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지여는 결국 화를 참지 못하고 조금의 망설임이나 연민도 없이 이리봉청의 따귀를 세게 내리쳤다. 그러자 이리봉청은 정신을 잃고 한쪽으로 쏠리며 바닥에 쓰러져 버렸다. 안지여는 이리봉청이 바닥을 짚은 손을 구둣발로 짓밟더니 옷을 홱하고 감아올렸다. 옷에서는 익숙한 훈향이 나건만 표독스러움은 낯설었다. “내 인내심에 도전하지 마. 결과는 네가 감당할 수 없을 테니까.”이리봉청은 손가락뼈가 부러지는 소리를 듣고도 아픔이 느껴지지 않았다. 마음의 고통이 모든 것을 덮어버려 통각이 마비가 되어버린 것이다.이리봉청은 처음부터 끝까지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반쯤 바닥을 기어 허공에 매달린 여동생을 절망적으로 바라봤다. 자책, 자괴감, 증오, 분노, 절망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솟구쳐 올랐다.안지여가 옷을 여미더니 성루를 내려갔는데, 안지여의 호위 부대인 철위 몇 명이 이리봉청 곁에서 냉담하게 바라보고 있었다.“안지여, 당장 네 목숨을 내놓거라!”아래에서는 계집종 방화가 분개하여 소리쳤다. 비록 외마디 절규에 불과했으나 이리봉청은 몸서리치며 얼른 기어가 성벽에 아래를 내려다보니 방화가 피바다 위에 쓰러져 있었다.철위의 긴 창이 방화의 심장을 뚫었는데 방화의 손에 칼이 한 자루 쥐어져 있고 분노로 가득한 눈은 천천히 다가오는 안지여를 노려보고 있었다. 안지여는 핏발이 선 눈을 들어 냉혹하게 말했다. “이년을 사냥터에 던져넣어!”철위는 방화의 머리끄덩이를 잡고 청석판이 깔린 길을 질질 끌고 갔다. 방화의 입에선 선혈이 뿜어져 나왔다. 비통하게 바라보고 있던 이리봉청이, “방화!”라고 소리치며 미친 듯이 달려 내려가 배에 통증이 와도 넘어지고 기면서 처절하게 목 놓아 외쳤다. “안지여, 방화를 놔줘. 네 말대로 할 테니까!”안지여가 우뚝 멈춰서더니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천천히 손을 흔들어 철위에게 계집종 방화를 놔주라는 표시를 했다.이리봉청은 달려들어 바닥에 무릎을 꿇고 방화를 안았는데 방화는 입에서 피를 토하며 머리를 들기 위해 애썼다.
그러자 결국 안지여는 천문 세가 사람들을 놔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막 호전되기 시작한 소여쌍이 배려를 무시한 채 안지여의 손을 잡고, 별처럼 새카만 눈을 들어 지극히 순수한 표정과 가녀린 말투로 가장 포악한 말을 뱉었다. “오빠, 천문 세가는 역천개명 능력을 지녔는데 그들을 놔주면 앞으로 복수할 계획을 세울 게 틀림없어요! 그때는 오빠도 저도 목숨을 부지하지 못할 거예요.”소여쌍은 마지막으로 살짝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오빠와 하루라도 부부의 연을 맺었으니 전 이생에 여한이 없어요. 오빠가 약속을 지켜야만 한다면 오빠랑 손잡고 함께 황천을 건너도 전 행복해요. 하지만 전 보고 싶지….” 소여쌍은 손가락으로 이리봉청을, 그녀의 볼록하게 솟은 배를 가리켰다. 그리고 악독하고 냉혹한 눈빛으로 돌변했다. “저 여자가 오빠 아들을 낳는 걸 보고 싶지 않아요. 오빠 아들은 저만 낳을 수 있어요!”안지여는 소여쌍의 말을 듣고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대답했다. “그래, 알겠어.”그러자 이리봉청이 고개를 치켜 들고는 분노했다. “안지여, 나한테 약속했잖아. 감히 맹세를 어겨? 보응이 두렵지 않구나?”안지여가 차갑게 웃었다. “정말 보응이 있으면 받으면 그만이야.”안지여는 소여쌍의 손을 꼭 잡고 하염없이 부드럽게 바라봤다. 마치 천하가 이미 자신의 손안에 있는 듯 만족한 모습이었다. “네가 내 곁에 있으면 어떤 보응이 와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아.”소여쌍은 안지여에게 기댔다. 창백하던 얼굴에 점점 혈색이 돌고 교태로운 얼굴이 더욱 아름다워졌다. 소여쌍은 아름답고 온유한 표정으로 이리봉청에게 악독한 말을 내뱉었다. “저 여자를 죽여요, 저 아이도 죽이고!”안지여에게 불현듯 살의가 일었다.이리봉청이 주먹을 쥐고 소여쌍을 노려보며 차갑게 웃었다. “날 죽인다고? 네 목숨은 내 진법으로 불러들인 거라 내가 저주의 고통을 받아야 네 생명이 보전될 수 있어. 내가 만약 너희 손에 죽으면, 죽는 건 나 혼자가 아니라 너도 마찬가지야, 소여쌍!”안지여가 이리
이리봉청은 쫓아오는 철위를 피하다 몇 번이고 철위의 손에 죽을 뻔했지만, 냅다 도망쳐 겨우 경성 코 앞까지 갈 수 있었다. 그러나 철위가 성문 근처에서 지키며 이리봉청이 스스로 그물에 걸려들기를 기다리고 있어 들어가지 못했다.이리봉청은 곧 출산을 앞둔 상태로 더 이상 철위에 대항할 힘이 없어 안전한 곳을 찾아 아이를 낳고자 했으나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결국 이리봉청은 눈늑대봉에 올라갔다. 눈늑대봉에 사당이 있고, 사당에는 스님이 있다고 들었다. 이리봉청은 아이를 사당에 두면 철위와 다시 한번 싸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하지만 그녀가 사당에 도착하기 전 눈늑대봉 중턱인 독랑요에 이르렀을 때 막 아이가 나오려고 했다.여자 혼자 눈과 얼음판에서 아이를 낳는 것은 모른 체력을 다 소진하는 일이었다. 심지어는 아이가 나오지 않아 몇 번이고 까무러치며 죽을힘을 다해 겨우 버텼으나 마음 저 밑바닥은 여기서 애를 낳아도 어쩔 도리가 없다는 절망으로 가득 찼다.하지만 한 가닥 희망을 품고 고통의 순간을 꾿꾿히 벼텨냈다. 피맺힌 원한을 동력으로 안지여를 갈기갈기 찢어 죽이는 상상을 하며 숨을 몰아쉬고 또 쉬었다.그렇게 마침내 두 시진 가까이 진통 끝에 아이가 태어났다! 이리봉청은 탯줄도 검으로 자르고 자기 겉옷으로 아이를 감쌌으나, 더는 힘이 없어 이번에야말로 정말 몸에서 생명이 조금씩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이리봉청은 아이를 가슴에 품고 아이 얼굴을 들여다보자, 가슴은 숨조차 쉬어지지 않을 정도로 아파져 왔다. 자신은 힘이 하나도 없는데 이 아이를 사당까지 보낼 수 있을까?천지는 눈과 얼음뿐이라 울음소리도 나오지 않고 부들부들 떨며 아이 얼굴을 쓰다듬었다. 그리고 절망적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고작 세상 한 번 보고 나랑 같이 죽으려고 네가 태어난 건 아닐 거야…”아이는 울지도 못하고 볼이 얼어서 자줏빛이었다. 이리봉청도 소리 내 울지 못한 채 잠시 쉬었다 일어나 아이를 안고 천천히 계속 걸었다.사당에 한 걸음이라도 가까워지면 아이에겐 살 희망이 있다.
원경릉이 일어나 무거운 발걸음으로 안풍 친왕비와 우문호를 안으로 들어오게 했다. 우문호는 원경릉의 눈을 가만히 바라보았는데, 원경릉이 울었다는 건 전대미문의 참상이었다는 걸 증명했다.우문호는 원경릉의 손을 잡고 안풍 친왕비와 같이 들어갔고, 친왕비가 문을 굳게 닫았다.이리 나리가 일어나 비스듬히 의자에 기대었는데, 옆머리 한 가닥이 창백한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병약한 듯한 아름다움을 풍기며 좁고 긴 봉황 눈에 약간 불안한 눈빛이 스쳤다.각자 자리에 앉자 이리 나리가 눈을 들어 일부러 경쾌하게 웃었다. “보아하니 비교적 심각한 얘기를 하시려는 모양입니다.”안풍 친왕비가 이리 나리 곁에 앉아 약간 망설이며 말했다. “네 과거에 관한 것으로 네 어머니 이리봉청에 관한 일이란다.”이리 나리가 눈썹을 움찔거렸으나 곧 안색을 정상으로 회복했다. “예?”안풍 친왕비는 이리 나리의 손목을 잡고 물었다. “내가 전에 줄곧 네 어머니는 난산으로 돌아가셨다고 했지. 그런데 너도 조사해 봤을지도 모르겠지만 네 부모님에 대해 네가 나보다 조금 알고 있을 것 같구나. 하지만 당시 무슨 일이 있었고 네가 왜 눈늑대봉에 나타나서 구해졌는지 네 어머니 시신은 지금 어디 있는지는 우리 둘 다 모르잖아. 그래서 내 멋대로 황후에게 네 의식을 통해 당시 벌어진 일을 알아봐 달라고 했어. 들을 테냐?”이리 나리는 원경릉의 빨갛게 부어오른 눈두덩이를 보고 약간 망설였다. “우리 어머니 일로 운 겁니까?”원경릉은 비참한 기분이 아직 채 가시지 않았다. 이리 나리를 보니 마치 그때 눈늑대봉에서 막 태어나 이리봉청이 품에 꼭 안겨있던 작은 얼굴로 아직 이리봉청 손가락에 묻었던 선홍색 핏자국이 남아있는 것 같았다.“말씀하세요. 전 받아들일 수 있으니까!” 이리 나리가 몸을 꼿꼿하게 하고 입술에 엷은 미소를 드리운 채 우문호를 바라봤다. “폐하도 이 일로 오셨습니까? 그래서 어제 이미 시작하셨군요?”우문호는 당황해서 아주 부자연스럽게 쉰 목소리로 말했다. “난…. 천행이를 보러 온 김에
원경릉은 전반부를 마친 뒤 물을 한 번 더 마시더니 갑작스럽게 불행한 말투로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을 조금도 감추지 않고 전부 쏟아냈다. 그렇게 이리 나리의 유혈이 낭자한 과거가 사람들 앞에 드러나고 우문호는 참을 수 없어 몇 번이고 탁자를 움켜쥐었다. 하지만 이리 나리는 평정심을 유지한 채 끝까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고, 유일하게 이리봉청이 아이를 낳고 죽어가던 찰나 아이를 품에 꼭 안는 장면에서, 이리 나리는 눈을 감고 거의 들리지 않을 만큼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원경릉은 말을 마친 뒤에도 여전히 눈물범벅으로 가슴이 찢어졌다. 제삼자도 그 비참함을 견딜 수 없었다.이리 나리는 눈을 내리깔고 안풍 친왕비의 손을 손가락 관절이 하얗게 되도록 꽉 잡았다. 원경릉이 말한 이 모든 것이 마침내 이리 나리의 단편적이던 꿈과 합쳐졌다. 이리 나리는 원경릉이 한 마디 한 마디가 전부 실지로 일어났던 일임을 깨달았다.“이리율!” 안풍 친왕비가 초조하고 걱정되는 마음으로 이리 나리를 불렀다.“네!” 이리 나리가 다시 고개를 들었는데 눈 밑이 붉어지고 증오가 솟구쳐 있었다. “풍도성에 한 번 다녀와야겠어요!”안풍 친왕비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 연민에 가득 찬 목소리로 말했다. “풍도성에 가기 전에 눈늑대봉 독랑요부터 한 번 다녀와야 해. 네 어머니는 아마 눈늑대봉에서 긴 잠을 자고 계실 테니 걸맞게 안장해 드려야지.”순간 이리 나리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이리 나리는 얼른 고개를 돌리고 뭔가 말하려고 했으나 결국 아무 말도 못 한 채 감정의 둑이 허물어져 버렸다.이리 나리는 어머니를 본 적이 없었으나 그가 유일하게 효를 다할 길은 어머니의 시신을 안장하는 것이었다.태연한 척하려 했지만 아픔과 원한이 모든 것을 뛰어넘어 그동안의 모든 수련의 결과를 더해도 허물어지는 감정의 둑을 막을 수가 없었다.우문호는 이리 나리 모습을 보고 눈 밑이 붉어지며 울대가 불끈 솟아 원경릉을 잡아 끌더니 쉰 목소리로 말했다. “나가자!”이 순간만큼은 이 자리의 누구도 이리 나
이리 나리의 눈에 일말의 붉은 기운이 천천히 올라오며 피바람이 휘몰아치던 분위기는 점점 사라졌다.이리 나리가 살짝 고개를 흔들었다. “제가 그 인간을 천 갈래, 만 갈래 난도질해도 역시 36년을 즐겁게 살게 한 사실은 도무지 불공평해요.”안풍 친왕비도 마음이 도무지 가라앉지 않았다. 지금 안지여를 죽이는 걸 복수라고 하면 이리봉청과 천문 세가의 원수는 갚은 셈이 될까?그리고 안풍 친왕비는 의심을 멈출 수 없었다. 이리봉청은 천문 세가의 가주로 천문 세가의 힘을 이어받았는데 비록 최후의 힘을 다해 이리율을 낳았다고 해도 원념을 이리율의 의식 속에 심었는데 고작 이리율이 36년간 단편들에 대한 꿈만 꾸는 것에 불과했다. 정말 이리봉청은 그걸로 된 걸까?“조바심 내지 말고 침착하렴. 일단 네 어머니의 시신부터 찾아오자. 황후와 얘기했는데 어쩌면 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뭔가를 남겼을 수도 있을 거라더구나.”이리 나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음속에 피바람이 몰아쳐서 도무지 잠재울 길이 없었다.안풍 친왕비가 이리 나리의 어깨를 토닥이며 정신을 차릴 수 있도록 하고 원경릉과 우문호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세 사람이 사랑채에서 얘기를 나눴다. 안풍 친왕비가 대담한 생각을 털어놓고 원경릉의 의견을 물었다.원경릉은 얘기를 듣고는 살짝 놀랐다. “경호를 통해 36년 전으로 돌아가라고요? 하지만 왕비 마마도 알고 계시잖아요. 과거를 바꾸면 나비효과가 깊고 멀리 확산된다는 걸요. 게다가 안지여는 아직 풍도성 성주인데 만약 36년 전에 그를 죽이면 다른 사람의 운명과 사건이 너무너무 심각하게 바뀔 거예요. 그리고 36년 전으로 돌아가면 이리 나리가 분명 이리봉청과 천문 세가를 구할 거란 희망이 있지만 아시잖아요. 세상엔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있다는걸요.”“네 말이 맞아. 하지만 천문 세가에는 하늘의 뜻을 거스르고 운명을 바꿀 힘이 있어, 분명 역사의 기초를 바꾸지 않는 선에서 복수할 방법이 반드시 있을 거야. 이리봉청이 한 수 남겨뒀을 거라고 믿어.”“하
원경릉의 성격은 요 몇 년간 상당히 부드러워져 이리 나리와 안풍 친왕비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설령 지금 와서 안지여와 소여쌍을 천 갈래 만 갈래 찢어 죽인다고 해도 서로 사랑하며 아껴 주며 행복하게 산 삼십 년이 훨씬 넘는 세월에 비하면 두 사람에겐 너무 가벼운 벌이였다.그럴 수야 없지.그저 이리봉청이 그들에게 회심의 한 수 남겨놓았기를, 진정으로 복수할 기회를 남겨놨기를 바랄 뿐이었다.다음날, 이리 나리는 늑대파 사람을 눈늑대봉으로 보내 독랑요 일대에서 이리봉청의 시신을 찾도록 했다.원 황후의 말이 당시는 눈과 얼음 천지라 이리봉청의 시신은 눈보라에 묻혔을 가능성이 농후했으나 눈 늑대에게 먹혔을 가능성도 있었다. 눈늑대봉에서는 눈 늑대 외에 다른 야생 동물은 출몰하지 않았고, 눈 늑대가 당시 이리 나리를 먹지 않은 것으로 볼 때 어쩌면 이리봉청도 안 먹었을 수 있다.이미 36년이나 지난 일이란 건 36번의 여름이 지났다는 말로, 여름에는 표층의 얼음이 녹으므로다른 사람이 눈늑대봉에 올라가 이리봉청의 시신을 발견하고 가여운 마음에 안장해 줬을 가능성도 있다. 50년 전 눈늑대봉은 이미 신산으로 봉해져 일반인은 들어갈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지는 실제로 찾아봐야 알 수 있으므로, 늑대파가 미색까지 총동원돼서 같이 수색에 참여하기로 했다. 안풍 친왕비가 돌아가서 흑영에게 물어본 뒤 원경릉에게 소식을 전했다. 흑영 본인도 잘 모르지만 천문 세가 사람을 잘 아는 사람을 찾아갔으니 며칠 지나면 소식이 올 거라며 믿어보라고 했다.기다림은 사람을 초조하고 불안하게 한다. 특히 기다리는 과정 중에 원수가 성대하게 생일잔치를 치르면 더욱 그렇다.우문호 또한 안지여 조사에 착수했다.안지여가 오랜시간동안 풍도성을 다스리는 동안 대월국과 상업 거래를 통해 풍도성의 경제는 나날이 발전했다. 풍도성은 직물로 유명해 대부분 대월국에 팔렸고, 이에 따라 풍도성은 무척이나 번성해서 북당의 도성인 경성에 비교할만한 정도였다. 그리고 풍도성은 명원제 5년
안풍 친왕비가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 없어. 이리봉청은 분명 수를 남겨뒀을 거야. 영석을 자기가 지니고 있을지도 몰라. 안지여가 전에 천문 세가의 가주가 된 뒤에 천문 세가의 역천개명 능력이 어디서 나오는지 찾고자 했는데 안타깝게도 마지막까지 찾지 못했거든. 그래서 결국 이리봉청에게 몹쓸 짓을 해서라도 이리봉청이 역천개명 하도록 몰아붙였던 거야. 따라서 안지여가 영석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추정할 수 있지.”하지만 원경릉은 여전히 의구심이 들었다. “영석은 어떤 구조죠? 왜 역천개명(逆天改命) 능력을 가질 수 있는 걸까요?”“흑영이 알아낸 정보에 따르면, 천문 세가의 역천개명 능력으로 곧 죽어가는 환자들을 전부 구해냈대. 헌데 역천개명의 저주로 급사하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이 들군. 그래서 난 영석이라는 게 강력한 방사능을 가진 게 아닐까 의심스러워. 우리 세상에서 탐지할 수 없는 암흑물질 에너지로 사람의 유전자를 변형시킬 수 있는 게 아닐까, 그래서 질병인 낫게 되는 거지. 허나 영석을 사용한 사람도 방사능에 피폭돼서 한 달에서 3개월 사이 급사하게 돼. 물론 이것도 추측에 불과해 완전히 성립하지 않는 게 영석을 사용한 사람이 치명적인 방사능에 피폭된다면 말이야, 당시 이리봉청은 임신하고 있었는데 그런 강력한 방사능이 어째서 태아에게는 해를 끼치지 않았을까?”원경릉이 답했다. “우리가 확인할 수 없는 일에는 골머리 썩지 않기로 해요. 정말 영석이 있고 이리봉청이 몸에 지니고 있다면 그녀의 시신을 찾으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일일 테니까요. 단지 마마의 가설이 성립되지 않는 건 확실해요. 왜냐하면 만약 영석에서 방사능이 나올 경우, 이리봉청은 그걸 몸에 지니고 있지 않았을 게 틀림없으니까요.”왕비가 생각해 보고 말을 이었다. “그렇긴 하네, 영석의 힘에 관해 탐구할 필요는 없지. 지금 제일 중요한 건 이리봉청의 시신을 찾은 뒤 복수의 큰 그림을 그리는 거니까. 그리고 내가 말했던 36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거, 한번 생각해 봐. 역사를 바꾸지 않는다는 전제
원경릉은 그에게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잘 생각 하셨소, 내 사람을 시켜 전골을 내오라 하겠소.”우문호는 고개를 돌려 아내가 나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턱을 괴었다. 그는 스스로가 귀찮은 존재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한평생을 되돌아보면 가장 큰 행운은 그녀를 만난 것이었고, 그녀와 함께하는 매일매일이 가슴 벅찼다.그는 그저 아톰도 그러기를 바랄 뿐이었다.만약 아톰의 마음속에 일곱째 아가씨가 없다면, 아톰이 평생 장가를 가지 않는다 해도 그는 조급해하지 않았을 것이다. 기껏해야 몇 마디 잔소리를 하는 정도일 것이다. 그럼에도 너무나 좋은 사람이었기에 그는 안타까웠다.둘은 전골을 아주 맛있게 먹었다. 아이들이 곁에 없는 날들이 다시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우문호는 최근 공무가 바빠 식사 후에 보고를 가져와 검토하였고 원경릉은 옆에서 그를 보필하며 이따금 몇 마디 말을 건넸다. 밤은 고요했지만 아주 평화로웠다.보고를 다 읽었을 때는 이미 자시가 되어 있었다. 목여 태감이 이미 여러 차례 들어와 이제 잠자리에 들 시간이라고 재촉했었다.우문호는 아직 잠이 오지 않았지만 원 선생이 그 때문에 밤을 새우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에, 그는 그녀를 껴안고 잠에 들었다.다음 날 아침, 원경릉은 그에게 며칠 후에 어딘가에 다녀와야 한다고 말했다. 겸사겸사 양여혜가 이끄는 다른 팀의 신약 데이터도 살펴보고, 추 상궁의 피를 조금 뽑고 돌아가 검사해서 약의 억제 효과를 확인하려 했다. 그 결과에 따라 다시 돌아와 조정을 해야 했다.“얼마나 가 있는 것이오?” 우문호가 물었다.“일주일 정도. 나도 너무 오래 있을 수는 없소. 추 상궁 쪽에서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봐 걱정되오.” 원경릉이 답했다.“그럼 좋소. 내 경호까지 바래다 드리겠소.”“필요 없소. 그렇게 멀지도 않은데, 왔다 갔다 하는 게 너무 번거롭지 않소!” 원경릉이 웃으며 말했다.우문호가 말했다. “알겠소. 아이들도 가고, 냉정언이랑 홍엽도 떠나고, 서일도 가고, 탕양도 가고, 이제 당신까지 가니,
“급한 일이 아니면 일단 잠시 미뤄 두게. 짐이 자네와 이야기를 좀 나누고 싶으니…”“정말 급한 일입니다. 신은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탕양은 말을 마치자마자 예를 갖추어 인사하고 몸을 돌려 쏜살같이 도망치듯 달려갔다.우문호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녀석, 정말 재빠르게 도망치는군. 누가 잡아먹겠다고 했나, 그저 속마음을 좀 털어놓으려 했을 뿐인데. 저 이기적인 놈, 내 또 누구에게 속마음을 이야기할 수 있겠나?” 목여 태감이 입을 가리고 웃었다. “폐하, 탕 대인께서는 폐하께서 잔소리하실까 봐 그러시는 겁니다!” “짐이 언제 잔소리를 했단 말이냐? 몇 번…아니 열몇 번, 많아야 백 번 정도 말했을 뿐이지 않나?” 우문호는 불만스럽게 말했다. “네 그럼요, 폐하께서는 잔소리하지 않으십니다!” 목여 태감이 웃으며 말했다. 황제가 탕 대인을 매우 아끼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다 아는 일이었다. 황제는 그가 홀로 밖에서 고생하는 것을 안쓰러워하며, 집에는 그를 정성껏 보살펴 줄 사람 하나 없다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짐이 그를 설득할 수 없으니, 어쩔 수 없지. 사람마다 뜻이 있는 법이고 그가 그렇게 하는 것이 편하다면 내버려두는 수밖에. 다만 나중에 후회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네. 사람의 일생이란, 정말 소중한 사람을 만나게 되면 꼭 붙잡아야 하는 법 일세. 그렇지 않으면 죽을 때가 되어 한평생을 되돌아보며 소중한 사람과 함께하지 못했던 것을 후회하지 않겠나?”“짐도 잔소리가 좀 심했다는 것을 알고 있네. 그저 이 일에 대해서만 잔소리를 하고자 하는 것이야. 감정적인 일은 억지로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마음이 급하구나.”목여 태감은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있었다. 이전 사례로 보아 황제는 또 한동안 탕 대인 일로 잔소리를 늘어놓을 터였다. 탕 대인 일이라면 황제가 탕 대인보다 더 안달복달이었다.정말이지, 태감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황제만 애가 타 죽을 지경이었다.우문호는 소월궁으로 돌아와서도 계속 잔소리를 늘어놓았고, 원경릉은 책을 보면
탕양은 손을 뻗어 일곱째 아가씨의 손등을 살짝 눌렀다. “너무 조급해하지 마시지요. 말씀드렸잖습니까? 안내인도 있고, 지도도 있으니, 독산 어디든 원하시는 곳에 가실 수 있습니다. 사람을 써서 사전에 모든 위험을 제거해 드릴 겁니다. 아시겠지만 독산에 위험이 제거되면 관광지로 개발해 입장료를 받고 사람들을 들일 수 있습니다. 어떠십니까?”“관광지로 개발한다고요? 그거 참 기발한 생각이네요. 하지만 그렇다면 독산을 저 혼자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겠군요?” 일곱째 아가씨는 냉소했다.“15년 동안은 아가씨께서 독점하시고, 그 후에는 수익의 3할을 가져가시는 겁니다!”일곱째 아가씨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개발, 물론 좋은 일이다. 좋은 곳, 좋은 경치는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줘야 마땅하다. 게다가 그가 말한 것처럼 입장료를 받고 조정의 협력까지 더해진다면 꽤 많은 관광객들이 그곳으로 향할 것이다. 어쨌든 조정은 다섯 곳의 성지를 발전시키려 할 테니, 어떻게든 많은 사람들을 그곳으로 불러들이려 할 것이다.게다가 황제는 현재 나라를 다스리는 데 총력을 쏟고 있었다. 경제가 발전되고 북당이 점점 부유해지니 돈을 좀 들여서 놀러 다니는 사람들도 아주 많았고, 이는 장기적인 수익으로 이어질 것이다.그녀도 이제 은퇴 후의 삶을 생각해 봐야 했다. 독산은 정말 좋은 곳이고, 그녀의 꿈이 깃든 곳이다. 독산에서 여생을 보낸다니, 생각만 해도 설레었다.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것이 원 가문의 퇴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계약하죠!”이렇게 성급하게 5백만 냥짜리 거래를 결정하는 것은 평소 신중했던 일곱째 아가씨에게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하지만 부자에게 있어 자신의 꿈을 위해 한 번쯤 돈을 쓰는 것은 가치 있는 일이었다.“일곱째 아가씨께서는 역시 호탕하시군요! 과연 여장부십니다!” 탕양이 웃으며 말했다.일곱째 아가씨는 눈을 흘기며 말했다. “아첨은 그만 하시고, 말씀하시지요. 제 안내인은 어디 있나요? 제가 직접 한번 가 보고, 정말 독산 전체를 다
“어디 다녀오시는 길이에요?” 일곱째 아가씨가 물었다.“공부에서 오는 길입니다. 복지 시설 건립 건에 작은 문제가 생겼거든요. 지금은 다 처리했습니다.” “탕대인께서 나서셨으니, 안 될 일이 없겠죠.” 일곱째 아가씨는 탕양의 일 처리 능력을 인정하였다.그녀는 차 재료를 넣고 잠시 끓인 후, 탕 대인에게 따라 주며 말했다. “입술이 바싹 말라 다 트셨네요. 어서 드세요.” “그럼 잘 마시겠습니다!” 탕양은 차를 받아 들고 몇 번 불더니, 단숨에 마셔 버렸다. 차가 뜨거웠음에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정말 몹시 목이 말랐던 모양이다.그가 두 잔을 마시고 나서야 일곱째 아가씨가 물었다. “저를 찾으신 이유는 무엇인가요?”탕양은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상단에서는 혹시 약도성 재건 사업에 참여할 생각을 해 보셨는지요? 안심하십시오, 손해 보실 일은 없을 겁니다.”“저는 민간 상단입니다. 어떻게 성 재건에 참여할 수 있겠습니까?” “황제 폐하께서 된다고 하셨으니, 분명 문제없을 겁니다.” 탕양이 말했다.일곱째 아가씨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탕 대인, 이런 좋은 일을 어쩌다 저희 상단이 맡게 된 것입니까? 혹시 대인께서 뒤에서 저희를 위해 힘써 주신 건 아니신지요? 어쨌든 호의는 정말 감사드립니다만, 은혜가 너무 커서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민간 상단이 약도성의 재건에 참여하려면 막대한 은화를 지출해야 하는데, 재건 이후 그녀의 상단에 돌아갈 이익은 아마 봉토 정도 일 것이다.약도성은 택란 공주의 영지이고, 철광이 많으며, 정세도 이미 안정되었으니 채굴은 시간문제이다.하지만 광산은 예로부터 조정의 소유였으니, 민간 상단에 봉해 줄 리가 없다. 그러니 설령 봉토를 내린다 해도 쓸모없는 산지나 몇 개 주어질 뿐일 것이다.일곱째 아가씨가 이 일을 엄청난 호재라고 말한 것은 탕양의 체면을 세워 주기 위함일 뿐, 사실 그녀는 가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일단 제 이야기를 들어보시겠습니까?” 탕양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그녀를
홍엽이 조용하고도 냉정한 말투로 물었다. “공무를 보러 가는 것이냐?”“저는 원래 공사를 구분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공무를 보러 가는 것도 여행이라 할 수 있죠.”냉정언이 온화한 눈빛으로 냉명여를 바라보았다. “손자도 이제 다 컸으니, 함께 데리고 나가 바깥세상을 경험해 볼 때가 되었지.”냉명여가 고개를 들었다. 냉정한의 눈빛은 다시 싸늘하게 변했다.이 집안에서 냉정한은 엄격했으며, 홍엽은 편애를 받았다. 그렇기에 둘은 서로 보완이 되었다.“알겠습니다. 그럼 일단 짐부터 싸야겠네요. 얼마나 가 있는 겁니까?”홍엽이 기쁜 목소리로 물었다.“돌아오고 싶을 때 돌아오면 되니 일수는 생각할 필요 없다. 어쨌든 우문호는 항상 나에게 짐을 지우고 있었으니, 우리도 즐길 때가 되었지.”냉정언이 복수하듯 말했다.홍엽이 웃었다. “정말 그럴 만도 합니다.”그의 수양딸을 만나러 가는 길이니, 무척이나 기뻤다.홍엽이 우문호에게 품고 있는 가장 큰 불만은 자신과 수양딸 사이를 막고 있는 것이었다. 분명 자신의 수양딸임에도 우문호가 독점하고 있으니, 너무나도 과한 처사였다.황제가 된 사람들의 성격은 대체로 좋지 않았다.세 명의 사람과 한 마리의 원숭이가 조용히 성을 빠져나갔다. 흠차라고는 하지만 어떠한 허례허식도 없었다.그들이 떠난 뒤, 탕양도 약도성을 위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탕양은 최근 몇 년 동안 바쁘게 일하며 많이 늙었고, 머리카락은 흰머리가 수북했다.그는 이전에 우문호의 최측근 신하였으며 지금은 우문호의 전반적인 심부름꾼이었다. 관직이 내려져 고용된 것이 아닌, 그저 유용한 사람으로써 투입된 것이었다. 그는 우문호에게 직접 보고를 올렸으며, 어떤 관청에서도 그를 관리할 수 없었다.근래 몇 년 동안 그는 병부에서 군사를 정리하고 호부에서 전국의 땅과 세금을 다루며 새로운 정책을 세우는 데 도움을 주었다. 또한 이부에서 심사에 참여하고 형부에서 중대 사건을 옆에서 다루었다.황후는 탕대인이 벽돌과도 같아 필요한 곳 어디에서든 쓰일 수
“좋은 생각이십니다. 가능한 빠를 수록 좋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조정의 은혜를 이어 갈 수도 있습니다.”냉정언은 그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 들였다.그리고 잠시 멈칫하고는 우문호를 바라 보았다.“그리고 공주님을 보살 피라는 말씀이시지요?”“역시 지혜로운 수보구나. 짐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꿰뚫어 보고 있어.”우문호가 미소를 지어 보였다.“폐하께서 공주님을 아끼시는 건 궁의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소인이 궁에 들어오기 전에 폐하께서 갔다 오실 줄 알았습니다.”“짐이 생각 해보았지. 지금 때에 약도성에 들리면 이득이야. 조정을 향한 백성의 믿음도 생기고, 결코 짐이 백성을 버리지 않았다는 뜻이 될 테니 말이야. 하지만 내가 조정을 떠나면 나에게 반심을 가진 자들이 모여서 내란을 일으킬 수 있어. 자네를 수보의 신분으로 보내는 게 제일 안전한 방법이네.”냉정언이 고개를 끄덕였다.“옳으신 말씀입니다. 사실 소인은 폐하께서 직접 가실 것 같아 설득을 해볼 생각이었습니다.”우문호는 애매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짐이 자식들 때문에 나랏일을 뒤로 미루는 사람으로 보이는가.”“공주님이라면 그럴지도 모르지요.”냉정언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소인이 폐하를 너무 얕보았나 봅니다.”“짐도 구분은 할 줄 아네. 쉽게 위험 속에 몸을 던지는 사람이 아니야.”게다가 그는 집에서 제일 약한 사람이 아닌가. 냉정언이 답했다.“네, 알겠습니다. 홍엽 공자에게 일러 두겠습니다. 내일 출발 할 수 있게 말입니다.”“홍엽 공자도 가는 것인가?”우문호가 눈을 크게 떴다.“소인이 오랜만에 나가는 외출 입니다. 제 아들도 바깥 세상 한번 구경 시켜줘야 하지 않겠습니까.”우문호가 의미심장한 태도로 답했다.“그래, 명여도 데려가게. 사내 아이는 많이 둘러 보는 게 좋지.”“명어 그 아이는 홍엽 공자를 잘 따릅니다.”냉정언이 말했다.“그래, 네가 누굴 데려가든 상관없다.네가 가면 되는 것이니 말이다.”우문호는 허공에 손을 흔들었다.말을 끝나
하지만 새해의 기쁨도 초 닷새 날까지뿐이었다.초 엿샛날이 되자 각 부서들이 하나둘씩 출근하기 시작했다.우문호의 표정이 좋지 않다.출근 때문이 아니라 택란이 약도성에 다녀오겠다는 말 때문이다.약도성은 큰 화재 때문에 재건설을 했다.그녀는 직접 두 눈으로 봐야 마음이 놓일 것 같았다.게다가 형제들도 곧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원경릉은 우문호를 하룻 밤 내내 설득하기 바빴다.곧이어 우문호는 위왕과 안왕에게 임무를 주었다. 강북부에 도착하면 즉시 그에게 보고를 하라는 내용이었다.위왕과 안왕은 억울하기 그지없었다.왕의 위치에 오르니 사람도 변한다는 사실이 와닿았다.우문호는 한 사람씩 배웅을 해주었다.하지만 아이들은 반겨 하지 않았다.그들의 삼촌을 지켜줘야 할 뿐만 아니라 속도가 현저히 느려지기 때문이다.하지만 우문호는 자신의 결정을 굽히지 않았다.옆에 있던 서일도 같이 가겠다는 의지를 보였다.그 이유는 출장 비용을 황후가 흔쾌히 내어 주기 때문이다.아이들이 또다시 다른 지역으로 떠난다.역란은 자신이 벌써 열 살이라며 강조했다.나이가 어떻게 되든 10년이라는 시간을 보낸 것은 사실이다.“역란아, 아바마마가 마음이 아프다.궁에 남아 나와 더 놀아주지 않겠어?”마차가 지나가고, 경단이 역란에게 물었다.“이만하면 됐습니다. 조금만 더 지내면 싫어하실 거예요.”역란이 혀를 내밀고는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아이고, 이 녀석아.”경단은 역란의 말에 무언가를 깨달은 듯했다.‘적당한 거리가 아련함을 만든다.’마차가 천천히 성 밖을 나갔다.한편, 어서방 안.30분 전, 우문호가 냉정언에게 바둑을 두자고 불렀다.몇 판을 졌지만 우문호는 화도 내지 않고, 바둑판을 엎지도 않았다.다음 판이 또 시작되자 냉정언이 그를 말렸다.“폐하, 무슨 일이 있으시면 말씀을 하세요. 계속하셔도 저한테 질 뿐입니다.”“지지 않을 걸세!”우문호가 그를 노려 보았다.냉정언이 차를 한 입 들이켰다.“그래서 무슨 일 이십니까?”우문호의 인내심
“매화장에서 새해를 보내고 정월 초이틀에 돌아오마. 세뱃돈은 한 사람당 하나씩이니, 욕심은 부리면 안 되느니라!”원경릉이 종이에 적힌 글을 소리내어 읽었다.“매화장에 가셨다고? 혼자서 보낸다고 하시지 않았나?”우문호는 이상하다고 생각이 들었다.‘매화장에 무슨 볼거리라도 생긴 걸까? 우린 초대도 못 받았는데.’“어쩔 수 없지요, 그만 갑시다.”원경릉이 말했다.그들이 자신들의 세뱃돈을 꺼냈다.돌아가려던 찰나, 다른 부부들과 마주쳤다.미색부부, 손왕 부부와 공주 부부도 온 것이다.그들의 손엔 선물을 들고 있었다.우문호는 반대로 아무것도 들고 오지 않았다는 사실에 얼굴을 붉혔다.“다들 어디가신 겁니까?”미색이 성큼 들어와 그들에게 물었다.“매화장에 가셨어.”원경릉이 종이를 내보였다.곧이어 상자를 가리키며 말했다.“새뱃돈은 한 사람당 하나씩.”“너무 대충 준비 하셨네.”회왕은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매년 새해에는 시끌벅적하게 보냈기 때문이었다.그는 어젯 밤, 가족들과 시간을 보냈다.하지만 어딘가 부족한 마음이 들어 아침 일찍 찾아온 것이다.새해에 숙왕이 없으니 무언가 허전한 마음이 들었다.모두 실망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그저 멀뚱멀뚱하게 서로를 바라볼 뿐이다.‘새해에 집에 있으면 새해의 느낌이 없지 않은가.’이때, 우문호가 의견을 내놓았다.“매화장에 가보는 게 어떻겠습니까?”“좋아, 지금 출발 하자구나.”손왕이 서둘러 답했다.한편, 매화장 안.전 명원제는 답답하기 그지 없었다.그는 그저 혼자 조용히 새해를 맞이하고 싶었다.어제까지만 해도 모두 각자 새해를 보낸 다는 소식에 그는 기뻐했다.광대짓을 안 해도 된다는 생각에 해방감을 느낀 것이다.하지만 기쁨도 잠시 순식간에 사람들이 몰려와 매화장을 꽉 채웠다.무상황이 나타나 노인들끼리 같이 새해를 보내자고 제안을 한 것이다.그는 공간이 넓고, 옆으로 산이 있다는 이유로 매화장을 택했다. 전 명원제는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그도 노인이기 때문이다.그리하여
원경릉은 그의 말에 마음이 아팠다.얼마 전까지만 해도 생각도 하기 싫은 문제였다.형제들과 다르게 그는 노화세포를 전혀 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이 사실을 그에게 말한 적은 없지만 우문호는 어느 정도 눈치를 채고 있었다.그도 자식들의 회복 능력을 보면서 알 수 있기 때문이다.하지만 원경릉에게 직접 말한 적은 없다.우문호는 그녀를 바라 보았다.부부라서 마음이 통한 것일까.그는 그녀의 마음을 대략 읽고 있었다.원경릉은 수술을 하고 나서 전혀 늙지 않았다.일부로 어두운 색깔의 옷을 입어도 여전히 젊어 보였다.반대로 우문호는 하얀 머리카락이 듬성듬성 나기 시작했다.어쩌면 국가의 일을 처리하느라 노화가 빠른 것일지도 모른다.하지만 그는 그의 나이에 맞는 모습으로 점차 변해갔다.아직 눈가에 주름도 없고, 늙어 보이지 않지만 그는 곧 자신에게 닥칠 일이라고 생각했다.원경릉에게 주사를 맞겠다고 한 것도 그저 한순간의 충동일 뿐이다.사실 그는 그녀가 늙지 않고, 죽지 않는 다면 그것만으로도 좋았다.하지만 몇십 년 뒤에 그녀의 인생에 자신이 사라진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다.생각하면 할수록 조급해질 수 밖에 없었다.그는 서둘러 생각을 접었다.'지금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같이 있는 시간을 즐겨야 한다.'요즘들어 우문호는 운명을 믿기 시작했다.원경릉이 자신에게 온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그 다음 날, 온 가족이 숙왕부에 도착했다.그들이 일찍 깨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대문이 닫혀 있었다.만두가 문을 두드렸다.아무런 대답이 없자 우문호가 바짝 긴장했다.“무슨 일 일어난 건 아니겠지?”“제가 들어가 보겠습니다!”곧이어 만두가 재빠르게 안으로 들어갔다.아들의 의외의 행동에 우문호가 깜짝 놀랐다.“만두가 언제 무술을 배운 거야?”원경릉은 무술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어제의 일이 떠올랐다.그리고 혹시 몰라 다르게 답했다.“저도 만두가 무술을 배웠을 줄은 몰랐습니다.”곧이어 만두가 안에서 문을 열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