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경릉은 잠에 들었다. 이후에 그녀는 어떻게 우문호 곁에서 울다 잠이 들수 있었을까? 생각하다가 우문호의 몸에서 난 소독약 냄새가 마음에 안정을 가져다준게 아닐까 라고 결론을 내렸다.다음날, 그녀는 오랜만에 단잠으로 원기가 회복된 것 같았다.원경릉이 고개를 들자 우문호의 까만 눈동자가 보였다. 그녀는 천천히 손을 떼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좋은 아침!”“네가 자는 내내 침을 질질 흘려서 내 소매가 이리 더러워졌다.”“엇! 미안해!” 원경릉은 우문호의 소매가 젖은 것을 보고 부끄러움에 어쩔 줄 몰랐다. 우문호는 담담한 표정으로 눈을 감았다. 원경릉은 몸을 일으켜 주위를 둘러보니 탕양과 서일은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그들이 준비해 둔 세숫물로 간단하게 입과 얼굴을 닦고, 머리를 빗은 후, 문을 열었다. 문 앞에는 희상궁과 궁녀가 있었다. 그들은 원경릉을 보고 희상궁이 고개를 숙이며 “왕비님. 태상황님께서 왕비님이 깨시면 병구완을 들러 오라고 하셨습니다.”라고 말했다.“왕야의 상처를 먼저 치료하고 가도 될까요?”“어의가 치료할 것 입니다.”“하지만……”희상궁이 미소를 지으며“태상황님 말을 그대로 전하자면. ‘그 자식은 안 죽으니, 어의에게 맡기고 빨리 오라’고 하라고 하셨습니다.” 라고 말했다.“……” 원경릉은 다시 안으로 들어와 우문호를 보며 말했다. “저는 태상황님 병구완을 하러 가야합니다. 어의가 상처를 치료해줄 때 짜증내지 마시고, 상처에 소독약을 꼭 발라주셔야 합니다.”우문호가 인상을 쓰며 “내가 언제 짜증을 냈다고 그러느냐? 말이 참 많구나! 가보거라!” 라고 소리쳤다. 어휴. 할아버지나 손주나 의사를 존중하지 않는건 마찬가지구나.건곤전에 이르니 제왕과 주명취가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제왕이 그녀에게 우문호의 상태를 물었다. “괜찮습니다.” 그녀는 제왕에게 대답하며 주명취를 바라보았다. 주명취의 눈빛에는 증오가 가득했다.원경릉은 그녀를 무시하고는 희상궁을 따라 건곤전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작은 목소리로 희상궁에게
태상황은 주사를 맞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하기에 어쩔 수 없이 약을 마실 수 밖에 없었다. 약을 마시는 얼굴이 마치 소금물을 들이키는 것처럼 일그러졌다. 원경릉은 미소를 지으며 약사발을 상선에게 건네주었다. 상선은 비워진 약사발을 받아들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왕비님 건곤전에 계속 계셔주셔야 겠습니다!”상선을 말을 마치고 사발을 들고 나갔다. 원경릉은 미소를 지으며 침대 앞에 섰다. “태황상님 약도 드셨으니, 이제 주사를 맞을 차례입니다.”태상황의 얼굴이 한순간 일그러지며 원경릉에게 욕을 퍼부으려던 찰라 원경릉이 잽싸게 말을 이어나갔다. “보아하니 화가 많이 나신 것 같으니 화를 가라앉히는 주사를 한대 더 놓아드려야겠네요.”그러자 태상황이 입을 다물었다. 그것도 잠시 금방 또 으르렁거리기 시작했다. “전에는 손에 바늘을 꽂지 않았느냐? 왜 이번엔 바지를 벗으라고 하는것이야? 너는 수치도 못느끼느냐?”“꼭 엉덩이에 맞아야 하는 주사가 있습니다.” 원경릉이 주사기에 들어간 공기를 빼내며 대답했다. 공기가 다 빠지고 바늘위로 물약이 튀어나오자 그녀는 주사를 놓을 준비를 했다. “잘 협조하시면, 제가 살살 놔드릴게요.”태상황은 그녀가 주사를 놓는 것에 협조하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는 살고 싶었다. 그는 원경릉의 주사가 무슨 성분으로 이루어졌고, 어떤 용도로 쓰이는지 묻지도 않았다. 주사를 다 맞은 후 상선이 들어오자 태상황은 눈을 치켜뜨고 물었다. “밖에 사람이 아직 있는가?”“있습니다.” 상선이 대답했다. 원경릉은 건곤전 앞에서 태상황의 부름을 기다리고 있는 이들이 제왕 내외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태상황이 그들을 만나지 않으려고 하는 이유가 궁금했지만 차마 묻지는 못했다. 태상황은 눈을 감고 말했다. “그냥 서 있게 냅두어라.”원경릉 앞에 푸바오가 보였다. 푸바오가 약을 잘 먹기는 했지만, 원래 개들이 자가치유 능력이 강해서 상처는 금방 아물어 있었다.“아유 착하지.” 원경릉이 푸바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을 걸
이 모든 것들이 사전에 계획 된 것이었다. 어린 남나인은 그저 희생양일 뿐, 그의 집에서 찾아낸 은표는 초왕부에서 발행한 것이었고, 원경릉은 태상황을 치료해주다가 누군가에게 고발을 당했다. 만약에 구전단을 찾지 못했다면 그녀는 끝까지 태상황을 해하려고 했다는 혐의를 벗을 수 없었을 것이다.현재 그녀는 깨끗하게 혐의를 벗은걸까? 태상황은 원경릉이 그랬다 할 확실한 증거를 못 찾았을 뿐, 암암리에 이 사건을 뒤쫓고 있고, 초왕부는 여전히 의심을 받고 있다. 태상황은 이 일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원경릉은 자신도 모르게 태상황의 눈치를 살폈다. 태상황은 엄한 눈빛으로 그녀를 응시했다. 원경릉은 푸바오를 내려놓고 고개를 숙이고는 아무일 없었다는 듯 태평한 척했다. 그녀는 혹시 태상황이 이상한 낌새를 느낀건 아닐까 걱정했지만, 자신이 푸바오와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은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안심했다.“이리오거라!” 태상황 소리쳤다. “태상황님 분부하십시오.” 원경릉은 천천히 다가갔다.“아까 무슨 생각을 한 것이냐? 얼굴이 왜 갑자기 창백해졌느냐?” 태상황이 말했다. 원경릉은 상선과 희상궁 쪽을 힐끗 보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마 아침 밥을 먹지 않아서 그런지 갑자기 어지러워서 창백해진 것 같습니다.”희상궁이 웃으면서 답했다. “태상황님께서도 아직 드시지 않았습니다. 지금 준비하고 있으니 곧 식사를 하실 수 있을 겁니다.”“희상궁님 감사합니다!” 원경릉이 말했다. 태상황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는 해독을 한 직 후라 온몸에 기운이 없었다. 그는 원경릉을 노려보던 눈을 거두었다. 아침으로는 다진 고기를 넣은 죽이 준비됐다. 원경릉은 두 그릇이나 먹었다. 죽을 먹고 난 후 원경릉은 정신이 들고 온 몸에 기운이 솟는게 느껴졌다. 먹는 내내 푸바오가 혀를 길게 내밀고 침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원경릉은 이를 보고 웃으며 희상궁에게 “푸바오도 먹을 수 있게 소금을 넣지 않은 죽을 좀 내어주세요. 사실 태상황님도 소
원경릉은 이런 주명취가 이상하다고는 생각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아 예. 감사합니다.”“남주(南珠)는 미인에게 잘 어울린다고 하던데, 한번 보여주시지오.” 주명취가 말했다.원경릉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전 아직 안에서 태상황님을 모셔야합니다. 지금 보여드리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원경릉은 주명취의 말이 모두 의심스러웠기에 그녀가 하는 말마다 의도가 무엇인지 생각해야 했다. “그건 그렇네요. 태상황님의 상태는 어떠신지요?” 주명취가 말했다. 원경릉은 그녀를 보며 “궁금하시면 제왕비께서 직접 들어와 문안을 드리는게 어떠십니까?” 라고 말했다.주명취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그러자 제왕이 한걸음 다가와서 의심스럽다는 듯 말했다. “황조부께서 왜 본왕을 만나주시지 않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원경릉은 제왕의 말을 듣고 참 어리석다고 생각했다. ‘주명취가 못들어오는거지, 제왕이 못들어갈 이유가 무엇이 있겠는가?’원경릉은 사실을 말해 제왕에게 미움을 살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기에 “태상황님은 원래 사람이 바글바글 한 것을 싫어하시니까 그런게 아닐까요.” 라고 웃으며 답했다. “하긴 본왕 생각도 그럽니다.” 제왕은 고개를 돌려 주명취를 바라보았다.“그럼 우리는 이만 돌아갑시다. 황조부께서 건강을 완전히 회복하시면 찾아뵙시다.” 밖에서 줄곧 서서 기다리던 제왕은 급 피로감이 느껴졌다.주명취는 분노를 속으로 삼키며 두 주먹을 꼭 쥐었다. 태상황은 원래 제왕과 자신을 매우 아꼈는데 이럴수는 없다. 그녀는 이렇게 손도 못써보고 죽을 날만 기다릴 수는 없었다. 그녀는 반드시 태상황의 총애를 되찾아야 한다. 만약 그녀가 건곤전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원경릉이 태상황 옆에서 주명취의 험담을 해도 막을 수 없었다. 이렇게 생각하자 그녀는 신경이 곤두섰다. 주명취는 제왕을 보며 빙그레 웃었다. “그건 도리가 아니지요. 조금만 더 기다려봅시다.”“하지만 어마마마의 몸도 좋지 않으신데, 돌아가서 어마마마를 돌보는게 어떠십니까?”제왕은 건
원경릉은 태상황이 한 마지막 말을 흘려들었다. 그녀는 절을 하고 남주(南珠)를 들고서는 건곤전 밖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온 원경릉은 희상궁이 푸바오에게 죽을 먹이고 궁녀를 불러 그릇을 가져가라고 하는 것을 보았다. “왕비님 지금 별전으로 돌아가십니까? 그럼 쇤네랑 함께 가시지오.” 희상궁이 말했다. 원경릉은 자신이 가장 힘들 때 도와주었던 희상궁의 얼굴을 보니 문득 고마움 마음이 들었다. 별전으로 향하던 도중 희상궁이 물었다. “황제께서는 왜 왕비님께 남주 두 꿰미를 하사하셨을까요? 이 남주는 매우 귀해서 해마다 류큐에서 서너 줄 밖에 바치지 않는데, 태후마마, 황후마마, 그리고 현비마마에게 드리는게 태반입니다. 왕비께 두 꿰미를 하사하시면 아마 모자를텐데……”“오.” 원경릉은 건성 건성 대답했다. 희상궁이 그녀를 보며 “왕비님 쇤네가 하는 말을 건성으로 듣지 마십시오. 왕비님은 갖은 방법을 동원해서 현비마마를 왕비 편으로 만드셔야 합니다. 남주 두개 중 하나를 현비마마께 드리는게 어떻겠습니까?”라고 말했다. 희상궁의 말을 듣고 원경릉은 속으로 생각했다. “희상궁님 말이 일리가 있네요. 나중에 사람을 시켜 한 꿰미를 현비마마께 드리겠습니다.”희상궁이 웃으며 답했다. “지금 쇤네가 현비마마께 전해드리겠습니다.”“그럼 희상궁님 부탁드립니다.” 원경릉은 남주 한 줄을 꺼내 희상궁에게 건네었다. “제가 항상 현비마마를 공경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도 꼭 전해주십시오.” 원경릉이 말을 덧붙였다. “좋습니다! 왕비님 그럼 먼저 별전으로 돌아가십시오.” 희상궁은 남주 한줄을 받아 들고는 몸을 돌렸다. “예.” 희상궁이 몇 발자국 가더니 고개를 돌려 원경릉을 불렀다. “왕비님!”“왜 그러십니까?”희상궁은 망설이는 눈빛으로 “혼자 찾아가실 수 있죠? 별전 가는길을 아시나 해서……” 라고 조심스럽게 원경릉에게 물었다. “알고 있습니다.”원경릉은 미소를 지었다.희상궁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가던길로 돌아갔다. “희상궁님!” 이번엔 원경릉이 그녀를
“아니 이건 부황께서 하사하신겁니다.” 원경릉이 답했다.원경릉은 남주을 받은 것만 말하고 차용증서에 관한 얘기는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부황께서 하사하셨다고?” 우문호는 의아해했다.원경릉은 고개를 끄덕이며 잠시 침묵하다 희상궁 일이 떠올라 고개를 들었다. “왕야께서는 저를 믿으십니까?”“그건 왜 묻는거냐”“그저 하나만 묻겠습니다. 저를 믿으십니까?”우문호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너를 믿냐고? 아니 전혀. 비록 원경릉이 다친 자신을 치료했지만, 그녀가 지금까지 저지른 일들을 생각하면 그녀를 믿을 수 없었다.“이후에 무슨 일이 벌어진다고 하더라도 저를 믿고 제 편이 되어주십시오.” 원경릉은 그를 보고 말했다.“무슨 일이 벌어지는데? 무슨 짓을 한것이냐?”우문호는 긴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원경릉은 우문호의 눈빛에서 불신을 느꼈다. 그녀도 우문호가 자신을 믿지 않을 것이라고 어느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다. 그녀는 살짝 웃으며 “왜 다른 사람이 저지른 일은 다 제가 했다고 하는거죠?” 라고 말했다. 우문호는 몹시 초조해 하며 “왜 자꾸 본왕을 불안하게 하는 것이야!”라고 말했다. 원경릉은 고개를 돌렸다. “주명취가 줄곧 일을 벌이고 있어요.”그녀의 입에서 주명취가 나오자 우문호 안색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입 다물어라! 너는 주명취라는 이름을 언급할 자격이 없어!”별전 안이 조용해졌다. 그 둘의 눈빛이 잠시 교차하는 순간, 원경릉은 우문호의 흔들리는 눈빛을 발견했다. 원경릉은 속상하고 분한 감정이 들었다. “예. 맞아요. 저는 자격이 없죠!” 그녀는 기분이 매우 좋지 않았다. 어젯밤, 원경릉은 우문호에게 처음으로 따듯함과 안정감을 느꼈다. 그와 나눈 짧은 대화에서 잠시나마 이 남자를 믿어볼까 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는 모두 그녀 혼자만의 착각이었다. 우문호에게 원경릉은 주명취 발톱만도 못한 존재였던 것이다.원경릉은 한 손에 남주를 들고 무턱대고 밖으로 뛰쳐나왔다. 그녀는 정처없이 걸었다. 이 별전은 어서방(御書殿)에
우문두의 말에 원경릉은 웃음이 났다. “왕야, 소인이 부황과 다시 함께 식사를 할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장담하긴 이릅니다. 혹시 모르니까 일단 저랑 먼저 약속을 하시지오.”손왕(孙王)이 말했다.“왕야께서는 이미 수라상을 많이 드셨지 않습니까.”“왕비는 모릅니다. 부황께 따로 요리사가 있습니다. 설마 먹고도 맛의 차이를 못느끼셨다는 겁니까?” 손왕은 고개를 저으며 아쉽다는 듯 혀를 끌끌 찼다.“전 분간할 수 없었습니다.” 원경릉은 고개를 저었다. “아깝다! 아까워!” 손왕은 매우 아쉽다는 듯 말했다. “왕비는 맛있는 음식을 먹을 자격이 없어요! 그런 태도로 음식을 대하는 것은 죄입니다!”그는 손에 들린 닭다리는 보며 한숨을 쉬었다. “닭다리든 부황의 수라상이든 모두 짐심으로 대해야 합니다.” 그는 할말을 마친 표정으로 닭다리를 마저 뜯었다. 원경릉은 그가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며 ‘음식에 참 진심이구나’하고 흐뭇해했다. 손왕을 보아하니 딱히 일이 있어보이지도 않았고, 그녀도 정처없이 걷던 상태였기에 그녀는 손왕과 몇 마디 더 주고받기로 결정했다.“왕야, 근데 왜 풀숲 속에 숨어서 드십니까?” 그녀가 손왕에게 물었다. “본왕이 몰래 닭다리를 먹고 있는 것을 다른이에게 들키고 싶지 않아요.” “몰래?” 원경릉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왜 닭다리를 몰래 먹는걸까?“본왕은 살을 빼고 있는 중입니다.” 그는 말을 하는 도중에도 닭다리를 하나 다 먹었다. 그는 먹고 남은 닭뼈를 호숫가에 던졌다. 그는 손을 슥슥 닦더니 원경릉을 보며 손을 흔들고는 “가보겠습니다.” 라고 말하고는 유유히 걸어갔다.살 뺀다면서 몰래 먹는건 뭐람? 원경릉은 명원제의 아들들 중에 정상인 아들이 하나라도 있을까 싶었다. 그녀는 호숫가에 서서 심호흡을 몇번 했다. 손왕과 대화를 하고 나니 화난 감정도 약간 가라앉았다. 사실 화낼 필요가 있었나? 우문호는 주명취가 좋은 사람이라고 굳건히 믿고 있는 상태고, 또 그 둘은 죽마고우로 만약 원경릉이 없었다면 결혼까지 했을
“현비마마를 뵈옵니다!” 제왕과 주명취가 와서 안부를 물었다. “예의는 생략하고 어서 앉으세요!” 현비는 웃으며 말했다. 두 사람이 자리에 앚자 주명취가 현비를 바라보고는 말했다. “듣자하니 현모비께서 두통이 있으시다고 하던데, 어의는 보셨습니까? 이제 좀 괜찮으십니까?”현비는 마음속으로 탄식했다. ‘이렇게 효심이 깊은 여인이 우문호의 짝이 되지 못하다니.’“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니 머리가 좀 아픈 것 뿐입니다. 익숙해졌습니다.” 현비가 답했다. “현모비님 건강을 잘 살피셔야합니다.” 주명취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벌떡 일어나 현모비에게 다가갔다. “제가 문질러 드리겠습니다.” 그녀는 부드러운 손가락으로 현비의 관자놀이를 능숙하게 주물렀다. 현비는 크게 한숨을 쉬고는 “기술이 좋으십니다. 노집사보다 훨씬 실력이 좋으십니다.”그러더니 제왕을 바라보며 “제왕은 이리 좋은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니 얼마나 복이 있습니까.”현비는 안타까운 마음을 애써 숨기며 말했다.제왕은 몹시 자랑스러운 얼굴로 주명취를 한번 쳐다보며 “현모비께서 말씀한 것이 맞습니다.” 라고 하였다. 주명취는 부끄러운듯 얼굴을 붉히며 “황송하옵니다. 왕야는 잠시 자리를 비켜주시지오. 제가 현모비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라고 말했다.이 말을 들은 제왕은 군말없이 자리를 떴다. 왕이 밖으로 나가자 주명취는 눈시울을 붉히며 말을 하기 시작했다. “현모비님. 몸 조심하셔야 합니다. 제가 항시 여기에서 보살펴 드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소인이 참 걱정이 되옵니다.”이 말을 들은 현비는 주명취의 손을 잡고 손등을 다독였다. “다섯째는 정말 복이 없구나. 자네 같은 여인을 아내로 삼지도 못하고, 이제와서 이렇게 말하기도 뭐하지만…… 참 안타깝네.”“초왕께서는 잘지내십니다. 요 근래 황제께서 초왕비를 굉장히 아끼십니다. 황제께서 초왕비에게 남주(南珠) 두 꿰미를 하사하셨습니다. 그 중에 한 꿰미를 마마께 드린다고 하니 효심이 지극하지 않습니까.”현비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황제가 그녀에
요부인의 눈물이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의 말은 항상 그녀의 불안을 사라지게 해주었다.그녀가 목이 멘 목소리로 말했다."아이가 정말 우리를 만나고 싶어 하고, 정말 행복할 것이라 생각하네. 이렇게 좋은 아버지를 두었으니. 아이가 우리 곁에 올 수 있기를 너무 바랐네."그가 아버지로서 얼마나 훌륭한지, 희열과 희성은 여러 번 그녀에게 말했었다.그들은 밖에서 모두 아무 말 없이 침묵하며, 두 사람의 결정만을 기다리고 있었다.그러다 마침내, 미색이 참다못해 물었다."나이가 좀 많다는 것 외에, 다른 위험이 있습니까?""나이가 많다는 것 자체가 큰 위험이다. 출혈도 있고, 다른 증상도 있을 텐데 말하지 않더구나.""무슨 증상이요?"미색이 잠시 멈칫했다."혹 어떤 증상이 나타납니까? 증상 때문에 아이를 지킬 수 없다면 그때 다시 아이를 포기해도 됩니까?""어떤 문제가 발생할지 가정할 수는 없다. 너무 많은 경우가 생겨서 상상할 수 없을 정도다. 그저 지금의 상황과 몸 상태를 고려해 볼 뿐."나이가 많은 여인이 임신하면 정말 예측할 수 없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게다가 어머니뿐만 아니라 태아에게도 위험이 생길 것이다. 임신 중에는 자간, 경련, 두개내출혈, 태반 조기 박리가 있을 수 있고, 출산 후에는 선천적 결함이나 선천성 심장병 등이 있을 수 있었다. 물론, 임산부의 위험이 더 컸다. 임신성 고혈압, 당뇨병, 심장병, 그리고 신장병 등 여러 가지 질병이 있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이 증상들이 꼭 나타난다는 뜻은 아니지만, 정상 연령대의 임산부보다는 확률이 훨씬 더 높고, 흔히 보는 증상이었다.원용의가 물었다."그럼, 가장 나쁜 결과는 무엇입니까?"원경릉이 고개를 흔들었다."가장 나쁜 결과는 모두가 예상한 것처럼 어머니와 아이 모두에게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문제가 클 수도 있고, 적을 수도 있고, 모든 것이 알 수 없지만, 아이를 지키기로 결정을 내린다면, 큰 위험도 감수해야 한다."바로 그때, 훼천의 목소리가 문밖에서 들려왔
미색은 오히려 손뼉을 치며 기뻐했다."정말 잘됐습니다! 정말 임신이라니요!"원용의와 손왕비는 서로 눈을 마주쳤을 뿐, 미색처럼 기뻐하지는 않았다. 사실 오늘, 이곳에 온 두 사람의 마음은 무거웠다.그들은 모두 요부인이 이 나이에 임신한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고 있었다.특히, 요부인이 황후와 함께 걸어 나올 때, 황후의 눈빛에서도 기쁨을 찾아볼 수 없었다. 의술에 정통한 그녀마저도 낙관적이지 않으니, 다른 사람들은 더더욱 낙관할 수 없었다.원경릉이 미색과 나머지 사람들에게 말했다."요부인과 훼천이 할 이야기가 있으니, 먼저 나가자꾸나."미색은 잠시 멈칫했다."우리가 들으면 안 되는 이야기입니까?""그래. 부부끼리 꼭 해야 할 이야기가 있다."원경릉이 미색을 끌어당겼고, 미색은 워낙 눈치가 빨라 이 말을 듣자마자 단번에 깨달았다. 그녀는 놀란 눈으로 요부인에게 물었다."설마... 아이를 포기할 셈입니까? 왜요?""미색아, 헛소리하지 말고, 먼저 나가자."원경릉이 그녀의 손목을 잡고 문밖으로 향했다. 손왕비와 원용의도 이 모습을 보고는 함께 따라 나갔다.미색은 잠깐 머뭇거렸지만 결국 원경릉을 따라 밖으로 나왔다. 그녀는 계속 원경릉을 붙잡고 캐물었다."아이의 상태가 좋지 않은 것입니까?"뜰로 나와서 원경릉은 말했다."나이가 있으니, 지금 상태로는 위험할 수밖에 없다. 두 사람이 잘 상의해서 결정해야 할 일이다."손왕비와 원용의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미색은 멍하니 원경릉을 바라보았다."그러니... 지금 두 분은 아이를 가질지 말지를 논의 중이신 것입니까?""이건 그들 부부의 일입니다. 어떤 결정을 하든, 우린 그저 지지해 주면 됩니다."원용의가 담담히 말했다.그러자 미색이 갑자기 마음이 아파왔다."예. 물론 지지합니다. 어떤 선택을 하든 저는 꼭 지지할 것입니다."그녀는 돌의자에 앉아 무릎 위에 손을 올려 천천히 문지르고는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며 말했다."아이도 이 세상을 한번 보고 싶었을 텐데요."다들 아이
원경릉은 도무지 그녀를 이해할 수 없었다."훼천이 자네를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고, 심지어 이 아이보다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걸 안다고 하는데, 어찌 위험을 감수하려 하는 것인가? 자네가 없는 세상이 그에게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는가? 그에게 이 아이는 그렇게까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네."그들은 혼사 후 줄곧 행복하게 지냈다. 아이가 없어도 아주 만족스러워했다.만약 그녀의 몸이 견딜 수 있다면 문제 없겠지만, 이제 막 임신한 상태에기에 벌써 출혈이 생겼다. 게다가 이후에 그녀가 말하지 않은 다른 증상이 생길 가능성도 높았다.그러면 너무 위험해진다.요 부인이 아랫배를 어루만졌는데, 얼굴에는 모성애가 감돌고 있었다."처음 임신했다는 걸 알았을 때, 나도 이 아이를 포기해야 겠다고 생각했네. 내 몸이 임신과 출산을 견뎌낼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아이를 없애야겠다는 생각이 들자, 순간 너무나도 마음이 아팠네. 난 간절하게 그와의 아이를 갖고 싶네. 너무 이기적인 걸 알지만, 그 바람이 나를 흔들었네. 그가 아버지가 되는 모습을 보고 싶었네.""그는 이미 아버지네. 훼천은 언제나 희열과 희성을 친자식처럼 여겼네."원경릉이 말했다."아버지로서 해야 할 일을 다 했고, 심지어 그 이상으로 많은 것을 해왔다는 것을 알고 있네. 그래서 더욱 미안한 것이네. 다른 여인을 부인으로 맞이했더라면, 자식을 가질 수도 있었을 텐데. 나를 선택한 탓에, 그는 자신의 아이를 가질 수 없네. 그도 정말 아이를 원하는 것을 알고 있는가?""아이를 원했을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원한 적은 없네. 임신한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말할 용기가 없다는 건, 그도 위험을 감수하는 걸 원치 않는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네."요 부인의 얼굴이 복잡하게 일그러졌다."나도 알지만... 참 아쉽네."그녀가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사실 혼사를 올렸을 때, 그도 아이를 더 가질 필요 없이 희열과 희성만으로 충분하다고 했네. 하지만 두 딸은 그의 성을 따를 수 없네. 임신한 적
과거에 아이를 출산한 경험이 있는 미색은 풍부한 출산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훼천은 그녀의 경험이 필요했다.훼천은 미색을 한 대 쥐어박으려 튀어나오려는 손을 억누르며 원경릉에게 다가가 공손히 예를 올렸다."황후 마마, 부디 맥을 짚어 상태를 확인해 주시옵소서."원경릉이 물었다."이미 의원에게 진맥을 받지 않았는가? 회임이 확실한 것인가?""몸이 좋지 않다고 하니, 그제 돌아온 희열이가 맥을 짚어 보고는 임신했다고 했네. 나도 잘 모르겠네."요 부인은 살짝 얼굴을 붉혔다. 이 나이에 임신이라니, 정말 부끄러웠다.그녀는 원경릉을 불러 가까이 오라고 부르더니, 조용히 속삭였다."사실 아닐 수도 있네. 몇 달째 월경을 하지 않아서...""몇 달 동안 하지 않았다니요? 그럼… 임신이 아닐 수도 있겠습니다."내력이 깊은 미색은 요부인이 원경릉에게 바짝 다가가 낮게 말했지만, 여전히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말았다. 그리고 미색은 바로 입 밖으로 말을 꺼냈다."조용히 하거라!"원경릉이 웃으며 그녀를 나무랐다.‘미색도 참...’"정말 임신한 것인지, 어서 확인해 보게나."손 왕비가 말했다."그럼, 방으로 가세."원경릉은 요 부인의 손을 잡고 일어났다. 미색도 따라가려 했지만, 훼천이 그녀를 막았다."여기서 기다리시지요. 어차피 의술도 모르잖습니까.""나도 도우려는 것이다. 훼천아, 너도 참... 호의를 몰라주는구나."미색은 목을 길게 빼고 가고 싶어서 안달이었다. 그녀는 지금 상황을 제일 먼저 알아내야 했다. 그러자 원용의가 그녀를 붙잡았다."그냥 앉아서 기다리시지요. 임신이 맞는다면 원 언니가 곧 알려줄 것이니."미색에는 다시 훼천을 바라보며 물었다."아이를 낳지 않기로 하지 않았느냐? 어찌 임신을 막는 약을 쓰지 않은 것이냐?"훼천은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그는 지금 너무 걱정되었다.이 나이에 아이를 가지는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게다가 희열과 희성도 효심이 깊었고, 외손자까지 얻었기에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이리 나리가 말했다."훼천이 집으로 왔는데, 기쁘면서도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소. 그래서 물으니 다 말해주었소. 석 달 동안 비밀로 하려 했지만, 그래도 사전에 검사도 하고 미리 대비하는 게 좋을 것 같아, 황후에게 알리는 게 낫다고 생각했소."목여 태감은 고개를 끄덕이고, 재빨리 원경릉을 찾아갔다.원경릉은 실험실에 틀어박혀 있다가 요 부인이 임신했다는 목여 태감의 말을 듣고 깜짝 놀라, 손에 들고 있던 실험 도구를 급히 내려놓으며 물었다."정말인가?""부마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목여 태감이 대답하자, 원경릉이 말을 이었다."정말 큰 일이네. 요부인의 건강 상태가 원래 좋지 않았는데, 이제야 임신하다니. 그래도 큰 경사니, 내일 당장 찾아가야겠소."지금은 이미 오후였기에 다음 날 아침 일찍 출발하는 것이 좋았다.저녁이 되어 우문호가 궁으로 돌아오자, 원경릉이 말했다."내일 요부인을 만나러 갈 것이오. 아마 밤늦게 돌아오게 될지도 모르오.""다녀오시오."우문호가 말했다.그는 겉옷을 벗으며 물었다."이 나이에 임신해도 괜찮소?""아직 쉰 살은 안 됐지만, 고령 임산부인 건 맞소. 게다가 건강 상태가 원래부터 좋지 않아서 나도 좀 걱정되오.""그럼 당신이 곁에서 잘 챙겨주시오."우문호가 배려하며 말했다.그는 오래전부터 어디서든 원경릉의 도움이 필요하면 무조건 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오늘 저녁 여섯째도 궁에 왔소. 그래서 이 소식을 전했으니, 아마 내일 미색도 갈 것이오."우문호가 말했다."미색이 알게 됐다면 내일 아주 많은 사람이 몰리겠소."원경릉이 웃으며 말했다.미색은 비록 수다스럽지는 않았지만, 기쁜 일에는 지나치게 열정적이었다.다음 날 아침, 원경릉은 이른 아침부터 약상자를 들고 출발했다.요부인의 저택 앞에 도착하니, 역시 미색의 마차뿐만 아니라 원용의와 손 왕비의 마차까지 줄지어 서 있었다.문을 들어서자마자 미색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언제부터입니까? 대체 언제부터 우리한테 비밀로 하고 있었던
특히 황제가 된 지금, 그는 평화가 있어야만 발전이 가능하다는 것을 더욱 확신하게 되었다.두 사람은 손을 꼭 맞잡았다. 각자 자신의 신념과 소망을 위해 나아갈 것이다.이틀 후, 이리 나리가 궁에 찾아와 다섯째와 함께 경단이 경성으로 돌아오는 일을 의논했다.그러자 우문호가 의아해하며 물었다."돌아오다니? 난 전혀 몰랐습니다.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없었습니다."어젯밤에도 교류했지만, 귀경에 관한 이야기는 없었다."지금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언제쯤 불러들일 생각인지 묻는 것입니다.""한두 해는 지나고 부를 셈입니다. 무슨 일이십니까?""계획을 세울 생각입니다."이리 나리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1~2년이라면 금방 지나가겠군.’우문호는 미간을 찌푸렸다."무슨 속셈입니까?""전에 말했잖습니까? 경단이는 내 가업을 이어받아야 합니다. 제자가 그럴 능력이 되지 않으니, 어쩔 수 없이 제자의 자식을 탐낼 수밖에요."이리 나리의 제자 원경릉은 장사에 소질이 없었기에 그저 냉가의 가업을 그녀에게 맡길 수 없었다.이리 나리는 전부터 경단을 눈여겨보고 있었다. 만두는 경성으로 돌아와 군무를 배우고 있으니, 경단도 그의 가업을 이어받아야 할 때였기 때문이다. 한두 해 뒤에 돌아오면, 몇 년만 더 가르치면 대성할 것이었다.그러자 우문호가 웃음을 터뜨렸다."하하하. 진심이십니까? 냉가의 산업을 몽땅 삼켜버릴까 봐 걱정되지 않습니까?"하지만 이리 나리는 조금도 걱정되지 않았다."우선 몇 년 동안 가르칠 것입니다. 먼저 배울 것이 바로 부친의 뻔뻔한 요구를 단호하게 거절하는 것입니다."우문호가 바로 인상을 찌푸렸다."내 아들을 데려가면서, 어찌 이득도 못 보게 하는 것입니까?!""이득은 무슨, 이건 그야말로 통째로 삼켜버리는 거잖습니까? 욕심이 너무 크십니다."이리 나리는 옷소매를 휘날리며 자리에 앉은 후, 목여 태감에게 말했다."황후에게 가서 전하시오. 할 일이 생겼다고."목여 태감은 어리둥절했다."부마, 황후 마마께서 무슨 일을 하셔야
우문호는 종일 바빴다. 그는 차 한 잔을 들고 멀리 있는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특별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아닌, 그저 밥은 먹었는지, 무엇을 먹었고 내일 무엇을 할 셈인지 묻는 것 뿐이었다. 더불어 아이들에게 요즘 잘 지내는지, 무슨 책을 읽고 있느지에 대해서도 물었다.마치 처음으로 전화기를 접한 시골 사람처럼 신기해했지만 그는 마땅한 대화 주제를 찾지는 못했다.한편 원경릉은 홀로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우문호는 이미 능숙해진 듯 보였고, 심지어 목욕하러 가면서도 아이들에게 말을 남겼다.그가 목욕하러 가자, 원경릉은 곧장 아이들과 교감하며 이 일을 의논하기 시작했다.다섯째는 지금 억제제를 맞은 상황이었다.아이들은 잔뜩 흥분한 채 앞으로 언제든 아버지와 이야기할 수 있다고 좋아했다. 하지만 그는 의식으로 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말을 해야 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보면 그를 미친 사람으로 오해할 수도 있었다.목욕을 마친 우문호는 마치 의기양양한 수탉처럼 걸음걸이조차 전보다 더 당당해 보였다."원 선생, 계란이가 그곳이 이곳보다 훨씬 덥고, 과일도 적다고 하오. 과일을 말려, 아이들에게 나누어 보내는 것이 어떻소?"그러자 원경릉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좋소. 그럼 내일 함께 말리는 것이 어떻소?""좋소! 아, 그리고 만두한테도 물어야겠소. 깜빡하고 어디까지 갔는지 묻지를 못했소."우문호는 앉아서 머리를 수건으로 닦은 뒤 다시 눈을 감고 우문예와 대화를 시도했다.그 모습을 보며 원경릉은 차마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침대에 누워서도 우문호는 여전히 흥분 상태였다. 그는 두 손을 베고 말했다."원 선생, 당신이 없었으면, 정말 많은 재미를 놓쳤을 것이고, 이렇게 많은 걸 배울 수도 없었을 것이오. 세상에 이런 것도 있다는 것을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었소. 우리가 경험한 일들이 정말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인지조차 믿기 어렵소.""알겠소."원경릉은 그의 충격에 휩싸인 표정을 바라보며 말했다."난 당신이 살던
"그래, 좋구나. 죽여서 천도를 꼭 바로잡아야 한다!"우문호가 말했다."천도?""법이다! 죽여서 법을 바로 세워야 한다!"냉정언이 꼬투리를 잡자, 우문호가 급히 정정하며 억울한 표정으로 까다로운 그를 바라보았다.천도가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그는 요즘 천도를 따르는 것을 원하고 있었다.저녁 무렵 소월궁으로 돌아온 우문호는 흥분한 얼굴로 원 선생에게 이 이야기를 전하려 했다. 하지만 미간을 찌푸린 채 사색에 잠겨 한쪽에 앉아 있는 원경릉을 발견했다. 그녀는 그가 돌아온 것도 모르는 듯했다."원 선생...?"우문호가 그녀를 부르며 다가갔다.원경릉은 아이들과 교감할 수 없는 문제를 어떻게 이야기할지 고민하며 넋을 잃고 있다가, 우문호의 목소리를 듣고서야 정신을 차렸다. 그녀가 다급히 일어나 말했다."돌아왔소? 곧 저녁을 올릴 테니, 손 씻고 오시오."그가 괜히 입맛을 잃을 수도 있으니, 그녀는 일단 배를 채우고 이야기하려 했다.하지만 우문호는 신이 나서 앉더니, 두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감싸며 말했다."급할 거 없소. 할 말 있소."원경릉이 그의 반짝이는 눈을 보며 따라 웃었다."오?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소? 어찌 이렇게 기뻐하는 것이오?"우문호는 목소리를 낮췄지만, 여전히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오늘 계란이와 연락이 닿았소. 그녀의 목소리를 들었소."그러자 원경릉이 깜짝 놀라며 되물었다."정말이오? 목소리를 들었소? 뭐라고 했소?"순간 우문호의 얼굴에 빛이 나는 듯했다."밥 먹었냐고 물으니, 먹었다고 답하며 나한테 식사를 했는지 물었소. 그래서 굴비를 먹었다고 말했네. 우리를 그리워하고 있고, 조만간 우리를 보러 오겠다고 했소."원경릉은 그의 말이 사실인지 헷갈렸다. 그와 아이들이 교감할 수 있는 것은 자기장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다섯째는 그들과 다른 상황이라 교감이 가능할 리가 없었지만 기쁨에 가득 찬 그의 표정으로 보아, 거짓은 아닌듯했다."말을 한 것이오?"원경릉이 다시 묻자, 우문호가 이내 고개를
점심을 먹은 후, 그녀는 혼자 산꼭대기로 올라가 먼 곳에 있는 금나라의 도성을 바라보았다. 거세게 부는 바람을 느끼며, 그녀는 문득 스승님이 금나라로 돌아갔는지 궁금해졌다.그녀는 스승님이 며칠 더 머물기를 바랐지만,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다급히 금나라로 떠났다. 그가 이렇게까지 신경 쓰는 일은 좀처럼 없었기에 이상했다.방금 들린 낮은 목소리를 떠올리며, 그녀는 순간 스승님이었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아버지의 목소리와 비슷하게 들려, 어머니가 아버지에 대해 말했던 것이 떠올랐다. 설마 아버지의 정신력이 이렇게 먼 곳까지 전달될 수 있는 걸까?그녀는 마음을 집중해 답해 보았다.“아바마마, 저는 식사를 했습니다. 아바마마는 드셨습니까?”한편, 경성 황궁 어서방에서 냉수보, 이리 나리, 탕양, 그리고 몇몇 친왕과 중신들이 과거 시험 개혁에 대해 논의하고 있었다.이리 나리가 자신의 의견을 차근차근 얘기하고 있었고 모두가 집중해서 듣고 있었는데, 그러던 중, 우문호가 갑자기 고개를 살짝 기울이더니, 이내 탁자를 세게 내리치며 벌떡 일어났다. 그는 기쁨에 찬 얼굴로, 흥분된 목소리로 외쳤다."먹었어, 먹었다. 굴비를 먹었는데, 정말 맛있더구나."그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모두 놀라 그를 쳐다보았다.그가 탁자를 세게 내리치는 바람에 잔이 앞으로 날아가, 열변을 토하던 이리 나리의 얼굴을 강타해 버렸다. 이리 나리는 코를 맞은 것도 모자라, 온몸이 흠뻑 젖고 말았다.이리 나리는 그를 가만히 쳐다보다가 천천히 일어나서 옷을 털어내고는, 담담한 얼굴로 말했다."사과와 해명을 하시지요."그러나 우문호는 여전히 흥분한 상태였다. 그는 이리 나리의 어깨를 붙잡고 활짝 웃으며 말했다."듣고 있으니, 어서 계속 이야기 하십시오. 나리의 의견이 너무 뛰어나, 듣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습니다! 나리는 정녕 전무후무한 북당 최고 부자입니다! 훌륭합니다!"냉수보가 무표정하게 말했다."북당의 수보는 접니다만."이때, 목여 태감이 황급히 달려와 걱정스러운 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