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간 후, 온다연과 주희는 동교 묘지에 나타났다.온다연은 싱싱한 데이지 꽃다발을 주한의 묘비 앞에 놓고 그의 차가운 사진 위에 손을 놓고 살며시 쓰다듬었다.사진 속 소년은 주희와 닮은 꼴이었고 대략 열일곱, 열여덟 살의 나이에 흰 셔츠를 입고 있었다. 짧은 머리에 깔끔한 미간을 가진 그는 활짝 미소를 짓고 있었다.온다연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침묵을 지키고 있자 주희는 다가가서 그녀의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누나, 슬퍼하지 마세요. 형님도 누나의 이런 모습을 보면 좋아하지 않을 거예요. 형님은 평소에 누나가 웃는 모습을 가장 좋아했어요.”온다연은 눈을 감고 그날 밤 유하령이 했던 말을 되뇌었다.“그 빌어먹을 년은 분명 주한은 스스로 건물에서 뛰어내려 죽은 줄 알고 있을 거야. 그년은 그렇게 주한을 좋아했으니 주한의 진짜 사인을 알게 되면 충격을 견디지 못할 거야. 정말 그년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이제 한 달만 더 있으면 당시 주한의 죽음과 관련된 사람이 나올 꺼야. 그 희생양들은 째지도록 가난해. 그때 가서 그들에게 돈을 좀 쥐여줘서 그년을 강간하게 하고 그년이 침대에서 고통스러워하는 사진을 몇 장 찍어서 인터넷에 올리면 그년은 이름 날리게 될 거야. 그때 가면 어느 학교에서 그런 년을 받아들일 수 있겠어...”온다연은 반드시 사건의 진상을 알아내려 했다. 그녀는 주한이 절대 헛되이 죽게 하지 않을 것이다.주희는 뒤에서 많은 말을 했는데 대체로 다 옛날얘기였다.주한과 온다연은 어릴 적부터 함께 자란 사이였다. 후에 온다연이 이사를 하고 주한은 그녀를 한참 찾아다니다가 마침내 온다연이 다니고 있는 새 학교를 찾았다고 했다.하지만 후에 주한은 매번 온다연의 학교에 갈 때마다 상처투성이가 되어 돌아왔다고 했다.온다연은 손톱이 살 속으로 빠져드는 것도 모르고 멍하니 있었다.주한의 묘비 앞에 한참 앉아 있다가 온다연은 또 다시 어머니의 묘비 앞으로 갔다.그녀는 어머니께 흰 장미 꽃다발을 가져왔다.어머니는
그러자 온다연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몸을 낮춰서 차에 올랐다.유강후의 별장에 도착했을 때 식탁 위에는 풍성한 점심 식사가 차려져 있었고 식탁의 가운데에 있는 옥으로 된 꽃병에는 은은한 향이 풍기는 흰 장미가 꽂혀 있었다.그 향기는 도망가고 싶을 정도로 숨이 막혔다.유강후는 지금 창가에 서서 전화를 치고 있었다.여전히 흰색 셔츠에 검은색 바지를 입고 있었고 훤칠한 몸매에 차갑고 고귀한 기질을 뽐냈다.온다연은 눈을 내리깔고 감히 그를 쳐다보지 못했고 하얗고 부드러운 손으로 치맛자락을 움켜쥐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삼촌.”유강후는 아무 표정도 없이 차갑게 그녀를 한 번 쳐다보고는 전화에 대고 뭐라 하더니 바로 전화를 끊었다.유강후는 그녀를 몇 초 동안 쳐다보았고 그녀의 창백한 얼굴과 손등에 감겨 있는 붕대를 보고 차갑게 말했다.“집사가 넌 오전에 약도 안 먹고 떠났다고 했어.”온다연은 고개를 숙였고 그녀의 얇은 앞머리가 깔끔한 이마에서 펄럭이고 긴 속눈썹은 가볍게 떨렸다.온다연은 복잡한 표정으로 입술을 깨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삼촌, 어머니 제삿날이 다가와서 묘지로 갔어요.”온다연은 유강후가 또 다른 이상한 행동을 할 줄 알았는데 유강후는 그저 담담하게 말했다.“밥 먹자.”온다연은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고 유강후의 차가운 눈동자를 보는 순간 저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그녀는 숨길 곳이 없다는 느낌이 들었고 모든 것이 그에게 들통난 것 같았다.온다연은 입술을 깨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진짜 엄마 제삿날이라고요.”유강후는 차갑게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다연아, 넌 내가 어머니께 제사도 지내지 말라고 할 정도로 인정머리 없는 사람으로 보여?”그 말을 들은 온다연은 입술을 오므리며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고 그를 쳐다보지도 못했다.이런 행동은 묵묵히 승인한 것이나 다름없었기에 유강후의 눈빛은 더욱 차가워졌다.이때 집사가 가볍게 기침하고 말했다.“셋째 도련님, 몇몇 의류 브랜드의 사람들이 왔어요. 지금 저기
온다연은 한약을 먹는 게 너무 두려웠다. 게다가 눈앞의 이 약은 냄새가 고약했고 너무 쓰거웠으니 생각만 해도 위가 경련을 일으키는 것 같았다. 그래서 온다연은 고개를 숙이고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삼촌, 꼭 이걸 먹어야 해요? 알약으로 바꿀 수는 없어요?”유강후는 약 그릇을 그녀 앞에 놓고 곶감 한 조각을 꺼내어 그녀의 입술에 갖다 대며 말했다.“말 들어. 이걸 입에 물고 약을 먹어.”이건 강요하는 거나 다름없었다. 온다연은 어쩔 수 없이 곶감을 입게 물었다.온다연의 부드러운 입술이 무심코 그의 손끝에 닿았다. 가볍게 순간이었지만 손끝 위에 약간의 물기가 남아 있었다.유강후는 몸이 굳어졌고 눈빛이 갑자기 어두워지면서 차가운 시선으로 이권을 힐끗 쳐다보았다.그러자 이권은 깜짝 놀랐고 이내 뭔가 알아차렸다. 그는 갑자기 할 일이 생각났다며 바로 식당을 떠났다.달콤한 곶감은 계화 향이 강했고 먹어본 음식 중에 가장 달콤했다. 그래서 온다연은 저도 모르게 입술을 핥았다.그러자 유강후는 갑자기 온다연을 안아서 자기 다리 위에 앉게 했다.온다연은 깜짝 놀랐고 그가 무슨 짓을 할지 몰라서 경악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삼촌?”유강후는 어두운 눈빛으로 가쁜 숨을 몰아쉬며 온다연이 반응하기도 전에 팔을 벌려 그녀의 허리를 감싸안았다.잘록한 허리는 푹신푹신했고 한 손으로도 충분히 잡을 수 있었다.유강후는 다른 한 손으로 그녀의 가느다란 발목을 잡았다.온다연의 발은 정말 작았다. 어제 보았을 때도 엄청나게 작다고 느꼈지만 직접 쥐어보니 더 작게 느껴졌다. 너무 작은 나머지 막 괴롭히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충격과 당황에 휩싸인 온다연은 망연자실했고 마치 망망대해에 있는 작은 돛배처럼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유강후가 그녀를 꽉 안고 있자 온다연은 몸부림치는 것도 잊었다.차츰 몸이 약간 화끈거리기 시작했고 입은 옷 너머로 온다연은 유강후의 신체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너무 놀란 나머지 온다연은 몸을 떨면서 그를 밀어내려고 했다.“안 돼요. 삼촌,
“삼촌, 제발요. 안 돼요...”유강후는 한 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잡고 다른 한 손으로 그녀의 치마로 들어가면서 그녀의 귓가에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착한 다연아. 겁낼 필요가 없어. 넌 내 사람이야. 조만간 이런 날이 올 거야. 내가 어떻게 하는지 가르쳐 줄게...”그는 약간 거칠어 보이는 손으로 그녀의 몸 위를 헤엄쳤고 그의 손길이 닿는 곳마다 그녀는 몸을 바르르 떨었다.유강후는 그녀의 풋풋한 반응에 매우 만족해하며 온다연의 귓불을 깨물며 말했다.“우리 다연이는 정말 말 잘 듣네. 이따가 보상을 줄게.”“전... 저는 보상이 필요 없어요. 빨리 내려주세요...”하지만 온다연을 놓아 줄 유강후가 아니었다. 그는 패기 넘치게 입술과 혀로 그녀의 부드러운 입술을 감싸고 있었고 그녀는 숨이 막혔다.그때 갑자기 누군가가 뛰어 들어왔다.“셋째 도련님...”그 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유강후는 갑자기 몸을 홱 돌리며 온다연의 몸을 완전히 가렸다. 그 사람의 방향에서는 털이 보송보송한 작은 머리만 보였다.그 사람도 얼떨떨해져서 입구에 서서 들어갈지 물러설지 어쩔 바를 몰랐다.유강후는 온다연의 머리를 꾹 누르면서 고개를 돌려 소리쳤다.“꺼져!”그 사람은 놀라서 몸을 떨며 도망치듯 뛰쳐나갔다.온다연은 부끄럽기도 하고 무섭기도 해서 고개를 들지도 못하고 유강후의 옷을 꽉 잡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삼촌, 저 사람은 누구예요. 방금 저를 보았어요...”유강후는 가볍게 그녀의 등을 토닥미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모르는 사람이야. 무서워하지 마. 괜찮아.”온다연은 심장이 빨리 뛰었고 놀랍고 두려웠기에 이마에 땀이 맺혔다.“혹시 유씨 가문 사람인가요? 혹시...”그녀의 이런 반응에 유강후는 속이 뜨끔했고 순간적으로 냉정을 되찾았고 차가운 목소리로 낮게 말했다.“아니야. 유씨 가문 사람은 이곳으로 오지 않을 거야.”온다연의 몸은 여전히 떨렸고 그의 품에 웅크린 채 고개를 들지 못했다.“혹시 유민준 씨에요?”유강후는 눈을 가늘게 뜨고 온다연
온다연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눈을 내리깔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곱슬곱슬한 속눈썹은 가볍게 떨렸다. 그 모습은 마치 새끼손가락으로 유강후를 톡톡 치며 유혹하는 것 같았다.유강후는 그윽한 눈으로 온다연은 빤히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녀의 손을 잡고 말했다.“가자.”작은 거실 쪽에는 이미 서너 명이 앉아 있었다. 말이 작은 거실이지 사실 작지 않았다. 무려 70, 80평 미터에 달하는 심플한 한옥 다실 디자인에 설명할 수 없는 고급스러움이 묻어났다.세 중년 남자는 어색하게 서 있었고 그들 옆에는 아직 출시되지 않은 새 옷들이 놓여 있었다.이 세 사람은 모두 경원시 패션계에서 명성이 높은 사람들이고 그들이 대리 판매하고 있는 브랜드는 시중에 나와 있는 국내외의 거의 모든 브랜드를 망라할 정도로 풍부했다. 비록 그런 대단한 인물들이지만 유씨 가문 앞에서는 그저 옷 장수일 뿐이다.유강후가 그들이 대리하고 있는 여성복 브랜드 몇 개를 고르려고 하자 세 사람은 들떠서 잠을 설쳤다고 한다.경원시에서 유씨 가문과 친해지는 것은 모든 사람들의 꿈이기도 하다.오래 기다린 끝에 유강후가 도착했다.원래는 유씨 가문 아가씨가 옷을 고르려고 하는 줄 알았는데 뜻밖에서 연약하고 겁 많은 소녀일 줄이야.소녀는 17, 18살 정도 돼 보였고 검은 머리에 빨간 입술 덕에 미모가 더 돋보였다. 남자의 혼을 쏙 빼놓을 법한 비주얼에 쓸쓸하고 수줍음이 많은 눈을 가졌다.유강후를 모시기 쉽지 않을 줄 알았지만 뜻밖에도 존귀하고 도도해 보이는 유강후는 별로 까다롭지 않았다. 그는 많은 옷을 골랐고 소녀는 싫었는지 부드러운 목소리로 투정을 부렸다.“삼촌. 충분해요.”소녀는 말랑말랑한 목소리로 애간장을 태웠다.그러자 유강후는 마치 흉악한 늑대가 어린 양을 보듯이 탐욕스럽고 거친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봤고 그녀를 당장 자기 여자로 만들고 싶어 했다.몇몇 대리상들은 속으로는 잘 알고 있지만 감히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서로를 쳐다보았다.그들은 유씨 집안에 아가씨라곤 유하령만 있다는 것
유강후는 온다연이 아주 피곤한 것으로 보였다. 그러더니 그녀의 손가락을 주무르며 물었다.“피곤해?”온다연은 고개를 들지 않고 아주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네.”유강후가 고개를 숙이자 슬리퍼를 신은 그녀의 작은 발이 보였고 하얀 발가락이 밖으로 튀어나온 모습을 보자 안색이 어두워졌다.“신발도 아직 고르지 않았는데.”대리상은 그 말을 듣자 비서에게 눈치를 줬다. 비서는 곧 신발을 안고 뛰어 들어와 재빨리 가지런히 전시했다.운동화부터 낮은 굽까지 그리고 하얀색, 은은한 파랑과 핑크색까지 모두 있었다. 신발 끈에도 하얀 진주가 박혔다. 모든 신발은 소녀다운 디자인이었다.유강후는 온다연을 걸상에 앉히고 한 켤레씩 신어보라고 했다.그녀의 발은 작고 발목은 특히 가늘었다. 발가락의 모양마저도 예뻐서 대리상 중 한 명은 그녀를 몇 번을 보고도 눈을 뗄 수 없었다.잠시 후 그는 재빨리 뭔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이 들어 고개를 들어보니 유강후가 자기를 주시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유강후의 눈에는 차가운 기운이 느껴졌고 언제든지 그를 찢어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그러자 대리상은 깜짝 놀랐다. 유씨 가문 셋째 도련님에 대한 소문이 자자했다. 유강후가 사람들의 상상을 초월할 만큼 지독하다는 소문 말이다. 대리상은 갑자기 머리가 아파졌고 얼른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온다연은 두 켤레를 신어보고는 더 이상 시도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작은 발가락을 슬리퍼에 걸치고 발을 동동 굴렀다.“삼촌, 다 너무 커요.”대리상은 그 말을 듣자 얼른 말했다.“225사이즈인데도 커요? 장 집사님이 분명 225라고 했는데...”그러자 온다연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220밖에 못 신어요. 어떤 신발은 215도 신을 수 있고요...”그러자 대리상은 식은땀을 흘리며 어렵게 얻은 미래 그룹과의 협력 기회를 놓칠까 봐 조마조마해했다.“당장 220 사이즈를 찾아와...”유강후는 허리를 굽혀 온다연을 안은 채 거실로 걸어갔다.“일단 다 필요 없어요. 다음에
온다연은 유강후가 또 이상한 행동을 할까 봐 몸을 뒤로 움츠리고 옆에 있는 의사를 바라보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삼촌, 저 사람들은 누구예요?”유강후는 그제야 돌아서서 의사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약을 발라주세요.”이 의사는 딱 봐도 소양이 아주 뛰어났고 약을 바르는 과정에도 상처가 어떻게 생겼는지 묻지 않았고 온다연의 정체에 관해 묻지도 않고 조용히 치료에 집중했다.그리고 파상풍 주사를 맞고 물을 다치면 안 된다고 귀띔하고 떠났다.의사가 떠난 후 온다연은 다시 유강후를 마주할 생각에 머리가 아파졌다.오늘은 분명히 주말이 아닌데 유강후는 출근할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미래 그룹을 인수했다는 사람이 이렇게 한가할까? 분명 처리해야 할 서류가 산처럼 쌓여야 하는 게 아닌가?유강후는 그녀의 생각을 꿰뚫어 본 듯 말했다.“오늘 오후에는 집에 있을 거야. 너도 푹 쉬어. 나는 서재에서 일할 거고 저녁에는 모임이 있으니 나랑 함께 가자.”온다연은 가기 싫다고 차마 말하지도 못했다. 그녀는 사실 잠시도 이 방에 있고 싶지 않았지만 아침에 도망쳤다는 것을 생각하면 유강후는 분명히 다시는 자신을 내보내지 않으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지금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라고는 방에서 자는 것밖에 없다.온다연은 겨우 반나절 밖에 있었는데 방 안에는 몇 가지 물건이 더 늘었다. 그녀는 이런 물건에 관심이 없었고 작은 베란다에 있는 종이 위에 아무렇게나 그림을 그리고 나서 임혜린에게 전화를 걸었다.임혜린은 매달 며칠 동안은 전화도 안 되고 메시지도 답장을 안 하는 수상한 버릇이 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이다. 이미 6, 7일이 지났지만 아무런 소식도 없다.온다연은 너무 지루해서 침대에 누워 뒹굴 수밖에 없었고 머릿속은 온통 유강후가 방금 뽀뽀한 장면이었다.생각할수록 끔찍했다. 온다연은 자기 입술을 만지면서 입술이 뜨거워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그리고 서서히 유강후가 만졌던 모든 피부가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이때 마침 공기 중에서 은은한 장미향이 풍기
유강후는 멈칫거리더니 천천히 말했다.“유씨 가문 사람들은 없어.”마치 무슨 설명이라도 하는 듯하여 온다연은 더 긴장되었다.온다연은 유강후의 친구를 만나고 싶지 않다.하지만 이 말을 감히 내뱉지 못하고 고개를 숙인 채 무의식적으로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입 옆에 있던 점은 피가 날듯 말듯 한 빨갛게 되었고 그녀의 입술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유강후는 손으로 그녀의 부드러운 입술과 옆에 있는 점을 어루만졌다.그리고 그윽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면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다연아, 예전에 뽀뽀해 본 적이 있어?”안 그래도 긴장한 온다연은 갑자기 엉뚱한 질문을 받고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들어 유강후를 쳐다보았다.온다연의 눈빛에는 막막함과 당혹감이 느껴졌다.유강후는 그녀의 풋풋한 모습에 만족한 듯 고개를 숙여 그녀의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넌 내꺼야. 알겠어?”그리고 허스키한 목소리로 경고하는 듯 말했다. 무서운 카리스마를 풍기면서 말이다.온다연은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유강후를 바라보았고 무슨 뜻인지 이해 못 했다는 표정을 지었다.그리고 잠시 후 그녀는 고개를 떨구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하지만 삼촌은...”유강후는 눈을 가늘게 뜨고 온다연의 턱을 들어 올렸다.“겁이나?”그의 눈빛은 매섭고 차가웠으며 온다연이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악함도 있었다.마치 온다연이 말 한마디만 잘못하면 죽임을 당할 것처럼 말이다.온다연은 몸을 떨며 눈을 내리깔고 감히 유강후를 쳐다보지 못했다.유강후는 눈을 가늘게 뜨고 더욱 차가운 어조로 말했다.“싫은 거야 아니면 겁이 나는 거야?”온다연은 감히 대답하지 못했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아파요.”온다연은 고의로 아프다고 말한 것이 아니라 정말 아팠다. 유강후는 마치 통제 불능이 된 듯 그녀의 턱을 부러뜨릴 것처럼 꽉 쥐었다.원하는 답을 얻지 못하자 유강후의 눈빛은 더욱 차가워졌다. 그리고 미소가 사라졌고 온다연의 턱을 잡고 있던 손에도 힘이 빠지지 않았으며 공기 중의 냉기가 더욱 짙어진 것 같
유강후는 평범한 부자들에겐 불가능한 이 특권을 부릴 수 있는 남자다.권력과 재력, 사람을 미치게 하는 얼굴, 심지어 젊은 나이에 피라미드 꼭대기에 오른 남자다.‘나 나은별에게 어울리는 남자는 이런 남자다. 내가 가지지 못하면 다른 사람도 가질 자격이 없다.’온다연은 나은별을 힐끗 보더니 그녀의 속내를 꿰뚫은 듯 말했다.“나은별 씨, 가시죠. 이곳에 왔으니 당연히 제가 사야죠. 홀에는 사람이 많아 얘기를 나누기 불편하니 VIP룸으로 갑시다.”말을 마친 그녀는 매니저의 안내를 받으며 계단을 올라갔다.나은별은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분해서 몸을 부들부들 떨었지만 곧바로 뒤따라 올라갔다.최고급 VIP룸에는 이미 최상급 홍차와 다양한 한식 디저트가 준비되어 있었다.청아한 솔향이 공간을 채웠지만, 나은별에겐 모든 것이 거슬렸다.원래 이곳에서는 한식 디저트와 차를 제공하지 않았고, 서양식 디저트가 주메뉴였다.북아메리카 유학 시절, 그녀는 동창들과 자주 이곳을 찾았는데, 그때는 유강후의 멤버십 카드를 쓰며 정말 화려한 나날들을 보냈다.모든 직원이 그녀를 공손하게 대했다. 북아메리카 한인 사회에서는 모두가 그녀 뒤에 유강후가 있다는 걸 알기에 온갖 특권이 저절로 주어졌다.심지어 국내에 있는 나씨 가문도 엄청난 혜택을 받았다.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그 특권들은 서서히 박탈됐고, 그녀 발밑에 있던 자들조차 머리 위에서 똥을 싸기 시작했다.그녀는 억울했다. 이 모든 것이 원래 그녀의 것이었는데, 지금은 이 계집애에게 넘어갔다. 왜?그녀는 문어귀에 서서 찻잔에서 피어오르는 김 너머로 온다연을 바라보았다.‘이년은 이 얼굴로 유강후를 꼬셨겠지. 얼굴만 망가지면 유강후가 이년을 버릴 텐데.’독기 어린 눈빛을 감지한 듯 온다연이 미소를 지으며 찻잔을 건넸다.“나은별 씨는 이곳에 오신 적이 있으니 아시겠지만, 이 차와 디저트는 일반 손님께 제공되지 않아요. 디저트 장인이 궁중 다과 전통을 잇는 분인데, 극소량만 제작해 최상위 VIP고객에게만 제공한다고 하네요.
온다연은 그녀와 팔짱을 끼며 말했다.“가자!”입구에 도착하자마자 나은별이 모습을 드러냈다.그녀는 질투와 혐오의 눈빛을 애써 감추며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온다연 씨, 오셨군요. 오늘은 제가 살게요. 명월루는 예약이 어려워 보통 일주일 전에 연락해야 하는데, 다행히 제가 사장님과 친분이 있어서 칸막이가 있는 자리로 안내받았어요.”명월루는 북아메리카 지역의 고급 멤버십 클럽으로, 연회비만 수억에 달하므로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모두 귀족이나 재벌이다.나은별은 자기가 이곳 주주와 아는 사이라는 점과 온다연이 북아메리카에 온 지 얼마 안 돼서 이곳 상황을 모른다는 점을 이용해 우위를 점하려 했다.하지만 온다연의 등장은 그녀의 예상을 뒤집었다.온다연은 최고급 롤스로이스 팬텀을 타고 왔고 호위 차량마저 롤스로이스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모든 사람의 시선이 그녀에게 집중됐다.얼굴이 예쁜 건 그렇다 치고, 몸에 걸친 옷만 가격이 수십억은 될 것 같았다.이는 나은별이 기억하는 온다연과 전혀 달랐다.기억 속의 온다연은 소심하고 겁이 많은 소녀였고, 아름답지만 카리스마는 없었다.하지만 지금의 온다연은 카리스마가 넘쳐 ‘여왕님’ 같은 포스를 풍겼다.‘이년이 죽은 줄 알았더니 3년 동안 뭘 한 거야? 왜 이렇게 몰라보게 변했지?’온다연이 입은 드레스는 북아메리카 최고 디자이너의 핸드메이드 오트쿠튀르였고, 보석은 200억, 가방은 6억 넘었다.반면, 그녀가 입은 옷은 지난해 출시된 샤넬 슈트로 유행이 지난 지 오래다. 이전 같으면 이런 옷은 진작에 버렸을 테지만 지금은 예전과 다르다.나은별은 이제 더 이상 최고급 명품 브랜드의 한정판 단골 고객이 아니다.하지만 그래도 그녀는 자기가 이길 것이라고 생각했다.“안쪽에서 얘기합시다.”나은별이 머리를 쓸어올리며 말했다.“이곳은 상류층이 모이는 곳인데, 온다연 씨는 처음이라 아는 사람이 별로 없을 거예요. 원한다면 잠시 후에 내로라하는 몇몇 친구를 소개해 드릴게요.”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임혜린이 빵 터졌다
그쪽에서 기다렸다는 듯 즉시 답장이 날아왔다.“제가 당신의 과거를 알아요.”한 사람의 모습이 온다연의 뇌리를 스쳤다. 나은별!그녀는 직감적으로 문자를 보낸 사람이 나은별이고, 좋은 일이 아닐 것임을 알았다.유강후가 나은별과의 관계를 대충 설명했지만, 그녀는 그렇게 단순할 리 없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단지 약간의 오해일 수 있겠는가?어제 주차장에서 그녀는 비록 차 안에 있었지만 나은별의 광기 어린 행동과 불만스러운 눈빛을 똑똑히 보았다.같은 여자로서, 온다연은 나은별이 유강후에 대해 어떤 마음인지 알 수 있었다.한 남자에 대한 여자의 욕망과 집착이었다.나은별! 이 여자는 보통이 아니다.유강후가 꺼지라고 하지 않았을 뿐 극도로 혐오하는 태도를 보였음에도, 나은별은 끈질기게 매달렸다.게다가 동시에 두 사람에게 질척대고 있었다.이런 여자를 제대로 혼내주지 않으면 앞으로도 계속 귀찮게 굴 게 뻔했다.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온다연은 답장을 보냈다.“나은별 씨 맞죠?”잠시 후 답장이 왔다.“맞아요. 저와 과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래요? 유강후가 과거를 사실대로 말하지 않았을 수도 있어요.”온다연이 답장하기도 전에 두 번째 문자가 도착했다.“명월루에서 차 한잔하는 게 어때요? 꼭 오시리라 믿어요.”온다연은 휴대폰을 내려놓았다.‘가야지, 왜 안 가!’잠시 생각하더니 그녀는 임혜린에게 문자를 보내고 드레스룸으로 향했다.한참 지나 그녀는 어제 도착한 맞춤 제작 블랙 드레스를 선택했다.블랙 드레스는 그녀의 허리 라인과 비율을 완벽히 드러내 평소보다 성숙하고 섹시해 보였다.그녀는 또 보석함을 열고 화려하지 않지만 값비싼 다이아몬드 세트를 골랐다.잠시 머뭇거리던 그녀는 강씨 집안 어르신이 선물한 반지를 끼고, 강현미가 직접 골라준 한정판 가방을 들었다. 전 세계에 3개뿐인데, 나머지 두 개는 어느 나라 왕비가 가지고 있다고 한다.그녀는 계단을 내려오며 집사에게 지시했다.“강후 씨의 롤스로이스 팬텀을 앞에 세우고, 호위용으로 롤스로이스 두 대
유강후는 그녀를 안아 무릎 위에 앉힌 후, 잔뜩 성이 나서 뾰로통한 그녀의 얼굴에 입 맞추고 속삭이듯 말했다.“바보야, 난 정상적인 남자야. 좋아하는 사람이 나긋나긋한 모습으로 앞에 있는데 반응이 없을 수 있겠어?"“너에게 충동을 느끼지 않는다면 그게 더 문제야!”그는 그녀의 하얀 귓불을 살짝 깨물며 속삭였다.“다연아, 넌 내 거야. 넌 나의 모든 환상을 책임져야 해.”문득 유강후가 아까 꺼내준 옷들이 생각난 그녀는 부끄러워 얼굴이 빨개졌다.“그 옷들은 어디서 구한 거예요?”3년 전 임혜린한테서 특별히 맞춤 제작한 옷들을 말하는 것이다.“강후 씨는 왜 옷을 찢는 걸 그렇게 좋아해요?”게다가 그 옷들은 수치스러울 정도로 옷감을 적게 사용해 몸을 가리기 어려웠다.하지만 핵심은 그게 아니다. 핵심은 매번 그녀가 옷을 입은 지 2분도 안 되어 다 찢겨나가고 유강후가 평소보다 더 통제 불능 상태가 된다는 점이다.유강후의 뜨거운 숨결이 목덜미를 스치자 그녀는 몸을 움츠렸다.“오늘은 정말 안 돼요. 벌써 옷을 세 벌이나 찢었잖아요. 옷 사는 것도 돈이 드는데...”유강후는 호흡이 거칠어지며 그녀의 가냘픈 허리를 끌어당겼다.“다 이전에 맞춘 거야. 아직 수백 벌 남았어. 하나씩 다 입어줘.”“수백 벌이요?”온다연은 깜짝 놀라 소리쳤다.“미쳤네요!”“그래, 미쳤어. 네 몸에서 나는 향기만 맡아도 이성을 잃어. 네가 성인이 되자마자 먹어버릴걸, 이렇게 오랫동안 참으며 많은 일을 겪고... 진짜 후회돼.”유강후는 그녀의 귀를 가볍게 깨물더니 목에 가볍게 키스했다.그의 입술이 목선을 타고 내려가자, 온다연은 온몸에 전율을 느끼며 신음소리를 냈다.“안 돼요. 오늘은 정말 안 돼요...”유강후가 유혹하듯 속삭였다.“내가 살살 할게. 말 들어. 나랑...”구름 위를 걷는 듯한 느낌이 다시 밀려오면서 온다연은 그의 품에서 녹아내렸다.하지만 막 본론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온다연이 갑자기 벌떡 일어났다.“안 돼요!”유강후는 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유강후는 그녀의 이마를 짚어보며 걱정했다.체온은 정상이었지만 여전히 불안했다.사실 재회한 후 온다연은 건강이 많이 좋아졌고, 예전처럼 툭하면 열이 나는 일도 없었다.특히나 곽혜진이 준 약을 먹고 몇 달 만에 건강이 정상인 수준으로 회복됐다.하지만 온다연이 이전에 반복된 고열과 심각한 후유증으로 고생했던 탓에, 유강후는 그녀가 조금이라도 불편해하면 즉각 열이 난다고 여기는 습관이 있었다.“의사를 불러줘!”온다연이 막아 나섰다.“부르지 말아요.”그녀는 팔에 생긴 붉은 자국을 내려다보며 고개를 들지 못했다.“늦은 시간에 그럴 필요 없어요. 그냥 좀 입맛이 없을 뿐이에요. 게를 너무 많이 먹어서 그런 것 같아요. 내일이면 괜찮아질 거예요.”온몸에 그가 남긴 흔적이 가득한데, 의사가 본다면 내일쯤 강씨 가문 전체에 소문이 퍼질 것이다.그녀는 자신의 사생활이 모든 사람에게 공개돼도 신경 쓰지 않을 만큼 대범한 성격이 아니다.유강후도 그녀의 목에 남아있는 자줏빛 흔적을 발견했다. 몇 군데는 절제를 못 한 탓에 피부가 벗겨진 상태였다.그는 절제하지 못한 자신을 원망하며 그녀의 목에 입을 맞추었다.“아파?”온다연이 나지막이 대답했다.“괜찮아요. 그다지 아프진 않은데 흔적이 너무 뚜렷해요. 며칠 뒤에 저녁 만찬이 있는데, 그때까지 없어지지 않으면 드레스를 입을 수 없어요.”유강후는 집사가 들고 온 약상자에서 연고를 꺼냈다.“이건 곽혜진 선생님이 내 흉터를 치료하라고 준 건데, 키스 흔적을 없애는 데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어.”그는 노출된 부위의 붉은 자국에 연고를 조금씩 발라주었다.처음엔 단순히 약만 발랐지만, 점점 그의 눈빛이 달라지기 시작했다.온다연은 피부가 유난히 하얗고 야들야들해서 가볍게 약을 발라주는 것만으로도 하얗던 피부가 연분홍으로 물들었다.게다가 손끝에 전해지는 부드럽고 매끄러운 촉감에 유강후는 저도 모르게 조금 전의 장면을 떠올렸다.그의 호흡이 가빠진 것을 감지한 온다연은 서둘러 옷깃을 여미며 경계했다.“더는 안 돼요.
“화풀이하고 사람을 해고하는 것이 당신의 취미라면 저도 해고하세요.”“저는 성인이에요. 무엇을 얼마나 먹을지는 제가 알아서 결정해요. 다른 사람이 통제하거나 간섭하는 것이 싫고 필요하지도 않아요.”유강후는 안색이 더욱 어두워졌다.온다연은 그를 쳐다보지도 않고 일어나 계단 쪽으로 향했다.“그렇게 화풀이하고 싶으면 저한테도 하세요. 저도 떠나면 되겠네요. 뭐든 당신의 말대로 해야 하고, 심지어 식사량까지 통제해서 밥도 편히 못 먹게 하니 불편해서 어디 살겠어요?”유강후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어딜 가려고?”온다연이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제가 데리고 온 사람들을 아버지 몰래 여행 보냈잖아요. 저를 쉽게 통제하려고 그런 게 아니에요?”유강후가 눈살을 찌푸렸다.“무슨 헛소리하는 거야?”온다연이 그의 손을 뿌리쳤다.“그럼 왜 식사량까지 통제해요? 조금 더 먹거나 덜 먹는 건 아주 정상적인 일이 아닌가요?”“게를 조금 많이 먹어서 속이 안 좋아졌다고 이 방에 있는 모든 사람을 해고하겠다는 건 너무 지나치지 않아요?”유강후가 급히 설명했다.“위가 안 좋은 네가 많이 먹고 배탈 날까 봐 제한한 거야. 네가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야.”온다연은 콧방귀를 뀌었다.“강씨 가문의 일은 제가 어찌할 수 없지만, 제 일은 제가 결정할 수 있어요.”말을 마친 그녀는 더 이상 그를 상대하지 않고 곧장 위층으로 올라갔다.그녀가 진짜 화났음을 확인한 유강후도 그 뒤를 따랐다.오진숙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급히 물었다.“도련님, 야식을 준비할까요?”유강후는 고개를 돌려 하인들을 쏘아보더니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다연이 토하는 걸 못 봤어? 얼른 야식을 준비하지 않고 뭐 해? 정말 해고되고 싶어?”하인들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각자 위치로 돌아갔다.침실에서 유강후는 그녀를 품에 안고 온갖 달콤한 말로 달랬다. 온다연은 언제 그랬냐는 듯 토라진 마음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둘의 몸은 다시 한데 엉켰다.요 며칠 유강후가 고열로 앓아누웠던 탓에
유강후는 게 껍데기를 까다가 손에 상처가 생긴 온다연을 보며 가슴이 찢어졌다.“제가 할게요. 게 먹다가 손이 다 망가지겠네.”온다연의 작고 하얀 손은 아주 작은 상처가 생겨도 눈에 띄었다.유강후는 온다연의 손을 너무 좋아했기에 상처가 생긴 걸 본 순간 기분이 몹시 나빠졌다.그는 물티슈를 가져와 손을 천천히 닦아주며 아픈 건 아닌지 물었다.도우미들이 옆에서 웃음을 참자 괜히 무안해진 온다연은 재빨리 손을 거두었다.“안 아파요. 뭘 이런 상처로 오바를...”“하지 마요. 사람들이 보잖아요.”유강후는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명령했다.“나가. 밥 먹는 거 방해하지 말고.”그러자 도우미들은 황급히 자리를 피했다.유강후는 게 껍데기를 까면서 안에 있는 살들을 온다연의 앞접시에 놓았다.그제야 유강후는 온다연의 앞에 식초가 담긴 작은 접시가 놓여있는 걸 알아챘다.유강후는 식초에 찍어 먹는 걸 좋아하지만 온다연은 신맛이 나는 음식을 선호하는 편이 아니다.그래서 식초를 온다연의 앞에 놓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고 신맛이 나는 요리도 거의 하지 않았다.정말 이상하게도 온다연은 그가 까준 게살을 식초에 찍어서 맛있게 먹고 있었다.“신맛 별로 안 좋아하잖아요. 갑자기 왜 식초를 찍어 먹어요?”온다연은 최근 며칠 사이에 자신의 입맛이 바뀌었다는 걸 느꼈지만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갑자기 신맛 나는 음식이 땡겨서요. 잘됐다. 그럼 우리 이제 입맛까지 똑같네요? 앞으로 음식은 하나씩만 해도 되겠어요.”말하던 온다연은 갑자기 속이 메스꺼운지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달려갔다.구토하는 그녀의 모습에 유강후는 마음이 조급해져 집사와 도우미들을 집합시켰다.유강후가 온다연을 얼마나 아끼는지 모르는 사람이 없었기에 순식간에 온 집안 사람들이 긴장하며 당황하기 시작했다.불과 얼마 전에 물이 뜨거웠다는 이유로 강씨 가문에서 20년 동안 일하던 도우미가 해고 되었고 강현미의 주변 집사들도 그때 함께 정리되었다.특히 임청하라는 집사는 강씨 가문에서 나름 발언권이 있
나은별은 비웃었다.“설마 나이 먹었다고 나 싫어하는 거예요?”나은별은 이미 서른이 되었다. 철저하게 관리한 덕분에 겉모습은 소녀처럼 보이지만 눈꼬리에는 어느새 미세한 주름이 많았다.어느 날 아침 소이섭은 나은별에게서 흰머리를 발견했고 그때부터 눈빛이 돌변했고 나은별은 두 사람의 사이가 예전 같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왜 좋은 남자들은 나한테 눈길조차 안 주고 매번 소이섭 같은 쓰레기만 엮이는 거지?’소이섭같은 바람둥이는 이용하고 버리기에 최적화된 사람이다. 전에는 말이라도 잘 들었는데 이제 슬슬 기어오르는 것 같으니 조만간 처리해 버릴 생각이었다.소이섭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나이가 들다니. 그런 생각 하지 마. 예전에 네가 학교 다닐 때 모습이랑 닮아있어서 조금 더 챙겨줬을 뿐이야. 추억 회상이랄까? 정말 다른 마음은 없어. 믿어줘.”나은별은 속으로 흐뭇해하며 입꼬리를 올렸다.“아무튼 난 싫으니까 처리해요.”그러자 소이섭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알았어. 다른 부서로 옮길게.”“부서 이동이 아니라 당장 해고하라고요.”“알았어. 네가 시키는 대로 할게.”“아참, 널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어.”“누군데요?”“너랑 아는 사이라던데? 예전에 강씨 가문에서 3, 4년 정도 집사로 일했다고 얘기하면 기억할 거래.”나은별은 의아해했다.“임청하?”“마침 찾아보려고 했는데 먼저 연락이 올 줄은 몰랐네요. 아마 온다연 그X이 돌아오고 나서 쫓겨났을걸요?”소이섭은 구급상자를 꺼내더니 나은별에게 약을 발라주며 말했다.“그래? 한번 만나볼래?”“당연히 만나야죠. 알고 있는 게 저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이에요.”강씨 가문 별장.유강후는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서재로 들어갔고 온다연이 씻고 나올 때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막 서재로 들어가려는데 집사 오진숙이 다가왔다.“사모님, 저녁 식사가 준비되었습니다. 전부 사모님이 좋아하는 음식으로 준비했어요. 지금 바로 차릴까요?”온다연은 고개를 끄덕였다.“준비해 주세요. 강후 씨랑 같
‘아니야. 내가 잘못 본 게 틀림없어.’나은별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강후 씨, 왜 나한테 이렇게 잔인해?”유강후는 혐오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죽고 싶다며? 그럼 빨리 죽어.”“동정표를 얻으려고 이제 죽는 쇼까지 하네? 그게 먹힐 것 같아?”“나은별, 경고하는데 한재민을 건드리는 순간 나씨 가문은 영원히 경원에서 사라질 거야.”나은별은 유강후가 그녀에게 이런 독한 말을 할 줄은 전혀 생각하지 못한 듯 그대로 얼어붙었다.‘또 온다연 그 X이네.’‘뭘 기억하고 뒷담화를 한 게 틀림없어. 그러니까 나한테 이러는 거지.’나은별은 울먹였다.“강후 씨, 왜 나한테 이렇게 독하게 굴어? 난 그냥 나씨 가문을 도와달라고 한 것뿐이잖아. 싫으면 싫다고 해. 이렇게 날 벼랑 끝까지 몰아세우는 이유가 뭐야?”유강후는 치가 떨린다는 표정으로 나은별을 쳐다보며 단호하게 말했다.“나은별.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내가 정말 모를 것 같아?”나은별은 몸을 떨며 한걸음 물러서지 않을 수 없었다.“내가... 뭘 했는데?”살기를 드러낸 유강후는 목소리마저 섬뜩하기 그지없었다.“더 이상 너랑 엮이고 싶지 않아. 아참, 그리고 그 더러운 수법을 한재민한테 쓰는 순간 너랑 나씨 가문은 끝장이니까 잘 생각해.”말 섞는 것조차 불쾌했던 유강후는 곧바로 차에 탄 후 기사에게 말했다.“차 한 대 대기시키서 누가 데리러 오는지 영상 찍고 한재민한테 바로 보내.”“알겠습니다. 대표님. 지금 바로 준비하겠습니다.”아니나 다를까 유강후가 떠나자마자 멀지 않은 곳에 주차된 차에서 누군가 내렸다.소이섭은 아주 자연스럽게 다가가 나은별을 부축했다.“괜찮아? 차에 구급상자 있으니까 저쪽으로 가자.”나은별은 유강후의 차가 떠난 방향을 주시하더니 차갑게 말했다.“온다연이랑 한재민 둘 다 살아있어요. 진짜 예상도 못 했는데...”소이섭은 그녀를 부축해서 차까지 걸어가며 말했다.“온다연이 살아있는 건 이상할 게 없는데 한재민이 살아있을 줄은 나도 몰랐네. 우리가 그 바다에 상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