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 지금으로부터 두 달 뒤였다.예수진은 소이연이 보내온 사진을 보고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특히 이 시각 육현경은 자기 집에서 계지원과 회사를 다시 건설하는 것에 대해 논의하고 있었다.예수진은 사진을 육현경에게 보여줄지 말지 고민하고 있었다.‘정말 단념하게 해야 하나?’지금의 상황으로 볼 때, 육현경은 정말로 소이연의 마음을 되찾고 싶은 생각이 없어 보였고 모든 정력을 사업에 몰두하는 것 같았다.워커홀릭이 따로 없었다.그녀는 두 사람에게 다가가서 물었다.“커피 리필해줄까?”육현경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더니 예수진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커피잔을 옆으로 조금 내밀었다.리필이 필요하다는 뜻이었다.예수진은 조금 어이가 없었다.어쨌든, 그녀는 이미 그의 작은 숙모이고, 웃어른인데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으니 말이다.그러나 예수진도 익숙해진 듯, 육현경과 계지원 두 사람에게 커피를 한 잔씩 리필해 주었다.역시나 열심히 일하는 남자가 제일 멋있는 법이었다.육현경과 계지원은 커다란 창문 앞에 있는 레저 테이블에 앉아 있었는데 햇빛이 그들의 몸에 내려앉아 너무 보기 좋았다.‘이연 언니는 어떻게 심쿵하지 않을 수 있지?’“수진아?”계지원은 고개를 돌려 예수진이 바보같이 웃고 있는 걸 보았다.예수진은 얼른 정신을 차렸다.‘나도 모르게 넋 놓고 봤네. 현경 오빠는 역시나 멋있어.’그녀는 커피 두 잔을 들고 걸어갔다.“커피 왔어요.”“고마워.”계지원은 오히려 공손하게 받았지만, 육현경은 여전히 아무 반응이 없었다.“수진아, 방에 돌아가 있어.”계지원이 예수진에게 말했다.“내가 두 사람을 방해했어?” 예수진은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나도 두 사람이 바쁘게 일하는 중인 거 알아. 거실에서 숨도 크게 쉬지 않고 조용히 있었는데 더 이상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건데?!’계지원은 차마 그녀에게 말할 수 없었다. 그녀가 육현경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원래 계지원은 이런 광경이 매우 익숙했다.왜냐하면 예수진은 명백한
“수진아.”계지원이 예수진을 불렀다.예수진은 한숨을 크게 내쉬고는 육현경에게 한스럽다는 듯이 한마디 했다.“오빠 그러다가 평생 혼자 살 거야!”예수진은 말을 마치고 씩씩거리면서 떠나갔다.육현경은 컴퓨터 화면에서 눈길을 떼었다.그는 담배를 꺼내고 잠시 생각하더니 한마디 물었다.“담배 피워도 돼?”“베란다에서 펴.”계지원이 말했다.“평시에 하연이 집에 있어서 안 돼. 하연이 담배 냄새 싫어하거든.”육현경은 베란다로 갔고, 계지원은 육현경을 따라갔다.오늘 햇살이 딱 좋았다.계지원은 마음속으로 아무리 따뜻한 햇볕이라도 육현경의 차가운 마음을 녹일 수 없을 거로 생각했다.“노력해보지 않을 거야?”계지원이 입을 열고 물었다.“시도조차 해보지 않으면 아무런 희망이 없어. 근데 노력해보면 조금이라도 기회 있을 수 있잖아.”“기회 없을 거야.”육현경은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이연이 결정한 일은 누구도 바꿀 수 없어.”계지원은 고개를 끄덕였다.계지원도 소이연은 한 입으로 두말하지 않는 성격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두 달 뒤, 소이연과 심문헌이 결혼한다는 소식이 드디어 퍼졌다.즉, 앞으로 일주일 뒤, 두 사람은 결혼식을 올리게 된다.결혼 소식과 함께, 두 사람의 웨딩 사진도 인터넷에 공개되었다.많은 사람이 사진 밑에 댓글을 달았다.“헐! 소이연 씨 너무 예뻐요! 여자인 제가 봐도 홀딱 반하겠어요.”“남녀 모두가 다 반해버리겠는데요!”“심문헌 씨도 너무 멋있어요. 전에는 심문헌 씨의 잘생김을 잘 몰랐는데 지금 이렇게 소이연 씨랑 같이 있으니까 너무 잘생긴 것 같아요!”“두 사람 너무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세기의 결혼식이 될 것 같아서 너무 기대돼요!”...육씨 그룹의 사무실.이명진이 사무실 문을 열었다.지금 벌써 밤 10시인데, 그의 사장인 육현경은 아직도 일하고 있었다.문제는 어제도 밤을 지새웠다는 것이었다.이명진은 더는 두고 볼 수 없었다.불과 한 달 전, 육현경은 새로운 회사를 설립한 후 이명진을 다시 불
사실 이명진도 눈치챘다.그러나 그는 일부러 육현경을 속이고 그에게 청첩장을 보여주지 않을 수 없었다.‘사장과 사모님... 아니, 이제는 사모님이라고 못 부르고 이연 아가씨라고 불러야 하네. 나도 두 사람의 사이를 잘 알지만, 결국 사장님이 너무 오랜 시간 사라졌었어. 사모님에게 다른 사람이 생기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이긴 하지.’이명진은 육현경이 봉투에 담긴 청첩장을 열어보는 것을 지켜보았다.청첩장은 빨간색이었다.아주 경사스러웠다.청첩장에는 웨딩 사진이 한 장 붙어있었다.심문헌과 소이연이었다.사진 속의 두 사람은 매우 달콤해 보였고 아주 잘 어울렸다.청첩장의 낙관은 심문헌 한 사람의 이름만 적혀 있었고 소이연의 이름이 없었다.그는 그저 그렇게 한참 동안 청첩장을 바라보기만 했다.5월 18일 12시 8분에 결혼식을 정식으로 시작합니다.“대표님?”이명진은 또 육현경을 불렀다.육현경이 이 청첩장을 밤새도록 볼까 봐 걱정했다.그는 지금 육현경을 돌려보내서 휴식을 취하게 하고 싶었다.“그날이 주말이야?”육현경은 청첩장을 내려놓고 다시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다.“네. 토요일입니다.”“그래. 그날에는 일을 안배하지 말아줘.”“네.”‘그러니까 대표님이 직접 가신다는 건가?’“가자.”육현경은 일어나서 사무실을 떠났다.이명진은 얼른 그를 따라갔다.차 안에서, 육현경은 냉담한 얼굴로 뒷좌석에 기대어 앉아있었다.갑자기 전화가 울렸다.육현경은 발신자를 한눈 보고는 천천히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심문헌입니다.”“네. 알아요.”“요즘 아주 바쁘다고 들었는데 이 시간에 방해하는 건 아니죠?”심문헌이 물었다.“방금 퇴근했어요.”“청첩장은 받으셨나요?”“네.”육현경이 대답했다.“저는 자랑하러 온 것도 아니고 문헌 씨를 자극하려고 청첩장을 드린 것도 아니에요. 저는 단순히 문헌 씨가 민이 아버지라서 저와 이연 씨의 결혼식에 참석해 주셨으면 좋겠어요.”심문헌이 말했다.“알겠어요.”육현경은 바로 대답했다.그리고 얼른 한마디
예수진은 주소를 말했다.육현경은 차를 몰고 예수진을 데리러 갔다.이 세상에 육현경더러 일을 바로 내려놓게 할 수 있는 여자는 많지 않았다.그는 목적지에 도착한 후 예수진에게 전화를 걸었다.“나와.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게!”예수진은 술에 취해서 대답했다.“들어와 봐. 나 걷지 못하겠어.”“좋은 말로 할 때 알아서 나와!”“808번 룸.”예수진 쪽에서 전화를 뚝 끊어버렸다.육현경은 심호흡했다.계지원의 얼굴을 봐서, 그는 겨우 페달을 밟고 떠나가 버리지 싶은 심정을 억누르고 차에서 내려 룸으로 들어갔다.방문이 열렸다.육현경은 룸 안에서 사람들이 노래하고 춤추면서 난장판이 되었을 거로 생각했다.그리고 예수진의 예전 성격대로라면 안에 있는 사람은 모두 잔뜩 취해 있었을 것이었다.하지만, 방안은 의외로 조용했다.텅 빈 방에 세 사람만 나란히 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방안에는 음향을 켜놓지 않았고 조명도 아주 밝았다.그래서 육현경은 들어가자마자 한눈에 소이연을 보았다.소이연이 예수진, 하지수와 함께 셋이서 술을 마시면서 수다를 떨고 있는 것을 보았다.육현경의 출현은 엄연히 좀 당돌했다.분위기가 어색해질 무렵, 예수진은 바로 문 앞에 걸어가서 육현경을 덥석 붙잡았다.“오빠, 아니다. 아니다. 조카야, 왔어!”“...”육현경의 안색은 곧바로 어두워졌다.“빨리 들어와. 어서.”예수진은 거의 질질 끌면서 사람을 안쪽으로 잡아당겼다.육현경은 소파 앞으로 끌려갔다.예수진은 나머지 두 사람을 개의치 않고, 오늘의 주인공인 소이연을 신경 쓰지 않고 육현경을 소이연의 옆에 강제로 앉혔다.“오늘 이연 언니의 독신 파티 열던 중이었어.”예수진은 흥분해서 말했다.“우리 셋이서 한창 즐겁게 마시고 있던 참이야. 너도 몇 잔 해.”“수진아.”육현경은 이를 악물고 말했다.주변에 사람만 없었더라면 지금쯤 육현경은 예수진을 졸라 죽였을지도 모른다.“왜 나한테 화내고 그래. 다 널 좋아지라고 하는 거잖아!”예수진은 화가 나서 말했다.“
‘목숨에 새길 정도로 좋아하는데, 진짜 이연 언니가 다른 남자의 품에 안기는 걸 눈 뜨고 지켜볼 수 있을까?!’육현경은 소이연과 더 군말하고 싶지 않아 물었다.“너 갈 거야 안 갈 거야?”“벌써 가려고?”예수진은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나 할 일이 더 있어.”“술 좀 마셔.”예수진은 육현경의 옷깃을 붙잡고 놓지 않았다.“이왕 온 김에 우리랑 술 좀 마시다 가!”육현경은 예수진을 노려보았다.“우리 오랫동안 같이 술을 못 마셨잖아. 네가 드디어 살아 돌아왔는데 내 체면을 봐서 조금 마셔줘.”예수진은 술잔을 들어 육현경의 손에 쥐여주었다.육현경은 얼굴색이 어두워졌다.“별일 없으면 좀 앉아있다 가.”소이연이 말했다.“어차피 우리도 좀 있으면 돌아갈 거야.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하거든.”육현경은 가슴이 조금 조여들었다.그는 입술을 깨물고는 한마디 대답했다.“그래.”“쯧쯧!”예수진은 경멸스럽게 말했다.“내가 입이 닳도록 말해도 아무 소용없다가, 이연 언니가 한마디 하니까 듣는 것 봐!”“이게 바로 네가 원하던 그림 아니야?”하지수는 참지 못하고 하소연했다.예수진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그렇긴 해.”그리고 또 스스로 싱글벙글해졌다.“자자, 다들 한 잔씩 마셔요. 이연 언니의 마지막 독신을 위하여!”세 사람은 잔을 들었다.“빨리.”예수진은 육현경을 재촉했다.육현경은 어쩔 수 없이 술잔을 들었다.사실 그는 조금도 소이연의 마지막 독신을 축하해주고 싶지 않았다.그러나... 그는 이렇게 술잔을 들고 세 사람과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분명 조금만 더 마시기로 했는데, 인제 와서 흥이 올라오니 예수진은 만취하지 않으면 돌아가지 않겠다고 말을 바꿨다.어쨌든 예수진이 있는 술자리라면 두 사람 정도 만취하지 않으면 절대로 끝나지 않았다.육현경은 소이연이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하는데 만취하면 숙취 때문에 힘들어할까 봐 걱정도 되고, 또 예수진이 죽기 살기로 마시자고 하는 것도 도저히 당해 내지 못해 주동적으로 예수진과
육현경은 어리둥절해지더니 진짜 한눈에 보일 정도로 굳어있었다.이렇게 손을 내밀어 따뜻한 물을 받아보는 게 정말 오랜만이었다.소이연은 원래 물을 건네주는 행동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오늘 밤은 그녀의 독신 파티이고 육현경이 술을 마시러 왔으니, 그녀는 마땅히 정중하게 대해야 했다. 그러나 지금 육현경의 반응 때문에 그녀도 오히려 조금 어색해졌다.소이연은 물컵을 내려놓고 예수진과 하지수를 불러서 같이 떠나려고 하는 순간, 육현경은 물컵을 건네받았다.“고마워.”“... 괜찮아.”육현경은 손을 내밀어 물컵을 받을 때 진짜 뜻밖에 소이연의 손을 다쳤다.소이연은 별 반응 없이 자연스럽게 물컵을 놓았지만, 육현경은 놀라서 손을 움츠렸다.두 사람이 동시에 물컵을 놓아버리는 바람에 물컵 안의 물은 모두 육현경의 바지에 쏟았다.그리고 물컵은 쨍그랑 소리와 함께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두 사람은 이렇게 반 초 동안 멍해 있었다.“당신 괜찮아? 데이지 않았지?”소이연은 아주 자연스럽게 휴지를 가져다 그의 바지를 닦아주었다.육현경은 목젖을 굴렸다, 미친 듯이 굴렸다.그는 억제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소이연은 한참 닦아주다가 그제야 어딘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챘다.젖은 곳이 대부분 육현경의 바짓가랑이 부위였다...소이연은 황급히 손을 뗐지만, 육현경은 그녀의 손을 덥석 잡았다.소이연은 눈썹을 찌푸리고 육현경을 바라보았다.육현경은 눈시울이 붉어진 것 같았다. 눈시울뿐만 아니라 호흡도 뜨거워졌고, 전신이 뜨거워졌다.그녀는 육현경이 오늘 밤 술을 많이 마셨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일찍 끝낼 생각이었다.그러나 그녀는 줄곧 육현경이 술에 취해도 이상한 짓을 하지 않을 거로 생각했다.소이연은 육현경의 속박에서 벗어나려고 손을 빼보았지만, 육현경은 그녀를 자신의 품속으로 확 잡아당겼다.“현경...”말이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뜨거운 입술이 그녀의 입술에 무겁게 떨어졌다.그녀의 말은 입안에서 잘린 채 밖으로 새어 나오지 못했다.“읍...”
하지수는 혹시나 육현경이 소이연에게 더 하고 싶은 말이 있을까 봐, 두 사람만 남아있게 일부러 자리를 피해준 것이었다. 그러나 하지수는 두 사람이 얘기하다 말고 침대로 굴러갈 줄은 전혀 생각지 못했다.하지수는 지금 화장실에서 나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예수진은 원래 많이 취했었는데, 지금은 술이 확 깨고 흥분제를 맞은 것처럼 흥미진진하게 쳐다보고 있었다.‘이런 장면을 진짜 공짜로 봐도 되는 거야? 두 사람이 영화계에 진출하지 않은 게 참 안타깝네.’그녀는 심지어 마음속으로 두 사람이 진짜 더 해내려 간다면 계속 두고 봐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궁리하고 있었다...두 사람은 모두 조마조마하면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소파 위의 두 사람은 더욱 긴밀하게 얽혀 있었다.육현경의 입술은 소이연의 부드러운 입술에서 떨어져 그녀의 목을 입맞춤했고 뜨겁고 큰 손은 그녀의 옷 안으로 들어갔다...그녀의 브래지어를 벗기는 순간, 육현경의 몸이 갑자기 멈칫했다.갑자기 찬물을 끼얹은 듯 정신이 확 들었다.육현경은 소이연의 눈가에 맺힌 눈물 그리고 눈빛 속의 증오와 절망을 보았다.그녀는 입술을 꽉 깨물고 조금도 울부짖지 않았지만, 눈빛 속의 원망은 육현경의 영혼을 모조리 불태웠고 그에게 지금의 그가 얼마나 못되고 아니꼬운지를 알려주고 있었다.육현경은 소이연의 몸에서 벌떡 일어났다.마치 술이 확 깨고 갑자기 모든 이성을 되찾은 듯했다.‘내가 방금 왜 그런 짓을 한 거지? 방금 왜 이연이를 그렇게 강제로 몰아붙인 거지?’육현경은 진정하고 나니 방금 소이연을 어떻게 강요했는지 전부 기억났다.그는 자신이 왜 그렇게 통제력을 잃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왜 그렇게...육현경이 막 입을 열려고 하는 순간, 방문이 열렸다.계지원이 예수진을 데리러 온 것이었다.계지원은 예수진이 오늘 마음껏 달릴 것 같아 집에서 자지 않고 기다리다가 육현경의 메시지를 받자마자 부리나케 달려왔다.방문을 여는 순간, 계지원은 소파 위에 얽혀 있는 두 사
소이연은 옷차림을 단정히 하고는 일어서서 떠나려고 했다.“이연 언니.”예수진은 참지 못하고 화장실에서 뛰어나왔다.그녀는 비틀거리면서 나오더니 하마터면 소이연을 엎칠 뻔했다.“갈 거예요?”예수진은 소이연을 안고 놔주지 않았다.“응. 내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해서 두 사람도 일찍이 돌아가요.”“제가 바래다줄게요.”“수진 씨는 먼저 자기 앞가림이나 잘하세요.”소이연이 말했다.“지원 씨가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어요.”“잘됐네요. 지원 씨더러 나랑 같이 언니를 바래다주라고 할게요.”“내가 바래다줄게.”하지수가 입을 열었다.“너는 지원 씨랑 먼저 들어가. 너 지금 바로 걷지도 못 하잖아.”“싫어. 난...”“수진아, 착하지. 말 들어.”하지수는 엄숙하게 말했다.예수진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그녀도 소이연이랑 말을 몇 마디 더 나누고 싶었다.“그럼 난 먼저 이연 언니랑 간다.”하지수는 예수진을 아랑곳하지 않고 소이연과 함께 떠났다.방문을 열고 보니 계지원이 확실히 문 앞에 있었다.소이연이 나오는 것을 보니, 분위기는 조금 어색해졌다.“수진이가 많이 취했어요. 잘 부탁드려요.”오히려 소이연이 먼저 자연스럽게 말을 건넸다.“네. 제가 바래다 드릴까요?”“언니는 제가 바래다주면 돼요.”하지수가 얼른 대답하자 계지원도 별말 하지 않았다.계지원이 소이연을 바래다주는 건 솔직히 어색할 것이 뻔했다.소이연과 하지수가 떠나간 뒤, 계지원은 방 안으로 들어갔다.그러자 안에서 예수진이 비뚤비뚤하게 육현경의 옆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오빠, 너... 괜찮아?!”‘이제는 조카라고 안 부르네?!’계지원은 휠체어를 밀면서 들어가서는 그들 보고 일어나자고 재촉하지는 않았다.어차피 예수진의 간 기능이 아주 대단했기 때문이었다.오늘 저녁에 아무리 술이 떡이 되도록 마신다고 해도 그녀는 이튿날에 여전히 팔팔하게 뛰어다닐 수 있었다.정말로 천생으로 술을 잘 마시는 사람이었다.“현경아.”계지원은 육현경을 불렀다.“응.”육현경은 그의
“문수 씨.”하지수는 송문수의 이름을 불렀다. 그녀는 지금 송문수가 화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지만 송승우에게 무슨 일이라도 있으면...어쨌든 한 가족이 아닌가.그녀는 가정의 불화를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그래도 승우 오빠를 병원에 보내야 하잖아.”하지수는 큰 소리로 송문수에게 말하자 송문수는 발걸음을 멈추었다.사실 송승우는 별일 없었다. 송문수는 격투기를 배운 적이 있기에 사람의 어느 부위가 다치면 안 되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송승우를 이성을 잃을 정도로 때렸어도 급소를 때리지 않았다.하지수는 송문수의 대답을 듣지 못하자 다급히 핸드폰을 꺼내서 긴급구조 요청을 하였다.구급차를 기다리는 동안, 하지수는 송승우에게 다가가지 않았다.그녀는 멀지 않은 곳에 서서 바닥에 쓰러진 송승우를 바라보았다.송승우의 분노가 극도에 이르렀지만 송문수와 싸울 힘이 없었다.사실 하지수도 요새 송승우와 송문수가 자주 싸우는 이유를 몰랐다. 오늘은 벌써 두 번째였다.어렸을 때 두 형제의 관계가 그다지 친밀하지 않았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지금 어른이 되었는데 아직 유치하게 싸우다니!이윽고 구급차가 도착했고 구조대원들은 들것으로 송승우를 구급차에 태웠다.하지수도 따라서 올라탔지만 송문수는 타지 않았다.하지수는 잠시 망설이다가 내려와서 송문수를 잡아당겨서 같이 구급차에 올라탔다.구급차 안은 매우 조용하였다.아무도 말하지 않았고 차 안의 분위기에 아직 분노의 불꽃이 튕기는 것 같았다.병원에 도착한 후 송승우는 응급실로 옮겼다.하지수와 송문수는 로비에서 기다렸다. 송문수는 차가운 분위기를 풍기면서 한쪽에 서 있었다.사실 하지수는 송문수의 얼굴에도 상처가 있는 것을 보았다. “문수 씨도 얼굴과 몸에 난 상처를 검사하지 않을래?”“필요 없어. 외상이라 금방 나을 거야”송문수가 이렇게 말하자 하지수도 강요하지 않았다.잠시 후, 송승우는 응급실에서 나왔고 의사는 이렇게 말했다.“모두 외상이라 별문제가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지금 입원 수속
“놓지 못해?”송문수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하면서 송승우를 바라보았다.서로 마주 본 두 사람의 눈에는 분노로 가득 차 있었고 일촉즉발의 분위기였다.“이거 놔요.”하지수도 송승우의 손을 힘껏 뿌리쳤다. 그러자 송승우의 눈빛에 분노로 이글이글 타올랐다.그는 더욱 세게 하지수를 잡아당겼다.하지수는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아파요!”송문수의 안색이 더욱 어두워졌다.“놓으라고 했다!”그는 송승우의 팔을 끌어당기는 손에 힘을 꽉 주었다. 이에 송승우는 통증을 느꼈으나 승부욕 때문에 쉽게 놓을 수가 없었다.송문수가 힘을 줄수록 그도 더욱 힘을 줘서 하지수를 잡아당겼다.하지수는 너무 아파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송승우는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 “이걸 놔. 나와 지수의 일에 끼어들지 마.”“끼어들지 말라고?”송문수는 냉소를 지으면서 말했다.“형이 잊은 것 같은데 지수는 내 와이프야. 우린 부부이지만 형과 지수는 아무 사이도 아니잖아? 지금 형이 내 와이프를 데려가려고 하는데 나보고 끼어들지 말라고? 너무 뻔뻔하다고 생각하지 않아?”“너!”송문수의 쏘아붙인 말에 송승우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예전에 송승우는 하지수가 자신을 좋아했기 때문에 송문수를 안중에 넣지도 않았고 그들의 결혼 관계를 진지하게 생각한 적도 없었다.그러나 지금 송문수에게 이런 모욕을 당하다니!“지수가 좋아한 사람은 나야!”송승우는 수치심에 더 약이 올라서 노기어린 목소리로 외쳤다.하지수는 너무 아파서 반박할 힘도 없었고 송문수의 말이 들려왔다.“지수가 누구를 좋아하든 지금은 내 여자야. 누구도 데려갈 수 없고 누구도 지수를 괴롭힐 수 없다고! 셋까지 셀 테니 지수를 놓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송승우는 끄덕하지도 않고 송문수를 노려보았다.“하나.”“둘.”송문수는 ‘셋’을 세는 대신 주먹을 들고 송승우의 얼굴을 세게 강타했다.송문수의 한 방을 맞은 송승우는 코피를 흘렸고 아픔으로 이내 하지수를 놓아주었다.그러나 송승우는 소심한 사람이었다. 그는 늘
‘내가 자기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는 건가?’“승우 씨, 사과 따위 이제 필요 없어요. 지금 제가 바라는 건 아무 탈 없이 우리 사이의 관계를 끝내는 거예요. 승우 씨는 문수 씨 형이잖아요. 게다가 저도 어릴 때부터 송씨 가문에서 자란 사람이고요. 그러니까 우리 그냥 친척 같은 관계로 돌아갔으면 좋겠어요.”하지수는 인내심을 가지고 진지하게 말했다.송승우는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며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하지수는 더 이상 그와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망상에 빠진 사람은 무슨 말을 하든 헤어 나올 수 없다고 생각했기에 그녀는 자신의 마음을 표현했으니 그걸로 됐다고 생각했다.하지수는 뒤를 돌아 송문수 쪽으로 다가가려 했다. 늦은 시간이었고 그녀도 여전히 많이 피곤했다. 송문수랑 같이 집으로 가서 자고 싶었다.크레지가 아직 오지 않은 이상, 기술 투자 계약서에 사인하지 않은 이상 방심할 수는 없었다. 그들은 짬짬이 시간을 내서 잠을 잘 수밖에 없었다.그런데 막 돌아서려는 순간, 그녀의 손은 또다시 송승우에 의해 붙잡혔다.하지수가 아무리 팔을 흔들어도 벗어날 수 없었다.송문수는 차가운 눈빛으로 송승우의 행동을 지켜보며 주먹을 꽉 움켜잡았다.그가 앞으로 다가가 하지수를 데려오려던 순간, 송승우가 갑자기 말했다.“지수 씨, 방금 당신의 행동은 모든 걸 말해줬어요!”“무슨 행동이요?”하지수는 이해할 수 없었다.“방금 제가 불렀을 때, 제 쪽으로 다가왔잖아요. 그게 지수 씨 마음속에 있는 진심이에요. 더 이상 숨기지 말고 저한테로 오세요. 하지수 씨, 제가 잘 해줄게요. 지수 씨를 혼자 두는 일은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을 거예요. 제가 맹세할게요...”“아니요.”하지수는 단칼에 거절해 버렸다.하지수를 바라보는 송승우의 눈빛은 분노로 가득 찼다.“승우 씨가 불었을 때 따라간 건 무의식적으로 간 거예요. 잠에서 덜 깬 상태라서 누가 불렀어도 갔을 거예요. 승우 씨인 줄도 몰랐어요. 하지만 인정할 건 인정할게요. 낯선 목
송문수는 하지수가 일어나서 송승우 쪽으로 걸어가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다.송승우는 입가에 미소를 띠며 생각했다.‘그래, 지수 씨도 아직 날 신경 쓰고 있다니까. 숨기려 해도 어떻게 숨기겠어? 이런 상태에서야 비로소 진심이 드러나는 거지.’송문수는 멀어져 가는 하지수를 잡으려 손을 뻗었지만 그녀의 옷자락에 손이 닿았을 때 살짝 멈칫했다. 하지수를 강제로 붙잡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사실 그는 항상 하지수의 선택을 존중해 왔다. 지금까지 변함없이 말이다.하지수는 송승우 앞으로 걸어갔고 송승우가 먼저 손을 뻗더니 그녀를 끌어당기려 했다.그러나 그가 손을 뻗자 하지수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승우 씨?”그녀는 그제야 앞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깨달았다.조금 전까지 어지럽고 혼란스러웠던 상황이 이제와사 분명해졌다.그녀는 자신이 언제 잠에 들었는지도 몰랐다. 그저 너무 피곤해서 머리가 흐릿할 뿐이었다.“너무 늦었어요. 제가 데려다줄게요.”송승우가 그녀를 끌고 나가려고 하자 하지수는 급히 그의 손을 쳐내며 말했다.그러자 송승우는 눈살을 찌푸렸다.“아까는 잠에서 덜 깨서 그랬어요. 전 문수 씨랑 같이 갈 거예요.”“뭐라고요?”송승우는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언제까지 연기할 거예요?”“네?”하지수는 눈살을 찌푸리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송승우가 왜 갑자기 화를 내는지 알 수 없었다.“저를 놀리는 게 재밌으세요?”송승우가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저... 저는 그런 게 아니라...”하지수는 당황해하며 말을 더듬었다.그러자 송승우가 입을 열었다.“알겠어요. 제가 잘못한 걸로 하죠.”그가 갑작스레 사과를 하자 하지수는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그녀는 송승우가 왜 갑자기 사과를 한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왜 사과를 하는 거야?’“미안했어요. 어쩔 수 없이 떠난 거라고는 하지만 우리 결혼식에도 참석하지 못했잖아요. 결혼식장에 지수 씨 혼자 남겨두고 간 건 제 잘못이에요. 미안해요.”하지수는 그제야 무슨 말인지 이해했
하지수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심장은 여전히 빨리 뛰고 있었다.그녀는 전혀 말을 듣지 않는 심장을 진정시키려 애썼다. 만약 누군가 들어오지 않았더라면 이 어색한 상황이 얼마나 계속될지 알 수 없었다.‘문수 씨도 부끄러워하는 건가?’하지수는 입술을 꽉 깨물며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려 애썼다. 갑자기 웃음이 터져 나올까 봐 걱정이었다.하지수는 소파에 앉아 몰래 송문수를 쳐다보았다.그는 그저 고위직 직원의 얘기를 듣고만 있을 뿐, 전혀 불편해 보이지 않았다.그녀는 깊게 숨을 쉬었다.‘단지 어색해서 그런 건가?’송문수는 언제나 체면을 중시하는 사람이었으니 말이다.‘해명하려 하지 않는 것도 결국 체면을 세우려고 그러는 건가?’하지수는 너무 많은 기대를 해선 안 된다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다잡았다....크레지를 맞이하기 위해 모든 관련 부서가 계속해서 야근을 하고 있었다.송문수와 하지수 역시 마찬가지였다.그들은 끊임없이 회의를 열고 논의하며 최대한의 성의를 보이기 위해 애썼다.새벽 2시가 되었지만 송문수는 아직 퇴근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방금까지도 각 부서와 회의를 하면서 협력 계획과 판매 계획을 다시 수정하고 보완했다.회의가 끝난 후에도 송문수는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는 계속 바쁘게 일하고 있었다.송문수는 그제야 그의 확인이 필요한 문서들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무슨 서류든 제대로 보지 않고 사인을 해버렸었다. 하지만 이젠 점점 더 신중해졌고 모든 서류를 꼼꼼히 확인하고 나서야 사인을 했다.그 덕에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고 오늘 하루 동안의 모든 서류를 처리하고 나서야 송문수는 퇴근을 하려고 하지수를 쳐다봤다. 그러자 그녀는 이미 소파에 기대어 잠들어 있는 것이었다.하지수는 잠이 많은 사람은 아니었다. 송문수의 기억 속에 하지수는 늘 자신보다 일찍 일어나는 사람이었고 절대 늦잠을 자지 않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소파에 기대어 잠들어 있었다.‘많이 피곤한 걸까?’자세히 생각해 보니 그들은 지난 일주일 동안 계속해서 야
송문수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크게 티가 나지는 않았지만 그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밝아졌다는 건 알 수 있었다.하지수는 송문수를 더 방해하지 않으려 했다. 송문수가 점점 더 발전하는 걸 보면서 하지수도 그를 더 지지해 주고 싶었고 송문수로 하여금 업무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하지수는 옆에 있는 소파로 가서 노트북을 들고 업무를 처리하기 시작했다.그리고는 습관처럼 회사의 공식 채팅방에 들어갔다.그녀는 비록 알림을 꺼 놓았지만 회사의 공식 채팅방에 메시지가 있으면 항상 첫 번째로 확인하곤 했다.그런데 그때, 그룹 채팅에 있는 메시지를 본 하지수는 깜짝 놀랐다. 그녀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아마 이 상황을 믿기 어려워할 것이었다.송문수가 회사의 공식 채팅방에 ‘하지수’라는 이름을 여러 번 보낸 것이었다.하지수는 고개를 들어 송문수를 바라보았다.그는 진지하게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채팅방에는 여전히 ‘하지수’라는 이름이 올라오고 있었다.“문수 씨, 컴퓨터 바이러스에 걸린 거 아니야?”하지수가 물었다.“어?”송문수는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했다.하지수는 송문수 앞에 서서 그의 컴퓨터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화면에는 타자를 해놓고 아직 보내지 않은 ‘하지수’도 있었다.송문수도 그제야 자신이 채팅방에 ‘하지수’라는 이름을 여러 번 입력했다는 것을 깨달았다.그 자신도 놀란 듯했다. 그는 자신이 타자를 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의식하지 못했던 것이다.하지만 방금 그의 머릿속이 온통 하지수로 가득 찬 건 사실이었다.그때, 채팅방에서 누군가 메시지를 보냈다.[회장님 지금 하 매니저님한테 애교 부리는 거야? 그걸 실수로 단체 채팅방에 보낸 거고?]메시지는 보내지자마자 삭제되었고 밖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나도 잘못 보냈네!”그룹 채팅에 두 개의 삭제 기록이 나타났다.송문수는 멍하니 앉아 있다가 그제야 메시지를 삭제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그는 ‘하지수’라는 메시지들을 삭제하려 했지만 이미 메시지를 취소할 수 있는 시간이
송승우는 이를 꽉 악물었다. 그는 하지수를 절대로 포기할 수 없었다. 그는 하지수에게 송문수를 고른 게 얼마나 잘못된 선택이었는지 반드시 알게 해주겠다고 결심했다. 그녀로 하여금 후회하도록 만들겠다고 다짐했다....하지수는 송승우의 사무실을 떠나 바로 송문수의 사무실로 갔다.송문수는 업무에 몰두해 있었다.회사에 들어선 순간부터 그는 자유시간이 없었고 퇴근 후에도 여전히 업무와 관련된 일들을 처리하고 있었다.하지수는 송문수가 많이 변했다고 느꼈다. 그녀는 하느님도 부지런한 사람을 도울 거라 믿으며 송문수가 앞으로 큰 성과를 낼 것이라고 확신했다.“형이 뭐라고 했어?”송문수는 그녀를 한 번 쳐다보며 차갑게 물었다.“자기 개인 비서로 되어달라고 하더라고.”하지수는 송문수에게 숨기지 않고 말했다. 그녀는 더 이상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을 그에게 숨기고 싶지 않았다.송문수랑 같이 오랫동안 시간을 보내고 싶었기에 최대한 마음을 다할 생각이었다.송문수는 멈칫하더니 코웃음을 치더니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녀가 어떻게 대답했는지 알고 싶지 않아 하는 것 같았다. 어쩌면 하지수가 그 제안을 무조건 받아들였을 거라고 여겼는지도 모른다.‘지수가 형 요구를 거절한 적은 한 번도 없는데 이번에도 알겠다고 했겠지...’이렇게 생각한 송문수는 일에 더 집중하려 애썼다. 회사 일을 제대로 해내기로 결심한 이상 중간에 포기할 생각은 없었으니 말이다.“거절했어.”하지수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송문수는 가슴이 약간 두근거리는 걸 느꼈다.분명 그녀의 말에 설렌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겉으로 티 내지 않으려 했다.그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척 계속해서 서류를 보고 있었다.반면, 하지수는 송문수에게 그 어떤 반응도 기대하지 않았다. 어차피 송문수는 자기한테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저 자신의 결정을 그에게 알리고 싶었을 뿐이었다.“왜 거절했는데?”송문수가 차분하게 물었다.“문수 씨한테 내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으니까.”하지수는 웃으며
하지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송승우를 바라보았다.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말이다.어린 시절 그녀는 항상 송승우를 믿었고 그가 자기를 보호해 줄 거라 생각했었다. 송승우는 같은 또래 친구들보다 성숙하고 머리가 좋다고 생각했었다.하지만 순간, 그녀는 자신이 송승우에 대해 뭔가 오해를 하고 있었던 건 아닌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게다가 그가 지금 하는 행동이 너무 유치해서 하지수는 어떻게 거절해야 할지 몰랐다.그녀는 이해할 수 없었다.‘어떻게 이런 말을 그렇게 쉽게 할 수 있지?’송승우는 하지수와 송문수의 관계를 알고 있었다. 하지수가 몇 번이나 말했으니 모를 리 없었다. 지금은 송문수와 잘 지내고 있고 송승우와의 관계는 이미 끝난 거라고 말이다.그리고 송문수가 지금 송씨 그룹의 대리 회장직을 맡고 있다는 것도 분명 알고 있었다. 송문수의 결정이 회사의 발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도 말이다. 송문수한테 도움이 더 필요했고 송문수가 받는 스트레스가 더 많았다.‘생각이 없는 건가? 어쩌면 이렇게 이기적인 말을 할 수 있는 거지?’“왜요? 제가 무슨 어려운 부탁이라도 했나요?”송승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하지수를 바라보며 안색이 조금 어두워졌다.“승우 씨, 정말 제대로 일하려고 온 거 맞아요? 아니면 그냥 문수 씨를 못 믿어서 온 건가요? 문수 씨가 회사를 잘 관리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 감시하러 온 거냐고요!”“당연히 일하러 온 거죠. 아니면 왜 연구소 일까지 내려놓고 회사로 왔겠어요! 그리고 또...”“아까 지수 씨가 그러셨잖아요. 송문수를 못 믿냐고요. 맞아요. 전 송문수 그 자식 못 믿어요. 송문수가 회사를 제대로 이끌 수 있을지 제가 어떻게 알아요? 성과를 하나 냈다고 교만해져서 마음대로 하려 할 겁니다.”“갑자기 드는 생각인데요. 승우 씨는 왜 그렇게 문수 씨 잘되는 꼴을 못 보는 거예요?”하지수는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그게 아니라면 왜 문수 씨를 그렇게 모욕하고 내 곁에서 떼어놓으려 하겠어...’하지수의 능력이 얼마나
짧은 시간이었기에 송문수가 회사의 대체적인 상황을 잘 파악한 것만으로 대단한 것이었다. 게다가 이는 단지 송문수에게 회사를 관리하는 재능이 있어서 해낸 것이라고 단정 지을 수도 없었다.송문수가 매일 얼마나 열심히 일하고 있는지 하지수는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항상 그는 조금이라도 여유가 생기면 회사를 어떻게 운영해야 하는지 연구하면서 시간을 보냈고 지어는 날마다 새벽까지 야근을 하다가 집에 돌아갔다. 게다가 차에서 보는 서류들도 모두 송씨 그룹과 관련된 문서였다.송문수는 원래 시간만 나면 게임을 하거나 먹고 자고 놀기만 했던 사람이었다. 얼마 안 되는 사이에 송문수는 정말로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된 것 같았다....송문수의 말대로 하지수는 다음 주에 회사로 찾아올 크레지를 위해 연관 업무에 대한 계획을 세웠다.송문수와 하지수가 일 처리를 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이사님들도 점점 두 사람을 인정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이 맡긴 업무에 대해 불평이나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고 바로 행동에 옮기기만 했다.그러면서 송문수와 하지수의 업무 부담도 줄어들었고 회사도 더 원활하게 운영되고 있었다.회의가 끝난 후, 하지수는 송문수를 따라 그의 사무실로 갔다.요즘 들어서 그녀는 송문수의 사무실에서 일을 하는 것에 익숙해졌던 것이다. 송문수는 자주 회사의 전문 용어나 이해할 수 없는 마케팅 계획에 대해 물었고 그녀는 언제 어디서든 그가 묻는 말에 답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두 사람은 서로의 사무실을 오가는 시간을 절약할 수 있었다.“지수 씨, 잠깐 제 사무실로 올 수 있으세요?”그때, 송승우가 갑자기 하지수를 불렀다.하지수는 발걸음을 멈추고 잠시 망설였다. 그녀는 송문수를 한 번 바라보았다.“네 마음대로 해.”송문수는 이렇게 말하고 큰 걸음으로 사무실을 떠났다. 질투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어 보이는 송문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하지수는 속으로 약간 허탈감을 느꼈다.송문수가 많이 변한 건 사실이었지만 하지수에 대한 감정은 별로 진전이 없는 것 같았다. 물론 그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