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수는 혹시나 육현경이 소이연에게 더 하고 싶은 말이 있을까 봐, 두 사람만 남아있게 일부러 자리를 피해준 것이었다. 그러나 하지수는 두 사람이 얘기하다 말고 침대로 굴러갈 줄은 전혀 생각지 못했다.하지수는 지금 화장실에서 나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예수진은 원래 많이 취했었는데, 지금은 술이 확 깨고 흥분제를 맞은 것처럼 흥미진진하게 쳐다보고 있었다.‘이런 장면을 진짜 공짜로 봐도 되는 거야? 두 사람이 영화계에 진출하지 않은 게 참 안타깝네.’그녀는 심지어 마음속으로 두 사람이 진짜 더 해내려 간다면 계속 두고 봐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궁리하고 있었다...두 사람은 모두 조마조마하면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소파 위의 두 사람은 더욱 긴밀하게 얽혀 있었다.육현경의 입술은 소이연의 부드러운 입술에서 떨어져 그녀의 목을 입맞춤했고 뜨겁고 큰 손은 그녀의 옷 안으로 들어갔다...그녀의 브래지어를 벗기는 순간, 육현경의 몸이 갑자기 멈칫했다.갑자기 찬물을 끼얹은 듯 정신이 확 들었다.육현경은 소이연의 눈가에 맺힌 눈물 그리고 눈빛 속의 증오와 절망을 보았다.그녀는 입술을 꽉 깨물고 조금도 울부짖지 않았지만, 눈빛 속의 원망은 육현경의 영혼을 모조리 불태웠고 그에게 지금의 그가 얼마나 못되고 아니꼬운지를 알려주고 있었다.육현경은 소이연의 몸에서 벌떡 일어났다.마치 술이 확 깨고 갑자기 모든 이성을 되찾은 듯했다.‘내가 방금 왜 그런 짓을 한 거지? 방금 왜 이연이를 그렇게 강제로 몰아붙인 거지?’육현경은 진정하고 나니 방금 소이연을 어떻게 강요했는지 전부 기억났다.그는 자신이 왜 그렇게 통제력을 잃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왜 그렇게...육현경이 막 입을 열려고 하는 순간, 방문이 열렸다.계지원이 예수진을 데리러 온 것이었다.계지원은 예수진이 오늘 마음껏 달릴 것 같아 집에서 자지 않고 기다리다가 육현경의 메시지를 받자마자 부리나케 달려왔다.방문을 여는 순간, 계지원은 소파 위에 얽혀 있는 두 사
소이연은 옷차림을 단정히 하고는 일어서서 떠나려고 했다.“이연 언니.”예수진은 참지 못하고 화장실에서 뛰어나왔다.그녀는 비틀거리면서 나오더니 하마터면 소이연을 엎칠 뻔했다.“갈 거예요?”예수진은 소이연을 안고 놔주지 않았다.“응. 내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해서 두 사람도 일찍이 돌아가요.”“제가 바래다줄게요.”“수진 씨는 먼저 자기 앞가림이나 잘하세요.”소이연이 말했다.“지원 씨가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어요.”“잘됐네요. 지원 씨더러 나랑 같이 언니를 바래다주라고 할게요.”“내가 바래다줄게.”하지수가 입을 열었다.“너는 지원 씨랑 먼저 들어가. 너 지금 바로 걷지도 못 하잖아.”“싫어. 난...”“수진아, 착하지. 말 들어.”하지수는 엄숙하게 말했다.예수진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그녀도 소이연이랑 말을 몇 마디 더 나누고 싶었다.“그럼 난 먼저 이연 언니랑 간다.”하지수는 예수진을 아랑곳하지 않고 소이연과 함께 떠났다.방문을 열고 보니 계지원이 확실히 문 앞에 있었다.소이연이 나오는 것을 보니, 분위기는 조금 어색해졌다.“수진이가 많이 취했어요. 잘 부탁드려요.”오히려 소이연이 먼저 자연스럽게 말을 건넸다.“네. 제가 바래다 드릴까요?”“언니는 제가 바래다주면 돼요.”하지수가 얼른 대답하자 계지원도 별말 하지 않았다.계지원이 소이연을 바래다주는 건 솔직히 어색할 것이 뻔했다.소이연과 하지수가 떠나간 뒤, 계지원은 방 안으로 들어갔다.그러자 안에서 예수진이 비뚤비뚤하게 육현경의 옆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오빠, 너... 괜찮아?!”‘이제는 조카라고 안 부르네?!’계지원은 휠체어를 밀면서 들어가서는 그들 보고 일어나자고 재촉하지는 않았다.어차피 예수진의 간 기능이 아주 대단했기 때문이었다.오늘 저녁에 아무리 술이 떡이 되도록 마신다고 해도 그녀는 이튿날에 여전히 팔팔하게 뛰어다닐 수 있었다.정말로 천생으로 술을 잘 마시는 사람이었다.“현경아.”계지원은 육현경을 불렀다.“응.”육현경은 그의
“내가 언제 당신이 싫증이 났고 했어? 난 그저 이번 일에서 당신의 처사가 온당치 않다고 했을 뿐이야. 이연 씨의 마음을 뻔히 알면서...”“그래! 못마땅하면 이혼하든가!”예수진은 분노하며 말했다.“예수진!”“이것 봐. 나한테 화까지 낸다니! 역시 남자들은 다 똑같다니까. 손에 넣고 나면 아낄 줄을 몰라. 당신 또 예전처럼 나랑 키스해 놓고 뒤돌아서서 다른 여자랑 같이 있을 거지!”“예전 일은 내가 다 설명했었잖아. 그건 우리 관계가 갑작스럽게 변했다는 것을 알았으니까...”“다 핑계잖아!”예수진은 계지원의 말을 아예 듣지 않았다.“계지원, 나 오늘 정말 당신을 똑똑히 봤어. 우리 이혼해. 당장 가서 이혼해!”“예수진, 당신 그 입 다물어. 한 번만 다시 이혼 얘기를 꺼냈다가는 내가, 내가...”“당신 나한테 손찌검까지 하려는 거지? 좋아. 어디 한 번 나를 때려봐. 때리기만 하면 바로 당신을 경찰에 신고해 버릴 거야. 그리고 인터넷에 당신을 다 까밝힐 거야. 다시는 연예계에 발을 내디딜 수 없게... 웁!”예수진은 눈이 휘둥그레졌다.‘계지원 이 자식이 감히, 감히 사람들 앞에서 나에게 키스하다니. 현경 오빠도 아직 있는데?!’예수진은 몸을 비틀며 발버둥을 쳤다.하지만 그녀가 반항할수록 계지원은 더 힘을 주면서 그녀를 꽉 가두고는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흑흑, 계지원은 하나도 다정하지 않아.’예수진은 엄청나게 억울했다.육현경은 술잔을 내려놓고 묵묵히 자리를 떴다.그는 이미 마음이 만신창이인데 갑작스럽게 남의 사랑 현장까지 보게 되었다...온 세상에서 마치 육현경 혼자만 불행해 보였다....예수진은 계지원의 키스 때문에 입술까지 부었다.“이혼한다는 소리를 계속할 거야?”계지원은 협박하였다.“...”예수진은 감히 얘기를 꺼내지 못했다.또 말했다가는 계지원한테 물어뜯길까 봐 두려웠다.비록 그녀는 마음속으로 억울했지만, 어딘가 모르게 또 달콤했다.‘지원 오빠는 설마 내가 오빠를 버릴까 봐 엄청나게 두려운 걸까...’
소이연은 고개를 저었다. 그저 말없이 고개만 설레설레 저었다.이 순간 소이연은 하지수에게 자기의 결심을 보여주는 것인지 아니면 자기 자신에게 보여주는 것인지 모른 채 고개를 저었다.“이연 언니, 정말로 자신을 그렇게까지 자제할 필요가 없어요. 지금 언니가 하는 모든 선택은 당신 앞으로의 인생을 결정 지을 거예요. 그러니...”하지수는 소이연을 설득하려 했지만, 소이연는 바로 그녀의 말을 잘라버렸다.“지수 씨, 저는 제가 무슨 선택을 하고 있는지 잘 알아요.”“언니가 이성적으로 내린 결정이라는 것을 잘 알아요. 그리고 언니도 자신의 선택대로 열심히 살아갈 것이며 잘 살 거라는 것도 잘 알아요. 문헌 씨도 확실히 좋은 사람이고 나무랄 데 없는 남자죠. 문헌 씨에게 시집가면 언니가 행복할 수도 있고 두 사람이 앞으로 잘 살 거라고 믿어요. 하지만 언니, 정말로 아쉽지 않겠어요? 갑자기 어느 날, 그때 그 순간을 떠올리면 그 사람이 생각나지 않겠어요?”“네. 저는 안 그럴 거예요..”소이연은 확신에 찬 말투로 말했다.하지수는 그런 소이연을 바라보았다.“지수 씨, 고마워요.”소이연이 말했다.“지수 씨가 얘기한 것 저도 생각해 본 적이 있어요.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떠오를 그런 감정은 제가 지금의 모든 것을 포기할 만큼 가치가 있지는 않아요.”하지수는 입술을 오므렸다.그녀는 당연히 지금 소이연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 알아들었다.지금 소이연의 말은 비록 육현경에게 감정이 남아있지만, 그녀의 마음속에 있는 견고한 신념에 비하면 그 감정들은 보잘것없다는 말이었다.더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육현경은 그녀가 지금 겪었던 모든 것들을 포기할 만큼의 가치가 있지는 않다는 말이었다.사실 하지수는 소이연과 육현경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른다. 아마도 육현경이 정말 소이연을 실망하게 했으며 용서할 기회도 주지 않을 만큼 실망했다는 것 정도로 알고 있었다.“지수 씨와 저, 그리고 수진 씨 세 사람 중에 저희 두 사람의 성격이 더 비슷하잖아요. 그래서 많은
하지수도 옆에서 어이가 없었다.“이연 언니가 너보다 이쁜 게 어디 하루 이틀이야. 넌 왜 언니 결혼식 날까지 그걸 따지는데?”“난 천성이 지고 못 사는 연예인이야.”예수진은 득의양양해하며 말했다.소이연과 하지수는 이 말에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사실 어젯밤 다들 늦게 잠들었다.소이연은 아마 두 사람보다 더 늦게 잠들었을 것이었다.많은 것들이...어찌 됐든 이 순간은 예수진의 개그 때문에 정신이 조금 말짱해졌다.예수진은 깊게 숨을 한번 내쉬고 말했다.“저는 먼저 가서 찬물에 세수 좀 하고 올게요. 꼭 저를 선녀처럼 엄청나게 예쁘게 꾸며주셔야 해요. 알겠죠?”“수진 아가씨는 쌩얼도 예쁘십니다.”메이크업 선생님은 꿀 발린 말을 하였다.“말을 이쁘게 잘하시네요. 조금 있다가 이연 언니보고 보너스를 톡톡히 준비해 주라고 할게요.”“수진 아가씨, 이연 아가씨 고맙습니다.”이른 아침의 방안은 순간 시끌벅적해졌다.아침 8시가 좀 넘어서 소이연은 화장을 끝마쳤다.예수진과 하지수도 거의 준비가 다 되었다.오늘의 신부 들러리 복장은 정말 조금도 신부 복장보다 평범하지 않았다.신부 복장은 흰색 드레스였고 뒷자락이 길게 땅에 드리웠으며 치마에는 수많은 작은 보석들이 박혀있었다. 드레스는 보기에 엄청 온화하고 고급스러웠으면서도 생동감 있고 매혹적이었다. 게다가 소이연의 절세 미모까지 더해지니 정말 아름답기 그지없었다.신부 들러리 복장도 흰색 드레스였는데 치마 끝자락이 길지 않았다. 드레스에도 작은 보석들이 박혀있었으며 불빛 아래서 반짝반짝 빛이 났다.예수진은 한참 동안 거울 앞에서 우쭐대면서 자기 드레스를 보며 말했다.“이연 언니, 저랑 지수가 언니의 기세를 꺾을 것이 전혀 두렵지 않아요? 왜 이렇게 예쁜 옷을 준비해 줘요?”“이연 언니는 자신의 미모에 대해 아주 높은 인지를 하고 있어.”하지수는 웃으며 예수진의 말에 대답했다.사실 그녀도 마음속으로 엄청나게 기뻐했다.아무리 엄숙한 여자일지라도 이쁜 옷을 보면 마음속에서 우러나는 좋아하는 마
“문 열어요!”심문헌이 문을 두드렸다.밖에서도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렸다.“심문헌 씨, 우리 이연 언니한테 장가들기 쉬운 줄 알아요?”예수진은 문 앞에서 큰 소리로 말했는데 결혼하는 사람처럼 흥분했다.“알려주세요. 제가 뭐하면 될까요?”심문헌은 의기양양해서 물었다.“먼저 성의를 보여주세요.”“문을 열어야 제가 성의를 보여드리죠.”“그건 안 돼요. 제가 문을 열면 바로 달려들어 갈 거잖아요. 거칠게 나올 거 알거든요.”예수진은 얼렁뚱땅 넘어가지 않았다.문 앞에 확실히 많은 친구와 지인이 모여있었고 대부분이 심문헌 쪽의 친구였다.예수진이 문을 열어주면 한 무리의 사람이 날강도처럼 달려들어 문을 열어 부술 것이었다.“문을 안 열어주면 제가 어떻게 성의를 보여드리죠?”“심문헌 씨, 지금 시대가 얼마나 발달했는데요. 카카오톡이라는 게 있을 텐데요!”“근데 제가 수진 씨의 카톡이 없어요.”“지금 추가하면 되죠?”심문헌은 하는 수 없이 큰 소리로 물었다.“카톡 계정이 어떻게 되는데요?”예수진은 자신의 카톡 계정을 심문헌에게 알려주었고 곧 심문헌의 친구 추가 신청을 받았다.예수진은 얼른 친구 추가 신청을 통과했다.통과하자마자 심문헌은 백화점 상품권, 문화 상품권 등 선물을 가득 보냈다.예수진은 선물을 일일이 받으면서 감탄했다.“심문헌 씨, 통이 아주 크네요. 이연 언니한테 장가들기 위해 성의를 두둑이 보여주네요! 자자, 우리끼리 먼저 이 선물을 나누고 나서 다시 얘기해요.”한참 지나 방안에 사람이 선물을 서로 나눠 가졌다.심문헌이 또 문을 두드렸다.“예수진 씨, 저의 성의도 받았으니 이제 문을 열어주시면 안 돼요?”“심문헌 씨의 성의를 확인한 후에 어떻게 해야 이연 언니한테 장가들 수 있는지 말해준다고만 했지, 문을 열어준다고는 안 했어요.”“그래요. 그럼, 지금 제가 뭘 더 해야 하는지 알려 주시는 건가요?”심문헌은 화를 내지 않고 아주 협조적인 태도로 맞장구를 쳤다.“문 앞에 스태프가 있을 거예요. 보이시나요?”“스태
심문헌은 빨갛게 무르익은 고추를 잡고 심호흡을 한번 하고는 한입 먹었다.“너무 매워!”심문헌은 입에서 불이 날 정도로 매운맛에 시달려 문 앞에서 발을 동동 굴렀다.모든 사람이 그의 모습에 숨넘어갈 듯이 웃었다.분위기가 매우 좋았다.“문헌 씨, 얼른 물 좀 마셔요.”소이연은 심문헌이 매운맛에 약한 걸 알기에 화면에 대고 다급하게 말했다.“물물물!”심문헌은 목구멍에 불이 난 것처럼 매워서 여기저기 물을 찾았다.이때 가늘고 긴 손이 물을 한 잔 건넸다.얼굴이 화면에 나타나지 않은 탓에 물을 건넨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본 사람이 전혀 없었다.오직 소이연만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심문헌은 물을 마시고 나서 한참 후에야 진정하고는 예수진에게 물었다.“수진 씨, 이제 됐나요?”“당연히 안 됐죠.”소이연은 단칼에 거절했다.심문헌은 피를 토하는 심정이었다.“수진 씨, 뭘 더 해야 하는데요?”“우리 이연 언니한테 장가드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인 줄 알았어요?”예수진은 또 이 말을 반복했다.“수진아, 장난 좀 그만 치자.”화면에 갑자기 계지원의 모습이 나타났다.예수진은 멈칫했다.‘지원 씨가 왜 여기 있지?!’예수진은 오늘 아침에 계지원 대신 기사더러 결혼식 장소에 데려다주게 했다.“난 장난치고 있는 게 아니라 심문헌 씨가 이연 언니의 남편이 될 수 있는지 없는지 열심히 테스트하는 중이야.”예수진은 억울한 말투로 말했다.“저는 괜찮아요. 계속하세요.”심문헌이 얼른 말하자 예수진은 득의양양하게 웃으면서 말했다.“봐봐. 이런 사람이 좋은 남편이지. 누구처럼 결혼식도 아까워서 안 올려주는 사람이랑은 완전 다르게.”계지원은 조금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다행히도 예수진은 분위기를 잘 조절하는 사람이어서 바로 주의력을 다른 곳으로 돌리며 큰 소리로 말했다.“심문헌 씨, 조금 전의 테스트는 인생의 온갖 고초를 맛보는 거였어요. 근데 그 전에 건강한 신체가 있어야 사랑하는 이연 언니랑 백년해로할 수 있지 않겠어요?”“그럼요!”심문헌은 힘 있게
심문헌이 반응하기도 전에 천우진은 이미 바닥에 엎드려 빠른 속도로 팔 굽혀 펴기를 하기 시작했다.천우진의 속도는 심문헌보다 2배 빨랐다.분명 20여 개만 더 하면 되는데 천우진은 아예 20개를 덧붙여 50개를 채웠다.주위의 사람은 모두 재미나게 구경하느라 시끌벅적했다.예수진은 천우진의 행동에 홀려 말했다.“몰라봤네요. 천씨 가문의 도련님이 어린 나이도 아닌데 제법이네요! 복근이 몇 조각 있을까요? 여덟 조각?!”예수진의 목소리는 작지 않았기에 방금 한 말은 모두 영상통화에 담겼다.바깥의 사람은 모두 웃음꽃을 피웠고 천우진더러 옷을 들어 보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그만 장난쳐요...”심문헌은 천우진을 감쌌다.심문헌은 자기 대신 팔 굽혀 펴기를 해준 천우진을 감싸줘야 한다고 생각했다.말이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천우진은 옷을 걷어 올려 이미 완전히 충혈된 여덟 조각의 복근을 드러냈다.“우와!”예수진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소리쳤다.천우진의 몸매가 이렇게 좋을 줄이야.그녀는 늘 천우진은 우아하고 점잖은 그런 양반일 거로 생각했다.사실 예수진은 천우진이 왜 결혼식에 왔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니 모두 명문가이니, 심문헌이 의례적으로 초대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다만 심문헌과 천우진의 관계가 이렇게 좋은지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수진아, 눈빛 좀 거둬.”영상통화에서 계지원의 엄숙한 말소리가 전해졌다.예수진은 얼른 눈길을 돌렸다.그녀는 하마터면 자기 남편도 밖에 있다는 것을 깜빡 잊을 뻔했다.“수진 씨, 이제 문헌 씨를 들여보낼 수 있나요?”천우진은 웃옷을 정리하고 예수진에게 물었다.“근데 제가 다른 사람이 도와줘도 된다고는 안 했던 거 같은데요?”예수진은 웃으면서 말했다.“진짜 친구분더러 신혼 첫날 밤에 신랑이 곯아떨어지는 모습을 보게 하려는 건 아니죠?”천우진은 농담하듯이 말했다.예수진은 천우진의 말을 듣고 보니 일리가 있는 것 같아 한발 물러섰다.“도련님이 힘도 쓰고 복근도 전시한 걸
“문수 씨.”하지수는 송문수의 이름을 불렀다. 그녀는 지금 송문수가 화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지만 송승우에게 무슨 일이라도 있으면...어쨌든 한 가족이 아닌가.그녀는 가정의 불화를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그래도 승우 오빠를 병원에 보내야 하잖아.”하지수는 큰 소리로 송문수에게 말하자 송문수는 발걸음을 멈추었다.사실 송승우는 별일 없었다. 송문수는 격투기를 배운 적이 있기에 사람의 어느 부위가 다치면 안 되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송승우를 이성을 잃을 정도로 때렸어도 급소를 때리지 않았다.하지수는 송문수의 대답을 듣지 못하자 다급히 핸드폰을 꺼내서 긴급구조 요청을 하였다.구급차를 기다리는 동안, 하지수는 송승우에게 다가가지 않았다.그녀는 멀지 않은 곳에 서서 바닥에 쓰러진 송승우를 바라보았다.송승우의 분노가 극도에 이르렀지만 송문수와 싸울 힘이 없었다.사실 하지수도 요새 송승우와 송문수가 자주 싸우는 이유를 몰랐다. 오늘은 벌써 두 번째였다.어렸을 때 두 형제의 관계가 그다지 친밀하지 않았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지금 어른이 되었는데 아직 유치하게 싸우다니!이윽고 구급차가 도착했고 구조대원들은 들것으로 송승우를 구급차에 태웠다.하지수도 따라서 올라탔지만 송문수는 타지 않았다.하지수는 잠시 망설이다가 내려와서 송문수를 잡아당겨서 같이 구급차에 올라탔다.구급차 안은 매우 조용하였다.아무도 말하지 않았고 차 안의 분위기에 아직 분노의 불꽃이 튕기는 것 같았다.병원에 도착한 후 송승우는 응급실로 옮겼다.하지수와 송문수는 로비에서 기다렸다. 송문수는 차가운 분위기를 풍기면서 한쪽에 서 있었다.사실 하지수는 송문수의 얼굴에도 상처가 있는 것을 보았다. “문수 씨도 얼굴과 몸에 난 상처를 검사하지 않을래?”“필요 없어. 외상이라 금방 나을 거야”송문수가 이렇게 말하자 하지수도 강요하지 않았다.잠시 후, 송승우는 응급실에서 나왔고 의사는 이렇게 말했다.“모두 외상이라 별문제가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지금 입원 수속
“놓지 못해?”송문수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하면서 송승우를 바라보았다.서로 마주 본 두 사람의 눈에는 분노로 가득 차 있었고 일촉즉발의 분위기였다.“이거 놔요.”하지수도 송승우의 손을 힘껏 뿌리쳤다. 그러자 송승우의 눈빛에 분노로 이글이글 타올랐다.그는 더욱 세게 하지수를 잡아당겼다.하지수는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아파요!”송문수의 안색이 더욱 어두워졌다.“놓으라고 했다!”그는 송승우의 팔을 끌어당기는 손에 힘을 꽉 주었다. 이에 송승우는 통증을 느꼈으나 승부욕 때문에 쉽게 놓을 수가 없었다.송문수가 힘을 줄수록 그도 더욱 힘을 줘서 하지수를 잡아당겼다.하지수는 너무 아파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송승우는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 “이걸 놔. 나와 지수의 일에 끼어들지 마.”“끼어들지 말라고?”송문수는 냉소를 지으면서 말했다.“형이 잊은 것 같은데 지수는 내 와이프야. 우린 부부이지만 형과 지수는 아무 사이도 아니잖아? 지금 형이 내 와이프를 데려가려고 하는데 나보고 끼어들지 말라고? 너무 뻔뻔하다고 생각하지 않아?”“너!”송문수의 쏘아붙인 말에 송승우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예전에 송승우는 하지수가 자신을 좋아했기 때문에 송문수를 안중에 넣지도 않았고 그들의 결혼 관계를 진지하게 생각한 적도 없었다.그러나 지금 송문수에게 이런 모욕을 당하다니!“지수가 좋아한 사람은 나야!”송승우는 수치심에 더 약이 올라서 노기어린 목소리로 외쳤다.하지수는 너무 아파서 반박할 힘도 없었고 송문수의 말이 들려왔다.“지수가 누구를 좋아하든 지금은 내 여자야. 누구도 데려갈 수 없고 누구도 지수를 괴롭힐 수 없다고! 셋까지 셀 테니 지수를 놓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송승우는 끄덕하지도 않고 송문수를 노려보았다.“하나.”“둘.”송문수는 ‘셋’을 세는 대신 주먹을 들고 송승우의 얼굴을 세게 강타했다.송문수의 한 방을 맞은 송승우는 코피를 흘렸고 아픔으로 이내 하지수를 놓아주었다.그러나 송승우는 소심한 사람이었다. 그는 늘
‘내가 자기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는 건가?’“승우 씨, 사과 따위 이제 필요 없어요. 지금 제가 바라는 건 아무 탈 없이 우리 사이의 관계를 끝내는 거예요. 승우 씨는 문수 씨 형이잖아요. 게다가 저도 어릴 때부터 송씨 가문에서 자란 사람이고요. 그러니까 우리 그냥 친척 같은 관계로 돌아갔으면 좋겠어요.”하지수는 인내심을 가지고 진지하게 말했다.송승우는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며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하지수는 더 이상 그와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망상에 빠진 사람은 무슨 말을 하든 헤어 나올 수 없다고 생각했기에 그녀는 자신의 마음을 표현했으니 그걸로 됐다고 생각했다.하지수는 뒤를 돌아 송문수 쪽으로 다가가려 했다. 늦은 시간이었고 그녀도 여전히 많이 피곤했다. 송문수랑 같이 집으로 가서 자고 싶었다.크레지가 아직 오지 않은 이상, 기술 투자 계약서에 사인하지 않은 이상 방심할 수는 없었다. 그들은 짬짬이 시간을 내서 잠을 잘 수밖에 없었다.그런데 막 돌아서려는 순간, 그녀의 손은 또다시 송승우에 의해 붙잡혔다.하지수가 아무리 팔을 흔들어도 벗어날 수 없었다.송문수는 차가운 눈빛으로 송승우의 행동을 지켜보며 주먹을 꽉 움켜잡았다.그가 앞으로 다가가 하지수를 데려오려던 순간, 송승우가 갑자기 말했다.“지수 씨, 방금 당신의 행동은 모든 걸 말해줬어요!”“무슨 행동이요?”하지수는 이해할 수 없었다.“방금 제가 불렀을 때, 제 쪽으로 다가왔잖아요. 그게 지수 씨 마음속에 있는 진심이에요. 더 이상 숨기지 말고 저한테로 오세요. 하지수 씨, 제가 잘 해줄게요. 지수 씨를 혼자 두는 일은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을 거예요. 제가 맹세할게요...”“아니요.”하지수는 단칼에 거절해 버렸다.하지수를 바라보는 송승우의 눈빛은 분노로 가득 찼다.“승우 씨가 불었을 때 따라간 건 무의식적으로 간 거예요. 잠에서 덜 깬 상태라서 누가 불렀어도 갔을 거예요. 승우 씨인 줄도 몰랐어요. 하지만 인정할 건 인정할게요. 낯선 목
송문수는 하지수가 일어나서 송승우 쪽으로 걸어가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다.송승우는 입가에 미소를 띠며 생각했다.‘그래, 지수 씨도 아직 날 신경 쓰고 있다니까. 숨기려 해도 어떻게 숨기겠어? 이런 상태에서야 비로소 진심이 드러나는 거지.’송문수는 멀어져 가는 하지수를 잡으려 손을 뻗었지만 그녀의 옷자락에 손이 닿았을 때 살짝 멈칫했다. 하지수를 강제로 붙잡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사실 그는 항상 하지수의 선택을 존중해 왔다. 지금까지 변함없이 말이다.하지수는 송승우 앞으로 걸어갔고 송승우가 먼저 손을 뻗더니 그녀를 끌어당기려 했다.그러나 그가 손을 뻗자 하지수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승우 씨?”그녀는 그제야 앞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깨달았다.조금 전까지 어지럽고 혼란스러웠던 상황이 이제와사 분명해졌다.그녀는 자신이 언제 잠에 들었는지도 몰랐다. 그저 너무 피곤해서 머리가 흐릿할 뿐이었다.“너무 늦었어요. 제가 데려다줄게요.”송승우가 그녀를 끌고 나가려고 하자 하지수는 급히 그의 손을 쳐내며 말했다.그러자 송승우는 눈살을 찌푸렸다.“아까는 잠에서 덜 깨서 그랬어요. 전 문수 씨랑 같이 갈 거예요.”“뭐라고요?”송승우는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언제까지 연기할 거예요?”“네?”하지수는 눈살을 찌푸리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송승우가 왜 갑자기 화를 내는지 알 수 없었다.“저를 놀리는 게 재밌으세요?”송승우가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저... 저는 그런 게 아니라...”하지수는 당황해하며 말을 더듬었다.그러자 송승우가 입을 열었다.“알겠어요. 제가 잘못한 걸로 하죠.”그가 갑작스레 사과를 하자 하지수는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그녀는 송승우가 왜 갑자기 사과를 한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왜 사과를 하는 거야?’“미안했어요. 어쩔 수 없이 떠난 거라고는 하지만 우리 결혼식에도 참석하지 못했잖아요. 결혼식장에 지수 씨 혼자 남겨두고 간 건 제 잘못이에요. 미안해요.”하지수는 그제야 무슨 말인지 이해했
하지수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심장은 여전히 빨리 뛰고 있었다.그녀는 전혀 말을 듣지 않는 심장을 진정시키려 애썼다. 만약 누군가 들어오지 않았더라면 이 어색한 상황이 얼마나 계속될지 알 수 없었다.‘문수 씨도 부끄러워하는 건가?’하지수는 입술을 꽉 깨물며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려 애썼다. 갑자기 웃음이 터져 나올까 봐 걱정이었다.하지수는 소파에 앉아 몰래 송문수를 쳐다보았다.그는 그저 고위직 직원의 얘기를 듣고만 있을 뿐, 전혀 불편해 보이지 않았다.그녀는 깊게 숨을 쉬었다.‘단지 어색해서 그런 건가?’송문수는 언제나 체면을 중시하는 사람이었으니 말이다.‘해명하려 하지 않는 것도 결국 체면을 세우려고 그러는 건가?’하지수는 너무 많은 기대를 해선 안 된다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다잡았다....크레지를 맞이하기 위해 모든 관련 부서가 계속해서 야근을 하고 있었다.송문수와 하지수 역시 마찬가지였다.그들은 끊임없이 회의를 열고 논의하며 최대한의 성의를 보이기 위해 애썼다.새벽 2시가 되었지만 송문수는 아직 퇴근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방금까지도 각 부서와 회의를 하면서 협력 계획과 판매 계획을 다시 수정하고 보완했다.회의가 끝난 후에도 송문수는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는 계속 바쁘게 일하고 있었다.송문수는 그제야 그의 확인이 필요한 문서들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무슨 서류든 제대로 보지 않고 사인을 해버렸었다. 하지만 이젠 점점 더 신중해졌고 모든 서류를 꼼꼼히 확인하고 나서야 사인을 했다.그 덕에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고 오늘 하루 동안의 모든 서류를 처리하고 나서야 송문수는 퇴근을 하려고 하지수를 쳐다봤다. 그러자 그녀는 이미 소파에 기대어 잠들어 있는 것이었다.하지수는 잠이 많은 사람은 아니었다. 송문수의 기억 속에 하지수는 늘 자신보다 일찍 일어나는 사람이었고 절대 늦잠을 자지 않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소파에 기대어 잠들어 있었다.‘많이 피곤한 걸까?’자세히 생각해 보니 그들은 지난 일주일 동안 계속해서 야
송문수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크게 티가 나지는 않았지만 그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밝아졌다는 건 알 수 있었다.하지수는 송문수를 더 방해하지 않으려 했다. 송문수가 점점 더 발전하는 걸 보면서 하지수도 그를 더 지지해 주고 싶었고 송문수로 하여금 업무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하지수는 옆에 있는 소파로 가서 노트북을 들고 업무를 처리하기 시작했다.그리고는 습관처럼 회사의 공식 채팅방에 들어갔다.그녀는 비록 알림을 꺼 놓았지만 회사의 공식 채팅방에 메시지가 있으면 항상 첫 번째로 확인하곤 했다.그런데 그때, 그룹 채팅에 있는 메시지를 본 하지수는 깜짝 놀랐다. 그녀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아마 이 상황을 믿기 어려워할 것이었다.송문수가 회사의 공식 채팅방에 ‘하지수’라는 이름을 여러 번 보낸 것이었다.하지수는 고개를 들어 송문수를 바라보았다.그는 진지하게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채팅방에는 여전히 ‘하지수’라는 이름이 올라오고 있었다.“문수 씨, 컴퓨터 바이러스에 걸린 거 아니야?”하지수가 물었다.“어?”송문수는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했다.하지수는 송문수 앞에 서서 그의 컴퓨터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화면에는 타자를 해놓고 아직 보내지 않은 ‘하지수’도 있었다.송문수도 그제야 자신이 채팅방에 ‘하지수’라는 이름을 여러 번 입력했다는 것을 깨달았다.그 자신도 놀란 듯했다. 그는 자신이 타자를 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의식하지 못했던 것이다.하지만 방금 그의 머릿속이 온통 하지수로 가득 찬 건 사실이었다.그때, 채팅방에서 누군가 메시지를 보냈다.[회장님 지금 하 매니저님한테 애교 부리는 거야? 그걸 실수로 단체 채팅방에 보낸 거고?]메시지는 보내지자마자 삭제되었고 밖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나도 잘못 보냈네!”그룹 채팅에 두 개의 삭제 기록이 나타났다.송문수는 멍하니 앉아 있다가 그제야 메시지를 삭제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그는 ‘하지수’라는 메시지들을 삭제하려 했지만 이미 메시지를 취소할 수 있는 시간이
송승우는 이를 꽉 악물었다. 그는 하지수를 절대로 포기할 수 없었다. 그는 하지수에게 송문수를 고른 게 얼마나 잘못된 선택이었는지 반드시 알게 해주겠다고 결심했다. 그녀로 하여금 후회하도록 만들겠다고 다짐했다....하지수는 송승우의 사무실을 떠나 바로 송문수의 사무실로 갔다.송문수는 업무에 몰두해 있었다.회사에 들어선 순간부터 그는 자유시간이 없었고 퇴근 후에도 여전히 업무와 관련된 일들을 처리하고 있었다.하지수는 송문수가 많이 변했다고 느꼈다. 그녀는 하느님도 부지런한 사람을 도울 거라 믿으며 송문수가 앞으로 큰 성과를 낼 것이라고 확신했다.“형이 뭐라고 했어?”송문수는 그녀를 한 번 쳐다보며 차갑게 물었다.“자기 개인 비서로 되어달라고 하더라고.”하지수는 송문수에게 숨기지 않고 말했다. 그녀는 더 이상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을 그에게 숨기고 싶지 않았다.송문수랑 같이 오랫동안 시간을 보내고 싶었기에 최대한 마음을 다할 생각이었다.송문수는 멈칫하더니 코웃음을 치더니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녀가 어떻게 대답했는지 알고 싶지 않아 하는 것 같았다. 어쩌면 하지수가 그 제안을 무조건 받아들였을 거라고 여겼는지도 모른다.‘지수가 형 요구를 거절한 적은 한 번도 없는데 이번에도 알겠다고 했겠지...’이렇게 생각한 송문수는 일에 더 집중하려 애썼다. 회사 일을 제대로 해내기로 결심한 이상 중간에 포기할 생각은 없었으니 말이다.“거절했어.”하지수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송문수는 가슴이 약간 두근거리는 걸 느꼈다.분명 그녀의 말에 설렌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겉으로 티 내지 않으려 했다.그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척 계속해서 서류를 보고 있었다.반면, 하지수는 송문수에게 그 어떤 반응도 기대하지 않았다. 어차피 송문수는 자기한테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저 자신의 결정을 그에게 알리고 싶었을 뿐이었다.“왜 거절했는데?”송문수가 차분하게 물었다.“문수 씨한테 내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으니까.”하지수는 웃으며
하지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송승우를 바라보았다.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말이다.어린 시절 그녀는 항상 송승우를 믿었고 그가 자기를 보호해 줄 거라 생각했었다. 송승우는 같은 또래 친구들보다 성숙하고 머리가 좋다고 생각했었다.하지만 순간, 그녀는 자신이 송승우에 대해 뭔가 오해를 하고 있었던 건 아닌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게다가 그가 지금 하는 행동이 너무 유치해서 하지수는 어떻게 거절해야 할지 몰랐다.그녀는 이해할 수 없었다.‘어떻게 이런 말을 그렇게 쉽게 할 수 있지?’송승우는 하지수와 송문수의 관계를 알고 있었다. 하지수가 몇 번이나 말했으니 모를 리 없었다. 지금은 송문수와 잘 지내고 있고 송승우와의 관계는 이미 끝난 거라고 말이다.그리고 송문수가 지금 송씨 그룹의 대리 회장직을 맡고 있다는 것도 분명 알고 있었다. 송문수의 결정이 회사의 발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도 말이다. 송문수한테 도움이 더 필요했고 송문수가 받는 스트레스가 더 많았다.‘생각이 없는 건가? 어쩌면 이렇게 이기적인 말을 할 수 있는 거지?’“왜요? 제가 무슨 어려운 부탁이라도 했나요?”송승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하지수를 바라보며 안색이 조금 어두워졌다.“승우 씨, 정말 제대로 일하려고 온 거 맞아요? 아니면 그냥 문수 씨를 못 믿어서 온 건가요? 문수 씨가 회사를 잘 관리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 감시하러 온 거냐고요!”“당연히 일하러 온 거죠. 아니면 왜 연구소 일까지 내려놓고 회사로 왔겠어요! 그리고 또...”“아까 지수 씨가 그러셨잖아요. 송문수를 못 믿냐고요. 맞아요. 전 송문수 그 자식 못 믿어요. 송문수가 회사를 제대로 이끌 수 있을지 제가 어떻게 알아요? 성과를 하나 냈다고 교만해져서 마음대로 하려 할 겁니다.”“갑자기 드는 생각인데요. 승우 씨는 왜 그렇게 문수 씨 잘되는 꼴을 못 보는 거예요?”하지수는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그게 아니라면 왜 문수 씨를 그렇게 모욕하고 내 곁에서 떼어놓으려 하겠어...’하지수의 능력이 얼마나
짧은 시간이었기에 송문수가 회사의 대체적인 상황을 잘 파악한 것만으로 대단한 것이었다. 게다가 이는 단지 송문수에게 회사를 관리하는 재능이 있어서 해낸 것이라고 단정 지을 수도 없었다.송문수가 매일 얼마나 열심히 일하고 있는지 하지수는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항상 그는 조금이라도 여유가 생기면 회사를 어떻게 운영해야 하는지 연구하면서 시간을 보냈고 지어는 날마다 새벽까지 야근을 하다가 집에 돌아갔다. 게다가 차에서 보는 서류들도 모두 송씨 그룹과 관련된 문서였다.송문수는 원래 시간만 나면 게임을 하거나 먹고 자고 놀기만 했던 사람이었다. 얼마 안 되는 사이에 송문수는 정말로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된 것 같았다....송문수의 말대로 하지수는 다음 주에 회사로 찾아올 크레지를 위해 연관 업무에 대한 계획을 세웠다.송문수와 하지수가 일 처리를 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이사님들도 점점 두 사람을 인정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이 맡긴 업무에 대해 불평이나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고 바로 행동에 옮기기만 했다.그러면서 송문수와 하지수의 업무 부담도 줄어들었고 회사도 더 원활하게 운영되고 있었다.회의가 끝난 후, 하지수는 송문수를 따라 그의 사무실로 갔다.요즘 들어서 그녀는 송문수의 사무실에서 일을 하는 것에 익숙해졌던 것이다. 송문수는 자주 회사의 전문 용어나 이해할 수 없는 마케팅 계획에 대해 물었고 그녀는 언제 어디서든 그가 묻는 말에 답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두 사람은 서로의 사무실을 오가는 시간을 절약할 수 있었다.“지수 씨, 잠깐 제 사무실로 올 수 있으세요?”그때, 송승우가 갑자기 하지수를 불렀다.하지수는 발걸음을 멈추고 잠시 망설였다. 그녀는 송문수를 한 번 바라보았다.“네 마음대로 해.”송문수는 이렇게 말하고 큰 걸음으로 사무실을 떠났다. 질투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어 보이는 송문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하지수는 속으로 약간 허탈감을 느꼈다.송문수가 많이 변한 건 사실이었지만 하지수에 대한 감정은 별로 진전이 없는 것 같았다. 물론 그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