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이 카메라 앞에서 연기를 할 리가 없다.그의 신분 지위 나이를 생각해보면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설명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하지만 이 순간 소이연을 향한 그의 애정 어린 눈빛은 전혀 숨김이 없었다. 이제 천제진이 소이연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고 한다면 그건 오히려 관심을 끌기 위한 말일 뿐이었다.“두 분 맞절 올리시겠습니다.” 사회자가 크게 외쳤다. 소이연과 육현경은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 짓고 눈에는 눈물이 맺혔다. 감동, 행복, 기쁨, 만족... 소이연은 이 순간의 감정을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그녀는 지금 이 순간이 바로 앞으로의 여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 사람은 동시에 허리를 숙였다. 서로의 머리가 맞닿았다. 현장에는 뜨거운 박수가 울려 퍼졌다. 감동적인 장면이 전혀 연출되지 않았음에도 단순히 서로를 향해 90도로 인사하는 순간이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다. 심지어 눈물이 가득 차올랐다. “이 사람들 두 번째 결혼식인데, 왜 이렇게 눈물이 나는 거지?” 예수진은 코를 훌쩍였다. 하지수의 눈가도 붉어졌다. 아름다운 사랑은 단순히 동경하게 할 뿐만 아니라 진정으로 사람을 감동하게 했다. “이 두 사람이 나중에라도 이혼하면 난 더는 사랑을 믿지 않을 거야.” 예수진이 목이 메어 말했다. 하지수는 웃으며 말했다.“그럼, 너와 계지원이 믿음직하지 않니?” “비교하자면 나는 소이연과 육현경을 더 믿어.” “계 감독이 들으면 마음이 아플 거야.” “어차피 지금 없잖아.” 예수진은 장난스럽게 웃으며 분위기를 풀었다. “하지만 다시 비교해 보면 너와 송문수는 더 못 믿겠어. ” 예수진은 하지수를 향해 말했다.하지수는 입을 다물었다. 좋은 분위기가 예수진 때문에 망가졌다. 송문수가 이쪽을 한번 바라보았다. 거리는 가깝지 않았지만 예수진의 목소리가 꽤 컸다. “너와 송문수는 빨리 깨끗이 정리하는 게 좋겠다.” 예수진은 진지하게 말했다. 하지수는 대
예수진은 스태프의 말을 들으며 황당했다.뭐라고 했더라? 신랑과 신부가 신혼여행을 떠났다고? 이렇게 많은 하객들을 남겨두고 말이야? 그리고 자기들에게 대신 손님들을 대접하라고?이 상황은 정말 역대급이다.“고생 많으십니다.”“네 분 이쪽으로 오세요. 이미 준비해 둔 술잔과 차가 있습니다.”스태프가 말했다.“...”...소이연과 육현경은 예식이 끝난 후 호텔을 바로 떠났다.소이연은 좀 당황했다. 그녀는 계속 육현경에게 이끌려 호텔 정문을 나왔다.문 앞에는 차가 대기 중이었다.육현경이 그녀의 차 문을 열어주며 복잡한 결혼 예복을 정리해 준 후 그녀를 차에 태웠다. 자신도 옆에 타더니 차는 그대로 출발했다.소이연은 차가 호텔을 멀어지는 걸 그저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지금 어디 가는 거야?”한참 후에야 소이연이 상황을 파악하고 물었다. 식사는 하지 않는 건가?이렇게 떠나버리면 저 많은 하객들은 어떻게 되는 거지?“신혼여행 가는 거야.”“뭐라고?”소이연이 육현경을 바라보았다.“신혼여행.” “지금? 이런 차림으로? 결혼식도 안 끝났는데 우리가 가버리겠다고?.”소이연은 믿기지 않았다. 육현경이 이렇게 충동적인 사람은 아닌데. 이런 일을 하면 생길 후폭풍을 생각이나 해봤을까?그녀는 상상이 가지 않았다.“걱정하지 마. 이미 너희 외할아버지께 미리 말씀드렸어.”“외할아버지께서 동의하셨어?”소이연은 놀랐다. 예절을 중시하는 천제진이 이렇게 비정상적인 일을 허락하다니.“동의하셨어.”육현경이 자랑스럽게 말했다.“도대체 뭐라고 말씀드린 거야?”“우리 결혼한 지 꽤 됐는데 아직 신혼을 제대로 못 즐겼다고 말씀드렸어.”“...”“너희 외할아버지께서도 남자라 이해하시더라고.”“...”“그리고 네 오빠한테도 얘기했어.”육현경이 말했다."천씨 가문 쪽 친척들은 네 오빠가 알아서 돌봐줄 테니 걱정 말고 신혼여행 다녀오라고 하셨어.”“혹시 오빠의 무슨 약점이라도 잡힌 거야?”소이연은 의심스러웠다.“아니야
육현경이 말했다.“지금은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 곳에서 너와 단둘이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을 뿐이야.”“민이도 두고 가겠다는 거야?”“부정하지 않겠어. 이제 민이는 매우 밝은 큰 방해물이 되어버렸어.”“너를 그렇게 우러러보는 아들인데.”그런데 이 사람 아들을 완전히 속여넘겼다.“나중에 크면 이해할 거야.”변명은 이미 다 준비된 것 같았다.“아무 걱정도 하지 말고 편안히 우리 둘만의 세상을 즐기자.”소이연은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이미 여기까지 준비한 육현경을 보며 소이연은 할 말이 없었다. 그냥 즐겨보자는 마음이었다. 다만 돌아가면 예수진에게 죽이려 들지도 몰라 걱정이 됐다....예수진은 진짜로 소이연과 육현경을 죽여버리고 싶었다. 손님이 80여 테이블이나 있었다.한 테이블씩 돌아다니며 술을 권하고 있었다. 술을 권하는 것뿐 아니라 신랑과 신부가 중간에 사라진 이유를 변명해 주는 일까지 해야 했다. 한 바퀴 돌며 술을 다 마시고 나니 예수진은 온몸이 완전히 지친 것 같았다.마침내 네 사람은 힘겹게 식탁에 앉았다. 계지원, 천우진과 심문헌은 이미 그곳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소이연에 있어 이들은 가장 중요한 친구들이었다. 천우진이 주최자로서 직접 이들을 대접하고 있었다.“진짜 죽을 것 같아. 몸이 거의 부서질 지경이야.” 예수진은 못 견디겠다는 듯이 말했다. “육현경과 소이연 그 둘 다신 돌아오지 않는 게 좋겠어. 정말로 이렇게 맘대로 떠나다니.”“둘이 겨우 다시 만났으니 결혼 후에 서로 일이 많아도 단둘이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는 건 이해할 만해.” 하지수가 위로하며 말했다. “알아. 하지만...”예수진는 말하다가 멈추었다. “그만 얘기하고 밥이나 먹자. 진짜 배고프고 힘들어 죽겠어. 술이나 좀 마셔야겠어.” “배고프고 피곤한데 술을 마신다고?” “술 마시면 피로도 풀리고 스트레스도 해소되잖아. 몰랐어?” 예수진이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맞은편에 앉아 있는 천우진을
예수진은 아침의 느낌을 떠올리며 여전히 약간 불편했다. 다행히 이때 맥주가 도착했다. 그녀는 맥주를 보고 아침의 불쾌함을 잊고 바로 일어나 맥주를 한 잔 마시려고 했다. 하지만 그녀가 잔을 들자마자 계지원이 갑자기 그녀의 잔을 가져갔다.“수진아, 너 이제 술 마시면 안 돼.”예수진은 멍하니 잠시 멈췄다가 곧바로 불만스럽게 물었다. “왜? 나 오늘 정말 힘들었는데 좀 쉬게 해주면 안 돼?” “네 몸 상태에 술이 맞지 않아.”“내 몸 상태가 왜? 걱정하지 마. 감기 안 걸렸어...” “너 임신한 것 같아.”계지원이 단호하게 말했다.예수진은 눈을 크게 떴다. 다른 사람들도 그녀를 바라보았다.“나... 그럴 리가? 우리... 그렇게 쉽게 되진 않잖아?”예수진은 흥분해서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지난달 생리는 며칠날에 시작했어?”계지원이 물었다.“지난달 10일쯤?”그녀는 가물가물했다.원래 생리 날짜를 잘 기억하지 않는 편이었다. 어차피 매달 오니까 구체적인 날짜는 신경 쓰지 않았다.“12일이었어.”계지원는 정확히 말했다.“그런 것 같아.”예수진은 살짝 당황했다. 계지원이 날짜를 이렇게 잘 기억하는 줄은 몰랐다.“그리고 오늘은 며칠이지?”“28일?”예수진은 휴대폰을 확인했다.맙소사!생리가 10일 이상 늦었는데 자신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들은 다른 사람들도 긴장하기 시작했다. 오늘 예수진의 이상한 행동을 생각하면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설마?”예수진은 여전히 믿기지 않았다.이번 달부터 피임을 안 하기 시작했을 뿐인데 이렇게 한 번에 성공할 줄이야?계지원이 그렇게 대단한가?사실 수진이가 하연을 가졌을 때는 더 놀라웠다.단 한 번에 성공했으니까.그녀는 어쩔 줄 몰라 하며 계지원를 바라보았다. “식사 후, 병원에 가서 검사해 보자.”계지원이 말했다.“만약 정말 임신이면 어쩌지?”예수진이 물었다.계지원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당연히 낳아야지.”“...” 그
올해 이미 서른을 넘었다. 서른이라니. 정말 청춘은 다 간 것 같다. “우리가 같아? 난 곧 애 둘 엄마가 되는데, 넌 아직 애가 어느 별에서 뭘 하고 있을지 모르잖아.”“...”예수진은 정말 하지수가 우울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걸까? 아무리 그래도 적당히 해야지.“이연을 봐봐. 우리랑 동갑인데 몇 년 지나면 시어머니가 될 수도 있겠지?”“그건 너무 과장 아니야.”하지수는 어이없어하며 반박했다. 육민이 겨우 십몇 살인데.“너 고령 임신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아?”예수진이 말했다. “나 아직 고령 임신은 아니잖아?” “계속 애 안 낳다 보면 결국 고령 임신 되는 거야.”“근데 애 낳고 싶다고 해서 바로 가질 수 있는 게 아니잖아.”“설마 송문수가 문제있는 거야?”예수진은 크게 말하며 송문수를 똑바로 쳐다봤다. 송문수는 옆에서 여유롭게 음식을 먹고 하도경, 천우진, 심문헌과 가끔 술잔을 기울이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그냥 혼자서 편안하게 즐기고 있는 모습이었다. 마치 예수진과 하지수의 대화에는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는 바로 옆에 앉아 있었지만 그들과 무관한 사람처럼 보였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송문수과 하도경이 연인 사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둘이 아주 가까이 앉아 있었다. 송문수는 일부러 하지수와 거리를 두려는 건가? 그때 예수진이 자신의 이름을 언급하자 그는 천천히 고개를 돌리며 입가에 능청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내가 어떤지 수진 씨가 더 잘 알지 않아?”“내가 뭘 안다고 그래? 내 명예 더럽히지 마.”예수진은 서둘러 말을 피했다. “내 말은 우리가 어릴 때부터 같이 자라왔고 연예계의 스타들이랑도 많이 일해봤잖아. 그녀들이 내 실력에 대해 말해준 적 없어?” “다 네가 그렇게 뻔뻔한 건 아니거든.”예수진은 짜증스럽게 말했다.그동안 송문수가 바람을 피운 것을 생각하면 하지수가 정말 안타깝다고 느꼈다. 자신이었으면 벌써 송문수와 여덟 번은 이혼했을
오찬 후, 예수진은 계지원에게 이끌려 병원에 갔다. 하지수는 연회장에서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사실 술을 꽤 많이 마셔 얼굴이 붉어졌고 조금 취했지만, 정신이 완전히 흐려진 건 아니었다.게다가 이연이 맡긴 일이니 당연히 소홀히 할 수 없었다. 그녀는 송문수를 보지 못했다. 그가 이런 모임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공식적인 모임일수록 그는 더 꺼렸다.그는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 먹고 마시고 노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었다. 하도경은 여전히 대기실에 남아 손님을 돕다가, 얼마 안 있어 자리를 떴다.천씨 가문 사람들이 힘을 많이 실어주고 있는 걸 보고, 그도 어느새 사라졌다.“지수야, 피곤하면 가서 좀 쉬어도 돼. 여기는 내가 맡을게.” 천우진이 손님들을 맞이하다 하지수를 발견하고는 걱정스레 말했다. “오늘 아침부터 계속 일하느라 많이 피곤할 텐데.”“괜찮아요.” 하지수는 고개를 저었다. “여기에는 이연의 장안시 친구나 친척들이 많아서 내가 잘 알고 있어요. 내가 접대할게요.”천우진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아무튼 피곤하면 언제든 쉬어.”“알겠어요.” 하지수는 환하게 웃었다. 천우진도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른 쪽으로 갔다.사실 하지수가 쉬고 싶지 않은 것도 피곤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다만 지난번 송문수과 같은 방을 사용했던 일이 생각났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같은 방일 것이다. 그녀는 송문수와 어떻게 지내야 할지 정말 모르겠다. 정말 예수진이 말한 것처럼 일찍 포기해야 할까...그녀는 손님들 사이로 걸어갔다.하도경과 송문수는 호텔 방에서 샤워를 마치고 내려와 다시 손님을 맞이하러 나왔다. 육현경이 책임을 회피했지만 친구로서 맡은 일은 무조건 끝내야 했다. 그 순간 하지수와 천우진이 함께 있는 모습을 보았다. 둘이 무슨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지 하지수는 천우진에게 달콤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송문수의 얼굴에 미묘한 변화가 나타났다. 하도경은
다만 너무 무뚝뚝한 점이 문제였다. 웃지 않을 때는 정말 사람을 압도하는 느낌을 주었다. 하지수는 옆에 있는 휴게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지금은 시간이 애매해서 호텔로 돌아가 잠을 잘 수 없었다. 혹시나 푹 잠들어버릴까 봐 염려되었다. 저녁에는 만찬이 또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수는 휴게실 소파에 기대어 시간을 보내려고 핸드폰을 꺼내 들었지만 보다 보니 그만 잠이 들어버렸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저녁 6시가 되어 있었다. 단순히 잠깐 눈을 감았던 것 같았는데 어느새 한 시간 넘게 지나버린 것이었다.하지수는 놀라 황급히 일어났고, 그 순간 자신의 몸 위에 담요가 덮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핸드폰도 옆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신기했다.누가 들어왔던 걸까? 소파에서 일어나 휴게실 문을 열자마자 천우진을 발견했다.“만찬이 시작돼서 너를 깨우러 가려던 참이었어.” 천우진이 말했다.“아, 네.”하지수가 급히 대답했다.“오늘 만찬이 끝나면 시간 보고 퇴장해도 돼. 다른 손님들은 내가 알아서 배려할게. 하루 종일 고생했으니 오늘 밤은 일찍 쉬어.” 천우진이 덧붙였다.“네.”하지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밤은 진짜로 더 이상 버티기 힘들었다. 그리고 이런 만찬 자리에서는 놀고 싶은 사람들은 밤늦게까지 계속 놀기도 했다.“선배 고마워요.”하지수가 진지하게 말했다.“내가 더 고맙지. 이연에게 너 같은 친구가 있어서 정말 든든해.”“내가 하고 싶은 말은...” “우진아, 이리 와보게.” 천제진이 그를 불렀다.천우진은 서둘러 대답하고는 하지수에게 자유롭게 하라고 말한 후 떠났다.“네, 가서 바쁘세요.” 하지수는 타인에게 폐를 끼치는 것을 가장 싫어하는 성격이었다. 사실 방금 그녀에게 담요를 덮어준 것에 대해 고맙다고 말하려던 참이었다. 아마 천우진이 해준 것일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그녀가 여기서 쉬고 있는 것을 알 리 없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이라면 굳이 이런 일을 하지 않
“너도 같이 갈래?”하도경이 송문수에게 물었다. 송문수는 그를 무시하고 오고 가는 손님들과 잔을 들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하도경은 어이없게 웃음을 지었다. 정말 잘 굴리네.얼마나 더 연기할 수 있는지 두고 보자. 하지수는 방에 돌아와 씻고 화장을 지운 후 호텔에서 준비한 편안한 가운으로 갈아입고 호텔의 고급스러운 침대에 누웠다. 분명히 피곤한데도 정작 잠이 오지 않았다. 오늘 밤 송문수는 어디서 머물게 될지 궁금했다. 호텔에 체크인할 때 숙박 정보를 확인해 보니 그들의 이름이 함께 등록되어 있었다. 그러니 같은 방에 머물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가 언제쯤 돌아올까? 하지수의 마음에는 잔잔한 떨림이 일었다. 결국 잠을 이루지 못하고 일어나 물 한 잔을 마신 후, 호텔의 통유리창 앞 의자에 앉아 서울의 아름다운 야경을 바라보았다. 역시나 나라의 중심 도시답게 네온사인이 반짝이며 눈부셨다. 하지수는 이 야경에 홀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휴대폰에서 카톡 알림이 울렸다. 그녀는 화면을 확인하며 잠시 멈췄다. 놀랍게도 송승우가 그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지수야, 서울에 있단 소식 들었어.” “네. 이연 언니가 결혼해서 서울에 왔어요.” “언제 돌아가?”“아마 내일쯤 돌아갈 것 같아요. 오늘은 너무 늦었고 이연이랑 육현경은 자기들만 신혼여행 떠나고 우리한테 잔치 뒷정리를 맡기고 갔어요.”하지수는 송승우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송승우는 웃는 이모티콘을 몇 개 보냈다.“나도 뉴스 봤어. 참 신기하더라.”“그나저나 내일 돌아가기 전에 내가 내일 시간이 좀 나니? 여기까지 온 김에 서울 구경할래? ” 송승우는 현재 서울에 발령받아 일하고 있고 1년이 넘게 여기서 생활하고 있었다. 이전에는 장안시에서 근무했지만 탁월한 능력 덕분에 본부로 전근되어 지금은 연구소에서 핵심 연구원으로 활약 중이다. 송씨 가문의 부모님은 항상 송승우를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국가에 공헌하는 사람이니
“나는 지금 하연이 임신했을 때랑은 완전 달라요.”“성별이 다르면 입덧도 다르다던데.”소이연은 현재 임신 중인 예수진과 아이에 관한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그래요?”“가서 검사 안 해봤어요?”“당연히 검사해봤죠.”성격이 급했던 예수진은 진작에 아이의 성별이 궁금해 병원을 찾아갔었다.“그런데 매번 갈 때마다 돌려 말하면서 나한테는 어떻게 생겼는지도 안 보여줘요. 답답해 죽겠다니까요 정말.”“하하하.”그럴 때마다 예수진의 표정이 얼마나 웃길지 상상하던 소이연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아들을 원해요 아니면 딸이 더 좋아요?”“당연히 아들이죠.”돌려 말하는 것 없이 직설적으로 대답하는 예수진에 소이연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아들이 더 중요하다 그런 거예요 설마?”“제가요? 그 반대죠 완전히. 지원 씨가 딸을 얼마나 귀하게 여기는지 매일 둘이 꼭 붙어 있는다니까요. 그거 볼 때마다 화가 나서 나도 아들 낳아서 계지원 열 받게 하려고요.”역시나 일반인들과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예수진이 웃겨 소이연은 이번에도 웃음을 흘렸다.“아들인지 딸인지는 모르겠는데 자꾸만 딸 같아요.”“임산부의 촉은 보통 틀리지 않죠.”“또 아빠한테만 달려가겠네요.”“전생에 얼마나 잘 놀았으면 딸을 이렇게 줄줄이 낳아요. 다 키워야겠네.”“무슨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해요.”한마디에 한 번씩 한숨을 쉬며 말하는 예수진에 소이연과 하지수 모두 웃음을 참지 못하고 있었다.“언니는 배 속의 아기가 남자 같아요 여자 같아요? 아들이 좋아요 딸이 좋아요?”“난 다 상관없긴 한데 솔직히 딸이 갖고 싶어요.”“딸은 안돼요. 딸 낳으면 오빠가 계지원보다 더 심하면 심했지 절대 덜하진 않을걸요. 오빠랑 언니 둘 다 미모가 이렇게나 출중한데 딸 낳으면 얼마나 이쁘겠어요. 오빠가 죽고 못 살죠 아주.”“...”소이연은 예수진의 말이 그다지 신빙성은 없어도 또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았다.“어쨌든 아들을 낳든 딸을 낳든 그건 우리가 정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그
“축하드려요!”제 아내가 또 남사스러운 말을 할까 걱정됐던 계지원은 발 빠르게 축하 인사를 전했다.“그래요, 정말 축하해요!”곧이어 다들 축하하자 하도경은 참지 못하고 육현경을 놀려주었다.“육현경, 아직 안 죽었다? 여행 간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임신이야. 문수보다 낫네, 문수는 지수 씨랑 저렇게 오래됐어도 아무 소식도 없는데. 너 진짜 어디 문제 있는 건 아니지?”“입 다물어.”“내 실력 의심하는 거야 지금?”“뭐래.”자신을 무시하는 듯한 하도경의 발언에 송문수는 어이없다는 듯 화를 냈다.“솔로인 너는 나 비웃을 자격 없거든. 나는 결혼이라도 했지 너는 있는 게 뭐야?”“뭐?!”“우리 중에 너만 솔로야. 분발해 하도경.”이미 말문이 막힌 하도경을 향해 송문수가 한마디 더 하자 하도경은 욕설을 내뱉으며 말했다.“닥치고 마셔, 오늘 내가 너 취해서 쓰러질 때까지 먹일 거야.”“누가 쓰러질지는 두고 봐야지.”서른 살 넘게 먹은 사람 둘이 아이처럼 싸우는 것도 그들의 일상인지라 그들을 신경 쓰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그때 진정한 예수진이 소이연에게 조심스레 물었다.“언니, 오빠가 그거 안 하고 했어요?”“네?”“아니, 그렇게 빨리 애 갖고 싶어 하진 않을 것 같았는데. 아직 제대로 못 누렸잖아요.”예수진이 알고 있는 육현경은 소이연과의 둘만의 시간을 한 일 년은 더 누려야 직성이 풀릴 사람이었기에 아까도 그녀는 소이연이 임신했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었다.두세 달밖에 안 됐는데 덜컥 임신을 해버리면 육현경은 만족을 못 할 게 분명한데.한편 이런 질문을 받은 소이연은 얼굴이 빨개져서는 둘의 신혼여행을 되돌아봤다.사실 신혼여행을 갔을 때부터 소이연은 아무리 급해도 안전조치는 꼭 하는 육현경에 의아해하고 있었다.둘은 합법적인 부부이니 아이가 생긴다 해도 아무런 문제 될 것도 없고 민이도 남동생이든 여동생이든 상관없이 동생을 원한다고 했었는데 왜 굳이 그걸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었다.그렇게 궁금해하다가 어느 날 참지 못하
“둘이 아무 소리도 없더니 할 건 다하네.”당연히 가장 먼저 입을 연 건 예수진이었다.“우리 지수를 그렇게 적극적인 여자로 만들고 송문수 대단하다.”제 친구 앞이라고 빼지 않는 송문수는 고개를 쳐들며 말했다.“내가 매력이 좀 넘치잖아.”“적당히 해.”그 모습에 예수진이 어이없다는 듯 말하자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언니랑 지수는 왜 술 안 마셔?”워낙 시끌벅적한 걸 좋아하던 예수진은 술도 아주 좋아하는데 본인은 임신 중이라 마실 수가 없으니 자꾸만 주변 사람들을 부추기고 있었다.“이연이는 안돼.”“지수도 오늘은 안 돼.”제 말이 끝나자마자 들려오는 송문수와 육현경의 대답에 그녀는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왜? 두 사람도 임신했어 설마?”“아니야.”얼토당토않은 말에 하지수는 다급히 부인했다.“그런데 왜 못 마셔?”“생리니까 못 마시지.”“송문수, 언제 이렇게 다정해졌냐? 지수 생리인 것도 다 알고 기특하네 좀.”예수진의 장난에도 기분이 좋았던 송문수는 아주 환하게 웃어 보였다.“이연 언니는 왜 못 마셔?”예수진은 이번에는 못마땅한 눈빛으로 육현경을 보며 물었다.“아무튼 안돼.”“언니도 생리야?”그렇게 우연이 겹칠 리가 없는데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미간을 찌푸리는 예수진에 소이연은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히고는 입술만 물어뜯고 있었다.“뭘 자꾸 그렇게 물어.”“언니 어디 아파요? 나 놀래키지 말고 말 좀 해봐요.”육현경까지 말을 아끼니 깜짝 놀란 예수진은 잔뜩 긴장한 채로 물었지만 돌아오는 건 육현경의 핀잔이었다.“넌 매일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이연이가 왜 아파!”“그럼 왜 못 마시냐고.”예수진의 질문에 입술을 말아 물며 소이연을 보는 육현경의 눈에서는 꿀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예수진은 소이연을 신 모시듯 떠받드는 제 오빠를 보며 정말 한 사람을 바꾸는 건 사랑밖에 없다는 걸 다시 한번 실감하였다.“도대체 뭘 숨기는 거야?”예수진이 끝까지 캐묻자 소이연이 할 수 없이 숨을 한번 들이마시며 답했다.“나 임신했
사실 하지수는 늘 송승우를 어떤 사람이라고 정의 내려야 할지 몰랐었다.우수하지 않다고 하기엔 국가사업에 공헌할 정도로 대단한 두뇌를 지니고 있었지만 또 그렇다고 아무도 비비지 못할 정도로 대단한 건 아니었다.그런데 송승우는 늘 고고한 척, 자신이 다른 사람의 우위에 있는 것처럼 행동했다.CEO들은 몸에서 돈 냄새가 난다면서 싫어했던 그는 어릴 때부터 부모님께 회사를 물려받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해왔었다.그는 다른 사람과 교류할 때마다 무의식인지 아니면 의도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늘 자신의 박학다식함을 뽐내며 자신의 우수함을 드러내려 했다.이제 보니 가식적이라는 말이 그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것 같다.하도 가식적이어서 하지수는 이제 그가 짜증 날 지경이었다.“어릴 때 게임 할 때도 송승우는 옆에 앉아서 코드나 쳤고 우리가 예능 볼 때는 그런 조작된 건 안 본다면서 머리 나쁜 사람들만 좋아하는 거라고 비웃었어. 우리가 디저트를 먹으면 지능 떨어진다고 무시했고...”예수진은 송승우 때문에 힘들었던 지난날을 떠올리며 쉴 새 없이 말했다.하지수와 다르게 정말 힘들어했던 그녀는 송승우가 책을 너무 많이 읽어서 미친 건가 하는 생각도 잠시 했었다.“됐어, 그 사람 얘기 그만하자.”“너랑 문수만 잘 지내면 됐지, 송승우는 과거일 뿐이야.”“응.”이제 송승우한테는 조금의 감정도 남지 않은 하지수는 예수진의 말에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그때 도우미 하나가 와서 식사 준비가 끝났다고 알려주자 그들은 다 같이 테이블로 향했다.거기에는 하연이와 민이도 있었는데 민이는 육현경을 쏙 빼닮아 겉은 차가워 보였지만 사실은 동생을 아주 잘 챙겨주는 아이였다.물론 그의 다정함은 자신이 인정한 사람 한해서만이었다.민이가 하연이를 챙겨주는 모습을 보던 예수진은 감탄하며 말했다.“우리 조카가 결혼할 생각만 하면 난 벌써부터 가슴이 아파.”“제수씨도 아무 말 없는데 네가 왜 가슴이 아파.”장난을 치는 송문수의 말을 예수진 바로 맞받아쳤다.“언니는 당연히 괜찮겠지, 며느
예수진의 말에 정곡을 찔린 듯 소이연은 얼굴을 붉혔다.“거봐요, 오빠는 내가 제일 잘 안다니까. 그냥 겉으로만 멀쩡해 보이는 거예요.”소이연의 반응에 예수진은 득의양양해 하며 말을 이어나갔다.“겉으로는 차가워 보여도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아주 대범해지는 사람이거든요. 언니는 이제 오빠의 넘치는 사랑을 받을 일만 남았네요, 물론 침대 위에서요.”“그만 해요 수진 씨.”신나서 얘기하는 예수진에 못 말린다는 듯 웃던 소이연이 그녀를 타박하듯 말했다.“태교하는 사람이 자꾸 그런 생각 하면 어떡해요?”“아직은 그냥 핏덩이라서 아무것도 몰라요.”“...”“지수야, 너는 요즘 뭐 하고 지내? 평소에 문자 보내도 답장 늦게 하던데.”말을 하던 예수진은 임신한 뒤로 아무것도 못 하게 하는 계지원 때문에 요즘 부쩍 재미없어진 일상을 떠올리고는 서러운 듯 입술을 삐죽였다.“그냥 회사일 처리하고 있었지. 얼마 전에 경영에 문제가 생겨서 회사 부도날 뻔했거든. 그래서 문수 씨랑 일 처리만 했어.”“송문수?”“걔가 회사 일을 한다고?”송문수가 일한다는 소리에 예수진은 깜짝 놀라며 되물었다.“그래, 안 믿길 거 아는데 진짜니까 그런 눈으로 보지 마. 문수 씨 정말 많이 변했어, 더 이상은 맨날 놀러만 다니던 망나니 아니야. 이번에도 문수 씨 덕분에 송씨 집안이 다시 일어서게 된 거야. 그리고 이연 언니랑 현경 씨도 많이 도와줬고.”하지수는 곧바로 소이연을 보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정말 고마워요 언니, 언니랑 형부 도움 아니었으면 저희 집안은 진작에 끝났을 거예요.”“아니에요, 별로 힘든 일도 아니었는데요 뭘.”“현경이가 안 그래도 문수 씨 많이 변했다는 말 하더라고요. 밤에도 전화해서 기획서 어떻냐고 물어볼 정도로 열정적이래요.”“진짜 그렇게나 많이 변했다고요?”소이연까지 긍정하자 예수진은 눈을 크게 뜨며 하지수를 바라봤다.“네가 바꾼 거야?”“내가 그 정도는 아니야. 그냥 나이가 점점 드니까 본인이 알아서 바뀐 거겠지.”“송문수가 바뀐 뒤
그래서 하지수는 이를 악문 채로 따져 물었다.“문수 씨, 당신 형이 올린 인스타 봤어?”자신이 송승우를 이긴 것 같아 기분이 좋아졌었는데 갑작스레 인스타를 언급하는 하지수에 송문수는 자연스레 핸들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안 그래도 거슬렸는데 하지수의 저 질문은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격이었다.“그걸 봤는데도 아무렇지도 않아?”“응, 괜찮아. 그냥 인스타일 뿐인데 뭘 신경 써.”자신이 송승우를 선택할까 봐 두려워하는 모습이 조금도 보이지 않자 하지수는 조금 실망했지만 그래도 괜찮은 척 말했다.“신경 안 쓴다니 다행이지만 그래도 당신 아내로서 해명할게. 나랑 송승우 씨는 아무 사이도 아니야.”아무 사이도 아니라니, 둘이 얼마나 뜨거운 사랑을 나눈 사이였는지 온 집안사람들이 다 아는데 저런 말을 하는 하지수가 어이없었지만 송문수 본인도 뭐 그다지 깨끗한 사람은 아니었기에 그는 자신도 하지 못한 것을 하지수에게 요구할 자격은 없다 생각해서 입을 다물었다.하지수는 송승우를 진짜 사랑한 거였지만 자신은 그저 다른 여자들을 갖고 논 것이기에 더 따질 권리가 없는 것 같았다.“오늘 어머니랑 같이 쇼핑가기로 했는데 송승우 씨가 먼저 따라가겠다고 한 건 맞아. 나랑 어머니도 거절하기 힘들어서 같이 오긴 했는데 나는 송승우 씨랑은 말도 안 섞었어. 거리도 엄청 많이 뒀고 못 믿겠으면 어머니한테 물어봐도 돼.”하지수의 해명을 듣고 있던 송문수는 오로지 저를 위해 저렇게 자세히 상황설명을 해주는 건가 싶어 또 가슴이 벌렁거리기 시작했다.그녀의 작은 행동에 또 흥분한 송문수는 운전에 집중할 수가 없어 애써 심호흡을 하며 정면을 주시했다.“내가 선택한 사람은 당신이니까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당신한테 진심일 거야. 당신한테 미안한 짓은 절대 안 해.”하지수의 약속에도 송문수는 꿈쩍도 안 했지만 하지수는 둘 사이의 작은 오해가 큰 불화로 번지지 않게 하려고 아무런 반응이 없어도 상황설명을 마쳤다.제 할 일을 마친 하지수는 안광이 사라진 눈으로 차 시트에 기대 있었
송문수는 애초에 쉽게 만족하는 사람이었기에 하지수가 조금만 잘해주면 한동안 기뻐했다.둘의 웃는 모습을 지켜보던 허영지도 흐뭇하게 그들을 지켜보며 이렇게 사이좋은 둘이라면 걱정할 필요도 없을 것 같았다.“지수 데리고 밥 먹으러 가려고 온 거라고 했지?”“네.”“옷도 다 입어봤으니까 얼른 가봐.”데이트하러 가라는 말만 안 했지 사실 허영지는 그 둘에게 오붓한 공간을 마련해주고 싶었기에 서둘러 둘의 등을 떠밀었다.“어머니는요, 저녁 어떻게 하시려고요?”“승우 집에 있잖니. 승우랑 같이 쇼핑 좀 더 하면서 네 시아버지 옷 좀 더 보려고. 내 걱정 말고 얼른 가봐.”송승우는 당연히 내키지 않았지만 어머니가 말도 다 뱉은 마당에 거절하기도 쉽지 않아 그저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그럼 차 키는 두고 갈게요.”“저랑 문수 씨는 이만 옷 갈아입을게요.”옷을 갈아입은 둘은 손을 잡고 쇼핑몰 밖으로 나갔고 그 둘의 뒷모습을 노려보던 송승우는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승우야.”송승우는 갑자기 들리는 어머니의 부름에 다급히 표정을 감추었지만 허영지는 이미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안다는 듯이 말했다.“그때 너랑 지수 사이 우리도 다 알아. 하지만 너희 둘은 이미 끝난 사이고 지수랑 문수가 저렇게 잘 지내니까 이제는 너도 형으로서 축복해줘야 하지 않겠니?”송승우도 물론 어머니의 의도를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그 옛날 하지수가 좋아하던 건 분명 자신이었는데, 그때의 제삼자인 송문수가 하지수를 채가는 게 송승우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말을 마친 허영지는 이만 옷을 갈아입으러 피팅룸으로 들어갔다.송승우도 성인이었기에 조언도 적당히 해야지 선을 넘으면 그냥 가족 사이의 불화만 생길 것이기에 허영지도 여기서 멈춘 것이었다.하지만 어릴 때부터 송문수에게 져본 적이 없던 송승우는 이번에도 제 여자를 그에게 내어주고 싶지 않아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누르며 주먹을 꽉 쥐었다....송문수의 차에 앉은 하지수는 처음으로 저를 데리러 온 송문수에 못내 기분이 좋
하지만 원체 쇼핑을 싫어하는 송문수의 성격을 알고 있던 하지수는 그의 냉담함에 실망하지 않았다.이렇게 앉아서 옷을 갈아입는 저를 봐주는 것도 그의 노력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문수 왔구나.”허영지의 부름에 송문수가 짤막하게 답했다.“좀 있다 모임 있어서 지수 데리러 왔어요.”“그래, 젊은 사람들이야 그런 모임에 나가면 좋지.”전에는 송문수가 밖에 나가겠다고 하면 거절은 안 해도 표정은 굳어지던 허영지가 너그럽게 대꾸하는 것도 의외였다.“아직 이르니 너도 정장 한번 입어보고 가.”“바로 가야 되는데 갈아입기 귀찮아요.”“얼른 갈아입어.”“엄마, 나 온종일 일해서...”“지수가 너 준다고 한참 고른 건데 와이프 위해서 그 정도도 못 해줘?”남녀 사이에 있어서는 목석같기만 한 제 아들을 보며 허영지가 미간을 찌푸렸다.엄마의 말을 들은 송문수가 하지수를 바라보자 하지수는 다급히 말했다.“잘 어울릴 것 같아서 고르긴 했는데 갈아입기 싫으면 그냥 보기만 해. 맘에 들면 당신 사이즈로 맞출게.”“입어볼게, 맘에 안 들 수도 있으니까.”송문수가 하도 담담하게 대답해서 떨리는 그의 손가락을 주의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사실 그는 하지수가 자신을 위해 옷을 골라줬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아 놀라는 중이었다.기쁜 마음 반 당황스러움 반으로 옷을 갈아입은 송문수가 나오자 직원들은 일제히 그를 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너무 잘 어울리세요, 손님 더 멋있어 보이는 것 같아요.”“진짜요?”송문수가 직원들의 말을 반신반의하자 하지수가 나서며 말했다.“진짜야. 진짜 너무 멋있다.”“그래?”하지수의 확신에 찬 대답을 들은 송문수는 흘러나오는 웃음을 감추지 못하고 득의양양해 하며 대꾸했다.“다 내가 잘 생겨서 그런 거야. 옷이랑은 큰 상관 없지.”이렇게 가끔 자아도취 하는 송문수를 보며 하지수는 웃음을 터뜨리더니 그에게로 다가가 넥타이를 정리해주었다.그 둘의 다정한 모습을 보던 주위 사람들은 다들 흐뭇한 미소를 지었지만 송승우만은 아주 언짢아하
생일파티에 관한 일을 다 의논한 뒤 하지수는 허영지와 함께 그녀의 드레스를 맞추러 갔는데 하지수의 드레스도 같이 맞추자는 시어머니의 권유에 그녀도 옷을 입으로 들어가게 되었다.그래서 핸드폰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것인데 하필 그때 송승우가 송문수의 전화를 받게 된 것이다.옷을 다 입어보고 나서도 시어머니와 쇼핑을 하느라 굳이 핸드폰을 보지 않았던 하지수는 송문수에게서 연락이 온 줄도 모르고 있었다.다시 한번 그녀의 핸드폰이 울렸을 때 송승우가 이번에도 자신이 받으려고 했는데 하지수가 그걸 보고 빠르게 핸드폰을 낚아채 갔다.그녀의 행동에 표정이 굳어버렸던 송승우는 이내 송문수가 자신이 올린 인스타를 봤을 생각에 다시 입꼬리를 올리며 시선을 신문에 고정한 채 둘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문수 씨.”송문수의 이름을 부르는 하지수의 목소리에는 기대와 반가움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잠시 떨어져 있던 연인이 재회할 때나 나올법한 목소리에 송승우의 표정은 한층 더 어두워졌다.“아직도 바빠?”“어머니 모시고 드레스 피팅해보고 있었어. 지금은 디자이너님이랑 디테일 얘기하고 있어. 나도 아까 하나 입어봤는데 사진 보내줄게.”“지금 데리러 갈 건데 어디야?”잔뜩 신나서 말하던 하지수는 이제 고작 4시밖에 안 됐는데 퇴근했다는 송문수가 의아하여 놀라며 물었다.“퇴근했어?”“주말이라서 일찍 퇴근했어.”“회사도 좀 안정돼서 직원들도 앞으로 주말은 다 쉬기로 했어.”“그래.”고개를 끄덕이며 주소를 불러준 하지수는 웃는 얼굴로 전화를 끊고는 허영지에게로 다가갔다.하지만 송문수와 하지수가 싸울 것이라 예상했던 송승우는 화도 내지 않는 송문수에 혹시 그가 하지수를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하지만 사실 송문수는 인스타를 보자마자 차오르는 화에 핸드폰을 손이 하얗게 질릴 정도로 꽉 쥐고 있었다.다른 사람이 채갈까 봐 하지수를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심정이 굴뚝같은데 그런 그녀가 옛날에 좋아하던 송승우와 함께 있는 걸 본 이상 그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