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좋은 음식을 먹는 것이 불가능하기에, 권재민은 친절하게 요리사를 배치했다.강윤아는 배가 고프지만 몸에서 시큼한 냄새가 나서 참을 수 없었다.“샤워부터 하려고요. 냄새가 너무 나요.”윤아는 자신의 몸에서 나는 냄새를 맡으며 혐오감에 찬 눈빛을 지었다.재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윤아의 말에 따랐다.“은찬아, 너도 샤워해야지.”윤아는 깨끗한 옷 몇 벌을 찾아 은찬이에게 건넸다.은찬이는 옷을 받고 욕실로 들어갔고 윤아도 치우고 다른 욕실로 들어갔다.태준과 재민도 쉬지 않고 거실에 앉아 주머니에 숨겨둔 물건을 꺼냈다.그들은 일부 부품과 물건을 연구하고 있었는데, 공장에서 가져온 것이다.처음 들어갔을 때, 그들은 이 공장이 어딘가 수상하다고 생각해서 눈여겨보다가 작은 부품들을 가져왔다.“이것들은 뭔가 있는 것 같아.”재민은 가지고 나온 부품을 하나하나 살펴보며 말했다.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맞아. 이것들은 딱 봐도 총기의 부품이야.”태준은 이 분야에 접촉이 많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이 부품들은 평소에 보기 드물고, 적은 편이다.두 사람의 표정이 동시에 굳어졌다.태준과 재민 두 사람은 공장 안에서 며칠을 지내면서 공장의 구조를 거의 알아냈다. 그들은 이 분야에 경험이 있으므로 단기간에 노선을 익힐 수 있었다.일반인이었다면 아마 한 달이 더 걸릴 것이다.이렇게 큰 기지에서 이런 물건을 만들고 있었다.이런 것들이 만들어져서 어디로 보내질지 알 수 없었다. 파는 건지 아니면 한 곳에 고정적으로 공급되는 건지, 아니면 누군가를 위해 만들어지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보아하니 이 기지가 만만치 않은 모양이야.”재민은 이 기지에 대한 호기심이 더 커졌다.태준도 한마디 했다.“사람을 시켜 조사할게.”이때 윤아가 샤워를 마치고 나왔다.“두 사람 왜 그래요? 안색이 왜 이렇게 안 좋아요?”윤아는 머리에 있는 물기를 닦으며 말했다.윤아에게 이런 걸 솔직히 말할 재민이가 아니었다.“아무것도 아니에요.”재민이 말하지 않으려 한다면
“DNA…… DNA가 왜요?”강윤아는 권재민을 미심쩍은 눈으로 바라보았다.그러나 재민은 윤아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다른 생각을 했다.“참, 그때 당신은…… 은찬이의 아빠와……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었어요?”재민은 저도 모르게 물었다.윤아는 어리둥절해 있다가 문득 불편한 기색이 얼굴에 떠올랐다.이 일은 그녀가 줄곧 꺼내고 싶지 않았는데, 다행히 재민도 진지하게 물어본 적이 없었다.윤아는 재민이 묻지 않을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또 묻기 시작했다.윤아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갑자기 그건 왜 물어요?”고개를 들어 그를 쳐다보는 윤아의 눈에는 초조함과 불안감이 스쳤다.‘설마 DNA 검사에서 뭐가 나왔다는 건가?’재민은 망설이는 윤아의 모습을 보며 그녀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짐작하고 얼른 달래기 시작했다.“걱정하지 말아요, 다른 뜻은 없어요. 그냥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듣고 싶을 뿐이에요.”윤아는 재민을 바라보며 의아해하면서도 순순히 털어놓으려 했다.왠지 재민이 급해 보이는 것 같아 망설였던 마음도 싹 가셨다.윤아는 고개를 떨군 채 곰곰이 기억을 되새겼다.솔직히 윤아는 그 추억에 대해 시종일관 떳떳하지 못한 생각이 들었다.은찬이의 존재에 대해 그녀는 늘 행운이라 생각했지만, 그 과정은…….대부분의 사람이 미혼모를 받아들일 수 없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화가 난 강예성에게 쫓겨나지도 않았을 것이다.“그때 호텔 방에서 쉬려고 했는데 왠지 이상한 냄새가 나서…….”윤아의 속눈썹이 가볍게 떨렸고, 그때 있었던 일들이 한꺼번에 그녀의 머릿속으로 밀려오는 듯해 눈을 감았다.‘뭐라고 해야 하지…….’사실 부끄러운 일이다. 더구나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별로 추억하고 싶지 않았던 과거 얘기를 꺼내야 한다는 것은 지옥이었다.재민도 윤아의 어색한 반응을 눈치챘다. 윤아의 입에서 그간의 과거를 알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손을 내밀어 살며시 윤아의 손을 잡았다.“말하기 싫으면…… 그만둬요. 그냥 확인하고
강윤아는 어리둥절해졌다.한참 후, 그녀는 마침내 정신을 차린 듯 권재민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입가에 천천히 웃음을 띄웠고, 눈에는 눈물이 반짝였다.“재민 씨였네요…… 정말 잘됐어요…… 그 사람이 재민 씨였어요…….”권재민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속삭였다.“그래요, 그 사람이 윤아 씨라서 다행이에요…….”재민은 천천히 윤아에게 다가가 눈가에 흐르는 눈물에 가볍게 키스했다.그는 윤아에게 이 사실을 알렸지만, 결코 윤아가 우는 모습을 보고 싶은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웃으며 손을 들어 눈물을 닦아 주었다.“바보, 반가운 일이 아닌가요? 왜 아직도 울어요?”윤아는 여전히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재민의 말을 들은 그녀는 황급히 그를 노려보았다. 눈빛에는 별다른 위압력이 없었고 재민의 눈에는 오히려 그런 윤아가 귀엽게만 보였다.앙증맞은 윤아를 바라보는 재민의 눈빛이 침울했고, 곧이어 색다른 의미를 띠었다.재민은 가볍게 고개를 숙여 윤아의 입술에 키스했고, 윤아도 고개를 젖혀 따뜻하게 키스했다.사랑이 무르익자, 재민의 욕망도 점점 끓어올랐다. 게다가 그렇게 윤아와 다정하게 지낸 적이 없으므로 순간적으로 자신을 억제할 수 없었다.방안은 점점 더 뜨거워졌고, 그럴 마음이 없었던 윤아의 얼굴까지 서서히 붉어졌다.하지만 윤아는 뱃속의 그 아이를 생각하며 자신의 마지막 이성을 붙잡고 재민을 밀어내려 했다.“임신 중이잖아요…….”애교를 부리는 듯 화내는 말투가 재민의 욕망에 더욱 부채질했다.재민은 고개를 숙여 그녀의 입술을 막았고, 그녀의 옷 속으로 손을 넣고 더듬기 시작했다.두 사람이 모두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을 때 재민은 비로소 조금 물러서며 웃는 듯 마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진혁에게 물었더니 벌써 석 달이나 되었으니 조심하면…… 괜찮대요.”강윤아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그 말은 미리 계획한 것이란 말인가…….’그렇게 두 사람은 끝내 달콤한 시간을 보냈다.일을 마치고 나서 윤아는 의외로 졸리지 않았는데 아마도 재민을 오랫동안 만나
송해나는 이 사실을 듣고는 당연히 화가 났다. 그리고 안토니의 손을 뿌리치고 옆으로 가 앉았다.토니도 이 일이 실패할 줄은 몰랐다. 자신이 보낸 킬러가 실패한 적이 없었으니까.“해나?” 토니가 해나를 부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날 부르지 마.” 해나는 정말 화가 난 듯했다.토니는 자신이 만반의 준비를 했다고 했는데, 결과적으로 킬러는 죽었다.“제가 좋아하는 해나.” 토니가 해나 쪽으로 조금 다가가며 말했다. “킬러가 죽었다고 해도 그게 충성을 다한 걸지도 모르죠. 게다가 킬러가 죽었다고 해서 뭐 어때요. 강윤아 씨가 죽었다면 그게 중요하죠. 킬러가 이미 그녀를 죽였을 수도 있어요, 그런 곳에서 윤아 씨가 어떻게 살아남겠어요?”토니는 여자를 달래는 데에 일가견이 있었다. 그녀들이 원하는 대로 말하기만 하면 됐다.해나는 토니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윤아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 없으니까. 그녀를 보지 못했다면 여전히 희망은 있었다.하지만 해나는 여전히 자존심이 상했다.토니는 해나를 돌려 자신을 바라보게 했다. “해나, 화내지 말자. 주름 생길라.”해나는 무관심한 표정으로 토니를 바라보았다.토니는 농담하듯 말했다. “괜찮아, 주름 생겨도 내가 키스하면 없어져.”토니가 말을 마치자마자 해나에게 키스하려 했고 해나는 몸을 뒤로 젖혀 피하려 했다.토니는 해나를 다시 끌어안았다. “괜찮아, 이번에 성공하지 못했어도 어때? 나 토니에게는 수단과 기회가 많아. 이번에 안 되면 다음번에, 다음번에는 실망하게 하지 않을 거야.”해나도 똑똑한 여자였다. 토니가 이런 식으로 달래주는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라는 것을 안다. 토니가 이렇게까지 말했는데 자꾸 짜증을 내면 안 되는 일이었다.“음.” 해나는 쉬워 보이지 않으려고 여전히 화난 척하며 무덤덤하게 대답했다.토니는 해나가 더 이상 화내지 않자 기쁜 마음에 해나의 얼굴에 ‘쪽’ 하고 입을 맞췄다.두 사람은 다시 즐겁게 놀았다.재민은 아무 이유 없이 회사를 며칠간 떠났는데, 비
강윤아는 권재민이 자신을 데리고 집에 가서 설명하겠다고 하자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그럴수록 그의 손을 더욱 꽉 잡았다.재민도 물론 긴장했지만 윤아가 긴장한 걸 느끼고 이내 위로했다.“긴장할 필요 없어요, 괜찮아요.”“하지만.” 강윤아는 권씨 집안 사람들이 자신을 적대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떠올리며 마음이 두려워 났다.“걱정 마요, 원래 은찬이가 제 친자식인 줄 몰랐을 때는 두려워할 수 있지만 이제 알았으니까, 무슨 걱정이에요?” 재민은 자신만만했다.‘은찬이 자기 친자식이라는데, 어찌 됐든 권승호가 윤아를 쫓아낼 리 없지 않은가?’하지만 윤아는 여전히 불안해했다. 권씨 집안에 도착할 때까지 긴장한 상태가 풀리지 않았다.권씨 집안 사람들은 재아의 소식을 받고 재민이 도착하기 전부터 모두 거실에 모여 긴장하고 있었다.오늘 논의할 사항은 권씨 집안의 혈통에 관한 것이어서 진지하고 엄숙하게 다뤄야 할 사안이었다.재민은 한 손으로 강윤아를, 다른 한 손으로 은찬을 이끌고 권씨 집안으로 당당하게 들어갔다.“돌아왔니?” 승호의 위엄 있는 목소리가 거실에서 울려 퍼졌다. 물음표가 붙어 있었지만 꾸짖는 말투였다.재민은 당연히 이를 알아채고 답했다.“응.”“돌아왔다면 그들 모자의 일에 대해 설명해봐.” 승호가 윤아를 가리켰다.윤아는 두려움에 온몸이 움츠러들며 조금 뒤로 물러났다.재민은 윤아의 손을 꽉 잡았다.“좋아요.” 재민은 은찬을 앞으로 끌어내며 말했다. “이 아이가 바로 저, 권재민의 친자식입니다.”승호의 눈길은 차가웠다. 은찬과 재민을 번갈아 살펴보며 은찬을 주의 깊게 관찰했다.말하지 않아도, 자세히 살펴보면 은찬과 권재민의 얼굴이 몇군데 비슷한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닮았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겠는가?세상에 닮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닮았다고 다 재민의 아들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건 정말 터무니없고 웃기는 일이다.“증거는?” 승호는 확실한 증거를 원했다.“죄송합니다, 제가 늦었네요.” 입구에서 울리
이 소식을 듣고 재민은 참지 못하고 화를 내기 시작했다.‘이 사람들은 왜 모르는 건지!’‘지금 강윤아가 내 마음속에서 차지하는 지위가 아주 큰데 왜 이 사람들은 여전히 마음속에 아무런 숫자도 없지?’만약 그들이 이 사실을 숨기려고만 생각한다면 그렇게 해도 좋지만, 이런 일들이 어떻게 재민에게 숨겨질 수 있겠는가? 이 사실이 한번 드러나면, 그들에게 무슨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을까? “사람을 찾아서 그 진욱이라는 놈을 통제해.”재민은 침착한 얼굴로 기태에게 말했다.‘감히 그의 앞에서 손찌검하다니, 그런데도 몸을 사리지 않고 맞선다고? 말도 안 되는 일이다.’“알겠습니다, 권 대표님.” 기태는 재민의 말을 듣고 재빨리 대답했다.기태가 몸을 돌려 떠나려 할 때 재민은 다시 그를 불러 세웠다.“잠깐.”재민의 목소리를 듣고 기태는 재빨리 몸을 돌려 재민을 바라보았다.“권 대표님, 또 무슨 분부가 있습니까?”“아직 일이 좀 있어서 네가 좀 도와줘야겠어.”재민은 말하면서 책상 앞에서 일어났다. 그의 눈동자가 좀 더 깊어 보였다.기태는 재민의 이런 모습을 보고 엄숙해서 말했다.“무슨 일이에요?”재민은 잠시 고민하다가 목소리를 내어 물었다.“박미란 쪽은 요즘 어떤 상황이야?”미란이가 이런 일을 한 이상 재민은 자신도 확실히 그녀를 자세히 알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그는 오랫동안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던 미란이가 이런 일을 저지를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박미란 씨는 최근 도박에 빠져 며칠 동안 지하 도박장에 머물렀던 것 같습니다.”기태는 손에 든 자료를 한 번 보고 재민을 향해 말했다.지하 카지노?미란은 지금 자신이 직면하게 될 것이 무엇인지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그녀는 여전히 도박장에서 무모하게 즐기고 있다.재민도 정말 이해할 수 없다. 무엇 때문에 사람이 이렇게 무모할 수 있고 이렇게 자신만만할 수 있는 건지, 이런 일을 한 후에도 아무런 심리적 부담이 없는지 정말 의아해 났다.“그녀는 아직도
“권 대표님, 우리 함께 방법을 생각해 보죠. 화를 내지 마세요. 몸에 좋지 않습니다.”권재민이 분노를 억누르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윤기태는 끝내 참지 못하고 말렸다.비록 기태도 자신의 이런 설득이 어떤 작용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그러나 어쨌든 약간의 심리적 위안을 줄 수는 있겠지.’재민도 기태가 자신을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손을 들어 자신의 찌푸린 미간을 가볍게 어루만졌다.“응, 나도 알아. 하지만 어쩔 수 없었어.”재민은 물론 화가 아무런 작용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윤아가 그렇게 많은 고난을 겪은 것을 보면서 그녀를 보호해 주지 못했다. 그러니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이때 기태의 눈이 밝아지며 한 생각이 그의 머릿속에서 떠올랐다.“권 대표님, 한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재민은 줄곧 기태를 매우 신임해 왔으며 또 그가 헛소리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설사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고 있어도 말이다.“뭔데?”기태는 진지하게 생각을 정리하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지윤은 지금 권씨 집안에 계십니다. 만약 그녀가 시집을 간다면 상황을 적지 않게 좋아질 것입니다.”기태의 말을 들은 후 재민도 한동안 궁리했다. 맞는 말이다.“응, 이제 와서 다른 방법도 없으니 네가 말한 대로 하자.” 재민은 생각해 보고 기태의 이 제의에 동의했다.재민의 유능한 조수로서 기태의 일 처리 효율도 특별히 높았다. 재민의 허가를 받은 후 두말없이 바삐 돌아 치기 시작했을 것이다.지윤이가 시집가기만 한다면 두말할 것 없이 권씨 집안을 떠나야 한다. 승호도 이미 다른 사람의 집에 시집간 아이를 간섭하지 않을 것이다.그리고 지윤이가 시집을 좀 멀리 가기만 하면 승호는 관리하려 해도 어려운 일이 될 것이다.윤아는 집에 돌아와 모처럼 휴식 시간을 가졌다.마침내 그런 환경을 벗어나자 윤아의 마음은 금세 풀린 것 같았다. 마침 재민도 집에 없어서 은찬과 함께 놀았다.은찬도 오랜만에 긴장을 풀고 윤아와
두 사람은 당초 그들이 관계를 맺었던 그 방에서 하룻밤을 묵으며 당시의 아름다움을 추억할 생각을 했다.그때 강윤아는 어리둥절했고, 두 사람의 만남이 이렇게 아름다웠다는 것을 전혀 몰랐다. 이렇게 돌고 돌았어도 결국에는 만나게 되었다.“우리 프런트에 가서 이 방을 예약하고 싶다고 말할까요?” 윤아는 부끄러운 듯 그 방을 가리켰다.권재민도 고개를 끄덕였다.“나도 그럴 생각이었어요.”두 사람은 깍지를 낀 채 프런트로 향했다.“죄송합니다만, 이 방은 이미 예약이 되어 있어서 오늘 저녁에는 아마도.”리셉셔니스트가 다소 미안한 듯 입을 열었다.“비싼 값을 내겠습니다.”재민은 말하면서 자신의 카드를 건네주었다.재민은 그날 밤의 여자가 윤아임을 알게 된 후 처음으로 이곳에 왔다. 두 사람에게 있어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이미 쉽지 않은 일이었기에 오늘 밤에는 꼭 이 방에 머물러야 한다.“선생님.” 리셉셔니스트가 난처해하며 말했다.“정말 죄송합니다. 예약한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가 마음대로 방을 배정할 수는 없습니다.”“그만두죠?” 윤아는 아쉬워했다. 다른 사람이 예약했다니 강요할 수도 없고, 또 나중에 기회가 있을 수 있기에 다시 오면 그만이다.재민은 고개를 저으며 윤아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직접 리셉셔니스트에게 물었다.“예약한 사람의 연락처가 있을까요?”재민이가 이런 작은 일도 해결하지 못한다면 그는 권씨 집안 사람이 아니었다.“이건.” 리셉셔니스트는 난처해 했지만 예의를 잃지 않고 미소를 지었다.“고객의 개인 정보는 함부로 누설해서는 안 돼서요.”재민은 도리어 리셉셔니스트에게 도리를 말했다.“내가 연락처를 원하는 것은 협박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와 상의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당신들이 해결할 수 없다면 저희에게 넘겨주세요.”“우리는 그들을 괴롭히려는 게 아니에요. 그러니 연락처를 주세요. 그 방은 저와 제 아내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어요.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재민은 낮고 매력적인 목소리로 그녀를 설득했다. 잘생긴
강윤아라는 말에 권재아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윤아가 우리 집에 온 이후로 힘든 일을 많이 겪었고 늘 다른 사람의 타깃이 되었어요. 재민이가 너무 다른 사람의 호감을 사 그녀를 연루시킨 거죠.”“재아 씨가 지금 걱정해도 소용없어요, 재아 씨부터 잘 챙겨요.”윌은 재아의 말을 듣고 웃으며 말했다.“자, 재아 씨 기분 전환하러 갔다가 나중에 우리 집에 가요.”그 말을 들은 권재아는 얼굴이 빨개졌다.“얼굴이 왜 빨개지는 거예요? 내가 옆에 있었으면 재아 씨가 좀 더 편하게 잠들 거예요.”윌은 웃으며 농담했다.재아는 얼굴이 빨갛게 상기 된 채 그를 한 대 때렸지만 거절하지 않았다.날이 저물자 바다는 칠흑 같은 어둠에 잠겼고 이따금 파도가 아련하게 일기도 했다. 해변의 모래사장에는 간간이 등불이 있는데, 등불은 그다지 밝지 않고 군데군데 있어서 밤하늘의 별과 서로 잘 어울렸다.재아는 부드러운 모래를 밟으며 앞으로 한 걸음씩 폴짝폴짝 뛰어갔다. 귓가에 들려오는 파도 소리가 아득하고도 고요했다.윌은 재아의 뒤에서 몇 걸음 걷다가 재아가 전혀 알아채지 못하자 성큼성큼 몇 걸음 앞으로 나가 그녀의 손을 잡고 손바닥으로 감쌌다.재아는 어리둥절해 하더니 이내 두 눈이 반달 모양으로 변했다.“손잡고 싶은 거면 얘기하지 그랬어요.”재아의 표정이 너무 도도해서 윌은 눈살을 찌푸리고 손가락으로 그녀의 코끝을 긁었다.“그러게 누가 재아 씨더러 아무것도 모르래요?”술도 밥도 배불리 먹었으나 그 뒤로 딴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재아는 윌 덕분에 배불리 먹었고 지금은 기분이 너무 좋았다. 윌의 손을 잡고 있자니 따뜻한 손바닥에서 전해오는 힘에 말할 수 없는 안정감을 느꼈다.백사장을 따라 한참을 걸은 후에야 마침내 윌이 말한 그 ‘재미있는 곳’에 이르렀다.재아는 어두컴컴한 불빛 속 나무 밑에 숨어 있는 해먹에 하마터면 눈살을 찌푸릴 뻔했다.“여기가 재밌는 곳이에요?”“재미있는 곳이라고 하지 않으면 안 올 거잖아요?”윌은 미소를 지으며 먼저 올라탄
회의가 끝난 후, 권재아는 권현우가 그녀를 쉽게 보지 못하게 하려고 여전히 당당하게 걸어 나갔지만, 사무실로 돌아온 후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초조하고 어쩔 수 없는 표정을 지은 재아는 매우 낭패한 모습이었다.재아는 권재민에게 이 일을 알리려 문자를 보냈지만, 그쪽에서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재아는 윤기태에게도 이 일을 말했다. 기태도 분노했지만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재아가 풀이 죽은 모습을 보며 화가 났지만 재아를 먼저 위로할 수밖에 없었다.“대표님, 이런 결과는 대표님도 원하지 않겠지만, 정말 방법이 없잖아요. 자책하지 마세요, 권재민 대표님이 돌아오시면 분명히 이 일을 해결할 수 있을 거예요.”재아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기태의 위로가 전혀 소용이 없었고 재아는 여전히 괴로웠다.재아의 이런 모습을 본 기태는 더는 방해하지 않고 그녀에게 인사한 후 자리를 떴다.늦은 시간, 재아는 여전히 회사에서 일을 처리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사무실 문이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권재아는 고개도 들지 않고 대답만 했다.갑자기 넓은 손이 재아 앞에 다가오더니 그녀의 머리를 강제로 들어 올렸다.재아는 화를 내려다가 윌임을 발견했다. 순간 화가 난 얼굴이 미리 설정된 듯 활짝 웃는 얼굴로 바뀌었다.“아, 윌, 여긴 어쩐 일이에요? 귀국하지 않았어요? 돌아왔으면 나한테 말해주지 그랬어요. 그랬으면 내가 공항으로 데리러 갔을 텐데.”윌은 재아의 머리를 받치고 있던 손을 풀고 책상을 돌아 재아의 앞으로 다가갔다. 하지만 그러는 내내 눈빛은 재아에게서 떠나지 않았다.“보고 싶어서 돌아왔어요. 알려줬으면 어떻게 서프라이즈를 해줬겠어요. 왜 이렇게 피곤한 얼굴이죠? 날 봤을 땐 화가 잔뜩 난 얼굴이었어요.”윌이 그녀 앞에 서자 재아는 윌의 허리를 끌어안고 머리를 살짝 윌의 몸에 기대며 풀이 죽은 듯 한숨을 내쉬었다.윌은 그녀가 말하고 싶지 않은 듯해 보여 더는 강요하지 않고 빨리 나가자고 재촉했다.“주차장에서 오래 기다렸는데도 안 내려와서 야근하는 거 아닌가
권재민은 강윤아의 움직임을 추적한 뒤 곧바로 현진성과 합류해 구출 계획을 논의하고 애스릭이 숨어 있는 곳으로 쳐들어가려 했다.하지만 이번에도 그들은 변장하고 다가갔다. 애스릭은 분명 그들을 경계할 것이고, 외딴 섬에서의 일을 겪었으니 애스릭의 경계와 의심이 더 강해지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그래서 그들은 반드시 만반의 계획을 세워야만 윤아를 구해낼 수 있다고 판단했다.같은 시간, 국내에 있던 김소혜와 서만옥은 출국할 예정이었다.그날 기슭에 도착한 후 재민은 아이를 안배하고 나서 소혜에게 전화를 걸었다. 소혜는 발신자가 실종된 지 오래된 자기 아들이라는 것을 보고 매우 흥분했다.“재민아, 드디어 엄마한테 전화했구나. 그동안 네가 나한테 전화 안 해서 우리도 방해할 엄두가 안 났는데 너는 지금 어때? 윤아는 행방불명이야? 윤아를 구해낸 거 아니었어?”소혜는 재민의 전화가 희소식을 전하러 걸려온 것으로 생각했다. 그녀의 마음속에서 재민은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모든 일을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재민의 전화를 받은 후 마음이 매우 흥분되고 기뻤기 때문이기도 했다.재민은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그는 소혜의 이렇게 흥분한 말투를 들으며 차마 그녀에게 사실을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급박해서 아이를 돌볼 가족이 있어야 했다. 비록 의사가 있지만 그는 여전히 마음을 놓을 수 없다.그는 이를 악물고 실정을 소혜에게 말했다.“엄마, 내 말 좀 들어봐요. 마음을 다잡고 들어요, 일이 이렇게 됐어요…… 엄마가얘기한 거랑 상황이 좀 달라요. 윤아가 처음에 구출되긴 했는데 다시 잡혀갔어요. 그동안 연락이 없었던 건 내가 계속 그 사람의 경계에 잠복해있었기 때문이에요.”재민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소혜가 말을 끊었다.“뭐? 구출되긴 했는데 또 잡혀갔다는 건 뭐야?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엄마, 내 말끝까지 들어봐요.”재민이 이마를 어루만졌다.“이 일은 당분간 자세히 말하기 어려워요. 제가 윤아를 데려가고 나서 자세히 말해줄게요.”
고승혁 교수가 협조를 거부했기 때문에 애스릭은 더 심하게 때렸다. 거의 몇 시간마다 가서 괴롭혔는데 매번 때리는 것은 아니었다. 때로는 말로 욕했지만 고승혁 교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강윤아는 고승혁 교수가 돌아올 때마다 얼굴에 약간의 상처가 생기는 것을 보고 차마 지켜볼 수 없었다.사실, 애스릭이 매번 고승혁 교수를 데려갈 때마다 그가 입을 열어 경험을 전수해주도록 했을 뿐 매번 그를 때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고승혁 교수는 돌아올 때마다 애스릭의 부하들에게 얻어맞았다.고승혁 교수는 베티를 치료해 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들을 배신하기까지 했기 때문에 그들은 매우 원망스러웠다.“고승혁 교수님, 저 때문에 교수님이 억울한 일을 당했으니 협조하고 절 그냥 내버려 둬요.”“괜찮아요, 때리고 싶으면 때리고 욕하고 싶으면 하라고 해요. 나는 견딜 수 있어요. 나는 오히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이 어디까지인 보고 싶어요. 언젠가 내가 정말 견딜 수 없게 되면 자연히 그들에게 항복할 거예요. 그때 가서 윤아 씨가 나를 원망하지 말아주세요.”고승혁 교수는 손을 내저으며 개의치 않는 듯 윤아를 향해 농담까지 했다.“교수님은 이미 내 목숨을 구해줬고 내 아이를 지켜줬어요. 이것만으로도 저는 이미 교수님에게 감사해요. 교수님이 앞으로 나를 어떻게 대하든 나는 받아들일 수 있어요.”윤아는 고승혁 교수의 이런 모습을 차마 지켜볼 수 없었다.“정말 내 걱정은 안 해도 돼요. 이건 내 인생 경험의 일부일 뿐이에요. 살아서 나갈 수 있다면 밑지는 장사는 아니에요. 굴복해 연명할 수 있지만 내 양심에 어긋나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아요.”고승혁 교수는 윤아가 미안한 표정을 짓자 그녀를 안심시켰다.윤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우리가 살아서 나갈 수 있다면 교수님의 연구원에 많이 투자할게요.”“그럼 먼저 윤아 씨에게 감사해야겠어요.”“고승혁 교수님, 우리는 함께 목숨 걸고 싸운 사이이니 그냥 저를 윤아라고 부르세요, 윤아 씨는 너무 서먹서먹해요.”윤아가 고승혁을
메리는 인큐베이터 옆에 있는 의사가 멍하니 있는 것을 보고 그를 한 번 쿡 찌르며 낮은 소리로 주의를 시키었다.“존, 사람들이 묻고 있잖아요.”“네?”존은 어리둥절하게 되물었다.권재민은 옆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다시 물었다.“내 아이의 상태가 어떤지 물었어요.”“아기는 지금 상태가 안정돼 있고 아까 그 혼란스러운 상황에도 놀라지 않았어요. 달이 차지 않아 태어났기 때문에 면역력이 좋지 않아 인큐베이터에 좀 더 있어야 할 것 같아요.”존은 마침내 반응을 보였고 무서워서 한 걸음 뒤로 물러나며 말했다.재민은 가볍게 알았다고 대답하고 고개를 숙이고 인큐베이터 안의 아이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는 갑자기 생명이 정말 완강하다고 느꼈다.강윤아에게 그렇게 많은 위험이 닥쳤는데도 이 아이는 이렇게 안전하고 무사하게 태어났고, 게다가 아무런 문제도 없으니 앞으로도 꿋꿋이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눈앞의 작은 아이가 이렇게 많은 일을 겪으면서도 건강할 수 있다면, 아이의 엄마 윤아는 분명 더 완강할 것이다. 그동안 많은 일을 겪었지만 윤아는 아슬아슬하게 돌아왔으니 이번에도 반드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재민은 보면 볼수록 더 반가웠고 윤아가 출산할 때 옆에 없었지만 수술실 밖에 있었으니 좀 멀지만 어떻게 보면 윤아 옆에 있은 셈이다. 다음번에는, 다음번에는 윤아 옆에 꼭 있어 줘야겠다고 생각했다.재민의 부드러운 표정을 보고 현진성과 한기현도 옆으로 다가가서 아기를 바라보았다.“윤아 씨를 많이 닮아서 참 예뻐. 앞으로 윤아 씨처럼 예쁘게 자랄 거야.”기현은 한참을 쳐다보았다.옆에 있던 진성은 자기도 모르게 웃으며 말했다.“태어난 지 얼마 안 됐는데 어떻게 윤아 씨와 닮은 줄 알아요? 갓난아이는 이목구비도 다 비슷비슷하고 쭈글쭈글한 모습이 늙은이 같다는 생각만 들어요. 게다가 머리카락이나 눈썹도 다 나지 않았잖아요.”“진성 씨…… 왜 그래요? 분명 윤아 씨를 닮았잖아요?”핀잔을 들은 기현은 얼굴이 빨개졌다.“재민아. 진성 씨 봐, 너의 아이가
한기현은 다시 권재민에게 전화를 걸어 그들이 숨은 곳을 알려줬지만 강윤아가 끌려갔다는 사실은 알려주지 않았다.재민은 재빨리 이곳으로 달려와 둘러보았으나 윤아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미간을 찌푸린 채 의심스러운 얼굴로 기현과 현진성을 힐끗 쳐다보았다.“기현아, 현진성 씨, 윤아 씨는요? 윤아 씨가 왜 여기에 없죠?”두 사람은 안절부절못했다. 평소 대단한 사람들이었지만 지금 재민 앞에서 감히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다.기현은 슬며시 진성을 쳐다보고 몰래 진성을 쿡 찔렀다. 진성은 방심하다 밀려났고 뒤를 돌아보며 기현을 노려보았지만 기현은 고개를 숙이고 더는 두 사람을 쳐다보지 않았다.“묻고 있잖아요! 윤아 씨는요? 내 아내 어디 갔어요? 당신들 윤아 씨를 어디로 데려갔어요?”재민은 두 사람의 행동을 보고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소리쳤다.진성은 미안한 표정으로 재민을 바라보며 재민에게 그가 떠난 후의 일을 대충 말했다.“권재민 대표님, 죄송합니다, 제가 윤아 씨를 제대로 돌보지 못해서 애스릭에게 빼앗겼어요. 제가 부주의했어요. 그 방에 숨으면 아무 일도 없을 줄 알았는데, 애스릭이 이렇게 교활하게 두 가지 계략을 쓸 줄은 몰랐어요.”“권재민 대표님, 지금 저를 때리고 욕해도 저 할 말이 없어요.”이 말을 들은 재민은 온몸에 살기가 피어올랐고 두 눈이 벌겋게 달아오른 채 진성을 노려보며 허리에서 총을 꺼내려 했다. 기현이 황급히 그런 재민을 말렸다.“재민아, 일단 흥분하지 마, 방법이 있을 거야. 같은 편이니 우릴 도울 수 있어. 게다가 인터폴이야. 너 인터폴을 죽이는 건 큰 문제가 아니지만, 윤아 씨부터 찾아야지. 지금 우리는 진성 씨가 필요해.”기현은 재민의 허리춤의 총을 쥔 손을 힘껏 눌렀다.진성도 황급히 위로했다.“권재민 대표님, 아직 기회가 있습니다. 밖에 비도 오고 바람도 심해서 빨리 갈 수 없으니 아직 멀리 가지 못했을 거예요.”“게다가, 우리 배에는 위치추적 장치가 있어요. 아주 은밀한 곳에 두었으니, 그들은 분명히 찾을 수 없
한기현은 사람과 함께 현진성의 사람들을 따라 수술실의 암도 쪽으로 후퇴하기 시작했는데 길을 따라가다가 애스릭의 사람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기현은 그들 모두가 깨끗이 떠난 줄 알고 있었는데 애스릭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사람을 남겨 그들을 몰살시킬 준비를 했을 줄은 몰랐다.기현의 눈에 갑자기 핏빛이 솟구쳐오르더니 몸을 돌볼 겨를도 없이 맨주먹으로 몇 사랑을 해치웠다. 총을 겨누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독살스러운 모습까지 보여 상대방을 놀라게 했다.그 사람들은 애스릭을 보낸 후 매우 내키지 않았다. 한바탕 뒤지고 나서 도망갈 계획이었는데, 결국 절반 정도 뒤지다가 기현 일행을 만났다. 특히 기현은 어두운 얼굴을 한 채 그들에게 원한을 품고 있는듯 보였다.그들은 원래 기현 일당과 대충 싸우려고 일부러 그들을 놓아주려 했는데 기현이 달려들어 그들 몇 사람을 쓰러 눕히자 분노가 치밀어 올라 기현 일행과 뒤엉켜 싸우기 시작했다.기현이 상대방의 생각을 알면 지금쯤 후회해 죽을지도 모른다. 몇 분 동안 아무렇게나 싸우면 될 일을 이렇게 충동적으로 또 한 번 미뤘다.몇 분 동안 싸운 후, 쌍방은 모두 머뭇거리기 시작했다. 기현의 왼팔이 그 무리의 두목을 누르고 있었고, 다른 한 손에는 총을 쥐고 그의 관자놀이에 총구를 겨누고 있어 쌍방이 모두 시기를 기다리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기현은 그들의 타협을 기다렸고, 그 사람은 반격의 기회를 기다렸다.이 팀장은 원래 타협하려 했지만, 지금 이 지경에 이르니 승리욕이 자극되었고 지금은 고개를 숙일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머리를 숙이면 부하들이 그를 무시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목숨을 걸고라도 그는 승부를 내려고 했다.이때 폭발음이 드디어 또렷하게 들렸고 그 사람은 이때 갑자기 손을 썼다.기현은 그가 성급히 달려들 것을 예상한 듯 손을 빼 권총을 내던지고 날쌔게 상대방의 손을 잡아 그의 등 뒤로 돌렸다. 두 발은 날렵하게 그의 허리와 배를 걷어찼고 곧 사납게 그의 몸을 비틀어 앞을 가
현진성은 애스릭의 부하들이 베티를 데려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마음이 가라앉았다. 애스릭이 아직도 단념하지 않고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애스릭이 베티를 포기하거나 그들과 함께 죽으려고 이 보이지 않는 장치를 작동시켰다고 생각했다.애스릭이 여전히 단념하지 않고 베티를 데려가서 부활을 꿈꾸고 있을지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렇다면 애스릭은 고승혁 교수와 강윤아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진성은 갑자기 눈꺼풀이 미친 듯이 뛰며 뭔가 심상치 않은 느낌이 들었다. 그때 윤아와 고승혁 교수가 숨어 있던 방에서 총소리가 났다.그는 급히 아까의 그 방으로 돌아갔다. 들어가 보니 그가 배치한 사람 중 몇 명은 상처를 입었고, 또 몇 명은 이미 의식을 잃었으며 그중 한 명은 이미 죽었는데 의사였다. 그 의사는 아기의 인큐베이터를 필사적으로 안고 있었다.진성은 그 의사의 시체를 땅에 부축하려고 했지만, 그 사람의 손이 인큐베이터 가장자리를 필사적으로 잡고 있어서 아주 많은 힘을 써서야 그 손을 쪼갰다. 진성은 겨우 옆 깨끗한 곳으로 메고 가서 그를 살며시 내려놓았다.의사를 내려놓은 진성은 돌아서서 인큐베이터 안의 아기를 살펴보았다. 아기는 인큐베이터 안에서 매우 달콤하게 자고 있었기에 조금 안심할 수 있었다.현장은 매우 혼란스러웠고 모두가 엎드려 있어서 진성은 한동안 누가 누군지 분간할 수 없었다. 그는 하나하나 뒤집어 보았다. 애스릭의 사람들이 그냥 들어와서 그들을 다 죽였다고 생각했지만 고승혁 교수를 데려갔을 줄은 몰랐다.진성은 갑자기 윤아가 떠올랐다. 총소리가 그렇게 컸으니 윤아가 정신을 차리지 않았을 리 없다. 진성은 급히 모퉁이의 병상 옆으로 달려갔다.이불 속이 울퉁불퉁했다. 그는 처음에는 고승혁 교수 등이 윤아를 보호하기 위해 그녀의 얼굴을 덮었다고 생각했지만 열어보니 안에 베개가 있었다. 진성은 멍해졌다.“이 방은 밀폐되어 있는데 그들은 어디에 잡혀간 거지? 게다가 방금 내가 문 앞에서 지키고 있었으니 문으로 나갔을 리가 없어.”진성은 조급했다.갑자기
고승혁 교수는 숨을 헐떡이며 말하고는 바다 위를 바라보았다. 바다 위에 배가 한 척 있었는데 애스릭이 그 배에 있었고 많은 사람이 그들에게 총을 겨누고 있었다.고승혁 교수는 깜짝 놀라 몇 발짝 뒤로 물러서며 겁에 질린 표정을 지었다.“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현진성은 그에게 대답할 방법이 없어서 그를 붙잡고 비밀 통로로 갔다.권재민도 급히 한기현에게 연락해 무슨 일인지 알아보라고 했다.그러나 신호를 받자마자 재민은 기현 쪽에서 싸우는 소리를 들었다.“기현아, 무슨 일이야?”재민은 노심초사하여 급히 물었다.“방금 그 사람들이 들이닥쳐 시스템을 파괴했어. 최선을 다해 구조했으니 지금은 30분 정도 지연될 수 있어.”“시스템 복구가 시급한데 지금 그들과 싸우는 중이라…… 도저히 손을 쓸 수가 없어.”기현은 시스템 감시실에서 애스릭의 부하들과 싸우며 관제탑에 다시 접근하지 못하게 막으면서 권재민과 이쪽의 상태를 보고했다.보고하는 과정에서 재민은 기현의 끙끙거리는 소리까지 듣고는 더욱 마음이 급해졌다.“기아현, 너는 어때? 버틸 수 있겠어? 시스템 쪽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지금은 복구할 방법이 없어. 이젠 네가 나설 차례야. 우리가 살아나갈 수 있는 시간은 안 남았어요, 재민아.”“상대편은 사람이 너무 많은데 우리 사람은 이 몇 명밖에 없어. 버티기 힘들 것 같아, 재민아, 빨리 와.”기현이 헐떡이며 소리쳤다.재민은 이 소식을 듣고 마음이 급했지만 윤아가 이쪽에 있었기에 결정하기 어려웠다. 윤아가 힘없는 사람들과 함께 있어서 매우 걱정했다.진성은 재민이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며 얼굴을 찌푸렸다.“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내 부하들이 애스릭의 부하들에게 습격당했고, 그자들이 통제실의 시스템을 파괴했대요. 지금 우리 부하들이 그들과 싸우고 있는데 기현이도 그들에게 얽매여 시스템을 고칠 기회가 전혀 없어요…… 나는 윤아 씨가 마음에 걸려요.”재민은 머뭇거리다가 말을 꺼냈다.“가요, 여기 내가 있을게요. 기지 안에 내 사람이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