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촌, 제발요. 안 돼요...”유강후는 한 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잡고 다른 한 손으로 그녀의 치마로 들어가면서 그녀의 귓가에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착한 다연아. 겁낼 필요가 없어. 넌 내 사람이야. 조만간 이런 날이 올 거야. 내가 어떻게 하는지 가르쳐 줄게...”그는 약간 거칠어 보이는 손으로 그녀의 몸 위를 헤엄쳤고 그의 손길이 닿는 곳마다 그녀는 몸을 바르르 떨었다.유강후는 그녀의 풋풋한 반응에 매우 만족해하며 온다연의 귓불을 깨물며 말했다.“우리 다연이는 정말 말 잘 듣네. 이따가 보상을 줄게.”“전... 저는 보상이 필요 없어요. 빨리 내려주세요...”하지만 온다연을 놓아 줄 유강후가 아니었다. 그는 패기 넘치게 입술과 혀로 그녀의 부드러운 입술을 감싸고 있었고 그녀는 숨이 막혔다.그때 갑자기 누군가가 뛰어 들어왔다.“셋째 도련님...”그 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유강후는 갑자기 몸을 홱 돌리며 온다연의 몸을 완전히 가렸다. 그 사람의 방향에서는 털이 보송보송한 작은 머리만 보였다.그 사람도 얼떨떨해져서 입구에 서서 들어갈지 물러설지 어쩔 바를 몰랐다.유강후는 온다연의 머리를 꾹 누르면서 고개를 돌려 소리쳤다.“꺼져!”그 사람은 놀라서 몸을 떨며 도망치듯 뛰쳐나갔다.온다연은 부끄럽기도 하고 무섭기도 해서 고개를 들지도 못하고 유강후의 옷을 꽉 잡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삼촌, 저 사람은 누구예요. 방금 저를 보았어요...”유강후는 가볍게 그녀의 등을 토닥미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모르는 사람이야. 무서워하지 마. 괜찮아.”온다연은 심장이 빨리 뛰었고 놀랍고 두려웠기에 이마에 땀이 맺혔다.“혹시 유씨 가문 사람인가요? 혹시...”그녀의 이런 반응에 유강후는 속이 뜨끔했고 순간적으로 냉정을 되찾았고 차가운 목소리로 낮게 말했다.“아니야. 유씨 가문 사람은 이곳으로 오지 않을 거야.”온다연의 몸은 여전히 떨렸고 그의 품에 웅크린 채 고개를 들지 못했다.“혹시 유민준 씨에요?”유강후는 눈을 가늘게 뜨고 온다연
온다연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눈을 내리깔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곱슬곱슬한 속눈썹은 가볍게 떨렸다. 그 모습은 마치 새끼손가락으로 유강후를 톡톡 치며 유혹하는 것 같았다.유강후는 그윽한 눈으로 온다연은 빤히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녀의 손을 잡고 말했다.“가자.”작은 거실 쪽에는 이미 서너 명이 앉아 있었다. 말이 작은 거실이지 사실 작지 않았다. 무려 70, 80평 미터에 달하는 심플한 한옥 다실 디자인에 설명할 수 없는 고급스러움이 묻어났다.세 중년 남자는 어색하게 서 있었고 그들 옆에는 아직 출시되지 않은 새 옷들이 놓여 있었다.이 세 사람은 모두 경원시 패션계에서 명성이 높은 사람들이고 그들이 대리 판매하고 있는 브랜드는 시중에 나와 있는 국내외의 거의 모든 브랜드를 망라할 정도로 풍부했다. 비록 그런 대단한 인물들이지만 유씨 가문 앞에서는 그저 옷 장수일 뿐이다.유강후가 그들이 대리하고 있는 여성복 브랜드 몇 개를 고르려고 하자 세 사람은 들떠서 잠을 설쳤다고 한다.경원시에서 유씨 가문과 친해지는 것은 모든 사람들의 꿈이기도 하다.오래 기다린 끝에 유강후가 도착했다.원래는 유씨 가문 아가씨가 옷을 고르려고 하는 줄 알았는데 뜻밖에서 연약하고 겁 많은 소녀일 줄이야.소녀는 17, 18살 정도 돼 보였고 검은 머리에 빨간 입술 덕에 미모가 더 돋보였다. 남자의 혼을 쏙 빼놓을 법한 비주얼에 쓸쓸하고 수줍음이 많은 눈을 가졌다.유강후를 모시기 쉽지 않을 줄 알았지만 뜻밖에도 존귀하고 도도해 보이는 유강후는 별로 까다롭지 않았다. 그는 많은 옷을 골랐고 소녀는 싫었는지 부드러운 목소리로 투정을 부렸다.“삼촌. 충분해요.”소녀는 말랑말랑한 목소리로 애간장을 태웠다.그러자 유강후는 마치 흉악한 늑대가 어린 양을 보듯이 탐욕스럽고 거친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봤고 그녀를 당장 자기 여자로 만들고 싶어 했다.몇몇 대리상들은 속으로는 잘 알고 있지만 감히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서로를 쳐다보았다.그들은 유씨 집안에 아가씨라곤 유하령만 있다는 것
유강후는 온다연이 아주 피곤한 것으로 보였다. 그러더니 그녀의 손가락을 주무르며 물었다.“피곤해?”온다연은 고개를 들지 않고 아주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네.”유강후가 고개를 숙이자 슬리퍼를 신은 그녀의 작은 발이 보였고 하얀 발가락이 밖으로 튀어나온 모습을 보자 안색이 어두워졌다.“신발도 아직 고르지 않았는데.”대리상은 그 말을 듣자 비서에게 눈치를 줬다. 비서는 곧 신발을 안고 뛰어 들어와 재빨리 가지런히 전시했다.운동화부터 낮은 굽까지 그리고 하얀색, 은은한 파랑과 핑크색까지 모두 있었다. 신발 끈에도 하얀 진주가 박혔다. 모든 신발은 소녀다운 디자인이었다.유강후는 온다연을 걸상에 앉히고 한 켤레씩 신어보라고 했다.그녀의 발은 작고 발목은 특히 가늘었다. 발가락의 모양마저도 예뻐서 대리상 중 한 명은 그녀를 몇 번을 보고도 눈을 뗄 수 없었다.잠시 후 그는 재빨리 뭔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이 들어 고개를 들어보니 유강후가 자기를 주시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유강후의 눈에는 차가운 기운이 느껴졌고 언제든지 그를 찢어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그러자 대리상은 깜짝 놀랐다. 유씨 가문 셋째 도련님에 대한 소문이 자자했다. 유강후가 사람들의 상상을 초월할 만큼 지독하다는 소문 말이다. 대리상은 갑자기 머리가 아파졌고 얼른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온다연은 두 켤레를 신어보고는 더 이상 시도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작은 발가락을 슬리퍼에 걸치고 발을 동동 굴렀다.“삼촌, 다 너무 커요.”대리상은 그 말을 듣자 얼른 말했다.“225사이즈인데도 커요? 장 집사님이 분명 225라고 했는데...”그러자 온다연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220밖에 못 신어요. 어떤 신발은 215도 신을 수 있고요...”그러자 대리상은 식은땀을 흘리며 어렵게 얻은 미래 그룹과의 협력 기회를 놓칠까 봐 조마조마해했다.“당장 220 사이즈를 찾아와...”유강후는 허리를 굽혀 온다연을 안은 채 거실로 걸어갔다.“일단 다 필요 없어요. 다음에
온다연은 유강후가 또 이상한 행동을 할까 봐 몸을 뒤로 움츠리고 옆에 있는 의사를 바라보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삼촌, 저 사람들은 누구예요?”유강후는 그제야 돌아서서 의사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약을 발라주세요.”이 의사는 딱 봐도 소양이 아주 뛰어났고 약을 바르는 과정에도 상처가 어떻게 생겼는지 묻지 않았고 온다연의 정체에 관해 묻지도 않고 조용히 치료에 집중했다.그리고 파상풍 주사를 맞고 물을 다치면 안 된다고 귀띔하고 떠났다.의사가 떠난 후 온다연은 다시 유강후를 마주할 생각에 머리가 아파졌다.오늘은 분명히 주말이 아닌데 유강후는 출근할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미래 그룹을 인수했다는 사람이 이렇게 한가할까? 분명 처리해야 할 서류가 산처럼 쌓여야 하는 게 아닌가?유강후는 그녀의 생각을 꿰뚫어 본 듯 말했다.“오늘 오후에는 집에 있을 거야. 너도 푹 쉬어. 나는 서재에서 일할 거고 저녁에는 모임이 있으니 나랑 함께 가자.”온다연은 가기 싫다고 차마 말하지도 못했다. 그녀는 사실 잠시도 이 방에 있고 싶지 않았지만 아침에 도망쳤다는 것을 생각하면 유강후는 분명히 다시는 자신을 내보내지 않으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지금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라고는 방에서 자는 것밖에 없다.온다연은 겨우 반나절 밖에 있었는데 방 안에는 몇 가지 물건이 더 늘었다. 그녀는 이런 물건에 관심이 없었고 작은 베란다에 있는 종이 위에 아무렇게나 그림을 그리고 나서 임혜린에게 전화를 걸었다.임혜린은 매달 며칠 동안은 전화도 안 되고 메시지도 답장을 안 하는 수상한 버릇이 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이다. 이미 6, 7일이 지났지만 아무런 소식도 없다.온다연은 너무 지루해서 침대에 누워 뒹굴 수밖에 없었고 머릿속은 온통 유강후가 방금 뽀뽀한 장면이었다.생각할수록 끔찍했다. 온다연은 자기 입술을 만지면서 입술이 뜨거워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그리고 서서히 유강후가 만졌던 모든 피부가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이때 마침 공기 중에서 은은한 장미향이 풍기
유강후는 멈칫거리더니 천천히 말했다.“유씨 가문 사람들은 없어.”마치 무슨 설명이라도 하는 듯하여 온다연은 더 긴장되었다.온다연은 유강후의 친구를 만나고 싶지 않다.하지만 이 말을 감히 내뱉지 못하고 고개를 숙인 채 무의식적으로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입 옆에 있던 점은 피가 날듯 말듯 한 빨갛게 되었고 그녀의 입술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유강후는 손으로 그녀의 부드러운 입술과 옆에 있는 점을 어루만졌다.그리고 그윽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면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다연아, 예전에 뽀뽀해 본 적이 있어?”안 그래도 긴장한 온다연은 갑자기 엉뚱한 질문을 받고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들어 유강후를 쳐다보았다.온다연의 눈빛에는 막막함과 당혹감이 느껴졌다.유강후는 그녀의 풋풋한 모습에 만족한 듯 고개를 숙여 그녀의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넌 내꺼야. 알겠어?”그리고 허스키한 목소리로 경고하는 듯 말했다. 무서운 카리스마를 풍기면서 말이다.온다연은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유강후를 바라보았고 무슨 뜻인지 이해 못 했다는 표정을 지었다.그리고 잠시 후 그녀는 고개를 떨구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하지만 삼촌은...”유강후는 눈을 가늘게 뜨고 온다연의 턱을 들어 올렸다.“겁이나?”그의 눈빛은 매섭고 차가웠으며 온다연이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악함도 있었다.마치 온다연이 말 한마디만 잘못하면 죽임을 당할 것처럼 말이다.온다연은 몸을 떨며 눈을 내리깔고 감히 유강후를 쳐다보지 못했다.유강후는 눈을 가늘게 뜨고 더욱 차가운 어조로 말했다.“싫은 거야 아니면 겁이 나는 거야?”온다연은 감히 대답하지 못했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아파요.”온다연은 고의로 아프다고 말한 것이 아니라 정말 아팠다. 유강후는 마치 통제 불능이 된 듯 그녀의 턱을 부러뜨릴 것처럼 꽉 쥐었다.원하는 답을 얻지 못하자 유강후의 눈빛은 더욱 차가워졌다. 그리고 미소가 사라졌고 온다연의 턱을 잡고 있던 손에도 힘이 빠지지 않았으며 공기 중의 냉기가 더욱 짙어진 것 같
무릎까지 오는 흰색 치마는 고급스러운 분위기에 얇은 큐빅이 박혔고 허리 쪽에는 태슬 벨트가 있었다. 이 치마에 어울리는 신은 낮은 굽의 회색 구두였다. 흰색 큐빅 핀까지 머리에 꽂으면 순하고 여려 보여 유강후가 선택한 옷과 나름 잘 어울렸다.유강후는 만족스러운 듯 온다연에게 손목시계를 차주면서 자신의 시계도 들어냈다.두 시계는 똑같지만 사이즈가 달랐다.온다연은 유강후가 고의로 커플 시계를 준비했다고 의심했지만 감히 말하지 못하고 유강후에게 끌려 차고로 갔다.지하 차고는 수백 평에 달했고 매우 넓었다. 온다연은 차에 대해 잘 몰랐기에 모두 똑같은 검은 차로 보였다. 골드 로고를 가진 차가 몇 대 있었는데 그건 바로 유강후가 자주 애용하는 검은색 마이바흐였다.차에 오르자마자 유강후가 물었다.“마음에 드는 게 있어?”온다연은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자 유강후는 그녀의 잔머리를 귀 뒤에 넘겨주면서 말했다.“차가 있으면 이동하기 편리할 거야. 하지만 네가 운전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기사를 붙여줄게.”이때 운전하고 있던 이난이 말했다.“괜찮은 코치를 알고 있어요. 인내심도 있고 성격도 좋습니다. 나이가 많아 듬직하기까지 하고요. 제 사촌 여동생이 그곳에서 운전을 배우고 있습니다. 다연 씨가 운전을 배우고 싶다면 제가 소개해 드릴게요.”말이 끝나기도 전에 유강후는 매서운 눈빛으로 이난의 뒤통수를 째려보았다. 그리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잘난 척 다했어? 처리해야 될 서류가 수백 개 있으니 오늘 밤 자지 말고 다 정리해.”그 말을 듣자 이난은 운전대를 꽉 잡았고 감히 반박도 못 하기에 속으로 이불 킥을 했다.가는 길에 아무도 말하지 않았고 차 안의 분위기는 차가웠다. 온다연은 답답해서 창문 쪽으로 몸을 옮기려고 했다. 그러면 유강후와 조금 더 멀리 떨어질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움직이자마자 유강후가 그녀의 허리를 덥석 끌어당겼다.그리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온다연, 앞으로 또 창문 쪽에 붙어 앉을 생각을 하면
이난이 없어지자 차 안의 분위기는 더 차가워졌다. 온다연은 유강후가 숨을 쉬는 것조차 싫었고 숨이 턱턱 막혀오면서 긴장감에 몸이 떨릴 정도였다.밖은 사람들로 붐비는 거리인데 유강후가 또 이상한 행동을 할까 봐 걱정이었다.온다연이 다시 땀을 흘리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유강후는 손을 뻗어 그녀의 이마를 만지려고 했지만 온다연은 피하면서 놀란 두 눈으로 유강후를 바라보았다.“삼촌, 밖에 사람들이...”그러자 유강후의 손은 허공에 멈춰 섰고 당황한 온다연의 얼굴을 2초 동안 바라보다가 손을 내렸다.“다연아, 누구도 내가 하려는 일에 참여할 권리가 없어. 난 결과따위를 생각하지 않거든.”유강후는 그렇게 말하고 차 문을 열고 운전석에 앉았다.그러자 온다연은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유강후의 말 뜻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더 무서웠다.아무도 간섭할 수 없다? 하고 싶은 대로 다 할 것이다? 가족마저도 그를 통제할 수 없다는 뜻일까?비록 미친 사람처럼 보였지만 온다연은 그가 말한 것이 모두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그녀의 기억 속에서 유강후는 열 몇 살 때부터 유씨 기업을 인수하기 시작했고 그 후 미국으로 건너가 그의 어머니 강해숙의 사업을 인수했다.유강후는 유씨와 강씨 가문의 절대 권력자이고 진정한 금수저이다. 그는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고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다.하지만 온다연은 너무 달랐다. 만약 유강후가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온다연은 절대 막을 수 없을 것이다.온다연은 단지 고아일 뿐인데 유강후는 왜 이렇게 그녀에게 집착하는 걸까? 어떤 이득 얻으려고 이러는 걸까?나은별과 곧 약혼할 것이고 두 사람도 서로 사랑하는 천생연분인데 왜 계속 이러는 걸까?그러니까 세상 남자들은 다 똑같은 걸까? 자기 여자가 있으면서 또 누군가를 탐내다니.온다연은 그 생각을 하니 손이 떨리고 속이 쓰려왔다.잠시 후, 차는 경원시에서 가장 좋은 호텔 입구에 세워졌다. 유강후는 차를 멈춰 세웠고 온다연도 함께 내렸다. 유강후가 호텔로
유강후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낮게 말해. 얘가 겁이 많단 말이야.”“어머. 챙기는 것 좀 봐. 이렇게 긴장하다니. 미성년자는 아니겠지?”그러자 온다연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정말 20살이에요. 대학 다니고 있어요.”그녀의 목소리는 작고 부드러웠고 남자들만 있는 회식 자리에서 유난히 주의를 끌었다.몇 사람은 먼저 어리둥절해하더니 곧 다시 웃기 시작했다.그러자 온다연은 고개를 숙이고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으며 작고 하얀 두 손을 모으고 앉아 있었다.조명 때문에 그의 얼굴은 더 하얗게 빛났지만 귀는 빨갛게 타올랐다.유강후는 그 모습을 보더니 버럭 화를 내면서 차갑게 말했다.“밥 먹을 거야 말 거야? 먹지 않을 거면 꺼져.”그러자 웃음소리가 금세 그쳤다. 이때 누군가가 소리를 질렀다.“성격 여전하네. 3년이 지났는데도 변한 게 하나도 없구나.”“자자자. 음식을 올리라고 해. 신구시에서 모셔 운 특급 주방장이야. 조상이 임금님에게 음식을 해줬고 대대로 그 솜씨를 이어오고 있어.”이제 곧 음식이 나올 시간이다.다른 사람들은 여전히 웃고 떠들고 있었다. 온다연이 잘 알아듣지 못하는 주식, 정책, 부동산에 관한 얘기가 오가고 있었다.비록 유강후는 말이 적고 가끔 몇 마디를 하지만 늘 새로운 화제와 대화의 흐름을 이끌고 갔다.이곳에서도 그가 주인공처럼 말이다.온다연은 음식을 먹으면서 몇 사람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보자마자 깜짝 놀랐다.다섯 명 중 세 명은 아는 사이였다. 한 명은 경원시 가장 젊은 부시장 송지원이다. 그는 30대 초반으로 능력이 뛰어나고 가문 세력도 대단했다.한 명은 아시가 갑부의 아들 한이준이다. 그는 바람둥이로 소문이 자자하고 연예기사에 자주 등장했다. 사귄 여자 연예인이 부지기수이고 Z국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그리고 마지막 한 명은 낯이 익어 생각해 보니 바로 어제 뉴스에 나온 인물인데 젊고 능력이 대단한 사람이었다.나머지 두 명은 누군지 잘 몰랐지만 이 세 명의 신분으로 볼 때 그 두 명도 보통
한 입 베어 먹자마자 권예진의 눈이 반짝였다.“이 맛은... 정말 맛있어요! 예전에 경원시에서 먹었던 맛이랑 비슷해요. 그 식당 주방장이 옛날 누구의 후손이라고 했는데, 왕에게 요리를 해주던 사람이래요. 그때 딱 한 번 먹어보고 다시는 못 먹어 봤거든요! 근데 오늘 이렇게 다시 먹어 보게 되다니... 진유나 씨, 요리 솜씨가 정말 좋으시네요!”온다연은 눈물이 맺힌 속눈썹과 볼 가득 음식을 담고 웃는 그녀의 모습이 귀여운 다람쥐 같다고 생각하며 미소를 지었다.“맛있으면 많이 먹어요. 많이 가져왔어요. 하지만 이건 내가 만든 게 아니고, 집에 있는 요리사가 만든 거예요.”권예진은 전혀 가식 없이 죽과 반찬을 맛있게 먹었다.그리고는 계속 감탄했다.“진유나 씨, 정말 맛있어요! 매일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니, 정말 행복하시겠어요.”그녀의 얼굴에 드리웠던 어둠이 사라지고 햇살처럼 환한 미소가 돌아왔다.“기회가 된다면 꼭 밥 얻어먹으러 가고 싶어요.”온다연이 웃으며 말했다.“좋아요. 언제든 환영이에요.”“그럼 꼭 기억해 두세요. 저는 사양 안 하는 사람이니까 맛있는 건 절대 안 놓쳐요.”권예진은 말한 대로 전혀 사양하지 않고 생선 살 죽을 깨끗이 비우고 만두도 절반이나 먹어 치웠다.행복한 표정으로 음식을 먹는 그녀를 보며 온다연은 부러운 생각이 들었다.저렇게 밝고 긍정적인 성격이라면 뭐든 잘 헤쳐나갈 것만 같았다. 염지훈이 그녀를 놓친다면, 분명 후회할 것이다.온다연은 문득 생각난 듯 입을 열었다.“맞다, 제 친구가 여기서 의상 디자인 스튜디오를 운영하는데 최근에 새로운 개량 한복을 디자인했어요. 며칠 후에 패션쇼를 할 예정인데, 권예진 씨도 관심 있으면 같이 가요.”권예진의 눈이 반짝였다.“설무 스튜디오 말씀이세요?”온다연은 고개를 끄덕였다.“맞아요.”권예진은 웃으며 말했다.“그럼 꼭 가야죠! 그 스튜디오 옷이 얼마나 인기 있는지 아세요? 얼마 전에 나온 화려한 의상들 정말 잘 팔렸는데, 전 세계에 100벌 한정 판매
온다연은 주방에 닭곰탕을 끓여 달라고 한 후 직접 죽을 쑤었다.먼저 유강후에게 죽을 먹이고 체온을 재어 보니 어제처럼 열이 높지 않았다. 그제야 그녀는 도시락을 들고 병원으로 갔다.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권예진이 병실 문 앞에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그녀의 눈은 빨갛게 부어 있었다.온다연을 보자 그녀는 일어섰지만 말을 꺼내지 못하고 머뭇거렸다.온다연은 그녀에게 다가가 빨갛게 부어오른 눈을 보고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왜 안에 안 들어가고 여기 있어요? 그 사람이 괴롭혔어요?”권예진은 입술을 깨물었다. 눈가가 더 빨개졌다.“아니에요.”온다연이 말했다.“아침 식사를 가져왔어요. 같이 먹어요.”병실에 들어가 보니 염지훈은 이미 깨어 침대에 기대앉아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그는 흰 셔츠로 갈아입고 있었고 안색은 어젯밤보다 훨씬 좋아 보였다.온다연이 들어오는 것을 보자 그는 반가운 기색을 보였지만 권예진을 발견하고는 얼굴이 굳어졌다.“권예진, 꺼지라고 했잖아. 안 들려?”권예진의 눈시울이 더 붉어졌지만 이를 악물고 눈물을 참으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진유나 씨가 들어오라고 하셨어요.”염지훈은 차갑게 말했다.“네 얼굴 보기 싫다고 했잖아. 사람 말 못 알아들어?”권예진은 몸을 떨며 황급히 뛰쳐나갔다.온다연도 화가 나서 말했다.“지훈 씨, 꼭 그렇게 말해야겠어요? 그래도 어젯밤 당신을 간호해 줬고 위출혈로 쓰러졌을 때 병원에도 데려왔잖아요. 그녀가 아니었으면 당신은 집에서 죽었을지도 몰라요!”염지훈은 차갑게 말했다.“그런 호의 필요 없어!”그는 권예진에게 집에 오지 말라고 거듭 경고했었다. 그런데 왜 그녀가 거기에 있었던 걸까?그날 밤에도 그녀는 몰래 그의 집에 잠입해 그의 물에 약을 타고 그의 침대로 들어왔었다.평소 순진한 척 가장했던 그녀에게 완전히 속았던 자신이 한심했다.두 집안이 오랜 세월 친분을 쌓아온 사이가 아니었다면 그는 그녀를 가만두지 않았을 것이다.그런데 지금 감히 그의 앞에서 얼쩡거리고 또 온다연의 앞
“진유나 씨, 제발 불쌍히 여겨서라도 곁에 있어 주세요...”권예진은 조금 전 염지훈이 피를 토하던 모습을 떠올리자 가슴이 미어지는 듯 아팠다.“이 사람은 당신만 있으면 돼요. 다른 사람은 아무 소용도 없어요.”온다연은 염지훈의 얼굴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그는 좋은 사람이었다. 정말 좋은 사람이었고 그녀에게 모든 걸 다 해주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은 움직이지 않았다.예전에 그와 결혼할 거라 생각했을 때조차 도망치고 싶었다.그녀는 고개를 떨구며 조용히 말했다.“권예진 씨, 나와 이 사람은 안 돼요. 끊을 거면 깔끔하게 끊어내야죠. 이렇게 질질 끌면 더 힘들어질 뿐이에요.”권예진이 말했다.“하지만 이 사람은 이미 이렇게 아픈데...”온다연이 말했다.“오늘 밤은 부탁해요. 내일 아침에 다시 올게요.”말을 마치고 그녀는 돌아섰다.그녀가 나오는 것을 보자 유강후는 일어섰다.“끝났어?”온다연은 다가가 그의 팔에 팔짱을 꼈다.“돌아가요.”유강후는 잠시 망설였다.“상태가 좀 심각해 보이는데 누군가 여기 남아서 지켜봐야 하는 거 아니야?”온다연은 병실 쪽을 흘끗 보고 고개를 저었다.“그의 어린 비서가 그를 많이 좋아하고 사람도 괜찮아요. 내가 알아봤는데, 집안도 그와 어울리고요. 두 사람에게 기회를 주는 게 좋겠어요.”유강후의 눈빛이 잠시 흔들렸다.그는 일이 이렇게 쉽게 끝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염지훈의 성격상 절대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었다.게다가 그가 얻은 정보에 따르면 염지훈은 그 어린 비서에게 아무런 감정도 없었다.이제 두 사람을 확실하게 묶어둘 무언가를 할 때가 온 것 같다.그가 말이 없자 온다연은 그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가요. 내일 다시 올 거예요.”유강후는 허리를 굽혀 그녀를 안아 올렸다.“집에 가자.”온다연은 몸부림치며 말했다.“내려 주세요. 아프잖아요. 열도 나고...”유강후는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나지막이 말했다.“조금 아픈 것뿐이야. 죽기 직전이라도 너는 안을 수 있어.”
온다연은 눈살을 찌푸렸다.“지훈 씨, 너무 무리한 요구예요.”염지훈은 억지로 웃었다.“그래? 그럼 너희들은 만날 때, 나랑 약혼한 건 생각도 안 했어?”온다연은 눈을 내리깔고 대답하지 않았다.방안은 다시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그때, 권예진이 들어와 온다연에게 조용히 말했다.“진유나 씨, 강 대표님이 밖에 계세요. 많이 아파 보이시던데...”온다연은 자리에서 일어섰다.“그 사람도 왔어요?”그녀가 밖으로 나가려 하자 염지훈이 불렀다.“다연아, 난 그 사람 발가락 하나만도 못한 거야?”온다연은 걸음을 멈추고 조용히 말했다.“잠깐 보고 올게요.”염지훈은 희미하게 웃었지만 가슴 속에는 격렬한 고통이 몰려왔다.온다연이 밖에 나가보니 멀지 않은 벤치에 누군가 앉아 있었다.유강후였다.평소 차갑고 위엄있는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그는 지친 모습으로 의자에 앉아 있었다. 얼굴에는 옅은 피곤함이 드리워져 있었고 깊은 눈으로 그녀를 응시하고 있었다.마치 그녀의 연민을 갈구하는 듯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연약함이 느껴졌다.예전에 그를 감싸고 있던 모든 갑옷을 벗어 던진 듯 지금 그녀 앞에 있는 것은 더 이상 높은 곳에 있는 전쟁의 신 같은 남자가 아니라 살아 숨 쉬는, 피와 살이 있는 사람이었다.실망할 줄도 알고 상처받을 줄도 알고 아픈 줄도 알고 힘들어할 줄도 아는 사람 말이다.온다연이 마음이 아파 말을 하려던 찰나, 뒤에 있던 염지훈이 갑자기 심하게 기침을 하더니 피를 토해냈다.권예진은 깜짝 놀라 허둥지둥 달려갔다.“박 대표님!”온다연이 뒤를 돌아보니 염지훈은 계속 피를 토하고 있었다.그녀 역시 놀라 의사를 불렀다.한바탕 소란 후, 염지훈은 더 이상 피를 토하지 않았다.의사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보호자는 환자를 어떻게 돌본 겁니까? 자극을 주면 안 된다고 했는데, 방금 화가 나서 이렇게 된 겁니다. 3일 동안 유동식만 드셔야 하고 혼자 두어서도 안 됩니다. 보호자분, 누구시죠? 와서 서명하세요!”온다연은 어쩔 수 없이 가서 서
온다연은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권예진 씨 맞죠?”권예진은 잠시 멍해졌다.“제 이름을 아세요?”온다연은 고개를 끄덕였다.“영상에서 봤어요.”권예진은 서둘러 말했다.“진유나 씨, 오해가 있는 것 같아요. 저는 그저 박 대표님의 비서일 뿐이에요...”“괜찮아요.”온다연이 말했다.“저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서 박현욱 씨와의 혼약을 파기하려고 해요. 권예진 씨는 좋은 분 같으니 그가 좋아할 만도 하네요. 두 사람이 함께라면 저도 안심이 됩니다.”권예진은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그녀는 한참이 지나서야 입을 열었다.“두 분, 파혼하신다고요?”온다연: “네. 이번에 그 이야기를 하려고 왔어요.”염지훈의 다정했던 목소리와 그가 했던 말들이 떠오르자 권예진의 가슴은 시큼하게 저려 왔다. 그녀는 애써 웃으며 말했다.“그는 사실 좋은 사람이에요. 기회를 한 번 주세요. 너무 빨리 결정하지 마시고요.”온다연은 권예진을 쳐다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그를 좋아하는 거 알아요.”그녀의 말에 권예진의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아, 아니에요. 그분은 그저 상사일 뿐이고 집안끼리 아는 사이일 뿐이에요. 그 이상은 아무것도 아니에요.”온다연은 미소짓기만 할 뿐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그때, 염지훈이 잠에서 깨어났다.온다연을 보고도 긴가민가한 듯 그는 작은 목소리로 불렀다.“다연아.”온다연은 그를 부축해 앉히며 타박했다.“술을 그렇게 마셨다면서요? 죽고 싶어 환장했어요?”염지훈은 고개를 떨구며 나지막이 말했다.“내가 죽어간다니까 이제야 와 본 거야?”온다연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무슨 말이에요?”염지훈은 더 이상 말이 없었다.방 안 공기는 어색하게 굳어졌다.권예진은 그런 염지훈을 보니 마음이 아파 고개를 숙인 채 방을 나섰다.방에 남은 두 사람은 각자 생각에 잠겨 말없이 서로를 마주 보았다.한참 후에 온다연이 입을 열었다.“박씨 가문에서 데려온 집사와 가정부들은요? 따라오지 않았나요?”염지훈의 눈에 어두운 그림자가 스쳤다.
온다연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알겠어요. 당장 갈게요. 병원 위치를 보내주세요!”그녀는 전화를 끊고 침실로 들어가려는 순간, 문 옆에 시무룩한 표정으로 서 있는 유강후를 발견했다.온다연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는 그의 손을 잡고 침대 쪽으로 이끌었다.“아직 열이 나는데 왜 일어났어요?”유강후는 그녀의 손목을 꽉 잡고 놓지 않았다.“방금 누구 전화였어? 어딜 가려고?”“염지훈 씨가 위출혈로 쓰러졌대요. 병원에 가야 해요.”남자는 즉시 표정이 어두워졌다.“안 돼. 절대 못 가.”유강후의 반응은 예상했던 대로였다.하지만 그녀는 가지 않을 수 없었다.“염지훈 씨는 이곳에 가족이 하나도 없어요. 꼭 가봐야 해요.”유강후는 차가운 목소리로 한 마디 내뱉었다.“안 돼. 그 자식이 널 속인 거야. 소처럼 튼튼한 놈이 갑자기 아플 리 없잖아. 너를 내 곁에서 떼어 놓으려는 술수야!”온다연은 조용히 그의 눈을 응시했다.“강후 씨도 평소에 건강한데 지금 앓아누웠잖아요. 워낙 그 사람한테 미안한 마음이 있는데, 오늘 가지 않으면 더 큰 죄책감에 시달릴 것 같아요.”유강후는 얼굴빛이 흐려지더니 한참 뒤에야 입을 열었다.“나도 많이 아파. 열이 펄펄 끓어.”그는 온다연의 손을 끌어다 자기 이마에 얹었다.“못 믿겠으면 만져봐.”손바닥에 전해지는 열기에 온다연은 좀 걱정됐지만 염지훈의 상태가 더 위중하다는 직감이 머리를 스쳤다.그녀는 손을 뿌리치며 속삭이듯 말했다. “어머님과 집사들도 강후 씨를 돌볼 수 있잖아요. 하지만 염지훈 씨는 이곳에 아무도 없고 지금 위출혈로 의식도 없대요.”일어서는 그녀의 모습은 단호했다.“후딱 갔다 올게요. 걱정되면 이권 씨랑 같이 가도 돼요.”“강후 씨는 가지 말아요. 둘이 또 주먹질할까 봐 두려워요.”말을 마친 그녀는 유강후가 동의하든 말든 옷을 갈아입고 현관문을 나섰다.안색이 어두워진 유강후는 온다연이 떠난 지 얼마 안 되어 바로 따라나섰다.병실 문을 열자마자 온다연은 염지훈의 침대 옆에 앉아 있는 미모
바닥에 널브러진 빈 술병만 열 개가 넘으니 염지훈은 완전히 만취 상태다.권예진은 깊게 숨을 들이마신 후 속삭이듯 말했다.“위도 안 좋은데, 이렇게 많이 마시고 죽고 싶어요?”그녀는 말하면서 염지훈을 부축해 소파 쪽으로 끌었다.하지만 190cm에 가까운 큰 키에 우람진 체격인 염지훈을 그녀가 160cm의 가냘픈 체구로 감당하기는 역부족이었다.허우적대다가 염지훈의 몸이 그녀 쪽으로 기울었다.그녀의 가냘픈 몸으로는 거대한 남자의 체중을 지탱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웠다.순식간에 두 사람은 바닥에서 쓰러지고 말았다.권예진은 그의 몸에 눌려 바닥에서 꼼짝도 할 수 없었다.그녀는 필사적으로 그의 등을 치며 소리쳤다."저기요, 제가 밑에 깔렸어요. 얼른 일어나세요!""박현욱, 개자식! 나를 깔아 죽일 셈이야? 비켜!""3초 안에 일어나지 않으면 경찰 부른다!""야, 빨리 일어나!"하지만 염지훈은 여전히 꿈쩍도 하지 않았다. 입에서 중얼거리는 소리만 흘러나올 뿐, 완전히 인사불성이 되었다.권예진은 젖 먹던 힘까지 다해서 간신히 그의 몸 아래에서 빠져나왔다.하지만 바닥에 쓰러진 염지훈을 다시 부축하려던 순간, 그녀의 손가락 끝에서 이상한 감촉이 전해졌다.염지훈의 입가에서 피가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고, 바닥은 이미 피바다가 되어 있었다.깜짝 놀란 권예진은 황급히 손으로 그의 얼굴을 치며 소리쳤다. “괜찮으세요? 피를 토했는데, 위출혈이 아니에요?”염지훈은 눈을 감은 채 그녀의 손을 잡아끌면서 웅얼거렸다.“다연아, 가지 마, 가지 마...”“유강후한테 가지 말고 내 곁에 있어줘... 약혼 파기하지 않을게...”권예진은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휴대폰을 꺼냈다.“비서님, 지금 당장 들어오세요. 대표님이 과음하셨는데, 위출혈인 것 같아요. 병원으로 이송 부탁드립니다.”염지훈의 비서는 이내 도착했다.두 사람은 엄청난 노력 끝에 간신히 염지훈을 차에 실었다.다행히 근처에 대형 한인 병원이 있어서 급히 달려갔지만 도착했을 때 염지훈의 상태는 더욱
사건은 잠시 일단락됐다.***저녁에 권예진이 염지훈의 별장을 찾았는데, 문에 들어서자 진한 술 냄새가 코를 찔렀다.안쪽을 들여다보니 염지훈이 술병 더미 속에 비스듬히 앉아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권예진은 깜짝 놀라 급히 달려갔다.하지만 그녀가 가까이 다가가기도 전에 염지훈이 갑자기 고개를 번쩍 들더니 시뻘겋게 충혈된 눈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다연아, 너 왔구나...”다른 사람으로 착각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권예진은 가슴이 찌릿찌릿 아려와 그 자리에 멈춰 섰다.‘나를 그 여자로 착각한 건가? 그 약혼녀로?’염지훈은 흔들거리며 일어나 권예진에게 손을 내밀었다.“다연아...”권예진은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사람을 잘못 봤어요, 박현욱 씨. 저는 진유나가 아니에요.”염지훈이 몸을 휘청이며 다가왔다.“다연이 아니면, 넌 누구야?”“아니, 넌 다연이야. 나를 보려고 북아메리카에 온 거야?”그가 하도 꽉 껴안아 꼼짝달싹할 수 없게 된 권예진이 소리 질렀다.“염지훈 씨, 저는 진유나가 아니라 권예진이에요.”“아니!”염지훈은 갑자기 감정이 격해졌다.“넌 다연이야. 내 아내! 이 손을 놓으라고? 절대 못 놓아!”그는 흐느껴 울었다.“네가 먼저 나를 건드렸잖아. 네가 갑자기 내 차에 올라탔고, 같이 산에 눈 구경을 가자고 했어. 네가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오며 자꾸 내 마음을 흔들었어. 그래서 빠져든 거야.”“이제 와서 놓아달라니. 내가 너를 위해 이렇게 많은 걸 했는데, 어떻게 놓아줘?”그가 너무 꽉 껴안아 권예진은 숨을 쉴 수가 없었다.“취해서 사람을 잘못 봤어요. 박현욱 씨, 저는 당신의 다연이 아니에요.”그녀가 저항할수록 염지훈의 팔에 힘이 더 실리면서 그녀를 옥죄었다.“아니, 넌 내 아내 다연이야. 내가 이번 생에 결혼해서 같이 살고 싶은 유일한 사람!""다연아, 유강후 곁에 있지 마. 그 자식은 좋은 사람이 아니야. 자격도 없어!""넌 잠시 잊었을 뿐이야. 유씨 가문 사람들이 너를 어떻게 해
오후에 유강후가 깨어났을 때 온다연은 옆에 없었다.그가 막 입을 열려는데 오진숙이 따뜻한 물 한 잔을 건넸다.“도련님, 물을 좀 마셔요.”유강후는 미간을 찌푸렸다.“나 지금 아파?”오진숙이 걱정스럽게 말했다.“네, 의사 선생님께서 상처 부위가 감염돼 며칠 동안 열이 반복적으로 오르내릴 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그는 평소에 잘 아프지 않는 체질이고, 온다연이 곁에 없던 그 몇 년에도 쉽게 쓰러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가 열이 나면서 혼수 상태에 빠지자 전체 강씨 가문이 불안에 떨었다.유강후는 물을 조금 마시고 컵을 내려놓으며 물었다.“다연은 어디 있어?”“서재에서 화상회의를 하고 계십니다.”오진숙의 말에 유강후는 미간을 찌푸렸다.“진씨 가문에서 전화가 왔어?”오진숙은 감히 숨기지 못하고 그가 누워있는 동안 벌어진 일들을 대충 이야기했다.그녀의 말을 들은 유강후는 약간 놀란 표정이었다.꼬맹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럴듯하게 대처한 것 같았고 심지어 리더십도 있어 보였다.한편으로는, 그녀가 예전과 달라졌다는 것을 점점 더 실감하면서 더 이상 이전처럼 그녀를 통제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불안감도 밀려왔다.더 큰 그물을 짜야만 그녀를 지켜낼 수 있을 것 같다.그는 옷을 갈아입고 서재로 갔다.널찍한 서재에 놓인 네 대의 컴퓨터가 모두 켜져 있었다.화상회의용 대형 스크린도 켜져 있었다.온다연이 컴퓨터 앞에 서서 이권 등에게 주식 매매를 지휘하고 있었다.화상회의 화면 속에서는 1,000여 명의 트레이더들이 그녀의 지시에 따라 질서 정연하게 매매를 진행 중이었다.이 광경을 본 유강후는 살짝 놀랐다.꼬맹이가 주식 그래프를 분석하면서 이렇게 많은 트레이더들을 지휘하다니.‘이 정도면 내가 해도 버거울 텐데...’그녀는 전혀 부담 없는 표정이었다.문 앞에 한참 서 있은 뒤에야 사람들이 그를 발견했다.그때쯤 주가는 이미 기본적으로 안정된 상태였다.이권이 그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도련님, 깨어나셨네요? 온다연 씨가 저희를 이끌고 주식시장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