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부르고 있는데 어찌 대답하지 않습니까?"안왕비가 그를 살짝 밀었다.안왕은 얼른 정신을 차리고 다급히 대답했다."됐다. 먼저 나가 놀거라. 엄마가 곧 갈 테니!"원경릉이 아이들을 보내려 하자 계란이가 친절하게 한마디 되물었다."큰아버지, 편찮으십니까? 안색이 안 좋으니, 몸조심하십시오."안왕은 멍하니 계란의 다정하고 하얀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이의 눈빛에서 반짝이는 빛은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었다. 안왕이 진지하게 말했다."꼭 조심하마."아이들이 물러난 후 원경릉은 안왕의 상처를 살폈다.상처는 빨갛게 곪아 살이 썩었고 목과 림프도 심하게 부어있었다. 원경릉도 그 모습에 냉기를 들이마셨다. 염증이 심각한 상황이었다.안왕의 체온을 확인해 보니, 역시 예상했던 대로 39도로, 심한 고열에 시달리고 있었다."이렇게 된 지 얼마나 되었습니까?"원경릉이 물었다."상처가 짓무른건2년이 채 되지 않았습니다. 때로는 좋아지고, 때로는 나빠지고 그랬습니다. 약을 계속 먹었지만 여전히 완쾌하지 않았습니다."안왕비가 답했다."2년이나 된 것입니까?"원경릉은 한숨을 쉬고 안왕을 바라보았다."그럼 지금까지 살아있다는 게 기적이오."안왕비가 말했다."약을 계속 먹긴 했지만, 귀경하는 동안 약을 쓰지 않았습니다. 어제 의원을 불러 약을 썼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더 심각해졌습니다.""당연한 일입니다. 오는 길 내내 염증이 더 심해졌고 상처를 깨끗이 닦지도 않고 약을 썼잖습니까? 먼저 상처를 깨끗이 씻으십시오."원경릉은 약상자를 열고 작은 칼을 꺼내고 멈칫하다 물었다."좀 아프실 텐데 참으실 수 있지요?"안왕은 이미 아픔에 습관 되었다."참을 수 있소!"원경릉은 마약을 쓰지 않았다. 칼을 소독하고 솜과 생리식염수, 요오드까지 꺼냈다. 비록 이 물건을 안왕부부는 알아보지 못했지만, 왠지 마음이 놓였다.상처를 다 씻어내려면 꽤 아픈 일이다. 원경릉도 조금 허둥지둥했다. 안왕이 고통을 참을 수 있다고 했지만, 상처를 긁자 아픔에 몸을 떨
원경릉이 떠난 후, 안왕은 침대에 누워 옆에서 바삐 움직이는 안왕비를 보며 나지막이 말했다."몇 년 동안 내가 한 일을 후회한 적 있는지 묻는다면, 바로 오늘이오."안왕비는 의아했다."왜 지금입니까? 예전에도 후회했다고 생각했습니다.""예전에 후회한다고 말했을 때, 상황이 신경 쓰이기도 했소. 하지만 지금은 정말 후회하고 있소. 아이들의 선의를 보니, 우리 세대의 원한이 지속되지 않은 것 같소. 다섯째네가 얼마나 넓은 마음을 가졌는지 모를 일이오. 나에 대한 원망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아이들이 그렇게 잘해주지 않았을 것이오."안왕비가 자리에 앉아 부드럽게 웃었다."알고 있으니 다행입니다."안왕이 그녀의 손을 잡고 쓴웃음을 지었다."계속 잘못을 저지르지 않아서 참 마음속으로 다행이라 생각하오. 아바마마와 다섯째가 기회를 준 것도 참 고맙소. 그렇지 않았다면 내가 어찌 지금까지 잘 지낼 수 있었겠소?"안왕비가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팔과 부상, 그리고 몇 년 동안 받은 고통까지. 어찌 잘 지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당연하오!"안왕이 그녀의 손을 세게 잡았다."이것이야말로 잘 지내는 것이오. 몸이 힘든 것이야 아무런 문제가 아니오."안왕비가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마음만 편하면 됩니다."원경릉은 아이들을 데리고 안왕부를 떠나 숙왕부로 향했다. 며칠 지나면 아이들이 돌아가니, 아이들을 데리고 태조부를 뵈러 가야 했다.숙왕부는 예전과 다름없이 떠들썩했다. 아이들이 오는 것을 보고 그들은 더욱 기뻐했다. 무상황은 계란을 끌고 여러 번 훑어보다 계란의 몸이 말랐다고 잔소리를 늘어놓았다.계란이는 어른을 공경하며 듣기 좋은 말로 그들을 기쁘게 했다.원경릉은 숙왕부에 온 김에 혈압을 측정하고 몸 상태를 여쭤보았다.그리고 아이들은 각자 놀러 자리를 떠났다.계란은 오빠들과 함께 가지 않고 불이 났던 곳으로 홀로 향했다.다섯째가 돈을 배상했고 다들 힘을 합쳐 무너진 정원을 건설했기에 그곳은 이미 새로 지어져 있었다. 정원의 벽과 목재는 저렴
왕비가 매서운 표정으로 묻자, 안풍친왕은 잠시 멈칫했다."그건... 됐소. 아이라 철이 없으니, 없던 일로 하시오!"왕비는 그의 팔을 잡아당겨 밖으로 끌고 나갔다."당장 나와서 얘기하시오. 대체 어떻게 된 일이오? 대체 왜 눈치를 보는 것이오?"안풍친왕의 목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그런 적 없소. 이 손 놓으시오!""그런 적 없다고요? 그동안 부부로 지내면서, 당신의 눈빛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소. 몇 년 전 그 불, 계란이가 한 짓이 아니오?""계란이가 했다고 한 적 없소."안풍친왕이 반박했다."하지만 사람을 데리고 다섯째를 찾아가 배상하라고 하지 않았소?""나와 상관없는 일이오. 기화가 계란의 능력이 너무 강하여 시공간을 사이에 두고 억누를 수 없다고, 조금 일찍 보내야 한다고 했소. 다섯째한테 말하면 원치 않을 것이니, 나도 그저 계란이를 위해 그런 것이오...""아니오, 계란이가 간 후, 기화가 구운 양 몇 마리를 보내지 않았소?""그것도 그저 얘기가 나온 김에 준 것이오..."청우헌 사람들은 뒤에 대화를 더 이상 듣지 못했다. 3대 거두와 원경릉은 시선을 마주한 채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했다.그해의 불은 계란이가 저지른 것이 아니었나?다들 계란이를 바라보았는데, 계란이는 여전히 의자에 앉아 얌전하게 차를 마시고 있었다. 그녀의 입가에는 옅은 미소를 띠고 있었고 눈빛에도 티 나지 않는 득의양양한 기색이 있었다.군자가 원수를 갚는 데는 10년도 늦지 않았다.그 해의 불은 정말 그녀가 지른 것이 아니었지만 아무리 변명해도 소용없었다. 염력으로 불을 지를 수 있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아 모두 그녀를 겨냥할 수밖에 없었다. 원경릉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계란을 바라보았다."아버지가 널 억울하게 했구나."계란이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어마마마, 안 그래도 일찍 가고 싶었습니다."원경릉이 고개를 끄덕였다."알고 있다. 네 마음을 나도 느꼈다. 넌 오라버니와 함께 있고 싶었지?"계란이가 다시 고개를
저녁 무렵에 소월궁으로 돌아온 우문호는 원경릉이 탁자 앞에서 일기를 쓰면서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는 오늘 원경릉이 넷째를 치료하러 궁을 나간 것을 알고 있었기 혹시나 그는 혹시 넷째가 그녀를 억울하게 한 줄 알고 성큼성큼 다가가 그녀를 안고 화를 냈다."그가 또 무슨 사고를 친 것이요? 또 듣기 싫은 말로 상처를 준 것이오?"원경릉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몸을 돌려 그를 안았다."급해 마시오. 그게 아니오. 그런 말 한 적 없소."다섯째가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고 눈시울이 붉어진 그녀를 보며 안쓰러운 듯 물었다."어떻게 된 일이오? 오랫동안 울지 않았는데, 왜 갑자기 궁에서 울고 있는 것이오?"원경릉은 그를 끌고 자리에 앉아 오늘 계란이가 한 말을 한 글자도 빠짐없이 그에게 전해주었고, 말을 마치고 그녀는 다시 눈물을 흘렸다."계란이가 너무 철이 들었소. 나를 대신해 아쉬움을 보상해 줄 줄도 알고 있소."다섯째는 마음이 아파서 한숨을 내쉬었다."계란이를 제일 크게 혼낸 것이 숙왕부에서 불이 났을 때였소. 계란이가 지른 줄 알고 혼냈소. 사실 계란이를 보내고 생각할 때마다 항상 그때 세게 혼낸 것을 후회했소. 내가 어찌... 아이고. 억울하게 혼난 것이라니."그는 생각할수록 마음이 아파왔다."그렇게 어렸는데 어른에게 효도할 줄 알고 있소. 원 선생, 아이가 참 철이 들었소. 심지어 그때, 잘못했다고 하면서 변명도 하지 않았소."원경릉이 말했다."계란이는 그때 오라버니들과 함께 가려고 했소. 아이가 참 고집이 있소."다섯째는 눈살을 찌푸리고 생각에 잠겼다. 그러고는 천천히 눈을 뜨고 원경릉의 손을 잡고 말했다."원 선생, 나는 줄곧 아이들을 걱정했소. 기쁜지, 건강한지,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될지 늘 걱정했소.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쓸데없다고 느꼈소. 만두든 계란이든 우리가 걱정할 필요 없소. 아이들은 각자 갈 길이 있을 것이오."오래된 부부가 아이들을 생각하니, 기쁘기도 하고 짠하기도 했다.황실 종부는 계란의 봉호를
위왕은 밥을 먹으면서 애매한 답을 했다."빨리 먹어야 하오. 먹다가 자네가 나를 쫓아내면 어떡하오?"정화가 담담하게 말했다. "그럴 정도는 아닙니다!"그러자 순간 웃음을 터트린 위왕의 입에서 밥알이 튀어나왔다. 그는 다급히 손으로 막고 밥을 삼킨 후 말했다."고맙소!"그는 밥을 게 눈 감추듯 먹어버렸다.정화는 깜짝 놀랐다. 비록 그녀도 식량을 아끼는 것을 제창하지만 집안 음식을 한 끼도 깨끗이 먹어 치운 적이 없었다.정화는 식탁을 정리한 후, 위왕에게 차 한 잔을 올렸다.위왕은 맑은 차를 보면서 한참동안 마시지 않고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방금 너무 많이 드셨으니, 차 한 잔 마시고 느끼함을 푸십시오!"정화가 말했다.위왕이 차를 들고 웃으며 말했다."오랫동안 차를 마시지 않아, 차의 맛을 모르겠소.""그래요? 예전에 차 마시는 것을 즐기지 않았습니까?"한 모금 마시자, 감미로운 차의 맛이 퍼지며 말할 수 없는 편안함이 느껴졌다. "맞소. 과거 위왕부에서 평온하게 지내니, 차를 마시며 여유를 즐겼소. 하지만 변방에서 바삐 지내다 보니 여유롭게 차를 마실 시간이 거의 없었소."그는 정화를 보지 않고 말을 이었다. 그는 정화의 맑은 눈동자를 직시할 수 없었다.그만 그냥 이렇게 얘기만 나누어도 좋았다.정화가 말했다."그래도 차는 마셔야 합니다. 평생 좋아하는 일이 별로 없으니 하나라도 견지해야지요.""좋소. 당신 말을 듣겠소!"위왕은 차를 마시고 그제야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당신과 상의해야 할 일이 있소.""말하십시오!"정화가 그에게 차를 따라주고 다시 자리에 앉아 그를 바라보았다.위왕이 말했다."아이들과 이곳에서 지내면 서원에 가는 것이 멀지는 않소? 일찍 집을 나서도 날이 어두워지고 나서야 돌아오지 않소? 위왕부에서 지내는 것은 어떻소? 서원과 매우 가깝소."하지만 정화가 계속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위왕이 눈치를 채고 말했다."걱정할 필요 없소. 돌아가서 지내지 않을 것이오. 귀경해도 다섯째네가
정화가 위왕부로 이사하자 다들 축하하러 왔다.셋째 제왕은 특별히 위왕에게 계속 초왕부에서 지내며 돌아가지 않을 것인지 물었다.하지만 위왕은 꾹 참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는 그를 한 대 때렸다. 그도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며칠 가서 더 묵고 싶다고 입을 열 면목이 없었다.나긋나긋하게 나가라는 소리가 아직도 그의 마음속에서 맴돌 뿐이었다.그는 그저 정화를 몇 번 더 보기 위해 매일 아침 위왕부로 갔다. 그렇게 뻔뻔스럽게 경성에서 한 달 반 동안 머물다가 안왕의 부상이 거의 나은 후에야 함께 강북부로 돌아갔다.안왕은 이번에 귀경한 후 사람이 완전히 바뀌었다.그는 몇 년 동안 반란의 뜻도, 다섯째에 대한 질투도 품지 않았다. 친하지 않았으니, 고마운 마음도 당연히 없었다.그러나 이번에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후 원경릉의 도움을 받게 된 것이다. 한 달 반 동안 황후의 신분으로 궁 밖으로 나와 그의 상처를 치료하고 약을 처방하며 치료 상황을 살폈다. 상처에 변고가 생기면 그녀가 조급해하고 걱정하고 있다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혈육의 정은 볼 수도, 느낄 수도 있었고 조금의 가식도 없었기에 황후가 정말 그를 가족으로 대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하지만 원경릉은 아무 생각 없이 그를 환자로 대하는 것을 그는 알지 못했다. 그녀의 환자가 문제가 생긴다면 그녀는 늘 관심을 가질 것이기에 그가 생각하는 가족의 정이란 중요하지 않았다. 기껏해야 그는 변방을 지키는 병사일 뿐이라 열심히 상처를 치료해 줬을 뿐이었다.강북부로 돌아간 후, 그는 셋째와 함께 조카딸의 약도성으로 다녀오려고 했다. 계란이가 돌아오면 약도성으로 갈 것이라고 다섯째가 말한 적 있었기에 2년 동안 약도성의 문제를 서둘러 평정하려 했다.예전에 그는 병사를 쓰려하지 않았다. 오랫동안 안정을 취하려면 병사는 최선의 방법이 아니었기에, 그저 천천히 교육을 통해 백성들의 생각을 바꾸고, 북당인과의 혼사를 통해 북당인의 피를 얻을 생각이었다. 그렇게 수십 년이 지나면 그 문제들도 점점 사라
위왕은 그 어린아이가 계란이였다는 것을 알고 눈이 휘둥그레진 채 다급히 말했다."왜 온 것이냐? 누가 너를 데리고 온 것이냐? 스승님과 산으로 돌아가 공부한다고 하지 않았느냐? 네 아버지는 네가 온 것을 알고 있느냐?"연달아 이어진 물음과 동시에 그는 계란이의 손을 잡고 안쓰럽다는 얼굴로 말을 이었다."어서 들어오거라. 햇빛이 하도 쎄서 그런지 얼굴도 다 빨개졌구나."안왕이 고개를 돌려 물었다."다과가 준비되었느냐? 어서 다과를 갖고 오거라."안왕비와 안지도 걸어 나왔다. 여동생을 본 안지는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하며 덥석 계란의 손을 잡았다."계란아, 왜 온 것이냐? 오숙도 오신 것이냐?""아버지께서는 함께 안 오셨습니다. 스승님께서 데려다주셨습니다."계란이가 웃으며 위왕이 묻는 말에 친절히 답했다."어서 들어가자. 요즘 날씨가 정말 덥구나!"안지는 그녀의 손을 잡고 빠르게 안으로 들어갔고, 안왕비는 바로 하인에게 다과와 군것질을 대접하라고 명했다. 강북부에는 맛있는 것이 별로 없었다. 다행히 경성에서 데리고 온 부엌 나인이 다과를 만들 줄 알았다.강북부에서 다과는 최고의 음식이었다.계란이가 자리에 앉자마자 위왕과 안왕이 연달아 ‘고문’을 시작했다."택란아, 네 아버지가 정말 네가 오는 것을 알고 있었느냐?"위왕이 의아해하며 묻자 우문택란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믿지 못하시면 어르신에게 서신을 보내 물으십시오."안왕과 위왕은 시선을 마주했다. 어르신이라는 세 글자가 괜히 속 시원하게 느껴졌다.위왕이 말했다."서신을 보내 물으마. 진국공주로서 절대 문제가 생겨선 안 된다. 네 아버지가 왜 보낸 것이냐? 산에서 스승과 무예를 익혀야 하지 않느냐?"우문택란은 차를 한 모금 마시고 성숙한 표정으로 말했다."스승님께서 산에서 배운 지 몇 년이 되었지만, 도에 통달하려면 경험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지금도 공부하고 있습니다. 다만 강북부나 약도성에서 인턴 생활을 할 뿐이지요.""인턴?"안왕은 믿을 수 없었지만, 진지한 계
위왕은 편지를 쓰고 비둘기의 다리에 맸다. 비둘기는 쏜살같이 하늘을 가르며 빠르게 사라졌고, 그 모습을 보고 나서야 그는 몸을 돌렸다.하지만 그가 몸을 돌리자마자 꼬마 봉황이 비둘기를 뒤쫓았다.비둘기도 말할 수 있다면 아마도 소리를 질렀을 것이다.정면에서 날개를 펼친 꼬마 봉황 때문에 비둘기는 어쩔 수 없이 공중에서 다급히 멈춰 섰다. 봉황은 사나운 눈빛으로 커다란 날개를 펼쳤고 비둘기는 반응할 새도 없이 봉황의 날개 사이에 갇혔다.비둘기는 소리도 지르지 못했다.우문택란이 강북부에 온 지 4일이 되었다. 그동안 위왕은 줄곧 우문택란과 안지를 데리고 강북부 곳곳을 구경하며 그곳의 민속을 이해하고 백성들의 삶과 변방 병사들의 노고를 느끼게 해줬다.그들은 강북부의 산과 풍경도 구경했다.안지는 첫 두날은 따라다닐 수 있었지만, 다니는 곳이 너무 많아 더 이상 버틸 수 없어 나머지날엔 그들을 따라가지 않았다.안왕비도 우문택란의 뛰어난 체력에 탄복했다. 그녀는 하루 종일 산을 오르내리고 돌아와도 조금도 피곤해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그녀와 함께 다니던 위왕이 피곤한 기색을 띠었다.나흘째 저녁 날, 우문호로부터 서신을 받았다.안왕이 먼저 서신을 본 후 위왕에게 전했다."다섯째는 알고 있습니다."위왕은 편지를 열어 읽기도 전부터 무척 놀라했다."이렇게나 길게 쓴 것이냐?"편지에는 다섯째가 기화가 계란을 데리고 강북부에 가서 견문을 넓히는 것을 승낙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기회를 빌려 약도성에도 다녀가고, 몇 달 지내도 된다고 했다. 아무래도 그녀의 봉지이니, 귀속감을 가지게 해야 한다면서, 특별히 그녀가 원하는 일에 간섭할 필요 없이 하게 하라고 당부했다. 경험을 많이 쌓게 하고 애지중지할 필요도 없다고 했다.위왕은 편지를 읽으면서 무언가 이상하다고 느꼈다. 다섯째의 성격으로 어찌 딸이 위험을 무릅써도 괜찮으니, 애지중지할 필요 없다고 할 수 있을까? 다섯째는 계란이에 대한 정성이 지극하여 고생은 말할 것도 없고 심한 말도 하려 하지 않
잔뜩 긴장한 채로 앞으로 몸을 반쯤 내밀고 있었던 주 지부는 우렁찬 상대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중심을 잃은 듯 비틀거렸다. 그는 이내 팔을 뻗어 망루의 기둥을 붙잡으려 했지만, 허공에서 멈추고 말았고, 그대로 몸이 앞으로 쏠려 떨어져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가 말에서 빠르게 날아올라, 믿기 힘들 정도로 빠른 속도로 그에게 달려갔다. 상대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주 지부가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그를 안고 빙 돌아서 바닥에 착지했다.주 지부는 깜짝 놀라서 그만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를 구해준 사람은 반짝거리는 눈망울에, 품위 있는 모습의 젊고 잘생긴 사내였다. 주 지부는 그를 황제의 호위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거의 죽을 뻔한 고비를 넘겼기에, 안도의 한숨을 내쉴 새도 없이 그에게 예를 올렸다.“대인,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그때 말들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는데, 서일이 먼저 말에서 내려, 다급히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괜찮으십니까?”우문호도 매우 놀란 듯했다. 조금만 늦었다면, 주 지부는 정말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숨을 들이쉬었다.“괜찮다.”그러고는 주 지부를 보며 물었다.“자네는 누구요?”주 지부는 마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보며, 누가 황제인지 추측했다.황제는 올해 마흔에 가까운 나이로 알려져 있었기에 위엄이 넘쳐 보일 것이었다. 그는 일행 중, 냉 수보와 홍엽을 만난 적 있었기에, 거친 모습을 한 이 인물은 아마도 호위로 추측된다. “묻지 않았소? 자네는 누구요? 어찌 죽으려고 하는 것이오?”서일은 그가 멍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자, 큰 소리로 다시 물었다.주 지부는 울 지경이었다. 냉 수보가 그를 보고 있으니, 예를 올려야 하지만, 황제도 자리에 있으니, 바로 냉 수보에게 예를 올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대체 누가 황제란 말인가?그는 황제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어, 결국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고는 그들에게만 들릴 정도로 낮은 목소
원경릉의 말은 그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고, 자리에 있던 관리들은 기쁨과 동시에 두려움에 휩싸였다. 이 대인은 땅에 엎드려 온몸을 바르르 떨고 있었다. 그는 살아생전에 자신이 황제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은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평소 차분하고 신중한 주 지부도, 그도 감정이 격해져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눈가에는 눈물이 가득했다.황후를 만난 것만으로도 큰 영광이라 생각했는데, 황제까지 오신다는 소식에 그의 마음은 흥분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원경릉은 평생을 경성에서 다섯째와 함께 있었기에, 그녀는 그저 그가 온다는 사실을 간단히 전했을 뿐이었는데 말이다. 그녀는 다들 걱정 없이 역병을 치료하고, 언제나 황제가 그들의 뒤를 든든히 지켜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의 반응을 보니, 황제가 직접 오는 것이, 지방 관리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달았다.원경릉이 급히 말을 덧붙였다.“폐하게서는 그저 역병 때문에 온 것이니, 모두 각자 맡은 일에만 최선을 다하면 되네.”“예, 예, 마마의 명을 따르겠습니다.”주 지부가 눈물을 닦으며 답했다.그렇게 관아와 의서가 협력하여, 오계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원 할머니는 역병을 치료할 수 있는 처방을 몇 가지 내렸다. 경증 환자는 약차를 계속 마시고, 증상이 악화하거나 중증 환자는 그녀의 처방을 사용하도록 했다.전에 이미 근처 주부에 연락해 약을 보내라 명했고, 오계부에서 구비한 약까지 있으니, 이번 역병을 대처할 수 있었다.오계부 의서는 이번 역병을 과거의 역병과 동일하게 생각하고, 소홀히 한 것 외에는 준비가 충분했다.원경릉은 황제 일행이 저녁 무렵 오계부에 도착할 것이라 예상했다.주 지부는 원래 여러 관리와 함께 황제를 맞이할 예정이었지만, 원경릉이 이를 단호히 거부했다. 그녀는 황제가 미복 순행 중이니, 과하게 맞이하여 백성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했다.그 말에 주 지부는 당황했다.황제가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아무도 맞이하지 않는다니, 어찌 그럴 수 있다는 말인가?그러나 그는 황
약을 쓰자, 주 지부의 열이 단번에 내려갔다.열이 내려가니 정신이 맑아져, 그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는 애써 자리에서 일어나 황후마마에게 예를 올리겠다고 고집 피웠다.원경릉은 그에게 누워 있으라고 말한 후, 역병에 관해 이야기하며 주 지부에게 이를 중시할 것을 당부했다.주 지부는 이를 듣고 깜짝 놀라 말했다.“소신은 매일 의서에 사람을 보내, 역병의 상황을 보고받고 있사옵니다. 매일 보고된 상황은 그다지 심각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역병이 발생했지만, 작년과 비슷한 정도였고, 약재도 충분한데, 어찌 이렇게 심각해진 것입니까?”“매년 역병이 발생했으나, 대대적으로 퍼지지 않아,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네.”원경릉이 답했다.“의서의 이 대인을 불러, 상황을 확인하겠습니다.”주 지부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어제 이미 그를 찾아가, 환자 수와 사망자 수를 조사하라 명했네. 하지만 그는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모를 것이네. 자네가 사람을 보내, 관아에 와서 상황을 보고하도록 하게.”“예!”주 지부는 곧바로 사람을 보냈다.푸른 옷을 입은 남자는 관아에서 일하는 관리였기에, 그는 반 시진도 채 되지 않아, 관아 내에서 병에 걸린 자가 얼마나 되는지 통계해냈다.관아 내에서 역병 증상을 보인 사람은 총 열여덟 명이었고, 그중 두 명은 병세가 심각하여 이미 집에서 쉬고 있는 상태였다. 주 지부는 관아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병에 걸린 줄 몰랐고, 관리의 보고를 들은 후, 큰 충격을 받았다.의서의 이 대인은 하루 종일 쉬지도 않고, 바삐 움직였다. 서관 대인이 직접 오셨으니, 어떻게든 시키는 일을 완성해내야 했다.그는 사실 역병이 그다지 심각하지 않고, 그저 작년과 비슷하다고 여겼었다.하지만 여러 지역과 의원을 돌아보고 나서야, 이번 역병이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처음엔 그저 서관 대인에게 보고만 하려고 했지만, 병세가 심각해지자 그도 조급해지기 시작했다.하지만 짧은 시간 안에 인원수를 통계하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도, 다섯째 일행은 여전히 도착하지 않았다.그래서 원경릉과 할머니는 다른 의관을 더 둘러보기로 하고, 몇 군데 더 돌아본 뒤 관아에도 갈 계획을 했다.그런데 한 의관에 들어서자마자, 푸른 옷을 입은 중년 남자가 다급히 뛰어오며 말을 걸었다. “수 의원, 대인께서 병세가 위중합니다. 어서 봐주셔야 합니다.”의원은 그 말을 듣자마자, 약상자를 집어 들고 다른 환자들을 그냥 남겨둔 채, 푸른 옷의 중년 남자와 함께 나가려 했다.원경릉이 그를 막아 세우며 말했다.“의관에 있는 환자들을 돌봐야 하지 않소? 우리 할머님께서도 의원이니, 지부 대인의 병은 할머님께서 봐 드릴 것이오.”푸른 옷의 사내는 초조한 듯 원경릉을 향해 소리쳤다.“말도 안 되는 소리 마시오!““대인의 병세가 급박한데, 혹여라도 지체되면 당신들이 책임질 수나 있겠소?”바로 그때, 원 할머니가 호패를 꺼내, 그의 눈앞에 들이밀며 단호하게 말했다.“길을 안내하거라!”조급한 표정을 짓던 푸른 옷의 사내는 호패를 보자마자 표정이 얼어붙었다. 이내 정신을 차린 그는 곧장 허리를 굽혀 예를 올리며 말했다.“서관 대인께서 오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무례를 범해 송구하옵니다.”“그만 사과하고 길 안내나 하시오.”원경릉이 말했다.“예, 예!”사내는 급히 물러서서, 예를 갖춰서 길을 가리켰다.“마차가 밖에서 대기 중입니다. 서관 대인, 이쪽으로 오시지요.”원경릉은 할머니를 부축해 마차에 올랐고, 곧장 관아로 향했다.지부 대인은 따로 사저가 없어 관아의 뒷마당에서 거주 중이었다. 혼자 지내는 데다 관아가 워낙 가까워 편리했기 때문이다.관아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안으로 들어갔다.주 지부는 병세가 꽤 심각해져 있었다. 그는 어지럼증과 흉통에 시달려, 침대에 누운 채 말을 꺼낼 힘도 없었다.원경릉은 직접 치료에 나섰고, 약상자를 열어 체온 측정기와 청진기를 꺼냈다.푸른 옷의 사내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가씨께서도 의원이십니까?”그러자 곁에 서
이 대인이 원경릉에게 의학을 잘 모른다고 반박할 틈도 없이, 원 할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말대로 하게. 하루만 줄 테니, 그 안에 역병에 관한 모든 자료를 가져오게. 사망자 수도 포함되어야 하네." 이 말까지 듣자, 이 대인은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었다. 비록 조사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서관 대인이 멀리서 오계부까지 왔으니, 시키는 일은 해야지 대인의 마음에 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사람들을 보내 조사를 명한 후, 이 대인은 거처를 마련해 드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원경릉이 말했다. "괜찮습니다. 의서에 의원이 많지 않으니, 대인도 바쁘실 텐데요. 저희가 직접 오계부를 돌아보겠습니다." 이 대인은 그녀가 원 할머니의 힘을 빌려 위세를 부린다고 생각해, 대꾸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말에 답도 하지 않고, 원 할머니에게 예를 올렸다. "어르신께서 머무실 계획이 있으시면, 부디 저에게 알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밤 대인을 잘 대접하라, 명을 내리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네. 일이나 보게." 원 할머니는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원경릉에게 말했다. "먼저 좀 돌아보다, 객사를 찾아 머물자꾸나." "예!" 두 사람은 역병을 조사하기 위해 다급히 이곳을 찾아왔기에, 먼저 각지의 의원을 직접 돌아보려 했다. 아마 다섯째 일행은 빨라야 내일이나 모레쯤 도착할 것이었다. 두 사람이 의서를 나서자, 이 대인은 뒤따라 나오려다 원 할머니의 날카로운 눈빛에 움찔하며 발길을 멈췄다. 두 사람은 오계부의 거리로 향했다. 거리가 꽤 번화했고, 사람들도 제법 많아, 대낮에는 조금 붐볐다. 그들은 곧장 의원으로 향했다. 의원 앞에는 약차가 많이 진열되어 있었지만, 환자는 얼마 없었다. 겉보기엔 역병이 퍼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원경릉은 안으로 들어가 의원에게 상황을 물었다. 그러자 의원은 요즘 들어 약차가 잘 팔리고 있고, 하루에 천 봉지가 넘게 팔린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도 역병
늦게 출발한 원경릉은 신속하게 오계부로 향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오계부 근처 주현에 도착하자마자, 할머니가 현지 혜민서로 가야 한다며 잠깐 멈추자고 했다. 그러고는 혜민서에 오계부로 약을 공급할 준비를 하게 했고, 명을 받으면 바로 오계부로 보낼 수 있도록 미리 준비를 당부했다. 혜민서 산하의 의료기관들은 지난 몇 년간 개혁을 통해 뚜렷한 성과를 거두었고, 지역 간의 연결도 긴밀해졌다. 특히 역병을 상대하는 체계가 가동되면 상부에서는 전력을 다해 의원과 약을 지원해줄 수 있었다. 신신당부한 뒤에야 원경릉과 할머니는 오계부로 재빨리 향했다. 곧이어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우문호 일행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오계부는 인구가 500만 명에 이르는 곳으로, 두 개의 주부가 통합된 지역이었다. 열대에 있어, 경작지가 많고 산이 많아 농업을 위주로 삼고 있었다. 그래서 조정은 이곳을 서부의 주요 곡창지대로 삼고 있었던 것이었다. 농업이 발달한 지역은 상대적으로 경제도 번화했고, 현지 백성들은 벼 외에도 감, 자두, 리치 등을 대량으로 재배하고 있었다. 리치는 신선할 때 먹을 수도 있고, 말려서 건과로 만들어 팔 수도 있기에, 어느 정도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었다. 오계부는 백월국과 인접해 있었는데, 백월국은 북당의 속국으로 사이가 우호적이며 경제 교류도 활발했다. 이는 양국의 번영을 촉진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오계부의 지부는 장씨 성을 가진 오계부 출신이었다. 장 지부는 훌륭한 관리이며 지역 백성들로부터 존경받고 있었다. 원경릉과 원 할머니는 오계부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지역 혜민서를 찾았다. 할머니는 혜민서의 서관(署館) 신분을 밝혔다. 그녀는 북당 각 주부의 의서를 총괄하는 인물이고, 총책임자이기도 했다. 혜민서의 이 의원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두 사람을 안으로 청한 후, 바로 예를 올렸는데, 마치 신선이라도 본 것처럼 목소리까지 떨고 있었다. "소인은 이자옥이라 합니다. 어르신께서 친히 오신 줄도
그녀는 일단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 냉 대인이 자세한 상황을 묻는 사이에 제 대인의 피를 뽑았다. 약상자는 기능이 꽤 다양하기에, 바이러스 검사도 문제없었고, 안에는 양여혜가 준 소형 현미경도 있었다. 하지만 바이러스 관찰이나 세균 배양에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지체할 수 없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먼저 오계부로 향하고, 그녀는 이곳에 남아 제 대인을 치료하고 검사 결과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면 바이러스든, 세균 감염이든, 결과가 나와야 제대로 된 치료 방안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미색이 말했다. "저도 이곳에 함께 남겠습니다. 제가 환자를 돌보는 것 정도는 도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괜찮으니 먼저 가거라. 어쩌면 내가 더 일찍 도착할 수도 있으니깐." 원경릉이 말했다. 그녀는 혼자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지만, 미색까지 데리고 가는 건 무리였다. "우리가 먼저 출발하는데, 어찌 더 일찍 도착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미색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가능한 일이다. 원 선생은 늘 기적을 만들어내니." 우문호가 말했다. 그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고, 원경릉에게 다가가 조심하라고 몇 마디 당부했다. "알았소. 지체하지 말고, 어서 떠나시오. 오계부에 도착하면 곧바로 관아를 찾아가, 의원의 빠른 대처를 명하라 하시오. 만약 내가 먼저 도착한다면, 내가 관아를 찾아가겠소." "알겠소. 그럼, 먼저 가겠소!" 우문호는 그녀와 입을 맞추고 싶었지만, 보는 이가 많으니 그저 참을 수밖에 없었다. 서일은 황후를 홀로 두고 가는 것이 걱정되어, 우문호를 따라나서며 계속 물었다. "정말 황후를 이곳에 혼자 남겨도 되는 것입니까?" "그럼, 네가 남을 것이냐?" 우문호가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 "너도 원 선생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고 있지 않느냐?" 회왕 부부도 걱정은 되었지만, 다섯째의 여유로운 모습에 자신이 있을 것이라 믿었다. 다섯째 부부는 늘 비밀이 많은 사람들이라, 그들은 더 이상 신경
원경릉은 밖으로 나가, 오계부에 역병이 생긴 것 같다고 전했다. 오계부는 서쪽에 자리 잡고 있어, 기후가 더운 탓에 가끔 역병이 생기긴 했었지만 백성들은 고뿔 치료에 쓰이는 약초로 끓인 차를 즐겨 마시기에, 대규모로 역병이 돈 적은 없었다. 냉 대인이 말했다. "오계부에서는 이 상황을 조정에 알리지 않았습니다. 비록 해마다 역병이 생기긴 하지만, 빠르게 통제해 왔으니, 이번에도 예전과 같은 상황이지 않겠습니까?" 원경릉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런데 이번엔 더 심각할 수도 있습니다. 제 대인의 형도 역병으로 돌아가셨고, 그와 가까이 지낸 사람들도 병에 걸렸습니다. 이렇게 관아에만 역병에 걸린 자들이 많으니, 예전보다 더 심각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해마다 역병이 생겼으니, 그에 대한 대응책도 이미 있을 것입니다." 원경릉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해마다 역병이 생겼지만, 대대적으로 유행하지 않았기에, 현지 관리들이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 쉽게 통제될 것이라 생각하고, 방심할 수도 있으니깐요." 우문호가 물었다. "원 선생, 역병을 어떻게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하오?" "역병 상황이 안 좋을 것이라 추측할 뿐, 정말 오계부의 상황이 어떠한지는 아직 모르네. 제 대인은 여전히 고열에 시달리고 있어, 수액을 맞히고 해열제를 먹였소. 냉 대인과 함께 들어가 상황을 자세히 물어봐야겠소. 하지만 꼭 마스크를 끼고, 병을 막아야 하오." 원경릉은 유행성 독감이나 변이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일 것이라 의심하고 있었다. 그녀가 살던 세계에서는 A형 독감의 대규모 변이가 십수 년마다 한 번씩 발생했는데, 그런 변이 독감은 현대에서도 의료 체계에 큰 부담이 되곤 했다. 그러니 지금 이곳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만약 역병이 다시 시작한다면, 가능한 한 빨리 통제해야만 했다. 원경릉의 말을 우문호와 냉 대인은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도
원경릉은 청진기를 꺼내 그의 폐를 확인해 보았는데, 남녀가 가까이 접촉하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한 제 대인은 이내 손을 뻗어 그녀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병세가 심해 아픈 데다가,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묘한 위압감을 풍기는 의원의 단호한 눈빛과 기운에 그만 압도당하고 말았다. 원경릉은 앞쪽을 청진한 뒤, 그에게 옆으로 돌라고 한 다음에 꼼꼼히 살피고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며칠을 아프신 것입니까?" 제 대인은 꽉 막힌 코 때문에 콧소리를 내며 천천히 몸을 돌리고 답했다. "며칠 사이의 일입니다. 오계부를 떠날 때도 멀쩡했는데, 밤새 달리고, 말을 오래 타다 보니 고뿔에 걸렸나 봅니다." "기침 말고, 가슴 통증도 있습니까?" "예. 이곳이 아픕니다!" 제 대인은 가슴 근처를 손으로 누르며 말했다가, 숨쉬기가 어려운 듯 손바닥을 움직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도 아프고, 온몸 뼈마디도 다 아픕니다." 그러자 원경릉은 더 자세히 증상을 확인한 뒤 말했다. "약을 준비할게요. 수액을 좀 맞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수액이요?" 제 대인은 멍하니 원경릉을 바라보았다. "예. 질문은 하지 마시고, 그저 치료에 협조만 해주십시오. 병세가 꽤 심각한 편입니다." 원경릉은 제 대인이 폐렴이라 확신했고, 중증 폐렴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 대인은 병이 심하다는 말에 초조한 표정을 지으며 다급히 말했다. "의원 나리, 제발 최선을 다해 치료해 주십시오… 저에게는 아직 모셔야 할 노모가 있습니다. 지난달 병으로 형님께서 세상을 떠난 터라, 형님의 자식들도 제가 돌봐야 하니, 절대 이대로 목숨을 잃을 수는 없습니다." 원경릉이 답했다. "최선을 다할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치료에만 집중하시지요!" 제 대인은 감동을 받은 듯 감사 인사를 올렸다. "정말… 감사합니다." 원경릉은 곧바로 약을 지어 수액을 준비했다. 수액을 맞는 동안, 제 대인은 여전히 놀란 모습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