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열어요!”심문헌이 문을 두드렸다.밖에서도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렸다.“심문헌 씨, 우리 이연 언니한테 장가들기 쉬운 줄 알아요?”예수진은 문 앞에서 큰 소리로 말했는데 결혼하는 사람처럼 흥분했다.“알려주세요. 제가 뭐하면 될까요?”심문헌은 의기양양해서 물었다.“먼저 성의를 보여주세요.”“문을 열어야 제가 성의를 보여드리죠.”“그건 안 돼요. 제가 문을 열면 바로 달려들어 갈 거잖아요. 거칠게 나올 거 알거든요.”예수진은 얼렁뚱땅 넘어가지 않았다.문 앞에 확실히 많은 친구와 지인이 모여있었고 대부분이 심문헌 쪽의 친구였다.예수진이 문을 열어주면 한 무리의 사람이 날강도처럼 달려들어 문을 열어 부술 것이었다.“문을 안 열어주면 제가 어떻게 성의를 보여드리죠?”“심문헌 씨, 지금 시대가 얼마나 발달했는데요. 카카오톡이라는 게 있을 텐데요!”“근데 제가 수진 씨의 카톡이 없어요.”“지금 추가하면 되죠?”심문헌은 하는 수 없이 큰 소리로 물었다.“카톡 계정이 어떻게 되는데요?”예수진은 자신의 카톡 계정을 심문헌에게 알려주었고 곧 심문헌의 친구 추가 신청을 받았다.예수진은 얼른 친구 추가 신청을 통과했다.통과하자마자 심문헌은 백화점 상품권, 문화 상품권 등 선물을 가득 보냈다.예수진은 선물을 일일이 받으면서 감탄했다.“심문헌 씨, 통이 아주 크네요. 이연 언니한테 장가들기 위해 성의를 두둑이 보여주네요! 자자, 우리끼리 먼저 이 선물을 나누고 나서 다시 얘기해요.”한참 지나 방안에 사람이 선물을 서로 나눠 가졌다.심문헌이 또 문을 두드렸다.“예수진 씨, 저의 성의도 받았으니 이제 문을 열어주시면 안 돼요?”“심문헌 씨의 성의를 확인한 후에 어떻게 해야 이연 언니한테 장가들 수 있는지 말해준다고만 했지, 문을 열어준다고는 안 했어요.”“그래요. 그럼, 지금 제가 뭘 더 해야 하는지 알려 주시는 건가요?”심문헌은 화를 내지 않고 아주 협조적인 태도로 맞장구를 쳤다.“문 앞에 스태프가 있을 거예요. 보이시나요?”“스태
심문헌은 빨갛게 무르익은 고추를 잡고 심호흡을 한번 하고는 한입 먹었다.“너무 매워!”심문헌은 입에서 불이 날 정도로 매운맛에 시달려 문 앞에서 발을 동동 굴렀다.모든 사람이 그의 모습에 숨넘어갈 듯이 웃었다.분위기가 매우 좋았다.“문헌 씨, 얼른 물 좀 마셔요.”소이연은 심문헌이 매운맛에 약한 걸 알기에 화면에 대고 다급하게 말했다.“물물물!”심문헌은 목구멍에 불이 난 것처럼 매워서 여기저기 물을 찾았다.이때 가늘고 긴 손이 물을 한 잔 건넸다.얼굴이 화면에 나타나지 않은 탓에 물을 건넨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본 사람이 전혀 없었다.오직 소이연만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심문헌은 물을 마시고 나서 한참 후에야 진정하고는 예수진에게 물었다.“수진 씨, 이제 됐나요?”“당연히 안 됐죠.”소이연은 단칼에 거절했다.심문헌은 피를 토하는 심정이었다.“수진 씨, 뭘 더 해야 하는데요?”“우리 이연 언니한테 장가드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인 줄 알았어요?”예수진은 또 이 말을 반복했다.“수진아, 장난 좀 그만 치자.”화면에 갑자기 계지원의 모습이 나타났다.예수진은 멈칫했다.‘지원 씨가 왜 여기 있지?!’예수진은 오늘 아침에 계지원 대신 기사더러 결혼식 장소에 데려다주게 했다.“난 장난치고 있는 게 아니라 심문헌 씨가 이연 언니의 남편이 될 수 있는지 없는지 열심히 테스트하는 중이야.”예수진은 억울한 말투로 말했다.“저는 괜찮아요. 계속하세요.”심문헌이 얼른 말하자 예수진은 득의양양하게 웃으면서 말했다.“봐봐. 이런 사람이 좋은 남편이지. 누구처럼 결혼식도 아까워서 안 올려주는 사람이랑은 완전 다르게.”계지원은 조금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다행히도 예수진은 분위기를 잘 조절하는 사람이어서 바로 주의력을 다른 곳으로 돌리며 큰 소리로 말했다.“심문헌 씨, 조금 전의 테스트는 인생의 온갖 고초를 맛보는 거였어요. 근데 그 전에 건강한 신체가 있어야 사랑하는 이연 언니랑 백년해로할 수 있지 않겠어요?”“그럼요!”심문헌은 힘 있게
심문헌이 반응하기도 전에 천우진은 이미 바닥에 엎드려 빠른 속도로 팔 굽혀 펴기를 하기 시작했다.천우진의 속도는 심문헌보다 2배 빨랐다.분명 20여 개만 더 하면 되는데 천우진은 아예 20개를 덧붙여 50개를 채웠다.주위의 사람은 모두 재미나게 구경하느라 시끌벅적했다.예수진은 천우진의 행동에 홀려 말했다.“몰라봤네요. 천씨 가문의 도련님이 어린 나이도 아닌데 제법이네요! 복근이 몇 조각 있을까요? 여덟 조각?!”예수진의 목소리는 작지 않았기에 방금 한 말은 모두 영상통화에 담겼다.바깥의 사람은 모두 웃음꽃을 피웠고 천우진더러 옷을 들어 보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그만 장난쳐요...”심문헌은 천우진을 감쌌다.심문헌은 자기 대신 팔 굽혀 펴기를 해준 천우진을 감싸줘야 한다고 생각했다.말이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천우진은 옷을 걷어 올려 이미 완전히 충혈된 여덟 조각의 복근을 드러냈다.“우와!”예수진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소리쳤다.천우진의 몸매가 이렇게 좋을 줄이야.그녀는 늘 천우진은 우아하고 점잖은 그런 양반일 거로 생각했다.사실 예수진은 천우진이 왜 결혼식에 왔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니 모두 명문가이니, 심문헌이 의례적으로 초대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다만 심문헌과 천우진의 관계가 이렇게 좋은지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수진아, 눈빛 좀 거둬.”영상통화에서 계지원의 엄숙한 말소리가 전해졌다.예수진은 얼른 눈길을 돌렸다.그녀는 하마터면 자기 남편도 밖에 있다는 것을 깜빡 잊을 뻔했다.“수진 씨, 이제 문헌 씨를 들여보낼 수 있나요?”천우진은 웃옷을 정리하고 예수진에게 물었다.“근데 제가 다른 사람이 도와줘도 된다고는 안 했던 거 같은데요?”예수진은 웃으면서 말했다.“진짜 친구분더러 신혼 첫날 밤에 신랑이 곯아떨어지는 모습을 보게 하려는 건 아니죠?”천우진은 농담하듯이 말했다.예수진은 천우진의 말을 듣고 보니 일리가 있는 것 같아 한발 물러섰다.“도련님이 힘도 쓰고 복근도 전시한 걸
“네.”소이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심문헌의 말에 대꾸했다.그녀의 얼굴에는 행복한 미소가 가득했다.육현경은 옆에 서서 묵묵히 지켜보았다. 소이연이 어떻게 가장 행복한 모습으로 다른 남자에게 시집가는지를 지켜보았다...소이연이 꽃다발을 건네받은 후 누군가 갑자기 떠들어댔다.“뽀뽀해! 신랑 신부 뽀뽀해!”한 사람이 말을 꺼내자, 너도나도 같이 호응하기 시작했다.예수진도 같이 외치려고 하다가 바로 옆에 있는 육현경을 발견했다.무슨 모습이라고 할까? 지금 방 전체가 기쁨과 행복으로 가득 차 있는데, 오직 육현경에서 감출 수 없는 슬픈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런 그가 지금의 유쾌한 분위기와 전혀 어울리지 않았기에 한눈에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예수진은 자리를 옮겨 육현경 옆으로 걸어갔다.육현경은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난 같이 호응하지 않았어.”예수진이 말했다.“다른 사람이 요구한 거지, 난 저 사람들과 한통속이 아니야.”육현경은 예수진을 대꾸하지 않았고 계지원도 말을 하지 않았다.계지원은 지금 분노가 가득 차 있었다.‘수진이 어떻게 다른 남자한테...’계지원은 다리를 다친 후부터 확실히 운동할 수 없어서 복근이 존재하지 않았다.계지원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서운했다. 그러나 감정이 무딘 예수진은 그의 기분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계지원은 예수진이 육현경의 속상한 심정을 눈치챘지만, 자신의 기분을 눈치채지 못한 것에 대해 기분이 매우 불쾌했다.예수진은 확실히 계지원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그녀는 육현경이 자신을 상대하지 않자, 다시 신랑 신부 쪽으로 달려가 가까이서 구경했다.심문헌은 긴장을 타서 얼굴과 귀가 다 빨개졌고 소이연도 쑥스러워서 얼굴과 귀를 붉혔다.이 모습은 마치 그림처럼 너무 아름다워 옆에 있는 사진작가는 카메라를 들고 쉴 새 없이 찍어댔다.심문헌은 숨을 크게 들이쉬고는 용기를 내어 소이연에게 다가가 허리를 굽혀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두 사람이 입맞춤하자 모두가 손뼉을 치며 환호하면서 분위기를 한층
육민은 쑥스러움을 많이 타는 성격이라 예수진의 말에 얼굴이 빨개졌다.“어휴, 기분이 좀 안 좋네요.”예수진은 갑자기 터무니없이 한마디 했다.“이연 언니가 결혼하는데 네가 기분 나쁠 게 뭐가 있어? 아까 선물도 많이 받았잖아.”하지수가 옆에서 말장난을 쳤다.“맞아요.”옆에서 심문헌이 격동하며 말했다.“방금 저한테 시킨 것들, 제가 불만 하나 없이 열심히 했잖아요.”“저는 두 사람의 결혼이 기분 나쁘다는 게 아니에요.”예수진은 어이가 없어 설명을 늘어놓았다.“저는 단지 이렇게 잘생긴 민이 나중에는 다른 사람의 사위가 될 거로 생각하니 마음이 아픈 거예요.”“…”“사실 저는 예전에 우리 하연이를 민이한테 시집가게 할 생각이었어요.”예수진은 아주 진지하게 말했다.“근데 다시 생각해보니까 근친이라서 안 되더라고요. 너무 화나요!”예수진은 씩씩거리며 화를 냈지만, 이 말을 들은 사람은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육민도 얼굴이 빨개지도록 웃었다.접대실은 예수진 때문에 조용해질 틈이 없었고 쭉 화기애애했다.슬슬 손님을 맞이할 시간이 되자, 예수진과 하지수만 접대실에 남아서 소이연과 말동무를 했고 심문헌은 먼저 나가서 하객을 맞이했다.육민도 접대실에서 나와 육현경을 찾으러 다녔다.한편, 육현경과 계지원은 축의금을 내고 식장에 들어갔다.계지원은 참지 못하고 육현경을 놀렸다.“너도 정말 이연 씨의 결혼식을 처음부터 끝까지 참석하네.”“내가 결혼식을 줄 수는 없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는 건 할 수 있지.”육현경이 서글픈 웃음을 지어내자 계지원은 더 말하지 않았다.계지원은 지금 육현경이 마음속으로 피눈물을 흘리고 있을 거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예전에 예수진이 하도경과 사귀던 날들... 계지원은 그날들을 지금 다시 떠올려도 마음이 아파서 육현경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했다.두 사람은 객석으로 걸어갔다.“아빠.”육민은 육현경을 보고 서둘러 두 사람 곁으로 갔다.육현경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아무래도 신부 쪽의 중요한 손님이다 보니
소이연은 곧 결혼한다.육민은 육현경을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몰랐다.“민아, 괜찮아. 너의 아빠는 어른이야. 어떻게 감정을 다스려야 하는지 아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계지원은 따뜻한 말로 육민을 위로했다.“네.”육민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묵묵히 자리에 앉았다.근데 어쩐지 옆에 앉아있는 천우진도 기분이 조금 안 좋아 보이는 것 같았다....육현경은 방금 봤던 그림자를 따라 호텔의 가든에 갔고, 빠른 속도로 가든을 한 바퀴 돌았다.‘내가 잘 못 본 건가? 진짜 착각한 걸까?!’육현경은 몸을 돌려 가든을 떠났다.떠나자마자, 한 사람이 은밀한 구석에서 걸어 나오더니 입가에는 음침한 미소가 달려있었다.‘내가 얻을 수 없는 행복, 소이연, 너도 얻을 생각하지 마.’...육현경은 다시 웨딩홀로 들어가서 바로 제자리에 돌아간 것이 아니라 천우진의 옆에 걸어가서 말했다.“우진 씨, 사람 시켜서 임아영이 퇴원한 게 아닌지 조사해 보세요.”천우진은 눈매가 매서워졌다.그는 육현경과 눈빛이 마주치는 순간, 상대방의 뜻을 완전히 이해했다.천우진은 얼른 전화를 쳐서 임아영의 행방을 알아봤고 육현경은 한 곳을 향해 걸어갔다.임아영과 숨바꼭질을 하느니, 차라리 직접 가서 CCTV를 따는 게 빨랐다.만약 진짜 임아영이라면... 그녀는 무조건 나쁜 마음을 품고 왔을 것이었다.육현경은 바로 감시실에 찾아가서 관계자와 소통한 뒤 CCTV를 돌려보기 시작했다.한참 후, 천우진이 육현경에게 전화했다.“방금 사람을 시켜서 확인해 봤는데 임아영 지금 병원에 없대요.”“언제 퇴원한 거예요?”“일주일 정도 된다고 했어요.”육현경은 손에 힘을 주었다.“현경 씨, 임아영을 직접 봤나요?”천우진이 물었다.“확실치는 않아요. 지금 CCTV를 확인하고 있는데 아직 임아영의 모습을 발견하지 못했어요.”“만약 임아영이 진짜 이곳에 왔다면 반드시 대비해야 해요. 지금 임씨 가문이 완전히 망가진 이상, 임아영은 아무것도 없으니 진짜 무슨 일이든지 저지를 수 있어요.”“알
육현경은 재빨리 소이연의 분장실로 달려갔다.같은 시각, 소이연은 준비를 마치고 결혼식장으로 나가려던 참이었다.나가려고 문을 여는 순간, 가쁜 숨을 몰아쉬며 땀을 뻘뻘 흘린 육현경과 마주쳤는데 그의 모습은 마치 큰일이 일어난 것 같았다.소이연이 입을 열기도 전에 예수진은 흥분하면서 육현경을 향해 소리쳤다.“오빠, 드디어 신부를 뺏으려고 마음먹은 거야!”예수진은 강 건너 불구경하듯 말했다.육현경은 예수진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소이연의 눈빛에서 증오가 스쳐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육현경은 가까스로 숨을 가라앉히며 말했다.“나 방금 임아영이 결혼식장에 온 걸 봤어. 임아영이 얼마나 험한 일을 벌일지 모르니까 결혼식을 잠시 중지했다가 사람을 찾은 후에 다시 진행하는 게...”“육현경, 내가 당신을 더 미워했으면 좋겠어?”소이연은 육현경의 말을 바로 끊어버렸다.육현경은 눈빛이 흔들렸다.“내 결혼식에서까지 당신과 다투고 싶지 않아. 비켜줘.”소이연은 냉랭하게 말했다.“이연아, 난 너의 결혼식을 막으려는 게 아니라, 네가 지금 결혼식을 올리면 사고를 당할지도 몰라. 우리가 먼저 임아영을 찾고 그다음에 네가 다시 결혼식을 올려...”“그럼 지금 나보고 이렇게 많은 하객을 마냥 기다리게 하라는 거야? 만약 사람을 쭉 찾지 못하면, 내 결혼식은?! 육현경, 당신은 어쩜 그렇게 이기적일 수 있어!”소이연은 화를 내며 말했다.“날 믿어줘. 진짜 임아영이... 내가 CCTV를 가져와서 보여줄게.”육현경은 소이연을 설득할 방법이 없었다. 방금 감시실에서 너무 급하게 나오느라 CCTV에 담긴 증거도 찍어놓는 걸 깜빡했다.“내가 당신을 어떻게 믿어야 하는데?”소이연의 질문에 육현경은 말문이 막혔다.“어젯밤 당신이 한 짓을 생각해봐.”소이연이 쏘아붙이자 심문헌은 말을 하지 않고 입술을 깨물었다.소이연은 어젯밤의 일로 아마 육현경을 평생 미워할 것 같았다.육현경이 말했다.“임아영이 정말 웨딩홀에 있어. 날 믿지 못하겠다면 우진 씨에
소이연이 오랫동안 억눌러 왔던 감정을 모두 쏟아내듯이 소리치자, 예수진은 겁을 먹고 옆에 있는 하지수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어떡해? 말려야 하지 않아?”“넌 누구의 편을 들 건데?”예수진은 말문이 막혔다. 결국, 누구의 편을 들어야 하는지 몰라서 옆에서 손 놓고 보기만 했다.“육현경, 내가 정말 당신을 평생 미워했으면 좋겠어?!”소이연은 눈시울이 붉어지더니 육현경을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이연아, 그렇게 한 시라도 심문헌 씨에게 시집가지 못해서 안달이 났어?! 1분도 못 기다려?!”육현경도 소이연의 태도에 화를 내고 말았다.“어! 일 초도 못 기다리겠어!”소이연이 단호하게 말하자 육현경은 핏대가 불끈 솟았다. 예수진은 이러다가 육현경이 정말 소이연을 때릴 것 같아 안절부절못했다.‘어떡하지? 경찰에 신고해야 하나? 신고하면... 가족을 배신하는 게 되는 건가?!’예수진이 이런저런 생각에 불안해하고 있을 때 육현경이 갑자기 소이연의 손을 놓아주었다.소이연은 일 초도 망설이지 않고 몸을 돌려 떠났다.지금 시간이 매우 촉박했다.더 지체하다가 결혼식을 놓칠지도 몰라 소이연은 아주 급했다.소이연이 떠나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는 육현경의 눈에는 분노가 가득 차 있었다.소이연을 케어하던 스태프도 얼른 그녀를 뒤따랐고 예수진도 따라가려다가 고개를 돌려 육현경에게 말했다.“오빠, 왜 사람이 성실하지 못해요!”예수진은 한스럽다는 듯이 한 마디 내던지고는 얼른 소이연을 따라갔다.웨딩홀에 도착하고 보니, 사회자는 이미 분위기를 띄우고 있었고 심문헌도 이미 무대에 멋지게 서 있었다.소이연은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애써 자신을 진정시키고는 버전 로드의 끝에 자리를 잡았다.소이연은 소승영에게 결혼식을 알리지 않았다. 그래서 절차상, 아버지가 아닌 신랑이 버전 로드 끝에 다시 걸어와서 신부와 팔짱을 끼고 기나긴 버전 로드를 함께 걸어가야 했다.무대 중앙에서 행복한 얼굴로 서 있는 심문헌을 보면서 소이연은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늦지 않아서 다행이야.’
친구인 계지원이 아니라 자신에게 물어볼 게 있다는 송문수에 예수진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그를 쳐다봤다.“일단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비웃지 않겠다고 약속해.”“뭔데 그래?”“나 지수한테 다시 프러포즈하려고.”망설임 없이 말하는 송문수에 예수진은 깜짝 놀라 입을 벌린 채 제 귀를 의심하고 있었다.송문수가 하지수한테 다시 프러포즈를 하다니, 예수진은 내일 당장 지구가 멸망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표정은 왜 그래, 내가 프러포즈한다는 게 그렇게 놀랄 일이야?”저를 아니꼽게 바라보는 송문수에 예수진은 바로 입을 다물며 물었다.“너 진심이야?”“당연하지.”“진짜 지수랑 잘살아 보려고?”“응.”“밖에 나가서 이상한 짓도 안 하고?”도무지 송문수를 믿을 수 없었던 예수진은 몇 번이고 다시 확인했다.“안 한다니까.”“어떻게 장담하는데.”“어떻게 하면 믿을래?”“남자들이 하는 말은 믿는 게 아니랬어.”제가 무슨 말을 해도 예수진이 믿지 않을 것 같아 송문수는 한숨을 쉬며 큰 용기를 내어 솔직한 마음을 고백했다.“나 감옥에서 나온 뒤로 여자들 만난 적 없어.”“뭐?”“그러니까 지수랑 우연히 한 거 말고는 여자 만져본 적도 없다고.”“진짜?”“내가 뭐하러 널 속여.”“그럼 맹세해, 거짓말하면 평생 남자 구실 못하는 거야.”자꾸 되묻는 것도 슬슬 짜증 나는데 저런 말까지 하는 예수진에 송문수는 그녀를 노려보고 있었다.“못하겠어?”“한다 해, 내가 한 말 다 진짜고 만약 조금의 거짓이라도 있으면 난 이제 남자 아니야.”“대박이다, 송문수. 네가 드디어 정신을 차렸구나!”송문수가 맹세를 하자마자 예수진은 잔뜩 흥분하며 말했다.“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나 좀 도와줘. 전에 지수가 나랑 결혼한 건 지수를 위한 결혼이 아니었잖아. 그래서 이번에는 지수가 마음에 들어 할만한 결혼식을 하고 싶어.”“진작 그랬어야지.”“나는 이런 쪽엔 워낙 소질이 없잖아, 낭만적인 것도 잘 모르고. 그러니까 네가 나 대신 생각 좀 해줘.”송문수는 멋쩍은
“어머, 미리 준비하는 거야?”예수진이 또 장난을 치며 놀리자 하지수도 멋쩍게 웃어 보였다.“지수 씨도 아이 가질 마음 있으면 되도록이면 빨리 가져요.”“네, 그래야죠.”“우리 셋 다 술 못 마시게 됐으니 그냥 물이나 마셔요.”아무것도 마시지 않으면 식사가 제대로 끝난 것 같지 않았던 예수진은 물이 담긴 컵을 들어 올렸다.“우리 다...”다 순산하게 해달라고 기원하려 했는데 아직 임신을 하지 않은 하지수 때문에 멈칫하던 예수진은 이내 말을 바꿨다.“우리의 순산을 위하여! 물론 아직 어디 있는지 모르는 지수 아이도 포함이에요.”“다들 원하는 일 다 이루길 기원할게요.”거기에 소이연이 한마디 덧붙이지 예수진은 웃으며 말했다.“역시 배운 사람이라니까요.”“그럼 다들 원하는 거 다 이루고 앞으로 호호 할머니가 될 때까지 서로의 가장 좋은 친구로 남길 기원하면서 우리 건배 다시 해요!”소이연과 하지수도 이렇게 좋은 친구들을 만나게 된 것에 감사하며 잔을 높이 들어 올렸다.그 뒤로 식사 자리는 한참 동안 이어졌는데 소이연, 하지수, 예수진은 진작에 식탁을 벗어났고 술을 마시는 남자들만 거실에서 예능을 보며 떠들고 있었다.오랜만에 봐도 전혀 어색함 없이 수다를 떨어대던 남자들은 술을 마시면 마실수록 말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었다.서로 번갈아 가며 화장실을 몇 번이나 드나들었지만 취하기 전까진 집에 가지 않기로 다들 약속이나 한 건지 그들은 끊임없이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그 넷 중에 가장 먼저 항복을 외친 건 육현경이었다.얼굴은 원숭이 엉덩이처럼 빨개져서는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그를 아들 육민이 힘겹게 부축하며 나갔다.소이연도 육현경이 그토록 취한 모습은 처음 보지만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 신났을 그를 알기에 화가 나기는커녕 오히려 아쉬웠다.그가 친구들을 만나 신난 것처럼 소이연도 사실 하지수와 예수진과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는데 남편이 저렇게 인사불성이 되어버려 어쩔 수 없이 집으로 돌아가야 했기 때문이다.그런데 육민이 육현
“나는 지금 하연이 임신했을 때랑은 완전 달라요.”“성별이 다르면 입덧도 다르다던데.”소이연은 현재 임신 중인 예수진과 아이에 관한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그래요?”“가서 검사 안 해봤어요?”“당연히 검사해봤죠.”성격이 급했던 예수진은 진작에 아이의 성별이 궁금해 병원을 찾아갔었다.“그런데 매번 갈 때마다 돌려 말하면서 나한테는 어떻게 생겼는지도 안 보여줘요. 답답해 죽겠다니까요 정말.”“하하하.”그럴 때마다 예수진의 표정이 얼마나 웃길지 상상하던 소이연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아들을 원해요 아니면 딸이 더 좋아요?”“당연히 아들이죠.”돌려 말하는 것 없이 직설적으로 대답하는 예수진에 소이연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아들이 더 중요하다 그런 거예요 설마?”“제가요? 그 반대죠 완전히. 지원 씨가 딸을 얼마나 귀하게 여기는지 매일 둘이 꼭 붙어 있는다니까요. 그거 볼 때마다 화가 나서 나도 아들 낳아서 계지원 열 받게 하려고요.”역시나 일반인들과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예수진이 웃겨 소이연은 이번에도 웃음을 흘렸다.“아들인지 딸인지는 모르겠는데 자꾸만 딸 같아요.”“임산부의 촉은 보통 틀리지 않죠.”“또 아빠한테만 달려가겠네요.”“전생에 얼마나 잘 놀았으면 딸을 이렇게 줄줄이 낳아요. 다 키워야겠네.”“무슨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해요.”한마디에 한 번씩 한숨을 쉬며 말하는 예수진에 소이연과 하지수 모두 웃음을 참지 못하고 있었다.“언니는 배 속의 아기가 남자 같아요 여자 같아요? 아들이 좋아요 딸이 좋아요?”“난 다 상관없긴 한데 솔직히 딸이 갖고 싶어요.”“딸은 안돼요. 딸 낳으면 오빠가 계지원보다 더 심하면 심했지 절대 덜하진 않을걸요. 오빠랑 언니 둘 다 미모가 이렇게나 출중한데 딸 낳으면 얼마나 이쁘겠어요. 오빠가 죽고 못 살죠 아주.”“...”소이연은 예수진의 말이 그다지 신빙성은 없어도 또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았다.“어쨌든 아들을 낳든 딸을 낳든 그건 우리가 정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그
“축하드려요!”제 아내가 또 남사스러운 말을 할까 걱정됐던 계지원은 발 빠르게 축하 인사를 전했다.“그래요, 정말 축하해요!”곧이어 다들 축하하자 하도경은 참지 못하고 육현경을 놀려주었다.“육현경, 아직 안 죽었다? 여행 간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임신이야. 문수보다 낫네, 문수는 지수 씨랑 저렇게 오래됐어도 아무 소식도 없는데. 너 진짜 어디 문제 있는 건 아니지?”“입 다물어.”“내 실력 의심하는 거야 지금?”“뭐래.”자신을 무시하는 듯한 하도경의 발언에 송문수는 어이없다는 듯 화를 냈다.“솔로인 너는 나 비웃을 자격 없거든. 나는 결혼이라도 했지 너는 있는 게 뭐야?”“뭐?!”“우리 중에 너만 솔로야. 분발해 하도경.”이미 말문이 막힌 하도경을 향해 송문수가 한마디 더 하자 하도경은 욕설을 내뱉으며 말했다.“닥치고 마셔, 오늘 내가 너 취해서 쓰러질 때까지 먹일 거야.”“누가 쓰러질지는 두고 봐야지.”서른 살 넘게 먹은 사람 둘이 아이처럼 싸우는 것도 그들의 일상인지라 그들을 신경 쓰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그때 진정한 예수진이 소이연에게 조심스레 물었다.“언니, 오빠가 그거 안 하고 했어요?”“네?”“아니, 그렇게 빨리 애 갖고 싶어 하진 않을 것 같았는데. 아직 제대로 못 누렸잖아요.”예수진이 알고 있는 육현경은 소이연과의 둘만의 시간을 한 일 년은 더 누려야 직성이 풀릴 사람이었기에 아까도 그녀는 소이연이 임신했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었다.두세 달밖에 안 됐는데 덜컥 임신을 해버리면 육현경은 만족을 못 할 게 분명한데.한편 이런 질문을 받은 소이연은 얼굴이 빨개져서는 둘의 신혼여행을 되돌아봤다.사실 신혼여행을 갔을 때부터 소이연은 아무리 급해도 안전조치는 꼭 하는 육현경에 의아해하고 있었다.둘은 합법적인 부부이니 아이가 생긴다 해도 아무런 문제 될 것도 없고 민이도 남동생이든 여동생이든 상관없이 동생을 원한다고 했었는데 왜 굳이 그걸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었다.그렇게 궁금해하다가 어느 날 참지 못하
“둘이 아무 소리도 없더니 할 건 다하네.”당연히 가장 먼저 입을 연 건 예수진이었다.“우리 지수를 그렇게 적극적인 여자로 만들고 송문수 대단하다.”제 친구 앞이라고 빼지 않는 송문수는 고개를 쳐들며 말했다.“내가 매력이 좀 넘치잖아.”“적당히 해.”그 모습에 예수진이 어이없다는 듯 말하자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언니랑 지수는 왜 술 안 마셔?”워낙 시끌벅적한 걸 좋아하던 예수진은 술도 아주 좋아하는데 본인은 임신 중이라 마실 수가 없으니 자꾸만 주변 사람들을 부추기고 있었다.“이연이는 안돼.”“지수도 오늘은 안 돼.”제 말이 끝나자마자 들려오는 송문수와 육현경의 대답에 그녀는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왜? 두 사람도 임신했어 설마?”“아니야.”얼토당토않은 말에 하지수는 다급히 부인했다.“그런데 왜 못 마셔?”“생리니까 못 마시지.”“송문수, 언제 이렇게 다정해졌냐? 지수 생리인 것도 다 알고 기특하네 좀.”예수진의 장난에도 기분이 좋았던 송문수는 아주 환하게 웃어 보였다.“이연 언니는 왜 못 마셔?”예수진은 이번에는 못마땅한 눈빛으로 육현경을 보며 물었다.“아무튼 안돼.”“언니도 생리야?”그렇게 우연이 겹칠 리가 없는데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미간을 찌푸리는 예수진에 소이연은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히고는 입술만 물어뜯고 있었다.“뭘 자꾸 그렇게 물어.”“언니 어디 아파요? 나 놀래키지 말고 말 좀 해봐요.”육현경까지 말을 아끼니 깜짝 놀란 예수진은 잔뜩 긴장한 채로 물었지만 돌아오는 건 육현경의 핀잔이었다.“넌 매일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이연이가 왜 아파!”“그럼 왜 못 마시냐고.”예수진의 질문에 입술을 말아 물며 소이연을 보는 육현경의 눈에서는 꿀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예수진은 소이연을 신 모시듯 떠받드는 제 오빠를 보며 정말 한 사람을 바꾸는 건 사랑밖에 없다는 걸 다시 한번 실감하였다.“도대체 뭘 숨기는 거야?”예수진이 끝까지 캐묻자 소이연이 할 수 없이 숨을 한번 들이마시며 답했다.“나 임신했
사실 하지수는 늘 송승우를 어떤 사람이라고 정의 내려야 할지 몰랐었다.우수하지 않다고 하기엔 국가사업에 공헌할 정도로 대단한 두뇌를 지니고 있었지만 또 그렇다고 아무도 비비지 못할 정도로 대단한 건 아니었다.그런데 송승우는 늘 고고한 척, 자신이 다른 사람의 우위에 있는 것처럼 행동했다.CEO들은 몸에서 돈 냄새가 난다면서 싫어했던 그는 어릴 때부터 부모님께 회사를 물려받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해왔었다.그는 다른 사람과 교류할 때마다 무의식인지 아니면 의도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늘 자신의 박학다식함을 뽐내며 자신의 우수함을 드러내려 했다.이제 보니 가식적이라는 말이 그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것 같다.하도 가식적이어서 하지수는 이제 그가 짜증 날 지경이었다.“어릴 때 게임 할 때도 송승우는 옆에 앉아서 코드나 쳤고 우리가 예능 볼 때는 그런 조작된 건 안 본다면서 머리 나쁜 사람들만 좋아하는 거라고 비웃었어. 우리가 디저트를 먹으면 지능 떨어진다고 무시했고...”예수진은 송승우 때문에 힘들었던 지난날을 떠올리며 쉴 새 없이 말했다.하지수와 다르게 정말 힘들어했던 그녀는 송승우가 책을 너무 많이 읽어서 미친 건가 하는 생각도 잠시 했었다.“됐어, 그 사람 얘기 그만하자.”“너랑 문수만 잘 지내면 됐지, 송승우는 과거일 뿐이야.”“응.”이제 송승우한테는 조금의 감정도 남지 않은 하지수는 예수진의 말에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그때 도우미 하나가 와서 식사 준비가 끝났다고 알려주자 그들은 다 같이 테이블로 향했다.거기에는 하연이와 민이도 있었는데 민이는 육현경을 쏙 빼닮아 겉은 차가워 보였지만 사실은 동생을 아주 잘 챙겨주는 아이였다.물론 그의 다정함은 자신이 인정한 사람 한해서만이었다.민이가 하연이를 챙겨주는 모습을 보던 예수진은 감탄하며 말했다.“우리 조카가 결혼할 생각만 하면 난 벌써부터 가슴이 아파.”“제수씨도 아무 말 없는데 네가 왜 가슴이 아파.”장난을 치는 송문수의 말을 예수진 바로 맞받아쳤다.“언니는 당연히 괜찮겠지, 며느
예수진의 말에 정곡을 찔린 듯 소이연은 얼굴을 붉혔다.“거봐요, 오빠는 내가 제일 잘 안다니까. 그냥 겉으로만 멀쩡해 보이는 거예요.”소이연의 반응에 예수진은 득의양양해 하며 말을 이어나갔다.“겉으로는 차가워 보여도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아주 대범해지는 사람이거든요. 언니는 이제 오빠의 넘치는 사랑을 받을 일만 남았네요, 물론 침대 위에서요.”“그만 해요 수진 씨.”신나서 얘기하는 예수진에 못 말린다는 듯 웃던 소이연이 그녀를 타박하듯 말했다.“태교하는 사람이 자꾸 그런 생각 하면 어떡해요?”“아직은 그냥 핏덩이라서 아무것도 몰라요.”“...”“지수야, 너는 요즘 뭐 하고 지내? 평소에 문자 보내도 답장 늦게 하던데.”말을 하던 예수진은 임신한 뒤로 아무것도 못 하게 하는 계지원 때문에 요즘 부쩍 재미없어진 일상을 떠올리고는 서러운 듯 입술을 삐죽였다.“그냥 회사일 처리하고 있었지. 얼마 전에 경영에 문제가 생겨서 회사 부도날 뻔했거든. 그래서 문수 씨랑 일 처리만 했어.”“송문수?”“걔가 회사 일을 한다고?”송문수가 일한다는 소리에 예수진은 깜짝 놀라며 되물었다.“그래, 안 믿길 거 아는데 진짜니까 그런 눈으로 보지 마. 문수 씨 정말 많이 변했어, 더 이상은 맨날 놀러만 다니던 망나니 아니야. 이번에도 문수 씨 덕분에 송씨 집안이 다시 일어서게 된 거야. 그리고 이연 언니랑 현경 씨도 많이 도와줬고.”하지수는 곧바로 소이연을 보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정말 고마워요 언니, 언니랑 형부 도움 아니었으면 저희 집안은 진작에 끝났을 거예요.”“아니에요, 별로 힘든 일도 아니었는데요 뭘.”“현경이가 안 그래도 문수 씨 많이 변했다는 말 하더라고요. 밤에도 전화해서 기획서 어떻냐고 물어볼 정도로 열정적이래요.”“진짜 그렇게나 많이 변했다고요?”소이연까지 긍정하자 예수진은 눈을 크게 뜨며 하지수를 바라봤다.“네가 바꾼 거야?”“내가 그 정도는 아니야. 그냥 나이가 점점 드니까 본인이 알아서 바뀐 거겠지.”“송문수가 바뀐 뒤
그래서 하지수는 이를 악문 채로 따져 물었다.“문수 씨, 당신 형이 올린 인스타 봤어?”자신이 송승우를 이긴 것 같아 기분이 좋아졌었는데 갑작스레 인스타를 언급하는 하지수에 송문수는 자연스레 핸들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안 그래도 거슬렸는데 하지수의 저 질문은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격이었다.“그걸 봤는데도 아무렇지도 않아?”“응, 괜찮아. 그냥 인스타일 뿐인데 뭘 신경 써.”자신이 송승우를 선택할까 봐 두려워하는 모습이 조금도 보이지 않자 하지수는 조금 실망했지만 그래도 괜찮은 척 말했다.“신경 안 쓴다니 다행이지만 그래도 당신 아내로서 해명할게. 나랑 송승우 씨는 아무 사이도 아니야.”아무 사이도 아니라니, 둘이 얼마나 뜨거운 사랑을 나눈 사이였는지 온 집안사람들이 다 아는데 저런 말을 하는 하지수가 어이없었지만 송문수 본인도 뭐 그다지 깨끗한 사람은 아니었기에 그는 자신도 하지 못한 것을 하지수에게 요구할 자격은 없다 생각해서 입을 다물었다.하지수는 송승우를 진짜 사랑한 거였지만 자신은 그저 다른 여자들을 갖고 논 것이기에 더 따질 권리가 없는 것 같았다.“오늘 어머니랑 같이 쇼핑가기로 했는데 송승우 씨가 먼저 따라가겠다고 한 건 맞아. 나랑 어머니도 거절하기 힘들어서 같이 오긴 했는데 나는 송승우 씨랑은 말도 안 섞었어. 거리도 엄청 많이 뒀고 못 믿겠으면 어머니한테 물어봐도 돼.”하지수의 해명을 듣고 있던 송문수는 오로지 저를 위해 저렇게 자세히 상황설명을 해주는 건가 싶어 또 가슴이 벌렁거리기 시작했다.그녀의 작은 행동에 또 흥분한 송문수는 운전에 집중할 수가 없어 애써 심호흡을 하며 정면을 주시했다.“내가 선택한 사람은 당신이니까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당신한테 진심일 거야. 당신한테 미안한 짓은 절대 안 해.”하지수의 약속에도 송문수는 꿈쩍도 안 했지만 하지수는 둘 사이의 작은 오해가 큰 불화로 번지지 않게 하려고 아무런 반응이 없어도 상황설명을 마쳤다.제 할 일을 마친 하지수는 안광이 사라진 눈으로 차 시트에 기대 있었
송문수는 애초에 쉽게 만족하는 사람이었기에 하지수가 조금만 잘해주면 한동안 기뻐했다.둘의 웃는 모습을 지켜보던 허영지도 흐뭇하게 그들을 지켜보며 이렇게 사이좋은 둘이라면 걱정할 필요도 없을 것 같았다.“지수 데리고 밥 먹으러 가려고 온 거라고 했지?”“네.”“옷도 다 입어봤으니까 얼른 가봐.”데이트하러 가라는 말만 안 했지 사실 허영지는 그 둘에게 오붓한 공간을 마련해주고 싶었기에 서둘러 둘의 등을 떠밀었다.“어머니는요, 저녁 어떻게 하시려고요?”“승우 집에 있잖니. 승우랑 같이 쇼핑 좀 더 하면서 네 시아버지 옷 좀 더 보려고. 내 걱정 말고 얼른 가봐.”송승우는 당연히 내키지 않았지만 어머니가 말도 다 뱉은 마당에 거절하기도 쉽지 않아 그저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그럼 차 키는 두고 갈게요.”“저랑 문수 씨는 이만 옷 갈아입을게요.”옷을 갈아입은 둘은 손을 잡고 쇼핑몰 밖으로 나갔고 그 둘의 뒷모습을 노려보던 송승우는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승우야.”송승우는 갑자기 들리는 어머니의 부름에 다급히 표정을 감추었지만 허영지는 이미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안다는 듯이 말했다.“그때 너랑 지수 사이 우리도 다 알아. 하지만 너희 둘은 이미 끝난 사이고 지수랑 문수가 저렇게 잘 지내니까 이제는 너도 형으로서 축복해줘야 하지 않겠니?”송승우도 물론 어머니의 의도를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그 옛날 하지수가 좋아하던 건 분명 자신이었는데, 그때의 제삼자인 송문수가 하지수를 채가는 게 송승우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말을 마친 허영지는 이만 옷을 갈아입으러 피팅룸으로 들어갔다.송승우도 성인이었기에 조언도 적당히 해야지 선을 넘으면 그냥 가족 사이의 불화만 생길 것이기에 허영지도 여기서 멈춘 것이었다.하지만 어릴 때부터 송문수에게 져본 적이 없던 송승우는 이번에도 제 여자를 그에게 내어주고 싶지 않아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누르며 주먹을 꽉 쥐었다....송문수의 차에 앉은 하지수는 처음으로 저를 데리러 온 송문수에 못내 기분이 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