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비가 매서운 표정으로 묻자, 안풍친왕은 잠시 멈칫했다."그건... 됐소. 아이라 철이 없으니, 없던 일로 하시오!"왕비는 그의 팔을 잡아당겨 밖으로 끌고 나갔다."당장 나와서 얘기하시오. 대체 어떻게 된 일이오? 대체 왜 눈치를 보는 것이오?"안풍친왕의 목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그런 적 없소. 이 손 놓으시오!""그런 적 없다고요? 그동안 부부로 지내면서, 당신의 눈빛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소. 몇 년 전 그 불, 계란이가 한 짓이 아니오?""계란이가 했다고 한 적 없소."안풍친왕이 반박했다."하지만 사람을 데리고 다섯째를 찾아가 배상하라고 하지 않았소?""나와 상관없는 일이오. 기화가 계란의 능력이 너무 강하여 시공간을 사이에 두고 억누를 수 없다고, 조금 일찍 보내야 한다고 했소. 다섯째한테 말하면 원치 않을 것이니, 나도 그저 계란이를 위해 그런 것이오...""아니오, 계란이가 간 후, 기화가 구운 양 몇 마리를 보내지 않았소?""그것도 그저 얘기가 나온 김에 준 것이오..."청우헌 사람들은 뒤에 대화를 더 이상 듣지 못했다. 3대 거두와 원경릉은 시선을 마주한 채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했다.그해의 불은 계란이가 저지른 것이 아니었나?다들 계란이를 바라보았는데, 계란이는 여전히 의자에 앉아 얌전하게 차를 마시고 있었다. 그녀의 입가에는 옅은 미소를 띠고 있었고 눈빛에도 티 나지 않는 득의양양한 기색이 있었다.군자가 원수를 갚는 데는 10년도 늦지 않았다.그 해의 불은 정말 그녀가 지른 것이 아니었지만 아무리 변명해도 소용없었다. 염력으로 불을 지를 수 있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아 모두 그녀를 겨냥할 수밖에 없었다. 원경릉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계란을 바라보았다."아버지가 널 억울하게 했구나."계란이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어마마마, 안 그래도 일찍 가고 싶었습니다."원경릉이 고개를 끄덕였다."알고 있다. 네 마음을 나도 느꼈다. 넌 오라버니와 함께 있고 싶었지?"계란이가 다시 고개를
저녁 무렵에 소월궁으로 돌아온 우문호는 원경릉이 탁자 앞에서 일기를 쓰면서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는 오늘 원경릉이 넷째를 치료하러 궁을 나간 것을 알고 있었기 혹시나 그는 혹시 넷째가 그녀를 억울하게 한 줄 알고 성큼성큼 다가가 그녀를 안고 화를 냈다."그가 또 무슨 사고를 친 것이요? 또 듣기 싫은 말로 상처를 준 것이오?"원경릉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몸을 돌려 그를 안았다."급해 마시오. 그게 아니오. 그런 말 한 적 없소."다섯째가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고 눈시울이 붉어진 그녀를 보며 안쓰러운 듯 물었다."어떻게 된 일이오? 오랫동안 울지 않았는데, 왜 갑자기 궁에서 울고 있는 것이오?"원경릉은 그를 끌고 자리에 앉아 오늘 계란이가 한 말을 한 글자도 빠짐없이 그에게 전해주었고, 말을 마치고 그녀는 다시 눈물을 흘렸다."계란이가 너무 철이 들었소. 나를 대신해 아쉬움을 보상해 줄 줄도 알고 있소."다섯째는 마음이 아파서 한숨을 내쉬었다."계란이를 제일 크게 혼낸 것이 숙왕부에서 불이 났을 때였소. 계란이가 지른 줄 알고 혼냈소. 사실 계란이를 보내고 생각할 때마다 항상 그때 세게 혼낸 것을 후회했소. 내가 어찌... 아이고. 억울하게 혼난 것이라니."그는 생각할수록 마음이 아파왔다."그렇게 어렸는데 어른에게 효도할 줄 알고 있소. 원 선생, 아이가 참 철이 들었소. 심지어 그때, 잘못했다고 하면서 변명도 하지 않았소."원경릉이 말했다."계란이는 그때 오라버니들과 함께 가려고 했소. 아이가 참 고집이 있소."다섯째는 눈살을 찌푸리고 생각에 잠겼다. 그러고는 천천히 눈을 뜨고 원경릉의 손을 잡고 말했다."원 선생, 나는 줄곧 아이들을 걱정했소. 기쁜지, 건강한지,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될지 늘 걱정했소.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쓸데없다고 느꼈소. 만두든 계란이든 우리가 걱정할 필요 없소. 아이들은 각자 갈 길이 있을 것이오."오래된 부부가 아이들을 생각하니, 기쁘기도 하고 짠하기도 했다.황실 종부는 계란의 봉호를
위왕은 밥을 먹으면서 애매한 답을 했다."빨리 먹어야 하오. 먹다가 자네가 나를 쫓아내면 어떡하오?"정화가 담담하게 말했다. "그럴 정도는 아닙니다!"그러자 순간 웃음을 터트린 위왕의 입에서 밥알이 튀어나왔다. 그는 다급히 손으로 막고 밥을 삼킨 후 말했다."고맙소!"그는 밥을 게 눈 감추듯 먹어버렸다.정화는 깜짝 놀랐다. 비록 그녀도 식량을 아끼는 것을 제창하지만 집안 음식을 한 끼도 깨끗이 먹어 치운 적이 없었다.정화는 식탁을 정리한 후, 위왕에게 차 한 잔을 올렸다.위왕은 맑은 차를 보면서 한참동안 마시지 않고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방금 너무 많이 드셨으니, 차 한 잔 마시고 느끼함을 푸십시오!"정화가 말했다.위왕이 차를 들고 웃으며 말했다."오랫동안 차를 마시지 않아, 차의 맛을 모르겠소.""그래요? 예전에 차 마시는 것을 즐기지 않았습니까?"한 모금 마시자, 감미로운 차의 맛이 퍼지며 말할 수 없는 편안함이 느껴졌다. "맞소. 과거 위왕부에서 평온하게 지내니, 차를 마시며 여유를 즐겼소. 하지만 변방에서 바삐 지내다 보니 여유롭게 차를 마실 시간이 거의 없었소."그는 정화를 보지 않고 말을 이었다. 그는 정화의 맑은 눈동자를 직시할 수 없었다.그만 그냥 이렇게 얘기만 나누어도 좋았다.정화가 말했다."그래도 차는 마셔야 합니다. 평생 좋아하는 일이 별로 없으니 하나라도 견지해야지요.""좋소. 당신 말을 듣겠소!"위왕은 차를 마시고 그제야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당신과 상의해야 할 일이 있소.""말하십시오!"정화가 그에게 차를 따라주고 다시 자리에 앉아 그를 바라보았다.위왕이 말했다."아이들과 이곳에서 지내면 서원에 가는 것이 멀지는 않소? 일찍 집을 나서도 날이 어두워지고 나서야 돌아오지 않소? 위왕부에서 지내는 것은 어떻소? 서원과 매우 가깝소."하지만 정화가 계속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위왕이 눈치를 채고 말했다."걱정할 필요 없소. 돌아가서 지내지 않을 것이오. 귀경해도 다섯째네가
정화가 위왕부로 이사하자 다들 축하하러 왔다.셋째 제왕은 특별히 위왕에게 계속 초왕부에서 지내며 돌아가지 않을 것인지 물었다.하지만 위왕은 꾹 참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는 그를 한 대 때렸다. 그도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며칠 가서 더 묵고 싶다고 입을 열 면목이 없었다.나긋나긋하게 나가라는 소리가 아직도 그의 마음속에서 맴돌 뿐이었다.그는 그저 정화를 몇 번 더 보기 위해 매일 아침 위왕부로 갔다. 그렇게 뻔뻔스럽게 경성에서 한 달 반 동안 머물다가 안왕의 부상이 거의 나은 후에야 함께 강북부로 돌아갔다.안왕은 이번에 귀경한 후 사람이 완전히 바뀌었다.그는 몇 년 동안 반란의 뜻도, 다섯째에 대한 질투도 품지 않았다. 친하지 않았으니, 고마운 마음도 당연히 없었다.그러나 이번에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후 원경릉의 도움을 받게 된 것이다. 한 달 반 동안 황후의 신분으로 궁 밖으로 나와 그의 상처를 치료하고 약을 처방하며 치료 상황을 살폈다. 상처에 변고가 생기면 그녀가 조급해하고 걱정하고 있다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혈육의 정은 볼 수도, 느낄 수도 있었고 조금의 가식도 없었기에 황후가 정말 그를 가족으로 대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하지만 원경릉은 아무 생각 없이 그를 환자로 대하는 것을 그는 알지 못했다. 그녀의 환자가 문제가 생긴다면 그녀는 늘 관심을 가질 것이기에 그가 생각하는 가족의 정이란 중요하지 않았다. 기껏해야 그는 변방을 지키는 병사일 뿐이라 열심히 상처를 치료해 줬을 뿐이었다.강북부로 돌아간 후, 그는 셋째와 함께 조카딸의 약도성으로 다녀오려고 했다. 계란이가 돌아오면 약도성으로 갈 것이라고 다섯째가 말한 적 있었기에 2년 동안 약도성의 문제를 서둘러 평정하려 했다.예전에 그는 병사를 쓰려하지 않았다. 오랫동안 안정을 취하려면 병사는 최선의 방법이 아니었기에, 그저 천천히 교육을 통해 백성들의 생각을 바꾸고, 북당인과의 혼사를 통해 북당인의 피를 얻을 생각이었다. 그렇게 수십 년이 지나면 그 문제들도 점점 사라
위왕은 그 어린아이가 계란이였다는 것을 알고 눈이 휘둥그레진 채 다급히 말했다."왜 온 것이냐? 누가 너를 데리고 온 것이냐? 스승님과 산으로 돌아가 공부한다고 하지 않았느냐? 네 아버지는 네가 온 것을 알고 있느냐?"연달아 이어진 물음과 동시에 그는 계란이의 손을 잡고 안쓰럽다는 얼굴로 말을 이었다."어서 들어오거라. 햇빛이 하도 쎄서 그런지 얼굴도 다 빨개졌구나."안왕이 고개를 돌려 물었다."다과가 준비되었느냐? 어서 다과를 갖고 오거라."안왕비와 안지도 걸어 나왔다. 여동생을 본 안지는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하며 덥석 계란의 손을 잡았다."계란아, 왜 온 것이냐? 오숙도 오신 것이냐?""아버지께서는 함께 안 오셨습니다. 스승님께서 데려다주셨습니다."계란이가 웃으며 위왕이 묻는 말에 친절히 답했다."어서 들어가자. 요즘 날씨가 정말 덥구나!"안지는 그녀의 손을 잡고 빠르게 안으로 들어갔고, 안왕비는 바로 하인에게 다과와 군것질을 대접하라고 명했다. 강북부에는 맛있는 것이 별로 없었다. 다행히 경성에서 데리고 온 부엌 나인이 다과를 만들 줄 알았다.강북부에서 다과는 최고의 음식이었다.계란이가 자리에 앉자마자 위왕과 안왕이 연달아 ‘고문’을 시작했다."택란아, 네 아버지가 정말 네가 오는 것을 알고 있었느냐?"위왕이 의아해하며 묻자 우문택란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믿지 못하시면 어르신에게 서신을 보내 물으십시오."안왕과 위왕은 시선을 마주했다. 어르신이라는 세 글자가 괜히 속 시원하게 느껴졌다.위왕이 말했다."서신을 보내 물으마. 진국공주로서 절대 문제가 생겨선 안 된다. 네 아버지가 왜 보낸 것이냐? 산에서 스승과 무예를 익혀야 하지 않느냐?"우문택란은 차를 한 모금 마시고 성숙한 표정으로 말했다."스승님께서 산에서 배운 지 몇 년이 되었지만, 도에 통달하려면 경험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지금도 공부하고 있습니다. 다만 강북부나 약도성에서 인턴 생활을 할 뿐이지요.""인턴?"안왕은 믿을 수 없었지만, 진지한 계
위왕은 편지를 쓰고 비둘기의 다리에 맸다. 비둘기는 쏜살같이 하늘을 가르며 빠르게 사라졌고, 그 모습을 보고 나서야 그는 몸을 돌렸다.하지만 그가 몸을 돌리자마자 꼬마 봉황이 비둘기를 뒤쫓았다.비둘기도 말할 수 있다면 아마도 소리를 질렀을 것이다.정면에서 날개를 펼친 꼬마 봉황 때문에 비둘기는 어쩔 수 없이 공중에서 다급히 멈춰 섰다. 봉황은 사나운 눈빛으로 커다란 날개를 펼쳤고 비둘기는 반응할 새도 없이 봉황의 날개 사이에 갇혔다.비둘기는 소리도 지르지 못했다.우문택란이 강북부에 온 지 4일이 되었다. 그동안 위왕은 줄곧 우문택란과 안지를 데리고 강북부 곳곳을 구경하며 그곳의 민속을 이해하고 백성들의 삶과 변방 병사들의 노고를 느끼게 해줬다.그들은 강북부의 산과 풍경도 구경했다.안지는 첫 두날은 따라다닐 수 있었지만, 다니는 곳이 너무 많아 더 이상 버틸 수 없어 나머지날엔 그들을 따라가지 않았다.안왕비도 우문택란의 뛰어난 체력에 탄복했다. 그녀는 하루 종일 산을 오르내리고 돌아와도 조금도 피곤해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그녀와 함께 다니던 위왕이 피곤한 기색을 띠었다.나흘째 저녁 날, 우문호로부터 서신을 받았다.안왕이 먼저 서신을 본 후 위왕에게 전했다."다섯째는 알고 있습니다."위왕은 편지를 열어 읽기도 전부터 무척 놀라했다."이렇게나 길게 쓴 것이냐?"편지에는 다섯째가 기화가 계란을 데리고 강북부에 가서 견문을 넓히는 것을 승낙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기회를 빌려 약도성에도 다녀가고, 몇 달 지내도 된다고 했다. 아무래도 그녀의 봉지이니, 귀속감을 가지게 해야 한다면서, 특별히 그녀가 원하는 일에 간섭할 필요 없이 하게 하라고 당부했다. 경험을 많이 쌓게 하고 애지중지할 필요도 없다고 했다.위왕은 편지를 읽으면서 무언가 이상하다고 느꼈다. 다섯째의 성격으로 어찌 딸이 위험을 무릅써도 괜찮으니, 애지중지할 필요 없다고 할 수 있을까? 다섯째는 계란이에 대한 정성이 지극하여 고생은 말할 것도 없고 심한 말도 하려 하지 않
안왕비는 새벽부터 일어나 그들이 길에서 먹을 다과를 바삐 준비했다. 이곳은 경성과 달리 맛있는 것을 편히 사 먹을 수 없었다.날이 밝자마자 다들 길을 재촉하기 시작했다.위왕은 마차를 준비했지만, 기마술이 뛰어나 말을 타고 갈 수 있다는 우문택란의 말에 말을 준비했다.약도성으로 가는 길은 산지가 많고 관도가 적어 말을 타는 것이 마차를 타는 것보다 편리하기에 위왕도 그녀의 뜻에 동의하였다.안왕과 위왕, 그리고 공주 한 명에 봉황 한 마리, 하인 몇 명이 약도성으로 출발했다.약도성은 강북부에서 그저 200리가 떨어진 거리였다. 말을 타고 순조롭게 간다면 반나절이면 도착할 수 있었다.길에서 반 시진 쉬며 다과를 먹고 위왕은 꼬마 봉황을 데리고 놀았다. 꼬마 봉황도 주인을 똑 닮은 듯 아주 침착했다.하지만 하늘에서 오르락내리락거리며 급선회하는 모습을 보면, 성질이 있는 봉황이라 느껴졌다.그것도 계란이와 똑 닮았다. 계란이가 조용하고 똑똑하다고 느껴지지만 그녀의 몸속에 숨겨진 힘을 느낄 수 있다.그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약도성에 도착했다.약도성은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지형이 숟가락과도 같았다. 서쪽은 끊임없이 이어진 산봉우리였고, 가장 높은 봉우리는 2천 미터 정도의 약도봉 이었다.남쪽도 산이 있었지만, 산세가 낮아 식물을 심기에 적합했고, 동쪽은 지세가 평탄하여 초원이 많아 목축하기에 적합했다.북쪽에 있는 약도산은 산세가 가파른 편이었다. 약도산은 조용히 누워 있는 맹호와도 같이 금나라와의 왕래를 차단했다.이곳에는 풍부한 광산 자원이 있었다. 이것이 바로 금나라가 수도를 옮기려는 이유였다. 아마도 이곳의 광산을 노리고 있는 것 같았다.약도성에는 30여만 명의 백성들이 지내고 있었다. 백성의 태반이 목축과 쌀보리를 심는 것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약도성은 과거 북막의 양마장이었다. 북막의 전투마들은 대부분 약도성에서 옮겨진 것이었다.경제가 뒤처진 터라, 북막에 심하게 착취를 당했다. 전마를 팔 수 없었고 조정을 대신하여 키울 뿐이
위왕은 그녀의 뜻을 알아차리지 못했는지, 아니면 전혀 개의치 않는지 바로 답했다."주 아가씨한테 주인이 왔다고 전하거라."여인은 시선을 우문택란에게 돌렸다. 그녀의 눈빛에 놀라움이 묻어있었다.‘참 예쁘게 생겼구나. 저 아가씨가 바로 공주인가?’그녀가 한쪽 무릎을 꿇고 인사를 하려던 순간, 우문택란이 미소를 지었다."사람도 많고 상황이 복잡하니, 예를 올릴 필요 없소."여인은 웃으며 그녀를 지그시 바라보며 답했다."예. 바로 주 아가씨께 보고하러 가겠습니다!"그녀는 몸을 돌려 말 한 마리를 끌고 재빨리 자리를 떠났다.위왕과 안왕은 조카딸을 데리고 빨리 떠나려 했다. 골목 곳곳에서 욕설과 싸움으로 가득했고 평화롭지 않았다. 그들은 조카딸의 눈을 더럽힐까 봐 걱정되었다.하지만 그들은 어린 조카딸의 수용력을 과소평가했다. 그녀는 흥미진진하게 상황을 살피고 있었고, 골목에서 패싸움하는 것도 멈춰서서 재밌게 구경할 정도였다.그녀는 갓 산에서 내려온 토끼처럼 귀엽고 무해했고 세상만사에 흥미가 가득해 보였다.패싸움과 닭싸움을 보고, 도박에 기생들이 손님을 부르는 것도 보았다. 그리고 도둑질에 거지가 물건을 빼앗고 가게 주인장이 손님을 속이는 것도 구경했다. 그렇게 구경하며 한참을 걷다 보니 두 시진이 지나서야 저택에 도착했다.비록 저택은 아주 컸지만 조금도 화려하지 않았다. 돌사자도 없었고 정교한 조각이 새겨진 대문도 없었다. 그저 저렴한 나무로 지어진 소박한 대문 하나뿐이었고 문패의 글도 검으로 ‘성주부’라고 적혀있었다. 게다가 성주부의 ‘부’ 자도 틀리게 적혀 있었다.그녀의 부하들이 얼마나 무식한 지 알 수 있었다.누군가 문 앞에서 그들이 오는 것을 보고 다급히 안으로 들어가 통보하러 갔다. 그들이 말에서 내리자, 주 아가씨가 사람을 데리고 뛰어나왔다. 그녀는 오랫동안 기다리다 마음이 조급해져서 나오자마자 상전에게 예를 올리기 전, 먼저 위왕을 질책했다."두 시진 전에 성문에 도착했는데, 어찌 이제야 성주부로 도착한 것입니까?"그녀는 성문
홍엽이 조용하고도 냉정한 말투로 물었다. “공무를 보러 가는 것이냐?”“저는 원래 공사를 구분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공무를 보러 가는 것도 여행이라 할 수 있죠.”냉정언이 온화한 눈빛으로 냉명여를 바라보았다. “손자도 이제 다 컸으니, 함께 데리고 나가 바깥세상을 경험해 볼 때가 되었지.”냉명여가 고개를 들었다. 냉정한의 눈빛은 다시 싸늘하게 변했다.이 집안에서 냉정한은 엄격했으며, 홍엽은 편애를 받았다. 그렇기에 둘은 서로 보완이 되었다.“알겠습니다. 그럼 일단 짐부터 싸야겠네요. 얼마나 가 있는 겁니까?”홍엽이 기쁜 목소리로 물었다.“돌아오고 싶을 때 돌아오면 되니 일수는 생각할 필요 없다. 어쨌든 우문호는 항상 나에게 짐을 지우고 있었으니, 우리도 즐길 때가 되었지.”냉정언이 복수하듯 말했다.홍엽이 웃었다. “정말 그럴 만도 합니다.”그의 수양딸을 만나러 가는 길이니, 무척이나 기뻤다.홍엽이 우문호에게 품고 있는 가장 큰 불만은 자신과 수양딸 사이를 막고 있는 것이었다. 분명 자신의 수양딸임에도 우문호가 독점하고 있으니, 너무나도 과한 처사였다.황제가 된 사람들의 성격은 대체로 좋지 않았다.세 명의 사람과 한 마리의 원숭이가 조용히 성을 빠져나갔다. 흠차라고는 하지만 어떠한 허례허식도 없었다.그들이 떠난 뒤, 탕양도 약도성을 위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탕양은 최근 몇 년 동안 바쁘게 일하며 많이 늙었고, 머리카락은 흰머리가 수북했다.그는 이전에 우문호의 최측근 신하였으며 지금은 우문호의 전반적인 심부름꾼이었다. 관직이 내려져 고용된 것이 아닌, 그저 유용한 사람으로써 투입된 것이었다. 그는 우문호에게 직접 보고를 올렸으며, 어떤 관청에서도 그를 관리할 수 없었다.근래 몇 년 동안 그는 병부에서 군사를 정리하고 호부에서 전국의 땅과 세금을 다루며 새로운 정책을 세우는 데 도움을 주었다. 또한 이부에서 심사에 참여하고 형부에서 중대 사건을 옆에서 다루었다.황후는 탕대인이 벽돌과도 같아 필요한 곳 어디에서든 쓰일 수
“좋은 생각이십니다. 가능한 빠를 수록 좋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조정의 은혜를 이어 갈 수도 있습니다.”냉정언은 그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 들였다.그리고 잠시 멈칫하고는 우문호를 바라 보았다.“그리고 공주님을 보살 피라는 말씀이시지요?”“역시 지혜로운 수보구나. 짐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꿰뚫어 보고 있어.”우문호가 미소를 지어 보였다.“폐하께서 공주님을 아끼시는 건 궁의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소인이 궁에 들어오기 전에 폐하께서 갔다 오실 줄 알았습니다.”“짐이 생각 해보았지. 지금 때에 약도성에 들리면 이득이야. 조정을 향한 백성의 믿음도 생기고, 결코 짐이 백성을 버리지 않았다는 뜻이 될 테니 말이야. 하지만 내가 조정을 떠나면 나에게 반심을 가진 자들이 모여서 내란을 일으킬 수 있어. 자네를 수보의 신분으로 보내는 게 제일 안전한 방법이네.”냉정언이 고개를 끄덕였다.“옳으신 말씀입니다. 사실 소인은 폐하께서 직접 가실 것 같아 설득을 해볼 생각이었습니다.”우문호는 애매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짐이 자식들 때문에 나랏일을 뒤로 미루는 사람으로 보이는가.”“공주님이라면 그럴지도 모르지요.”냉정언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소인이 폐하를 너무 얕보았나 봅니다.”“짐도 구분은 할 줄 아네. 쉽게 위험 속에 몸을 던지는 사람이 아니야.”게다가 그는 집에서 제일 약한 사람이 아닌가. 냉정언이 답했다.“네, 알겠습니다. 홍엽 공자에게 일러 두겠습니다. 내일 출발 할 수 있게 말입니다.”“홍엽 공자도 가는 것인가?”우문호가 눈을 크게 떴다.“소인이 오랜만에 나가는 외출 입니다. 제 아들도 바깥 세상 한번 구경 시켜줘야 하지 않겠습니까.”우문호가 의미심장한 태도로 답했다.“그래, 명여도 데려가게. 사내 아이는 많이 둘러 보는 게 좋지.”“명어 그 아이는 홍엽 공자를 잘 따릅니다.”냉정언이 말했다.“그래, 네가 누굴 데려가든 상관없다.네가 가면 되는 것이니 말이다.”우문호는 허공에 손을 흔들었다.말을 끝나
하지만 새해의 기쁨도 초 닷새 날까지뿐이었다.초 엿샛날이 되자 각 부서들이 하나둘씩 출근하기 시작했다.우문호의 표정이 좋지 않다.출근 때문이 아니라 택란이 약도성에 다녀오겠다는 말 때문이다.약도성은 큰 화재 때문에 재건설을 했다.그녀는 직접 두 눈으로 봐야 마음이 놓일 것 같았다.게다가 형제들도 곧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원경릉은 우문호를 하룻 밤 내내 설득하기 바빴다.곧이어 우문호는 위왕과 안왕에게 임무를 주었다. 강북부에 도착하면 즉시 그에게 보고를 하라는 내용이었다.위왕과 안왕은 억울하기 그지없었다.왕의 위치에 오르니 사람도 변한다는 사실이 와닿았다.우문호는 한 사람씩 배웅을 해주었다.하지만 아이들은 반겨 하지 않았다.그들의 삼촌을 지켜줘야 할 뿐만 아니라 속도가 현저히 느려지기 때문이다.하지만 우문호는 자신의 결정을 굽히지 않았다.옆에 있던 서일도 같이 가겠다는 의지를 보였다.그 이유는 출장 비용을 황후가 흔쾌히 내어 주기 때문이다.아이들이 또다시 다른 지역으로 떠난다.역란은 자신이 벌써 열 살이라며 강조했다.나이가 어떻게 되든 10년이라는 시간을 보낸 것은 사실이다.“역란아, 아바마마가 마음이 아프다.궁에 남아 나와 더 놀아주지 않겠어?”마차가 지나가고, 경단이 역란에게 물었다.“이만하면 됐습니다. 조금만 더 지내면 싫어하실 거예요.”역란이 혀를 내밀고는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아이고, 이 녀석아.”경단은 역란의 말에 무언가를 깨달은 듯했다.‘적당한 거리가 아련함을 만든다.’마차가 천천히 성 밖을 나갔다.한편, 어서방 안.30분 전, 우문호가 냉정언에게 바둑을 두자고 불렀다.몇 판을 졌지만 우문호는 화도 내지 않고, 바둑판을 엎지도 않았다.다음 판이 또 시작되자 냉정언이 그를 말렸다.“폐하, 무슨 일이 있으시면 말씀을 하세요. 계속하셔도 저한테 질 뿐입니다.”“지지 않을 걸세!”우문호가 그를 노려 보았다.냉정언이 차를 한 입 들이켰다.“그래서 무슨 일 이십니까?”우문호의 인내심
“매화장에서 새해를 보내고 정월 초이틀에 돌아오마. 세뱃돈은 한 사람당 하나씩이니, 욕심은 부리면 안 되느니라!”원경릉이 종이에 적힌 글을 소리내어 읽었다.“매화장에 가셨다고? 혼자서 보낸다고 하시지 않았나?”우문호는 이상하다고 생각이 들었다.‘매화장에 무슨 볼거리라도 생긴 걸까? 우린 초대도 못 받았는데.’“어쩔 수 없지요, 그만 갑시다.”원경릉이 말했다.그들이 자신들의 세뱃돈을 꺼냈다.돌아가려던 찰나, 다른 부부들과 마주쳤다.미색부부, 손왕 부부와 공주 부부도 온 것이다.그들의 손엔 선물을 들고 있었다.우문호는 반대로 아무것도 들고 오지 않았다는 사실에 얼굴을 붉혔다.“다들 어디가신 겁니까?”미색이 성큼 들어와 그들에게 물었다.“매화장에 가셨어.”원경릉이 종이를 내보였다.곧이어 상자를 가리키며 말했다.“새뱃돈은 한 사람당 하나씩.”“너무 대충 준비 하셨네.”회왕은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매년 새해에는 시끌벅적하게 보냈기 때문이었다.그는 어젯 밤, 가족들과 시간을 보냈다.하지만 어딘가 부족한 마음이 들어 아침 일찍 찾아온 것이다.새해에 숙왕이 없으니 무언가 허전한 마음이 들었다.모두 실망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그저 멀뚱멀뚱하게 서로를 바라볼 뿐이다.‘새해에 집에 있으면 새해의 느낌이 없지 않은가.’이때, 우문호가 의견을 내놓았다.“매화장에 가보는 게 어떻겠습니까?”“좋아, 지금 출발 하자구나.”손왕이 서둘러 답했다.한편, 매화장 안.전 명원제는 답답하기 그지 없었다.그는 그저 혼자 조용히 새해를 맞이하고 싶었다.어제까지만 해도 모두 각자 새해를 보낸 다는 소식에 그는 기뻐했다.광대짓을 안 해도 된다는 생각에 해방감을 느낀 것이다.하지만 기쁨도 잠시 순식간에 사람들이 몰려와 매화장을 꽉 채웠다.무상황이 나타나 노인들끼리 같이 새해를 보내자고 제안을 한 것이다.그는 공간이 넓고, 옆으로 산이 있다는 이유로 매화장을 택했다. 전 명원제는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그도 노인이기 때문이다.그리하여
원경릉은 그의 말에 마음이 아팠다.얼마 전까지만 해도 생각도 하기 싫은 문제였다.형제들과 다르게 그는 노화세포를 전혀 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이 사실을 그에게 말한 적은 없지만 우문호는 어느 정도 눈치를 채고 있었다.그도 자식들의 회복 능력을 보면서 알 수 있기 때문이다.하지만 원경릉에게 직접 말한 적은 없다.우문호는 그녀를 바라 보았다.부부라서 마음이 통한 것일까.그는 그녀의 마음을 대략 읽고 있었다.원경릉은 수술을 하고 나서 전혀 늙지 않았다.일부로 어두운 색깔의 옷을 입어도 여전히 젊어 보였다.반대로 우문호는 하얀 머리카락이 듬성듬성 나기 시작했다.어쩌면 국가의 일을 처리하느라 노화가 빠른 것일지도 모른다.하지만 그는 그의 나이에 맞는 모습으로 점차 변해갔다.아직 눈가에 주름도 없고, 늙어 보이지 않지만 그는 곧 자신에게 닥칠 일이라고 생각했다.원경릉에게 주사를 맞겠다고 한 것도 그저 한순간의 충동일 뿐이다.사실 그는 그녀가 늙지 않고, 죽지 않는 다면 그것만으로도 좋았다.하지만 몇십 년 뒤에 그녀의 인생에 자신이 사라진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다.생각하면 할수록 조급해질 수 밖에 없었다.그는 서둘러 생각을 접었다.'지금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같이 있는 시간을 즐겨야 한다.'요즘들어 우문호는 운명을 믿기 시작했다.원경릉이 자신에게 온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그 다음 날, 온 가족이 숙왕부에 도착했다.그들이 일찍 깨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대문이 닫혀 있었다.만두가 문을 두드렸다.아무런 대답이 없자 우문호가 바짝 긴장했다.“무슨 일 일어난 건 아니겠지?”“제가 들어가 보겠습니다!”곧이어 만두가 재빠르게 안으로 들어갔다.아들의 의외의 행동에 우문호가 깜짝 놀랐다.“만두가 언제 무술을 배운 거야?”원경릉은 무술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어제의 일이 떠올랐다.그리고 혹시 몰라 다르게 답했다.“저도 만두가 무술을 배웠을 줄은 몰랐습니다.”곧이어 만두가 안에서 문을 열었
“그래, 그래. 잘 된 일이야.”우문호가 기뻐했다.곧이어 손을 뻗어 딸의 이마를 어루만졌다.“내 딸이 그래도 제일 착하구나.”“아바마마, 편애하면 아니 되옵니다.”칠성은 우문호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편애라니?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그러고는 그의 그릇에 닭다리 하나를 올려 주었다.“자, 이건 칠성이거다.”“저희도 먹고 싶습니다!”옆에 있던 4명의 아들들이 우문호에게 그릇을 내밀었다.“닭다리는 딱 2개밖에 없구나. 칠성이에게 하나를 주었으니, 남은 하나는...”“아바마마! 저 주십시오.”택란이 그릇을 내밀었다.“어..”곧이어 원경릉도 그릇을 내밀었다.“저도 주십시오!”우문호는 한 손으로 닭다리를 잡은 채 자신의 앞에 놓인 그릇 6개를 바라보았다.잠시 고민하고는 원경릉의 그릇에 닭다리를 올렸다.“내 아내가 고생이 많지!”그리고 서둘러 닭 고기를 집어 다른 그릇에 올려 두었다. 그는 이마 위로 손을 올렸다.“내일 닭을 더 많이 잡으라고 해야겠구나, 한 사람에 닭다리 하나씩 먹을 수 있게 말이야.”그의 말이 끝나고 자리에는 웃음꽃이 피었다.그들은 서로를 바라보면서 웃어 보였다.좋은 아버지가 되기는 쉽지 않구나,라고 생각했다.만두가 미소를 지어 보였다.“아바마마, 저희가 장난 좀 친 것뿐입니다.마음에 두지 마십시오.게다가 여자라고는 어마마마와 여동생뿐입니다.저희 남자형제들이 양보하는 게 맞지요.”나머지 형제들이 고개를 끄덕였다.“맞습니다.”큰 형의 말에 어떻게 동생들이 토를 달 수 있겠는 가.그리고 동생들도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아바마마도 지켜 주셔야 합니다.아바마마가 저희 집안에서 제일 약한..”칠성은 닭다리를 뜯으면서 애매한 말을 내던졌다.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다른 형제들이 반찬을 집어 그녀의 그릇에 두었다.만두가 입을 열었다.“그만 이야기하고 밥 먹어. 닭다리로도 부족한 거야?”칠성은 그의 말에 풀이 죽었다.그리고 고개를 숙이고 다시 닭다리를 뜯었다.우문호는 원경릉을 바
원경릉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안 된다. 술은 19세부터 마실 수 있는 법이다.”만두는 약간 실망한 듯 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예. 말을 따르겠습니다.”기분이 좋아진 우문호는 팔꿈치로 원경릉을 살짝 찌르며 말했다.“한 모금만 주오. 아직 어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어리다고 하기도 훨씬 지난 나이네. 집에서 한 모금 정도는 괜찮소. 밖에서는 안 마시면 되지.”경단과 찰떡도 원경릉을 바라보며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기만을 기다렸다.원경릉은 아이들이 모두 아빠와 함께 술을 마시고 싶어 하는 걸 보며, 오늘처럼 즐거운 날은 한 번쯤 허락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래서 그녀는 직접 아이들의 잔에 술을 따라주었다. 작은 잔에 술향이 은은하게 퍼졌고, 아이들은 금세 웃음을 터뜨렸다.세 아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우문호를 향해 잔을 높이며 말했다.“아바마마, 아바마마께 한 잔 올리겠습니다!”우문호는 아이들의 풋풋함을 간직한 똑같은 얼굴을 바라보았다. 성인이 되려고 애쓰는 그들을 보며 그는 뿌듯함과 감동이 교차했다. 그는 아이들과 잔을 부딪치며 말했다.“그래, 부자끼리 한잔하자!”참으로 묘한 느낌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품에 안겨 있던 작은 아이들이 지금은 그와 함께 잔을 부딪치고 있었다.현대에서 지내는 동안 아이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줄어들다 보니, 아이들이 어느 순간 훌쩍 커버린 듯한 착각이 들었다.은은한 촛불이 아이들의 기뻐하는 얼굴을 비췄다. 탁자 아래, 우문호는 원경릉의 손을 잡고 서로 미소를 주고받았다.아이들은 부모님에게 열심히 음식을 챙겨주었다. 환타가 원경릉의 손을 잡아당기며 말했다.“어마마마, 드시지요. 아바마마도 손잡지 마시고 어서 드십시오.”원경릉은 웃으며 말했다.“그래. 먹자, 다 같이 밥 먹자!”그녀는 그릇에 담긴 음식을 우문호의 그릇으로 조금 옮기며 말했다.“다 못 먹으니, 조금 먹어주시오.”우문호가 답했다.“그럼, 좋아하는 것만 먹고, 싫어하는 건 나한테 주시오.”그는 그릇을 내려놓고 새우를 까서 마늘장에 찍어
다섯째는 평소 아이들의 자잘한 일들에 항상 주목했다. 아이들을 자랑스러워하다가 금세 우울해지곤 했는데, 원경릉은 그의 모습에 이미 익숙해져 있었다. 그게 그의 즐거움이었고, 그가 행복하다면 그걸로 충분했다.계란이의 길쭉한 팔다리가 앞으로 절대 키가 작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었다.다만 아직 클 나이에 이르지 않았다.원경릉은 예전에 아이들이 빨리 자라길 바랐지만, 이제는 천천히 자라길 바랐다. 그래야 아이들이 곁에 머무는 시간이 조금이라도 더 길어질 것이다.섣달그믐날 그들은 연회를 올렸다. 관례대로라면 숙왕부에서 무상황과 함께 보내야 했지만, 올해는 무상황이 미리 사람을 보내 섣달그믐날 숙왕부는 아무런 손님도 받지 않을 것이라고 명을 전했다. 어르신들끼리 다채롭게 보낼 준비가 되어 있으니, 아이들이 와서 방해하지 못하게 하라고 뜻을 전했다.다섯째는 오히려 이 소식을 듣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동안 어르신들 앞에서 태상황으로서 위엄을 세우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대우는커녕 오히려 재롱까지 부려야 했기에, 그는 항상 처지가 곤란했었다.무상황이 사람을 보내 궁에 있는 우문호에게 각자 알아서 새해를 보내고, 올해는 함께 모이지 않기로 소식을 전했다.황태후도 어린 공주를 데리고 친정으로 돌아갔다. 그동안 친정 식구들과 명절을 함께 보내본 적이 없다며 어린 공주를 데리고 친정으로 돌아갔다.우문호 역시 만족스러웠다. 항상 북적이는 설날을 보내다 보면, 기진맥진하게 되니 차라리 가족끼리 조용히 보내는 게 훨씬 편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게다가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여덟 식구끼리 쉴 수도 있었다.이 소식을 들은 후, 우문호는 아이와 원경릉이 좋아하는 음식을 해놓으라 미리 전했다. 원경릉은 원 할머니를 초대하려 했지만, 원 할머니는 한참 망설이다가 단호히 거절했다. 자주 그녀와 만나서 이야기도 나누고 밥도 먹지만 숙왕부의 어르신들과는 그런 기회가 적으니, 이번에는 그들과 함께 명절을 보내겠다고 했다.원경릉은 이 말을 듣고 의아했다. 어르신들과
추 할머니의 건강 상태는 약을 먹은 후 많이 안정되었다. 이전에 폐종양이 신경을 압박해 유발했던 통증이 크게 완화되었고, 이제는 진통제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았다.통증이 사라졌으니, 삶의 질도 개선되었다. 추 할머니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나자, 모두가 기뻐했다.숙왕부의 노인들은 갑자기 건강 관리에 눈을 뜬 것처럼 건강한 음식을 먹고, 매일 규칙적으로 운동하며, 햇빛을 쬐기 시작했다.운동은 늘 해왔던 일이지만, 과했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적당한 운동을 하게 되었다.원경릉과 원 할머니는 그들의 전담 의원 역할을 하고 있었다. 정기적인 건강검진 외에도 식단을 짜고, 그에 따라 식사하도록 했다.다들 갑자기 이렇게 말을 잘 들으니, 원경릉과 원 할머니는 의아해했다. 나중에야 그들이 회의를 열었고, 새로운 목표를 세운 것을 알게 되었다.그 목표는 바로 20년 후의 북당을 보는 것이었다. 안풍친왕과 무상황이 말하길, 20년 후의 북당은 지금과는 크게 달라질 것이라고 했다.북당은 그들 심혈을 기울여 온 나라니, 더 나은 북당을 보기 위해 기꺼이 노력하고자 했다.원경릉과 우문호는 마음이 놓였다. 집안에 노인이 있으면 보물이 있는 것과 같고, 나라에 이런 노인들이 있다면 나라의 기반이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우문호는 걱정 없이 북당을 힘차게 이끌 수 있었다.그렇게 북당의 경제 발전이 최우선 순위에 놓였다.이리 나리는 나라의 발전을 지휘하는 사람으로서 이전의 여유로운 삶을 지낼 수 없었다. 그는 바쁜 나날을 보내며 산업마다 노조를 설립하였고, 각 노조는 나라의 법에 따라 방향을 잡고 나아가고 있었다.그들은 주변 나라와 장사를 하며 자원을 구매했다.지금 우문호와 이리 나리는 약도성의 철광에 목표를 맞추고 있었다. 북당의 철광 자원은 충분하지 않아 그동안 계속 구매해 왔었다. 하지만 금속은 수출량이 제한적이었기에, 이를 극복하려면 자원을 개발해야 했다.약도성의 철광은 매우 풍부했다. 조사 결과, 금나라와 접경한 산맥 외에도 다른 광산 자원이 발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