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승우는 아무 소리도 없이 조용히 떠났다.당시 송씨 가문 사람들은 매우 다급해졌다. 결혼식 준비는 모두 끝났는데 신랑이 갑자기 자취를 감췄으니, 소문이라도 나면 송씨 가문의 체면이 손상될 상황이었다. 그래서 송씨 가문은 급하게 송문수가 하지수와 결혼하도록 결정했다. 송씨 가문에서는 물론 그녀의 의사를 물었다. 그러나 하지수는 본래 기댈 곳이 없는 처지였기에 별다른 선택권이 없었고 송문수가 자신을 결혼 상대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으로 생각해 결국 승낙했다. 그런데 그녀의 예상과는 달리 송문수 역시 승낙한 것이었다. 하지수는 송씨 가문 부모가 어떤 방법을 써서 송문수에게 강요한 것이라 생각했지만 어쨌든 그들은 결국 결혼식을 올렸다. 비록 매우 급작스럽고 어설픈 결혼이었지만 사회 상류층에서는 이 일은 두고두고 웃음거리가 되었다. 결혼 후 첫날 밤, 그녀는 송문수를 거절했다. 그녀는 그렇게 쉽게 마음을 열지 않았기 때문에 결혼식이 어수선했어도 첫 번째 밤만큼은 소중하게 생각하고 싶었다. 물론 송문수와의 결혼을 받아들였지만 감정을 천천히 키워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은 정말 어려웠다. 송문수는 결혼 후 더욱 자유분방하게 행동하며 최소한의 배려도 없이 외도하곤 했다. 둘 사이의 거리는 점점 멀어져 갔고 하지수는 매일 그가 일으킨 문제들을 수습할 뿐 감정적으로는 거의 진전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송승우가 한 번 돌아왔다. 그제야 하지수는 알게 되었다. 송승우가 떠날 당시 아무 말도 없이 사라진 이유는 긴급한 기밀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하게 되어서였고 송씨 가문 사람들조차 그를 찾을 수 없었다. 송씨 가문은 한때 그가 납치된 것이 아닌지 의심할 정도였다. 한 달 뒤에서야 송승우가 가족에게 무사하다는 소식을 전했지만, 여전히 갑작스러운 이별에 대한 설명은 하지 않았다. 1년 후, 연구가 끝난 뒤에야 그는 가족들에게 모든 사정을 설명했다. 하지만 그때는 하지수가 이미 송문수와 결혼한 지 1년이 지난 후였고 모
하지수는 송승우가 보낸 메시지를 보고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결국 그녀는 답장을 보냈다.“지나갔으면 지나가야지.”하지수는 그와 다시 시작할 생각은 없었다.송승우는 더 이상 메시지를 보내지 않았다.하지수도 핸드폰을 내려놓았다.그녀는 의자에 몸을 기대고 창밖을 바라보았다.사실 조금 피곤했지만 침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그저 마음이 허전해지는 느낌으로 누워 있었다.송문수가 방에 들어섰을 때, 하지수는 의자에 앉아 있었다.이 여자는 도대체 자기 관리를 어떻게 하는 거지?오후에도 소파에서 두 개의 담요조차 덮지 않고 자고 있었고, 지금도 핸드폰을 껴안고 잠이 들었다.핸드폰이 이불이 되냐?송문수는 짜증이 났다. 그는 큰 몸을 움직여 하지수를 안았다.하지수는 주위의 움직임을 느껴 이마를 찡그리며 불편하게 몸을 비틀었다.송문수는 순간 가슴이 멈췄다.그는 하지수를 바라보며 긴장했다. 하지수가 곧 깨어날 것 같은 모습이었다.왜 그녀를 안았는지 모르겠다. 화가 나서 그랬나?이때야 하지수를 안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수가 깨어나기라도 한다면... 송문수는 그 자리에 그대로 서서 마치 돌처럼 굳어버렸다. 다음 순간, 하지수가 그의 품에서 편안한 자세를 찾은 뒤 다시 잠이 든 것을 보았다. 그녀가 이렇게 고요한 모습으로 자는 것을 보고 송문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마음속에 혼잣말이 흘렀다. 뭐야, 대변호사라면서 경계심이 높다고?잠들어서 팔려 가고도 모르겠지. 송문수는 하지수를 안아 침대로 옮겨 이불을 덮어주었다. 이 모든 것을 끝낸 후 그는 도둑질이라도 한 듯 불안한 마음으로 깊이 숨을 내쉬었다. 이럴 수가!불안해할 이유가 없었는데...하지수에게는 단지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그렇게 한 것이고, 누구에게라도 똑같이 했을 것이다. 송문수는 돌아서서 욕실로 들어갔다. 그가 떠나자 하지수는 눈을 뜨고 그의 뒷모습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사실 그녀는 방금 깨어났었다. 순간적으로 공중에 떠오르는
송문수가 욕실에서 나왔다. 송문수의 몸에서 은은한 샴푸 향이 남아 있는 듯했다. 하지수는 살짝 긴장했다. 결혼한 지 이렇게 오래되었지만 두 사람이 함께 침대에 누운 적은 단 한 번이었다. 그때는 매우 불쾌한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그 후 두 사람 사이의 친밀한 접촉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이불 속에 누운 하지수는 몸이 경직되어 숨조차 내쉬기 어려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그녀는 그 향기가 점점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여전히 송문수가 침대에 오지 않는 것을 느끼며 방의 조명이 어두워진 것 같았다. 하지수는 몰래 눈을 뜨고 주위를 조심스럽게 둘러보았다. 그때 송문수가 방금 자신이 누워 있던 의자에 몸을 눕히는 모습을 보았다. 송문수는 애초에 하지수와 같은 침대에서 잘 생각이 전혀 없는 듯했다. 그래서 하지수를 침대에 옮긴 이유는 단순히 그녀가 그가 자고 싶었던 자리를 차지했기 때문이었다. 남자답게 예의를 지키려는 것 같았다.송문수가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지만 그녀를 소파에서 자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하지수의 마음은 순식간에 식어버렸다. 방금 생긴 작은 기대는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그녀는 오해했을 뿐이었다. 그날 밤 하지수는 불안한 잠을 잤다.사실 송문수 역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송문수에게는 큰 키와 체격 때문에 소파가 고역이었다.그는 몸을 뒤척이는 것도 두려웠고, 떨어질까 봐 불안했다. 게다가 다리를 펼 수도 없어 쭈그려 웅크리고 자야 해서 매우 불편했다. 더 중요한 것은 하지수가 큰 침대에서 편하게 자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하지수가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송문수의 긴장감이 커졌다. 하도경 말이 맞아, 그렇게 많은 여자와 사귀던 남자가 정말 달라졌네! 다음 날. 하지수는 핸드폰 벨 소리에 잠에서 깼다. 그녀는 서둘러 음소거를 해제한 뒤 송승우의 전화라는 것을 확인하고 잠시 망설였다. 송문수 역시 전화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그는 밤새 거의 잠을 이루지 못했다. 눈을 감자마자 전화 소리에 깨
“가식 떨지 마!”송문수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수는 송문수의 분노가 느껴졌다. 그녀는 송문수를 바라보며 눈가가 붉어졌다. 그녀는 정말로 호의로 말했다.“빨리 나가. 내 잠 방해하지 마!” 하지수는 입술을 깨물며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돌려 나갔다. 그녀는 원래 호텔 고객 서비스에 전화를 걸어 아침을 준비해 주려고 했지만 그럴 필요가 없겠다고 생각했다. 송문수는 그런 것을 신경 쓰지 않을 것이라고 여겼다. 아마도 하지수가 그를 괴롭히려고 일부러 전화한 것으로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수가 나가자 송문수는 화난 기색으로 소파에서 벌떡 일어났다.하지수에게 깨어난 기분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그녀가 전화를 받는 소리를 듣고 송승우가 전화한 것임을 눈치챘다. 어젯밤 송승우가 전화를 걸어 오늘 하지수와 함께 서울을 구경하자고 했을 때 그는 아무 생각 없이 거절했다. 그는 하도경과 약속이 있다고 했다. 사실 본능적으로 거부한 것이었다. 송승우는 송문수가 안 가면 자기가 하지수와 놀러 가겠다고 말했다.송문수는 상관없다고 대답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송승우는 그에게 알리기 위해서만 말한 것 같고 하지수와의 관계 때문에 그에게 체면을 세워주려 한 것일지도 모른다. 체면을 참 중시하는구나!송문수는 소파에서 내려와 침대로 갔다. 하지수는 어떻게 사귀던 연인과 비밀 데이트를 할 수 있는데 자기는 소파에서 자야만 하는 것인가. 송문수는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큰 침대 위에 하지수의 냄새가 아직도 남아 있는 듯했다. 송문수는 더욱 짜증이 났다. 원래 그는 하지수가 거절할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하고 있었지만 하지수가 최근 보여준 호의에 변화를 기대하고 착각한 것이었다.어쩌면 진짜 감정이 생겼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결국 송문수는 스스로를 모욕한 것이었다. 하지수는 어릴 적부터 송승우를 좋아했으니 그녀가 자신을 사랑할 리가 없다!하지수는 급히 호텔 출입구로 나갔다.그녀는 지각하는 사람이 아니었고 다른 사람
맛이 아주 좋았다. 송승우는 하지수가 좋아하는 음식을 기억하고 있었다. 감동이 없었다면 거짓말일 것이다.송승우와 송문수의 태도는 완전히 달랐다. 하지수는 두 사람을 비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맛있어?” “아주 맛있어요.” “다 먹을 수 있어?”송승우가 물었다. “다 못 먹어요.”하지수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가득 찬 작은 만두 한 바구니에서 그녀는 많아야 절반 정도만 먹을 수 있었다.“괜찮으면 하나만 줘. 나도 아침을 안 먹었거든.”송승우가 말했다. “오빠 아침 안 먹었어요? 기다리는 동안 먹을 수도 있었잖아요.”하지수는 놀라서 물었다. “열고 나면 김이 빠져서 식으면 맛이 없잖아. 그리고 나도 그렇게 배가 고프지 않았어.” 하지수는 입술을 살짝 깨물며 만두를 집어 송승우의 입술에 내밀었다. 만두가 작아서 송승우는 한 입에 물었다. 송승우의 입술이 하지수의 손가락에 닿았다. 하지수의 손가락이 잠시 굳었다. 그리고 그녀는 만두를 옆의 팔걸이에 놓았다.“편할 때 다시 먹어요.” 송승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입가에는 분명한 미소가 떠올랐다. 방금의 접촉이 지수도 부끄러워하겠지. 목적지에 도착했다. 서울에는 특별히 재미있는 곳이 없지만 유적지가 많았다. 송승우는 첫 번째로 하지수를 성벽으로 데려갔다. 하지수는 체력이 괜찮았다. 송승우과 함께 오랫동안 걸었다. 송승우는 역사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두 사람은 고대 인들이 남긴 지혜를 감상하며 하지수는 송승우의 설명을 들었다. 가이드보다 훨씬 재미있었다. “우리도 인증샷 찍자.”송승우가 말했다. “네?” 송승우는 스마트폰을 꺼내 셀카 모드로 전환했다. “지수야, 조금 더 들어와야 찍혀.” 하지수는 잠시 망설이다가 송승우의 카메라에 나왔다. 하지만 거리를 두기로 했다. “웃어봐.”송승우가 말했다. “웃으면 안 예뻐요.”하지수가 거부했다. “말도 안 돼 너 웃으면 제일 예뻐.”송승우는
송승우는 잠시 얼어붙었다. 그는 놀라서 물었다.“이제 막 한 관광지를 갔는데 다른 두 곳도 준비했어. 먼 곳도 아니야. 왜 벌써 피곤해? 아니면 오후에 일이 있어?” “아니에요.”하지수가 고개를 저었다. “여기까지 왔는데 더 놀다 가자.”송승우가 농담처럼 말했다.“걱정하지 마, 미아로 만들지는 않을게.” “승우 오빠, 우리 서로 거리를 두는 게 좋겠어요.”하지수는 솔직하게 말했다. 송승우의 얼굴에 있는 미소가 서서히 굳어졌다. “지수야, 내가 그렇게 싫어?” “우리 사이에는 더 이상 가능성이 없어요. 오빠에게도 나에게도 송문수에게도 오해를 주고 싶지 않아요.” “왜?”송승우가 하지수에게 물었다.“나는 네 마음을 알아. 너는 송문수를 좋아하지 않고 나를 좋아했잖아. 그런데 왜 지금 우리가 함께할 수 있는데 다시 거부하는 거야? 부모님이 강요한 거야? 걱정하지 마, 내가 부모님에게 잘 설명할게. 어떤 일이든 내가 감당할 거야.” “부모님 때문이 아니에요.”하지수가 그의 말을 끊었다.“이제는 오빠를 좋아하지 않아요.” 송승우는 멍해졌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충격에 그는 당황함을 금치 못했다. 자신이 잘못 들었는지 의심했다. “지수야, 너 뭐라고 했어?” “예전에 오빠를 정말 좋아했어요. 결혼 준비 중에 오빠가 떠나서 많이 힘들었어요. 왜 갑자기 결혼식에 도망갔는지 이해할 수 없었고 그래서 송문수와 결혼하기로 한 것뿐이에요. 오빠 부모님이 나를 키워주신 은혜도 있지만 오빠한테 화가 난 게 더 컸던 것 같아요.” “그런데 왜...” “하지만 그건 예전 일이고 지금은 송문수와 잘 지내고 싶어요.”하지수가 한 단어씩 강조하며 말했다.“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감정은 식기 마련이고 오빠를 향한 그리움은 이제 없어요. 지금은 송문수와 함께 있고 싶어요.” “송문수한테 미안해서 그래?”송승우가 하지수에게 물었다. 그는 하지수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믿을 수 없었다. 송승우가 하지수를 계속 사
송문수는 차갑게 물었다.하지수는 송문수가 술을 마셨는지 전혀 몰랐고, 그냥 주소를 알려주었다.말을 마친 후 차 안에서 오랫동안 송문수를 기다렸지만 오지 않았다. 사실 전화를 끊고 나서 하지수는 후회와 놀라움을 느꼈다. 왜 송문수에게 전화했을까? 가장 도와주지 않을 사람은 송문수였다. 하지수는 경찰에 전화했야 했다. 아니면 보험사나 4S 매장에 전화해야 했다. 아마도 그때부터 하지수는 이미 송문수와 잘 지내고 싶어 했다. 그래서 송문수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결국 송문수는 오지 않고 전화로 물었다.“심각하게 다쳤니?” “크게 다친 것 같진 않아. 차 앞부분이 가드레일에 부딪혔고, 내 머리도 좀 긁힌 것 같아.” “우선 경찰에 신고하고 구급차를 불러 병원에 가. 그리고 보험 회사와 4S 매장에 연락해 손해를 평가받아.”송문수는 말을 마친 후 전화를 끊었다. “안 오니?”하지수가 그에게 물었다. 그 순간 그녀는 눈물이 핑 돌았다. 사실 하지수는 이렇게 하는 게 맞다는 걸 알고 있었다. 변호사이기 때문에 정해진 절차를 더 잘 알고 있었다. 그냥 사고가 나서 의지할 누군가가 필요했다. 오늘 밤의 사고는 하지수에게 세상을 떠난 부모님을 떠올리게 했다.“안 갈 거야.”송문수가 차갑게 말했다.“하지수, 너는 변호사잖아. 사고 후의 절차를 더 잘 알지 않을까?” 말을 마친 송문수는 바로 전화를 끊었다. 그때 그녀는 송문수에게 정말 실망했다. 어떤 정도로 실망했냐고? 하지수는 그들 사이에 다시는 발전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심지어 이혼도 생각했다. 그 후 그녀는 모든 일을 스스로 처리한 후 병원에서 신체검사를 받을 때 온몸이 피투성이인 송문수를 만났다. 옆에는 두 명의 경찰이 있었다. 하지수는 자신이 잘못 봤다고 생각해 달려가서 물었다. “송문수, 무슨 일이야? 왜 이렇게 피투성이야?” “내 피가 아니야.”송문수는 무관심하게 대답했다. “그럼, 누구 거야?”
“지수야, 너는 좋은 아이라는 걸 알아. 네가 얼마나 착한지도 알아. 하지만 네가 이렇게 집착하는 건 원하지 않아.”송승우가 좀 더 진지해졌다.“너의 방식은 너 자신을 다치는 것뿐만 아니라 문수에게도 상처를 주고 있어.” 하지수는 잠시 멈칫하며 송승우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알다시피 너와 문수의 결혼은 네가 이끌어 가고 있는 거야. 네가 이혼하지 않는 한 부모님은 너희를 이혼할 수 없어. 그런데 네가 이렇게 송문수와 얽히고 있으면 그의 감정을 생각해 본 적 있어? 그는 이혼하고 싶지만 이혼할 수 없고 놀고 싶어도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돼. 지금 문수도 진퇴양난이야.” “하지만 나는 송문수가...” “그가 너를 좋아한다고 생각하니? 그날 밤 음주 운전까지 하면서 너를 만나러 오려 했던 거?”송승우가 물었다. 하지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실제로 송문수가 자신을 어느 정도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왜 그런 일을 했을까? 술을 마셨는데도 쉽게 떠날 수 없었던 그는 그녀의 전화를 받고 빗속을 뚫고 오는 데 두려워하지 않았다.그때 그녀의 마음이 흔들렸다고 인정한다.송문수에게 처음으로 심장이 두근거리는 느낌을 받았다. 그 후 그녀는 그가 출소하기를 기다리며 진심으로 다시 시작하고 싶어 했지만 송문수 계속 거절했다. “지수야, 너는 너무 순수해.”송승우가 말했다.“이런 일이 누구에게나 일어나면 당연히 신경 쓰게 돼. 송문수가 네 사고 이후에 너를 찾아온 건 인간적인 걱정일 뿐이고, 그의 음주 운전은 법을 무시한 행동이었을 뿐이야. 혼동하면 안 돼.” “하지만...” “지금 나는 너를 강요하지 않아. 네가 현실을 제대로 인식할 시간을 줄게.”송승우가 하지수를 바라보며 안타까운 눈빛을 보냈다.“나는 네가 상처받는 걸 원하지 않지만 지금 보니 너는 끝까지 가봐야만 마음을 바꿀 것 같아.” 하지수는 침묵했다. 그래. 하지수는 더 노력하고 싶었다. 하지수는 송문수와의 가능성이 있다고 믿었다.
소이연과 육현경이 떠나니 송씨 일가 사이에는 어색한 기류가 흘렀다.송문수를 한번 보던 허영지와 송기명은 하지수를 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지수 아침 안 먹었지? 이것 좀 먹어봐.”“감사합니다.”시어머니를 향해 웃어 보인 하지수는 송문수의 손을 잡아끌며 말했다.“문수 씨도 일찍 오느라 못 먹었을 텐데 같이 먹어.”하지만 들려오는 건 차가운 거절뿐이었다.“난 배 안 고파.”“배 안 고파도 먹어야지, 안 그러면 속 다 상해.”송문수의 거절에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물어보는 하지수였지만 송문수는 끝내 고개를 저어버렸다.“밥 생각 없어.”그때 음식들을 의자에 내려놓은 허영지가 고개도 들지 않고 담담히 말했다.“많이 사서 지수 혼자 다 못 먹어. 너도 같이 먹어.”갑작스러운 제 어머니의 말에 잠시 당황하며 눈을 돌리던 송문수는 이번에는 차마 거절하지 못했다.제가 몇 번이나 말해도 꿈쩍 않던 사람이 어머니의 말에는 고분고분한 걸 보며 하지수는 화가 나기는커녕 그런 송문수가 안쓰러워 보였다.송문수를 알면 알수록 그의 외로움이 너무 적나라하게 보여서 마음이 아팠다.어제도 잘못한 건 허영지인데 아무런 사과도 없이 그저 밥을 먹으라는 말 한마디 했다고 다시 순한 양으로 돌아오는 걸 보면 송문수는 참 아직까지도 가족의 사랑을 고파하는 것 같았다.송문수와 하지수가 밥을 먹느라 의자에 앉아있을 때, 옆에서 보던 송기명이 문득 입을 열었다.“밥 먹고 얼른 호텔가서 좀 쉬어, 낮에는 우리 둘이 승우 옆에 있을게. 우리도 나이가 드니까 밤은 못 새겠다, 고생했어 둘 다.”“괜찮아요 아버님, 고비만 잘 넘기면 되는데요 뭘.”“호텔가면 병원 일은 신경 쓰지 말고 푹 자. 몸부터 챙겨야지, 이런 상황에 쓰러지면 큰일이잖아.”“네.”계속 웃으며 대답하는 하지수와 달리 송문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그렇게 밥을 다 먹은 둘은 바로 병원을 나서서 택시를 타고 호텔로 향했다.마침내 둘만 있게 되자 하지수는 참지 못하고 물었다.“어머님 아버님도 어제 일
“그래요 그럼.”소이연과 대화를 나누던 하지수는 그들을 데리고 중환자실로 향했다.유리창을 통해 침대에 누워있는 송승우를 보던 소이연은 자연스레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물론 그녀가 송승우와 이렇다 할 친분이 있는 것도 아니고 워낙 친구를 사귀기 싫어하는 송승우 때문에 육현경이 송승우와 친한 것도 아니었지만 사람 대 사람으로 안쓰럽긴 했다.다들 송승우보다는 어렸기에 송승우는 어릴 적부터 그들을 꼬맹이라 칭하며 거들떠보지도 않았었다.그래서 좋은 감정이랄 것도 없었지만 송승우가 그들의 가장 친한 친구인 송문수의 친형이라 육현경은 도의상 아내와 함께 여기까지 온 것이었다.“승우 씨는 지금 어떤 상태에요?”“많이 좋아졌어요. 전에는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는데 가족들이 기다리는 거 알고 이젠 조금씩 마음 추스르더라고요. 그래도 아직은 시간이 좀 더 필요할 것 같아요.”누구라도 그럴 것 같아 소이연은 침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그래도 난 승우 오빠 믿어요, 어릴 때부터 강한 사람이었으니까 마음 추스르고 나면 다시 잘 지낼 거에요.”육현경 옆에서 송승우를 긍정하는 하지수의 말을 듣던 송문수는 또다시 씁쓸해졌다.하지수를 포함한 모두가 송승우는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에 반해 저는 그저 생겼으니 낳은 존재 같았다.“그럼 다행이죠. 그래도 본인 마음이 가장 중요하니까 지수 씨도 너무 급해 하진 말고 송승우 씨한테 믿고 맡겨봐요. 누구나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거 아니겠어요?”직설적으로 말하진 않았지만 소이연이 전하고자 하는 건 아무리 송승우가 중요하다 해도 그와 너무 가깝게 지내면 불필요한 오해가 만들어질 테니 조심하라는 뜻이었다.“그래야죠.”그녀의 말을 제대로 이해한 하지수도 깊은 공감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하지수가 사실 송승우가 중환자실에서 나가면 그에게 혼자만의 시간을 주려고 마음먹고 있었다.옆에서 아무리 응원을 한다고 한들 본인이 결심이 서지 않으면 모든 건 다 헛수고였기 때문이다.그들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중환자실 안에서 서로의 손을 꼭 잡고 있는 하지수와 송승우를 보니, 관심과 안쓰러움이 가득한 눈으로 송승우를 바라보는 하지수를 보니 이곳에 괜히 온 것만 같았다.자신이 오지 말아야 할 데를 온 것만 같아 그는 조용히 중환자실 복도를 벗어났지만 그렇다고 떠나진 않고 복도의 끝에서 하지수가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그리고는 그녀가 나올 때 금방 도착한 사람처럼 그녀의 앞에 나타났다.하지수는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송문수에 아주 기뻐하며 그를 향해 달려갔다.“문수 씨, 여긴 왜 왔어?”하지만 하지수의 말을 들은 송문수는 그녀의 기쁨이 불만 같아 보였다, 마치 자신을 불청객 취급하는 것 같았다.“교대할래?”“아니.”1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하는 하지수에 역시나 자신이 괜한 오지랖을 부렸다고 확신한 송문수는 피식 웃으며 자리를 뜨려 했는데 그 순간 하지수가 해명을 해왔다.“내 말은 문수 씨랑 같이 있고 싶다는 말이었어. 어머님 아버님이랑 교대하자.”송문수가 오늘따라 이상한 것 같았지만 하지수는 어제 허영지와 다툰 일로 아직도 마음 상해 있는 거라고 생각하며 자연스레 그의 손을 잡았다.그녀와 함께 의자에 앉은 송문수는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끝내 아무 말도 못 하고 입을 다물어버렸다.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하지수에게 서운했던 마음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기에 송문수는 제 옆에 딱 붙어 앉은 하지수의 몸이 본인 쪽으로 기울 때마다 무표정으로 조심스레 거리를 벌리고 있었다.“어제 술 마신 거 아니었어? 취해서 못 일어날 줄 알았는데 어떻게 이렇게 빨리 온 거야?”“많이 안 마셔서 안 취했어.”“그렇구나.”마음 내키는 대로 일을 처리하던 예전의 송문수와는 완전히 달라진 모습에 하지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어제 네가 이연 씨한테 나 찾아달라고 부탁한 거야?”천우진이 바에 있는 저를 찾아왔을 때부터 송문수는 핸드폰도 안 가지고 나간 저를 찾기 위해 하지수가 소이연에게 부탁한 것임을 눈치채고 있었다.“응, 당신이 너무 걱정돼서 이연 언니한테 부탁
“지수야, 여기서 계속 안 지켜도 돼.”송승우는 사실 밖에서 쪽잠을 자는 하지수가 안쓰러워 그녀를 돌려보내려고 불러들인 것이었다.“안돼요 그건, 어머님 아버님 오실 때까진 여기 있어야 해요.”하지만 하지수는 역시나 단칼에 거절했다.“안 그래도 돼, 나 때문에 가족들 힘든 거 보고 싶지 않아.”“오빠만 괜찮아지면 그걸로 충분해요 우린.”“괜찮아질까...”본인에 대한 자신감을 잃은 듯한 눈빛에 하지수는 다시 그를 다독이기 시작했다.“내가 전에도 말했었죠, 다리 하나 없는 거 그거 흠도 아니라도. 오빠는 똑똑한 머리가 있잖아요, 그거 국가 재산이라니까요? 오빠 어릴 때 꿈 다 잊은 거예요? 정말 여기서 포기할 거예요?”“아니, 포기 안 해.”하지수의 적극적인 격려에 송승우는 마침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하지만 송승우는 그냥 하필이면 저한테 이런 일이 생긴 게 억울했다.인류 사업에 공헌하며 좋은 일을 하고 있는 제가 왜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지, 그는 하늘이 무심하게만 느껴져서 한쪽 다리를 잃고 어떻게 이 세상을 헤쳐나가야 할지가 막막했다.“단단해져야죠 오빠.”“지수야.”그때 송승우가 힘겹게 손을 뻗자 하지수는 다급히 물었다.“물 줄까요?”“아니, 네 손 잡고 싶어.”하지만 예상치 못한 말에 당황한 하지수는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안돼?”“아니요.”“오빠 아직 몸도 다 안 나았는데 내가 괜히 만져서 아플까 봐 그러죠.”하지수가 송승우의 손을 막으며 말했지만 그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네 온기를 느끼고 싶어. 네 응원 아니었으면 난 진짜 버텨내지 못했을 거야. 네가 내 옆에 있어 줘서 정말 다행이야.”“난 항상 오빠 옆에 있을 거예요.”“고마워 지수야, 나도 절대 너 실망시키지 않을게.”“알았어요, 그 말 믿을게요.”하지수는 송승우가 이 상황을 버텨내게 하는 유일한 동력이었기에 그는 그녀의 손을 꼭 잡은 채 놓을 생각을 않고 있었다.송승우는 하지수만 제 옆에 있다면 다리를 하나 잃는다 해도 살고 싶었다.그런데 그 아
하지수가 피곤하다 하면서도 돌아가겠다는 말은 안 하니 허영지와 송기명의 입장은 더욱더 난처해졌다.그렇게 복도에 나란히 앉은 그들은 다시금 침묵을 유지하기 시작했다.그 시각 하지수는 계속 소이연과 문자를 주고받으며 송문수의 상태를 체크하고 있었다.임신 중이라 소란스러운 곳에 있는 게 힘들었던 소이연을 배려해 그들은 천 씨 저택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송문수, 육현경, 천우진 그리고 심문헌 이 네 사람이 함께 술을 마시고 있다는 내용의 문자였다.그런데 워낙 늦은 시간인지라 소이연도 결국 사진 한 장을 보내며 말했다.[나 이제 정말 못 버티겠어요, 이만 자야 할 것 같아요. 그래도 문수 씨 친구들이랑 같이 있으면 괜찮을 거니까 지수 씨도 이제 걱정 마요.][알겠어요, 언니도 얼른 자요. 오늘 진짜 너무 고마웠어요.][그런 소리 말라니까요.]마침내 핸드폰을 내려놓은 하지수는 고개를 돌려 시부모님을 바라보았다.이미 송기명의 어깨에 기대있는 허영지는 금방이라도 눈을 감아버릴 것만 같았다.만약 허영지가 송문수와 다투지만 않았었다면 잠을 푹 잔 송문수가 진작에 와서 그들과 교대를 했을 텐데, 그러면 두 분이 이렇게 고생할 필요도 없었을 텐데.하지수는 모든 게 자업자득이라 생각했지만 두 분 어르신이 고생하는 걸 보는 게 편치 않았기에 결국 입을 열었다.“어머님 아버님, 시간도 늦었는데 이만 돌아가세요. 제가 승우 오빠 옆에 있을게요.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연락도 드리고요.”그 말에 허영지도 바로 나가려 했지만 그러면 너무 속보일 것 같아 관심 어린 말을 한마디 보탰다.“너 혼자 괜찮겠어? 힘들면 너 먼저 가서 좀 자. 그러고 나서 우리랑 교대하면 되니까.”“아니에요, 얼른 들어가서 주무세요. 어머님 아버님은 푹 주무시고 내일 다시 오세요.”그 말에 허영지가 망설이며 송기명을 보자 송기명이 대신 고개를 끄덕여주었다.“그럼 우린 먼저 갈게. 오전부터 여기 계속 있느라 힘들지? 네가 고생이 많네.”“아니에요.”미소로 화답한 하지수는 떠나려는 송기명과
하지수는 허영지, 송기명과 함께 병원에 있으면서도 송문수 생각에 가만히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지수 씨, 오빠가 문수 씨 찾았대요. 바에서 술 마시고 있는데 그냥 좀 기분 나빠 보이는 것 말고는 별문제 없대요. 나랑 현경이도 지금 서울로 가고 있으니까 곧 문수 씨 만날 거에요.]저녁때가 다 돼서야 온 소이연의 문자였지만 그래도 한지수는 송문수가 무사하다는 말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정말 고마워요 언니. 언니 아니었으면 부탁할 사람도 없었어요 진짜.][별일도 아닌데요 뭐. 그리고 나도 오빠 때문에 현경이랑 어차피 서울에 올 거였어요. 그냥 조금 일찍 온 것뿐이죠.][네.]감사한 마음을 이루 다 말할 수가 없어 하지수는 더는 말을 잇지 않았다.어떤 마음은 전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것이기 때문이기도 했다.그때 소이연이 바에서 혼자 술을 마시고 있는 송문수의 사진을 보내왔는데 불빛이 하도 어두워 사람은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마는 다운된 그의 기분은 화면을 뚫고도 느껴졌다.하지수는 당장이라도 송문수에게로 가고 싶었지만 병실에 누워있는 송승우와 피곤에 찌들어있는 시부모님을 향해 차마 그 말을 뱉을 수는 없어 다시 고개를 떨구었다.한편 병원에서 꼬박 하루를 지킨 허영지는 이미 온몸이 쑤셔왔고 송기명도 마찬가지였다.원래는 그들을 호텔로 보내고 본인 혼자 병실을 지키려던 하지수는 문득 송문수를 대하는 시부모님의 태도가 떠올라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하지수는 송문수가 그랬던 것처럼 시부모님도 밤을 한번 지새워봐야 그렇게 잠에 빠져든 아들을 이해할 것 같았다.송승우를 지키는 건 혼자만의 힘으로 되는 게 아니라 온 가족이 힘을 모아야 한다는 걸 하지수는 그들 스스로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사실 허영지와 송기명은 아까부터 하지수가 입을 열길 기다리고 있었다.이 집안에 젊은이라곤 하지수와 송문수뿐이라 지금 저들을 대신해 병실을 지켜줄 사람은 하지수밖에 없었고 또 하지수가 낮에 잠도 조금 잤으니 밤을 새우는 게 그녀에게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절망과 슬픔이 가득한 두 눈으로 저를 보고 있는 송승우는 평소답지 않게 나약해 보였다.그런 그의 마음이 얼마나 아플지 조금은 짐작이 갔던 하지수가 입을 열었다.“오빠, 괜찮아요 이제.”“우리가 옆에 있을 거예요. 같이 치료해나갈 거니까 절대 포기하지 마요. 의사 선생님도 수술 잘돼서 금방 나을 거라고 했어요.”“나아진다고?”미약한 목소리가 눈 속에 가득했던 슬픔과 함께 흘러나왔다.“오른쪽 다리가 없는데 어떻게 나아져? 난 이제 병신일 뿐이야.”“오빠가 왜 병신이에요? 오빠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연구원에서 일하는 과학자예요. 어떻게 본인을 그렇게 낮춰요?”“오빠의 머리는 국가 재산인 거 잊었어요? 이런 좌절 한 번 겪었다고 영영 주저앉을 거에요? 내 맘속의 오빠는 영원히 그 천재 송승우예요. 그건 앞으로도 안 변해요.”그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송승우는 그럼에도 자신이 불구가 되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겠는지 눈물을 쏟아냈다.“오빠, 힘내요 우리.”하지수는 그가 흘린 눈물을 닦아주며 말했다.“어머님 아버님 다 오빠 걱정뿐이에요, 계속 밖에서 기다리고 계시는데 오빠가 계속 이렇게 절망한 채로 있으면 그분들은 또 어떻게 살겠어요? 오빠는 그분들의 자랑이잖아요, 마지막까지 자랑스러운 아들이 돼야죠.”“난 이제 부모님의 자랑이 아니야, 사지도 멀쩡하지 않은 내가 어떻게 자랑스럽겠어.”“부모님은 세상에서 오빠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이에요. 한쪽 다리가 아니라 두 다리를 다 잃었다고 해도 부모님은 오빠를 자랑스러운 아들로 여기실 거에요. 오빠를 무시하는 게 아니라 오빠 대신해서 더 가슴 아파할 거라고요.”“넌 나 안 더러워? 다리도 없는 내가 너무 역겹잖아.”“누가 그런 말을 해요, 난 그냥 오빠를 보면 가슴이 아파요.”“오빠만 포기 안 하면 돼요, 다들 오빠 응원하고 있어요. 모든 걸 잃었다고 해도 우리가 있잖아요, 다시 시작할 수 있어요.”“너도 내 옆에 있을 거야?”“당연하죠. 나도 오빠 곁을 지킬게요.”나지막이 묻는 송승
“죄송해요 어머님, 저도 좀 흥분한 것 같아요. 집안에 큰일이 일어나서 가족들 전부 감정이 격해졌을 거예요. 저도 앞으로는 좀 더 신경 쓸게요. 저 얼른 옷 갈아입고 승우 오빠한테 가볼게요.”허영지의 말에 제대로 된 답을 하지 않은 하지수는 그만 옷을 갈아입으러 가버렸고 허영지는 송기명을 바라보았다.제 아내의 곤혹스러운 표정을 본 송기명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지수 말이 맞아요, 집안에 불미스러운 일이 있으니까 다들 감정 제어를 잘 못 했죠. 그렇다고 우리 감정을 다른 사람한테 푸는 건 잘못된 거예요. 그건 불공평하잖아요.”“나는 그냥...”“당신도 며칠 전에 문수 많이 변한 것 같다고 했었잖아요. 어릴 때부터 못 해준 게 너무 많다고 미안해하더니 왜 이젠 또 이렇게 불만이 많아진 거예요? 어젯밤도 문수가 밤새 승우 지키고 있었는데 걔도 잠은 자야죠. 그래야 우리랑 교대도 하죠. 우리 나이에 버티면 얼마나 버틴다고 그래요?”“하지만 승우한테 다리 절단했다는 걸 알려준 게 문수잖아요. 의사 선생님도 절대 비밀로 하라고 하셨는데 그랬잖아요! 그래요, 어릴 때 내가 잘 못 키운 건 맞아요. 그런데 그렇다고 이런 저급한 실수를 할 정도는 아니잖아요.”“당신 입으로도 저급한 실수하고 하면서 왜 문수가 그런 실수를 했을 거라 생각하는 거예요? 예전에는 그렇다 쳐도 문수가 우리 회사 맡으면서부터 나랑 따로 얘기도 많이 했었어요. 우리 문수 할 말 못 할 말은 가리는 아이고 그런 시행착오는 한 번도 범한 적 없었어요.”“그래서 더 화가 난다고요, 괜찮아진 줄...”“승우가 스스로 눈치챘을 수도 있잖아요.”송기명은 계속 반박하는 허영지의 말을 자르며 말했다.“승우처럼 똑똑한 애가 문수가 말 안 한다고 눈치 못 챌 것 같아요? 승우 본인 몸은 본인이 가장 잘 알겠죠, 그냥 그 안에 있던 게 문수라 우리가 오해한 것뿐이에요.”처음에는 같이 화를 내던 송기명도 조금 진정하니 모든 게 명확해졌었다.사람이 화가 나면 판단력이 흐려진다는데 그래서 그만 송문수를 오
하지수의 전화를 받은 소이연은 그녀의 목소리만 듣고도 무슨 일이 생겼음을 직감했다.“지수 씨, 무슨 일 있어요?”“문수 씨가 오늘 어머님이랑 좀 다퉜는데 핸드폰도 다 깨져버려서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어요. 나도 문수 씨가 걱정되는 데 아버님이 승우 오빠 먼저 설득해달라고 해서 지금 병원으로 가는 중이거든요.”“그래서 현경이랑 친구분들더러 문수 씨 찾아달라고 하라는 거죠? 혹시 문수 씨가 안 좋은 생각 할까 봐?”“네.”아직 본론을 꺼내지도 않았는데 제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바로 알아맞히는 소이연이 제 친구라서 하지수는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내가 현경이한테 말할 테니까 지수 씨는 걱정 말고 승우 씨한테 가요. 찾으면 연락할게요.”“고마워요 언니.”“아니에요.”전화를 마친 하지수는 아무리 심호흡을 해봐도 답답한 가슴을 안고 병원에 들어섰다.바로 중환자실로 향한 그녀 눈에 보이는 건 복도에 앉아 쉴 틈 없이 울고 있는 허영지였다.하지수가 병원을 나설 때도 울고 있더니 아직까지도 진행 중인 것 같았다.저 눈물이 송승우를 위해 흘리는 건지 아니면 송문수와 다퉈서 흘리는 건지는 몰라도 하지수는 어떻게 위로를 전해야 할지 몰랐다.솔직히 말하면 별로 위로를 하고 싶지도 않았다.허영지가 송문수를 대하는 태도는 하지수마저도 눈살을 찌푸리게 했기 때문이다.“지수 왔구나”“네, 아버님.”“승우가 너 빼곤 아무도 보지 않겠대. 승우 아니었으면 너 이렇게 급하게 오라고 하지도 않았을 거야.”“네.”그들은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아들을 위해 하늘의 별이라도 따다 줄 사람이었으니 하지수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제가 옷 갈아입고 들어가 볼게요.”고개를 끄덕이는 송기명에 하지수가 몸을 돌리던 찰나, 허영지가 아직도 화난듯한 어투로 물었다.“송문수는 안 온대?”“모르겠어요.”“어디 갔어?”“그것도 몰라요.”“걔 지금 나랑 해보자는 거지? 지금이 어떤 상황인 줄 뻔히 알면서 뭐 하는 짓이야!”하지수는 눈물을 흘리며 발악하는 허영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