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인이 잘 만들었죠.” 소이연이 아니꼬운 듯 말했다.전에 그녀는 문씨 가문을 위해 많은 일들을 했지만, 결국 마지막 공은 전부 문서인에게 돌아갔다.사귀는 사이였으니, 한 번도 따지지도 않았다.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정말 부질없는 일이었다.“이연 씨랑 문서인 씨는 어떻게 헤어졌어요? 그 큰 사건 때문에 감정이 식은 건 아니죠?!”“문서인이 제 의붓여동생을 좋아하게 됐어요.”“소나은이요?” 예수진이 아니꼬운 듯 웃었다. “그 여우 같은 년.”“수진 씨가 보기에도 걔가 나빠 보여요?”“눈이 보이면 다 그렇게 봐요. 근데 남자들은 10명 중에 8명은 눈먼 사람이에요.”소이연은 웃었다. 예수진의 말이 아주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속으로는 감동했다.그녀와 예수진은 고작 몇 번 만나본 사이지만, 두 사람은……말 못 할 관계였다. 하지만 그녀들은 잘 맞는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그녀는 내성적인 성격으로 그녀 주변에는 친구들이 얼마 없었다.당연히, 가장 친한 친구 한두 명 쯤은 있었는데, 18살 스캔들 이후에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그녀를 피했다. 마치 그녀와 어울리면 본인들도 더럽혀지는 것처럼.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고, 그녀는 혼자인 것이 익숙했다.그녀는 심지어 혼자 해외에서 지내면서 너무 외로운 탓에 그렇게 쉽게 문서인을 좋아하게 되었던 것은 아닌지, 그래서 끝까지 그들 사이에는 절대 끊어지지 않는 감정이 있다고 믿었던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되었다.두 사람은 이야기를 하며 술을 마셨다.술에 취할 거라곤 생각도 하지 못했는데, 둘이 너무 잘 맞는 탓에 술을 많이 마셨다.소이연의 휴대폰이 울리고, 화면을 보니 “장 비서”라고 쓰여 있었다.“이사님, 수진 씨 촬영 에피소드랑 공식 홍보 카피라이팅 휴대폰으로 보내드렸습니다. 문제 있는지 확인해 주시고, 문제없으면 마케팅팀 통해서 수진 씨 소속사에 연락해 확인하고 저녁 10시 10분에 시간 맞춰 발행하겠습니다.”“알겠습니다.” 소이연은 전화를 끊고 휴대폰의 카피라이팅,
소이연은 예수진을 데리고 그녀의 집으로 갔다.예수진은 거의 차에 도착하자마자 잠들었고, 너무 깊게 잠들어 불러도 불러도 일어나지 않아, 데려다주고 싶어도 그녀의 집이 어딘지 알 수 없었다.주차장에 도착했다.소이연은 한참을 낑낑대서야 예수진을 부축해 차에서 내렸다. 그러고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그녀를 부축해 집으로 가 침대에 눕혔다.여태까지 그녀는 계속 혼자 살았기 때문에, 비록 방은 2개였지만 침대는 1개였다.예수진은 그녀의 침대에 누워 편안한 듯 몸을 돌려 깊은 잠에 들었다.그녀가 이때를 틈타 예수진을 업어다 팔아도 모를 것 같았다.도대체 그녀가 겁이 없는 건지 신뢰가 쌓인 건지 모르겠다.소이연은 깊게 숨을 내쉬고 예수진에게 꿀물을 타 침대 머리맡에 두고 자신은 샤워를 했다.샤워를 하고 나오니 그제야 진동 모드인 휴대폰 화면이 계속 빛나는 것이 보였다.소이연은 휴대폰을 들고 베란다로 나가 전화를 받았다.“소이연, 너 간이 배 밖으로 나왔구나?” 문서인의 비꼬는 목소리가 전화 저편에서 들려왔다. “예수진이랑 은하 패션 앰배서더 계약을 해?! 왜, 시녀 둘이 남자 하나 받드니까 좋아?! 너 진짜 역겹다.”“나는 단 한 번도 이렇게 축하할 일이 없었어. 애초에 약혼 연회에서도 깎아내리기나 하고, 만약 내가 진짜 너한테 시집갔으면, 대대로 땅을 치면서 후회했겠지.”“네가 나한테 뭐라고 할 자격이 있어?! 넌 네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한 번도 생각 안 해봤어? 18살에 미혼모로 지금은 다른 여자랑 같이 남편을 공유하질 않나, 소이연, 너 진짜 천박하고 더러워.” 문서인은 하찮다는 듯 말했다.“네 생각에 너는 깔끔하다고 생각하나 보지? 너랑 소나은이 한 침대에 있을 때, 넌 네가 얼마나 더러웠는지 생각해 본 적 있니? 문서인, 너도 그렇게 잘난 건 아닌 것 같은데, 너 스스로 고상하고 순진한 척 하지마, 적어도 너한텐 진짜 안 어울리니까.” 소이연도 문서인에게 어느 정도의 여지는 남겨두어야 했다.“네가 내 호의를 못 받아들이겠다면, 난
“침대에서 좋은 냄새가 나요.” 예수진이 덧붙였다.소이연은 웃었다.예수진이 샤워를 하고 소이연의 잠옷을 입고 마음대로 돌아다니며 소이연의 집을 둘러보며 말했다. “방은 한 개네요.”“지금 후회해봤자 늦었어요.” 소이연은 주방의 테이블에서 커피를 내리고 있었다.그녀는 보통 아주 늦게 잠들었다. 12시도 안 되었으니, 잠도 오지 않았다.예수진도 자고 일어나니 잠이 오지 않았다.“무슨 후회요?” 예수진이 웃으며 말했다. “저는 손해 보는 것도 아닌데요.”소이연이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았다.예수진은 갑자기 반응해 급히 해명했다. “저 성적 취향 정상이에요!”소이연은 웃으며 내린 커피를 예수진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저는 설탕이 안 들어간 블랙커피를 좋아해요. 너무 쓰면 여기 각설탕 있으니까 넣어 먹어요.”“괜찮아요, 저도 보통 블랙커피로 마셔요. 특히 정신 좀 차려야 할 때는요.”두 사람은 소파에 앉아, TV를 켰다.TV는 마침 예능 채널이 틀어졌고, 예수진이 출연한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 방영되고 있었다.“진짜 제 팬이신가 봐요!” 예수진이 조금은 자랑스러운 듯이 말했다.사실 그런 것도 아니다.예능 프로그램을 보는 것은 시간을 때우면서 힐링하기 위함이었다.당연히 본인 앞에서는 반박하지 않을 것이다.두 사람은 늦은 시간까지 예수진이 출연한 프로그램을 보았다.예수진의 휴대폰이 울렸다.그녀는 한 번 보고 받지는 않았다.그리고 소이연의 휴대폰이 울렸다. 그녀는 휴대폰을 보더니 급하게 전화를 받았다. “계 감독님.”예수진은 소이연을 한 번 보고는 다시 TV 화면에 집중했다.“오늘 예수진이 은하 패션 광고 찍으러 온다면서요?”“맞아요.” 소이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수진 씨 찾아요? 지금 제 옆에 있는데.”“지금 옆에 있다고요?” 계지원이 되물었다.“네. 오늘 저녁에 저랑 술을 좀 마셨는데, 저희 집에서 잔다고 해서요.”“아, 네.” 계지원이 짧게 대답했다.아마도 한숨을 쉰 것 같았다.“무슨 일 있어요? 전화 바꿔드릴
“계 감독님이랑 사이가 안 좋아요?” 소이연이 물었다.“아니요.” 예수진이 대충 대답했다.하지만 누가 봐도 그리 사이가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예수진은 왜 계지원의 전화를 받지 않은 걸까.원래대로라면 감독의 전화는 보통 다 받아야 하지 않나?설마 예수진이 인기가 많아서?결국 이 작품은 A급 정도이고 S급까지는 아니라고 듣기는 했다. 게다가 지금 예수진의 연예계 몸값이나 지위는 S급의 작품을 마음대로 받을 수 있는 정도이다.그래서 마음대로 할 수 있었던 거구나.하지만 예수진은 애초에 마음대로 할 사람은 아닌데.“졸려요.” 예수진은 하품을 하더니 말했다. “저 먼저 잘게요.”“네.”다른 사람의 사생활이니 소이연도 더 이상 물을 수 없었다.어쨌든 그녀는 예수진과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다.어떻게 “같은 침대, 같은 베개”를 공유하는 사이가 된 건지는 모르겠다.......이튿날 아침.소이연은 일어나 아침 준비를 했다. 간단하지만 예수진의 몫도 같이 준비했다.예수진은 잠이 덜 깬 채로 눈을 게슴츠레 뜨며 거실로 나왔다. 식탁 위의 아침밥을 보고 하품을 하며 말했다. “전 안 먹어요. 다이어트 해야 돼요.”소이연에게 미안한 기색이 조금도 없었다.소이연도 궁금해졌다. 예수진은 모든 사람에게 다 이렇게 대하는 걸까?“......어제 밤에는 신나서 잘 먹은 거 아니었어요?”“그러니까 다이어트 해야죠.” 예수진이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아침밥 거르면 위에 안 좋아요.”“저도 알아요. 제 매니저가 삶은 계란이랑 무지방 우유 가져올 거에요. 이따가 차에서 먹으면 돼요.”“이제 가려고요?”“어제 대단하신 계 감독님께서 오늘 절대 늦지 말라고 하셨잖아요. 제가 어떻게 감히 감독님 말을 안 듣겠어요.”어제 감독님 전화는 안 받았으면서…“어젯밤에는 감사했어요.” 예수진이 소이연에게 눈웃음을 보이며 말했다. “이연 씨 결혼하실 때 제가 큰 거 하나 해드릴게요.”“......” 누구랑 결혼을 하라는 말인지.......예수진은 은하 그룹과의 계약
문서아는 사실 누가 촬영을 하든 상관없었다. 저번 육씨 연회에서 계지원은 그녀를 신경도 쓰지 않았고, 그때의 일로 속으로는 감정이 남아있었다.조금 뒤.계지원이 촬영장에 나타났다.간단히 설명한 뒤, 촬영을 시작했다.“Action!”계지원은 카메라 앞에 앉아 눈썹을 찡그렸다.“컷!”촬영이 갑자기 중단되자, 문서아는 낯빛이 어두워졌다.“왜요, 감독님?” 부감독이 급히 물었다.“눈빛이 부족해. 동선도 안 맞고, 카메라도 느낌이 안 살고, 스타일링도 별로야.” 계지원이 말했다. “이렇게 해서는 내가 원하는 대로 절대 안 나와.”문서아는 계지원의 말을 듣고 낯빛이 더욱 어두워졌다.그녀는 집안 때문에 살면서 한번도 누군가가 그녀에게 이렇게 대한적이 없었다.“소품팀 메이크업 좀 고쳐주시고, 저는 널리고 깔린 인플루언서 같은 느낌은 싫습니다. 배우분은 대본 다시 보시고 느낌 좀 잡아주세요.” 계지원은 예의를 갖춰 말했다. “저는 먼저 옆 촬영에 좀 다녀오겠습니다. 금방 올게요.”말이 끝나자, 계지원은 바로 자리를 떴다.“계지원!”문서아는 바로 달려갔다.오랜 시간 동안 촬영을 했어도, 누군가에게 이렇게 혹평을 받아 본 적은 없었다.계지원은 발걸음을 멈추고 말했다. “이렇게 하실거면 직접 시범을 보여주시죠!”“저는 감독입니다. 배우가 아닙니다.” 계지원은 직설적으로 말했다. “당연히 저도 리허설을 할 순 있죠. 하지만 지금은 제가 너무 바빠요.”한마디 말만 남기고, 계지원은 몸을 돌려 걸어갔다.문서아는 화가 나서 견딜 수 없었다.그동안의 감정이 쌓이고 쌓여, 그녀는 앞으로 나아가 계지원을 잡았다.계지원은 상상도 못 했다는 듯, 몸이 휘청댔고, 그대로 옆에 있던 임시 철근 구조물에 부딪혔다. 오늘 촬영에만 쓰일 예정이었던 구조물은 대충 고정되어 있었고, 그 순간 수많은 쇠 파이프가 위에서 떨어져 내렸다.“조심해!”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놀라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문서아는 너무 놀라 그대로 얼어붙었다.그대로 눈만 뜨고 쇠 파이프가 그
육현경이 퇴원했다.첫날부터 밤마다 소이연에게 메시지를 보냈다.퇴원할 때 데리러 오라고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각종 화제를 찾았다. 예를 들면 지금 바쁜지, 계속 알려주었다. 의사는 회복이 잘 되었다며, 퇴원해도 된다고 했다.정말이지 퇴원할 때 그녀가 데리러 올 이유 수천 가지를 생각했다.소이연도 그의 노력을 아는지, 아침 일찍부터 병원으로 갔다.명진은 퇴원 수속과 물건 정리를 위해 바삐 돌아다니고 있었다.육현경은 환자복을 갈아입고 편안한 하늘색 셔츠와 베이지색 바지를 입고 있었다. 평소의 셔츠와 구두에 비해 근엄하고 흐트러짐 없는 모습은 아니었지만, 캐주얼함과 자연스러움이 있었다. 유일한 공통점은 여전히 잘 생겼다는 점이다. 잘 생겨서 눈이 부실 정도였다.이때 그는 소파에 앉아 있었다. 산과 같이 미동도 없고 얼굴색도 좋지 않았다.소이연이 도착하기 전까지는.명진은 정말 진심으로 하늘과 땅과 사모님께 감사드렸다.사모님이 오시지 않았더라면 오늘은 또 대표님께 어떤 “수모”를 당하게 될지 몰랐다.원래 빙산 같던 대표님이 순간 녹아내려 물처럼 변했다. 심지어 온천 같았다.“정리 다 하셨어요?” 소이연이 명진에게 물었다.“거의 다 됐습니다.” 명진은 급히 대답했다. “저도 주차장에 주차했습니다. 대표님, 퇴원하시면 됩니다.”육현경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미동도 없이 있었다.소이연은 눈썹을 찡그렸다.회복이 잘 됐다고 한 게 아니었나?!몸도 못 일으키는 것 같은데?소이연은 명진이 부축하기를 기다렸다.명진은 눈치채고 아무것도 보지 못한 척 큰 보폭으로 자리를 떴다.웃기시네, 지금 부축을 하면 목숨을 내놓은 거나 마찬가지지!소이연은 어이가 없었다. 자신이 육현경을 부축할 수밖에 없었다.육현경은 몸에 체중을 실어 소이연의 몸에 기댔다.진짜 무거워!쇳덩이 같아!소이연은 이를 악물고 육현경을 부축해 그의 전용 벤츠에 앉혔다.자동차는 사우스 타운을 향했다.차 안은 정적만이 가득했다.육현경이 조수석에 앉은 명진에게 분위기를 띄우라고
말 못 할 마음, 그런 느낌이었다.하지만 그녀는 무시할 수 있었다.자동차가 목적지에 도착했다.소이연은 아직 입을 열지 않았지만, 육현경이 말했다. “민이가 집에서 당신 기다려.”턱 밑까지 차오른 말은 그대로 삼켜버렸다.“도련님, 이연 아가씨, 오셨습니까.” 문씨 아저씨가 정중하게 마중 나와 인사했다.그래서 지금 육민이랑 문씨 아저씨가 이 집에서 같이 산다고?!그럼, 저번에 왔을 때 문씨 아저씨를 같이 쫓아낸 게 아니었나?“엄마.” 육민이 작은 몸으로 방에서 뛰어나와 소이연의 품에 안겼다. “엄마 너무 보고 싶었어요. 아빠가 병원에 엄마 보러 못 가게 했어요!”이르는 것이 분명했다.소이연은 몸을 낮춰 말했다. “아빠는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육민이가 가면 아빠는 육민이도 돌봐줘야 하니까, 치료를 할 수가 없어서 그래.”“거짓말.” 육민이는 또랑또랑하게 말했다. “아빠는 내가 엄마를 독차지하는 게 싫어서 그런 거예요. 아빠는 나눌 줄 몰라요.”소이연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나누다.” 이 단어는 여기에서 쓰이는 단어가 아니다.문씨 아저씨도 참지 못하고 웃었다.이번에는 도련님 편에 섰다.그래도 와이프이니, 나눠줄 수는 없지.“민아.” 육현경의 얼굴이 어두워졌다.육민은 그래도 육현경을 아직 무서워했다. 육현경의 한마디에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는 신발장에서 핑크색 슬리퍼를 꺼내 반듯하게 바닥에 내려놓았다. “엄마 이거 신어봐요! 이거 나랑 아빠랑 엄청 오랫동안 고민해서 고른 거예요.”소이연은 마음 한편이 풀렸다.그녀는 사실 자주 오지 않지만, 그들은 그녀를 위해 신발까지 세심하게 준비했다.그녀는 저번에 육현경이 그녀의 집에 찾아갔을 때를 떠올렸다...... 그는 결국 스스로 준비했다.소이연은 슬리퍼를 신었다. 푹신푹신하고 부드럽고 사이즈도 딱 맞았다. “너무 예쁘다.”“엄마가 좋아하실 줄 알았다니까요. 엄마 빨리 들어오세요. 우리 집 소개해 줄게요. 우리 집 진짜 크고 진짜 예뻐요.” 육민이 열정적으로
소이연은 육현경을 흘끗 쳐다보았다.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육민 앞에서 하고 싶지 않았다.육민도 육현경의 시야 안에 있으니, 더 물어볼 수도 없었다.소이연은 육현경의 집에서 점심을 먹고 육민을 달래 낮잠을 재운 뒤에야 집에서 나올 수 있었다.육현경이 그녀를 집에 데려다주었다.명진이 운전을 했다.육현경과 소이연은 뒷좌석에 앉아 침묵을 유지하고 있었다.“육현경.” 소이연이 입을 열었다.“응.” 육현경이 시선을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확실히 난 과거에 오점이 많아.” 소이연이 말했다. “하지만 난 그렇게 막 나가는 사람은 아니야.”“......” 육현경은 조금 얼떨떨했다.“나도 네가 잘난 거 알아, 그것도 아주 많이. 게다가 널 좋아해 주는 사람도 많지. 나도 부정 안 해, 세상 모든 사람들은 아름다운 것에 대해 동경해. 만약 정말 너나 그녀의 잘못이 아니었더라도, 그냥 내 가치관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어. 우리 사이에, 만약 친구가 될 수 있다면, 난 정말 영광이야. 다른 관계는 난 못 해.”차가 소이연의 동네에 멈춰 섰다.소이연은 차 문을 열고 아무렇지 않은 듯 성큼성큼 걸어갔다.남겨진 육현경은 아주 당황한 듯한 얼굴이었다.그는 명진을 돌아보며 말했다. “너 이게 무슨 뜻인지 이해했어?”“......” 명진은 온몸에 힘이 들어갈 만큼 긴장했다.그도 나이가 있으니, 젊은 사람들의 사랑 얘기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하지만 이연 아가씨의 말을 듣자 하니, 명진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 도련님께서 바람둥이 기질이 있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닐까요?”“내가 그래 보여?” 육현경이 눈썹을 찌푸렸다.“겉으로만 보기에는 그렇죠...... 저는 도련님께서 인물이 훤칠하시기도 하니 여자들이 느끼기에 안정감이 없다고 느낄 수도 있지 않나 해서…”“......”그래서.그녀에게 뽀뽀를 했다? 아니다.그녀에게 몸을 보여주었다? 역시 아니다.지금 너무 잘 생겼다? 그것도 아니다.......지난번의 “불쾌함” 이후로,소이연
‘내가 자기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는 건가?’“승우 씨, 사과 따위 이제 필요 없어요. 지금 제가 바라는 건 아무 탈 없이 우리 사이의 관계를 끝내는 거예요. 승우 씨는 문수 씨 형이잖아요. 게다가 저도 어릴 때부터 송씨 가문에서 자란 사람이고요. 그러니까 우리 그냥 친척 같은 관계로 돌아갔으면 좋겠어요.”하지수는 인내심을 가지고 진지하게 말했다.송승우는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며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하지수는 더 이상 그와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망상에 빠진 사람은 무슨 말을 하든 헤어 나올 수 없다고 생각했기에 그녀는 자신의 마음을 표현했으니 그걸로 됐다고 생각했다.하지수는 뒤를 돌아 송문수 쪽으로 다가가려 했다. 늦은 시간이었고 그녀도 여전히 많이 피곤했다. 송문수랑 같이 집으로 가서 자고 싶었다.크레지가 아직 오지 않은 이상, 기술 투자 계약서에 사인하지 않은 이상 방심할 수는 없었다. 그들은 짬짬이 시간을 내서 잠을 잘 수밖에 없었다.그런데 막 돌아서려는 순간, 그녀의 손은 또다시 송승우에 의해 붙잡혔다.하지수가 아무리 팔을 흔들어도 벗어날 수 없었다.송문수는 차가운 눈빛으로 송승우의 행동을 지켜보며 주먹을 꽉 움켜잡았다.그가 앞으로 다가가 하지수를 데려오려던 순간, 송승우가 갑자기 말했다.“지수 씨, 방금 당신의 행동은 모든 걸 말해줬어요!”“무슨 행동이요?”하지수는 이해할 수 없었다.“방금 제가 불렀을 때, 제 쪽으로 다가왔잖아요. 그게 지수 씨 마음속에 있는 진심이에요. 더 이상 숨기지 말고 저한테로 오세요. 하지수 씨, 제가 잘 해줄게요. 지수 씨를 혼자 두는 일은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을 거예요. 제가 맹세할게요...”“아니요.”하지수는 단칼에 거절해 버렸다.하지수를 바라보는 송승우의 눈빛은 분노로 가득 찼다.“승우 씨가 불었을 때 따라간 건 무의식적으로 간 거예요. 잠에서 덜 깬 상태라서 누가 불렀어도 갔을 거예요. 승우 씨인 줄도 몰랐어요. 하지만 인정할 건 인정할게요. 낯선 목
송문수는 하지수가 일어나서 송승우 쪽으로 걸어가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다.송승우는 입가에 미소를 띠며 생각했다.‘그래, 지수 씨도 아직 날 신경 쓰고 있다니까. 숨기려 해도 어떻게 숨기겠어? 이런 상태에서야 비로소 진심이 드러나는 거지.’송문수는 멀어져 가는 하지수를 잡으려 손을 뻗었지만 그녀의 옷자락에 손이 닿았을 때 살짝 멈칫했다. 하지수를 강제로 붙잡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사실 그는 항상 하지수의 선택을 존중해 왔다. 지금까지 변함없이 말이다.하지수는 송승우 앞으로 걸어갔고 송승우가 먼저 손을 뻗더니 그녀를 끌어당기려 했다.그러나 그가 손을 뻗자 하지수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승우 씨?”그녀는 그제야 앞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깨달았다.조금 전까지 어지럽고 혼란스러웠던 상황이 이제와사 분명해졌다.그녀는 자신이 언제 잠에 들었는지도 몰랐다. 그저 너무 피곤해서 머리가 흐릿할 뿐이었다.“너무 늦었어요. 제가 데려다줄게요.”송승우가 그녀를 끌고 나가려고 하자 하지수는 급히 그의 손을 쳐내며 말했다.그러자 송승우는 눈살을 찌푸렸다.“아까는 잠에서 덜 깨서 그랬어요. 전 문수 씨랑 같이 갈 거예요.”“뭐라고요?”송승우는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언제까지 연기할 거예요?”“네?”하지수는 눈살을 찌푸리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송승우가 왜 갑자기 화를 내는지 알 수 없었다.“저를 놀리는 게 재밌으세요?”송승우가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저... 저는 그런 게 아니라...”하지수는 당황해하며 말을 더듬었다.그러자 송승우가 입을 열었다.“알겠어요. 제가 잘못한 걸로 하죠.”그가 갑작스레 사과를 하자 하지수는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그녀는 송승우가 왜 갑자기 사과를 한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왜 사과를 하는 거야?’“미안했어요. 어쩔 수 없이 떠난 거라고는 하지만 우리 결혼식에도 참석하지 못했잖아요. 결혼식장에 지수 씨 혼자 남겨두고 간 건 제 잘못이에요. 미안해요.”하지수는 그제야 무슨 말인지 이해했
하지수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심장은 여전히 빨리 뛰고 있었다.그녀는 전혀 말을 듣지 않는 심장을 진정시키려 애썼다. 만약 누군가 들어오지 않았더라면 이 어색한 상황이 얼마나 계속될지 알 수 없었다.‘문수 씨도 부끄러워하는 건가?’하지수는 입술을 꽉 깨물며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려 애썼다. 갑자기 웃음이 터져 나올까 봐 걱정이었다.하지수는 소파에 앉아 몰래 송문수를 쳐다보았다.그는 그저 고위직 직원의 얘기를 듣고만 있을 뿐, 전혀 불편해 보이지 않았다.그녀는 깊게 숨을 쉬었다.‘단지 어색해서 그런 건가?’송문수는 언제나 체면을 중시하는 사람이었으니 말이다.‘해명하려 하지 않는 것도 결국 체면을 세우려고 그러는 건가?’하지수는 너무 많은 기대를 해선 안 된다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다잡았다....크레지를 맞이하기 위해 모든 관련 부서가 계속해서 야근을 하고 있었다.송문수와 하지수 역시 마찬가지였다.그들은 끊임없이 회의를 열고 논의하며 최대한의 성의를 보이기 위해 애썼다.새벽 2시가 되었지만 송문수는 아직 퇴근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방금까지도 각 부서와 회의를 하면서 협력 계획과 판매 계획을 다시 수정하고 보완했다.회의가 끝난 후에도 송문수는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는 계속 바쁘게 일하고 있었다.송문수는 그제야 그의 확인이 필요한 문서들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무슨 서류든 제대로 보지 않고 사인을 해버렸었다. 하지만 이젠 점점 더 신중해졌고 모든 서류를 꼼꼼히 확인하고 나서야 사인을 했다.그 덕에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고 오늘 하루 동안의 모든 서류를 처리하고 나서야 송문수는 퇴근을 하려고 하지수를 쳐다봤다. 그러자 그녀는 이미 소파에 기대어 잠들어 있는 것이었다.하지수는 잠이 많은 사람은 아니었다. 송문수의 기억 속에 하지수는 늘 자신보다 일찍 일어나는 사람이었고 절대 늦잠을 자지 않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소파에 기대어 잠들어 있었다.‘많이 피곤한 걸까?’자세히 생각해 보니 그들은 지난 일주일 동안 계속해서 야
송문수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크게 티가 나지는 않았지만 그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밝아졌다는 건 알 수 있었다.하지수는 송문수를 더 방해하지 않으려 했다. 송문수가 점점 더 발전하는 걸 보면서 하지수도 그를 더 지지해 주고 싶었고 송문수로 하여금 업무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하지수는 옆에 있는 소파로 가서 노트북을 들고 업무를 처리하기 시작했다.그리고는 습관처럼 회사의 공식 채팅방에 들어갔다.그녀는 비록 알림을 꺼 놓았지만 회사의 공식 채팅방에 메시지가 있으면 항상 첫 번째로 확인하곤 했다.그런데 그때, 그룹 채팅에 있는 메시지를 본 하지수는 깜짝 놀랐다. 그녀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아마 이 상황을 믿기 어려워할 것이었다.송문수가 회사의 공식 채팅방에 ‘하지수’라는 이름을 여러 번 보낸 것이었다.하지수는 고개를 들어 송문수를 바라보았다.그는 진지하게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채팅방에는 여전히 ‘하지수’라는 이름이 올라오고 있었다.“문수 씨, 컴퓨터 바이러스에 걸린 거 아니야?”하지수가 물었다.“어?”송문수는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했다.하지수는 송문수 앞에 서서 그의 컴퓨터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화면에는 타자를 해놓고 아직 보내지 않은 ‘하지수’도 있었다.송문수도 그제야 자신이 채팅방에 ‘하지수’라는 이름을 여러 번 입력했다는 것을 깨달았다.그 자신도 놀란 듯했다. 그는 자신이 타자를 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의식하지 못했던 것이다.하지만 방금 그의 머릿속이 온통 하지수로 가득 찬 건 사실이었다.그때, 채팅방에서 누군가 메시지를 보냈다.[회장님 지금 하 매니저님한테 애교 부리는 거야? 그걸 실수로 단체 채팅방에 보낸 거고?]메시지는 보내지자마자 삭제되었고 밖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나도 잘못 보냈네!”그룹 채팅에 두 개의 삭제 기록이 나타났다.송문수는 멍하니 앉아 있다가 그제야 메시지를 삭제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그는 ‘하지수’라는 메시지들을 삭제하려 했지만 이미 메시지를 취소할 수 있는 시간이
송승우는 이를 꽉 악물었다. 그는 하지수를 절대로 포기할 수 없었다. 그는 하지수에게 송문수를 고른 게 얼마나 잘못된 선택이었는지 반드시 알게 해주겠다고 결심했다. 그녀로 하여금 후회하도록 만들겠다고 다짐했다....하지수는 송승우의 사무실을 떠나 바로 송문수의 사무실로 갔다.송문수는 업무에 몰두해 있었다.회사에 들어선 순간부터 그는 자유시간이 없었고 퇴근 후에도 여전히 업무와 관련된 일들을 처리하고 있었다.하지수는 송문수가 많이 변했다고 느꼈다. 그녀는 하느님도 부지런한 사람을 도울 거라 믿으며 송문수가 앞으로 큰 성과를 낼 것이라고 확신했다.“형이 뭐라고 했어?”송문수는 그녀를 한 번 쳐다보며 차갑게 물었다.“자기 개인 비서로 되어달라고 하더라고.”하지수는 송문수에게 숨기지 않고 말했다. 그녀는 더 이상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을 그에게 숨기고 싶지 않았다.송문수랑 같이 오랫동안 시간을 보내고 싶었기에 최대한 마음을 다할 생각이었다.송문수는 멈칫하더니 코웃음을 치더니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녀가 어떻게 대답했는지 알고 싶지 않아 하는 것 같았다. 어쩌면 하지수가 그 제안을 무조건 받아들였을 거라고 여겼는지도 모른다.‘지수가 형 요구를 거절한 적은 한 번도 없는데 이번에도 알겠다고 했겠지...’이렇게 생각한 송문수는 일에 더 집중하려 애썼다. 회사 일을 제대로 해내기로 결심한 이상 중간에 포기할 생각은 없었으니 말이다.“거절했어.”하지수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송문수는 가슴이 약간 두근거리는 걸 느꼈다.분명 그녀의 말에 설렌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겉으로 티 내지 않으려 했다.그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척 계속해서 서류를 보고 있었다.반면, 하지수는 송문수에게 그 어떤 반응도 기대하지 않았다. 어차피 송문수는 자기한테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저 자신의 결정을 그에게 알리고 싶었을 뿐이었다.“왜 거절했는데?”송문수가 차분하게 물었다.“문수 씨한테 내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으니까.”하지수는 웃으며
하지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송승우를 바라보았다.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말이다.어린 시절 그녀는 항상 송승우를 믿었고 그가 자기를 보호해 줄 거라 생각했었다. 송승우는 같은 또래 친구들보다 성숙하고 머리가 좋다고 생각했었다.하지만 순간, 그녀는 자신이 송승우에 대해 뭔가 오해를 하고 있었던 건 아닌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게다가 그가 지금 하는 행동이 너무 유치해서 하지수는 어떻게 거절해야 할지 몰랐다.그녀는 이해할 수 없었다.‘어떻게 이런 말을 그렇게 쉽게 할 수 있지?’송승우는 하지수와 송문수의 관계를 알고 있었다. 하지수가 몇 번이나 말했으니 모를 리 없었다. 지금은 송문수와 잘 지내고 있고 송승우와의 관계는 이미 끝난 거라고 말이다.그리고 송문수가 지금 송씨 그룹의 대리 회장직을 맡고 있다는 것도 분명 알고 있었다. 송문수의 결정이 회사의 발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도 말이다. 송문수한테 도움이 더 필요했고 송문수가 받는 스트레스가 더 많았다.‘생각이 없는 건가? 어쩌면 이렇게 이기적인 말을 할 수 있는 거지?’“왜요? 제가 무슨 어려운 부탁이라도 했나요?”송승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하지수를 바라보며 안색이 조금 어두워졌다.“승우 씨, 정말 제대로 일하려고 온 거 맞아요? 아니면 그냥 문수 씨를 못 믿어서 온 건가요? 문수 씨가 회사를 잘 관리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 감시하러 온 거냐고요!”“당연히 일하러 온 거죠. 아니면 왜 연구소 일까지 내려놓고 회사로 왔겠어요! 그리고 또...”“아까 지수 씨가 그러셨잖아요. 송문수를 못 믿냐고요. 맞아요. 전 송문수 그 자식 못 믿어요. 송문수가 회사를 제대로 이끌 수 있을지 제가 어떻게 알아요? 성과를 하나 냈다고 교만해져서 마음대로 하려 할 겁니다.”“갑자기 드는 생각인데요. 승우 씨는 왜 그렇게 문수 씨 잘되는 꼴을 못 보는 거예요?”하지수는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그게 아니라면 왜 문수 씨를 그렇게 모욕하고 내 곁에서 떼어놓으려 하겠어...’하지수의 능력이 얼마나
짧은 시간이었기에 송문수가 회사의 대체적인 상황을 잘 파악한 것만으로 대단한 것이었다. 게다가 이는 단지 송문수에게 회사를 관리하는 재능이 있어서 해낸 것이라고 단정 지을 수도 없었다.송문수가 매일 얼마나 열심히 일하고 있는지 하지수는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항상 그는 조금이라도 여유가 생기면 회사를 어떻게 운영해야 하는지 연구하면서 시간을 보냈고 지어는 날마다 새벽까지 야근을 하다가 집에 돌아갔다. 게다가 차에서 보는 서류들도 모두 송씨 그룹과 관련된 문서였다.송문수는 원래 시간만 나면 게임을 하거나 먹고 자고 놀기만 했던 사람이었다. 얼마 안 되는 사이에 송문수는 정말로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된 것 같았다....송문수의 말대로 하지수는 다음 주에 회사로 찾아올 크레지를 위해 연관 업무에 대한 계획을 세웠다.송문수와 하지수가 일 처리를 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이사님들도 점점 두 사람을 인정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이 맡긴 업무에 대해 불평이나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고 바로 행동에 옮기기만 했다.그러면서 송문수와 하지수의 업무 부담도 줄어들었고 회사도 더 원활하게 운영되고 있었다.회의가 끝난 후, 하지수는 송문수를 따라 그의 사무실로 갔다.요즘 들어서 그녀는 송문수의 사무실에서 일을 하는 것에 익숙해졌던 것이다. 송문수는 자주 회사의 전문 용어나 이해할 수 없는 마케팅 계획에 대해 물었고 그녀는 언제 어디서든 그가 묻는 말에 답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두 사람은 서로의 사무실을 오가는 시간을 절약할 수 있었다.“지수 씨, 잠깐 제 사무실로 올 수 있으세요?”그때, 송승우가 갑자기 하지수를 불렀다.하지수는 발걸음을 멈추고 잠시 망설였다. 그녀는 송문수를 한 번 바라보았다.“네 마음대로 해.”송문수는 이렇게 말하고 큰 걸음으로 사무실을 떠났다. 질투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어 보이는 송문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하지수는 속으로 약간 허탈감을 느꼈다.송문수가 많이 변한 건 사실이었지만 하지수에 대한 감정은 별로 진전이 없는 것 같았다. 물론 그녀도
회의실은 순식간에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그들은 혹시나 방금 들은 말이 착각이 아닐까 하는 두려워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한 채 그저 조용히 앉아 있었다.송승우는 믿을 수 없었다.‘어린 시절부터 장난만 치고 아무것도 해낸 적 없었던 송문수가 기술 투자를 따냈다고?’“제가 기술 투자를 따냈다고요. 다음 주 수요일쯤, 크레지 씨가 직접 회사로 와서 계약서에 사인하실 거라고 하셨어요.”송문수가 다시 한번 말했다. 이번에는 모든 사람이 그의 말을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정말인가요?”오 이사님이 가장 먼저 물었다. 이렇게 묻는 그의 목소리는 살짝 떨리고 있었다.다른 이사님들도 모두 송문수를 바라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사실 이사님들뿐만 아니라 송기명까지도 이 프로젝트가 실패한 거라 생각했었다. 기술 투자를 성사하지 못한다면 즉시 프로젝트를 멈추고 더 이상의 손실을 내지 않는 것이 현명한 판단이라고 생각했었다.그동안 들인 노력과 돈이 헛된 것으로 된다고 해도, 아쉽고 화가 나도 어쩔 수 없다면서, 이게 가장 합리적인 결정이라면서 이 결정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이변이 일어난 것이다. 기술 투자를 따내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었고 이건 다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게다가 국제적인 협력 또한 쉽지 않은 것이었다. 어느 정도 경쟁 관계도 존재했으니 말이다.그럼에도 송문수가 기술 투자를 성사한 것이었다.“금방 크레지 씨한테서 연락이 왔어요.”송문수도 감격스러운지 여러 번 반복했다.“정말로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네요.”오 이사님은 감격에 겨워 말을 잇지 못했다.다른 이사님들도 다들 같은 말만 반복했다.“문수 씨, 정말 대단하세요!”“도대체 어떻게 하신 거예요? 크레지 씨한테서 기술 투자를 따내다뇨... 크레지 씨는 성격이 까다롭기로 유명한 분이시잖아요. 아무나 접근할 수 있는 사람도 아니고요.”“문수 씨, 이번에 정말 큰 공을 세우셨어요. 만약 이번 기술 투자가 실패했다면 회사는 최소 3년에서 5년 동
그녀만 그렇게 생각한 건 아니었다. 송기명과 허영지도 아마 그런 생각이었을 것이니 말이다.그러나 송문수가 어느 정도 성과를 냈을 때, 그들은 진심으로 기뻐해줬고 격려까지 해주었다. 그런데 유독 송승우만은 계속해서 송문수의 능력을 부정했고 그를 믿어주지 않았다.하지수는 송승우를 반박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그러자 그때, 송문수의 전화가 울렸다.전화 화면을 확인한 그는 급히 전화를 받았다.송승우는 송문수의 행동을 지켜보며 마치 트집이라도 잡은 것처럼 말했다.“송문수, 회의 중에 개인 전화를 받으면 안 되는 거 몰라? 회의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는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송문수는 그의 말을 무시하고 회의실 구석으로 걸어가 전화를 받았다.그러자 송승우는 더 화가 났다.그때, 오 이사님이 그를 꾸짖었다.“승우 씨, 지금 문수 씨는 이 회사의 회장입니다. 이 회사에 발을 들인 이상 문수 씨의 말대로 해야 한다는 겁니다. 문수 씨가 전화를 언제 받든 그건 문수 씨가 결정할 일입니다. 저희도 문수 씨랑 여러 번 회의를 해봤어요. 진짜 급하고 중요한 전화가 아닌 이상 회의 중에 절대 전화를 받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도 알고 있고요.”송승우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송문수 이놈, 비밀리에 오 이사님이랑 뭔가 있는 게 분명해. 그게 아니라면 왜 오 이사님께서 계속 송문수를 감싸주겠어?’이렇게 생각한 그는 다른 이사님들을 둘러보았다.다른 이사님들도 송문수가 회의 중에 전화를 받는 것에 아무런 문제를 느끼지 않는 듯했다. 다들 아무 말 없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송승우는 말을 잇지 못했다.‘도대체 송문수가 이 사람들에게 뭘 해 줬길래 다들 이렇게 그를 감싸는 걸까?’회의실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은 조용히 송문수가 전화를 마칠 때까지 기다렸다.송승우는 점점 더 짜증이 났지만 다들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기에 그도 더 이상 뭐라 말할 수 없었다.한참 지나서야 송문수가 전화를 끊고 돌아왔다.송문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송승우가 바로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