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진이 약을 연구하는 이유저녁 밥을 먹고 주진과 원경릉은 밖에서 얘기를 나눴다. 주진이 원경릉에게, “계속 저와 홍엽공자와의 관계가 어떻게 시작됐는지 물었죠? 말씀 드릴 게요. 홍엽공자의 외할아버지가 절 구해 주셨어요. 당시 전 막 시공을 넘어간 상태로 먹고 사는 것도 힘겹던 시절인데 그분이 절 거둬 주셨죠. 그때 그분은 막 혼인한 상태로 아내가 임신을 했어요. 솥에 밥 할 쌀이 없을 만큼 가난한 집이었는데 아내가 시집올 때 가져온 귀걸이를 팔아 절 위해 의원을 불러서 상처를 치료해 줬죠. 그 은혜를 전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홍엽의 외할아버지요? 하지만 제가 알기로 홍엽의 어머니 집안 환경은 그렇게 열악하지 않았어요.” 전에 우문호가 홍엽 어머니의 신상을 조사한 적이 있는데 원래 가족은 엄청나게 부귀를 누리지는 못했으나 부유한 가정이었다.“그들은 야반도주한 사이로 집안에서 인정받지 못했어요.” 주진이 지난 날을 얘기하는데 여전히 감동적인지, “나중에 그의 딸에게 문제가 생기자 아이를 데리고 북당으로 도망쳐 돌아왔는데 당시 저는 경성에 있었고 그런 일을 전혀 몰랐죠. 나중에 홍엽의 외할아버지를 찾으러 가려고 했지만 그들은 이미 죽었고 홍엽은 늑대골에 보내졌다는 소문을 들었어요. 그를 찾기 위해 잠입해 그를 데리고 도망치고 싶었는데 제가 갔을 때는 원숭이가 막 죽어가던 때로 저에게 원숭이를 데리고 나가라고 했어요. 눈늑대봉에 얼려서 숨겼어요. 원숭이는 그의 유일한 가족으로 원숭이를 구해야 해요. 당신이 개발한 약은 유일은 희망입니다. 하지만 그땐 당신이 시공간을 넘어올 줄 몰라서 희망은 까마득한 줄 알았죠. 하지만 그는 포기하려고 하지 않았어요.”원경릉은 이럴 줄 몰랐고 자기도 모르게 당황했다.“제가 전에 그의 의도를 모른다고 한 건 이건 홍엽공자와 원숭이 사이의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예요. 하지만 당신은 계속 홍엽공자가 딴 마음을 품고 있다고 오해했어요. 지금 홍엽공자가 어떻게 변했는지 전 몰라요. 하지만 이전에 그는 비록 원한에 불타올랐지만
다음 황제?우문호가 뒤에서 원경릉을 안으며 걱정스럽게, “아이들한테 위험이 있을까?”“지금으로 봐서는 없을 것 같은데 쌍둥이는 반드시 독똑히 가르쳐야 해. 정확하게 옳고 그름 흑백의 관념을 가르치지 않으면 북당에 재앙을 초래하게 될 거야.”우문호가 원경릉을 앉히더니 심사숙고를 거친 듯한 엄숙한 얼굴로, “남강 문제가 평정이 된 뒤에 한 명을 키우고 싶어.”“자기 지금 단체 하나를 키우기 시작한 거 아니야? 자기가 전에 얘기한 거 기억하고 있어.”“아니, 단체가 아니야. 난 미래 북당의 보위를 이을 사람을 키우고 싶은 거야.”원경릉이 놀란 표정으로, “태자? 왜?”우문호가 신중하게, “쌍둥이 일을 겪으며 문득 든 생각인데 아직 무르익지 않았지만 정말 그렇게 할 거야. 원 선생 그 문제 생각해 본 적 있어? 만약 내가 황제가 되면 우리 아이들 중 하나가 결국 태자가 될 건데, 지금 보기론 만두지만 다섯 아이들이 각자의 능력이 있어. 만일 그중 한명이 만두의 황위를 넘본다면?”원경릉은 왜 이 문제를 생각해 보지 않았을까? 우문호의 형제들도 태자 자리를 두고 죽기 살기로 싸우지 않았던가, 비록 지금 대세가 정해진 듯 싶지만 첫째가 아직 반전을 노리고 있고 넷째 마음이 정해지지 않아서 형제 간의 알력다툼은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 만약 앞으로 원경릉의 다섯 아들이 태자 자리를 두고 형제애를 저버리고 싸우는 꼴은 눈에 흙이 들어가도 보기 싫다.“쟤들이 나중에 웅대한 계획과 기량이 있을지 장담할 수 없지만 능력은 분명 있을 거야. 특히 쌍둥이들은. 오늘도 당신의 위험을 감지하고 공간을 뛰어넘어서 당신을 구해내지 않았어. 이런 경우를 난 전에 듣지도 보지도 못 해서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 원 선생, 난 모험을 할 수 없어. 아들의 목숨과 북당의 미래를 가지고 모험을 해서는 안돼. 황제는 내가 안 해도 돼.”원경릉이 작은 소리로, “하지만 아바마마는 분명 반대하실 걸.”“당분간 얘기하지 않고 개인적으로 관찰 해야지 누가 제왕의 자질이 있는지.”“하지만
마지막 날우문호가 한참 생각하더니, “넷째는 계략이 심오하고 수단이 악랄하지만 치국을 논할 재능이 있는 게 다른 사람들보다 앞선 점이지. 여섯째는 잠재력이 있지만 전에 병을 앓으며 시간을 흘려 보냈어. 자극을 좀 줘서 제자리로 돌려놓는다면 안될 것도 없지. 아홉째는 지금으로선 아직 어떻다고 말하기 어려워.”걱정스런 눈빛으로 원경릉을 바라보며, “당신은 내 생각에 찬성해?”“자기가 결정한 건 다 찬성이야.” 원경릉은 찬성하고 말고, 완전 찬성한다.“하지만 당신은 원래 황후가 될 수 있어, 여자들의 세계의 정점에 서는 거라고!” 안도하며 눈을 빛냈다.원경릉이 우문호의 몸에 기대서 입꼬리를 살짝 들어올리더니, “황후 어쩌고 가 되는 거보다 아내와 엄마로 더욱 충실하고 싶어.”우문호가 원경릉을 가슴에 폭 안으며, “같이 힘내자!”둘이 자리에 눕고 우문호는 그녀의 방을 둘러봤다. 방은 심플하게 책상, 책장, PC, 옷장에 옷은 전부 여기 옷들로 침대맡에는 아직 그녀의 사진이 있다.여긴 그녀의 숨결로 가득하다. “어느 날 계승자를 발견하면 우리 여기로 돌아와서 살자.”“정말?” 원경릉이 우문호를 보고 감동해서, “정말 원해?”“당신 여기선 즐거워, 당신이 즐거운 걸 나도 하려고 노력할 거야.” 우문호가 원경릉의 이마에 뽀뽀하고 못내 아쉬운 눈빛이다.원경릉이 우문호의 목을 안고 뜨겁게 키스했다. 이 꿈은 아직 요원할지라도 우문호에게 그런 마음이 있다는 것만으로 원경릉은 너무나 감동받았다.사람은 각자 편한 곳이 있다. 우문호는 여기가 전혀 익숙하지 않은 데다 심지어 존귀한 신분조차 없는 일반인에 불과하지만 자신을 위해 이 낯선 시공간에 자리를 잡고 살기를 원하는 것 자체가 그 마음이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감동적이다.우문호는 마음속에 생각이 있다. 그쪽은 항상 권력 중심으로 아주 작은 가능성이라도 있으면 우문호가 걱정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철저하게 그럴 기회를 차단하는 것이다.아이들이 여기로 돌아온다면 원경릉이 박사가 된 것처럼 유
돌아가는 선물그렇게 우문호는 먹고 또 먹으며, “여기는 이렇게 대단하게 발전해 있는데 신이 도와준 것도 있습니까?”“신 아니고, 과학의 발전!” 오빠가 웃으면 설명했다.우문호는 과학이란 개념이 아직도 모호한 상태라 멍하니, “과학이 신인가요?”원경릉은 문득 처음 주진을 만났을 때가 생각났다. 주진은 그때까지는 주지스님으로 과학의 끝은 신학일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그리고 과학이 고도로 발전한 시대에 태어나서 자라 모든 게 저절로 이해됐던 것과 달리 우문호라는 고대인은 접해본 적이 없는 것으로 눈앞의 과학의 발전은 확실히 일종의 신학처럼 충격일 수 있다.용태후의 그런 초능력과 비슷해서 어쩌면 앞으로의 어떤 시대에서는 용태후의 초능력이 일반적으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원경릉에게 있어서는 상당히 놀랍고 심지어 ‘신인가요?’라는 경탄이 터지기까지 하는 것이다.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 주진의 말이 다시 생각나다니 참 기묘하다.주진도 웃으며 원경릉을 흘깃 보고, “세상일 참 신기하죠?”원경릉이 진심으로, “그러게.”원교수가 차를 끓였는데 진피보이차(陳皮普洱)로 귤향이 물씬 풍겼다. 우문호는 전에 이런 차를 마셔본 적이 없어 상당히 흥미로운 것이 한 잔 마시고 나니 갈증도 없어지고 긴장도 풀렸다.오빠가 다 마신 후 방에서 꾸러미를 여러 개 가져오더니, “이거 가져가, 전부 군것질이랑 아이들 옷, 그리고 태상황 폐하께 드릴 술과 담배, 또 시가 한 상자, 경릉이가 태상황 폐하 몸이 안 좋으셔서 술담배를 금한다고 하니 한모금만 맛보시고 느낌이 어떤 지만 보시는 걸로. 나머지는 태상황 폐하의 친한 벗인 재상과 소요공께 드리는 거, 황제 폐하께는 와인 한 병 가져왔어.”큼직큼직한 봉지를 보고 우문호는 눈이 커졌는데, “이렇게 많은 물건을 어떻게 지고 가죠? 이렇게 많이 필요 없어요. 버블티 몇 잔 사면 되는데.”어른 둘이 애들을 몇이나 데리고 있는데 다 못 짊어진다.“우리가 지고 갈게요, 우리가 진다고요!” 우리 떡들이 얼른 가서
기약 없는 헤어짐원경릉이 주진에게, “지금 저 아이의 대뇌를 제어하지 않는데 이렇게 오래 뉘어 놔도 될까?”“박사님이랑 거의 비슷하겠지만 약간 다른 게, 저 아이는 잔류 의식이 있어요. 이건 만두의 공이죠.”“어쩐지!” 원경릉이 고개를 끄덕이며 만두를 흘끔 보니 만두가 의기양양해서 원경릉을 향해 입을 헤 벌리고 웃는다.쌍둥이가 태어난 뒤로 우리 떡들의 존재감이 완전 마이너스가 돼서 한참을 분했겠구나.아침을 먹고 가족 사진을 찍었다. 오빠가 바로 인화하러 갔는데 아래층에 있어서 20분만에 사진을 가져올 수 있었다.헤어짐을 앞두고 다하지 못한 말이 늘 있지만 엄마는 아쉬운 감정을 표현하지 않았다. 오히려 계속 웃으며 원경릉과 다음에 오면 미니 웨딩을 해서 모두의 마음의 짐을 없애자는 아름다운 바램만 애기했다.다음이 언제가 될 지, 과연 다음이 있을 수나 있을지 모르지만 다들 그럴싸하게 얘기하며 심지어 엄마는 바로 웨딩드레스 사진을 찾아서 부부에게 보여줬다.우문호가 웨딩드레스를 보고 굉장히 아름답지만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왜 혼례를 치르는데 흰색을 입죠? 혼례는 붉은색을 입는 거 아닌가요?”“붉은 색도 있어, 한복을 입으면 돼지.” 엄마가 바로 붉은 색 요즘 한복을 찾아서 사위에게 전해줬다. “이런 건 어때?”“이거 예쁘긴 한데 상의가 몸매가 다 드러나서 민망한데요.” 우문호는 역시 좀 불만인지 아래로 계속 스크롤하더니 예전 스타일을 보고, “이건 괜찮네요. 이건 지금 저희들 옷이랑 별 차이 없어요.”“그건 폐백 때 입는 옷인데 경릉아, 넌 웨딩드레스가 좋아? 웨딩드레스를 입는 게 역시 예쁘긴 하지.” 원경릉이 다가와서 같이 보며, “웨딩드레스 좋죠. 자기도 양복 입어. 흰색 웨딩드레스에 흰색 양복, 잘 어울리네.”우문호는 역시 약간 보수적이고 전통적인 스타일이라, “혼례는 그래도 붉은 색을 입는 게 아무래도 좋지, 그 양복이란 거 붉은 색도 있어?”“빨간색 양복이라고? 그건 너무 촌스러.” 원교수가 웃음을 참지 못했다. 원교수가 보기
헤어짐의 순간엄마는 뒤를 돌아 눈물을 닦고 계속 모두와 사진을 보는데 손만은 약간 떨고 있고 입술도 미세하게 떨어서 웃으며 말하지만 목소리가 틀려졌다.원경릉은 엄마의 어깨에 기대서 엄마 손을 잡았다. 엄마는 얼른 원경릉과 손을 맞잡고 꽉 움켜주었다.“사흘이 정말 빨리 갔구나.” 원교수의 말끝에 아쉬움이 묻어나고 눈에서 깊은 상실감이 느껴졌다. 요 이틀간 계속 아내에게 마음 잘 단속하라고 했는데 아내는 실망하거나 가슴 아픈 기색을 표현하지 않는데 정작 본인이 억누를 수가 없게 되고 말았다.원교수는 아내와 양쪽에 앉아 딸을 안았다. 원교수는 이성적인 사람으로 어떤 때도 냉정하지만 냉정한 사람이 일단 감정이 무너지면 수습하기란 쉽지 않다.아무도 눈물을 흘리지 않지만 숨이 점점 가빠왔다.우문호가, “다들 괴로워하지 마세요. 우리가 이번에 올 수 있었듯이 다음에도 분명이 그럴 겁니다. 그리고 우리는 여러분들이 그쪽으로 한 번 오실 수 있도록 노력을 경주할 겁니다.”“정말 가능할까?” 오빠가 전에는 생각도 못했지만 정말 꼭 한번 가보고 싶어 졌다.주진이, “경호를 파악해내면 어려운 일도 아니 예요.”희망의 불꽃이 모두의 마음 속에 피어 올랐다. 정말로 다시 만날 기회가 있다면 이번 이별이 뭐가 두렵겠어?엄마는 원경릉의 어깨를 두드리며 용기를 북돋았다, “쌍둥이에게 우유 좀 주고 배부르면 가렴.”원교수가, “쟤들에게 안약 좀 넣어주마. 오늘 보니 눈에 충혈된 게 많이 돌아왔더구나.”“많이 좋아졌어요.” 원경릉이 일어나서 도왔다.우문호와 오빠는 베란다에서 얘기를 나누는데 오빠가 한숨을 쉬더니 잘생긴 이목구비가 이별의 감정으로 굳어져서, “매부가 동생한테 잘 할 거 알아, 그래서 동생에게 잘하라고 잔소리 하는 건 아닌 거 같고, 오히려 둘이 잘 지내고 집안에 별고없이 지냈으면 좋겠어. 두 어르신은 내가 잘 돌볼 게.”“예, 알겠습니다.” 우문호가 형님에게, “다음번에 만나길 기대합니다. 우리 다시 번지점프 하러 가요.”“스카이다이빙은?” 오빠가 웃
감동한 서일과 나타난 만아시공의 통로를 나오니 용태후의 침궁이다.원경릉은 오래동안 감정을 추스를 수 없다. 눈 깜짝할 사이에 또 집을 떠나게 되다니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용태후가 위로하며, “너무 힘들어 말아요, 마음만 있다면 다시 만날 수 있을 테니까.”원경릉이 눈물 어린 눈으로 용태후를 보고, “만약 앞으로 집이 그리우면 다시 한 번 보내 달라고 애원할 수 있나요?”“좋지 않네!” 용태후가 웃으며 원경릉을 보고, “스스로 생각해 봐. 조금만 더 고민하면 경호의 비밀을 풀 수 있을 테니까.”그래, 경호가 있지. 원경릉은 몰래 결심했다. ‘돌아가서 만아 일을 처리하고 나면 우리 떡들을 데리고 경호에 가자.’그리고 사식이와 서일에게 피로 쓴 부적을 들고 바로 남강으로 가라고 했다.둘이 혼인한 뒤로 이렇게 먼 곳까지 단독으로 나가본 적이 없고, 이번은 모험이 도사리고 있는 지라 서일이 줄곧 불안해서 사식이에게 시시콜콜 잔소리를 하며 만약 위험이 닥치면 기회를 봐서 바로 도망치고 절대로 자신에게 관여하지 말라고 했다.사식이는 서일과 반대로 하는 전문이라 채찍을 휘둘러 말을 달리며 해바라기처럼 찬란한 미소를 띠고, “아니, 난 자기랑 죽어도 같이 죽을 건데.”서일은 어이가 없어서 사식이를 쫓아가며, “혼례 올릴 때 뭐라고 했어, 큰 일은 다 내 말 듣는다고 했지.”“나랏일이 큰일이지, 개인의 생사 오욕은 다 작은 일이라고.” 사식이가 웃으며, “할머니가 그렇게 가르쳐 주셨어.”“혼인을 했으면 남편 말을 따르는 거야. 너 지금 내 말 들어야 해.” 서일이 화를 내며, “이 말 잘 기억해. 만약 위험이 닥치면 반드시 도망갈 것, 도망가서 날 구할 방법을 생각할 것.”“포기해, 서일. 이 문제에 있어서는 난 영원히 자기 말 안 들을 거니까. 기왕 같이 가는 김에 자기가 위험에 빠지면 난 절대로 도망가지 않을 거야. 자기랑 혼인했다는 건 자기와 생사를 함께 하겠다고 결심한 거라고. 내가 위험하면 자기는 날 버리고 신경 안 쓸 거야?”서일이 이 말
남강 북쪽에 가겠다고 안달만아가 말했다. “집사님 처지가 가엽다는 거 저도 알아요. 강북 사람들이 남편과 딸을 죽였으니 그들이 뼈에 사무치게 증오스러워서 이번에 복수를 결행하시는 거죠. 제가 힘이 되어 드릴게요. 절 믿으세요.”“난 복수하고 싶지 않아!” 정집사가 하늘을 보고 탄식하며 절망과 슬픔으로 말했다. “복수에 성공할 수 없다든건 잘 알지만, 따라가는 건 네가 위험을 무릅쓰지 않게 하기 위해서 일 뿐이야. 네가 태자비 마마의 말을 믿던 안 믿던 내가 네 어미인건 분명한 사실이야. 내 말 듣고 돌아가거라. 넌 이 세상에 남은 남강왕의 유일한 핏줄이니, 남강 북쪽 사람들이 널 가만 둘 리가 없어, 널 잡아서 무녀로 삼고 말 거야! 넌 정말 남강 남쪽 사람들과 적이 되기를 원하는 거니?”만아는 얼굴을 찌푸리며, ‘어휴 정말 불쌍한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했다.“정집사님, 정신차리세요! 전 정말 집사님 딸이 아니라고요, 집사님께 이 말이 얼마나 잔인한지 알아요. 제가 집사님 딸인 척을 하면 어쩌면 집사님께는 위로가 되고 마음은 좀 더 편안해 지시겠죠. 하지만 전 정말 아닌 걸요. 전 거짓말로 집사님을 속일 수 없어요. 복수하기 싫으시면 남강 북쪽에는 가지 마시고 이만 돌아가세요. 순왕 전하께서 저와 함께 가실 거예요. 전 반드시 남강 북쪽에 다녀와야 해요.”말을 마치고 만아는 돌아갔다.정집사는 만아를 꺾을 수 없어, 결국 순왕 말 대로 만아를 데리고 갈 수 밖에 없었다.만아 때문이든 어쨌든 길에서 반나절을 지체했다는 건 얼른 따라잡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야 셋째형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문천이 아는 셋째형은 분명 군주를 구하려고 분명 애가 탈 것이다. 기왕 남강 부근까지 온 거 오래 기다려야 한다면, 그냥 사람들을 데리고 출발해 버릴 같았다.사식이와 서일은 며칠 늦게 출발했지만, 두 사람은 이끌고 가는 대오도 없이 가벼운 몸이라 말을 달려 빨리 갈 수 있었고, 대주 수도에서 남강으로 가는 길은 강북부나 경성에서 남강으로 가는 길보다
잔뜩 긴장한 채로 앞으로 몸을 반쯤 내밀고 있었던 주 지부는 우렁찬 상대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중심을 잃은 듯 비틀거렸다. 그는 이내 팔을 뻗어 망루의 기둥을 붙잡으려 했지만, 허공에서 멈추고 말았고, 그대로 몸이 앞으로 쏠려 떨어져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가 말에서 빠르게 날아올라, 믿기 힘들 정도로 빠른 속도로 그에게 달려갔다. 상대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주 지부가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그를 안고 빙 돌아서 바닥에 착지했다.주 지부는 깜짝 놀라서 그만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를 구해준 사람은 반짝거리는 눈망울에, 품위 있는 모습의 젊고 잘생긴 사내였다. 주 지부는 그를 황제의 호위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거의 죽을 뻔한 고비를 넘겼기에, 안도의 한숨을 내쉴 새도 없이 그에게 예를 올렸다.“대인,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그때 말들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는데, 서일이 먼저 말에서 내려, 다급히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괜찮으십니까?”우문호도 매우 놀란 듯했다. 조금만 늦었다면, 주 지부는 정말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숨을 들이쉬었다.“괜찮다.”그러고는 주 지부를 보며 물었다.“자네는 누구요?”주 지부는 마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보며, 누가 황제인지 추측했다.황제는 올해 마흔에 가까운 나이로 알려져 있었기에 위엄이 넘쳐 보일 것이었다. 그는 일행 중, 냉 수보와 홍엽을 만난 적 있었기에, 거친 모습을 한 이 인물은 아마도 호위로 추측된다. “묻지 않았소? 자네는 누구요? 어찌 죽으려고 하는 것이오?”서일은 그가 멍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자, 큰 소리로 다시 물었다.주 지부는 울 지경이었다. 냉 수보가 그를 보고 있으니, 예를 올려야 하지만, 황제도 자리에 있으니, 바로 냉 수보에게 예를 올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대체 누가 황제란 말인가?그는 황제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어, 결국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고는 그들에게만 들릴 정도로 낮은 목소
원경릉의 말은 그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고, 자리에 있던 관리들은 기쁨과 동시에 두려움에 휩싸였다. 이 대인은 땅에 엎드려 온몸을 바르르 떨고 있었다. 그는 살아생전에 자신이 황제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은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평소 차분하고 신중한 주 지부도, 그도 감정이 격해져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눈가에는 눈물이 가득했다.황후를 만난 것만으로도 큰 영광이라 생각했는데, 황제까지 오신다는 소식에 그의 마음은 흥분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원경릉은 평생을 경성에서 다섯째와 함께 있었기에, 그녀는 그저 그가 온다는 사실을 간단히 전했을 뿐이었는데 말이다. 그녀는 다들 걱정 없이 역병을 치료하고, 언제나 황제가 그들의 뒤를 든든히 지켜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의 반응을 보니, 황제가 직접 오는 것이, 지방 관리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달았다.원경릉이 급히 말을 덧붙였다.“폐하게서는 그저 역병 때문에 온 것이니, 모두 각자 맡은 일에만 최선을 다하면 되네.”“예, 예, 마마의 명을 따르겠습니다.”주 지부가 눈물을 닦으며 답했다.그렇게 관아와 의서가 협력하여, 오계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원 할머니는 역병을 치료할 수 있는 처방을 몇 가지 내렸다. 경증 환자는 약차를 계속 마시고, 증상이 악화하거나 중증 환자는 그녀의 처방을 사용하도록 했다.전에 이미 근처 주부에 연락해 약을 보내라 명했고, 오계부에서 구비한 약까지 있으니, 이번 역병을 대처할 수 있었다.오계부 의서는 이번 역병을 과거의 역병과 동일하게 생각하고, 소홀히 한 것 외에는 준비가 충분했다.원경릉은 황제 일행이 저녁 무렵 오계부에 도착할 것이라 예상했다.주 지부는 원래 여러 관리와 함께 황제를 맞이할 예정이었지만, 원경릉이 이를 단호히 거부했다. 그녀는 황제가 미복 순행 중이니, 과하게 맞이하여 백성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했다.그 말에 주 지부는 당황했다.황제가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아무도 맞이하지 않는다니, 어찌 그럴 수 있다는 말인가?그러나 그는 황
약을 쓰자, 주 지부의 열이 단번에 내려갔다.열이 내려가니 정신이 맑아져, 그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는 애써 자리에서 일어나 황후마마에게 예를 올리겠다고 고집 피웠다.원경릉은 그에게 누워 있으라고 말한 후, 역병에 관해 이야기하며 주 지부에게 이를 중시할 것을 당부했다.주 지부는 이를 듣고 깜짝 놀라 말했다.“소신은 매일 의서에 사람을 보내, 역병의 상황을 보고받고 있사옵니다. 매일 보고된 상황은 그다지 심각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역병이 발생했지만, 작년과 비슷한 정도였고, 약재도 충분한데, 어찌 이렇게 심각해진 것입니까?”“매년 역병이 발생했으나, 대대적으로 퍼지지 않아,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네.”원경릉이 답했다.“의서의 이 대인을 불러, 상황을 확인하겠습니다.”주 지부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어제 이미 그를 찾아가, 환자 수와 사망자 수를 조사하라 명했네. 하지만 그는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모를 것이네. 자네가 사람을 보내, 관아에 와서 상황을 보고하도록 하게.”“예!”주 지부는 곧바로 사람을 보냈다.푸른 옷을 입은 남자는 관아에서 일하는 관리였기에, 그는 반 시진도 채 되지 않아, 관아 내에서 병에 걸린 자가 얼마나 되는지 통계해냈다.관아 내에서 역병 증상을 보인 사람은 총 열여덟 명이었고, 그중 두 명은 병세가 심각하여 이미 집에서 쉬고 있는 상태였다. 주 지부는 관아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병에 걸린 줄 몰랐고, 관리의 보고를 들은 후, 큰 충격을 받았다.의서의 이 대인은 하루 종일 쉬지도 않고, 바삐 움직였다. 서관 대인이 직접 오셨으니, 어떻게든 시키는 일을 완성해내야 했다.그는 사실 역병이 그다지 심각하지 않고, 그저 작년과 비슷하다고 여겼었다.하지만 여러 지역과 의원을 돌아보고 나서야, 이번 역병이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처음엔 그저 서관 대인에게 보고만 하려고 했지만, 병세가 심각해지자 그도 조급해지기 시작했다.하지만 짧은 시간 안에 인원수를 통계하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도, 다섯째 일행은 여전히 도착하지 않았다.그래서 원경릉과 할머니는 다른 의관을 더 둘러보기로 하고, 몇 군데 더 돌아본 뒤 관아에도 갈 계획을 했다.그런데 한 의관에 들어서자마자, 푸른 옷을 입은 중년 남자가 다급히 뛰어오며 말을 걸었다. “수 의원, 대인께서 병세가 위중합니다. 어서 봐주셔야 합니다.”의원은 그 말을 듣자마자, 약상자를 집어 들고 다른 환자들을 그냥 남겨둔 채, 푸른 옷의 중년 남자와 함께 나가려 했다.원경릉이 그를 막아 세우며 말했다.“의관에 있는 환자들을 돌봐야 하지 않소? 우리 할머님께서도 의원이니, 지부 대인의 병은 할머님께서 봐 드릴 것이오.”푸른 옷의 사내는 초조한 듯 원경릉을 향해 소리쳤다.“말도 안 되는 소리 마시오!““대인의 병세가 급박한데, 혹여라도 지체되면 당신들이 책임질 수나 있겠소?”바로 그때, 원 할머니가 호패를 꺼내, 그의 눈앞에 들이밀며 단호하게 말했다.“길을 안내하거라!”조급한 표정을 짓던 푸른 옷의 사내는 호패를 보자마자 표정이 얼어붙었다. 이내 정신을 차린 그는 곧장 허리를 굽혀 예를 올리며 말했다.“서관 대인께서 오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무례를 범해 송구하옵니다.”“그만 사과하고 길 안내나 하시오.”원경릉이 말했다.“예, 예!”사내는 급히 물러서서, 예를 갖춰서 길을 가리켰다.“마차가 밖에서 대기 중입니다. 서관 대인, 이쪽으로 오시지요.”원경릉은 할머니를 부축해 마차에 올랐고, 곧장 관아로 향했다.지부 대인은 따로 사저가 없어 관아의 뒷마당에서 거주 중이었다. 혼자 지내는 데다 관아가 워낙 가까워 편리했기 때문이다.관아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안으로 들어갔다.주 지부는 병세가 꽤 심각해져 있었다. 그는 어지럼증과 흉통에 시달려, 침대에 누운 채 말을 꺼낼 힘도 없었다.원경릉은 직접 치료에 나섰고, 약상자를 열어 체온 측정기와 청진기를 꺼냈다.푸른 옷의 사내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가씨께서도 의원이십니까?”그러자 곁에 서
이 대인이 원경릉에게 의학을 잘 모른다고 반박할 틈도 없이, 원 할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말대로 하게. 하루만 줄 테니, 그 안에 역병에 관한 모든 자료를 가져오게. 사망자 수도 포함되어야 하네." 이 말까지 듣자, 이 대인은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었다. 비록 조사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서관 대인이 멀리서 오계부까지 왔으니, 시키는 일은 해야지 대인의 마음에 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사람들을 보내 조사를 명한 후, 이 대인은 거처를 마련해 드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원경릉이 말했다. "괜찮습니다. 의서에 의원이 많지 않으니, 대인도 바쁘실 텐데요. 저희가 직접 오계부를 돌아보겠습니다." 이 대인은 그녀가 원 할머니의 힘을 빌려 위세를 부린다고 생각해, 대꾸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말에 답도 하지 않고, 원 할머니에게 예를 올렸다. "어르신께서 머무실 계획이 있으시면, 부디 저에게 알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밤 대인을 잘 대접하라, 명을 내리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네. 일이나 보게." 원 할머니는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원경릉에게 말했다. "먼저 좀 돌아보다, 객사를 찾아 머물자꾸나." "예!" 두 사람은 역병을 조사하기 위해 다급히 이곳을 찾아왔기에, 먼저 각지의 의원을 직접 돌아보려 했다. 아마 다섯째 일행은 빨라야 내일이나 모레쯤 도착할 것이었다. 두 사람이 의서를 나서자, 이 대인은 뒤따라 나오려다 원 할머니의 날카로운 눈빛에 움찔하며 발길을 멈췄다. 두 사람은 오계부의 거리로 향했다. 거리가 꽤 번화했고, 사람들도 제법 많아, 대낮에는 조금 붐볐다. 그들은 곧장 의원으로 향했다. 의원 앞에는 약차가 많이 진열되어 있었지만, 환자는 얼마 없었다. 겉보기엔 역병이 퍼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원경릉은 안으로 들어가 의원에게 상황을 물었다. 그러자 의원은 요즘 들어 약차가 잘 팔리고 있고, 하루에 천 봉지가 넘게 팔린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도 역병
늦게 출발한 원경릉은 신속하게 오계부로 향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오계부 근처 주현에 도착하자마자, 할머니가 현지 혜민서로 가야 한다며 잠깐 멈추자고 했다. 그러고는 혜민서에 오계부로 약을 공급할 준비를 하게 했고, 명을 받으면 바로 오계부로 보낼 수 있도록 미리 준비를 당부했다. 혜민서 산하의 의료기관들은 지난 몇 년간 개혁을 통해 뚜렷한 성과를 거두었고, 지역 간의 연결도 긴밀해졌다. 특히 역병을 상대하는 체계가 가동되면 상부에서는 전력을 다해 의원과 약을 지원해줄 수 있었다. 신신당부한 뒤에야 원경릉과 할머니는 오계부로 재빨리 향했다. 곧이어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우문호 일행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오계부는 인구가 500만 명에 이르는 곳으로, 두 개의 주부가 통합된 지역이었다. 열대에 있어, 경작지가 많고 산이 많아 농업을 위주로 삼고 있었다. 그래서 조정은 이곳을 서부의 주요 곡창지대로 삼고 있었던 것이었다. 농업이 발달한 지역은 상대적으로 경제도 번화했고, 현지 백성들은 벼 외에도 감, 자두, 리치 등을 대량으로 재배하고 있었다. 리치는 신선할 때 먹을 수도 있고, 말려서 건과로 만들어 팔 수도 있기에, 어느 정도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었다. 오계부는 백월국과 인접해 있었는데, 백월국은 북당의 속국으로 사이가 우호적이며 경제 교류도 활발했다. 이는 양국의 번영을 촉진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오계부의 지부는 장씨 성을 가진 오계부 출신이었다. 장 지부는 훌륭한 관리이며 지역 백성들로부터 존경받고 있었다. 원경릉과 원 할머니는 오계부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지역 혜민서를 찾았다. 할머니는 혜민서의 서관(署館) 신분을 밝혔다. 그녀는 북당 각 주부의 의서를 총괄하는 인물이고, 총책임자이기도 했다. 혜민서의 이 의원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두 사람을 안으로 청한 후, 바로 예를 올렸는데, 마치 신선이라도 본 것처럼 목소리까지 떨고 있었다. "소인은 이자옥이라 합니다. 어르신께서 친히 오신 줄도
그녀는 일단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 냉 대인이 자세한 상황을 묻는 사이에 제 대인의 피를 뽑았다. 약상자는 기능이 꽤 다양하기에, 바이러스 검사도 문제없었고, 안에는 양여혜가 준 소형 현미경도 있었다. 하지만 바이러스 관찰이나 세균 배양에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지체할 수 없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먼저 오계부로 향하고, 그녀는 이곳에 남아 제 대인을 치료하고 검사 결과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면 바이러스든, 세균 감염이든, 결과가 나와야 제대로 된 치료 방안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미색이 말했다. "저도 이곳에 함께 남겠습니다. 제가 환자를 돌보는 것 정도는 도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괜찮으니 먼저 가거라. 어쩌면 내가 더 일찍 도착할 수도 있으니깐." 원경릉이 말했다. 그녀는 혼자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지만, 미색까지 데리고 가는 건 무리였다. "우리가 먼저 출발하는데, 어찌 더 일찍 도착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미색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가능한 일이다. 원 선생은 늘 기적을 만들어내니." 우문호가 말했다. 그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고, 원경릉에게 다가가 조심하라고 몇 마디 당부했다. "알았소. 지체하지 말고, 어서 떠나시오. 오계부에 도착하면 곧바로 관아를 찾아가, 의원의 빠른 대처를 명하라 하시오. 만약 내가 먼저 도착한다면, 내가 관아를 찾아가겠소." "알겠소. 그럼, 먼저 가겠소!" 우문호는 그녀와 입을 맞추고 싶었지만, 보는 이가 많으니 그저 참을 수밖에 없었다. 서일은 황후를 홀로 두고 가는 것이 걱정되어, 우문호를 따라나서며 계속 물었다. "정말 황후를 이곳에 혼자 남겨도 되는 것입니까?" "그럼, 네가 남을 것이냐?" 우문호가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 "너도 원 선생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고 있지 않느냐?" 회왕 부부도 걱정은 되었지만, 다섯째의 여유로운 모습에 자신이 있을 것이라 믿었다. 다섯째 부부는 늘 비밀이 많은 사람들이라, 그들은 더 이상 신경
원경릉은 밖으로 나가, 오계부에 역병이 생긴 것 같다고 전했다. 오계부는 서쪽에 자리 잡고 있어, 기후가 더운 탓에 가끔 역병이 생기긴 했었지만 백성들은 고뿔 치료에 쓰이는 약초로 끓인 차를 즐겨 마시기에, 대규모로 역병이 돈 적은 없었다. 냉 대인이 말했다. "오계부에서는 이 상황을 조정에 알리지 않았습니다. 비록 해마다 역병이 생기긴 하지만, 빠르게 통제해 왔으니, 이번에도 예전과 같은 상황이지 않겠습니까?" 원경릉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런데 이번엔 더 심각할 수도 있습니다. 제 대인의 형도 역병으로 돌아가셨고, 그와 가까이 지낸 사람들도 병에 걸렸습니다. 이렇게 관아에만 역병에 걸린 자들이 많으니, 예전보다 더 심각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해마다 역병이 생겼으니, 그에 대한 대응책도 이미 있을 것입니다." 원경릉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해마다 역병이 생겼지만, 대대적으로 유행하지 않았기에, 현지 관리들이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 쉽게 통제될 것이라 생각하고, 방심할 수도 있으니깐요." 우문호가 물었다. "원 선생, 역병을 어떻게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하오?" "역병 상황이 안 좋을 것이라 추측할 뿐, 정말 오계부의 상황이 어떠한지는 아직 모르네. 제 대인은 여전히 고열에 시달리고 있어, 수액을 맞히고 해열제를 먹였소. 냉 대인과 함께 들어가 상황을 자세히 물어봐야겠소. 하지만 꼭 마스크를 끼고, 병을 막아야 하오." 원경릉은 유행성 독감이나 변이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일 것이라 의심하고 있었다. 그녀가 살던 세계에서는 A형 독감의 대규모 변이가 십수 년마다 한 번씩 발생했는데, 그런 변이 독감은 현대에서도 의료 체계에 큰 부담이 되곤 했다. 그러니 지금 이곳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만약 역병이 다시 시작한다면, 가능한 한 빨리 통제해야만 했다. 원경릉의 말을 우문호와 냉 대인은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도
원경릉은 청진기를 꺼내 그의 폐를 확인해 보았는데, 남녀가 가까이 접촉하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한 제 대인은 이내 손을 뻗어 그녀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병세가 심해 아픈 데다가,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묘한 위압감을 풍기는 의원의 단호한 눈빛과 기운에 그만 압도당하고 말았다. 원경릉은 앞쪽을 청진한 뒤, 그에게 옆으로 돌라고 한 다음에 꼼꼼히 살피고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며칠을 아프신 것입니까?" 제 대인은 꽉 막힌 코 때문에 콧소리를 내며 천천히 몸을 돌리고 답했다. "며칠 사이의 일입니다. 오계부를 떠날 때도 멀쩡했는데, 밤새 달리고, 말을 오래 타다 보니 고뿔에 걸렸나 봅니다." "기침 말고, 가슴 통증도 있습니까?" "예. 이곳이 아픕니다!" 제 대인은 가슴 근처를 손으로 누르며 말했다가, 숨쉬기가 어려운 듯 손바닥을 움직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도 아프고, 온몸 뼈마디도 다 아픕니다." 그러자 원경릉은 더 자세히 증상을 확인한 뒤 말했다. "약을 준비할게요. 수액을 좀 맞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수액이요?" 제 대인은 멍하니 원경릉을 바라보았다. "예. 질문은 하지 마시고, 그저 치료에 협조만 해주십시오. 병세가 꽤 심각한 편입니다." 원경릉은 제 대인이 폐렴이라 확신했고, 중증 폐렴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 대인은 병이 심하다는 말에 초조한 표정을 지으며 다급히 말했다. "의원 나리, 제발 최선을 다해 치료해 주십시오… 저에게는 아직 모셔야 할 노모가 있습니다. 지난달 병으로 형님께서 세상을 떠난 터라, 형님의 자식들도 제가 돌봐야 하니, 절대 이대로 목숨을 잃을 수는 없습니다." 원경릉이 답했다. "최선을 다할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치료에만 집중하시지요!" 제 대인은 감동을 받은 듯 감사 인사를 올렸다. "정말… 감사합니다." 원경릉은 곧바로 약을 지어 수액을 준비했다. 수액을 맞는 동안, 제 대인은 여전히 놀란 모습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