥에 처넣을 생각이었는데 오히려 돌을 들어 제 발등을 찍은 셈이었으니. 그것도 모자라 중요한 부하 한 명을 일기까지 했으니 임천호는 그 모든 책임을 나에게 돌렸다....오후에 출발한 우리는 밤 11시가 되어서야 강북에 도착했다.오는 내내 또 사고라도 날까 봐, 우리는 휴식도 하지 않고 끼니도 챙겨 먹지 못했다.그렇게 겨우 강북에 도착하니 나와 윤미화는 그제야 안심했다.다만 오는 동안 배를 쫄쫄 굶은 탓에 나는 당장 배부터 채우고 싶었다.“내가 알아봤는데 임천호가 아직 강북에 있대. 이따 혼자 돌아갈 때 조심해.”사실 인맥이 넓은 윤미화는 강북에 도착하기 전에 임천호의 행방을 수소문해 냈다.나는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요. 윤 사장님도 조심해요.”식사를 마친 우리는 각자 헤어졌다.나는 차에 앉아 월세방으로 돌아갈지 아니면 형수 집에 갈지 고민했다.만약 임천호가 나를 가만두지 않을 생각이라면 분명 또 사람을 붙일 거고 강용재도 또 뭔가 손을 쓸 게 뻔했다.나는 형수와 형수 동생들한테 폐 끼치고 싶지 않았다. 주선영한테도 마찬가지였고. 때문에 나는 결국 호텔 방에 묵기로 했다.비록 혼자라 불안하고 위험했지만, 다른 사람한테 폐 끼치는 것보다는 이게 훨씬 나았다.‘S시 한 번 갔다가 이게 뭔 봉변인지.’하지만 난 조금도 후회하지 않는다.내가 그때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다고 해도 황용길은 절대 나를 가만두지 않았을 거다.‘됐어. 그만 생각해. 지내다 보면 답은 나오겠지.’하루 종일 분주하게 돌아다닌 데다 계속 유지하고 있던 긴장감이 풀린 탓에 나는 너무 피곤했다.때문에 샤워를 하자마자 바로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그 잠은 다음 날 오전 10시까지 이어졌다.평온한 밤을 보낸 나는 씻고 준비를 마친 뒤 청수당으로 향했다.민우와 현성은 내가 S시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관심했다. 이에 나는 두 사람을 사무실
경찰서에서 한참을 기다리니 제복을 입은 중년 남자가 걸어 들어왔다.그 남자는 나도 아는 사람이었다. 바로 황용길 일당을 잡을 때 현장을 지휘했던 베테랑 형사였다.“외삼촌, 어서 와요.”윤미화는 기쁜 얼굴로 얼른 달려갔다.그 모습에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 베테랑 형사가 바로 윤미화의 외삼촌이었다니.이건 너무 기막힌 우연이다.베테랑 형사도 나를 보고 놀랐는지 어리둥절해서 물었다.“이 총각이 여긴 왜 있지?”“두 사람 혹시 알아요?”나는 얼른 설명했다.“윤 사장님 외삼촌이 황용길을 체포한 형사예요. 전에 본 적 있어요.”“그렇구나. 삼촌, 누가 우리를 미행해요. 사람 좀 붙여서 우리 지켜줘요.”그 말에 도지섭은 이내 물었다.“무슨 일인데 그래? 대체 누가 그런 짓을 벌이는 거야? 대낮에 미행이라니.”“임천호 쪽 사람일 가능성이 커요. 삼촌이 점심에 잡은 황용길이 임천호 사람이거든요.”도지섭의 표정은 이내 어두워졌다.“그런데 그 자식은 임천호와의 관계를 부정해. 딱 잘라서 자기가 한 짓이라네.”나는 진작 이렇게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직접 들으니 실망감이 밀려왔다.임천호는 법을 이리저리 너무 잘 피해 다닌다. 그런 사람을 하루빨리 제거하지 않으면 난 하루도 편히 살 수 없다.하지만 임천호를 상대하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건 나도 알고 있다.도지섭은 윤미화와 한참 동안 얘기하다가 나를 바라봤다.“정수호 씨, 이번 일은 정수호 씨 공이 커요. 내가 이미 상부에 포상금을 신청했어요.”‘이건 또 어디서 갑자기 굴러들어 온 복이지?’“감사합니다, 도 형사님.”“감사할 거 뭐 있어요. 수호 씨가 응당 받아야 할 건데요.”이런 게 바로 전화위복이라는 건가?비록 정부에서 주는 포상금은 많지 않겠지만 이런 영예는 돈 얼마를 주고도 살 수 없는 거다.게다가 도지섭의 말을 들어보면 포상금 외에도 우수 청년상까지 수여한다고 했다.그 상장을 우리 천수당에 걸어두면, 더할 나위 없는 큰 영광일 거다.그 뒤, 도지섭이 경찰차로
나는 너무 아쉬웠지만 더 좋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솔직히 나도 일이 이렇게 커질 줄은 몰랐다.현재 상황에 돈을 받아내기는커녕 임천호가 나를 죽이지 않으면 다행이다.“그럼 오늘 오후 강북으로 돌아가자. 임천호를 귀찮게 하면 안 되니까.”윤미화가 제안했다.이에 나도 동의했다.S시는 임천호의 구역인데, 내가 오자마자 이렇게 큰 일을 벌였으니 임천호는 절대 나를 가만 두지 않을 거다.우리는 더 이상 이곳에 남지 않고 곧바로 체크아웃하고 강북으로 돌아갔다.하지만 가는 도중에 나는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검은 세단 한 대가 계속 우리 뒤를 쫓고 있었다.내 짐작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나는 일부러 멀리 빙 돌았다. 그랬더니 검은색 세단은 역시나 우리를 쫓아오고 있었다.“망했어요. 누가 우리를 미행해요.”나는 무거운 마음으로 윤미화에게 말했다.윤미화는 뒤를 돌아보더니 바로 결정을 내렸다.“경찰서로 가.”“경찰서는 왜요?”나는 의아했다.“이변이 없는 한 저거 임천호 사람이야. 저놈들이 아무리 우리를 미행해 봤자 경찰서까지 쫓아오겠어?” 나는 윤미화의 두뇌 회전에 존경심을 표할 수밖에 없었다.듣고 보니 확실히 좋은 방법인 듯하여 나는 부근에 있는 경찰서를 검색해 그곳으로 향했다.아니나 다를까 검은색 세단은 우리가 경찰서에 도착하자 더 이상 따라오지 못했다.우리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곧장 경찰서에 들어가 신고했다. 우리의 말을 듣고 나온 경찰들을 보자마자 검은색 세단은 바로 꽁무니를 내뺐다.결국 경찰도 이번 사건은 입건하기 어렵다며 우리에게 주의만 줬다.우리는 서둘러 경찰서를 나오는 대신 앞으로 어떻게 할지에 대해 토론했다.“아까 그놈들 멀리 도망쳤을까요? 아니면 다른 곳에 숨어서 지키고 있을까요?”“임천호 밑에 있는 애들은 모두 겁이 없어. 우리가 나가면 얼마 뒤 또 따라붙을 거야.”윤미화는 자기 생각을 말했다.이에 나도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놈들 목표는 저예요. 두 분한테 폐 끼치기 싫으니까 두 분은 먼저 강북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돌아서기 바쁘게 밖으로 뛰쳐나갔다.그때 나를 발견한 황용길은 다급히 똘마니들에게 소리쳤다.“당장 저 자식 막아. 절대 도망치지 못하게 해!”똘마니 세 명은 한꺼번에 나를 향해 돌진했다.가까워지는 경찰차와 함께 희망도 점점 나에게로 다가왔다.나는 나를 쫓아오는 똘마니 한 명을 발로 걷어차 넘어뜨렸다. 하지만 나머지 두 명은 그새 내 옷과 가방을 잡아 나를 묶어 두었다.놈들은 있는 힘껏 내 손에 든 가방을 빼앗았고 황용길도 바닥에 떨어진 돈을 주머니에 담으며 도망칠 각을 재고 있었다.급한 나머지 나는 그중 한 놈에게 달려들어 몸으로 돈가방을 눌렀다.“젠장. 죽어!”화가 잔뜩 난 소리에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황용길이 손에 비수를 들고 나를 향해 내리 찔렀다.나는 급히 몸을 피했지만, 비수는 여전히 내 어깨를 스쳤다. 나는 다행히 어깨를 살짝 베었지만, 나와 실랑이를 벌이던 똘마니는 그대로 비수에 찔리고 말았다.그때, 경찰차가 마침 멈춰 섰다.황용길과 나머지 두 똘마니는 다급히 밖으로 도망쳤으나 성공하지 못하고 모두 붙잡혔다.그리고 현장 조사를 담당한 베테랑 형사가 다가와 내가 신고한 게 맞는지 물었다.“네. 제가 신고했어요. 이 돈에 문제가 있으니 가져가서 확인해 보세요.”“다친 것 같은데 병원으로 데려다주라고 일러둘게요.”베테랑 형사의 말에 나는 내 팔을 봤지만 심각해 보이지 않아 괜찮다고 대답했다.형사도 더 이상 강요하지 않고 내 개인정보만 받아 떠나버렸다.형사들은 돌아가서 돈의 출처를 확인해야 했기에 나는 더 이상 방해하지 않고 묵묵히 자리를 떠났다.4억짜리 수표도 이제는 무용지물이 되어버렸다. 나는 바로 택시를 타고 호텔로 돌아가 상처를 치료했다.다행히 피부만 까진 수준이라 큰 문제는 없었다.내가 상처를 치료하고 있을 때 윤미화가 다급히 내 방에 쳐들어왔다.“어쩌다 이렇게 됐어?”“말하자면 길어요.”나는 오늘 있었던 일을 간단히 설명했다.내 말을 듣는 내내 윤미화는 긴장을 늦추지
“만약 수호 씨가 저 돈을 밖에서 사용하면 경찰이 수호 씨를 추적할 거예요.”너무 충격적인 사실에 나는 눈이 휘둥그레지고 가슴이 벌렁거렸다.돈세탁은 영화나 소설에서만 봤지 현실에서 마주치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게다가 이게 임천호가 나를 해치려고 파놓은 함정이라니.나는 일개 평민인데 이런 일을 겪을 뻔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벌렁거려 좀처럼 진정이 되지 않았다.“젠장. 너무 괘씸하네. 감히 이런 방식으로 모함해?”“저 신고할 거예요.”나는 핸드폰을 꺼내다가 문득 불안해 서은성을 바라봤다.“제가 경찰에 신고하면 저 사람들 유죄판결 날 수 있어요?”“증거가 명확하니 유죄판결은 문제없을 거예요. 만약 뒤에 있는 큰놈까지 잡아내면 큰 공을 세우는 셈이고요.”큰놈이든 작은 놈이든 나에게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 나는 단지 저놈들을 편히 살게 두고 싶지 않았다.감히 이런 방식으로 나를 해치려 하다니. 내가 서은성을 데려왔으니 망정이지, 데려오지 못했다면 나는 지금쯤 꼼짝없이 돈세탁한 범죄자가 되었을 거다.나는 다른 건 생각할 겨를도 없이 곧장 경찰에 신고 전화를 걸었다.하지만 경찰이 오려면 시간이 조금 걸리기에 계속 밖에 서 있는 것도 방법은 아니었다.“우리 돌아가서 저놈들 잡아둬요.”“난 이것만 도와준다고 했지, 다른 일은 나랑 상관없어요.”서은성이 덤덤하게 말했다.그 말에 나는 눈이 휘둥그레졌다.“상관없다니요? 지금 가겠다는 뜻이에요? 은성 씨가 가면 전 어떡해요?”“그건 저한테 물을 게 아니죠.”서은성은 말을 마친 뒤 곧바로 뒤돌아 떠나갔다.그 순간 나는 당장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심지어 황용길이 사람들을 데리고 찾아올까 봐 두려웠다.역시나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고 내가 고민에 빠져 있을 때 황영길이 똘마니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정수호 씨, 친구는요?”“이미 갔어요.”“그럼 금액 확인하고 문제없으면 교환 절차 진행하죠.”나는 호랑이 굴 같은 사무실에 제 발로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황용길과 그의 똘마니
쇼핑몰에서 나와보니 시간은 어느덧 12시가 다 되었다. 나는 조금 뒤 Y 머니 캐피탈로 가기 위해 호텔에 돌아가 잠깐 휴식을 취할 생각이었다.호텔에 도착해 보니 윤미화는 류준원과 함께 쇼핑하러 갔는지 방에 없었다. 그 덕에 나는 한가롭고 고요한 휴식을 즐길 수 있었다.방에서 한참 동안 핸드폰을 하다가 1시쯤 되니 나는 Y 머니 캐피탈로 출발했다. 그리고 1시 30분쯤에 Y 머니 캐피탈 건물에 도착했다.전에 서은성의 카톡을 추가한 적 있기에 나는 위치 정보를 서은성에게 보냈다.그로부터 20분 정도 지나자 정장 차림을 한 점잖은 남자가 내 앞에 나타났다.그 사람은 다름 아닌 SY그룹 CFO 서은성이었다.서은성을 처음 본 순간, 내 마음속에는 그에 대한 존경심과 경외심이 피어올랐다. 그는 우아하고 온화했으며 잘생긴 사람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학력과 스펙이 매우 높았다.내가 먼저 자기소개를 하자 서은성은 정중하게 나와 악수했다.이윽고 나는 상황을 간단히 설명했다.“상대가 무슨 수를 쓸지 몰라요. 저는 이 업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니 이따가 잘 좀 봐줘요.”“그러죠.”나는 서은성과 얘기할 때 그의 표정을 조용하게 살폈다. 보아하니 서은성은 Y 머니 캐피탈이 임천호와 관련된 회사라는 건 모르는 듯했다.‘오히려 다행이네. 걱정할 거 없겠어.’나는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서은성과 함께 Y 머니 캐피탈에 들어섰다.그러자 여전히 어제 있던 놈이 나를 접대했다. 놈은 사장님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면서 잠깐만 기다리라고 안내했다.오늘 놈의 태도는 그나마 깍듯했고 심지어 우리에게 차까지 대접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황용길이 모습을 드러냈다. 황용길 뒤에서 똘마니 두 명이 따라 들어왔는데, 두 사람은 손에 커다란 가방을 하나 들고 있었다.보아하니 가방 안에 돈이 들어있는 모양이었다.황용길은 허허 웃으며 사람 좋은 태도를 보였다.“길이 좀 막혀서 늦었네요.”하지만 아무리 봐도 놈의 웃음이 아주 가식적이고 뭔가를 숨기는 듯했다.나는 빙빙 돌리지 않고 단도
“너 오늘 장부 확인하러 가야 하는 거 알아. 하지만 오늘 어디 갈 생각 하지 말고 안에 얌전히 있어.”‘고작 이렇게 얇은 문 하나로 나를 가둘 수 있다고 생각하나?’나는 손목을 움직이며 덤덤하게 말했다.“경고하는데 당장 문 열어. 안 그러면 인생의 쓴맛을 보게 될 테니까.”“감히 우리를 겁줘?”나는 두말없이 발을 들어 문을 걷어찼다.그 순간 ‘쾅’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고 마교준과 진이준은 문에 부딪혀 고통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성큼성큼 칸막이 화장실에서 걸어 나간 나는 두 사람을 향해 말했다.“복수하고 싶어도 상대 봐 가면서 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날 막다니, 간이 배 밖으로 나왔네.”마교준은 이를 악물며 진이준에게 말했다.“저 자식이 이렇게 강할 줄 몰랐네. 화장실에 사람이 없는 틈을 타서 우리 같이 덤비자.”“응. 나도 같은 생각이야.”진이준이 맞장구쳤다.둘의 대화를 들으니 순간 헛웃음이 났다.두 사람이 힘을 합쳐도 솔직히 내 상대는 아니다.하지만 당사자들은 그렇게 여기지 않는지 함께 나에게 달려들었다.나는 피하지도 않고 그대로 마교준의 가슴에 주먹을 꽂았다.주먹을 맞은 마교준은 ‘악’하는 비명과 함께 바닥에 쪼그려 앉아 한참 동안 일어서지 못했다.순간 홀로 남게 된 진이준은 겁이 나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그렇다고 나는 진이준을 내버려둘 생강은 없었다. 나는 발로 놈을 걷어찼다. 그러자 진이준은 그대로 바닥에 뻗어버렸다.나는 두 사람의 앞에 다가가 쪼그려 앉았다.“운이 안 좋네. 내가 한 달 전부터 트레이닝을 좀 받았거든.”“그래, 네가 이겼어. 대단하다는 거 인정할게. 가자.”두 사람은 서로 부축하며 화장실을 빠져나가려고 했다.그때 나는 마교준의 어깨에 손을 얹고 아래로 눌렀다.그러자 흠칫 놀란 마교준은 겁에 질린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너, 뭐 하려는 건데?”“사과도 안 하고 가려고?”“사과는 무슨. 네가 우리를 이렇게 만들었으면서 우리더러 사과하라고?”진이준은 몹시 불만이었다.나는 다
윤미화는 내 물건을 수집하는 걸 좋아하는 게 아니라 단순히 나를 놀리려던 거였다.하지만 눈을 감은 순간 윤미화의 머릿속에는 온통 아침에 봤던 장면뿐이었다.“수호 씨가 그렇게 대단한 걸 갖고 있었을 줄 몰랐네.”윤미화는 생각할수록 얼굴이 뜨거웠다.얼마 뒤, 나와 윤미화 그리고 류준원은 한 테이블에 앉아 아침 식사를 했다.그때 윤미화는 일부러 내 옆에 앉았다. 하지만 나는 두말없이 류준원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러자 윤미화는 나를 매섭게 노려봤다.“나 사장이야. 왜 나 피해?”“알면서 뭘 물어요?”“몰라. 말해.”류준원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우리를 번갈아 봤다.한숨 자고 일어났더니 갑자기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우리가 의아했던 모양이었다.하지만 류준원은 남의 일에 관심이 없었기에 관여하지 않았다.나 또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파묻은 채 식사에 전념했다. 그러자 윤미화는 이번에 테이블 밑에서 내 다리를 슬쩍 걷어찼다.다음 순간 나는 식판을 들고 그 자리를 떠났다.건드릴 수 없는 상대라면 피하면 그만이었다.나는 호텔로 다시 돌아가는 대신 호텔 밖에서 담배를 피우면서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셨다. 그러다가 서광진한테서 받은 명함을 꺼내 들었다.잠깐의 고민 끝에 나는 결국 명함에 있는 번호로 서은성에게 연락했다.“여보세요? 혹시 서은성 씨 맞나요?”[그런데요. 누구시죠?]전화 건너편에서 명랑하고도 시원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서은성의 발음은 어찌나 또렷한지 아나운서라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나는 다급히 자기소개했다.“저는 정수호라고 합니다. 서광진 회장님께서 저더러 서은성 씨를 찾으라고 해서 연락드렸습니다.”[아, 서 회장님께 전해 들었어요. 제 도움이 필요하다고요?]“제가 오늘 오후 수표를 현금화해야 하는데, 함께 가주셨으면 해서요.”[출발하기 전에 연락해요. 제가 픽업하러 갈게요.]서은성은 단번에 동의했다.잘 통화는 대화에 내 마음은 조금 편안해졌다.현재 오전 9시라 오후 2시까지 아직 몇 시간이나 남아 있었다.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