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문군 장례에 가는 요부인혼례를 마치고 다음 날 우문호는 비로소 상을 보고하러 입궐했다.명원제가 다 들은 뒤 몸을 천천히 용상에 기대며 허물어졌고, 더할 나위 없이 피곤했다.우문호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아바마마, 슬픔을 거두소서!”명원제는 오랫동안 말없이 조각된 화려한 대들보를 바라보는데, 무언가 밀물처럼 밀려와 그를 휩쓸고 지나갔다.한참 뒤 우문호에게 말했다. “장례는 너희 형제들이 마음을 다해 예부와 같이 치르도록 하라.”우문호가 무릎을 꿇고, “.”답하더니 잠시 주춤거리며 말을 덧붙였다.“아바마마 사후 추존을 내리실 의향은 없으십니까?”명원제가 고개를 흔들고 입술을 일자로 다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우문호는 어명을 받들고 갔다.추존의 자비를 베풀어 주지 않으시니 첫째 황자의 법도에 따라 장례를 치를 수밖에.진비 쪽에도 감출 수 없으니, 명원제가 목여태감을 직접 보내 알리게 했다.진비가 듣고 울다가 거의 기절했는데 황귀비가 직접 후궁 비빈을 데리고 가서 위로했다.주명양과 우문군은 아직 이혼하지 않아서 지금 우문군이 떠났으니 주재상은 주명양을 집으로 돌려보내 장례를 치르는 것을 도운 뒤 만약 친정으로 돌아오고 싶으면 다시 돌아오라고 했다.요부인은 이때 아직 초왕부에 있었다. 우문군이 사고가 났을 때 원경릉이 이를 알리지 않았고 요부인은 최근 훼천을 피하느라 바깥 세계와 접촉을 하지 않아 뜻밖에도 그동안 이 일을 몰랐다.그래서 원경릉이 요부인에게 우문군의 죽음을 알리자, 요부인은 의외라 놀랐으나 단지 의외일 뿐 다른 감정은 없었다.요부인이 유일하게 걱정하는 건 딸들이 아버지의 부음을 듣고 받아들일 수 있을지 여부였다.희열이는 의대에 있어서 원경릉이 사람을 보내 데리고 온 뒤 요부인이 자매에게 설명했다.희열이는 비교적 쉽게 받아들였지만 희성이는 듣고 잠시 울었다. 자매는 아버지에게 사실 공포의 감정을 가지고 있었고, 우문군은 어릴 때부터 딸들을 친근하게 대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딸로 여긴다는 게 고작 딸을 탈출구로
요부인의 마음“이건 혼인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저에게 준 거예요.” 요부인이 금보요를 빼서 상자에 넣고 다시 벽옥 비녀를 꽂았다. “제가 가지고 가서 염할 때 비녀를 관에 넣어 그에게 돌려주려고요. 헤어질 때 부부의 정이 아쉬워서가 아니라 자신이 새댁이었던 때 마음을 기억하고 싶었어요. 안타깝게도 어쩌다 나중에 이렇게 헤어지게 된 건지 모르겠지만.”“옛날 일은 잊어요!” 원경릉이 판에 박힌 말이라 본인조차 너무 진부한 단어란 생각이 들어 한숨이 절로 났다.“돌려줄 거예요, 이생에 그를 안 적이 없었던 것처럼.” 요부인이 함을 몸에 지니고, “가죠.”라고 말했다.두 사람이 나갈 때 본관 앞에 바람이 부는 데 바닥에 낙엽도 보이지 않고 마당, 복도 전부 깨끗해서 원경릉이 살펴보다가 문득 물었다.“누가 계속 집을 지켰나 봐요?”요 부인이 눈을 내리깔고 못 들은 척 똑바로 밖으로 나갔다.담 옆의 문은 여전히 열려 있고 한 시선이 그쪽 복도에서 계속 따라오는데 불꽃처럼 이글거려서 고개를 들면 타버릴 것 같다. 마차에 올라서야 겨우 가리개 틈으로 흘끔 보자, 집 문 앞에 훼천의 푸른 옷자락이 설핏 지나갔다. 요 부인은 눈을 감자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는데 심장이 격하게 뛰었다.원경릉도 마차에 올라 요 부인의 표정이 이상한 것을 보고 그녀가 아직 우문군과의 옛일을 생각하는 줄 알고 말했다. “과거는 지나갔어요. 괜히 기억해서 자신의 슬픔을 배가시키지 마요.”“응!” 요 부인이 끄덕였다.마부가 채찍을 휘두르는 순간 밖에서 훼천의 목소리가 들렸다. “부인 며칠 후 돌아오십니까?”요 부인이 손가락 끝으로 소매를 쥐고 고요한 수면에 잠자리가 파문을 일으키듯 요 부인의 눈빛이 순간 어지럽게 흐트러지며 가리개 사이로 말했다. “난……아마 당분간 돌아오지 않을 거네.”원경릉이 갑자기 가리개를 열자 푸른 옷이 길게 부는 바람에 날리며 훼천이 마차를 막아서 있다. 귀밑머리가 뒤로 날리는데 오직 눈은 매와 같이 요 부인의 살짝 혼란스러운 얼굴을 바라
영원한 작별과 쓰러진 명원제아무도 주명양에게 신경 쓰지 않고 장례를 치르는 분위기는 슬픔으로 가득했다. 빈소로 가니 죽음의 기운이 압도하며 죽은 자가 누구든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여러 친왕은 우문군을 위해 같이 장례를 치르느라 여기서는 모두 법도에 따라 소복을 입고 요 부인이 물건을 가져와 관에 같이 부장하겠다고 해서 우문호가 받으러 갔다.요 부인이 복도에 서 있는데 찾아오는 사람이 뜸했다. 전에 언제 기왕부 앞에 마차 행렬이 그친 적이 있었던가. 한때 권세를 떨치더니 이제는 몰락해서 참담하기 그지없는 이런 것이 한평생이구나.마음속에 서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조금의 슬픔이 생겨나는데 우문군을 위해서가 아니라 함께 묻힌 세월 때문이다.하지만 요 부인은 젊은 시절을 한탄하며 나이 든 것을 슬퍼하고 있을 사람이 아니다. 단지 최근 마음이 상당히 약해지긴 했다.“어머니, 아바마마께 향 올린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희성이가 요 부인의 옷자락을 끌었다. 자그마한 얼굴을 꼿꼿하게 들고 상복을 입은 채 눈에는 약간 두려움과 공포가 느껴졌다.요 부인이 희성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그래!”손에 향을 들고 영전에 서서 한참을 생각하더니 역시 들어가서 작별해야겠다고 생각했다.관은 빈소 뒤에 놓였고 입관했으나 아직 완전히 염습하지 않아 부장품도 아직 전부 안에 넣지 않았다. 시신은 친왕의 조복을 입고 있는데 생전의 입던 것으로 조복의 옷깃에 좀먹은 작은 구멍이 나 있었다. 폐위된 뒤로 다시 입을 자격이 없었지만 버리기 아까웠다. 동생들이 마지막 가는 길 형의 체면을 위해 입혀준 것이다.이렇게 관에 누워 있으니 오만함은 사라지고 악랄함도 없어서 더 이상 보통 사람이 아닌데 가장 보통의 모습이다. 고인의 얼굴도 잘 정리한 것이 창백한 얼굴에 화장을 입혀 마지막 체면을 살려주기 위해 노력했다. 예부시랑이 짧은 빗을 하나 건네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 “부인, 비록 첫째 황자 전하와 이혼하셨으나 마지막 가시는 길에 배웅하러 오셨으니, 이생의 감정은 잘
극이가 온다.명원제에게는 매우 드문 상황이라 각지에서 분봉왕과 제후들이 너도나도 올라와 문후를 여쭙고 심지어 일부는 아예 문안하고 병시중을 들겠다며 상경했다.평남 왕 쪽에서도 전서구를 태상황에게 보내 이미 경성으로 오고 있는 길로 이번에는 아들을 데리고 상경한다고 했다.태상황이 서신을 받고 소요공과 주재상에게 알려 극이를 경성으로 불렀다고 했다.또 궁 안에 사람들을 재촉해 건곤전 곁에 있는 사당인 적성루를 수리하게 했는데 인력을 들일 필요 없이 물건만 정리하는 정도로 평남 왕이 경성으로 돌아왔을 때 적성루에 머물 수 있게 했다. 또 성지를 내려 원경릉에게 바로 입궐해서 태상황의 전신을 검사하게 하고 안 좋은 곳을 고쳐서 반드시 몸과 마음을 강하게 해야 했다.원경릉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상황 폐하께서 이렇게 평남 왕을 중시하시나?’입궐한 뒤 뜻밖에 주재상과 소요공도 있는데 둘 다 일하느라 얼굴이며 머리가 온통 흙투성이로 막 밭일하고 돌아온 사람들 같다. “두 분은 어디서 오시는 건가요?” “적성루를 수리하고 담장을 보수하느라.” 소요공이 차 한 잔을 마시고 만면에 앳된 웃음을 지었다.“적성루요?” 원경릉은 궁 안에 적성루가 있는 줄 몰랐다.“응, 바로 저쪽.”‘원경릉이 건곤전 안에서 건너다보면 옆은 문창 탑이잖아? 뭐가 적성루라는 거야? 전에 푸바오가 문창 탑에서 던져졌다고.’“문창 탑 이름을 바꿨나요?” 소요공이 우렁우렁하게 외쳤다. “문창 탑은 문창 탑이고, 적성루는 적성루지. 무엇이 같아? 문창 탑은 저 탑이고 적성루는 저 사당이고, 안 보여? 나뉘어 있잖아!”원경릉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탑과 사당이 연결돼서 한 덩어리라잖아요.’“이런 일은 일꾼에게 분부하시면 되지 않습니까? 어르신들이 직접 하셔야 했나요?” 원경릉이 약상자를 가지고 복도로 나왔고 태상황은 습관처럼 복도 의자에 앉아있는데 전에는 멍하더니 오늘은 아주 정신을 차리고 눈은 기쁨에 차 있었다.주재상이 물었다. “극이 일을 어떻게 다른
주꼬맹이와 명원제의 불면증검사 뒤에 태상황을 부축하고 나가는데 태상황은 지금 몸을 엄청나게 아껴서 혹시라도 넘어질까 봐 출입할 때 부축을 받았다. 원경릉이 그들과 복도에서 얘기를 나누면서 이분들이 당시에 숙왕부에 살며 안풍 친왕비가 데리고 있었는데 큰형수는 엄마가 진배없다고 진짜 이분들을 아들처럼 대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요즘 우리들이 좀 많이 모이고 있지만 지난 시절에는 각자 바쁘고 주꼬맹이는 특히 건곤전에 오는 걸 싫어했지, 희야 보고 싶지 않다고. 과인은 사실 그때 화가 났지만 내버려 뒀지. 밖에서 북당을 위해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하고 있었으니까 용서해 줬어.” 태상황이 혼잣말처럼 했다. 평남 왕이 돌아온다는 소식에 약이라도 맞은 것처럼 모두의 정서가 극도로 흥분해 있다.‘주꼬맹이?’ 원경릉이 주재상을 봤다. 주재상은 주대유 약칭 주대 아냐? 어째서 주꼬맹이지?주재상이 웃으며 말했다.“이제 전부 잘 됐지.”저물어 가는 노년에 햇살이 느릿느릿 비추고 그들의 눈동자에는 그 옛날 감흥이 떠올랐다. 그 시절에 푹 잠겨 있는 모습이 진짜 한 폭의 가장 아름다운 그림 같다고 생각했다. 어린 시절 우정이 늙어서도 계속되는구나.원경릉도 자신이 말년에 아들 손주들에 둘러싸여 있는 것 외에 옛날 친구들도 하나둘 곁에 함께 할 수 있기를 바랐다. 매일 못 보면 어떤가, 보고 싶을 때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인생이라면 아쉬울 게 뭐가 있어?한참 얘기하더니 주재상과 소요공이 또 일하러 가고 원경릉도 어전에 명원제를 보러 갔다.명원제의 병은 그렇게 심각하지 않아서 사흘간 밥을 먹지 않은 뒤 다시 음식이 들어가니 복통과 위통이 있는 것으로 원경릉이 약을 처방한 뒤 어의의 치료와 병행해 지금은 이미 아주 좋아졌고 가슴앓이와 울혈만 남았을 뿐이다.권력을 내려놓기로 한 건 명원제의 처분으로, 우문호와 그날 어 서방에서 상의해 결정한 일이다. 태자에게 국정을 대신하게 한 건 각 부처도 예전만큼 안정되어 있지 않아서 누군가 틈을 파고들려면 지금이 적기이기 때문이
호비의 오해명원제가 호비의 손등을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당신도 여기서 계속 지키고 있을 필요 없어. 목여가 밖에 있으니까 가서 좀 쉬어.”호비가 고개를 흔드는데 며칠 사이 호비도 같이 수척해졌다. “돌아가서 쉴 수야 있죠. 마음이 불안해서 그렇지. 여기서 당신을 지키고 있는 게 차라리 안정돼요.”명원제가 천천히 눈을 감더니 힘이 없는 듯 말했다. “당신은 열째에 좀 더 신경을 써. 아니면 황귀비를 도와서 육 궁의 일을 처리하든지. 짐은 언젠가 너희를 두고 갈 때가 오니까.” 호비가 이 말을 듣고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무슨 그런 말씀을 하세요? 앞으로 다시는 이런 말씀 하시면 안 됩니다.”명원제가 입꼬리를 올리며 힘없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언젠간 결국 그렇게 돼. 싫어도 피할 수 없어.”호비의 눈에 금방 눈물이 고이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꼭 이렇게 절 괴롭히셔야겠어요?”명원제가 눈을 뜨고 호비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알았어, 말 안 하면 되잖아.”원경릉은 우문군의 죽음 때문에 아바마마의 마음이 어둡다는 것을 알았다. 눈앞에서 가족이 세상을 떠났으니 가슴 아프고 괴로운 것 말고도 자신의 신세에 대입해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원경릉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아바마마 옥체를 보중하셔야 합니다. 다섯째의 어깨는 너무 약해서 이 많은 것을 다 짊어지지 못해요!”명원제가 눈을 가늘게 뜨고 웃으며 물었다.“짐한테 온 목적이 다섯째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거였어?”“제가 감히 어찌!” 원경릉은 정말 억울함을 호소할 생각은 없다. 물론 우문호는 몸이 하난데 몇으로 쪼개서 쓰고 있기는 하다. 이거저거 전부 우문호 없이 안 되는 것 같다. 사실 우문군의 장례 이후 부부는 며칠 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말도 안 해봤다. 우문호가 돌아왔을 때 원경릉은 자고 있었고 아침에 원경릉이 일어나기 전에 우문호는 이미 집을 나서서 집은 잠만 자는 곳이 되었다. 경호에 가는 건 말도 꺼낼 수 없는 게 같이 밥 먹을 시간조차 없다.“짐이 그 아이
장래 희망원경릉이 깜짝 놀라 호비를 보고 생각에 잠겼다. ‘무슨 그런 심각한 지경까지 생각하는 건데?’하지만 곧 감동해 버렸다. 호비는 정말 아바마마를 사랑하고 있는 것으로 소녀가 한 사람에게 반하더니 평생을 사랑해서 생사를 함께하고자 하는 것이다.“그래서 한마디만 미리 말해 둘게, 만약 정말 그런 날이 오면 반드시 날 도와서 열째를 봐주고 살펴줘. 걔가 성공하는 거 바라지 않고 그저 평생 순탄하게 살아주기만 바랄 뿐이야.” 호비가 눈물을 닦는데 눈가가 아직 빨간 게 슬픔이 역력하다.원경릉이 서둘러 말했다.“이런 말씀 하지도 마세요. 아바마마 옥체는 건강하세요. 이번은 첫째 황자 일로 병이 나신 것으로 그동안 피로가 누적돼서 이 기회에 좀 쉬시는 거예요. 그런 정도 아니에요. 절대로 쓸데없는 생각 하시면 안 됩니다.”“정말?” 호비가 반신반의하며 원경릉을 쳐다봤다.“조금의 거짓도 없습니다.”호비가 그제야 안심하다가 결국 다시 걱정어린 눈빛으로 물었다.“폐하께서 지금 드시지도 못하고 잠도 못 주무시는데, 이건 어떻게 하면 좋지?”“시간을 좀 주세요. 천천히 하죠. 그런 말이 있잖아요. 병은 태산이 무너지듯 왔다가 고치에서 명주실을 뽑듯 간다고. 어디 이렇게 바로 좋아지겠어요?” 원경릉이 다독였다.호비는 밖을 살짝 살펴보더니 아바마마께서 살포시 눈을 뜨는 걸 발견한 것 같았다. 명원제는 깊이 잠들지 못하고 그들의 대화를 들은 모양이다.원경릉이 살짝 한숨을 쉬며 바라건대 우문호가 7~80에도 태자이기를!바라건대 아바마마와 호비가 같이 이렇게 서로 기대서 살아갈 수 있기를!황궁을 떠나 초왕부로 돌아오자, 아이들이 모여들어 같이 원경릉의 어깨를 주물러 주는데 원경릉이 찰떡을 안고 최근 애들에게 무심했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원경릉이 일찍 돌아오자 다들 얼른 와서 들러붙는 것이다.“엄마, 엄마의 스승님이 오늘 오셔서 눈 늑대를 빌려 가시고 저한테 종이 한 뭉치를 줬는데 가져도 돼요?” 경단이 물었다.원경릉도 별로 대수로이 여기지 않고
평남왕협객의 꿈이 없었던 아이가 있을까? 정상이다. 하지만 현실이 만두의 따귀를 날리겠지. 이 세상은 아주 많이 불평등하기 때문에 주변 사람이 끼어들 수 없거든 하고.경단이가, “전 스승님처럼 장사를 하고 싶어요. 돈 벌래요, 우리 엄청 가난하잖아요.”원경릉이 경단이의 이마를 쓸어 넘겨주며 말했다. “그래 그것도 좋네. 큰 주인장이 돼서 출세도 하고 개념도 있게 말이야.”원경릉이 찰떡이를 보자 찰떡이가 멍해졌다.“모르겠어요. 전 앞으로 뭘 할지 모르겠어요. 어쩌면 엄마처럼 그런 의원이나 아니면 아빠처럼 그런 부윤 아버지?”원경릉이 셋을 안으며 다 좋아, 다 좋아 계속 이렇게 생각하면 좋겠어. 황제 같은 거 되겠다고 하지 말고. 저녁에 어렵사리 우문호와 온 가족이 모였고 부부 두 사람은 마당 차탁에서 달을 보며 간식과 차를 마셨다.우문호는 요즘 좀 지쳐 있어서 마당에 앉아 구름 속을 오락가락하는 달을 보며 편안하게 말했다. “만약 매일 저녁 당신과 이렇게 느긋하게 앉아서 얘기할 수 있으면 매일 아주 만족스러울 거야.”“지금 섭정하는 건 좀 익숙해졌어?” “익숙해졌냐고?” 우문호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영원히 익숙해질 수 없을지도 몰라. 그저 책임감에 쫓기고 있는 거지 소위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萬人之上)이란 건 순간에 헛된 영광일 뿐 고생과 과로가 무궁무진한 거더라고. 그리고 매우 많은 걸 희생해야 해. 예를 들면 이렇게 아름다운 수많은 밤을 희생시켜 버려야 하는 거야.”우문호는 차탁을 사이에 두고 원경릉의 손을 잡자, 낮 동안의 모든 일이 마치 공중을 밟고 있었던 것 같다. 발밑이 견고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꼭대기는 아주 좁아서 한 발짝만 삐끗하면 천길만길 낭떠러지다. 섭정을 해봤기에 알 수 있는 것으로 전에는 고요해 보이던 조정이 사실은 사방으로 바람 잘 날이 없다. 반드시 모두의 생각이 다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정치적 견해가 엇갈리면 증오와 미움을 낳을 수 있으므로 군왕의 기술은 바로 평형을 유지하는 기술이다.
잔뜩 긴장한 채로 앞으로 몸을 반쯤 내밀고 있었던 주 지부는 우렁찬 상대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중심을 잃은 듯 비틀거렸다. 그는 이내 팔을 뻗어 망루의 기둥을 붙잡으려 했지만, 허공에서 멈추고 말았고, 그대로 몸이 앞으로 쏠려 떨어져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가 말에서 빠르게 날아올라, 믿기 힘들 정도로 빠른 속도로 그에게 달려갔다. 상대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주 지부가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그를 안고 빙 돌아서 바닥에 착지했다.주 지부는 깜짝 놀라서 그만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를 구해준 사람은 반짝거리는 눈망울에, 품위 있는 모습의 젊고 잘생긴 사내였다. 주 지부는 그를 황제의 호위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거의 죽을 뻔한 고비를 넘겼기에, 안도의 한숨을 내쉴 새도 없이 그에게 예를 올렸다.“대인,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그때 말들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는데, 서일이 먼저 말에서 내려, 다급히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괜찮으십니까?”우문호도 매우 놀란 듯했다. 조금만 늦었다면, 주 지부는 정말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숨을 들이쉬었다.“괜찮다.”그러고는 주 지부를 보며 물었다.“자네는 누구요?”주 지부는 마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보며, 누가 황제인지 추측했다.황제는 올해 마흔에 가까운 나이로 알려져 있었기에 위엄이 넘쳐 보일 것이었다. 그는 일행 중, 냉 수보와 홍엽을 만난 적 있었기에, 거친 모습을 한 이 인물은 아마도 호위로 추측된다. “묻지 않았소? 자네는 누구요? 어찌 죽으려고 하는 것이오?”서일은 그가 멍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자, 큰 소리로 다시 물었다.주 지부는 울 지경이었다. 냉 수보가 그를 보고 있으니, 예를 올려야 하지만, 황제도 자리에 있으니, 바로 냉 수보에게 예를 올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대체 누가 황제란 말인가?그는 황제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어, 결국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고는 그들에게만 들릴 정도로 낮은 목소
원경릉의 말은 그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고, 자리에 있던 관리들은 기쁨과 동시에 두려움에 휩싸였다. 이 대인은 땅에 엎드려 온몸을 바르르 떨고 있었다. 그는 살아생전에 자신이 황제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은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평소 차분하고 신중한 주 지부도, 그도 감정이 격해져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눈가에는 눈물이 가득했다.황후를 만난 것만으로도 큰 영광이라 생각했는데, 황제까지 오신다는 소식에 그의 마음은 흥분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원경릉은 평생을 경성에서 다섯째와 함께 있었기에, 그녀는 그저 그가 온다는 사실을 간단히 전했을 뿐이었는데 말이다. 그녀는 다들 걱정 없이 역병을 치료하고, 언제나 황제가 그들의 뒤를 든든히 지켜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의 반응을 보니, 황제가 직접 오는 것이, 지방 관리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달았다.원경릉이 급히 말을 덧붙였다.“폐하게서는 그저 역병 때문에 온 것이니, 모두 각자 맡은 일에만 최선을 다하면 되네.”“예, 예, 마마의 명을 따르겠습니다.”주 지부가 눈물을 닦으며 답했다.그렇게 관아와 의서가 협력하여, 오계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원 할머니는 역병을 치료할 수 있는 처방을 몇 가지 내렸다. 경증 환자는 약차를 계속 마시고, 증상이 악화하거나 중증 환자는 그녀의 처방을 사용하도록 했다.전에 이미 근처 주부에 연락해 약을 보내라 명했고, 오계부에서 구비한 약까지 있으니, 이번 역병을 대처할 수 있었다.오계부 의서는 이번 역병을 과거의 역병과 동일하게 생각하고, 소홀히 한 것 외에는 준비가 충분했다.원경릉은 황제 일행이 저녁 무렵 오계부에 도착할 것이라 예상했다.주 지부는 원래 여러 관리와 함께 황제를 맞이할 예정이었지만, 원경릉이 이를 단호히 거부했다. 그녀는 황제가 미복 순행 중이니, 과하게 맞이하여 백성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했다.그 말에 주 지부는 당황했다.황제가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아무도 맞이하지 않는다니, 어찌 그럴 수 있다는 말인가?그러나 그는 황
약을 쓰자, 주 지부의 열이 단번에 내려갔다.열이 내려가니 정신이 맑아져, 그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는 애써 자리에서 일어나 황후마마에게 예를 올리겠다고 고집 피웠다.원경릉은 그에게 누워 있으라고 말한 후, 역병에 관해 이야기하며 주 지부에게 이를 중시할 것을 당부했다.주 지부는 이를 듣고 깜짝 놀라 말했다.“소신은 매일 의서에 사람을 보내, 역병의 상황을 보고받고 있사옵니다. 매일 보고된 상황은 그다지 심각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역병이 발생했지만, 작년과 비슷한 정도였고, 약재도 충분한데, 어찌 이렇게 심각해진 것입니까?”“매년 역병이 발생했으나, 대대적으로 퍼지지 않아,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네.”원경릉이 답했다.“의서의 이 대인을 불러, 상황을 확인하겠습니다.”주 지부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어제 이미 그를 찾아가, 환자 수와 사망자 수를 조사하라 명했네. 하지만 그는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모를 것이네. 자네가 사람을 보내, 관아에 와서 상황을 보고하도록 하게.”“예!”주 지부는 곧바로 사람을 보냈다.푸른 옷을 입은 남자는 관아에서 일하는 관리였기에, 그는 반 시진도 채 되지 않아, 관아 내에서 병에 걸린 자가 얼마나 되는지 통계해냈다.관아 내에서 역병 증상을 보인 사람은 총 열여덟 명이었고, 그중 두 명은 병세가 심각하여 이미 집에서 쉬고 있는 상태였다. 주 지부는 관아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병에 걸린 줄 몰랐고, 관리의 보고를 들은 후, 큰 충격을 받았다.의서의 이 대인은 하루 종일 쉬지도 않고, 바삐 움직였다. 서관 대인이 직접 오셨으니, 어떻게든 시키는 일을 완성해내야 했다.그는 사실 역병이 그다지 심각하지 않고, 그저 작년과 비슷하다고 여겼었다.하지만 여러 지역과 의원을 돌아보고 나서야, 이번 역병이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처음엔 그저 서관 대인에게 보고만 하려고 했지만, 병세가 심각해지자 그도 조급해지기 시작했다.하지만 짧은 시간 안에 인원수를 통계하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도, 다섯째 일행은 여전히 도착하지 않았다.그래서 원경릉과 할머니는 다른 의관을 더 둘러보기로 하고, 몇 군데 더 돌아본 뒤 관아에도 갈 계획을 했다.그런데 한 의관에 들어서자마자, 푸른 옷을 입은 중년 남자가 다급히 뛰어오며 말을 걸었다. “수 의원, 대인께서 병세가 위중합니다. 어서 봐주셔야 합니다.”의원은 그 말을 듣자마자, 약상자를 집어 들고 다른 환자들을 그냥 남겨둔 채, 푸른 옷의 중년 남자와 함께 나가려 했다.원경릉이 그를 막아 세우며 말했다.“의관에 있는 환자들을 돌봐야 하지 않소? 우리 할머님께서도 의원이니, 지부 대인의 병은 할머님께서 봐 드릴 것이오.”푸른 옷의 사내는 초조한 듯 원경릉을 향해 소리쳤다.“말도 안 되는 소리 마시오!““대인의 병세가 급박한데, 혹여라도 지체되면 당신들이 책임질 수나 있겠소?”바로 그때, 원 할머니가 호패를 꺼내, 그의 눈앞에 들이밀며 단호하게 말했다.“길을 안내하거라!”조급한 표정을 짓던 푸른 옷의 사내는 호패를 보자마자 표정이 얼어붙었다. 이내 정신을 차린 그는 곧장 허리를 굽혀 예를 올리며 말했다.“서관 대인께서 오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무례를 범해 송구하옵니다.”“그만 사과하고 길 안내나 하시오.”원경릉이 말했다.“예, 예!”사내는 급히 물러서서, 예를 갖춰서 길을 가리켰다.“마차가 밖에서 대기 중입니다. 서관 대인, 이쪽으로 오시지요.”원경릉은 할머니를 부축해 마차에 올랐고, 곧장 관아로 향했다.지부 대인은 따로 사저가 없어 관아의 뒷마당에서 거주 중이었다. 혼자 지내는 데다 관아가 워낙 가까워 편리했기 때문이다.관아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안으로 들어갔다.주 지부는 병세가 꽤 심각해져 있었다. 그는 어지럼증과 흉통에 시달려, 침대에 누운 채 말을 꺼낼 힘도 없었다.원경릉은 직접 치료에 나섰고, 약상자를 열어 체온 측정기와 청진기를 꺼냈다.푸른 옷의 사내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가씨께서도 의원이십니까?”그러자 곁에 서
이 대인이 원경릉에게 의학을 잘 모른다고 반박할 틈도 없이, 원 할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말대로 하게. 하루만 줄 테니, 그 안에 역병에 관한 모든 자료를 가져오게. 사망자 수도 포함되어야 하네." 이 말까지 듣자, 이 대인은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었다. 비록 조사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서관 대인이 멀리서 오계부까지 왔으니, 시키는 일은 해야지 대인의 마음에 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사람들을 보내 조사를 명한 후, 이 대인은 거처를 마련해 드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원경릉이 말했다. "괜찮습니다. 의서에 의원이 많지 않으니, 대인도 바쁘실 텐데요. 저희가 직접 오계부를 돌아보겠습니다." 이 대인은 그녀가 원 할머니의 힘을 빌려 위세를 부린다고 생각해, 대꾸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말에 답도 하지 않고, 원 할머니에게 예를 올렸다. "어르신께서 머무실 계획이 있으시면, 부디 저에게 알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밤 대인을 잘 대접하라, 명을 내리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네. 일이나 보게." 원 할머니는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원경릉에게 말했다. "먼저 좀 돌아보다, 객사를 찾아 머물자꾸나." "예!" 두 사람은 역병을 조사하기 위해 다급히 이곳을 찾아왔기에, 먼저 각지의 의원을 직접 돌아보려 했다. 아마 다섯째 일행은 빨라야 내일이나 모레쯤 도착할 것이었다. 두 사람이 의서를 나서자, 이 대인은 뒤따라 나오려다 원 할머니의 날카로운 눈빛에 움찔하며 발길을 멈췄다. 두 사람은 오계부의 거리로 향했다. 거리가 꽤 번화했고, 사람들도 제법 많아, 대낮에는 조금 붐볐다. 그들은 곧장 의원으로 향했다. 의원 앞에는 약차가 많이 진열되어 있었지만, 환자는 얼마 없었다. 겉보기엔 역병이 퍼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원경릉은 안으로 들어가 의원에게 상황을 물었다. 그러자 의원은 요즘 들어 약차가 잘 팔리고 있고, 하루에 천 봉지가 넘게 팔린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도 역병
늦게 출발한 원경릉은 신속하게 오계부로 향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오계부 근처 주현에 도착하자마자, 할머니가 현지 혜민서로 가야 한다며 잠깐 멈추자고 했다. 그러고는 혜민서에 오계부로 약을 공급할 준비를 하게 했고, 명을 받으면 바로 오계부로 보낼 수 있도록 미리 준비를 당부했다. 혜민서 산하의 의료기관들은 지난 몇 년간 개혁을 통해 뚜렷한 성과를 거두었고, 지역 간의 연결도 긴밀해졌다. 특히 역병을 상대하는 체계가 가동되면 상부에서는 전력을 다해 의원과 약을 지원해줄 수 있었다. 신신당부한 뒤에야 원경릉과 할머니는 오계부로 재빨리 향했다. 곧이어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우문호 일행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오계부는 인구가 500만 명에 이르는 곳으로, 두 개의 주부가 통합된 지역이었다. 열대에 있어, 경작지가 많고 산이 많아 농업을 위주로 삼고 있었다. 그래서 조정은 이곳을 서부의 주요 곡창지대로 삼고 있었던 것이었다. 농업이 발달한 지역은 상대적으로 경제도 번화했고, 현지 백성들은 벼 외에도 감, 자두, 리치 등을 대량으로 재배하고 있었다. 리치는 신선할 때 먹을 수도 있고, 말려서 건과로 만들어 팔 수도 있기에, 어느 정도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었다. 오계부는 백월국과 인접해 있었는데, 백월국은 북당의 속국으로 사이가 우호적이며 경제 교류도 활발했다. 이는 양국의 번영을 촉진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오계부의 지부는 장씨 성을 가진 오계부 출신이었다. 장 지부는 훌륭한 관리이며 지역 백성들로부터 존경받고 있었다. 원경릉과 원 할머니는 오계부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지역 혜민서를 찾았다. 할머니는 혜민서의 서관(署館) 신분을 밝혔다. 그녀는 북당 각 주부의 의서를 총괄하는 인물이고, 총책임자이기도 했다. 혜민서의 이 의원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두 사람을 안으로 청한 후, 바로 예를 올렸는데, 마치 신선이라도 본 것처럼 목소리까지 떨고 있었다. "소인은 이자옥이라 합니다. 어르신께서 친히 오신 줄도
그녀는 일단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 냉 대인이 자세한 상황을 묻는 사이에 제 대인의 피를 뽑았다. 약상자는 기능이 꽤 다양하기에, 바이러스 검사도 문제없었고, 안에는 양여혜가 준 소형 현미경도 있었다. 하지만 바이러스 관찰이나 세균 배양에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지체할 수 없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먼저 오계부로 향하고, 그녀는 이곳에 남아 제 대인을 치료하고 검사 결과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면 바이러스든, 세균 감염이든, 결과가 나와야 제대로 된 치료 방안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미색이 말했다. "저도 이곳에 함께 남겠습니다. 제가 환자를 돌보는 것 정도는 도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괜찮으니 먼저 가거라. 어쩌면 내가 더 일찍 도착할 수도 있으니깐." 원경릉이 말했다. 그녀는 혼자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지만, 미색까지 데리고 가는 건 무리였다. "우리가 먼저 출발하는데, 어찌 더 일찍 도착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미색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가능한 일이다. 원 선생은 늘 기적을 만들어내니." 우문호가 말했다. 그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고, 원경릉에게 다가가 조심하라고 몇 마디 당부했다. "알았소. 지체하지 말고, 어서 떠나시오. 오계부에 도착하면 곧바로 관아를 찾아가, 의원의 빠른 대처를 명하라 하시오. 만약 내가 먼저 도착한다면, 내가 관아를 찾아가겠소." "알겠소. 그럼, 먼저 가겠소!" 우문호는 그녀와 입을 맞추고 싶었지만, 보는 이가 많으니 그저 참을 수밖에 없었다. 서일은 황후를 홀로 두고 가는 것이 걱정되어, 우문호를 따라나서며 계속 물었다. "정말 황후를 이곳에 혼자 남겨도 되는 것입니까?" "그럼, 네가 남을 것이냐?" 우문호가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 "너도 원 선생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고 있지 않느냐?" 회왕 부부도 걱정은 되었지만, 다섯째의 여유로운 모습에 자신이 있을 것이라 믿었다. 다섯째 부부는 늘 비밀이 많은 사람들이라, 그들은 더 이상 신경
원경릉은 밖으로 나가, 오계부에 역병이 생긴 것 같다고 전했다. 오계부는 서쪽에 자리 잡고 있어, 기후가 더운 탓에 가끔 역병이 생기긴 했었지만 백성들은 고뿔 치료에 쓰이는 약초로 끓인 차를 즐겨 마시기에, 대규모로 역병이 돈 적은 없었다. 냉 대인이 말했다. "오계부에서는 이 상황을 조정에 알리지 않았습니다. 비록 해마다 역병이 생기긴 하지만, 빠르게 통제해 왔으니, 이번에도 예전과 같은 상황이지 않겠습니까?" 원경릉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런데 이번엔 더 심각할 수도 있습니다. 제 대인의 형도 역병으로 돌아가셨고, 그와 가까이 지낸 사람들도 병에 걸렸습니다. 이렇게 관아에만 역병에 걸린 자들이 많으니, 예전보다 더 심각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해마다 역병이 생겼으니, 그에 대한 대응책도 이미 있을 것입니다." 원경릉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해마다 역병이 생겼지만, 대대적으로 유행하지 않았기에, 현지 관리들이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 쉽게 통제될 것이라 생각하고, 방심할 수도 있으니깐요." 우문호가 물었다. "원 선생, 역병을 어떻게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하오?" "역병 상황이 안 좋을 것이라 추측할 뿐, 정말 오계부의 상황이 어떠한지는 아직 모르네. 제 대인은 여전히 고열에 시달리고 있어, 수액을 맞히고 해열제를 먹였소. 냉 대인과 함께 들어가 상황을 자세히 물어봐야겠소. 하지만 꼭 마스크를 끼고, 병을 막아야 하오." 원경릉은 유행성 독감이나 변이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일 것이라 의심하고 있었다. 그녀가 살던 세계에서는 A형 독감의 대규모 변이가 십수 년마다 한 번씩 발생했는데, 그런 변이 독감은 현대에서도 의료 체계에 큰 부담이 되곤 했다. 그러니 지금 이곳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만약 역병이 다시 시작한다면, 가능한 한 빨리 통제해야만 했다. 원경릉의 말을 우문호와 냉 대인은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도
원경릉은 청진기를 꺼내 그의 폐를 확인해 보았는데, 남녀가 가까이 접촉하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한 제 대인은 이내 손을 뻗어 그녀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병세가 심해 아픈 데다가,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묘한 위압감을 풍기는 의원의 단호한 눈빛과 기운에 그만 압도당하고 말았다. 원경릉은 앞쪽을 청진한 뒤, 그에게 옆으로 돌라고 한 다음에 꼼꼼히 살피고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며칠을 아프신 것입니까?" 제 대인은 꽉 막힌 코 때문에 콧소리를 내며 천천히 몸을 돌리고 답했다. "며칠 사이의 일입니다. 오계부를 떠날 때도 멀쩡했는데, 밤새 달리고, 말을 오래 타다 보니 고뿔에 걸렸나 봅니다." "기침 말고, 가슴 통증도 있습니까?" "예. 이곳이 아픕니다!" 제 대인은 가슴 근처를 손으로 누르며 말했다가, 숨쉬기가 어려운 듯 손바닥을 움직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도 아프고, 온몸 뼈마디도 다 아픕니다." 그러자 원경릉은 더 자세히 증상을 확인한 뒤 말했다. "약을 준비할게요. 수액을 좀 맞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수액이요?" 제 대인은 멍하니 원경릉을 바라보았다. "예. 질문은 하지 마시고, 그저 치료에 협조만 해주십시오. 병세가 꽤 심각한 편입니다." 원경릉은 제 대인이 폐렴이라 확신했고, 중증 폐렴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 대인은 병이 심하다는 말에 초조한 표정을 지으며 다급히 말했다. "의원 나리, 제발 최선을 다해 치료해 주십시오… 저에게는 아직 모셔야 할 노모가 있습니다. 지난달 병으로 형님께서 세상을 떠난 터라, 형님의 자식들도 제가 돌봐야 하니, 절대 이대로 목숨을 잃을 수는 없습니다." 원경릉이 답했다. "최선을 다할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치료에만 집중하시지요!" 제 대인은 감동을 받은 듯 감사 인사를 올렸다. "정말… 감사합니다." 원경릉은 곧바로 약을 지어 수액을 준비했다. 수액을 맞는 동안, 제 대인은 여전히 놀란 모습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