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지윤이 깨어났을 때는 이미 이튿날 정오의 시각이었다.태양은 일찍이 중간에 걸려 있었고, 따뜻한 기운이 유리 창문을 통해 침대를 비추면서 온화했다.눈을 비비며 두리번거렸다.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지윤은 습관적으로 시간을 확인하려 휴대전화를 켰다.[15개의 부재중 전화]누군가가 끊임없이 전화를 걸었다. 부재중 메시지는 백여건에 달했다.지윤은 무의식적으로 자기도 모르게 눈썹을 약간 찡그렸다. 무슨 영문인지 도통 알 수 없었다.‘하룻밤 밖에서 외박했을 뿐인데, 평소에도 자주 외박했잖아?’ ‘그런데 오늘, 부재중 전화랑 메시지가 왜 이렇게 많아? 설마 또 무슨 중요한 일이 생겼나?’아버지가 여러 번 전화한 것을 보고 지윤은 숨을 들이쉬며 전화했다.“드디어 받았네?” 전화가 연결되자마자 아버지의 엄숙한 말투에 불만이 가득 서려 있었다.“저, 방금 깨어났는데 왜 그러세요, 아버지?” 지윤은 이해하지 못하고 물었다.통화는 오랫동안 침묵으로 가득했다.“너 지금 당장 와.” 승호의 태도는 매우 냉담했고 어딘가 모르게 화가 나 보이기도 했다.지윤은 영문도 모른 채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하려 했으나 이윽고 아버지의 목소리가 연이어 들려왔다.“10분 준다. 안 오면 네가 알아서 해.”말이 떨어지자 승호는 전화를 끊었다. 그는 지윤이가 말할 기회는 전혀 주지 않았다.어리둥절한 지윤은 어쩔 수 없이 한숨을 내쉬며 화장할 겨를도 없이 아무 옷이나 걸치고 별장으로 향했다.10분 후, 빨간색 벤츠 한 대가 별장 앞에 멈춰 섰다. 지윤은 옷 매무새를 단정히 하고 겁에 질려 들어갔다.그녀가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친척들이 이미 도착한 것을 발견했다. 모든 사람이 단정하게 앉아 진을 치고 있었다. 특히 승호는 싸늘한 표정으로 한가운데에 앉아 있었다, 노여움으로 가득 찬 것 같았다.지윤이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승호는 부들부들 떨며 의자에서 일어나 그녀 앞으로 다가갔다. 지윤이가 반응하기도 전에 그녀의 뺨을 한 대 때렸다.“찰싹.” 아픈 느낌이
애초에 재민이가 회사로 돌아간 것은 바로 이 일을 해결하고 주식 상황을 안정시키려는 것이었으나 이상하게 이 시점에 기다렸다는 듯이 기사가 터지기 시작했다. 상황은 더욱 안 좋아졌고 심지어는 태성 그룹까지 끌어들여 수많은 찌라시들이 돌아다녔다. 더욱 심각한 것은 태성 그룹의 탈세에 관한 스캔들이었는데 뜬금없이 터져 온라인이 떠들썩했다. 모든 사람들이 이 상황에 대해 왈가왈부했었는데 그 가운데에서도 태성 그룹의 신용이 금이 가 많은 사람들이 주식을 팔기 시작했고 네티즌들의 끊임없는 공격을 받는 것 외에도 태성 그룹의 주식도 곤두박질쳤다. 대외적인 이미지가 한순간에 바닥으로 추락해 많은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았다.컴퓨터 화면에 비치는 주식 하락세를 보던 남자는 얼굴이 어두워졌고 눈빛은 흐리멍덩해 보였다. 이떄 기태가 문을 두드렸다.“들어와.”재민은 생각이 많아 보였고 고개를 숙여 담배에 불을 붙이곤 깊게 한 모금 빨았다. “대표님, 방금 관련 부문 윗선들이 와서 온라인에 퍼져있는 기사들을 추궁하여야 한다고 합니다. 이미 밖에서 기다리라고 했고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하실 겁니까? 그들이 필요 없으시면 다시 되돌려 보내겠습니다.”그들의 표정을 보아 좋은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느낀 기태가 건의하자 재민이가 거절했다.“필요 없어, 이 일은 내가 알아서 해결할게.”재민은 잠시 멈칫하더니 기태를 불러세웠다.“잠깐만. 지금 가서 이 상황을 만들고 지시하는 배후자를 알아봐, 특히 지금 주식을 가장 많이 내놓은 사람들, 이 일 계속 끌고 있으면 안 되니까 빨리 알아봐.”재민이가 심각한 표정으로 기태에게 지시를 내렸다. 아 일은 지나치게 뜬금없이 일어났고 재민은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거대한 세력이 조종하고 있는 듯 이 일이 심각해져만 가고 있었다.기태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습니다.”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그는 몸을 돌려 떠났고 방안엔 잠시 정적이 흘렀다. 재민은 주식시장을 흘깃 보더니 담뱃불을 껐고 방을 나갔다. 그가 방 밖으
재민은 눈살을 찌푸렸다.“그래, 알았어. 좀 더 조사해서 다른 유용한 정보가 있는지 알아봐.”기태는 얼른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네, 알겠습니다. 들어본 적도 없고 어디서 갑자기 튀어나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아마도 배후자가 있을 거야. 이름도 모르는 회사가 어떻게 우리 태성 그룹에 이런 영향을 끼칠 수 있겠어. 계속해서 이 회사에 대해 알아 와, 당장.”기태는 고개를 끄덕였다. 새로운 적수가 나타났지만 그는 이 적수가 누군지 몰랐고 그랬기에 근심이 되었다. 하지만 지금의 그는 그렇게 많은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고 재민이 지시한 일들을 해내야 했다.기태가 사무실을 떠난 후 재민의 안색은 어두워진 것이 아무래도 쉽게 끝날 일 같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재만은 그 어떤 사람이 자신과 붙게 되든 간에 결국 지는 사람은 자신이 아니라는 자신감이 충만했다. 한편, 송씨네 집.송해나는 방에 앉아 텔레비전에서 보도된 모든 것을 보면서 눈썹을 치켜세우며 득의양양했다. 현재 태성 그룹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은 그녀의 작품이었고 그녀는 자신에게 가져다준 치욕과 경성의 상류사회에서 자신을 망신시킨 재민에게 복수를 한 것이었다.그러나 재민은 경성에서 가장 능력이 있는 남자답게 해결 잘했기에 해나에게 많이 휘둘리지 않았다. 다만 이는 복수의 시작일 뿐이며, 그녀는 재민으로 하여금 자신을 모욕한 대가를 똑똑히 치르게 할 심산이었다.해나의 사랑을 재민이 거부하자 도리어 원한으로 번진 것이었다. 해나의 모든 판타지와 짝사랑은 늘 재민에게 향했는데 그는 해나를 마음에 두지 않을 뿐만 아니라 처참히 짓밟았고 그의 마음속에 티끌만한 자리도 없었다.자신의 오랜 감정이 보잘것없이 느껴졌고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열이 뻗친 해나는 여기서 멈출 생각이 없었다.잠시 후, 해나가 한 남자에게 전화를 걸었다.“얘기할 게 있는데 혹시 시간 있어요?”수화기 너머에서 한 남자의 듣기 좋은 목소리가 들려왔다.“당연하죠. 미인의 초대는 거부할 수가 없는 법이죠.”해나는 지금 기분이
윤아는 권재아도 재민과 함께 회사에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비록 두 사람 사이에 오해가 생겼긴 했었으나 지금은 그 오해가 다 풀렸다. 게다가 지금 재아가 자신을 대하는 태도도 적지 않게 좋아졌기에 윤아도 더 이상 과거의 일들을 생각하지 않기로 결정했다.회사에 도착했을 때 윤아는 재아와 재민이 공적인 일을 토론하는 것을 보았고 윤아가 들어오는 인기척에 재민은 그 순간 무언가를 감지한 듯 고개를 번쩍 들어 윤안가 싶어 봤더니 진짜로 윤아가 맞아 저절로 웃음이 흘러나왔다.“윤아야, 왜 왔어? 오느라 수고했어.”재민은 바로 일어서서 윤아의 곁으로 갔고 그녀를 끌고 앉으려 했다. 재민의 이렇게까지 자신을 관심하는 모습을 보자 윤아는 입술을 가볍게 오므렸고 이런 상황이 다소 웃기기도 했다.“난 잠깐 들렀을 뿐인데 힘든 게 어디 있어. 회사 일 하느라 바쁜 재민씨가 나보다 더 힘들 거야.”윤아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고 재민은 웃는 듯 마는 듯 그녀를 바라보다가 시선이 점점 그녀의 복부로 옮겨졌다.“네가 힘들지 않다고 생각해도 배 속의 아이는 너랑 함께 고생하고 싶지 않을 수도 있어.”이 말을 들은 윤아는 삐졌다는 듯 재민을 째려보며 말했다.“아 나를 신경 쓴 게 아니라 아이를 신경 쓴 거구나.”재민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그 뜻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으면서.”두 사람은 아무도 없는 듯 사랑싸움을 했고, 옆에 있던 재아는 침묵하며 들으며 미소를 지었다. 정말 재민은 윤아를 정말 아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재아는 자기도 모르게 예전에 했던 윤아에 대한 편견을 떠올렸고 재민은 줄곧 자신을 참아주며 자신의 체면을 세워주었다.그러나 해나의 참모습을 알게 된 후부터 재아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고, 서서히 윤아도 해나가 말한 사람과는 달리 사실 평범한 여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윤아는 재민과 뜨겁게 키스하다가 사무실에 다른 사람이 앉아 있다는 것을 문득 깨닫고 얼굴이 붉어졌다. 그녀는 재민을 살짝 밀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언
오후 권지윤이 진술을 마치고 경찰서에서 나오자 송해나로부터 부재중 전화가 20통 이상 걸려 온 것을 확인했다.지윤은 무의식적으로 얼굴을 찡그리고 잠시 망설이다가 결국 통화 버튼을 눌렀다.전화가 연결되자마자 반대편에서 매우 다급하고 걱정스러운 듯한 해나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 이제야 전화를 받아요, 걱정돼서 죽는 줄 알았네. 이틀 동안 너무 많은 일이 있었어요, 지금 어디세요?”“별일 아니야, 이미 다 처리했어.”지윤은 전혀 감정 없는 무덤덤한 태도로 설명했다.“아, 잘됐네요, 지금 어디세요? 외국에서 일하느라 국내 상황을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오늘 돌아오자마자 뉴스를 보고 깜짝 놀랐어요. 어쩌다 이 난리가 난 거예요? 그날 고모님 먼저 보내는 게 아닌데.”해나는 한숨을 쉬며 물었다.그 말에 지윤은 코웃음 치며 느긋하게 말했다.“누구 덕분에 이렇게 큰 소동을 벌였는데. 해나야, 설마 아무것도 모른다고 하는 건 아니겠지?”기사가 나간 후 지윤은 제일 먼저 이 모든 것을 꾸민 게 해나가 아닌지 의심했다.그날 밤 클럽에서 술을 마신 사람은 자신과 해나 둘뿐이었으니까.그것 말고는 범인과 접촉한 사람이 없었기에 충분히 의심할 이유가 되었다.게다가 사건이 터지자 해나는 갑자기 증발한 듯 사라졌고, 그녀를 찾을래야 찾을 수 없었다. 우연이라기엔 너무 수상했다.그리고 그날 밤 그녀는 해나를 무자비하게 비꼬았는데, 복수심에 그런 짓을 했을지 누가 알까…….“고모님,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해나는 억울한 듯 말했다.“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그날 밤 일, 네가 한 게 아니라고 장담할 수 있어? 너 말고는 그런 짓을 할 사람이 없어.”지윤이 코웃음 쳤다.“지금 절 의심하시는 건가요? 제가 어떻게…….”해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그래요, 제가 권씨 집안과 큰 갈등이 있었던 건 인정해요. 권씨 집안을 미워하는 것도 맞지만, 저는 고모님을 늘 존경해 왔는데 어떻게 제가 고모님을 해치는 일을 하겠어요? 고모님의 결백을 믿고
권재민의 미간이 찡그려지고 얼굴이 순식간에 차가워졌다.“내가 아이 아빠인데 가야죠. 이런 중요한 일에도 가지 않으면 앞으로 우리 아이를 어떻게 봐요.”남자의 눈빛은 유난히 단호했고, 말투는 의심할 여지가 없어 강윤아에게 반박할 기회를 조금도 주지 않았다.윤아는 어쩔 수 없이 그의 말에 따랐다.다음 날 아침 일찍 재민은 윤아를 데리고 산부인과 검진을 받으러 병원에 갔다.접수를 마치고 윤아의 몸에 이상이 없음을 확인한 후 바로 검사실로 이동했다.주치의는 역시나 남진혁이었다. 그가 직접 봐줘야 재민의 마음이 놓였다.“우리 잘난 권 대표님이 이런 누추한 곳까지 오시다니, 다시 봤어.” 남진혁은 앞에 있는 키 큰 남자를 바라보며 옆으로 서서 놀리듯 말을 건넸다.그는 재민이 산부인과는 말할 것도 없고, 병원 같은 곳에 드나드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남진혁을 노려보던 재민은 윤아를 향해 말했다.“얌전히 여기 앉아 있어요, 난 가서 검사 결과 받아올 테니까. 금방 다시 올 테니까 돌아다니지 마요.”윤아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재민이 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던 강은찬은 의자에서 뛰어내려 윤아 옆에 앉아 그녀에게 기대었다.“엄마, 여동생 언제 나와요? 은찬이 동생 기다리느라 너무 힘들어요.” 은찬은 똘망똘망한 큰 눈을 깜빡이며 풀이 죽은 표정으로 윤아를 바라보았다.그러더니 다시 윤아의 배로 시선을 옮겼다.“동생, 언제 나와서 오빠랑 놀아줄 거야, 오빠 밖에서 심심하니까 빨리 나와야 해!”은찬이는 기대에 찬 마음으로 말했다.산부인과 검진은 은찬이와 크게 상관없는 일이었지만, 며칠 동안 윤아의 상태가 좋지 않아 은찬이는 자기를 꼭 데려가 달라고 강력하게 요구했다.도저히 말릴 수 없었던 윤아는 마지못해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 보니 은찬이는 도착한 후에도 말 없이 매우 얌전했다.“아마 반년은 더 걸릴 거야…….”윤아는 고개를 갸웃하고 2초간 고민하더니 이렇게 물었다.“그런데 이 배 속의 아이가 남동생이 아니라고 어떻게 확신해?”은찬은 머
권지윤이 달려드는 모습에 권재민은 깜짝 놀랐다.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재민이 재빨리 지윤을 막아서 다행이었다.재민은 지윤을 밀치고 얼음 같은 눈빛으로 노려보며 매섭게 질타했다.“그렇게 창피한 일을 당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이러세요?”지윤의 동공이 움츠러들었다. 안 그래도 요즘 순결을 잃은 일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는데, 재민에게 면전에서 이런 말을 들으니 모멸감을 느낀 그녀는 크게 소리를 질렀다.“재민아, 그래도 내가 네 고모인데 이 상황에서 나를 이렇게 대하는 거야?”재민은 비웃었다. “권씨 집안 얼굴은 다 깎아놓고 왜 반성을 안 하세요? 제 고모라면서 제 아내는 또 어떻게 대하셨고요?”지윤은 수치심에 얼굴이 달아올랐고, 다소 초조하게 해명했다.“나도 당한 거야, 원해서 그런 게 아니라고.”“평소에 함부로 굴지 말고 잘 처신했으면, 그런 일을 당했을까요?” 재민은 작은고모의 평소 행동에 대해 조금은 알고 있었다.지윤은 평소 술집에 자주 드나들고,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 어울리기 좋아하며, 일부 연예인들을 눈여겨보며 사적인 만남을 가졌다.지윤은 또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재민의 비난에 말을 잇지 못하고 오히려 화살을 강윤아에게 돌렸다.“쳇, 이번 일 윤아가 나한테 복수하려고 사람 시켜서 한 짓일 수도 있잖아. 네 마누라도 좋은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말을 마친 지윤은 곧바로 사나운 눈빛을 윤아에게 보냈다.윤아는 당황한 표정으로 지윤을 쳐다보았고,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왔다.아무 근거도 없이 막무가내로 사람을 몰아가 놓고 이렇게 당당하다니.그녀가 지윤을 좋아하지 않는 것은 사실이지만, 지윤의 명예를 실추시키기 위해 그런 비열한 수법을 쓰진 않는다.게다가 이제 나름 권씨 집안의 며느리가 되었는데, 이런 식으로 권씨 집안의 명예를 실추시켜서 자신에게 무슨 이득이 있을까?“작은 고모님, 말하기 전에 제대로 생각하시고 말씀하셨으면 좋겠네요. 말 한마디에도 책임이 따르는 법이에요. 미친개처럼 아무나 물지 마세요.”윤아는
‘이런 일은 한 집안의 가장이 결정해야지.’권재민은 강윤아와 강은찬이 자신을 바라보는 것을 보고 고민 끝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가도 돼. 대신 몸조심해.”최근 권씨 집안이 어수선한 상황이라 윤아가 가서 바람도 쐴 수 있고, 은찬이도 윤아가 가기를 바라는 게 보였다.윤아가 권씨 집안의 일로 인해 영향을 받는 것도 원치 않았다.재민이 동의하자 은찬은 기뻐서 펄쩍펄쩍 뛰었다.윤아도 자신이 없는 한 권씨 집안 사람들이 당분간 문제를 찾지 않을 테니 잘된 일이라고 생각했다.결정을 마친 세 가족은 재빨리 방으로 돌아가 휴식을 취했다.다음날 윤아는 일찍 일어났다. 다른 도시로 떠나는 여행이라 평소보다 더 많은 짐을 챙겼다.은찬이가 일어나기를 기다려 아이의 세면도구 등 짐을 다 챙긴 윤아는 곧바로 은찬이와 함께 출발했다.집을 나서려는 찰나, 재민의 집 앞에 권재아가 나타났다.“언니, 재민 씨 보러 왔어요?” 윤아는 이른 아침부터 집 앞에 나타난 재아를 보고 조금 놀랐다.재아는 고개를 저었다.“아니, 너 찾으러.”그렇게 말하며 재아는 차 문을 열고 윤아와 은찬을 차에 태웠다.“네? 저를요?” 윤아는 조금 놀란 표정으로 자신을 가리켰다.“응, 재민이가 너랑 은찬이가 H 시티에 간다고 하길래, 나도 마침 거기 볼 일이 있어서. 협업에 관한 논의를 좀 해야 하는데, 그래서 너랑 같이 가려고.”재아는 이미 부하 직원들에게 은찬과 윤아의 짐을 차에 실으라고 시켰다.“이런 우연이.” 윤아가 웃으며 거들었다.최근 재아는 재민의 집에 자주 왔고, 둘 사이도 예전보다 훨씬 좋아졌다.“호텔은 어제 이미 예약했어.”어젯밤, 재민은 이미 재아에게 방을 예약하고 윤아를 잘 돌봐달라고 수없이 말했었다.재민의 압박에 재아는 밤새 직접 호텔을 예약했고, 혹시나 무슨 일이 생길까 봐 비서에게조차 말하지 않았다.“언니한테 신세 좀 질게요.” 윤아는 웃으면서 은찬을 차에 태우고 말했다.일행은 공항에 도착해 H 시티로 날아갔다.공항에 나온 재아는
강윤아라는 말에 권재아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윤아가 우리 집에 온 이후로 힘든 일을 많이 겪었고 늘 다른 사람의 타깃이 되었어요. 재민이가 너무 다른 사람의 호감을 사 그녀를 연루시킨 거죠.”“재아 씨가 지금 걱정해도 소용없어요, 재아 씨부터 잘 챙겨요.”윌은 재아의 말을 듣고 웃으며 말했다.“자, 재아 씨 기분 전환하러 갔다가 나중에 우리 집에 가요.”그 말을 들은 권재아는 얼굴이 빨개졌다.“얼굴이 왜 빨개지는 거예요? 내가 옆에 있었으면 재아 씨가 좀 더 편하게 잠들 거예요.”윌은 웃으며 농담했다.재아는 얼굴이 빨갛게 상기 된 채 그를 한 대 때렸지만 거절하지 않았다.날이 저물자 바다는 칠흑 같은 어둠에 잠겼고 이따금 파도가 아련하게 일기도 했다. 해변의 모래사장에는 간간이 등불이 있는데, 등불은 그다지 밝지 않고 군데군데 있어서 밤하늘의 별과 서로 잘 어울렸다.재아는 부드러운 모래를 밟으며 앞으로 한 걸음씩 폴짝폴짝 뛰어갔다. 귓가에 들려오는 파도 소리가 아득하고도 고요했다.윌은 재아의 뒤에서 몇 걸음 걷다가 재아가 전혀 알아채지 못하자 성큼성큼 몇 걸음 앞으로 나가 그녀의 손을 잡고 손바닥으로 감쌌다.재아는 어리둥절해 하더니 이내 두 눈이 반달 모양으로 변했다.“손잡고 싶은 거면 얘기하지 그랬어요.”재아의 표정이 너무 도도해서 윌은 눈살을 찌푸리고 손가락으로 그녀의 코끝을 긁었다.“그러게 누가 재아 씨더러 아무것도 모르래요?”술도 밥도 배불리 먹었으나 그 뒤로 딴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재아는 윌 덕분에 배불리 먹었고 지금은 기분이 너무 좋았다. 윌의 손을 잡고 있자니 따뜻한 손바닥에서 전해오는 힘에 말할 수 없는 안정감을 느꼈다.백사장을 따라 한참을 걸은 후에야 마침내 윌이 말한 그 ‘재미있는 곳’에 이르렀다.재아는 어두컴컴한 불빛 속 나무 밑에 숨어 있는 해먹에 하마터면 눈살을 찌푸릴 뻔했다.“여기가 재밌는 곳이에요?”“재미있는 곳이라고 하지 않으면 안 올 거잖아요?”윌은 미소를 지으며 먼저 올라탄
회의가 끝난 후, 권재아는 권현우가 그녀를 쉽게 보지 못하게 하려고 여전히 당당하게 걸어 나갔지만, 사무실로 돌아온 후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초조하고 어쩔 수 없는 표정을 지은 재아는 매우 낭패한 모습이었다.재아는 권재민에게 이 일을 알리려 문자를 보냈지만, 그쪽에서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재아는 윤기태에게도 이 일을 말했다. 기태도 분노했지만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재아가 풀이 죽은 모습을 보며 화가 났지만 재아를 먼저 위로할 수밖에 없었다.“대표님, 이런 결과는 대표님도 원하지 않겠지만, 정말 방법이 없잖아요. 자책하지 마세요, 권재민 대표님이 돌아오시면 분명히 이 일을 해결할 수 있을 거예요.”재아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기태의 위로가 전혀 소용이 없었고 재아는 여전히 괴로웠다.재아의 이런 모습을 본 기태는 더는 방해하지 않고 그녀에게 인사한 후 자리를 떴다.늦은 시간, 재아는 여전히 회사에서 일을 처리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사무실 문이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권재아는 고개도 들지 않고 대답만 했다.갑자기 넓은 손이 재아 앞에 다가오더니 그녀의 머리를 강제로 들어 올렸다.재아는 화를 내려다가 윌임을 발견했다. 순간 화가 난 얼굴이 미리 설정된 듯 활짝 웃는 얼굴로 바뀌었다.“아, 윌, 여긴 어쩐 일이에요? 귀국하지 않았어요? 돌아왔으면 나한테 말해주지 그랬어요. 그랬으면 내가 공항으로 데리러 갔을 텐데.”윌은 재아의 머리를 받치고 있던 손을 풀고 책상을 돌아 재아의 앞으로 다가갔다. 하지만 그러는 내내 눈빛은 재아에게서 떠나지 않았다.“보고 싶어서 돌아왔어요. 알려줬으면 어떻게 서프라이즈를 해줬겠어요. 왜 이렇게 피곤한 얼굴이죠? 날 봤을 땐 화가 잔뜩 난 얼굴이었어요.”윌이 그녀 앞에 서자 재아는 윌의 허리를 끌어안고 머리를 살짝 윌의 몸에 기대며 풀이 죽은 듯 한숨을 내쉬었다.윌은 그녀가 말하고 싶지 않은 듯해 보여 더는 강요하지 않고 빨리 나가자고 재촉했다.“주차장에서 오래 기다렸는데도 안 내려와서 야근하는 거 아닌가
권재민은 강윤아의 움직임을 추적한 뒤 곧바로 현진성과 합류해 구출 계획을 논의하고 애스릭이 숨어 있는 곳으로 쳐들어가려 했다.하지만 이번에도 그들은 변장하고 다가갔다. 애스릭은 분명 그들을 경계할 것이고, 외딴 섬에서의 일을 겪었으니 애스릭의 경계와 의심이 더 강해지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그래서 그들은 반드시 만반의 계획을 세워야만 윤아를 구해낼 수 있다고 판단했다.같은 시간, 국내에 있던 김소혜와 서만옥은 출국할 예정이었다.그날 기슭에 도착한 후 재민은 아이를 안배하고 나서 소혜에게 전화를 걸었다. 소혜는 발신자가 실종된 지 오래된 자기 아들이라는 것을 보고 매우 흥분했다.“재민아, 드디어 엄마한테 전화했구나. 그동안 네가 나한테 전화 안 해서 우리도 방해할 엄두가 안 났는데 너는 지금 어때? 윤아는 행방불명이야? 윤아를 구해낸 거 아니었어?”소혜는 재민의 전화가 희소식을 전하러 걸려온 것으로 생각했다. 그녀의 마음속에서 재민은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모든 일을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재민의 전화를 받은 후 마음이 매우 흥분되고 기뻤기 때문이기도 했다.재민은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그는 소혜의 이렇게 흥분한 말투를 들으며 차마 그녀에게 사실을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급박해서 아이를 돌볼 가족이 있어야 했다. 비록 의사가 있지만 그는 여전히 마음을 놓을 수 없다.그는 이를 악물고 실정을 소혜에게 말했다.“엄마, 내 말 좀 들어봐요. 마음을 다잡고 들어요, 일이 이렇게 됐어요…… 엄마가얘기한 거랑 상황이 좀 달라요. 윤아가 처음에 구출되긴 했는데 다시 잡혀갔어요. 그동안 연락이 없었던 건 내가 계속 그 사람의 경계에 잠복해있었기 때문이에요.”재민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소혜가 말을 끊었다.“뭐? 구출되긴 했는데 또 잡혀갔다는 건 뭐야?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엄마, 내 말끝까지 들어봐요.”재민이 이마를 어루만졌다.“이 일은 당분간 자세히 말하기 어려워요. 제가 윤아를 데려가고 나서 자세히 말해줄게요.”
고승혁 교수가 협조를 거부했기 때문에 애스릭은 더 심하게 때렸다. 거의 몇 시간마다 가서 괴롭혔는데 매번 때리는 것은 아니었다. 때로는 말로 욕했지만 고승혁 교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강윤아는 고승혁 교수가 돌아올 때마다 얼굴에 약간의 상처가 생기는 것을 보고 차마 지켜볼 수 없었다.사실, 애스릭이 매번 고승혁 교수를 데려갈 때마다 그가 입을 열어 경험을 전수해주도록 했을 뿐 매번 그를 때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고승혁 교수는 돌아올 때마다 애스릭의 부하들에게 얻어맞았다.고승혁 교수는 베티를 치료해 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들을 배신하기까지 했기 때문에 그들은 매우 원망스러웠다.“고승혁 교수님, 저 때문에 교수님이 억울한 일을 당했으니 협조하고 절 그냥 내버려 둬요.”“괜찮아요, 때리고 싶으면 때리고 욕하고 싶으면 하라고 해요. 나는 견딜 수 있어요. 나는 오히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이 어디까지인 보고 싶어요. 언젠가 내가 정말 견딜 수 없게 되면 자연히 그들에게 항복할 거예요. 그때 가서 윤아 씨가 나를 원망하지 말아주세요.”고승혁 교수는 손을 내저으며 개의치 않는 듯 윤아를 향해 농담까지 했다.“교수님은 이미 내 목숨을 구해줬고 내 아이를 지켜줬어요. 이것만으로도 저는 이미 교수님에게 감사해요. 교수님이 앞으로 나를 어떻게 대하든 나는 받아들일 수 있어요.”윤아는 고승혁 교수의 이런 모습을 차마 지켜볼 수 없었다.“정말 내 걱정은 안 해도 돼요. 이건 내 인생 경험의 일부일 뿐이에요. 살아서 나갈 수 있다면 밑지는 장사는 아니에요. 굴복해 연명할 수 있지만 내 양심에 어긋나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아요.”고승혁 교수는 윤아가 미안한 표정을 짓자 그녀를 안심시켰다.윤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우리가 살아서 나갈 수 있다면 교수님의 연구원에 많이 투자할게요.”“그럼 먼저 윤아 씨에게 감사해야겠어요.”“고승혁 교수님, 우리는 함께 목숨 걸고 싸운 사이이니 그냥 저를 윤아라고 부르세요, 윤아 씨는 너무 서먹서먹해요.”윤아가 고승혁을
메리는 인큐베이터 옆에 있는 의사가 멍하니 있는 것을 보고 그를 한 번 쿡 찌르며 낮은 소리로 주의를 시키었다.“존, 사람들이 묻고 있잖아요.”“네?”존은 어리둥절하게 되물었다.권재민은 옆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다시 물었다.“내 아이의 상태가 어떤지 물었어요.”“아기는 지금 상태가 안정돼 있고 아까 그 혼란스러운 상황에도 놀라지 않았어요. 달이 차지 않아 태어났기 때문에 면역력이 좋지 않아 인큐베이터에 좀 더 있어야 할 것 같아요.”존은 마침내 반응을 보였고 무서워서 한 걸음 뒤로 물러나며 말했다.재민은 가볍게 알았다고 대답하고 고개를 숙이고 인큐베이터 안의 아이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는 갑자기 생명이 정말 완강하다고 느꼈다.강윤아에게 그렇게 많은 위험이 닥쳤는데도 이 아이는 이렇게 안전하고 무사하게 태어났고, 게다가 아무런 문제도 없으니 앞으로도 꿋꿋이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눈앞의 작은 아이가 이렇게 많은 일을 겪으면서도 건강할 수 있다면, 아이의 엄마 윤아는 분명 더 완강할 것이다. 그동안 많은 일을 겪었지만 윤아는 아슬아슬하게 돌아왔으니 이번에도 반드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재민은 보면 볼수록 더 반가웠고 윤아가 출산할 때 옆에 없었지만 수술실 밖에 있었으니 좀 멀지만 어떻게 보면 윤아 옆에 있은 셈이다. 다음번에는, 다음번에는 윤아 옆에 꼭 있어 줘야겠다고 생각했다.재민의 부드러운 표정을 보고 현진성과 한기현도 옆으로 다가가서 아기를 바라보았다.“윤아 씨를 많이 닮아서 참 예뻐. 앞으로 윤아 씨처럼 예쁘게 자랄 거야.”기현은 한참을 쳐다보았다.옆에 있던 진성은 자기도 모르게 웃으며 말했다.“태어난 지 얼마 안 됐는데 어떻게 윤아 씨와 닮은 줄 알아요? 갓난아이는 이목구비도 다 비슷비슷하고 쭈글쭈글한 모습이 늙은이 같다는 생각만 들어요. 게다가 머리카락이나 눈썹도 다 나지 않았잖아요.”“진성 씨…… 왜 그래요? 분명 윤아 씨를 닮았잖아요?”핀잔을 들은 기현은 얼굴이 빨개졌다.“재민아. 진성 씨 봐, 너의 아이가
한기현은 다시 권재민에게 전화를 걸어 그들이 숨은 곳을 알려줬지만 강윤아가 끌려갔다는 사실은 알려주지 않았다.재민은 재빨리 이곳으로 달려와 둘러보았으나 윤아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미간을 찌푸린 채 의심스러운 얼굴로 기현과 현진성을 힐끗 쳐다보았다.“기현아, 현진성 씨, 윤아 씨는요? 윤아 씨가 왜 여기에 없죠?”두 사람은 안절부절못했다. 평소 대단한 사람들이었지만 지금 재민 앞에서 감히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다.기현은 슬며시 진성을 쳐다보고 몰래 진성을 쿡 찔렀다. 진성은 방심하다 밀려났고 뒤를 돌아보며 기현을 노려보았지만 기현은 고개를 숙이고 더는 두 사람을 쳐다보지 않았다.“묻고 있잖아요! 윤아 씨는요? 내 아내 어디 갔어요? 당신들 윤아 씨를 어디로 데려갔어요?”재민은 두 사람의 행동을 보고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소리쳤다.진성은 미안한 표정으로 재민을 바라보며 재민에게 그가 떠난 후의 일을 대충 말했다.“권재민 대표님, 죄송합니다, 제가 윤아 씨를 제대로 돌보지 못해서 애스릭에게 빼앗겼어요. 제가 부주의했어요. 그 방에 숨으면 아무 일도 없을 줄 알았는데, 애스릭이 이렇게 교활하게 두 가지 계략을 쓸 줄은 몰랐어요.”“권재민 대표님, 지금 저를 때리고 욕해도 저 할 말이 없어요.”이 말을 들은 재민은 온몸에 살기가 피어올랐고 두 눈이 벌겋게 달아오른 채 진성을 노려보며 허리에서 총을 꺼내려 했다. 기현이 황급히 그런 재민을 말렸다.“재민아, 일단 흥분하지 마, 방법이 있을 거야. 같은 편이니 우릴 도울 수 있어. 게다가 인터폴이야. 너 인터폴을 죽이는 건 큰 문제가 아니지만, 윤아 씨부터 찾아야지. 지금 우리는 진성 씨가 필요해.”기현은 재민의 허리춤의 총을 쥔 손을 힘껏 눌렀다.진성도 황급히 위로했다.“권재민 대표님, 아직 기회가 있습니다. 밖에 비도 오고 바람도 심해서 빨리 갈 수 없으니 아직 멀리 가지 못했을 거예요.”“게다가, 우리 배에는 위치추적 장치가 있어요. 아주 은밀한 곳에 두었으니, 그들은 분명히 찾을 수 없
한기현은 사람과 함께 현진성의 사람들을 따라 수술실의 암도 쪽으로 후퇴하기 시작했는데 길을 따라가다가 애스릭의 사람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기현은 그들 모두가 깨끗이 떠난 줄 알고 있었는데 애스릭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사람을 남겨 그들을 몰살시킬 준비를 했을 줄은 몰랐다.기현의 눈에 갑자기 핏빛이 솟구쳐오르더니 몸을 돌볼 겨를도 없이 맨주먹으로 몇 사랑을 해치웠다. 총을 겨누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독살스러운 모습까지 보여 상대방을 놀라게 했다.그 사람들은 애스릭을 보낸 후 매우 내키지 않았다. 한바탕 뒤지고 나서 도망갈 계획이었는데, 결국 절반 정도 뒤지다가 기현 일행을 만났다. 특히 기현은 어두운 얼굴을 한 채 그들에게 원한을 품고 있는듯 보였다.그들은 원래 기현 일당과 대충 싸우려고 일부러 그들을 놓아주려 했는데 기현이 달려들어 그들 몇 사람을 쓰러 눕히자 분노가 치밀어 올라 기현 일행과 뒤엉켜 싸우기 시작했다.기현이 상대방의 생각을 알면 지금쯤 후회해 죽을지도 모른다. 몇 분 동안 아무렇게나 싸우면 될 일을 이렇게 충동적으로 또 한 번 미뤘다.몇 분 동안 싸운 후, 쌍방은 모두 머뭇거리기 시작했다. 기현의 왼팔이 그 무리의 두목을 누르고 있었고, 다른 한 손에는 총을 쥐고 그의 관자놀이에 총구를 겨누고 있어 쌍방이 모두 시기를 기다리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기현은 그들의 타협을 기다렸고, 그 사람은 반격의 기회를 기다렸다.이 팀장은 원래 타협하려 했지만, 지금 이 지경에 이르니 승리욕이 자극되었고 지금은 고개를 숙일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머리를 숙이면 부하들이 그를 무시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목숨을 걸고라도 그는 승부를 내려고 했다.이때 폭발음이 드디어 또렷하게 들렸고 그 사람은 이때 갑자기 손을 썼다.기현은 그가 성급히 달려들 것을 예상한 듯 손을 빼 권총을 내던지고 날쌔게 상대방의 손을 잡아 그의 등 뒤로 돌렸다. 두 발은 날렵하게 그의 허리와 배를 걷어찼고 곧 사납게 그의 몸을 비틀어 앞을 가
현진성은 애스릭의 부하들이 베티를 데려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마음이 가라앉았다. 애스릭이 아직도 단념하지 않고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애스릭이 베티를 포기하거나 그들과 함께 죽으려고 이 보이지 않는 장치를 작동시켰다고 생각했다.애스릭이 여전히 단념하지 않고 베티를 데려가서 부활을 꿈꾸고 있을지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렇다면 애스릭은 고승혁 교수와 강윤아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진성은 갑자기 눈꺼풀이 미친 듯이 뛰며 뭔가 심상치 않은 느낌이 들었다. 그때 윤아와 고승혁 교수가 숨어 있던 방에서 총소리가 났다.그는 급히 아까의 그 방으로 돌아갔다. 들어가 보니 그가 배치한 사람 중 몇 명은 상처를 입었고, 또 몇 명은 이미 의식을 잃었으며 그중 한 명은 이미 죽었는데 의사였다. 그 의사는 아기의 인큐베이터를 필사적으로 안고 있었다.진성은 그 의사의 시체를 땅에 부축하려고 했지만, 그 사람의 손이 인큐베이터 가장자리를 필사적으로 잡고 있어서 아주 많은 힘을 써서야 그 손을 쪼갰다. 진성은 겨우 옆 깨끗한 곳으로 메고 가서 그를 살며시 내려놓았다.의사를 내려놓은 진성은 돌아서서 인큐베이터 안의 아기를 살펴보았다. 아기는 인큐베이터 안에서 매우 달콤하게 자고 있었기에 조금 안심할 수 있었다.현장은 매우 혼란스러웠고 모두가 엎드려 있어서 진성은 한동안 누가 누군지 분간할 수 없었다. 그는 하나하나 뒤집어 보았다. 애스릭의 사람들이 그냥 들어와서 그들을 다 죽였다고 생각했지만 고승혁 교수를 데려갔을 줄은 몰랐다.진성은 갑자기 윤아가 떠올랐다. 총소리가 그렇게 컸으니 윤아가 정신을 차리지 않았을 리 없다. 진성은 급히 모퉁이의 병상 옆으로 달려갔다.이불 속이 울퉁불퉁했다. 그는 처음에는 고승혁 교수 등이 윤아를 보호하기 위해 그녀의 얼굴을 덮었다고 생각했지만 열어보니 안에 베개가 있었다. 진성은 멍해졌다.“이 방은 밀폐되어 있는데 그들은 어디에 잡혀간 거지? 게다가 방금 내가 문 앞에서 지키고 있었으니 문으로 나갔을 리가 없어.”진성은 조급했다.갑자기
고승혁 교수는 숨을 헐떡이며 말하고는 바다 위를 바라보았다. 바다 위에 배가 한 척 있었는데 애스릭이 그 배에 있었고 많은 사람이 그들에게 총을 겨누고 있었다.고승혁 교수는 깜짝 놀라 몇 발짝 뒤로 물러서며 겁에 질린 표정을 지었다.“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현진성은 그에게 대답할 방법이 없어서 그를 붙잡고 비밀 통로로 갔다.권재민도 급히 한기현에게 연락해 무슨 일인지 알아보라고 했다.그러나 신호를 받자마자 재민은 기현 쪽에서 싸우는 소리를 들었다.“기현아, 무슨 일이야?”재민은 노심초사하여 급히 물었다.“방금 그 사람들이 들이닥쳐 시스템을 파괴했어. 최선을 다해 구조했으니 지금은 30분 정도 지연될 수 있어.”“시스템 복구가 시급한데 지금 그들과 싸우는 중이라…… 도저히 손을 쓸 수가 없어.”기현은 시스템 감시실에서 애스릭의 부하들과 싸우며 관제탑에 다시 접근하지 못하게 막으면서 권재민과 이쪽의 상태를 보고했다.보고하는 과정에서 재민은 기현의 끙끙거리는 소리까지 듣고는 더욱 마음이 급해졌다.“기아현, 너는 어때? 버틸 수 있겠어? 시스템 쪽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지금은 복구할 방법이 없어. 이젠 네가 나설 차례야. 우리가 살아나갈 수 있는 시간은 안 남았어요, 재민아.”“상대편은 사람이 너무 많은데 우리 사람은 이 몇 명밖에 없어. 버티기 힘들 것 같아, 재민아, 빨리 와.”기현이 헐떡이며 소리쳤다.재민은 이 소식을 듣고 마음이 급했지만 윤아가 이쪽에 있었기에 결정하기 어려웠다. 윤아가 힘없는 사람들과 함께 있어서 매우 걱정했다.진성은 재민이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며 얼굴을 찌푸렸다.“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내 부하들이 애스릭의 부하들에게 습격당했고, 그자들이 통제실의 시스템을 파괴했대요. 지금 우리 부하들이 그들과 싸우고 있는데 기현이도 그들에게 얽매여 시스템을 고칠 기회가 전혀 없어요…… 나는 윤아 씨가 마음에 걸려요.”재민은 머뭇거리다가 말을 꺼냈다.“가요, 여기 내가 있을게요. 기지 안에 내 사람이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