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아는 남강 북쪽 무녀한편, 우문천이 머리가 온통 피로 물든 만아를 안고 돌아왔는데 만아의 두 손은 축 쳐져 있는 게 이미 정신을 잃은 것 같았고, 피가 머리부터 베어 나와 상처가 어떤 지 가늠을 할 수 없었다.정집사는 그 모습을 보고 가슴이 철렁했다.“어떻게 된 거요?”우문천이 만아를 평지에 내려놓고 말했다.“일단 지혈부터.”정집사가 덜덜 떨며 금창약(金瘡藥, 외상에 뿌리는 가루)을 꺼냈다. 정집사는 오기 전에 약을 여러 개 챙겼는데 마침내 쓰게 되었다. “어떻게 된 거야?” 위왕과 안왕이 같이 와서 물었다.우문천의 얼굴에도 손에도 온통 피투성이라 그는 대충 쓱쓱 닦더니 답했다. “셋째형, 넷째형, 저도 쟤가 왜 저런 지 모르겠어요. 갑자기 내가 쫓아가지도 못하게 빨리 달리다가 결국 혼자 나무에 부딪혔어요.”위왕의 얼굴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왜 쟤를 데리고 왔지?”그의 물음에 우문천이 고개를 흔들었다.“자기가 따라온 거예요! 그리고 오기 전에 절 찾아와서 무당 지대의 진법을 무력화 시키는 걸 안다며 자기가 정화군주를 구출하는데 도움이 될 거라고 했어요.”“무당지대의 진법을 파괴할 수 있다고?” 위왕이 이 말을 듣자 안색이 풀어지며 말했다.“그럼 지금은 어떻게 된 거야? 아픈 건가?”정집사가 침통함을 숨기고 말했다.“만아는 지금 저항하고 있는 겁니다. 남강 북쪽 무당의 힘에 대항해서, 쟤는……대단해요.” 정집사의 고독을 이겨내고 무당의 부름에 대항하는 심지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나무에 부딪히고 바로 달려나가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무당의 힘에 대항하다니? 어떻게 된 일인가?” 위왕이 물었다.정집사가 만아의 상황에 대해 목구멍까지 할 말이 차 올랐지만, 별로 말하고 싶지 않았다.안왕이 오히려 더 조급해 졌다. “아는 게 있으면서 말을 안 한다면, 쟤가 모두를 해칠 수도 있어.”정집사는 이 길이 상당히 험난할 거라 숨길 수 없겠다 싶어 대강의 전후 사정을 털어놓았지만, 만아 엄마의 신분만은 숨겼다.
남강으로 북당으로위왕이 목소리를 낮춰 으르렁댔다.“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닥쳐!”하지만 안왕의 말을 따라오던 병사 중 일부가 듣고 이번 작전이 원래부터 위험한데 이제 남강 북쪽의 무녀까지 있다는 생각에 자연히 공포에 휩싸였다.만아를 야영지로 보내고 장수들이 만아를 죽이자고 제안을 하자 위왕이 기가 막혀서 물러가라고 꾸짖었으나 군사들의 들끓는 여론을 차마 막을 수 없었다.이때 군사들이 무질서해졌고 박원이 나서서 설득하자 잠시 진정이 되었다.그런데 사식이와 서일이 아직 쫓아오지 못해 20여리 정도 차이가 나는데 날은 이미 어두워져 산속에서 하룻밤 보내고 내일 다시 쫓아갈 수 밖에 없었다.그리고 대주 쪽에서는 우문호와 원경릉이 현대에서 돌아와 하루를 묵은 뒤 돌아가려고 하는 중이었다. 진정정은 우문호가 이렇게 빨리 돌아갈 줄 모르고 한 번은 만류했지만, 우문호가 걱정하며 말했다.“남강 북쪽에 변수가 많아. 원 선생은 돌려 보내고 난 서둘러 남강 북쪽으로 지원을 가야겠어.”진정정이 제안하기를, “어쨌든 우리 부부도 지금 일이 없으니, 나와 자네가 사람들을 데리고 남강 북쪽으로 지원을 가고, 근영이가 태자비와 아이들을 호송해 귀국하는 건 어때?”그러면 당연히 최고다. 하지만 우문호가 반대했다.“자네 그렇게 오래 떠나 있어도 되나?”“괜찮아, 지금 대주는 태평성대라 건곤검이 국내로 들어오면 내가 몇 개월 떠나 있는 건 문제 안돼.” 진정정이 은은한 눈빛으로 말했다.“그리고 자네와 같이 손 잡고 전장에 나갈 수 있으면 내게는 영광이지.”우문호가 진정정과 같이 갈 수 있다면, 험하고 힘든 여정은 바로 허니문으로 변할 것이다.우문호는 혼례를 올리고 두 사람이 허니문을 간다는 얘기를 현대에서 배웠다. 근데 두 사람의 흥겨운 여행이 바로 허니문이라니! 직진밖에 모르는 두 남자는 각자 집으로 돌아가 아내에게 바로 얘기했다. 근영은 기뻐하며 마침 북당에 연 정풍호를 시찰 하겠다고 했다.원경릉도 바라 마지 않는 것이 원경릉 맘속엔 한쪽은 정화군주 걱
거스를 수 있는 죽음자리에 앉은 뒤 진근영이 먼저 말을 꺼냈다.“공자께서는 역시 북당에 정착하실 예정이십니까?”“예, 북당은 산수가 훌륭해 건강에 좋지요!” 홍엽이 담담한 눈빛으로 진근영을 흘끔 보는데 진근영을 바라보는 걸 조금도 감출 기색이 없었다. “다른 의도가 없다면, 경치가 좋지 않은 곳이 어디 있겠습니까.” 진근영이 말했다.홍엽이, “군주께서는 참 지혜롭게 말씀하시는 군요, 한 수 배웠습니다.”“서로 띄워주는 걸 싫어해서요.” 진근영은 솔직해서 까놓고 말하는걸 좋아하지, 과장하는건 몹시 싫어한다.홍엽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아뇨, 띄워주는 게 아니라 그토록 많은 사람을 알고 지내지만, 군주는 저를 가장 탄복하게 했던 적수였습니다.”진근영이 연신 고개를 저었다.“당신이 전에 나를 적수로 여겼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바보처럼 가지고 놀았죠. 대주와 선비 북막의 전쟁이 시작된 것을 빌어 앉은 자리에서 어부지리까지 얻으셨으니.. 뜻대로 돼서 아주 좋으셨겠습니다?”홍엽이 눈살을 찌푸리며 따져 물었다.“군주께서는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대주와 선비 북막의 전쟁은 피할 수 없었습니다. 전 개전 시기를 조금 앞당겼을 뿐으로 대주에게 손해를 입히지 않았고 오히려 대주를 도왔습니다. 안 그러면 황제 폐하께서 왜 저를 군왕으로 삼으셨겠습니까?”“당신들 같이 사람을 가지고 놀며 음모를 꾸미는 사람들은 뭐든 말이 되게 만들죠.” 진근영은 홍엽과 말다툼하기를 깔끔히 포기했다. 싫어하는 사람과 말을 섞고 싶지 않은지 벌떡 일어나 인사하고 총명 현명이에게 문 앞에서 지켜보게 했다.홍엽이 하는 수 없다는 듯 말했다.“군주께서는 절 싫어하시니 저도 억지 부릴 필요가 없군요.”“군주가 당신을 좋아하든 말든 나도 신경 안 쓰니까.”“그래요!” 홍엽이 젓가락을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더니 원경릉에게 말했다. “입궁해서 태후 마마를 뵙고 사흘간 사라지셨다는데 사흘 동안 어디를 다녀오셨습니까? 저한테 알려주실 수 있나요?”원경릉이 고개를 들고 답
고민하는 원경릉홍엽은 원경릉이 냉정하게 전혀 동요하지 않는 듯한 모습을 보며 분노했다.“당신을 줄곧 좋은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고자세로 생사 따위 깔보는 걸 보니.. 제가 당신을 잘못 봤군요. 자신은 생사 밖에 존재하는 초월적 존재라 그러든 말든 상관없다는 식이 제가 보기엔 위선자로 밖에 안 보여요. 제가 가식적이라고요? 만약 죽은 사람이 우문호나 당신의 아이면? 당신이 여전히 이렇게 동요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홍엽이 말을 마치자마자 차갑게 원경릉을 째려보고 소매를 홱 떨치더니 가버렸다.원경릉은 홍엽의 분노한 뒷모습을 보며 쓴 웃음을 졌다. ‘에휴, 진짜 본 모습의 홍엽을 만난 셈 치자, 정말 유쾌하지 않았지만.’위선자다, 가식적이다, 구구절절이 핵심을 가르는데 반박할 수가 없다.왜냐면 원경릉이 바로 사망을 거스른 사례로, 본인은 죽음을 거스른 특권을 누리면서 다른 사람이 누리지 못하도록 때려 부숴버린 점은 경멸 받을 만한 행동이기 때문이다.진근영이 원경릉 앞에 나타났다. 홍엽에 대해 계속 경계하고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에서 듣고 있다가 홍엽이 가자 방으로 들어온 것이었다.“홍엽 말 마음에 두지 마요, 태자비가 잘못 한 거 없으니까.” “전 괜찮아요. 홍엽의 분노를 접할 마음의 준비를 미리 해놨으니깐요. 이건 처음부터 제가 잘못한 일이었어요. 다행히 바로잡아 정상으로 되돌릴 기회가 있어 계속 잘못한 채로 있지 않아도 됐지만.”“흠, 자기가 뭘 하고 있는지 알고 있다면,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하든 신경 쓸 필요 없다 생각해요.”원경릉은 마음을 굳혔으나 홍엽의 말에 괴롭고 부끄럽기는 마찬가지였다.시무룩하게 방으로 돌아가자 우리 떡들과 쌍둥이가 방에 있어 원경릉은 유모들을 내보내고 쌍둥이를 품에 안은 채 작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사실 엄마는 너희들이 보통의 애들이었으면 하고 더 바래.”경단이가 자상하고도 예민하게 원경릉 무릎에 엎드렸다.“엄마, 기분 안 좋아요?”“아니.” 원경릉이 쌍둥이를 내려놓고 경단이의 머리를 쓸어주며,
입구는 어디인가남강 북쪽, 서일과 사식이가 마침내 다음날 대오를 따라 잡았다.만아가 이미 배제된 상황으로 사식이가 만아에게 약을 먹인 후 위왕과 안왕에게 만아가 남강 북쪽의 무녀가 될 리 없다고 보장했다. 그러나 어젯밤 발광한 일로 많은 사람들이 만아를 불신하자, 사식이는 화를 내며 원씨 집안의 명예를 걸고 만약 만아가 대오에 해를 입히는 일이 발생하면, 원씨 집안에서 전적으로 책임지겠다고 맹세했다.사식이 본인은 어려서 위세가 없지만, 원씨 집안은 그렇지 않다 생각했다. 이렇게 큰 소리를 치자 비로소 사람들은 진정됐지만, 만아에 대해서는 계속 신경을 곤두세웠다.만아가 약을 복용한 뒤로 종생술이 전부 풀렸다. 즉, 덮어두었던 기억이 한꺼번에 떠오르면서 멸문을 당하던 비참한 상황이 끊임없이 머릿속에서 재생되어 만아는 거의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었다.다행히 사식이가 계속 곁에서 달래고, 이끌어 줘서 천천히 안정을 되찾기 시작했다. 그런데 만아는 정집사가 자신의 어머니라는 사실을 도무지 받아들이지 않았다.생긴 것도 심하게 다르고 목소리조차 닮지 않았다.사식이가 하나 더 가지고 온 해독약으로 정집사에게도 먹였는데, 전력으로 신내림에 대항할 필요가 없으니 정집사의 외모도 점점 원래대로 돌아올 것이고 때가 되면 만아도 자연스럽게 정집사를 인정할 것이다. 대략 사흘쯤 갔을까, 만아가 선두에 서서 순탄하게 독기를 피했고, 마침내 운무가 감도는 무당 지대에 도착했다. 하지만 무당 지대에 도착하자 정집사는 바로 뭔가 이상하다 생각했다. 무당 지대의 진형을 정집사가 어느 정도 아는데 원래 입구는 산 아래 있다. 하지만 지금 여기 구름에 둘러 쌓인 사이에 처음에 입산하던 입구를 찾을 수가 없는 것이다.만약 입구조차 찾지 못하고 맹목적으로 돌격하면 더욱 길을 잃기 쉽다.“어떻게 된 거지?” 위왕이 정집사의 안색이 갑자기 변한 것을 보고 다가와 물었다.“왕야, 무당 지대의 진법이 바뀌었습니다.” “바뀌었다고?” 위왕이 당황해서, 눈 앞에 우뚝 솟은 큰 산을 바라
싹 트는 의심만아가 말했다. “무당지대는 음기가 최고인 곳으로 병장기는 최대한 가지고 들어가지 않는 게 좋습니다. 우리가 여기 약 5,000명이 있는데 적어도 절반의 무기를 버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위왕이 앞장서서 반대했다.“병장기는 버릴 수 없네, 만약 병장기가 없으면 무당이 사는 곳에 들어가서 맨주먹으로 싸우란 말이냐?”만아가 손을 펼치며, “왕야, 만약 병사가 무당지대에서 길을 잃으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습니다. 경중을 파악해주세요!”만아의 말에 정십사는 의문이 들었다. 가만히 만아를 보고 있으니 어딘가 이상했기 때문이다.정집사는 사식이를 한쪽으로 불러내, “사식 아가씨, 만아에게 먹인 약이 정말 용태후가 주신 피로 쓴 卍자 부적입니까?”“맞아요, 태자비 마마께서 직접 저에게 주신 거예요.”“이상하네요.”사식이가 놀라서, “이상하다고요? 뭐가 이상해요? 만아가 이전 일을 전부 생각해 낸게 아닌가요?”정집사가 걱정하며 말했다.“2가지가 이상한데, 첫째로 무당의 모든 진법은 굉장히 복잡하고 수많은 현묘한 이치를 내포하고 있어요. 근데 딱 한 번 보고 진법의 배치를 기억했다고 하는 게… 진법은 천만번 변화를 부려도 쉽게 파회하는 것이 불가능 합니다. 두번째로는 만아가 종성술이 풀린 뒤로 지난 일을 기억하는 것 치곤 만아의 슬픔이 약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요?”사식이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 약을 먹은 뒤 만아가 지난 일을 기억하고도 눈에 띄게 슬퍼했다. 그리고 정서적으로도 거의 무너진 것도 잘 달래서 완화 시켰기 때문에 문제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정집사가 이렇게 일깨워주니 사식이도 약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전에 일부를 기억한 것으로 만아는 호수에 뛰어들고 악몽까지 꿨는데 어째서 지금은 몇 마디에 바로 풀어지는 걸까?“무당지대에 들어갈 때 병장기를 들고 들어가지 말라는 건 전에 들어본 적이 없는 말로, 무당지대가 음기가 지극한 곳은 맞지만, 이건 인간의 기와 관련이 있지, 병장기나 몸에 지니는 것관 상관이 없어요.”
남강 북쪽의 산만아가 이어서 설명했다.“병사들의 무기는 대부분 전장에서 적을 죽였던 것으로 피를 묻혔던 도구죠. 무기는 강(罡)에 속하고 또 양(陽)에 속하는데 피는 음(陰)에 속하고 무당지대는 특히나 음기가 충천한 곳입니다. 강과 음이 대등하지 않은 상황에서 무기는 오히려 제대로 다뤄지지 않아 자신을 해치고 다른 사람을 해치는 결과를 초래해요. 제가 제안 드린 건 일부 무장을 해제해서 음양의 균형을 맞추기를 바라는 건데, 순왕 전하께서 병사들은 반드시 병장기가 있어야 한다고 싫어하시는 거예요! 정말 어리석다니까요.”사식이는 이 말을 듣고 일리가 있다 생각했지만, 마지막에 어리석다는 말에 위화감을 느꼈다.사식이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서일과 상의해 볼 게, 서일이 왕야를 설득할 수 있을지.”“좋아요, 좋아요 가요!” 만아가 얼른 가자며 말했다. 사식이가 서일을 한쪽으로 데리고 가서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근영 군주께서 보내신 전서구는?”“말 위에 있지!” 서일은 사식이가 비밀스러운 걸 보곤, “왜 그래?”“군주께 서신을 전해. 만아가 약을 복용한 뒤로 좀 이상하니, 군주께서 대신 태후마마께 여쭤봐 주시라고.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상황인지. 전서구를 보낼 땐 다른 사람한테 절대로 들키면 안돼.”서일이 사식이에게, “너는 만아가 이상한 점 못 느꼈어?”“왜? 너는 만아가 이상하다고 생각해?” 사식이가 서일의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보고 물었다.서일이 사식이를 더 가장자리로 끌더니, “약을 먹은 뒤 한바탕 통곡할 때, 만아 눈에 눈물이 한 방울도 나오지 않는 거 못 봤어? 눈도 안 붉어지고.. 네가 몇 마디 달래니까 아무렇지도 않아 하다니.. 만약 너였음 자신의 온 집안이 멸절을 당했을 때 누군가 몇 마디 위로해 준다고 아무렇지 않아할 수 있어?”사식이가 눈살을 찡그렸다. 세상에 둔감하기 짝이 없는 서일조차 이상하다고도 눈치챌 정도라니 확실히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얼른 전서구를 날려. 시간을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어.”“알았어!”
청사와 전서구정집사가 설명했다. “이 무당 지대는 원래 무당들이 장악하고 통제하는 곳으로 여기 나무, 바위가 놓인 것도 모두 일종의 진법으로 무당 지대를 느끼는 것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해도 마찬가지인 것이 왕야께서는 지금 해를 보실 수 없지만 누군가는 볼 수 있고 이 진법이 대단한 것은 각 사람의 기를 느껴 이로부터 시각적으로 변형해 나갈 수 있다는 점입니다.”“어떻게?” 위왕이 의아해 하며 근처의 안왕에게 물었다. “넌 볼 수 있어?”안왕이 보더니 고개를 가로젓고, “아니!”우문천도 올려다보고 이상하게, “볼 수 있어요. 저기 있잖아요?” 손가락을 뻗어 가리키는데 위왕과 안왕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방향을 보면 운무만 휘감겨 있다. ‘해가 어디 있다는 거야?’“무당 지대에 들어왔으니 보이는 모든 것은 상식으로 추측할 수 없습니다. 그런 것에 매달리지 마세요. 계속 길을 가죠. 오늘밤 또 야영을 해야 합니다.”안왕이 듣고 약간 놀라서, “야영? 자네 말은 오늘 무당 지대를 떠나지 못한다는 말인가? 보기엔 그렇게 높아 보이지 않는데 오늘 걸어서 나갈 수 있는거 아닌가?”정집사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오늘 나가는 건 불가능 합니다. 지금 우리가 들어온 지 대략 한 시진정도 됐는데 아직 무당 지대의 바깥 권역까지 들어서지도 못했습니다. 무당지대는 바깥 권역, 땅 권역, 하늘 권역으로 나뉘어 있고, 하늘 권역에 들어가야 비로소 무당 지대의 가장 위험한 곳이라 할 수 있습니다.”정집사가 위험이란 두 글자를 강조하자 위왕과 안왕의 마음이 무거워졌다.대오는 계속 전진하다 정오에 잠시 쉬며 육포와 물을 먹고는 또 계속 걸어갔다.점점 바위가 나무보다 많아지고 우연히 토끼가 출몰하는 걸 볼 수 있었다.“뱀이다! 너무 많아요, 전부 나무에 걸려 있습니다.” 갑자가 앞에서 누군가 놀라며 외쳤다. 사식이가 얼른 보자 정말 침이 가는 소나무에 청사(青蛇)가 가득 걸려 있었고 그 뱀들이 거꾸로 매달려 내려오더니 푸른 혀를 날름거리며 서서히 꿈틀거렸다.
경천은 그녀의 말을 반박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네 말이 무슨 뜻인지 알고 있다."택란이 말했다."어쩌면 5년 후에는 오늘 한 모든 일이 어리석고 충동적이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좋아하는 여인을 만나게 될 때, 그 감정이 단순한 사모인지 은혜 때문인지 알게 되실 것이고, 오늘의 행동을 후회하게 될지도 모릅니다."경천은 단 한 마디만 응한 뒤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태도가 이렇게나 분명하니, 절대 그런 말로 그녀를 얽매여 부담을 주지 않을 생각이었다. 오늘 한 모든 일은 그의 결정이며 그의 태도였다. 그녀는 몰라도 되고,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긴 하지만, 그는 언제나 그녀를 기다릴 것이었다.그리고 그녀의 인정을 얻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택란은 한숨 놓은 듯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해한다니 다행입니다.""알고 있다."경천의 얼굴은 약간 창백했지만, 애써 미소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삼 태감이 책자를 가져왔다. 경천은 그것을 택란에게 건넸고, 택란은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보았다. 그가 제시한 조건은 매우 공정했으며, 심지어 약도성에 이익을 양보한 정도였다.책자를 접은 후, 그녀가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우리 약도성을 생각해 줘서 고맙습니다. 두 나라의 원한을 풀기 위해 애써줘서, 그리고 약도성의 백성과 조정이 화해할 수 있도록 도와줘서 고맙습니다.""알고 있었던 것이냐?"경천이 다소 놀라며 묻자, 택란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예. 알아봤습니다.""오해하지 마라. 그저 너를 위하여 한 일이 아니니, 부담 갖지 않아도 된다."그는 다소 긴장한 표정으로 해명했다.택란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오해하지 마시지요. 저는 정말 부담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저를 위해 이렇게 많은 일을 해줘서 고마울 뿐입니다. 오늘도 사실 많이 감동했습니다. 다만, 저는 아직 혼사에 대해 논할 나이가 아니고, 사적인 감정보다는 다른 일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저는 아직 어리고, 앞으로 혼사를 하더라도 반드시 아바마마
손에 쥐니, 차가운 촉감이 느껴졌다. 그 옥의 차가운 느낌이 서서히 스며들자, 그녀는 기분이 좋았다.그는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놀라운 표정을 지었을 때, 그는 미세하게 안도하며, 그녀가 좋아할 것이라 믿었다."직접 만든 것입니까?"택란은 마음에 든 듯 손에 꼭 쥐고 있었다. 그녀의 밝은 눈동자에는 존경이 가득했다."응!"그는 힘주어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마음에 드냐?""예. 정말 마음에 듭니다!"택란도 세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더욱 빛나는 미소를 지었다.그러자 그가 약간 흥분된 표정으로 물었다."그럼, 이걸 직접 나에게 선물해 줄 수 있느냐?""예?"택란이 잠시 멈칫하며, 놀라 물었다."저에게 준 선물이 아닙니까?"그가 미세하게 떨리는 손끝으로 소매 주머니에서 또 다른 옥 조각을 꺼내 손바닥에 올려놓으며, 진지하게 말했다."이건 내가 네게 직접 주고 싶은 것이다."택란은 그가 손에 든 것을 바라보았다. 옥질도 동일하게 맑고 투명했고, 손바닥의 선도 보일 정도였는데, 그 조각에는 경천의 모양이 새겨져 있었다.옥에는 미소를 짓고 있는 준수한 그의 모습이 새겨져 있었고, 그들이 처음 만났을 때 입고 있던 옷이 새겨져 있었다. 비록 색은 알 수 없었지만, 자수가 명확하게 새겨져 있었다.그녀는 기억력이 매우 좋았기에, 그때의 기억이 선명히 떠올랐다.그녀는 두 개의 옥을 손바닥에 놓았다. 그제야 그녀는 옥에 3년 전 그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그가 시간을 되돌려 3년 전 만남을 담은 것이었다!경천은 택란을 바라보며, 애써 차분함을 유지하려 했다. 하지만 심장은 거의 목구멍까지 올라올 듯했다.택란이 두 개의 옥을 서둘러 상자에 다시 넣으며 말했다."두 개 모두 오라버니께서 먼저 가지고 있으세요."경천은 눈시울을 붉히며 다시 건네받은 상자를 바라보았다. 그는 눈을 내리깔며, 애써 실망이 드리운 눈빛을 숨겼다.삼 태감이 정교한 음식을 올려놓았고, 모두 택란이 좋아하는 음식이었다.
그녀는 가볍게 숨을 내쉬며, 알 수 없는 작은 흥분을 억누르고, 표정을 고쳐서 천천히 돌아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럼, 북당 백성인 란이 언니와의 혼사는 다 거짓인 겁니까?"경천의 동공이 흔들렸다."혹시... 화가 난 것이냐?""아닙니다."택란이 고개를 젓자, 밝은 빛이 그녀의 깨끗한 얼굴에 비쳤고, 고르게 정리된 이마 밑의 눈동자는 다시 차분해졌다."그런데 어찌 사람을 시켜 저를 찾고 있다고 직접 저게 소식을 전하지 않으셨습니까? 만약 편지를 보냈다면, 저도 오라버니를 만나러 왔을 것입니다. 심지어 혼사에 하객까지 청하며 일을 이렇게나 크게 벌였는데, 대체 어떻게 수습하려고 하십니까?"그는 갑자기 결단을 내린 듯, 천천히 그녀 앞에 섰다. 그러고는 그녀의 까만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위압적인 목소리로 말했다."수습할 필요 없다. 나는 이미 천하에 나의 황후가 우문택란이라고 선언했다. 나는 그녀가 어서 크기만을 기다리고 있다."택란은 순간 놀라하며, 굳어진 얼굴로 물었다. "정말… 그렇게 말씀하셨습니까?"경천은 그녀가 화가 난 것 같아, 마음이 내려앉았다. 그의 눈동자엔 어두운 그림자가 깔렸고, 이내 조심스레 물었다."응할 수... 있겠느냐?"택란은 잠시 망설였다. 기억 속의 그 소년이 지금 별빛을 받으며 그녀 곁으로 돌아왔다. 이전의 그는 그녀의 손목을 잡고, 10년 후 그가 죽지 않으면 돌아와서 그녀를 부인으로 맞겠다고 열정적으로 말했었다. 그 열정이 가득한 목소리는 지금도 그녀의 머릿속에서 맴돌고 있었다. 그런 과거와 현재가 얽혀 버리자, 대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저는..."경천은 그녀가 망설이는 모습을 보며,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그는 그녀의 반응이 너무 당황스러워서, 얼굴을 조금 숙이며 말했다."지금 바로 대답할 필요 없다. 몇 년 후라도, 10년, 아니 20년 후라도 괜찮다.""하지만...""아니, 말하지 말거라."그는 방금까지만해도 가득찼던 자신감을 더 이상 보여줄 수 없
냉명유는 팔짱을 낀 채 검을 가슴 앞으로 옮기며, 차갑게 말했다."누님께서 어디로 가든, 저도 무조건 함께 갈 것입니다."“하… 하지만."삼 태감이 무척 난감해했다."그래. 함께 가자. 이 거월통천각이 정말 달을 딸 수 있는지 어디 가서 보자꾸나!"그러자 택란이 웃으며 말했다.주 아가씨는 조금 의심스러웠다. 정말 공주가 만나고 싶다면, 어찌 공주한테 이렇게 높은 계단을 오르게 할 수 있는가?그러고는 계단 위에 새겨진 난초꽃을 힐끗 보고는 순간 멈칫했다. 시선을 위로 올려보니, 계단의 각 층마다 난초꽃이 새겨져 있었다.황제가 자신의 그리움을 돌계단에 새긴 것이었다!택란도 계단을 오르며, 이 사실을 눈치챘다.게다가 각 난초의 형태와 크기는 매우 똑같았다. 처음에는 선이 조금 거칠게 느껴지긴 했지만, 후에는 점점 더 섬세하고 부드러워 보였다.이건 분명 같은 사람이 새긴 것 같았다. 그가 직접 조각한 것일까? 금나라가 이곳으로 수도를 옮긴지 아직 1년도 채 되지 않았는데 말이다. 잠시 후, 그들은 거월통천각의 가장 높은 층에 도착했다. 다행히 냉명여는 문 앞에서 멈추고 안까지 들어가지 않았다.택란은 천천히 안으로 들어갔는데, 안에는 정교하게 조각된 네개의 용 모양 기둥이 세워져 있었고, 네 모서리에는 각각 올라가 쉴 수 있는 정자가 있었다. 정자에는 난간이 둘러져 있었으며, 가운데에는 탁자와 두 개의 의자가 놓여 있었다. 떠힌. 네 면에 걸려져 있는 대나무 커튼이 걷혀 있어, 사방에서 밖을 볼 수 있었다.그 사이에서 청색 비단옷 차림의 남자가 통천각 옆 난간에 기대어 택란을 바라보고 있었다.그는 매우 긴장한 듯 손과 발을 살짝 떨고 있었다. 별빛처럼 맑은 눈동자에 약간 숨이 가쁜 듯 보였다. 그는 미소를 짓고 있었는데, 그녀를 보자마자 이내 눈시울을 붉혔다.재회를 위해 최선을 다하며 가장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기에, 그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이 만남을 특별하게 만들려고 노력했다. 반짝이는 별들도 그중 하나였다.하지만
손님들이 하나둘씩 떠나자, 경천 황제는 서둘러 궁으로 돌아가 푸른 비단옷으로 갈아입었다.옅은 청색 옷자락에, 소매 끝에는 난초꽃이 수놓아져 있었고, 나머지 부분은 어두운 구름 문양으로 수놓아져 있었다. 이 옷감은 북당에서 온 것이었다."폐하, 꼬마 은인께서 궁문에 도착하셨다고 합니다."삼 태감이 와서 보고했다."좋소."그는 거울을 바라보며 다시 한번 깊은숨을 내쉬었다."택수운천으로 가겠네."택수운천은 그가 즉위한 후, 궁궐 안에 지은 새 궁전으로, 세 층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궁전 옆에는 거월통천각이 있었는데, 이는 량주성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거월통천각 안에 있으면 마치 손바닥에 달을 담을 수 있을정도로 웅장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거월통천각에서 멀게는 약도성과 량주가 인접한 산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그녀가 생각날 때면, 늘 거월통천각의 가장 높은 층으로 올라가 풍경을 멀리 바라보곤 했다."진이야, 너는 누군가를 진심으로 좋아해 본 적이 있느냐?"그가 준수한 옷차림으로 난간에 기대어 먼 곳을 바라보며 물었다. 바람이 서서히 불며 청색 옷자락이 휘날리자, 옷자락의 네 끝에 박힌 고급스러운 야명주가 그의 선명하고 잘생긴 얼굴을 비추었다.그때, 저 멀리서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궁 시위를 따라, 아치과 복도를 지나 거월통천각으로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그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젊은 금군 통령 진이가 그의 모습을 보고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그런 적 없습니다.""사모의 마음을 품어보거라. 떨리고 어찌할 바를 모르는 느낌만큼 좋은 것이 없다."그는 그녀를 멍하니 보며 말했다. 천천히 다가오는 탓에 그녀의 얼굴이 자세하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13세 전까지의 그의 인생에는 나라와 백성들 뿐이었지만, 13세 이후 그의 인새은 온통 그녀뿐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지금 그녀가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진이는 황제의 시선을 따라, 천천히 다가오는 세 명을 보며
안왕은 보책을 받아 든 순간, 갑자기 무엇인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지만, 정확히 어떤 점이 이상한지 말로 설명할 수 없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모든 일이 다 이상하게 느껴졌다.보책을 펼쳐 안에 적힌 이름을 본 순간 그는 드디어 이상한 점이 무엇인지 알아차리게 되었다.그러고는 고개를 들어 굳어진 표정으로 경천 황제를 바라보았다.경천 황제는 얼굴에 미소를 띠며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었다. “조사를 통해 드디어 그녀의 이름을 알게 되었소. 그녀의 이름은 우문택란이오. 금나라 황후의 이름은 우문택란이네. 난 반드시 그녀를 찾아낼 것이오. 만약 그녀가 황후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황후의 자리는 그녀를 위해 계속 비워둘 것이네.”위왕은 온몸에 식은땀을 흐르는 탓에 두 손을 급히 움켜잡았다. 방금 황제가 보책을 그의 손에 올리지 않아, 그가 받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지 않았으면, 정말 다섯째에게 죽임을 당할 수도 있었다!안왕은 어두워진 안색으로 자리에서 물러나 이를 악물고 낮은 소리로 위왕에게 말했다.“방금까지도 어린 황제에게 어리석다고 했건만. 이렇게 계책에 능하고 이따위 교묘한 계책으로 우리 형제를 그와 같은 편에 서게 만들다니...!”위왕은 또 한 걸음 물러서며 아무런 표정 없이 말했다.“네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구나. 방금 술을 두 잔 마셔 조금 취한 터라,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구나. 아니, 지금 들고 있는 그건 무엇이냐?”안왕은 단단한 그의 팔을 비틀어 버리고 싶을 정도로 분노했다.하지만 이 상황 속에서 연회는 계속되었고, 사람들의 감정은 점점 고조되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갑자기 누군가가 북당 황제의 작은 공주도 우문택란이라는 말을 꺼냈다.그 말에 다들 그 당시 금나라 황제를 구한 사람이 북당의 작은 공주가 맞는지 추측하기 시작했다.정말 북당 공주가 맞는다면, 금나라 황제도 참 배짱이 큰 것이다. 사실상 북당 황실이 금나라 황제를 구했다고 선언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만약
경천은 위왕의 말을 듣자, 마치 마음속 큰 돌덩이가 내려간 듯 후련해 보였다. 그는 그러고는 궁인에게 술을 올리게 해 술잔을 여러 차례 돌린 후, 아래를 둘러보며 말했다.“오늘 여러분께 이야기를 하나 들려드리겠소. 이 이야기를 듣고 나면 오늘 정혼연이 어찌 열리게 되었는지 알게 될 것이오.”그러자 모두가 이야기를 들려주겠다는 말에 당황을 금치 못하며 서로의 얼굴을 쳐다봤다. 정혼연이든 혼례든, 이런 자리에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은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이때, 위왕이 안왕의 귀에 대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다섯째에게 서신을 보내야겠다. 금나라에서 실권을 쥐고 있는 자가 황제가 아닐 수도 있다. 진국왕이 아직 살아 있고, 이 황제가 꼭두각시일지도 모른다.”“맞소. 확실히 조금 병신같아 보이네.”안왕도 동의했다.참고로 ‘병신같다’는 표현은 안왕이 조카에게서 배운 단어였다.“이 이야기는 3년 전쯤에 있었던 일이오.”이내 경천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의 목소리에는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힘이 담겨져 있었다.“당시 금나라는 진국왕이 집권하고 있었는데, 그는 나를 대신해 금나라의 군주가 되려 했소. 이 사실은 여러분도 알고 있을 것이오. 그때 난 진국왕과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었소. 진국왕이 왕위를 빼앗으려 나를 죽이려는 음모를 꾸민다고 하기에, 나도 어쩔 수 없이 반격에 나섰는데, 그 과정에 심각한 상처를 입었소. 그때 나를 구해준 이가 바로 란이라는 소녀이오. 만약 그녀가 없었다면 난 이미 죽은 목숨이었을 것이오. 그 당시 나는 란이의 정체도 몰랐고, 그저 약도성 사람이라는 것만 알았을 뿐, 그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소. 상처를 치료하며 그녀와 며칠을 함께 보냈고, 황권을 되찾으면 그녀를 부인으로 맞이하겠다고 약속했네. 하지만 그녀가 나를 구했다는 사실이 진국왕에게 알려졌고, 진국왕이 사람을 보내 그녀의 집에 불을 질렀소. 그리고 그곳에서 시신이 발견되었소.”모두가 진국왕이 불을 질렀다는 말에 멈칫했다.금나라 황제가 이렇게 비극적인 황권
한편, 안왕과 위왕은 이미 명월전에 도착했다. 두 사람은 부하들과 함께 말을 타고 달려왔기에 피곤하지는 않았지만, 몸 전체가 먼지투성이였다.하지만 오자마자, 쉬지도 못하고 바로 궁에 들어가라는 통보를 받았다. 정혼 연회가 예정보다 앞당겨 열리게 되었다고 했다.그들은 의아해하며 금나라가 막무가내라고 투덜거렸다. 처음에는 혼례라더니, 이제는 정혼식이라 하고, 심지어 약속했던 날도 지키지 않고 앞당겼으니 말이다.혼사라는 중대사가 이렇게 어린아이 장난처럼 진행될 수 있단 말인가?하지만 신부가 북당 사람이니, 그들은 신부의 친정과도 마찬가지였기에 금나라의 일정을 따르며, 금나라의 계획을 지지하는 것이 맞았다. 다른 나라 사절들이 함께 있었기에, 그들은 무관의 신분으로도 가능한 한 많은 사람과 친구를 사귀고 주변 무역 문제를 논의했다.이 부분에 대해서는 오래전에 다섯째가 특별히 당부한 적이 있었다. 그는 비공식적인 자리에서 다른 나라의 사신을 만나면 국사를 논하지 않더라도, 상업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라고 말했었다. 장사는 대화로 시작되는 일이니, 이야기를 많이 나누다 보면 결국 성사될 것이라고 말이다. 그들은 비록 처음에 다섯째의 이런 태도가 약간 뻔뻔하다고 느꼈었지만, 지난 10여년간 나라 경제가 눈에 띄게 번영했다는 사실을 차마 부인할 수는 없었다.다섯째의 말처럼 경제를 앞서게 만들어 백성들의 생활 수준을 향상한 덕분에, 돈이 끊임없이 북당으로 흘러 들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그렇게 그들이 다른 나라 신하와 열심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황제가 온다는 소식이 들려왔다.안왕과 위왕은 금나라의 황제에 대해 호기심이 가득했다. 이 젊은 황제는 올해 열여덟도 되지 않는 어린 나이라 들었다. 어린 나이에 유명한 진국왕을 몰락시켰으니, 얼마나 대단한 결단력과 꾀를 가졌을까?내시의 우렁찬 소리와 함께, 밝은 황금빛 용포를 입은 젊은 황제가 시위에게 둘러싸여 등장했다.혼례복이 아닌 용포를 입고 있는 것으로 보아, 역시나 혼례를 올리는 것은 아닌 듯했다
세 사람은 화려하게 차려입었다. 그 중, 택란은 베일을 쓴 채 궁에서 준비한 마차에 올랐다.때마침 불이 하나둘씩 밝혀질 시간이라, 거리는 무척 떠들썩했다. 금나라 수도의 번화함은 약도성이 비교할 수 없는 정도였다. 수도임에도 불구하고 통행금지가 없어, 백성들이 밤늦게까지 활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택란은 마차의 가림막을 살짝 들어 올려 거리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거리에는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 장사에 열중하는 상인들, 주루나 주막으로 손님을 맞이하는 상인들로 북적이고 있었다.이런 활기 넘치는 모습은 그녀의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그러고는 순간 어린 황제를 본 지 오래되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3년이나 지났으니, 지금은 얼마나 어떻게 달라졌을지 궁금해졌다. 그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3년 사이에 자신도 많은 변화를 겪었으니 말이다. 키도 훤칠해졌고 이제 얼굴도 아이 같은 모습이 아닌 한층 성숙하고 침착해진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약도성이 지난 몇 년간 겪어온 일들이 많았기에 당연히 성숙해질 수밖에 없었다.한편, 금나라 황궁에서는 이미 정혼 연회의 준비를 마쳤으나, 중요한 두 사람이 아직 도착하지 않아 기다리고 있었다. 그 두 사람은 바로 안왕과 위왕이었다.북당의 두 친왕이 도착해야만 연회를 시작할 수 있었다.한편, 경천 황제는 내내 택란을 만나고 싶어 했다.지난 3년 동안, 그는 그녀와 재회할 순간만을 간절히 기다렸다.3년간 간절히 바랐던 그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에 그는 들떴지만, 첫 만남은 너무도 중요했다.그는 서두르지 않고 차분히 준비된 상태에서 그녀를 만나고 싶었다.그리고 지금 자신의 감정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조차 모르는 상태였다. 그것이 사랑인지 아닌지도 정의할 수 없었다. 그저 그녀가 자신의 눈앞에 생생히 서 있는 모습을 보고 싶을 뿐이었다.그는 사실 가장 힘들었던 시절에 조정을 되찾아 그녀와 혼사를 올리겠다고 다짐했던 적이 있었다.물론 지금 그녀는 아직 어리기에, 혼담을 논하기엔 이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