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문예는 택란의 책을 정리하며 준수한 얼굴로 단호한 표정을 지었다.“계란이는 남들의 사랑을 받을 필요도, 동정받을 필요도 없다. 계란이는 다섯 명의 오라버니가 있으니.”"예. 우리 계란이가 어찌 타인의 안쓰러움과 사모를 받아야 하겠습니까?"환타도 곧이어 맞장구쳤고, 다섯 형제는 서로를 다정하게 바라보았다.다음 날, 택란 일행이 돌아왔다. 마침 위왕과 안왕도 약도성에서 이틀 정도 머물 계획이었다.조카들이 다 모였으니, 함께 식사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편안한 시간을 보냈다.택란은 오라버니들이 모여 있는 것을 보자마자, 자기가 황후로 책봉된 일 때문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역시나 묻기도 전부터, 그들은 그녀를 방으로 끌고 갔다.택란은 그들의 심각한 표정을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무슨 어마어마한 적을 만난 듯한 모습입니다.""넌 무슨 생각인 것이냐? 그 어린 황제한테 조금이라도 마음이 있다는 것이냐?"환타가 먼저 묻자, 택란이 피식 웃었다. "오라버니, 어린 황제라니요. 오라버니보다 나이가 많습니다.""편을 듣는 것이냐? 듣기 거북하구나."우문예가 인상을 찌푸렸다."그냥 어린 황제라고 부르거라."택란은 혀를 살짝 내밀었다."예.""자, 네 사형이 한 질문을 대답하거라. 그... 어린 황제가 황후로 책봉했다는데, 넌 어떻게 생각하느냐?"우문예는 사실 여동생이 안쓰러웠지만, 장남으로서의 위엄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그러자 택란이 턱을 괴고 앉으며 천천히 말했다."딱히 생각해 본 적 없습니다.""그럼, 화가 나진 않았느냐?"칠성이 묻자, 택란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화날 이유가 있습니까?"다섯 형제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화가 나지 않는다고? 그렇다면... 좋아한다는 뜻인가? 그럴 수는 없었다!"계란아, 어린 황제한테 어떤 감정이 있느냐? 혹시 가슴이 쿵쾅거리며 뛰는 느낌이라도 있었냐?"경단이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는 평소 소설을 많이 읽기에 남녀 간의 감정이 어떤 것인지 나름 이해하고 있었다. 마음이 흔들리면, 가
칠성이 입을 삐쭉거렸다."그 어린 황제 생김새도 별로입니다! 나이가 큰형이랑 비슷한데도 큰형보다 훨씬 늙어 보입니다."그러자 택란이 깜짝 놀랐다."정말 그를 본 적 있습니까? 아, 오라버니들도 간 것입니까? 어찌 저를 만나러 오지 않은 것입니까? 숨어 있었던 것입니까?"우문예는 칠성을 힐긋 쳐다보았다."어찌 그렇게 말이 많은 것이냐?""다들 갔으면서 저를 찾지도 않았습니까?"택란도 입을 삐쭉 내밀었다.우문예는 여동생의 입이 삐죽 나온 걸 보자, 귀엽다는 생각이 들어 다정하게 말했다."그 혼례가 너무 수상해서 확인하러 갔다. 막상 가고 나니, 네가 황후로 책봉된 걸 알게 됐지. 그래서 그 대담한 어린 황제를 직접 만나려 했던 것이지, 일부러 너를 피한 게 아니다. 그저 약도성에서 너를 기다리려 했다."택란은 사실 진짜로 화가 나지 않았다. 그저 오라버니들이 금나라까지 와놓고도 자신과 함께 놀지 않은 게 아쉬웠다. 금나라에서 함께 놀았다면 얼마나 신났을까?다들 그녀를 달래기 시작했고, 택란이 다시 웃음을 되찾자 비로소 안심했다.찰떡이 우문예를 보며 물었다."큰형, 정말 궁금해서 묻는 건데, 금나라에 있을 때 왜 어린 황제를 혼내지 못하게 한 것입니까? 그 녀석이 얼마나 얄미웠는데요. 우리의 허락도 없이 계란을 부인으로 맞겠다고 하다니."우문예는 옷자락을 날리며 택란 옆에 앉았다. 그러고는 찰떡이와 나머지 동생들의 의아한 눈빛을 보며 답했다."신분 때문이다.""그가 황제라서 우리가 손을 못 댄다는 뜻입니까?"찰떡은 불만을 터뜨렸다. 그 녀석이 높은 신분이라 겁먹고 못 건드리는 셈이다. 형이 언제부터 이렇게 소심했단 말인가?우문예는 손을 뻗어 찰떡의 귀를 잡아당겼다."우리의 신분 때문이기도 하고, 그의 신분 때문이기도 해. 나라 간의 우호 관계는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희생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어찌 홧김에 그런 일을 저지른다는 말이냐? 우리가 금나라에서 황제를 붙잡고 두들겨 팼다면, 두 나라는 소란이 일 것이다."찰떡은 귀를 감싸
환타와 칠성은 아직 술을 마실 수 없었다. 우문예가 엄격하게 규칙을 정해, 반드시 열여섯살이 되어야 술을 마실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그래서 두 사람은 그저 가만히 어른들을 바라볼 뿐이었다.다행히 약도성에는 과일주가 있었다. 과일주는 주 아가씨가 특별히 택란을 위해 빚은 것이었다. 과일주는 발효 후 몇 번이나 병을 옮겨 숙성시켰기 때문에 술맛이 거의 없었고, 사실상 과일즙과 다름없었다.안왕은 황후 책봉 보책을 탁자 위에 내려놓았고는 무슨 일이 생겨도 홀로 책임을 질 수는 없을 것이라는 표정을 지었다.위왕은 그런 그의 잔에 술을 따르며 말했다."마시거라, 겁쟁이 꼴을 하고선. 다섯째가 이 사실을 알게 되어도, 금나라 황제의 수를 탓하지, 네 어리석음을 탓하지는 않을 것이다.""자네는 그렇게 생각할 수 있네. 자네가 이 보책을 받았더라면 걱정하지 않아도 됐을 거 아니오?"안왕이 불만스럽다는 듯이 말했다.하지만 위왕은 그저 가차 없이 그를 몰아붙일 뿐이었다."이제야 네가 모두의 미움을 샀다는 걸 알겠냐? 네가 한 짓이 벌을 받지 않을 거라 생각한 것이냐? 넌 평생 빚을 갚으며 살아야 해. 길을 잘못 들었지만, 마지막 순간에 북당을 위해 힘을 보탰으니, 목숨은 건진 것이다. 그게 아니었으면 네 목은 진작 날아갔을 거다. 그러니 이 정도로 만족하거라.""됐소. 애들 앞에서 그런 말 하지 마시게!”안왕이 창피한 듯 화를 냈다."아이들이라고 모를 줄 아느냐? 네 일은 온 세상이 다 알고 있다. 네가 아무리 숨긴다 한들 다 드러나 있다."위왕이 비웃으며 말했다.여섯 형제는 서로를 쳐다보며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과거 이야기는 예전에도 들어본 적 있었지만, 삼 숙부가 대체 왜 오래전에 지나간 일을 자꾸 반복하는지 알 수 없었다.위왕은 우문예의 어깨를 두드리고, 다른 아이들을 바라보며 말했다."이 이야기를 계속하는 이유는, 잘못된 길에는 한 번이라도 들어서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리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평생 치욕으로 남을 것이고 설령 운 좋게
다섯 형제도 약도성을 떠날 준비를 했다.그리고 헤어지기 전, 우문예는 네 명의 동생들을 바라보며 말했다."돌아가서 뛰어난 자를 골라 금나라에 잠입시켜 감시시키거라. 직접 손을 쓰지는 않겠지만, 반드시 그가 하는 모든 일을 알고 있어야 한다. 첩자는 감시만 할 뿐, 함부로 나서서는 안 된다. 하지만 행동에 나설 기준은 정해놓거라. 계란에게 해를 가하려는 계획을 세운다면, 실행에 옮기기 전에 바로 막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늦지 않았냐?""예. 이 일은 모두 저한테 맡기십시오."경단이 말했다."그래. 그럼 너희도 몸조심하거라. 시간이 되면 경성으로 돌아가 부모님을 뵙거라. 두 분 다 너희를 그리워하고 계시니."우문예는 말을 마치고, 곧장 말을 타고 떠났다. 네 형제는 먼지를 날리며 사라지는 큰형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애틋한 마음이 들었다. 그들 역시 부모님이 그리웠고, 다시 모이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변방의 평화와 발전이 먼저였다. 이곳이 진정으로 안정을 찾아야만 그들은 떠날 수 있었다.그래도 이제 2년만 더 버티면 된다.우문예는 멈추지 않고 경성을 향해 달렸다. 그가 궁에 도착하기도 전, 안왕의 전서구가 먼저 도착해 있었다.다섯째는 편지를 읽자마자, 분노에 휩싸여 몸이 떨릴 지경이었다. 그는 탁자를 세게 내리치며 말했다."정말 죽고 싶은 모양이군, 감히 내 딸을 노리다니. 미친 것이야! 계란은 겨우 열한 살인데 벌써 황후로 책봉하다니? 나를 속이려는 것이구나."원경릉은 편지를 받아 읽어보고는 눈살을 찌푸렸다."이건 너무 심했소.""목여 태감, 냉정언을 불러오시게."다섯째 왕이 외쳤다."예!"곁에서 지켜보던 목여 태감도 속이 내려앉았다. 그도 공주를 노리는 금나라 황제가 미쳤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먼 곳에서 1년에 한 번도 못 볼 텐데, 누가 그걸 원하겠는가?그러자 원경릉이 물었다."어찌할 생각이오?"우문호의 눈빛에는 여전히 분노가 서렸다."어떻게 하긴! 전쟁이라도 벌일 수는 없지 않나? 편지를 보내서 경고해야겠어. 내
"정말인 것이냐…?"원경릉은 그 말을 듣자마자 빠르게 호숫가로 향했다. 호숫가에 도착하자, 호수는 마치 끓어오르는 듯 부글부글 거품을 내며 넘쳐흘렀고, 가장자리의 흙까지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그녀는 눈살을 찌푸렸고, 방금 다섯째가 화를 낸 일과 연관이 있다고 생각했다. 빨리 원인을 밝혀내야 했다.그에게 정말 특별한 능력이 있다면, 반드시 조절하는 법을 익혀야 한다. 이전에 계란이한테서 금나라 황제가 물을 다루는 법을 안다고 전해 들었다. 그는 어떻게 그 능력을 통제하는지 배워야 할 판이다.이 사실을 다섯째가 알게 된다면, 분명 또 물난리가 날 것이다.게다가 금나라에서 온 편지때문에 얼음 벌레에 노출되었고, 그것 때문에 목숨을 잃을 뻔했다는 걸 알게 된다면, 그 분노는 더 극에 달할 것이었다.냉정언이 우문호의 호출을 받고 궁으로 들어왔다. 우문호는 금나라에 보낼 강경한 어조의 편지를 작성했고, 즉시 기수에게 맡겨 전속력으로 금나라으로 전달하게 했다.이 일로 다섯째는 속을 답답했고 분노를 삭이지 못할 정도였다.한편, 해 질 무렵, 경성에 도착한 우문예가 궁으로 돌아왔다.그가 돌아왔을 때, 다섯째는 아직도 분을 삭이지 못하고 있었다. 어쩌면 생각할수록 더 화가 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우문예가 어서방에 도착하자, 목여 태감이 그를 막으며 지금은 들어가지 않는 게 좋을 것이라 말했다. 하지만 우문예는 주저 없이 안으로 들어갔다.그는 아버지가 금나라 황제가 천하에 계란이를 황후로 선포했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분명 노발대발하고 있을 테니, 차라리 꾸중을 들으며 아버지의 화를 조금이나마 풀어드리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다.그는 어서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아바마마, 소자 돌아왔습니다. 직무를 이탈한 죄를 지었으니, 처벌을 받겠습니다."우문호는 분노가 극에 달한 상태였지만, 돌아온 그에게 괜히 화풀이하지는 않았다."설명해 봐라."우문예는 아버지가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판단하고 굳이 숨길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여동생을
택란의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우문호가 바로 말했다."네가 직무를 무단이탈한 일은, 돌아가서 장군에게 처벌받도록 해라. 군율은 허울뿐인 것이 아니다. 네 신분이 무엇이든, 군에 들어갔으면 법을 지켜야 한다. 앞으로 또 나가고 싶다면, 미리 자리를 비우겠다고 청을 하거라.""예. 알겠습니다."우문예가 답했다.그러자 우문호는 아들을 보며, 속으로 뿌듯함을 느꼈다."가자. 어서 네 어머니와 함께 저녁을 먹자."원경릉은 소월궁으로 돌아온 아들을 보고 기뻐했다. 그녀는 즉시 사람들에게 요리를 몇 가지 더 준비하게 했다. 직무이탈에 대해서는 어차피 다섯째가 잔뜩 잔소리했을 테니, 따로 말하지 않았다.그녀가 약도성의 상황을 묻자, 우문예가 대답했다."지금 약도성의 민생은 많이 안정되었고, 모두 발전을 위해 바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게다가 계란이가 금나라와의 협약까지 체결해, 함께 광물을 개발하기로 했습니다. 약도성은 앞으로 점점 더 발전될 것입니다."이 말을 들으며, 우문호는 늘 그렇듯이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자식들이 이렇게 유능하고, 훌륭하게 성장했다는 것이 그에게는 더없는 자랑이었다.약도성은 그가 가장 걱정했던 곳이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지진으로, 오히려 국면이 바뀌었다. 이 모든 일에 계란이의 공이 크다.저녁 식사를 마친 후, 우문예는 곧바로 군영으로 돌아갔다.한편, 원경릉은 다음날 바로 약도성으로 출발할 예정이었다. 그러자 다섯째는 밤새 그녀를 붙잡고 끝없는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길 조심해야 하고, 식사 거르지 말고, 추위 조심하고, 모래바람도 조심해야 한다고 말을 늘어놓았다.밤새워 잔소리하던 그는 갑자기 시무룩한 얼굴로 말했다."사실… 나도 가고 싶소."원경릉은 그는 위로하며 입을 열었다."아이들을 보고 싶어 하는 거 알고 있소. 이번에 모두 데려오는 것이 어떻소?""하지만 아이들을 데려온다면, 굳이 당신이 직접 갈 필요가 없지 않소? 편지를 보내서 불러오면 되잖소?""음… 그래도 직접 가야 하네. 약도성이 얼마나 발전했는지
원경릉은 딸의 반응을 보고 하마터면 눈물이 날 뻔했다. 그녀는 마음이 점점 아려와, 딸을 꼭 끌어안고는, 눈시울을 붉히며 웃었다."깜짝 놀라게 해 주려 했지, 기쁘냐?""기뻐요! 너무 기뻐서 정신을 잃을 지경입니다!"택란은 원경릉의 품에서 고개를 들어 답했는데, 그녀의 사랑스러운 얼굴에 홍조가 떠올라 기쁨이 고스란히 드러났다.주 아가씨와 냉명여도 원경릉을 찾아와 인사를 했다. 원경릉은 격식을 차리지 않고 다정하게 인사를 나누고, 함께 안으로 들어가 이야기를 나눴다.택란은 급히 주 아가씨에게 말했다."관아에 가서 호명 오라버니를 부르시오. 함께 식사하겠네.""예. 바로 다녀오겠습니다!”주 아가씨는 손을 모아 예를 올리고는 곧장 떠났다.그러자 냉명여는 눈치껏 모녀가 단둘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배려하며, 같이 따라 들어가지 않다. 잠시 후, 원경릉은 택란에게 금나라 황제가 벌인 약혼식과 황후 책봉에 대해서 물었다. 비록 택란이 오라버니들에게 속마음까지 다 말하지 않았어도, 그녀에게는 가감 없이 털어놓았다."그는 정말 많이 변했습니다. 큰 오라버니만큼 키가 컸고, 비록 오라버니보다는 못하지만, 여전히 잘생겼습니다. 게다가 아바마마가 이야기할 때처럼 저한테 정말 다정했습니다. 하지만 아바마마처럼 위엄 있고 패기가 넘치진 않았습니다.""그래?"원경릉은 택란의 표정을 살폈다. 열한 살 아이가 감정을 다 안다고 할 순 없지만, 누군가의 헌신에 쉽게 감동할 수는 있었다."예. 사실 예전에는 진국왕에게 억눌린 그가 불쌍하다고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그는 금나라를 홀로 통치하고 있고, 근 2년 만에 금나라는 그의 다스림 하에 질서정연해지고 빠르게 발전하였습니다. 무엇보다 함께 광산을 개발하는 일에도 방해하지 않았고, 심지어는 아주 좋은 조건도 제시했습니다. 마침 아바마마에게 글을 올리려고 했는데, 어마마마께서 오신 것입니다.""그래. 보아하니 그 아이에 대한 평가가 좋구나."원경릉은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이 말을 다섯째가 들었다면 분명
다음 날이 되자마자 모녀는 바로 금나라로 떠났다.택란은 원경릉의 신분을 밝히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황후로서 금나라에 방문한다면, 책봉 문제 때문이라고 오해를 사서 논란이 더욱 커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원경릉도 그런 택란의 말에 동의했다. 어차피 그녀의 옷차림이 워낙 소박하여 전혀 북당의 황후처럼 보이지 않기도 했다. 경천이 그녀의 신분을 눈치채더라도, 입 밖에 내지 않게 하면 그만이다.모녀는 초능력을 사용하여 빠르게 량주에 도착했다.택란은 자신의 신분을 숨기지 않고 곧장 황궁으로 가서 황제를 만나겠다고 밝혔다.황궁 호위들은 그녀의 신분을 알고 있어, 감히 태만히 할 수 없었기에, 즉시 두 사람을 궁 안으로 안내했다.경천은 택란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정무를 마친 후 그녀를 만나러 광명전으로 향했다.문에 들어설 때, 그의 눈에는 오직 택란만이 담겨 있었다. 그는 흥분한 채로 빠르게 다가와 기쁨으로 가득 찬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왔느냐?""예. 잠시 할 말이 있습니다."택란이 자리에서 일어나 예를 올리며 말했다."인사드립니다."경천은 그제야 원경릉을 보았다. 그는 서둘러 기쁨 어린 눈빛을 거두고 공손해졌다. 그러고는 즉시 궁인들을 나가라고 명한 뒤, 문을 닫고 원경릉에게 정중히 예를 올렸다."북당의 황후마마를 뵙사옵니다!"그는 택란에 대해 오래전부터 조사해 왔기에, 북당 황제와 황후의 초상화도 이미 알고 있었다. 비록 만나본 적은 없어도 그들의 얼굴은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한편, 원경릉은 그가 자신을 알아보는 것이 전혀 놀랍지 않았다. 그녀는 침착한 태도로 그를 유심히 살펴보았는데, 준수한 외모와 온화한 눈매 속에 황제의 위엄이 은은하게 배어 나오는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예를 갖추지 않아도 된다. 앉아서 이야기하자꾸나.""예!"경천은 잔뜩 긴장이라도 한듯 다시 한번 허리를 숙였다."먼저 앉으시지요."원경릉이 먼저 자리에 앉자, 그는 조심스럽게 자리에 앉으며 택란을 흘깃 바라보았다.그는 황후가
잔뜩 긴장한 채로 앞으로 몸을 반쯤 내밀고 있었던 주 지부는 우렁찬 상대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중심을 잃은 듯 비틀거렸다. 그는 이내 팔을 뻗어 망루의 기둥을 붙잡으려 했지만, 허공에서 멈추고 말았고, 그대로 몸이 앞으로 쏠려 떨어져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가 말에서 빠르게 날아올라, 믿기 힘들 정도로 빠른 속도로 그에게 달려갔다. 상대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주 지부가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그를 안고 빙 돌아서 바닥에 착지했다.주 지부는 깜짝 놀라서 그만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를 구해준 사람은 반짝거리는 눈망울에, 품위 있는 모습의 젊고 잘생긴 사내였다. 주 지부는 그를 황제의 호위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거의 죽을 뻔한 고비를 넘겼기에, 안도의 한숨을 내쉴 새도 없이 그에게 예를 올렸다.“대인,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그때 말들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는데, 서일이 먼저 말에서 내려, 다급히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괜찮으십니까?”우문호도 매우 놀란 듯했다. 조금만 늦었다면, 주 지부는 정말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숨을 들이쉬었다.“괜찮다.”그러고는 주 지부를 보며 물었다.“자네는 누구요?”주 지부는 마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보며, 누가 황제인지 추측했다.황제는 올해 마흔에 가까운 나이로 알려져 있었기에 위엄이 넘쳐 보일 것이었다. 그는 일행 중, 냉 수보와 홍엽을 만난 적 있었기에, 거친 모습을 한 이 인물은 아마도 호위로 추측된다. “묻지 않았소? 자네는 누구요? 어찌 죽으려고 하는 것이오?”서일은 그가 멍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자, 큰 소리로 다시 물었다.주 지부는 울 지경이었다. 냉 수보가 그를 보고 있으니, 예를 올려야 하지만, 황제도 자리에 있으니, 바로 냉 수보에게 예를 올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대체 누가 황제란 말인가?그는 황제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어, 결국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고는 그들에게만 들릴 정도로 낮은 목소
원경릉의 말은 그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고, 자리에 있던 관리들은 기쁨과 동시에 두려움에 휩싸였다. 이 대인은 땅에 엎드려 온몸을 바르르 떨고 있었다. 그는 살아생전에 자신이 황제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은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평소 차분하고 신중한 주 지부도, 그도 감정이 격해져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눈가에는 눈물이 가득했다.황후를 만난 것만으로도 큰 영광이라 생각했는데, 황제까지 오신다는 소식에 그의 마음은 흥분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원경릉은 평생을 경성에서 다섯째와 함께 있었기에, 그녀는 그저 그가 온다는 사실을 간단히 전했을 뿐이었는데 말이다. 그녀는 다들 걱정 없이 역병을 치료하고, 언제나 황제가 그들의 뒤를 든든히 지켜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의 반응을 보니, 황제가 직접 오는 것이, 지방 관리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달았다.원경릉이 급히 말을 덧붙였다.“폐하게서는 그저 역병 때문에 온 것이니, 모두 각자 맡은 일에만 최선을 다하면 되네.”“예, 예, 마마의 명을 따르겠습니다.”주 지부가 눈물을 닦으며 답했다.그렇게 관아와 의서가 협력하여, 오계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원 할머니는 역병을 치료할 수 있는 처방을 몇 가지 내렸다. 경증 환자는 약차를 계속 마시고, 증상이 악화하거나 중증 환자는 그녀의 처방을 사용하도록 했다.전에 이미 근처 주부에 연락해 약을 보내라 명했고, 오계부에서 구비한 약까지 있으니, 이번 역병을 대처할 수 있었다.오계부 의서는 이번 역병을 과거의 역병과 동일하게 생각하고, 소홀히 한 것 외에는 준비가 충분했다.원경릉은 황제 일행이 저녁 무렵 오계부에 도착할 것이라 예상했다.주 지부는 원래 여러 관리와 함께 황제를 맞이할 예정이었지만, 원경릉이 이를 단호히 거부했다. 그녀는 황제가 미복 순행 중이니, 과하게 맞이하여 백성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했다.그 말에 주 지부는 당황했다.황제가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아무도 맞이하지 않는다니, 어찌 그럴 수 있다는 말인가?그러나 그는 황
약을 쓰자, 주 지부의 열이 단번에 내려갔다.열이 내려가니 정신이 맑아져, 그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는 애써 자리에서 일어나 황후마마에게 예를 올리겠다고 고집 피웠다.원경릉은 그에게 누워 있으라고 말한 후, 역병에 관해 이야기하며 주 지부에게 이를 중시할 것을 당부했다.주 지부는 이를 듣고 깜짝 놀라 말했다.“소신은 매일 의서에 사람을 보내, 역병의 상황을 보고받고 있사옵니다. 매일 보고된 상황은 그다지 심각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역병이 발생했지만, 작년과 비슷한 정도였고, 약재도 충분한데, 어찌 이렇게 심각해진 것입니까?”“매년 역병이 발생했으나, 대대적으로 퍼지지 않아,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네.”원경릉이 답했다.“의서의 이 대인을 불러, 상황을 확인하겠습니다.”주 지부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어제 이미 그를 찾아가, 환자 수와 사망자 수를 조사하라 명했네. 하지만 그는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모를 것이네. 자네가 사람을 보내, 관아에 와서 상황을 보고하도록 하게.”“예!”주 지부는 곧바로 사람을 보냈다.푸른 옷을 입은 남자는 관아에서 일하는 관리였기에, 그는 반 시진도 채 되지 않아, 관아 내에서 병에 걸린 자가 얼마나 되는지 통계해냈다.관아 내에서 역병 증상을 보인 사람은 총 열여덟 명이었고, 그중 두 명은 병세가 심각하여 이미 집에서 쉬고 있는 상태였다. 주 지부는 관아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병에 걸린 줄 몰랐고, 관리의 보고를 들은 후, 큰 충격을 받았다.의서의 이 대인은 하루 종일 쉬지도 않고, 바삐 움직였다. 서관 대인이 직접 오셨으니, 어떻게든 시키는 일을 완성해내야 했다.그는 사실 역병이 그다지 심각하지 않고, 그저 작년과 비슷하다고 여겼었다.하지만 여러 지역과 의원을 돌아보고 나서야, 이번 역병이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처음엔 그저 서관 대인에게 보고만 하려고 했지만, 병세가 심각해지자 그도 조급해지기 시작했다.하지만 짧은 시간 안에 인원수를 통계하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도, 다섯째 일행은 여전히 도착하지 않았다.그래서 원경릉과 할머니는 다른 의관을 더 둘러보기로 하고, 몇 군데 더 돌아본 뒤 관아에도 갈 계획을 했다.그런데 한 의관에 들어서자마자, 푸른 옷을 입은 중년 남자가 다급히 뛰어오며 말을 걸었다. “수 의원, 대인께서 병세가 위중합니다. 어서 봐주셔야 합니다.”의원은 그 말을 듣자마자, 약상자를 집어 들고 다른 환자들을 그냥 남겨둔 채, 푸른 옷의 중년 남자와 함께 나가려 했다.원경릉이 그를 막아 세우며 말했다.“의관에 있는 환자들을 돌봐야 하지 않소? 우리 할머님께서도 의원이니, 지부 대인의 병은 할머님께서 봐 드릴 것이오.”푸른 옷의 사내는 초조한 듯 원경릉을 향해 소리쳤다.“말도 안 되는 소리 마시오!““대인의 병세가 급박한데, 혹여라도 지체되면 당신들이 책임질 수나 있겠소?”바로 그때, 원 할머니가 호패를 꺼내, 그의 눈앞에 들이밀며 단호하게 말했다.“길을 안내하거라!”조급한 표정을 짓던 푸른 옷의 사내는 호패를 보자마자 표정이 얼어붙었다. 이내 정신을 차린 그는 곧장 허리를 굽혀 예를 올리며 말했다.“서관 대인께서 오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무례를 범해 송구하옵니다.”“그만 사과하고 길 안내나 하시오.”원경릉이 말했다.“예, 예!”사내는 급히 물러서서, 예를 갖춰서 길을 가리켰다.“마차가 밖에서 대기 중입니다. 서관 대인, 이쪽으로 오시지요.”원경릉은 할머니를 부축해 마차에 올랐고, 곧장 관아로 향했다.지부 대인은 따로 사저가 없어 관아의 뒷마당에서 거주 중이었다. 혼자 지내는 데다 관아가 워낙 가까워 편리했기 때문이다.관아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안으로 들어갔다.주 지부는 병세가 꽤 심각해져 있었다. 그는 어지럼증과 흉통에 시달려, 침대에 누운 채 말을 꺼낼 힘도 없었다.원경릉은 직접 치료에 나섰고, 약상자를 열어 체온 측정기와 청진기를 꺼냈다.푸른 옷의 사내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가씨께서도 의원이십니까?”그러자 곁에 서
이 대인이 원경릉에게 의학을 잘 모른다고 반박할 틈도 없이, 원 할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말대로 하게. 하루만 줄 테니, 그 안에 역병에 관한 모든 자료를 가져오게. 사망자 수도 포함되어야 하네." 이 말까지 듣자, 이 대인은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었다. 비록 조사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서관 대인이 멀리서 오계부까지 왔으니, 시키는 일은 해야지 대인의 마음에 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사람들을 보내 조사를 명한 후, 이 대인은 거처를 마련해 드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원경릉이 말했다. "괜찮습니다. 의서에 의원이 많지 않으니, 대인도 바쁘실 텐데요. 저희가 직접 오계부를 돌아보겠습니다." 이 대인은 그녀가 원 할머니의 힘을 빌려 위세를 부린다고 생각해, 대꾸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말에 답도 하지 않고, 원 할머니에게 예를 올렸다. "어르신께서 머무실 계획이 있으시면, 부디 저에게 알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밤 대인을 잘 대접하라, 명을 내리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네. 일이나 보게." 원 할머니는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원경릉에게 말했다. "먼저 좀 돌아보다, 객사를 찾아 머물자꾸나." "예!" 두 사람은 역병을 조사하기 위해 다급히 이곳을 찾아왔기에, 먼저 각지의 의원을 직접 돌아보려 했다. 아마 다섯째 일행은 빨라야 내일이나 모레쯤 도착할 것이었다. 두 사람이 의서를 나서자, 이 대인은 뒤따라 나오려다 원 할머니의 날카로운 눈빛에 움찔하며 발길을 멈췄다. 두 사람은 오계부의 거리로 향했다. 거리가 꽤 번화했고, 사람들도 제법 많아, 대낮에는 조금 붐볐다. 그들은 곧장 의원으로 향했다. 의원 앞에는 약차가 많이 진열되어 있었지만, 환자는 얼마 없었다. 겉보기엔 역병이 퍼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원경릉은 안으로 들어가 의원에게 상황을 물었다. 그러자 의원은 요즘 들어 약차가 잘 팔리고 있고, 하루에 천 봉지가 넘게 팔린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도 역병
늦게 출발한 원경릉은 신속하게 오계부로 향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오계부 근처 주현에 도착하자마자, 할머니가 현지 혜민서로 가야 한다며 잠깐 멈추자고 했다. 그러고는 혜민서에 오계부로 약을 공급할 준비를 하게 했고, 명을 받으면 바로 오계부로 보낼 수 있도록 미리 준비를 당부했다. 혜민서 산하의 의료기관들은 지난 몇 년간 개혁을 통해 뚜렷한 성과를 거두었고, 지역 간의 연결도 긴밀해졌다. 특히 역병을 상대하는 체계가 가동되면 상부에서는 전력을 다해 의원과 약을 지원해줄 수 있었다. 신신당부한 뒤에야 원경릉과 할머니는 오계부로 재빨리 향했다. 곧이어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우문호 일행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오계부는 인구가 500만 명에 이르는 곳으로, 두 개의 주부가 통합된 지역이었다. 열대에 있어, 경작지가 많고 산이 많아 농업을 위주로 삼고 있었다. 그래서 조정은 이곳을 서부의 주요 곡창지대로 삼고 있었던 것이었다. 농업이 발달한 지역은 상대적으로 경제도 번화했고, 현지 백성들은 벼 외에도 감, 자두, 리치 등을 대량으로 재배하고 있었다. 리치는 신선할 때 먹을 수도 있고, 말려서 건과로 만들어 팔 수도 있기에, 어느 정도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었다. 오계부는 백월국과 인접해 있었는데, 백월국은 북당의 속국으로 사이가 우호적이며 경제 교류도 활발했다. 이는 양국의 번영을 촉진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오계부의 지부는 장씨 성을 가진 오계부 출신이었다. 장 지부는 훌륭한 관리이며 지역 백성들로부터 존경받고 있었다. 원경릉과 원 할머니는 오계부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지역 혜민서를 찾았다. 할머니는 혜민서의 서관(署館) 신분을 밝혔다. 그녀는 북당 각 주부의 의서를 총괄하는 인물이고, 총책임자이기도 했다. 혜민서의 이 의원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두 사람을 안으로 청한 후, 바로 예를 올렸는데, 마치 신선이라도 본 것처럼 목소리까지 떨고 있었다. "소인은 이자옥이라 합니다. 어르신께서 친히 오신 줄도
그녀는 일단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 냉 대인이 자세한 상황을 묻는 사이에 제 대인의 피를 뽑았다. 약상자는 기능이 꽤 다양하기에, 바이러스 검사도 문제없었고, 안에는 양여혜가 준 소형 현미경도 있었다. 하지만 바이러스 관찰이나 세균 배양에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지체할 수 없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먼저 오계부로 향하고, 그녀는 이곳에 남아 제 대인을 치료하고 검사 결과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면 바이러스든, 세균 감염이든, 결과가 나와야 제대로 된 치료 방안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미색이 말했다. "저도 이곳에 함께 남겠습니다. 제가 환자를 돌보는 것 정도는 도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괜찮으니 먼저 가거라. 어쩌면 내가 더 일찍 도착할 수도 있으니깐." 원경릉이 말했다. 그녀는 혼자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지만, 미색까지 데리고 가는 건 무리였다. "우리가 먼저 출발하는데, 어찌 더 일찍 도착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미색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가능한 일이다. 원 선생은 늘 기적을 만들어내니." 우문호가 말했다. 그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고, 원경릉에게 다가가 조심하라고 몇 마디 당부했다. "알았소. 지체하지 말고, 어서 떠나시오. 오계부에 도착하면 곧바로 관아를 찾아가, 의원의 빠른 대처를 명하라 하시오. 만약 내가 먼저 도착한다면, 내가 관아를 찾아가겠소." "알겠소. 그럼, 먼저 가겠소!" 우문호는 그녀와 입을 맞추고 싶었지만, 보는 이가 많으니 그저 참을 수밖에 없었다. 서일은 황후를 홀로 두고 가는 것이 걱정되어, 우문호를 따라나서며 계속 물었다. "정말 황후를 이곳에 혼자 남겨도 되는 것입니까?" "그럼, 네가 남을 것이냐?" 우문호가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 "너도 원 선생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고 있지 않느냐?" 회왕 부부도 걱정은 되었지만, 다섯째의 여유로운 모습에 자신이 있을 것이라 믿었다. 다섯째 부부는 늘 비밀이 많은 사람들이라, 그들은 더 이상 신경
원경릉은 밖으로 나가, 오계부에 역병이 생긴 것 같다고 전했다. 오계부는 서쪽에 자리 잡고 있어, 기후가 더운 탓에 가끔 역병이 생기긴 했었지만 백성들은 고뿔 치료에 쓰이는 약초로 끓인 차를 즐겨 마시기에, 대규모로 역병이 돈 적은 없었다. 냉 대인이 말했다. "오계부에서는 이 상황을 조정에 알리지 않았습니다. 비록 해마다 역병이 생기긴 하지만, 빠르게 통제해 왔으니, 이번에도 예전과 같은 상황이지 않겠습니까?" 원경릉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런데 이번엔 더 심각할 수도 있습니다. 제 대인의 형도 역병으로 돌아가셨고, 그와 가까이 지낸 사람들도 병에 걸렸습니다. 이렇게 관아에만 역병에 걸린 자들이 많으니, 예전보다 더 심각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해마다 역병이 생겼으니, 그에 대한 대응책도 이미 있을 것입니다." 원경릉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해마다 역병이 생겼지만, 대대적으로 유행하지 않았기에, 현지 관리들이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 쉽게 통제될 것이라 생각하고, 방심할 수도 있으니깐요." 우문호가 물었다. "원 선생, 역병을 어떻게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하오?" "역병 상황이 안 좋을 것이라 추측할 뿐, 정말 오계부의 상황이 어떠한지는 아직 모르네. 제 대인은 여전히 고열에 시달리고 있어, 수액을 맞히고 해열제를 먹였소. 냉 대인과 함께 들어가 상황을 자세히 물어봐야겠소. 하지만 꼭 마스크를 끼고, 병을 막아야 하오." 원경릉은 유행성 독감이나 변이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일 것이라 의심하고 있었다. 그녀가 살던 세계에서는 A형 독감의 대규모 변이가 십수 년마다 한 번씩 발생했는데, 그런 변이 독감은 현대에서도 의료 체계에 큰 부담이 되곤 했다. 그러니 지금 이곳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만약 역병이 다시 시작한다면, 가능한 한 빨리 통제해야만 했다. 원경릉의 말을 우문호와 냉 대인은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도
원경릉은 청진기를 꺼내 그의 폐를 확인해 보았는데, 남녀가 가까이 접촉하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한 제 대인은 이내 손을 뻗어 그녀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병세가 심해 아픈 데다가,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묘한 위압감을 풍기는 의원의 단호한 눈빛과 기운에 그만 압도당하고 말았다. 원경릉은 앞쪽을 청진한 뒤, 그에게 옆으로 돌라고 한 다음에 꼼꼼히 살피고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며칠을 아프신 것입니까?" 제 대인은 꽉 막힌 코 때문에 콧소리를 내며 천천히 몸을 돌리고 답했다. "며칠 사이의 일입니다. 오계부를 떠날 때도 멀쩡했는데, 밤새 달리고, 말을 오래 타다 보니 고뿔에 걸렸나 봅니다." "기침 말고, 가슴 통증도 있습니까?" "예. 이곳이 아픕니다!" 제 대인은 가슴 근처를 손으로 누르며 말했다가, 숨쉬기가 어려운 듯 손바닥을 움직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도 아프고, 온몸 뼈마디도 다 아픕니다." 그러자 원경릉은 더 자세히 증상을 확인한 뒤 말했다. "약을 준비할게요. 수액을 좀 맞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수액이요?" 제 대인은 멍하니 원경릉을 바라보았다. "예. 질문은 하지 마시고, 그저 치료에 협조만 해주십시오. 병세가 꽤 심각한 편입니다." 원경릉은 제 대인이 폐렴이라 확신했고, 중증 폐렴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 대인은 병이 심하다는 말에 초조한 표정을 지으며 다급히 말했다. "의원 나리, 제발 최선을 다해 치료해 주십시오… 저에게는 아직 모셔야 할 노모가 있습니다. 지난달 병으로 형님께서 세상을 떠난 터라, 형님의 자식들도 제가 돌봐야 하니, 절대 이대로 목숨을 잃을 수는 없습니다." 원경릉이 답했다. "최선을 다할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치료에만 집중하시지요!" 제 대인은 감동을 받은 듯 감사 인사를 올렸다. "정말… 감사합니다." 원경릉은 곧바로 약을 지어 수액을 준비했다. 수액을 맞는 동안, 제 대인은 여전히 놀란 모습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