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 그는 그녀가 누구를 잃을까 봐 두려워하는지 알지 못했다. 루카스는 그저 소이연이 정말 그리워하는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이 여자는 매혹적인 방법으로 남자를 유혹할 줄 아는 것이다. "너를 다치게 하고 싶지는 않아. 그러니 날 제발 놔줘." 루카스는 다소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소이연은 여전히 그를 꼭 껴안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중얼거리며 말했다. "내가 놓으면 넌 여기 없을 거잖아……” "여기 있어.” "싫어......" 그녀는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하면서 그녀의 핑크 빛 볼을 그의 허벅지에 문질렀다. 루카스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느낌을 받았다 이 빌어먹을 여자!완전 여우 아니야?루카스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소이연을 밀어내려 했다. 하지만 그는 고개를 숙인 채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는 그녀의 얼굴을 보고는 자신의 손을 거뒀다. 소이연의 얼굴에서는 여자의 슬픔이 보였다. 강한 것처럼 보였던 그녀에게서 산산이 부서질 것 같은 모습 이였다. 그녀는 혼자 있을 때, 누군가에게 버려진 것 같이 움츠러든 눈빛으로 가느다란 몸에 슬픔이 흘러내리는 듯한 안타까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는 항상 소이연이 순진한 척 가식적인 모습으로 남자를 유혹한 거라고 생각해 왔다.그리고 그는 소이연이 중년 남자와 잘 어울리는 모습도 보았다. 하지만 지금 행복 가득한 그녀의 얼굴을 보니 자신의 생각이 틀린 것 같았다. 젠장. 루카스는 속으로 욕을 했다. 이 여자는 그에게 끊임없이 자신을 후회하게 한다. 루카스는 소이연에게 아무런 감정이 없고 싶었다. 하지만 소이연을 처음 봤을 때 그는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루카스는 그 이런 느낌이 싫었다 그는 여자친구가 있고, 당연히 다른 여자에게 특별한 감정을 느끼고 싶지 않았기에 좋지 않은 태도로 소이연을 대했다. 루카스는 최선을 다해, 다소 거칠게 소이연을 밀어냈다. 오늘 밤 그가 그녀를 간호해 주는 것은 소이연에게 큰 보상을 해 주는 것과
루카스는 그만 온몸이 얼어붙고 말았다.소이연이 자신에게 키스할 것이라고는 정말 생각하지 못했다. 루카스는 갑자기 심장이 떨려왔다.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가?! 낯선 여자가 자신에게 이런 식으로 하고 싶은 대로 놔두다니! 그의 눈은 가늘어졌고, 눈빛에 정욕은 사라지고 차가움만 남았다. 그는 입을 벌렸다. 그는 소이연을 이렇게 쉽게 놓아주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소이연의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아파......” 열정적으로 키스하던 소이연은 순식간에 눈물을 글썽거렸다. 그녀는 루카스를 애처롭게 바라보았다. 부드럽고 여성스러웠다 순정적이면서도 뜨거웠다. 빌어먹을 여우 같은 여자. 루카스는 속으로 욕을 내뱉었다. 육체적 고통은 참을 수 있지만 심적 고통은 참을 수 없었다. 그는 있는 힘껏 그녀를 밀어냈다. 그녀의 여린 얼굴과 반짝이는 입술에 맺혀 있는 선홍색 피가 뒤섞인 모습은 남자들은 저항하기 힘든 유혹이었다. 그런 모습에 루카스는 괜히 화가 났다. 이런 여자에게 유혹당하는 것은 그의 인생에서 절대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기에 그는 여자 때문에 자신을 통제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자신의 여자친구에게서조차 그는 이런 충동을 느낀 적이 없었다. 그는 소이연의 입술을 꽉 눌렀는데, 소이연은 반항하지 않고 여전히 매혹적인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손가락에 눌린 그녀의 작은 입술이 손가락 사이로 튀어나와 더 귀여워 보였다. 루카스는 무시했다. 마음을 설레게 하는 그녀의 모든 모습을 차갑게 무시했다. 그는 손가락으로 거칠게 그녀의 입술을 닦았다 그 매혹적인 촉촉함과 고혹적인 피를 매섭게 닦아냈다. 소이연은 눈을 찌푸리고 눈물을 글썽였다. 루카스의 손가락에 입술이 눌려 그녀는 말을 할 수 없었지만 그녀가 고통스러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입술이 따끔따끔 아파왔다. 루카스는 자신의 불만족을 표현한 후에야 소이연의 입술이 자신의 무례함 때문에 더욱 붉어지고 부어올랐다는 것을
육현경……! 멍한 눈빛을 하며 소이연은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그녀는 생각이 났다. 그는 육현경이 아니라 루카스라는 것을 말이다. 그냥 뒷모습이 너무 비슷할 뿐이였다. 단지 그녀가 육현경을 너무 그리워하고 그리워해서 착각했던 것이었다. 소이연은 소리 없이 눈물을 너무 흘려 베개를 다 적실 정도였다. 신경 쓰지 않으려 했지만 루카스는 뒤에서 누군가가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가 아무리 무시하려 해도, 그가 그녀를 밀어냈을 때 그녀의 상처받은 눈빛과 슬픈 표정은 그의 머릿속에 맴돌았다. 온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것 같은 이 여자에게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녀에게는 분명 무엇인가 있다. 아니면 연기일 뿐인 건가? 이것이 연기라면 그녀는 정말 아카데미 영화제의 수상자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렇다면 그가 소이연에게 속은 것도 당연한 일이 된다. 루카스는 스스로를 설득하려고 애쓰다가 갑자기 간이침대에서 일어나 소이연을 돌아보았다. 어두컴컴한 가운데 그녀가 잘 보이지 않았지만, 선명하게 보이기도 했다. 그녀가 힘들어하며 울고 있는 것을 보았다. 루카스는 이불을 젖히고 소이연의 앞으로 갔다. 소이연은 눈을 움직여 그를 본 듯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마음이 진정된 것 같았다. 소이연의 모습은 방금 자신 앞에서 통제 불능이 된 여자와 같은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하지만 루카스는 말했다. "잠깐이라도 더 자.” 소이연은 계속 그를 쳐다보았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같은 말 또 하게 하지 마.” 루카스가 협박하듯 말했지만 소이연은 여전히 꼼짝도 하지 않았다. 루카스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이 여자는 정말 침착했다. 그는 갑자기 허리를 굽혀 그녀를 덥석 안았다. 소이연의 눈에는 놀라움이 가득했지만 그를 차마 밀어내지는 않았다. 마치 버려진 고양이처럼 온순하게 굴었다. 그러자 루카스의 마음도 왠지 누그러졌다. 분명 거칠게 그녀를 안아 침대 위에 올려놓았지
날이 밝았다. 소이연은 눈을 떴다. 병실에서 들리는 소음에 잠이 깼다. 그녀는 눈꺼풀을 움직였는데, 오랜만에 일어나기가 힘들었다. 그녀는 항상 잠을 잘 자지 못했고 한 번 깨면 다시 잠들기 힘들어 했다. 그런데 오늘은 침대에 누워 더 자고 싶은 기분이 막 들었다. 게다가 그녀는 어젯밤에 정말 잘 잤다. 분명히 오랫동안 편안하게 잘 잤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멍하나 눈을 뜨고 흰 가운을 입은 많은 사람들이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알고 보니, 의사들이 회진하고 있었다. 담당 의사가 그녀에게 이것저것 물었고 의사의 질문에 그녀는 대답했다. 의사도 별말 없이 돌아서서 수련의들을 데리고 나갔다. 그리고 그때, 간호사가 들어와 체온을 재면서 물었다. "남자친구랑은 화해했어요?” 소이연은 그때서야 루카스가 자신의 침대에서 자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의사들이 회진을 돌 때 방해받는 것이 싫어 이불로 자신의 몸을 전부 덮어 버렸다. "저는 두 분이 싸운 줄 알았어요. 어젯밤에 남자친구께 일부러 간병해야 한다고 말했더니 투덜거리면서 알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소이연 환자분 남자친구 성격이 좀 있어 보이긴 하는데, 소이연 환자분께는 정말 잘하시는 것 같아요. 입원 수속을 밟으면서도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다른 질병 같은 건 없는지 계속 물어보셨어요......” 소이연은 루카스가 갑자기 그녀가 죽을 까봐 안아주었다고 생각했다. "체온은 정상인데, 의사 선생님께서 혈액검사를 하는 게 안전하다고 하셨어요." 간호사는 의사의 말을 전하며 그녀의 피를 뽑았다. 소이연은 입술을 깨물었다. 사실 그녀는 아프지는 않았지만 주사를 맞고 피를 뽑는 것이 조금 두려웠기에 참지 못하고 그만 옆을 잡았다. 그녀는 뭘 잡고 있는지 의식하지 못했지만 어쨌든 힘을 세게 주었다. 다행히 간호사는 능숙하게 피를 채혈했다. "살짝 누르고 있어야 피가 안 나와요.”간호사가 신신당부하며 말했다. "네, 감사합니다.” 간호사는 미소를 지으며 병실을 나갔다
소이연은 신이 사람을 만들 때 불공평하게 만들었 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이연은 흐트러진 그의 모습조차 멋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경고하는데 지금부터 작은 소리조차 내지 말고, 내 잠을 방해하지 마!” 루카스는 짜증을 마구 냈다. “내가 이러다 죽겠네!” 소이연은 루카스가 왜 이렇게 화를 내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침에 당연히 잠에서 깨는 일이 뭐가 그렇게 화가 날 일은 아니지 않나? 그녀도 잠에서 깼지만 화를 내지는 않았다. 사실 소이연은 어젯밤 루카스가 거의 잠을 못 잤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녀가 어젯밤에 쉴 새 없이 그에게 매달려 손발을 꾸물거리며 잤기 때문에 아무리 인내심 강한 남자라도 충분히 무너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루카스는 밤새 그것을 견뎠다가 아침이 밝을 때까지 참고 버티다가 결국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잠이 들었다. 하지만 잠에 들자마자 의사들이 회진을 돌러 병실로 들어왔기에 그는 또 다시 인내하며 사람들 앞에서 화를 내지 않았다. 그는 두 번 다시, 절대로 이런 자비를 베풀지 않을 것이라 다짐했다. 이번에는 그야말로 자업자득이다! 루카스는 이불을 덮고 잤다. 소이연은 루카스의 말투와 행동에 기분이 상했지만,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하고 휴대전화만을 보며 시간을 보냈다. 그녀는 어젯밤 정말 잘 잤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비록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는 했지만, 오랜만에 상쾌한 기분을 느꼈다. 이런 기분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심지어 정신과 의사와 상담하고 자는 것보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훨씬 더 편안함을 느낄 정도였다. 그때 그녀의 심장이 살짝 떨려왔고 소이연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루카스를 쳐다보았다. 어젯밤에 이 사람을 안고 잤을 뿐인데 지금 이렇게나 잘 자다니...... !"왜 쳐다봐! 내가 당신 눈을 아직도 멀쩡하게 놔두고 있다는 게 믿기지가 않아!” 루카스는 다시 한번 짜증을 냈다. ‘나도 더럽고 치사해서 안 봐!’소이연도 순간 욱 하며 심한 말을 내뱉고 싶었다. 이 남자는 정
심문헌의 카톡 메시지는 빠르게 왔다. "소이연 씨, 어디예요? 왜 호텔에 없나요? 호텔 직원한테 들었는데, 어젯밤에 병원에 갔다면서요, 근데 왜 쓰러졌어요?” 여러 질문들이 연달아 들어왔다. 소이연은 심문헌의 걱정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병원에 있는데 괜찮아요, 어젯밤에 잠깐 열이 났을 뿐이에요." 소이연은 답장했다. "어느 병원이에요? 금방 갈게요.” "곧 퇴원해요.” "그럼 제가 가서 퇴원수속 도와줄게요.” "퇴원 후 장안으로 돌아갈 거라서 괜찮아요.” "나도 마침 장안에 가려고 했어요. 당신과 함께요.” “..." 심문헌은 정말 모든 기회를 이용해 지칠 정 도로 달라붙는다. "이연 씨, 내가 같이 있게 해 줘요. 이연 씨 혼자 있는 건 걱정돼요." 심문헌은 끈질기게 말했다. 심문헌은 소이연이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을 못 견뎌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일 끝났어요?" 소이연은 포기했다. 전에 심문헌이 왜 서울에 왔는지 몰랐고, 일부러 그녀를 보러 왔다가 쇼도 본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다.하지만 나중에 생각해 보니 심문헌 같은 전형적인 정치인이, 낙성보다 더 큰 정치의 중심지 서울에 와서 서울의 정치인들과 관계를 맺으러 온 것이지, 괜히 서울에 온 것이 아니었다. "일 끝났어요." 심문헌이 빠르게 답했다. "그럼 호텔로 가서 기다려요. 퇴원하고 호텔에 짐 가지러 갈게요.” "그런데 호텔 로비에서 기다리라고요? 방 번호 알려주면 안 돼요? 어제 접대하느라 속이 너무 쓰린데...... " 심문헌은 불쌍한 척하며 말했다. "방 번호는 666호예요. 호텔에 가서 프런트 데스크 직원에게 저한테 전화하라고 해요. 그리고 내 방 카드를 받고 방에서 기다려요.” "좋아요." 심문헌이 빛의 속도로 답장을 보냈다. 그의 계획은 성공했다. 소이연도 심문헌의 간사하고 교활함에 익숙해졌다. 결국 정치인들은 제멋대로고 신뢰할 수 없는 사람들이니까. 정오. 간호사가 그녀의 검사 결과를 가져왔다. 일반적인 바이러스 감
"허, 이제야 인정하는 거야?" 루카스는 드디어 해냈다고 생각했다. 소이연은 순간 숨이 막혀 막혀 얼굴이 붉어졌다가 창백해졌다. "어딜 그렇게 급하게 가는 건데?” 소이연은 화제를 돌리기로 했다. 그 일은 더 이상 말하지 않을 것이다. 어차피 말로 그를 이기지 못하기에 그녀도 사서 고생하고 싶지는 않았다. 루카스는 갑자기 당황했고, 소이연은 미간을 찡그렸다. 뭐야, 왜 말을 못 해? 이렇게 간단한 질문에 난처해하는 이유가 뭐지? "나, 소변이 급해.” 루카스는 화장실을 참으며 짧게 답했다. "소변이 급해서 방향을 잘못 잡은 거야?” "젠장, 난 잠에 취해있으면 안 돼?” 루카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왜 화를 내!" 소이연은 화가 났고, 루카스와는 정말 세 마디 이상은 나눌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루카스는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 "신장이 좋지 않아?! 오줌 지리는 거 아니야?!” 루카스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외쳤다. "내 신장은 아무 문제없거든!” 그리고는 반대 방향에 있던 화장실로 들어가며 문을 '쾅' 하고 닫았다. 소이연은 심호흡을 하며 스스로에게 루카스와 다투지 말라고 말했다. 이론상 그녀가 루키스보다 6살 더 많으니, 어린 동생에게 화낼 필요가 없다. 그녀는 짐을 싸기 시작했다. 심문헌이 몇 번이나 메시지를 보내며 재촉했다. 그녀가 호텔로 돌아가지 않으면 분명이라도 병원으로 달려올 기세였다. 화장실에서 나온 루카스는 그녀가 물건을 정리하는 것을 보며 물었다. "퇴원해?” "방금 의사가 괜찮다고 퇴원해도 된다고 했어." 소이연은 대답했다. 루카스도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옷을 가지고 욕실로 가서 갈아입은 다음 그가 사 온 물건을 치우기 시작했다. 그는 많은 것들을 쓰레기통에 버렸다. 이 사람은 정말 물건을 낭비하는 사람이다. 물론 소이연은 신경 쓰지 않았다. 어쨌든, 그녀도 그 물건들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녀도 옷을 갈아입으러 욕
소이연은 루카스와 함께 차를 타고 호텔로 돌아갔다. 호텔로 가는 길 내내 두 사람은 낯선 사람과 있는 것처럼 서로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호텔에 도착해서도 거리를 두고 차례대로 호텔로 들어가 엘리베이터에 탔는데, 앞으로 두 사람은 절대 보지 않을 것처럼 행동했다.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소이연은 666호실은 문 앞에 서서 방 카드로 문을 열려고 하자 그때, “서프라이즈!” 심문헌이 갑자기 문을 열며 외쳤다. 그리고 꽃잎들을 그가 공중에 흩뿌렸다. 그녀는 깜짝 놀랐다. 평소 심문헌은 매우 점잖았고 정계에서도 엘리트로 알려진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왜 점점 소이연 앞에서만 있으면 가벼워지는 것일까? 심문헌은 소이연의 어이없다는 표정을 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혹시.. 이런 거 싫어해요?” "싫어해요...” "그날 내가 산 꽃이 정말 낭비였다 생각해서 꽃잎을 한 잎씩 떼어서 퇴원 선물로 주고 싶었을 뿐이에요." 심문헌이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그 순간 소이연의 머릿속에 한 장면이 떠올랐다. 화면 속 심문헌이 혼자 쭈그리고 앉아 조심스럽게 꽃잎을 떼어내고 있었던 것을 말이다. 소이연은 때때로 심문헌에게 좀 무심하게 대했다. "아픈 건 다 나았어요?" 그러자 심문헌이 바로 화제를 돌렸다. 그는 소이연이 자신을 섭섭하게 했다는 것을 이미 다 잊은 듯했다. 이럴 때마다 소이연은 좀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것도 심문헌의 계략인지도 모르겠다. 정치하는 사람들은 정말 모두 주도면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몇 년 동안 소이연은 심문헌을 거부했는데, 그럴 때마다 결국 그는 그녀의 곁에 나타났다. 소이연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다 나았어요. 오후 4시 비행기인데 점심 먹고 공항으로 가야 해요.” "이연 씨 비서에게 비행기를 예약해 달라고 부탁해 놨어요.”심문헌은 물었다. "식사는 방에서 할래요? 아님 식당으로 갈까요?” "방에서 먹어요.” "그럼 룸서비스 시킬게요.” 선원헌은 소이연의 손을 잡고 방으로 들어
백일잔치가 시작되기 전 예수진은 소이연과 친구들이 앉아있는 테이블로 급히 다가왔다.“왜 혼자와?”“그럼 누구랑 와?”“우리 조카는?”“아, 엄마한테 맡겨놨어. 먹고 싸는 것밖에 할 줄 몰라서 재미없어.”“...”“그러는 너는 좀 어때?”“뭐가 어떠냐고?”“네 애 말이야.”예수진의 말이 끝나자마자 누군가의 찻잔이 쨍하는 소리와 함께 테이블 위로 떨어졌다.아직 파티가 시작되기 전이라 차만 마시고 있던 남자들이었는데 송문수의 손에 들려있던 찻잔이 미끄러지면서 안에 있던 차가 흘러나온 것이다.송문수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찻잔을 집어 들더니 휴지로 물기를 닦아내기 시작했다.그 얼굴에서 당황스러움이란 찾아볼 수가 없었다.찻잔을 떨군 건 그저 우연이라는 듯 하도경, 육현경과도 계속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그를 보며 하지수도 입을 열었다.“잘 있지. 전에는 좀 힘들었는데 이젠 잘 먹고 잘 자.”“너 살 좀 찐 것 같아.”“응, 2킬로 넘게 쪘어.”“그럼 됐어.”하지수와 잠깐 이야기를 나누던 예수진은 파티가 곧 시작한다는 말에 계지원과 함께 자리를 떴고 그녀가 떠나가 테이블은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아마도 얘기를 다 나눈 남자들 때문인 것 같았다.가만히 있기도 뻘쭘했던 하지수가 주전자를 들려 하자 송문수가 빠르게 그녀에게 차를 따라주었다.“고마워.”하지수의 인사에 송문수가 고개를 끄덕였고 그렇게 한참 동안 둘 사이에는 대화가 오가지 않았다.그러다가 결국 송문수가 먼저 입을 열었다.“너 임신했어?”“응.”“빠르네.”송문수는 의미 없는 웃음으로 자신의 착잡한 마음을 감추려 했다.적어도 결혼한 다음에야 임신할 줄 알았는데 이렇게 빨리 송승우의 아이를 가졌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그래서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혼인신고만 해버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송문수는 자신의 생각이 점점 커지는 게 싫어 다급히 화제를 돌렸다.“너 혼자 온 거야? 송승우는?”“서울 갔어.”“몸은 괜찮아졌어?”“응, 의족 해서 이젠 잘 다녀.”오랫동안
예수진은 빠르게 소이연에게 문자를 보냈다.[이연 언니, 송문수 왔어요. 진짜 올 줄은 몰랐는데 방금 안으로 들어갔어요!][내가 진짜 올 거라고 했잖아요.][내 매력이 그 정도일 줄 몰랐죠.]역시나 능청스럽게 받아치는 예수진에 어이없다는 이모티콘을 보내고 난 소이연은 송문수의 인영을 찾으려 두리번거렸다.하도 큰 키 덕분에 사람들 틈에 섞여 있어도 우뚝 솟아있는 송문수를 찾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문수야.”마찬가지로 그를 알아본 육현경이 인사를 건네자 송문수는 빠르게 그들에게로 다가갔다.“언제 왔어?”“어제 오후에.”“왔는데 왜 말도 안 해? 사업 잘된다고 이젠 우리도 모른 척하는 거야?”“아무리 잘 되봤자 내가 현경이만큼 돈이 많진 않아.”볼멘소리를 하는 하도경에 맞는 말로 반박하자 하도경도 딱히 할 말이 없는지 어깨만 으쓱해 보였다.“언제 가?”“모레 비행기야, 내일 집 가서 부모님만 뵙고 가려고.”“그래서 우리 만날 시간은 없다 이거지?”“이번엔 시간이 좀 빠듯해, 거기 일도 많고. 오늘 보지 뭐, 술 제대로 마시자 한번.”“너 진짜 많이 변했어 송문수, 이렇게 진지하진 말아 줄래?”적응되지 않는 송문수의 말투에 하도경이 진저리를 치며 말했다.“그럼 어쩌라고.”“나는...”판을 깔아주니 말하기 어려웠는지 하도경은 이를 악물며 말했다.“술 마셔 그냥.”“그래.”또 무슨 바람이 분 건지 둘은 음식이 나오기도 전에, 파티의 주인공이 자리하기도 전에 술부터 마시기 시작했다.육현경이 그런 그들을 말리려 할 때 송문수의 옆에 문득 한 여자가 앉았다.그에 술잔을 들고 있던 송문수도 잠시 멈칫했다.굳이 보지 않아도 누군지 알 것 같아서 그는 자신도 모르게 손가락에 힘을 주며 술잔을 입가에 가져다 댔다.송문수를 한번 보던 소이연은 하지수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지수 씨, 왔어요?”“네.”“혼자예요?”“네.”혼자라는 말에 송문수의 손은 아까보다 더 하얗게 질려버렸다.“혼자니까 더 조심해요 다닐 때.”“그
그로부터 반년이 지나서야 송문수는 마침내 국내로 돌아올 수 있었다.캐나다에 있는 회사도 이제 정상적으로 흘러가자 귀국한 거였지만 그도 그냥 예수진 아들의 백일을 축하하러 온 것뿐이었다.시간이 어찌나 빠른지 송문수가 나갈 때까지만 해도 배가 부른 채로 있던 예수진이 벌써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백일까지 맞이하게 된 것이다.오랜만에 온 장안시였지만 송문수는 자신의 귀국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그저 본인의 집으로 향했다.오랫동안 비워둔 집이라 그런지 온통 먼지투성이여서 일단 도우미부터 부른 송문수는 아주머니가 정리를 마친 다음에야 침대에 몸을 뉘일 수 있었다.떠나기 전만 해도 이곳에서 사랑하던 사람과 행복한 시간을 보냈었는데.이제는 그 모든 게 다시는 들춰선 안 될 과거가 돼버린 것 같았다.해외에 있던 시간 동안 송문수는 부단히 하지수를 잊으려 애쓰고 있었다.물론 정말 잊었는지는 아무도 모르지만.하지만 하지수와 송문수가 반년 동안 연락을 하지 않은 것만은 사실이었다.부모님과 영상통화를 할 때도 같은 집에 살던 하지수는 한 번도 얼굴을 비추지 않았다.그저 우연히 한 번, 그녀의 뒷모습이 화면에 스친 게 전부였다.몸을 뒤척이던 송문수는 내일의 백일잔치에 대해 생각했다.내일 가면 친구들이 무조건 술을 권할 텐데, 오랫동안 술을 마시지 않은 탓에 송문수는 지금 자신의 주량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그래도 푹 쉬면 조금은 낫겠지 싶어 그대로 잠을 청한 송문수는 이튿날 아침이 돼서야 눈을 떴다.언제부턴지 부모님처럼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습관이 몸에 배어버린 탓에 송문수는 이젠 밤을 새우는 게 오히려 힘겨웠다.그렇게 여유롭게 준비를 마친 그는 한 번 더 깔끔하게 옷매무새를 정돈하고는 선물을 한 아름 안고 집을 나섰다.너무 이르지도 않고 너무 늦지도 않은 딱 적당한 시각에 집을 나선 그는 문득 옛날 자신의 모습이 떠올라 웃음을 지었다.예전에는 어쩜 그리 특이하게 살아왔는지, 참으로 유치했던 것 같다.해외에서 반년 동안 혼자 살아서
“보름 넘게 준비한 건데 서두르는 건 아니지.”자신의 가족과 친구들이 있는 고향을 떠나는 일인데도 송문수는 참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갔다가 언제 와?”“그건 몰라. 상황 봐서 잘 되면 빨리 오는 거고 잘 안되면 못 오는 거지.”어깨를 으쓱이며 말하는 송문수에 그의 결심이 바뀔 리 없다는 걸 알아챈 송승우는 그만 입을 다물고 하지수의 손을 맞잡았다.무의식중에 눈물을 흘리던 하지수는 손에서 느껴지는 온기에 빠르게 표정을 감췄다.“가자.”그리고는 송승우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오늘 그녀는 송문수와 단 한마디도 나누지 않았다.마지막 작별인사도 전하지 않은 채 그렇게 헤어졌다.하지수의 몸에 감히 시선을 두지 못하던 송문수도 그녀가 송승우와 함께 차에 타서야 차창 너머로 비치는 그 뒷모습을 어렴풋이 볼 수 있었다.그는 한참 동안 자신에게서 멀어져가는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었다.사실 캐나다도 송문수가 직접 갈 필요는 없었다.회사에 유능한 사람은 널리고 널렸으니 아무에게나 CEO라는 직급을 쥐어 보내면 될 일이었지만 송문수는 본인이 가겠다고 자처하고 나선 것이다.여기서 다정하게 지내는 둘을 보고 있는 게 더 가슴 아플 것 같아서, 눈에 보이지 않으면 조금은 낫지 않을까 싶어서.손 하나 잡았다고 이렇게 가슴이 미어질 것 같은데 이런 모습을 계속 보는 건 정말 감당하지 못할 것 같아서 그는 이곳을 떠나기로 한 것이다....송문수는 캐나다에 도착해서야 육현경과 소이연을 비롯한 친구들에게 자신의 출국 소식을 알렸다.그리고 언제 돌아갈지는 모른다는 말까지 남기자 다들 깜짝 놀랐지만 별말은 하지 않고 몸 잘 챙기라는 소리들뿐이었다.그리고 시간 되면 놀러 오라는 얘기들로 대화가 마무리되었는데 역시나 예수진은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그녀는 굳이 송문수에게 따로 문자까지 보내며 물었다.[너 진짜 어쩌려고 그래? 이렇게 가겠다고? 다 버리고? 송문수, 너 언제부터 이렇게 나약해졌니? 내가 너였으면 당장이라도 송승우랑 싸웠어!][어차피 못 이
둘의 이혼은 아주 빠르게 진행되었고 두 사람은 각각 손에 이혼 증명서를 들고 법원에서 나왔다.“이제 끝난 거지?”“네.”하지수에게 건네받은 이혼 증명서를 들춰보던 송승우는 안에 적힌 내용을 다 확인한 후에야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혹시라도 돌발상황이 생길까 봐 따라온 건데 그런 걱정이 무색하게도 두 사람의 이혼은 순조롭게 진행됐다.송문수는 하지수를 보고서도 한마디도 하지 않고 그저 절차대로 서류만 제출했다.아무 감정도 없는 것 같은 두 사람의 모습에 송승우는 감정이란 게 저렇게 쉽게 사라질 수도 있나 싶었다.둘 사이에 다른 일이 있었던 건 아닐까 궁금하기도 했지만 어차피 이혼만 하면 그만이었기에 송승우는 다른 건 묻지 않았다.이제 두 사람이 이혼했으니 송승우는 저와 하지수도 떳떳해진 것 같았다.그리고 그는 송문수만 연락을 끊는다면 하지수를 다시 자기 여자로 만들 자신이 있었다.그래서 법원에서 나오자마자 송승우가 먼저 송문수를 불러세웠다.“시간 되면 집에 와서 밥이라도 먹어. 엄마 아빠가 전화해도 안 오던데, 많이 바쁜 거야?”“응.”“바쁘다고 가족들도 다 내팽개치는 건 아니지. 워라벨도 신경 써야지.”어른스러운 말투로 나무라듯 말하는 송승우를 송문수는 쳐다보지도 않았다.서울에서 일할 때 1년이 넘도록 안 오던 게 누군데.부모님이 굳이 송승우를 부르지 않은 건 그의 일에 방해가 될까 봐서였다.무튼 송승우는 그런 사람이었다. 자신이 하는 일은 아주 중요한 일이고 다른 사람들의 일은 언제든지 시간을 뺄 수 있는 여유 적적한 일이라 여기는 사람.“언제 시간 되는지 알려주면 도우미들 시켜서 너 좋아하는 거...”“나 해외에 잠깐 나가봐야 해.”“뭐라고?”송문수가 송승우의 지루한 말을 끊으며 대답하자 송승우는 당황하며 물었다.“엄마 아빠가 말 안 했어?”“무슨 말이야 그게?”금시초문이었던 송승우는 하지수를 쳐다보았지만 그녀의 반응을 보니 그녀 역시 처음 듣는 말인 것 같았다.“우리 회사 전기차 해외 매출이 자꾸 오르니까 전
그런데 그때, 협탁에 놓인 물과 알약 한 알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그 옆에 나란히 놓여있는 쪽지에는 “단기 피임약”이라는 말도 적혀있었다.그 약과 물을 번갈아 보던 하지수는 피가 차게 식는다는 게 뭔지 그제야 알 것 같았다.너무나도 명확한 송문수의 의사에 하지수는 가슴이 아려왔다.성인 남녀 둘이 충동적으로 서로를 원해서 가졌던 하룻밤이니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을 것이고 아무런 미련도 없다는 걸 이렇게 약으로 알려주다니.알약을 집어 든 하지수는 참으로 처량하게 웃어 보였다....그렇게 점심이 다돼서야 하지수는 별장으로 돌아갔다.핸드폰 배터리가 다 된 탓에 그녀는 송승우가 몇 통의 전화를 했는지도 모른 채 별장 안으로 들어섰는데 송승우는 아니나 다를까 어두운 얼굴로 이제야 들어오는 그녀를 바라보았다.그와 달리 허영지와 송기명은 살갑게 하지수를 걱정해주었다.“지수야, 어제 어디 갔었어? 전화는 왜 꺼놓고. 수진이한테 전화했는데 네가 문수랑 같이 갔다고 해서 문수한테 연락해보니까 문수는 또 너랑 같이 있는 거 아니라고 그러던데. 대체 어디 있었던 거야? 어디 다친 데는 없지?”“없어요. 어제 술을 좀 많이 마셔서 문수 씨 집에서 잔 것뿐이에요.”송문수 집에서 잤다는 하지수의 말에 송승우는 더는 못 참겠는지 언성을 높였다.“하지수, 너 나랑 한 약속 잊었어? 네가 어떻게 거기서 잠을 자!”“내가 무슨 약속을 했는데요?”송승우는 아무리 화가 났어도 저 질문에만큼은 답을 할 수 없었다.가스라이팅으로 어렵게 얻어낸 기회라는 걸 다른 사람한테는 알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나 문수 씨랑 아직 이혼 안 했어요. 그러니까 아직은 뭘 하든 합법적이란 소리죠.”“하지만...”“이혼하고 나서 얘기해요. 나 피곤해서 먼저 올라 가볼 게요.”몸도 마음도 다 힘들었던 하지수는 송승우를 화를 살필 겨를이 없었기에 그대로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그렇게 침대에 누워 천장을 보고 있으니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또르륵 흘러내렸다.몸을 뒤척이며 이불을 목 끝까지 끌
“너 내일 후회할 거야.”이런 하지수를 앞에 두고 참는 건 송문수에게도 곤욕이었다.온몸이 떨릴 정도로 힘을 주고 있는 것보다 자신의 마음을 억누르는 게 더 힘들었다.“후회 안 해.”“딱 하나 후회되는 게 있다면 내가 이 나이 먹도록 한번 밖에 못 해봤다는 거야. 그리고 그 한 번도 진짜 별로였어.”“뭐?”아까부터 한번을 강조하는 하지수에 송문수는 의아하다는 듯 되물었다.“그 한 번도 다 너한테 맞춘 거였잖아.”고작 한 번이라니, 그럴 리가.그런데 또 곱씹어 보니 둘이 함께 잔 건 한 번뿐인 것 같긴 했다.하지만 송승우와 그렇게 오래도록 사귀면서 송승우 방까지 들락날락하던 게 하지수인데 그런 그녀의 인생에서 저와 한 게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이번엔 내가 움직일 거야.”하지수는 잔뜩 풀린 눈으로 당차게 말했지만 그녀의 말은 전혀 위협적이지 않았다.“나 또 밀어내면 그땐 진짜 물어버릴 거야.”말을 마친 하지수는 송문수를 바닥에 눕힌 뒤 그 위에 올라탔다.“반항하지 마.”곧바로 하지수의 입술이 자신에게 다가왔지만 송문수는 정말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이 상황에 그녀를 밀어내면 하지수가 정말 울어버릴 것만 같아서.그녀의 우는 모습을 보는 건 언제나 가슴 아픈 일이었기에 송문수는 그냥 가만히 있는 걸 택했다.그렇게 내일 그녀의 원망도 다 받아낼 심산으로 송문수는 하지수의 움직임에 몸을 맡겼다.뜨거운 하룻밤을 보낸 뒤, 아침이 밝아오자 하지수는 몸을 뒤척였다.온몸에 차에 깔리기라도 한 듯 무거웠고 발가락 하나 움직이는 것도 힘들었던 그녀는 힘겹게 눈부터 떠보았다.익숙하고도 낯선 이곳은 그녀의 기억 속에 있던 송문수의 집이었다.그리고 눈을 떠 주위를 둘러보니 어제의 기억 조각들이 하나하나 수면 위로 올라오는 것 같았다.그것들이 마침내 온전한 하나가 되었을 때, 하지수는 얼굴을 붉혔다.본인도 몰랐던 자신의 대담한 모습을 그녀는 차마 깊게 생각할 수가 없었다.술이 깬 지금에 와서는 절대 못 할 일이
송문수는 자신마저도 취해버린 것 같았다.그래서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도 분간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마침내 입술을 뗀 하지수가 오랜만에 얌전해진 송문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자신의 키스에 몸을 맡기며 가만히 있기만 하는 그에 하지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문수 씨, 내가 하는 키스가 그렇게 별로야?”별로라니, 흥분해서 자칫하면 이성이 끊길뻔했는데.여기서 입을 열면 더 이상은 참지 못할 것 같아 송문수는 이번에도 그녀의 질문에 답을 하지 않았다.“어디가 별론지 얘기해주면 내가 고칠게, 응?”송문수는 아까부터 마른침만 삼키고 있었다.부단히도 움직이는 그의 울대가 그의 초조함을 대변하고 있었다.하지수 앞에서만큼은 속절없이 무너지는 송문수라 하지수가 한마디만 더 하면 그는 정말 무너져내릴 것만 같았다.“지수...”그래서 그만하라고 말하려 하는데 하지수가 본인의 손가락을 송문수의 입에 가져다 댔다.자신의 한계가 어디까진 지 아는 송문수는 지금 이마에 핏줄이 도드라질 정도로 힘을 주며 간신히 참고 있었다.이대로 가면 정말 무슨 일을 저지를 것만 같은데, 그걸 다 알면서도 그는 하지수를 밀어낼 수가 없었다.그런데 하지수는 점점 과감해지는 건지 이젠 하다 하다 손까지 집어넣어 송문수의 몸 곳곳을 어루만지고 있었다.그녀의 손길이 지나간 곳이면 그게 어디든 불에 덴 듯 뜨거워 났다.송문수 역시 술을 마신 몸이라 버티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그래서 그는 자신이 느슨해져서 이 상황을 즐기는 일이 없게 온몸에 힘을 꽉 주고 있었다.하지 마 하지수는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점점 더 깊은 곳까지 손을 움직여왔다.“아!”그러다 결국 송문수에게 손이 잡혀버린 그녀는 울망울망한 눈으로 송문수를 올려다봤다.자칫하면 그곳까지 갈 수도 있었는데 뭐가 아쉬워서 저런 표정을 짓는지.송문수는 심호흡으로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말했다.“그만해 하지수.”“왜?”“별장에 데려다줄게.”저 순진무구한 눈을 보고 있으면 송문수도 빨려 들어갈
술에 취한 하지수의 고집을 당해낼 수 없었던 송문수는 결국 그녀를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들어갔다.밤늦은 시간에 별장에 들어가면 다른 가족들을 깨울 수도 있으니 집에서 잠만 재운다는 핑계를 대가며 말이다.송문수가 하지수를 침대에 눕히고 자리를 뜨려 하자 하지수가 그의 손을 꽉 잡으며 말했다.“가지 마.”손끝에서 느껴지는 하지수의 온기에 송문수의 심장박동이 빨라지기 시작했다.“하지수, 잘 봐. 나 송문수야.”“알아, 네가 송문수인 거. 나 버린 무책임한 놈이잖아 너!”풀린 눈으로 저를 쳐다보며 말하는 하지수에 송문수는 입술을 말아 물었다.술을 마신 하지수는 송문수가 감히 컨트롤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왜 날 송승우한테 넘긴 거야? 내가 물건이야? 네가 뭔데 날 송승우한테 준다 만다냐고!”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하지수는 침대에 올라 선 채 송문수를 내려다보며 소리쳤다.“서 있지 말고 일단 앉아, 그러다가 넘어져.”“안 넘어져.”하지수는 송문수의 말을 듣지도 않고 계속 질문만 퍼부었다.“왜 날 밀어내는 건데! 내가 어디가 별로야? 몸매가 별로야 아니면 내가 못생겼어? 뭘 그렇게 일일이 다 따지고 들어? 넌 보는 눈이 그렇게 높아?”“일단 누워.”“싫어.”송문수가 그녀를 잡아주려고 손을 뻗으면 하지수는 곧장 몸을 돌려 피하곤 했다.그렇게 휘청대는 하지수를 보는 게 송문수는 조마조마하기만 했다.“내 말에 대답부터 해. 왜 날 싫어하는 거야?”“난 너 싫어한다고 안 했어.”그의 대답에 송문수를 향해 손가락질하던 하지수가 금세 눈시울을 붉혔다.“넌 그냥 내가 싫은 거잖아! 나 말고 밖에 있는 그 못된 여자들을 더 좋아하는 거잖아. 나도 그 여자들처럼 변하면 나 좋아해 줄 거야?”“그런 거 아니야.”“변명하지마! 넌 그냥 몸매 좋고 능숙한 그런 여자들만 좋아하는 거잖아. 내가 모를 줄 알아?”뭐가 그렇게 서러운지 혼자 화를 내는 하지수가 송문수는 어이없기만 했다.술을 마신 하지수는 아예 다른 사람의 말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