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렁크 선물서일은 상자안에 뭐가 있는지 엄청 보고싶지만 태자비의 울 것 같은 표정을 보니 자기가 여기 눌러 앉아있는 건 아무래도 아닌 것 같아 나와서 문을 닫았다.상자는 원경릉만 알고 있는 비밀번호로 잠겨 있는데 555를 누르고 열더니 울다 말고 갑자기 웃는 게 아닌가. 비밀번호를 세팅하던 당시 간단한 걸 생각하다가 5, 3개를 택했는데 자기가 하필 딱 다섯째 황자에게 시집올 줄이야.상자를 여는 순간 원경릉은 다시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우문호가 원경릉을 껴안으며 작은 소리로, “울지 마, 그분들이 물건을 보내온 건 좋은 일이니까.”하나하나 꺼내 보니 옷인데 이상야릇하면서도 예쁘다. 그리고 작은 모자도 2개 있고 모자 위에는 귀가 달려서 아래로 쳐진 귀가 너무 귀여운 게 토끼 같다.그리고 안에는 장신구 상자가 몇 개 있어서 우문호가 열어보니 황금 열쇠로 ‘장수평안 부귀영화’ 8글자가 한자로 적혀 있어 알아 볼 수 있었다.“이 병은 뭐야? 입이 달렸어!” 우문호가 젖병 두개를 들고 갸웃거렸다.원경릉이 눈물을 닦으며 복잡한 감정이 휘몰아치는데, “이건 아빠 엄마가 쌍둥이에게 주시는 젖병으로 젖을 먹이는 용도야.”“젖을 먹인다고? 유모가 붙어있는데……어디다 쓰는 거야?” 우문호는 젖병의 용도를 이해하지 못했다.“아니, 양젖을 먹이는 용도야.” 원경릉은 바닥에 휴대폰이 있는 걸 보고 얼른 집었는데 원래 자기가 사용하던 것으로 갤러리를 여니 전에 찍은 사진이 삭제되지 않은 채 남아 있고 새로 찍은 영상도 몇 개 있다.“이건 뭐야?” 우문호가 놀라서 혀를 내두르며, “어? 안에 사람이 있어? 맙소사, 안에 사람이 있어. 마술상자야?”원경릉은 너무나 감격해서 어쩔 줄 모르겠는데, “이건 휴대폰이란 건데 촬영해서 기록해 두는 기능이 있어. 부모님들이 나와 얘기하고 싶을 때 동영상을 촬영하면 내가 그 말을 들을 수 있고 그리고 전화도 할 수 있는 거야. 좀 보자.”두 사람이 나한상에 앉아 동영상을 열어보니 영상이 4개 있고 처음은 아빠 거다. “경릉아,
소중한 선물들세번째 영상을 열 때 원경릉은 이미 울어서 눈이 퉁퉁 부었다.이번엔 엄마로 원경릉은 엄마 얼굴이 카메라에 비치자 거의 무너질 듯 전신을 떨었다. 엄마가 말도 못하고 눈물부터 흘렸기 때문이다.“경릉아, 잘 지내니……” 목이 메어 말끝이 흐리다. 카메라가 약간 흔들리고 흐느끼는 소리가 들리더니 렌즈에 천장에 비치며 가슴이 갈기갈기 찢기는 듯한 울음소리가 들렸다.잠시 후 오빠 얼굴이 나오고 약간 쉰 목소리로, “엄마는 녹화를 못 하겠어, 감정이 제어가 안된다. 다음에 다시 엄마 거 녹화할 게.”원경릉이 울면서 휴대폰 액정을 매만지더니 미친듯이 엉엉 울며, “엄마, 나 잘 지내, 잘 지내고 있어, 엄마 목소리 듣고 싶어, 엄마……”원경릉은 네번째도 엄마 인줄 알고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바로 열었는데 네번째는 주진이었다.주진은 동그란 테 안경을 쓰고 연구소에 있는데 먼저 자기를 찍고 다음에 컴퓨터의 어마어마한 데이터를 비추며 옆에서, “이건 최근 선배의 대뇌 활동 정도를 모니터링한 데이터로 뉴런은 여전히 방전되어 있고 필름상 선배의 대뇌 활동 영역을 볼 수 있어요. 선배가 이미 쌍둥이를 낳았다고 경단이가 말해 주더군요. 그래서 필름에서 뇌세포 활동 정도가 낮아지는 건 아이를 낳은 뒤라서 그런 것이 틀림없어요. 아이를 낳고 선배의 일부 뇌세포는 천천히 정상적인 노쇠와 사망을 보이지만 노쇠와 사망이후 새로운 세포가 생장하고 있어 평균 수를 유지 하고 있으므로 현재 당분간 위험은 없을 것 같아요. 하지만 약품 연구가 아직 성공하지 못했어요. 어디가 문제인지 모르겠는데 이 데이터 보이나요? 아니면 나중에 하나하나 찍어서 보여드릴 게요. 하지만 사진이 많을 거라 휴대폰 배터리가 사진을 다 볼때까지 있을지 모르겠네요. 만약 인쇄할 수 있으면 큰 트렁크 몇개에도 다 못 담을 분량으로 쉽게 보내기도 그래요. 만약 선배가 못 받고 세상에 알려지면 아무래도. 만약 이번 걸 잘 받을 수 있으면 다음엔 다시 데이터를 보낼 게요. 경호를 퀵 배송으로 써서 비록 좀
뭐가 제일 좋아?그리고 원경릉이 가장 놀랍고 기뻤던 건 빗 위에 사람이 둘 조각되어 있었는데 얼굴만 있고 아주 정교하게 조각한 건 아니라 좀 아마추어 스럽지만 세밀해서 하나는 남자 하나는 여자인 걸 알아볼 수 있다. 얼굴 두개가 나란히 있는데 왼쪽에는 오(五)자, 오른쪽에는 원(元)이 써 있다. 합쳐서 읽으면 오원이다.그러니까 이 머리는 하나는 원경릉이고 하나는 다섯째 황자, 즉 우문호다.이 ‘천부적인 솜씨’의 조각과 참신함 이라고는 눈 씻고 봐도 없는 글자에 원경릉은 피식 웃음이 나왔다, “만질 때 편한 게 재료가 좋네. 마음에 들어.”우문호도 자기가 조잡하다는 걸 알아서 방금 집은 펜던트를 박달나무 빗 작은 구멍에 끼우고 펜던트를 늘어뜨리자 술이 늘어지며 그래도 정교하고 우아해 보인다. 당연히 제일 큰 공로는 옥 펜던트와 박달나무라는 재료지만 조각을 빼놓으면 섭섭하다.이런 세심함에 원경릉이 감동했지만, “빗은 왜 주는 건데?” “혼인할 때 빗으로 머리를 빗기면서 상서롭고 길하다고 하잖아? 이 빗은 오래오래 쓸 수 있어서 우리가 백발이 되도록 쓸 거야. 민간에서는 그런 의도인 거 같던데 나도 잘 모르고 기상궁에게 이런 조각에 대해 물어보니 만아가 사식이에게도 조각을 선물했다며. 좋은 뜻이라고.”우문호는 자신이 생각해도 좀 초라한 지 다른 사람들은 전부 보석을 한 무더기 씩 가져다 바치던데, 결국 말투가 상당히 겸연쩍어 졌다.“난 좋아!” 원경릉이 빗으로 머리를 빗는데 정말 손에 착 붙는게 아담하고 잘 빗긴다.우문호가 안도하며 웃더니 갑자기 다시 긴장하며, “그 오원, 시나 뭐 멋진 문장으로 바꿀까? 좀 있어보는 말로?”“싫어!” 원경릉도 따라 웃으며, “이게 너무 좋아, 딱 우문호스러워.”진부한 시나 문장 나부랭이가 있었으면 오히려 촌스러웠을 것이다.“정말 좋아?” 우문호가 안심이 안 되는 게 솔직히 뭐 대단한 건 아니잖아.“좋아, 진짜 마음에 들어. 의미있잖아. 자기가 마음 쓴 게 보이고 금은 보석을 주는 것보다 훨씬 좋아.” 원경
현대에 보내는 동영상우문호가 한참 있다가 힘없이, “빗은 다 내가 만든 거야. 얼굴만 조각한 게 아니라.”원경릉이 우문호에게 뽀뽀하며, “감사인사는 이거면 될까?”우문호가 눈에 불이 번쩍이면서, “애들도 만 한달이 지났고 우리 교류를 한걸음 더 깊이 진행해 볼까.”원경릉이 우문호를 밀치며, “난 동영상 한번 더 봐야 하고 자기도 할 말 생각해 놔. 장인 어른께 할 말 내가 찍어서 그분들께 보낼 게.”“어?” 우문호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소위 휴대폰이 어떤 것인지 거의 이해를 못한 관계로 사람이 어떻게 들어간다는 거지? 그리고 안에서 얘기를 할 수 있다니, “내가 장인어른께 무슨 얘기를? 난 우는 거 못하는데.”“누가 울래?” 원경릉이 뾰로통하게 우문호를 째려보며, “자기 지금 서일 닮아가는 거야? 어째 갈수록 멍청해 지는 건데?”“하지만 안 울면 존중하지 않는 것 같잖아. 그리워하는 것 같지 않고.”“몇 마디 녹화해서 그분들께 자기 모습 보여드리고 자기 목소리 들려드리는 거지. 무슨 얘기를 하든 자기가 알아서 하면 돼, 울 필요 없어.” 우문호가 뭘 그리워해? 그분들을 알지도 못하는데. 그리고 바로 그 점이 원경릉을 아프게 했다. 우문호를 위해 아이를 다섯이나 낳았는데 우문호는 장인 장모를 알지도 못한다.다음날 원경릉은 휴대폰을 들고 할머니에게 가서 서로 소식을 주고받는 결과를 보여드리자 할머니가 아주 만족하시며, “잘됐구나, 다행히 걔들에게 사위를 보여줄 수 있게 됐어.”첫 영상으로 원경릉은 일단 할머니를 찍었는데 할머니는 말씀이 많지 않고 그쪽에 대해선 안심하고 있어서 몇 마디 염려의 말씀만 하셨다.우리 떡들을 찍는데 그게 아주 난리법석이라 장난감이란 장난감은 다 꺼내고 눈 늑대를 안고 타고 움켜쥐고 모든 자세를 다 한번씩 찍고 30분을 찍고도 그만 하기 싫어했다.마지막으로 세 아이가 나란히 카메라를 보고 웃고, 걔들 앞에 각자의 눈 늑대가 엎드려 있었다.우리 떡들 영상을 다 찍고 두 분의 ‘침착맨’을 찍으러 갔다.‘침착맨’들
우문호의 첫 동영상“아냐, 이 흉터는 너무 험악하게 보여.” 우문호는 타협하지 않는 게 첫 촬영이라 완벽해야 했다. “장인 어른께서 날 흉악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시는 거 싫어. 내가 아내를 때릴지는 않을까 의심하실 거야.”“그래, 자기 천천히 준비해.” 원경릉은 어이가 없어서 웃음만 나왔다.거울 앞에 선 우문호는 비녀를 바꿨다가 관을 바꿔 썼다가 또 일어나더니 옷이 어울리나 보고 전부 딱히 만족스러운 것 같지 않다.“내가 그랬잖아. 옷을 몇 벌 더 만들었어야 했다니까.” 우문호가 볼멘 소리로 말했다.“알았어, 나중에 재봉사를 불러서 만들라고 할 게.” 원경릉이 웃으며 말했다.“이 옷은 작년 건데 좀 초라하지 않아? 조복을 입는 게 낫지 않을까? 맞다. 전투복은 어때? 좀 위풍당당해 보이고.” “다 좋아, 자기가 좋으면 뭐든.” 원경릉은 반쯤 나한상에 누워서 조용히 우문호가 치장을 마치길 기다렸다. 우문호에게 시집오고 몇 년간 우문호가 이렇게 외모와 치장에 신경 쓰는 걸 본 적이 없다. 처가를 중시하는 게 좋다. 장인 장모에게 보이는 첫 인상을 얼마나 중요시하는 지 알 수 있다.우문호는 정말 정성을 다해서 조복을 입었다가 전투복으로 갈아입었다가 눈썹이 너무 진하네 너무 무서워 보인다고 조금 깎아내다가 너무 깎아서 새로 상처를 한 줄 더 냈다.원경릉이 낮잠에서 깰 때가 돼서 겨우 우문호가 준비를 마쳤다.원경릉은 게슴츠레한 눈을 뜨고 우문호의 송충이 눈썹을 보고, “이 눈썹……”우문호가 듣자마자 긴장하더니, “이상해? 다시 그릴 게.”“아니!” 원경릉이 일어나 손으로 만지자 손가락에 눈썹먹이 묻어났다. ‘맙소사, 어떻게 그린 거야? 색을 얼마나 심하게 뺀 거야, 물 탔나?’하지만 멋진 것에 놀란 척, “멋있어, 어떻게 그린 거야? 어떻게 이렇게 잘 그렸지.”“정말?” 우문호가 그제서야 안심하고, “원래 내 눈썹이 그렇게 진하다고 생각 안 했는데 방금 자세히 뚫어지게 보니까 꽤 이상한 거야. 이렇게 하니까 훨씬 나은 거 같아.”바르게 앉아
선물의 행방원경릉이 우문호에게 기대 렌즈를 바라보며 굳은 눈빛으로, “그러실 게 틀림없어, 자기는 사람에게 사랑받는 타입인 걸 확신해.”“사실 많은 얘기를 준비했거든. 그분들께 하고 싶은 말이 많아. 몸 건강하시고 우리 때문에 걱정하지 마시라고. 내가 당신을 잘 돌볼 테니까 평생 헤어지지 않고 첩도 들이지 않고 당신 마음을 아프게 하지도 않고…… 엄청 많아. 그런데 이런 말은 안 나오더라.” 우문호가 원경릉의 손을 잡고 원경릉을 응시하며, “당신이 그분들 마음속으로 그리워하는 거 알아, 가끔 밤에 꿈도 꾸고 울면서 엄마 아빠를 부르다가 일어나서는 괜찮은 척 할 때 내 마음이 얼마나 아픈지 몰라. 그런데 도와줄 수가 없어. 어디서 그분들이 오실 수 있도록 할지 모르니까.”원경릉 눈가가 촉촉해 지며, “응.”“우리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경호에서 물건을 보내올 수 있다는 건 사람을 보낼 수도 있을 거야. 반드시 다시 만날 수 있어. 큰 처남이 한 말 듣고 나도 어찌나 마음이 찢어지는지 그분들 만나길 간절히 바래.”“응, 실험을 백 번 하고 의외의 일이 생기지 않으면 사람을 보내는 시도를 할 수 있어. 그렇지 않으면 일단 문제가 생겼을 때 돌이킬 수 없으니까.” 원경릉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원경릉은 조용히 우문호에게 기대서 고요하게 렌즈를 보며 소리 나지 않게, ‘아빠, 엄마, 바로 이 남자예요.’원경릉은 다음날 우문호가 나가고 자기 방에서 영상을 길게 찍고 휴대폰을 잘 싸서 트렁크 아래에 넣은 뒤 여러 물건을 넣었는데 대부분 서화나 골동품 그리고 이 시대에 비교적 재미난 물건들, 또 오빠에게 주는 먹을 쌌는데 오빠는 서예를 좋아한다.트렁크는 서일이 직접 경호에 가지고 갔고 저녁에 만두가 먼저 몸을 차지한 뒤 엄마가 영상을 녹화해서 보냈다고 알려서 오빠가 다음날 가지러 갔는데 연달아 며칠을 갔지만 받지 못했다.만두가 이 사실을 원경릉에게 알리니 원경릉이 난감해서 서일에게 놓은 시간을 물어보니 오시(11시~1시) 약간 지나서라고 했고 경호는 지금 계속
비취로 만든 빗“빗이 이렇게 많이 뭐하게? 그리고 이렇게 좋은 옥으로 만든 빗을 아까워서 머리를 어떻게 빗어?” 우문호가 보낸 선물이니 기쁘다고 말은 하지만 이런 옥을 사려면 돈이 상당히 들었을 텐데 겉치레에 낭비다.사식이가 웃으며, “모르시네요, 태자 전하께서 빗을 선물하신 일이 밖에 전해져서 다들 모방하고 난리예요. 어쩌면 태자 전하께서 그걸 보시고 다시 귀한 빗을 보내신 거 같은데 왜 직접 안 주시죠? 괜히 뭔가 있는 척하시면서.”“그래?” 원경릉은 그런 줄 정말 몰랐다.“그럼요!” 만아도 다가와서 웃으며, “쌍둥이를 낳으시고 초왕부에서 버리는 휴지까지 사람들이 주워 가요. 좋은 운이 붙는다고. 마마와 태자 전하께서 사랑하는 것도 전부 얘기가 돼서 서로 앞다투어 따라하는 걸요.” 원경릉이 어이가 없어 웃음만 나오는데 자신과 우문호의 생활을 들여다보면 흥미 있는 구석이 어디 있어? 쇠털같이 허구한 날 지지부진한 일상 뿐이다.하지만 그게 또 생활의 본질 아니겠어?느지막하게 우문호가 돌아오자, 원경릉은 빗을 얼굴 앞에 들이밀었다.우문호가 옷을 벗으며 한쪽에 있는 비취 빗을 보더니 입을 삐죽거리며, “왜? 내가 준 그거는 싫어?”원경릉이 손을 들어올리며, “싫은 게 아니라, 난 자기가 처음 보내준 그게 좋아. 다시 하나 더 만드느라 돈 쓸 필요 없어. 이게 얼마짜리 옥이야? 싸지 않을 텐데.”우문호가 들고 보더니, “딱 봐도 싼 거 아냐, 이런 투명하게 빛나는 건 천 냥은 나가지?”원경릉이 가슴이 아픈데, “은자 천냥으로 고작 빗 하나 만든 거야? 아이고 세상에!”“내가?” 우문호가 어리둥절해 하며, “이거 내가 만든 거 아냐. 누가 당신한테 준 거야?”“자기가 준 거 아냐?” 원경릉이 당황했다.우문호가 답답하다는 듯, “내가 이런 돈이 어디 있어? 그 박달나무도 다른 사람에게 달라고 해서 한 건데 이런 옥을 내가 어디서 구해?”우문호는 비취 빗을 들여다 보니 위에 글자가 없고 오히려 빗살 하나에 정교한 조각이 하나 있는게 아주 작은
손왕과 홍엽다음날 우문호는 대주의 진정정에게 서신을 받았는데 서신에 그 일의 전후 관계가 소상하게 쓰여있었다.이번 전쟁에서 대주는 마치 신의 가호를 받고 있는 듯 파죽지세로 독고를 몰아붙였는데, 바로 홍엽이 독고의 심복 중 일부를 배신하게 만들어 대주 황제에게 계속 군사정보를 제공했기 때문이다.그리고 홍엽이 대주를 도우면서 관직이나 녹봉을 요구하지 않고, 조정에 출사도 하지 않고 정치에 간여하지 않으며, 봉호조차 없는 그저 홍엽 군왕이라는 명목상의 신분만을 요구했다. 대주 황제는 당연히 홍엽의 청을 허락했다.이와 같은 사실은 진정정 등이 전쟁 중에 몰랐던 일로 전쟁이 끝난 이제서야 조정에 공개되었다.진정정은 서신 말미에 홍엽을 잘 대비하라고 했다. 이자는 속을 알 수 없고 목적이 불명확해서 그가 뭘 해서 뭘 얻으려고 하는지 아무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우문호와 주재상, 냉정언 등이 모여 홍엽에 대해 분석했다. 만약 홍엽이 대권을 차지하기 위해서 였다면 그자의 힘으로 선비를 거머쥘 수 있었다. 그러나 숙나라를 멸망시킨 후 훌쩍 떠나버린 게 마치 철저하게 아버지 독고가 죽어 시체조차 묻지 못하게 만드는 게 목적이었을 뿐으로 보인다.얼핏 복수처럼 보이지만 만약 최종 목적이 독고의 죽음이었으면 더 빠른 방법을 취했을 것이다. 홍엽은 이미 독고의 신임을 얻었던 상태로 직접 독고를 자극하던지 굳이 이렇게 큰 전쟁을 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도 전쟁까지 일으켜 힘과 정력을 낭비해, 오직 독고의 머리를 얻는 게 전부라면 말이 안된다.하지만 군사정권의 대권을 노리지도 다른 나라를 침략하지도 않았다. 선비의 대권을 취하지 않고 산뜻하게 떠나 대주의 일개 실권도 없는 군왕 자리나 구하다니 속내가 뭘 까? 그리고 그 자리를 원했으면서 대주가 아니라 북당에 오는 건 도대체 무슨 목적인지 알 길이 없다.원래 7국 전체에 가장 신비한 사람이 늑대파 문주였는데 지금은 신분이 공개되어 더이상 신비롭지 않게 되자 이제 신비한 사람은 홍엽이 되었다.홍엽은 정말 수수께끼 인물로
목장에서는 전보다 훨씬 뛰어난 전투마들을 사육했기에, 우문호는 마치 보물을 자랑하고 싶은 어린아이처럼 당장이라도 정정과 함께 보러 가고 싶어 했다.그러자 근영군주가 웃으며 말했다.“폐하께서 아직도 소년 같은 순수함을 지니시고 있다니, 참 보기 드물고 귀한 일이군요.”하지만 원경릉의 귀에는 이 말이 남편이 어린아이 같다는 말로만 들렸다.그녀는 이내 웃음을 터트렸다.“하하하. 사내들이 가끔 저렇게 유치할 때가 있잖습니까.”근영군주도 깊이 공감하며 말했다.“예. 평소엔 유치하다가도, 필요할 때는 놀라운 배짱과 결단력을 보여주지요. 집안을 지탱하기도 하고, 나라를 떠받치기도 하고. 안 그렇습니까?”원경릉도 미소를 띠며 고개를 끄덕였다.“맞습니다.”남자들이 말을 타러 나가자, 원경릉과 근영군주는 궁전 안에서 담소를 나누기 시작했다. 대두가 몹시 심심해하자 원경릉은 친왕비들에게 아이를 궁으로 데려와 아이들끼리 놀게 했다.대주의 손님을 정성껏 대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기에 친왕비들은 아이들을 데리고 궁에 들어왔다.사실 대두와 비슷한 나이의 아이는 많지 않았다. 미색의 두 아이와, 원용의의 아이 모두 대두보다 어렸지만, 놀 벗이 없는 상황에 나이가 어린 것은 크게 문제 되지 않았다.대두는 외동아들로 자라 성격이 다소 거칠었다. 하지만 미색의 딸인 란이 역시 성격이 강하고 고집스러웠다. 어머니인 미색을 닮아 태생이 강한 성격을 타고난 것이었다.게다가 그녀에게 무술을 배워 한창 센 척을 할 시기라 대두와 몇 마디 말다툼 끝에 결국 몸싸움으로 번져 버렸다.란이가 대두를 때리자, 대두는 얼굴이 퉁퉁 부어오를 정도로 맞으면서도 전혀 반격하지 않고 그저 참고만 있었다. 끝까지 이를 악물고 버텨냈다.란이는 평소 늑대파에서 무술 대련을 했기에 상대가 반격하지 않고 그저 제자리에서 맞고만 있는 멍청한 모습을 경험한 적이 없었기에, 부어오른 대두의 뺨을 발견하곤 깜짝 놀라며 물었다.“어찌... 반격하지 않는 것입니까?”대두는 화난 표정으로 대답했다.“어찌
생각해 보면 이렇게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의 혼사를 정하는 것이 얼마나 황당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아이가 남녀인지도 모르면서 성급한 부모들이 충동적으로 혼사를 결정해 버리다니 말이다. “대두가 아직 이리도 어린데, 벌써 혼사를 이야기하다니요, 우리 만두는 아직 애 입니다.”우문호는 괜히 기분이 답답해졌다.현대로 다녀온 뒤, 사람들이 늦은 결혼과 출산을 선호하는 것을 본 그는 생각이 바뀌었다. 열몇 살에 혼사를 하는 것은 성장의 억압이나 다름없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혼사 이야기를 한다고 당장 하는 건 아니오. 그저 약속만 하고, 몇 년 후에 하겠다는 거네.”“어찌 이리도 태연한 것이오?”우문호가 원경릉의 여유로운 표정을 보며 그녀가 그들이 빚을 받으러 온 걸 모르는 건가 싶었다.“난 걱정 없소. 딸을 보내고 싶지 않으면 당신처럼 쓸데없는 부담감 없이 그냥 바로 거절할 것이오. 형제간의 정이 거절로 인해 상할까 봐 고민한다니, 억지로 혼사를 성사하는 것이 더 정을 상하게 할 것이오.”그러자 우문호가 말했다.“이론적으로는 맞는 말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 마음이 편치가 않소.”후궁에서의 우문호는 조정에서의 단호하고 강력한 모습과는 완전히 딴 사람이었다. 조정에 나서기만 하면 단호하고 과감하며, 마치 번개 같은 결단력을 보여주는 반면, 후궁에서의 그는 망설임도 많고 잔소리도 많은 사람이었다. 원경릉이 다른 왕비들과 대화할 때, 그들도 가끔씩 이 얘기를 꺼내곤 했었다. 다들 다섯째의 평소 잔소리가 예전보다 훨씬 많아졌다며 놀라했다. 하지만 다른 친왕들의 의견은 달랐다. 그들은 그가 예전보다 훨씬 결단력이 있어졌다고 말했다.이런 얘기가 나올 때마다 이리 나리는 한숨을 쉬며, 결국 결단력 넘치는 황제도 결국 자식들 문제에서는 고민에 빠지는구나 싶었다.8월 14일, 정정 대장군 가족이 북당의 수도에 도착하자마자 초왕부에 머물렀다.그들은 초왕부에 머문 직후 탕양의 안내로 우문호를 만나기 위해 궁으로 들어갔다.아무리 큰 걱정도 오래된 벗 앞에서
예전에 원가에서 온 가문이 강북부로 이주한 적이 있었다.북쪽은 바람과 모래가 거셌지만 원가의 사람들에게는 전혀 낯설지 않았고, 오히려 고향과 비슷한 정감을 느끼게 했다.이리 나리는 원가의 사업을 줄이도록 도우며, 관리하기 쉬운 몇몇 가게만 남겼다.탕양은 일곱째 아가씨에게 장사를 내려놓아도 괜찮은지 물은 적 있었는데, 그때 일곱째 아가씨가 말했었다.“그런 말 마시오. 내 능력을 충분히 증명했으니 이제 만족스럽소. 열심히 해서 큰 성과를 얻었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오. 평생 바삐 지낼 수도 없잖소. 그렇게 돈을 많이 벌어서 뭐 하겠소? 다 잘 살기 위해 번 것이오. 가업을 나눠 받은 돈만 해도 평생 다 못 쓸 만큼 많소. 그리고 가게들도 계속 돈을 벌 텐데 뭐가 아쉽겠소?”탕양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손에 익은 일이라, 혹시라도 아쉬워할까봐 걱정했소. 사실 나도 당신이 이렇게 고생하는 것이 싫었소. 당신만 괜찮다면 다행이오.”일곱째 아가씨는 미소를 지었고, 그의 말에 모두가 기뻐했다.“한가해지는 것도 괜찮소. 1년에 두세 달은 약도성에 가서 지내면 얼마나 여유롭겠소.”하지만 탕양이 눈살을 찌푸렸다. 1년에 두세 달이면, 왕복하는 시간까지 더해 최소 반년은 걸릴 것이고, 그 말은 반년 동안이나 그의 곁에 없다는 뜻이었다.게다가 그도 경성을 몇 달씩 떠나는 건 불가능했다. 지금은 황제 곁을 하루라도 떠나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하지만 그는 그녀가 행복하면 그걸로 충분했다. 물론 그는 늘 함께하고 싶었지만, 오래된 부부였기에 항상 붙어있을 필요는 없었다.북당은 점점 부유해지고 있었다. 원가가 일부 사업을 매각하면서 그 변화를 실감할 수 있었다.가게들은 치열한 경쟁 속에서 싸웠고, 좋은 위치에 있는 가게들은 더더욱 귀한 존재가 되었다.원래 원가는 모든 가게를 이리 나리에게 넘기려 했지만, 이리 나리는 거절했다.그리고 안풍친왕이 먼저 나서서 이리 나리가 이미 너무 많은 가게를 보유하고 있고, 특히 경성에서의 비중이 지나치게 높아 독점 우
원경릉이 깜짝 놀라며 말했다.“일곱째요? 일곱째는 분명 원용의에게 말할 것이고, 원용의는 또 사식이에게 얘기할 것이고, 사식이도 분명 서일에게 전할 것일 텐데요. 만약 서일이 알게 되면, 이제 북당 전체가 다 알게 될 것이오.”우문호는 순간 당황해하며 말했다.“그건 내가 생각지도 못했네.”원경릉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아마 지금쯤 황실 친왕들 사이에서 이미 탕양의 이야기가 뒷말로 오가고 있을 것이었다. 겨우 부인을 얻었는데, 밤에 함께 자지 못한다니 참 안타까운 일이라 생각할 것이다.우문호는 탕 대인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다들 뒤에서 탕양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여인들이 수군거리니, 남자들은 그를 도우려 했다.물론 부부 사이의 일에 직접적으로 간섭할 수는 없었기에, 대신 탕양을 술자리로 초대해 술로 고민을 푸는 방법을 제안했다.그렇게 며칠째 술을 마시던 탕양은 자신의 비밀이 모두에게 알려졌다는 사실을 깨달아 한숨을 쉬며 말했다.“제 탓입니다. 폐하가 비밀을 지키지 못한다는 걸 깜빡했습니다.”제왕이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너무 신경 쓰지 말거라. 이런 일은 억지로 되는 게 아니다. 여인은 때로 달래줄 필요가 있는 법이다.”그러자 탕양이 어찌할 바를 몰라하며 말했다.“제가 폐하께 이 이야기를 했을 땐, 혼례한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습니다.”“알고 있다. 서두르지는 말거라.”모두가 이해한다는 눈빛으로 탕양을 바라보았지만, 탕양은 더 이상 해명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그들은 이미 혼인했지만, 오랜 부부 생활을 한 터라, 남녀 간의 정이 때로는 하루아침에 급격히 발전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탕 대인은 돌아가자마자 일곱째 아가씨에게 이 일을 전했다.그러자 일곱째 아가씨가 웃으며 한숨을 내쉬었다.“정말이지, 어찌 허구한 날 남의 부부 일에만 관심을 가지니, 할 일이 없나 보오.”“신경 쓰지 마시오. 우리가 잘 살면 그만이니.”탕양은 일곱째 아가씨를 안으며 자신감에 찬 표정을 지었다.
원경릉은 궁으로 돌아와 이 일을 다섯째에게 이야기했다. 그러자 다섯째가 말했다.“사실 한 번 돌아가는 것도 괜찮을 것 같소? 그저 경성만 한 바퀴 둘러보면 되지 않소.”“아이들을 데려다줄 때 휘종제 어르신께서 슬퍼하셨소. 이번 생에 고향으로 못 돌아올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돌멩이 하나를 건네주니, 그걸 안고 울었소.”“정말 안타깝소!”다섯째는 증조할아버지 생각에 마음 아파했지만, 이내 말을 이어 나갔다.“하지만 큰할아버지께서 그를 데려오지 않는 이유도 있을 것이오. 휘종제 어르신을 잘 아는 것도 아니지 않소? 몇 번 만나보니, 활달하고 산만한 성격에 무슨 사고를 일곱째인지 모를 것 같은 느낌이 들었소.”“맞소.”원경릉도 깊이 공감했다. 특히 그가 전화로 끈질기게 설득할 때는 정말 무서울 정도였다.“다른 일은 없었소? 부모님 건강은 어땠소? 처남은 여자 친구가 생겼소? 만두는 공부를 잘하고 있소?”다섯째가 끊임없이 질문했다. “괜찮소. 부모님 건강도 괜찮긴 하지만, 아버지께서 고혈압이 생겨서 약을 오래 드셔야 하오. 오빠는 여자 친구가 없네. 주진과 아직도 서로 솔직히 이야기하지 않은 상황이오. 만두는 걱정 안 해도 되네. 내년에 돌아올 것이니.”“다행이오!”다섯째가 기뻐해 하며 말했다. 그는 늘 만두의 능력을 눈여겨보았기에, 그가 돌아오면 나라의 일들을 조금이라도 도와줄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비록 많은 부담을 짊어지진 못하지만 그래도 괜히 기대가 되었다.“추 할머니 병은 어떠하신가?”다섯째가 또 물었다.“아직은 괜찮소. 아주 좋아졌네. 약에 내성이 생기지만 않으면 큰 문제는 없을 것이오.”원경릉이 말하자 다섯째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분들이 늘 건강해지시길 바랄 뿐이오.”평범한 사람들조차도 적성루 사람들에게 감동하기 쉬운데, 하물며 북당의 황제인 자신은 오죽하겠는가.“계란은 소식 왔소?”원경릉이 물었다.“왔네. 보시오!”다섯째는 소매 안에서 구겨진 편지를 꺼냈는데, 비둘기를 통해 받은 그 편지에는 몇 줄의 짧은
“별다른 뜻은 없소. 오늘 밤에 유난히 감성적이라 그저 한마디 해본 거네. 사실 너무 감동해서 그러네. 비록 항상 탕 대인에게 빨리 혼인하라고 재촉하긴 했지만, 그가 일곱째 아가씨와 혼인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소.”“괜찮소!”원경릉은 그의 품에 안겨 그의 심장 소리를 들으며 말했다.“어쨌든 탕양은 우리와 함께 걸어온 사람이오. 그러니 그가 사랑하는 여인과 함께하게 된 건 우리 모두에게 기쁜 일이오.”우문호는 벌써 술에 취한듯 머리가 약간 어지러웠다. 술에 취하면 항상 눈앞의 모든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곤 했는데, 익숙한 천장, 익숙한 사람, 익숙한 탁자와 의자. 취기가 돌며 모든 것들이 꿈처럼 느껴졌다.그는 마치 다시 초왕 우문호로 돌아간 듯했고, 갓 원경릉과 마음이 통했던 때로 돌아간 기분이었다.그 당시 외부 정세는 불안정했고, 태자 자리를 둘러싼 다툼이 막 시작되었던 때였다. 형제끼리 반목하며, 치열하게 싸웠던 시절을 돌아보면 잃지 않고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얻었다는 사실에 감사하게 되었다.우문호가 원경릉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했다.“원 선생, 몇 년간 아주 긴 꿈을 꾼 것 같지만, 되돌아보니 정말 다행이라고 느껴지네. 사실 모든 행운과 행복은 원 선생의 잘못된 연구에서 비롯된 것이오. 원 선생이 오지 않았다면 내 인생이 어땠었을까 싶네.”그러자 원경릉이 말했다.“누군가가 이 세상에 몇 시간과 공간이 존재한다고 했소.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이 다른 세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을 수도 있네. 아마도 어떤 공간에서는 내가 없는 대신 다른 사람이 당신과 함께 있을 수도 있소.”우문호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그 세상 속의 나는 정말 불쌍할 것이오.”“그건 모르오. 어쨌든 그곳의 당신은 나를 모르고, 우리가 지금 얼마나 행복한지도 모를 것이오. 각자가 행복을 정의하는 방식은 다르오. 어떤 사람들은 매 끼니 고기가 있는 게 최대의 행복일 수도 있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은 봉급이 오르길 바랄 것이오. 또 가족이 화목하고 건강하기를 바라기도 하고
우문호는 혼인을 하사하는 조서를 내렸다. 이는 탕양의 혼사에 화룡점정을 더하는 일이었다.온 경성 사람들이 탕양이 황제를 모시는 신하인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녀의 혼사에 주목했다.탕양은 왕부에서부터 황제를 지지해 온 충신이었으며, 군신 간의 정은 형제의 관계에 못지않았다.거기에 황제가 직접 혼인을 하사했으니, 이는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이었다. 그래서 다들 두터운 예물을 준비해 축하하러 왔다.혼례는 초왕부에서 열렸다. 비록 초왕부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지만, 이번 경사에 많은 지원이 몰렸다. 여러 왕부에서 사람을 보내왔고, 미색은 돈에 힘까지 보태며 혼사 지출의 3할이나 부담했다.희상궁도 돌아와 모든 일을 총괄했다. 희상궁은 비록 나이가 많았지만, 여전히 일 처리 능력이 뛰어났다. 그녀는 여러 왕부에서 온 사람들을 지휘하며 완벽하게 일을 조율했다.혼례 당일, 황제와 황후도 참석했다.신부가 도착하여, 혼례를 올릴 때 우문호와 원경릉은 상석에 앉아 신랑 신부의 절을 받고는, 그 다음으로 기상궁도 절을 받았다.우문호가 원경릉의 손을 잡으며 흐뭇한 표정으로 말했다.“탕 대인이 드디어 철이 들었고, 가정을 이루었으니 정말 기쁘네.”원경릉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제 마음이 풀립니까? 그러니 앞으로는 더 이상 잔소리하지 마시지요.”“잔소리는 계속할 것이다. 이젠 아이를 낳으라고 해야지.”우문호는 걱정이 끝이 없다는 듯 말하자, 원경릉이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아이 낳는 일은 하늘에 맡겨야 하네.”“그래도 몇 가지 비법을 전수해 줄 수는 있소.”우문호가 자부심 넘치는 표정으로 말했다.“좀 더 크게 말해보시오. 다른 사람들이 못 들을까 봐 걱정이오?”원경릉이 그를 흘겨보았다.주변 사람들이 모두 그들을 바라보며 부러움 섞인 표정을 지었다. 많은 사람이 첩을 두고도 황제만큼 자식을 많이 두지는 못했지만, 황제는 복도 많고 자식도 많은 사람이었다. 저녁 연회에서 우문호는 과음했지만 원경릉은 그를 막지 않았다. 이런 노부의 감격은 술로 달래야 한
탕양이 뜨거운 눈빛을 반짝이며 말했다.“거짓말이라면 제 목숨을 앗아가도 됩니다.”일곱째 아가씨가 그의 시선을 보며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돌고 돌아 결국 대인과 함께하게 되었네요. 하지만 미리 말하자면 혼사가 너무 급작스럽게 성사되어 저도 어찌할 도리가 없었던 것입니다. 시집간 후에도 그저 명목상 부부로만 살 뿐, 당분간은 벗으로 지낼 것입니다. 이를 받아들일 수 있다면 혼사를 승낙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없던 걸로 하시지요.”그러자 탕양이 거의 생각할 겨를도 없이 대답했다.“받아들이겠습니다. 무엇이든 다 좋습니다. 혼사만 승낙한다면 그저 명분이라도 상관없습니다!”이로써 드디어 그의 수년간의 바람이 이루어졌다.일곱째 아가씨가 담담히 말했다.“그렇다면 어디서 지낼지 생각해 보시지요. 하지만 대인 방에는 다른 사람이 살고 있으니, 그곳에 지낼 수는 없습니다.”탕양이 다급하게 말했다.“걱정하지 마십시오. 황후 마마와 상의를 해보았습니다. 지금 초왕부에 아무도 살지 않으니, 우선 그곳에서 지내시지요. 전에 그 방은 저도 쓰지 않고, 바로 서일에게 줬습니다.”그러자 일곱째 아가씨가 물었다.“저택을 따로 살 생각은 안 해보셨습니까?”“전에 혼자였을 땐 그런 생각까지 하지 못 했습니다. 초왕부도 누군가 관리해야 하는 터라... 하지만 아가씨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돈을 모아 작은 집이라도 살 수 있습니다.”일곱째 아가씨는 초왕부를 둘러보았는데, 그리 호화롭지는 않았지만, 분위기가 몹시 편안했다. 하지만 황제의 옛 저택이라, 평생 이곳에서 지낼 수는 없을 것이다.“우선은 이곳에서 지내고, 나중에 땅을 사서 직접 집을 지으십시다.”땅을 사고 집을 짓는다는 것은 돈 많은 사람이나 할 수 있는 일이었기에, 탕양은 순간 자기가 보잘 것 없게 느껴졌다.그가 쭈뼛거리며 말했다.“걱정하지 마십시오. 이 일은… 꼭 마음속에 깊이 새겨 두겠습니다.”일곱째 아가씨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땅도 제가 사고, 집도 제가 지을 것입니다. 나중에 대인이 잘못이라
노태군이 손을 흔들며 말했다.“안 된다. 혼인 전에는 신랑 신부가 만날 수 없어. 이건 풍습이고 규칙이니, 어길 수 없다.”그러자 일곱째 아가씨가 웃음을 터뜨렸다.“하하하. 이 혼사에 정해진 규칙이 있긴 합니까? 어머니께서는 제가 그를 만나 오히려 싸움이 나서 혼사가 그릇될까 봐 걱정되시는 것 아닙니까? 어머니께 약속했으니, 반드시 혼사를 올릴 것입니다. 이제 마음이 놓이십니까?”노태군은 이 말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좋다. 너도 장사하는 사람이니 신임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것이다. 약속했으니, 절대 번복할 수 없어. 목을 매겠다는 이 어미의 결심은 너가 반대하면 언제든 효력을 발휘할 것이다.”일곱째 아가씨가 이를 갈며 투덜댔다.“이렇게 얄미운 늙은이는 정말 처음입니다!”“나도 너처럼 고집 센 딸은 처음 본다.”노태군이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웃음소리가 들려오자, 원가 사람들은 그제야 한숨을 돌렸다. 일곱째 아가씨가 시집가는 것이 정말 꿈만 같게 느껴졌다.일곱째 아가씨의 혼사는 원가 사람들에게 마음의 짐과도 같았다.탕양은 일곱째 아가씨가 무사히 경성으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한숨을 내쉬었다. 한숨을 내쉬고 나니, 눈물이 터져 나올 것 같은 감정이 북받쳤다. 그녀에게 아무 일도 없다는 생각에 그는 코끝이 다 시큰 거렸다.그날 밤, 일곱째 아가씨가 초왕부로 탕양을 찾아가자, 탕양은 그녀를 안으로 들인 후, 단둘이 방 안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탕양은 그녀를 바라보았는데, 붉은색 옷차림에 머리를 단정히 올려 깔끔하고 우아한 모습이 여전히 돋보였다. 세월의 흔적이 얼굴에 남아 있었지만, 오히려 그녀의 매력을 더해 주었다.그녀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는 패기 넘치던 청춘 시절이었는데, 눈 깜짝할 새에 이렇게나 많이 늙어 버렸다.탕양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감을 잡지 못했다. 수많은 감정이 얽혀 있었지만, 한마디 말도 제대로 꺼낼 수가 없었다.특히 약도성에서의 일을 겪고 난 뒤라, 첫마디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