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비 합방하다북당(北唐), 초왕부(楚王府) 봉의각(鳳儀閣)일렁이는 촛불에 방안 곳곳에 붙여 놓은 낡은 붉은 ‘희(喜, 축 결혼)’종이가 비치고, 금박의 대조가 어슴푸레한 느낌을 떨쳐내는 가운데 벽에 한 쌍의 그림자가 떠오른다.원경릉(元卿淩)은 원하지 않는 것을 참고 또 참는 얼굴이다.결혼한지 어언 1년, 그는 원경릉의 털 끝 하나 건드리지 않았다. 그런데 그제 입궁했을 때 태후(太后)가 원경릉의 밋밋한 배를 보고 실망한 기색으로 후궁(侧妃)을 들이는 것에 대한 말을 꺼내는 것이 아닌가. 그녀는 태후께 하는 수 없이 둘이 결혼한지 1년이 되었지만, 아직 합방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털어놓을 수 밖에 없었다. 원경릉은 울고불고 고자질하는 것이 싫었다. 그러니까 그냥, 내키지 않았을 뿐이다.13살에 처음 그를 본 이래, 마음을 온통 그에게 빼앗겨 갖은 수단을 다 동원해 결국 그의 정비가 되었다. 제 아무리 차가운 돌덩이라도 뜨겁게 타오르게 하리라 믿었건만, 그건 단단히 착각한 거였다.서로 부부이고, 낭군이 분명했지만, 그의 눈빛에는 단 한 가닥 연민조차 없이, 오히려 집착에 가까운 증오만 있을 뿐이었다.“윽……”마음 속에 알 수 없는 원망이 솟구치며 그녀는 있는 힘껏 입술을 깨물었다.선혈이 배어 나와 비릿한 피가 입안으로 방울져 들어갔다.그는 낮게 깔린 눈빛으로 훤칠한 몸을 일으켜, 한 손을 그녀의 얼굴 옆에 바짝 댄 채 얼음같이 냉정하게, “원경릉, 네가 바라던 대로 짐이 너와 합방했으니, 이제부터 짐은 너와 일체 타인이다.”원경릉은 절망과 슬픔의 웃음을 띄우며, “당신은 결국 절 미워하는군요.”푸른 옷자락 아래 초왕(楚王)의 건장한 몸매와 늘씬한 다리로 쭉 걷어차니, 탁자고 의자고 우당탕탕 넘어지며 물건이 사방에 떨어지고 깨지는 가운데 그는 경멸에 찬 눈빛으로 말했다, “미워한다고? 당치도 않은 소릴. 짐은 네가 혐오스러워. 짐의 눈에 너는, 더러운 벌레만도 못한 존재야. 사람을 증오심에 불타게 한다고. 아니면 짐이 약의 힘까지 빌려 너와
두 명의 원경릉그녀는 자신이 개발한 약을 스스로에게 주사한 후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 보니, 여기였다.그리고 머리 속에 자신의 것이 아닌 기억이 본인의 기억과 서서히 뒤섞이기 시작했다. 정후(靜候)의 적녀(嫡女, 정실부인의 큰 딸) 원경릉은 초왕 우문호(宇文皓)를 사모한지 오래다. 15살에 성인식을 올리고, 공주부 연회에서 치밀한 음모로 초왕이 그녀를 ‘범하도록’ 함정에 빠뜨렸다. 원경릉은 죽네 사네 한바탕 연극 끝에 댓가로 소원하던 왕비의 자리를 얻어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녀가 왕부에 시집 와서 1년동안 갖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초왕은 원경릉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공대 여자로 연애를 해 본적은 없지만, 몸이 말해주고 있었다. 몸의 원래 주인 원경릉이 죽기 전에 한 차례 성적 행위를 당했다는 사실을.몸의 원래 주인 원경릉이 뇌에 남긴 기억도 이를 뒷받침했다.현대의 천재 박사에서 이름도 알 수 없는 어느 왕조의 초왕비가 된, 그녀의 유일한 아쉬움이라면 수중에 있던 연구과제를 계속 진행할 수 없다는 점이다. 영혼이 시공을 초월한다는, 과학으로는 도무지 설명할 길이 없는 일이 그녀의 몸에 일어난 지금, 그녀는 자신의 처지를 걱정하기는 커녕, 만약 다시 현대로 돌아갈 수 있다면 심령학을 연구할 텐데 하는 아쉬움 뿐이다.원경릉은 피를 너무 많이 흘린 나머지, 사고가 점점 흐릿해져 아예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침대로 돌아가 그대로 쓰러져 잠이 들었다.“어서, 어서 가서 의원을 불러 오너라!”문밖에 기상궁의 다급하고 혼란스런 목소리가 들려왔다.비릿한 피냄새가 대충 닫아 둔 문틈으로 스며 들었다.원경릉은 두 손으로 의자에 기대 덜덜 떨리는 발을 간신히 딛고 서서 밖을 내다 보았다.보이는 건 기상궁과 시녀 하나가 어린 시동 하나를 복도에서 부축하고 있는 것으로, 그 시동의 눈에서 철철 피가 흐르고, 시동의 눈에 뭐가 박혔는지 격한 통증으로 울부짖고 있었다. 기상궁은 다급히 시동이 그러쥐고 있는 눈 가에 손을 뻗으려 다가, 예리한
연구실로 돌아갔다 다시 왕비로원래 주인이 몸이 많이 약했는지, 원경릉은 정신을 잃은 채 깊은 잠에 빠졌다.그런데 꿈에 뜻밖에도 현대 연구실에 돌아와 있었다.회사가 마련해 준 연구실은 극비로, 회장과 그녀의 어시스턴트 외에 연구실의 위치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나도 변한 것이 없는 책상, PC, 현미경을 만져보다가 자신의 몸에 주사를 놓던 때 사용한 주사기가 한쪽 시험관에 버려져 있는 것을 봤다.PC는 켜져 있고, 카톡은 온라인 상태로 창이 즐비하게 떠 있는데 전부 가족들이 보낸 것으로 그녀가 어디 있는지 묻는 내용이다.그녀가 키보드를 만지자, 그제서야 마음 저 밑에 있던 죽음에 대한 실감과 슬픔이 밀려왔다. 다시는 부모님과 가족을 볼 수 없다.한동안 멍하니 있다가, 책상에 요오드팅크가 놓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건 주사를 놓기 전에 자리에 가져온 것으로, 연구소에 틀어박혀 있다 보니 연구소 안은 여기저기 할 것없이 온통 약품 투성이다. 약상자를 열어보니 약품은 거의 아무도 손댄 흔적이 없다.만약 이 약품만 있으면, 그 아이는, 어쩌면 살릴 수 있을지 모른다.얼마나 잠이 들었을까, 영차 하고 문 여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시녀가 등을 들고 들어왔는데, 손에 찐빵 한 접시를 가져 와 탕하고 탁자에 놓고는 쌀쌀맞게: “왕비님 식사하시지요!”말을 마치고, 등은 탁자 위에 그냥 두고 나가버렸다.원경릉은 적잖이 당황했다. 그게 꿈이었다니!원경릉은 배가 고파 침대에서 일어나다가, 그만 발이 걸려 앞으로 고꾸라지는데 바닥에 놓인 약상자를 봤다.순간 온 몸의 피가 얼어붙는 것 같았다.이 약상자는, 연구실에 있던 그 약상자와 똑같다.황급히 약상자를 집어 탁자에 올려놓고 열어 젖혔다. 떨리는 손 끝으로 약 상자 안에 약품을 만지는데, 똑같다, 완전 똑같다, 연구실에 있던 바로 그 약 상자다.눈 앞에 펼쳐진 사실을 도무지 믿을 수 없어 원경릉은 잠시 숨을 가다듬었다.영혼이 시공을 넘나드는 것도 이미 충분히 상식밖의 판타지인데, 약 상자까
열이를 만나러원경릉이 잠시 멍하니 있자니, 일련의 기억이 불현듯 떠올랐다. 시동이 다치기 하루 전날, 몸의 원래 주인은 시동을 혼내며 때리고는 헛간 나무덮개를 꼭 맞게 잘 덮어 놓으라고 명령했다. 시동이 그렇게 다친 건 헛간에서 굴러 떨어지다 못이 박힌 게 틀림없다.게다가 헛간 수리는 원래 그 아이가 할 일도 아니다.어디 이번 뿐이랴. 자기가 시집올 때 데리고 온 종이 팔려 나가자, 초왕이 보내준 시종들에게 화풀이를 해대며 평소 하인을 툭하면 때리고 욕설을 퍼 붓곤 했는데, 기상궁도 그녀가 던진 잔에 맞아 피를 흥건하게 흘린 적이 있다. 몸의 원래 주인 성격이 이렇게 고약하다 보니 사람의 미움을 사는 것도 당연했다.“네가 기상궁에게 좀 물어봐 주면 안될까? 내가 직접 걔를 보러 가도 될지.” 원경릉이 말했다.“왕비님 심사가 진짜 이리 고우셨으면 이 지경까지 떨어질 리도 없었을 텐데. 마음에도 없는 소리 집어 치우세요. 기상궁이랑 열이는 왕비님 꼴도 보기 싫으니까요.” 녹주는 말을 마치고 홱 몸을 돌려 나갔다.문이 다시 닫혔다.원경릉은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그 애 상태가 위독한가?시동 열이의 상처가 어느 정도인지, 이 시대 의원은 어떻게 상처를 치료하는지 모른다. 만약 처치가 적절하지 못할 경우, 각막이 탈락하면서 안구 파열에 감염을 동반하기 십상이다. 사람의 목숨은 그녀에게 있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원경릉은 도무지 태평하게 앉아 밥을 먹을 수 없어, 약 상자를 열어 항생제 몇 알을 꺼내 밖으로 나갔다.기상궁은 왕부에 팔려온 하인으로 시동 열이는 날때부터 노비라 봉의각 뒤에 있는 담장이 낮은 집에 살았다. 원경릉은 몇 바퀴를 돌아 겨우 찾아냈다.“왜 왔죠?” 기상궁은 울어서 퉁퉁 부은 눈으로 원경릉을 노려보며 말했다.“열이 좀 보려구요.” “가요, 손자도 나도 구역질 나니까!” 기상궁은 차갑게 말했다.원경릉은 사과를 시도하며, “미안해요, 그 아이에게 헛간 수리를 시킨 게 이렇게 되리라고 전혀…”“전혀? 걔는 아직 9살입니다
생사의 고비를 맞은 열이기상궁은 바닥에 엎드려 이의원에게 애원하고, 이의원은 난처하다는 눈빛으로 가신 탕양(湯陽)을 바라본다. 탕양은 곤란한 기색으로: “의원, 한 번 해 보는 것이 어떻겠는가?”이의원은 냉소를 띄고 “한 번 해 보라구요? 죽을 병인데 소인의 손에 왔다가 죽으면, 소인 명성만 땅에 떨어질 뿐입지요.” 기상궁은 이 말을 듣고 거의 실신할 듯 울며 가슴을 쥐어짠다. “아이고 열이야, 지지리 복도 없구나!”녹주는 기상궁을 달래 일으켜 한쪽 옆에 앉혔다.가신 탕양은 의원에게: “저 아이가 고통이 심하니, 약방문이라고 써주어 고통이라도 좀 줄여주면 안되겠는가, 밖에는 자네가 관여한 사실을 일절 비밀에 붙이겠네.” 탕양이 이 말을 하며 슬쩍 의원의 소매에 은자를 찔러 넣었다.이의원은 그제서야: “진통이야 도리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만, 통증이 없다고 차도가 있는 건 아닙니다. 황천 길은 갈 수밖에 없지요.”“그래 그래 알겠네.” 탕양도 열이가 조금이라도 고통 없이 숨을 거두길 바랐다. 그 애는 가엽기 그지 없는데다 자라는 걸 직접 지켜 봐왔기 때문이다. 이의원이 막 들어가 약방문을 쓰려던 찰나, 예상치 않게 병자가 있는 방 문이 쾅 하고 닫히며 안으로 빗장이 질러졌다. 녹주는 방금 문이 닫힐 때 날린 옷자락을 보고 놀라 소리쳤다. “왕비 마마”기상궁은 왕비라는 말에 슬픔과 분노로 미친 암사자처럼 달려들어 사력을 다해 문을 두드렸다, “문 열어, 어서 문 열어,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안에서 원경릉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목소리는 크지 않고, 말도 딱 3마디 “구할, 방법이, 있어요.”이의원은 그 자리에서 조소를 띠며 한 마디 했다, “숨이 반도 안 붙어있는데, 구할 방법이 있다? 초왕부 어디서 이런 옥황상제가 오셨나 그래?” 기상궁은 맥이 풀려 허물어지며 탕양에게, “탕대인, 이렇게 빕니다. 문을 부숴주세요. 쇤네가 걔 옆에 있어야 해요. 걔가 얼마나 두렵겠습니까!”이런 중차대한 순간에 왕비가 나타날 줄이야, 이 무슨 아닌 밤
매맞는 왕비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무쇠 같은 손가락이 원경릉의 목을 졸랐다. 그녀의 동공이 커지며 분노에일그러진 초왕의 얼굴이 보였다. 순간 가슴에서 억지로 공기가 빠져나가고 눈 앞이 깜깜해지더니 정신이 아득해 졌다. “고작 열 살 아이를,” 초왕은 이를 악물고 원경릉의 귀에 소리쳤다, “이 지경으로 만들어? 짐승만도 못한 것, 여봐라, 왕비를 끌어 내 30대를 쳐라!”원경릉은 이미 며칠간 잠을 자지 못한 데다 체력도 거의 바닥난 상태로 따귀를 맞아 일어설 기력조차 없었다. 초왕이 목을 조르던 손을 놓자 원경릉은 주르륵 땅바닥에 떨어졌다. 공기가 다시 허파로 들어가고 숨을 쉬고자 입을 벌리는 순간 사람들 손에 질질 끌려 밖으로 나갔다.원경릉은 눈 앞이 캄캄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가운데, 얼음장 같은 초왕의 준엄한 얼굴만 보였다. 눈 앞에 펄럭이는 비단 옷깃은 어찌나 밉고, 또 어찌나 고귀한지……원경릉은 돌계단에 질질 끌려가며 뾰족한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혔다. 날카로운 자상에 눈 앞이 흐려지며 정신을 잃고 말았다.정신을 잃고 얼마 되지 않아 생전 겪어 보지도 못한 아픔이 온몸에 퍼지는데, 허리와 허벅지에 한 대 한 대 매질을 당할 때 마다 골수에 사무치는 고통으로, 뼈마디가 전부 끊어지는 듯 했다. 입 안엔 핏물이 고이고, 입술을 깨물고 혀를 깨물어도 눈 앞이 아득해 지는 고통에 자꾸만 까무러쳤다. 그렇게 혼절과 고통으로 깨어나길 계속.30대의 매질이 끝났다. 원경릉 인생에 그렇게 긴 시간은 없었다.그녀로 말할 것 같으면, 22세기를 대표하는 천재로 그녀를 추앙하는 사람이 줄을 섰고, 그녀가 어디를 참석하기만 하면 그 자리의 포커스는 단연코 그녀가 독차지했다. 얼마나 많은 병자들이 그녀가 개발한 약을 학수고대하고 있던가.그러나 여기선 남자 아이 하나 구하는 것조차 이렇게 목숨을 걸어야 할 만큼 험난하다.원경릉을 끌어다 놓고 죽든지 살든지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차라리 죽는게 나을지도 몰랐다.대리석 바닥에 널브러진 원경릉의 등에 약
살아난 열이와 원경릉탕양은 녹주에게 약을 다려오라고 분부하고 기상궁을 몇 마디 위로한 뒤 나왔다.기상궁은 계속 자리를 지키는데 날이 어둑어둑해 오니 두려움이 엄습해 왔다.녹주도 곁으로 와 둘은 아무 말 없이 숨죽인 채 그저 열이 숨소리 하나라도 놓칠까 정신을 바짝 차렸다. 그런데 열이는 오히려 깊이 잠들더니 자시(밤 11시~오전 1시)가 다 되어 문득 깨어나, 한쪽 눈을 뜨고 기상궁에게 “할머니, 배고파!”기상궁은 펄쩍 뛸 듯 기뻤다. 다친 후로 음식을 전혀 먹지 못하고, 할미가 고생고생 얻어 온 양젖조차 넘기지 못 했기 때문이다. 기상궁은 손으로 열이의 이마를 짚어보니 과연 전만큼 뜨겁지 않다.“의원이 약이 효험이 있네, 효험이 있어!” 기상궁은 기쁨에 넘쳐 녹주에게 외쳤다.“그러게요, 의원의 약이 들었나 봐요!” 녹주도 덩달아 신이 났다.이의원은 다음날 다시 초왕부로 왕진을 왔다.듣자 하니 그 아이가 아직 죽지 않았다는데, 이의원은 여간 신기한 게 아니었다. “그 녀석 명줄 한번 질기네 그려, 숨이 거진 다 넘어갔는데.”기상궁은 바닥에 조아려 머리를 찧으며, “의원님, 그저 처방 하나만 써 주십시오, 우리 손주를 살려주세요.”이의원은 당황했다. 어제 지어 준 약은 열이의 상처를 낫게 할 수 없을 뿐더러 고작해야 통증을 다소 완화시키는 정도였으니 말이다.하여튼 소 뒷걸음질 치다가 쥐 잡은 셈 치자.의원은 열이의 맥을 짚어보니 확실히 어제보다 좋아졌고, 몸도 그렇게 뜨겁지 않다. 결국 다시 약방문을 적어 “하녀는 나를 따라와 약을 다려가게, 이 약을 연속 이틀 먹이면서 상처에 가루약을 바르고, 좋아지면 계속 와서 다려 가게.”“감사합니다, 의원님!”“왕진비용이랑 약값은 누가 주는가?” 이의원이 물었다.어제 비용은 탕양이 댔지만 오늘 비용은 기상궁이 내야 했다.기상궁은 의원의 내민 손을 물끄러미 보며 넌지시 물었다: “오십 문(100문이 1냥(兩))입지요?”“다섯 냥!” 이의원은 기분 상한 듯 대답했다.이의원은 시중에 흔한
생사의 고비를 맞은 열이, 왕비의 진실을 말하다찐빵 반 개쯤 먹고 나니 원경릉은 힘이 다소 회복되는 것을 느끼며 탁자를 잡고 일어나려 안간힘을 썼다. 상반신으로 몸을 지탱하면서 물을 따를 방법이 없어, 바닥에 엎드려 잔에 남은 물을 마실 수 밖에 없었다.좀 나아진 듯해서 천천히 다리를 움직여보고 팔을 펴고 등을 구부리려 했지만 체력이 없어 땅에 덜퍼덕 쓰러지며 등에 난 상처가 지지는 듯 아파왔다.이를 악물고 고통을 참아내며 팔꿈치로 바닥을 디뎌가며 겨우겨우 약상자를 찾았으나, 소염제와 해열제 주사약이 놓아 둔 곳에 없었다. 주사를 놓을 수 없으니 먹는 약의 용량을 늘릴 수 밖에 없다.대략 30분쯤 지나, 비타민C를 더듬거려 찾은 후 몇 알 삼켰다. 물이 없어 그냥 넘겼더니 너무 셔서 하마터면 뱉을 뻔 했다. 약을 먹은 뒤 원경릉은 몸을 웅크리고 숨을 헐떡거렸다. 이런 육체적 고통은 생전 처음이다. 이번 매질을 당하며 원경릉은 이 시대는 자기가 살던 시대와는 다르다는 것, 신분이 높고 권력을 가진 자의 손에 인간의 생사여탈권이 쥐어져 있음을 깨달았다.따라서 그녀의 목숨은, 초왕의 손에 달려 있다.원경릉은 기필코 이 악랄하고 저열한 생존환경에 적응해야 한다.그 아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상처에서 고름은 제거했지만, 악을 쓰지 않고 좋아질 수는 없다.열이의 방.열이는 약을 먹고 다시 고열이 나기 시작했다.기상궁은 다급해 죽을 지경이다. 낮에는 분명 좋아졌었는데 밤이 되어 왜 다시 고열이 난단 말인가?녹주도 안달이 나긴 마찬가지여서, “아니면, 제가 가사 이의원님을 모셔올까요.”기상궁은 열에 들떠 숨소리마저 거칠어진 손자를 보며 이의원이 다섯 냥에 겨우 이틀 치 약을 지어준 것을 떠올렸다. 사실 그녀 수중에 더이상 은자가 없다: “아니다, 됐어.”녹주는 어쩔 줄 몰라 눈물을 흘리며, “그럼 어떡해요? 두 눈 멀쩡히 뜨고 열이가…..” 뒷말은 차마 할 수가 없었다.기상궁은 이를 악물고 비분강개한 눈빛으로, “열이한테 만약 무슨 일이 생기
연회는 계속 진행되었고, 냉정언은 술잔을 들고 계속 탕양에게 술을 권했다. 잔을 몇 번이나 주고 받자, 탕양은 머리가 머리가 어지러워져 말조차 똑바로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연회가 끝난 후, 냉정언이 일곱째 아가씨에게 말했다."술을 꽤 마셨다 보니, 탕양이 좀 취한 것 같네. 정원에 나가 산책을 조금 하면서 술기운을 가시는 것이 어떻소?"일곱째 아가씨도 약간 취한 상태였기에, 바람을 쐬며 땀을 내면 술이 깰 것 같다며 동의했다."예. 그럼 다들 돌아가서 쉬시지요. 제가 호명과 함께 탕 대인을 돌보겠습니다.""좋소. 수고하시게나!"냉정언이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흔들었다."자, 어서 돌아가시게!"그렇게 사람들은 모두 새가 흩어지는 것 처럼 순식간에 사라졌다.일곱째 아가씨는 호명과도 함께 산책할 생각이었는데, 빠르게 사라지는 그들의 모습이 어이가 없는듯 웃음을 터뜨렸다.그러고는 탕양의 붉게 상기된 얼굴을 보고 물었다."괜찮습니까? 걸을 수 있겠습니까?"그러자 탕양이 자리에서 힘겹게 일어났는데, 술에 많이 취한듯 몸을 심하게 휘청거렸다."어찌 못 걷겠습니까? 취하지 않았습니다!""예. 그럼, 몇 걸음 더 걸어보시지요. 정말 못 걸으시겠으면 방으로 돌아가 쉬시고요. 취기를 덜어줄 탕을 준비하라고 하겠습니다."그러자 탕양은 허리에 손을 얹고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걸어나갔다. 곧게 뻗은 직선을 그리며 터벅터벅 걷고는 뒤돌아 일곱째 아가씨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보시지요. 얼마나 똑바로 걷는지! 안 취했습니다. 이제 믿을 수 있습니까?"일곱째 아가씨는 그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그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하하하. 예, 안 취하셨네요. 그럼 이만 나가서 함께 산책하시지요."그녀는 그가 오래 걷지 못할거라고 생각해, 방으로 데려가 쉬게 하기로 했다.역시나 문을 나서자마자 탕양은 난간을 붙잡고 비틀비틀 걷기 시작했다. 하도 휘청거리는 탓에 몇 번이나 넘어질 뻔했기에, 일곱째 아가씨는 결국 어쩔 수 없이 그를 부축했다.그러자
"탕 대인이 저를 예쁘다고 말해 주셔서 정말 기쁩니다. 그러니 일곱째 아가씨께도 예쁘다고 말해 보십시오. 분명히 기뻐하실 것입니다!"하지만 탕 대인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다를 겁니다. 일곱째 아가씨는 이제 그런거에 좋아할 나이를 지났습니다. 지금 그녀에게 예쁘다고 말하면, 그저 무미건조하다고 생각할 것입니다.""어찌 그럴 리 있습니까? 누구나 칭찬받는 것을 좋아하는 법입니다. 탕 대인, 대인께서 정말 재능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아십니까?"탕 대인이 웃음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예? 하하하. 그렇습니까?""예! 모두가 그렇게 말했습니다!"탕 대인은 자기도 모르게 어깨를 으쓱거리며 미소를 지었다."과찬입니다.""기분 좋으십니까?"택란이 묻자 탕 대인은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다, 이내 뜻을 알아차리고 멈칫하며 말했다."이 녀석!"택란은 그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탕 아저씨도 누군가에게 꼭 사랑받으시길 바랍니다."탕 대인은 이 말에 크게 감동해서 택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말했다."예. 고맙습니다."저녁엔 계약이 성공한 기념으로 연회가 열렸다.소박한 술자리긴 했지만, 커다란 술통들이 준비되어 있어 모두 마음껏 마시며 즐길수 있었다.택란은 술을 마시지 않기에, 주 아가씨가 매실청을 대신 준비해 주었다. 새콤달콤한 맛이 택란의 마음에 쏙 들었다.술잔을 주고받으며 어느 정도 취기가 오르자, 모두 패기 있게 약도성을 북당에서 제일가는 도성으로 만들겠다고 호언장담했다.일곱째 아가씨는 벌써 독산을 어떻게 개발할지부터 고민하고 있었는데, 독산의 아름다움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막막했기에 사람들에게 의견을 구하기 시작했다.각자 다양한 의견을 내놓았지만 대부분이 경치를 개발하자는 내용이었다.반면, 택란은 새로운 생각을 제안했다. 독산에 온천이 있으니 오두막을 지어 온천을 끌어들여 돈을 받고 여러 개의 탕을 이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어떻겠냐며, 온천수가 몸에 좋다는 점을 대대적으로 홍보하자고 제의하였다.택란의 생각은 이 시절
탕양은 자신이 여자의 마음을 어느 정도 이해한다고 자부했었다. 특히 일곱째 아가씨처럼 강인한 성격을 가진 사람은 혼자 지내는 데 익숙하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삶을 더 선호하기에 굳이 자신과 인연을 맺으려 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이는 그의 큰 착각이었다.여인의 마음은 늘 갈대처럼 변덕스럽고, 아무리 강인한 사람이라도 다정함이 필요한 순간이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일곱째 아가씨는 오랫동안 혼자 외롭게 지내왔는데, 중년에 접어들며 그 외로움이 더욱 깊어진 것이다.누군가 곁에 있다면, 삶의 방식도 달라질 수 있지만, 물론 잘못된 연으로 나빠질 가능성도 있었다.원가의 가훈은 항상 군주에게 충실하며, 엄청난 용기도 있었다. 심지어는 원가에서 키운 닭조차 남의 집의 닭보다 더욱 용감할 정도였다.하지만 한 번의 좌절로 인해 사랑을 믿지 않겠다는 것이 과연 용기있는 행동 일까?물론 그녀가 반드시 탕양을 선택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다른 어울리는 사람을 만나 다시 한번 용기를 내볼 수도 있었다.하지만 탕양이 먼저 용기를 내어 말한다면, 그녀 역시 그에게 기회를 줄 것이다.여태껏 그녀의 마음에 들어온 사람은 오직 탕양뿐이었다.그리고 어쩌면 시도해 봐야만 서로 맞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탕양과 잘 맞는다고 느끼는 건 그녀가 스스로 마음의 문을 닫아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착각일지도 모르니 말이다.경성으로 돌아간 후에도 탕양이 말을 꺼내지 않는다면, 그녀는 공개적으로 구혼에 나설 생각이었다. 한편, 택란이 주 아가씨와 함께 밖으로 나가며 물었다."탕 대인이 왜 나쁜 사람인 것이오?""여인을 훔쳐봤습니다.""탕 대인이 아가씨를 좋아하지 않소? 어찌 못 보는 것이오?"주 아가씨는 택란이 이런 부분에 대해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공주에게 가르쳐야겠다고 마음먹으며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사내가 여인을 사모하면 상대의 시선을 바라보지, 다른 곳을 쳐다보지 않습니다. 그러니 탕 대인은 일곱째 아가씨를 사모하는 것이 아닙니다.""그
그녀는 탕양을 힐긋 바라보는데, 예전의 담담하고 온화한 모습 없이 뜨겁게 자신을 응시하고 있었다.그녀는 그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기에, 절대 먼저 말을 꺼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평생 그렇게 죽을 때까지 버틴다 해도, 제자리에 머물러 기다리지 않을 것이었다."탕 대인, 지금 어디를 보는 것이오?"그때, 냉정언이 물었다."예? 무슨 말이십니까?"탕양은 서둘러 정신을 차리고 냉정언을 바라보자, 냉정언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탕 대인께서 계속 일곱째 아가씨의 가슴팍을 보고 있었소. 무슨 생각을 하시는 것이오?"이 말이 끝나자마자, 모두가 술렁이며 이상한 시선으로 탕양을 바라보았다.그러자 주 아가씨가 급히 택란의 귀를 막으며 말했다."보지도, 듣지도 마십시오!"탕양은 크게 당황하며 두 손을 마구흔들었다."아닙니다! 전 그러지 않았습니다! 냉 대인께서 잘못 보신 겁니다.""아니오. 분명 아가씨의 옷깃과 가슴을 보고 있었소!"말을 마치자마자 냉 대인은 숭이를 안고 단호하게 밖으로 나갔고, 탕양은 얼굴을 붉히며 변명이라도 하기 위해 일곱째 아가씨를 쳐다봤다. 그러자 일곱째 아가씨는 기침을 하며 옷깃을 정리한 뒤 소리쳤다. "흥. 변태!"말을 마치자마자 그녀도 돌아서 나가버렸다.탕양은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당황한 얼굴로 주 아가씨와 홍엽을 보며 말했다."다들 보지 않았습니까? 제가 그런 게 아니라는..."홍엽이 소매를 휘두르며 말했다."눈이 자네 얼굴에 달려 있는데, 자네가 누굴 보고 어디를 보는지 우리가 어찌 알겠는가?"주 아가씨는 택란의 손을 잡고 나가며 말했다."마마, 이제 탕 대인 같은 사람하고 어울리지 마십시오. 인품이 좋지 않으신 것 같습니다!"탕양은 여전히 몹시 당황한 상태였다. 냉정언의 한마디에 그의 처지가 아주 난감해져 버렸다.그는 그런 사람이 아닌데 말이다. "명여야..."냉명여 또한 귀를 막고 밖으로 달려 나가며 외쳤다."탕 대인께서는 정말 나쁜 사람이십니다!"탕양은 그만 머리를 감싼
이처럼 독산은 마치 진실한 사람의 마음을 비추는 거울처럼 가장 진솔한 생각을 감출 수 없게 만들었다.일곱째 아가씨는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탕양을 바라보며 말했다."저를 배신한 것을 아직 기억하고 계십니까?"탕양은 그동안 일곱째 아가씨와 이 일을 얘기하고 싶었지만, 그녀는 항상 담담한 태도로 과거 이야기를 피하며 언급하지 않았었다. 그런 그녀가 갑자기 이 말을 꺼내니, 탕양은 잠시 멍해졌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당연히 기억하고 있지요..."일곱째 아가씨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기억하고 있다면, 제가 독산을 얻을 수 있게 잘 도우십시오. 독산을 개발할 수 있다면 앞으로 15년간의 수익은 전부 제 것이 될 겁니다. 그리고 15년 뒤에는 이익을 반으로 나누겠습니다. 절대 3할만 받을 수는 없습니다."탕양은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하지만 폐하께 이미 3할이라고 말씀드렸는 걸요.""그건 대인의 일이지요. 폐하를 오랫동안 모셔 왔으니, 대인의 공로를 인정하고 배려해 주실 것입니다. 이건 대인께서 누구의 이익을 우선시할지에 달린 것 아닙니까?"그러자 탕양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아가씨, 3할이라도 충분히 좋은 제안이지 않습니까? 그저 길만 새로 만들면 되고, 심지어는 조정에서 나서서 도와줄 것이니, 초반 투자 비용도 그렇게 많이 들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장사를 시작하면, 놀러 오는 자들에게 먹거리와 즐길 거리로 돈을 적잖이 벌 수 있습니다.""반으로 나누는 것까지만 양보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익을 중시하는 상인인 것을 잘 알지 않습니까."탕양은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예. 폐하께 돌아가 말씀은 드리겠지만… 무조건 그 조건을 따내겠다고 장담할 순 없습니다.""못 따내도 그만입니다."일곱째 아가씨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앞으로 제가 독산에 몇 번이나 올 수 있겠습니까? 어차피 조정에서 독산을 얻는다고 해도, 굳이 그렇게 많은 돈을 쓸 필요가 없습니다."탕양이 웃으며 답했다."이곳에서 지내면서 머물어도 되지 않습니까? 늘
일곱째 아가씨는 산 입구에서 지옥의 불꽃을 보자마자 순간 홀린 듯 그 자리에 멈춰 섰다. 꿈속에서 본 그 꽃이 눈앞에 펼쳐지니,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할 수 없는 것 같았다.탕양이 손을 뻗어 꽃을 따려 하자, 일곱째 아가씨가 급히 소리쳤다."지금 뭐 하는 것입니까? 당장 멈추십시오!"하지만 탕양은 이미 지옥의 불꽃을 손에 쥔 채 그녀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이것이 바로 해독제입니다."그는 손바닥에서 꽃을 비벼 즙을 내고는 일곱째 아가씨의 손을 잡아 즙을 그녀의 손등에 묻혔다. 즙은 선혈처럼 선명한 붉은빛을 띠고 있어, 일곱째 아가씨의 손등에 피가 묻은 것처럼 보였다. 그러자 그녀가 멍하니 그것을 바라보며 물었다."정말입니까? 이렇게 신기하단 말입니까…?"그제야 그녀는 과거 산속에서 넘어졌을 때, 얼굴이 지옥의 불꽃에 닿아 꽃 즙이 묻고 나니, 정신이 돌아왔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녀는 그때 자신의 강한 의지로 깨어난 것인줄 알고 있었다."이걸 어떻게 알게 되신 겁니까?"일곱째 아가씨가 호기심 어린 눈길로 묻자, 탕양은 숨기지 않고 답했다."안풍친왕이 말해준 것입니다. 예전에 독산에 와서 방 장군의 유해를 찾을 때 산을 드나든 적이 있었는데, 이 비밀을 알고 있었기에 독산을 드나드는 것에 전혀 문제가 없었다고 합니다. 지금 손등에 지옥의 불꽃 즙을 바른 이상, 산에 들어가도 환각에 휘말리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 독산의 절경을 마음껏 감상하실 수 있다는 말입니다!""그렇습니까? 독산의 비밀을 푸는 것이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렵다고 여겼는데, 이렇게 쉽게 지옥의 불꽃으로 독성을 없앨 수 있었다니요…!"일곱째 아가씨가 중얼거리며 탄식하자, 탕양이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예. 겉보기엔 어려운 일도, 걷기 힘든 길도, 내리기 힘든 결정도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의외로 쉽게 해결할 수 있답니다.""어찌 말 속에 다른 뜻이 있는 것 같습니다?"일곱째 아가씨가 담담한 눈빛으로 그를 힐끗 바라봤다.그러자 탕양이 당황한듯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독산은 약도성에서 ‘귀역’이라고도 불린다.약도성 백성들은 거의 독산에 들어가지 않는다. 해마다 보물을 찾아 벼락부자가 되길 꿈꾸며 산으로 들어서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무사히 나오는 사람은 극소수였기 때문이다.심지어 살아서 나온 사람 중에서도 정신이 나가거나 미쳐버린 자들이 적지 않다.그래서 조정 신하가 독산에 들어가겠다는 소식은 백성들의 큰 주목을 받았고, 심지어 일부는 관저로 직접 찾아와 독산이 위험하다고 경고하며 요괴와 귀신이 들끓으니 절대 들어가지 말라며 충고까지 했다.그러자 탕양은 그들에게 독산에 요괴나 귀신이 있는 곳이 아닌, 신령과 신선들이 지내는 신성한 곳이라 말했다. 그동안 산에 들어갔던 백성들이 그만 욕심에 사로잡혀 신령을 거슬렀기에 독산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라고, 경외심을 품고 신앙심을 가지고 들어가면 무사히 나올 수 있다며 설명까지 덧붙였다. 그리고 이 말은 당대 국사가 직접 언급한 것이라며, 이를 검증하기 위해 자신이 파견된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탕양 또한 이 말을 하면서도 내심 불안했다. 사실은 이 이야기 모두 황제가 부유한 이들과 이웃 나라의 신도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근거 없는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이기 때문이다.하지만 독산의 풍경은 북당에서의 유일무이한 절경이었기에 탕양은 결국 독산의 모습을 드러내고 개방하자는 제안에 동의했던 것이다. 탕양의 말을 믿는 사람은 그저 소수에 불과했고, 믿지 않는 사람, 의심하거나 반신반의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저 상황을 지켜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산에 들어가기 전, 탕양이 일곱째 아가씨에게 물었다.“정말 나와 함께 들어갈 셈입니까?”일곱째 아가씨는 젊은 시절 한 번 독산에 들어간 적이 있었는데, 멀리 가기도 전, 산속에서 만난 지옥의 불꽃에 매료되었다. 그렇게 꽃밭에서 넘어진 후, 정신을 차리자마자 황급히 산을 빠져나왔던 것이다.하지만 산을 떠난 후에도 그 붉은 색의 꽃은 그녀의 마음속에 잊히지 않았고, 마치 주문에 걸린 듯 계속 머릿속에 떠올랐다.다시 독산에 오자, 과거의
“그렇다면 아버지 말씀을 잘 듣거라. 네 양아버지께서는 아바마마처럼 늘 칭찬하고 좋은 말만 해주시지 않느냐? 집안에서 누군가는 엄격하고 누군가는 따뜻한 법이다. 애정 어린 따스함을 즐겨도 되지만, 엄격한 가르침 또한 잘 따라야 한다.”하지만 냉명여는 아직 어려 이해하지 못한 듯 고개를 대충 끄덕이며 말했다.“열심히 무술을 연마하여, 나중에 꼭 누나를 도와드리러 오겠습니다.”택란이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좋다. 그럼, 너를 기다리마!”냉명여는 뜨거워진 자신의 얼굴이 부끄러워져 고개를 돌리고 싶었지만, 그녀가 머리를 쓰다듬는 것이 못내 편안하게 느껴졌다.다른 한편, 탕 대인과 일곱째 아가씨도 약도성에 도착해, 약도성의 관저는 순식간에 북적이기 시작했다.호명은 이제 조정의 명을 받고 약도성의 관리로 임명되었는데, 조정에서 약도성을 시찰하러 온 사람들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약도성에서 장사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이기에 의부인 탕양과 일곱째 아가씨를 극진히 모셨다.일곱째 아가씨는 재력이 뛰어나니, 그녀가 약도성에서 장사를 시작한다면, 도성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독산이요?”이때, 그녀가 갑자기 독산에 관심을 보이자, 호명이 멈칫했다.“독산은 굉장히 위험한 곳입니다. 이곳 백성들조차 들어가기를 꺼리지요. 안에 미혼진이 있어, 들어가면 나올 수 없다고 합니다.”탕 대인이 말했다.“그건 네가 걱정할 일이 아니다. 이틀 후, 우리는 독산에 따로 갈 계획이다. 그러니 그 전에 일곱째 아가씨를 잘 모시고, 도성 곳곳과 약도성을 보여주도록 하거라. 아가씨가 독산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면, 50만 냥을 투자할 것이고, 그중 30만 냥은 약도성의 길을 만들고 발전을 위해 쓰이게 할 것이다.”그러자 호명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30만 냥이라니요! 정말 단비 같은 소식입니다! 지진으로 인해 많은 길이 끊기고, 집들이 무너졌습니다. 인근 주부에서 도움을 주고, 조정에서도 예산을 지원해 주었지만, 아직도 턱없이 부족합니다. 만약
택란은 금나라 어린 황제의 의도를 들은 후 화들짝 놀랐다. 그는 택란이 금나라에서 죽었다고 생각해 시신을 찾을 수 없으니, 그녀의 가족에게 묘를 만들게 시켜 혼이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전하러 왔던 것이었다.또한, 택란은 어린 황제가 정말 자신이 죽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꽤 의외였다. 게다가 충직하게 그녀의 가족을 찾아다니며 길을 잃은 원혼이 되지 않도록 도와주려 했으니 말이다.“그가 실망하겠소. 이 도성에 다섯째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있어도, 딸 이름이 택란인 자는 없을 테니.”그러자 주 아가씨가 웃으며 말했다.“하지만 정말 찾았지 뭡니까? 서자림 근처 마을에 다섯째라 불리는 자가 있었습니다. 마침 집안에 란이라는 딸아이가 6개월 전부터 종적을 감추었지요. 게다가 다섯째라는 사람은 지진으로 두 다리를 잃은 상태였고, 집안에 란이의 언니도 있어서 금나라 어린 황제가 사람을 보내 그들을 데려갔다고 합니다.”“정말 그런 우연이 있단 말이오?”택란이 놀라며 말했다.“예. 그 다섯째 사람도 딸이 죽은 줄 알고 슬피 울면서 상을 치렀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후에 딸과 함께 황제의 사람들을 따라갔습니다.”택란이 피식 웃었다. 정말 우연도 이런 우연이 없었다. 다만 그의 딸의 이름은 란이인데, 그녀는 금나라 어린 황제에게 자신의 이름이 택란이라고 했다.한 글자 차이로 생긴 오해였다. 어쨌든 금나라 어린 황제가 은혜를 갚기 위해 한 일이니, 크게 신경 쓸 필요는 없었지만, 어린 황제가 이런 일까지 신경을 쓸 겨를이 있었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설마 금나라에 무슨 변화가 생기기라도 한 걸까?해가 바뀌며 어린 황제도 이제 14살이 되었기에, 만약 조정 대신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권력을 되찾을 가능성도 있었다.그와의 짧은 인연을 생각하며, 택란은 그가 권력을 되찾기를 바랐다. 물론, 그가 권력을 잡으면 약도성에도 좋은 일일 것이기에, 만약 실현이 된다면, 택란은 금나라에 가서 두 나라 간 자원 채굴을 논의할 계획이었다.한편, 서일이 떠난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