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후는 두툼한 솜옷을 걸치고 뒷문 옆의 작은 문간방에 숨어 쿵쾅거리는 심장을 감쌌다.정후는 초왕을 볼 면복이 없었지만 초왕이 왜 오밤중에 정후부에 온 것인지 그 이유가 궁금했다. 정후는 둘째 노마님을 시켜 그곳의 동태를 살피라고 했다. 둘째 노마님은 똑똑한 사람으로 정후의 말을 듣고 정후도 가지 않는 곳에 왜 자신이 가야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녀는 몸 상태가 좋지 않아 갈 수 없다고 거절했고 그 말을 들은 정후는 화가 치밀었다.하지만 노마님은 달랐다. 우문호가 정후부에 왔다는 소식을 듣고 노마님께서 손씨 아주머니를 데리고 왔다. 노마님은 우문호가 원경릉에게 화를 내거나 손찌검을 할까 걱정되는 마음에 손녀를 보러 온 것이다. 노마님이 문을 열고 들어가니 노마님의 예상 밖으로 우문호가 손녀의 배에 찰싹 붙어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노마님은 깜짝 놀랐지만 한순간에 근심 걱정이 사라졌다. “조모! 조모께서 이 늦은 밤에 어찌 행차하셨습니까.” 원경릉은 우문호를 밀치며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조모, 제가 이렇게 늦게 와서 죄송합니다. 여기 앉으세요.”우문호는 노마님이 앉을 수 있게 의자를 준비했다. 노마님은 손자사위를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원경릉과 우문호를 번갈아 보며 “왕야도 앉으시지요.”라고 말했다.우문호는 자리에 앉아 노마님을 보았다.“듣자 하니 몸이 편찮으시다고 하던데, 지금은 어떠십니까 많이 좋아지셨습니까?”“왕야께서 걱정해주신 덕분에 지금은 많이 좋아졌습니다.”“다행입니다. 경릉이가 항상 조모를 걱정하고 있습니다.” 우문호가 웃으며 원경릉의 손을 잡았다.노마님은 이게 무슨 상황인가 어리둥절해 원경릉을 보자, 원경릉이 자리를 옮겨 조모의 옆에 앉았다.“조모님, 황상께서 비록 화가 나셨지만, 손녀와 왕야 사이에는 아무 일도 없습니다. 공주부의 일은 이미 왕야께 말씀드렸고 용서도 받았습니다.”그제야 노마님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노마님은 오밤중에 우문호가 찾아와 원경릉을 나무랄 줄 알
조어의의 진찰 결과손씨 아주머니가 얼른 빗자루를 받아 쥐고, “상궁 마마께서 어찌 이런 일을 하십니까? 쇤네가 하지요.”“그런 말씀 마세요.” 희상궁이 웃으며, “저도 왕비마마를 모시는 사람인 걸요.”희상궁은 꿋꿋하게 자기가 빗자루질을 했다.노마님이 손씨 아주머니에게 분부를 내려, “왕야와 왕비마마께서 드실 걸 좀 내오너라.”손씨 아주머니가 얼른 가서 직접 준비했다.두 사람이 먹고 나자 만아도 조어의를 모시고 돌아왔다.노마님은 어의가 온 것을 보니 걱정스러운데 사식이가 노마님을 달래며 황제 폐하의 경계를 늦추게 하려고 일부러 어의를 불러 온 것이라고 사실대로 얘기하고 나서야 노마님은 비로소 안심하셨다.한바탕 설득 끝에 노마님이 겨우 돌아가셨다.조어의가 맥을 짚은 뒤 우문호와 원경릉에게: “왕야, 왕비 마마 안심하십시오, 왕비 마마께서는 별 일 없으십니다. 정상적으로 쉬시고 정상적으로 드시면 별 탈이 없을 것입니다.”우문호는 어의를 병풍 뒤로 불러 한 손으로 병풍을 꽉 잡고 조어의를 포위하듯 감싼 후 별 거 아닌 듯한 말투로: “어의, 잠시 후 정후부를 나간 뒤 밖에서 누가 자네에게 왕비의 상태를 물으면 자네는 뭐라고 대답할 텐가?”조어의는 새댁처럼 조신한 몸짓으로 눈이 침침한 지 죄 없는 눈을 깜박거리며, “그……당연히 왕비마마 상태가 아주 좋으십니다. 궁에 계신 분께 걱정하시 마시라고 해야 지요.”“궁에 계신 분이 걱정하시면 큰 일이라도 생기나?” 우문호 말투가 심상치 않다.조어의가 당황해서, “그……그 왕야께서 보시기엔 어떻게 답하는 것이 옳습니까?”“태아 상태가 좋지 않다고 해야지, 출혈과 유산 기운이 있다고.” 우문호가 말했다.조어의가 화들짝 놀라며, “그……그런 일이 어찌 가능하겠습니까? 이는 앞으로 태어나실 세손 저하를 저주하는 것으로 소신은 감히 할 수 없습니다.”“뭐가 저주야? 이 녀석이 만약 말 몇 마디에 떨어질 아이면 나와도 소용없어, 아비인 내가 괜찮다는데 어의인 자네가 무서울 게 뭐가 있는데? 내가 시키는 대
호 아가씨 문제를 두고 두 사람의 신경전사식이가 와서 어의를 부축하며, “어의, 내가 데려다 주겠네.”어의가 한숨을 쉬며, “사식 아가씨, 그럴 필요 없습니다. 가서 왕비마마를 돌봐 주세요. 만약 무슨 일이 생기면 얼른 제게 좀 알려주시고요. 안타깝게도 폐하께서 소신이 정후부에 머무는 것을 허락치 않으셨거든요. 그렇게 라도 해서 왕비마마의 용태를 알아야 지요.”말을 마치고 어의는 스스로 마차에 올랐고 사식이는 돌아가라고 했다.사식이가 돌아가서 우문호에게: “왕야 안심하셔도 됩니다. 어의 완전 거짓말의 고수였어요, 눈도 하나 깜짝 안하고 금군을 꼼짝 마라 어르던 데요.”원경릉이 웃으며 살짝 우문호를 째려보고: “이 정도 계책을 아바마마께서 못 알아보실 리 없어.”“알아채셔도 괜찮아, 이 아인 폐하의 손자인데 폐하가 긴장 안 하면 누가 긴장해? 의심스럽더라도 만일 진짜일 경우를 생각해야 할 걸?” 우문호가 안 봐도 비디오라는 듯 말했다.매일 여기에 조금이라도 더 머물 수 있도록 우문호도 필사적이었다.“넌 안심하고 태교에만 신경 써, 잘 먹고 잘 마시고 잘 자고. 정후부 사람은 사식이에게 잘 감시하라고 할 테니까, 누가 널 괴롭히거든 다음에 내가 아주 작살을 낼 거야. 할머니가 너를 감싸 주실 건 나도 아니, 전에 듣기로 할머니께서 슬슬 권력을 다시 쥐기 시작하셨다 더군. 할머니가 주도권을 쥐고 계신데 감히 누가 죽고 싶어서 덤비겠어?”하고 다독거렸다.원경릉이 웃으며 “나 그건 걱정 안 해.”원경릉이 작게 한숨을 내쉬며, “단지 지금 이 중차대한 시기에 아바마마와 힘겨루기를 하게 될 줄 생각도 못했을 뿐이야. 진북후가 언제 호 아가씨를 데리고 돌아온데? 알고 있어?”“대략 며칠 안에 도착할거야, 이미 내 계획은 아바마마께 알렸고, 아바마마께서 진북후의 딸을 양녀로 삼으시고 공주로 책봉한 뒤 공주의 부마를 찾는 것으로 말이야.”“아바마마께서 그러자고 하실까?” 원경릉에게 순간 희망이 솟아났다.“그러고 싶지 않으셔도 어쩔 수 없지. 난 어쨌든
우문호의 처가 방문과 장인의 태도“진짜 화났어?” 원경릉이 물었다.우문호가 고개를 저으며, “아니, 태자자리를 놓고 다투는데 진북후의 협력은 없어도 돼, 그 사람이 방해만 하지 않으면 돼지.”넷째가 이제 꼬리를 드러냈으니 다음 수순은 진북후의 지원을 얻어내는 것일지도 모른다.안되지, 우문호는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막아야 한다.우문호는 호 아가씨와 혼인하지 않을 것이고 진북후의 후원도 필요 없지만 진북후가 넷째를 도와서도 안되고, 당연히 큰형을 도와서도 안된다. 우문호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자리에 앉아, “난 그만 가 볼게, 정언한테 얘기할 게 좀 있어, 내일 다시 올 테니, 어서 좀 쉬어.”원경릉은 우문호의 안색이 순간 얼어붙은 데다 냉정언에게 간다는 얘기에, 분명 중요한 일을 처리하러 가는 것이라고 느끼고: “알았어, 조심해서 가.”“알았어!” 우문호는 원경릉의 볼에 뽀뽀하고 헤어지기 아쉬운 눈빛으로, “안심해, 넌 금방 다시 돌아갈 수 있으니까.”원경릉이 웃으며, “서둘지 마, 난 여기서도 진짜 좋아.”“내가 안심이 안돼.” 우문호가 일어나는 김에 원경릉도 일으켜 품에 안더니 이마에 입을 맞추고, “나 간다.”원경릉은 우문호를 놓아주며 그가 나가는 것을 지켜봤다.우문호가 나가고 얼마 되지 않아 정후가 조심조심 형녕각에 나타났다.정후는 이리저리 둘러보고 우문호가 정말 간 것을 확인하자 뒷짐을 지고 어깨를 편 뒤 어슬렁어슬렁 거들먹거리며 들어 왔다.헛기침을 한번 하더니, “듣자 하니 방금 왕야께서 오셨다고.”실내를 잽싸게 살피는데 망가진 탁자나 의자도 없고, 원경릉의 얼굴에도 손가락 자국이나 상처 같은 게 없다.상당히 이상적인 상황으로 크게 화를 내지 않은 건 확실하다.원경릉은 여전히 불안에 떠는 정후의 얼굴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몸의 원래 주인의 아버지라는 이 인간은, 도둑놈 심보는 있지만 도둑놈이 될 배짱은 없는 사람이다. “왕야께서 뭐라 시더냐?” 정후는 아무도 자신을 상대해주지 않자 기분이
원경릉을 대하는 가족의 태도원경릉은 잔뜩 슬픈 표정으로, “셋째 이모가 돌아가셨어요? 미인박명이라 더니, 그런데 셋째이모면 어머니 쪽 사람인데 어머니만 한 번 가보시면 되지 않습니까?”정후는 꿀꺽 침을 삼키며 다소 어색한 말투로 말했다 “네 셋째 이모부도 돌아가셨어, 가는 김에 내가 한꺼번에 문상을 다녀오려고.”“한 번에 두 분이나 돌아가시 다니, 진짜 지관이 묘자리를 잘못 쓴 걸까요.” 희상궁이 탄식했다.정후가 이 말을 듣고 잠시 넋이 나갔다. 진짜 조상의 묘자리를 잘못 쓰기라도 한 건 아닐까? 왜 자신이 작위를 계승한 뒤로 계속 재수가 없는 거지?보아하니 이번엔 진짜 고향에 가서 조상의 무덤을 보수해서 우리 집안 사람 목숨을 구해주는 지 두고 봐야겠다.정후가 착잡한 마음으로 뒷짐을 지며, 조상님 자손들 관직운 좀 팍팍 주셔서 잘 살게 해주시면 안됩니까?마당에 서서 순간 어디로 가야할 지 몰라 하다가 내친김에 황씨한테 가기로 했다. 여편네지만 그래도 정실 부인이니 이 참에 가까이해서 아내와 금슬이 좋아지면 혹시 운이 트일 지도 모른다.황씨가 없어 물어보니 노마님께 불려갔다고 한다.어머니께서? 정후는 어머니가 출신이 귀한 집안인 데다 방금 사람들 말로 왕야가 왔을 때 노마님이 직접 맞으러 가셨다고 했다.정후는 예전에 노마님께 의지하는 일이 드물었지만 막다른 길에 몰린 지금 같은 때에 노마님께 희망을 걸고 어쨌든 가보기로 했다.황씨는 노마님께 안으로 불려갔다.황씨는 시어머니가 이렇게 화를 내는 건 처음 봤다.특히 요즘 시어머니는 줄곧 침상에 누워 있어 반쯤 죽은 사람 취급하며 다를 시어머니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그런데 화를 내니 장난이 아니다.“네 이년, 어느 집 어미가 이렇게 해? 딸이 쫓겨서 돌아왔는데 얼른 가서 안부를 묻고 신경 쓰기는 커녕 밥상머리에서 밥그릇을 깨? 너는 철딱서니가 없는 거냐 아니면 머리가 모자란 거냐? 어떻게 그렇게 매정하고 부덕한 짓을 저지를 수가 있어?”노마님은 한바탕 꾸짖으셨지만 화가 풀리지 않아
목여태감의 지혜명원제의 표정이 다소 누그러졌으나 목여태감은 다시 서글퍼 하며, “단지, 여러 사람이 그러는데 명의도 스스로 치료하는 것은……”목여태감이 몰래 명원제를 흘끔 봤다.명원제가 목여태감을 매섭게 노려보고 있다.목여태감이 얼른 고개를 숙이고 너무 티가 났나?목여태감은 스스로 반성했다. 최근 너무 자만해서 감히 폐하의 어심까지 넘겨짚었다.하지만 황제도 전부 알아채셨으니 한마디 더한다고 달라질 것도 없다. “왕비마마는 태아를 쉽게 잃지 않을 것입니다. 태상황과 태후께서도 상당히 기대하고 계시니까요.”명원제가 탁자를 두드리며, “됐다, 그 입 다물라!”“예, 쓸데없이 지껄였습니다.” 목여태감이 할말 다하고, 허둥거리지 않고 여유 있게 잘못을 시인했다.명원제는 자기 마음이 약해서 속고 있다고 느꼈지만 어쩔 수 없다. 손자는 중한 법이니까. 명원제는 이번은 참고 넘기기로 하고 냉랭한 말투로 말했다. “다섯째에게 매일 가서 곁에 조금 더 있어 주도록 하고, 하루 세끼 잘 먹는지 지켜볼 것이며 조어의에게 명해 정후부에서 있으며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짐에게 보고하도록.”목여태감이 눈가에 번지는 일말의 미소를 숨기며 말했다. “예, 소인 얼른 가서 초왕부에 성지를 전하겠습니다.”명원제는 목여태감이 허리를 굽히고 나가 것을 보며 눈을 흘겼다.최근 진짜 머리가 아파서 토가 나올 지경이다.진북후는 곧 도착하는데 지금 명원제 곁에는 걱정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원래 다섯째를 진북후 쪽과 혼인을 시키면 적어도 진북후를 2~3년은 묶어 두고 다시 방법을 생각해 천천히 그의 병권을 빼앗으면 그나마 볼멘 소리가 좀 덜 할 텐데.아니면 진북후의 속내가 드러나는 순간 나라와 백성이 해를 입을 것이다.진북후는 원래 괜찮은 사람으로 우국충정이 넘치지만 사람은 변할 수 있으며 특히 병권을 가지면 교만해지기 쉽다. 최근 몇 년 동안 진북후가 수도로 보내는 상소문을 보면 알 수 있다. 진북후의 요구가 점점 많아지고 태도도 점점 방자해 지고 있다.그런
명원제의 고뇌와 정후부 노마님의 결정명원제는 약간 감동한 것 같다. 여자는 약해도 엄마는 강하구나.원경릉이 말대꾸하며 어심을 거역한 것이 보호수단이 아닌 적이 있었나?지금 그녀 입장에선 제일 중요한 건 복중의 아이다.다섯째가 제안한 호 아가씨를 양녀로 삼는 건은 불가능하진 않지만 황실에 시집오는 것만 하지는 못할 게 분명하다.황실에 시집 오면 그야말로 평생이 아닌가. 진북후는 효심이 깊은데다 딸을 심하게 예뻐 해서 일단 호 아가씨가 다섯째와 혼인하면 진북후는 매사에 먼저 딸과 사위를 염두 해 둘 것이다. 게다가 진북후는 역심을 품었 다기보다 그저 야심이 큰 것에 불과하니 만약 황실의 장인이 되고 또 딸이 나중에 태자빈, 황후가 될 것을 알면……명원제는 여기까지 생각하다가 흠칫 하고 당황한 것이, 이 예상에는 계속 의식적으로 한 사람을 배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원경릉이다. 명원제는 다섯째를 태자로 세울 마음이 있어, 저절로 호 아가씨가 태자비가 될 것이고 심지어 후일에 황후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그럼 원경릉은? 만약 원경릉이 세손을 낳으면, 세손은 적출의 장자이니 어떤 신분이 이보다 높을까? 그러니 그 어머니의 신분 또한 자연히 낮을 수 없다.이제 진지하게 생각해보면 역시 불가능하구나.정후부에선 정후가 ‘문상’하러 고향으로 간 뒤, 둘째 노마님이 정후부의 대권을 쥐려고 시도해 정후부 사람을 앞마당으로 소집 시켰는데, 세상에, 어찌 된 일인지 노마님 제일 높은 정좌에 앉아 계셨다.원경릉은 들어가지 않고 밖에서 보고 있다.둘째 노마님의 안색이 좋지 않았지만 여전히 웃음을 띠고: “형님, 몸도 불편하신 데 안에서 더 쉬시지요, 집안 일은 형님을 대신해 제가 나눠 맡으면 됩니다.”노마님이 천천히 눈을 뜨시고 평소처럼 둘째 노마님을 위아래로 훑어보고, “자네가 제대로 맡질 못 했어, 자네가 집안을 다스린 요 몇년간 엉망진창이야. 인간이 덜 된 인간에게 청탁을 한 것만 봐도 알겠네. 앞으로 집안 일은 자네는 관여하지 말게.”둘째 노마님
원경릉 할머니의 한 방둘째 부인이 비웃으며, “죄송해요, 형님, 저 사람들 매매 계약서가 저한테 있는데 인력 중간상이 와도 매매 계약서가 없으면 데려 가질 못하겠네요.”손씨 아주머니께서 껄껄 웃으며, “둘째 노마님, 노마님께서 요즘 장부를 회계하는 장방(賬房)에 드나드신 게 진짜 장부를 검사하시려는 것인 줄 아셨습니까?”둘째 노마님이 당황해서, “당신들……”손씨 아주머니의 안색이 순간 가라앉으며 차갑게 말했다. “집안의 모든 매매 계약서는 이미 노마님 손에 있습니다. 둘째 노마님, 이 매매 계약서 속에서는 한 장이 더 있지요, 둘째 노마님 애초에 것 말입니다. 둘째 노마님은 주인 노릇을 오래 하셔서 당초에 어떻게 작은 나리와 잠자리를 하셨는지 잊으신 모양입니다. 사람은 근본을 잊어서는 안돼지요, 노비 출신이신 걸. 오늘 노비들은 잘들 생각하시게. 팔려 나가면 이렇게 좋은 집이 아닐 수도 있으니.”모든 사람이 다 그 자리에 우뚝 서서 순간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몰랐다. 원경릉이 밖에서 보고 미소를 짓고 할머니는 이기지 못할 싸움은 하시는 분이 아니구나. 이 싸움은 할머니의 승!하인 하나가 다들 어쩔 줄 몰라 하는 사이에 얼른 나와 서서 노마님에게: “노마님, 소인은 노마님께 견마지로를 다하길 원합니다.”이 하인은 문맹으로 이 말은 자신이 아는 말 중 가장 수준이 높은 말이다.견마지로는 분명 사자성어다.이 사람은 차의(差矣)라고 불리는 사람으로 조상은 높은 관직을 지냈으나 죄를 지어 자손은 전부 노비가 되었다.차의는 여러 차례 팔려 다녔기에 또 팔려간다는 건 다시 처음부터 시작한다는 뜻이라는 것을 알았다.인류의 가장 독보적인 특징은 바로 군중심리다.다들 아무 결정도 내리지 못했을 때 돌연 누군가 한 사람이 선택을 하면 그 뒤에 사람들도 우르르 따라가게 된다.그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우르르 한 떼거리의 사람들이 재빠르게 다른 쪽으로 옮겨갔다.둘째 노마님의 뒤에는 몇 명의 심복만 썰렁하게 있을 뿐이다.둘째 노마님과 난씨는 분노로 얼굴이
대오가 경성으로 돌아올 때 홍엽도 원숭이와 같이 돌아왔는데, 그도 풍도성에서 힘을 보탰다. 사실 홍엽이 안 가도 안풍 친왕이 모든 걸 다 준비해 둬서, 안풍 친왕 능력이면 안지여 정도 상대하기는 식은 죽 먹기였다.이리 나리 일행은 경성에 도착해, 우선 집으로 돌아가 공주와 천행이를 보고 가족이 함께 밥을 먹은 뒤 입궁해서 경과를 보고했다.사적인 원한은 한두 마디로, 벌을 받아 마땅한 사람은 지금 받아야 할 벌을 받고 있으며 아직 죽이지 않았다고 했다남은 건 정사를 논하는 것이었다.“어머니와 같이 풍도성에서 보름 정도 지내며 기본적인 민심을 파악했는데, 천문 세가는 백성들 사이에서 아직 명망이 높아 보입니다. 풍도성 백성들은 사실 세금이 너무 많고 경제가 번영한 성과가 전부 안지여 수중에 떨어지는 구조로 되어 있어 안지여의 통치에 불만이 있었다고 합니다. 조정에서 풍도성을 접수한 것에 백성들 대부분은 찬성하였습니다. 하지만 이제 천하태평이냐 하면 그럴 순 없는 것이, 일부는 성주가 자기들의 황제라 여기고, 조정이 풍도성을 접수한 것이 풍도성이 침략당했다고 여겨 나중에 약간 문제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따라서 지부를 임명하실 때 신중하셔야 할 것입니다.”우문호가 말했다. “흠, 큰할아버지께서 천거한 사람이 있는데, 바로 박원이라네. 자네 생각은 어떤가?”그러자 이리 나리의 눈빛이 빛났다. “제 아버지가 추천한 사람이니 전 찬성입니다!”“아버지?” 우문호가 의아해하며 이리 나리를 쳐다봤다. ‘안풍 친왕비가 사부님이면 안풍 친왕은 사부의 남편 아닌가? 어떻게 아버지가 되지? 사부님의 배우자니 사모님이라고 부르는 게 더 맞지 않나?’“흠, 안풍 친왕은 제 아버지십니다!” 이리 나리는 더 설명할 생각이 없는지 어쨌든 그렇다고 주장했다. 그 오랜 세월 동안 한 번도 그를 아버지라 부른 적 없지만, 마음속에서만큼은 진정한 아버지였다.“하하하!” 우문호도 그저 웃으며 더는 묻지 않았다.이리 나리가 퇴청할 때 우문호가 이리 나리를 부르자 고개를 돌렸다. “무
“우선 박원이랑 소홍천 의사부터 물어보자. 억지로 하게 하고 싶지 않아. 그동안 그들이 날 많이 도와줬으니 전부 원하는 대로 하자고.” 우문호가 말했다.“그러자!” 원경릉이 일어서며 말했다. “오늘 저녁 애들 데리고 어머님께 가서 수라를 들려면 빨리움직여야 해. 꾸물대면 늦을거야.”그러자 우문호도 계란이를 안고 일어섰다. “그래, 우리 황조모한테 가서 맘마 먹자.”우문호가 나가서 부르자 아이들이 달려와, 같이 왁자지껄하게 수라를 들러 황태후 전으로 갔다.황태후는 원래 우문호에게 할 말이 있었지만, 식사 자리에 아이들이 있어서 기다렸다가 저녁을 다 먹은 뒤 우문호와 아이들이 나가서 놀고, 원경릉이 황태후와 얘기를 나눌 때 말을 꺼냈다.“천행이가 태어난 지 얼마나 됐다고 부마를 풍도성으로 보낼 수가 있지.. 공주가 얼마나 괴로웠을까.”원경릉이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공주는 사정을 훤히 알고 있어서, 이리 나리께서 풍도성에 가는 걸 지지하셨는걸요.”“말은 그렇게 해도, 출산 후에 여자 곁엔 남편이 있어야 하는 법이야. 하지만 이것도 단지 우리 가족끼리 하는 얘기일 뿐이고, 조정 일을 내가 함부로 이렇다 저렇다 할 수 없는 노릇이지.”황태후는 이리 나리가 풍도성으로 간 진정한 목적을 전혀 몰랐으며, 단순히 어지러운 형국을 정리하러 갔다고만 알았기 때문에 순수하게 공주를 아끼는 마음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어마마마, 걱정하지 마세요. 이리 나리는 이미 돌아오는 중이래요.” 원경릉이 위로하자 황태후가 기쁜 표정을 지었다. “그거 잘됐네!”온 가족이 별빛을 받으며 천천히 소월궁을 거닐었다.계란이는 아빠 품에서 잠이 들었고, 아이들은 놀다 지쳐서 아빠 엄마를 따라 천천히 걷고 있었으며, 목여 태감이 궁인 둘을 데리고 뒤에서 조용히 따라오는 가운데, 궁 안은 인적이 드물어 밤이 되자 상당히 고요했다.“어마마마께서 공주를 아끼셔서, 이리 나리가 하필 이때 풍도성에 보냈냐고 하셨어.” 원경릉이 말했다.“날 원망하셨어?” 우문호는 품에 있는 아이가 깰
늑대파 사람이 안지여와 소여쌍을 질질 끌고 나가는데, 소여쌍은 여전히 미친사람처럼 웃어대기만 했다.이리봉청은 그들이 끌려 나가는 것을 보자, 눈앞에 안지여가 자신을 데리고 소여쌍의 침대 앞으로 가서 소여쌍의 그 악랄한 말을 듣던 순간이 떠올랐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여리여리하고 아름답던 그녀가 이렇게 변해 버린 게 꿈처럼 느껴졌다.풍도성을 접수한 뒤 안풍 친왕은 관리들을 새롭게 임명했고, 더 이상 성주 같은 것을 두지 않고 조정과 이부에 적합한 인사를 선발해 풍도성 지부로 앉힐 것을 요청했다. 풍도성은 더 이상 이전의 독립 자치 지역이 아닌, 다른 주나 현과 마찬가지로 조정에 귀속되어 통일서 있게 다스리게 되었다.더불어 안풍 친왕은 별도로 서신을 써서 황제인 우문호에게 보냈는데, 풍도성을 추천하지만, 이건어디까지나 건의와 추천이니 황제가 생각하는 마땅한 사람이 있으면 안풍 친왕의 추천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동시에 안지여의 잔당들이 계속 나타났다.안풍 친왕이 이번에 이렇게 많은 사람을 데려오고, 호랑이와 눈 늑대, 회색 늑대까지 출동시킨 건 바로 모든 세력을 강화하고, 신속하게 진압해 풍도성을 조정에 복귀시키고 보름 만에 비적을 토벌하며 기본적인 숙청을 마무리하기 위해서였다.박원은 잔당의 남은 불씨가 다시 타오르는 것을 막기 위해서 안풍 친왕의 영패를 가지고 부근에 5천 명의 군사를 파견시켜 풍도성을 지켰다. 이리 나리는 자금을 지원해 천문 세가의 묘를 이장하였는데, 이전 무덤은 안지여가 고른 곳으로 폐허에 가까워, 그는 천문 세가 사람들이 그런 곳에서 안식을 취하기를 원하지 않았다.풍도성에 온지 거의 한 달가량 될 때쯤, 대군은 경성으로 돌아갈 채비를 했다.돌아가기 전에 미색이 안지여와 소여쌍을 보러 갔다가, 돼지우리에서 죽느니만 못한 삶을 사는 것을 보고 그제야 비로소 맺혀 있던 한이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미색은 이리 나리와 어머님에게 알리지 않은 것이, 두 사람은 이미 안지여가 누군지 잊은 듯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리봉청에게 있어 모든 건 지나가지 않았고, 36년 전 일은 여전히 어제 일 같이 느껴졌다.“어머니, 그를 어떻게 처분하시겠어요?” 이리 나리는 이리봉청의 마음을 넘겨짚을 수 없어 함께 걷는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네 생각은 어떠니?” 이리봉청이 다시 되묻자 이리 나리가 원한에 사무친 눈빛으로 말했다. “제게 처분하라고 하면 전 그를 죽여 버릴 겁니다.”이리봉청은 알았다며 대답만 했다가, 다시 30분쯤 걷다가 정자에 앉아 을 때 말을 덧붙였다. “난 안 죽일 거야.”이리 나리가 약간 놀라서 물었다. “어머니, 또 마음이 약해지신 겁니까?”이리봉청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 반대야. 그 인간을 죽이는 게 마음이 약해진 거지. 사실 며칠 동안 이전의 원한을 내려놓을 수 있을지 생각해 봤는데, 내려놓을 수 있다면 그 인간을 백번이라도 죽이겠지만, 난 그럴 수 없더구나. 아들아, 게다가 오늘 천문 세가 대문을 들어서는 그 순간, 더욱 마음을 굳혔단다.”이리봉청이 일어나 집안을 둘러봤다. 이곳은 그녀의 가족들이 살아 원래 온통 사람 소리로 가득한 곳이였다. 그들의 웃던 광경이 눈앞에 비치는가 하더니, 눈 깜박할 사이에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그들은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천문 세가는 큰 잘못을 저지른 것도 없는데 멸문지화를 당했고, 가엾게도 그 중엔 아이들이 많아서 제일 어린아이는 이제 태어난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았었다.이리봉청의 얼굴에 눈물이 타고 흐르며 가슴이 미어졌다. “그자와 소여쌍을 밖에 내버리고 사람을 시켜 지켜보도록 해. 죽게 두지 말고 계속 살려둬. 36년은 더 살면서 이 세상의 고생을 모두 겪어야, 내 마음에 맺힌 한이 풀리고 억울한 망자들도 안식에 들지!”이리 나리는 온몸으로 그 마음이 느껴져, 어머니가 눈물 흘리는 것을 더는 볼 수 없었다. “네, 전부 어머니께서 말씀하신 대로 할게요.”안지여와 소여쌍은 버려졌다. 짧은 며칠 사이에 안지여는 의기양양하던 성주에서 시궁창 쥐로 변해, 사람들이
안지여는 풍도성 지하감옥에 갇혔다. 빛 한 줄기 없는 지하감옥에서 사방에 끝없는 어둠과 절망만이 안지여를 삼키고 있었다.훼천의 형벌은 12 시진 후면 사라져서, 앞으로 안지여는 그저 한 명의 폐인일 뿐이었다.안지여의 결사대가 성으로 공격해 들어오기 전에, 이리봉청은 오 선생을 찾아내 안지여가 저지른 모든 죄를 고백하게 하고 안풍 친왕이 친필로 받아 적었다. 안지여가 당시 천문 세가를 해친 경위를 소상히 써 내려간 뒤, 오 선생과 안풍 친왕의 직인을 찍고 인쇄해서 대중에게 공개했다.안지여의 죄악은 하늘을 찔러 백성들 모두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안지여의 결사대의 옛 부하들이 본래 성을 공격해 들어가 안지여를 구출할 계획을 세워놓았으나, 안지여의 죄상이 공포된 뒤로 많은 사람들이 해산하였다. 유일하게 무대장군만이 수천 명을 데리고 성으로 쳐들어왔지만, 안풍 친왕과 이리 나리가 이미 대비해둔 덕분에, 경성에서 굴러온 돌이 무대장군의 박힌 돌을 빼내는 전투를 벌였다.풍도성에 온 지 7일째, 안풍 친왕은 풍도성을 접수하고 성에 살던 사람을 쫓아내며 서민으로 강등시켰다.안지여와 소여쌍에 대한 처분은 이리봉청에게 넘겼다.안지여는 캄캄한 지하감옥에서 6일을 지내는 동안, 처음엔 침착한 척 가장했으나 사흘째가 되자 울부짖으며 악독한 저주의 말을 내뱉더니, 나흘째가 되자 용서해달라고 애원하며 참회했다.손발의 힘줄이 끊어진 안지여는 일어나 걸을 수도 없고 심지어 스스로 몫숨을 끊을 힘도 없었다.그 와중에 매일 누군가가 먹고 마시도록 해주고, 상처도 치료해 주어 살 수 있다는 부질없는 희망을 품게 했다.훼천의 말에 따르면, 진정한 절망은 살아도 죽느니만 못하고,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것으로, 온 마음으로 죽기를 바라지만 살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었다가, 안간힘을 쓴 뒤 다시 절망에 빠지는 것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것으로, 사람을 한없이 죽였다 살렸다 괴롭힌다고 했다.결국 안지여를 죽일지 말지 여부는 이리봉청에게 달렸는데, 그녀는 안지여를 단번에 죽여 천문 세가
안지여의 이마에 파란 힘줄이 불끈불끈했으나 냉정을 가장했다. “내가 두려워할 줄 알았나 보지? 죽음도 두렵지 않은데 뭘 더 두려워하겠어?”“넌 두려울 것이야!” 이리봉청이 고개를 돌려 이리 나리를 보고 살짝 그의 팔을 잡았다. “내가 오는 길에 늑대파 사람이 그러던데, 천하에서 제일 잔혹한 형벌을 아는 사람이 늑대파에 있다고. 그게 사실인 것이냐?”이리 나리가 가볍게 답했다. “물론 사실이죠. 훼천이라고 합니다. 늑대골 출신이에요.”“안지여가 버틸 수 있는지 어디 한 번 보고 싶구나.” 이리봉청이 말했다.이리 나리가 엄숙한 태도로 명을 내렸다. “훼천!”그러자 훼천이 급히 나왔다. “이리 나리, 분부하시지요!”이리 나리는 그가 짐짓 냉정한 척하고 있으나 눈빛이 조금씩 허물어져 가고, 몸까지 부들부들 떠는 것이 아주 만족스러워 훼천에게 담담하게 말했다. “시작해!”안지여가 갑자기 큰 소리로 욕했다. “난 네 아버지거늘, 감히 나에게 손을 대다니, 천벌을 받아 마땅한 놈 같으니라고!”이리봉청이 이 말을 듣고 잠시 주저하는 눈빛으로 이리 나리를 바라봤다.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제 아버지는 오직 저를 키워주신 안풍 친왕뿐이십니다.”이리봉청이 살짝 안도했다. “저 인간이 단지 나만 해쳤으면 네 체면을 봐서 놔줬겠지만 천문 세가의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갔으니 난 용서할 수 없구나.”“이리봉청, 너 언제 이렇게 악랄하게 변했어? 죽이려거든 그냥 죽여. 난 천문 세가 사람을 죽이긴 했어도 그들을 괴롭히진 않았어. 네가 날 죽이려거든 깨끗하게 단번에 죽여!”안지여가 크게 노해 몇 번 몸부림을 치다가 상처가 벌어지는 바람에 배에서 선혈이 흘러나오고, 훼천이 가까이 다가가자, 눈에 두려움이 깊어졌는데, 늑대골 출신 훼천은 온몸에서 피비린내가 뿜어져 나와 안지여를 덜덜 떨게 했다.“이리율!” 안풍 친왕비는 시ㅈ가하기 전에 이리 나리를 불렀다. “내가 여기서 네 엄마와 같이 있을 테니 넌 먼저 나가 있거라!”이리 나리가 안풍 친왕비에게
안지여에게 구원 병력이 없는 상황에서, 이리 나리 일행이 성을 제압하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대오가 경성에서 출발하기 전에, 안풍 친왕비가 미리 사람을 풍도성으로 보내 각처, 특히 성 수비군과 군대에 잠입시켜, 음식에 효과가 천천히 나타나는 독을 풀어, 오늘 중독 증상이 나타나도록 독의 분량을 조절했다.적어도 내일까지는 안지여를 도우러 올 사람은 없었다. 독성은 적어도 이틀이 지나야 깨끗해지기 때문에 이틀 동안 그들은 설사와 전신 무기력으로 성에 무슨 일이 있다는 걸 알아도 와서 도울 수 없었다.그리고 그들이 기력을 회복할 때쯤이면, 안지여는 벌써 죽었을 것이다.안풍 친왕과 이리 나리는 성을 통제하고, 안지여 부부를 제압해 두 사람을 줄로 묶고 지혈시켜 주었다.안지여는 요 몇 년 동안 자신이 상당히 대단하다고 여겼다. 이는 풍도성이 부유하기 때문으로, 돈으로 많은 사람을 살 수 있었으며, 여러 곳에서 추켜세워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처절하게 패배한 적이 없었던 이유는 진정한 적이 없기 때문으로, 주변의 떠돌이 비적은 작은 마을 규모로 너무 작아서 소탕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결코 그가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적이 너무 약해서였다.조정 사람과 비교했을 때, 그는 제대로 훈련받은 적 없는 비적었기에 일격도 감당할 깜냥이 못됐다.이리 나리는 둘을 중정에 묶어 두었다. 온 바닥에 남은 음식과 깨진 기와가 널브러져 있는 것을 본 안지여는 마음속 깊이 분노가 일었다. 자신의 생일날, 그를 다치게 한 것이 바로 그의 친자식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더욱이 오늘 이렇게 많은 고수가 현장에 있었는데도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이런 결말을 맞다니 너무 불쾌했다. 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을 부축하고 안지여 부부 앞으로 가서, 그녀가 안지여 부부를 내려다보자, 그들은 낭패에 달가워하지 않는 기색으로, 이리봉청은 분노하는 마음과 함께 서글픈 마음도 들었다. 그들을 죽이면 커다란 복수는 이뤄 천문 세가 망자의 원혼은 달랠 수 있었다.하지만 저들을 이렇게 쉽게
“그럴 필요 없을 것 같은데?!” 이리 나리가 검을 휘두르며 안지여를 겨누자, 안지여가 공중으로 뛰어올라 후퇴했다.공자들은 돕고 싶었으나 검은 옷을 입은 노인들에게 바로 제압당했다. 안지여는 이리율 것으로 그들은 주변 사람을 제압하기만 할 뿐 옆에 서서 전투를 관전하고 있었다.이리율의 무공이 얼마나 뛰어난지 그를 가르친 안풍 친왕 부부를 제외하고, 사실 많은 사람들은 모르고 있었다.이리율의 검법은 신속하고 맹렬해서 안지여는 상대하느라 쩔쩔매고 구석으로 몰리고 있었다. 성안의 호위들은 늑대 무리와 늑대파, 홍매문 사람들에게 막히는 바람에 안지여는 홀로 고전을 면치 못했는데 그래도 아직은 버틸 수 있었다.하지만 30분을 못 가서 안지여는 질게 틀림없었다.놀란 나머지 계속 실성해 있던 소여쌍이 갑자기 이리봉청을 향해 바싹 마른 손을 뻗어, 그녀의 목을 조르며 광적인 집착과 분노에 사로잡혀 성질을 부렸다. “멈춰, 다들 멈추라고. 안 그러면 내가 이년을 죽여버릴 것이니까!”소여쌍은 무공을 할 줄 알았지만 잘하지 못한 것이 어릴 때부터 계속 중병을 앓아 무공 연습에 소홀했고 성주 부인이 된 뒤로는 더욱 병기에 가까이할 일이 없었지만, 공력만큼은 아직 약간 있었다.소여쌍은 증오의 힘으로 이리봉청의 목을 졸랐는데, 소여쌍이 조금만 더 힘을 주면 이리봉청의 목을 부러뜨릴 것만 같았다.안풍 친왕이 차가운 눈빛으로 나서려 하자, 안풍 친왕비가 말리며 고개를 살짝 흔들었는데, 그럴 필요 없다는 뜻으로 뒤에 있던 사람들에게도 참으라는 눈짓을 하자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모두가 이리봉청이 제압당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녀가 고개를 돌리자, 손가락으로 뭔가를 쥐고 있어 소여쌍의 어깨 위를 휘감고 팔을 눌러 소여쌍이 머리를 돌리게 했다. 이리봉청 손에 쥔 것은 바늘로, 그대로 소여쌍의 오른쪽 눈을 찌르고 들어갔다.소여쌍이 절규하며 이리봉청을 놔주고 선혈이 흐르는 눈을 움켜쥔 채 비틀거리다 바닥에 쓰러져 데굴데굴 구르며 새된 소리를 지르는데, 원망과 저주의 말을 끊임없이 쏟아
풍도성 중정에는 안지여의 아들들과 사위가 그의 곁에 남았는데, 크고 작은 부상을 입어 점점 공포에 질려가고 있었다.‘이 사람들, 아주 대단하구나!’안지여는 이리봉청을 보고 비록 조금 냉정해 보였지만, 여전히 놀라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갑자기 소여쌍이 큰 소리로 웃으며, 몸을 앞뒤로 흔들며 눈물을 찔끔거리더니 완전히 미친 사람처럼 갑자기 웃음을 멈추고 부들부들 떨리는 손가락으로 이리봉청을 가리키며 원망했다. “뜻밖에 네가 안 죽었단 말이지? 게다가 아들까지 있고. 참으로 황당하구나. 정말 너무 황당해. 원래 죽어야 했을 인간은 죽지 않고, 잘 살아야 할 사람은 36년간 괴로움을 당했어. 이리봉청 네가 날 비참하게 만들었으니 넌 이제 지옥에 떨어져야 해.”이리봉청은 소여쌍의 말을 들은 체 만 체했는데, 그녀 눈에는 지금 안지여만 들어왔다.안지여는 36년을 살아왔지만, 이리봉청에게 있어 36년은 마치 사라진 시간처럼 멸문지화의 원한이 어제 일 같았다.안지여도 이리봉청의 눈에서 분노와 악랄함을 보고, 처음으로 마음속에 두려움을 느꼈다.안지여는 억지로 감정을 가라앉히고 말했다. “네 사람을 데리고 가. 지난 일을 묻지 않을 테니. 그렇지 않으면 풍도성에서 곧바로 10만 대군이 올 것으로, 살아서 도망갈 생각은 꿈도 꾸지 않는 게 좋아.”이리봉청의 목소리가 낮게 잠겼다. “우리는 이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바로 네 성으로 쳐들어갈 수 있어. 넌 이미 졌어.”안지여가 웃었다. “졌다고? 그래?”안지여는 수하의 대장군이 믿음직해서, 그들을 당하게 놔줄 수도 있다고 여겼다. 대장군의 부대는 분명 치밀하게 준비되어 있을 것으로, 아마 지금쯤이면 궁수들이 이미 배치를 마치고 그들을 전부 쏴 죽이기 위해 기다리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의 손을 잡고 말했다. “어머니, 저자와 말 섞으실 필요 없어요. 앉아서 지켜보시기만 하면 됩니다!”말을 마치고 의자를 올리더니 이리봉청을 부축해서 앉혔다.안지여가 이리 나리를 보는데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