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특히 못난이는 지치지 않고 고통도 느끼지 못하는 듯 몸에 몇 군데나 검상을 입었는데도 전혀 움츠러들지 않고 오히려 다칠수록 사나워졌다. 독고가 가장 두려워한 건 오히려 못난이였다.협공 끝에 독고가 드디어 지친 듯 검을 드는 힘이 상당히 느려져 팔과 가슴에 몇 군데나 상처를 입었다. 곧바로 우문호의 초식이 유성처럼 회전하며 검이 독고의 가슴을 항해 후려쳤다.지금까지 독고는 족히 3 시진을 싸웠으며 1 대 다수인 데다 적들은 죄다 무림에서 한 싸움하는 초일류 고수들이었다.우문호는 독고가 얼굴 근육에 경련을 일으키는 것을 보았다. 눈가의 음험함과 교만함이 아직은 살아있었지만, 뜻밖에도 선혈이 가슴을 타고 아래로 흘렀다. 독고는 그렇게 오만하게 우문호를 죽일 듯이 노려보면서도 전혀 쓰러지려는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무릎을 꿇지도 않은 채 마지막 남아있는 힘까지 다해 버티며 천천히 숨을 거두기를 기다렸다.우문호 쪽 사람들도 하나같이 다들 몰골이 말이 아닌 게 다치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었고 두 다리가 후들거렸다.이리 나리조차 검에 의지해 겨우겨우 버티고 서 있었는데 머리가 싹 다 헝클어지고 옷은 반쯤 찢겨 나간 것이 이런 험한 꼴을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당해본 적이 없었다.독고가 죽어가면서까지 험한 말 한마디 하지 않은 채 우문호만 노려보는 것이 마치 본인을 죽게 한 사람을 똑똑히 기억에 남겨두려는 것처럼 보였다.그리고 이내 검을 바닥에 짚고 끝까지 버티고 서 있다가 결국 서서히 허물어지며 기세가 드높던 일생은 한 차례 전투로 장렬하게 끝났다. 그는 죽는 순간까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안왕이 독고에게 이를 빠득빠득 갈며 힘겹게 검을 들어 올려 노한 목소리로 외쳤다.“감히 내 연아를 납치하다니 널 곱게 죽도록 놔둘 것 같으냐?”안왕이 검을 들어 독고의 목을 베려 하자 우문호가 뭔가 번뜩 떠올라 소리 질렀다.“안돼!”그 순간, 독고가 갑자기 붉어진 두 눈을 번쩍 뜨더니 검을 움직여 곧장 안왕의 배를 찔러 최후의 일격을 가했다.“왕야!
불안한 예감궁 안과 궁 밖은 마치 전혀 다른 세계 같았고 밖은 선혈이 낭자하고 시체가 널브러져 있건만 궁 안은 예전과 다를 바 없이 고요하고 평온했다.명원제 앞에 무릎을 꿇자, 명원제가 매우 감격해하며 서둘러 일어나라고 했다. 하지만 둘은 채 일어나기도 전에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더니 완전 녹초가 되어 대자로 뻗어 헉헉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황귀비가 어의에게 분부해 두 사람의 상처를 치료하게 하고 두 사람은 눈을 감고 이 정도의 상처로는 끄떡없다는 듯이 아파하는 기색 하나 없이 잠자코 치료받았다. 이번 전투는 여전히 가슴이 벌렁거리지만 그래도 돌아볼 가치가 있는 게 특히 독고의 검법이었다.황실 별궁, 전쟁의 북소리가 멈췄다.원경릉이 깜짝 놀란 건 전장을 통틀어 아무도 중상을 입은 사람이 없었다는 점, 고작해서 몇 명이 경상을 입고 대충 싸매도 괜찮다는 점이었다.원경릉이 밖으로 나와 삼대 거두와 안풍친왕 부부가 본관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 모습은 전장에서 막 돌아온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고 마치 유원지에서 실컷 놀다 들어온 것처럼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었다.원경릉이 서둘러 들어가 물었다.“다섯째 쪽에서는 아무 소식 없나요?”“태자비, 조바심 낼 필요 없어. 태자 쪽은 별일 없을 거니까.” 소요공이 다리를 꼬고 앉아 잎담배를 더듬으며 태연하게 말했다.태상황이 소요공에게 달라고 손을 뻗더니 고개를 들어 말했다.“과인에게도 한 대 주렴, 그리고 걱정하지 마, 계속 사람을 보내 정보를 확인하는 중이야.”원경릉이 조바심이 나서 애간장을 태우는데 저들의 느긋한 모습을 보니 그나마 위기는 조금은 해소된 것 같은 분위기에 원경릉도 계속 땍땍거릴 수 없는 일이었다. 그녀는 한 발짝 물러나 어르신들이 계속 전장의 여운을 나누시도록 했다.밖에는 사식이가 문 앞에 앉아 계속 밖을 내다보고 있다. 원경릉이 다가와 같이 돌계단에 앉아 걱정하고 있는 사식이를 다독였다. “걱정하지 마, 내가 방금 태상황 폐하께 가서 여쭤봤는데 태상
중상을 입은 서일과 홍엽사식이가 돌계단을 내려가 무릎을 꿇고 빌었다. “소녀 원용선, 저는 뭣 모르는 철부지라 전에는 부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오늘 남편이 북당 강산과 백성을 지키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있사오니 부처님, 보살님 부디 그이가 무사히 돌아오도록 지켜 주시고……”사식이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어디선가 말발굽소리가 들려왔다. 두 사람이 얼른 고개를 들어보니 말 몇 마리가 시뿌연 먼지를 일으키며 이리로 달려오고 있었다.말 위에 있는 사람 중 한 명은 전신에 붉은 옷을 입고 있었고 다른 말에서는 살짝 튀어나온 갑옷이 보였다. 그 순간 사식이가 다리에 힘이 풀리며 울부짖었다. “서일……”보내진 사람은 홍엽과 서일이었고 귀영위가 서일을 번쩍 안고 말 위에서 내렸다.그때, 사식이가 달려들어 서일 몸에 피를 보고서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맙소사, 서일, 서일!”“어서 안으로 들이게!” 원경릉이 낮은 목소리로 분부했다.서일과 홍엽 공자는 둘 다 중상을 입고 숨이 간신히 붙어 있는 정도였다.“먼저 서일을 구해요, 서일을 구해요!” 사식이가 원경릉의 어깨에 기대 눈물을 펑펑 쏟으며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울부짖었다.“그래, 알았어, 알았어!” 원경릉이 사식이를 흘끗 쳐다보니 다리에 힘이 풀려 귀영위를 간신히 잡고 있었다.“태자 전하는? 태자 전하는 다치지 않으셨고?”원경릉이 귀영위를 향해 물었다.“태자비 마마 안심하세요. 태자 전하는 무사하십니다!” 귀영위가 답했다.원경릉은 눈시울을 붉히며 사람들을 지휘해 서일과 홍엽을 후원에 붙어 있는 사랑채 두 방으로 각각 나뉘어서 들여보내려고 했는데 돌연 사식이가 원경릉을 홱 잡아 끌고 서일이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사식이가 연신 몸을 부들부들 떨며 말했다.“빨리, 빨리 좀 봐줘요.”원경릉이 진찰해 보더니 서일의 심장박동과 맥박이 조금 약했을 뿐 상처는 비교적 가벼웠다. 하지만 가슴에 손바닥 자국이 유독 크게 나 있는 것을 보니 내상을 입은 것 같았다.원경릉은 내상을
치료원경릉은 홍엽이 말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큰 짐을 덜어낸 듯한 홀가분한 목소리에 이상하게도 가슴을 저미는 슬픔이 몰아쳤다.원경릉은 애써 마음을 추스르고 홍엽의 치료에 집중했다.그러면서도 마음 한켠으로는 우문호와 서일이가 매우 걱정됐다.사식의 울음소리가 옆방까지 울려 퍼졌다. 그도 그럴 것이 사식이 인생에 그렇게 큰 좌절을 겪은 일이 여태껏 없었고 서일에게 시집온 이후로 매일 같이 지지고 볶으면서 매우 행복한 나날을 보냈었다. 둘은 백년해로를 약속했건만 만약 서일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원경릉은 사식이가 무슨 짓을 할지 전혀 상상도 안 갔다.원경릉은 이런 생각을 하니 머릿속이 복잡해졌다.이내 생각을 떨쳐버리고 정신을 가다듬고 상처를 계속하여 꿰맸다. 홍엽의 몸에는 꿰매야 할 상처가 한두 군데가 아니었고 그중 배에 찔린 상처가 가장 심각해서 단순히 상처를 꿰매는 걸로 될 만한 그런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아무래도 내장이 파손된 것은 아닌지 자세히 검사해 봐야 했다.사식이가 상심에 빠져 있 한 시진이 훌쩍 지난 후에야 비로소 홍엽의 상처 치료를 마쳤으나 상황은 별로 낙관적이지 않은 것이 심장박동이 현저히 느려지고 있었다.다른 상처를 치료하기 시작했는데 문득 밖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고 이어서 여자의 날카로운 비명이 들렸다. 원경릉은 무의식중에 이 목소리의 주인공이 못난이임을 단번에 알아차렸다.못난이가 난리법석을 치며 들어오는 것을 보고 노해서 날아올라 못난이와 몇 수를 겨루더니 못난이는 이미 이성을 잃은 상태라 사식이는 아예 못난이의 적수가 되지 못했고 하마터면 못난이의 칼에 다칠 뻔 했다.다행히 안풍친왕비가 달려와 한 손으로 못난이의 검을 빼앗았는데 맨손으로 상대의 검을 빼앗는 초식에 사식이는 간담이 서늘해졌으나 방금 안풍친왕비의 손에서 늑대의 발톱 같은 게 뻗어 나가는 걸 본 것 같았다. ‘그래서 그렇게 쉽게 못난이의 검을 빼앗을 수 있었나 보다.’못난이는 검을 빼앗긴 후 홍엽을 보겠다고 야단법석을 떨자, 안풍친왕비
서일이 깨어나길 기다리며“얼른 먹어요!” 원경릉이 너무 피곤해서 의자에 털썩 기대 앉아서 잠시 쉬었다가 다시 서일을 보러가야 겠다고 마음먹었다.못난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안 먹어요. 공자를 위해 남겨둘 거예요. 전 아픈 게 두렵지 않아요.”못생긴 얼굴에 또 얼마나 고집이 센지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그럴 필요 없어요. 여기 더 있으니까.”못난이는 진통제를 손에 쥐고 못 들은척 하면서 홍엽 곁을 지키고 있었다.원경릉이 신경 쓰지 않기로 하고 잠시 쉬었다가 서일을 보러 나갔다.사식이가 서일 곁에서 지키는데 서일은 마치 흙 인형처럼 기척이라고는 하나도 없이 침대에 누워있었다. 서일을 알고 지낸 지금까지 늘 펄펄 날뛰는 모습만 봤는데 갑자기 이런 모습을 보니 원경릉도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원 언니, 왕야께서 그러시는데 그이의 의지에 달렸대요!” 사식이의 목소리가 사식이 것 같지 않게 울리고 떨렸다. “깨어날 수 있을까요?”“분명 깨어날거야. 서일이 널 얼마나 아끼는데?” 원경릉이 살며시 사식이를 안아주자 사식이가 원경릉의 품에 안겨 눈물만 주룩주룩 흘렸다.원경릉이 깊은 한숨을 쉬면서 사식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사식이 착하지, 지금 네가 할 수 있는 건 조금 더 강해지는 거야. 서일에게 끊임없이 말 걸어주고 서일이 깨어날 수 있도록 격려하자. 서일에게 넌 이 세상에 남은 가장 큰 미련인걸, 아마 서일은 네가 한 말을 들을지도 몰라.”사식이가 천천히 원경릉을 놔주면서 심하게 부은 눈에 엄청 맹맹한 목소리로 말했다. ““얘기도 하고 이름도 불렀지만 대답이 없어요.”“계속 얘기 해야지, 계속 부르고.” 원경릉이 청진기를 대고 서일의 심장소리를 들었는데 안풍친왕이 어떤 묘약을 썼는지 금방 여기로 보내졌을 때보다 심장 뛰는 소리가 확연히 좋아졌다.사식이가 침대에 엎드려 서일의 귓가에 대고 말을 끊임없이 하는데 서일은 당연하게도 반응이 없었다. 이때 사식이가 갑자기 배를 움켜쥐고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사식이의 임신사식이가 이 말을 듣고 창백해진 얼굴로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아뇨, 서일이랑 상의해서 다 평안해진 뒤에 아이 낳는 거 생각해 보기로 했어요.”“그럼, 둘은 피임하는 거야?”“제가 피임약을 먹고 있어요.”원경릉은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생리대를 꺼내서 사식이를 부축해 작은 사랑채로 데려갔다.사식이가 병풍 뒤에서 정리하고 와서 원경릉에게 말했다. “확실히 달거리네요.”사식이가 옷을 가지고 들어가서 갈아입고 아랫배 통증이 더욱 심해진 것을 느끼고 서둘러 말했다.“일단 서일한테 가서 거기서 쉬고 있을게요.”원경릉이 부축해서 나가는 와중에도 아파하는 모습에 여전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서일 방에 돌아와서 약상자를 열어 뒤져보는데 과연 진짜로 임신 테스트기가 떡하니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가슴이 덜컥 내려앉으면서 혹여라도 정말 임신했을 까봐 걱정이 되었다.원경릉이 임신 테스트기를 사식이에게 주고 어떻게 사용하는지 가르쳐 주었다.사식이가 요강을 들고 병풍 뒤로 들어가 잠시 후 임신 테스트기를 가지고 나와 원경릉 말 대로 평평하게 놓고 잠시 있자 빨간 두 줄을 볼 수 있었다.“사식아, 너 임신했어.”사식이가 당황해하며 말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전 계속 피임약을 먹었는데?”“너 나한상에 누워서 움직이지 마.” 원경릉이 낮은 목소리로 명령했다.사식이가 눈가에는 또 눈물이 차오르면서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그럴 수 없어요. 정말 안돼요. 이럴 때 임신하면 안돼요. 서일이 깨어날 때 까지 제가 곁을 지켜야 해요.”“사식아 내 말 들어!” 원경릉이 사람을 오라고 해서 사식이를 나한상에 눕는 걸 도와주었다. “네가 여기서 서일을 지켜도 똑같아. 그럼, 나한상을 옮겨서 둘이 같이 누워 있어. 내 말 좀 들어. 여기에 너랑 서일의 아이가 있다고. 경솔하게 굴어서는 안 돼. 너 방금 못난이와 싸우고 지금 피를 봤잖아. 분명 아이한테 영향이 갈 거란 말이야.”사식이가 마음이 어지러워 눈물이 볼을 타고 하염없이 흘러
약 상자와 머리의 빛약상자를 다시 열어 보았지만 역시나 없었다. 원경릉은 당황스러운 게 이 약상자라면 생각대로 바로 이루어지는 마법의 약상자인데 어째서 이번엔 효과가 없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너 중요한 순간에 꼭 이렇게 말을 안 들으면 곤란해. 사식이라고, 사식이란 말이야. 사식이 아이한테 무슨 일 생기면 절대 안 돼.” 원경릉은 거의 우듯이 애원했다.원경릉이 반복해 몇 번이고 애원했으나 약상자는 미동조차 안 했고 어디서 부터 잘못됐는지 약상자 안의 약품은 늘지도 줄지도 않았다.원경릉은 정확한 까닭을 몰라 불안한 마음에 서둘러 만두를 찾아갔다. 만두를 이끌고 방으로 들어가 엄숙하게 물었다.“우리 만두, 엄마 좀 봐, 엄마 머리에 아직 빛나는 거 있어?”만두가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더니 약간 주저하며 말했다.“있어요!”“있다고?” 그거 좀 이상한데, 왜 약 상자는 원경릉의 의지대로 변하지 않지?“응, 있어요, 여기요!” 만두가 손가락으로 원경릉의 오른쪽 머리를 가리키며 가리키는 김에 꾹 눌렀다.원경릉이 만두에게 뽀뽀해주며 말했다.“그래, 좋아, 아참, 방금 엄마가 너에게 물어봤던 거 아빠에게 말하면 안 돼.”만두가 두 손을 소매속에 넣고 작은 얼굴을 치켜들더니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 “말 안 해요. 아빠랑 할 말도 없고.”“그러면 못써, 아빠가 그러셨어. 큰 위기가 해결되면 너에게 사과 하시겠다고.” 원경릉은 우문호가 만두에게 무섭게 군 일을 기억하고 있다. 만두는 건성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마음이 아주 여린 아이였다.만두가 두 손을 머리 뒤로 깍지를 끼고 나가며 말했다. “좋으실 대로!”엄마가 그날 만두에게 대신 변명해서 화가 나지 않았지만, 아빠가 자신에게 무섭게 굴 때 모습을 떠올리면 여전히 화가 났다.만두가 문 앞에 와서 고개를 돌려 원경릉에게 잠시 쭈뼛쭈뼛하다 말했다. “엄마, 엄마 머리에 빛나는 거 방금 잠시 끊어졌어요.”“끊어졌어? 지금은 있니?” 원경릉이 또 가슴이 철렁했다.“지금은
이기고 돌아온 우문호원경릉은 우문호의 가슴에 얼굴을 대고 쿵쾅대는 심장 소리를 조용히 듣고 있자니 그동안의 모든 비바람과 고난이 파노라마처럼 싹 지나갔다.둘은 서로를 꼭 끌어안은 후 다시 옷을 벗고 상처를 살펴봤다. 옷을 벗자 원경릉은 또 눈시울을 붉혔다. 우문호의 몸에서 일고여덟 군데 상처가 나 있는데 아주 심각한 상처는 아니지만 군데군데 뼈가 보이는 곳도 있었다.“괜찮아, 전부 다 잘 됐어.” 우문호는 원경릉의 숙인 얼굴에 키스했다.“응!” 원경릉이 눈물을 삼켰다.“서일이랑 홍엽은 어때?” “안풍친왕께서 서일을 한 번 쓱 보시더니 깨어날지는 서일의 의지에 달렸다고 하셨고 홍엽 상황은 좀 심각하긴 한데 심장박동이랑 맥박은 그래도 그나마 안정적이야.”“그건 못난이가 홍엽에게 약을 먹였고, 홍엽 본인도 내공의 고수라 위기가 닥쳤을 때 스스로 내력을 남겨두어 심맥을 보호했을 것이야.”그러면 가장 심각한 건 역시 서일이었다. 원경릉이 한숨을 쉬자 우문호가 말했다.“서일도 너무 걱정하지 마. 내상을 치료하는데 가장 뛰어난 건 역시 안풍친왕이시니까 서일이가 숨이 붙어있는 한 계속 치료만 잘 받으면 결국 방법이 있을 거야.”“정말?” 원경릉이 순간 기뻐서 외쳤다. “하지만 안풍친왕께서 모든 것이 서일의 의지에 달렸다고 하셨는데.”“약 쓰셨어?”“약은 안 쓰시고 내력을 전해 주셨다고 하셨어.”“그럼 됐네, 약 쓸 필요도 없을 만큼 상태가 심각하지 않았던 모양이야.” 우문호도 안심했다.그런 말을 듣고 원경릉은 우문호가 비록 평소에 서일을 많이 혼내긴 했지만 마음 속으로는 서일을 굉장히 신경 쓰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그런 우문호가 지금 이렇게 마음이 가벼운 걸 보면 틀림없이 진짜였다. 원경릉의 마음도 덩달아 가벼워졌다.우문호의 상처를 다 치료하고 나서 원경릉이 입을 열었다.“사식이가 임신 했어.”우문호 얼굴에 미소가 번지며 말했다. “이 자식 복도 많지. 큰 전쟁이 막 끝났는데 또 바로 아빠가 된단 말이지.”“서일이 어서
잔뜩 긴장한 채로 앞으로 몸을 반쯤 내밀고 있었던 주 지부는 우렁찬 상대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중심을 잃은 듯 비틀거렸다. 그는 이내 팔을 뻗어 망루의 기둥을 붙잡으려 했지만, 허공에서 멈추고 말았고, 그대로 몸이 앞으로 쏠려 떨어져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가 말에서 빠르게 날아올라, 믿기 힘들 정도로 빠른 속도로 그에게 달려갔다. 상대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주 지부가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그를 안고 빙 돌아서 바닥에 착지했다.주 지부는 깜짝 놀라서 그만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를 구해준 사람은 반짝거리는 눈망울에, 품위 있는 모습의 젊고 잘생긴 사내였다. 주 지부는 그를 황제의 호위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거의 죽을 뻔한 고비를 넘겼기에, 안도의 한숨을 내쉴 새도 없이 그에게 예를 올렸다.“대인,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그때 말들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는데, 서일이 먼저 말에서 내려, 다급히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괜찮으십니까?”우문호도 매우 놀란 듯했다. 조금만 늦었다면, 주 지부는 정말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숨을 들이쉬었다.“괜찮다.”그러고는 주 지부를 보며 물었다.“자네는 누구요?”주 지부는 마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보며, 누가 황제인지 추측했다.황제는 올해 마흔에 가까운 나이로 알려져 있었기에 위엄이 넘쳐 보일 것이었다. 그는 일행 중, 냉 수보와 홍엽을 만난 적 있었기에, 거친 모습을 한 이 인물은 아마도 호위로 추측된다. “묻지 않았소? 자네는 누구요? 어찌 죽으려고 하는 것이오?”서일은 그가 멍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자, 큰 소리로 다시 물었다.주 지부는 울 지경이었다. 냉 수보가 그를 보고 있으니, 예를 올려야 하지만, 황제도 자리에 있으니, 바로 냉 수보에게 예를 올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대체 누가 황제란 말인가?그는 황제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어, 결국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고는 그들에게만 들릴 정도로 낮은 목소
원경릉의 말은 그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고, 자리에 있던 관리들은 기쁨과 동시에 두려움에 휩싸였다. 이 대인은 땅에 엎드려 온몸을 바르르 떨고 있었다. 그는 살아생전에 자신이 황제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은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평소 차분하고 신중한 주 지부도, 그도 감정이 격해져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눈가에는 눈물이 가득했다.황후를 만난 것만으로도 큰 영광이라 생각했는데, 황제까지 오신다는 소식에 그의 마음은 흥분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원경릉은 평생을 경성에서 다섯째와 함께 있었기에, 그녀는 그저 그가 온다는 사실을 간단히 전했을 뿐이었는데 말이다. 그녀는 다들 걱정 없이 역병을 치료하고, 언제나 황제가 그들의 뒤를 든든히 지켜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의 반응을 보니, 황제가 직접 오는 것이, 지방 관리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달았다.원경릉이 급히 말을 덧붙였다.“폐하게서는 그저 역병 때문에 온 것이니, 모두 각자 맡은 일에만 최선을 다하면 되네.”“예, 예, 마마의 명을 따르겠습니다.”주 지부가 눈물을 닦으며 답했다.그렇게 관아와 의서가 협력하여, 오계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원 할머니는 역병을 치료할 수 있는 처방을 몇 가지 내렸다. 경증 환자는 약차를 계속 마시고, 증상이 악화하거나 중증 환자는 그녀의 처방을 사용하도록 했다.전에 이미 근처 주부에 연락해 약을 보내라 명했고, 오계부에서 구비한 약까지 있으니, 이번 역병을 대처할 수 있었다.오계부 의서는 이번 역병을 과거의 역병과 동일하게 생각하고, 소홀히 한 것 외에는 준비가 충분했다.원경릉은 황제 일행이 저녁 무렵 오계부에 도착할 것이라 예상했다.주 지부는 원래 여러 관리와 함께 황제를 맞이할 예정이었지만, 원경릉이 이를 단호히 거부했다. 그녀는 황제가 미복 순행 중이니, 과하게 맞이하여 백성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했다.그 말에 주 지부는 당황했다.황제가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아무도 맞이하지 않는다니, 어찌 그럴 수 있다는 말인가?그러나 그는 황
약을 쓰자, 주 지부의 열이 단번에 내려갔다.열이 내려가니 정신이 맑아져, 그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는 애써 자리에서 일어나 황후마마에게 예를 올리겠다고 고집 피웠다.원경릉은 그에게 누워 있으라고 말한 후, 역병에 관해 이야기하며 주 지부에게 이를 중시할 것을 당부했다.주 지부는 이를 듣고 깜짝 놀라 말했다.“소신은 매일 의서에 사람을 보내, 역병의 상황을 보고받고 있사옵니다. 매일 보고된 상황은 그다지 심각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역병이 발생했지만, 작년과 비슷한 정도였고, 약재도 충분한데, 어찌 이렇게 심각해진 것입니까?”“매년 역병이 발생했으나, 대대적으로 퍼지지 않아,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네.”원경릉이 답했다.“의서의 이 대인을 불러, 상황을 확인하겠습니다.”주 지부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어제 이미 그를 찾아가, 환자 수와 사망자 수를 조사하라 명했네. 하지만 그는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모를 것이네. 자네가 사람을 보내, 관아에 와서 상황을 보고하도록 하게.”“예!”주 지부는 곧바로 사람을 보냈다.푸른 옷을 입은 남자는 관아에서 일하는 관리였기에, 그는 반 시진도 채 되지 않아, 관아 내에서 병에 걸린 자가 얼마나 되는지 통계해냈다.관아 내에서 역병 증상을 보인 사람은 총 열여덟 명이었고, 그중 두 명은 병세가 심각하여 이미 집에서 쉬고 있는 상태였다. 주 지부는 관아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병에 걸린 줄 몰랐고, 관리의 보고를 들은 후, 큰 충격을 받았다.의서의 이 대인은 하루 종일 쉬지도 않고, 바삐 움직였다. 서관 대인이 직접 오셨으니, 어떻게든 시키는 일을 완성해내야 했다.그는 사실 역병이 그다지 심각하지 않고, 그저 작년과 비슷하다고 여겼었다.하지만 여러 지역과 의원을 돌아보고 나서야, 이번 역병이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처음엔 그저 서관 대인에게 보고만 하려고 했지만, 병세가 심각해지자 그도 조급해지기 시작했다.하지만 짧은 시간 안에 인원수를 통계하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도, 다섯째 일행은 여전히 도착하지 않았다.그래서 원경릉과 할머니는 다른 의관을 더 둘러보기로 하고, 몇 군데 더 돌아본 뒤 관아에도 갈 계획을 했다.그런데 한 의관에 들어서자마자, 푸른 옷을 입은 중년 남자가 다급히 뛰어오며 말을 걸었다. “수 의원, 대인께서 병세가 위중합니다. 어서 봐주셔야 합니다.”의원은 그 말을 듣자마자, 약상자를 집어 들고 다른 환자들을 그냥 남겨둔 채, 푸른 옷의 중년 남자와 함께 나가려 했다.원경릉이 그를 막아 세우며 말했다.“의관에 있는 환자들을 돌봐야 하지 않소? 우리 할머님께서도 의원이니, 지부 대인의 병은 할머님께서 봐 드릴 것이오.”푸른 옷의 사내는 초조한 듯 원경릉을 향해 소리쳤다.“말도 안 되는 소리 마시오!““대인의 병세가 급박한데, 혹여라도 지체되면 당신들이 책임질 수나 있겠소?”바로 그때, 원 할머니가 호패를 꺼내, 그의 눈앞에 들이밀며 단호하게 말했다.“길을 안내하거라!”조급한 표정을 짓던 푸른 옷의 사내는 호패를 보자마자 표정이 얼어붙었다. 이내 정신을 차린 그는 곧장 허리를 굽혀 예를 올리며 말했다.“서관 대인께서 오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무례를 범해 송구하옵니다.”“그만 사과하고 길 안내나 하시오.”원경릉이 말했다.“예, 예!”사내는 급히 물러서서, 예를 갖춰서 길을 가리켰다.“마차가 밖에서 대기 중입니다. 서관 대인, 이쪽으로 오시지요.”원경릉은 할머니를 부축해 마차에 올랐고, 곧장 관아로 향했다.지부 대인은 따로 사저가 없어 관아의 뒷마당에서 거주 중이었다. 혼자 지내는 데다 관아가 워낙 가까워 편리했기 때문이다.관아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안으로 들어갔다.주 지부는 병세가 꽤 심각해져 있었다. 그는 어지럼증과 흉통에 시달려, 침대에 누운 채 말을 꺼낼 힘도 없었다.원경릉은 직접 치료에 나섰고, 약상자를 열어 체온 측정기와 청진기를 꺼냈다.푸른 옷의 사내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가씨께서도 의원이십니까?”그러자 곁에 서
이 대인이 원경릉에게 의학을 잘 모른다고 반박할 틈도 없이, 원 할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말대로 하게. 하루만 줄 테니, 그 안에 역병에 관한 모든 자료를 가져오게. 사망자 수도 포함되어야 하네." 이 말까지 듣자, 이 대인은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었다. 비록 조사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서관 대인이 멀리서 오계부까지 왔으니, 시키는 일은 해야지 대인의 마음에 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사람들을 보내 조사를 명한 후, 이 대인은 거처를 마련해 드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원경릉이 말했다. "괜찮습니다. 의서에 의원이 많지 않으니, 대인도 바쁘실 텐데요. 저희가 직접 오계부를 돌아보겠습니다." 이 대인은 그녀가 원 할머니의 힘을 빌려 위세를 부린다고 생각해, 대꾸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말에 답도 하지 않고, 원 할머니에게 예를 올렸다. "어르신께서 머무실 계획이 있으시면, 부디 저에게 알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밤 대인을 잘 대접하라, 명을 내리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네. 일이나 보게." 원 할머니는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원경릉에게 말했다. "먼저 좀 돌아보다, 객사를 찾아 머물자꾸나." "예!" 두 사람은 역병을 조사하기 위해 다급히 이곳을 찾아왔기에, 먼저 각지의 의원을 직접 돌아보려 했다. 아마 다섯째 일행은 빨라야 내일이나 모레쯤 도착할 것이었다. 두 사람이 의서를 나서자, 이 대인은 뒤따라 나오려다 원 할머니의 날카로운 눈빛에 움찔하며 발길을 멈췄다. 두 사람은 오계부의 거리로 향했다. 거리가 꽤 번화했고, 사람들도 제법 많아, 대낮에는 조금 붐볐다. 그들은 곧장 의원으로 향했다. 의원 앞에는 약차가 많이 진열되어 있었지만, 환자는 얼마 없었다. 겉보기엔 역병이 퍼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원경릉은 안으로 들어가 의원에게 상황을 물었다. 그러자 의원은 요즘 들어 약차가 잘 팔리고 있고, 하루에 천 봉지가 넘게 팔린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도 역병
늦게 출발한 원경릉은 신속하게 오계부로 향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오계부 근처 주현에 도착하자마자, 할머니가 현지 혜민서로 가야 한다며 잠깐 멈추자고 했다. 그러고는 혜민서에 오계부로 약을 공급할 준비를 하게 했고, 명을 받으면 바로 오계부로 보낼 수 있도록 미리 준비를 당부했다. 혜민서 산하의 의료기관들은 지난 몇 년간 개혁을 통해 뚜렷한 성과를 거두었고, 지역 간의 연결도 긴밀해졌다. 특히 역병을 상대하는 체계가 가동되면 상부에서는 전력을 다해 의원과 약을 지원해줄 수 있었다. 신신당부한 뒤에야 원경릉과 할머니는 오계부로 재빨리 향했다. 곧이어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우문호 일행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오계부는 인구가 500만 명에 이르는 곳으로, 두 개의 주부가 통합된 지역이었다. 열대에 있어, 경작지가 많고 산이 많아 농업을 위주로 삼고 있었다. 그래서 조정은 이곳을 서부의 주요 곡창지대로 삼고 있었던 것이었다. 농업이 발달한 지역은 상대적으로 경제도 번화했고, 현지 백성들은 벼 외에도 감, 자두, 리치 등을 대량으로 재배하고 있었다. 리치는 신선할 때 먹을 수도 있고, 말려서 건과로 만들어 팔 수도 있기에, 어느 정도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었다. 오계부는 백월국과 인접해 있었는데, 백월국은 북당의 속국으로 사이가 우호적이며 경제 교류도 활발했다. 이는 양국의 번영을 촉진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오계부의 지부는 장씨 성을 가진 오계부 출신이었다. 장 지부는 훌륭한 관리이며 지역 백성들로부터 존경받고 있었다. 원경릉과 원 할머니는 오계부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지역 혜민서를 찾았다. 할머니는 혜민서의 서관(署館) 신분을 밝혔다. 그녀는 북당 각 주부의 의서를 총괄하는 인물이고, 총책임자이기도 했다. 혜민서의 이 의원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두 사람을 안으로 청한 후, 바로 예를 올렸는데, 마치 신선이라도 본 것처럼 목소리까지 떨고 있었다. "소인은 이자옥이라 합니다. 어르신께서 친히 오신 줄도
그녀는 일단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 냉 대인이 자세한 상황을 묻는 사이에 제 대인의 피를 뽑았다. 약상자는 기능이 꽤 다양하기에, 바이러스 검사도 문제없었고, 안에는 양여혜가 준 소형 현미경도 있었다. 하지만 바이러스 관찰이나 세균 배양에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지체할 수 없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먼저 오계부로 향하고, 그녀는 이곳에 남아 제 대인을 치료하고 검사 결과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면 바이러스든, 세균 감염이든, 결과가 나와야 제대로 된 치료 방안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미색이 말했다. "저도 이곳에 함께 남겠습니다. 제가 환자를 돌보는 것 정도는 도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괜찮으니 먼저 가거라. 어쩌면 내가 더 일찍 도착할 수도 있으니깐." 원경릉이 말했다. 그녀는 혼자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지만, 미색까지 데리고 가는 건 무리였다. "우리가 먼저 출발하는데, 어찌 더 일찍 도착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미색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가능한 일이다. 원 선생은 늘 기적을 만들어내니." 우문호가 말했다. 그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고, 원경릉에게 다가가 조심하라고 몇 마디 당부했다. "알았소. 지체하지 말고, 어서 떠나시오. 오계부에 도착하면 곧바로 관아를 찾아가, 의원의 빠른 대처를 명하라 하시오. 만약 내가 먼저 도착한다면, 내가 관아를 찾아가겠소." "알겠소. 그럼, 먼저 가겠소!" 우문호는 그녀와 입을 맞추고 싶었지만, 보는 이가 많으니 그저 참을 수밖에 없었다. 서일은 황후를 홀로 두고 가는 것이 걱정되어, 우문호를 따라나서며 계속 물었다. "정말 황후를 이곳에 혼자 남겨도 되는 것입니까?" "그럼, 네가 남을 것이냐?" 우문호가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 "너도 원 선생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고 있지 않느냐?" 회왕 부부도 걱정은 되었지만, 다섯째의 여유로운 모습에 자신이 있을 것이라 믿었다. 다섯째 부부는 늘 비밀이 많은 사람들이라, 그들은 더 이상 신경
원경릉은 밖으로 나가, 오계부에 역병이 생긴 것 같다고 전했다. 오계부는 서쪽에 자리 잡고 있어, 기후가 더운 탓에 가끔 역병이 생기긴 했었지만 백성들은 고뿔 치료에 쓰이는 약초로 끓인 차를 즐겨 마시기에, 대규모로 역병이 돈 적은 없었다. 냉 대인이 말했다. "오계부에서는 이 상황을 조정에 알리지 않았습니다. 비록 해마다 역병이 생기긴 하지만, 빠르게 통제해 왔으니, 이번에도 예전과 같은 상황이지 않겠습니까?" 원경릉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런데 이번엔 더 심각할 수도 있습니다. 제 대인의 형도 역병으로 돌아가셨고, 그와 가까이 지낸 사람들도 병에 걸렸습니다. 이렇게 관아에만 역병에 걸린 자들이 많으니, 예전보다 더 심각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해마다 역병이 생겼으니, 그에 대한 대응책도 이미 있을 것입니다." 원경릉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해마다 역병이 생겼지만, 대대적으로 유행하지 않았기에, 현지 관리들이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 쉽게 통제될 것이라 생각하고, 방심할 수도 있으니깐요." 우문호가 물었다. "원 선생, 역병을 어떻게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하오?" "역병 상황이 안 좋을 것이라 추측할 뿐, 정말 오계부의 상황이 어떠한지는 아직 모르네. 제 대인은 여전히 고열에 시달리고 있어, 수액을 맞히고 해열제를 먹였소. 냉 대인과 함께 들어가 상황을 자세히 물어봐야겠소. 하지만 꼭 마스크를 끼고, 병을 막아야 하오." 원경릉은 유행성 독감이나 변이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일 것이라 의심하고 있었다. 그녀가 살던 세계에서는 A형 독감의 대규모 변이가 십수 년마다 한 번씩 발생했는데, 그런 변이 독감은 현대에서도 의료 체계에 큰 부담이 되곤 했다. 그러니 지금 이곳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만약 역병이 다시 시작한다면, 가능한 한 빨리 통제해야만 했다. 원경릉의 말을 우문호와 냉 대인은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도
원경릉은 청진기를 꺼내 그의 폐를 확인해 보았는데, 남녀가 가까이 접촉하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한 제 대인은 이내 손을 뻗어 그녀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병세가 심해 아픈 데다가,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묘한 위압감을 풍기는 의원의 단호한 눈빛과 기운에 그만 압도당하고 말았다. 원경릉은 앞쪽을 청진한 뒤, 그에게 옆으로 돌라고 한 다음에 꼼꼼히 살피고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며칠을 아프신 것입니까?" 제 대인은 꽉 막힌 코 때문에 콧소리를 내며 천천히 몸을 돌리고 답했다. "며칠 사이의 일입니다. 오계부를 떠날 때도 멀쩡했는데, 밤새 달리고, 말을 오래 타다 보니 고뿔에 걸렸나 봅니다." "기침 말고, 가슴 통증도 있습니까?" "예. 이곳이 아픕니다!" 제 대인은 가슴 근처를 손으로 누르며 말했다가, 숨쉬기가 어려운 듯 손바닥을 움직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도 아프고, 온몸 뼈마디도 다 아픕니다." 그러자 원경릉은 더 자세히 증상을 확인한 뒤 말했다. "약을 준비할게요. 수액을 좀 맞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수액이요?" 제 대인은 멍하니 원경릉을 바라보았다. "예. 질문은 하지 마시고, 그저 치료에 협조만 해주십시오. 병세가 꽤 심각한 편입니다." 원경릉은 제 대인이 폐렴이라 확신했고, 중증 폐렴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 대인은 병이 심하다는 말에 초조한 표정을 지으며 다급히 말했다. "의원 나리, 제발 최선을 다해 치료해 주십시오… 저에게는 아직 모셔야 할 노모가 있습니다. 지난달 병으로 형님께서 세상을 떠난 터라, 형님의 자식들도 제가 돌봐야 하니, 절대 이대로 목숨을 잃을 수는 없습니다." 원경릉이 답했다. "최선을 다할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치료에만 집중하시지요!" 제 대인은 감동을 받은 듯 감사 인사를 올렸다. "정말… 감사합니다." 원경릉은 곧바로 약을 지어 수액을 준비했다. 수액을 맞는 동안, 제 대인은 여전히 놀란 모습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