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요공의 이 말에 점원들이 소요공을 둘러싸 열심히 옷을 골라주고는 탈의실에 가서 입어 보라고 했다.소요공이 이렇게 디테일에 신경 쓰는 모습을 보고 원경릉은 웃음이 터져 나오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처음 만났을 때 똥거름 통을 지고 있던 시골 늙은이가 누구였더라..?원경릉이 고개를 돌려 우문호를 보니 우문호는 이미 옷을 다 골랐는지 다 싸놨다. “옷은 다 골랐어?”“다 골라서 싸 놨어. 가서 입은 거 보여줄게!” 우문호가 소파에 놓인 커다란 종이봉투를 가리켰다. 명품 정장이여서 그런지 봉투부터 으리으리해 보였다.“제부 아주 멋지던데!” 원경주가 말했다.원경릉은 으쓱한 시선으로 사람들 사이에 선 우문호를 바라봤다. 확실히 눈에 확 띄었다. 외모로 보나 몸매로 보나 분위기로 보나 역시 발군이었다.주 재상 역시 양복을 벗는 게 못내 아쉬웠다. 희상궁이 계속 주 재상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으로, 여기 온 뒤로 희상궁은 눈에 띄게 북당에 있을 때보다 개방적이게 되었다.원경릉은 문득 여기서, 주 재상과 희상궁이, 혼인하고, 함께 있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그런 생각은 잠깐 들었을 뿐이다. 그러다 희상궁이 이렇게 서로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좋다며 의식 따위 바라지 않는다고 했던 게 생각났다. 반드시 결혼을 원할 거란 보장도 없다.원경릉이 그런 생각에 잠겨있는데 주진에게 전화가 와서 나가서 받았다.“그 꼬마 몸 기억해요? 제가 데려와서 양여혜 선생님께 전해 드렸거든요. 그런데 양 선생님 얘기로는 뇌가 사망하지 않았다고 해요.” 주진이 전화에 대고 말했다.원경릉이 놀라서 물었다. “정말?”“네, 확실하데요. 이상하죠. 아, 맞아요, 원숭이를 찾았데요. 아기 원숭이인데 외상으로 죽었다고 하더라고요. 조만간 수술해야 한다고 했어요.”“저쪽은 실험실이야? 내가 갈게!” 원경릉이 말했다.“우리는 양여혜 선생님 실험실에 있어요, 주소 보내드릴 테니 네비 찍고 오세요!”원경릉이 전화를 끊고 얼른 우문호에게 말을 전했다. “주진한테 좀 다녀올게. 피팅
“양 선생님 진짜 대단하신데!” 원경릉이 감탄하자 주진이 방긋 웃었다. “맞아요, 선배도 대단하죠. 전에 양 선생님 남편분을 만나 뵌 적이 있었는데 선배한테 연구소에 와 주십사 교섭한 적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물론 선배는 거절했지만요.”원경릉은 웃어넘겼다. 당시 자신을 찾아온 제약회사는 많았다. 하지만 솔직히 그때 원경릉은 대뇌 개발에 꽂혀 있어 병자를 돌보는 약품 연구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그게 원경릉이 가지고 있는 아쉬움이다.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앞으로 직진하는데, 주진은 원경릉이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는 것처럼, “사실 아쉬워할 것 없어요. 지금도 똑같이 가능하니까요. 경호가 뚫렸으니 다시 연구소로 돌아오고 싶으시면 언제든 환영이에요!”“정말?” 원경릉은 당황스러웠다.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 없기 때문이었다.“정말이에요. 선배는 전보다 더 좋은 컨디션이니 이 능력으로 더 많은 사람을 도와야죠. 왜 안 하세요? 그리고 이 일은 원래 선배의 일이었잖아요. 포기하기엔 아깝죠. 안 그래요?” 주진이 계속 부추겼다. 주진은 원경릉을 아주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다.그러자 원경릉이 주진을 비꼬았다. “사실 너도 꼬임에 당한 거잖아. 아니야?”주진이 웃음을 터트렸다. “이제 아무것도 못 속이겠네요. 맞아요, 이곳에 선배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있어요. 하지만 선배가 함께해주면 그야말로 대박이죠. 팀을 이끌며 선배 연구를 펼치는 거예요. 하지만 대뇌 개발 약품이 아니라 정말 국민을 행복하게 해 주는 약품으로요!”주진이 지문으로 오토록을 열었다. 현관문이 열리고 안으로 들어서자, 그 안의 환경이 원경릉에게는 조금도 낯설지 않았다. 원경릉이 원래 있던 연구소와 비슷한데 조금 더 큰 정도였다. 안에 아무도 입주해 있지 않아 길을 따라 쭉 가서 어느 방문을 밀자, 안에 양여혜가 있었다.양여혜는 투명한 유리 상자 앞에 서 있었다. 유리 상자에 그 아이가 누워 있었는데 뇌에는 유리 상자 바깥 측정기기와 연결된 라인이 몇 가닥 있고, 상자는 액체 질소로 냉
원경릉이 물었다. “백혈병 대상 표적 치료자는 이미 많지 않나요? 백혈병은 더 이상 극복하기 어려운 난치병이 아닌데 왜 다른 암 표적 치료제를 연구하지 않죠?”양여혜가 말했다. “알다시피 무슨 약이든 누군가가 밤낮으로 묵묵히 노력해 온 결과물이예요. 백혈병에는 쓸 수 있는 좋은 약이 확실히 있긴 하지만 제가 원하는 건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으로, 일단 약을 쓰기 시작하면 일반적인 가정에서는 비용 부담이 크고, 약에 내성이 생기면 남은 방법은 골수이식밖에 없어요. 그래서 근본적인 원인을 치료할 수 있으면 상당히 많은 환자에게 복음이 될 겁니다. 그리고 원 박사도 알다시피 최근 들어 백혈병을 앓는 환자 수가 점차 상승세를 보이고 있어요. 오랜 시간 배운 학문과 타고난 재능을 낭비하지 말아요.”원경릉은 가슴 속에 뜨거운 피가 용솟음치는 것을 느꼈지만 바로 수락하지 않았다. “돌아가서 남편과 상의해 봐야 답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양여혜가 미소를 지었다. “그래요, 천천히 생각해 보세요. 서두르지 마시고. 하지만 남편분은 허락하실 거라고 믿어요. 두 분은 서로 원하는 것을 이뤄주고 서로 의지가 되어주는 사이니까요. 그리고 누가 누구를 위해 자신의 이상이나 일을 희생하지 않으시죠!”원경릉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기 가슴이 외치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꿈에도 실험실로 돌아오고 싶었다. 그토록 오랜 시간 배운 것을 저버리고 싶지 않았다.배운 것을 쓸 데가 있는 것이 사실 원경릉에게는 가장 큰 행복이고 보답이었다.양여혜가 원경릉을 배웅하며 말했다. “사실 모두가 세상을 구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누군가는 막중한 책임을 지고 앞으로 나가죠. 할 수 있는 만큼 하는 거예요. 티끌 모아 태산이 되어 결국 구덩이에서 빠져나오게 되거든요!”원경릉은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잘 생각해 볼 게요. 가정과 일 사이에 균형 잡는걸!”원경릉이 차를 몰고 떠나는 것을 보고 주진이 양여혜에게 물었다. “선배가 OK 할 거 같으세요?”양
우문호가 원경릉을 품에 안았다. “원 선생, 우리 꿈이 드디어 이뤄졌어!”지난번 돌아간 뒤로 두 사람은 줄곧 두 사람의 결혼식을 바라왔다.물론 북당에 돌아가면 또 한 번 혼례를 치르겠지만 의미가 전혀 다른 게 여기에서 결혼식은 원경릉의 고향에서 치르는 것이기 때문이었다.“그래, 마침내 이뤄졌어!” 원경릉이 감탄하며 또 고마웠지만, 양여혜의 제안을 우문호에게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참 막막했다.우문호가 원경릉을 포옹했던 팔을 풀며 물었다. “원숭이 일은 어떻게 됐어?”“아…. 아마 나랑 비슷한 수술을 받을 것 같아. 그리고 전에 그 남자아이도 뇌가 아직 죽지 않은 게 발견돼서 아직 한 번의 기회가 남았어.”우문호가 놀라며 물었다. “원숭이의 대뇌를 그 아이 몸에 이식할 거라는 소리야?”“아니, 종이 달라서 리스크 수치가 너무 높아. 그런 모험은 못 하지.”우문호가 안도의 웃음을 지었다. “그래, 꼬마아이의 몸에 원숭이가 들어 있다고 생각해 봐. 얼마나 당황스러운가.”원경릉은 용기를 한껏 끌어 올려 우문호에게 양여혜의 제안을 전했다. 그런데 오히려 얘기를 다 듣고 난 우문호는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돌아가면 아마 난 보위에 오르겠지. 새로운 황제로 등극하면 한동안 엄청나게 바빠서 이렇게 많은 시간을 당신과 아이들과 함께 있지 못할 거야.”원경릉이 우문호의 손을 잡았다. “아니면 내가 할 일을 새로 찾을까?”“당신은 다시 의대를 세우고 싶어 하잖아. 난 어떤 일을 하든 당신을 응원해. 본업을 잊을 당신이 아니지.” 우문호가 말했다.원경릉이 부드럽고 그윽한 우문호의 눈매를 바라봤다. “조금 구별하자면 이렇게 되는 거야. 양여혜 선생님은 신약을 개발하고 싶어 해. 그 약은 난치병을 치료하는 약으로 나한테 그 연구 그룹 팀장을 맡아주기를 바라. 하지만 여기 장기적으로 있을 필요는 없고 가끔 오거나 테스트 단계에 들어갔을 때 비교적 장기간 여기 있게 될 거라고 했어.”우문호가 물었다. “그 일, 하고 싶어?”원경릉이 망설이다가 역시 마음이 시키는
우문호의 지지를 얻고 나서야 원경릉은 모두에게 양여혜의 제안을 상의했고, 역시나 모두 동의했다. 삼대 거두조차 반대하지 않고 심지어 능력이 있으면 더 많은 일을 하는 게 당연하고 성별은 무관하다며 그것이 리더의 각오라고 했다.능력이 있는 사람이 더 많은 일을 한다는 사고 방식은 그들이 정계에 몸담은 수십 년 동안 당연한 생각으로 자리 잡아 왔다.제일 기뻐한 건 물론 원경릉의 부모와 오빠였다. 원 교수는 감격한 나머지, “오늘 저녁은 집에서 먹지 말고 외식하지!”소요공은 외식을 좋아했다. 식당에서 밥을 먹으면 좋은 술을 많이 주문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소요공은 돌아갈 때 가져갈 리스트에 술이 잔뜩 있었는데, 가져갈 수 있는 만큼 최대한 가져갈 생각이었다.그리고 원경릉이 현대로 돌아와 일하는 것을 소요공이 두팔 벌려 환영한 이유도 바로 자신을 대신해 물건을 사 올 수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다음날은 웨딩 사진을 찍는 날이었다.웨딩 사진은 역시 온 가족 총출동이었다. 외출 전에 밖에서는 군신이나 귀천이 없다고 태상황이 모두에게 주의를 주었다. 이는 특히 희상궁과 서일에게 하는 말로 두 사람은 밖에서도 걸핏하면 예의를 지키려고 해서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었기 때문이었다.스튜디오 전체가 우문호 일가를 챙기기 바빴다. 우문호 가족은 웨딩 사진 뿐 아니라 아이들과 노인 사진도 찍기 때문이었다.스튜디오에는 웨딩 사진이 많이 걸려 있었다. 희상궁은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로 사진을 보다가 문득 의문이 들었다. “혼례를 치르는데 어째서 흰색을 입죠?”“대주에 가면 대주의 법을 따르는 법이다!” 주 재상이 설명해 주었다.희상궁이 웨딩드레스를 만지며 중얼거렸다. “여기 관습도 그 자체로 참 예쁘네요.”주 재상이 희상궁의 표정을 보고 마음이 흔들렸다. “입고 싶어? 우리도 찍을까?”희상궁이 얼굴을 붉혔다. “우리가 뭘 찍어요?! 이건 젊은 사람들이나 하는 건데. 우리 나이에 안 맞아요. 안 해. 남들이 비웃는 다고요.”주 재상은 신경 쓰지 않고 말했다. “당신이
태상황이 고개를 끄덕이며 직원을 하나 손짓으로 부르더니 희상궁과 주 재상을 가리키며 직원에게 말했다. “옷을 몇 벌 고른 후에 두 사람도 사진을 찍을 거라고 하네요. 그럼 스튜디오 촬영만 하는 걸로 합시다. 야외 촬영은 피곤하니까요.”주 재상은 야외 촬영을 해도 되긴 하지만 희상궁은 안 된다. 태상황은 역시 세심한 사람이었다.희상궁이 직원의 말을 듣고 황급히 손을 흔들었다. “아뇨, 안 찍어요, 쇤…. 전 안 찍어요.”“찍어!” 태상황이 눈을 부라렸다. “감히 명을 어길 셈인가? 응?”희상궁이 당황해서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오실 때 분명 그러지 않았었나? 밖에서는 군신이나 귀천을 따지지 말라고. 그런데 어떻게 어명을 내리실 수가 있지?’“그…. 그러면… 근데 이 옷, 저 옷도 저한테는 안 어울릴 것 같은데요. 무슨 잠자리 날개도 아니고 너무 얇고 다 비치는데 제가 어떻게 입어요?” 희상궁이 얼른 말했다.직원이 웃으며 커튼을 열자, 거기는 전부 치파오로, 금사와 은사로 수놓은 옷들이 잔뜩 있어서 최고급 천은 아니지만 멋진 스타일로 없는 게 없어, 순간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아 주 재상까지 탄성을 질렀다. 남자용 옷을 봤기 때문이었다.주 재상이 고개를 돌려 태상황을 바라보는 눈빛에 ‘성은이 망극하옵나이다’라고 적혀 있었다.태상황이 주 재상에게 눈짓했다. ‘과인은 여기까지밖에 못 도와줘.’주 재상이 너무 기뻐서 희상궁과 함께 옷을 골랐다. 희상궁은 말끝마다 ‘안 할래요. 안 할래요’ 하면서도 두 손은 바쁘게 옷 사이를 드나들고 있었다. 천천히 하나를 꺼내 몸에 대보았다. “이거…. 사실 너무 부끄러워요. 이 나이가 돼 가지고 이게 뭐 하는건지...”희상궁이 고른 옷은 치파오였다. 어두운 빨간색에 단순한 스타일인데 간결하고 대범했다. 희상궁은 배시시 웃으며 주 재상에게 말했다. “예뻐요?”주 재상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마저 잊은 채 감탄했다. “예뻐, 예뻐!”희상궁도 살짝 기쁜 눈치였다. “그럼…. 그럼 한 번 입어볼까요, 어머, 여기 트임이
우문호가 약간 샘이 나서 비꼬았다. “이게 도대체 누구 혼례야?”‘저쪽은 무슨 야시장 연 것처럼 북적북적하고, 이쪽은 노점에서 혼자 파리 날리고 있는 느낌이 나는데 비교돼도 이거 너무 비교되는 거 아니냐고!’원경릉이 웃으며 말했다. “우리는 늘 사랑을 과시해 왔잖아. 저분들 사랑 자랑하게 내버려두자.”우문호가 고개를 돌려 원경릉에게 말했다. “우리는 원래 서로 은애하는 사이라, 과시랑은 거리가 멀지. 우리가 빨리 다해서 저분들이 우리 풍류를 따라 할 엄두도 내지 못하게 해야겠어.”메이크업하는 사람이 이 얘기를 듣고 궁금해하며 물었다. “두 분 연예인 이시죠? 어떤 작품 찍으셨어요? 사극 전문? 두 분 얘기를 들어보니 문어체가 아주 멋져요.”원경릉이 풉하고 웃으며, “맞아요. 저흰 그냥 조연이지만 확실하게 연기하죠. 그리고 아직 그 사극 드라마를 계속 찍고 있어요.”그러자 메이크업하는 사람이 연거푸 칭찬했다. “두 분 연기가 좋으세요. 비주얼도 되시니까 분명 주연은 따실 거예요. 힘내세요!”“감사합니다!” 원경릉이 웃으며 말했다.메이크업을 마치고 아이들도 메이크업하고 나왔다. 깔끔한 흰색 양복에 나비넥타이를 하고 한쪽에 행커치프가 꽂은 채 일제히 두 사람이 앞에 서 “아빠, 엄마!” 하고 불렀다.고개를 돌릴 필요 없이 거울에 비친 모습은 똘망똘망하고 잘 생겼다. 원경릉이 자세히 보기도 전에 직원들이 아이들을 둘러싸서 감탄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올 때도 좋아했는데 지금 꼬마 정장을 입고 새로운 헤어스타일로 빗어 넘긴 모습은 참을 수 없이 귀여웠다.너도나도 휴대폰을 꺼내 영상 찍기에 바빴다.그리고 저쪽에서 희상궁과 원경릉 할머니가 치파오를 입고 나왔다. 주 재상과 태상황도 차이나 스타일 정장으로 갈아입고 마주하자, 주 재상과 희상궁의 눈에는 오직 상대방만이 보이고 다른 사람은 없었다. 그들의 눈가엔 형용할 수 없는 짙은 사랑이 흐르고 있었다.태상황은 약간 우쭐했다. “주디, 과인의 이 옷 어때?”원경릉 할머니가 웃음을 지었다. “멋져요. 아
눈썹을 다 그렸는데도 태상황은 여전히 할머니 뒤에서 씩씩거리며 뺨을 부풀리고 할머니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러자 할머니도 뾰루퉁한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장난친 거예요. 전의감을 나 몰라라 내버려둘 리가 없잖아요. 제가 얼마나 심혈을 기울인 곳인데 쉽게 포기할 수 있겠어요?”“그런데 방금 그렇게나 진지하게 얘기했다고?” 태상황이 말했다.“농담 알아야 몰라요? 당신은 유머 감각이 부족해요. 이 점은 정말 소요공만 못하다니까.” 할머니가 한숨을 쉬며, “됐어요. 앉으세요. 메이크업해 드릴 테니까. 조금 있다가 우리 가족 사진 찍어야 해요.”태상황이 앉으며 궁시렁댔다. “유머가 없는 게 뭐? 유머가 뭐 밥 먹여줘? 과인은 그것보다 더 멋진 성숙하고 침착한 사람이야.”‘감히 나랑 십팔매를 비교해? 십팔매가 뭐라고?’ 태상황은 속으로 짜증을 내며 거울로 십팔매를 흘끔 봤다. 십팔매는 막 치파오를 들고 연구 중이였는데, 보기엔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데 어떻게 입으면 그렇게나 아름다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소요공은 마음이 동했다. ‘남자용은 없나?’소요공은 이 세계에서는 염치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했으니 직접 물어봤다. “내가 입을 수 있는 것도 있습니까?”이 말에 모든 직원이 일제히 놀라서 얼음이 되었다.원 교수가 얼른 다가갔다. “농담이에요, 농담.”직원들이 웃으며, “아, 어르신 정말 유머러스하세요!”소요공은 약간 떨떠름했지만 원 교수가 더 이상 묻지 못하게 하고 소요공을 끌고 가서 차이나 스타일 정장으로 갈아입혔다.태상황의 의문스럽다는 듯 생각했다. ‘이게 유머라고? 유머라는 게 멍청하게 구는 건가?’마침내 전부 옷을 갈아입었고 메이크업도 다 마쳤다. 모두가 가족사진을 찍기만 기다리고 있어서 일단사진부터 찍고 원경릉의 웨딩 사진을 찍기로 했다.가족사진을 찍으려니 자리가 비좁아 배경판 앞에 전부 빽빽하게 서야 했다. 할머니와 희상궁은 삼대 거두 곁에 앉고 원 교수 부부가 그 뒤 중간 위치에 서고, 우문호 부부와 원경주가 그들 좌우에 섰다
약도성의 건물 대부분이 무너져 백성들은 임시로 지은 오두막과 초가집에 머물게 되었는데, 폐허로 변한 도성은 눈에 보이는 곳마다 온통 엉망진창이었다. 원경릉은 마음속 깊이 안타까움을 느꼈다.택란의 뜻으로 중증 환자들은 모두 저택으로 옮겨졌다. 원경릉은 계란이의 결정이 매우 옳다고 생각했다. 중증 환자들은 그녀와 몇몇 의원이 책임지고 돌보았고, 나머지 의원은 경증 치료를 맡았다.택란은 엄마 곁에 머물며 환자를 돌보는 것을 도왔는데, 기본적인 의술을 알고 있어서 소독과 붕대 감는 일을 도왔다. 부상자들은 대부분 통증이 심해 참기 어려웠고, 진통제를 먹이거나 진통 주사를 놓았다. 택란도 주사를 놓을 수 있었는데, 어린 나이에 쉬지 않고 바쁜 모습을 보였다. 그런 그녀를 본 환자들은 눈물을 참지 못했다.그들은 궁에서 자신들의 생사를 진정으로 걱정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지금 황후마저 직접 왔으니, 예전의 대립과 적대감은 유치한 웃음거리로 느껴졌다.저녁 무렵, 아이들이 엄마를 찾아왔지만, 이야기를 나눌 여유도 없이 서로 포옹한 뒤 다시 각자 사람들을 구하러 나섰다.백성 중 자발적으로 음식을 만들고 약을 끓이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저택 내 물자는 부족했으나 주변의 도움이 끊이질 않았다. 호명은 사람들을 조직해 식량과 의복을 나누어 주었다. 지금의 약도성엔 인간의 이기심이 한순간에 사라진 듯했다.황후가 직접 약도성에 온 덕분에 서북 지역의 신하들도 직접 의원과 물자를 이끌고 약도성에 와서 돕기 시작했다.약도성은 전례 없는 관심을 받았고, 이는 약도성 백성들이 다섯 도시 중 가장 빠르게 조정을 인정하게 된 이유가 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도 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지 않았고, 사람들을 구하고 재난 이전의 상태로 빠르게 회복하는 데만 집중했다.재난이 발생한 지 반달이 지나면서 발견된 것은 모두 희생자뿐이었다. 인원을 파악한 후 한곳에 모아 장례를 치렀다.이번 지진으로 약도성은 5만여 명의 백성이 목숨을 잃었다. 이 숫자는 매우 끔찍했지만, 택란의 사전
북당의 황후가 의원을 이끌고 직접 약도성으로 향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많은 이들이 믿지 않았다. 약도성의 백성들조차 믿을 수 없었고, 감히 믿을 엄두도 없었다.우문택란이 이미 약도성에 왔지만, 고작 여덟 살짜리 아이에 불과했다. 다들 그저 그녀가 약도성에 놀러 왔고 수천 명의 병사를 거느리고 왔다고 생각했다. 이후 어린아이답지 않은 그녀의 비범한 능력이 증명되었다. 그녀는 약도성의 성주로서 약도성에 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그러나 이번 지진으로 약도성은 초토화되었고, 재건하려면 조정이 막대한 인력과 자원을 투입해야 한다. 북당의 조정이 약도성을 방치하고 자연적으로 멸망하도록 내버려두어도 어쩔 수 없었다. 약도성 백성들은 줄곧 조정을 적대시하였기 때문에, 조정이 이들을 구할 이유가 없었다.그런데 황후가 직접 약도성으로 향한다는 것은 아무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약도성은 조정이 이렇게까지 신경 쓸 만한 가치가 있다고 보지 않았다.지진 발생 열흘째 되던 날, 원경릉 황후가 이끄는 의원들이 약도성에 도착했다. 그들은 밤낮없이 말을 갈아타며 전력으로 달려왔다. 약도성의 백성들은 이 소식을 듣고 흥분하며 황후께서 약도성에 오신다고 얘기를 전했다.사람들의 생각은 한순간에 뒤바뀌었다. 지진 이전까지만 해도 조정을 적대시하고 북당을 적국으로 여겼던 약도성 백성들이, 이제는 원경릉을 환영하며 열광적으로 맞이했다. 이는 택란이 지진을 미리 알아차린 것과 구조 활동 덕분이었다.원경릉은 백성들의 뜨거운 환영을 예상하지 못했다. 말을 타고 앞을 바라보니 사람들이 계속 모여들고 있었고, 그녀의 눈시울이 촉촉해졌다.“어머니!”군중 속에서 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원경릉은 단번에 딸을 찾아내고 말에서 내려 달려갔다. 택란은 엄마 품에 안기자마자 눈물을 참지 못하고 터뜨렸다."어머니, 너무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너무 많아요!"택란이 흐느끼며 말했다.원경릉은 딸이 이렇게 슬프게 우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그녀의 가슴이 미어지듯 아팠다. 원경릉은 딸을 품에 꼭 안
택란은 어릴 적부터 화염을 다루는 능력을 갖추고 있었기에, 감정을 표정에 드러내지 않았다. 겉으로는 담담해 보였지만, 그녀는 내면의 감정을 철저히 억눌러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화염을 제어하지 못할 위험이 있었다. 스승님을 따른 후, 스승이 계속해서 그녀에게 약점이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감정의 틈새가 생기면 많은 것을 통제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그래서 그녀는 항상 냉정한 태도를 유지하며, 모든 일을 담담히 대하려고 노력했다. 자신의 진심 어린 감정을 흔들지 않으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많은 이들의 갑작스러운 죽음 앞에서 그녀도 평정심을 유지할 수 없었다.꼬마 봉황이 날개를 펼쳐 그녀를 품에 안고 위로해 주었다.그들은 수년간 서로를 지지하며 함께 성장해 왔고, 서로를 위로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잠시 후, 택란은 다시 구조 현장으로 나갔고, 여전히 평온하고 흔들림 없는 얼굴로 사람들 앞에 섰다.위왕과 안왕은 어린 조카의 침착함에 깜짝 놀랐다. 겨우 여덟 살짜리 아이가 어떻게 이런 모습을 보일 수 있단 말인가? 아이의 천성은 어디로 간 것인가?그들은 택란이 애초에 아이로서의 천성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태어난 후, 조금이라도 세상을 이해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그녀는 빠르게 세상을 이해하며, 지혜롭고 노련한 어른처럼 모든 것을 맞서야 했다.사실 그녀는 아버지와 함께 있는 시간을 가장 좋아했다. 아버지는 지금까지도 그녀를 한두 살짜리 어린아이처럼 사랑하고 아껴주었다. 그에게는 아무런 기대나 요구가 없었으며, 능력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어머니처럼 그녀의 모든 행동을 걱정하고 감시하지 않았다.아버지 앞에서 그녀는 가면을 쓸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약도성의 일이 안정된 후, 그녀는 아버지와 시간을 보내기 위해 돌아갈 계획이었다. 이번 약도성 방문은 그녀에게 있어 단순한 놀이가 아닌 실습이었다. 이곳은 그녀의 의지와 감정을 단련할 수 있는 장소였고, 실제로 그녀는 이곳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했다.구조 작업은 계속되었고, 지진이 발
한 마을 주민이 눈물을 닦으며 원망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지원 같은 건 절대 없을 것이오. 조정은 우리를 모조리 죽이길 바라오. 우리가 죽어야 조정은, 이 약도성을 완전히 삼킬 수 있소. 아무도 우리를 구하러 오지 않소.”택란은 화가 나서 말했다.“무슨 헛소리를 하는 것인가? 내가 여기에 왔잖냐! 빨리 계속 파시게!”주민이 그녀를 힐끔 보며 물었다.“웬 꼬마가, 넌 누구냐?”택란을 본 사람은 많지 않았다. 게다가 어둠 속이라 그녀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어린아이가 여기 있는 걸 보고 다들 의아해했다.“약도성의 성주, 우문택란이다!”그녀는 단호하게 말한 뒤, 산사태가 난 지역을 향해 다시 걸어갔다. 작은 몸집이 시선에서 멀어질수록 더욱 작아 보였다.황실의 공주라는 말에 사람들은 모두 놀라 얼어붙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단 말인가? 공주가 이런 곳에 직접 올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공주는 저택 안에서 잘 보호받고 있어야 할 존재다.그녀는 알 수 없는 힘을 사용해 접근한 곳의 흙을 한 겹씩 옮겨내고 있었고, 그 과정에서 울부짖는 소리와 구조 요청이 들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그녀를 따라가 급히 구조 작업에 참여했다.약도성의 지진은 강북부에서도 뚜렷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낡은 집도 무너졌지만, 심각한 피해는 없었다. 약도성에 지진이 발생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위왕과 안왕은 신속히 구조 병사를 파견했다. 그들은 택란이 약도성에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그들 여태껏 택란이 스승과 함께 떠났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그녀의 네 오빠들은 바로 병사를 데리고 약도성으로 향했다. 지진 발생 12 시진 후 약도성에는 8천 명 이상의 병사가 합류했다.약도성의 백성은 조정이 지원군을 보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들은 조정이 약도성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든 관심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과거에도 가뭄, 메뚜기 떼, 산사태 등의 재난이 일어났지만, 북막조정은 몇 포대의 쌀만 보내며 형식적인 구조를 했을 뿐이다.약도성
지진이 발생하기 전, 호명과 주 아가씨는 약도성 중심부에서 백성들을 대피시키고 있었다.새벽녘은 사람들이 가장 피곤할 시간이다. 억지로 잠에서 깨어난 백성들은 분노했다. 그중 한 집안은 도축업을 하는 홀아비가 어린 아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 새벽 무렵에야 돼지를 잡고 고기를 나눠주고 돌아와 잠자리에 든 참이었다. 그런데 또다시 잠에서 깨어난 데다 아이까지 깨우니, 그는 화를 참지 못하고 욕설을 퍼부었다.옆집 사람은 칼을 들고 나가 저들을 쫓아내면 다시 잘 수 있다고 부추겼다. 남자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 있던 상황이라 아들을 방으로 데려다 놓고, 즉시 칼을 들고 나가 주 아가씨와 맞섰다.그가 칼을 휘두르며 집안 식구들과 함께 밖으로 나온 그 순간, 지진이 발생했다. 그들은 자기 집이 순식간에 무너지는 것을 똑똑히 목격했다. 먼지가 자욱했고, 곁에서 날카로운 비명이 들렸다. 옆집 역시 무너졌고, 그 안에 갇힌 사람들이 집 처마 아래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깔려 있었다.“아들! 아들아!”홀아비는 그제야 안으로 데려다 놓았던 아들을 떠올라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집은 이미 완전히 무너졌다. 겨우 세 살밖에 안 되는 아들은, 살아있을 가능성이 희박했다.그는 미친 듯이 벽돌과 흙더미를 파헤치기 시작했다. 주 아가씨와 호명도 서둘러 도왔다.지진은 단 몇 초 만에 일어났다. 이미 수많은 사람이 집으로 돌아갔고, 그 결과 무너진 집에 깔린 백성들이 매우 많았다. 약도성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사방에서 울부짖음과 비명이 들려왔다. 평소 조정과 맞서던 이들은 너무나 나약하고 무력해 보였다. 그들의 처절한 울음소리는 듣는 이의 마음을 찢어지게 했다.홀아비의 아들을 구하기 위해 다들 함께 벽돌을 치우고 흙을 파내기 시작했다. 도구가 없어서 맨손으로 작업해야 했다. 주 아가씨의 손은 금세 피투성이가 되었지만, 그녀는 멈추지 않고 계속 흙벽을 밀어내고 벽돌을 옮겼다.반 시진 후, 주 아가씨가 마침내 아이를 안고 왔다. 아이는 다리를 크게 다쳐 엉엉 울고 있었다. 홀아
“그럼... 호명, 가십시다!”주 아가씨는 왠지 모르게 택란의 말을 믿었다.호명도 주 아가씨의 말을 듣고 동의했다. 그의 생각은 단순했다. 지진이 생기지 않으면 백성들을 귀찮게 한 정도로 끝날 테지만, 정말 지진이 발생한다면 목숨을 구할 수 있다.게다가 약도성의 백성들은 조정을 극도로 싫어하기에, 더 미움을 사도 중요하지 않다.일행은 즉시 돌아가 병사들을 소집해 집마다 문을 두드리며 백성에게 넓은 곳으로 대피하라고 알렸다.한밤중에 잠에서 깨어난 백성은 역시나 원치 않았다. 욕설을 퍼붓고 심지어 병사들과 몸싸움을 벌이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성주가 단호하게 명령한 일이었기에, 백성들은 마지못해 끌려 나갔다.그러나 문제는 강제로 밖으로 끌어낸 사람들을 계속 감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병사들이 떠난 후 많은 백성이 다시 집으로 돌아가 잠을 청했다.게다가 일부 폭도들은 이를 계기로 병사들과 정면으로 맞서며 심각한 충돌을 일으켰다.부분 병사가 백성들이 소란을 피우는 마을로 향했다. 이곳에 있는 마을은 거의 조정을 적대시하는 곳이었다. 너무 외진 곳이고 여인도 적은 곳이라, 이곳 남자들은 혼사도 치르지 못하고 가난하게 지내고 있었다. 하루 세 끼를 유지하기조차 힘들었고, 금나라의 선동이 더해져 이 지역의 상황은 더욱 악화하였다. 이 몇몇 마을에서 15세 이하의 아이들은 열 명 남짓밖에 되지 않았다.병사들이 징과 북을 울리며 백성을 깨우자, 폭도들이 화를 내며 병사들에게 달려들었다. 순식간에 몸싸움이 벌어졌고, 20여 명의 병사들이 이들에게 압도당해 심하게 얻어맞았다.결국 병사들은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약도성에서 대피한 사람은 많지 않았고, 약 만 명 정도였다. 대부분 병사가 떠난 후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고는 조정이 백성을 괴롭힌다고 욕하며 약도성에는 지진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다.이에 주 아가씨가 분노를 참지 못해 말했다.“성주께 말씀드려서 집을 전부 불태워버리자고 해야겠습니다! 정말 너무합니다.”호명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녁 무렵, 그들 일행은 출발했다.약도성의 밤은 전혀 활기가 없었다. 해가 지고 나면 거리에서 사람들을 거의 볼 수 없었다. 수년간 치안이 매우 나빴다. 비록 저녁에 병사들이 순찰하고 있지만, 백성들은 이미 해가 지면 밖에 나가지 않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다.덕분에 이번 외출은 별다른 문제 없이 진행되었다.약도성이 가난하다 보니, 부유한 이들의 저택만 튼튼할 뿐, 대부분의 집은 돌집이나 흙집, 나무 건물로 이루어져 있었다. 기초가 거의 다져지지 않은 상태여서 지진이 발생한다면, 대부분의 건물이 버틸 수 없을 것이다.택란은 이 점이 걱정되었지만, 아직 지진이라 단언할 수 없었다.그러나 마음속 깊은 곳에서 불길한 예감이 계속해서 밀려왔다. 그녀는 꼬마 봉황에게 물어보았고, 꼬마 봉황이 하늘로 날아올라 몇 바퀴를 돌며 주변을 살폈다. 새들이 어지럽게 날아다니는 것을 본 꼬마 봉황은 택란에게 알렸다. 그녀의 불안감이 점점 더 커졌다.택란은 호명과 주 아가씨에게 자신의 걱정을 털어놓으며 지진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하지만 호명과 주 아가씨는 믿지 않았다. 약도성은 지금까지 단 한 번만 지진이 발생하였다.주 아가씨가 말했다.“오늘 밤하늘을 보니 지진운 같은 건 보이지 않습니다. 너무 걱정하신 것 같습니다.”“지진운은 믿을 수 없소. 강가로 한번 가보시게.”이곳에는 바다가 없고, 산을 따라 흐르는 큰 강만 있었다.다들 풍등을 들고 강가로 향했다.강물의 흐름은 빠르지 않았고, 눈에 띄게 가뭄의 흔적이 드러나 있었다. 물 높이는 겨울이나 봄에 비해 많이 낮아졌고, 어떤 곳은 강바닥이 드러나 있었다.택란은 풍등을 들고 아래로 내려갔다. 강물은 별문제가 없어 보였다. 아마도 수심이 얕기 때문일지도 모른다.“이곳에 샘물이 있소?”택란이 주 아가씨에게 물었다.“있습니다. 여기서 2리 정도 떨어진 곳에 큰 샘물이 하나 있는데, 근처 주민들이 그곳에서 물을 떠다 마십니다.”“좋소. 가보겠소!”택란이 말했다.일행은 다시 큰 샘물로 향했다. 주 아
그녀는 부엌으로 가서 부지깽이를 찾다가 깜짝 놀라 외쳤다.“뱀이야! 부엌에 뱀이 들어왔다! 어서 뱀을 잡아! 성주께서 놀라시면 안 된다!”몇몇이 부엌으로 몰려가 한바탕 소동 끝에 뱀 세 마리를 잡아냈다. 비록 정원에 뱀이 나타나지만, 뱀이 집 안으로 들어오는 일은 매우 드문 일이다. 어찌 집 안으로 들어온 걸까?택란은 소란스러운 소리를 듣고 다가가 물었다.“무슨 일이오?”공연이 서둘러 대답했다.“성주님, 방으로 돌아가십시오. 여기 뱀이 있습니다.”“뱀이 집 안으로 들어왔소?”택란은 뱀을 힐긋 보았다. 그 뱀은 독성이 없는 풀뱀이다.“어제 요리사가 쥐가 많이 돌아다닌다고 했는데, 오늘은 뱀이 여기저기 기어다니네. 정말 이상한 일이오.”“별일 아닙니다!”공연은 손을 씻고 와서 말을 이었습니다.“제가 성주님을 방으로 모시겠습니다.”택란은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아직 정오였고, 태양이 세게 내리쬐고 있었습니다.“약도성에 예전에 지진이 난 적이 있었느냐?”택란이 고개를 돌려 요리사에게 물었다.요리사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지진이요? 땅이 움직이는 것을 말씀하십니까? 태어나서 한 번도 본 적 없습니다... 어릴 때 할아버지가 큰 지진이 일어났다고 이야기하신 적이 있습니다. 땅이 흔들리고 산이 흔들려서 집도 무너지고 많은 사람이 죽었다고 하셨습니다.”“성주님 겁주지 말고 할 일 하시오.”공연은 택란이 놀랐을까 봐 걱정하며 요리사에게 떠나라 했다.택란은 방으로 돌아간 뒤, 꼬마 봉황을 불렀다.뱀, 곤충, 쥐, 그리고 새는 지진을 어느 정도 감지할 수 있다. 특히 꼬마 봉황은 영적인 새이기에 더더욱 그렇다.꼬마 봉황이 조금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꼬마 봉황도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뭔가 큰일이 닥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설마 지진이 나는 건 아니겠지?”택란은 바닥에 엎드려 귀를 대고 지하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려고 했다. 그녀의 청력은 놀라울 정도로 뛰어났기에, 지진이 오고 있다면 땅의 움직임을 감지할 수 있었다.하지
이렇게 어려운 상황 속에서 건설을 추진하는 것은 너무도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힘들어도 첫걸음을 내디뎌야 한다는 생각으로, 택란은 이에 관해 세게 명을 내렸다.성내 백성들은 택란이 이 도시의 성주이자 진국공주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그녀에게 강한 적대감을 품고 있었다. 특히 그들은 택란이 낭산의 도적들을 토벌했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다. 여덟 살짜리 아이가 낭산 도적들을 전멸시켰다는 것을 누가 믿을까?이곳의 백성들은 평생 황실 사람을 본 적 없었다. 지금 이렇게 직접 마주하자, 감정이 폭발하여 약도성을 빼앗겼다는 이유로 황실에 대한 깊은 원망을 드러냈다.약도성에서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백성은 백여 명에 불과했고, 셈조차 모르는 이들도 많았다. 이렇게 폐쇄적인 환경에서 원망은 쉽게 극대화되었다.특히 금나라 사람들이 부추기자, 상황은 더욱 악화하였다.처음엔 택란도 외출을 하곤 했지만, 적대적인 감정이 격렬해지자 외출할 때마다 돌멩이가 날아왔다. 다행히 호명이 그녀의 안전을 염려해 경호를 강화하면서 크게 다치는 일은 피할 수 있었다.양두는 백성들과 다투며 분노를 터뜨렸습니다.“자네들이 원망해야 할 대상은 북막의 황실과 진가요! 그들이 전쟁을 일으키고 북당을 침략하려다 패배하는 바람에 약도성을 내놓은 것이오. 다들 그때 전쟁을 지지하지 않았소? 전쟁을 지지해 놓고 이제 와서 북당을 원망하다니, 정말 어처구니가 없소!”양두는 기세가 등등했고 욕도 도리가 있어, 백성들을 순간 잠잠하게 했다. 하지만 이내 돌멩이가 그의 머리를 향해 날아들었고, 양두는 머리를 감싸며 도망쳐야 했다.이들은 이성적으로 도리를 따질 사람이 아니었다.호명은 상황을 이대로 둘 수 없다고 생각해, 택란에게 경성으로 돌아가길 권유했다. 하지만 택란은 단호히 거절했다. 첫걸음을 내딛지 않으면, 십 년이 지나도 변화는 없을 것이고, 약도성은 영원히 이 상태로 남을 것이다.호명은 사고를 막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경호를 더욱 강화했다.그는 주 아가씨에게도 특별히 경계를 강화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