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에서 휘두르던 주먹은 육하경의 손에 제지되었고 도정국이 아무리 힘을 줘도 주먹을 뺄 수 없었다.육하경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당신의 그 혼외자 아들은 탐욕스럽기 그지없었어. 당신한테서 돈을 빼먹지 못하자 도아린에게 투자 사기를 치려고 했지. 다행히 그놈의 악행은 이미 대가를 치렀고 남은 인생은 감옥에서 보내게 될 거야! 당신은 도아린 앞에서 반성하기는커녕 여기가 어디라고 찾아와서 소란을 피우는 거야? 정말 얼굴이 두꺼워도 분수가 있어야지.”“다 헛소리야!”도정국은 손목이 부러지고 나서도 치료를 받지 않아 뼈가 뒤틀려 있었고 평소에도 힘을 쓸 수 없었다.육하경이 그 손을 꽉 비틀자 손목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어쨌든 나는 도아린의 아빠야! 걔는 내 노후를 책임질 의무가 있다고!”“그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육하경이 한 손으로 도정국을 제압하며 주변 이웃들에게 말했다.“여러분, 당장 경찰에 신고해 주세요! 이 쓰레기 같은 인간이 여기서 헛소리하지 못하게 해야 해요!”도정국은 고통스러워 몸을 움츠리며 다른 손에 장갑을 물어뜯고 손을 높이 들었다.“신고해! 내 손은 도아린 때문에 이렇게 된 거야! 경찰을 부르라고, 나는 도아린을 노인 학대로 신고할 거야!”그 말에 신고하려던 이웃들이 잠시 망설였다.도정국의 손은 그의 말대로 모두 변형되어 있었고 손바닥은 부풀어 올라 괴상해 보였다.그의 비양심적인 행동은 불법은 아니었고 도아린도 피해자라는 사실에 모두가 동정했지만 사람을 때린 건 잘못이었다.육하경이 코웃음 치며 말했다.“그 손은 당신이 고리대금업자에게 돈을 빌려 써서 갚지 못해 빚쟁이들에게 맞고 부러진 거잖아. 그게 아린 씨 탓이라고?”얼굴이 하얗게 질린 도정국이 옆에서 신고를 하는 이웃을 보자 전화를 막으려 달려들었지만 이내 육하경에게 붙잡혔다.“알았어. 다시는 도아린을 찾지 않을게. 이거 놔줘!”“더 이상 당신이 아린 씨를 괴롭힐 기회를 주지 않을 거야!”그들이 다투는 사이, 도아린이 문을 열고 일북의 보호를
“들었지! 이거 안 놔?”육하경이 내키지 않은 듯 서서히 힘을 빼자 도정국은 급히 집안으로 숨어들려 했다.하지만 그가 발을 내딛자 일북이 다시 문을 막아섰다.“비켜! 내 딸이 뭐라고 했는지 못 들었어? 나보고 여기서 살면서 나한테 노후를 보장해 주겠다고 하잖아!”일북은 무표정하게 그를 내려다보며 문을 막았다. 자신보다 체격이 큰 그를 보며 도정국은 마지못해 도아린을 향해 따졌다.“너 이렇게 많은 이웃들 앞에서 나를 돌봐주겠다고 말해놓고 왜 들어가지도 못하게 막는 거야?”도아린이 미소를 지으며 이웃들을 바라보며 말했다.“제가 방금 그런 말 했나요?”“아니!”“우리는 못 들었는데.”도정국의 얼굴이 삽시간에 흙빛이 되어 이를 악물었다.“그러면 최소한 가계 하나는 줘야지. 내가 직접 운영해서 내 힘으로 먹고살게!”경찰차 소리가 멀리서 들리며 점점 가까워지다 대문 앞에 멈췄다. 몇 명의 경찰들이 내리며 노트를 들고 다가왔다.“누가 신고했습니까?”“저요!”도아린이 대답했다.“도정국 이 사람은 25년 전에 해남에서 아이를 납치한 적이 있어요. 제가 그 피해자입니다!”“도아린!”도정국이 눈을 크게 뜨며 외쳤다.“이 악질년! 내가 널 데려와 키웠기에 너는 굶어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거야. 그런데 아비를 이렇게 배신하다니!”“뭐가 배신이야!”도아린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도정국을 바라보며 말했다.“당신은 내 친부모님에게서 나를 훔쳐 갔고 내 어머니는 그 일로 20년 넘게 시름시름 앓고 있어. 그러고도 내가 당신한테 감사해야 해?”도아린의 눈빛은 마치 칼처럼 날카로웠고, 도정국은 그 시선을 마주하자 저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당신은 나를 키운 게 아니라 나를 재벌 집에 시집 보내 이득만 취하려 했을 뿐이야. 내가 지현이 얼굴을 봐서라도 더 이상 당신을 탓하지 않으려고 했어. 그것도 모르고 당신은 그 허황된 욕심에 내 앞에서 거짓말을 하며 흙탕물을 뒤집어씌우려 했지. 어떻게 그런 낯짝으로 집에 들어올 생각을 하지?”도아린은 쏘아붙인 뒤 경찰
“뭐라고요?”“호텔에서 식사하던 손님들이 식중독에 걸렸어요. 그 일로 연회도 줄줄이 취소되면서 회사에 큰 손해가 발생했죠.”도아린의 놀란 표정을 보고 육하경이 낮게 한숨을 쉬었다.“정말 몰랐나 보네요. 이 일은 강재민이 계획한 게 틀림없어요. 내가 오늘 여기에 온 이유는 고객들을 만나 사과하려 온 거예요. 그쪽에서 우리의 사과를 받아들이도록 설득해야 할 텐데...”도아린이 여전히 믿기지 않은 듯했다.“강재민 씨요? 뭔가 오해가 있었던 게 아닐까요?”그녀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강재민 씨가 고집이 세긴 하지만 이런 수단을 쓸 사람은 아니에요.”“그럴 만한 사람이 아니라고요?”육하경이 저도 모르게 쓴웃음이 났다.주머니 속에 있던 손에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고 화병이 나 죽을 지경이었다.잠시 후, 육하경은 도아린을 바라보며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강재민이 엠파이어 빌딩의 고객을 적잖이 뺏어온 걸로 알고 있어요. 그게 다 정당한 수법으로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요? 모건 그룹의 해외 프로젝트도 강재민한테 뺏겼다면서요. 과연 다 올바른 방법이었을까요?”도아린이 뭐라고 설명하려던 찰나, 뒤에서 남자의 냉랭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내가 법을 어긴 것도 아니고 내 능력으로 얻은 사업인데 뭐가 문제죠?”강재민이 도아린 옆에 다가와서 육하경을 향해 조롱하는 눈빛을 보냈다.“마치 배건후와 당신, 육씨 집안은 편법 없이 사업을 한 것처럼 말하네요. 뭐 묻은 개가 뭐 묻은 개를 나무란다더니 실력이 안 되니 아린 씨 앞에서 우는소리나 하고. 정말 부끄럽지 않아요?”육하경의 세련되고 온화하던 얼굴에 순간 경련이 일었고 눈빛에 살기가 돌았다. 그러다 이내 다시 온화하고 우아한 모습으로 돌아왔다.“강재민 씨가 그렇게 말하면 저도 더 이상 설명할 필요 없겠죠.”하지만 강재민은 그를 놓아줄 생각이 없다는 듯이 다시 도발해 왔다.“전 있는 그대로 얘기한 것뿐이에요.”그리고는 손을 뻗어 도아린의 어깨를 감싸며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가 속삭
“나는 더 이상 도정국이 아린 씨를 괴롭히지 못하게 하려고 그런 거예요.”강재민이 잠시 멈칫하다가 다시 말했다.“그리고 또 다른 이유가 있긴 한데, 내가 속이 좁다고 생각해도 상관없어요.”두 사람은 같이 거실로 향했다. 도아린은 강재민이 아직 밥을 먹지 않았다는 걸 알고 주방으로 가서 라면을 끓였다.“도지현은 누가 뭐래도 도정국의 친아들이에요. 만약 도지현이 그 아비와 계속 만나다 나쁜 물이라도 들면 아린 씨만 힘들어지잖아요. 그래서 난 그 두 사람이 만날 가능성을 완전히 없애려고 한 거고요.”도아린은 옆에서 얼쩡거리는 강재민을 밀어내고 계란말이를 하기 시작했다.“육청아는 만나 봤어요?”도아린의 물음에 강재민은 벽에 기대서 고개를 끄덕였다.“변호사가 만나고 왔어요. 불법 장기 매매는 확정된 죄라고 하더군요. 왜요? 그 여자에게 다른 죄도 더 씌울 생각이에요?”도아린이 그를 한 번 쳐다보고는 웃으며 대답했다.“재민 씨가 방금 말했잖아요, 나한테 할 말 있다고. 그래서 난 육청아와 육씨 가문과 연관된 줄 알았어요.”강재민도 웃으며 도아린 뒤로 가서 그녀의 허리를 감싸안았다.“아린 씨, 육씨 가문을 끌어내릴 생각이에요?”도아린이 팔꿈치로 강재민을 밀어내고 냉장고 앞에서 케첩을 꺼냈다.“재민 씨가 계속해서 모건 그룹을 공격하는데, 육씨 가문을 겨냥하지 않을 수가 없잖아요.”그녀는 냉장고 문을 닫고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그 매혹적이고 잘생긴 얼굴을 보며 차분하게 이어 말했다.“당초에 육청아를 곁에 둔 것도 언제든지 육씨 가문을 끌어들이려고 준비한 거겠죠.”냉장고 문이 닫히면서 소리가 작게 났고 강재민은 잠시 눈을 깜빡였다.그는 도아린의 뒷모습을 주시하며 느긋하게 벽에 기대어 있었다.“통찰력이 정말 대단한데요. 주작의 팀장 자리는 아린 씨가 맡아야 하는데 말이에요. 내가 추천할까요?”도아린은 대답 대신 라면 냄비를 식탁에 올려놓은 후 일북을 불렀다.“얼른 와서 같이 먹어!”강재민은 이 경호원이 도아린과 너무 가깝게 지내는 것 같아
“아가씨...”일북이 설거지를 마치고 나오다 소파에 나란히 앉아 손을 맞잡고 있는 두 사람을 발견했다.그가 뭔가 말하려는 듯 멈칫하자 도아린은 이내 자신의 손을 빼며 대답했다.“내 이익에만 해가 되지 않으면 나는 재민 씨를 탓하지 않을 거예요.”강재민은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집을 나서는 도아린과 일북의 뒷모습을 지켜봤다. 그의 미소엔 어느새 확신이 담겨 있었다.두 사람은 차를 타고 슈퍼마켓으로 갔다. 장을 보며 쇼핑 카트를 밀다가 일북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방금 소식이 들어왔어요. 신 대표가 우정윤이 전에 약을 사 들고 갔던 그 아파트 단지에 갔다가 한 30분 뒤 다시 나왔다고 해요.”“혼자?”“여자 한 명과 함께요.”“한 비서야?”일북이 고개를 저으며 휴대폰을 꺼내 촬영한 장면을 도아린에게 보여주었다.그 여자는 조수석에 앉아 있었고 신지훈에게 가려서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자세가 조금 어색해 보였다.일북이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강재민과 손잡을 생각이에요?”“그렇다기보다 그냥 한 번 시험해 볼 생각이야.”이미 육청아와 육씨 가문은 관련이 있다는 것이 확실해졌고 육하경도 육씨 가문의 일원이었기에 도아린은 이 사건에서 그가 어떤 역할을 맡고 있는지 시험해 보고 싶었다.그 후, 일북은 계속해서 장을 보고 도아린은 택시를 타고 회사로 갔다.신지훈은 그녀가 회사에 도착한 걸 알자마자 곧장 문서를 들고 찾아왔다.“도 대표님. 이 프로젝트에 대해 몇 가지 드리고 싶은 말이 있어서요.”도아린은 그에게 자리에 앉으라고 하며 휴대폰을 꺼냈다. 겉으로는 뭔가 자료를 확인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청룡이 메시지를 보냈는지 확인하고 있었다.연성의 장기 밀매 조직이 적발되고 육청아가 잡힌 후로 청룡은 더 이상 소식이 없었다.“말씀하세요.”도아린은 휴대폰을 치우고 진지하게 신지훈을 바라보았다.신지훈은 먼저 이 프로젝트의 장단점을 분석한 뒤, 농담처럼 말했다.“그런데 정말 강재민 씨와 프로젝트를 놓고 경쟁할 생각이에요?”“신 대표님,
신지훈이 떠난 후, 도아린은 바로 레드 후드와 드래곤에게 연락을 했다.자신이 청룡과는 연락이 되지 않았지만 그 두 사람은 아마 연락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다음 날, 육청아는 심문 중에 무심코 2년 전의 한 사건을 언급했다.2년 전, 고속도로에서 가교가 무너져 대형 교통사고를 일으킨 사건이 있었다. 당시 사고 책임은 원래 가교 설계가 불합했는데 악천후까지 겹쳐서 일어난 사고라고 결론지어졌었다.하지만 사실 가교가 무너진 주된 원인은 불량 건축 자재 때문이었다.그 당시 자재를 구매하고 승인한 사람은 직위가 정지되었고 사건이 잦아든 후에는 육원 그룹의 고위층에 입성했다.육청아가 바로 그 사건을 덮기 위해 도움을 주고 육원 그룹을 도와 사건을 잠재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사람이었다.“또 불량 자재라니! 너무 우연한 일이 아닌가?”도아린은 커다란 창문 앞에 서서 창밖의 달빛을 바라보며 말했다.일북은 그녀의 뒤에 서서 한참 생각하다 이내 입을 열었다.“강재민의 새로운 프로젝트가 중단됐고 배건후의 요양원 개업 전 검수가 불합격이었던 것도 모두 건축 자재와 관련이 있어요! 이 모든 육씨 가문과 관련이 있을까요?”“육씨 가문이라... 그 사람들이 그렇게 큰 욕심을 부릴 것 같지는 않아.”도아린이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육씨 가문과 육원 그룹은 주로 호텔, 외식업, 의류 산업 등을 하고 있었고, 건축 사업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단순히 사업 영역을 확장하기 싫어서일까, 아니면 예전에 있었던 일이 까발려지는 게 두려워서일까?”“육하경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하경 씨?”도아린은 육하경이야말로 간단한 인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그 사람은 이제 막 세인트존스 호텔을 맡았으니 이전의 육씨 가문의 일과는 상관이 없는 듯해.”하지만 육청아가 다른 건 말하지 않았고 2년 전 사건만 언급한 것은 오히려 육하경을 보호하려는 의도가 다분해 보였다.일북이 뭐라 더 말하려던 그 순간에 검은 승용차 한 대가 서서히 맞은 편 주민구역으로 들어갔다.
“왜요? 왕진을 가는 것마저도 신 대표님 허락을 받아야 하나요?”도아린은 장난스러운 말투로 말했지만 신지훈은 살짝 당황해서 팔에 소름이 돋았다.그는 백미러를 통해 유선미에게 경고의 눈빛을 보냈다.“그럴 리가요...”유선미는 어색하게 웃었다.“저희 진료소에서 한 번 사고가 난 이후로는 더 이상 왕진을 하지 않아서 그래요. 이번에도 특별히 원장님께 허락을 받고 왕진을 한 거라서요. 제가 신 대표님께 크게 신세를 졌었던지라...”“정 그렇다면 저도 무리하게 부탁하지 않을게요. 다만...”도아린은 유선미를 바라보며 말했다.“조심하는 게 좋을 거예요. 신 대표님께서 아주 중요하게 분이시거든요. 만약 무슨 일이라도 생기게 되면 그쪽 진료소가 감당하기는 어려울걸요?”유선미는 창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최선을 다하겠습니다.”“사실은...”신지훈이 막 해명하려는 순간, 도아린의 전화벨이 울렸다.“잠시만요.”도아린은 그의 말을 끊고 전화를 받았다.“도착했어? 그래, 알겠어. 지금 갈게. 좀만 더 앞으로 와.”그녀는 신지훈을 바라보고는 통화를 이어 나갔다....통화를 마친 도아린이 입을 열었다.“운전기사가 데리러 왔다고 하네요. 전 볼일이 있어서 이만 가볼게요.”그녀는 안전벨트를 풀고 차에서 내리려 했고 신지훈은 어쩔 수 없이 차를 갓길에 세웠다.도아린이 떠난 후, 유 간호사님은 급히 사과했다.“죄송해요, 신 대표님. 아까 순간적으로 당황해 버려서...”신지훈은 백미러를 통해 길가에서 전화를 받는 도아린을 지켜보았다. 그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신지훈은 입술을 깨물더니 유선미를 버스 정류장까지 태워다 주었다. 그리고는 길가에 차를 세우고 기다렸다. 도아린이 이쪽으로 지나가는지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하지만 그의 예상대로 그녀는 이쪽으로 오지 않았다.차에서 내리자마자 도아린은 반대 방향으로 가버렸다....일북은 건너편 아파트 단지를 주시하고 있었다. 신지훈이 나타나자 검은 옷을 입은 마스크 맨도 모습을 드러냈다. 일북은 몰래 그
창문 여는 소리를 듣고 뒤를 돌아보자 마스크 맨은 이미 창틀에 올라가 있었다. 고민성은 빠르게 앞으로 다가가 그를 붙잡았다.“너 제 정신이야? 상처도 낫지 않았으면서 또 다치려고? 빨리 내려와! 내가 따돌릴 테니까.”마스크 맨이 잠시 생각하더니 허리를 부여잡으며 창문틀에서 내려왔다.“아까 그 장면을 찍어서 지훈이한테 보여즐 걸 그랬네. 진짜 볼만할 텐데...”마스크 맨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고민성도 더 이상 장난치지 않고 그에게 물 한 잔 따라주었다.그가 방을 나섰을 때, 도아린이 앉아 있던 테이블에는 남자만 남아 있었다.“그 여자 지금 자리에 없는데? 화장실이라도 간 건가? 지금이 기회야!”마스크 맨은 마시던 물컵을 내려놓고 빠른 걸음으로 밖으로 향했다.그때, 무대에서 내려오던 누군가가 그와 정면으로 부딪쳤다.“죄송해요!”도아린이 고개를 들었을 때, 시야에 들어온 것은 매서운 남자의 눈이었다. 그녀가 삼3년 동안 수없이 봐왔던 눈이었다. 꿈속에 나올 정도로 말이다.마스크 맨은 모자에 검은색 마스크까지 쓰고 있어서 눈만 드러내고 있는 셈이었다.하지만 그와 눈을 마주친 것만으로도 도아린은 눈물이 차오를 것 같았다.“저...”“실례합니다!”고민성이 재빨리 마스크 맨을 뒤로 숨겼다.“제 친구가 급한 일이 있어서요. 앞을 제대로 못 보고 실수로 부딪쳤네요. 제가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도아린은 터질 듯한 감정을 억누르며 힘겹게 숨을 쉬었다.심장이 요동치고 있었다.‘신중하게 생각해야 해. 내가 잘못 본 거면 어떡해?’“전 괜찮아요. 오히려 친구분 상태가 안 좋아 보이셔서 걱정되네요.”그녀의 시선이 마스크 맨을 향하자 그는 모자를 깊숙이 더 눌러쓰고는 고개를 숙였다.도아린은 그의 표정을 볼 수 없었고 그의 눈빛에서 감정을 읽어내는 것도 불가능했다.“괜찮으신 거라면 저희는 이만 실례하겠습니다.”고민성이 마스크 맨을 돌아보며 팔꿈치를 툭 쳤다.“가자.”마스크 맨은 한 번도 돌아보지 않고 말없이 걸음을 옮겼다. 고민성도 그의 뒤
“뭐라도 먹고 가자.”배건후는 구운 닭 날개는 도아린에게 건네주고 주현정에게는 구운 식빵을 건네주었다.주현정은 빵을 받아 들고는 돌아서며 말했다. “천천히 이야기 나누렴. 나는 물 좀 마시러 들어갈게.”도아린은 하고 싶은 말이 있었지만 배건후가 그녀의 손을 붙잡아서 멈췄다.두 사람은 강가의 평평한 돌 위에 앉았다.“엄마는 진짜 다 내려놓으신 걸까요?”“적어도 시작은 하신 거지. 앞으로 진 큰아버지와 큰어머니와 함께 여행 다니면 점차 나아질 거야.”배건후는 핸드폰을 꺼내고는 방금 구 경관이 보내온 사진을 열었다.“남궁유민, 즉 고성만이야. 경찰이 고성만의 집을 수색할 때 이걸 발견했어.”도아린은 마지막 닭 날개를 입에 넣고 꼬챙이를 배건후에게 건네며 핸드폰을 받아서들었다.화면 속 사진에는 루비 목걸이가 찍혀 있었다.배건후가 큰돈을 들여 샀던 화려한 디자인의 목걸이지만 전에 잃어버렸던 목걸이였다.도아린은 배건후를 바라보며 말하려 했지만 입안은 닭 날개로 가득 차있어 눈만 깜빡였다.“내가 전에 너한테 줬던 그 목걸이야. 배지유가 몰래 차다가 잃어버렸던 거.”도아린의 입은 마치 발골 기계 같았다. 닭 날개가 입에 들어갔다 나올 때면 뼈만 남았다.도아린은 손바닥에 뼈를 뱉고는 차분하게 말했다.“배지유가 어떤 남자와 잤고 그 사람이 계속해서 그녀를 영상으로 협박했어요. 그 장본인이 바로 고성만이라구요!”“...”이번에는 배건후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성만이 배지유를 협박한 사람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목걸이를 철저히 숨겨놓고 분해해서 이미 팔아버렸을 거로 생각했거든. 그런데 그걸 집에 보관해 놓았을 줄은 몰랐어.”그것은 고성만이 자신을 위해 남겨둔 마지막 보험이었다.궁지에 몰리게 되면 목걸이를 분해해 팔고 다른 도시로 가서 새 삶을 살 계획이었을 것이다.하지만 그는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체포당하고 말았다.다음 날, 도아린은 연성으로 돌아갔다. 배건후가 신청한 챔피언십 대회 접대 임무가 승인되었기 때문이다.진수혁 역시 변
그는 입가에 얕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괜찮아. 자고충이 하나가 될 때 이런 현상이 생기는 거야. 앞으로 잘못된 일을 하지 않으면 아프지도 않을 거야.”만약 사랑하는 사람을 배신한다면 그 고통으로 인해 결국 죽게 될 것이다.도아린은 배건후의 머리를 끌어안고 고개를 들고 흘러나오는 눈물을 억지로 참으려고 애썼다.배건후는 그녀의 품속에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육원의 중첩된 지분을 손에 넣어서 너에게 혼수로 바칠게. 네가 나를 원하지 않아도 상관없어. 그래도 나는 너를 평생 지켜줄 거야.”그녀가 결국 참지 못하고 흘린 한 방울의 눈물은 그녀의 볼을 타고 떨어져 남자의 머리 위에 떨어졌다.그렇게 해가 서쪽으로 기울어 빛이 어두워질 때까지 두 사람은 한동안 서로를 안고 있었다. “돌아가자.”배건후는 그녀의 가느다란 허리를 감싸안고 다리를 움직이며 불편했던 자세를 바꿨다.“이 근처에 야생 동물은 없지만 해가 지면 안전하지 않아.”도아린은 처음에는 감정에 휩싸여 배건후의 이상함을 눈치채지 못했지만 그가 몸을 움직이자 그녀는 즉시 이상함을 느꼈다.그녀는 급히 일어나며 말했다.“돌아갈 때 건후 씨 몸이 불편하니까 제가 태워드릴게요. 그리고 내리막길이라 힘도 덜 들 거예요.”“알았어. 네 말 들을게.”자전거 핸들이 비뚤어져 있었지만 배건후는 두 다리로 바퀴를 단단히 고정한 후 힘껏 돌려 단숨에 바로 고쳤다.도아린이 자전거 앞좌석에 타고 배건후는 그녀 뒤에 앉았다.그는 얼굴을 그녀의 등에 기댄 채 내리막에서 속도가 너무 빨라지면 긴 다리를 쭉 뻗어 마찰력을 늘리며 조절했다.그들이 별장에 도착했을 때 진수혁과 변슬기도 막 돌아오고 있었다.변슬기는 도아린을 의미심장하게 쳐다보았다.도아린은 그들이 뭔가 진전이 있을 줄 알고 가서 물어보려 했지만 배건후가 붙잡았다.그는 손을 뻗어 그녀 머리 위에서 붉은 잎 하나를 떼어냈다.“...”변슬기와 진수혁이 설마 자신과 배건후가 야외에서 뭔가를 했다고 생각하진 않겠지.배건후는 오직 도아린에게만 부
두 사람은 눈이 마주쳤다.도아린은 그의 눈동자 속에 가득한 붉게 물든 단풍잎과 맑고 푸른 하늘 그리고 마음속 깊이 즐거워하며 웃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그의 깊고 그윽한 눈이 가늘게 감기며 그 속에는 격렬한 감정이 소용돌이치는 듯했다.‘그래, 이거지!’그녀는 올해 겨우 25살이었다.어린 시절 양부모 곁에서 사랑받지 못했고 장애를 겪은 후 식물인간이 된 동생을 돌보며 결혼 생활에서는 남편의 감정적 학대 속에서 버텨야 했다.그녀는 너무도 많은 행복을 잃어버린 채 살아왔다.이게 맞는 일이다.그녀는 웃어야 한다. 크게 소리 내어 마음껏 웃어야 한다.고작 25살에 불과한 그녀가 이토록 많고 무거운 책임과 압박을 짊어질 필요는 없었다.눈앞 여인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점점 사라지고 배건후의 심장도 저릿해 왔다.그는 손을 뻗어 그녀의 얼굴을 어루만졌다.거친 손끝이 그녀의 부드러운 피부를 스쳤고 천천히 그녀의 눈꼬리를 눌렀다.“웃어. 앞으로 나쁜 감정들은 전부 나한테 넘겨. 내 앞에서는 일부러 강한 척 버틸 필요도 없어. 속상하면 때리고 욕해도 돼. 대신에 절대 자신을 괴롭히지 마.”도아린은 코끝이 찡해지고 눈가가 뜨거워지더니 시야가 흐려지기 시작했다.그녀는 급히 일어나 뒤돌아 눈물을 닦으려 했다.그 순간 힘센 팔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안았고 특유의 나무 향기가 그녀를 감쌌고낮고 깊은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여태까지 내가 나쁜 놈이었어. 미안해. 앞으로는 모든 일을 너와 상의할게. 네가 싫어하는 건 하지 않을 거고 네가 속상해할 일도 만들지 않을 거야.”도아린은 팔꿈치로 그를 툭 쳤다.“입만 살아서!”배건후는 그녀의 어깨를 잡고 돌려세운 뒤 품에서 작은 상자를 꺼냈다.도아린은 미간을 찌푸렸다.“아직 육원의 중첩된 지분을 손에 넣지도 못했잖아요. 그리고 저도 아직...”이후의 말은 더 이상할 수 없었다.배건후가 상자를 열었지만 그 안에 들어있는 것은 청혼의 반지가 아니었다.작고 빨간 벌레가 들어 있었는데 다리가 없고 온몸이 부드러웠으며
변슬기는 바쁜 듯 뒤돌아보며 기대와 불안이 섞인 표정을 지었다."좋아요." 진수혁은 흔쾌히 대답했다. 이미 옷을 갈아입었기 때문이다. 배건후는 세 사람을 보고 눈빛이 흔들렸다. 빌라에는 자전거가 두 대 있었는데, 도아린과 함께 드라이브를 나가기 위해 일부러 다른 자전거의 페달을 떼어 놓았던 것이다. 도아린은 자전거를 보고 그에게 너 정말 얄밉다'는 눈빛을 보내며 빨리 고치라고 신호를 보냈다. 자전거를 고치고 네 사람은 문밖으로 나갔다. "꽉 잡아."배건후는 도아린이 자신의 허리를 감싸 안자 힘껏 페달을 밟았고, 자전거는 비탈길을 미끄러져 작은 길로 향했다.변슬기는 진수혁에게 감히 손을 대지 못하고 자전거 뒤쪽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진수혁은 자전거 타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듯 비틀거렸다. 변슬기는 "저, 제가 밀어드릴까요...거의 정상에 도착하면, 그때 저를 밀어주세요."라고 제안했다. 진 대표님의 속도로는 누가 먼저 정상에 도착할지 내기는커녕, 저녁 식사 시간이 되어도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른다. 진수혁은 아무 말 없이 계속 비틀거렸다. 변슬기는 거의 넘어질 뻔했고, 황급히 남자의 허리를 붙잡았다. 자전거는 갑자기 비틀거리지 않았고, 속도도 빨라졌다. 변슬기: "..."배건후는 도아린을 태우고 산길을 누볐고, 도아린은 뒤쪽 페달을 밟으며 일어섰다. 두 손으로 그의 어깨를 누르고, 짧은 머리카락은 바람에 휘날렸다. "산속 공기가 도시보다 훨씬 좋네요. 매연 냄새도 없고, 에어컨 냄새도 안 나고." 배건후는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살짝 몸을 일으켰다. "어제 비가 왔으면 더 좋았을 텐데." "당신도 비 온 뒤 흙냄새 좋아해요?" 도아린은 배건후에게 가까이 다가가 그의 귓가에 웃으며 말했다. "나도 좋아해요! 비 온 뒤 흙과 풀이 섞인 냄새는 기분을 좋게 만들어요!" 배건후는 입꼬리를 올렸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도아린은 잠시 침묵하다가 깨달았다. 배건후가 말한 것은 바로 그녀가 좋아하는 것이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더욱 환한 미
진수혁은 찻잔을 들어 살짝 한 모금 마시더니 배건후를 바라보았다. "말해 봐요." "내가 먼저 도아린과 결혼하면, 당신은 유럽 유학 기회를 나에게 넘겨요. 당신이 먼저 변슬기와 결혼하면, 당신이 필요로 하는 칩 기술을 두 손으로 받칠게요."진수혁의 얼굴에는 별다른 표정 변화가 없었다. 찻잔을 쥔 손에 무의식적으로 힘이 들어갔고, 손등에는 핏줄이 돋아났다. 그는 배건후의 깊은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 매력적인 눈은 도아린을 향할 때면 온통 비위를 맞추고 약한 척하는 모습이었지만, 지금은 매처럼 날카롭게, 거스를 수 없는 공격성을 띠고 있었다.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진수혁은 눈에 띄지 않게 눈썹을 찌푸렸다. 배건후가 그동안 도아린에게 온갖 비위를 맞추는 것을 보고 진수혁은 배건후가 이미 자존심과 투지를 잃고 오직 결혼 생활을 되돌리려고만 한다고 오해했다. 이제야 배건후는 여전히 그 배건후라는 것을 알았다. 전 부인을 되찾고 싶어 하는 것은 진심이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발전시킬 기회를 포기한 적도 없었다.유럽에는 강연이 하나 있는데, 입문 조건이 주요 재벌 그룹의 실력자 또는 후계자이며, 배건후의 현재 자산으로는 강연을 들을 수 없었다. 진수혁은 그 자격이 있었지만, 듣고 싶지 않았다. 그는 유럽으로 가서 칩 기술을 연구하는 천재를 찾고 싶었다. 두 사람은 서로 필요한 것이 있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배건후는 굳이 그와 도박을 걸려고 했다. "당신이 이길 수 있을지는 두고 봐야 알죠." 진수혁이 말했다. "두고 보시죠." 배건후가 말했다. 두 남자는 악수하며 조용히 내기를 정했다. 저녁 식사 때, 진수혁 부부는 주범금도 데려왔고, 내일을 위해 준비했던 몇 가지 요리가 오늘 식탁에 올랐다. 모두 즐겁게 식사했고, 주범금의 기분은 눈에 띄게 좋아졌다. 그녀는 도아린에게 자신이 구매한 전리품을 자랑하기도 했고, 밤늦게서야 떠났다. 진수혁은 도아린을 데려다줄 때 그녀를 불러 세웠다. "유럽에 칩 분야 천재가 있다는 거
변환에 성공하는 순간, 동생은 깨어났고, 시스템은 남자 주인공에게 귀속되었다. 시스템은 남자 주인공에게 도아린의 진심을 얻지 못하면 죽을 것이라고 알렸다.처음에는 남자 주인공이 믿지 않았지만, 도아린과 이혼한 후 자신의 사업 제국이 날마다 무너져 가는 것을 보고 나서야 도아린의 좋았던 점들을 떠올렸다...도아린은 어금니를 꽉 깨물며 말했다. "비록 허구의 이야기지만, 이 남자 주인공은 정말 쓰레기네!""나도 그렇게 생각해." 배건후는 맞장구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도아린의 좋은 점을 떠올린 게 아니라, 모든 것을 잃을까 봐 두려워하는 거야."도아린은 그를 바라보았고, 그녀의 눈빛에는 ‘그러니 당신도 그와 똑같은 부류겠지’라고 쓰여 있었다."나는 아니야." 배건후는 도아린의 손을 잡고 심장 부위에 가져다 댔다. “나는 줄곧 당신만을 사랑했어. 다만 임무 때문에 표현할 수 없었을 뿐이야. 나는 모든 것을 잃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당신에게 줄 수 있어."도아린은 손을 빼서 그의 옷에 쓱 닦았다."당신은 나를 소유하고 싶을 뿐이야. 나를 소유하는 것이 모든 것을 소유하는 것과 같으니까." 그녀는 일어나 테라스로 향했다.배건후는 따라가서 말했다. "우리는 공정하게 할 수 있어! 결혼 전후를 막론하고 모든 자산은 당신 거야!"그는 잠시 멈칫하더니 "나도 당신 거고."라고 덧붙였다.도아린은 깊어가는 가을의 차가운 공기를 깊이 들이마시며 눈을 감고 침묵했다.배건후는 말없이 그녀 옆에 서 있었다. 마치 주인의 명령을 기다리는 강아지처럼, 주인이‘놀러 가자’라고 한마디만 하면 즉시 꼬리를 흔들며 기뻐할 준비가 된 듯이.한참 후, 도아린은 그를 돌아보았다."당신 우정윤에게 후원한 적 있어?"배건후는 입술을 오므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후원한 건 독자들이 남자 주인공을 가장 심하게 욕하는 챕터였어.""……" 그리고 계속 고개를 끄덕였다.도아린은 웃음을 참으며 일부러 불쾌한 듯 눈살을 찌푸렸다. "거기 나오
"내가 무슨 바람이 있다고 그래요?"예전에 그녀가 먼저 다가간 건, 배건후랑 제대로 살아보고 싶어서였다.남녀를 불문하고 아이를 낳아서 가정을 꾸리고 싶었다.당신을 내 뜻대로 움직이려고 여러 수단을 쓴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사랑 없이는 못 산다는 건 아니에요.내가 엄청나게 목마른 사람처럼 말하네요.배건후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배건후가 잘못 말했어요. 배건후가 원해요. 당신이 나를 용서하고 받아들이고, 나를 총애해주길 기다릴게요."퉤!도아린은 씹던 멜론을 배건후의 몸에 그대로 뿜어버렸다.가슴을 치며 화도 나고 웃음도 나왔다.두 사람이 교통사고를 당한 후에 배건후는 분명히 다른 사람에게 몸을 빼앗긴 게 분명하다.겉모습은 그대로지만, 속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겠는가?예전의 배건후는 엄격하고 냉정하며 웃음기 하나 없었고, 그의 심기를 건드리는 말을 하면 비웃거나 냉담하게 대하곤 했다. 지금의 배건후는 데릴사위가 되겠다는 말도 서슴없이 하고, ‘총애’를 받겠다고 자청하기까지 한다.배건후는 몸에 묻은 과일 조각을 닦지 않고 손을 들어 도아린의 등을 토닥이며 괜찮은지 확인한 후에야 휴지를 꺼내 옷을 닦았다.도아린은 바닥에 떨어진 과일 조각을 치우며 농담처럼 말했다. "배건후, 당신 몸에 다른 사람이 들어온 게 분명해요. 내가 책 속에 살고 있는 건가? 당신은 앞으로 벌어질 일을 알고 내가 강해져서 당신에게 복수할 거라는 걸 알고 미리 납작 엎드리는 건가?"배건후는 옷을 다 닦고 도아린을 소파로 끌어당겼다."빙의가 아니라 공략이에요.""..."남자는 그녀를 품에 안고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당신을 공략해서 당신의 사랑을 얻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나는 죽어요.""당신 미쳤어요?" 도아린은 그의 등을 찰싹 때렸다."미쳤어요. 당신은 유일한 약이에요."도아린은 웃음을 참지 못하고 그의 품에서 온몸을 떨며 웃었다. "그렇게 뻔한 사랑 고백은 우종이 가르쳐준 거죠
"엄마가 당신한테 준대요, 알아서 해요."도아린이 머리를 끄덕였다."그래요. 별장에서 돌아온 후 다시 해결합시다."배건후는 몸을 뒤로 돌리면서 주체 못 하고 그녀를 바라보았지만 그녀는 이미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잘 보이지 않아 그런지 어떤 부분은 더 확대되어 크게 보였다."전보다 커졌는데요."이상한 말이 도아린의 얼굴을 빨갛게 만들었다.그녀는 화가나 그를 한 눈 째리고 나가서 물건을 정리하였다.도아린은 변슬기의 기분이 별로 좋지 않은 것을 발견하고 그녀를 끌고 단추를 찾는다는 핑계로 무슨 일인지 물었다."아무것도 아니에요."변슬기는 카펫에 엎드려서 핸드폰 보조등을 켜고 소파 밑을 드려다보았다."찾았어요."그녀는 손을 뻗어 단추를 쥐면서 주절주절 말했다."도 선생님, 이제 기회가 되면 제가 저희집의 메인 메뉴인 만두를 대접해 드리겠습니다."도아린은 카펫 위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그녀가 건네 준 단추를 만지면서 웃으며 말했다."좋아요. 제일 좋기는 가게 평생 20% 할인 카드 줘요.""작은 가게라 많이 벌지도 못해요."변슬기가 웃으며 말했다."하지만 선생님이 오시면 무조건 20% 할인 해들릴게요."진수혁은 다 썰어 놓은 과일을 가지고 밖으로 나오면서 저둘이 얘기를 나누는 것을 보았다."무슨 얘기 하세요?"변슬기가 설명해주려 하자 도아린은 손으로 그녀의 목을 감싸며 말했다."데릴 사위에 대해 얘기를 했어요. 변슬기의 어머니 아버지는 딸 하나 뿐인데, 앞으로 사위가 있다며 처가에 들어왔으면 해요."변슬기는 진수혁의 얼굴을 유심히 쳐다 보았다. 그가 이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다.진수혁의 기분은 별로 파동이 없어 보였고 그도 고개를 끄덕이며 이에 매우 동의하는 눈치였다."우리집에는 니가 하나뿐인 딸인데.""저는 데릴 사위를 할 생각이 있습니다."진수혁은 도아린한테 손을 닦으라고 뜨거운 손수건을 건네 주며 그녀를 지그시 바라 보았다.슬기는 놀라서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도아린과 진수혁을 번갈아 가며 바라보았
변슬기는 재빨리 진수혁의 등 뒤로 숨었다.진수혁은 잠시 멈칫하더니 곧 상황을 파악하고 조용히 말했다.“이것 좀 부엌에 가져다줘.”“네!”변슬기는 배건후가 문 앞에 두고 간 봉투를 잽싸게 집어 들고 고개를 푹 숙인 채 부엌으로 사라졌다.도아린의 셔츠 단추 하나는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었다. 배건후는 자신의 재킷을 벗어 그녀에게 걸쳐주며 조심스럽게 게스트룸으로 이끌었다.“기다려. 금방 다녀올게. 차에 여벌로 둔 옷 있어.”도아린은 황급히 배건후의 손을 붙잡고 재킷을 벗어 돌려주었다.“일북이 근처에 있을 거야. 전화해. 밖에 추우니까 이거 입고 나가.”그녀가 팔을 들자 셔츠는 더 크게 벌어졌고 새하얗고 부드러운 피부가 다시 배건후의 시야에 들어왔다. 그의 눈동자에 번쩍이는 불꽃이 튀었고 그 불씨는 작지만 매섭고 뜨거웠다.도아린은 급히 몸을 옆으로 돌리고 팔로 가슴을 가렸다. “어서 가.”배건후는 한참을 움직이지 않다가 끝내 참지 못하고 그녀를 끌어안았다.도아린은 반사적으로 거부하려 했지만 그는 단지 그녀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깊게 숨을 들이켰다. 몇 번을 고요히 숨쉬더니 결국 돌아서서 방을 나갔다.발소리는 집 밖이 아니라 욕실로 향했다.변슬기는 부엌에서 머리를 내밀며 확인하려다 진수혁에게 팔을 붙잡혀 다시 안으로 끌려들어갔다.“생각해봤어? 회사에 남을 거야 아니면 돌아가서 가게를 이을 거야?”변슬기는 고개를 숙이고 포도를 씻었다.자신의 집은 해남에 있는 작은 분식집이었다. 일반 가정에게는 소중한 생계 수단일지 몰라도 재벌가인 진씨 가문 한테는 너무나도 보잘것없는 존재였다.부모님은 외동딸인 변슬기가 곁에 있기를 바라며 나중에는 사위를 맞이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진수혁은 진성 그룹의 황태자다. 그에겐 집안도 학벌도 모두 어울리는 배우자가 필요했고 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 회사에서 떠나는 순간 진수혁과는 더 이상 인연이 없다는 것을 말이다.계속 머무르면 감정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 것이 뻔했다.한참 후 변슬기는 낮은 목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