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 지내야 해, 빨리 절이나 올려." 예수진이 태연하게 말했다. "귀신 만났어?” "어." 예수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연 언니도 보이지 않았어요?” "내가 언제요?" 소이연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언니도 방금 분명히 봤을 거예요. 아, 됐어요. 취했다 생각하고 말아요." 예수진는 더 이상 설명하기 귀찮다는 듯 말했다. 도대체 누가 취한 것인지. "빨리 가요. 예수진은 재빨리 두 사람을 끌고 안으로 들어갔다. "잠깐만." 하지수가 예수진을 말리며 말했다. "정말 이 한밤중에 여기를 들어가자고?” "응, 여기서 제사지 낼 수는 없어. 정확히 무덤 앞에 가서 해야 해.” "예수진, 너 혹시......” "그만 말하고, 빨리 와.” 예수진이는 더 이상 말하지 말라며 두 사람을 끌고 안으로 들어갔다. 공동묘지 안의 불빛은 매우 어두웠다. 일렬로 무덤들이 늘어서 있었고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이곳은 장안 상류층만 묻힐 수 있는 곳으로 도심에서 가장 비싼 곳에 위치해 있어 웬만한 집값 보다 평당 단가가 높은 곳이었다. 이전에 예수진은 죽은 사람들을 위해 왜 이런 곳에 헛돈을 쓰는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지금 그녀는 이 돈이 헛돈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결국 사람은 죽어서 귀신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녀들은 공동묘지의 가장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아직도 그녀들의 몸에 술기운이 남아 있었다. 사람은 술에 취해 정신이 맑지 못하면 담력이 평소보다 더 커지게 마련이다. 그녀들은 공동묘지 깊숙이 들어갔다.육씨 가문의 묫자리는 공동묘지 안에서도 가장 높은 곳, 풍수가 제일 좋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육씨 가문의 묫자리에 도착한 예수진은 육현경의 무덤을 찾기 시작했다. "어디야?" 예수진이 조급해하며 물었다. 육씨 가문의 묫자리에는 가로등이 있기는 했지만 불빛이 너무 어두웠고 술을 마셔 눈앞이 잘 보이지 않아 한참을 찾아봐도 육현경의 묘가 보이지 않았다. 예수진은 약간 짜증이 올라왔고, 소
소이연은 묵묵히 묘비 위의 흑백 사진을 바라보았다.사진으로만 볼 수 있는 그의 낯익은 얼굴을 바라보았는데 그가 가깝고도 또 멀리도 느껴졌다. 소이연의 마음속의 슬픔이 마치 폭풍처럼 밀려들어왔기에 그녀는 정말로 자신을 통제할 수가 없었다.소이연의 눈에서 눈물이 미친 듯이 자꾸만 흘러내렸다.3년, 30 년이 지나도 육현경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이연 언니.”예수진이 소이연의 곁으로 다가왔다.예수진은 소이연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예수진은 술이 올라 충동적으로 그녀를 여기로 데려왔다.진작에 알았다면, 그녀 혼자 왔으면 좋았을 것이다.육견경이 저승에서 돈이 모자란 것 같으니 예수진은 제사상에 돈을 올려 주기만 하면 되었다.소이연은 자신의 감정을 감추고 싶어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소이연은 자신의 감정을 밖으로 표출하고 싶지 않았지만 자신을 통제할 수 없었다.정말 마음이 너무나도 아팠다."우리 제사상에 돈 좀 올려줘요.”예수진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그저 빨리 할 일을 끝내고 소이연을 데리고 이곳을 빨리 떠나고 싶었다.예수진은 소이연이 정말 아파 죽을까 봐, 아니면 충동적으로 자살이라도 할 까봐 걱정되었다.예수진은 묘 앞에 쪼그리고 앉아 사온 향초와 과일을 꺼냈고, 라이터를 켜 향초에 불을 붙이고 준비한 돈을 올리고 묘지에 절을 했다. 그녀는 돈을 제사상에 올리며 말했다. "오빠가 이 세상을 그리워하고 이연 언니를 놓지 못할 거라는 것도 알지만, 오빠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니 언니를 찾아오지 마. 내가 오늘 오빠를 위해 돈을 올렸으니까 마음 편히 아래에서 즐기고 돌아오지 마.” 예수진은 계속 중얼거리며 말했다. 하지수는 할 수 없이 예수진 옆에서 제사상에 돈을 올렸다. 제사를 마치고 빨리 이곳을 떠나고 싶었다. 이곳의 섬뜩한 분위기는 말할 것도 없고, 소이연의 감정도 확실히 좋아 보이지 않았다. 하지수는 고개를 들어 소이연을 바라보았다. 소이연은 줄곧 육현경의 사진을 보며 울고 있었다. 그 순간 갑자기 큰
"어떻게 해." 예수진이 놀라서 정신이 없이 물었다. "뭘 어떻게 해! 빨리 불이나 꺼!" 하지수는 재빠르게 말했다. "어." 예수진이는 얼른 자신이 입고 있던 외투를 벗자 하지수와 소이연도 외투를 벗었다. 세 사람은 외투를 사용해 죽을힘을 다해서 불을 끄기 시작했다. "뭐 하는 겁니까!” 갑자기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들은 깜짝 놀라 쓰러지는 줄 알았다. 예수진은 자신의 심장이 좋지 않았다면 오늘 밤 수백 번은 죽었을 거라 생각했다. 세 사람이 몸을 돌려 제복을 입은 경비원을 보자 경비원이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 "지금 술에 취해서 산에 불을 질렀어요?” "할아버지, 그게 아니고....!” "누가 할아버지입니까!" 경비원이 화를 내며 말했다. "나는 30살 밖에 안 됐다고요!” “......" "아, 죄송해요. 저희는 제사 지내러 왔어요. 그러다가 실수로 옆에 불이 붙었는데, 저희가 지금 막 껐어요......” "한밤중에 제사를 지내러 왔다고요? 내가 바보인 줄 알아요?” 경비원은 더 이상 그녀들에게 말하지 않고 경찰에 신고했다. 그가 바로 신고하자 그녀들은 어찌해야 좋을지 몰랐다. "경찰 오면 그때 설명해요!” 경비원은 단호하게 말을 하며 그녀들이 도망갈까 봐 손전등으로 그녀들을 향해 계속 쏘았다. 세 사람은 그만 말문이 막혔다. 하지만 이미 경찰에 신고했다는데 어쩌겠는가 말이다!예수진은 참지 못하고 말했다. "내가 방금 할아버지라고 불러서 저 사람 화난 거지?”하지수가 눈을 크게 떴다. 실력 있는 엘리트 변호사인 그녀는 왜 자신이 예수진과 함께 소란을 피우게 되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법을 잘 알고 있는 그녀가 법을 어길 수 있겠는가! 대략 30분 정도 지나자 경찰이 왔다. 경찰은 상황을 파악한 후, 세 사람을 경찰서로 데려가 조사했다. 경찰서에 가기 전, 예수진은 경찰을 붙잡고 말했다. "잠시만 기다려주면 안 돼요? 오늘 밤 저는 정말 가족을 추모하러 이곳에 왔어요.” 경찰이 그녀를 자세
"그럼 서로 보증을 서주면 되지 않아?" 예수진은 순진하게 말했다. "어때요?” “...…" 예수진은 다른 말을 하지 못하며 그저 그렇게 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며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사실 경찰을 난처하게 하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니라 보증을 서줄 사람이 정말 아무도 없었고 친척도 친구도 없는 예수진의 유일한 두 친구는 모두 여기에 있었다. 소이연은 예수진이 무엇을 걱정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지만 그녀의 생모 관계가 어떤 상황인지는 잘 알지 못했다. 예수진이 말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기에 소이연도 더는 묻지 않았기에 그녀는 지금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소이연은 먼저 카톡을 보내고 이명진에게 전화해서 자신의 보증인이 되어 달라고 말했다. 하지수도 자신의 비서에게 연락을 하고 있었다. "뭐라고요?" 소이연이 통화를 하며 놀랐다. "대표님, 대표님께서 제 휴가를 직접 승인해 주시겠다고 하셨는데…" 이명진이 울 것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드디어 아내와 신혼여행을 올 수 있었는데, 지금 돌아가야 한다면 평생 회사와 결혼해야 할 판이었다. "아, 네, 깜빡했네요." 소이연은 자신이 그의 휴가신청서에 사인을 해준 것이 기억났다. "대표님, 제가 자리를 비우는 동안 이승윤 씨가 제 일을 할 수 있도록 인계해 주고 왔습니다.” "아, 알겠어요. 그럼 즐거운 신혼여행 되세요.” "네, 대표님. 감사합니다.” 이명진은 무거운 짐에서 해방된 기분을 느꼈다. 소이연이 이승윤에게 전화하려는 순간 휴대전화의 배터리가 나갔다. 소이연은 이승윤의 전화번호를 잘 기억하지 못해 휴대전화 충전기를 빌리러 가려던 참이었다.그 순간 낯이 익어 보이는 한 경찰이 그녀에게 말했다. "소이연 씨, 제가 당신 남자 친구분께 소이연 씨를 데리러 오라고 연락했습니다.” "네?" 소이연은 경찰을 바라보았다. "지난번에 남겨두었던 전화번호가 그대로 있어서요.” 소이연은 이 경찰이 지난번 루카스의 싸움을 처리한 경찰이라는 것을 기억했다. 하지만
예수진은 무슨 말을 더 해야 할지 생각했지만 소이연은 이미 루카스를 따라갔다. 예수진은 자신의 눈을 비볐다. "도대체 오늘 밤 술을 얼마나 마신 거야!" 옆에서 하지수가 어이없어하며 말했다. "정말 육현경인데."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예수진이 다시 한번 확신에 차 말했다. "아니라니까, 그냥 닮았을 뿐이야.” "환생한 것 같아." 예수진이 말했다. "그 느낌을 알아? 육현경이 내 목을 베어 너한테 의자로 쓰라고 준 것 같은 기분이라고.” “나는 더 못 앉겠다." 하지수는 말문이 막혔다. "저 사람 귀신이야, 사람이야?" 예수진은 아직도 이 문제를 깊이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수는 눈을 크게 끄며 오늘 밤, 더 이상 귀신에 집착하고 있는 예수진과 대화하기 힘들겠다고 생각했다. "혹시 죽지 않았는데 죽은 척하는 게 아닐까?!" 예수진은 이런 가능성을 생각하며 약간 흥분했다. "조용히 하세요." 경찰이 주의를 주었다. "아, 네." 예수진이는 얼른 목소리를 낮췄다. 하지만 육현경이 죽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쉽게 진정되지 않는 것 같았다. 죽지 않았고 성형을 한 거라면?! 지금 얼굴은 원래의 얼굴보다 잘생기지 않았다. 예수진은 계속 생각했고, 순간 낯익은 얼굴이 경찰서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또 자신이 잘못 본 줄 알았다. 오늘 밤 정말 귀신이라도 씌인걸까?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계지원이 이 한밤중에 여기에 오는 모습을 보았을까? “수진아, 예수진!” 계지원은 지팡이를 짚고 곧장 그녀를 향해 걸어갔다. "이런, 우연이." 예수진이 몸을 떨며 웃었다. 무슨 이런 거지 같은 운명이 있나? "공교롭게도." 계지원이 말했다. "네 보증인이 되려고 왔어.” “......” "소이연 씨가 나한테 문자를 보냈어." 계지원이 설명했다. 소이연이 나를 배신했다고?!예수진은 자신에게 보증인이 되어 줄 사람이 없다는 것을 바로 인정했다. 근데 소이연이 예수진을 돕기 위해 부른 사람이
송문수의 머리는 아직 짧았지만 여전히 스타일리시했다. "실망시켰네." 송문수는 예수진 앞으로가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난 하지수를 데리러 왔는데?” 예수진이 입술을 오므렸다. 뒤에서 송문수의 험담을 하다 현장에서 들킨 예수진은 당황했다. "문수야." 계지원이 그를 부르자 송문수는 고개를 돌려 보았다. "이리 와서 등록해.” 송문수도 지체하지 않고 옆으로 갔다. 예수진이 하지수를 돌아보자 하지수는 희미하게 웃었다. 예수진은 이 상황이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수가 송문수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예수진은 줄곧 알고 있었다. 그런데 하지수가 왜 송문수와 자꾸 연결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수속을 마치고 네 사람은 함께 경찰서를 나왔다. 송문수와 계지원은 줄곧 이야기를 나누었다. 송문수가 다리가 불편한 계지원을 생각해 물었다. "내가 데려다줄까?” "아니야, 운전기사랑 같이 왔어.” "그럼 먼저 가볼게.” "시간 나면 같이 밥이나 먹자." 계지원이 먼저 그에게 말했다. "도경이가 네가 나온 지 며칠이나 지났는데도 우리를 부르지 않았다고 몇 번이나 불평했어.” "알겠어." 송문수는 흔쾌히 대답하며 앞에 대기하고 있는 두 대의 검은색 세단 앞으로 갔다. 그는 음주운전으로 사람을 치고 심지어는 뺑소니로 도망갔기 때문에 면허가 취소된 상태였다. "먼저 갈게." 하지수는 송문수가 차에 오르는 것을 보고 재발리 예수진에게 말했다. 예수진은 송문수의 거만한 표정을 보고 마음이 좀 불편했지만 자신의 감정은 잊기로 했다. 하지수가 원하는 대로 하면 된다.예수진 본인의 감정도 엉망진창인 상황에 무슨 자격으로 다른 사람을 평가하겠는가? 예수진은 하지수를 그렇게 떠나보냈다. "우리도 가자." 계지원이 그녀의 곁에서 조용히 말했다. 예수진인 계지원을 바라보았다. "내가 데려다줄게.” "괜찮아요, 택시 타고 갈 수 있어요.” "늦었어.” "늦어도 차는 있어요. 제 휴대전화로 택시 부르면......” "여자한테 안
"어디 살아?" 계지원이 묻자 예수진은 재빨리 대답했다. "명원 아파트에 살아요” "그럼 명원 아파트로 가주세요.” "네." 운전기사가 공손히 대답했다. 승용차는 넓고 조용한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거리는 매우 조용했지만 차 안이 더 조용했다. 숨 쉬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예수진은 계지원과 단둘이 차 안에 있는 것이 불편했다. 지난번에 방송국에 갇혔을 때도 매우 불편했었는데 오늘 다시 한번 같은 느낌을 받았다. 바늘방석에 앉아 벌을 받는 것처럼 시간이 길게 느껴졌다. 예수진은 한 번도 돌아보지 않고 계속 창밖만을 바라보았다. 계지원이 그녀를 여러 번 쳐다봤다는 것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였다. 예수진은 자신의 몸이 차 문에 붙어 있는 것처럼 계지원과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계지원은 몇 번이나 그녀에게 말을 걸으려 했지만 결국 아무 말도 못 하고 침묵을 지킨 채 목적지에 도착했다. 예수진은 서둘러 차 문을 열고 내리며 말했다. "계 감독님, 감사해요.” "예수진." 계지원이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계지원은 예수진이 정말 도망치고 싶어 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사실 예수진에게 뛰지 말라고 말하고 싶었다. 계지원은 다리가 불편해 예수진이 조금 더 빨리 걸어도 그녀를 따라잡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휴대전화." 계지원이 그녀의 휴대전화를 건넸다. 예수진 정말 자신의 휴대전화를 잊고 있었다. 사실 계지원은 진작부터 돌려주고 싶었지만 그녀가 계속 자기와 거리를 유지하려 했기에 차마 말하지 못했었다. "아."예수진은 재빨리 휴대전화를 가져가며 말했다. "고마워요. 그럼 조심히 가세요.” 그리고 예수진은 뒤를 돌아보지 않고 재빨리 떠났다. 예수진은 계지원 앞에서 빨리 떠나고 싶었다. 계지원은 예수진이 밤의 어둠 속으로 빠르게 점점 멀어져 가는 모습만을 바라보았다. 그녀를 놓쳤다. 정말로 놓쳐버렸다!같은 시각, 같은 검은색 다른 승용차 안에도 침묵이 흐르고 있었다. 그때 송문수가 갑자기 말을 꺼냈
승용차가 송씨 별장에 도착했다. 하지수는 문을 열고 내렸다. 송문수가 승용차에 계속 앉아 있자 하지수가 물었다. "안 내려?" "응." "안 들어가?” "안 들어가.” "왜?” "내가 왜 그런 것 같은데?" 송문수가 반문했다. "하지수, 감옥에서 3년을 살고 나온 내가 가장하고 싶었던 일이 뭘 것 같아?" 송문수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안 돼?" 하지수가 그에게 묻자 송문수의 안색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밖에서 만나는 여자가 그렇게 잘해? 나는 뭐가 부족하고 네 마음에 안 드는데?” 하지수는 물었다. "가슴이 너무 작아? 아니면 허리가 너무 굵어?” "무리하지 말지.” "내가 무리했다고 했어?” "하지수!" 송문수가 갑자기 화를 냈다. 송문수의 성깔은 그가 어떤 경험을 하든, 몇 년, 몇 십 년이 지나도 고치지 않을 것임이 분명했다. 송문수는 출소한 후에도 여전히 건들건들하고 자기 계발 따위는 하지 않았고 여전히 성질은 급해서 조금만 화나도 폭발했다. "네 동정 따위는 필요 없어." 송문수가 또박또박 말했다. “그리고 나 같은 사람이 감옥에 갔는지 안 갔는지, 전과 기록이 있든 말든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난 확실히 널 좋아해. 이건 인정해." 하지수가 갑자기 툭 하고 내뱉었다. 송문수는 비웃었다. 일찍이 예상했던 일이라 감정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 "넌 내가 널 좋아할 기회를 주지 않았어." 하지수는 송문수를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너에게 다가가려고 할 때마다 너는 나를 밀어내잖아. 이렇게 하면 우리 사이가 어떻게 더 발전할 수 있겠어?” "내가 언제 우리 사이가 더 발전해야 한다고 말했어?” "우리는 부부야.” "아까는 이혼을 얘기했잖아.” "하지만 동의하지 않았어." 하지수가 말했다. "하지수, 대체 왜 그러는 거야? 차 문 놔, 가야 해. 시간 끌지 마. 넌 몰라. 난 너무 오래 시간 혼자 보내서 마음이 급하다고! 나가려는 순간 네 전화를 받고 짜증 났지만, 나는
예수진의 말에 정곡을 찔린 듯 소이연은 얼굴을 붉혔다.“거봐요, 오빠는 내가 제일 잘 안다니까. 그냥 겉으로만 멀쩡해 보이는 거예요.”소이연의 반응에 예수진은 득의양양해 하며 말을 이어나갔다.“겉으로는 차가워 보여도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아주 대범해지는 사람이거든요. 언니는 이제 오빠의 넘치는 사랑을 받을 일만 남았네요, 물론 침대 위에서요.”“그만 해요 수진 씨.”신나서 얘기하는 예수진에 못 말린다는 듯 웃던 소이연이 그녀를 타박하듯 말했다.“태교하는 사람이 자꾸 그런 생각 하면 어떡해요?”“아직은 그냥 핏덩이라서 아무것도 몰라요.”“...”“지수야, 너는 요즘 뭐 하고 지내? 평소에 문자 보내도 답장 늦게 하던데.”말을 하던 예수진은 임신한 뒤로 아무것도 못 하게 하는 계지원 때문에 요즘 부쩍 재미없어진 일상을 떠올리고는 서러운 듯 입술을 삐죽였다.“그냥 회사일 처리하고 있었지. 얼마 전에 경영에 문제가 생겨서 회사 부도날 뻔했거든. 그래서 문수 씨랑 일 처리만 했어.”“송문수?”“걔가 회사 일을 한다고?”송문수가 일한다는 소리에 예수진은 깜짝 놀라며 되물었다.“그래, 안 믿길 거 아는데 진짜니까 그런 눈으로 보지 마. 문수 씨 정말 많이 변했어, 더 이상은 맨날 놀러만 다니던 망나니 아니야. 이번에도 문수 씨 덕분에 송씨 집안이 다시 일어서게 된 거야. 그리고 이연 언니랑 현경 씨도 많이 도와줬고.”하지수는 곧바로 소이연을 보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정말 고마워요 언니, 언니랑 형부 도움 아니었으면 저희 집안은 진작에 끝났을 거예요.”“아니에요, 별로 힘든 일도 아니었는데요 뭘.”“현경이가 안 그래도 문수 씨 많이 변했다는 말 하더라고요. 밤에도 전화해서 기획서 어떻냐고 물어볼 정도로 열정적이래요.”“진짜 그렇게나 많이 변했다고요?”소이연까지 긍정하자 예수진은 눈을 크게 뜨며 하지수를 바라봤다.“네가 바꾼 거야?”“내가 그 정도는 아니야. 그냥 나이가 점점 드니까 본인이 알아서 바뀐 거겠지.”“송문수가 바뀐 뒤
그래서 하지수는 이를 악문 채로 따져 물었다.“문수 씨, 당신 형이 올린 인스타 봤어?”자신이 송승우를 이긴 것 같아 기분이 좋아졌었는데 갑작스레 인스타를 언급하는 하지수에 송문수는 자연스레 핸들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안 그래도 거슬렸는데 하지수의 저 질문은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격이었다.“그걸 봤는데도 아무렇지도 않아?”“응, 괜찮아. 그냥 인스타일 뿐인데 뭘 신경 써.”자신이 송승우를 선택할까 봐 두려워하는 모습이 조금도 보이지 않자 하지수는 조금 실망했지만 그래도 괜찮은 척 말했다.“신경 안 쓴다니 다행이지만 그래도 당신 아내로서 해명할게. 나랑 송승우 씨는 아무 사이도 아니야.”아무 사이도 아니라니, 둘이 얼마나 뜨거운 사랑을 나눈 사이였는지 온 집안사람들이 다 아는데 저런 말을 하는 하지수가 어이없었지만 송문수 본인도 뭐 그다지 깨끗한 사람은 아니었기에 그는 자신도 하지 못한 것을 하지수에게 요구할 자격은 없다 생각해서 입을 다물었다.하지수는 송승우를 진짜 사랑한 거였지만 자신은 그저 다른 여자들을 갖고 논 것이기에 더 따질 권리가 없는 것 같았다.“오늘 어머니랑 같이 쇼핑가기로 했는데 송승우 씨가 먼저 따라가겠다고 한 건 맞아. 나랑 어머니도 거절하기 힘들어서 같이 오긴 했는데 나는 송승우 씨랑은 말도 안 섞었어. 거리도 엄청 많이 뒀고 못 믿겠으면 어머니한테 물어봐도 돼.”하지수의 해명을 듣고 있던 송문수는 오로지 저를 위해 저렇게 자세히 상황설명을 해주는 건가 싶어 또 가슴이 벌렁거리기 시작했다.그녀의 작은 행동에 또 흥분한 송문수는 운전에 집중할 수가 없어 애써 심호흡을 하며 정면을 주시했다.“내가 선택한 사람은 당신이니까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당신한테 진심일 거야. 당신한테 미안한 짓은 절대 안 해.”하지수의 약속에도 송문수는 꿈쩍도 안 했지만 하지수는 둘 사이의 작은 오해가 큰 불화로 번지지 않게 하려고 아무런 반응이 없어도 상황설명을 마쳤다.제 할 일을 마친 하지수는 안광이 사라진 눈으로 차 시트에 기대 있었
송문수는 애초에 쉽게 만족하는 사람이었기에 하지수가 조금만 잘해주면 한동안 기뻐했다.둘의 웃는 모습을 지켜보던 허영지도 흐뭇하게 그들을 지켜보며 이렇게 사이좋은 둘이라면 걱정할 필요도 없을 것 같았다.“지수 데리고 밥 먹으러 가려고 온 거라고 했지?”“네.”“옷도 다 입어봤으니까 얼른 가봐.”데이트하러 가라는 말만 안 했지 사실 허영지는 그 둘에게 오붓한 공간을 마련해주고 싶었기에 서둘러 둘의 등을 떠밀었다.“어머니는요, 저녁 어떻게 하시려고요?”“승우 집에 있잖니. 승우랑 같이 쇼핑 좀 더 하면서 네 시아버지 옷 좀 더 보려고. 내 걱정 말고 얼른 가봐.”송승우는 당연히 내키지 않았지만 어머니가 말도 다 뱉은 마당에 거절하기도 쉽지 않아 그저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그럼 차 키는 두고 갈게요.”“저랑 문수 씨는 이만 옷 갈아입을게요.”옷을 갈아입은 둘은 손을 잡고 쇼핑몰 밖으로 나갔고 그 둘의 뒷모습을 노려보던 송승우는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승우야.”송승우는 갑자기 들리는 어머니의 부름에 다급히 표정을 감추었지만 허영지는 이미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안다는 듯이 말했다.“그때 너랑 지수 사이 우리도 다 알아. 하지만 너희 둘은 이미 끝난 사이고 지수랑 문수가 저렇게 잘 지내니까 이제는 너도 형으로서 축복해줘야 하지 않겠니?”송승우도 물론 어머니의 의도를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그 옛날 하지수가 좋아하던 건 분명 자신이었는데, 그때의 제삼자인 송문수가 하지수를 채가는 게 송승우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말을 마친 허영지는 이만 옷을 갈아입으러 피팅룸으로 들어갔다.송승우도 성인이었기에 조언도 적당히 해야지 선을 넘으면 그냥 가족 사이의 불화만 생길 것이기에 허영지도 여기서 멈춘 것이었다.하지만 어릴 때부터 송문수에게 져본 적이 없던 송승우는 이번에도 제 여자를 그에게 내어주고 싶지 않아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누르며 주먹을 꽉 쥐었다....송문수의 차에 앉은 하지수는 처음으로 저를 데리러 온 송문수에 못내 기분이 좋
하지만 원체 쇼핑을 싫어하는 송문수의 성격을 알고 있던 하지수는 그의 냉담함에 실망하지 않았다.이렇게 앉아서 옷을 갈아입는 저를 봐주는 것도 그의 노력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문수 왔구나.”허영지의 부름에 송문수가 짤막하게 답했다.“좀 있다 모임 있어서 지수 데리러 왔어요.”“그래, 젊은 사람들이야 그런 모임에 나가면 좋지.”전에는 송문수가 밖에 나가겠다고 하면 거절은 안 해도 표정은 굳어지던 허영지가 너그럽게 대꾸하는 것도 의외였다.“아직 이르니 너도 정장 한번 입어보고 가.”“바로 가야 되는데 갈아입기 귀찮아요.”“얼른 갈아입어.”“엄마, 나 온종일 일해서...”“지수가 너 준다고 한참 고른 건데 와이프 위해서 그 정도도 못 해줘?”남녀 사이에 있어서는 목석같기만 한 제 아들을 보며 허영지가 미간을 찌푸렸다.엄마의 말을 들은 송문수가 하지수를 바라보자 하지수는 다급히 말했다.“잘 어울릴 것 같아서 고르긴 했는데 갈아입기 싫으면 그냥 보기만 해. 맘에 들면 당신 사이즈로 맞출게.”“입어볼게, 맘에 안 들 수도 있으니까.”송문수가 하도 담담하게 대답해서 떨리는 그의 손가락을 주의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사실 그는 하지수가 자신을 위해 옷을 골라줬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아 놀라는 중이었다.기쁜 마음 반 당황스러움 반으로 옷을 갈아입은 송문수가 나오자 직원들은 일제히 그를 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너무 잘 어울리세요, 손님 더 멋있어 보이는 것 같아요.”“진짜요?”송문수가 직원들의 말을 반신반의하자 하지수가 나서며 말했다.“진짜야. 진짜 너무 멋있다.”“그래?”하지수의 확신에 찬 대답을 들은 송문수는 흘러나오는 웃음을 감추지 못하고 득의양양해 하며 대꾸했다.“다 내가 잘 생겨서 그런 거야. 옷이랑은 큰 상관 없지.”이렇게 가끔 자아도취 하는 송문수를 보며 하지수는 웃음을 터뜨리더니 그에게로 다가가 넥타이를 정리해주었다.그 둘의 다정한 모습을 보던 주위 사람들은 다들 흐뭇한 미소를 지었지만 송승우만은 아주 언짢아하
생일파티에 관한 일을 다 의논한 뒤 하지수는 허영지와 함께 그녀의 드레스를 맞추러 갔는데 하지수의 드레스도 같이 맞추자는 시어머니의 권유에 그녀도 옷을 입으로 들어가게 되었다.그래서 핸드폰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것인데 하필 그때 송승우가 송문수의 전화를 받게 된 것이다.옷을 다 입어보고 나서도 시어머니와 쇼핑을 하느라 굳이 핸드폰을 보지 않았던 하지수는 송문수에게서 연락이 온 줄도 모르고 있었다.다시 한번 그녀의 핸드폰이 울렸을 때 송승우가 이번에도 자신이 받으려고 했는데 하지수가 그걸 보고 빠르게 핸드폰을 낚아채 갔다.그녀의 행동에 표정이 굳어버렸던 송승우는 이내 송문수가 자신이 올린 인스타를 봤을 생각에 다시 입꼬리를 올리며 시선을 신문에 고정한 채 둘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문수 씨.”송문수의 이름을 부르는 하지수의 목소리에는 기대와 반가움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잠시 떨어져 있던 연인이 재회할 때나 나올법한 목소리에 송승우의 표정은 한층 더 어두워졌다.“아직도 바빠?”“어머니 모시고 드레스 피팅해보고 있었어. 지금은 디자이너님이랑 디테일 얘기하고 있어. 나도 아까 하나 입어봤는데 사진 보내줄게.”“지금 데리러 갈 건데 어디야?”잔뜩 신나서 말하던 하지수는 이제 고작 4시밖에 안 됐는데 퇴근했다는 송문수가 의아하여 놀라며 물었다.“퇴근했어?”“주말이라서 일찍 퇴근했어.”“회사도 좀 안정돼서 직원들도 앞으로 주말은 다 쉬기로 했어.”“그래.”고개를 끄덕이며 주소를 불러준 하지수는 웃는 얼굴로 전화를 끊고는 허영지에게로 다가갔다.하지만 송문수와 하지수가 싸울 것이라 예상했던 송승우는 화도 내지 않는 송문수에 혹시 그가 하지수를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하지만 사실 송문수는 인스타를 보자마자 차오르는 화에 핸드폰을 손이 하얗게 질릴 정도로 꽉 쥐고 있었다.다른 사람이 채갈까 봐 하지수를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심정이 굴뚝같은데 그런 그녀가 옛날에 좋아하던 송승우와 함께 있는 걸 본 이상 그는
결국 송승우에게 차 키를 내어준 하지수가 허영지와 함께 밖으로 나간 뒤 자연스레 뒷좌석에 타려 하는데 송승우가 갑자기 그녀를 불러세웠다.“지수야, 넌 앞에 타.”“어머니랑 같이 앉을게요.”“장안시에 길은 나도 잘 몰라서 알려줄 사람이 필요해.”단호한 그의 말을 하지수가 거절하기 어려워하자 허영지가 나서며 말했다.“그럼 내비게이션 켜. 바로 윌런 호텔로 갈 거야, 호텔 사장이랑 얘기 다 끝나서 아마 우리 기다리고 있을 거야.”말을 마친 허영지는 또 일부러 하지수를 보며 말했다.“지수는 나랑 같이 타자, 말동무해줘.”“네, 어머니.”제 옆에 앉지 않아도 된다고 저렇게 입이 귀에 걸린 채로 좋아하는 하지수를 보며 송승우는 표정을 굳힌 채로 운전석에 올라탔다.그렇게 내비게이션을 켜고 윌런 호텔로 출발하자 허영지가 하지수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지수야, 어제 내가 한 말 그냥 흘려듣지 말고 잘 생각해봐.”“무슨 말이요?”“너랑 문수 아이 얘기 말이야.”“아, 네.”“그냥 대답만 하지 말고 노력을 해야 애가 생기지.”허영지가 거리낌 없이 남사스러운 말을 하자 하지수는 얼굴이 빨개진 채로 대답했다.“어젯밤에 문수 씨랑도 얘기했어요.”“문수도 알겠대?”“네.”“그럼 난 그냥 기다리고만 있으면 된다는 말이지?”하지수가 다시 고개를 끄덕이자 허영지는 아주 기뻐하며 말했다.“그럼 나는 할머니 될 날만 기다리고 있을게.”그런 허영지와 반대로 하지수가 송문수의 아이를 낳는 걸 용납할 수 없었던 송승우는 핸들을 잡은 손에 힘을 주며 이를 갈고 있었다.윌런 호텔에 도착한 뒤 세 사람은 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사장 사무실로 향해 파티 당일의 규모와 배치에 대해 의논하기 시작했는데 이런 비즈니스적인 자리를 포함한 모든 인간관계를 꺼리던 송승우는 얘기에는 참여하지 않고 가만히 자리만 지키고 있었다.그렇게 심심해하던 송승우는 문득 무슨 생각에서인지 핸드폰을 들어 사진을 찍었다.허영지와 하지수도 담긴 사진이었지만 그 둘은 파티 준비에 열과 성을 다하고
“이연 언니가 왔다고?”오랜만에 들려온 소이연의 소식에 하지수는 흥분하며 답했다.“그럼 당연히 가야지, 오랫동안 못 봐서 안 그래도 궁금했는데. 육현경 씨랑 이연 언니가 나 엄청 많이 도와줘서 직접 만나서 감사 인사 하고 싶었어.”“계지원 씨 집에서 모이기로 했어. 예수진 씨 배도 점점 불러서 움직이기 힘드니까 그냥 거기서 보기로 했어.”“그래. 그럼 퇴근할 때 연락해. 나는 먼저 어머님이랑 아버님 생일파티 준비하고 있을게.”“응.”밥을 다 먹은 두 사람은 각자 알아서 집을 나섰고 하지수는 바로 송 씨 가문별장에 시어머니를 모시러 갔다.하지수가 안으로 들어가자 송승우가 소파에 덩그러니 앉아있는 게 보였다.그와 단둘이 만나는 건 아직 어색했기에 하지수도 입을 다물고 있었는데 그런 그녀를 한참이나 바라보던 송승우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엄마 모시러 온 거야?”“네.”“집에 계속 계시는 거예요?”“나갔으면 좋겠어?”헛웃음을 흘리며 묻는 송승우에 하지수가 다급히 해명했다.“아뇨, 그냥 전에는 계속 일로 바쁘셨던 분이 계시니까 물어본 거예요.”“전에는 연구과제 때문에 바빴는데 이제는 나 없이도 잘 돌아가서 한가해.”“아, 네.”고개를 끄덕이는 하지수를 보며 그녀가 저를 불편해하는 걸 느낀 송승우는 올라오려는 화를 참으며 물었다.“문수는?”“출근했어요.”“주말에도 출근해?”“요즘이 회사한테 중요한 시기라서 일요일만 쉬기로 했대요. 내일은 안나가요.”사실 송문수에게는 거의 휴일이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처리해야 할 일이 매일 산더미여서 그는 시간만 나면 사무실에 틀어박혀 있었다.“송문수 많이 변했네.”“송문수가 변해서 너도 걔를 다시 보게 된 거야?”냉소를 흘리며 묻는 송승우에 하지수가 고개를 저었다.“잘 모르겠어요. 감정이라는 게 원래 언제 생겼는지도 모르게 생기는 거잖아요.”감정이라는 건 애초에 기척 없이 생겨서는 헤어나오지 못할 정도로 한 사람을 옭아매는 것이다.하지수의 말로부터 그녀가 이제는 정말로 송문수를
“하지수, 변호사 일할 때는 똑똑하더니 연애에는 영 소질이 없나 봐?”자는 척하고 자신을 놀려먹은 건 송문수인데 오히려 바보라고 핀잔을 듣자 화가 난 하지수가 얼굴을 붉혔다.“네가 나한테 뽀뽀하는 게 좋으니까 계속하라고 가만히 있은 거잖아!”송문수가 언성을 높여 말해서야 이유를 알게 된 하지수는 당황스러운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고 그 표정에 어이가 없어진 송문수는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이렇게 바보 같아서 어떡해, 누가 너 팔아넘겨도 모르겠다.”“누가 누구한테 바보래. 내가 당신 마음을 읽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그런 생각인 줄 어떻게 알고...”말을 채 끝맺지도 못했는데 갑자기 입을 맞춰오며 진득한 키스를 이어나가는 송문수에 하지수는 눈을 크게 떴다.“아...”아까 자신이 한 건 그저 뽀뽀이지 이렇게 치열을 훑고 지나가는 키스는 아니었는데 입속 깊은 곳까지 뜨겁게 만드는 키스는 옆에서 핸드폰이 울리건 말건 오래도록 지속되었다.송문수도, 하지수도 그 벨 소리를 무시한 채 키스를 이어나가다 둘의 입술이 다 번들번들해질 때가 되어서야 송문수는 아쉬움을 뒤로한 채 하지수를 놓아주었다.송문수의 키스에 정신이 혼미해진 하지수는 나른한 눈빛으로 송문수를 보고 있었는데 핸드폰을 보던 송문수는 갑자기 욕설을 내뱉더니 서둘러 침대에서 내려가 욕실로 달려들어 갔다.그의 샤워 소리가 들릴 때에야 정신을 차린 하지수도 시간을 보자마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변호사 일을 시작하면서 누구보다 규칙적이고 자율적인 일상을 보내왔던 하지수였기에 그녀는 자신이 아주 이성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송문수를 만난 뒤부터 이성보다 감성이 앞서는 사람이 돼버린 것 같았다.그래서 그녀는 송문수가 만약 자신을 팔아넘겨도 그를 도와 돈을 세줄 것 같다는 그의 말에 어느 정도 동의를 하고 있었다.생리대부터 바꾸러 제 방으로 돌아간 하지수가 준비를 마치고 나오자 송문수도 옷을 갈아입은 채로 거실에서 통화를 하고 있었다.평소에는 7시에 일어나서 8시 정도면
말을 마친 하지수는 송문수가 그새 깨어난 지도 모르고 그의 품에 안겨 눈을 감았고 송문수는 다정한 눈을 한 채 떨리는 손으로 제 옆에 누운 하지수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이튿날 아침, 눈을 뜬 하지수는 방금 일어난 탓에 낯선 주위를 한참이나 둘러보고서야 여기가 송문수의 방임을 기억해냈다.관계 빼고는 별짓 다 한 어젯밤이 떠오른 하지수는 얼굴을 붉혔다.혼자 자는 게 습관 되어있어 송문수의 품에 안긴 뒤 빨리 뛰는 심장 때문에 뜬눈으로 밤을 새울 줄 알았는데 예상외로 그녀는 눈을 감자마자 잠에 빠져들었다.아마도 바쁜 일정 때문에 피곤했던 것 같다.완전히 정신을 차린 하지수는 고개를 돌려 아직도 곤히 자고 있는 송문수를 바라보았다.자고있는 그의 모습은 평소처럼 차갑지 않고 쫙 펴진 미간 덕분에 오히려 부드러워 보여 공격성이 다분하지도 않았다.왜 눈을 뜬 모습과 감은 모습이 이렇게 다를까 하는 의문을 가지고 송문수의 얼굴을 찬찬히 보던 하지수는 날카로운 그의 눈빛을 떠올렸다.전에는 그 눈빛이 마음속을 꿰뚫어 볼 것만 같아 두려웠었는데 지금의 하지수는 더 이상 잠들어있는 송문수도, 깨어있는 송문수도 두렵지는 않았다.한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깨어있는 송문수를 마주할 때는 하지수가 주동적으로 입을 맞출 수 없다는 것뿐이었다.하지만 잠들어있을 때는 그야말로 하지수 세상이었기에 그녀는 빠르게 송문수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한 번으로는 부족했는지 하지수는 그 뒤로도 여러 번 입을 맞추다가 누군가의 핸드폰이 울릴 때가 돼서야 행동을 멈추었다.물론 자의로 멈춘 건 아니고 입맞춤을 하던 와중에 눈을 떠버린 송문수 때문에 도둑이 제 발 저리듯 깜짝 놀라 잠시 멈칫한 것이었다.당황한 하지수는 빠르게 도망가려 했지만 자신을 눌러버린 송문수 때문에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분명 방금 눈을 떴는데 이상하게 송문수의 눈은 반짝반짝 빛이 나고 있었다.몽롱한 느낌은 전혀 없는 눈으로 그는 하지수를 빤히 바라보았고 그의 진득한 눈빛을 당해내지 못한 하지수는 서둘러 눈을 피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