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강 북쪽에 가겠다고 안달만아가 말했다. “집사님 처지가 가엽다는 거 저도 알아요. 강북 사람들이 남편과 딸을 죽였으니 그들이 뼈에 사무치게 증오스러워서 이번에 복수를 결행하시는 거죠. 제가 힘이 되어 드릴게요. 절 믿으세요.”“난 복수하고 싶지 않아!” 정집사가 하늘을 보고 탄식하며 절망과 슬픔으로 말했다. “복수에 성공할 수 없다든건 잘 알지만, 따라가는 건 네가 위험을 무릅쓰지 않게 하기 위해서 일 뿐이야. 네가 태자비 마마의 말을 믿던 안 믿던 내가 네 어미인건 분명한 사실이야. 내 말 듣고 돌아가거라. 넌 이 세상에 남은 남강왕의 유일한 핏줄이니, 남강 북쪽 사람들이 널 가만 둘 리가 없어, 널 잡아서 무녀로 삼고 말 거야! 넌 정말 남강 남쪽 사람들과 적이 되기를 원하는 거니?”만아는 얼굴을 찌푸리며, ‘어휴 정말 불쌍한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했다.“정집사님, 정신차리세요! 전 정말 집사님 딸이 아니라고요, 집사님께 이 말이 얼마나 잔인한지 알아요. 제가 집사님 딸인 척을 하면 어쩌면 집사님께는 위로가 되고 마음은 좀 더 편안해 지시겠죠. 하지만 전 정말 아닌 걸요. 전 거짓말로 집사님을 속일 수 없어요. 복수하기 싫으시면 남강 북쪽에는 가지 마시고 이만 돌아가세요. 순왕 전하께서 저와 함께 가실 거예요. 전 반드시 남강 북쪽에 다녀와야 해요.”말을 마치고 만아는 돌아갔다.정집사는 만아를 꺾을 수 없어, 결국 순왕 말 대로 만아를 데리고 갈 수 밖에 없었다.만아 때문이든 어쨌든 길에서 반나절을 지체했다는 건 얼른 따라잡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야 셋째형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문천이 아는 셋째형은 분명 군주를 구하려고 분명 애가 탈 것이다. 기왕 남강 부근까지 온 거 오래 기다려야 한다면, 그냥 사람들을 데리고 출발해 버릴 같았다.사식이와 서일은 며칠 늦게 출발했지만, 두 사람은 이끌고 가는 대오도 없이 가벼운 몸이라 말을 달려 빨리 갈 수 있었고, 대주 수도에서 남강으로 가는 길은 강북부나 경성에서 남강으로 가는 길보다
정집사의 충고밤에 사람들이 모두 모이자 정집사가 지도를 그려 그들에게 보여주며 설명했다.“남강은 산성으로, 사면이 산으로 둘러 쌓여 있습니다. 산으로 들어간 뒤에야 비로소 남강성(南疆城)으로 사방이 병풍처럼 산으로 둘러쳐져 있어 조정이 공격해 들어가기 쉽지 않습니다. 이게 황제 폐하께서 남강 스스로 내전을 치르고 조정이 지원하는 방식을 생각하신 이유기도 합니다. 남강 북쪽으로 가는 길은 두 갈래로 나눠져 있습니다. 첫번째 길은 남강 남쪽을 지나치는 길이지만, 중간에 여러 산이 남북을 갈라놓고 있는 관계로 이 산들을 넘어야만 합니다. 지금 남강 남 북쪽 변방을 전부 군이 주둔해 지키고 있으므로 남강 남쪽을 지나가는 경로는 발각되기 쉽지요.”정집사는 잠시 지도를 조정하더니, 다른 길을 가리키며 다시 말을 이어 나갔다.“여기는 직접 남강 북쪽으로 진입하는 길로 변경에 주둔군이 없습니다. 산세가 험준하고 일부 밀림은 일년 내내 아무도 다니는 사람이 없고 독기와 독사가 출몰해서 보통 사람들은 들어갈 수 없습니다. 하지만 두려운 건 독사가 아니라 독기로 입산할 때는 반드시 대낮에 해가 비칠 때, 얼굴에 수건을 하고 거독환(祛毒丸, 해독제)을 먹어야 합니다. 입산한 뒤 앞으로 10리 정도 가면 남강 북쪽 지대에 들어가게 되는데, 이제부터가 진짜 위험합니다. 백성 모두가 병사로 외부인을 보면, 바로 공격해 들어올 게 틀림없죠. 그들의 무고술은 막는다고 막아지는 게 아닙니다. 그 곳의 아름다운 꽃을 만져서도 안되고, 짐승도 잡아서는 안되며, 독충, 개미 같은 게 발 밑을 지나갈 때도 최대한 밟지 말아야 합니다.”정집사가 손가락을 위쪽으로 이동해 지도를 가리켰다.“여기가 남강 북쪽에서 제일 높은 산 입니다. 그래서 들어가 사람을 구하려면, 이 산을 무조건 올라야 합니다. 무당은 전부 산꼭대기에 사는데 무당이 지내는 진법이 깔려 있고 아홉 고개 13구비마다 길을 잃게 만들어 놔서 모두 같이 가야만 하고 흩어져서는 안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안에서 길을 잃고 혼자의 힘으
남강북쪽 산길정집사가 위왕에게 말했다.“제가 말씀 드린 것처럼 이성을 잃은 자의 목숨은 다른 목숨을 대신하는 겁니다. 이성을 잃은 자의 피를 입에 쏟아 부어 피로 깨어나게 부르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건 피 두세방울로 할 수 있는 게 아니고, 신속하게 대량의 피를 주입해야 합니다. 그렇게 때로는 피를 전부 흘려 넣어 불러도 깨어나지 못하기도 하고, 깨어났다고 해도 이미 방대한 양의 피를 흘렸기 때문에 무당 지대라는 위험한 곳에서 결국 죽음을 맞이하게 될 뿐입니다.”위왕이 고개를 끄덕이며 조용히 머리로 기억해 두었다.정집사가 큰 소리로 외쳤다.“이번에 남강 북쪽 길을 통해 무당 지대로 들어가는 것을 선택한다면, 도중에 틀림없이 위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 반드시 꼭 명심해야 하는 점은, 시작엔 서로 도우며 지켜줘야 하지만, 무당 지대에 들어선 뒤론 누군가 실종됐다 해도 절대 구하려 들면 안 된다는 겁니다. 심지를 굳건히 하여 기이한 것을 대했을 때 감히 흥미를 느끼거나 만져서는 안됩니다. 특히 아름다운 꽃, 특이한 무늬와 색의 동물과 짐승이 신비롭고 기이하게 느껴질 텐데 경외하는 마음을 품되 절대로 멀리 해야 합니다. 조종당하고 싶지 않다면, 제 말을 꼭 기억하셔야 할겁니다.”위왕이 나가서 장수들에게 정집사의 말을 전달한 후 모두에게 이번 작전의 위험을 알리고 마음의 준비를 하게 했다.다음날 대오가 출발해 반나절이 지난 뒤 서일과 사식이가 역참에 도착해 그가 이미 남강 북쪽 산길로 진입했다는 걸 알아냈다. 대략의 루트를 물어보고 사식이와 서일도 출발했다.가는 길을 재촉해 날이 저물기 전, 대오를 따라잡을 수 있길 바랬다.만아는 산을 오르기 시작했을 때부터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머리속에서 끊임없이 소리가 들리고 눈앞에도 환각이 보이면서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안개에 갇힌듯 했다.만아는 처음엔 억지로 참고 견뎌냈다. 하지만 해질 무렵 산꼭대기에서 굽이굽이 이어진 산봉우리를 보는데 갑자기 눈앞에 한 폭의 광경이 나타났다. 전에 한번
만아의 신내림정집사가 품에서 약병을 꺼내더니 한 알을 만아에게 먹이고 우문천에게 전했다.“열이 나는 게 틀림없어요, 열로 머리가 멍해 졌나 봅니다.”“정집사가 먹인 약은 뭔가? 열을 내릴 수 있나?” 우문천이 만아 얼굴을 보니 무서울 정도로 하얀데 눈 밑만 어지럽게 검붉은 것이 열이 나기 시작하는 것 같기도 했다.“가능합니다. 이 약이 몇 알 있으니 계속 약을 줘서 호전 시킬 수 있어요.” 정집사가 대충 말하며자기가 돌보겠다고 했다. 하지만 우문천은 조금도 안심이 되지 않았다. 만아는 다섯째 형수 측근으로, 가장 총애하고 신뢰하는 아이다. 만약의 경우가 생겨서는 안되지만, 성인 남자인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 답답했다.“그럼 자네가 잘 돌봐 주게. 한 시진 정도 더 가서 우리는 야영을 해야 할 것이야.”남강 북쪽에서는 해가 진 뒤에 갈 수가 없어 밤에는 반드시 야영을 하며 쉬어야 한다. 그리고 충분한 휴식을 취해야지만 이 곳에서 계속 앞으로 나갈 수 있다.우문천이 간 뒤 정집사는 만아를 가슴에 품더니, “내 말 들어, 넌 지금 아무 생각도 하지 마. 그저 어서 빨리 정화군주를 구해내서 태자비 마마께서 기뻐하는 생각만 하면 돼. 머릿속에 모든 잡념은 전부 버려. 알겠지?”만아는 몸을 약간 떨며 말했다. “정집사님이 저에게 먹인 약이 뭔 가요?”“안심해라, 이 약은 너에게 해가 되지 않아. 그저 체력을 증가시켜 주려는 거야.” 정집사는 마음이 혼란스러운 것이 신내림의 악독함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정집사도 지금 환청이 시작되었지만, 본인은 만아와 달랐다. 정집사는 피맺힌 원한을 품고 누구보다 강인한 의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떤 사술도 정집사를 무너뜨리지 못한다.그리고 만아에게 먹인 약은 무슨 체력 증진제나 보약이 아니라, 사실 고독의 일종으로, 만아가 미쳐서 날뛰거나 이성을 잃었을 때 바로 혼절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적어도 만아가 정집사의 시선 밖으로 벗어날 리 없게 하기 위해서다.“정집사님, 제가 병에 걸린
만아는 남강 북쪽 무녀한편, 우문천이 머리가 온통 피로 물든 만아를 안고 돌아왔는데 만아의 두 손은 축 쳐져 있는 게 이미 정신을 잃은 것 같았고, 피가 머리부터 베어 나와 상처가 어떤 지 가늠을 할 수 없었다.정집사는 그 모습을 보고 가슴이 철렁했다.“어떻게 된 거요?”우문천이 만아를 평지에 내려놓고 말했다.“일단 지혈부터.”정집사가 덜덜 떨며 금창약(金瘡藥, 외상에 뿌리는 가루)을 꺼냈다. 정집사는 오기 전에 약을 여러 개 챙겼는데 마침내 쓰게 되었다. “어떻게 된 거야?” 위왕과 안왕이 같이 와서 물었다.우문천의 얼굴에도 손에도 온통 피투성이라 그는 대충 쓱쓱 닦더니 답했다. “셋째형, 넷째형, 저도 쟤가 왜 저런 지 모르겠어요. 갑자기 내가 쫓아가지도 못하게 빨리 달리다가 결국 혼자 나무에 부딪혔어요.”위왕의 얼굴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왜 쟤를 데리고 왔지?”그의 물음에 우문천이 고개를 흔들었다.“자기가 따라온 거예요! 그리고 오기 전에 절 찾아와서 무당 지대의 진법을 무력화 시키는 걸 안다며 자기가 정화군주를 구출하는데 도움이 될 거라고 했어요.”“무당지대의 진법을 파괴할 수 있다고?” 위왕이 이 말을 듣자 안색이 풀어지며 말했다.“그럼 지금은 어떻게 된 거야? 아픈 건가?”정집사가 침통함을 숨기고 말했다.“만아는 지금 저항하고 있는 겁니다. 남강 북쪽 무당의 힘에 대항해서, 쟤는……대단해요.” 정집사의 고독을 이겨내고 무당의 부름에 대항하는 심지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나무에 부딪히고 바로 달려나가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무당의 힘에 대항하다니? 어떻게 된 일인가?” 위왕이 물었다.정집사가 만아의 상황에 대해 목구멍까지 할 말이 차 올랐지만, 별로 말하고 싶지 않았다.안왕이 오히려 더 조급해 졌다. “아는 게 있으면서 말을 안 한다면, 쟤가 모두를 해칠 수도 있어.”정집사는 이 길이 상당히 험난할 거라 숨길 수 없겠다 싶어 대강의 전후 사정을 털어놓았지만, 만아 엄마의 신분만은 숨겼다.
남강으로 북당으로위왕이 목소리를 낮춰 으르렁댔다.“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닥쳐!”하지만 안왕의 말을 따라오던 병사 중 일부가 듣고 이번 작전이 원래부터 위험한데 이제 남강 북쪽의 무녀까지 있다는 생각에 자연히 공포에 휩싸였다.만아를 야영지로 보내고 장수들이 만아를 죽이자고 제안을 하자 위왕이 기가 막혀서 물러가라고 꾸짖었으나 군사들의 들끓는 여론을 차마 막을 수 없었다.이때 군사들이 무질서해졌고 박원이 나서서 설득하자 잠시 진정이 되었다.그런데 사식이와 서일이 아직 쫓아오지 못해 20여리 정도 차이가 나는데 날은 이미 어두워져 산속에서 하룻밤 보내고 내일 다시 쫓아갈 수 밖에 없었다.그리고 대주 쪽에서는 우문호와 원경릉이 현대에서 돌아와 하루를 묵은 뒤 돌아가려고 하는 중이었다. 진정정은 우문호가 이렇게 빨리 돌아갈 줄 모르고 한 번은 만류했지만, 우문호가 걱정하며 말했다.“남강 북쪽에 변수가 많아. 원 선생은 돌려 보내고 난 서둘러 남강 북쪽으로 지원을 가야겠어.”진정정이 제안하기를, “어쨌든 우리 부부도 지금 일이 없으니, 나와 자네가 사람들을 데리고 남강 북쪽으로 지원을 가고, 근영이가 태자비와 아이들을 호송해 귀국하는 건 어때?”그러면 당연히 최고다. 하지만 우문호가 반대했다.“자네 그렇게 오래 떠나 있어도 되나?”“괜찮아, 지금 대주는 태평성대라 건곤검이 국내로 들어오면 내가 몇 개월 떠나 있는 건 문제 안돼.” 진정정이 은은한 눈빛으로 말했다.“그리고 자네와 같이 손 잡고 전장에 나갈 수 있으면 내게는 영광이지.”우문호가 진정정과 같이 갈 수 있다면, 험하고 힘든 여정은 바로 허니문으로 변할 것이다.우문호는 혼례를 올리고 두 사람이 허니문을 간다는 얘기를 현대에서 배웠다. 근데 두 사람의 흥겨운 여행이 바로 허니문이라니! 직진밖에 모르는 두 남자는 각자 집으로 돌아가 아내에게 바로 얘기했다. 근영은 기뻐하며 마침 북당에 연 정풍호를 시찰 하겠다고 했다.원경릉도 바라 마지 않는 것이 원경릉 맘속엔 한쪽은 정화군주 걱
거스를 수 있는 죽음자리에 앉은 뒤 진근영이 먼저 말을 꺼냈다.“공자께서는 역시 북당에 정착하실 예정이십니까?”“예, 북당은 산수가 훌륭해 건강에 좋지요!” 홍엽이 담담한 눈빛으로 진근영을 흘끔 보는데 진근영을 바라보는 걸 조금도 감출 기색이 없었다. “다른 의도가 없다면, 경치가 좋지 않은 곳이 어디 있겠습니까.” 진근영이 말했다.홍엽이, “군주께서는 참 지혜롭게 말씀하시는 군요, 한 수 배웠습니다.”“서로 띄워주는 걸 싫어해서요.” 진근영은 솔직해서 까놓고 말하는걸 좋아하지, 과장하는건 몹시 싫어한다.홍엽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아뇨, 띄워주는 게 아니라 그토록 많은 사람을 알고 지내지만, 군주는 저를 가장 탄복하게 했던 적수였습니다.”진근영이 연신 고개를 저었다.“당신이 전에 나를 적수로 여겼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바보처럼 가지고 놀았죠. 대주와 선비 북막의 전쟁이 시작된 것을 빌어 앉은 자리에서 어부지리까지 얻으셨으니.. 뜻대로 돼서 아주 좋으셨겠습니다?”홍엽이 눈살을 찌푸리며 따져 물었다.“군주께서는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대주와 선비 북막의 전쟁은 피할 수 없었습니다. 전 개전 시기를 조금 앞당겼을 뿐으로 대주에게 손해를 입히지 않았고 오히려 대주를 도왔습니다. 안 그러면 황제 폐하께서 왜 저를 군왕으로 삼으셨겠습니까?”“당신들 같이 사람을 가지고 놀며 음모를 꾸미는 사람들은 뭐든 말이 되게 만들죠.” 진근영은 홍엽과 말다툼하기를 깔끔히 포기했다. 싫어하는 사람과 말을 섞고 싶지 않은지 벌떡 일어나 인사하고 총명 현명이에게 문 앞에서 지켜보게 했다.홍엽이 하는 수 없다는 듯 말했다.“군주께서는 절 싫어하시니 저도 억지 부릴 필요가 없군요.”“군주가 당신을 좋아하든 말든 나도 신경 안 쓰니까.”“그래요!” 홍엽이 젓가락을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더니 원경릉에게 말했다. “입궁해서 태후 마마를 뵙고 사흘간 사라지셨다는데 사흘 동안 어디를 다녀오셨습니까? 저한테 알려주실 수 있나요?”원경릉이 고개를 들고 답
고민하는 원경릉홍엽은 원경릉이 냉정하게 전혀 동요하지 않는 듯한 모습을 보며 분노했다.“당신을 줄곧 좋은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고자세로 생사 따위 깔보는 걸 보니.. 제가 당신을 잘못 봤군요. 자신은 생사 밖에 존재하는 초월적 존재라 그러든 말든 상관없다는 식이 제가 보기엔 위선자로 밖에 안 보여요. 제가 가식적이라고요? 만약 죽은 사람이 우문호나 당신의 아이면? 당신이 여전히 이렇게 동요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홍엽이 말을 마치자마자 차갑게 원경릉을 째려보고 소매를 홱 떨치더니 가버렸다.원경릉은 홍엽의 분노한 뒷모습을 보며 쓴 웃음을 졌다. ‘에휴, 진짜 본 모습의 홍엽을 만난 셈 치자, 정말 유쾌하지 않았지만.’위선자다, 가식적이다, 구구절절이 핵심을 가르는데 반박할 수가 없다.왜냐면 원경릉이 바로 사망을 거스른 사례로, 본인은 죽음을 거스른 특권을 누리면서 다른 사람이 누리지 못하도록 때려 부숴버린 점은 경멸 받을 만한 행동이기 때문이다.진근영이 원경릉 앞에 나타났다. 홍엽에 대해 계속 경계하고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에서 듣고 있다가 홍엽이 가자 방으로 들어온 것이었다.“홍엽 말 마음에 두지 마요, 태자비가 잘못 한 거 없으니까.” “전 괜찮아요. 홍엽의 분노를 접할 마음의 준비를 미리 해놨으니깐요. 이건 처음부터 제가 잘못한 일이었어요. 다행히 바로잡아 정상으로 되돌릴 기회가 있어 계속 잘못한 채로 있지 않아도 됐지만.”“흠, 자기가 뭘 하고 있는지 알고 있다면,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하든 신경 쓸 필요 없다 생각해요.”원경릉은 마음을 굳혔으나 홍엽의 말에 괴롭고 부끄럽기는 마찬가지였다.시무룩하게 방으로 돌아가자 우리 떡들과 쌍둥이가 방에 있어 원경릉은 유모들을 내보내고 쌍둥이를 품에 안은 채 작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사실 엄마는 너희들이 보통의 애들이었으면 하고 더 바래.”경단이가 자상하고도 예민하게 원경릉 무릎에 엎드렸다.“엄마, 기분 안 좋아요?”“아니.” 원경릉이 쌍둥이를 내려놓고 경단이의 머리를 쓸어주며,
냉정언은 자기도 모르게 죄책잠이 들어 미간을 찌푸렸다.‘이번에 정말 큰일을 저지른 것인가?’그는 그저 탕양에게 술을 먹여 일곱째 아가씨에게 진심 어린 말을 꺼낼 용기를 주고자 했을 뿐이었다. 그동안 탕양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는 황제뿐만 아니라 모두가 알고 있었고, 다들 그를 안타까워했었다.탕양은 다섯째가 초왕이었을 때부터 초왕부와 다섯째, 그리고 나라와 백성을 위해 많은 일을 해왔다. 그렇게 반평생을 북당을 위해 헌신했으나, 그를 진정으로 주목한 이는 많지 않았다. 특히 과거에 자신도 용납할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른 탓에 평생을 스스로도 용서하지 못한채, 조정을 위해 뛰어난 공을 세우고도 관직이나 봉록을 거절하며 죄를 속죄하듯 살았다. 하지만 진심으로 그를 아끼는 사람들은 그를 탓하지 않았다. 어렸을 때는 누구나 실수를 범할 수 있는 법이니까. 탕양은 이미 그 누구보다 훌륭히 잘해왔고, 게다가 정과 의리에 발목 잡힌 것은 많은 영웅이 저지르는 흔한 실수였다. 고금의 역사를 통틀어, 결코 그 혼자만이 저지른 행동이 아니었다.탕양은 일곱째 아가씨와 벗이라는 관계를 유지하려 했지만, 그의 마음속에서는 늘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니 술에 취하지 않은 이상, 맑은 정신으로는 절대 이야기를 꺼낼 수 없었을 것이기에, 술에 취하게 하면, 경성이 아닌 변방의 시끌벅적한 분위기 속에서 몇 마디 속마음 정도는 털어놓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이었다.하지만 예상외로, 탕 대인의 마음속에 얼마나 많은 감정이 쌓였던 건지... 만취 상태에서 무슨 일을 저지른 것 같았다. 대체 이 마음을 얼마나 오랫동안 품었던 것일까?상황이 아주 복잡해졌다.‘탕 대인 아주 못 쓰겠구먼! 이를 어찌 마무리 짓는단 말이냐…?!’원가의 상대하기 쉽지 않은 여장군들을 떠올리니, 냉정언은 순간 뒷골이 땡겨 머리를 쥐어뜯었다.그러고 나서 고개를 돌리니, 냉명여가 눈 앞에 서 있었다. 냉명여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조심스럽게 물었다.“아버지, 탕 대인은 어찌 일곱째 아가씨와 그런 일을 벌인
탕양은 지금까지 살면서 술에 취해 저지른 잘못이 단 하나뿐이었다. 비록 그 일도 나중에 사실이 아니었음이 밝혀졌지만, 그 일로 그는 술에 취하면 정말로 이성과 기억을 잃게 만든다는 것을 깨달았다.그렇기에 그 후로 술을 마시더라도 되도록이면 취하지 않게 애썼다. 하지만 어젯밤은 예외였다. 그는 이곳 사람 모두를 믿고 있었기에 경계를 풀었던 것이다.남녀 간의 일도 이제는 기억이 가물가물할 정도가 되어서 어젯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조차 알 수 없었다."의부님! 의부님!"바로 그때, 문밖에서 호명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탕양은 화들짝 놀라며 재빨리 호통쳤다."일단 들어오지 말거라!"그는 급히 이불을 걷어내고, 바닥에서 옷을 찾아 황급히 입은 후, 이마를 문지르며 정신을 가다듬은 뒤에야 문을 열어 주었다.문밖에서 호명이 물었다."이제 막 일어나신 겁니까? 아직도 취기로 힘드십니까?"탕양은 머릿속이 어지럽고 복잡했지만,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답했다."괜찮다. 무슨 일이더냐?""식사하시라고 부르러 왔습니다. 아! 일곱째 아가씨께서 경성으로 돌아간 것을 알고 계십니까? 같이 가실 줄 알았는데 먼저 떠나셨더군요.""… 돌아갔다고?!"탕양은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예!"호명이 그의 얼굴을 보다가 잠시 멈칫하며 말했다."의부님… 혹시 어젯밤 누구에게 맞으셨습니까?"탕양은 무의식적으로 얼굴을 만져 보았는데, 그제야 얼굴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그는 황급히 동경을 찾아 얼굴을 비춰보았는데, 왼쪽 뺨에 여러 개의 손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분명 누군가에게 뺨을 맞은 것 같았다.그러자 어렴풋이 한 여인이 세게 뺨을 때리며 욕설을 퍼붓고,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떠올랐다.하지만 여전히 머릿속이 텅 비어 있어 창백해진 안색으로 생각에 잠겼다.‘설마 내가 취기를 빌어... 그래서 떠난 것이었구나...’이번 사건은 목숨을 내놓고 속죄해도 부족할 정도였다."말을 준비하거라! 어서!"탕양이 갑자기 눈을 번쩍 뜨며 소리
연회는 계속 진행되었고, 냉정언은 술잔을 들고 계속 탕양에게 술을 권했다. 잔을 몇 번이나 주고 받자, 탕양은 머리가 머리가 어지러워져 말조차 똑바로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연회가 끝난 후, 냉정언이 일곱째 아가씨에게 말했다."술을 꽤 마셨다 보니, 탕양이 좀 취한 것 같네. 정원에 나가 산책을 조금 하면서 술기운을 가시는 것이 어떻소?"일곱째 아가씨도 약간 취한 상태였기에, 바람을 쐬며 땀을 내면 술이 깰 것 같다며 동의했다."예. 그럼 다들 돌아가서 쉬시지요. 제가 호명과 함께 탕 대인을 돌보겠습니다.""좋소. 수고하시게나!"냉정언이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흔들었다."자, 어서 돌아가시게!"그렇게 사람들은 모두 새가 흩어지는 것 처럼 순식간에 사라졌다.일곱째 아가씨는 호명과도 함께 산책할 생각이었는데, 빠르게 사라지는 그들의 모습이 어이가 없는듯 웃음을 터뜨렸다.그러고는 탕양의 붉게 상기된 얼굴을 보고 물었다."괜찮습니까? 걸을 수 있겠습니까?"그러자 탕양이 자리에서 힘겹게 일어났는데, 술에 많이 취한듯 몸을 심하게 휘청거렸다."어찌 못 걷겠습니까? 취하지 않았습니다!""예. 그럼, 몇 걸음 더 걸어보시지요. 정말 못 걸으시겠으면 방으로 돌아가 쉬시고요. 취기를 덜어줄 탕을 준비하라고 하겠습니다."그러자 탕양은 허리에 손을 얹고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걸어나갔다. 곧게 뻗은 직선을 그리며 터벅터벅 걷고는 뒤돌아 일곱째 아가씨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보시지요. 얼마나 똑바로 걷는지! 안 취했습니다. 이제 믿을 수 있습니까?"일곱째 아가씨는 그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그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하하하. 예, 안 취하셨네요. 그럼 이만 나가서 함께 산책하시지요."그녀는 그가 오래 걷지 못할거라고 생각해, 방으로 데려가 쉬게 하기로 했다.역시나 문을 나서자마자 탕양은 난간을 붙잡고 비틀비틀 걷기 시작했다. 하도 휘청거리는 탓에 몇 번이나 넘어질 뻔했기에, 일곱째 아가씨는 결국 어쩔 수 없이 그를 부축했다.그러자
"탕 대인이 저를 예쁘다고 말해 주셔서 정말 기쁩니다. 그러니 일곱째 아가씨께도 예쁘다고 말해 보십시오. 분명히 기뻐하실 것입니다!"하지만 탕 대인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다를 겁니다. 일곱째 아가씨는 이제 그런거에 좋아할 나이를 지났습니다. 지금 그녀에게 예쁘다고 말하면, 그저 무미건조하다고 생각할 것입니다.""어찌 그럴 리 있습니까? 누구나 칭찬받는 것을 좋아하는 법입니다. 탕 대인, 대인께서 정말 재능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아십니까?"탕 대인이 웃음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예? 하하하. 그렇습니까?""예! 모두가 그렇게 말했습니다!"탕 대인은 자기도 모르게 어깨를 으쓱거리며 미소를 지었다."과찬입니다.""기분 좋으십니까?"택란이 묻자 탕 대인은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다, 이내 뜻을 알아차리고 멈칫하며 말했다."이 녀석!"택란은 그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탕 아저씨도 누군가에게 꼭 사랑받으시길 바랍니다."탕 대인은 이 말에 크게 감동해서 택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말했다."예. 고맙습니다."저녁엔 계약이 성공한 기념으로 연회가 열렸다.소박한 술자리긴 했지만, 커다란 술통들이 준비되어 있어 모두 마음껏 마시며 즐길수 있었다.택란은 술을 마시지 않기에, 주 아가씨가 매실청을 대신 준비해 주었다. 새콤달콤한 맛이 택란의 마음에 쏙 들었다.술잔을 주고받으며 어느 정도 취기가 오르자, 모두 패기 있게 약도성을 북당에서 제일가는 도성으로 만들겠다고 호언장담했다.일곱째 아가씨는 벌써 독산을 어떻게 개발할지부터 고민하고 있었는데, 독산의 아름다움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막막했기에 사람들에게 의견을 구하기 시작했다.각자 다양한 의견을 내놓았지만 대부분이 경치를 개발하자는 내용이었다.반면, 택란은 새로운 생각을 제안했다. 독산에 온천이 있으니 오두막을 지어 온천을 끌어들여 돈을 받고 여러 개의 탕을 이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어떻겠냐며, 온천수가 몸에 좋다는 점을 대대적으로 홍보하자고 제의하였다.택란의 생각은 이 시절
탕양은 자신이 여자의 마음을 어느 정도 이해한다고 자부했었다. 특히 일곱째 아가씨처럼 강인한 성격을 가진 사람은 혼자 지내는 데 익숙하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삶을 더 선호하기에 굳이 자신과 인연을 맺으려 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이는 그의 큰 착각이었다.여인의 마음은 늘 갈대처럼 변덕스럽고, 아무리 강인한 사람이라도 다정함이 필요한 순간이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일곱째 아가씨는 오랫동안 혼자 외롭게 지내왔는데, 중년에 접어들며 그 외로움이 더욱 깊어진 것이다.누군가 곁에 있다면, 삶의 방식도 달라질 수 있지만, 물론 잘못된 연으로 나빠질 가능성도 있었다.원가의 가훈은 항상 군주에게 충실하며, 엄청난 용기도 있었다. 심지어는 원가에서 키운 닭조차 남의 집의 닭보다 더욱 용감할 정도였다.하지만 한 번의 좌절로 인해 사랑을 믿지 않겠다는 것이 과연 용기있는 행동 일까?물론 그녀가 반드시 탕양을 선택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다른 어울리는 사람을 만나 다시 한번 용기를 내볼 수도 있었다.하지만 탕양이 먼저 용기를 내어 말한다면, 그녀 역시 그에게 기회를 줄 것이다.여태껏 그녀의 마음에 들어온 사람은 오직 탕양뿐이었다.그리고 어쩌면 시도해 봐야만 서로 맞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탕양과 잘 맞는다고 느끼는 건 그녀가 스스로 마음의 문을 닫아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착각일지도 모르니 말이다.경성으로 돌아간 후에도 탕양이 말을 꺼내지 않는다면, 그녀는 공개적으로 구혼에 나설 생각이었다. 한편, 택란이 주 아가씨와 함께 밖으로 나가며 물었다."탕 대인이 왜 나쁜 사람인 것이오?""여인을 훔쳐봤습니다.""탕 대인이 아가씨를 좋아하지 않소? 어찌 못 보는 것이오?"주 아가씨는 택란이 이런 부분에 대해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공주에게 가르쳐야겠다고 마음먹으며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사내가 여인을 사모하면 상대의 시선을 바라보지, 다른 곳을 쳐다보지 않습니다. 그러니 탕 대인은 일곱째 아가씨를 사모하는 것이 아닙니다.""그
그녀는 탕양을 힐긋 바라보는데, 예전의 담담하고 온화한 모습 없이 뜨겁게 자신을 응시하고 있었다.그녀는 그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기에, 절대 먼저 말을 꺼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평생 그렇게 죽을 때까지 버틴다 해도, 제자리에 머물러 기다리지 않을 것이었다."탕 대인, 지금 어디를 보는 것이오?"그때, 냉정언이 물었다."예? 무슨 말이십니까?"탕양은 서둘러 정신을 차리고 냉정언을 바라보자, 냉정언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탕 대인께서 계속 일곱째 아가씨의 가슴팍을 보고 있었소. 무슨 생각을 하시는 것이오?"이 말이 끝나자마자, 모두가 술렁이며 이상한 시선으로 탕양을 바라보았다.그러자 주 아가씨가 급히 택란의 귀를 막으며 말했다."보지도, 듣지도 마십시오!"탕양은 크게 당황하며 두 손을 마구흔들었다."아닙니다! 전 그러지 않았습니다! 냉 대인께서 잘못 보신 겁니다.""아니오. 분명 아가씨의 옷깃과 가슴을 보고 있었소!"말을 마치자마자 냉 대인은 숭이를 안고 단호하게 밖으로 나갔고, 탕양은 얼굴을 붉히며 변명이라도 하기 위해 일곱째 아가씨를 쳐다봤다. 그러자 일곱째 아가씨는 기침을 하며 옷깃을 정리한 뒤 소리쳤다. "흥. 변태!"말을 마치자마자 그녀도 돌아서 나가버렸다.탕양은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당황한 얼굴로 주 아가씨와 홍엽을 보며 말했다."다들 보지 않았습니까? 제가 그런 게 아니라는..."홍엽이 소매를 휘두르며 말했다."눈이 자네 얼굴에 달려 있는데, 자네가 누굴 보고 어디를 보는지 우리가 어찌 알겠는가?"주 아가씨는 택란의 손을 잡고 나가며 말했다."마마, 이제 탕 대인 같은 사람하고 어울리지 마십시오. 인품이 좋지 않으신 것 같습니다!"탕양은 여전히 몹시 당황한 상태였다. 냉정언의 한마디에 그의 처지가 아주 난감해져 버렸다.그는 그런 사람이 아닌데 말이다. "명여야..."냉명여 또한 귀를 막고 밖으로 달려 나가며 외쳤다."탕 대인께서는 정말 나쁜 사람이십니다!"탕양은 그만 머리를 감싼
이처럼 독산은 마치 진실한 사람의 마음을 비추는 거울처럼 가장 진솔한 생각을 감출 수 없게 만들었다.일곱째 아가씨는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탕양을 바라보며 말했다."저를 배신한 것을 아직 기억하고 계십니까?"탕양은 그동안 일곱째 아가씨와 이 일을 얘기하고 싶었지만, 그녀는 항상 담담한 태도로 과거 이야기를 피하며 언급하지 않았었다. 그런 그녀가 갑자기 이 말을 꺼내니, 탕양은 잠시 멍해졌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당연히 기억하고 있지요..."일곱째 아가씨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기억하고 있다면, 제가 독산을 얻을 수 있게 잘 도우십시오. 독산을 개발할 수 있다면 앞으로 15년간의 수익은 전부 제 것이 될 겁니다. 그리고 15년 뒤에는 이익을 반으로 나누겠습니다. 절대 3할만 받을 수는 없습니다."탕양은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하지만 폐하께 이미 3할이라고 말씀드렸는 걸요.""그건 대인의 일이지요. 폐하를 오랫동안 모셔 왔으니, 대인의 공로를 인정하고 배려해 주실 것입니다. 이건 대인께서 누구의 이익을 우선시할지에 달린 것 아닙니까?"그러자 탕양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아가씨, 3할이라도 충분히 좋은 제안이지 않습니까? 그저 길만 새로 만들면 되고, 심지어는 조정에서 나서서 도와줄 것이니, 초반 투자 비용도 그렇게 많이 들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장사를 시작하면, 놀러 오는 자들에게 먹거리와 즐길 거리로 돈을 적잖이 벌 수 있습니다.""반으로 나누는 것까지만 양보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익을 중시하는 상인인 것을 잘 알지 않습니까."탕양은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예. 폐하께 돌아가 말씀은 드리겠지만… 무조건 그 조건을 따내겠다고 장담할 순 없습니다.""못 따내도 그만입니다."일곱째 아가씨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앞으로 제가 독산에 몇 번이나 올 수 있겠습니까? 어차피 조정에서 독산을 얻는다고 해도, 굳이 그렇게 많은 돈을 쓸 필요가 없습니다."탕양이 웃으며 답했다."이곳에서 지내면서 머물어도 되지 않습니까? 늘
일곱째 아가씨는 산 입구에서 지옥의 불꽃을 보자마자 순간 홀린 듯 그 자리에 멈춰 섰다. 꿈속에서 본 그 꽃이 눈앞에 펼쳐지니,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할 수 없는 것 같았다.탕양이 손을 뻗어 꽃을 따려 하자, 일곱째 아가씨가 급히 소리쳤다."지금 뭐 하는 것입니까? 당장 멈추십시오!"하지만 탕양은 이미 지옥의 불꽃을 손에 쥔 채 그녀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이것이 바로 해독제입니다."그는 손바닥에서 꽃을 비벼 즙을 내고는 일곱째 아가씨의 손을 잡아 즙을 그녀의 손등에 묻혔다. 즙은 선혈처럼 선명한 붉은빛을 띠고 있어, 일곱째 아가씨의 손등에 피가 묻은 것처럼 보였다. 그러자 그녀가 멍하니 그것을 바라보며 물었다."정말입니까? 이렇게 신기하단 말입니까…?"그제야 그녀는 과거 산속에서 넘어졌을 때, 얼굴이 지옥의 불꽃에 닿아 꽃 즙이 묻고 나니, 정신이 돌아왔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녀는 그때 자신의 강한 의지로 깨어난 것인줄 알고 있었다."이걸 어떻게 알게 되신 겁니까?"일곱째 아가씨가 호기심 어린 눈길로 묻자, 탕양은 숨기지 않고 답했다."안풍친왕이 말해준 것입니다. 예전에 독산에 와서 방 장군의 유해를 찾을 때 산을 드나든 적이 있었는데, 이 비밀을 알고 있었기에 독산을 드나드는 것에 전혀 문제가 없었다고 합니다. 지금 손등에 지옥의 불꽃 즙을 바른 이상, 산에 들어가도 환각에 휘말리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 독산의 절경을 마음껏 감상하실 수 있다는 말입니다!""그렇습니까? 독산의 비밀을 푸는 것이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렵다고 여겼는데, 이렇게 쉽게 지옥의 불꽃으로 독성을 없앨 수 있었다니요…!"일곱째 아가씨가 중얼거리며 탄식하자, 탕양이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예. 겉보기엔 어려운 일도, 걷기 힘든 길도, 내리기 힘든 결정도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의외로 쉽게 해결할 수 있답니다.""어찌 말 속에 다른 뜻이 있는 것 같습니다?"일곱째 아가씨가 담담한 눈빛으로 그를 힐끗 바라봤다.그러자 탕양이 당황한듯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독산은 약도성에서 ‘귀역’이라고도 불린다.약도성 백성들은 거의 독산에 들어가지 않는다. 해마다 보물을 찾아 벼락부자가 되길 꿈꾸며 산으로 들어서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무사히 나오는 사람은 극소수였기 때문이다.심지어 살아서 나온 사람 중에서도 정신이 나가거나 미쳐버린 자들이 적지 않다.그래서 조정 신하가 독산에 들어가겠다는 소식은 백성들의 큰 주목을 받았고, 심지어 일부는 관저로 직접 찾아와 독산이 위험하다고 경고하며 요괴와 귀신이 들끓으니 절대 들어가지 말라며 충고까지 했다.그러자 탕양은 그들에게 독산에 요괴나 귀신이 있는 곳이 아닌, 신령과 신선들이 지내는 신성한 곳이라 말했다. 그동안 산에 들어갔던 백성들이 그만 욕심에 사로잡혀 신령을 거슬렀기에 독산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라고, 경외심을 품고 신앙심을 가지고 들어가면 무사히 나올 수 있다며 설명까지 덧붙였다. 그리고 이 말은 당대 국사가 직접 언급한 것이라며, 이를 검증하기 위해 자신이 파견된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탕양 또한 이 말을 하면서도 내심 불안했다. 사실은 이 이야기 모두 황제가 부유한 이들과 이웃 나라의 신도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근거 없는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이기 때문이다.하지만 독산의 풍경은 북당에서의 유일무이한 절경이었기에 탕양은 결국 독산의 모습을 드러내고 개방하자는 제안에 동의했던 것이다. 탕양의 말을 믿는 사람은 그저 소수에 불과했고, 믿지 않는 사람, 의심하거나 반신반의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저 상황을 지켜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산에 들어가기 전, 탕양이 일곱째 아가씨에게 물었다.“정말 나와 함께 들어갈 셈입니까?”일곱째 아가씨는 젊은 시절 한 번 독산에 들어간 적이 있었는데, 멀리 가기도 전, 산속에서 만난 지옥의 불꽃에 매료되었다. 그렇게 꽃밭에서 넘어진 후, 정신을 차리자마자 황급히 산을 빠져나왔던 것이다.하지만 산을 떠난 후에도 그 붉은 색의 꽃은 그녀의 마음속에 잊히지 않았고, 마치 주문에 걸린 듯 계속 머릿속에 떠올랐다.다시 독산에 오자, 과거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