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인은 오리무중원경릉은 할머니가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가슴속에 마치 커다란 돌덩이를 매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박원의 말은 서소하(西蘇河)강변에서 발견되었는데 말고삐를 풀지 않고 나무에 묶어 두었다. 많은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발견했지만 감히 건드리지 못한 게 귀한 손님이 배에서 밤을 보내고 말을 여기에 묶어 둔 것인 줄 알아서 였다.서소하에는 놀잇배가 많은데 경성의 수많은 고관과 귀인, 공자들이 여기에서 즐기는 것을 좋아했다.이곳은 초저녁부터 북적거리기 시작하지만 빛이 충분하지 않고 다들 아는 사람이 자기 놀잇배를 보는 것을 원하지 않아 했다.그래서 양대인이 사람들을 데리고 그날 저녁 상황을 묻고 다녀도 아무도 이 말이 언제부터 있었는지 보지 못했고 누가 묶어 놨는지도 보지 못했다고 했다.양대인이 우문호에게 보고하고 사람을 데리고 배에 올라 보는데 모든 배에 전부 물어보고 조사할 수밖에 없는 것이, 지금 어떤 단서도 지나쳐서는 안되기 때문이다.놀잇배는 원래 정상적인 영업이 아니라 관아의 조사를 제일 두려워 하는데 다행히 이번은 감사가 아니라 놀잇배 행수와 아가씨들이 다들 적극 협조해서 당일 저녁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은 보지 못했고, 접대한 손님들 중에 상처를 입은 사람도 없었다고 했다.단서가 여기서 끊어진 듯 하다.우문호도 버티지 못하고 초왕부로 돌아가 잠시 쉬면서 원경릉에게 이 일을 얘기했다. 원경릉은 말이 온전하다는 얘기를 듣더니, “말을 끌고 올 수 없어? 뭐 좀 물어보게.”우문호는 지쳐서 웃을 힘도 없는 게, “말이 하는 소리를 알아 들어?”원경릉이 생기 없이 웃으며, “물체 전이라고,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 말을 탔으면 어쩌면 증거를 남겼을 수도 있거든.”우문호가 전에 원경릉이 사건 조사를 협조했던 것을 떠올리고 탕양에게 말을 초왕부로 끌어오라고 시켰다.원경릉이 마구간에 가서 안에서 한동안 있다가 나왔는데 약간 낙심한 모습인 것이 말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고 해도 말은 범인을 알아볼 수 없다. 바꿔 말하면 만약 박원
식물인간수술실에 와보니 박원이 과연 눈을 뜨고 있다.박대인 부부가 침대 곁에서 이름을 부르는데 박원은 멍하니 누워서 사람을 보지 않고 얼굴에 심지어 표정도 없다.“원이야, 엄마 좀 봐, 엄마가 부르는 게 들리니?” 박씨 부인이 몇 번 불러보더니 아들이 답이 없고 심지어 쳐다보지도 않자 초조한 마음에 손을 뻗어 박원의 어깨를 흔들었다.원경릉이 얼른, “부인, 흔드시면 안됩니다. 두개골에 쌓인 피가 아직 다 사라지지 않았어요.”박씨 부인이 깜짝 놀라 얼른 손을 치우고 고개를 들어 원경릉을 보는데 연속으로 며칠간 지키고 돌보느라 이미 초췌하고 눈은 울어서 퉁퉁 부은 채로, “태자비 마마, 깨어나도 사람을 못 알아보니 어서 봐주세요.”원경릉이 다가가서 약상자를 침대 곁에 두고 손을 뻗어 박원 앞에서 흔들어 보이는데, 박원의 동공이 원경릉의 동작에 반응하지 않는다.마음이 무거워지며 눈꺼풀을 뒤집어 보는데 눈동자가 반응이 없으며 마치 의식이 없는 것 같다.박원은 천천히 눈을 감고 다시 혼수상태에 들어갔다. 자가 호흡에 심장 박동도 하는 살아있는 사람이지만 살아있는 것 같지 않다.박씨 부인이 떨리는 목소리로, “놀라서 넋이 나간 거 아닌가요? 귀신이 들었나요? 법사가 와서 봐 달라고 청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우문호도 앞으로 와서 이름을 두 번 불렀지만 반응이 없고 심지어 눈도 뜨지 않았다.원용의는 원래 기뻤다가 박원의 이런 모습을 보고 가슴이 철렁해서, “원 언니, 왜 이러는 거죠?”원경릉이 고개를 흔들며 약상자에서 청진기를 꺼내 심장 소리를 듣는데, 심박과 호흡은 모두 정상이다.일련의 검사가 끝나고 원경릉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다들 애타는 눈빛으로 원경릉을 바라보는데 원경릉이 청진기를 내려놓더니 박씨 부인을 보고 낮은 목소리로, “박대인, 박씨 부인, 자제분이 식물인간이 된 것이 아닌가 의심스럽습니다.”“뭐요? 식물인간?” 박씨 부인은 이 말을 듣고 이해가 안돼서, “식물인간이 뭐죠?”박씨 부인은 놀라서 얼굴색이 변하며, “식물이라면 사물
제왕의 결심원경릉은 박원의 링거를 아미노산으로 교체하고 계속 소염제를 걸어 두었다.일련의 과정동안 아무런 반응이 없음을 확인하고 박씨 부인은 울다가 거의 혼절해서 박대인이 강제로 부축해서 데리고 나가고 장자인 박호가 교대로 여기 남아서 돌봤다.원용의가 원경릉을 끌고 나가더니 붉어진 눈으로, “원 언니, 저한테 솔직하게 말해요. 앞으로 깨어날 수 없는 거죠?”원용의는 이렇게 묻고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원경릉이 손을 내밀어 눈물을 닦아주고 따스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말투로, “박원에게 믿음을 가져야 해. 난 박원이 강인한 의지력을 가졌다고 믿어. 여기 자신이 걱정하는 사람이 있잖아, 분명이 깨어날 거야.”원용의는 동그란 얼굴에 온통 눈물이 가득한 채 울먹이며, “그럼 어떻게 도와줄 수 있죠?”“곁에서 애기해 많이 해줘. 관심있어 했던 일들에 대해.” 원용의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안 원경릉은 원용의와 박원이 너무도 안타까웠다.원용의가 울며, “사실 제가 저렇게 만든 거예요. 만약 제가 계속 박형을 데리고 여기저기 놀러다니지 않았으면 그날 사고가 나지 않았을 텐데. 산신당의 노인이 박형이 피를 보는 재앙이 있을 거라고 했는데, 제가 경각심을 가지고 그날은 제가 박형을 데려다 줬어야 했어요. 전 왜 그렇게 조심성이 없었을까요?”“자신을 원망하지 마. 이건 상해 음모 사건으로 너랑 관계 없어.”“원 언니, 만약 앞으로 못 깨어나면 그럼 어떻게 되는 거예요?” 원용의가 입을 가리고 목놓아 울었다.원경릉이 얼른 원용의를 안고 위로하며, “울지 마, 반드시 깨어날 거라고 믿어야 해. 사람이 사는 곳엔 도처에 기적이 있어. 난 식물인간이 깨어나는 걸 직접 본 적이 있어.”원용의는 요 며칠간 내내 슬픔을 억누르며 있다가 지금 울기 시작하니 걷잡을 수가 없다.제왕이 회화나무 아래서 원용의를 보고 있는데 마음이 각별히 괴롭다.제왕은 전에 수도 없이 마음에도 없는 말을 했는데 예를 들면 ‘원용의만 기쁘다면 원용의와 박원을 축복한다’ 처럼
오월이이 사람은 마부로 그날 저녁 자기 집안의 공자를 강가에 모셔다 드리고 공자가 놀잇배에 탄 뒤 자기는 부근을 어슬렁거리고 있었다.그 때 마침 말 한 필이 쏜살같이 오는데 말에 탄 사람은 온통 검은색 옷을 입고, 말에서 내려 모퉁이로 가더니 검은 옷을 벗어 돌덩이 하나를 집어 옷으로 감싸고 강바닥에 가라앉힌 뒤 놀잇배에 올랐다고 했다.기록에 마부의 이름과 주소가 적혀 있어 제왕이 이 사람을 데려와 물어봤다.그 사람은 상인 왕복(王福)의 마부로, “소인이 한달동안 강가에 몇 번 갔는데 저희 집 공자님과 아가씨 하나가 서로 좋아해서 매번 소인이 모시고 갑니다. 공자님이 놀잇배를 타시고 날씨가 너무 추워서 소인이 한 곳에 가만 앉아 있을 수가 없어 술 한 병을 들고 마시면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추위를 쫓고 있었습니다요. 그날이 엄청 추웠던 걸 기억합니다, 손님이 적은 편이라 소인이 문루(門樓)쪽으로 가는데 검은 옷을 입은 사람 한 명이 말을 달려 오는 것을 봤습니다. 보통 이런 일은 기억에 남지 않는데 그 사람이 검은 옷을 입고 있어서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몇 번 더 쳐다봤습지요. 하여간 거기는 노는 곳이라 다들 화려하게 치장을 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때 그 사람은 검은 옷을 강바닥에 가라앉히고 놀잇배에 올라탔습니다.”“그 사람의 생김새를 똑똑히 보았느냐?” 제왕이 다급히 물었다.마부가 고개를 흔들며, “정확히는 못 봤습니다. 그 사람이 서 있는 위치가 어두워서, 하지만 엄지손가락에 옥가락지를 낀 건 봤습니다.”“그럼 어느 놀잇배를 탔지?” “분명 오월이 배였을 겁니다.” 마부가 생각해보더니, “선덕이 배였을 수도 있어요, 어쨌든 이 둘 중 하나입니다.”보좌관이 사람을 보내 탐문하려고 하는데 누군가 와서 서소하의 오월이가 집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고 신고했다. 놀잇배 행수가 발견했는데 오월이 외에 오월이의 시중을 들던 계집애도 죽었고 발견했을 때 이미 시체에서 냄새가 나는 것으로 볼때 사흘 이상 지난 것 같다고 했다.제왕은 이 말을 듣고 김이
범인을 찾는 제왕제왕이 여기까지 듣고 급한 마음에, “오월이가 이달에 7~8일을 안 갔다고? 그럼 이달 초여드레엔 놀잇배에 있었나?”행수가 고개를 흔들며, “쇤네는 기억을 못하겠습니다. 가서 기록을 봐야 알겠네요. 제가 적어 놨거든요.”“이리 오너라, 행수를 데리고 같이 가서 초여드레 밤에 오월이가 놀잇배에 있었는지 보고 오너라.” 제왕이 바로 명을 내렸다.우문호가 제왕에게 칭찬의 눈빛을 보내는데 제왕의 생각이 치밀했다.우문호는 여기 단서를 보좌관과 제왕에게 맡겨도 안심이라 사람을 데리고 나가 수색을 계속했다.하지만 제왕이 중요한 점을 착안했으나 아쉽게도 포도대장이 가지고 돌아온 소식은 실망스러웠다. 사고가 난 그날 저녁 오월이는 놀잇배에 있었고 대신하는 아가씨가 아니었다.이제 유일한 단서는 강바닥에 가라앉은 검은 옷 뿐이다.포도대장이 옷을 건졌는데 옷 안에 큰 돌덩이가 들어 있고 돌덩이를 잘 감싼 후 소매로 묶어서 아주 거센 물흐름이 있지 않고는 물에 뜨지 않았을 것이다. 의상의 천은 매우 좋은 것으로 딱 봐도 도둑이 입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검은 비단 옷에 바늘땀이 촘촘하고 소매에는 심지어 자수까지 되어 있었다.옷의 오른쪽 어깨에 한 줄로 찢어진 자국이 있는데 바닥에 며칠을 가라앉아 있어 혈흔은 사라졌지만 옷섶이 잘려 나간 것이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 어깨에 난 상처를 감싸는데 쓴 것으로 보였다. 그자가 골목에 숨어있었던 것은 상처를 싸매서 피를 흘려 그 흔적때문에 사람들이 쫓아오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였을 것이다.천이 좋고, 자수가 있고, 도둑의 옷이 아니라는 것으로 볼 때 그자는 옷장에서 즉석으로 검은 옷을 골라 입고 얼굴에 복면을 쓰고 나왔음을 알 수 있다.바꿔 말해 도난 계획은 오랜 전부터 치밀하게 계획한 것이 아니라 닥쳐서 계획한 것이라는 소리다.“천은 추적이 가능하던가?” 제왕이 물었다.보좌관이 제왕을 바라보며, “이름 있는 천이라고 해도 이 천은 여러 포목점에서 팔고 있는 거라 추적하기 어렵습니다.”제왕은 슬픔에
놀잇배서소하의 저녁은 흥청거렸다. 강 위에 놀잇배 50여척이 줄지어 있고, 나룻터에는 작은 거룻배들이 정박해 있는데 이 배는 놀잇배까지 손님을 태워다 주는 용도로 한번 가는데 10푼이다. 열 푼으로 10m남짓밖에 못 가니 대놓고 돈 먹는 장사다.여기의 큰 놀잇배는 초두취 같은 기루와 같아서 손님들이 와서 술을 마시고, 아가씨가 거문고를 타고 시화를 그리고 말벗을 하는데 걸쭉한 얘기에 신세 한탄에 교태를 부리는 아름다운 외모, 화류계다.오월이니 선덕이니 하는 작은 놀잇배는 말이 놀잇배지 사실 예쁘게 꾸민 나룻배로 아가씨 한 둘이 있고 그녀들의 배는 돈 많은 집의 공자와 어르신을 호객하는 게 아니라, 대부분은 문인과 묵객, 케케묵은 서생을 상대로 한다.비용도 상대적으로 싸지만 다음 단계로 나가려면, 당연히 돈을 내야 한다.오월이가 죽고 행수는 오월이 대신 버들이를 들였다.제왕이 버들이를 찾아갔다. 행수도 놀잇배에 있는데 등불이 어두운데다 제왕이 관복을 입고 있지 않고 제왕부에 돌아가서 비단옷으로 바꿔 입고 온 지라 부귀하고 잘생긴 외모에 넘어가 행수는 알아보지 못했다.제왕의 부귀한 모습을 보고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 하더니 버들이에게 서둘러 손님을 맞지 뭐하냐고 불러 댔다. 제왕이 보기에 버들이도 16~7정도로 세상의 때가 그렇게 묻지 않았고 겉감만 있는 저고리에 살구색 망토를 걸치고 머리장식을 가득 꽂은 것이 비싼 아가씨 같지 않았다.예쁘장하게 생겨서 버들잎 같은 눈썹아래 눈을 살짝 치켜 뜨면 애교가 넘치고 다가와 손가락을 잡고 미소를 짓자 가지런한 이가 살짝 보인다. “버들이 공자를 뵙습니다.”제왕이, “아가씨 예의는 됐으니 앉아요!”제왕은 곁눈질로 행수가 버들이에게 눈짓을 하는 것을 봤는데, 대략 이 공자님을 꽉 잡으라는 것 같다.놀잇배는 강 중간에 떠서 물결이 가는 대로 유유히 흔들리는데 버들이라는 아이는 똑바로 서지를 못하더니 가볍게 소리를 지르며 제왕 쪽으로 넘어졌다.버들이가 수줍게, “어머나, 순간 흔들려서 공자님께 실수했습
결정적 증거물버들이는 이 사람이 부잣집 도련님인데 여기와서 견문을 넓히는 구나 생각하고, “공자님 편하실 대로 하세요.”손님을 접대하는 장소는 크지 않아서 한 눈에 전체를 다 볼 수 있는데 탁자 하나, 의자 몇개, 옆에 노목에 조각을 한 궤가 하나 있고 궤는 반쯤 열려 있는데 안에는 화장품이 놓여있다.갑판은 원목색으로 오동나무기름을 칠했고 많은 부분이 닳아서 허옇게 됐으며 바닥을 유심히 보다가 마침내 가리개발 맞은편 의자 아래서 핏자국을 발견했다.쭈그리고 앉아 만져봤으나 이미 말라서 탁자위의 찻물을 부었더니 핏자국이 손에 묻어나며 냄새를 맡아보니 피비린내가 남아 있다.그날 범인은 가리개발 맞은편에 앉아서 발이 완전히 덮이지 않으므로 거기서 시시각각 경계하며 바깥 동정을 살필 수 있었다.버들이는 공자가 여기저기 의심스럽게 찾아다니는 것을 보고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공자님, 찾으시는 게 있으십니까?”제왕은 미리 변명을 준비해 와서, “그렇네. 며칠 전에 내 친구가 여기 와서 실수로 물건 하나를 잊고 갔는데 오늘밤 내가 간다고 하니 나에게 좀 찾아봐 달라고 부탁을 했지 뭐냐.”마침 아까 그 시녀가 술을 가지고 들어오다가 이 말을 듣고 얼른, “잘 찾아 오셨네요. 바로 초여드레날 오신 그 나리 말씀이십니까?”제왕이 허리를 곧추 세우고 시녀를 보며, “바로 초여드레 날이야. 그날 저녁 넌 여기 있었나?”시녀가 술을 내려놓고 웃으며, “맞습니다. 그날 오월이 시녀가 병이 나서 제가 여기서 시중을 들었지요. 그 나리가 오실 때는 아직 해시가 되기 전이이라 오래 술을 드실 줄 알았더니 어찌 된 것인지 쇤네가 술을 내오니 벌써 안보이셨습니다. 오월이 아가씨 말이 갑자기 급한 일이 있다고 은자 한 냥을 던져주고 가셨다고 했습니다. 패(牌)가 떨어진 줄도 모르시고 말입니다.”“맞아, 패라고 했어!” 제왕은 속으로 크게 기뻤다. 빠져나가는듯 보여도 결국 덜미를 잡히게 되어 있구나. 나쁜 짓은 반드시 밝혀지게 되 있어. 그 놈이 패를 떨어뜨리고 하필 오월이 시
범인의 정체버들이가 제왕의 얼굴이 이상한 것을 보고 시녀에게, “다시 잘 생각해봐. 그 사람에게 무슨 특징 없었어?”시녀가 웃으며, “공자님, 친구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어떻게 그 사람이 누구인지도 모를 수가 있습니까?”제왕이 경조부의 영패를 꺼내 목소리를 낮춰, “본관은 경조부 사람으로 해적을 쫓고 있는데 그가 놀잇배를 탔다는 것을 알고 본관이 와서 여기에 남긴 단서가 없는지 조사하는 중이다. 너는 잘 기억해 보거라. 이 사람은 어떤 특징이 있었는지.”관에서 왔다는 말에 버들이와 시녀가 놀라서 태도가 급 공손해 졌다.“이 해적이 오월이와 시녀를 죽인 건가요?” 버들이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시녀에게, “얼른 생각해봐. 범인을 찾아내면 오월이의 복수를 하는 거라고.”버들이도 열심히 생각해봤으나 역시 특징이 떠오르지 않아 낙담하며, “그 사람은 아마 40~50대로 생김새는 그다지 늙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귀밑머리에 흰 머리가 있고 손가락에는 옥으로 된 엄지반지를 끼고 있고 그 외에는 정말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제왕이 서소하에서 온 뒤 바로 경조부로 갔다.제왕은 망연자실한 상태로 서재에 한동안 있다가 외부인만 상대하고 만약 태자가 돌아오면 서재에 있는 자기에게 모시고 오라고 했다.우문호는 자시가 거의 다 돼서 경조부로 돌아와, 제왕이 서재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을 알고 물 한주전자를 마시고 서재로 갔다.제왕의 얼굴빛이 창백한 것을 보고 다가가, “왜 그래?”제왕이 고개를 들고 숨쉬는 것조차 힘들어 보이는데, “형, 오늘 놀잇배에 다녀왔어요. 놀잇배 안에서 물건을 하나 주웠는데 이거 봐요.”제왕은 떨리는 손으로 품에서 현철로 된 패를 꺼내 탁자위에 올려 놓고는 얼른 손을 뒤로 움츠렸다. 마치 그 철패에 손을 데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우문호가 보더니 얼굴색이 확 변하며 얼른 손에 들고 새겨진 번호를 찾는데 3자를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이 현철패는 황태조 할아버지 시절에 하사하신 것으로 전부 5개 밖에 없어.” 우문호가 제왕을 보고
목장에서는 전보다 훨씬 뛰어난 전투마들을 사육했기에, 우문호는 마치 보물을 자랑하고 싶은 어린아이처럼 당장이라도 정정과 함께 보러 가고 싶어 했다.그러자 근영군주가 웃으며 말했다.“폐하께서 아직도 소년 같은 순수함을 지니시고 있다니, 참 보기 드물고 귀한 일이군요.”하지만 원경릉의 귀에는 이 말이 남편이 어린아이 같다는 말로만 들렸다.그녀는 이내 웃음을 터트렸다.“하하하. 사내들이 가끔 저렇게 유치할 때가 있잖습니까.”근영군주도 깊이 공감하며 말했다.“예. 평소엔 유치하다가도, 필요할 때는 놀라운 배짱과 결단력을 보여주지요. 집안을 지탱하기도 하고, 나라를 떠받치기도 하고. 안 그렇습니까?”원경릉도 미소를 띠며 고개를 끄덕였다.“맞습니다.”남자들이 말을 타러 나가자, 원경릉과 근영군주는 궁전 안에서 담소를 나누기 시작했다. 대두가 몹시 심심해하자 원경릉은 친왕비들에게 아이를 궁으로 데려와 아이들끼리 놀게 했다.대주의 손님을 정성껏 대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기에 친왕비들은 아이들을 데리고 궁에 들어왔다.사실 대두와 비슷한 나이의 아이는 많지 않았다. 미색의 두 아이와, 원용의의 아이 모두 대두보다 어렸지만, 놀 벗이 없는 상황에 나이가 어린 것은 크게 문제 되지 않았다.대두는 외동아들로 자라 성격이 다소 거칠었다. 하지만 미색의 딸인 란이 역시 성격이 강하고 고집스러웠다. 어머니인 미색을 닮아 태생이 강한 성격을 타고난 것이었다.게다가 그녀에게 무술을 배워 한창 센 척을 할 시기라 대두와 몇 마디 말다툼 끝에 결국 몸싸움으로 번져 버렸다.란이가 대두를 때리자, 대두는 얼굴이 퉁퉁 부어오를 정도로 맞으면서도 전혀 반격하지 않고 그저 참고만 있었다. 끝까지 이를 악물고 버텨냈다.란이는 평소 늑대파에서 무술 대련을 했기에 상대가 반격하지 않고 그저 제자리에서 맞고만 있는 멍청한 모습을 경험한 적이 없었기에, 부어오른 대두의 뺨을 발견하곤 깜짝 놀라며 물었다.“어찌... 반격하지 않는 것입니까?”대두는 화난 표정으로 대답했다.“어찌
생각해 보면 이렇게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의 혼사를 정하는 것이 얼마나 황당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아이가 남녀인지도 모르면서 성급한 부모들이 충동적으로 혼사를 결정해 버리다니 말이다. “대두가 아직 이리도 어린데, 벌써 혼사를 이야기하다니요, 우리 만두는 아직 애 입니다.”우문호는 괜히 기분이 답답해졌다.현대로 다녀온 뒤, 사람들이 늦은 결혼과 출산을 선호하는 것을 본 그는 생각이 바뀌었다. 열몇 살에 혼사를 하는 것은 성장의 억압이나 다름없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혼사 이야기를 한다고 당장 하는 건 아니오. 그저 약속만 하고, 몇 년 후에 하겠다는 거네.”“어찌 이리도 태연한 것이오?”우문호가 원경릉의 여유로운 표정을 보며 그녀가 그들이 빚을 받으러 온 걸 모르는 건가 싶었다.“난 걱정 없소. 딸을 보내고 싶지 않으면 당신처럼 쓸데없는 부담감 없이 그냥 바로 거절할 것이오. 형제간의 정이 거절로 인해 상할까 봐 고민한다니, 억지로 혼사를 성사하는 것이 더 정을 상하게 할 것이오.”그러자 우문호가 말했다.“이론적으로는 맞는 말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 마음이 편치가 않소.”후궁에서의 우문호는 조정에서의 단호하고 강력한 모습과는 완전히 딴 사람이었다. 조정에 나서기만 하면 단호하고 과감하며, 마치 번개 같은 결단력을 보여주는 반면, 후궁에서의 그는 망설임도 많고 잔소리도 많은 사람이었다. 원경릉이 다른 왕비들과 대화할 때, 그들도 가끔씩 이 얘기를 꺼내곤 했었다. 다들 다섯째의 평소 잔소리가 예전보다 훨씬 많아졌다며 놀라했다. 하지만 다른 친왕들의 의견은 달랐다. 그들은 그가 예전보다 훨씬 결단력이 있어졌다고 말했다.이런 얘기가 나올 때마다 이리 나리는 한숨을 쉬며, 결국 결단력 넘치는 황제도 결국 자식들 문제에서는 고민에 빠지는구나 싶었다.8월 14일, 정정 대장군 가족이 북당의 수도에 도착하자마자 초왕부에 머물렀다.그들은 초왕부에 머문 직후 탕양의 안내로 우문호를 만나기 위해 궁으로 들어갔다.아무리 큰 걱정도 오래된 벗 앞에서
예전에 원가에서 온 가문이 강북부로 이주한 적이 있었다.북쪽은 바람과 모래가 거셌지만 원가의 사람들에게는 전혀 낯설지 않았고, 오히려 고향과 비슷한 정감을 느끼게 했다.이리 나리는 원가의 사업을 줄이도록 도우며, 관리하기 쉬운 몇몇 가게만 남겼다.탕양은 일곱째 아가씨에게 장사를 내려놓아도 괜찮은지 물은 적 있었는데, 그때 일곱째 아가씨가 말했었다.“그런 말 마시오. 내 능력을 충분히 증명했으니 이제 만족스럽소. 열심히 해서 큰 성과를 얻었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오. 평생 바삐 지낼 수도 없잖소. 그렇게 돈을 많이 벌어서 뭐 하겠소? 다 잘 살기 위해 번 것이오. 가업을 나눠 받은 돈만 해도 평생 다 못 쓸 만큼 많소. 그리고 가게들도 계속 돈을 벌 텐데 뭐가 아쉽겠소?”탕양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손에 익은 일이라, 혹시라도 아쉬워할까봐 걱정했소. 사실 나도 당신이 이렇게 고생하는 것이 싫었소. 당신만 괜찮다면 다행이오.”일곱째 아가씨는 미소를 지었고, 그의 말에 모두가 기뻐했다.“한가해지는 것도 괜찮소. 1년에 두세 달은 약도성에 가서 지내면 얼마나 여유롭겠소.”하지만 탕양이 눈살을 찌푸렸다. 1년에 두세 달이면, 왕복하는 시간까지 더해 최소 반년은 걸릴 것이고, 그 말은 반년 동안이나 그의 곁에 없다는 뜻이었다.게다가 그도 경성을 몇 달씩 떠나는 건 불가능했다. 지금은 황제 곁을 하루라도 떠나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하지만 그는 그녀가 행복하면 그걸로 충분했다. 물론 그는 늘 함께하고 싶었지만, 오래된 부부였기에 항상 붙어있을 필요는 없었다.북당은 점점 부유해지고 있었다. 원가가 일부 사업을 매각하면서 그 변화를 실감할 수 있었다.가게들은 치열한 경쟁 속에서 싸웠고, 좋은 위치에 있는 가게들은 더더욱 귀한 존재가 되었다.원래 원가는 모든 가게를 이리 나리에게 넘기려 했지만, 이리 나리는 거절했다.그리고 안풍친왕이 먼저 나서서 이리 나리가 이미 너무 많은 가게를 보유하고 있고, 특히 경성에서의 비중이 지나치게 높아 독점 우
원경릉이 깜짝 놀라며 말했다.“일곱째요? 일곱째는 분명 원용의에게 말할 것이고, 원용의는 또 사식이에게 얘기할 것이고, 사식이도 분명 서일에게 전할 것일 텐데요. 만약 서일이 알게 되면, 이제 북당 전체가 다 알게 될 것이오.”우문호는 순간 당황해하며 말했다.“그건 내가 생각지도 못했네.”원경릉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아마 지금쯤 황실 친왕들 사이에서 이미 탕양의 이야기가 뒷말로 오가고 있을 것이었다. 겨우 부인을 얻었는데, 밤에 함께 자지 못한다니 참 안타까운 일이라 생각할 것이다.우문호는 탕 대인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다들 뒤에서 탕양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여인들이 수군거리니, 남자들은 그를 도우려 했다.물론 부부 사이의 일에 직접적으로 간섭할 수는 없었기에, 대신 탕양을 술자리로 초대해 술로 고민을 푸는 방법을 제안했다.그렇게 며칠째 술을 마시던 탕양은 자신의 비밀이 모두에게 알려졌다는 사실을 깨달아 한숨을 쉬며 말했다.“제 탓입니다. 폐하가 비밀을 지키지 못한다는 걸 깜빡했습니다.”제왕이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너무 신경 쓰지 말거라. 이런 일은 억지로 되는 게 아니다. 여인은 때로 달래줄 필요가 있는 법이다.”그러자 탕양이 어찌할 바를 몰라하며 말했다.“제가 폐하께 이 이야기를 했을 땐, 혼례한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습니다.”“알고 있다. 서두르지는 말거라.”모두가 이해한다는 눈빛으로 탕양을 바라보았지만, 탕양은 더 이상 해명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그들은 이미 혼인했지만, 오랜 부부 생활을 한 터라, 남녀 간의 정이 때로는 하루아침에 급격히 발전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탕 대인은 돌아가자마자 일곱째 아가씨에게 이 일을 전했다.그러자 일곱째 아가씨가 웃으며 한숨을 내쉬었다.“정말이지, 어찌 허구한 날 남의 부부 일에만 관심을 가지니, 할 일이 없나 보오.”“신경 쓰지 마시오. 우리가 잘 살면 그만이니.”탕양은 일곱째 아가씨를 안으며 자신감에 찬 표정을 지었다.
원경릉은 궁으로 돌아와 이 일을 다섯째에게 이야기했다. 그러자 다섯째가 말했다.“사실 한 번 돌아가는 것도 괜찮을 것 같소? 그저 경성만 한 바퀴 둘러보면 되지 않소.”“아이들을 데려다줄 때 휘종제 어르신께서 슬퍼하셨소. 이번 생에 고향으로 못 돌아올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돌멩이 하나를 건네주니, 그걸 안고 울었소.”“정말 안타깝소!”다섯째는 증조할아버지 생각에 마음 아파했지만, 이내 말을 이어 나갔다.“하지만 큰할아버지께서 그를 데려오지 않는 이유도 있을 것이오. 휘종제 어르신을 잘 아는 것도 아니지 않소? 몇 번 만나보니, 활달하고 산만한 성격에 무슨 사고를 일곱째인지 모를 것 같은 느낌이 들었소.”“맞소.”원경릉도 깊이 공감했다. 특히 그가 전화로 끈질기게 설득할 때는 정말 무서울 정도였다.“다른 일은 없었소? 부모님 건강은 어땠소? 처남은 여자 친구가 생겼소? 만두는 공부를 잘하고 있소?”다섯째가 끊임없이 질문했다. “괜찮소. 부모님 건강도 괜찮긴 하지만, 아버지께서 고혈압이 생겨서 약을 오래 드셔야 하오. 오빠는 여자 친구가 없네. 주진과 아직도 서로 솔직히 이야기하지 않은 상황이오. 만두는 걱정 안 해도 되네. 내년에 돌아올 것이니.”“다행이오!”다섯째가 기뻐해 하며 말했다. 그는 늘 만두의 능력을 눈여겨보았기에, 그가 돌아오면 나라의 일들을 조금이라도 도와줄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비록 많은 부담을 짊어지진 못하지만 그래도 괜히 기대가 되었다.“추 할머니 병은 어떠하신가?”다섯째가 또 물었다.“아직은 괜찮소. 아주 좋아졌네. 약에 내성이 생기지만 않으면 큰 문제는 없을 것이오.”원경릉이 말하자 다섯째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분들이 늘 건강해지시길 바랄 뿐이오.”평범한 사람들조차도 적성루 사람들에게 감동하기 쉬운데, 하물며 북당의 황제인 자신은 오죽하겠는가.“계란은 소식 왔소?”원경릉이 물었다.“왔네. 보시오!”다섯째는 소매 안에서 구겨진 편지를 꺼냈는데, 비둘기를 통해 받은 그 편지에는 몇 줄의 짧은
“별다른 뜻은 없소. 오늘 밤에 유난히 감성적이라 그저 한마디 해본 거네. 사실 너무 감동해서 그러네. 비록 항상 탕 대인에게 빨리 혼인하라고 재촉하긴 했지만, 그가 일곱째 아가씨와 혼인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소.”“괜찮소!”원경릉은 그의 품에 안겨 그의 심장 소리를 들으며 말했다.“어쨌든 탕양은 우리와 함께 걸어온 사람이오. 그러니 그가 사랑하는 여인과 함께하게 된 건 우리 모두에게 기쁜 일이오.”우문호는 벌써 술에 취한듯 머리가 약간 어지러웠다. 술에 취하면 항상 눈앞의 모든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곤 했는데, 익숙한 천장, 익숙한 사람, 익숙한 탁자와 의자. 취기가 돌며 모든 것들이 꿈처럼 느껴졌다.그는 마치 다시 초왕 우문호로 돌아간 듯했고, 갓 원경릉과 마음이 통했던 때로 돌아간 기분이었다.그 당시 외부 정세는 불안정했고, 태자 자리를 둘러싼 다툼이 막 시작되었던 때였다. 형제끼리 반목하며, 치열하게 싸웠던 시절을 돌아보면 잃지 않고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얻었다는 사실에 감사하게 되었다.우문호가 원경릉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했다.“원 선생, 몇 년간 아주 긴 꿈을 꾼 것 같지만, 되돌아보니 정말 다행이라고 느껴지네. 사실 모든 행운과 행복은 원 선생의 잘못된 연구에서 비롯된 것이오. 원 선생이 오지 않았다면 내 인생이 어땠었을까 싶네.”그러자 원경릉이 말했다.“누군가가 이 세상에 몇 시간과 공간이 존재한다고 했소.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이 다른 세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을 수도 있네. 아마도 어떤 공간에서는 내가 없는 대신 다른 사람이 당신과 함께 있을 수도 있소.”우문호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그 세상 속의 나는 정말 불쌍할 것이오.”“그건 모르오. 어쨌든 그곳의 당신은 나를 모르고, 우리가 지금 얼마나 행복한지도 모를 것이오. 각자가 행복을 정의하는 방식은 다르오. 어떤 사람들은 매 끼니 고기가 있는 게 최대의 행복일 수도 있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은 봉급이 오르길 바랄 것이오. 또 가족이 화목하고 건강하기를 바라기도 하고
우문호는 혼인을 하사하는 조서를 내렸다. 이는 탕양의 혼사에 화룡점정을 더하는 일이었다.온 경성 사람들이 탕양이 황제를 모시는 신하인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녀의 혼사에 주목했다.탕양은 왕부에서부터 황제를 지지해 온 충신이었으며, 군신 간의 정은 형제의 관계에 못지않았다.거기에 황제가 직접 혼인을 하사했으니, 이는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이었다. 그래서 다들 두터운 예물을 준비해 축하하러 왔다.혼례는 초왕부에서 열렸다. 비록 초왕부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지만, 이번 경사에 많은 지원이 몰렸다. 여러 왕부에서 사람을 보내왔고, 미색은 돈에 힘까지 보태며 혼사 지출의 3할이나 부담했다.희상궁도 돌아와 모든 일을 총괄했다. 희상궁은 비록 나이가 많았지만, 여전히 일 처리 능력이 뛰어났다. 그녀는 여러 왕부에서 온 사람들을 지휘하며 완벽하게 일을 조율했다.혼례 당일, 황제와 황후도 참석했다.신부가 도착하여, 혼례를 올릴 때 우문호와 원경릉은 상석에 앉아 신랑 신부의 절을 받고는, 그 다음으로 기상궁도 절을 받았다.우문호가 원경릉의 손을 잡으며 흐뭇한 표정으로 말했다.“탕 대인이 드디어 철이 들었고, 가정을 이루었으니 정말 기쁘네.”원경릉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제 마음이 풀립니까? 그러니 앞으로는 더 이상 잔소리하지 마시지요.”“잔소리는 계속할 것이다. 이젠 아이를 낳으라고 해야지.”우문호는 걱정이 끝이 없다는 듯 말하자, 원경릉이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아이 낳는 일은 하늘에 맡겨야 하네.”“그래도 몇 가지 비법을 전수해 줄 수는 있소.”우문호가 자부심 넘치는 표정으로 말했다.“좀 더 크게 말해보시오. 다른 사람들이 못 들을까 봐 걱정이오?”원경릉이 그를 흘겨보았다.주변 사람들이 모두 그들을 바라보며 부러움 섞인 표정을 지었다. 많은 사람이 첩을 두고도 황제만큼 자식을 많이 두지는 못했지만, 황제는 복도 많고 자식도 많은 사람이었다. 저녁 연회에서 우문호는 과음했지만 원경릉은 그를 막지 않았다. 이런 노부의 감격은 술로 달래야 한
탕양이 뜨거운 눈빛을 반짝이며 말했다.“거짓말이라면 제 목숨을 앗아가도 됩니다.”일곱째 아가씨가 그의 시선을 보며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돌고 돌아 결국 대인과 함께하게 되었네요. 하지만 미리 말하자면 혼사가 너무 급작스럽게 성사되어 저도 어찌할 도리가 없었던 것입니다. 시집간 후에도 그저 명목상 부부로만 살 뿐, 당분간은 벗으로 지낼 것입니다. 이를 받아들일 수 있다면 혼사를 승낙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없던 걸로 하시지요.”그러자 탕양이 거의 생각할 겨를도 없이 대답했다.“받아들이겠습니다. 무엇이든 다 좋습니다. 혼사만 승낙한다면 그저 명분이라도 상관없습니다!”이로써 드디어 그의 수년간의 바람이 이루어졌다.일곱째 아가씨가 담담히 말했다.“그렇다면 어디서 지낼지 생각해 보시지요. 하지만 대인 방에는 다른 사람이 살고 있으니, 그곳에 지낼 수는 없습니다.”탕양이 다급하게 말했다.“걱정하지 마십시오. 황후 마마와 상의를 해보았습니다. 지금 초왕부에 아무도 살지 않으니, 우선 그곳에서 지내시지요. 전에 그 방은 저도 쓰지 않고, 바로 서일에게 줬습니다.”그러자 일곱째 아가씨가 물었다.“저택을 따로 살 생각은 안 해보셨습니까?”“전에 혼자였을 땐 그런 생각까지 하지 못 했습니다. 초왕부도 누군가 관리해야 하는 터라... 하지만 아가씨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돈을 모아 작은 집이라도 살 수 있습니다.”일곱째 아가씨는 초왕부를 둘러보았는데, 그리 호화롭지는 않았지만, 분위기가 몹시 편안했다. 하지만 황제의 옛 저택이라, 평생 이곳에서 지낼 수는 없을 것이다.“우선은 이곳에서 지내고, 나중에 땅을 사서 직접 집을 지으십시다.”땅을 사고 집을 짓는다는 것은 돈 많은 사람이나 할 수 있는 일이었기에, 탕양은 순간 자기가 보잘 것 없게 느껴졌다.그가 쭈뼛거리며 말했다.“걱정하지 마십시오. 이 일은… 꼭 마음속에 깊이 새겨 두겠습니다.”일곱째 아가씨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땅도 제가 사고, 집도 제가 지을 것입니다. 나중에 대인이 잘못이라
노태군이 손을 흔들며 말했다.“안 된다. 혼인 전에는 신랑 신부가 만날 수 없어. 이건 풍습이고 규칙이니, 어길 수 없다.”그러자 일곱째 아가씨가 웃음을 터뜨렸다.“하하하. 이 혼사에 정해진 규칙이 있긴 합니까? 어머니께서는 제가 그를 만나 오히려 싸움이 나서 혼사가 그릇될까 봐 걱정되시는 것 아닙니까? 어머니께 약속했으니, 반드시 혼사를 올릴 것입니다. 이제 마음이 놓이십니까?”노태군은 이 말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좋다. 너도 장사하는 사람이니 신임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것이다. 약속했으니, 절대 번복할 수 없어. 목을 매겠다는 이 어미의 결심은 너가 반대하면 언제든 효력을 발휘할 것이다.”일곱째 아가씨가 이를 갈며 투덜댔다.“이렇게 얄미운 늙은이는 정말 처음입니다!”“나도 너처럼 고집 센 딸은 처음 본다.”노태군이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웃음소리가 들려오자, 원가 사람들은 그제야 한숨을 돌렸다. 일곱째 아가씨가 시집가는 것이 정말 꿈만 같게 느껴졌다.일곱째 아가씨의 혼사는 원가 사람들에게 마음의 짐과도 같았다.탕양은 일곱째 아가씨가 무사히 경성으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한숨을 내쉬었다. 한숨을 내쉬고 나니, 눈물이 터져 나올 것 같은 감정이 북받쳤다. 그녀에게 아무 일도 없다는 생각에 그는 코끝이 다 시큰 거렸다.그날 밤, 일곱째 아가씨가 초왕부로 탕양을 찾아가자, 탕양은 그녀를 안으로 들인 후, 단둘이 방 안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탕양은 그녀를 바라보았는데, 붉은색 옷차림에 머리를 단정히 올려 깔끔하고 우아한 모습이 여전히 돋보였다. 세월의 흔적이 얼굴에 남아 있었지만, 오히려 그녀의 매력을 더해 주었다.그녀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는 패기 넘치던 청춘 시절이었는데, 눈 깜짝할 새에 이렇게나 많이 늙어 버렸다.탕양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감을 잡지 못했다. 수많은 감정이 얽혀 있었지만, 한마디 말도 제대로 꺼낼 수가 없었다.특히 약도성에서의 일을 겪고 난 뒤라, 첫마디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