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윤아는 아버지 강범석이 박미란을 감싸려고 전화한 것으로 생각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끊자 그녀도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권재민은 윤아가 전화를 받으며 표정이 바뀌는 걸 보고, 또 박미란의 이름을 듣고는 강범석이 전화한 것으로 추측했다.재민은 강범석이 윤아에게 또 어려움을 줄까 봐 전화를 낚아 채 받으려 했지만, 윤아가 놀란 표정으로 전화를 끊었다.“윤아야, 무슨 일이야? 아버님이셔? 왜 또 널 괴롭혀?”윤아는 멍한 채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전화를 끊었어.”“아무 말도 안 했다고? 그럼 우리도 신경 쓸 필요가 없어.”윤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재민과 함께 위로 올라가려다가 남진혁 의사가 말한 것을 떠올리고 재민을 다시 소파로 끌어당겼다.“재민 씨, 의사 선생님이 돌아오면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으라고 했어. 몸 상태를 확인하고 기억을 되찾은 것도 어머님에게 빨리 알려야 해.”“그런 건 걱정할 필요 없어. 누나가 엄마한테 말할 거야. 병원은 네가 다음에 산부인과 검진할 때 의사 선생님을 만나서 검사 받으면 돼.”“지금은 네가 편히 쉬는 게 첫째야. 몇 시간 동안 차를 타고 오느라 피곤하지 않아?”“피곤해, 내 허리가 내 것 같지가 않아. 빨리, 자기야, 내 방에다 데려가 줘.”윤아는 조금 오버액션을 취하며 재민의 팔짱을 끼고 애교를 부렸고, 재민은 그녀의 코를 살짝 치며 그녀를 방으로 데려갔다.“장난꾸러기.”에릭은 원래 서다은이 없을 때 재민을 무너뜨리려고 했고, 다은이 돌아왔을 때, 재민이 다시는 재기하지 못하도록 밟으려 했다.그러면 다은은 재민을 더 이상 집착하지 않고 자기를 받아줄 거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에릭이 생각을 한 것과는 달리 흘러갔다.에릭 그룹은 재민을 공격하였으나 오히려 태성 그룹에게 더 많은 사업을 뻇기게 되자, 두 사람에게 물었다.“당시 둘이 태성 그룹 내부 시스템의 허점을 알아 올 수는 없나?”권은우는 곤란한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안
강윤아는 면접이 있는 날, 집에서 한가로이 보내고 있었다. 그녀는 가사도우미에게 식사를 준비하게 한 뒤, 태성 그룹의 권재민과 권재아에게 직접 가져다주기로 했다. 요즘 두 사람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기 때문에, 윤아는 그들이 제대로 식사할 시간조차 없을까 봐 걱정되었다.회사에 도착한 윤아는 먼저 재민과 자기 식사를 놓고, 재아의 점심을 가져다주러 사무실로 갔다.사무실에는 평소보다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모두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윤아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재아의 사무실로 직행했고, 다행히 재아는 마침 휴식 시간이라, 윤아에게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재민이가 최근 에릭 그룹의 몇몇 프로젝트를 따냈어. 해외 프로젝트가 많아서 사람이 부족해. 급하게 사람을 뽑는 중이야.”“오늘 면접 보고 있는데 점심 시간이라 잠깐 쉴 거야. 오전 내내 면접 보느라 피곤해 죽겠어.”“오, 그래? 그럼 언니, 제가 도울 수 있는 일 없어요?”재아는 잠시 생각한 뒤 말했다.“이미 왔으니, 오후에 내 면접심사 좀 도와줘. 어차피 집에서 빈둥거리기만 할 거잖아.”윤아는 재아의 말에 기뻐하며 바로 수락했다.“그럼 언니, 빨리 밥 먹어요. 나 지금 재민 씨랑 밥 먹으러 가야 해요. 밥 먹고 나면 바로 올 테니까, 기다려요!”윤아는 그 말을 끝으로 서둘러 사무실을 떠났다.재민의 사무실로 돌아온 윤아는 기운차게 그에게 오후에 있을 면접 보조 이야기를 했다. 함박웃음을 지으며 말하는 윤아에, 재민은 그저 애정 어린 눈길로 바라보며, 계속해서 밥을 먹여주었다.“좋아, 편하게 해. 하지만 밥 먹고 한 시간은 자야 갈 수 있어.”“안 돼, 언니한테 밥 먹고 바로 간다고 했어.”“누나도 점심에는 쉬어야 해. 오후 두 시부터 면접 시작할 테니까, 두 시 전에 널 깨워줄게. 밥부터 먹고 쉬어도 늦지 않을 거야.”윤아는 여전히 걱정스러워 재아에게 전화를 걸어 확인했다.“윤아야, 재민이 말이 맞아. 나도 기계가 아니니까 쉬어야지. 오후 두 시 전에 여기 오면 돼.”재
강윤아는 권재민과 함께 사무실로 돌아와 그를 기대에 찬 눈빛으로 바라보았다.“재민 씨, 우리 저녁에 어디로 데이트 가는 거야?”“저녁에 가보면 알게 될 거야.”재민은 미소를 지으며 윤아를 지긋이 바라보았고, 윤아는 그의 눈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며 행복하게 웃었다.퇴근 후, 재민은 윤아를 데이트 장소로 데려갔다. 처음엔 윤아도 기뻤지만, 이들이 집으로 가고 있다는 걸 깨닫고 놀랐다. 그러자 윤아는 재민이 데이트 장소를 잊었다고 생각하고 급히 말했다.“재민 씨, 길 잘못 든 거 아니야? 이건 우리 집으로 가는 길인데, 데이트하러 가기로 한 거 잊었어?”재민은 돌아보며 웃었다.“잊지 않았어, 집에서 데이트하는 거야.”“흥! 집에서 데이트라니, 그게 무슨 데이트야.”재민은 운전하는 한 손으로 윤아의 손을 잡았다. 윤아는 마음에 들지 않아 뿌리치려 했지만, 운전에 방해가 될까 봐 살짝 저항했을 뿐이었다.“집에서도 데이트할 수 있어. 너 지금 배가 많이 불러서 사람 많은 곳에 가는 건 무리야.”“몸이 회복되면 네가 원하는 데이트 다 해줄게, 약속해.”윤아는 재민이 자신을 위해 그런 결정을 내린 것을 알고 더 이상 언쟁하지 않았다.집에 돌아온 후, 재민은 직접 요리해 윤아가 좋아하는 음식을 차려주었다. 그러자 윤아는 아까까지만 해도 꿍했던 기분이 풀렸는지, 재민을 보고 배시시 웃었다.식사를 마치고 재민은 은찬이 혼자 공부방으로 가서 글씨 연습을 하도록 하고, 윤아를 안아 영화 관람실로 데려갔다.이 영화 관람실은 윤아가 영화를 좋아한다고 말했을 때 재민이 특별히 만들게 한 곳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이 함께 영화를 본 적은 거의 없었고, 대부분 윤아 혼자 좋아하는 영화를 볼 때 사용했다.재민은 윤아가 편안한 자세로 앉힌 후, DVD 캐비닛 앞으로 가서 무슨 영화를 볼지 묻자, 윤아는 잠시 고민하더니 말했다.“『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보고 싶어.” “그런데 『로마의 휴일』, 『아멜리에』, 『패왕별희』, 그리고 『타이타닉』도 보고 싶어.”“
권재아가 질문을 던진 후, 직원들에게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게 하고 자기 생각을 밝히도록 했다.앞서 많은 이들이 제시한 전략은 전형적인 비즈니스 이론에 불과했고, 재아가 듣고서 바로 실행 가능하다고 느낄 만한 것은 없었다.그러다가 고승아가 발언할 차례가 되었다. 재아는 본래 승아에게 큰 기대를 걸고 있었고, 승아가 말을 마치자 재아의 기대는 더욱 커졌다.승아는 이전에도 이런 프로젝트를 담당한 적이 있었고, 그녀의 전문 분야이기도 했기에 현장에서 바로 여러 의견을 제시했다.“제가 해외에서 일할 때, 라엘 와이너리를 직접 방문해 본 적이 있고 와인 제조 과정도 체험했습니다.”“그래서 라엘 와이너리는 포도의 수량과 품질 관리를 매우 엄격히 하고 있다는 걸 알아요.”“품질이 나쁜 해에는 수확한 포도를 엄선하는 작업도 까다롭게 진행하죠. 이 점만 봐도 세계 다른 와이너리보다 한 수 위입니다.”“제가 알기로, 태성 그룹 산하의 백주와 황주 생산 과정은 매우 복잡합니다. 그리고 원재료 선택과 제조 과정도 엄격하죠.” “그래서 태성 그룹 자체의 백주와 황주 품질과 생산량도 엄격하게 관리되고 있습니다.”“우리는 라엘 와이너리에 황주와 백주 몇 병을 보내고, 회사 전문가들이 백주와 황주의 원재료 선택, 제조 등에 관한 전문 지식을 설명하게 하는 거죠.”“그러면 라엘 와이너리도 태성 그룹의 주류가 엄격한 관리 하에 만들어진다는 것을 알게 될 거고, 우리 회사를 더 신뢰하게 될 겁니다.”“최근 프랑스 친구를 통해 들은 소식인데, 라엘 와이너리의 토양에 약간 문제가 생겼다고 합니다. 토양 성분에 미세한 변화가 있었다고 하죠.”“라엘 와이너리 토양은 사실 네 번째 빙하시대가 시작될 때 빙하가 녹아서 침식한 결과물인 거친 자갈, 회색 토양, 점토층으로 구성돼 있습니다.”“바로 이러한 독특한 토양 구조가 라엘 와인에 특별한 맛을 부여하는 거죠.”“하지만 이제 토양 변화로 인해 포도 수확량이 크게 줄었고, 품질 좋은 포도를 얻기 어려워졌습니다.”“그래서 라엘 와이너
“당신과 함께라면 뭐든 다 괜찮아.”권재민이 강윤아가 이 말을 할 때, 그는 감동의 도가니에 빠져, 밥도 먹지 않고 윤아를 품에 안고 속삭였다.“윤아야, 널 만나서 정말 좋아. 널 만난 건 정말 큰 행운인 것 같아.”윤아는 권재아와 윌이 자신과 재민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얼굴이 빨개져서 급히 재민을 밀었다. 하지만 재민의 힘이 너무 세어 밀어내지 못했고, 윤아는 어쩔 수 없이 애처롭게 말했다.“재민 씨, 나 배고파. 밥 먹고 나서 얘기할래?”재민은 윤아가 배고프다고 하자 급히 윤아를 놓아주고, 젓가락으로 많은 반찬을 집어줬다. 윤아의 접시에는 재민이 집어 준 반찬들이 산처럼 쌓여, 윤아가 다 먹을 수 없을 정도였다. 그래서 결국 이 모든 것은 모두 재민의 배속으로 들어갔다.식사를 마친 후, 모두 소파에 앉아 있을 때, 재민은 여전히 윤아에게 애정 공세 했다.윤아가 화장실에 가도 재민이 밖에서 기다리는 이 광경을 보다 못해, 은찬은 위층 서재로 가서 글씨 연습을 하러 갔다.재아와 윌은 그 둘을 보며 닭살이 돋을 정도였고, 두 사람은 텔레비전을 보며 그들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했다.윤아는 재민이 자신을 따라다니는 것을 보며 처음엔 익숙치 않았지만, 좀 적응이 되자 그런 재민을 보며 즐거워했다. 재민이 어린아이처럼 행동하는 모습을 거의 볼 수 없었기에 그 모습을 윤아는 매우 좋아했다.윤아는 재민을 보는 눈빛엔 모성애가 가득 넘쳤는데, 윤아는 자신의 표정이 얼마나 달달하고 귀여운지 몰랐다, 그리고 재민은 자기를 윤아를 바라보는 눈빛을 보며 가슴이 따뜻한 기분이 들었다. 그 어떤 여자한테서도 이런 행복감과 사랑을 받는다는 기분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가장 순수하고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이라는 감정이 재민의 온몸을 지배하고 있었다.재민의 눈빛에서는 윤아에 대한 사랑이 가득 넘쳤다. 그리고 윤아 또한 재민의 눈을 바라보며 따스하고 달콤한 기분이 들었다. 재민은 윤아를 자신의 품에 안고, 다른 사람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강윤아는 김소혜를 향해 살짝 웃으며 말했다.“어머님, 저 혼자서도 괜찮아요. 그리고 저희 엄마도 절 돌봐주실 테니까 안심하셔도 돼요.”권재아는 자신의 어머니가 마침내 윤아를 인정한 것을 보고 엄청나게 기뻐했다.“차라리 저 내일 휴가 낼게요, 저희 셋이 함께 쇼핑하러 가요. 겸사겸사 아기 옷이나 장난감도 좀 사는 게 어때요? 요즘 신상도 한창 런칭중이고 게다가 저 쇼핑을 안 한 지 좀 오래됐어요. 나가서 옷 좀 보려고요.”재아는 김소혜의 곁으로 가서 그녀의 손을 잡고 말했다.“엄마, 저희 은찬이가 태어날 때는 윤아 옆에 못 있어 줬잖아요, 이번에도 놓치면 정말 후회할 거예요.”김소혜는 윤아를 한번 쳐다봤다. 윤아도 별로 거절하지 않는 것 같아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었다.기분이 좋은 윤아는 김소혜를 바라보며 웃었다.“어머님, 시간도 늦었는데 오늘엔 여기서 주무시는 게 어떠세요? 내일 같이 출발하면 더 편할 것 같아요. 그리고 여기 있을 거 다 있으니까 따로 준비하실 필요도 없어요.”윤아가 먼저 관계 개선하려는 것을 발견한 재아는 옆에서 힘을 보태 줬다.“맞아요. 엄마, 그냥 여기서 자요. 윤아를 거절하실 거예요? 저도 오늘에 그냥 여기서 자려고요. 저도 오늘 오랜만에 엄마 옆에서 잘래요. 겸사겸사 윌에 대해 말씀드릴 게요.”김소혜는 아직 권재민의 기억이 돌아온 것을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재아는 오늘 밤 분위기도 좋은 참에 알려주려 했다.“엄마, 이틀 전에 우리 청계 마을에 가서 놀았잖아요. 재민이가 그곳에서 지난 일을 다 기억해 냈어요.”“정말? 재민아, 다 생각 났대?”김소혜는 너무 기뻐 펄쩍 뛸 것만 같았다. 그녀는 얼른 재민을 보면서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네, 다 생각났어요. 그때 바로 얘기해 드리려 했는데 회사 일이 너무 바빠서 까먹었어요.”“참, 또 엄청 어이없는 일이 있었는데 저 그때 정말 화가 나 돌아버릴 것 같았어요. 그 박미란이란 사람 기억 나요? 윤아의 새엄마였잖아요.”김소혜는 박미란이란 이름을 듣자마자 표
집에 돌아온 김소혜는 기분이 여전히 엉망이었다. 김소혜는 소파에 앉아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서만옥은 줄곧 옆에서 그녀를 위로했다.“사돈댁, 다 생각 차이에요. 이혼도 마찬가지고요. 부정적인 것만 보면 당연히 기분이 우울하고 답답해지겠죠. 근데 각도를 바꿔서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면 차츰 슬럼프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예요.”“나 좀 봐요. 나도 그런 적이 있었죠. 올라갈 때가 있으면 내려갈 때가 있기 마련이고 삶이란 그 과정을 반복하는 거죠. 사돈댁은 멀지 않아 둘째 손주도 얻게 되잖아요. 근데 그 사람은 근본도 없는 여자랑 사생아밖에 없어요.”“이미 헤어진 이상, 더는 그 사람을 생각하며 감정 낭비 하지 마요.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잃었다고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을 슬프게 하면 안 되잖아요. 자식들이 얼마나 걱정하겠어요.”김소혜는 자기를 위해 아픈 상처까지 들춘 서만옥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사돈댁, 나는 그냥 너무 억울해서 그래요.”“뭐가 억울하죠? 모든 사람이 다 사돈댁 편이잖아요. 게다가 둘째 손주도 곧 태어날 건데 억울할 필요 없어요.”김소혜는 고개를 들어 자신의 맞은편에 앉아 있는 권재아랑 강윤아를 바라봤다. 그리고 굳게 마음을 먹은 듯 서만옥의 손을 잡고 고개를 끄덕였다.“맞아요, 전 이미 다 가졌어요. 그 두 사람 때문에 더 이상 화내지 않을 거예요. 걔네들이 어떻게 살든 상관하지 않을 거예요.”마침 은찬이가 학교를 마치고 돌아왔다. 은찬이는 밝고 맑은 목소리로 인사를 했다. 김소혜는 은찬이를 보자마자 기분이 좋아졌고 은찬이를 안았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윤아랑 말했다.“윤아야, 나 오늘에도 여기에 있으면 안될까? 어제 은찬이랑 잘 놀고 있었는데 재민이가 나보고 쉬라고 해서. 우리 예쁜 손주랑 조금 더 같이 있고 싶은데, 그래도 될까?”“어머님도 참, 당연하죠. 차라리 오늘 다 가지 말고, 여기서 작은 가족 파티 하죠. 이따가 요리를 더 하라고 얘기해 놓을게요.”저녁 식사 때, 재민은 내일에 재아랑 산부인과에 가서 검사
에릭의 말을 듣자 권은우랑 권현우는 한시름을 놓았다. 그리고 권재민때문에 받은 타격까지 잊어버렸다.그들은 고승아가 하루빨리 권재아의 부서에 발을 붙이길 원했다. 그러다가 권재아를 단번에 쓰러뜨리고 태성 그룹에 큰 타격을 가하기만을 기다렸다.에릭은 잘 알고 있었다. 태성 그룹을 상대하기엔 지금의 에릭 그룹은 한없이 부족했다. 그래도 그는 부하더러 태성 그룹이랑 경쟁하라고 시켰고 재민의 일부분 세력을 견제하려 했다.동시에 현우랑 은우도 기회를 잡아 태성 그룹에 사람을 넣을 수 있게 된다.하지만 은우는 태성 그룹에 새 직원을 안배하면 사람의 이목을 끌 거라 생각했다. 더군다나 짧은 시간 내에 적합한 사람을 찾기도 힘들었다. 그래서 회사 내부 옛 직원 중에서 찾는 것이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컨트롤하기 쉽도록 평소 존재감이 낮은 사람으로 뽑았다.은우랑 현우가 호시탐탐 노리고 있을 때 한기현은 또 다른 정보를 얻게 되었다. 그는 해외에서 재민에게 상처를 입히고, 기억을 잃게 만든 킬러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그 킬러는 다름 아닌 세븐 고스트의 사람이었다.기현은 이 정보를 알아낸 후 바로 재민에게 알려줬다. 재민은 자기 앞에 앉아 엄숙한 표정을 짓고 있는 기현을 바라보며 정말 고맙다고 생각했다. 기현은 최선을 다해 재민이가 부탁한 일을 했다. 그리고 기억을 잃었을 때, 기현의 도움이 없었다면 재민은 영원히 윤아의 곁으로 돌아오지 못했을 것이다.기현은 자신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는 재민을 보고, 눈썹을 찌푸렸다. 그리고 그의 눈앞에서 손을 흔들며 물었다.“이 봐, 내 말을 듣고 있는 거야? 이렇게 중요한 얘기를 하고 있는데 멍을 때려? 너 설마 날 사랑하기라도 하는 거야?”재민은 변함없는 기현을 보면서 웃었다.“듣고 있어, 계속 얘기해 봐.”기현은 다른 사람 앞에서 계속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고 있던 재민이 자신을 보며 웃자, 몸서리를 치며 뒤로 물러섰다.“설마 정말 날 사랑하게 된 것은 아니겠지?”재민은 웃음을 거두고 그를 노려봤다. 기현은
강윤아라는 말에 권재아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윤아가 우리 집에 온 이후로 힘든 일을 많이 겪었고 늘 다른 사람의 타깃이 되었어요. 재민이가 너무 다른 사람의 호감을 사 그녀를 연루시킨 거죠.”“재아 씨가 지금 걱정해도 소용없어요, 재아 씨부터 잘 챙겨요.”윌은 재아의 말을 듣고 웃으며 말했다.“자, 재아 씨 기분 전환하러 갔다가 나중에 우리 집에 가요.”그 말을 들은 권재아는 얼굴이 빨개졌다.“얼굴이 왜 빨개지는 거예요? 내가 옆에 있었으면 재아 씨가 좀 더 편하게 잠들 거예요.”윌은 웃으며 농담했다.재아는 얼굴이 빨갛게 상기 된 채 그를 한 대 때렸지만 거절하지 않았다.날이 저물자 바다는 칠흑 같은 어둠에 잠겼고 이따금 파도가 아련하게 일기도 했다. 해변의 모래사장에는 간간이 등불이 있는데, 등불은 그다지 밝지 않고 군데군데 있어서 밤하늘의 별과 서로 잘 어울렸다.재아는 부드러운 모래를 밟으며 앞으로 한 걸음씩 폴짝폴짝 뛰어갔다. 귓가에 들려오는 파도 소리가 아득하고도 고요했다.윌은 재아의 뒤에서 몇 걸음 걷다가 재아가 전혀 알아채지 못하자 성큼성큼 몇 걸음 앞으로 나가 그녀의 손을 잡고 손바닥으로 감쌌다.재아는 어리둥절해 하더니 이내 두 눈이 반달 모양으로 변했다.“손잡고 싶은 거면 얘기하지 그랬어요.”재아의 표정이 너무 도도해서 윌은 눈살을 찌푸리고 손가락으로 그녀의 코끝을 긁었다.“그러게 누가 재아 씨더러 아무것도 모르래요?”술도 밥도 배불리 먹었으나 그 뒤로 딴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재아는 윌 덕분에 배불리 먹었고 지금은 기분이 너무 좋았다. 윌의 손을 잡고 있자니 따뜻한 손바닥에서 전해오는 힘에 말할 수 없는 안정감을 느꼈다.백사장을 따라 한참을 걸은 후에야 마침내 윌이 말한 그 ‘재미있는 곳’에 이르렀다.재아는 어두컴컴한 불빛 속 나무 밑에 숨어 있는 해먹에 하마터면 눈살을 찌푸릴 뻔했다.“여기가 재밌는 곳이에요?”“재미있는 곳이라고 하지 않으면 안 올 거잖아요?”윌은 미소를 지으며 먼저 올라탄
회의가 끝난 후, 권재아는 권현우가 그녀를 쉽게 보지 못하게 하려고 여전히 당당하게 걸어 나갔지만, 사무실로 돌아온 후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초조하고 어쩔 수 없는 표정을 지은 재아는 매우 낭패한 모습이었다.재아는 권재민에게 이 일을 알리려 문자를 보냈지만, 그쪽에서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재아는 윤기태에게도 이 일을 말했다. 기태도 분노했지만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재아가 풀이 죽은 모습을 보며 화가 났지만 재아를 먼저 위로할 수밖에 없었다.“대표님, 이런 결과는 대표님도 원하지 않겠지만, 정말 방법이 없잖아요. 자책하지 마세요, 권재민 대표님이 돌아오시면 분명히 이 일을 해결할 수 있을 거예요.”재아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기태의 위로가 전혀 소용이 없었고 재아는 여전히 괴로웠다.재아의 이런 모습을 본 기태는 더는 방해하지 않고 그녀에게 인사한 후 자리를 떴다.늦은 시간, 재아는 여전히 회사에서 일을 처리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사무실 문이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권재아는 고개도 들지 않고 대답만 했다.갑자기 넓은 손이 재아 앞에 다가오더니 그녀의 머리를 강제로 들어 올렸다.재아는 화를 내려다가 윌임을 발견했다. 순간 화가 난 얼굴이 미리 설정된 듯 활짝 웃는 얼굴로 바뀌었다.“아, 윌, 여긴 어쩐 일이에요? 귀국하지 않았어요? 돌아왔으면 나한테 말해주지 그랬어요. 그랬으면 내가 공항으로 데리러 갔을 텐데.”윌은 재아의 머리를 받치고 있던 손을 풀고 책상을 돌아 재아의 앞으로 다가갔다. 하지만 그러는 내내 눈빛은 재아에게서 떠나지 않았다.“보고 싶어서 돌아왔어요. 알려줬으면 어떻게 서프라이즈를 해줬겠어요. 왜 이렇게 피곤한 얼굴이죠? 날 봤을 땐 화가 잔뜩 난 얼굴이었어요.”윌이 그녀 앞에 서자 재아는 윌의 허리를 끌어안고 머리를 살짝 윌의 몸에 기대며 풀이 죽은 듯 한숨을 내쉬었다.윌은 그녀가 말하고 싶지 않은 듯해 보여 더는 강요하지 않고 빨리 나가자고 재촉했다.“주차장에서 오래 기다렸는데도 안 내려와서 야근하는 거 아닌가
권재민은 강윤아의 움직임을 추적한 뒤 곧바로 현진성과 합류해 구출 계획을 논의하고 애스릭이 숨어 있는 곳으로 쳐들어가려 했다.하지만 이번에도 그들은 변장하고 다가갔다. 애스릭은 분명 그들을 경계할 것이고, 외딴 섬에서의 일을 겪었으니 애스릭의 경계와 의심이 더 강해지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그래서 그들은 반드시 만반의 계획을 세워야만 윤아를 구해낼 수 있다고 판단했다.같은 시간, 국내에 있던 김소혜와 서만옥은 출국할 예정이었다.그날 기슭에 도착한 후 재민은 아이를 안배하고 나서 소혜에게 전화를 걸었다. 소혜는 발신자가 실종된 지 오래된 자기 아들이라는 것을 보고 매우 흥분했다.“재민아, 드디어 엄마한테 전화했구나. 그동안 네가 나한테 전화 안 해서 우리도 방해할 엄두가 안 났는데 너는 지금 어때? 윤아는 행방불명이야? 윤아를 구해낸 거 아니었어?”소혜는 재민의 전화가 희소식을 전하러 걸려온 것으로 생각했다. 그녀의 마음속에서 재민은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모든 일을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재민의 전화를 받은 후 마음이 매우 흥분되고 기뻤기 때문이기도 했다.재민은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그는 소혜의 이렇게 흥분한 말투를 들으며 차마 그녀에게 사실을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급박해서 아이를 돌볼 가족이 있어야 했다. 비록 의사가 있지만 그는 여전히 마음을 놓을 수 없다.그는 이를 악물고 실정을 소혜에게 말했다.“엄마, 내 말 좀 들어봐요. 마음을 다잡고 들어요, 일이 이렇게 됐어요…… 엄마가얘기한 거랑 상황이 좀 달라요. 윤아가 처음에 구출되긴 했는데 다시 잡혀갔어요. 그동안 연락이 없었던 건 내가 계속 그 사람의 경계에 잠복해있었기 때문이에요.”재민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소혜가 말을 끊었다.“뭐? 구출되긴 했는데 또 잡혀갔다는 건 뭐야?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엄마, 내 말끝까지 들어봐요.”재민이 이마를 어루만졌다.“이 일은 당분간 자세히 말하기 어려워요. 제가 윤아를 데려가고 나서 자세히 말해줄게요.”
고승혁 교수가 협조를 거부했기 때문에 애스릭은 더 심하게 때렸다. 거의 몇 시간마다 가서 괴롭혔는데 매번 때리는 것은 아니었다. 때로는 말로 욕했지만 고승혁 교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강윤아는 고승혁 교수가 돌아올 때마다 얼굴에 약간의 상처가 생기는 것을 보고 차마 지켜볼 수 없었다.사실, 애스릭이 매번 고승혁 교수를 데려갈 때마다 그가 입을 열어 경험을 전수해주도록 했을 뿐 매번 그를 때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고승혁 교수는 돌아올 때마다 애스릭의 부하들에게 얻어맞았다.고승혁 교수는 베티를 치료해 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들을 배신하기까지 했기 때문에 그들은 매우 원망스러웠다.“고승혁 교수님, 저 때문에 교수님이 억울한 일을 당했으니 협조하고 절 그냥 내버려 둬요.”“괜찮아요, 때리고 싶으면 때리고 욕하고 싶으면 하라고 해요. 나는 견딜 수 있어요. 나는 오히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이 어디까지인 보고 싶어요. 언젠가 내가 정말 견딜 수 없게 되면 자연히 그들에게 항복할 거예요. 그때 가서 윤아 씨가 나를 원망하지 말아주세요.”고승혁 교수는 손을 내저으며 개의치 않는 듯 윤아를 향해 농담까지 했다.“교수님은 이미 내 목숨을 구해줬고 내 아이를 지켜줬어요. 이것만으로도 저는 이미 교수님에게 감사해요. 교수님이 앞으로 나를 어떻게 대하든 나는 받아들일 수 있어요.”윤아는 고승혁 교수의 이런 모습을 차마 지켜볼 수 없었다.“정말 내 걱정은 안 해도 돼요. 이건 내 인생 경험의 일부일 뿐이에요. 살아서 나갈 수 있다면 밑지는 장사는 아니에요. 굴복해 연명할 수 있지만 내 양심에 어긋나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아요.”고승혁 교수는 윤아가 미안한 표정을 짓자 그녀를 안심시켰다.윤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우리가 살아서 나갈 수 있다면 교수님의 연구원에 많이 투자할게요.”“그럼 먼저 윤아 씨에게 감사해야겠어요.”“고승혁 교수님, 우리는 함께 목숨 걸고 싸운 사이이니 그냥 저를 윤아라고 부르세요, 윤아 씨는 너무 서먹서먹해요.”윤아가 고승혁을
메리는 인큐베이터 옆에 있는 의사가 멍하니 있는 것을 보고 그를 한 번 쿡 찌르며 낮은 소리로 주의를 시키었다.“존, 사람들이 묻고 있잖아요.”“네?”존은 어리둥절하게 되물었다.권재민은 옆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다시 물었다.“내 아이의 상태가 어떤지 물었어요.”“아기는 지금 상태가 안정돼 있고 아까 그 혼란스러운 상황에도 놀라지 않았어요. 달이 차지 않아 태어났기 때문에 면역력이 좋지 않아 인큐베이터에 좀 더 있어야 할 것 같아요.”존은 마침내 반응을 보였고 무서워서 한 걸음 뒤로 물러나며 말했다.재민은 가볍게 알았다고 대답하고 고개를 숙이고 인큐베이터 안의 아이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는 갑자기 생명이 정말 완강하다고 느꼈다.강윤아에게 그렇게 많은 위험이 닥쳤는데도 이 아이는 이렇게 안전하고 무사하게 태어났고, 게다가 아무런 문제도 없으니 앞으로도 꿋꿋이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눈앞의 작은 아이가 이렇게 많은 일을 겪으면서도 건강할 수 있다면, 아이의 엄마 윤아는 분명 더 완강할 것이다. 그동안 많은 일을 겪었지만 윤아는 아슬아슬하게 돌아왔으니 이번에도 반드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재민은 보면 볼수록 더 반가웠고 윤아가 출산할 때 옆에 없었지만 수술실 밖에 있었으니 좀 멀지만 어떻게 보면 윤아 옆에 있은 셈이다. 다음번에는, 다음번에는 윤아 옆에 꼭 있어 줘야겠다고 생각했다.재민의 부드러운 표정을 보고 현진성과 한기현도 옆으로 다가가서 아기를 바라보았다.“윤아 씨를 많이 닮아서 참 예뻐. 앞으로 윤아 씨처럼 예쁘게 자랄 거야.”기현은 한참을 쳐다보았다.옆에 있던 진성은 자기도 모르게 웃으며 말했다.“태어난 지 얼마 안 됐는데 어떻게 윤아 씨와 닮은 줄 알아요? 갓난아이는 이목구비도 다 비슷비슷하고 쭈글쭈글한 모습이 늙은이 같다는 생각만 들어요. 게다가 머리카락이나 눈썹도 다 나지 않았잖아요.”“진성 씨…… 왜 그래요? 분명 윤아 씨를 닮았잖아요?”핀잔을 들은 기현은 얼굴이 빨개졌다.“재민아. 진성 씨 봐, 너의 아이가
한기현은 다시 권재민에게 전화를 걸어 그들이 숨은 곳을 알려줬지만 강윤아가 끌려갔다는 사실은 알려주지 않았다.재민은 재빨리 이곳으로 달려와 둘러보았으나 윤아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미간을 찌푸린 채 의심스러운 얼굴로 기현과 현진성을 힐끗 쳐다보았다.“기현아, 현진성 씨, 윤아 씨는요? 윤아 씨가 왜 여기에 없죠?”두 사람은 안절부절못했다. 평소 대단한 사람들이었지만 지금 재민 앞에서 감히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다.기현은 슬며시 진성을 쳐다보고 몰래 진성을 쿡 찔렀다. 진성은 방심하다 밀려났고 뒤를 돌아보며 기현을 노려보았지만 기현은 고개를 숙이고 더는 두 사람을 쳐다보지 않았다.“묻고 있잖아요! 윤아 씨는요? 내 아내 어디 갔어요? 당신들 윤아 씨를 어디로 데려갔어요?”재민은 두 사람의 행동을 보고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소리쳤다.진성은 미안한 표정으로 재민을 바라보며 재민에게 그가 떠난 후의 일을 대충 말했다.“권재민 대표님, 죄송합니다, 제가 윤아 씨를 제대로 돌보지 못해서 애스릭에게 빼앗겼어요. 제가 부주의했어요. 그 방에 숨으면 아무 일도 없을 줄 알았는데, 애스릭이 이렇게 교활하게 두 가지 계략을 쓸 줄은 몰랐어요.”“권재민 대표님, 지금 저를 때리고 욕해도 저 할 말이 없어요.”이 말을 들은 재민은 온몸에 살기가 피어올랐고 두 눈이 벌겋게 달아오른 채 진성을 노려보며 허리에서 총을 꺼내려 했다. 기현이 황급히 그런 재민을 말렸다.“재민아, 일단 흥분하지 마, 방법이 있을 거야. 같은 편이니 우릴 도울 수 있어. 게다가 인터폴이야. 너 인터폴을 죽이는 건 큰 문제가 아니지만, 윤아 씨부터 찾아야지. 지금 우리는 진성 씨가 필요해.”기현은 재민의 허리춤의 총을 쥔 손을 힘껏 눌렀다.진성도 황급히 위로했다.“권재민 대표님, 아직 기회가 있습니다. 밖에 비도 오고 바람도 심해서 빨리 갈 수 없으니 아직 멀리 가지 못했을 거예요.”“게다가, 우리 배에는 위치추적 장치가 있어요. 아주 은밀한 곳에 두었으니, 그들은 분명히 찾을 수 없
한기현은 사람과 함께 현진성의 사람들을 따라 수술실의 암도 쪽으로 후퇴하기 시작했는데 길을 따라가다가 애스릭의 사람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기현은 그들 모두가 깨끗이 떠난 줄 알고 있었는데 애스릭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사람을 남겨 그들을 몰살시킬 준비를 했을 줄은 몰랐다.기현의 눈에 갑자기 핏빛이 솟구쳐오르더니 몸을 돌볼 겨를도 없이 맨주먹으로 몇 사랑을 해치웠다. 총을 겨누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독살스러운 모습까지 보여 상대방을 놀라게 했다.그 사람들은 애스릭을 보낸 후 매우 내키지 않았다. 한바탕 뒤지고 나서 도망갈 계획이었는데, 결국 절반 정도 뒤지다가 기현 일행을 만났다. 특히 기현은 어두운 얼굴을 한 채 그들에게 원한을 품고 있는듯 보였다.그들은 원래 기현 일당과 대충 싸우려고 일부러 그들을 놓아주려 했는데 기현이 달려들어 그들 몇 사람을 쓰러 눕히자 분노가 치밀어 올라 기현 일행과 뒤엉켜 싸우기 시작했다.기현이 상대방의 생각을 알면 지금쯤 후회해 죽을지도 모른다. 몇 분 동안 아무렇게나 싸우면 될 일을 이렇게 충동적으로 또 한 번 미뤘다.몇 분 동안 싸운 후, 쌍방은 모두 머뭇거리기 시작했다. 기현의 왼팔이 그 무리의 두목을 누르고 있었고, 다른 한 손에는 총을 쥐고 그의 관자놀이에 총구를 겨누고 있어 쌍방이 모두 시기를 기다리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기현은 그들의 타협을 기다렸고, 그 사람은 반격의 기회를 기다렸다.이 팀장은 원래 타협하려 했지만, 지금 이 지경에 이르니 승리욕이 자극되었고 지금은 고개를 숙일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머리를 숙이면 부하들이 그를 무시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목숨을 걸고라도 그는 승부를 내려고 했다.이때 폭발음이 드디어 또렷하게 들렸고 그 사람은 이때 갑자기 손을 썼다.기현은 그가 성급히 달려들 것을 예상한 듯 손을 빼 권총을 내던지고 날쌔게 상대방의 손을 잡아 그의 등 뒤로 돌렸다. 두 발은 날렵하게 그의 허리와 배를 걷어찼고 곧 사납게 그의 몸을 비틀어 앞을 가
현진성은 애스릭의 부하들이 베티를 데려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마음이 가라앉았다. 애스릭이 아직도 단념하지 않고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애스릭이 베티를 포기하거나 그들과 함께 죽으려고 이 보이지 않는 장치를 작동시켰다고 생각했다.애스릭이 여전히 단념하지 않고 베티를 데려가서 부활을 꿈꾸고 있을지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렇다면 애스릭은 고승혁 교수와 강윤아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진성은 갑자기 눈꺼풀이 미친 듯이 뛰며 뭔가 심상치 않은 느낌이 들었다. 그때 윤아와 고승혁 교수가 숨어 있던 방에서 총소리가 났다.그는 급히 아까의 그 방으로 돌아갔다. 들어가 보니 그가 배치한 사람 중 몇 명은 상처를 입었고, 또 몇 명은 이미 의식을 잃었으며 그중 한 명은 이미 죽었는데 의사였다. 그 의사는 아기의 인큐베이터를 필사적으로 안고 있었다.진성은 그 의사의 시체를 땅에 부축하려고 했지만, 그 사람의 손이 인큐베이터 가장자리를 필사적으로 잡고 있어서 아주 많은 힘을 써서야 그 손을 쪼갰다. 진성은 겨우 옆 깨끗한 곳으로 메고 가서 그를 살며시 내려놓았다.의사를 내려놓은 진성은 돌아서서 인큐베이터 안의 아기를 살펴보았다. 아기는 인큐베이터 안에서 매우 달콤하게 자고 있었기에 조금 안심할 수 있었다.현장은 매우 혼란스러웠고 모두가 엎드려 있어서 진성은 한동안 누가 누군지 분간할 수 없었다. 그는 하나하나 뒤집어 보았다. 애스릭의 사람들이 그냥 들어와서 그들을 다 죽였다고 생각했지만 고승혁 교수를 데려갔을 줄은 몰랐다.진성은 갑자기 윤아가 떠올랐다. 총소리가 그렇게 컸으니 윤아가 정신을 차리지 않았을 리 없다. 진성은 급히 모퉁이의 병상 옆으로 달려갔다.이불 속이 울퉁불퉁했다. 그는 처음에는 고승혁 교수 등이 윤아를 보호하기 위해 그녀의 얼굴을 덮었다고 생각했지만 열어보니 안에 베개가 있었다. 진성은 멍해졌다.“이 방은 밀폐되어 있는데 그들은 어디에 잡혀간 거지? 게다가 방금 내가 문 앞에서 지키고 있었으니 문으로 나갔을 리가 없어.”진성은 조급했다.갑자기
고승혁 교수는 숨을 헐떡이며 말하고는 바다 위를 바라보았다. 바다 위에 배가 한 척 있었는데 애스릭이 그 배에 있었고 많은 사람이 그들에게 총을 겨누고 있었다.고승혁 교수는 깜짝 놀라 몇 발짝 뒤로 물러서며 겁에 질린 표정을 지었다.“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현진성은 그에게 대답할 방법이 없어서 그를 붙잡고 비밀 통로로 갔다.권재민도 급히 한기현에게 연락해 무슨 일인지 알아보라고 했다.그러나 신호를 받자마자 재민은 기현 쪽에서 싸우는 소리를 들었다.“기현아, 무슨 일이야?”재민은 노심초사하여 급히 물었다.“방금 그 사람들이 들이닥쳐 시스템을 파괴했어. 최선을 다해 구조했으니 지금은 30분 정도 지연될 수 있어.”“시스템 복구가 시급한데 지금 그들과 싸우는 중이라…… 도저히 손을 쓸 수가 없어.”기현은 시스템 감시실에서 애스릭의 부하들과 싸우며 관제탑에 다시 접근하지 못하게 막으면서 권재민과 이쪽의 상태를 보고했다.보고하는 과정에서 재민은 기현의 끙끙거리는 소리까지 듣고는 더욱 마음이 급해졌다.“기아현, 너는 어때? 버틸 수 있겠어? 시스템 쪽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지금은 복구할 방법이 없어. 이젠 네가 나설 차례야. 우리가 살아나갈 수 있는 시간은 안 남았어요, 재민아.”“상대편은 사람이 너무 많은데 우리 사람은 이 몇 명밖에 없어. 버티기 힘들 것 같아, 재민아, 빨리 와.”기현이 헐떡이며 소리쳤다.재민은 이 소식을 듣고 마음이 급했지만 윤아가 이쪽에 있었기에 결정하기 어려웠다. 윤아가 힘없는 사람들과 함께 있어서 매우 걱정했다.진성은 재민이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며 얼굴을 찌푸렸다.“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내 부하들이 애스릭의 부하들에게 습격당했고, 그자들이 통제실의 시스템을 파괴했대요. 지금 우리 부하들이 그들과 싸우고 있는데 기현이도 그들에게 얽매여 시스템을 고칠 기회가 전혀 없어요…… 나는 윤아 씨가 마음에 걸려요.”재민은 머뭇거리다가 말을 꺼냈다.“가요, 여기 내가 있을게요. 기지 안에 내 사람이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