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 간에 사랑만 있는 것도 아니야......” "그만해." 예수진은 재빨리 하지수에게 소리쳤다. "난 이성애자야, 완전 이성애자!” 예수진은 정색하며 말했다. 식당에 도착한 예수진과 하지수는 식당 복도를 걸었다. 예수진의 발걸음이 갑자기 느려졌다. 자신이 잘못 본 줄 알았다. 하지수가 예수진의 시선을 따라가니 어딘가 낯익은 듯한 모습을 발견했다. "육현경?" 예수진이 중얼거렸다. 그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예수진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예수진은 오랫동안 장안을 떠나 뉴스도 TV도 보지 않고, 세상과의 단절을 선택하며 많은 일을 내려놓았다. 예수진은 어느 정도 마음의 평온을 찾은 뒤, 육현경이 세상을 떠났다는 뉴스를 들었다. 그때는 육현경이 세상을 떠난 지 반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사망'이라는 두 글자를 봤을 때 그녀는 자신의 마음이 어떤 상태인지 알 수 없었다. 예수진은 자신의 눈에서 눈물이 미친 듯이 흘러내리는 것을 알아차렸다. 예수진은 소이연에게 전화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지만 이미 반년이나 지난 시점에서 물어볼 말이 없어하지 않았었다. 지금 이 사람을 보자 그때의 슬픔이 다시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 "내 눈이 어떻게 됐나 봐.” 하지수가 말했다. ”죽은 사람이 살아있을 리는 없잖아!” 예수진은 시선을 돌리며 눈물을 삼켰다. 그래, 죽은 사람이 살아있을 리가 없으니 잘 못 본 것이 분명했다."가자, 이연 언니가 룸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어.” 두 사람은 룸으로 들어섰다. 소이연은 일찍 도착했지만, 하지수의 운전 실력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느긋하게 식당 룸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경합은 어땠어요?" 소이연이 예수진에게 물었다. "그렇게 좋지는 않았어요." 예수진이 입을 열지 않자, 하지수가 말했다. "계지원이 도와줘서 통과된 것 같대요.” 소이연은 예수진을 쳐다보았다. "낙하산인지 모르겠어요." 예수진은 오늘 경합에 대해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았다. "우리 우울한 얘기는 이제
"그래요.” 하지수도 더 이상 강요하지 않았다. 일시적인 즐거움보다 절친의 몸과 일이 더 중요했다. 셋은 비틀거리며 식당에서 걸어 나왔다. 술이 당겨 정말 많이 마셨던 것이였다. 소이연은 복도로 나오자 속이 울렁거렸다.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소이연은 반 발자국 가지 못하고 화장실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녀는 너무 급해서 남자여자 화장실 표시도 제대로 보지 않고 화장실 안으로 뛰어들어 세면대 앞에 엎드려 토하기 시작했다. "웩..... 웩웩......” 술을 안 마신 지 너무 오래됐다. 불면증에 시달릴 때 제임스가 술을 적당히 마시고 잠을 청해 보는 것도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고 해서 해봤는데 전혀 소용이 없었다. 술을 마시고 잠을 청하니 머리가 깨질 것 같아 잠에 들기가 더 힘들었다. 그 후 그녀는 술을 많이 마시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설마 예수진과 하지원이 함께 있어 잊고 있었다. "웩......” 소이연은 잠시 멈추었다가 다시 구역질을 하기 시작했고, 속을 비웠더니 좀 편해진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입을 헹구면서 고개를 들어 앞에 있는 큰 거울을 보았다. 그 순간 소이연은 정말 멍해졌다. 소이연은 화장실 안에서 소변을 보고 있는 한 남자를 보았다. 그녀는 화장실을 잘못 들어간 것인가?! 남자 화장실 들어갔다고?! "충분히 봤어?"남자가 물었는데 그 남자의 목소리는 귀에 익었다. 아니, 목소리뿐만 아니라 얼굴 또한 낯이 익었다. 루카스 아닌가! 소이연은 술에 취해 머리가 빨리 돌아가지 않았다. 소이연의 시선이 저절로 아래로 향했다. "뭘 또 봐?!" 루카스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소이연, 너 정말 정신 나갔어?!” 소이연이 갑자기 고개를 숙였다. 고개를 숙이자 갑자기 토가 올라왔다. "웩......” 루카스는 그만 얼굴이 파랗게 질려 버리고 말았다. 나를 보고 말도 없이 토하다니! 이 여자 일부러 이러는 거지?! 소이연은 노란 담즙이 나올 때까지 한참을 토하고 나서야 조금 진정되었다. 그
예수진과 하지수는 남자 화장실로 뛰어들어왔다. 그녀들도 술에 살짝 취해 있었기에 소이연이 화장실에 간 것을 본 그녀들은 화장실에서 나올 때까지 소이연을 기다리고 있었다. 화장실 안에서 '쾅' 소리가 나자 깜짝 놀란 두 사람은 그 화장실이 남자 화장실인 줄도 모르고 뛰어들어오는 순간 소이연의 그 모습을 보고 말았다. 그녀들은 충격을 받아 지금 이 모습이 자신들이 술에 취해 환각을 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소이연의 이런 민망한 모습을 어떻게 볼 수 있겠는가? 소이연은 평소 그녀들과 다른 여신과 같은 사람이었다. 소이연은 몸가짐과 교양에서 완벽한 여자였고 공공장소에서 이런 어떤 엉뚱한 행동을 하는 모습을 볼 수도 상상할 수 없는 존재였다. 지금까지는 말이다. 예수진과 하지수는 당황해 눈을 깜박거리며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소이연이 남자의 바지를 잡아당기다가 그 남자의 발 앞에 쓰러뜨렸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이 강하고 자극적인 장면 앞에 예수진과 하지수 두 사람 모두 소이연을 부축하여 일으켜 세워야 한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예수진과 하지수의 시선은 한 사람에게 향했다. 눈앞의 남자는 쭉 뻗은 긴 다리를 가지고 있었고, 그는 검은색 드론즈 사각팬티를 입고 있었다. 사각팬티가 그의 둥근 엉덩이를 감싸고 있다. 예수진과 하지수는 자신들이 취했다는 사실도 잊은 채, 완벽한 각선미를 자랑하는 남자를 뚫어지게 쳐다보고만 있다. 정말 소이연의 절친들이 맞았다. 모든 행동들이 아주 자연스러웠다! 이렇게 훌륭한 장면을 소이연 혼자 감상하는 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같이 보러 들어오라고 한 거지! 예수진의 입가에 침이 흐르자 그녀는 황급히 침을 닦았다. 예수진은 마음을 침착하게 하기 위해노력했다. 아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예수진은 지금 전혀 침착할 수가 없었다. 이 사람이 멋있어서가 아니라 이 사람, 이 사람 아니, 육현경 아니야?! 예수진은 자신의 눈을 비볐다.분명히 술에 취한 것이 확실하다 귀신을 보다
확실히 깨끗하지 않은 것을 본 것이 맞았다. 못 볼 것을 봐 버렸다. 돌아가서 눈을 씻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내가 잘못 본 게 아니라는 거네." 예수진의 작은 얼굴이 더욱 하얗게 질렸다. 소이연과 하지수는 그녀의 반응이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육현경은 분명히 잘 지내지 못해서 우리를 찾아온 거야...... 가자, 가자, 내일까지 기다리지 말고, 우리 지금 당장 그를 위해 제사 지내러 가자!" 예수진은 당황하며 소이연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무슨 제사를 지내러 가." 소이연은 뜬금없어하다가 갑자기 예수진이 자신과 다른 것을 생각하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예수진이 정말 취해서 그러는 건가?! "가서 노잣돈을 좀 올려줘야겠어.” 예수진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오빠는 틀림없이 돈이 부족한 거야.” "뭐라고...... 아!” 소이연은 예수진의 거친 손에 끌려갔다. 방금 넘어지며 양쪽 무릎이 다 부어있던 소이연은 예수진에게 잡아당겨지자 온몸이 다 아파왔다. 다음부터는 무슨 일이 있어도 때려죽여도 그녀들과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마시더라도 절대 취하도록 마시면 안 되겠다. 그녀들의 술주정을 참아 줄 수가 없다. 하지수도 갑자기 넋이 나간 예수진의 모습에 당황했다.도대체 얼마나 마셨길래 정신을 못 차리는 것인가!“수진아, 천천히 가.” 하지수가 급히 뒤쫓아갔다. 세 사람은 모두 술이 깨면서 머리가 아파왔고 현기증이 나기 시작했다. 예수진의 발걸음이 매우 빨라 소이연은 자신이 곧 하늘로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식당 밖으로 나와 예수진은 급하게 택시를 잡았다. 하지수는 하마터면 그녀를 놓칠 뻔했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도록 열심히 뛰어가 간신히 택시에 탔다. 그녀는 아직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아 숨을 고르며 예수진의 말을 들었다.. "기사님, 여기서 가장 가까운 절로 가주세요.” "아가씨, 이 한밤중에 절로 가자고요?” "네." 예수진이 냉정하게 말했다. ”귀신을 조심
"제사 지내야 해, 빨리 절이나 올려." 예수진이 태연하게 말했다. "귀신 만났어?” "어." 예수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연 언니도 보이지 않았어요?” "내가 언제요?" 소이연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언니도 방금 분명히 봤을 거예요. 아, 됐어요. 취했다 생각하고 말아요." 예수진는 더 이상 설명하기 귀찮다는 듯 말했다. 도대체 누가 취한 것인지. "빨리 가요. 예수진은 재빨리 두 사람을 끌고 안으로 들어갔다. "잠깐만." 하지수가 예수진을 말리며 말했다. "정말 이 한밤중에 여기를 들어가자고?” "응, 여기서 제사지 낼 수는 없어. 정확히 무덤 앞에 가서 해야 해.” "예수진, 너 혹시......” "그만 말하고, 빨리 와.” 예수진이는 더 이상 말하지 말라며 두 사람을 끌고 안으로 들어갔다. 공동묘지 안의 불빛은 매우 어두웠다. 일렬로 무덤들이 늘어서 있었고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이곳은 장안 상류층만 묻힐 수 있는 곳으로 도심에서 가장 비싼 곳에 위치해 있어 웬만한 집값 보다 평당 단가가 높은 곳이었다. 이전에 예수진은 죽은 사람들을 위해 왜 이런 곳에 헛돈을 쓰는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지금 그녀는 이 돈이 헛돈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결국 사람은 죽어서 귀신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녀들은 공동묘지의 가장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아직도 그녀들의 몸에 술기운이 남아 있었다. 사람은 술에 취해 정신이 맑지 못하면 담력이 평소보다 더 커지게 마련이다. 그녀들은 공동묘지 깊숙이 들어갔다.육씨 가문의 묫자리는 공동묘지 안에서도 가장 높은 곳, 풍수가 제일 좋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육씨 가문의 묫자리에 도착한 예수진은 육현경의 무덤을 찾기 시작했다. "어디야?" 예수진이 조급해하며 물었다. 육씨 가문의 묫자리에는 가로등이 있기는 했지만 불빛이 너무 어두웠고 술을 마셔 눈앞이 잘 보이지 않아 한참을 찾아봐도 육현경의 묘가 보이지 않았다. 예수진은 약간 짜증이 올라왔고, 소
소이연은 묵묵히 묘비 위의 흑백 사진을 바라보았다.사진으로만 볼 수 있는 그의 낯익은 얼굴을 바라보았는데 그가 가깝고도 또 멀리도 느껴졌다. 소이연의 마음속의 슬픔이 마치 폭풍처럼 밀려들어왔기에 그녀는 정말로 자신을 통제할 수가 없었다.소이연의 눈에서 눈물이 미친 듯이 자꾸만 흘러내렸다.3년, 30 년이 지나도 육현경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이연 언니.”예수진이 소이연의 곁으로 다가왔다.예수진은 소이연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예수진은 술이 올라 충동적으로 그녀를 여기로 데려왔다.진작에 알았다면, 그녀 혼자 왔으면 좋았을 것이다.육견경이 저승에서 돈이 모자란 것 같으니 예수진은 제사상에 돈을 올려 주기만 하면 되었다.소이연은 자신의 감정을 감추고 싶어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소이연은 자신의 감정을 밖으로 표출하고 싶지 않았지만 자신을 통제할 수 없었다.정말 마음이 너무나도 아팠다."우리 제사상에 돈 좀 올려줘요.”예수진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그저 빨리 할 일을 끝내고 소이연을 데리고 이곳을 빨리 떠나고 싶었다.예수진은 소이연이 정말 아파 죽을까 봐, 아니면 충동적으로 자살이라도 할 까봐 걱정되었다.예수진은 묘 앞에 쪼그리고 앉아 사온 향초와 과일을 꺼냈고, 라이터를 켜 향초에 불을 붙이고 준비한 돈을 올리고 묘지에 절을 했다. 그녀는 돈을 제사상에 올리며 말했다. "오빠가 이 세상을 그리워하고 이연 언니를 놓지 못할 거라는 것도 알지만, 오빠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니 언니를 찾아오지 마. 내가 오늘 오빠를 위해 돈을 올렸으니까 마음 편히 아래에서 즐기고 돌아오지 마.” 예수진은 계속 중얼거리며 말했다. 하지수는 할 수 없이 예수진 옆에서 제사상에 돈을 올렸다. 제사를 마치고 빨리 이곳을 떠나고 싶었다. 이곳의 섬뜩한 분위기는 말할 것도 없고, 소이연의 감정도 확실히 좋아 보이지 않았다. 하지수는 고개를 들어 소이연을 바라보았다. 소이연은 줄곧 육현경의 사진을 보며 울고 있었다. 그 순간 갑자기 큰
"어떻게 해." 예수진이 놀라서 정신이 없이 물었다. "뭘 어떻게 해! 빨리 불이나 꺼!" 하지수는 재빠르게 말했다. "어." 예수진이는 얼른 자신이 입고 있던 외투를 벗자 하지수와 소이연도 외투를 벗었다. 세 사람은 외투를 사용해 죽을힘을 다해서 불을 끄기 시작했다. "뭐 하는 겁니까!” 갑자기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들은 깜짝 놀라 쓰러지는 줄 알았다. 예수진은 자신의 심장이 좋지 않았다면 오늘 밤 수백 번은 죽었을 거라 생각했다. 세 사람이 몸을 돌려 제복을 입은 경비원을 보자 경비원이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 "지금 술에 취해서 산에 불을 질렀어요?” "할아버지, 그게 아니고....!” "누가 할아버지입니까!" 경비원이 화를 내며 말했다. "나는 30살 밖에 안 됐다고요!” “......" "아, 죄송해요. 저희는 제사 지내러 왔어요. 그러다가 실수로 옆에 불이 붙었는데, 저희가 지금 막 껐어요......” "한밤중에 제사를 지내러 왔다고요? 내가 바보인 줄 알아요?” 경비원은 더 이상 그녀들에게 말하지 않고 경찰에 신고했다. 그가 바로 신고하자 그녀들은 어찌해야 좋을지 몰랐다. "경찰 오면 그때 설명해요!” 경비원은 단호하게 말을 하며 그녀들이 도망갈까 봐 손전등으로 그녀들을 향해 계속 쏘았다. 세 사람은 그만 말문이 막혔다. 하지만 이미 경찰에 신고했다는데 어쩌겠는가 말이다!예수진은 참지 못하고 말했다. "내가 방금 할아버지라고 불러서 저 사람 화난 거지?”하지수가 눈을 크게 떴다. 실력 있는 엘리트 변호사인 그녀는 왜 자신이 예수진과 함께 소란을 피우게 되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법을 잘 알고 있는 그녀가 법을 어길 수 있겠는가! 대략 30분 정도 지나자 경찰이 왔다. 경찰은 상황을 파악한 후, 세 사람을 경찰서로 데려가 조사했다. 경찰서에 가기 전, 예수진은 경찰을 붙잡고 말했다. "잠시만 기다려주면 안 돼요? 오늘 밤 저는 정말 가족을 추모하러 이곳에 왔어요.” 경찰이 그녀를 자세
"그럼 서로 보증을 서주면 되지 않아?" 예수진은 순진하게 말했다. "어때요?” “...…" 예수진은 다른 말을 하지 못하며 그저 그렇게 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며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사실 경찰을 난처하게 하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니라 보증을 서줄 사람이 정말 아무도 없었고 친척도 친구도 없는 예수진의 유일한 두 친구는 모두 여기에 있었다. 소이연은 예수진이 무엇을 걱정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지만 그녀의 생모 관계가 어떤 상황인지는 잘 알지 못했다. 예수진이 말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기에 소이연도 더는 묻지 않았기에 그녀는 지금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소이연은 먼저 카톡을 보내고 이명진에게 전화해서 자신의 보증인이 되어 달라고 말했다. 하지수도 자신의 비서에게 연락을 하고 있었다. "뭐라고요?" 소이연이 통화를 하며 놀랐다. "대표님, 대표님께서 제 휴가를 직접 승인해 주시겠다고 하셨는데…" 이명진이 울 것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드디어 아내와 신혼여행을 올 수 있었는데, 지금 돌아가야 한다면 평생 회사와 결혼해야 할 판이었다. "아, 네, 깜빡했네요." 소이연은 자신이 그의 휴가신청서에 사인을 해준 것이 기억났다. "대표님, 제가 자리를 비우는 동안 이승윤 씨가 제 일을 할 수 있도록 인계해 주고 왔습니다.” "아, 알겠어요. 그럼 즐거운 신혼여행 되세요.” "네, 대표님. 감사합니다.” 이명진은 무거운 짐에서 해방된 기분을 느꼈다. 소이연이 이승윤에게 전화하려는 순간 휴대전화의 배터리가 나갔다. 소이연은 이승윤의 전화번호를 잘 기억하지 못해 휴대전화 충전기를 빌리러 가려던 참이었다.그 순간 낯이 익어 보이는 한 경찰이 그녀에게 말했다. "소이연 씨, 제가 당신 남자 친구분께 소이연 씨를 데리러 오라고 연락했습니다.” "네?" 소이연은 경찰을 바라보았다. "지난번에 남겨두었던 전화번호가 그대로 있어서요.” 소이연은 이 경찰이 지난번 루카스의 싸움을 처리한 경찰이라는 것을 기억했다. 하지만
이제 송문수도 정신을 차렸으니 하지수는 본인도 원래의 사무실로 돌아가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하지만 송문수의 사무실이 워낙 커서 둘이 같이 쓴다 해도 문제 될 건 없었기에 그녀는 사무실을 옮기는 건 나중으로 미뤄두고 컴퓨터를 켜기 시작했다.하지수가 OA의 서류들을 훑어보려 할 때 송문수의 비서가 마침 안으로 들어왔는데 그는 하지수를 보자마자 놀란 기색을 비추며 인사를 건넸다.“하 대표님, 오셨어요?”“네, 그런데 어떻게 여기 있어요? 송 대표님이랑 같이 회의 참석한 거 아니었어요?”“회의라니요?”“지금 회의 중 아니에요?”“저희 오전 회의 없어요, 오후 3시에 첫 회의에요.”“그럼 송 대표는 어디 갔어요? 거래처랑 계약하러 간 거예요 아니면 현장 나간 거예요?”어디를 가든 대동하던 비서도 없이 혼자 나선 송문수에 하지수는 이상한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대표님 오늘 안 나오셨어요.”“아침에 연락 오셔서 개인적인 일 때문에 좀 늦는다고 저한테 오후 회의자료 준비하라고 하셨어요. 저는 그거 다 프린트해서 지금 대표님 책상에 올려두려고 들어오는 길이었고요.”제 손에 들린 서류들을 들어 보이며 말하는 비서에 하지수의 미간은 더욱더 찌푸려졌다.집안일은 다 허영지와 하지수가 책임지고 있는데 출근 시간까지 늦춰가며 처리해야 할 개인적인 일이 도대체 뭔지 하지수는 짐작이 가지 않았다.“알겠어요, 나가서 일 보세요.”“네.”서류를 송문수 책상 위에 올려둔 비서가 인사를 하며 나가자 서류를 보고 싶은 마음도 사라져버린 하지수는 곧바로 송문수에게 문자를 보내보았다.[문수 씨, 지금 어디야?][나 회사에 있지, 왜 그래?]보낸 지 1초 만에 온 답장이었지만 내용은 역시나 거짓말이었다.대체 무슨 일을 하길래 저를 속이는 건가 싶었던 하지수는 오락가락했던 지난날 송문수의 태도를 떠올렸다.생리가 온 그날만 해도 하지 못해서 안달 나 하던 사람이 생리가 끝났다는 데도 저를 피하는 게 안 그래도 이상했는데 하지수는 설마 송문수에게 이제 제가 필
아까는 앉아서도 잘만 자더니 제대로 누우니 오히려 잠이 오지 않아 송문수는 하지수를 기다리며 한참을 뒤척이고 있었다.그런데 한참이 지나도 보이지 않은 인영에 그는 문을 살짝 열고 문틈 사이로 거실 쪽을 내다보았다.그리고는 하지수가 아직도 거실에서 티비를 보는 걸 두 눈으로 확인하고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다시 침대로 돌아왔다.사실 송문수는 인내심이 없는 게 아니라 하지수가 그녀가 쓰던 방으로 들어가 버릴까 봐 그게 걱정돼서 확인한 것이었다.그 뒤로도 몇 번 더 훔쳐보던 송문수는 마침내 티비를 끄는 하지수에 깜짝 놀라 침대로 달려가 자는 척을 했다.한편 드디어 티비를 끈 하지수는 먼저 본인 방으로 가 세수를 마친 뒤에야 송문수의 방안으로 들어섰다.자고 있는 송문수를 발견한 그녀는 최대한 소리를 내지 않으려 조심하며 천천히 이불을 들추고 그의 곁에 나란히 누웠다.오랜만에 푹 자는 사람을 그대로 내버려 두고는 싶었지만 하지수는 본능적으로 자꾸 송문수에게 다가가고 있었다.그 때문에 자는 척하던 송문수는 온몸이 경직되어 딱딱하게 굳어버렸다.하지수랑만 있으면 몸이 멋대로 긴장하는 거라 그건 송문수의 의지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그런데 곧이어 제 몸에 닿아오는 부드럽고 따뜻한 하지수의 온기가 느껴지자 송문수는 모든 긴장이 풀리면서 이래서 사람들이 연애를 하는구나 싶었다.하지수가 있으니 평범하던 세상도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다음날부터는 송문수도 일 때문에 바빴고 하지수도 아버님의 생일 파티 준비로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보니 둘이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이 현저히 줄어들었다.사실 둘 중에 더 바쁜 건 송문수였다.그래서 하지수도 평소에는 그 얼굴도 자주 볼 수 없었다.항상 밤늦게 귀가하는 송문수는 터덜터덜 들어와 잠든 하지수를 품에 안고 자다가 그녀가 깨어나기도 전에 출근해버렸다.밤에는 분명 온기가 느껴졌는데 일어날 때는 늘 비어있는 옆자리에 하지수는 못내 서운한 감정도 들면서 송문수가 자신을 일부러 피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
그리고는 하지수가 반응할 새도 없이 그녀에게 입을 맞춰왔다.아주 소중한 것을 다루듯 조심스럽게 입맞춤을 이어나가던 송문수는 갑자기 고개를 들어 하지수의 입술을 보며 나지막하게 말했다.“엄청 부드럽네.”야한 꿈을 꾸는 게 틀림없어 보이는 남자의 행동에 하지수는 화가 나면서도 어이가 없어서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역시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더니, 이제 좀 정신 차리나 했더니 꿈속에서까지 본능을 주체하지 못하는 송문수에 하지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그런 여자친구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송문수는 또다시 그녀의 입술을 찾아 헤맸다.“문수 씨, 눈 좀 떠봐.”생리도 끝나지 않은 와중에 이렇게 꿈을 꾸는 남자랑은 하고 싶지 않았던 하지수는 이번에는 그가 깨어나길 바라며 아까보다 좀 더 힘을 주어 흔들었다.“무슨 꿈이 이렇게 진짜 같아?”좌우로 사정없이 흔들리는 몸에 어지러워진 송문수는 그제야 눈을 뜨며 말했다.“그럼 꿈이 아닌가 보지.”“꿈이 아니라고?!”하지수가 짚어줘서야 꿈이 아닌 현실임을 자각한 송문수는 몸을 벌떡 일으키며 소리쳤다.“꿈에 누가 나왔는데 그래?”누가 나오긴, 송문수의 꿈에 나올 사람은 늘 하지수 한 명뿐이었다.전에는 꿈속에서도 그녀와 함께하고 싶었는데 이제는 그게 현실이 되어버려 순간 당황한 것이었다.하지만 송문수는 턱 끝까지 차오른 그 말은 굳이 하지 않고 화제를 돌렸다.“나 어떻게 잠든 거야?”평소에는 말을 거침없이 하는 성격인데 이상하게 하지수 앞에만 서면... 속마음을 제대로 드러낼 수가 없었다.“피곤했나 봐.”진실이라는 게 알아서 다 좋은 건 아니었기에 하지수도 모른 척 말을 돌리는 송문수를 따라가 주었다.괜히 끝까지 캐물어서 상처받는 것보다는 아무것도 모르는 게 더 나은 것 같아서였다.“매일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느라 힘들었을 텐데 어쩌다 쉬는 날도 밖에서 돌아다니기만 했잖아. 얼른 씻고 자, 내일부터 또 출근해야지.”“너는?”하지수의 재촉에 방으로 들어가던 송문수는 갑자기 걸음을 멈
“맛있어.”처음으로 주방에 들어간 남자가 이런 맛을 낸 건 객관적으로 대단한 일이라 하지수는 송문수가 그토록 바라는 칭찬을 결국 해주었다.사실 이미 사약 같은 맛일 거라는 각오를 하고 있었는데 꽤나 달달해서 하지수도 놀라웠다.한편 원하던 칭찬을 들은 송문수는 신나서 채널을 돌리며 물었다.“이거 맞지?”“응.”“법률 채널이네?”여자들은 다 예능이나 멜로 드라마를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어울리지 않게 이런 지루한 채널을 좋아하는 하지수에 송문수는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법 좋아해서 대학 때도 법 배운 거야. 난 이런 거 좋아해.”“그래.”하지수의 말에 그제야 그녀가 변호사였다는 걸 떠올린 송문수였다.그렇게 법을 좋아하는 사람이 자신을 위해 변호사라는 직업을 포기했다는 걸 알아차리자 한 번 더 감동받은 송문수는 저도 하지수가 좋아하는 걸 함께 하겠다는 생각으로 용기를 내어 그녀 옆에 자리 잡고 앉았다.“나도 같이 봐.”그의 제안이 의외였지만 이렇게 완벽한 판례분석이라면 송문수도 관심 있어 할 것 같아 하지수는 고개를 끄덕였다.잘 접하지 않던 분야라 처음엔 싫어할 수 있어도 그 속에서 다룬 사건들을 계속 보다 보면 자연스레 호기심이 생기고 그러면서 법률 지식까지 알게 되니 그거야말로 일거양득일 것이다.역시나 하지수는 법조인답게 바로 프로그램에 빠져들었는데 처음에는 신기해하며 잘 보던 송문수는 시간이 지속될수록 점점 지루해하고 있었다.당장이라도 핸드폰을 꺼내 게임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제가 뱉은 말을 지키기 위해 참고 또 참던 그는 스르르 잠이 들어버렸다.티비에 빨려 들어갈 듯 열중하고 있던 하지수가 정신을 차리고 옆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 송문수는 이미 코까지 골며 자고 있었다.몸은 소파에 비스듬히 기대져 있었고 고개도 반쯤 돌아가 있는 누가 봐도 불편한 자세를 하고도 잘 자는 송문수에 하지수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지루하면 지루하다고 말이라도 하지.하지수는 미련한 송문수가 감기라도 걸릴까 봐 담요도 덮어주었다.하지만
송문수를 따라 여기저기 다니다 보니 가지고 갔던 생리대로도 부족했었는데 양까지 많았다면 정말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생각을 마치고 나니 심심해진 하지수는 자연스레 티비를 켜고 법률 채널을 틀어놓았다.주방에서 돌아치는 송문수는 진작에 잊은 하지수가 전형적인 판례들을 넋 놓고 있는 와중에 송문수는 마침내 흑설탕물을 다 끓여냈다.맛없는 걸 가져다주는 건 안 하느니만 못하다고 먹어보고 괜찮으면 그때 가져다주라는 소이연의 당부가 있었기에 송문수는 맛을 보는 것도 잊지 않았다.그런데 생각보다 괜찮은 맛이어서 그는 용기를 내어 그걸 하지수에게로 들고 갔다.“이게 뭐야?”하지수는 생전 처음 보는 남자 친구의 행동에 어리둥절해 하며 물었지만 송문수는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흑설탕물이야. 뜨거울 때 마셔.”“뭐?”“생리 기간에는 이런 거 마셔야 하는 거 아니었어?”“나 주려고 당신이 직접 만든 거야?”“당연하지, 내가 생리 올 리는 없잖아.”진지하게 말하는 송문수에 하지수는 웃음을 터뜨려버렸다.어떨 때는 신기하리만치 제 마음을 몰라주다가 또 이렇게 어설픈 모습으로 저를 위해주는 걸 보면 그가 귀여워 보이기도 했다.송문수는 정말 밉지만 싫어할 수가 없는 존재였다.“고마워.”낮에 있었던 그의 독단적인 행동에 대해 살짝 서운했었는데 이렇게 흑설탕물 한번 가져다줬다고 하지수의 화는 또 사르르 풀려버렸다.“어때?”그런데 하지수가 마셔보려고 컵을 든 순간 송문수는 맛을 물으면서 자연스레 채널을 돌려버렸다.한창 판례를 보고 있었는데 또 제 의사는 묻지도 않고 멋대로 채널을 돌려버리는 그의 행동에 하지수는‘사랑이란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치는 것과도 같다’라는 가사에 깊은 공감이 가 순간 한숨을 쉬어버렸다.정말 송문수에게는 기대를 품으면 안 되는 것 같았다, 기대하는 족족 그것들이 실망으로 이어지니 말이다.한편 미간을 찌푸린 채 한숨을 내쉰 하지수를 본 송문수는 당황하며 물었다.“맛없어?”“내가 먹어볼 때는 맛있었는데? 너 생리만 아니었으면 내가 다 마
가슴을 졸이며 부둣가에 도착하니 술을 마신 송문수 때문에 하지수는 역시나 운전석에 앉아야만 했다.진짜 이런 데이트를 하는 건 자신밖에 없을 것 같아 생각할수록 기분이 나빴던 하지수는 집으로 가는 동안에 한마디도 하지 않고 삐진 티를 내고 있었지만 송문수는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따라부르며 드라이브를 즐기고 있었다.송문수는 오늘이 아주 완벽했다고 여기는 것 같았다.집으로 돌아온 하지수는 바로 방으로 들어가려 했는데 송문수는 그 속도 모르고 또 그녀를 붙잡았다.“왜 오자마자 방에 들어가, 좀 앉아있지.”아직 이른 시간이라 송문수 딴에는 하지수와 함께 티비를 보고 싶었던 것이다.“나 씻고 싶어.”“나중에 씻어.”“보트 탈 때 몸이 다 젖어버려서 아직도 추워. 나 생리 와서 생리대도 바꿔야 하는 데 그럴 거면 그냥 씻고 싶어.”하지수의 말을 듣던 송문수는 그제야 여자가 생리 기간일 때는 더욱더 신경 써서 몸을 챙겨야 한다는 말이 떠올랐다.어제까지만 해도 기억하고 있었는데 오늘 간만의 데이트라 너무 신난 탓에 그만 까먹어버린 것이다.“먼저 보고 있어, 나 금방 씻고 나올게.”“응.”하지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송문수는 갑자기 미안한 마음이 들어 단톡방에 문자를 보내보았다.[생리 기간에는 어떤 걸 신경 써줘야 하는 거예요?][송문수, 너 생리 기간도 못 참고 하려고 그러는 거야? 짐승 같은 놈.][날 좀 좋은 쪽으로 생각해주면 어디 덧나니? 나 그런 놈 아니거든.][그럼 그건 갑자기 왜 묻는데?][생리 때는 체온 유지에 신경 써줘야 해서 춥게 굴면 안 되고 피곤하지 않게 많이 쉬는 게 중요해요. 그리고 술이랑 찬 건 되도록이면 안 먹는 게 좋고요. 하지만 지수 씨 성격이라면 남한테 기대는 걸 별로 안 좋아하니까 이 정도는 알아서 했을 거예요 이미.]소이연은 이내 송문수가 해야 할 일을 알려주었다.[문수 씨는 흑설탕물이나 끓여주세요. 피도 잘 통하게 해주고 생리통 푸는 데에도 효과적이에요. 그리고 흑설탕물은 달달하
하지만 그리 남사스러운 말은 아니라서 하지수는 한마디 더 보탰다.“좀 그런 것 같기도 하고.”그 말을 들은 송문수는 입꼬리를 올린 채 어색해진 분위기를 풀려고 일부러 더 너스레를 떨었다.“내가 매력이 넘치는 걸 어떡하겠어.”그 능청스러운 모습에 하지수는 굳이 반박하지 않고 웃어 보였다.“하지수, 내가 전에 좀 막살았던 건 인정하는데 그래도 한번 결정한 일은 끝까지 하는 사람이야 나. 내가 너랑 잘 만나보겠다고 약속한 이상 절대 너한테 미안할 짓은 안 해.”“응, 알겠어.”하지수는 송문수가 하는 말이라면 뭐든 다 믿었다, 아니 다 믿고 싶었다.그리고 지금은 자신을 실망시키는 사람일지라도 언젠가는 바뀔 걸 알기에 그녀는 기다릴 수 있었다.“네가 나한테 맞춰주는 만큼 나도 너 실망시키지 않을게.”“알았어.”우쭐대며 말하는 송문수에 하지는 역시나 고개를 끄덕여주었다.송문수의 말이라면 늘 이렇게 맞장구를 쳐주는 사람이 바로 하지수였다.밥을 다 먹고 난 둘은 해변가를 거닐었는데 붉은 태양이 바다에 걸쳐져 있어 노을이 아주 예쁘게 져 있었다.주변 환경은 별로였지만 그래도 경치는 봐줄 만해서 하지수의 기분도 조금씩 풀리고 있었다.하지만 점점 어두워지는 날에 좀 있으면 파도가 더 거세질까 봐 걱정됐던 하지수는 송문수를 보며 말했다.“문수 씨, 우리 이제 가자.”“가고 싶어?”“응.”“좀 더 있다 가자, 여기 좋잖아.”“좀 있다 보트도 타야 하잖아, 저녁엔 위험할 것 같아서 그래.”낮에 올 때도 무서웠는데 밤엔 더할 것 같아 하지수는 한시라도 빨리 돌아가고 싶었다.“무서워?”송문수는 그런 하지수가 웃긴지 입꼬리를 씰룩이며 물었다.“응. 무서워.”“그럼 가자.”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에 송문수도 더는 말리지 않았다.하지만 그가 이렇게 제 의견을 바로 수락해줄 줄 몰랐던 하지수는 어벙벙한 채로 그를 따라 걷고 있었다.사실 집에 가고 싶다는 말도 원래의 그녀였다면 하지 않았겠지만 소이연이 했던 말이 떠올라 한평생 참고 살
“왜 안 먹어?”송문수의 재촉에 하지수는 손으로 게를 잡고 뜯었는데 다른 곳보다는 맛있었지만 여기까지 오는데 들였던 노력에 비하면 그리 맛있는 것도 아니었다.“어때? 맛있지?”“맛있어.”하지만 기대에 찬 송문수를 보며 차마 그런 말을 내뱉을 수는 없어 하지수는 웃으며 말했다.“역시 네가 좋아할 줄 알았다니까.”하지수를 긍정을 듣고서야 드디어 먹기 시작한 송문수는 음식을 집어 먹으면서도 말을 멈추지 않고 있었다.“하도경이랑 여기 자주 왔었는데 현경이랑 지원이는 바빠서 같이 몇 번 못 왔었어.”“그랬구나.”“술 마실래?”“나 생리 왔잖아.”영혼 없이 답을 하던 하지수는 신나서 술을 제안하는 송문수에 또 체념한 듯 말했다.반복되는 실망에 기대를 하지 않다 보니 송문수의 무관심이 이젠 원망스럽지도 않았다.“아, 맞다. 그럼 음료수라도 마실래?”“물 줘 그냥.” 그녀의 대답에 송문수는 직원에게 물과 맥주를 부탁했다.지금 술을 마시면 좀 있다 돌아갈 때 운전은 또 하지수의 몫이 되겠지만 오랜만에 신난 송문수를 위해 하지수는 한 번 더 참기로 했다.상대방의 행복을 위해 한 사람만 계속 참는 건 좋은 연애가 아니라고들 하는데 하지수는 송문수가 기뻐할 수만 있다면 그걸로 충분했다.하지수는 정말 상대방에게 아주 관대한 사람이었다.밥을 먹으면서도 그녀는 간간이 소이연과 예수진에게 상황을 보고하고 있었다.어디에서 데이트하는지 많이 궁금하길래 솔직하게 알려주니 예수진이 바로 답장을 보내왔다.[진짜 송문수답다, 연애 고자잖아 이건.][지수 씨, 문수 씨한테 거기 별로라고 얘기 못 했어요?][안 했어요, 뭐 그렇게까지 중요한 건 아니잖아요. 아직 서로 알아가는 단계니까 나도 문수 씨가 뭘 좋아하는지는 알아보고 싶어요.][알아가는 건 좋은데 그렇다고 한쪽이 일방적으로 양보하는 건 아니죠. 지수 씨, 부부 사이에는 그렇게 내외할 필요 없어요. 앞으로 평생을 함께할 사인데 불편한 게 있으면 용기 내서 말해야죠.]소이연의 말에 고개를 들어 본 하지수
“맛있는 거 먹으러 갈 거야.”“친구들 말고는 다른 사람 데려간 적도 없는 곳이야. 네 기억에 남을 만한 맛집이니까 기대해.”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말하는 송문수에 하지수는 또 괜히 기대를 하기 시작했다.영화는 별로여도 식당은 좋은 데로 찾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차가 부둣가에 도착하고 송문수와 함께 차에서 내린 하지수는 울퉁불퉁한 길을 하이힐을 신은 상태로 걷자니 발이 아파왔지만 얼마나 대단한 맛집일까 싶어 애써 참으며 그를 따라 걸었다.그런데 식당은커녕 눈에 보이는 건 보트에 타라고 저를 향해 손짓하는 송문수뿐이어서 하지수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바다에서 먹는 거야?”역시나 기대를 하지 말아야 했었던 걸까.송문수는 하지수의 질문에는 답을 하지 않고 그녀를 잡아끌며 보트에 태웠다.곧이어 출발한 보트는 물살 때문에 심하게 휘청였는데 워낙 물을 무서워하던 하지수는 난간을 꽉 붙잡고 몰아치는 파도를 버텨내고 있었다.“와아!”송문수는 물 만난 고기처럼 아주 신나 보였지만 하지수는 도저히 소리를 지를 정신이 아니었다.밀려오는 파도에 온몸이 다 젖어버린 그녀는 번진 화장부터 열심히 세팅한 머리까지 지금 걱정투성이였다.데이트한다고 치마까지 꺼내입었는데 그런 노력이 무색하게도 제 남자 친구 때문에 비 맞은 생쥐 꼴이 되어버린 것이다.게다가 생리까지 하고 있는데 여기는 화장실도 하나 없었다.도통 무슨 생각으로 이곳을 데이트코스로 선정한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나중에라도 서프라이즈가 있을 거라고 본인을 위로하며 하지수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하지수가 기대한 서프라이즈는 아니었지만 다른 의미의 놀라움은 끊이지 않았다.파도를 헤치며 달리던 보트는 똑같이 아무것도 없는 해변에 멈춰 섰는데 해변가에 세워진 집으로 가려면 맨발로 거기를 걸어가야 했기에 딱딱한 모래 때문에 하지수는 안 그래도 아픈 발이 더 아파왔다.그래도 아무 말 없이 송문수를 따라갔더니 그 힘든 과정을 거쳐 도착한 곳이 바로 시골 식당이었다.두 사람은 허름한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