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돼?관복을 입은 채로 하회탈처럼 웃으며 신이 나서 뛰어갔다.서일은 역시 그 서일이다.원경릉은 서일에게 은자를 상으로 준비하고 모처럼 궁에서 사람들이 온 김에 점심 식사를 같이 하자고 청했다.주재상은 희상궁의 손을 잡고 가을날의 정원을 거니는데, 가을 국화가 만개하고 장미가 담벼락에 쓸쓸히 타고 올라 분홍색, 자주색 꽃을 피우고 있다. 이리 나리가 보내온 모란은 지금도 아름답지만 조금만 더 있으면 정원에서 독보적인 존재가 될 것이다.두 사람은 정자에 앉아 가을 바람이 호수에 파문을 일으키는 것을 보며 감개무량하다는 듯, “그때 나도 사람들 앞에서 당신한테 구혼했다면 당신은 승낙했을까?”먼 과거를 떠올리면 늘 희비가 교차한다. 희상궁이 살짝 고개를 흔들며, “모르겠어요, 정말 다시 한번 해보면 답을 알 것도 같은데.”“후회한 적 있어?” 주재상은 여전히 마음이 차분해지지 않아 희상궁에게 물었다.“매 순간이 후회죠. 하지만 그때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요. 사람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결정을 해야 하기도 하니까요.” 희상궁이 눈을 내리깔고 자신을 오랜 시간 괴롭혀왔던 결정과 그 후회의 나날을 떠올렸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한다고 무슨 방법이 있을까? 주재상은 당시에 주부 출신의 공자였지만 주부에서는 그다지 눈에 띄지 않았고, 두각을 드러내자 마자 노마님 손에 꽉 잡혀서 반드시 집안의 격이 맞는 귀족 아가씨를 아내로 맞아야만 했다.주재상이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그때는 모두 너무 힘들었다. 살아 있는 게 힘들었는데 남보다 뛰어난 사람은 말할 필요도 없다.이제 그는 한 나라의 재상이다.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존재로 더이상 사람들에게 업신여김을 당하던 쓸모없는 꼬마가 아니다. 주재상은 인생 역전을 이뤘으나 그의 일생은 그다지 즐겁지 못했다.어떤 진리는 어쩌면 나이가 들어서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다.“태자가 이제 자리를 잡아가니 천천히 나도 물러나서 앞으로 당신과 조금 더 같이 있어야지.”희상궁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좋아요.”
중매원경릉이 상당히 의아해 하며, “서일, 이 일은 어머니께 나서 달라고 해야 맞아, 내가 어떻게 서일을 대신해서 혼담을 넣을 수 있어?”서일이, “가능해요, 태자비 마마. 소신이 지금 비록 관원이지만 여전히 태자 전하에 속한 신하로 태자비 마마는 제 주인이니 저와 함께 가서 혼담을 넣어 주시면 됩니다.”“하지만……” 원경릉은 우문호가 얘기한 서일의 집안 사정이 생각나서 떠보듯이, “어머니께서 나서기 힘드실까? 관리로 책봉된 건 말씀 드렸지?”서일이 망설이더니, “다녀왔는데 아직 이 일은 말씀드리지는 않았어요. 혼담을 얘기하니 부모님 생각이 소신이 좀…… 좀 너무 이상적이라고 어머니는 원씨 집안에 찾아가서 혼담을 넣으면 창피를 당할 거라며 싫어하셨어요.”원경릉은 서일이 우물쭈물하는 것을 보고 어머니가 원래 했던 말은 서일이 지금 한 것처럼 순화된 말이 아니라 송충이가 솔잎이나 먹을 것이지 하는 식의 말이지 않았을까 싶다.“서일, 내가 가서 혼담을 넣는 게 법도에 맞는지 먼저 탕대인에게 물어볼까?” 서일은 원경릉이 나서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고 얼른, “태자비 마마 안심하세요. 혼담을 넣을 때 가져갈 예물과 중매인 비용, 그리고 나눠줄 축의금 봉투 전부 소신이 낼 게요. 절대로 태자비 마마께 한 푼도 신세지지 않겠습니다.”원경릉이 해명하며, “서일, 난 그런 뜻이 아니야. 돈에 인색하지도 않고. 단지 혼례라는 것이 부모님의 명에 따른 중매인의 말을 중시한다고 들었어. 서일 부모님이 계신데 혼담을 넣을 때 집안의 어른이 나타나지 않으면 노마님께서 원씨 집안이 존중받지 못한다고 느끼실 까봐 그래. 어쨌든 보통 집안이면 중매인을 불러서 물어보면 그만이지만 원씨 집안은 법도가 있는 집안에 대가족으로 우리도 그 집안의 법도를 따라야지 안 그래?”서일이 고개를 숙이고, “그……그럼 먼저 탕대인에게 물어봐 주세요. 제 자신도 법도가 어찌 되는지 잘 모르겠고, 마마께서 말씀하신 대로 만약 노마님이 그렇게 느끼시면 좋지 않으니까요.”원경릉이 고개를 끄덕이고 온
결혼 비용은자가 많이 필요하다는 말에 원경릉은 속으로 당황했지만, “근처에 집을 구하려면 은자가 얼마나 필요할까?”탕양이, “서일의 지금 연봉으로 초왕부 부근에 집을 사려면 100년이 걸려도 못 사죠.”“아!” 원경릉이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집이 그렇게 비싸다니 서일의 지금 연봉이 600냥인데 10년이면 6000냥, 100년이면 6만냥이다. “하지만 대저택 열 몇 채는 지을 정도로 의대를 세울 때 땅이 엄청 컸는데, 꾸미는 것까지 다 해서 20만이 안 됐어.”탕양이 웃으며, “태자비 마마, 그게 어떻게 같습니까? 거기는 외딴 곳이고 20만냥 속에 땅값은 아예 치지도 않았어요. 왕부 주변의 집이 비싼 건 땅값이 비싸기 때문으로 이 일대는 경성에서 최고 번화가인 데다 권력자와 귀족, 왕부가 모여 있는 곳이라 이미 빈 땅이 없습니다. 밀고 다시 짓는 수밖에 없으니 생각해 보세요. 안 비쌀 수가 있겠습니까?”“그럼 탕양 생각엔 10만냥이면 구할 수 있을까?”“10만냥이면 가능하지요, 내일 중개인을 데리고 가서 보겠습니다.” 탕양이 고개를 끄덕이고 주저하며, “그런데 10만냥은 서일이 못 냅니다.”“내가 일단 내고 서일 연봉에서 깎아야지.” 탕양은 원경릉이 착한 걸 알지만 이렇게 엄청난 돈을 들여 서일에게 집을 구해주는 건 정말 의외라 놀랍기도 하고 감동도 돼서, “태자비 마마는 정말 좋으신 분입니다.”“중요한 건 사식이지……어휴, 사식이를 그렇게 멀리 시집 보내야 하다니. 날 오래 따라서 자매처럼 생각했는데.”우문호가 그날 저녁 늦게 돌아와서 원경릉은 일단 집을 찾은 다음 얘기하기로 했다.다음날, 탕양과 약속대로 집을 보러 갔다.본 집은 멀지 않아서 초왕부와 길 2개거리로 걸어서도 갈만큼 위치는 아주 좋다.하지만 집 앞에 서 보니 좀 망설여지는 게 집이 아주 낡았고 작다. 초왕부의 20분의 1만하다.중개인은 원경릉의 신분을 모르고 이집 주변 사람들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들인지 추켜세우는데 문을 열자 마당은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으나 한쪽 벽은
서일의 집안 사정“가서 상의 좀 해 볼 게요.” 원경릉은 이 집에 이만한 돈을 쓸 가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초왕부로 돌아오니 기상궁과 서일도 돌아왔는데 기상궁 안색이 어둡고 서일도 아무 말 없이 어깨를 잔뜩 움츠리고 안으로 들어갔다.“왜 그래?” 원경릉이 묻자, 기상궁이 서일을 힐끗 보더니 억지 웃음을 웃으며, “서부인께서 오늘 바쁘셔서 몇 마디 나누지 못하는 바람에 다음에 쇤네가 다시 한 번 다녀오겠습니다.”서일을 보니 일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아 보여 일단 서일을 내보내고 기상궁에게 들어오라고 해서 얘기를 들었다.기상궁이 방으로 들어와 문을 닫고 투덜거리기 시작하는데, “태자비 마마, 쇤네 살다 살다 이렇게 무지막지한 여자는 처음입니다. 오랜 시간 푸대접한 건 그렇다고 쳐도 아들 공부하는데 방해된다며 집에 들이지도 않고, 서일의 혼담을 꺼냈더니 서일에게 욕을 하며 높은 가문의 아가씨에게 장가들어 이 집을 나눌 셈이라며 그럴 자격 없다고 하는 거예요. 서일에게 오르지 못할 나무 꿈도 꾸지 말고 평범한 여자를 골라 혼인하면 그만이라고 하더라고요.”원경릉이 눈살을 찌푸리며, “그 집은 필요 없다는 얘기 안 했어요? 그저 중매하는데 얼굴만 보이시면 되는 거라고.”“했어요,” 기상궁이 열이 받아서, “싫다고, 쪽팔린다며 원씨 집안이 어떤 신분이고, 서일이 어떤 신분이냐, 서일에게 분수를 모르는 놈아, 네 꼬라지를 보라고 조상님 묘자리를 잘 쓴 적도 없는데 언감생심 그런 복이 어디 있겠냐며. 제가 서일이 지금 관직에 올랐다고 5품관이라니 자기도 안다며 관리면 뭐하냐고 실제 관직 없이 초왕부 하인에 불과한데 언제 파면 당할지 알 수 없다는 거예요 서일을 손가락질 하며 주제를 모른다고 요 몇달 집에 은자도 안 가지고 오고 부모형제가 죽던지 말던지 신경도 안 쓴다며.”원경릉이 성격이 좋지만 이 말을 듣고는 정말 화가 나서, “서일이 몇 개월을 출정한 사실을 모르나요?”“거기까지 신경이나 쓰겠어요? 말이 안 통하는 사람이니 이 사람은 기대할 게 못 됩니다
신혼집우문호가 원경릉을 품에 안고, “오늘 우리 딸 말 잘 들었어?”“얌전했어.” 원경릉이 배를 만지며 웃었다.우문호가 흐뭇해서, “역시 우리 딸, 엄마 아낄 줄도 알고.”원경릉이 웃고 있는데도 얼굴에 근심이 어린다.“왜? 누가 기분 나쁘게 했어?” 지금 원선생은 살이 약간 쪄서 얼굴이 생기발랄해 지니 완전 귀엽다.“서일 신혼집있잖아. 오늘 집을 몇 군데 보러 갔는데 작은데 비싸기만 해.”“초왕부에 살라고 하면 안돼? 따로 별채 하나 내 주고.” “그럼 나중에 자기 딸이 시집을 가는데 사위가 딸을 주인집에서 데리고 산다고 하면 자기는 좋아?”우문호가 순간 눈이 부리부리해 지며, “이 놈 자식이, 집도 없이 감히 내 딸이랑 혼인을 해?”“그러니 원씨 집안에서도 사식이를 어떻게 보낼 수가 있겠어?” 원경릉이 한숨을 푹푹 내쉬며, “그런데 이 부근 집값이 이렇게 비싼 줄 생각도 못했네, 십만 냥이 훌쩍 넘어.”“십만 냥이 넘는다고? 서일은 못 사.” 우문호가 나한상에 원경을 안고 이리저리 편안한 자세를 찾아 눕히는데 배에 귀를 대고 딸이 움직이는 소리를 들었다.“내가 서일에게 사주려고.”“당신이? 십만 냥이 넘는데 안 아까워?” 우문호가 고개를 들고 깜짝 놀라 말했다.“사식이 때문에 그래. 나랑 가까이 있으면 좋겠거든.”우문호도 생각해 보니 사식이는 줄곧 원경릉 곁에 있었는데 만약 결혼해서 떨어지는 건 좀 잔인한 감이 있다. 거기다 사식이가 특히 도움이 많이 되는 게 사람이 기민하고 무공도 뛰어나다. 우문호가 심사숙고 끝에, “그럼 한 채 짓자. 왜 굳이 사야 돼? 한 채 짓는데 만 냥 정도면 적당할 것 같은데.”“짓자고? 땅이 어디 있어서? 그리고 우리집 근처여야 해. 너무 멀면 안 되고 길 3개 정도가 제일 이상적이지.”“길 3개까지 떨어질 필요 없이 우리집 뒤에 땅 있잖아? 거기 우리집 거야. 거기 지으면 돼.”원경릉이 이 말을 듣고 너무 좋아서 우문호의 팔을 잡고, “뒤쪽에 그 땅이 우리집 거야? 세상에, 그런데 왜 말을 안
멋진 남자“좋아, 좋아, 자기 뜻대로 해.” 원경릉은 걱정 하나를 해결하니 날아갈 것 같다. 특히 돈을 별로 안 써도 되는 게 제일 좋다.원경릉은 바로 탕양을 오라고 해서, “바로 공사를 시작할 사람을 찾아서 집 두 채를 지어주세요. 한 채는 대략 400평 정도로 세부 규격은 알아서 하시면 되고 어쨌든 제가 4만냥을 낼 테니 아마 충분할 거예요.”탕양은 우문호가 그 땅을 내 놓을 거라고 생각도 못한 게 우문호가 오매불망 그 땅에 연무대를 만들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원경릉이 2채를 짓는다는 말에 어리둥절해서, “왜 2채 입니까?”원경릉이 미소를 머금고, “서일은 있는데 어떻게 탕대인이 집이 없을 수가 있어요.”“예?” 탕양이 화들짝 놀라며, “태자비 마마, 그건……”“이렇다 저렇다 하기 없기 예요. 탕대인, 내일 착수해 주세요. 공사자금은 더 들어도 괜찮지만 공기는 반드시 엄수해는 걸로.” 원경릉이 말을 마치고 들어갔다.몇 걸음 가다가, 뒤에서 감격한 탕양의 목소리가 들렸는데, “태자비 마마 감사합니다!”신혼 집 문제를 해결했다는 걸 사식이에게도 얘기했는데 이 집이 앞으로 사식이가 살 곳이라 사식이가 좋아해 주길 바랬기 때문이다.사식이가 듣고 한참 부끄러워하더니 몰래 원경릉의 귀에, “그럼 담 넘으면 올 수 있는 거네요? 너무 잘됐어요. 결혼하면 초왕부를 떠야야 하는 게 두려웠는데 어휴, 몰라요, 친정에 다녀올 게요.”말을 마치고 웃으며 달아났다.원경릉은 사식이의 그림자를 보며 ‘정말 잘 됐어, 이젠 친정이라고 말하네.’원경릉이 뒤를 돌아보니 우문호가 여전히 복도 앞에 기대 있는데 늘씬하게 큰 키에 잘 생긴 얼굴, 짙은 눈썹과 그윽한 눈매, 팔을 벌리고 원경릉에게 오라고 하더니 그녀를 품에 안고, “원선생, 우리집이 갈 수록 사람사는 집 느낌이 나.”원경릉이 고개를 들어 잘 생긴 우문호 얼굴을 봤다. 처음 봤을 땐 어쩜 이렇게 포악하고 사납고, 어쩜 이렇게 자기만 알고 오만한 데다 철도 덜 들고 거슬리는 인간이 다 있나 했다. 그런데
옷이 날개기상궁도 한숨도 못 자고 다음날 일찍 와서 시중을 들고, 우문호는 아침 일찍 4경(새벽 3시~5시)이 지나자 문을 나섰다. 보통 우문호는 아침형 인간이라 원경릉도 일찍 일어나야 했다.그래서 기상궁이 왔을 때 원경릉은 이미 방에서 책을 보고 있었다.“어떻게 됐어요?” 원경릉이 기상궁의 화난 표정을 보며 어젯밤에 여의치 못했음을 알고 안색이 침울해 졌다.기상궁이 원경릉에게 대추차를 따라 나한상 차탁 위에 올려 두고 한숨을 쉬며, “태자비 마마, 이번 일은 마마께서 직접 나서셔야 할 듯 합니다. 어젯밤 쇤네가 서일과 다시 갔는데 서대인이 더 역정을 내시며 대놓고 체면을 구겨도 유분수지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라며, 자기는 혼담을 넣는 것을 승낙하지 않는게 동료들 앞에서 체면을 상하고 싶지 않고 원씨 집안에 거절당하는 건 물론이고 심하게 창피당할 거라고 하셨습니다. 서일이 신분 높은 사람과 혼인하겠다는 되도 않는 망상을 한다며 하여간 몹쓸 말을 하고 서일을 때렸어요.”“뭐하는 인간이야?” 원경릉이 완전 열 받아서, “좌우간 아직 아들의 행복을 위해 시도라도 해봐야 하는 거 아냐.”“시도요? 자기 체면만 생각할 뿐입니다. 쇤네가 사식 아가씨께서 초왕부에서 서일과 종일 서로 마주하다 보니 감정이 싹 텄다고 말했더니, 서대인이 사식이는 사식이고, 원씨 집안은 원씨 집안이다. 자기가 감히 혼담을 꺼내서 원씨 집안에 밉보이면 원씨 집안에서 보복으로 둘째 공자님 과거시험에도 영향을 미칠 거다. 그러느니 아예 서일과 부자관계를 끊겠다고 했습니다.”“원씨 집안이 보복을 해? 머리가 어떻게 됐길래 원씨 집안에서 보복할 거란 생각을 하는 거지? 원씨 집안에서 승낙하지 않더라도 기껏해야 혼사가 이루어지지 않을 뿐이지 원노부인을 어떻게 보고? 자기에게 보복을 해?” 원경릉은 완전 어이가 없고 기가 막혔다. ‘서대인이란 인간은 뇌가 어떻게 생겨 먹은 거야?’기상궁도 실망이 커서, “서일 마음이 아주 안 좋아요, 어젯밤 지붕 위에서 잤다고 하더군요. 다행히
감시의 눈“전장에 나가는 것도 긴장 안 하면서 긴장 할 게 뭐가 있어?” 원경릉이 웃으며 다독이는데 서일 얼굴에 아직 옅게 손가락 자국이 남아 있어 눈을 돌리고 말았다.서일은 마치 어젯밤의 불쾌한 일을 이미 잊은 듯, 온 마음을 다해 오늘 혼담이란 인생 최대의 일만 생각하고 있다. 그에게 있어 집안의 그쪽 사람들 하는 짓에 이미 익숙해져서 큰 충격을 받더라도 금방 차분해 지는 모양이다.낙천적인 사람의 장점이라고도 할 수 있다.손왕비와 미색이 와서 서일의 잘생긴 모습을 보고 전에는 눈이 삐었는지 제대로 못 봤는데 이렇게 꾸며 놓으니 완전 잘 생긴 공자로 거듭났다고 탄성을 질렀다.줄곧 바보처럼 웃던 서일은 자신감이 생긴 표정이다.원경릉이 미색을 보고, “미색은 어떻게 온 거야? 둘째 형님이랑 약속했던 거야?”미색이, “아뇨, 형님께 얘기해 드릴 게 있어서 오는 길에 마침 둘째 형님을 만나서, 오늘 서일이 혼담을 넣는다는 얘기를 들었어요.”“무슨 일?” 미색이 틀어 올린 머리를 누르며, “일단 방에 가서 비녀 좀 빌려줘요. 오늘 급하게 나오느라 제대로 하고 나오질 못해서.”나가는 길에 미색이, “누가 순왕부를 지켜보고 있어요.”“이렇게 빨리?” “그 뿐이 아니예요, 순왕부 말고도 우리 회왕부, 손왕부는 물론이고 예친왕부, 원부 전부 누가 감시하고 있어요. 다시 말해 그날 마마와 같이 입궁했던 사람은 전부 감시당하고 있는 거죠.”원경릉이 미간을 찌푸리며, “그렇다는 건 남강 북쪽에서 정집사 정체를 벌써 알고, 단지 정집사가 궁에 있었기 때문에 들어가지 못했을 뿐이란 거네. 궁밖으로 불러낸 이유는 남강왕의 딸 때문으로 그녀를 미끼로 남강왕의 딸을 찾아내겠다, 태자는 이 일을 알아?”“태자 전하는 아침 조회 중이예요. 늑대파와 홍매문이 정보를 연합한 건 처음으로 일단 마마께 알려드리고 나중에 누가 태자 전하께 알릴 거고요.”“응, 알았어. 지켜봐 줘. 그들이 당분간은 정집사에게 손을 쓰지 못할 거야, 정집사를 미끼로 만아를 유인해 내야 하니까
세월이 흘러, 택란이 열한 살 되던 해에 드디어 만두가 돌아왔다.어린 나이에 집을 떠난 그는 이제 완전한 청년으로 성장해 돌아왔다. 그리고 떡들 세 명은 만으로 따지면 이미 열일곱 살이 되었다.만두는 도착하자마자 먼저 황제의 허락을 받고 군에서 수련을 시작했다. 비록 국경에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지만, 국력이 항상 군사력의 안정에 의해 뒷받침되기 때문에 군 경험이 매우 중요했다.나라를 안정적으로 통치하려면 먼저 군심을 얻어야 한다.우문호는 그의 선택을 전폭 지지하며, 국가에 대한 소속감을 키워주기 위해서 그를 작은 병사로 임명하여 군에 들여보냈다. 약도성은 이미 재건이 대부분 완료된 상태였다. 백성들도 마음을 다잡았고, 이제는 본격적인 발전만 남아 있었다. 이리 나리와 홍엽이 이곳에 왔을 때, 냉명여를 약도성에 남겨두었는데, 호명이 챙기려 했으나, 냉명여는 택란 곁에서 그녀를 보호하겠다고 고집을 부렸다.꽤 고집이 센 아이기에 그는 그저 놔두기로 했다. 변경은 심지를 단련하기에 좋은 곳이었고, 호명이 보살펴 주며 저택 안에 거주했기에 큰 문제는 생기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한편, 금나라에서는 새로운 소식이 전해졌다. 진국왕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 황제가 본격적으로 조정을 이끌게 되었다는 것이다. 수도는 원래 약도성 접경 지역에 새롭게 지은 곳으로 옮겨졌고, 이름 또한 량주로 바뀌었다. 금나라는 이제 공식적으로 량주를 수도로 정했다.이 소식이 약도성에 전해지자, 택란은 무척 기뻐하며 주 아가씨에게 물었다.“이제 본격적으로 채굴을 시작해도 될 것 같소. 금나라에 한 번 가볼 생각인데, 자네도 같이 가는 것이 어떻소?”그 해 택란은 훌쩍 성장해 주 아가씨보다 조금 더 커 있었다. 주 아가씨는 때때로 그녀를 보며, 대나무가 환생한 것이 아닌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며칠 사이에 또 훌쩍 자란 것이다.택란의 아이 같던 분위기는 사라졌고, 훨씬 차분하고 성숙한 분위기를 풍겼다. 약도성의 거센 바람과 강한 햇빛 때문에 원래 하얗던 피부는 건강한 빛을
우문호는 정정이 계란이를 언급하지 않은 것을 보고 마음이 조금 놓였다. 보아하니 혼인 문제에 있어 두 사람은 합의를 봐 더는 이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 것 같았다.정정 대장군 부부는 경성에서 반 달 동안 머물렀고, 그동안 정정과 우문호는 시간이 날 때마다 말을 타거나, 군영과 산을 누비며 백성들을 살폈다.대두는 아이들과 즐겁게 지냈다. 비록 처음 이틀 동안은 계속 만두를 보고 싶다고 떼를 썼지만, 이제는 만두를 완전히 잊은 듯했다.그는 란이와도 갈등을 풀었고, 오히려 제일 친해져서 무엇을 하든 항상 함께했다.그렇게 2주가 지나 정정이 작별을 고하기 전, 우문호에게 대두의 배필을 찾은 것 같다고 말하며, 대두는 그녀가 자랄 때까지 잘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그의 말에 우문호가 어리둥절하며 물었다.“누구요?”정정이 웃으며 말했다.“지금은 말할 수 없소. 아직 확정된 일이 아니라, 나중에 잘못되면 감정이 상할 수도 있네.”“우리 사이에 말 못 할 게 어딨소?”우문호는 그의 말에 이미 기분이 상한 것 같았다.그러자 정정이 더욱 짓궂게 웃으며 말했다.“들으면 자네가 조급해질까 봐 그러네!”우문호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난 지금 이미 엄청 조급하네.”정정은 크게 웃으며 그의 어깨를 철썩 때리며 위로했다.“걱정하지 마시게. 계란이는 아니네. 계란이는 내 딸이기도 하니, 절대 며느리가 될 수 없소.”다른 남자가 계란이를 자기 딸이라 부른 건 처음이었지만, 우문호는 반감 없이 오히려 매우 기뻐, 활짝 웃으며 말했다.“맞네, 자네 말이 맞아. 계란이는 자네 딸이기도 하네. 우리 모두의 착한 딸이지.”근영군주는 이 말을 듣고 웃음을 터뜨리며 원경릉에게 말했다.“보아하니, 우리가 여기서 제일 쓸모없는 존재 같습니다…”“맞는 말입니다!”원경릉이 진지한 표정으로 맞장구치자 근영군주가 그녀를 가볍게 안으며 말했다.“앞으로는 자주 만나지 말고, 1년에 한 번만 봅시다! 시간이 어찌 이리 빨리 흐른다는 말입니까?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눈
목장에서는 전보다 훨씬 뛰어난 전투마들을 사육했기에, 우문호는 마치 보물을 자랑하고 싶은 어린아이처럼 당장이라도 정정과 함께 보러 가고 싶어 했다.그러자 근영군주가 웃으며 말했다.“폐하께서 아직도 소년 같은 순수함을 지니시고 있다니, 참 보기 드물고 귀한 일이군요.”하지만 원경릉의 귀에는 이 말이 남편이 어린아이 같다는 말로만 들렸다.그녀는 이내 웃음을 터트렸다.“하하하. 사내들이 가끔 저렇게 유치할 때가 있잖습니까.”근영군주도 깊이 공감하며 말했다.“예. 평소엔 유치하다가도, 필요할 때는 놀라운 배짱과 결단력을 보여주지요. 집안을 지탱하기도 하고, 나라를 떠받치기도 하고. 안 그렇습니까?”원경릉도 미소를 띠며 고개를 끄덕였다.“맞습니다.”남자들이 말을 타러 나가자, 원경릉과 근영군주는 궁전 안에서 담소를 나누기 시작했다. 대두가 몹시 심심해하자 원경릉은 친왕비들에게 아이를 궁으로 데려와 아이들끼리 놀게 했다.대주의 손님을 정성껏 대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기에 친왕비들은 아이들을 데리고 궁에 들어왔다.사실 대두와 비슷한 나이의 아이는 많지 않았다. 미색의 두 아이와, 원용의의 아이 모두 대두보다 어렸지만, 놀 벗이 없는 상황에 나이가 어린 것은 크게 문제 되지 않았다.대두는 외동아들로 자라 성격이 다소 거칠었다. 하지만 미색의 딸인 란이 역시 성격이 강하고 고집스러웠다. 어머니인 미색을 닮아 태생이 강한 성격을 타고난 것이었다.게다가 그녀에게 무술을 배워 한창 센 척을 할 시기라 대두와 몇 마디 말다툼 끝에 결국 몸싸움으로 번져 버렸다.란이가 대두를 때리자, 대두는 얼굴이 퉁퉁 부어오를 정도로 맞으면서도 전혀 반격하지 않고 그저 참고만 있었다. 끝까지 이를 악물고 버텨냈다.란이는 평소 늑대파에서 무술 대련을 했기에 상대가 반격하지 않고 그저 제자리에서 맞고만 있는 멍청한 모습을 경험한 적이 없었기에, 부어오른 대두의 뺨을 발견하곤 깜짝 놀라며 물었다.“어찌... 반격하지 않는 것입니까?”대두는 화난 표정으로 대답했다.“어찌
생각해 보면 이렇게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의 혼사를 정하는 것이 얼마나 황당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아이가 남녀인지도 모르면서 성급한 부모들이 충동적으로 혼사를 결정해 버리다니 말이다. “대두가 아직 이리도 어린데, 벌써 혼사를 이야기하다니요, 우리 만두는 아직 애 입니다.”우문호는 괜히 기분이 답답해졌다.현대로 다녀온 뒤, 사람들이 늦은 결혼과 출산을 선호하는 것을 본 그는 생각이 바뀌었다. 열몇 살에 혼사를 하는 것은 성장의 억압이나 다름없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혼사 이야기를 한다고 당장 하는 건 아니오. 그저 약속만 하고, 몇 년 후에 하겠다는 거네.”“어찌 이리도 태연한 것이오?”우문호가 원경릉의 여유로운 표정을 보며 그녀가 그들이 빚을 받으러 온 걸 모르는 건가 싶었다.“난 걱정 없소. 딸을 보내고 싶지 않으면 당신처럼 쓸데없는 부담감 없이 그냥 바로 거절할 것이오. 형제간의 정이 거절로 인해 상할까 봐 고민한다니, 억지로 혼사를 성사하는 것이 더 정을 상하게 할 것이오.”그러자 우문호가 말했다.“이론적으로는 맞는 말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 마음이 편치가 않소.”후궁에서의 우문호는 조정에서의 단호하고 강력한 모습과는 완전히 딴 사람이었다. 조정에 나서기만 하면 단호하고 과감하며, 마치 번개 같은 결단력을 보여주는 반면, 후궁에서의 그는 망설임도 많고 잔소리도 많은 사람이었다. 원경릉이 다른 왕비들과 대화할 때, 그들도 가끔씩 이 얘기를 꺼내곤 했었다. 다들 다섯째의 평소 잔소리가 예전보다 훨씬 많아졌다며 놀라했다. 하지만 다른 친왕들의 의견은 달랐다. 그들은 그가 예전보다 훨씬 결단력이 있어졌다고 말했다.이런 얘기가 나올 때마다 이리 나리는 한숨을 쉬며, 결국 결단력 넘치는 황제도 결국 자식들 문제에서는 고민에 빠지는구나 싶었다.8월 14일, 정정 대장군 가족이 북당의 수도에 도착하자마자 초왕부에 머물렀다.그들은 초왕부에 머문 직후 탕양의 안내로 우문호를 만나기 위해 궁으로 들어갔다.아무리 큰 걱정도 오래된 벗 앞에서
예전에 원가에서 온 가문이 강북부로 이주한 적이 있었다.북쪽은 바람과 모래가 거셌지만 원가의 사람들에게는 전혀 낯설지 않았고, 오히려 고향과 비슷한 정감을 느끼게 했다.이리 나리는 원가의 사업을 줄이도록 도우며, 관리하기 쉬운 몇몇 가게만 남겼다.탕양은 일곱째 아가씨에게 장사를 내려놓아도 괜찮은지 물은 적 있었는데, 그때 일곱째 아가씨가 말했었다.“그런 말 마시오. 내 능력을 충분히 증명했으니 이제 만족스럽소. 열심히 해서 큰 성과를 얻었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오. 평생 바삐 지낼 수도 없잖소. 그렇게 돈을 많이 벌어서 뭐 하겠소? 다 잘 살기 위해 번 것이오. 가업을 나눠 받은 돈만 해도 평생 다 못 쓸 만큼 많소. 그리고 가게들도 계속 돈을 벌 텐데 뭐가 아쉽겠소?”탕양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손에 익은 일이라, 혹시라도 아쉬워할까봐 걱정했소. 사실 나도 당신이 이렇게 고생하는 것이 싫었소. 당신만 괜찮다면 다행이오.”일곱째 아가씨는 미소를 지었고, 그의 말에 모두가 기뻐했다.“한가해지는 것도 괜찮소. 1년에 두세 달은 약도성에 가서 지내면 얼마나 여유롭겠소.”하지만 탕양이 눈살을 찌푸렸다. 1년에 두세 달이면, 왕복하는 시간까지 더해 최소 반년은 걸릴 것이고, 그 말은 반년 동안이나 그의 곁에 없다는 뜻이었다.게다가 그도 경성을 몇 달씩 떠나는 건 불가능했다. 지금은 황제 곁을 하루라도 떠나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하지만 그는 그녀가 행복하면 그걸로 충분했다. 물론 그는 늘 함께하고 싶었지만, 오래된 부부였기에 항상 붙어있을 필요는 없었다.북당은 점점 부유해지고 있었다. 원가가 일부 사업을 매각하면서 그 변화를 실감할 수 있었다.가게들은 치열한 경쟁 속에서 싸웠고, 좋은 위치에 있는 가게들은 더더욱 귀한 존재가 되었다.원래 원가는 모든 가게를 이리 나리에게 넘기려 했지만, 이리 나리는 거절했다.그리고 안풍친왕이 먼저 나서서 이리 나리가 이미 너무 많은 가게를 보유하고 있고, 특히 경성에서의 비중이 지나치게 높아 독점 우
원경릉이 깜짝 놀라며 말했다.“일곱째요? 일곱째는 분명 원용의에게 말할 것이고, 원용의는 또 사식이에게 얘기할 것이고, 사식이도 분명 서일에게 전할 것일 텐데요. 만약 서일이 알게 되면, 이제 북당 전체가 다 알게 될 것이오.”우문호는 순간 당황해하며 말했다.“그건 내가 생각지도 못했네.”원경릉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아마 지금쯤 황실 친왕들 사이에서 이미 탕양의 이야기가 뒷말로 오가고 있을 것이었다. 겨우 부인을 얻었는데, 밤에 함께 자지 못한다니 참 안타까운 일이라 생각할 것이다.우문호는 탕 대인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다들 뒤에서 탕양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여인들이 수군거리니, 남자들은 그를 도우려 했다.물론 부부 사이의 일에 직접적으로 간섭할 수는 없었기에, 대신 탕양을 술자리로 초대해 술로 고민을 푸는 방법을 제안했다.그렇게 며칠째 술을 마시던 탕양은 자신의 비밀이 모두에게 알려졌다는 사실을 깨달아 한숨을 쉬며 말했다.“제 탓입니다. 폐하가 비밀을 지키지 못한다는 걸 깜빡했습니다.”제왕이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너무 신경 쓰지 말거라. 이런 일은 억지로 되는 게 아니다. 여인은 때로 달래줄 필요가 있는 법이다.”그러자 탕양이 어찌할 바를 몰라하며 말했다.“제가 폐하께 이 이야기를 했을 땐, 혼례한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습니다.”“알고 있다. 서두르지는 말거라.”모두가 이해한다는 눈빛으로 탕양을 바라보았지만, 탕양은 더 이상 해명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그들은 이미 혼인했지만, 오랜 부부 생활을 한 터라, 남녀 간의 정이 때로는 하루아침에 급격히 발전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탕 대인은 돌아가자마자 일곱째 아가씨에게 이 일을 전했다.그러자 일곱째 아가씨가 웃으며 한숨을 내쉬었다.“정말이지, 어찌 허구한 날 남의 부부 일에만 관심을 가지니, 할 일이 없나 보오.”“신경 쓰지 마시오. 우리가 잘 살면 그만이니.”탕양은 일곱째 아가씨를 안으며 자신감에 찬 표정을 지었다.
원경릉은 궁으로 돌아와 이 일을 다섯째에게 이야기했다. 그러자 다섯째가 말했다.“사실 한 번 돌아가는 것도 괜찮을 것 같소? 그저 경성만 한 바퀴 둘러보면 되지 않소.”“아이들을 데려다줄 때 휘종제 어르신께서 슬퍼하셨소. 이번 생에 고향으로 못 돌아올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돌멩이 하나를 건네주니, 그걸 안고 울었소.”“정말 안타깝소!”다섯째는 증조할아버지 생각에 마음 아파했지만, 이내 말을 이어 나갔다.“하지만 큰할아버지께서 그를 데려오지 않는 이유도 있을 것이오. 휘종제 어르신을 잘 아는 것도 아니지 않소? 몇 번 만나보니, 활달하고 산만한 성격에 무슨 사고를 일곱째인지 모를 것 같은 느낌이 들었소.”“맞소.”원경릉도 깊이 공감했다. 특히 그가 전화로 끈질기게 설득할 때는 정말 무서울 정도였다.“다른 일은 없었소? 부모님 건강은 어땠소? 처남은 여자 친구가 생겼소? 만두는 공부를 잘하고 있소?”다섯째가 끊임없이 질문했다. “괜찮소. 부모님 건강도 괜찮긴 하지만, 아버지께서 고혈압이 생겨서 약을 오래 드셔야 하오. 오빠는 여자 친구가 없네. 주진과 아직도 서로 솔직히 이야기하지 않은 상황이오. 만두는 걱정 안 해도 되네. 내년에 돌아올 것이니.”“다행이오!”다섯째가 기뻐해 하며 말했다. 그는 늘 만두의 능력을 눈여겨보았기에, 그가 돌아오면 나라의 일들을 조금이라도 도와줄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비록 많은 부담을 짊어지진 못하지만 그래도 괜히 기대가 되었다.“추 할머니 병은 어떠하신가?”다섯째가 또 물었다.“아직은 괜찮소. 아주 좋아졌네. 약에 내성이 생기지만 않으면 큰 문제는 없을 것이오.”원경릉이 말하자 다섯째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분들이 늘 건강해지시길 바랄 뿐이오.”평범한 사람들조차도 적성루 사람들에게 감동하기 쉬운데, 하물며 북당의 황제인 자신은 오죽하겠는가.“계란은 소식 왔소?”원경릉이 물었다.“왔네. 보시오!”다섯째는 소매 안에서 구겨진 편지를 꺼냈는데, 비둘기를 통해 받은 그 편지에는 몇 줄의 짧은
“별다른 뜻은 없소. 오늘 밤에 유난히 감성적이라 그저 한마디 해본 거네. 사실 너무 감동해서 그러네. 비록 항상 탕 대인에게 빨리 혼인하라고 재촉하긴 했지만, 그가 일곱째 아가씨와 혼인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소.”“괜찮소!”원경릉은 그의 품에 안겨 그의 심장 소리를 들으며 말했다.“어쨌든 탕양은 우리와 함께 걸어온 사람이오. 그러니 그가 사랑하는 여인과 함께하게 된 건 우리 모두에게 기쁜 일이오.”우문호는 벌써 술에 취한듯 머리가 약간 어지러웠다. 술에 취하면 항상 눈앞의 모든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곤 했는데, 익숙한 천장, 익숙한 사람, 익숙한 탁자와 의자. 취기가 돌며 모든 것들이 꿈처럼 느껴졌다.그는 마치 다시 초왕 우문호로 돌아간 듯했고, 갓 원경릉과 마음이 통했던 때로 돌아간 기분이었다.그 당시 외부 정세는 불안정했고, 태자 자리를 둘러싼 다툼이 막 시작되었던 때였다. 형제끼리 반목하며, 치열하게 싸웠던 시절을 돌아보면 잃지 않고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얻었다는 사실에 감사하게 되었다.우문호가 원경릉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했다.“원 선생, 몇 년간 아주 긴 꿈을 꾼 것 같지만, 되돌아보니 정말 다행이라고 느껴지네. 사실 모든 행운과 행복은 원 선생의 잘못된 연구에서 비롯된 것이오. 원 선생이 오지 않았다면 내 인생이 어땠었을까 싶네.”그러자 원경릉이 말했다.“누군가가 이 세상에 몇 시간과 공간이 존재한다고 했소.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이 다른 세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을 수도 있네. 아마도 어떤 공간에서는 내가 없는 대신 다른 사람이 당신과 함께 있을 수도 있소.”우문호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그 세상 속의 나는 정말 불쌍할 것이오.”“그건 모르오. 어쨌든 그곳의 당신은 나를 모르고, 우리가 지금 얼마나 행복한지도 모를 것이오. 각자가 행복을 정의하는 방식은 다르오. 어떤 사람들은 매 끼니 고기가 있는 게 최대의 행복일 수도 있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은 봉급이 오르길 바랄 것이오. 또 가족이 화목하고 건강하기를 바라기도 하고
우문호는 혼인을 하사하는 조서를 내렸다. 이는 탕양의 혼사에 화룡점정을 더하는 일이었다.온 경성 사람들이 탕양이 황제를 모시는 신하인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녀의 혼사에 주목했다.탕양은 왕부에서부터 황제를 지지해 온 충신이었으며, 군신 간의 정은 형제의 관계에 못지않았다.거기에 황제가 직접 혼인을 하사했으니, 이는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이었다. 그래서 다들 두터운 예물을 준비해 축하하러 왔다.혼례는 초왕부에서 열렸다. 비록 초왕부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지만, 이번 경사에 많은 지원이 몰렸다. 여러 왕부에서 사람을 보내왔고, 미색은 돈에 힘까지 보태며 혼사 지출의 3할이나 부담했다.희상궁도 돌아와 모든 일을 총괄했다. 희상궁은 비록 나이가 많았지만, 여전히 일 처리 능력이 뛰어났다. 그녀는 여러 왕부에서 온 사람들을 지휘하며 완벽하게 일을 조율했다.혼례 당일, 황제와 황후도 참석했다.신부가 도착하여, 혼례를 올릴 때 우문호와 원경릉은 상석에 앉아 신랑 신부의 절을 받고는, 그 다음으로 기상궁도 절을 받았다.우문호가 원경릉의 손을 잡으며 흐뭇한 표정으로 말했다.“탕 대인이 드디어 철이 들었고, 가정을 이루었으니 정말 기쁘네.”원경릉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제 마음이 풀립니까? 그러니 앞으로는 더 이상 잔소리하지 마시지요.”“잔소리는 계속할 것이다. 이젠 아이를 낳으라고 해야지.”우문호는 걱정이 끝이 없다는 듯 말하자, 원경릉이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아이 낳는 일은 하늘에 맡겨야 하네.”“그래도 몇 가지 비법을 전수해 줄 수는 있소.”우문호가 자부심 넘치는 표정으로 말했다.“좀 더 크게 말해보시오. 다른 사람들이 못 들을까 봐 걱정이오?”원경릉이 그를 흘겨보았다.주변 사람들이 모두 그들을 바라보며 부러움 섞인 표정을 지었다. 많은 사람이 첩을 두고도 황제만큼 자식을 많이 두지는 못했지만, 황제는 복도 많고 자식도 많은 사람이었다. 저녁 연회에서 우문호는 과음했지만 원경릉은 그를 막지 않았다. 이런 노부의 감격은 술로 달래야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