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원제는 핏줄을 타고 불꽃이 손끝과 발끝까지 쫙 퍼져 나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명원제의 머릿속에 우문호의 결단력 있는 표정이 스치고 지나갔다. ‘과단성 있는 언행, 지혜로운 판단과 능력있는 사람이 바로 내 아들이다.’“폐하께서 직접 성지를 내려 정하신 태자 전하로, 태상황 폐하께서 하신 것이 아닙니다.” 할머니는 이 말을 마치고 일어나 예를 취하고 자리르 떠났다. 명원제는 눈을 감고 요 사흘 간의 일을 떠올리자 여러가지 감정이 교차했다. 억울함, 내키지 않는 마음 그리고 반성하는 마음도 있었으나 노부인의 말에 깨닫게 된 것이다. 이 말을 한 건 노부인이지만 사실 노부인은 태상황을 대신한 것으로 태상황은 여전히 명원제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뜻이다.명원제의 눈시울이 뿌예지더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가마를 대령해라, 건곤전으로 가겠다!”향이 하나 탈 정도로 짧은 시간이 흐른 뒤 명원제는 건곤전 앞에 꿇어 앉아 머리를 조아렸다. “소신 벌을 청하러 왔습니다. 제가 뭘 잘못했는지 알았으니 아바마마 노여움을 푸시고 용서해 주십시오. 아바마마, 소신 들어갈 수 있게 허락해 주십시오!”잠시 후 건곤전에서 태상황의 묵직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편전에서 과인을 기다리거라!”명원제가 일어나는데 눈물을 참을 수 없어 한손으로 눈물을 훔치고 성큼성큼 편전으로 가서 밖에서 기다리는데 궁인이 나와 안으로 드시라고 했다. 명원제는 문을 밀고 들어가 바로 태상황에게 달려가 앞에 털썩 무릎을 꿇고 앉아 울먹였다. “아바마마, 소자가 잘못했습니다!”태상황은 자기 앞에 꿇어앉은 황제를 보니 만감이 교차했다. 자신이 노부인을 보내 명원제에게 그런 얘기를 전하도록 한 것은 만약 명원제가 노부인이 그런 말을 했다고 책망한다면 부자의 관계를 더이상 유지할 필요 없다고 이미 마음 먹었기 때문이었다.하지만 명원제가 깨닫는다면 북당의 미래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명원제는 북당의 황제가 아닌가!명원제가 슬픔과 격앙된 감정으로 눈물을 떨구고 있을 때, 태상황이 황
태상황이 명원제를 보는 눈빛에는 말로 하지 못한 감정들이 녹아 있었다. “내 것이 없는 게 아니라 네 것이 이 강산과 하나가 되는 것이네. 자신에게 큰 능력이 있지 않은 이상 어떤 일도 마음대로 해서는 안되는 거야.” 명원제가 답했다. “알겠습니다!”태상황이 다시 말을 이었다. “황제가 성질을 부리면 반드시 결과가 따르기 마련이다. 이번 일의 후환이 끝이 없을 테니 받아들이거라!”명원제가 어리둥절해 했다. “아바마마, 아직 저를 용서해 주시지 않으신 것입니까? 제가 정말 잘못했습니다…”태상황이 천천히 일어나 명원제에게 말했다. “네가 반성한 건 단지 과인이 지적해 준 것일 뿐이지만 결국 멀지 않아서 자신의 잘못을 알게 될 것이야.”태상황은 밖을 보더니 무거운 듯도 하고 좀 가벼워진 듯 했다. “곧!”태상황은 다시 건곤전으로 돌아갔고 그렇게 명원제 혼자만 남았다.그의 마음 속에서는 실망이 일었다. 아바마마께서 자신을 용서하지 않았기에 명원제는 감히 건곤전에 들어갈 수 없었다.그쪽에 산적한 근심이 있다는 생각이 미치자 명원제의 마음에 다시 먹구름이 드리웠다. 십황자를 생각하니 팔목의 상처가 아파왔다. 자기 몸이 다쳐봐야 아픔을 느낀다.명원제는 차가운 눈빛으로 편전을 나섰다. “채명전으로 돌아가자!”십황자가 잡힌 뒤 채명전 사랑에 갇혔는데 안에서 소리를 지르고 난리를 치는데, 목이 쉬도록 울었으나 어명이 없으므로 아무도 감히 십황자를 내보내 주지 못했다.십황자는 머리로 문을 쿵쿵 들이받으며 아프다고 비명을 지르고 죽겠다는 소리를 해 듣는 궁인들마저도 놀라 벌벌 떨며 가슴을 졸였다.명원제가 냉랭하게 마당에 서서 문에 부딪히는 소리와 난리치는 것을 듣더니 갑자기 분노에 차서 일갈했다. “조용히 못해!”천둥 같은 소리와 함께 용안이 분노로 일그러지니 궁인들은 전부 무릎을 꿇고 엎드리며 애원했다. “폐하, 고정하소서!” 큰 소리로 외쳤다.“아바마마!” 그러자 갑자기 조용해지더니 십황자가 두손으로 문을 두드리며 처량하게 울부짖었다. “아바마마 소자
목여태감은 싸늘한 얼굴로 십황자가 발버둥을 치게 내버려두고 그저 꽉 잡은 뒤 밧줄을 가져다 나무에 묶었다. 등을 명원제 쪽으로 하고 두 손을 교차해 나무줄기에 묶어 다시 몸을 고정시키자 더는 몸부림을 칠 수 없었다.십황자는 목이 다 쉬도록 울부 짖더니 다시 명원제에게 용서를 구하며 소리를 질러댔다. 하지만명원제는 이미 마음이 식은지 오래였다. 전에 다른 친왕들이 맞을 때 어디 십황자처럼 이렇게까지 발버둥을 쳤었나? 소란을 떨 능력이 있으면 결과를 받아들일 능력도 있어야 하기에 명원제는 마음을 굳게 먹고 목여태감에게 곤장을 3대 때리도록 명했다.목여태감이 명을 받들어 형장을 들어올려 바로 십황자의 엉덩이를 내리쳤다.그러자 십황자는 돼지 멱따는 소리를 내며 고래고래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순간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하고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는데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였다.명원제는 십황자의 처참한 비명소리를 듣자 분노와 아픔으로 차마 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곤장 3대는 많지 않지만 저렇게 어린 아이에게는 어마어마한 형벌이었다.곤장을 맞고 십황자는 부들부들 떨며 우는데 거의 혼절할 지경이었다.목여태감이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황자 전하, 지금 교훈을 마음에 새기셔서 다시는 황제 폐하를 실망시키지 마세요. 황실에서 태어나면 조금만 멋대로 굴어도 주변 사람의 무고한 목숨을 잃게 할 수 있습니다. 전하께서 호비 마마께 부딪힌 일로 궁중의 하인들이 줄줄이 곤장을 맞았습니다. 하인들은 서른 대 씩 맞았는데 전하께서는 겨우 3대만 맞으시고 아프하십니까?”십황자는 계속 울어대서 목이 다 쉬었고 얼굴은 새파래져서 눈물 콧물이 입으로 들어가는데 여전히 마구 소리를 질러댔다. “아바마마,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명원제는 그 모습을 차마 도저히 두고 볼 수 없었다. 마음으로는 십황자를 용서해주고 싶었지만그러면 이렇게 때린 의미가 전혀 없어질 것 같아 마음을 다시 굳게 먹고 자리를 떠났다. 호비는 십황자가 매를
원경릉 또한 채명전으로 왔다. 태상황마저도 묵인한 일로 호비에게 편견이 없는데다가 호비가 회임하고 있는 아이는 분명 황실의 적통이기 때문이었다.명원제가 호비의 곁에서 지키고 있다가 원경릉을 보고는 마치 무거운 짐이라도 벗은 듯 안도했다.“아바마마를 뵙습니다!” 원경릉이 먼저 예를 취했다.“예는 됐으니 와서 상황 좀 보게나!” 명원제가 부드럽게 일어나 원경릉에게 자리를 양보했다.원경릉이 다가가 침대 곁에 서서 호비를 보니 눈시울에 다시 눈물이 맺히더니 참지 못하고 울었다.원경릉이 작은 소리로 물었다. “마마께서는 어떠십니까?”호비는 콧소리가 심하고 목소리가 떨리는데, “그다지 좋은 것 같지는 않아 이미 마음의 준비를 했다. 오랫동안 태동이 없어...”태동은 엄마와 아이가 가장 크게 상호작용하며 서로를 감지하는 장치다. 이것이 들리지 않으면 태아가 살아날 가능성은 점점 줄어든다. 그러자 원경릉이 말햇다. “소인이 아이 심장 소리를 들어볼겠습니다!”원경릉도 채명전을 오면서 사실 이미 마음의 준비를 했다. 할머니가 호비의 태아는 안 될 것 같다고 이미 말했기에 이번에 오면서도 그다지 기대를 품지 않았던 것이였다.청진기를 호비의 배 이쪽 저쪽에 옮겨보며 몇 번을 반복해 들어보는데 어디에서도 태동과 심장소리가 들리지 않았다.역시 할머니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분명 태아는 뱃속에서 사산된 것이다.약 상자에 있던 옥시토신이 호비에게 쓰일 것이었나 보다 싶었다.말도 할 필요 없이 명원제와 호비는 원경릉의 얼굴을 보고 이미 할머니와 같은 결과임을 알아챘다. 명원제는 가슴이 아파왔고 온몸에 힘이 쭉 빠지는 듯 했다. 노부인이 말할 때 명원제는 그래도 희망을 품고 쑥을 태우며 보태약을 먹었으니 살릴 수 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하지만 호비는 오히려 울지 않고 두 손을 떨며 배 위에 올려놓더니 눈을 감고 깊이 숨을 내쉬었다. 원경릉도 괴로운 마음이 들었다. 본인도 뱃속에 아이를 품고 있는 한 명의 엄마로서 호비가 이 아이에게 얼마나 많은 기대와 깊은 감
명원제는 자신과 인연이 없는 아들을 흘끔 보더니 악몽에 빠진 사람처럼 머리속이 새하얘지더니 입술을 움찔거렸으나 결국 아무 말도 꺼내지 못했다.원경릉은 너무 괴로워 뒤로 돌아 몰래 눈물을 훔치는데 깊은 무력감이 밀려왔다.채명전 하인들이 낮게 흐느끼는 소리에 명원제가 불쾌해 하며 눈을 흘기자, 궁인들은 입을 틀어막고 함부로 티를 내지 못했다.호비는 마음이 너무도 괴로워서 명원제의 이런 행동을 보며 마음이 상당히 답답해져서 울음을 그치고 말했다. “폐하, 신첩 곁에 있으실 필요 없으십니다. 신첩 홀로 좀 고요하게 있고 싶습니다.”호비는 요 며칠동안 자신을 신첩이라 지칭하고 명원제를 극존칭 했는데 후궁이 이런 식으로 말하는 게 법도에 틀린 것은 아니지만 호비가 전에 명원제 앞에서 이런 적이 별로 없어서 명원제는 상당히 서운한 감정이 들었다.어쩌면 채명전의 분위기가 너무 답답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원경릉이 여기 있기 때문일수도 있어서 명원제도 호비에게 감히 뭐라고 말하기 힘들었다. 몇 마디 위로의 말을 남기고 원경릉에게 호비 곁에 있어주라고 한 뒤 떠났다. 명원제가 나가자 호비가 비로소 한숨을 토해냈다.원경릉이 곁에 앉아 위로해주었다. “마마 너무 괴로워 마세요. 몸이 제일 중요합니다.”호비가 쓴웃음을 짓자 눈물이 다시 차올랐다. “괴롭지 않다면 거짓말이지만 나도 방법이 없었어. 이 아이와 내가 인연이 없었으니.”“마마께서는 아직 미령하시고 앞으로 자신의 아이를 더 가지실 겁니다.” 원경릉이 마음에도 없는 위로를 했다. 원경릉은 이 말이 막 아이를 잃은 엄마에게 조금도 위로가 될 수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호비가 손을 뻗어 눈물을 닦고 화려한 침대 휘장을 보며 중얼거렸다. “최근 줄곧 회의감이 들어, 내가 잘못한 게 아닐까 하고.”“에?” 원경릉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호비가 원경릉에게 슬픔이 가득한 눈으로 말했다. “늘 숨이 막히는 것 같애.”원경릉이 호비의 손을 꼭 잡았다. “곧 좋아질 겁니다!”호비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좋던 아니던 시간
원경릉이 문을 열자 집사가 장문전 복도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길래 얼굴이 하얘져서 물었다. “마마께서는?”집사가 목 멘 소리로 답했다. “장문전 안에서 쉬고 계세요. 태자비 마마, 어서 안으로 드시지요.”원경릉은 연일 바쁘게 뛰어다니느라 피곤이 쌓여서 호비가 말한 것처럼 숨쉬기가 약간 곤란했기에 숨을 헐떡였다. 장문전에 발을 들이자 썩어서 곰팡이가 핀 듯한 냄새가 진동했다. 장문전은 가구가 많지 않지만 있는 가구마다 이미 곰팡이가 잔뜩 슬어서 노비들이 한참을 닦아내도 여전히 얼룩덜룩할 정도였다.원경릉이 참담한 기분으로 침전에 들어가니 이곳 또한 곰팡이 냄새가 잔뜩 났다. 황귀비는 막 펼쳐 놓은 침상 앞에 앉아 직접 옷서랍을 정리하고 있었다. 이 작은 옷들은 뱃속의 아이를 위해 만든 것으로 침전으로 옮겼으니 잘 정리해둘 필요가 있었다.황귀비는 원경릉이 온 것을 보고 웃으며 인사했다. “왔어?” 마치 불쾌한 일따위 없었다는 말투였다.“나가요, 마마는 여기 계시면 안돼요!” 원경릉이 기침을 했다. 곰팡이 냄새가 코를 자극하고 공기가 음습하기에 기침이 계속 나왔다. “괜찮아!” 황귀비가 고개를 돌려 미소를 짓자, 눈가의 주름이 올라갔지만 그다지 나이 들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일종의 고요하고 우아한 느낌을 줬다. “조금만 정리하면 돼. 너야 말로 오면 안돼!”원경릉이 거의 울기 직전으로 물었다. “저 때문에 이런 일을 겪으시는데 제가 어떻게 두 눈 멀쩡히 뜨고 이런 꼴을 지켜볼 수 있겠어요?”황귀비가 침대를 두드리더니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앉아서 얘기해, 흥분하지 말고.”원경릉이 앉아서 숨을 몰아쉬는데 곰팡이 냄새가 또 코를 찌르고 들어와 너무 괴로웠다. “정말 여기 있으면 안 될것 같아요. 너무 썩었어요. 이 집은 언제 무너질지도 알 수 없는 정도라고요!”“응, 알았어!” 황귀비가 미소를 지은 채 태자비의 손등을 두드렸다. “그럼 나도 이 전각이랑 생사를 함께 하는 셈 치지 뭐.”황귀비가 원경릉의 손등을 두드린 순간 그녀의 얼굴을 보니,
원경릉이 고개를 흔들었다. “호비 마마께서는 황귀비 마마를 원망하지 않았어요. 사실 제가 갔어도 아이를 구할 방도가 없다는 걸 호비 마마께서는 분명하게 아셨어요.”황귀비가 말했다. “호비는 마음이 물처럼 맑은 사람이라 폐하께서 자신을 중시하시는 것을 알고 압박감을 느꼈어. 원래 호비가 총애를 받으면 호비 궁에 있는 사람도 따라서 우쭐한 게 맞는데 오히려 그 반대로 하는 일마다 곤욕을 치렀지. 호비가 기분이 좋지 않거나 몸이 좀 불편하다고 하면 폐하께서 채명전 사람들을 닦달하시는 것을 보고 호비는 그 뒤로 감히 솔직히 말하지 못하고 조심 했어. 그런 모습을 봐왔으니 나도 방어할 수 밖에 없었던 거야. 널 데려오지 못하도록. 호비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결국 너한테만 그 책임이 떨어질 테니까.”원경릉이 쓴 웃음을 지었다. 총애를 받는다는 것이 후궁의 비빈에게는 꿈에도 바라는 일이지만 호비 같은 성격은 총애를 감당하지 못한다. 불나방 같은 사랑이 막상 불꽃이 사방을 휘감자 놀라고 만 것이다. 어쩌면 자신이 잘못한 걸지도 모르겠다는 호비의 말이 바로 그런 뜻이다. “됐어, 그 사람들 얘기는 하지 말자. 그리고 내 걱정 하지 마. 태자 시켜서 날 설득하려 하지도 말고. 난 정말 이렇게 고요한 나날을 보내고 싶어. 돌아가.” 황귀비가 정색하며 억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원경릉이 이 상황을 보고 도저히 황귀비를 여기 살게 둘 수 없어 속으로 명원제를 찾아갈 것으로 결심을 굳혔다.황귀비는 원경릉의 생각을 꿰뚫어보고 한숨을 쉬며 설득했다. “내 일에 신경 쓰지 마. 네가 황제 폐하를 찾아가면 내가 따귀 맞은 게 헛수고가 되잖아? 며느리 신분으로 어쩌자고 시부모 일에 간섭하려고 해? 사서 고생 하지 말고 가서 기도나 드려 줘. 난 여기서 살기로 마음 굳혔으니 폐하께 말씀드리러 갈 필요 절대 없어.”“그럼 제가 기도하러 갔다고 치시면 되잖아요.”원경릉이 대답하자 황귀비가 웃었다. “바보, 우리 다 알잖아. 기도해도 소용없는 일도 있다는 걸. 정말 기도가 효과가 있으면
주재상이 당황하며 바로 말했다. “그럴 것 까지는 없어.”“뭐가 그럴 것까지 없는데? 얼마나 황당했는데!” 소요공의 눈빛이 싸늘해졌다.주재상이 말했다. “십팔매, 폐하시잖아. 황제의 존엄을 다쳐선 안돼. 앞으로 군신들을 어떻게 호령하고 천하를 어떻게 통솔하려고?”소요공이 대꾸했다. “이 일은 조정에서 떠들 게 아니고 우리끼리 사적으로 해결할 거야. 알건 알아야지. 태상황 폐하께서 지금 화도 누르지 못하고 걸핏하면 피를 토해내는데 그분은 지금 아주 편안하셔. 너랑 나는 어쨌든 신하 입장이니 말하기 불편하고. 근래 내우외환에 시달렸지만 곁에는 우리 말고도 어진 신하와 인재들이 넘쳐나서 제 아무리 큰 위기도 걱정이 없어. 나날이 평안하다 보니 경계심이 없어지고 자연스레 자기 성격이 나오는 거지. 좀 깨닫게 해주지 않으면 앞으로 다섯째 고생문이 훤해. 당장이야 잘못했다고 하지만 앞으로 또 그럴 게 틀림없어. 역사가 아무런 교훈이 못되는 모양이야. 황제 폐하의 머리 위에 검을 하나 걸어 놔야 머리 위쪽을 올려다보고 싶을 때 그 검에 찔리게 되겠지.”주재상이 가만 있다가 한마디, “여섯째는 알고 있어?”태상황의 목소리가 주재상 머리 위쪽에서 들려왔다. “과인이 여기서 듣고 있었는데 몰랐어?”주재상이 알았다며 고개를 들어 웃으며, “순간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태상황이 담담하게 말했다. “과인은 소요공 말이 맞다고 생각하네.”“다들 그렇게 생각한다면 된 거죠.”소요공이 덧붙였다. “그래야 황귀비 편도 좀 들어주는 셈이고. 마침 여 장군도 휘형(안풍친왕)과 생사를 함께 하는 막역한 사인데 자기 딸이 그런 꼴을 당했는데 참아지겠어?”여 장군은 황귀비의 아버지로 일찍이 사방에 무훈을 떨친 장군이다. 황귀비가 명원제에게 후궁으로 시집갈 때 소요공이 나서서 다리를 놓았었다.소요공이 당시 여씨 집안의 큰 아가씨는 장군 집안의 가풍을 이어, 앞으로 태자가 등극하면 분명 태자를 도와 후궁을 안정시켜 그로 인한 근심이 없도록 할 거라고 했다.원경릉이 이 말을 듣고 또
대오가 경성으로 돌아올 때 홍엽도 원숭이와 같이 돌아왔는데, 그도 풍도성에서 힘을 보탰다. 사실 홍엽이 안 가도 안풍 친왕이 모든 걸 다 준비해 둬서, 안풍 친왕 능력이면 안지여 정도 상대하기는 식은 죽 먹기였다.이리 나리 일행은 경성에 도착해, 우선 집으로 돌아가 공주와 천행이를 보고 가족이 함께 밥을 먹은 뒤 입궁해서 경과를 보고했다.사적인 원한은 한두 마디로, 벌을 받아 마땅한 사람은 지금 받아야 할 벌을 받고 있으며 아직 죽이지 않았다고 했다남은 건 정사를 논하는 것이었다.“어머니와 같이 풍도성에서 보름 정도 지내며 기본적인 민심을 파악했는데, 천문 세가는 백성들 사이에서 아직 명망이 높아 보입니다. 풍도성 백성들은 사실 세금이 너무 많고 경제가 번영한 성과가 전부 안지여 수중에 떨어지는 구조로 되어 있어 안지여의 통치에 불만이 있었다고 합니다. 조정에서 풍도성을 접수한 것에 백성들 대부분은 찬성하였습니다. 하지만 이제 천하태평이냐 하면 그럴 순 없는 것이, 일부는 성주가 자기들의 황제라 여기고, 조정이 풍도성을 접수한 것이 풍도성이 침략당했다고 여겨 나중에 약간 문제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따라서 지부를 임명하실 때 신중하셔야 할 것입니다.”우문호가 말했다. “흠, 큰할아버지께서 천거한 사람이 있는데, 바로 박원이라네. 자네 생각은 어떤가?”그러자 이리 나리의 눈빛이 빛났다. “제 아버지가 추천한 사람이니 전 찬성입니다!”“아버지?” 우문호가 의아해하며 이리 나리를 쳐다봤다. ‘안풍 친왕비가 사부님이면 안풍 친왕은 사부의 남편 아닌가? 어떻게 아버지가 되지? 사부님의 배우자니 사모님이라고 부르는 게 더 맞지 않나?’“흠, 안풍 친왕은 제 아버지십니다!” 이리 나리는 더 설명할 생각이 없는지 어쨌든 그렇다고 주장했다. 그 오랜 세월 동안 한 번도 그를 아버지라 부른 적 없지만, 마음속에서만큼은 진정한 아버지였다.“하하하!” 우문호도 그저 웃으며 더는 묻지 않았다.이리 나리가 퇴청할 때 우문호가 이리 나리를 부르자 고개를 돌렸다. “무
“우선 박원이랑 소홍천 의사부터 물어보자. 억지로 하게 하고 싶지 않아. 그동안 그들이 날 많이 도와줬으니 전부 원하는 대로 하자고.” 우문호가 말했다.“그러자!” 원경릉이 일어서며 말했다. “오늘 저녁 애들 데리고 어머님께 가서 수라를 들려면 빨리움직여야 해. 꾸물대면 늦을거야.”그러자 우문호도 계란이를 안고 일어섰다. “그래, 우리 황조모한테 가서 맘마 먹자.”우문호가 나가서 부르자 아이들이 달려와, 같이 왁자지껄하게 수라를 들러 황태후 전으로 갔다.황태후는 원래 우문호에게 할 말이 있었지만, 식사 자리에 아이들이 있어서 기다렸다가 저녁을 다 먹은 뒤 우문호와 아이들이 나가서 놀고, 원경릉이 황태후와 얘기를 나눌 때 말을 꺼냈다.“천행이가 태어난 지 얼마나 됐다고 부마를 풍도성으로 보낼 수가 있지.. 공주가 얼마나 괴로웠을까.”원경릉이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공주는 사정을 훤히 알고 있어서, 이리 나리께서 풍도성에 가는 걸 지지하셨는걸요.”“말은 그렇게 해도, 출산 후에 여자 곁엔 남편이 있어야 하는 법이야. 하지만 이것도 단지 우리 가족끼리 하는 얘기일 뿐이고, 조정 일을 내가 함부로 이렇다 저렇다 할 수 없는 노릇이지.”황태후는 이리 나리가 풍도성으로 간 진정한 목적을 전혀 몰랐으며, 단순히 어지러운 형국을 정리하러 갔다고만 알았기 때문에 순수하게 공주를 아끼는 마음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어마마마, 걱정하지 마세요. 이리 나리는 이미 돌아오는 중이래요.” 원경릉이 위로하자 황태후가 기쁜 표정을 지었다. “그거 잘됐네!”온 가족이 별빛을 받으며 천천히 소월궁을 거닐었다.계란이는 아빠 품에서 잠이 들었고, 아이들은 놀다 지쳐서 아빠 엄마를 따라 천천히 걷고 있었으며, 목여 태감이 궁인 둘을 데리고 뒤에서 조용히 따라오는 가운데, 궁 안은 인적이 드물어 밤이 되자 상당히 고요했다.“어마마마께서 공주를 아끼셔서, 이리 나리가 하필 이때 풍도성에 보냈냐고 하셨어.” 원경릉이 말했다.“날 원망하셨어?” 우문호는 품에 있는 아이가 깰
늑대파 사람이 안지여와 소여쌍을 질질 끌고 나가는데, 소여쌍은 여전히 미친사람처럼 웃어대기만 했다.이리봉청은 그들이 끌려 나가는 것을 보자, 눈앞에 안지여가 자신을 데리고 소여쌍의 침대 앞으로 가서 소여쌍의 그 악랄한 말을 듣던 순간이 떠올랐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여리여리하고 아름답던 그녀가 이렇게 변해 버린 게 꿈처럼 느껴졌다.풍도성을 접수한 뒤 안풍 친왕은 관리들을 새롭게 임명했고, 더 이상 성주 같은 것을 두지 않고 조정과 이부에 적합한 인사를 선발해 풍도성 지부로 앉힐 것을 요청했다. 풍도성은 더 이상 이전의 독립 자치 지역이 아닌, 다른 주나 현과 마찬가지로 조정에 귀속되어 통일서 있게 다스리게 되었다.더불어 안풍 친왕은 별도로 서신을 써서 황제인 우문호에게 보냈는데, 풍도성을 추천하지만, 이건어디까지나 건의와 추천이니 황제가 생각하는 마땅한 사람이 있으면 안풍 친왕의 추천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동시에 안지여의 잔당들이 계속 나타났다.안풍 친왕이 이번에 이렇게 많은 사람을 데려오고, 호랑이와 눈 늑대, 회색 늑대까지 출동시킨 건 바로 모든 세력을 강화하고, 신속하게 진압해 풍도성을 조정에 복귀시키고 보름 만에 비적을 토벌하며 기본적인 숙청을 마무리하기 위해서였다.박원은 잔당의 남은 불씨가 다시 타오르는 것을 막기 위해서 안풍 친왕의 영패를 가지고 부근에 5천 명의 군사를 파견시켜 풍도성을 지켰다. 이리 나리는 자금을 지원해 천문 세가의 묘를 이장하였는데, 이전 무덤은 안지여가 고른 곳으로 폐허에 가까워, 그는 천문 세가 사람들이 그런 곳에서 안식을 취하기를 원하지 않았다.풍도성에 온지 거의 한 달가량 될 때쯤, 대군은 경성으로 돌아갈 채비를 했다.돌아가기 전에 미색이 안지여와 소여쌍을 보러 갔다가, 돼지우리에서 죽느니만 못한 삶을 사는 것을 보고 그제야 비로소 맺혀 있던 한이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미색은 이리 나리와 어머님에게 알리지 않은 것이, 두 사람은 이미 안지여가 누군지 잊은 듯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리봉청에게 있어 모든 건 지나가지 않았고, 36년 전 일은 여전히 어제 일 같이 느껴졌다.“어머니, 그를 어떻게 처분하시겠어요?” 이리 나리는 이리봉청의 마음을 넘겨짚을 수 없어 함께 걷는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네 생각은 어떠니?” 이리봉청이 다시 되묻자 이리 나리가 원한에 사무친 눈빛으로 말했다. “제게 처분하라고 하면 전 그를 죽여 버릴 겁니다.”이리봉청은 알았다며 대답만 했다가, 다시 30분쯤 걷다가 정자에 앉아 을 때 말을 덧붙였다. “난 안 죽일 거야.”이리 나리가 약간 놀라서 물었다. “어머니, 또 마음이 약해지신 겁니까?”이리봉청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 반대야. 그 인간을 죽이는 게 마음이 약해진 거지. 사실 며칠 동안 이전의 원한을 내려놓을 수 있을지 생각해 봤는데, 내려놓을 수 있다면 그 인간을 백번이라도 죽이겠지만, 난 그럴 수 없더구나. 아들아, 게다가 오늘 천문 세가 대문을 들어서는 그 순간, 더욱 마음을 굳혔단다.”이리봉청이 일어나 집안을 둘러봤다. 이곳은 그녀의 가족들이 살아 원래 온통 사람 소리로 가득한 곳이였다. 그들의 웃던 광경이 눈앞에 비치는가 하더니, 눈 깜박할 사이에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그들은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천문 세가는 큰 잘못을 저지른 것도 없는데 멸문지화를 당했고, 가엾게도 그 중엔 아이들이 많아서 제일 어린아이는 이제 태어난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았었다.이리봉청의 얼굴에 눈물이 타고 흐르며 가슴이 미어졌다. “그자와 소여쌍을 밖에 내버리고 사람을 시켜 지켜보도록 해. 죽게 두지 말고 계속 살려둬. 36년은 더 살면서 이 세상의 고생을 모두 겪어야, 내 마음에 맺힌 한이 풀리고 억울한 망자들도 안식에 들지!”이리 나리는 온몸으로 그 마음이 느껴져, 어머니가 눈물 흘리는 것을 더는 볼 수 없었다. “네, 전부 어머니께서 말씀하신 대로 할게요.”안지여와 소여쌍은 버려졌다. 짧은 며칠 사이에 안지여는 의기양양하던 성주에서 시궁창 쥐로 변해, 사람들이
안지여는 풍도성 지하감옥에 갇혔다. 빛 한 줄기 없는 지하감옥에서 사방에 끝없는 어둠과 절망만이 안지여를 삼키고 있었다.훼천의 형벌은 12 시진 후면 사라져서, 앞으로 안지여는 그저 한 명의 폐인일 뿐이었다.안지여의 결사대가 성으로 공격해 들어오기 전에, 이리봉청은 오 선생을 찾아내 안지여가 저지른 모든 죄를 고백하게 하고 안풍 친왕이 친필로 받아 적었다. 안지여가 당시 천문 세가를 해친 경위를 소상히 써 내려간 뒤, 오 선생과 안풍 친왕의 직인을 찍고 인쇄해서 대중에게 공개했다.안지여의 죄악은 하늘을 찔러 백성들 모두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안지여의 결사대의 옛 부하들이 본래 성을 공격해 들어가 안지여를 구출할 계획을 세워놓았으나, 안지여의 죄상이 공포된 뒤로 많은 사람들이 해산하였다. 유일하게 무대장군만이 수천 명을 데리고 성으로 쳐들어왔지만, 안풍 친왕과 이리 나리가 이미 대비해둔 덕분에, 경성에서 굴러온 돌이 무대장군의 박힌 돌을 빼내는 전투를 벌였다.풍도성에 온 지 7일째, 안풍 친왕은 풍도성을 접수하고 성에 살던 사람을 쫓아내며 서민으로 강등시켰다.안지여와 소여쌍에 대한 처분은 이리봉청에게 넘겼다.안지여는 캄캄한 지하감옥에서 6일을 지내는 동안, 처음엔 침착한 척 가장했으나 사흘째가 되자 울부짖으며 악독한 저주의 말을 내뱉더니, 나흘째가 되자 용서해달라고 애원하며 참회했다.손발의 힘줄이 끊어진 안지여는 일어나 걸을 수도 없고 심지어 스스로 몫숨을 끊을 힘도 없었다.그 와중에 매일 누군가가 먹고 마시도록 해주고, 상처도 치료해 주어 살 수 있다는 부질없는 희망을 품게 했다.훼천의 말에 따르면, 진정한 절망은 살아도 죽느니만 못하고,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것으로, 온 마음으로 죽기를 바라지만 살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었다가, 안간힘을 쓴 뒤 다시 절망에 빠지는 것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것으로, 사람을 한없이 죽였다 살렸다 괴롭힌다고 했다.결국 안지여를 죽일지 말지 여부는 이리봉청에게 달렸는데, 그녀는 안지여를 단번에 죽여 천문 세가
안지여의 이마에 파란 힘줄이 불끈불끈했으나 냉정을 가장했다. “내가 두려워할 줄 알았나 보지? 죽음도 두렵지 않은데 뭘 더 두려워하겠어?”“넌 두려울 것이야!” 이리봉청이 고개를 돌려 이리 나리를 보고 살짝 그의 팔을 잡았다. “내가 오는 길에 늑대파 사람이 그러던데, 천하에서 제일 잔혹한 형벌을 아는 사람이 늑대파에 있다고. 그게 사실인 것이냐?”이리 나리가 가볍게 답했다. “물론 사실이죠. 훼천이라고 합니다. 늑대골 출신이에요.”“안지여가 버틸 수 있는지 어디 한 번 보고 싶구나.” 이리봉청이 말했다.이리 나리가 엄숙한 태도로 명을 내렸다. “훼천!”그러자 훼천이 급히 나왔다. “이리 나리, 분부하시지요!”이리 나리는 그가 짐짓 냉정한 척하고 있으나 눈빛이 조금씩 허물어져 가고, 몸까지 부들부들 떠는 것이 아주 만족스러워 훼천에게 담담하게 말했다. “시작해!”안지여가 갑자기 큰 소리로 욕했다. “난 네 아버지거늘, 감히 나에게 손을 대다니, 천벌을 받아 마땅한 놈 같으니라고!”이리봉청이 이 말을 듣고 잠시 주저하는 눈빛으로 이리 나리를 바라봤다.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제 아버지는 오직 저를 키워주신 안풍 친왕뿐이십니다.”이리봉청이 살짝 안도했다. “저 인간이 단지 나만 해쳤으면 네 체면을 봐서 놔줬겠지만 천문 세가의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갔으니 난 용서할 수 없구나.”“이리봉청, 너 언제 이렇게 악랄하게 변했어? 죽이려거든 그냥 죽여. 난 천문 세가 사람을 죽이긴 했어도 그들을 괴롭히진 않았어. 네가 날 죽이려거든 깨끗하게 단번에 죽여!”안지여가 크게 노해 몇 번 몸부림을 치다가 상처가 벌어지는 바람에 배에서 선혈이 흘러나오고, 훼천이 가까이 다가가자, 눈에 두려움이 깊어졌는데, 늑대골 출신 훼천은 온몸에서 피비린내가 뿜어져 나와 안지여를 덜덜 떨게 했다.“이리율!” 안풍 친왕비는 시ㅈ가하기 전에 이리 나리를 불렀다. “내가 여기서 네 엄마와 같이 있을 테니 넌 먼저 나가 있거라!”이리 나리가 안풍 친왕비에게
안지여에게 구원 병력이 없는 상황에서, 이리 나리 일행이 성을 제압하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대오가 경성에서 출발하기 전에, 안풍 친왕비가 미리 사람을 풍도성으로 보내 각처, 특히 성 수비군과 군대에 잠입시켜, 음식에 효과가 천천히 나타나는 독을 풀어, 오늘 중독 증상이 나타나도록 독의 분량을 조절했다.적어도 내일까지는 안지여를 도우러 올 사람은 없었다. 독성은 적어도 이틀이 지나야 깨끗해지기 때문에 이틀 동안 그들은 설사와 전신 무기력으로 성에 무슨 일이 있다는 걸 알아도 와서 도울 수 없었다.그리고 그들이 기력을 회복할 때쯤이면, 안지여는 벌써 죽었을 것이다.안풍 친왕과 이리 나리는 성을 통제하고, 안지여 부부를 제압해 두 사람을 줄로 묶고 지혈시켜 주었다.안지여는 요 몇 년 동안 자신이 상당히 대단하다고 여겼다. 이는 풍도성이 부유하기 때문으로, 돈으로 많은 사람을 살 수 있었으며, 여러 곳에서 추켜세워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처절하게 패배한 적이 없었던 이유는 진정한 적이 없기 때문으로, 주변의 떠돌이 비적은 작은 마을 규모로 너무 작아서 소탕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결코 그가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적이 너무 약해서였다.조정 사람과 비교했을 때, 그는 제대로 훈련받은 적 없는 비적었기에 일격도 감당할 깜냥이 못됐다.이리 나리는 둘을 중정에 묶어 두었다. 온 바닥에 남은 음식과 깨진 기와가 널브러져 있는 것을 본 안지여는 마음속 깊이 분노가 일었다. 자신의 생일날, 그를 다치게 한 것이 바로 그의 친자식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더욱이 오늘 이렇게 많은 고수가 현장에 있었는데도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이런 결말을 맞다니 너무 불쾌했다. 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을 부축하고 안지여 부부 앞으로 가서, 그녀가 안지여 부부를 내려다보자, 그들은 낭패에 달가워하지 않는 기색으로, 이리봉청은 분노하는 마음과 함께 서글픈 마음도 들었다. 그들을 죽이면 커다란 복수는 이뤄 천문 세가 망자의 원혼은 달랠 수 있었다.하지만 저들을 이렇게 쉽게
“그럴 필요 없을 것 같은데?!” 이리 나리가 검을 휘두르며 안지여를 겨누자, 안지여가 공중으로 뛰어올라 후퇴했다.공자들은 돕고 싶었으나 검은 옷을 입은 노인들에게 바로 제압당했다. 안지여는 이리율 것으로 그들은 주변 사람을 제압하기만 할 뿐 옆에 서서 전투를 관전하고 있었다.이리율의 무공이 얼마나 뛰어난지 그를 가르친 안풍 친왕 부부를 제외하고, 사실 많은 사람들은 모르고 있었다.이리율의 검법은 신속하고 맹렬해서 안지여는 상대하느라 쩔쩔매고 구석으로 몰리고 있었다. 성안의 호위들은 늑대 무리와 늑대파, 홍매문 사람들에게 막히는 바람에 안지여는 홀로 고전을 면치 못했는데 그래도 아직은 버틸 수 있었다.하지만 30분을 못 가서 안지여는 질게 틀림없었다.놀란 나머지 계속 실성해 있던 소여쌍이 갑자기 이리봉청을 향해 바싹 마른 손을 뻗어, 그녀의 목을 조르며 광적인 집착과 분노에 사로잡혀 성질을 부렸다. “멈춰, 다들 멈추라고. 안 그러면 내가 이년을 죽여버릴 것이니까!”소여쌍은 무공을 할 줄 알았지만 잘하지 못한 것이 어릴 때부터 계속 중병을 앓아 무공 연습에 소홀했고 성주 부인이 된 뒤로는 더욱 병기에 가까이할 일이 없었지만, 공력만큼은 아직 약간 있었다.소여쌍은 증오의 힘으로 이리봉청의 목을 졸랐는데, 소여쌍이 조금만 더 힘을 주면 이리봉청의 목을 부러뜨릴 것만 같았다.안풍 친왕이 차가운 눈빛으로 나서려 하자, 안풍 친왕비가 말리며 고개를 살짝 흔들었는데, 그럴 필요 없다는 뜻으로 뒤에 있던 사람들에게도 참으라는 눈짓을 하자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모두가 이리봉청이 제압당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녀가 고개를 돌리자, 손가락으로 뭔가를 쥐고 있어 소여쌍의 어깨 위를 휘감고 팔을 눌러 소여쌍이 머리를 돌리게 했다. 이리봉청 손에 쥔 것은 바늘로, 그대로 소여쌍의 오른쪽 눈을 찌르고 들어갔다.소여쌍이 절규하며 이리봉청을 놔주고 선혈이 흐르는 눈을 움켜쥔 채 비틀거리다 바닥에 쓰러져 데굴데굴 구르며 새된 소리를 지르는데, 원망과 저주의 말을 끊임없이 쏟아
풍도성 중정에는 안지여의 아들들과 사위가 그의 곁에 남았는데, 크고 작은 부상을 입어 점점 공포에 질려가고 있었다.‘이 사람들, 아주 대단하구나!’안지여는 이리봉청을 보고 비록 조금 냉정해 보였지만, 여전히 놀라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갑자기 소여쌍이 큰 소리로 웃으며, 몸을 앞뒤로 흔들며 눈물을 찔끔거리더니 완전히 미친 사람처럼 갑자기 웃음을 멈추고 부들부들 떨리는 손가락으로 이리봉청을 가리키며 원망했다. “뜻밖에 네가 안 죽었단 말이지? 게다가 아들까지 있고. 참으로 황당하구나. 정말 너무 황당해. 원래 죽어야 했을 인간은 죽지 않고, 잘 살아야 할 사람은 36년간 괴로움을 당했어. 이리봉청 네가 날 비참하게 만들었으니 넌 이제 지옥에 떨어져야 해.”이리봉청은 소여쌍의 말을 들은 체 만 체했는데, 그녀 눈에는 지금 안지여만 들어왔다.안지여는 36년을 살아왔지만, 이리봉청에게 있어 36년은 마치 사라진 시간처럼 멸문지화의 원한이 어제 일 같았다.안지여도 이리봉청의 눈에서 분노와 악랄함을 보고, 처음으로 마음속에 두려움을 느꼈다.안지여는 억지로 감정을 가라앉히고 말했다. “네 사람을 데리고 가. 지난 일을 묻지 않을 테니. 그렇지 않으면 풍도성에서 곧바로 10만 대군이 올 것으로, 살아서 도망갈 생각은 꿈도 꾸지 않는 게 좋아.”이리봉청의 목소리가 낮게 잠겼다. “우리는 이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바로 네 성으로 쳐들어갈 수 있어. 넌 이미 졌어.”안지여가 웃었다. “졌다고? 그래?”안지여는 수하의 대장군이 믿음직해서, 그들을 당하게 놔줄 수도 있다고 여겼다. 대장군의 부대는 분명 치밀하게 준비되어 있을 것으로, 아마 지금쯤이면 궁수들이 이미 배치를 마치고 그들을 전부 쏴 죽이기 위해 기다리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의 손을 잡고 말했다. “어머니, 저자와 말 섞으실 필요 없어요. 앉아서 지켜보시기만 하면 됩니다!”말을 마치고 의자를 올리더니 이리봉청을 부축해서 앉혔다.안지여가 이리 나리를 보는데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