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자 온다연은 깜짝 놀라 얼른 그를 밀어내고 황급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는 걸 발견하자 온다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러나 온다연은 감히 유강후를 보지도 못하고 고개를 숙이고 당황한 모습으로 말했다.“삼촌, 여기는 밖이라고요!유강후는 고교 시절 파란색과 흰색이 섞인 교복 치마를 입은 온다연의 모습을 보자 표정이 어두워졌다.교복을 입은 온다연이 방금 겁에 질린 채 걸어 나오는 모습을 보니 그가 그때 몰래 키웠던 고양이가 생각났다. 당시 그 고양이도 지금의 온다연처럼 경계심이 가득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유강후는 눈을 몇 번 껌뻑이더니 온다연을 놓아주고 돌아서서 차에 올랐다.온다연도 뒷좌석 문을 열었다.아직 차에 오르지도 않았는데 유강후는 운전대에 내려놓은 두 손을 두드리며 말했다.“앞에 앉아.”아주 담담하지만 거역해서는 안 되는 말투였다.차 문을 잡고 있던 온다연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이곳을 벗어난 다음에 앞에 앉으면 안 돼요?”이번에 유강후는 대답하지 않았다.대답하지 않으면 동의한 것이었기에 온다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온다연은 유강후와 엮이고 싶지 않았고 다른 사람들이 그들 사이를 오해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들 둘은 원래 다른 세상 사람이었기에 절대 어울릴 수 없는 사이였다. 비록 유강후가 지금 그녀를 놀리는 것에 관심이 있더라도 조만간 자기 세상으로 돌아가야 했다.온다연은 뒷좌석에 웅크리고 앉아 존재감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했다.대문을 나갈 때 그녀는 치마 속에 머리를 파묻고 경비원이 자기를 알아보지 못하기를 기도했다.이번에 하늘은 그녀의 기도를 들었다. 경비원은 유강호가 차를 몰고 나오는 것을 보고 크게 숨을 내쉬지도 못하고 재빨리 대문을 열어 차를 통행시켰다.얼마 가지 않아 유강후는 차를 길가에 세웠다.나무 그늘의 어둠 속에서 조수석에 앉은 온다연은 머리를 숙인 채 아래를 보고 있었고 부드럽고 하얀 손은 주먹을 쥐고 있었다.유강후의 시선은 반창고를 붙인 손등에 머물렀고 반창고의
온다연은 긴장한 나머지 손에 땀이 나기 시작했고 말도 못 하고 고개도 들지 못했다. 그녀의 속셈이 들통나자 수치심을 느꼈다.차 안의 분위기는 갈수록 숨이 막혔고 1분 1초가 고통스럽게 느껴졌다.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차는 단독주택 별장 앞에 멈춰 섰다.중앙 광장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땅값이 비싼 지역에서 이 별장은 심지어 150평이 넘었다. 유씨 가문의 부유함은 다시 한번 온다연의 상상을 벗어났다.정원은 비교적 소박하게 꾸며져 있었고 중앙에는 서너 명이 껴안을 수 있는 커다란 오동나무가 있었다. 큰 오동나무 때문에 정원 전체를 자연스럽게 빛과 그림자로 보이게 하여 아름다운 느낌을 주었다.온다연은 나무 밑에 서서 유강후의 뒷모습을 바라보았고 함께 따라 들어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이고 있었다.온다연이 따라오지 않는 것을 눈치채자 유강후는 잠시 몸을 돌려 말했다.“안아 줘?”그렇게 말하고 그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바로 가던 길을 다시 갔다.온다연은 입술을 깨물고 어쩔 수 없이 유강후를 따라 걸어 들어갔다.문에 들어서자마자 온다연은 이곳이 바로 유강후가 자주 살고 있는 곳이라는 걸 알아차렸다.개인 스타일이 너무 뚜렷한 인테리어였다. 평범해 보이지만 고급스러움을 잃지 않는 가구는 하나하나가 은은한 진주처럼 빛을 발산하고 있었다. 차갑고 고급스러운 유강후를 연상케 했다.장화연은 입구에 서서 유강후를 향해 허리를 굽히면서 여전히 아무런 표정도 없이 인사했다.“도련님!”그러자 유강후는 담담하게 말했다.“야식은 준비가 다 되었어?”“네. 준비되었어요. 온다연 씨의 방도 준비되었어요.”유강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옷방도 정리 좀 해줘. 다연이가 쓸 생활용품도 추가하고. 내가 자주 쓰는 브랜드로 준비해 줘. 그리고 내일 내 옷을 만들어주었든 그 사람보고 한 번 오라고 해.”장화연은 공손하게 대답했다.“네. 도련님.”뭔가 생각났는지 유강호는 계속하여 말했다.“내일 그 옷 브랜드 책임자들을 불러줘. 올 때 지금 시즌 신상품을 가지고
온다연은 깜짝 놀라 막 말을 하려는데 마침 유강후의 전화가 울렸다.그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손을 거두고 휴대 전화를 들고 화면을 바라보았다. 나은별이었다.유강후는 몸을 일으키면서 말했다.“다 먹었으면 자기 방으로 돌아가.”온다연이 묵을 방은 유강후 침실의 왼쪽에 있었다. 그리 크지 않았고 마치 유강후 침실에 달린 작은 방 같았다. 방에는 화장실과 작은 베란다가 있었다.방 전체의 가구는 바깥쪽과 마찬가지로 고급스러웠고 진주처럼 은은한 빛이 났다. 나무로 된 창문이 열리자 아주 은은한 계수나무 향기가 흘러들어왔다.온다연은 신을 벗고 안으로 들어갔다.두툼한 원목 바닥을 맨발로 밟으니 시원하고 편했다.비록 이곳이 유강후의 집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지만 온다연은 방안의 인테리어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치 그녀가 어렸을 때 살던 방 같았다.방 안을 한 바퀴 돌고 온다연은 베란다로 나왔다.베란다는 크지는 않았으나 큰 천당조화가 있었고 모처럼 꽃까지 피었다. 이 꽃을 기르는 사람이 얼마나 세심하게 보살핀다는 걸 알 수 있었다.그 옆에는 부드러운 덩굴로 만든 흰색 책걸상이 있었고 책상 위에는 잡지 몇 권과 다기 세트가 있었다.온다연은 걸상에 앉으려 하자 누군가가 자신을 보고 있는 것을 느꼈다.고개를 들어 보니 유강후는 옆의 베란다에 앉아서 전화하고 있었다.그는 한 손으로 전화를 들고 한 손으로는 난간을 쥐고 있었고 시선은 온다연을 쭉 지켜보고 있었다.그리고 천천히 신발을 신지 않은 그녀의 발을 쳐다보았다.작고 하얀 발은 사이즈가 225mm 신도 못 신을 것 같았다.유강후의 시선을 눈치챈 온다연은 저도 모르게 발을 뒤로 움츠렸지만 그녀는 지금 짧은 치마를 입고 있었기에 아무리 작은 발을 숨기려고 해도 여전히 유강후의 눈에 보였다.온다연은 불현듯 수치심을 느꼈고 조심스럽게 삼촌이라고 부르며 도망치듯 방으로 돌아갔다.방안은 깔끔하고 아름답게 꾸며져 있었고 유씨 가문에 있던 그 방보다 몇 배나 더 나은지 몰랐다. 침대에서 사용하는 실크 베개
하지만 문을 몇 번 두드렸으나 안에서 아무런 반응이 없자 유강후는 얼굴을 찌푸리며 문손잡이를 돌리고 문을 열렸다.유강후는 상자를 침대에 내려놓고 막 욕실 문 앞에 이르렀을 때 땅에 쓰러진 온다연을 발견했다.가냘픈 몸이 바닥에 웅크린 채 생기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유강후의 마음은 무섭게 졸여왔고 재빨리 그녀를 안아 올려 침대에 눕혔다.“온다연!”유강후는 가볍게 그녀의 얼굴을 두드렸다.하지만 온다연은 아직 혼수상태라 당연히 대답하지 않았다.그녀의 작은 얼굴은 끔찍할 정도로 하얗게 질렸고 입술에도 핏기가 전혀 없었다.유강후는 그녀가 왜 욕실에 쓰러져 있는지 몰랐고 어쩔 수 없이 재빨리 전화 한 통 걸었다.“주 의사, 지금 제가 사는 곳으로 오세요. 빨리요.”주 의사는 이 근처에 살고 있는 한의사였고 거의 유강후의 개인 의사였다.의사를 기다릴 때 유강후는 따뜻한 수건을 가져와 온다연의 얼굴을 닦았다.온다연은 계속 식은땀을 흘렸다. 심지어 머리카락도, 목덜미와 옷까지 전부 흠뻑 젖었다.식은땀을 이렇게 많이 흘리는 사람을 처음 보았기에 유강후는 미간을 찌푸렸다.온다연은 몸이 너무 안 좋았기에 일주일에 심지어 두 번이라 탈이 났다. 정말 몸조리를 잘 해야 했다.유강후는 온다연의 얼굴과 목을 따라 조금씩 그녀의 식은땀을 닦아 주었다.팔을 닦아주려고 하자 방금 그가 싼 붕대가 좀 더러워진 것을 보고 먼저 붕대를 떼어냈다.방금 궤짝 문에 맞힌 곳은 이미 퉁퉁 부었고 보기에 섬뜩했다.만약 다른 여자가 이런 상처를 입었다고 하면 진작에 아파서 견딜 수 없었을 텐데 온다연은 소리 한번 내지 않았다.유강후는 입술을 오므리면서 눈에는 냉기가 더욱 독해졌다.‘왜 이렇게 고집이 센 걸까? 내 앞에서는 조금도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은 걸까?’유강후는 그녀의 손을 들고 더 자세히 살펴보려고 했지만 곁눈으로 손등에 있는 반창고를 발견했다.이건 아까 차에 있을 때 그 반창고가 아니었다. 언제 새것으로 바꿨는지는 모르겠지만 변두리에서 핏자국이 쭈뼛쭈
유씨 가문에서 이제 누군가는 큰 봉변을 당하게 될 것이다.유강후는 어려서부터 중국과 서양의 사상교육을 전부 받았고 뼛속까지 지극히 전통적이지만 가족에 대한 애정이 아주 담담했다.말하자면 유강후는 도덕적인 속박감이 별로 없다고 할 수 있었다. 장화연은 유강후가 친부모를 제외하고는 다른 사람들한테 별 신경을 쓰지 않으리라 생각했다.장화연이 움직이지 않는 것을 보자 유강후는 화가 아직 채 가시지 않았기에 더욱 무서운 목소리로 말했다.“지금 당장!”그러자 장화연은 이내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바로 가져오겠습니다.”유강후의 시선은 줄곧 온다연의 손등 상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온다연의 팔을 살짝 잡아당겨 자세히 살펴보니 그녀의 교복 소매 변두리에 검푸른 자국이 조금 있었다.그의 눈빛은 매섭게 변했고 손은 나무 침대 머리를 꽉 잡았고 손등의 핏줄이 툭툭 튀었다.잠시 후 그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더니 손을 온다연의 교복 단추 쪽으로 가져갔다.교복 단추가 풀렸다.온다연의 예쁘고 사랑스러운 몸매가 그의 앞에 나타났다. 그녀의 몸매는 완벽한 각선미를 자랑했다.잘록한 허리에 긴 다리, 풍만한 가슴과 우유푸딩처럼 하얀 피부를 가진 온다연은 어떤 남자라도 유혹시킬 정도로 매력이 넘쳤다.하지만 이렇게 매력적인 몸의 곳곳에 멍이 들었다. 다리, 쇄골, 허리까지 합치면 최소 열 군데가 있어서 보기만 해도 끔찍했다.그중 가장 심한 대여섯 군데는 바로 가장 부드럽고 상처받기 쉬운 가슴과 배에 있었다. 당시 가해자의 악랄하고 지독한 심정을 알 수 있었다.유강후는 주먹을 쥐었다가 풀었고, 풀었다가 또 쥐었다. 눈 속의 분노는 거의 사람을 죽여버릴 정도로 가득했다. 심지어 목의 핏줄까지 선명하게 보였다.그는 원래 온다연이 유씨 가문에서 단지 대접을 잘 받지 못할 뿐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리 크지 않은 유씨 저택에서 이렇게 많은 나쁜 자식들이 숨어있을 줄은 몰랐다.‘유씨 가문, 이젠 청소할 때도 됐어.’이때 밖에서 장화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도련님, 주 의사가
그는 말을 마치기도 전에 유강후와 눈이 마주쳤고 유강후의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은 못처럼 깊고 차가운 눈동자를 보았다.쉰 살이 넘는 한의사는 깜짝 놀랐다. 살면서 많은 일들을 겪었지만 한 사람의 눈에 이렇게 심한 분노가 있는 것을 본 적은 처음이었다.그는 유강후가 너무 걱정할까 봐 부드러운 어조로 다시 말을 이어갔다.“비록 심각하지만 치료 방법이 없는 건 아니죠. 한약을 먹고 몸조리를 하면 돼요. 우선 이 여성분 마음속의 울분을 풀어줘야 해요. 서양 의학에서는 정신과 의사라는 직업이 있잖아요. 그쪽에 가서 치료를 받으면 좋죠. 지금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한의학과 서양 의학을 조합해서 치료를 받으면 놀라운 효과가 있을 거예요.”그는 말하며 다른 한 손을 꺼내 온다연의 다른 손의 맥을 짚으려다 그녀의 손등에 난 상처를 발견했다.늙은 한의사는 이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이건 어떻게 된 거죠?”그는 온다연의 손을 천천히 잡아당겨 상처를 자세히 살펴보았다.“이건 뾰족한 것에 찔린 게 아니라 꽤 둔탁한 물건에 의해 손등이 관통된 것 같네요. 마치 여자의 하이힐 같은 그런 물건일까요?”말이 떨어지자마자 주위의 공기가 더욱 차가워지는 것을 느끼고 고개를 들어보니 유강후의 눈빛은 사람을 잡아먹을 듯 무서웠고 목에 핏줄이 불거져 나왔다.그러자 늙은 한의사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그도 어느 정도 눈치가 있었다. 유씨 가문의 일은 그와 같은 사람이 상관할 수가 없었다.늙은 한의사는 온다연의 손등 상처를 간단하게 처리하고 처방을 써서 유강후에게 건네주었다.“잠시 후에 사람을 보내 약을 가져다드릴게요. 물 세 그릇에 약재를 넣고 한 그릇이 될 때까지 달여서 복용하세요. 하루에 세 번 드시고, 일단 한 달 동안 먹여 보십시오.”그는 또 약상자에서 이미 달인 약 한 봉지를 꺼내 건네주었다.“뜨거운 물에 데워서 마시게 하면 일시적으로 통증을 완화할 수 있어요.”유강후는 약을 받아서 집사에게 건네주었다.떠나기 전에 늙은 한의사는 참지 못하고 고개
여전히 흰색 줄무늬 셔츠를 입고 있었던 그는 깔끔하고 고귀해 보였다. 어렴풋한 밤빛에 보이는 뒷모습만으로도 사람에게 압박감을 주었다.그의 얼굴을 볼 수 없어도 온다연은 지금 그의 표정을 상상할 수 있었다.냉담하고 감정 기복이 없고 감히 똑바로 바라볼 수 없을 정도로 차가운 눈빛일 것이다.온다연는 조금 바라보다가 시선을 거두었다.그녀의 기억네는 화장실에서 쓰러졌는데 지금은 침대에 있었다.‘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온다연는 무의식적으로 자기 옷을 바라보았고 그러자 작은 얼굴은 금방 하얗게 변했다.입고 있었던 교복 치마는 사라졌고 그 대신 베이지색 실크 잠옷을 입고 있었다. 촉감이 매우 부드럽고 매끄러웠지만 온다연은 이 옷이 유강후가 자신에게 바꿔 입혔다고 생각하자 온몸이 바늘로 찌르는 것 같은 고통이 느껴졌다.게다가 위에서도 은은한 통증이 전해졌다.두 가지 느낌이 뒤섞이면서 온다연은 또 긴장한 나머지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이때 유강후가 전화를 끊고 방으로 들어갔다.온다연이 깬 것을 보고 침대로 걸어갔다.“깼어?”변함없이 잔잔하고 차가운 목소리였다.온다연은 감히 머리를 들어 그를 쳐다보지도 못한 채 침대 시트를 손에 꼭 쥐고 말했다.“네.”그사이에 온다 연은 또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고 심지어 이마의 머리카락도 흠뻑 젖었다.유강후는 그녀의 축 처진 눈썹과 젖은 귀밑머리를 바라보다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지금은 좀 어때? 아직도 많이 아파?”그러자 온다연은 고개를 저었다.“삼촌, 저 안 아파요.”온화하고 부드러운 조명이 두 사람을 감싸고 있어 화기애애할 법도 한데 온다연은 지금 유강후의 눈빛이 더욱 차가워졌고 주변 공기마저 압박감이 가득한 느낌이 들었다.그녀는 몸에 있던 이불을 꽉 조이면서 자신을 단단히 감싸고 아주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삼촌, 제 옷은...”그녀는 방금 누가 자기에게 옷을 갈아입혔는지 알고 싶었지만 감히 직접 물어보지도 못하고 이렇게 말을 빙빙 돌려서 물어봤다.유강후는 당연히 온다연이
온다연은 눈이 반짝였고 찌푸렸던 미간이 살짝 펴졌다.그녀의 미세한 변화를 알아차린 유강후의 눈빛은 많이 부드러워졌고 그는 온다연에게 한약을 건네며 말했다.“먼저 이 약을 먹어.”사실 온다연은 먼저 디저트를 먹은 다음 한약을 먹고 싶었다. 그래야 위가 덜 아프지만 지금 유강후가 이미 손에 약을 들고 있었으니 그녀는 먹을 수밖에 없었다.쓰고 매운 약 즙이 위로 흘러 들어가자 온다연은 곧 속이 메스껍고 토할 것 같았다.온다연은 구토하는 느낌을 억누르고 싶었지만 이런 생리적인 고통은 도저히 억누를 수 없었다.그녀는 혹시 침대에 토할 것 같아 얼른 입을 가리고 화장실로 쏜살같이 뛰어갔다.토하고 나니 온다연은 한결 편안해졌고 입을 헹구고 돌아서니 유강후가 문 앞에 서서 그녀를 보고 있었다.이 방은 원래 크지 않았기에 화장실도 작은 편이었다. 유강후는 존재감이 워낙 컸기에 그 자리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온다연에게 큰 압박감을 주었다.그녀는 유강후의 차갑고 어두운 눈동자를 보고 저도 모르게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세면대에 몸을 대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일부러 토한 게 아니에요. 공복에 약을 먹는 건 너무 힘들어요.”유강후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그녀를 묵묵히 바라보았다. 온다연이 어찌할 바를 몰라 할 때 입을 열었다.“그러면 먼저 가서 뭐 좀 먹어. 위가 좀 나아지면 다시 약을 먹으면 돼.”그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다연아, 방금 네가 공복에 약을 먹으면 토한다고 나한테 미리 말했으면 나도 널 강요하지 않았을 거야.”온다연은 고개를 숙인 채 눈시울이 붉어졌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알았어요.”계화 디저트는 매우 달고 설탕에 절인 계란은 온다연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었다. 하지만 유강후가 바로 곁에서 있으니 온다연은 조금씩 먹어야 했다.온다연이 다 먹자 유강후는 그녀에게 휴지를 건네주며 말했다.“30분 후에 약을 먹어.”온다연은 유강후가 자신에게 휴지를 건네줄 줄은 몰랐기에 재빨리 휴지를 받으며 말했다.“삼촌, 고마워요.”
온다연은 순순히 그의 품에 안겨 몰래 눈물을 닦았다.“보석상에서 가지러 가도 된다고 연락왔는데 아직 안 갔어요. 결혼식 며칠 전에 가려고요.”그 말을 들은 유강후는 설레는 마음에 심장이 뛰었다.“지금 가지러 가자. 어떤 건지 너무 보고 싶어.”옷 갈아입을 때 유강후는 특별히 가장 마음에 드는 슈트를 입었다.그러고는 온다연에게 넥타이를 골라달라고 부탁했다.온다연은 너무도 많은 넥타이에 흠칫하다가 다시 신중하게 골랐다.유강후는 캐비닛 앞에 서서 열심히 넥타이를 고르는 온다연이 귀여운지 입가에 웃음을 머금었다.온다연이 아직 성인이 되지 않았을 때 유강후는 이런 모습을 상상하곤 했다. 외출 준비할 때 아내인 온다연이 옷과 넥타이를 골라주며 신경 써주는 이 상황을 수년동안 기다렸다.긴 기다림 끝에 드디어 상상이 현실로 되었고 지금 그의 앞에 서 있는 온다연은 매우 열심히 넥타이를 골라주고 있다.그 모습이 어찌나 귀여운지 당장이라도 침대로 달려가고 싶었지만 어젯밤 너무 무리한 탓에 차마 그러지 못했다.유강후는 뒤에서 온다연을 끌어안고선 허스키한 목소리로 물었다.“골랐어?”온다연은 회색 넥타이를 꺼냈다.“오늘 입은 옷이랑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예뻐요.”유강후는 그녀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예쁜 건 딱히 중요하지 않아. 다연이가 좋아하면 그게 뭐든 나도 좋아.”온다연은 얼굴이 발그레해졌다.“아저씨, 그만해요.”빨갛게 달아오른 온다연의 귀를 본 유강후는 더 이상 참지 못했고 그녀의 머리를 잡고선 한참이나 키스를 한 후에야 놓아주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은 보석상에 도착했다.임정아는 안목이 좋을 뿐만 아니라 여러 주얼리 브랜드의 모델이기도 하다. 온다연은 가성비가 좋고 흔치 않은 남성용 반지를 골랐다.온다연이 집 사려고 모아둔 금액이었으니 싼값은 아니었다.하지만 유강후가 마음에 안 들어 할 수 도 있으니 긴장된 마음을 늦추지 못했다. 어쨌든 지금 입고 있는 옷과 시계에 비하면 훨씬 싼 값이니까.그런데 의외로 유강후는 매우 좋
온다연의 기분을 단번에 알아차린 유강후는 눈살을 찌푸리며 상자 중 하나를 가져와 안에 들어있는 반지를 꺼냈다.“다른 건 싫으면 안 가져도 돼. 그래도 이건 껴야지.”유강후의 손에 있는 것과 비슷해 보이는 아주 평범한 은반지였다.온다연은 무의식적으로 손을 거두었다.“지금은 끼고 싶지 않아요.”거부하는 그녀의 모습에 유강후는 불안함이 밀려왔다.“왜? 나랑 결혼하는 게 싫어?”온다연은 고개를 푹 숙인 채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너무 비싼 물건이에요. 난 제대로 된 반지 하나도 살 수 없는데... 아저씨한테 너무 불공평하잖아요.”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유강후는 그녀를 품에 끌어안고선 진지하게 말했다.“다연이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들을 가질 자격이 있는 사람이야. 시간이 너무 촉박해서 이렇게 준비할 수밖에 없었어. 많이 부족한데 이해해 줄 거지?”온다연이 답했다.“저도 반지를 준비했는데... 아저씨가 준비한 거에 비하면 너무 초라해요.”유강후의 눈빛이 반짝였다.“날 위해서 반지를 준비했다고?”온다연은 고개를 끄덕였다.“얼마 전에 주문했어요. 하지만 엄청 싼 거여서...”보름전, 온다연은 임정아에게 부탁해 남자 반지를 하나 주문했다.온다연이 감당할 수 있는 가격 중에서 가장 비쌌지만 유강후가 오늘 준비한 보석들에 비하면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질 금액이었다.결혼하게 되면 이런 선물이 오갈 거라고 생각했지만 유강후가 이렇게 많이 준비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게다가 한 세트당 수십억에 버금갔으니 그저 막막했다.막말로 온다연이 집 한 채를 팔아도 보석 한 세트조차 살 수 없었으니 얼마나 비참한 현실인가.유강후는 온다연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선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이건 예물이 아니라 다연이의 재산이야.”“결혼식 날 다연이는 영운산의 별장에서 출발할 거야. 그때 이 혼수들을 들고 나한테 시집오는 거지.”“영운산에 있는 별장이랑 경원에 있는 모든 부동산, 그리고 우리가 예전에 묵었던 온천 호텔까지 전
유강후는 돌아보며 사랑스럽게 온다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내가 한가한 줄 알아? 설마 내가 만든 음식을 아무나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한 거야?”오늘 아침과 점심만 해도 중요한 미팅이 여러 개 있는데 온다연을 위해 전부 저녁으로 미뤘다.미래 그룹도 규모가 크지만 수중에는 다른 투자 건들도 많았기에 하루 스케줄이 꽉 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최근 들어 온다연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 거의 모든 미팅을 저녁으로 옮기기 일쑤였다. 사실 온다연에게 고기를 먹이려고 준비한 시간에 미팅했다면 적어도 두 개는 끝냈을 것이다. 이렇게 바쁜 유강후가 다른 사람에게 요리를 해줄 만큼 에너지와 시간이 있을까?온다연은 이런 줄도 모르고 그저 조그마한 얼굴을 그의 품에 파묻으며 말했다.“아무튼 다른 사람한테 해주면 화낼 거예요. 그것도 엄청. 절대 안 풀릴걸요?”유강후는 일부러 놀렸다.“다연이가 화낼 때는 어떤 표정인지 궁금하네? 음... 아니면 다른 사람한테 한번 요리해 줘 볼까?”온다연은 끌어안고 있던 팔을 풀고선 몸을 휙 돌리고 떠났다.“어디가? 남은 고기 먹고 가야지.”화가 난 온다연은 씩씩거리며 말했다.“안 먹어요. 다른 사람 줘요.”유강후는 그 모습마저 귀여운 듯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심술쟁이네. 참 다루기 힘든 성격이야.”“장난이니까 얼른 와서 먹어. 난 이따가 다른 일정 때문에 나가봐야 돼.”점심 식사 후, 사람들이 우르르 찾아왔는데 저마다 아름답게 포장된 선물 상자를 들고 왔고 그 바람에 서재는 선물들로 꽉 찼다.장화연도 다락방에서 유난히 화려해 보이는 상자들을 꺼내왔다.거의 대부분이 보석인데 그것도 최상급이라 큼직한 서재는 순식간에 보석 전시장이 되었다.유강후는 사람을 시켜 방금 배달된 선물 상자들을 모두 열었고 온다연을 바라보며 말했다.“우리 엄마가 다연이 주려고 준비한 선물인데 마음에 들어?”온다연은 보석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하지만 우아한 컬러와 디자인만 봐도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게다가 시중에서
온다연이 어떤 삶을 보냈는지 알게 된 유강후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착잡한 기분이 들었고 마음이 쓰라렸다.하여 아예 그릴을 사게 되었고 직접 가장 신선한 소고기를 골라 양념에 재워놓았다.깻잎마저도 유강후가 세심하게 고른 후 한 장 한 장 정성스레 씻었다.이제 막 굽기 시작했는데 온다연이 그 향기를 맡고 내려온 것이다.고기를 바라보는 온다연의 눈빛을 보면서 유강후는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확신했다.유강후는 온다연의 흐트러진 머리를 정리해 주며 말했다.“난 다연이가 뭘 좋아하는지 다 알고 있어.”고소한 향기는 점점 더 짙어졌고 먹고 싶어서 안달 난 온다연은 옆에서 끊임없이 유강후를 재촉했다.“아저씨, 이제 됐어요. 고기 익었다고요.”그 말을 끝으로 온다연은 재빨리 손을 뻗었다.그런데 이때 유강후가 그녀의 손에서 젓가락을 빼앗아 갔다.“내가 할 테니까 넌 저기 앉아서 기다려.”유강후는 잘 구운 소고기를 깻잎에 싸서 비법 소스를 살짝 묻힌 뒤 온다연에게 먹어주었다.“먹어봐.”온다연은 재빨리 입을 벌렸고 어찌나 흥분했는지 하마터면 혀를 씹을뻔했다.유강후가 직접 고른 국내산 소고기는 비계와 살코기가 적당하게 섞인 최상급인 만큼 일반 소고기에 비해 차원이 달랐다.게다가 장인에게 직접 받아온 듯한 비법 소스를 찍으니 맛이 단연 일품이다.온다연은 한입 먹고선 곧바로 쌈을 싸 유강후에게 건넸다.“아저씨, 얼른 먹어요. 엄청 맛있어요.”쌈을 받아서 먹은 유강후는 온다연이 왜 이렇게 고기를 좋아하는지 이해하게 되었다.유강후가 굽는 족족 온다연은 전부 먹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소고기 한 접시를 클리어했다.온다연은 더 먹고 싶은 듯 다른 접시를 애타게 바라봤지만 유강후는 허락하지 않았다.맛있는 음식 앞에서 자제력을 잃는 게 일상이었기에 위가 아플까 봐 걱정되어 원하는 대로 먹게 내버려둘 수가 없었다.하지만 애처롭게 바라보는 온다연의 눈빛을 감당하지 못했다.결국 고기 세 점을 집어 그릴에 올려놓았다.“마지막이야. 더 이상 먹으면 안
유강후는 언짢아하며 눈살을 찌푸렸다.“온다연, 집에서 슬리퍼 신어야 한다고 내가 여러 번 말했지?”온다연은 그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가장 좋아하는 소고기와 깻잎이 눈앞에 있는데 슬리퍼 따위가 눈에 들어올 리가 없다.그녀는 덜 익은 소고기를 보며 군침을 삼켰다.“엄청 맛있을 것 같아요.”말하면서 저도 모르게 고기 한 점을 집어 들었다.이때 유강후가 그녀를 번쩍 안으며 테이블에 앉히더니 도우미로부터 슬리퍼를 받아와 온다연에게 신겨주었다.“온다연, 앞으로 맨발로 돌아다니면 혼날 줄 알아.”온다연은 고기에 정신이 팔린 지 오래였다. 그녀는 공기 중에 가득 찬 음식 향기를 들이마시며 침을 삼켰다.“아저씨, 왜 갑자기 집에서 고기를 구울 생각을 했어요?”유강후의 결벽증은 온다연도 알고 있다.예전에 본가에 있을 때, 집사 외에는 아무도 그의 방에 들어갈 수 없었고 음식을 반입하는 건 더욱이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지금 이 한옥에서도 늘 음식 냄새에 집안에 배는 걸 싫어하던 사람이다.그런 사람이 그릴을 사서 고기를 굽고 있으니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유강후는 먹고 싶어 안달 난 온다연의 모습이 귀여운지 저도 모르게 피식 웃고선 그녀의 두 볼을 꼬집었다.“어떤 아기고양이가 고기 먹는 걸 좋아해서 그릴 하나 샀어.”“밖은 아직 추우니까 오늘은 일단 여기서 먹자. 나중에 날이 따뜻해지면 마당에서 구워 먹어도 되고.”온다연은 시선을 거두고 조심스럽게 유강후를 바라봤다.“아저씨, 집에 음식 냄새 배는 걸 싫어하잖아요? 그리고 제가 이거 좋아하는 거 어떻게 알았어요?”유강후는 아침 일찍 메일에 로그인하여 온다연과 주한이 주고받은 과거의 이메일을 전부 읽었다.보면 볼수록 질투도 나고 착잡한 심정이지만 그럼에도 온다연의 취향을 알 수 있는 건 전부 꼼꼼히 메모해 두었다.온다연은 요리에 재능이 없어 지난 수년 동안 주한이 그녀를 위해 맛있는 음식을 해주었다.그들이 주고받은 메일을 보면 주한은 요리 솜씨가 좋아서 아주 평범한 재료들로 맛있는 음식
손을 놓았는데도 여전히 울고 있는 온다연의 모습에 유강후는 가슴이 미어져 어찌할 바를 몰랐다.“왜 그래? 많이 아파? 어디 다쳤어?”평소보다 훨씬 조심히 움직였기에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온다연은 고개를 들 엄두도 내지 못한 채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답했다.“미안해요. 옷이랑 테이블이 더러워졌네요. 일부러 한 건 아닌데...” 말하면 할수록 목소리는 점점 더 작아졌고 너무 부끄러워 당장이라도 쥐구멍에 숨고 싶었다.유강후는 주위를 둘러보고서야 온다연의 행동이 이해되었다.온다연은 혹여나 그가 비웃을까 봐 걱정하고 있었던 게 틀림없다.그는 온다연을 번쩍 안아 올려 흐트러진 치마를 정리해 주고선 자신의 무릎 위에 앉혔다.“왜 이런 일로 울어. 난 너무 좋은데? 다연이가 날 좋아하고 신경 쓴다는 증거잖아.”유강후는 고개를 숙여 그녀의 귓가에 입을 맞추며 물었다.“어때? 이런 건 좋아?”온다연은 여전히 고개를 들지 못했다.사실 일생에서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느낌이었기에 그때만큼은 자신이 누구인지 잊어버려 자제력을 잃었다.물론 너무 좋았지만 이런 말을 차마 입 밖에 낼 수가 없었다.온다연은 입술을 꽉 깨문 채 입을 꾹 다물었다.유강후는 결코 물러설 생각이 없는지 계속하여 물었다.“빨리 알려줘. 좋았어?”여전히 말하지 않는 온다연의 모습에 유강후는 다시 그녀의 가느다란 허리에 손이 갔다.“왜 답을 안 하지? 다연이는 아침처럼 넥타이에 묶이는 걸 좋아하나 보네. 그럼 한 번 더 할까?”그 말에 온다연은 화들짝 놀랐다. 살 까진 곳이 아직까지 따끔거렸으니 절대 해서는 안 된다. “안 돼요. 그런 건 싫어요.”유강후는 피식 웃었다.“그럼 방금 했던 건 좋아?”온다연은 답하지 않으면 이 고비를 넘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유강후는 기분이 좋은지 그녀의 이마에 입맞춤했다.“좋아하면 말해야지. 다연이가 어떤 모습이든 내 눈에는 다 사랑스러워. 지금도 마찬가지야.”온다연은 그제야 사실대로 답했
온다연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한편으로는 유강후가 왜 성욕이 이렇게 강한지 이해하지 못했다. 책이나 인터넷에서 알게 된 것보다 몇 배는 더 심한 정도였고 매번 무리한 요구를 하는 유강후가 버겁게 느껴지기도 했다.게다가 아직 몸이 완벽하게 나은 게 아니기에 작은 움직임에도 너무 아팠다.온다연은 서러운 듯 고개를 푹 숙였다.“안 돼요. 아직 아파요...”유강후는 새빨개진 온다연의 귀에 입을 맞추며 놀리듯이 답했다.“거절하는 거야? 내가 안중에도 없다는 뜻이네? 더 화내도 되는 거지?”그 말에 온다연은 마음이 초조해졌다. 사실 온다연은 유강후의 화를 풀어주기 위해 밤새도록 고민했다.유강후가 위압적이고 억지 부리는 사람인 건 맞지만 오늘처럼 냉랭한 태도를 보이는 건 처음이었다. 먼저 다가가려고 노력했지만 유강후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고 그 모습에 온다연은 점점 불안해졌다.그럼에도 주한은 온다연에 있어 영원한 비밀 같은 존재였기에 섣불리 얘기할 수가 없다.이도 저도 아닌 상황에 점점 막막해졌고 유강후의 화를 어떻게 풀어줘야 할지 몰랐다.처음에는 직접 만든 만두를 건네주며 사과하려고 했지만 밤새도록 빚어도 그럴싸한 모양이 하나도 없었고, 이런 못생긴 만두를 유강후에게 줄 면목도 없었다.계획이 실패하자 머릿속이 텅 비어 별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한참 동안 곰곰이 생각한 온다연은 큰 결심을 내린 듯 입술을 깨물며 속삭였다.“다른 방법으로 하는 건 어때요? 정말 아파서...”온다연은 말하면서 돌아서더니 고개를 들고 유강후의 목젖을 가볍게 깨물었다. 동시에 손을 그의 옷 속에 넣었고 부드러운 손길은 곧바로 벨트 방향을 따라 천천히 밑으로 내려갔다.“이런 건 어때요?”유강후는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리드하는 법을 가끔 알려주기도 했지만 이런 스킬을 가르쳐준 적은 없었다.‘누구한테서 배운 거지?’“얘는 자기가 남자들에게 얼마나 매력적으로 보이는지 모르는 건가? 미치겠네.”유강후는 그녀의 가는 허리를 붙잡고 허스키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고는 창가로 가서 온다연을 살펴보았다.장화연이 나지막이 말했다.“저녁 내내 도련님을 기다리다가 방금 잠들었어요.”유강후는 온다연이 깊은 잠에 빠진 것을 보고, 담요를 잘 덮어준 후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야식은 뭘 먹었어요?”장화연이 대답했다.“안 먹었어요. 계속 도련님이 언제 돌아오냐고 묻다가 또 어떤 음식을 좋아하냐고 묻더군요. 수제 만두를 좋아한다고 했더니 저녁 내내 밀가루 반죽을 하는 거예요. 그런데 밀가루 한 봉지를 다 쓰고도 제대로 된 만두를 한 개도 빚지 못했어요.”장화연이 주방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만두는 저쪽에 있어요. 도련님이 돌아오시면 삶겠다고 하더니 기다리다 못해 잠들어 버렸어요.”이 말을 들은 유강후는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어디 있어요? 보고 싶어요.”“주방에 있어요.”주방에 들어서니 기괴한 모양의 만두 한 접시가 보였다.딱 봐도 밀가루 반죽이 제대로 되지 않았고, 만두피가 터무니없이 두꺼운 데다 빚은 모양도 예쁘지 않았다.하지만 이렇게 못생긴 만두 한 접시가 유강후는 그저 귀엽게 느껴졌다.‘꼬맹이가 요리를 잘 못하고 주방에 관심도 없는 것 같았는데, 오늘 나한테 잘 보이려고 음식을 만들었나 보네.’그는 마음속이 살짝 달콤해졌고, 처음 온다연의 마음속에 자신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주방에서 나온 유강후는 서재로 갔다.그가 직접 결재해야 할 중요한 서류가 있었다.절반쯤 봤을 때 서재 문이 열렸고, 온다연이 작은 접시를 들고 문 앞에 서 있었다.유강후가 화상회의를 하면서 서류를 결재하고 있는 것을 보고, 그녀는 물러가야 할지 들어가야 할지 몰라 머뭇거렸다.유강후는 그녀를 못 본 척하고 일에 몰두했다.온다연은 그의 안색을 살피며 문 앞에서 몇 분 동안 서성이더니 끝내 참지 못하고 다가왔다.그녀는 손에 든 접시를 책상 위에 놓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아저씨, 드셔 보세요.”유강후는 못 들은 척하고 계속 서류를 읽었다.온다연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잠시 후, 그녀는 기
유강후는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어르신, 그 부부의 일에 대해 또 아는 것이 있으신가요?”할머니는 잠시 망설이며 유강후를 쳐다보았다.“주한의 일을 조사하러 온 거 아니었어요? 그 여자애 일은 왜 묻는 거죠? 혹시 그 여자애를 본 적이 있어요?”“옷을 잘 차려입은 걸 보니 많이 배운 사람인 것 같은데, 왜 허튼수작을 하려는 거죠? 그 여자애 얘기는 더 이상 하지 않을 거니까 가세요.”말을 마친 그녀는 다른 방으로 들어가 매트 위에 무릎을 꿇고 염불하기 시작했다.이권이 아무리 좋을 말을 해도, 아들이 아무리 설득해도, 할머니는 마음을 굳게 먹고 더 이상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그렇게 한 시간이 지난 후에도 할머니는 한마디도 하려 하지 않았다.어찌할 도리가 없는 유강후와 이권은 그곳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떠나기 전에 유강후는 할머니에게 말했다.“어르신, 예전에 그 여자애에게 베푼 호의에 감사드립니다. 안심하고 이 집에 그냥 사십시오. 이 거리는 철거하지 않을 것이고, 며칠 뒤에 사람을 보내서 수리하고 정비할 것입니다. 이곳을 다시 개조해서 예전 모습으로 되돌려 놓겠습니다.”할머니는 그제야 고개를 돌려 유강후를 쳐다보았다.“누구신데, 총각이 말한 대로 되는 거예요?”유강후가 나지막이 말했다.“됩니다. 안심하고 지내세요.”할머니는 잠시 망설이더니 일어섰다. 그녀는 낡은 수납장을 한참 동안 뒤져서 오래된 앨범을 찾아냈고, 그 속에서 사진 한 장을 꺼내서 유강후에게 건넸다.“그 두 아이의 어릴 적 사진이니 가져가세요. 사진이 유용하게 쓰여서 하루빨리 그 짐승 같은 놈을 잡았으면 좋겠네요.”유강후는 사진을 받아서 들었다.잘 보관하지 못해 색이 바랜 곳도 있었지만, 집에서 열린 파티에서 찍은 사진이라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사람이 많았는데, 온다연은 주한의 뒤에 서서 옆으로 깨끗한 얼굴을 내밀고 카메라를 향해 수줍게 웃고 있었다.사진 속의 온다연은 여덟아홉 살 정도 되는 것 같았고, 일자 앞머리를 자른 모습이 유난히 순해 보였다.유강후가 본