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이어질 계지원의 혹평을 기다리고 있었다.어차피 장혜성에게 거의 모든 말을 다 들었기 때문에, 받아들이지 못할 것도 없었고,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마음이 무너지는 일도 많이 겪어서 그녀가 참을 수 없는 일은 없었다.심지어 그녀의 입꼬리에는 계속 웃음이 걸려있었다.거울을 마주하고 그녀는 자신의 가장 예쁜 웃음을 연습했다. 그녀를 원하는 사람이 있든 말든, 그녀는 최선을 다했다.어쨌든 이 세상에서는 얼마나 노력했는지가 아니라, 얼마나 좋은 결과를 만들어냈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삶은 항상 정비례하지만은 않는다.바로 그때, 계지원이 평가를 이어갔다. “저는 정말 무대에서 연기를 해본 사람이라면 다 알 거라고 생각합니다. 무대에서 실수 하나 없이 연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입니다. 게다가 실수가 없다는 것은 컷 부분, 분위기, 감정, 감성, 제스처, 대사 심지어 작품, 상대 배우까지 모든 것에 완벽하게 숙지해야 합니다. 오늘 그걸 아무도 하지 못했지만 예수진 씨는 해냈습니다.”예수진은 계속 미소를 유지하며 계지원을 보았다. 사실 감사할 것도, 인정받아 다행이라고 생각할 것도 없었다.이게 꼭 좋은 일만은 아니기 때문이다.“게다가 저번 녹화 이후로 일주일밖에 없었는데 이렇게 짧은 시간 내에 이 정도까지 했다면,무대 뒤에서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네요. 이렇게 말합시다. 예수진 씨는 항상 방송국에 제일 먼저 도착해서 제일 늦게 가는 사람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몇 배의 시간을 쏟아부어서 이 무대를 준비했죠. 이렇게 고생한 덕에 여러분께 실수 없는 무대를 보여줄 수 있었던 겁니다.”연이은 호평에 계지원의 옆에 앉아있던 장혜성의 얼굴은 점점 어두워졌다.“당연히 예수진 씨의 이번 무대는 육가희 씨의 연기를 완전히 복제했고, 저도 찬성하는 바는 아닙니다. 사람들은 모든 배역에 대해 각자 다르게 이해해야 하고, 그 배역에 불어넣는 생명과 영혼은 다 달라야 합니다. 그냥 흘러가는 대로 따라가면 사람들은 그녀가
"역시 내 말이 맞네요. 예수진 씨를 먼저 만났네요, 맞죠?" 장혜성이 비꼬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는 그저 제 입장에서 가장 공평하고 정의로운 관점에서 한 배우를 평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마찬가지예요." 장혜성은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그래서 예수진 씨가 과거 어떤 중대한 변고를 겪어 현재의 삶이 순탄치 않게 되었든 간에, 어떤 목적을 갖고 성공하기 위한 기회주의적 행동은 옳지 않다고 생각해요. 연기는 착실하게 해야 합니다. 그러니 저는 오늘 예수진 씨의 연기에 대해 어떠한 칭찬도 해 줄 수 없어요.” 계지원이 무슨 말을 하려 하자 예수진이 먼저 재빨리 말했다. "장 선생님과 계 감독님의 말씀에 감사드립니다. 저도 이번 무대에서 제 부족함을 잘 알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기회가 있다면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무대와 심사위원 선생님들, 시청자 분들 그리고 동료 배우들도 존중하겠습니다." 얘수진은 말을 마친 뒤,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예수진은 자신 때문에 심사위원들이 서로 다투길 원하지 않았다. 예수진은 악플이 두려웠다. 그녀는 다시 유명해지고 싶었지만 노이즈 마케팅을 통해 유명해지고 싶지는 않았다. 예수진은 이렇게 계지원이 도와줄 줄은 정말 생각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계지원이 대체 도와준 건지 방해한 건지는 판단이 되지 않았다. 예수진은 오늘 이 무대가 끝난 후 자신이 직면해야 할 문제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단지 그녀는 지금 이 화염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을 뿐이다. 예수진은 지금 그냥 연예계에서 살아나고 싶을 뿐, 어떤 문제도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 계지원은 예수진의 생각을 읽은 듯 하려던 말을 그대로 삼켰다. 순간 어색한 분위기가 돌자 MC가 재빨리 진행했다. "심사위원분들께서 더 말씀하실 것이 있으실까요?” 아무도 말을 하지 않자 MC가 이어서 말했다. “그럼 예수진 씨, 원빈 씨, 유청하 씨는 무대에서 내려가셔도 좋습니다. 세 분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예수진은 마침내 무대에서 내려오자 깊은
캐스팅되지 못한 배우는 자동으로 탈락 된다. 모든 심사위원들은 한 카드에 각자 마음에 드는 배우의 이름을 적었다. MC는 사람들에게 긴장감을 주기 위해 심사위원들의 카드를 뒤집게 했다. 마침내, 예수진이 계지원에게 캐스팅되었다. 예상 밖의 일이긴 했지만 예상을 했던 부분이기도 했다. 예수진이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예수진은 자신이 이 상황을 도대체 기뻐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몰랐다. 무대에서 내려오자 마지막에 탈락한 배우가 일부러 예수진에게 부딪쳤다. 그 배우는 감정을 숨기려 했지만 쉽게 숨길 수 없었고, 예수진이 자신의 자리를 뺏아간 것 같은 감정을 느꼈다. 예수진은 장혜성의 비평에 발목을 잡혔고 도태되었지만 예수진은 신경 쓰지 않았다. 만약 예수진이 탈락되었다면 자신의 마음도 유쾌하지 않을 것이기에 탈락한 그 배우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예수진은 자신이 지금 정말 뒷문으로 들어가지 않았다고 확신하지 못했다. 계지원이 그녀에게 뒷문을 열어 준 것 같은 이 상황에 뭐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하지만 결국 그녀는 계지원의 팀에 남아있게 되었기에 앞으로 그를 더 자주 보게 되는 상황이 되었다. 그녀가 방송국을 나서자, 하지수가 입구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수는 예수진이 또 갑자기 사라질까 봐 요즘 예수진을 부지런히 찾아왔다.오늘도 그녀와 함께 저녁을 함께 먹을 것이다.드디어 장안으로 돌아온 소이연도 함께 저녁을 먹기로 했다.예수진은 하지수의 승용차를 타고 떠났고, 뒤따라 나오던 배우와 스태프들은 모두 예수진이 고급 승용차에 올라타는 것을 보았다. 그 모습을 본 탈락한 배우가 비꼬며 말했다. "백이 있는 사람도 있을 테니 앞으로 모두들 조심해.” 다른 배우들은 사람들이 많은 이 장소에서 말썽을 일으킬까 봐 두려워 감히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러나 모두들 예수진을 색안경을 끼고 보고 있었다. 계지원이 자신을 데리러 온 승용차 안에 앉아있었다. 계지원은 어디론가 전화를 걸어 말했다. "앞으로 내 드라마
"남녀 간에 사랑만 있는 것도 아니야......” "그만해." 예수진은 재빨리 하지수에게 소리쳤다. "난 이성애자야, 완전 이성애자!” 예수진은 정색하며 말했다. 식당에 도착한 예수진과 하지수는 식당 복도를 걸었다. 예수진의 발걸음이 갑자기 느려졌다. 자신이 잘못 본 줄 알았다. 하지수가 예수진의 시선을 따라가니 어딘가 낯익은 듯한 모습을 발견했다. "육현경?" 예수진이 중얼거렸다. 그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예수진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예수진은 오랫동안 장안을 떠나 뉴스도 TV도 보지 않고, 세상과의 단절을 선택하며 많은 일을 내려놓았다. 예수진은 어느 정도 마음의 평온을 찾은 뒤, 육현경이 세상을 떠났다는 뉴스를 들었다. 그때는 육현경이 세상을 떠난 지 반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사망'이라는 두 글자를 봤을 때 그녀는 자신의 마음이 어떤 상태인지 알 수 없었다. 예수진은 자신의 눈에서 눈물이 미친 듯이 흘러내리는 것을 알아차렸다. 예수진은 소이연에게 전화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지만 이미 반년이나 지난 시점에서 물어볼 말이 없어하지 않았었다. 지금 이 사람을 보자 그때의 슬픔이 다시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 "내 눈이 어떻게 됐나 봐.” 하지수가 말했다. ”죽은 사람이 살아있을 리는 없잖아!” 예수진은 시선을 돌리며 눈물을 삼켰다. 그래, 죽은 사람이 살아있을 리가 없으니 잘 못 본 것이 분명했다."가자, 이연 언니가 룸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어.” 두 사람은 룸으로 들어섰다. 소이연은 일찍 도착했지만, 하지수의 운전 실력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느긋하게 식당 룸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경합은 어땠어요?" 소이연이 예수진에게 물었다. "그렇게 좋지는 않았어요." 예수진이 입을 열지 않자, 하지수가 말했다. "계지원이 도와줘서 통과된 것 같대요.” 소이연은 예수진을 쳐다보았다. "낙하산인지 모르겠어요." 예수진은 오늘 경합에 대해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았다. "우리 우울한 얘기는 이제
"그래요.” 하지수도 더 이상 강요하지 않았다. 일시적인 즐거움보다 절친의 몸과 일이 더 중요했다. 셋은 비틀거리며 식당에서 걸어 나왔다. 술이 당겨 정말 많이 마셨던 것이였다. 소이연은 복도로 나오자 속이 울렁거렸다.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소이연은 반 발자국 가지 못하고 화장실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녀는 너무 급해서 남자여자 화장실 표시도 제대로 보지 않고 화장실 안으로 뛰어들어 세면대 앞에 엎드려 토하기 시작했다. "웩..... 웩웩......” 술을 안 마신 지 너무 오래됐다. 불면증에 시달릴 때 제임스가 술을 적당히 마시고 잠을 청해 보는 것도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고 해서 해봤는데 전혀 소용이 없었다. 술을 마시고 잠을 청하니 머리가 깨질 것 같아 잠에 들기가 더 힘들었다. 그 후 그녀는 술을 많이 마시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설마 예수진과 하지원이 함께 있어 잊고 있었다. "웩......” 소이연은 잠시 멈추었다가 다시 구역질을 하기 시작했고, 속을 비웠더니 좀 편해진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입을 헹구면서 고개를 들어 앞에 있는 큰 거울을 보았다. 그 순간 소이연은 정말 멍해졌다. 소이연은 화장실 안에서 소변을 보고 있는 한 남자를 보았다. 그녀는 화장실을 잘못 들어간 것인가?! 남자 화장실 들어갔다고?! "충분히 봤어?"남자가 물었는데 그 남자의 목소리는 귀에 익었다. 아니, 목소리뿐만 아니라 얼굴 또한 낯이 익었다. 루카스 아닌가! 소이연은 술에 취해 머리가 빨리 돌아가지 않았다. 소이연의 시선이 저절로 아래로 향했다. "뭘 또 봐?!" 루카스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소이연, 너 정말 정신 나갔어?!” 소이연이 갑자기 고개를 숙였다. 고개를 숙이자 갑자기 토가 올라왔다. "웩......” 루카스는 그만 얼굴이 파랗게 질려 버리고 말았다. 나를 보고 말도 없이 토하다니! 이 여자 일부러 이러는 거지?! 소이연은 노란 담즙이 나올 때까지 한참을 토하고 나서야 조금 진정되었다. 그
예수진과 하지수는 남자 화장실로 뛰어들어왔다. 그녀들도 술에 살짝 취해 있었기에 소이연이 화장실에 간 것을 본 그녀들은 화장실에서 나올 때까지 소이연을 기다리고 있었다. 화장실 안에서 '쾅' 소리가 나자 깜짝 놀란 두 사람은 그 화장실이 남자 화장실인 줄도 모르고 뛰어들어오는 순간 소이연의 그 모습을 보고 말았다. 그녀들은 충격을 받아 지금 이 모습이 자신들이 술에 취해 환각을 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소이연의 이런 민망한 모습을 어떻게 볼 수 있겠는가? 소이연은 평소 그녀들과 다른 여신과 같은 사람이었다. 소이연은 몸가짐과 교양에서 완벽한 여자였고 공공장소에서 이런 어떤 엉뚱한 행동을 하는 모습을 볼 수도 상상할 수 없는 존재였다. 지금까지는 말이다. 예수진과 하지수는 당황해 눈을 깜박거리며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소이연이 남자의 바지를 잡아당기다가 그 남자의 발 앞에 쓰러뜨렸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이 강하고 자극적인 장면 앞에 예수진과 하지수 두 사람 모두 소이연을 부축하여 일으켜 세워야 한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예수진과 하지수의 시선은 한 사람에게 향했다. 눈앞의 남자는 쭉 뻗은 긴 다리를 가지고 있었고, 그는 검은색 드론즈 사각팬티를 입고 있었다. 사각팬티가 그의 둥근 엉덩이를 감싸고 있다. 예수진과 하지수는 자신들이 취했다는 사실도 잊은 채, 완벽한 각선미를 자랑하는 남자를 뚫어지게 쳐다보고만 있다. 정말 소이연의 절친들이 맞았다. 모든 행동들이 아주 자연스러웠다! 이렇게 훌륭한 장면을 소이연 혼자 감상하는 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같이 보러 들어오라고 한 거지! 예수진의 입가에 침이 흐르자 그녀는 황급히 침을 닦았다. 예수진은 마음을 침착하게 하기 위해노력했다. 아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예수진은 지금 전혀 침착할 수가 없었다. 이 사람이 멋있어서가 아니라 이 사람, 이 사람 아니, 육현경 아니야?! 예수진은 자신의 눈을 비볐다.분명히 술에 취한 것이 확실하다 귀신을 보다
확실히 깨끗하지 않은 것을 본 것이 맞았다. 못 볼 것을 봐 버렸다. 돌아가서 눈을 씻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내가 잘못 본 게 아니라는 거네." 예수진의 작은 얼굴이 더욱 하얗게 질렸다. 소이연과 하지수는 그녀의 반응이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육현경은 분명히 잘 지내지 못해서 우리를 찾아온 거야...... 가자, 가자, 내일까지 기다리지 말고, 우리 지금 당장 그를 위해 제사 지내러 가자!" 예수진은 당황하며 소이연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무슨 제사를 지내러 가." 소이연은 뜬금없어하다가 갑자기 예수진이 자신과 다른 것을 생각하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예수진이 정말 취해서 그러는 건가?! "가서 노잣돈을 좀 올려줘야겠어.” 예수진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오빠는 틀림없이 돈이 부족한 거야.” "뭐라고...... 아!” 소이연은 예수진의 거친 손에 끌려갔다. 방금 넘어지며 양쪽 무릎이 다 부어있던 소이연은 예수진에게 잡아당겨지자 온몸이 다 아파왔다. 다음부터는 무슨 일이 있어도 때려죽여도 그녀들과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마시더라도 절대 취하도록 마시면 안 되겠다. 그녀들의 술주정을 참아 줄 수가 없다. 하지수도 갑자기 넋이 나간 예수진의 모습에 당황했다.도대체 얼마나 마셨길래 정신을 못 차리는 것인가!“수진아, 천천히 가.” 하지수가 급히 뒤쫓아갔다. 세 사람은 모두 술이 깨면서 머리가 아파왔고 현기증이 나기 시작했다. 예수진의 발걸음이 매우 빨라 소이연은 자신이 곧 하늘로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식당 밖으로 나와 예수진은 급하게 택시를 잡았다. 하지수는 하마터면 그녀를 놓칠 뻔했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도록 열심히 뛰어가 간신히 택시에 탔다. 그녀는 아직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아 숨을 고르며 예수진의 말을 들었다.. "기사님, 여기서 가장 가까운 절로 가주세요.” "아가씨, 이 한밤중에 절로 가자고요?” "네." 예수진이 냉정하게 말했다. ”귀신을 조심
"제사 지내야 해, 빨리 절이나 올려." 예수진이 태연하게 말했다. "귀신 만났어?” "어." 예수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연 언니도 보이지 않았어요?” "내가 언제요?" 소이연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언니도 방금 분명히 봤을 거예요. 아, 됐어요. 취했다 생각하고 말아요." 예수진는 더 이상 설명하기 귀찮다는 듯 말했다. 도대체 누가 취한 것인지. "빨리 가요. 예수진은 재빨리 두 사람을 끌고 안으로 들어갔다. "잠깐만." 하지수가 예수진을 말리며 말했다. "정말 이 한밤중에 여기를 들어가자고?” "응, 여기서 제사지 낼 수는 없어. 정확히 무덤 앞에 가서 해야 해.” "예수진, 너 혹시......” "그만 말하고, 빨리 와.” 예수진이는 더 이상 말하지 말라며 두 사람을 끌고 안으로 들어갔다. 공동묘지 안의 불빛은 매우 어두웠다. 일렬로 무덤들이 늘어서 있었고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이곳은 장안 상류층만 묻힐 수 있는 곳으로 도심에서 가장 비싼 곳에 위치해 있어 웬만한 집값 보다 평당 단가가 높은 곳이었다. 이전에 예수진은 죽은 사람들을 위해 왜 이런 곳에 헛돈을 쓰는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지금 그녀는 이 돈이 헛돈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결국 사람은 죽어서 귀신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녀들은 공동묘지의 가장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아직도 그녀들의 몸에 술기운이 남아 있었다. 사람은 술에 취해 정신이 맑지 못하면 담력이 평소보다 더 커지게 마련이다. 그녀들은 공동묘지 깊숙이 들어갔다.육씨 가문의 묫자리는 공동묘지 안에서도 가장 높은 곳, 풍수가 제일 좋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육씨 가문의 묫자리에 도착한 예수진은 육현경의 무덤을 찾기 시작했다. "어디야?" 예수진이 조급해하며 물었다. 육씨 가문의 묫자리에는 가로등이 있기는 했지만 불빛이 너무 어두웠고 술을 마셔 눈앞이 잘 보이지 않아 한참을 찾아봐도 육현경의 묘가 보이지 않았다. 예수진은 약간 짜증이 올라왔고, 소
예수진의 말에 정곡을 찔린 듯 소이연은 얼굴을 붉혔다.“거봐요, 오빠는 내가 제일 잘 안다니까. 그냥 겉으로만 멀쩡해 보이는 거예요.”소이연의 반응에 예수진은 득의양양해 하며 말을 이어나갔다.“겉으로는 차가워 보여도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아주 대범해지는 사람이거든요. 언니는 이제 오빠의 넘치는 사랑을 받을 일만 남았네요, 물론 침대 위에서요.”“그만 해요 수진 씨.”신나서 얘기하는 예수진에 못 말린다는 듯 웃던 소이연이 그녀를 타박하듯 말했다.“태교하는 사람이 자꾸 그런 생각 하면 어떡해요?”“아직은 그냥 핏덩이라서 아무것도 몰라요.”“...”“지수야, 너는 요즘 뭐 하고 지내? 평소에 문자 보내도 답장 늦게 하던데.”말을 하던 예수진은 임신한 뒤로 아무것도 못 하게 하는 계지원 때문에 요즘 부쩍 재미없어진 일상을 떠올리고는 서러운 듯 입술을 삐죽였다.“그냥 회사일 처리하고 있었지. 얼마 전에 경영에 문제가 생겨서 회사 부도날 뻔했거든. 그래서 문수 씨랑 일 처리만 했어.”“송문수?”“걔가 회사 일을 한다고?”송문수가 일한다는 소리에 예수진은 깜짝 놀라며 되물었다.“그래, 안 믿길 거 아는데 진짜니까 그런 눈으로 보지 마. 문수 씨 정말 많이 변했어, 더 이상은 맨날 놀러만 다니던 망나니 아니야. 이번에도 문수 씨 덕분에 송씨 집안이 다시 일어서게 된 거야. 그리고 이연 언니랑 현경 씨도 많이 도와줬고.”하지수는 곧바로 소이연을 보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정말 고마워요 언니, 언니랑 형부 도움 아니었으면 저희 집안은 진작에 끝났을 거예요.”“아니에요, 별로 힘든 일도 아니었는데요 뭘.”“현경이가 안 그래도 문수 씨 많이 변했다는 말 하더라고요. 밤에도 전화해서 기획서 어떻냐고 물어볼 정도로 열정적이래요.”“진짜 그렇게나 많이 변했다고요?”소이연까지 긍정하자 예수진은 눈을 크게 뜨며 하지수를 바라봤다.“네가 바꾼 거야?”“내가 그 정도는 아니야. 그냥 나이가 점점 드니까 본인이 알아서 바뀐 거겠지.”“송문수가 바뀐 뒤
그래서 하지수는 이를 악문 채로 따져 물었다.“문수 씨, 당신 형이 올린 인스타 봤어?”자신이 송승우를 이긴 것 같아 기분이 좋아졌었는데 갑작스레 인스타를 언급하는 하지수에 송문수는 자연스레 핸들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안 그래도 거슬렸는데 하지수의 저 질문은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격이었다.“그걸 봤는데도 아무렇지도 않아?”“응, 괜찮아. 그냥 인스타일 뿐인데 뭘 신경 써.”자신이 송승우를 선택할까 봐 두려워하는 모습이 조금도 보이지 않자 하지수는 조금 실망했지만 그래도 괜찮은 척 말했다.“신경 안 쓴다니 다행이지만 그래도 당신 아내로서 해명할게. 나랑 송승우 씨는 아무 사이도 아니야.”아무 사이도 아니라니, 둘이 얼마나 뜨거운 사랑을 나눈 사이였는지 온 집안사람들이 다 아는데 저런 말을 하는 하지수가 어이없었지만 송문수 본인도 뭐 그다지 깨끗한 사람은 아니었기에 그는 자신도 하지 못한 것을 하지수에게 요구할 자격은 없다 생각해서 입을 다물었다.하지수는 송승우를 진짜 사랑한 거였지만 자신은 그저 다른 여자들을 갖고 논 것이기에 더 따질 권리가 없는 것 같았다.“오늘 어머니랑 같이 쇼핑가기로 했는데 송승우 씨가 먼저 따라가겠다고 한 건 맞아. 나랑 어머니도 거절하기 힘들어서 같이 오긴 했는데 나는 송승우 씨랑은 말도 안 섞었어. 거리도 엄청 많이 뒀고 못 믿겠으면 어머니한테 물어봐도 돼.”하지수의 해명을 듣고 있던 송문수는 오로지 저를 위해 저렇게 자세히 상황설명을 해주는 건가 싶어 또 가슴이 벌렁거리기 시작했다.그녀의 작은 행동에 또 흥분한 송문수는 운전에 집중할 수가 없어 애써 심호흡을 하며 정면을 주시했다.“내가 선택한 사람은 당신이니까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당신한테 진심일 거야. 당신한테 미안한 짓은 절대 안 해.”하지수의 약속에도 송문수는 꿈쩍도 안 했지만 하지수는 둘 사이의 작은 오해가 큰 불화로 번지지 않게 하려고 아무런 반응이 없어도 상황설명을 마쳤다.제 할 일을 마친 하지수는 안광이 사라진 눈으로 차 시트에 기대 있었
송문수는 애초에 쉽게 만족하는 사람이었기에 하지수가 조금만 잘해주면 한동안 기뻐했다.둘의 웃는 모습을 지켜보던 허영지도 흐뭇하게 그들을 지켜보며 이렇게 사이좋은 둘이라면 걱정할 필요도 없을 것 같았다.“지수 데리고 밥 먹으러 가려고 온 거라고 했지?”“네.”“옷도 다 입어봤으니까 얼른 가봐.”데이트하러 가라는 말만 안 했지 사실 허영지는 그 둘에게 오붓한 공간을 마련해주고 싶었기에 서둘러 둘의 등을 떠밀었다.“어머니는요, 저녁 어떻게 하시려고요?”“승우 집에 있잖니. 승우랑 같이 쇼핑 좀 더 하면서 네 시아버지 옷 좀 더 보려고. 내 걱정 말고 얼른 가봐.”송승우는 당연히 내키지 않았지만 어머니가 말도 다 뱉은 마당에 거절하기도 쉽지 않아 그저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그럼 차 키는 두고 갈게요.”“저랑 문수 씨는 이만 옷 갈아입을게요.”옷을 갈아입은 둘은 손을 잡고 쇼핑몰 밖으로 나갔고 그 둘의 뒷모습을 노려보던 송승우는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승우야.”송승우는 갑자기 들리는 어머니의 부름에 다급히 표정을 감추었지만 허영지는 이미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안다는 듯이 말했다.“그때 너랑 지수 사이 우리도 다 알아. 하지만 너희 둘은 이미 끝난 사이고 지수랑 문수가 저렇게 잘 지내니까 이제는 너도 형으로서 축복해줘야 하지 않겠니?”송승우도 물론 어머니의 의도를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그 옛날 하지수가 좋아하던 건 분명 자신이었는데, 그때의 제삼자인 송문수가 하지수를 채가는 게 송승우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말을 마친 허영지는 이만 옷을 갈아입으러 피팅룸으로 들어갔다.송승우도 성인이었기에 조언도 적당히 해야지 선을 넘으면 그냥 가족 사이의 불화만 생길 것이기에 허영지도 여기서 멈춘 것이었다.하지만 어릴 때부터 송문수에게 져본 적이 없던 송승우는 이번에도 제 여자를 그에게 내어주고 싶지 않아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누르며 주먹을 꽉 쥐었다....송문수의 차에 앉은 하지수는 처음으로 저를 데리러 온 송문수에 못내 기분이 좋
하지만 원체 쇼핑을 싫어하는 송문수의 성격을 알고 있던 하지수는 그의 냉담함에 실망하지 않았다.이렇게 앉아서 옷을 갈아입는 저를 봐주는 것도 그의 노력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문수 왔구나.”허영지의 부름에 송문수가 짤막하게 답했다.“좀 있다 모임 있어서 지수 데리러 왔어요.”“그래, 젊은 사람들이야 그런 모임에 나가면 좋지.”전에는 송문수가 밖에 나가겠다고 하면 거절은 안 해도 표정은 굳어지던 허영지가 너그럽게 대꾸하는 것도 의외였다.“아직 이르니 너도 정장 한번 입어보고 가.”“바로 가야 되는데 갈아입기 귀찮아요.”“얼른 갈아입어.”“엄마, 나 온종일 일해서...”“지수가 너 준다고 한참 고른 건데 와이프 위해서 그 정도도 못 해줘?”남녀 사이에 있어서는 목석같기만 한 제 아들을 보며 허영지가 미간을 찌푸렸다.엄마의 말을 들은 송문수가 하지수를 바라보자 하지수는 다급히 말했다.“잘 어울릴 것 같아서 고르긴 했는데 갈아입기 싫으면 그냥 보기만 해. 맘에 들면 당신 사이즈로 맞출게.”“입어볼게, 맘에 안 들 수도 있으니까.”송문수가 하도 담담하게 대답해서 떨리는 그의 손가락을 주의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사실 그는 하지수가 자신을 위해 옷을 골라줬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아 놀라는 중이었다.기쁜 마음 반 당황스러움 반으로 옷을 갈아입은 송문수가 나오자 직원들은 일제히 그를 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너무 잘 어울리세요, 손님 더 멋있어 보이는 것 같아요.”“진짜요?”송문수가 직원들의 말을 반신반의하자 하지수가 나서며 말했다.“진짜야. 진짜 너무 멋있다.”“그래?”하지수의 확신에 찬 대답을 들은 송문수는 흘러나오는 웃음을 감추지 못하고 득의양양해 하며 대꾸했다.“다 내가 잘 생겨서 그런 거야. 옷이랑은 큰 상관 없지.”이렇게 가끔 자아도취 하는 송문수를 보며 하지수는 웃음을 터뜨리더니 그에게로 다가가 넥타이를 정리해주었다.그 둘의 다정한 모습을 보던 주위 사람들은 다들 흐뭇한 미소를 지었지만 송승우만은 아주 언짢아하
생일파티에 관한 일을 다 의논한 뒤 하지수는 허영지와 함께 그녀의 드레스를 맞추러 갔는데 하지수의 드레스도 같이 맞추자는 시어머니의 권유에 그녀도 옷을 입으로 들어가게 되었다.그래서 핸드폰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것인데 하필 그때 송승우가 송문수의 전화를 받게 된 것이다.옷을 다 입어보고 나서도 시어머니와 쇼핑을 하느라 굳이 핸드폰을 보지 않았던 하지수는 송문수에게서 연락이 온 줄도 모르고 있었다.다시 한번 그녀의 핸드폰이 울렸을 때 송승우가 이번에도 자신이 받으려고 했는데 하지수가 그걸 보고 빠르게 핸드폰을 낚아채 갔다.그녀의 행동에 표정이 굳어버렸던 송승우는 이내 송문수가 자신이 올린 인스타를 봤을 생각에 다시 입꼬리를 올리며 시선을 신문에 고정한 채 둘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문수 씨.”송문수의 이름을 부르는 하지수의 목소리에는 기대와 반가움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잠시 떨어져 있던 연인이 재회할 때나 나올법한 목소리에 송승우의 표정은 한층 더 어두워졌다.“아직도 바빠?”“어머니 모시고 드레스 피팅해보고 있었어. 지금은 디자이너님이랑 디테일 얘기하고 있어. 나도 아까 하나 입어봤는데 사진 보내줄게.”“지금 데리러 갈 건데 어디야?”잔뜩 신나서 말하던 하지수는 이제 고작 4시밖에 안 됐는데 퇴근했다는 송문수가 의아하여 놀라며 물었다.“퇴근했어?”“주말이라서 일찍 퇴근했어.”“회사도 좀 안정돼서 직원들도 앞으로 주말은 다 쉬기로 했어.”“그래.”고개를 끄덕이며 주소를 불러준 하지수는 웃는 얼굴로 전화를 끊고는 허영지에게로 다가갔다.하지만 송문수와 하지수가 싸울 것이라 예상했던 송승우는 화도 내지 않는 송문수에 혹시 그가 하지수를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하지만 사실 송문수는 인스타를 보자마자 차오르는 화에 핸드폰을 손이 하얗게 질릴 정도로 꽉 쥐고 있었다.다른 사람이 채갈까 봐 하지수를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심정이 굴뚝같은데 그런 그녀가 옛날에 좋아하던 송승우와 함께 있는 걸 본 이상 그는
결국 송승우에게 차 키를 내어준 하지수가 허영지와 함께 밖으로 나간 뒤 자연스레 뒷좌석에 타려 하는데 송승우가 갑자기 그녀를 불러세웠다.“지수야, 넌 앞에 타.”“어머니랑 같이 앉을게요.”“장안시에 길은 나도 잘 몰라서 알려줄 사람이 필요해.”단호한 그의 말을 하지수가 거절하기 어려워하자 허영지가 나서며 말했다.“그럼 내비게이션 켜. 바로 윌런 호텔로 갈 거야, 호텔 사장이랑 얘기 다 끝나서 아마 우리 기다리고 있을 거야.”말을 마친 허영지는 또 일부러 하지수를 보며 말했다.“지수는 나랑 같이 타자, 말동무해줘.”“네, 어머니.”제 옆에 앉지 않아도 된다고 저렇게 입이 귀에 걸린 채로 좋아하는 하지수를 보며 송승우는 표정을 굳힌 채로 운전석에 올라탔다.그렇게 내비게이션을 켜고 윌런 호텔로 출발하자 허영지가 하지수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지수야, 어제 내가 한 말 그냥 흘려듣지 말고 잘 생각해봐.”“무슨 말이요?”“너랑 문수 아이 얘기 말이야.”“아, 네.”“그냥 대답만 하지 말고 노력을 해야 애가 생기지.”허영지가 거리낌 없이 남사스러운 말을 하자 하지수는 얼굴이 빨개진 채로 대답했다.“어젯밤에 문수 씨랑도 얘기했어요.”“문수도 알겠대?”“네.”“그럼 난 그냥 기다리고만 있으면 된다는 말이지?”하지수가 다시 고개를 끄덕이자 허영지는 아주 기뻐하며 말했다.“그럼 나는 할머니 될 날만 기다리고 있을게.”그런 허영지와 반대로 하지수가 송문수의 아이를 낳는 걸 용납할 수 없었던 송승우는 핸들을 잡은 손에 힘을 주며 이를 갈고 있었다.윌런 호텔에 도착한 뒤 세 사람은 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사장 사무실로 향해 파티 당일의 규모와 배치에 대해 의논하기 시작했는데 이런 비즈니스적인 자리를 포함한 모든 인간관계를 꺼리던 송승우는 얘기에는 참여하지 않고 가만히 자리만 지키고 있었다.그렇게 심심해하던 송승우는 문득 무슨 생각에서인지 핸드폰을 들어 사진을 찍었다.허영지와 하지수도 담긴 사진이었지만 그 둘은 파티 준비에 열과 성을 다하고
“이연 언니가 왔다고?”오랜만에 들려온 소이연의 소식에 하지수는 흥분하며 답했다.“그럼 당연히 가야지, 오랫동안 못 봐서 안 그래도 궁금했는데. 육현경 씨랑 이연 언니가 나 엄청 많이 도와줘서 직접 만나서 감사 인사 하고 싶었어.”“계지원 씨 집에서 모이기로 했어. 예수진 씨 배도 점점 불러서 움직이기 힘드니까 그냥 거기서 보기로 했어.”“그래. 그럼 퇴근할 때 연락해. 나는 먼저 어머님이랑 아버님 생일파티 준비하고 있을게.”“응.”밥을 다 먹은 두 사람은 각자 알아서 집을 나섰고 하지수는 바로 송 씨 가문별장에 시어머니를 모시러 갔다.하지수가 안으로 들어가자 송승우가 소파에 덩그러니 앉아있는 게 보였다.그와 단둘이 만나는 건 아직 어색했기에 하지수도 입을 다물고 있었는데 그런 그녀를 한참이나 바라보던 송승우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엄마 모시러 온 거야?”“네.”“집에 계속 계시는 거예요?”“나갔으면 좋겠어?”헛웃음을 흘리며 묻는 송승우에 하지수가 다급히 해명했다.“아뇨, 그냥 전에는 계속 일로 바쁘셨던 분이 계시니까 물어본 거예요.”“전에는 연구과제 때문에 바빴는데 이제는 나 없이도 잘 돌아가서 한가해.”“아, 네.”고개를 끄덕이는 하지수를 보며 그녀가 저를 불편해하는 걸 느낀 송승우는 올라오려는 화를 참으며 물었다.“문수는?”“출근했어요.”“주말에도 출근해?”“요즘이 회사한테 중요한 시기라서 일요일만 쉬기로 했대요. 내일은 안나가요.”사실 송문수에게는 거의 휴일이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처리해야 할 일이 매일 산더미여서 그는 시간만 나면 사무실에 틀어박혀 있었다.“송문수 많이 변했네.”“송문수가 변해서 너도 걔를 다시 보게 된 거야?”냉소를 흘리며 묻는 송승우에 하지수가 고개를 저었다.“잘 모르겠어요. 감정이라는 게 원래 언제 생겼는지도 모르게 생기는 거잖아요.”감정이라는 건 애초에 기척 없이 생겨서는 헤어나오지 못할 정도로 한 사람을 옭아매는 것이다.하지수의 말로부터 그녀가 이제는 정말로 송문수를
“하지수, 변호사 일할 때는 똑똑하더니 연애에는 영 소질이 없나 봐?”자는 척하고 자신을 놀려먹은 건 송문수인데 오히려 바보라고 핀잔을 듣자 화가 난 하지수가 얼굴을 붉혔다.“네가 나한테 뽀뽀하는 게 좋으니까 계속하라고 가만히 있은 거잖아!”송문수가 언성을 높여 말해서야 이유를 알게 된 하지수는 당황스러운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고 그 표정에 어이가 없어진 송문수는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이렇게 바보 같아서 어떡해, 누가 너 팔아넘겨도 모르겠다.”“누가 누구한테 바보래. 내가 당신 마음을 읽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그런 생각인 줄 어떻게 알고...”말을 채 끝맺지도 못했는데 갑자기 입을 맞춰오며 진득한 키스를 이어나가는 송문수에 하지수는 눈을 크게 떴다.“아...”아까 자신이 한 건 그저 뽀뽀이지 이렇게 치열을 훑고 지나가는 키스는 아니었는데 입속 깊은 곳까지 뜨겁게 만드는 키스는 옆에서 핸드폰이 울리건 말건 오래도록 지속되었다.송문수도, 하지수도 그 벨 소리를 무시한 채 키스를 이어나가다 둘의 입술이 다 번들번들해질 때가 되어서야 송문수는 아쉬움을 뒤로한 채 하지수를 놓아주었다.송문수의 키스에 정신이 혼미해진 하지수는 나른한 눈빛으로 송문수를 보고 있었는데 핸드폰을 보던 송문수는 갑자기 욕설을 내뱉더니 서둘러 침대에서 내려가 욕실로 달려들어 갔다.그의 샤워 소리가 들릴 때에야 정신을 차린 하지수도 시간을 보자마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변호사 일을 시작하면서 누구보다 규칙적이고 자율적인 일상을 보내왔던 하지수였기에 그녀는 자신이 아주 이성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송문수를 만난 뒤부터 이성보다 감성이 앞서는 사람이 돼버린 것 같았다.그래서 그녀는 송문수가 만약 자신을 팔아넘겨도 그를 도와 돈을 세줄 것 같다는 그의 말에 어느 정도 동의를 하고 있었다.생리대부터 바꾸러 제 방으로 돌아간 하지수가 준비를 마치고 나오자 송문수도 옷을 갈아입은 채로 거실에서 통화를 하고 있었다.평소에는 7시에 일어나서 8시 정도면
말을 마친 하지수는 송문수가 그새 깨어난 지도 모르고 그의 품에 안겨 눈을 감았고 송문수는 다정한 눈을 한 채 떨리는 손으로 제 옆에 누운 하지수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이튿날 아침, 눈을 뜬 하지수는 방금 일어난 탓에 낯선 주위를 한참이나 둘러보고서야 여기가 송문수의 방임을 기억해냈다.관계 빼고는 별짓 다 한 어젯밤이 떠오른 하지수는 얼굴을 붉혔다.혼자 자는 게 습관 되어있어 송문수의 품에 안긴 뒤 빨리 뛰는 심장 때문에 뜬눈으로 밤을 새울 줄 알았는데 예상외로 그녀는 눈을 감자마자 잠에 빠져들었다.아마도 바쁜 일정 때문에 피곤했던 것 같다.완전히 정신을 차린 하지수는 고개를 돌려 아직도 곤히 자고 있는 송문수를 바라보았다.자고있는 그의 모습은 평소처럼 차갑지 않고 쫙 펴진 미간 덕분에 오히려 부드러워 보여 공격성이 다분하지도 않았다.왜 눈을 뜬 모습과 감은 모습이 이렇게 다를까 하는 의문을 가지고 송문수의 얼굴을 찬찬히 보던 하지수는 날카로운 그의 눈빛을 떠올렸다.전에는 그 눈빛이 마음속을 꿰뚫어 볼 것만 같아 두려웠었는데 지금의 하지수는 더 이상 잠들어있는 송문수도, 깨어있는 송문수도 두렵지는 않았다.한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깨어있는 송문수를 마주할 때는 하지수가 주동적으로 입을 맞출 수 없다는 것뿐이었다.하지만 잠들어있을 때는 그야말로 하지수 세상이었기에 그녀는 빠르게 송문수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한 번으로는 부족했는지 하지수는 그 뒤로도 여러 번 입을 맞추다가 누군가의 핸드폰이 울릴 때가 돼서야 행동을 멈추었다.물론 자의로 멈춘 건 아니고 입맞춤을 하던 와중에 눈을 떠버린 송문수 때문에 도둑이 제 발 저리듯 깜짝 놀라 잠시 멈칫한 것이었다.당황한 하지수는 빠르게 도망가려 했지만 자신을 눌러버린 송문수 때문에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분명 방금 눈을 떴는데 이상하게 송문수의 눈은 반짝반짝 빛이 나고 있었다.몽롱한 느낌은 전혀 없는 눈으로 그는 하지수를 빤히 바라보았고 그의 진득한 눈빛을 당해내지 못한 하지수는 서둘러 눈을 피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